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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고래가 함께 사는 미래를 상상하기’ | 기본 카테고리 2021-09-29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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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저/배동근 역
바다출판사 | 202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고래와 인간의 긴밀한 관계를 담고 있는 우주적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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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가는 곳

: 바닷속 우리의 동족 고래가 품은 지구의 비밀

: Fathoms: the environmental story of the whale

레베카 긱스(Rebecca Giggs) 지음 | 배동근 옮김 | [바다출판사]

 

 

인간과 고래가 함께 사는 미래를 상상하기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직전에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려고 계획한 적이 있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지만 코끼리와 고래 같은 대형 포유류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유행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동안 암각화 방문 계획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세이스트 리베카 긱스의 고래가 가는 곳에서 언급된 반구대 암각화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8천 년 전의 조상이 남긴 이 곳을 다시 방문하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래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오랜 관심, 바다라는 환경과 인간의 개입,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해부학적으로 현대의 인간이 약 20만 년 전에 등장했다고 한다면, 고래는 약 5천만 년 전에 육지에 서식했던 포유류로부터 등장했다고 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하마, , 늪에 사는 척삭동물과 인간이 바로 고래에서 진화하여 갈라져 나온 것으로 설명된다. 고래의 퇴화한 뒷다리가 그 증거다. 이렇게 고래는 인간보다 5천만 년 전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지구 최대의 포유류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았을 때 최근에서야 등장한 인간이 인간 자신과 고래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책은 고래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고래와 인간사이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은 해안에 떠밀려온 혹등고래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고래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어 바다로 돌아간 해피 엔딩이 아니라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이 사례가 더욱 상징적이고 비극적인 이유는 오염된 바다 환경으로 중독된 고래 사체가 유독성 폐기물로 분류되어 쓰레기 매립지역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비극의 원인을 바로 우리 인간이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고 안타까운 에피소드였다. 저자는 이 상황이 결국 산업화의 산물라고 말한다.

 

고래는 바다 생태계의 오아시스라고 한다. 고래가 살아 있을 때, 장거리 이동을 하며 바닷물을 휘젓고 심연의 유기물 등의 영양을 뒤섞어 영양 전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고래가 죽으면 고래 낙하(whalefall)라는 과정을 통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데, 이 때 200종 이상의 생물체가 고래 사체를 공유한다. 고래는 다른 동물들에게 살아가는 터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거대한 고래 뼈를 녹여 먹는 심해 생물인 좀비 벌레까지 포함하여 고래는 덧없이 해체되면서도 다른 새 생명체의 잉태에 기여하는 것이다. 게다가 무게 40톤의 고래는 고래 낙하 과정으로 평균 2톤의 탄소를 해저로 옮긴다고 하니, 바다와 대기의 탄소 수준의 유지에도 큰 역할을 담당해온 셈이다. 고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었다.

 

