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몽슈슈 무민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nykino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초란공
무민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2월 스타지수 : 별266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새소식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도스토옙스키탄생200주년 오르부아르 알렉스헤일리 제임스볼드윈 성수대교붕괴사고 충주호유람선화재사고 한국형발사체누리호 앵글로아프간전쟁 아프가니스탄미군철수 폴발레리의문장들
2021 / 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최근 댓글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좋은 리뷰 감사.. 
어제 고래에 대한 글을 보았는데, 이..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서평 너무 잘..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님. 이 주의 우수 리뷰 선정 .. 
오늘 60 | 전체 31464
2016-10-07 개설

2021-10 의 전체보기
우연한 인연에서 재발견하는 나눔의 가치 | 기본 카테고리 2021-10-23 00:0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29149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저
좋은여름 | 2019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우연한 인연에서 소중한 것을 나누는 가치를 재발견하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 [좋은여름]

 

우연한 인연에서 재발견하는 나눔의 가치

 

나는 자타공인 집돌이. 물론 일단 집을 나와 어딘가에 가게 되면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탐방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사하기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그저 한 곳에서 평생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도시에서, 그것도 집을 마련하느라 빚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 장소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평소에는 잘 읽지 않았던 에세이 몇 편을 읽다보니 무엇보다 사람들(저자들)이 살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집돌이의 대리만족인 것일까. 특히 저자가 자신의 글에서 소개하는 우연한 만남이 시간을 함께하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무뚝뚝한 내가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내 생애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법한 이야기들. 저자가 만난 인연과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이 신기하다.

 

에세이스트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또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하정 작가의 에세이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는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인연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 이야기다. 여행에서 덴마크인 쥴리와 대화하게 되면서 서로를 친근하게 여기게 되고, 그 여성이 저자를 초대하면서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었다. 저자는 쥴리의 집에 가서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이어서 그는 어머니이자 평생 금속세공을 했던 디자이너 아네뜨를 저자에게 소개한다. 우연한 만남과 스몰 토크로 시작된 순간은 타인이 나누어주는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소개하는 덴마크 가족의 집에서 먼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특징은 오랜 기억이 집안 곳곳에 묻어 있다는 점이다. 몇 대 조상부터 써오던 가구, 책상과 책꽂이, 식기류 등이 집 안에 가득하고, 물건 하나하나에는 추억이 있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내가 덴마크에 가서 살게 되면 아무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특히나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는 그런 소품들,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쉽사리 정리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가족이 내게 말도 없이 그런 물건을 내다 버린다면 내겐 범죄행위나 다름없는 셈이다.

 

또 물건에 스며든 가족의 추억과 이야기는 가족의 의식으로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아네뜨 할머니의 아버지 어위(Aage)는 꽤 유명한 디자이너였다. 어위의 직업적인 정체성보다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어디를 가든 딸에게 엽서를 써보냈다는 점이다. 가까운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고 나서도 어위는 그날의 감상을 엽서에 써서 딸에게 보냈다. 해외여행을 가서는 물론이다. 이렇게 평생 모인 아버지의 엽서는 아네뜨 할머니가 평생 간직해온 소중한 보물이었다. 가족의 작고 사소한 의식,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을 담은 메시지가 시간과 함께 가족 공동의 기억이 되고 유산이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해볼 때, 가족 내에서 이러한 무형의 의식이 소중한 유산이 되는 일. 우리가 주식과 부동산 얘기가 끝나면 공허해지는 것은 소중한 것을 나누는 일이 언젠가부터 우리 삶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타인의 에세이에서 내가 관심 있게 주목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 사회가 헬조선이 된 것은 어쩌면 가정에서부터 구성원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특별한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가족끼리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가정 밖에서 타인에게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디선가 읽은 폴 발레리의 선문답 같이 낯선 문장이 친근하게 보인다.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내게는 이 문장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망치 같은 문장으로 다가온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타인을 만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인연이 이 책에 있다. 집돌이인 내게는 아마도 남은 인생에서 만들기 힘든 인연의 이야기다. 우연한 인연이 이어져 놀라운 이야기를 소유하게 된 저자는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일 테다.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많은 사람은 삶에서 허기지지 않을 것 같고, 메마르고 힘겨운 인생에서 다시 일어날 기운을, 언제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배우는 것들이다. 이처럼 삶에서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이들이 부럽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관계하는 이들과 소중한 것을 만들어나가고 이걸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책 속으로]

