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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우정과 연대 그리고 반목과 화해의 이야기 | 기본 카테고리 2017-11-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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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폴 핼펀 저/김성훈 역/이강영 감수
플루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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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원제: Einstein’s Dice and Schrodinger’s Cat)

핼펀(Paul Halpern) 지음 | 김성훈 옮김 | 이강영 감수 | [플루토]

 

 

 

 

들어가며

오늘날 아인슈타인은 말할것도 없고, 많은 일반인들이 슈뢰딩거에 대해서도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나, 애매모호함의 상징이 되어버린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 이미 대중문화에 자리잡은지 오래다. 지난 백여년 간의 물리학사를 되돌아볼 , 사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얄궂은 입장을 공유하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바로 20세기 현대물리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물리학자들의 우정과 연대, 반목과 화해의 이야기이자 현대물리학사의 국면에 대한 흥미롭고 귀중한 기록이기도하다. 그리고 물리학자 사이를 매개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연의 모든 힘을 통합하려는 통일이론 있었다. 책은 1900년대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하던 시기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힉스입자 발견 중력파 검출 등의 최근 물리학 소식까지 아우르며 인류가 존재의 기원 우주의 근본에 대한 이해라는 노력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사람은 20세기 양자역학의 정립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장본인이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발견,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정립으로 사람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양자역학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주축이된 코펜하겐 해석’, 자연의 무작위성 확률 대변되는 철학적 해석이 많은 물리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공동의 전선을 구축하게 된다. 사람은 우주의 질서에 우연이 배제된 결정론적 법칙이라는 명료함과 객관성에 의해 유지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자연의 여러 힘들을 통합하려는 노력에 전념하게 된다. 책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이들 사이에 오고간 편지 사료들을 조사하여 재구성하고 있다.

 

 

 

 

스피노자라는 유령과 스피노자의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 너무나 알려진 아이콘으로서 그가 상대성이론이나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등의 발견 이론 정립 뿐만 아니라 생의 후반에 통일이론 정립에 매진했음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면 슈뢰딩거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입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연대하며 통일이론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나아가 책에서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 모두에게 의식/무의식 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다름아닌 스피노자라는 사실이다. 물론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람은 모두 철학적으로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마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으나, 시기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스피노자가 나머지 사람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하필 스피노자인가? 네덜란드의 유대인으로서 이른 나이에 유대교단 으로부터 저주와 함께 파면을 당했다고 하는 이단아 스피노자, 파면 렌즈 깍는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운 사람에게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경도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자연에는 우발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신성의 필연성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행동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재인용(163)

 

저자 핼펀이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인용해놓은 부분을 보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평생토록 취했던 철학적 입장, 다시말하면 우주에 대한 근본적 설명에 애매모호함이나 주관성을 배제하려고 했던 입장의 실마리가 보인다. 우연을 거부하고 결정론적인 믿음을 갖게 데에는 분명 스피노자의 치밀한 철학체계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것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보더라도, 책은 짧은 스피노자의 생애의 상당 기간동안 엄밀한 기하학적 증명 방식을 빌어 자연의 법칙이라는 신과 인간에 대한 논증을 완성해나간 책이다. 공교롭게도 20세기가 태동하면서 등장한 양자역학의 애매모호성 스피노자의 엄정하고 객관적인 신의 세계와 양립불가능해보였다. 다시말하면 스피노자의 완벽한 자연 법칙, 스피노자의 신에 무한한 신뢰를 가진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에게 양자역학은 불합리해 보였을 것이다. 사람 모두 양자역학의 성립에 중요한 기여를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스피노자의 유령은 이들에게 향후 입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는 존재의 질서정연한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New York Times, 1929 4 25일자에서 아인슈타인의 인용 (164)    

 