문제는 생태계의 이런 거대한 순환 구조를 인간 활동이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각종 포장지와 플라스틱, 밧줄, 비닐, 호스, 그물 등등을 삼키거나, 오염된 먹이를 먹고 체내에 농축한 상태의 고래에 의존하는 다른 생명체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바다의 오아시스로 불린 고래가 고농도로 농축된 독성 물질을 품은 해양 생태계의 고농축 오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모습은 편리하고자 자연을 무책임하게 이용해온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다. 저자는 인간이 만든 새로운 오염원인 고래 사체를 오염물을 처리하는 매립지로 보내야하는 현실을 이 시대에 대한 은유이자 잔인한 현실’(30)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고래에 주목하면서도 생태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양한 사례와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 북극 제도의 야생 흰고래가 고양이의 기생충에 감염되어버린 사례를 든다. 집고양이의 배설물이 섞인 폐수가 바다로 흘러가면서 고래에게 가 닿은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키우는 고양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온난화로 얼음이 녹은 현상도 관련되어 있다. 한편 화석 연료 사용의 증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나타나고, 다시 이 성분이 바다로 유입되어 해수의 이산화탄소 농도증가로 이어진다. 해수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바다는 산성화된다. 산성화된 바다는 다시 크릴의 알을 약화시키고, 고래의 먹이를 크게 줄인다. 보다 큰 관점에서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의 변화로 1970년대 이후 크릴의 개체수가 80%정도 감소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기상이변은 경작지에서 흘러나온 부영양화된 오물로 유독성 플랑크톤을 번성시키기도 했다. 2015년에 300여 마리의 멸종 위기종 보리 고래의 떼죽음은 바로 이렇게 인간의 활동이 남긴 대가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죽어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삶은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의 야생동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저자가 고래를 중심으로 인간과 생태계의 연결성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의 시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의미심장한 시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고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책에 언급된 고래의 카리스마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동물의 카리스마란 한 동물 종이 마스코트로서 기능하는 능력, 사람들을 사로잡은 서사를 지속시키는 능력, 대중을 움직이는 능력’(211)을 가리킨다. 카리스마의 목록에는 동물의 크기, 지능, 사회성, 쾌활함, 독특함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대형 포유동물이 보여주는 애도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언젠가 죽은 어미의 뼈가 있는 곳에 다시 돌아와 어미의 뼈를 코로 끌어안고 슬퍼하는 듯한 코끼리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고래로부터도 비슷한 행동을 보았다. 이동하는 무리에서 뒤쳐져 죽어가는 새끼 고래 주위를 돌며 떠날 줄 모르던 어미 고래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이렇게 내가 고래나 코끼리에게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인간처럼 애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동물들의 행동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자는 인간이 동물에게 부여하는 카리스마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카리스마를 가진 종이 된다는 것이 동물을 의인화하여 위계를 만들기도 하며, 보호할 필요가 있는 동물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카리스마를 부여받은 동물은 인간의 상상력을 위한 도구’(211)가 된다고 지적한다. 내가 코끼리와 고래와 같은 거대 포유류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이렇게 인간중심적인 동물관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카리스마를 지닌 동물이 하나의 전형으로서 대중에게 자리 잡게 되면 개별 고래의 차이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쉬운 상황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혹등고래의 노래는 매우 다양하여 지구상에서 인간 다음으로 가장 광범위한 의사 소통망을 형성한다고 한다. 인간이 내는 소음과 다양한 활동의 결과 혹등고래의 노래는 60년대에 비해 상당히 빈약해졌다고 한다. 공동체 내에서 진화하며 공유되는 이러한 노래의 다양성은 새로운 고래 세대의 학습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수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영향으로 이러한 고래 문화의 다양성이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부여한 카리스마로 인하여 이렇게 미묘한 변화에 인간이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로부터 어떤 생물종의 개체 수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번성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생태계와 이를 구성하는 모든 유기체의 회복력을 지속시키는 것이 더 중요함을 역설한다. 이로부터 환경에 대한 우려를 담은 흔한 메시지에서 더 나아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저자의 세심한 관심과 견해를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리 인간이 생태계에 과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불편하고 우려되는 사실들이 담겨있었다. 우리 인간의 삶이 고래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방향을 향한다. 그 이유는 자연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힘이 우리 내부에 있다’(438)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고래가 커다란 카리스마적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고래가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을 넓혀주고, 우리의 도덕적 능력을 확장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저자는 독자에서 자연에 대한 생태적 의무감을 지니고 자연과 만나는 미래의 경이로움을 떠올리는 상상력에 주목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 종에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외따로 떨어진 깊고 넓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있음을 호소한 대목에도 주목해본다.

 

앞서 언급했던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는 8천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의 고래잡이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땅에 문자가 사용되기 오래 전에 고래는 이미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암각화는 이렇게 오랜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유적이었다. 존 버거가 동물원의 동물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암각화에 새겨진 동해바다의 귀신 고래는 이 종의 소멸에 대한 경고와 기념비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전해진 암각화로부터 고래를 비롯한 여러 동물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암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저자가 박물관에 전시된 대왕고래의 뼈에서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고래 배 속의 플라스틱으로 심원한 미래를 생각했다는 언급으로 이어졌다. 고래는 인류의 오랜 조상으로서, 이처럼 시간성의 기준에서도 카리스마도 지닌 존재였다.

 

고래가 가는 곳은 주제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세심한 사유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는 책이다. 고래와 인간의 긴밀한 관계를 담고 있는 우주적 명상록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아의 확장을 보여주는 글쓰기 작업이기도 하다. 환경과 생태에 관한 에세이로서, 허먼 멜빌의 장편 소설 모비 딕을 닮은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 세밀한 것에 집중하여 쌓아 올렸다는 특성도 포함된다.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하나의 결과물로 직조해내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삶을 그러모은 분신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포경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고래가 인류사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의 삶 전반을 형성하기도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의 전환을, 그리고 생태계를 바라볼 때 보다 세심하게 살펴볼 것을 주문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지구 생태계에 책임을 다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YES24 리뷰어클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속으로]

[1] 고래 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과 유독성 화합물들은 결국 산업화의 산물이다.” (32)

 

[2] 오염, 기후변화, 동물 복지, 야생, 상업, 미래, 그리고 과거. 고래 안에 그 세상의 전모가 있다.”(37)

 