 

[1] “여기에서 나는 어릴 때 가지지 못한 장난감을 가지고 안전하게 놀고 있다. 같은 놀이를 좋아하고, 서로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133)

 

[2]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 사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181)

 

[3]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감사하는 바입니다.” (182)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 성수대교 붕괴 27주기 | 기본 카테고리 2021-10-21 23:11
http://blog.yes24.com/document/1528667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오늘 쓰는 글은 그냥 끄적거리는 잡문이다. 

 

오후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하늘로 올라가는 영상을 보았다. 

화면으로 로켓이 하늘로 치솟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했다. 

이 장면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더해졌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뉴스를 보니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이 일에 무관한 이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 심지어 어느 뉴스 앵커는 '이번 누리 호의 발사 실패'라는 말을 하다가 다시 '실수'라는 표현으로 정정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목표로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마지막 단계의 아쉬움을 보고 너무나 쉽게 '실패'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하는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우주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는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발사체가 폭발한 것도 인명을 해친 것도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이 될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의 성과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라 칭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 눈에 들어오는 다른 반응 하나는 우주 개발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하고 있는 과학자 집단의 반응이다. 우주 개발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이 되니 이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마땅히 우주 개발의 성공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문득 우리 나라가 특히나 실패에 민감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과학자들은 이 우주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 사업의 성패, 결과에만 주목하는 정서에 길들여있어서인지 누리호 발사 이후 인터뷰를 한 과학자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해 보였다. 이들이 내년 5월에 예정된 다음 발사 준비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준비할지 눈에 선하다. 국민이나 해외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정서야 어디나 다를바 없겠지만, 개발에 관하는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대로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이들을 신뢰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

 

 

오늘 책이 아니라 다른 글을 끄적거리는 이유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오늘이 성수대교 붕괴한 지 27년이 되는 날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서 남겨두고자 한다. 이 사고는 27년 전(1994년) 오늘, 7시38분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뉴스 속보를 보고 계셨던 것 같다. 성수대교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길에 지나는 다리였다.

 

사고 당일 오전에 어머니는 황당한 뉴스 속보를 보고 아버지께 전화를 하셨던 모양이다. 바로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한참 애가 탔던 순간을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얼마나 긴장하셨을까. 짐작하건데 아버지도 출근하여 문을 열고 가게를 정리하시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정리를 마치고 켠 TV에서 방금 지나온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에 집중하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사고가 발생한 시간을 보신 아버지는 당신이 다리가 무너지기 10분 전 즈음에 다리를 통과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그날따라 다리가 많이 휘청거렸다는 말씀과 함께. 과거에 올라왔던 기사를 보니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그 중 9명이 내 또래의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다. 특히 시간대가 학생들의 등교 시간, 출근 시간과 겹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 특히 도시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고는 사실 인재(人災)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있거나 자주 다니던 장소에서 큰 사고가 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든 이러한 사고에 예외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은 우리 곁에 언제나 가까이 있기도 하다는 것. 

 

초등학생일 때 동네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 겨울에 동사했던 할아버지, 중학생 때 아파트에서 투신한 뒤 잔디밭에 누워 있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나의 가족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죽음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이 더 생각났다. 성수대교 붕괴의 충격이 전국에 전해진 지 이틀 후인 1994년 10월 23일.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동창모임에서 준비한 충북 단양 지역 관광에 참여하고 오셨다. 어머니는 충주호에서 유람선도 타고 왔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인 24일 저녁 뉴스에는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도배되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망자 29명, 실종자 1명' 이런 문구가 끊임없이 여러 방송사의 뉴스 자막으로 등장했다. 