아인슈타인의 말을 음미해보면, 그리고 향후 70년이 넘는 인생에서 그가 궁극의 통일이론을 발견하기 위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음을 읽어낼 있다. 결국 스피노자의 신은 아인슈타인 뿐만 아니라 슈뢰딩거에게도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있다. 물론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보다 좀더 쇼펜하우어와 힌두교의 베단타 철학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를 서구 최고의 학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쇼펜하우어도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려한다면, 통일이론을 추구한 슈뢰딩거의 행보도 설득력을 갖는다. 나아가 자연의 모든 법칙을 기하학적 원리를 통해 표현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아인슈타인에게 스피노자는 일종의 교리였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아인슈타인이 실증적인 증거에 대한 고려없이 순수 수학적인 세계에 침잠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 대중적으로는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던 시기에 학문적으로는 물리학계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가던 아인슈타인의 입장을 좀더 이해할 있을 같다. 나는 이것이 스피노자라는 유령이 아인슈타인에게 영향이라고 본다. 저자는 보다 명료하게 스피노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에서 확률을 거부하고, 수십 년에 걸쳐 매끈한 통일장이론을 추구했던 것은 분명 그가 스피노자의 개념을 열렬히 고수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164-165)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인간적인 면모

그러나 어쩔것인가? 우리 모두는 결국 사람인 것을.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의 가정 생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정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 모두 화려한 여성 편력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들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 문화에서 정해놓은 규범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기도하고, 어느 순간 잘못 판단하여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나치가 독일에서 실권을 잡고 오스트리아를 합병 하던 , 슈뢰딩거는 영국에서의 임기를 끝내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나치에 동조하지 않았던 슈뢰딩거는 자신의 교수직을 지키기위해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를 지지한다는 편지를 썼던 일은 분명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만한 일이겠지만, 거대한 폭압적 세력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고충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치의 입장에서 믿음직스럽지 못하게 보였던 슈뢰딩거는 편지에도 대학 명예교수직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아마도 이러한 불안감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슈뢰딩거는 더욱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그리고 베단타 철학 종교적/철학적 질문에 침잠하는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통일장 이론에 매진하던 아인슈타인의 말년,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모든 (자신의 통일장 이론에 대한 노력) 옛날의 돈키호테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같군. 하지만 실재를 나타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유지하고 싶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네.

: 슈뢰딩거에게 보낸 1950 09 03일자 편지에서 인용(399)

 

세상물정에 어두워 보이는 아인슈타인이라도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노력에 대한 숱한 회의를 했음을 짐작해볼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아인슈타인의 행보를 되돌아볼 , 통일이론을 구축하려는 평생의 노력은 결국 무산되었다. 세기의 천재였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그리고 어쩌면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입장과 종교에 가까운 집착으로 인하여 실패는 예견되었을 있다. 하지만 일흔이 넘도록 자신의 신념과 열정에 따라 사망하기 전날 까지도 연구할 있었던 아인슈타인은 인간으로서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사람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노력을 경주했지만, 이들 사이에 언제나 우정이 가득했던 시기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1947 슈뢰딩거가 통일장 이론을 완성했다는 언론 발표 이후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슈뢰딩거는 아일랜드 더블린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업적에 대한 압박과 언론사들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하여 아인슈타인의 감정을 건드린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 심지어 상대방을 표절로 고소할 생각까지도 했다는 사실도 당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후 사람이 다시 편지를 주고 받기까지 꼬박 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점도 나에겐 천재들이 결국 완벽하지만은 않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저자는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사람의 관계를 보면 사람은 애정이 넘칠 때도 있었지만, 배신의 순간도 있었다. 사람은 순간의 환영을 쫓다가도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것이다.”(423)

 

 

 

 

나가며

저자 핼펀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본 현대물리학사의 모습을 면밀한 자료조사와 이야기 실력으로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특히 사람이 서로에게 또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보다 친근하게 천재 물리학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다가갈 있었던 기회였다. 저자가 성실하게 통일 이론과 관련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지만, 통일장이론에 관해서는 학문적 소수파에 속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현대 물리학의 발전 과정을 가까이서 있었기에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궁금증을 가진 부분 하나는 불확정성에 관한 아더 에딩턴의 해석에 있다.

양자적 불확정성이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했던 것처럼) 자연의 근본적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적인 정확도로 측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289)이라는 에딩턴의 해석은 현재 물리학계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주장은 아직 하나의 견해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결코 절대적인 정확도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물리학 교과서도 바뀌어야 하지 않은가.