[3] 모든 생명의 죽음은 그것이 새 생명의 잉태에 기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42)

 

[4] “19세기의 인간들은 (...) 고래를 원료로 삼은 것으로 입었고, 누워 잠을 청했고, 꿈을 꾸었다. 그것으로 요리를 했고, 놀이를 했고, 욕망했고, 예술품을 만들었고, 보았고, 치료하고, 탐험하고, 훈육받았고, 함께 훈련했고, 점도 쳤다. (...) 19세기 선조들은 고래가 제공해 준 세상에서 살았다.” (68)

 

포경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고래가 우리의 거처를, 산업을, 예술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37)

 

[5] 동물을 멈춘 상태로 보존하겠다는 욕망은 그것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리고 그 관계가 미래에도 지속하기를 원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184)

 

[6] 박물관에서는 너무 많은 종류의 시간이 함께 허물어져 뒤섞인다.” (185)

 

[7] 자연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표현한다는 좋은 의도가 생명의 미묘한 평형을 깨뜨린다. (...) 자연에 대한 손상이 총체적일 뿐만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201)

 

[8] 온라인에서 우리가 꾸민 이상적 자연, 그리고 넘쳐 나는 귀여운 동물의 무리는 차라리 자연과의 접촉이 끊겨서 생긴 우리의 다양한 우울증을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5)

 

[9] 카리스마 있는 종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211)

 

[10] “(동물원은) 우리의 힘뿐 아니라 허약함, 우리의 유순함만이 아니라 잔인함, 짓밟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222)

- 커밍스의 말

 

[11] “(동물원의 동물은) 그 종의 소멸에 대한 살아 있는 기념비다.” (225)

- 존 버거의 말

 

[12] 고래의 되쏘아보는 눈길에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 가지 수십 가지의 물질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고래와 너무나 깊이 엮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 우리가 잃게 된 것은 신비함, 귀여움 혹은 카리스마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관계다.” (239)

 

[13] 고래 노래를 듣는 것은 바다의 형상을 듣는 것이다.” (261)

 

우리가 더 많은 세상을 볼수록 그들(고래)은 더 적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265)

 

[14] 가축은 자연의동물이 아니다. (...) 그들은 시장에 값싼 음식을 제공하는, 단백질 생산 복합 산업체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 이들의 존재는 지구적 생태와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99)

 

[15] 확실하고도 잔인한 과학적 결론은 바다에서 인도적으로 고래를 잡을 방법은 없다.” (313)

- 데이비드 애튼버러(방송인, 작가)의 말

 

[16] 서호주 박물관의 대왕고래가 나에게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면, 고래 배 속의 플라스틱은 심원한 미래를 생각하게 했다.” (358)

 

[17] 내 뜻은 당장 가까이 있지는 않아도, 다가올 장래에 우리가 동정심을 발휘해야 할 이유가 있는 많은 존재가 있음을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372)

 

[18] 희망은 함께 하는 것이다. 희망은 실천 속에 있다. 우리는 다른 생명과 만나는 경이로움을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유일한 존재다. 이 상상력이 결국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이유다.” (373)

 

[19] 이 시스템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삶이 고래의 운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427)

 

[20] "자연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힘이 우리 에 있다고 믿는다."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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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렌스의 탄생 136주년,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느낀 것들’ | 기본 카테고리 2021-09-1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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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귀향

D.H. 로렌스 저
열화당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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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D.H. 로렌스의 자전적 에세이

D.H. 로렌스(D. H. Lawrence) 지음 | 오영진 옮겨엮음 | [열화당]

 

 

‘D.H. 로렌스의 탄생 136주년,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느낀 것들

 

오늘(2021911)‘9·11사건이 발생한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지만, 문학사에서는 소설가 D.H. 로렌스의 생일이기도 하다. 지난달에 그의 자전적 에세이 귀향을 읽고 미뤄두었던 독후 기록을 간단히 남겨본다. 그는 136년 전(1885) ‘오늘영국 중부지방 노팅엄의 탄광촌 이스트우드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45년간의 짧은 생을 누리다가 프랑스의 방스 지역에서 사망했다. 그는 평생 폐렴으로 고생했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로렌스의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 하나는 부인 프리다를 만난 일이다. 로렌스는 27살이던 1912년에 노팅엄 대학 교수 어니스트 위클리의 부인 프리다 위클리를 만났다. 같은 해에 프리다는 저명한 교수 남편과 세 아이를 포기하고 로렌스를 따라 평생 함께 한다. 로렌스의 사후 5년 째 되던 1935년에 프리다는 새 애인을 방스로 보내 로렌스의 시신을 화장한 뒤, 뉴멕시코 주 로키 산맥 자락에 위치한 카이오와 목장으로 가져오게 했다. 이 목장은 로렌스와 프리다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었다. 프리다가 사망한 후 두 사람은 이 곳에 함께 묻혔다.