 

"엄마, 저거 엄마가 어제 타신 배 아니에요?" 나의 물음에, 늘 큰 기복이 없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 당신이 저기에서 유람선을 타고 왔다고 하시는 거였다. 단 하루 차이로 어머니는 대형 사고를 피하셨던 것이다. 나는 3일 사이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사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사고 희생자 될 수 있었던 경험을 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나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가 희생자 규모가 비슷함에도 유독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사람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두 사고 모두 안타까운 인재로 일어난 일이다. 희생자들은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기도 혹은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했을 것이다. 왜 이들이어야만 했나?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되묻고 싶어진다. 오늘이 가기 1 시간 정도 남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일들을 이유없이 끄적거려보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 기본 카테고리 2021-10-21 00:0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28269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강가의 아틀리에

장욱진 저
열화당 | 2017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강가의 아틀리에

: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을 사랑한다.”(33) 장욱진 화백의 그림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읽고 남는 인상을 떠올리자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문장을 꼽겠다.

 

책을 펼치고 읽을 때 화백이 그림을 곁들여서 창작론, 인생론, 예술관을 조곤조곤 전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진정으로 그림과 술을 사랑한 화가였다. 그가 보여주었던 사랑은 범인(凡人)의 정의로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화백의 그림 사랑과 술사랑은 괴벽에 가까운, 혹은 자기를 혹사하는 행위 내지는 집착의 행위가 아닐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제와 균형이 선이라는 태도에 익숙한 이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그림 사랑, 술사랑은 지나침 혹은 과잉의 한계 너머의 무모함에 가까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방식이야말로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본성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59)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46)

 

 

장욱진 화백의 담담하고 명료한 믿음의 고백을 읽다보면 그가 말하는 사랑의 강도와 깊이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가 자신의 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겠다. 문명이 개개인에게 둘러친 관습 혹은 규범의 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 같은 문구일 테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환경, 만들어지고 관리 받은모범생 같은 이들이 양산되는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장욱진 화백과 같은 분들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인물의 유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린 낙서처럼 보이는 화백의 그림을 보다가 스위스 태생의 독일 화가 폴 클레(Paul Klee)의 드로잉하고도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동굴 벽화에 담겨있는 시원의 삶을 보여주는 듯 군더더기 없는 묘사 때문이었다. 일종의 상징 기호처럼 보일 정도로 간결한 선들만으로 표현한 사람과 산, 해와 달 등이 어우러진 배경을 보고서 말이다. 혹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뼈대만 남아 있는 조각상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문명이 인간에게 덧칠한 모든 흔적을 제거해버리려는 듯 본질만 남은 선, 간신히 인간임을 알아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만 남은 모습들에서 묘한 연대 의식 같은 것들을 느꼈다고 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그럼에도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는 인물의 표정이 보이고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인물 그림에선 의지와 인격, 그리고 역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고요와 고독속에서만 그림을 그려야 했다. 경기도 덕소, 수안보, 신갈 등 현재는 관광지 내지는 도시 개발로 번잡해진 장소가 되었지만, 그가 작업하던 시기에는 외지고 한적한 곳이었다. 작업장 주변이 개발되어 그림 작업에 집중하기 힘들어지게 되면 그는 미련 없이 떠나 새로운 곳을 물색했다. 역설적으로 작가의 아틀리에 장소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무엇보다 화백이 그림을 그릴 때면 아무것도 방해하는 것 없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후에라야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한 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47)

 

 

저자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였을까. 무엇보다 이 행위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전제하는 일이었을 테다. 그는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드러내며 나를 발산한다’(181)라고 자신의 그림그리기를 정리했다. 예술에 대한 나의 부족한 감수성과 이해력으로 주목한 작가의 예술관은 다음에 인용한 문장에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이 표현에는 알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뜻이 담겨 있다. 작가의 생각은 무엇보다 현대 미술의 접근 방식을 말하고 있는 듯하며, 그 본질로 자기와의 대면을 언급한다. 결국 예술가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기존의 질서 파괴 행위는 미술 대학교 졸업 전시회에 가보면 고민의 결과물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백의 표현대로 공유되는 전달 수단으로서의 언어를 자기화한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4년에 걸친 미술대학 시절에 자기만의 언어를 획득하는 일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자기만의 언어 뿐 아니라 동시에 공동한 언어를 잊지 않고 반영되려면 나와 마주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향하여 사회와 공동체, 타인에 대한 주도면밀하고 집요한 관찰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가들이 사회 문제와 사람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감지하고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바로 자신만의 언어를 소통의 언어, 공동의 언어로 코딩하는 작업을 몸소 해야 하니까 말이다. ‘언어는 소통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약속이자 기호가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리 저자처럼 홀로 고립되어 작업을 한다고 해도, 예술가가 타자와 사회에 무관심하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기본적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테다. 여기에 예술행위의 기본적인 정치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므로 장욱진 화백이 언급한 자아의 발견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을 바라보라는 주문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타인을 통해서도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아닐까. 결국 예술가의 작업이란 자기에 대한 사랑’, 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알곡 없는 쭉정이에 불과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이 한 가지 과정만 해도 상당한 수련이 필요할 듯하다. 알 듯 모를 듯한 장욱진 화백의 예술관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읽었다.