 

다른 궁금증 하나는 저자인 핼펀이 슈뢰딩거가 말년에 지도하고 이후에 디랙과도 연구한 레오폴드 핼펀이라는 인물을 거론하는 부분(411) 있다. 성이 동일한 폴과 레오폴드라는 사람의 관계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물론 책의 주제와 상관없을 것이지만, 가끔은 책의 주제보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엉뚱한 곳으로, 옆길로 새는 과정에서 나만의 책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분명 저자는 부분에 나름의 의미를 담아 기록해두지 않았을가 하는 짐작을해본다. 저자 핼펀은 슈뢰딩거의 마지막 연구조교라는 레오폴드 핼펀의 아들일까?

 

책을 덮으며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현대 물리학사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던 사람이지만, 이들도 1 2 세계 대전을 겪고, 나치의 영향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기에 각자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낸 결과물들이라는 점을 염두해둔다. 아울러 이들도 결국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숱한 과오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사람은 무기력하거나 좌절감을 겪으며 상당한 시간을 뚜렷한 결과 없이 견뎌내었던 점도 잊지 말아야 같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은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둘도 없는 단짝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을 묶어주는 힘은 통일장 이론이었으며, 이들이 수없이 주고 받았던 편지들은 존재 사이의 힘을 매개해주었던 교환입자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은 슈뢰딩거 자신이 언급했던 고양이 역설 사고실험에서 얽힘 대상이 되는 입자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C) 표지/일러스트: 이다은

 

 

 

 

 

#사이언스올 #과학 #우수과학도서 #리더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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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하는 행위로서 걷기와 철학하기는 공통점을 갖는다 | 기본 카테고리 2017-11-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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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로제 폴 드루아 저/백선희 역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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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로제 드루아 지음 |  백선희 옮김 |  [책세상]

 

 

 

 

로제 드루아는 <일상에서 철학하기>, <사물들과 함께 하는 51가지 철학 체험>등과 같이 일반독자들이 철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있도록 책을 작가이자 철학자라고 있다. 철학자라고 하면 사변적인 이야기로 책을 채우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로제 드루아는 그렇지 않은 같다. 장황하고 어렵게 글을 쓰곤 하는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과 달리 그의 글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철학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철학에 부담없이 다가갈 있도록 안내하는 철학저술가로서 그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하다.

 

 