 

에세이 모음집 귀향은 로렌스가 생전에 일간지나 잡지 등에 기고하여 발표한 글들을 국내의 영문학 전공자가 선별하여 번역한 결과물이다. 이 에세이집은 자세한 정보 없이 로렌스에 대한 관심만으로 찾은 도서였기에, 큰 기대 없이 읽었다. 내가 보기에 이 에세이들은 인간 로렌스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로렌스의 내밀한 생각과 문제의식을 그의 목소리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꼼꼼하고 충실한 번역자의 주석은 기대이상이다. 로렌스의 작품이나 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책머리에 상세한 로렌스의 연보와 다양한 사진은 반가운 자료들이었다. 이 책에 실린 로렌스의 사진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28(1913)의 청년 로렌스의 모습이다. 병색이 짙고 앙상하며 침울한 눈빛을 하고 날카롭게 렌즈를 응시하는, 잘 알려진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 사진에는 평생의 반려자가 될 프리다와 막 만나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자전적 소설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후 찍은 당당한 모습의 로렌스가 있다. 책을 덮은 후에도 생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눈망울로 의기양양하게 렌즈를 바라보는 로렌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책에는 6편의 비교적 짧은 자전적 에세이와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라는 다소 긴 에세이가 담겨 있다. 근대화의 한 복판에 선 문인으로서 그의 에세이에는 비판적인 관찰과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자전적인 에세이에서 로렌스의 시선은 날카롭다. 또 목소리는 줄곧 솔직하며, 때론 격정적이다가 우울해지기도 한다. 귀향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고향의 전원지대를 이야기할 때 풍경의 아름다움과 풍경이 주는 신비한 매력을 놓치지 않는다. 반면 근대화로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선, 사라져간 인간의 삶에 대해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드러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고향에 대해 우울감을 토로한다. “내 고향 지역으로 가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66)라고 말이다. 근대화와 고향, 그리고 상실은 그의 작품을 이해할 때 중요한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로렌스의 에세이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은 그가 버릇처럼 지니고 있던 계급에 대한 자의식이었다. 그가 계급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일종의 분열적인 자의식이 느껴질 정도다. 하층노동자(광부) 아버지의 자녀로서 글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된 로렌스는 세간의 기준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인 셈이다. 번역자에 따르면 그는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민중에 대한 공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정신적 귀족주의를 가진 인물이었다. 귀족 혹은 신사 계급이 되려고 발버둥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나온 노동자 계급에도 진정으로 속하기 어려웠다. 계급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일종의 경계인이었던 것이다. 고향의 전원풍경에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타지에서 살 때보다 오히려 고향에 불편함을 느꼈던 경계인. 청년이 되어 고향을 떠난 이후 20년 가까이 부유하듯 방랑생활을 했던 로렌스는 계급의 어느 쪽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접할 때, 작가의 관점과 의식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계급 문제를 염두에 둘 수 있겠다.

 

흔히 로렌스는 외설시비에 휘말린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세계관과 문제의식을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곱씹어볼만한 주제를 더 발견한다. 아직 로렌스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에게 -사랑-은 하나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삶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삶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온통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83)라며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게는 생명을 지닌 존재의 본질적인 생기/활력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나는 생이 있는 곳에는 본질적 아름다움이 있음을 안다.”(83)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문명의 근대화가 사람들로부터 생기/활력을 앗아가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양산한다고 바라보았을 것 같다.

 

()’에 관한 주제에서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라는 꽤 긴 에세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견해를 밝힌다. 그는 오늘날 사랑이라는 것이 사이비라고 일갈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가장 큰 기만이다. (...) 특히 사랑 문제에서는 사이비 감정만이 존재한다. (...) 그리고 사이비 정서로는 결코 진정한 성이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속일 수 없는 어떤 것이 성이다.”(114-5)라고 말이다. 그에게 은 무엇보다 서로에게 거짓이 없고 자연스러운 그 무엇이었을 테다. 작위적이고 기만적인 문명에 대비되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 이것이 곧 그가 바라보고 추구했던 ()’이면서 동시에 의 참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로렌스에게 ()’()’은 진정한 사랑이 매개가 된 동일한 대상의 두 모습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의 다른 이름이듯 말이다.