 

한 가지 더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사연은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의 만남과 인연이었다. 마해송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 홍난파 등과 교제하고 1924년에 방정환 선생 등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한 분이었다. 장욱진 화백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노인 한 분의 외모가 심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선글라스에 지팡이를 짚고 잠바를 입은 모습을 보던 화백이 마해송 선생에게 가서 통성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인연은 가족으로 이어지고, 마해송 선생의 동화집 작업에 화백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선생의 아들인 마종기 선생은 시인으로도 활동했던 것 같다. 훗날 마종기 선생이 본인의 시집을 낼 때, 장욱진 화백에게 부탁하여 표지 그림을 얻어냈다고 한다.

 

타인의 간섭에 거부감을 느끼고 이웃하고도 통성명을 하지 않는 요즘 도시 생활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서로 알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옅어지고 관계에 대한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기에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키며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일은 요즘 현실에서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해진다면 타인의 실수와 처지에 공감하기가 더 쉬워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저자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에세이보다는 우연한 인연이 등장하고, 그 관계의 발전이 있는 그런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장욱진 화백의 산문에는 화가 본인의 그림과 예술관, 내면세계가 담겨있지만 여기에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이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더해져 다채로웠다.

 

저자의 연보를 보다가 특이한 이력에 눈길이 간다. 그는 1944년 겨울, 29세의 나이에 일제의 비행장 만드는 징용에 끌려갔던 경험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곧바로 일본 관동군 해군본부 경리요원으로 배속된 후 9개월 만에 해방을 맞아 돌아올 수 있었다. 저자는 1918년생이므로 출생 후 30세까지 나라 없는 식민지 상태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셈이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토록 생을 사랑할 수 있었고, 예술에서 자신의 언어,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연보를 통해 청년 장욱진의 시절을 상상만 해볼 뿐이다. 이렇듯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는 삶을 온 몸으로 사랑했던 한 예술가의 담담한 고백이다.

 

 

 

[책 속으로]

[1] “검은 것과 흰 것, 그게 제일 힘든 거예요. 색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중에서 흰 건, 이 빛에서 가장 단순하다는 게 아주 교묘한 거거든. (...) 우린 은연중에 흰 것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건 행복한 거예요. 내 환쟁이 바탕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25)

 

[2] “아기자기하게 닳고 닳은 조약돌에서 읽을 수 있는 세월의 엄청난 흔적과 자연의 기나긴 역사. 그 자연의 줄기찬 흐름 속에서 잠깐, 아주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인생의 덧없음. 이런 것들은 나에게 무한(無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인생은 덧없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을 사랑한다.” (33)

 

[3] “강가에 앉아서 물과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상은 어느새 막걸리를 사랑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46)

 

[4]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한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 (47)

 

[5]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6] “분만될 시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일, 이것만이 예술가의 삶” (146)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

 

[7]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181)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문학이 되어버린, 한 인물의 삶이 담긴 에세이’ | 기본 카테고리 2021-10-20 00:54
http://blog.yes24.com/document/1527399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저/송태욱 역
문학동네 | 2017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Suga Atsuko) 지음 |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문학이 되어버린, 한 인물의 삶이 담긴 에세이

 

 

스가 아쓰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 건 올해였다. 우연한 기회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이면서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여 로마 문화의 황금기를 가져온 인물. 동시에 강경파 로마 세력으로부터 유약한 황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이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소설이었다. 이 놀라운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나중으로 미루어 둔다.