걷기와 철학하기의 유사성

머리만이 아닌 온몸으로 철학을 해보는 그만의 철학하기 방식은 결국 저자로하여금 우리의 가장 평범한 일상의 풍경으로 다시 눈을 돌려 우리 곁에 철학을 데려왔다. 바로 걷기와 철학을 함께 시도해보는 것이다. 드루아가 독자에게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볼 것을 권하는데, 바로 우리가 걷는다는 행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주문이었다. 저자가 표현하는 걷기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추락하기로부터 걷기 행동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추락이 시작되다가 만회되고 다시 촉발되다가 모면되는”(106) 행위가 바로 걷기 행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발을 내딛고 몸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반대쪽 발이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지게 된다. 다른 발의 행동이 보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하나는 걷기의 메커니즘을 철학에 비유한다. 걷기와 철학은 항구적인 추락과 만회라는 유사한 움직임 속에 자리하고 있다. 생각은 어느 곳보다 철학의 훈련 속에서 스스로 붕괴될 위험을 촉발하며, 새로운 솟구침, 도약으로 자신에 저항하길 멈추지 않으며 나아간다.”(22)  결국 저자는 우리의 걷기와 철학하기가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을 통해 나아가는 이라고 정리한다. 철학하기에서 균형을 깨는 계기는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이는 대상이나 사실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 내지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가 철학하는 과정은 바로 사고의 요동, 의혹을 통해 기존의 가치를 뒤흔드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가 걷기의 메커니즘을 닮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걷기는 철학자에겐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자 과정이라고 있고, 지구 위에서 이동하는 인간만의 유일무이한 특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로제 드루아는 걷기 그리고 철학하기의 풍경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서양을 넘나들며 걷기와 철학하기의 유비를 책에서 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우리 인류가 이동 도구에 보다 의존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영화 < 투더 퓨처>에서 미래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타고다니는 날으는 보드 모습과 유사한 풍경들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엿볼 있다. 불과 10 전만 해도 바퀴 하나 또는 달린 발판 이동기구, 또는 전동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사람은 거의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심심치않게 도시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이동기기들을 타고다니는 젊은이들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번씩은 우리의 머나먼 미래 세대의 경우, 걷는 일을 잊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로제 드루아도 분명 우리의 걷기가 우리 인류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 자신도 우리가 이상 걷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멈출 것이라고 단언 한다. “인간의 걷기가 점차 소멸하는 분명 모든 측면에서 인류의 소멸이 것이다.”(208)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걷기행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중력에 저항하는 인류의 고유한 행동이라고 수도 있지 않을까. 인류가 지구의 표면에서 살아가고 있는 , 모든 인류는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없다. 하지만 인류는 발로도 서야하고, 중력에도 저항하는 방식으로서 다리를 단단한 대지 위에 버티고 서서 걷는 행동을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습득하게 되었다. 로제 드루아가 직립보행하는 인류는 걷기과정을 통해 생각하고 철학하는 일이 함께 발달해왔다고 보는 것처럼, 나는 인류가 중력에 저항하여 대지 위에 버티고 걷게됨으로써 의지(will)라는 것을 배로소 배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된다. 바로 자신을 억누르는 무형의 존재에 대한 저항행위로서 인간이라는 개체가 스스로 의지를 발달할 있었던게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걷기란 인간이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고유한 속성이라는 드루아의 표현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다. 걷기의 리듬에 맞추어 우리의 사고도 진일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른 교통수단을 타고 순식간에 이동하는 현대인들에게 걷는 행위, 산책과 같은 일은 인류가 인간다움 비로소 회복할 있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져 해보게 된다. 우리에게 철학을 친숙하게 만들어준 로제 드루아의 책은 걷는행위 잃어가는 혹은 잊어가는 듯한 현대인들이 주목해보고 함께 사유의 풍경 걸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20면)
˝인간은 걷기 시작하면서 말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2면)
˝걷기와 철학은 항구적인 추락과 만회라는 유사한 움직임 속에 자리하고 있다. 생각은 그 어느 곳보다 철학의 훈련 속에서 스스로 붕괴될 위험을 촉발하며, 새로운 솟구침, 새 도약으로 자신에 저항하길 멈추지 않으며 나아간다.˝

(23면)
˝어떤 경우건, 생각하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생각 또한 불안정한 균형을 통해 나아간다.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면서 멀리 나아간다.˝

(106면)
˝추락이 시작되다가 만회되고 다시 촉발되다가 모면되는...˝
==> 인간의 직립보행이 지니는 고유한 속성의 표현

(107면)
˝철학적 사유는 여러분이 지각하는 것, 그 명백한 사실을 불안정하게 흔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207면)
˝걷는 모터는 자기 삶을 살 위험이, 일하는 모터처럼 돈을 벌어 오지 않을 위험이 있다.˝

(208면)
˝인간의 걷기가 점차 소멸하는 건 분명 모든 측면에서 인류의 소멸이 될 것이다.˝

(210면)
˝왜 여전히 걸을까? 인간의 여행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 한 발짝은 미미하나 길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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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 새소식 2017-11-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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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의 비전

 

씨앗에서 식탁까지, 인간과 자연을 돌보는 길

 전방위적 사상가이자 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문제작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푸드 생태학의 비전을 제시하다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먹거리의 공포와 자연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전한 밥상을 차리고 지속 가능한 생명의 그물을 짜기 위하여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사상가운동가인 반다나 시바의 신간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는 음식에 대한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 기초해 음식과 농업을 둘러싼 지식과 사유와 실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하는 책이다. 세계화와 GMO에 반대하며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를 옹호해온 수십 년 동안의 지적실천적 역량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시바는착취의 법칙에 기초한 산업 패러다임반환의 법칙에 기초한 생태 패러다임’의 전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식량 위기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탐욕과 이윤을 동력으로 하는 세계화된 산업농이 식량과 농업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폭력적인 지배적인 산업 패러다임에서 생명의 상호 연결성과 생명 다양성에 기초한 소농 중심의 생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지구의 안녕과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 전환은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자체와 직결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절대 과제이다.