 

로렌스의 자전적인 에세이를 읽으면서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그의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과 경계인으로서 부유하듯 살았던 실제의 삶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또 계급의 어느 쪽에도 진정으로 뿌리내리고 속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 뿐 아니라 사망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귀향이라는 글에서 그는 죽어서도 부유하게 될 자신의 모습을 직감했던 것일까.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도 고려해봄직하다. 근대화로 인간이 잃어버린 진정한 삶(그리고 성)의 의미를 말이다. 끊임없이 부유하면서도 집요하게 회복하고자 추구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가치가 아닐까 싶다. 에세이집 귀향에서는 평생 안주하지 못했던 한 작가의 고독하고 앙상한 어께를, 상실과 위기에 이른 현대인의 모습과 함께 볼 수 있었다.

 


1913626일 촬영한 사진. D.H. 로렌스(당시 28). 1912년 아내가 될 프리다와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잠시 귀국하여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직후의 모습.

 

 

[책 속으로]

 

[1] "나는 온갖 집착과 타락에 맞서 싸우며 내가 그토록 애써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81)

 

[2] "나는 삶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온통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 (83)

 

"다른 무엇보다 우리는 생과 그 움직임에 민감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83)

 

[3] "우리가 목표로 살아야 할 것은 바로 생이며, 생기, 상상력, 각성, 그리고 다른 존재와 맺는 접촉의 아름다움이다. 완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야말로 불멸이 되는 것이다." (84)

 

[4] "오늘날에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것이 사이비다. 다른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가장 큰 기만이다." (114)

 

[5] "그러나 오늘날, 특히 사랑 문제에서는 사이비 감정만이 존재한다. (...) 그리고 사이비 정서로는 결코 진정한 성()이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속일 수 없는 어떤 것이 바로 성이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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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 인간의 선함은 우리 안에 있다 | 기본 카테고리 2021-09-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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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짐 디피디 저/장상미 역
갈라파고스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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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 가장 어두울 때의 사랑에 관하여

(The Day the World Came to Town: 9/11 in Gander, Newfoundland)

짐 디피디(Jim DeFede) 지음 |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 인간의 선함은 우리 안에 있다

 

오늘(2021911)은 미국의 ‘9·11 사건이 발생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에 복학생이었던 나는 TV를 통해 강박적으로 재현되던 영상을 기억한다. 한 대의 비행기도 아니고 여러 대가 납치되어 미국의 상징적인 무역센터 건물 두 동과 펜타곤을 공격했던 사건. 수천 명의 사람들은 전 세계가 목격하는 가운데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이 가상현실과도 같은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20. 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 이들의 가족, 친구들은 각각 어떤 경험을 하고 또 트라우마를 겪었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사건이 있던 당일 미국의 영공은 순식간에 폐쇄되었다. 당시 미국 상공에 있던 4546대의 비행기는 미국 내 착륙이 금지되었다. 이들은 하늘에서 출발지로 회항하거나 주변국 공항에 임시착륙을 해야 했다.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발생한 한 사건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캐나다의 소도시에 모이게 되었다. 저널리스트 짐 디피디의 기록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9·11사건 당일, 캐나다 뉴펀들랜드 주의 작은 섬 갠더(Gander)에 위치한 공항에 임시 착륙했던 사람들이 경험한 6일간의 기록이다.

 

캐나다 동쪽 귀퉁이에 위치한 뉴펀들랜드 주 갠더 섬은 인구 1만 정도의 소도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승객과 승무원 6595명을 태운 비행기 35대가 비상착륙을 했다. 도시 인구의 과반수가 넘는 인구가 순식간에 나타나 언제 이륙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상황은 딱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안타까워만 할 것인지, 아니면 뭐라도 도움을 주어야 겠다라고 결심하고 몸을 일으킬 것인가. 갠더 시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후자의 방법을 택하고 지체 없이 실천에 옮겼다.

 

하늘 길이 곧바로 열리지 않게 되자 이 뉴피(뉴펀들랜드 주민)들은 집에서 이불과 담요, 베개를 가져와 건네주려고 3 km에 가까운 줄을 섰다. 구세군과 적십자는 지원품을 여기 저기 떨어진 대피소로 실어 날랐다. 어느 약사는 지역 약국과 협력하여 세면도구와 칫솔을 대량 주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 상인들은 수천 달러어치의 물품을 무상으로 기부했다. 많은 가정이 사람들을 자신이 집에서 샤워를 하고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했다. ·관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주도적으로 찾아 움직였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다. 갠더 주민들의 행동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단지 물질적인 도움만 제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는 승객들이 충격과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이들의 감정마저 돌보아 준 부분이 인상 깊다. 주민들은 이 불청객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공감했다. 또 자신들과의 공통점을 찾고 승객들이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갠더 주민들은 인종과 종교의 이질성에 주목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며, 최대한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이 뉴피들은 타인을 도우려는 의지가 본능인 듯 보였다.