그렇다면 정말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오늘과 내일의 세계를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반다나 시바는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한다. ‘푸드가 생명의 그물이고세계가 가이아라면,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것은 생물 다양성, 그리고 소농들의 지혜라고. “30여 년의 연구와 삶의 경험은 내게 한 가지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식량 문제의 해답은 산업농이 아니라 농생태학에, 생태농업에 있다.” 반다나 시바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해 기초해 농생태학이 발전시킨 실천들, 즉 세계 부양의 주체를 일곱 가지로 구체화한다.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토양이다.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이다.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성 어린 단일 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대규모 산업농이 아니라 소농, 농사짓는 가정, 텃밭 일꾼들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서평단 모집



인원 ┃ 총 10명

기간  11월 21일 (화) ~ 11월 27일 (월)

발표 및 배송 11월 2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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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을 이해하고, 변화를 일구어내는 방법 | 기본 카테고리 2017-11-13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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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적의 리미널 씽킹

데이브 그레이 저/양희경 역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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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리미널 씽킹

(원제: Liminal Thinking:

Create The Change You Want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

데이브 그레이(Dave Gray) 지음 | 양희경 옮김 | [비즈페이퍼]

 

 

(리미널 씽킹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리미널liminal이란 단어는 문턱 의미하는 라틴어 리멘limen’에서 유래했다. 리미널 변화의 단계, 또는 변화의 기간을 의미한다. 리미널 씽킹을 풀어말하면 경계에서 생각하기 의미한다고 한다.

 

 

우선 책의 전반부에서는 우리의 개인 집단에서 형성되어 있는 무형의 실체의 믿음체계 관해 해부를 하며 들여다본다.  과연 우리가 믿음이라고 하는 심리적 기작을 통해 형성되는 진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볼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이러한 신념체계 기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행동은 이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성 사람의 행동을 부추기지 못한다.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감정이다.”(136)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사실은 변화를 꾀하지 못하게 막는 제약의 대부분이 오직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224)

 

 

표현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취사선택하여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진 믿음 우리의 감정과 욕구가 유착되어 이루어지게 된다는 관점이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는 나름의 결과가 있을 것이고, 결과가 타인과의 관계나 회사의 기업활동에 해당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과가 우리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결과가 긍정적이면 좋지만, 우리 사회가 매번 우리가 바라는 대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99% 우리가 우려하는 대로 나타나기 쉽상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체계 적절하지 못하다면, 믿음을 바꾸어야할 것이 당연할 듯한데, 이게 쉽지가 않다. 그럼 이런 문제점들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몸을 움직일 있겠는가에 대한 물음에 저자가 제안하는 것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책의 전반에 소개되는 우리의 믿음 본질과 믿음체계 대한 분석 그리고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수칙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따로 정리하지는 않겠다. 책이 얇고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요구하는 대로 변화를 열망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것이다. 여기까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약장수같은 느낌이 없지않지만, 저자 데이브 그레이가 믿음이 우리를 제한한다.”(81)라고 간결하게 써놓은 문장에서 자신의 경우를 바로 떠올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수행능력이나 행동여부 등을 살펴보면, 의외로 심리적인 원인 기인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나의 경험을 통해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저자의 견해대로 나의 믿음 나의 경험과 나의 판단에 의해 취사선택되어 형성된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나의 행동을 제어하곤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개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이나 변화를 이야기할 개인 또는 집단심리적인 연구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믿음이라는 무형의 대상이 형성되는 과정이 다분히 심리적 과정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정신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러하다. 상당히 많은 일상의 영역에서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나의 믿음’, 신념체계에 관계된다. 따라서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배우려면 자신의 잔을 비우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바로 자신을 비우라는 말을 상기하며 저자의 말을 계속 따라가며 읽어나간다.