 

한 가지 더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갠더에 내린 사람들 중에 구소련 국가 몰도바 출신의 난민 서른여덟 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영어를 몰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갠더 주민들은 일주일 동안 무언극과 몸짓의 달인이 되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저자는 아마도 소통의 문제로 이들의 이야기를 책에 풀어놓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아프가니스탄인 390명을 구출해온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9·11사건 발생 후 한 달 뒤, 미국이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년이 지나 올 8월 말일, 미군의 철수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므로 특별기여자신분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된 아프가니스탄인의 운명은 바로 20년 전 발생한 9·11사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수년 전 예멘 난민과 관련한 이슈로 처음 몸살을 알았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난민이 발생하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나중에 고려해보더라도, 갠더 주민이 보여준 행동은 분명히 우리에게 유대감의 가능성과 환대의 상상력을 전달해주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개인을 보호하기위한 정치·사회적 장치가 부족했던 과거에 생존을 보장하는 길은 서로 힘을 모으는 것, 그리고 환대를 통해 가능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의지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길만이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을 테다. 우리는 현재 단절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 종교, 성별, 경제적 격차 등으로 분리되고 서로가 고립되어 간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구성원이 원자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유대감을 느끼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뉴펀들랜드인들은 임시 착륙한 항공기 승객을 받아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곁을 내주고 이들이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9·11사건이 있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이들은 갠더 주민들과 가족처럼 유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족과 같은 유대감과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우리 인간은 모두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가족처럼 연결될 수 있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임을 갠더 시민들은 입증했다. 종교, 피부색,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말이다. 정확히 20년 전 오늘있었던 사건은 인간의 선함, 그리고 천국이 바로 우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를 발견하는 일은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책 속으로]

[1] "뉴펀들랜드인은 포위당한 사람처럼 산다. 섬에 고립된 채 거친 날씨를 속수무책으로 겪다 보니, 살아남으려면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17)

[2] "뉴피가 이름 모르는 사람을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록샌과 클라크도 곧 알게 되었다." (78)

[3] "온 세상이 망가지는 와중에 지금, 바로 여기, 지구상의 구석진 조그만 마을에서만큼은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 안심이 되었다." (215)

[4] "갠더에는 증오도 분노도 공포도 없었다. 오직 공동체 의식만이 살아 있었다. 여기서는 모두가 동등하고,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았다." (216)

[5] "갠더는 살기 안전한 곳이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이제는 16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비극이 자기 삶과 어떻게 직결되는지 알게 되었다. 온 세계가 마을에 왔을 뿐 아니라, 세계의 문제도 함께 다가왔다." (259)

[6] "갠더가 마법 같은 공간이라서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마다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 재난 앞에서 한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그렇다면 우리도 누구든 똑같이 행동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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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이 과학을 만든다’ - 《과학을 만든 사람들》 | 기본 카테고리 2021-09-0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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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을 만든 사람들

존 그리빈 저/권루시안 역
진선북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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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만든 사람들

: 과학사에 빛나는 과학 발견과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

존 그리빈(John Gribbin) 지음 | 권루시안 옮김 | [진선출판사]

 

 

결국 사람이 과학을 만든다

 

천문학을 전공한 과학자이면서 많은 과학 교양서를 펴낸 저술가 존 그리빈은 과학을 만든 사람들에서 방대한 서양 과학사를 촘촘한 직물처럼 엮어 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흔히 암흑시대로 불리며 신과 믿음을 중심으로 한 중세가 끝나고 등장한 르네상스 시대에서 20세기 말까지다. ‘과학의 범주로 보면, 신비주의가 점차 사라지며 실증적인 학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의 자연과학에서부터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을 거쳐 20세기 말의 우주에 관한 이론에 이른다. 현대의 분류 기준으로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천문학 등에 해당하는 제반 과학 분야의 발전사의 큰 흐름을 한 권에 포괄적으로 담은 셈이다.

 

저자가 르네상스 시대 이전의 과학 분야를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자연철학 전통과 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이 중세에 이르도록 큰 변화 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과학적방법론이 확립된 시기는 인류가 신비주의적 해석 관행을 떨쳐버리기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그가 최초의 과학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 인물은 윌리엄 길버트와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이 두 사람 모두 직접 관찰한 자료와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고자 했으며, 다른 동료들로부터 검증을 받아 재확인하는 방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사를 기술하면서 무엇보다 인물에 주목한 점이 큰 특징이다. 저자 역시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전통적인 과학사 기술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과학 활동과학 자체를 구분하면서 인물에 주목하는 접근법이 유효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우선 과학 활동은 과학자 각자가 이루어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라는 입장을 강조한다. 과학 활동의 방향은 과학자 개인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사람이 과학을 만든다는 확고한 명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문··철의 인문학 분야가 개인의 세계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처럼, 과학 역시 과학자의 철학과 개성을 반영한다. 이 책에 담긴 방대하고 다양한 서양 과학사의 장면마다 과학적 발견의 정황을 살펴보고, 당시에 활약한 이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저자는 과학적 성취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흥미로웠던 한 가지 사례는 현미경 제작과 이를 이용한 세포 관찰, 용수철의 탄성에 관한 훅의 법칙으로 유명한 로버트 훅과 아이작 뉴턴의 갈등 구도가 담긴 장면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의 갈등은 주로 뉴턴이 초래한 것이다. 훅이 거둔 수많은 성취와 업적을 뉴턴이 은폐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훅은 두 개의 투명한 쐐기 모양의 용기 사이에 고리 모양의 무늬가 나타난 현상을 자신의 저서 마이크로그라피아 Micrographia에서 보고한 적이 있다. 뉴턴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한 듯 했지만, 훗날 이 현상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뉴턴 링으로 불렀다. 인류 지성사의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를 써낸 사람이 욕심내기에는 크게 관심을 끌만한 현상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과학은 사람이 만들어 간다는 저자의 관점대로 책에서는 뉴턴의 인간적인 면모와 성향에 주목했다. 물론 이 접근방식은 뉴턴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모두 고려하여 파악하기 위함이다. 역사 속에서 이런 장면은 어디에나 존재했을 테니까.

 


로버트 훅의 현미경학 서적 <마이크로그라피아>(1664)에 실려 있는 그림. 현미경을 통해 머리카락을 붙들고 있는 이의 모습을 그린 것.

 

 

훅과 뉴턴이 보여준 갈등 국면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서신에서 발견된다. 저자에 따르면 훅은 진실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언제나 과학에 관해 (뉴턴과) 우호적 방법으로 논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훅이 먼저 뉴턴에게 화해와 발전적인 논의를 위한 제안을 담은 서신을 보냈다. 뉴턴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훅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문장을 썼다.

 

데카르트가 내딛은 발걸음은 훌륭합니다. 당신은 여러 면에서 많은 것을 더했는데, 얇은 판의 색을 철학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제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257)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다른 과학자의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 뉴턴이 데카르트를 언급했던 것은 훅이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한 무늬에 대한 발견이 사실 데카르트가 먼저이기에 훅에게 분수를 알려 주기 위한 언급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에서 저자는 뉴턴이 거인들(Giants)’이란 단어를 대문자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뉴턴이 이 표현을 강조한 이유는 훅의 신체적인 특징(등이 굽고 키가 작은 점)을 조롱하는 숨은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뉴턴이 자신의 발견이 고대인들의 발견에 기반 할 수는 있지만 훅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이들의 생각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난쟁이인 너는 내가 올라선 거인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장이 뉴턴 이전에도 사용되었지만, 특히 로버트 훅을 염두에 두고 거인들을 강조한 것에 주목하여 해석한다.

 

나는 여기에 훅이 철학적으로 고려했다는 부분에도 주목해본다. 마치 훅이 거둔 성취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모양새이지만, ‘철학적으로 고려했다는 표현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칭찬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어느 현상에 대해 정량적인 해석과 이해를 제공하는 설명이 아니라 사변적인 고찰에 그쳤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해석이 과장되었다고 판단하더라도, 뉴턴이 훅에게 보낸 답장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 국면을 고려했을 때 행간에서 누구나 긴장감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평가는 다른 연구자들의 판단과 더불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는 뉴턴의 됨됨이를 기반으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문장을 뉴턴의 겸손함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일관된 행동과 정황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이 보다 설득력을 갖지 않을까싶다. 존 그리빈에 따르면 뉴턴은 꽤나 악질적이며 언제나 원한을 감추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 주장은 로버트 훅이 사망한 후 뉴턴의 행동을 보면 보다 설득력을 갖는다. 17033월에 연장자였던 훅이 사망한 후, 같은 해 말에 뉴턴은 잉글랜드의 왕립학회 회장으로 선출된다. 저자의 언급에 따르면 뉴턴은 훅에 대해 품은 편집광적인 적의로 뉴턴은 자신의 주요 저서로 평가되는 광학을 훅의 사망 이후에 출간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뉴턴은 이 책에서 훅이 언급했던 고리 모양의 무늬뉴턴 링으로 발표했을 것이다(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게다가 뉴턴이 왕립학회의 회장이 된 후 학회가 이전하게 되었는데, 학회에 걸려 있던 선배 과학자들의 초상화들 중 유독 로버트 훅의 초상화만 사라져버린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뉴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다.