 

 

책은 우리가 가질 있는 의혹 중요성을 인지하며, 모호하고 방향성없는 상태를 벗어날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책으로 읽힐 있다. 뇌신경학자/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들의 견해가 아니라(이들은 대상의 상태, 현상을 분석하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을 수는 있지만), 저자는 우리가 다른 어떤 무언가를 하고 결과를 얻을 있는가에 대한 길안내를 자처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실들과 방법론들은 개별적으로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서 내가 주목해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인간이라는 대상의 욕구 감정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책이 다른 경영서와 다른 차별적인 특성은 바로 인간이라는 요소에 대한 성숙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개인의 욕구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의 욕구와 감정은 부정적인 것인가? 나는 이전에 이런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던가를 새롭게 자문해보기도 했다. 책의 개별적인 사항에 대해 새로울 것은 없어도, 저자의 경험과 숱한 고민을 통해 제시하는 인간적인방법론은 나름대로 타당하다. 구체적인 저자의 실천법을 여기서 일일이 정리하지는 않겠다. 다만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이 노력을 기울인 리미널 씽킹, 경계에서 생각하기의 요체가 무언인가를 다시 정리해둔 부분을 여기에 다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우리의 일상에 혼돈 상태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모델에 의도적으로 훼방을 놓는 방법이다. 일부러 혼돈으로 뒤엉킨 상태를 만듦으로써, 과거 모델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할 있는 새롭고 흥미로운 모델을 도출할 있게 해준다. (…) 새로운 기회를 맞으려면 여러분은 복잡함을 포용해야 한다.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줌으로써 변화의 길로 항해하게 하는 방법이자, 어느 정도의 파괴 없이는 어떤 실체적인 창조도 있을 없음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227-228)

 

 

저자의 설명을 언어로 이해하고 표현하자면, ‘경계에서 생각하기 고인 물의 물꼬를 있는 변화를 주어 흐름 변화를 촉발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다시 정리할 있을 같다.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경계에서 생각하기가 중요한지를 개인에서 출발하여 사회적인 의미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경계에서 생각하기가 중요한 이유는 우선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당신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가족, 친구가 중요하기 때문이며, 모든 구성원들이 속한 사회가 중요하고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 전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 선종의 가르침을 언급하기도 저자의 리미널 씽킹의 가치는 마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교훈과도 닮아 있다. 이토록 중요한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바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이것이 만사의 근본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책을 덮으며 책을 다시 환기해보면, 저자 데이브가 말하는 믿음, 믿음 거품은 다른 말로 패러다임으로 번역해볼 수도 있겠다. 개인이든 사회든 각각 지니고 있는 믿음 체계, 독트린, 주의가 바로 이러한 아닐까. 우선 믿음은 (취사선택되어) 만들어지는 모델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믿음이 창조해낸 공유세계 바꾸려면 당연히 이러한 믿음체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나름의 관성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행동 강령으로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보존하려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기반이 되는 믿음을 바꾸어야만 하는데, 결국 이것은 당사자 바로 자신이 스스로를 바꾸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패턴, 실패와 파멸의 고리 속에 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여기에 변화의 물꼬를 트는 , 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데이브가 책에 쏟아부은 노력과 에너지의 실체라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9가지의 실천법은 책을 확인하라. 가장 인상적이고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실천법 가지는 자신을 비우고, 멈추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는 타인의 욕구와 감정이 드러날 있는 안전지대를 만듦과 동시에 타인과 나와 공유할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드러난 문제점들을 바라보고 해결할 있는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중요한 것은 고인 물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행위가 바로 인도의 쉬바 역할처럼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일이다. 여기서의  파괴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것의 건설이라는 전제가 되는 파괴를 의미할 것이다. 변화의 순간, 전환기의 기회를 가져다주는 사고방식이 바로 리미널 씽킹으로 이해해볼 있을 것이다. 

 

 

 

˝믿음이 우리를 제한한다.˝(81면)

“이성은 사람의 행동을 부추기지 못한다.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감정이다.”(136면)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사실은 변화를 꾀하지 못하게 막는 제약의 대부분이 오직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224면)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우리의 일상에 혼돈 상태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모델에 의도적으로 훼방을 놓는 방법이다. 일부러 혼돈으로 뒤엉킨 상태를 만듦으로써, 과거 모델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새롭고 흥미로운 모델을 도출할 수 있게 해준다. (…) 새로운 기회를 맞으려면 여러분은 복잡함을 포용해야 한다.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줌으로써 변화의 길로 항해하게 하는 방법이자, 어느 정도의 파괴 없이는 그 어떤 실체적인 창조도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227-228면)

˝만약 어떤 일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1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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