 

개인적으로도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를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학 혁명기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자로 평가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과학 활동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요소를 잊기 쉽다. ‘과학 활동은 결국 사람에 의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뉴턴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우리가 기대대로 그가 선하고 겸손하기만 한 인물이라고 가정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내가 주목한 지점은 상대방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소한 정보로 여겨질지 몰라도 인물에 대해 이해하는 일은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됐는지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일종의 역사 탐정의 입장에서 설득력 있는 알리바이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 역시 사람이 만든다는 저자의 관점을 뚜렷하게 반영한 흥미로운 역사서이기도 하다.

 

과학을 만든 사람들에서 저자가 취하는 또 다른 흥미로운 관점은 과학 자체에 대한 입장이다. 그는 과학 자체가 본질적으로 비개인적이다라고 말한다. 과학이 절대적· 객관적 진실을 다룬다라고도 표현한다. 본인도 의식하고 있듯이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겠다. ‘절대적·객관적 진실이란 표현이 모호하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살이에게는 이 세계는 하루 이상 존재한 적이 없다. 이것이 절대적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을 사는 인간에게 하루는 하루살이와 다르게 인식될 것이다. 인간이 세계 혹은 우주를 파악하고 얻은 진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저자는 우주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치를 언급하는데, 생명 구성의 기본 원소인 C·H·O·N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생물체가 우주 전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과학이 다루는 지식이 보편적임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과학이 비개인적이다라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 이어서 저자가 과학 혁명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논쟁적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주장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혁명개념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과학이 점진적이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 두 입장 사이의 대결 구도는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유사하게 찾아볼 수 있다. 생물과 지구의 진화 과정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떠올리게 한다. 책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스티븐 J. 굴드의 단속평형설과 책에 소개된 제임스 허턴·찰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및 찰스 다윈의 점진적 진화설과의 대비가 연상된다. 굴드의 단속평형설은 생물 종이 변화(또는 변이)가 거의 없는 시기가 이어지다가 어떤 우연한 계기로 갑작스러운 종분화가 이루어지며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하여 허턴과 라이엘은 지질 과정에서 오랜 시간에 걸친 점진적인 지형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다윈은 이 견해에 영향을 받아 자연 선택에 의해 생물체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진화 개념을 내세웠던 것이다. 저자 존 그리빈은 기본적으로 과학 발전이 이룩한 것 위에 조금씩 쌓아 올리는 작업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은 존·메리 그리빈 부부의 최신작 진화의 오리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형성된 배경을 거슬러 추적하는데, 과학의 점진적 발전을 주장하는 관점대로 진화론이 나올 수 있었던 무수한 씨앗들을 찾아 그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연결 짓는 작업을 했다. 진화론은 한·두 명의 천재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이룩한 업적이 아니라, 물이 끊는 과정이 보여주듯 수많은 과학자들이 각자의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한 과정이 있은 후에야 가능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있다. 라마르크의 진화론이 최종적으로 다윈의 진화론과 대결하여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다윈의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이론의 정립에 기여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대목은 진화론이 여전히 진화중인 이론이라는 점을 이야기한 부분이었다.과학을 만든 사람들에서 저자가 강조한 부분은 뉴턴과 같은 천재적인 과학자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인류의 지성사의 나아갈 바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훅과 같은 이들과의 논쟁과 대립,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판하도록 독려했던 핼리와 같은 이들의 역할 등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과학 발전의 조건이 갖추어 졌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 말에 이르는 방대하고 촘촘한 서양 과학사의 흐름을 따라갔고, 여기에서 과학의 원동력이 저자의 표현대로 발견에 대한 순수한 기쁨에 있다는 점을 느꼈다. 과학은 인간이 세계(우주)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지적 호기심을 발동하여 앎을 추구한 행위다. 과학자의 시선은 주도면밀하게 외부를 향하지만, 행위의 결과는 인간,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다주었다. 특히 지구가 우주라는 무대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료하게 알려주었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시 지구의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셈이다. 생물학은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유전암호와 작동규칙에 따라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모두 지구의 원시생물체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진화해왔음을 알려주었다. 또 인간 개개인은 이 우주에서 고유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는 아니라는 인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영국의 국보급 과학 저술가 존 그리빈이 묘사한 방대한 과학의 역사를 읽는 일은 인간이 이룩한 탁월한 업적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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