 

스가 아쓰코가 등장하는 대목은 그녀가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에 심취했으며, 그녀의 문학적 발자취를 찾아 가기를 꿈꾸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르스나르의 신발이란 책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렇게 1929년에 출생한 여성은 독립적인 직업인으로서 문학도를 소망했다. 그리고 정말 배를 타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너가 공부하면서 조합 형식의 서점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까지 하며 10여 년을 지내고 귀국한 이력의 인물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수많은 이탈리아의 지성인과 교류했고,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책과 서점을 중심으로 확장되어간 인연들의 이야기들이 그녀가 쓴 여러 편의 에세이에 묘사된 중심적인 화제다.

 

특히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이탈리에서도 유명한 밀라노의 짙은 안개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저자 본인이 직접 겪은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남편의 이른 죽음을 중심으로 가족같이 지내던 수많은 인연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적이고 절제된 형식으로 들려준다. 아쓰코는 남편의 죽음 이후 몇 년을 더 지내다가 13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이후 비교문학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하고, 많은 이탈리아 문학을 일본에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녀의 에세이가 지닌 특징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문학 연구자로서 여러 문학적 논평을 포함한 지적인 면모와 그녀가 만나게 된 인연들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내게는 그런 면에서 저자의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이 에세이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일을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 썼던 글이기에 균형감이 더 돋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이외에는 가진 것 없는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서로를 걱정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며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가진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해주었다.

 

본문 중에는 저자가 문학도로서, 좋아하는 일에 그토록 좋아서 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본인이 좋아하는 문학 번역작업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79)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다. 하지만 그녀는 생계를 위해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는데, 그 가운데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 교육을 받으면 곧바로 결혼을 하곤 했던 시절에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과 길을 찾아 용감하게 나아간 인물이기도 했다.

 

나라면 평생 문학을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범에 휘둘리고 나를 잃어버리기가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문학에서 시작해서 문학으로 끝나는, 문학의 삶 자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그녀의 삶은 곧 문학이 된 셈이다. 이번에 읽은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저자가 남긴 에세이 작품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저자의 나머지 에세이들도 모두 읽을 생각을 하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한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책 속으로]

[1] "(나폴리는) 일면에 자꾸 화를 내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도시와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선 전체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살피다보면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73)

 

[2]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79)

 

[3] "책장을 메운 오래전 사건을 오늘 나의 일상과 끊임없이 겹쳐보며 번역을 해나갔다." (119)

 

[4]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아니타 로가 번역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고 이 독일 작가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독일 북부 뷔베크에 사는 거상 가족의 이야기가 아마도 토마스 만 특유의 (즉 내가 읽을 수 없는 원문의) 단단하고 중층적인 문체를 살린 근사한 이탈리아어로 펼쳐졌다." (195)

 

[5] "오뉴월, 아름다운 초여름이었다. 전철이 점점 산에 가까워지자 조토의 그림이 떠오르는, 주황빛으로 메마른 언덕에 핀 금작화가 보였다. (...)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나뭇가지가 휠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하얗고 커다란 아카시아 꽃송이를 지나쳤다. 연초록 이파리 사이로 아른거리는 하얀 꽃이 달리는 전차에 닿을 듯했고, 달콤한 향기가 열린 차창으로 들어와 열차 안을 가득 채웠다." (217)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나누다’ | 기본 카테고리 2021-10-14 18:1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23861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장명숙 저
김영사 | 202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저자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소개한 책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나누다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혹자는 아프리카 격언이라고도 하지만, 아프리카와 도서관을 연관 짓기는 어려울 듯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다듬어졌을 듯싶다. 한동안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에세이 몇 권을 읽었는데, 마침 아내가 읽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나도 읽으면서 앞에 인용한 표현이 떠올랐다. 올해 일흔이 되신 저사는 일찍이 패션계에서 경력을 쌓고 밀라노와 대한민국을 거점으로 평생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이었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이가 든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장해야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저자는 사회의 어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분이란 인상을 받았다. 저자가 내 어머니와 같은 연세이기도 하고, 저자의 큰 아들 역시 내 또래여서였을까, 저자의 젊은 시절 관습과 편견을 극복하고 전력투구하며 나아갔던 행보에서 내 어머니의 삶도 보이는 듯했다. 한 문장마다 이야기를 듣듯이 찬찬히 읽어보았다.

 

저자의 말 중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227)는 문장에 눈길이 멈추었다. 삶과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생명이 주어졌다면 죽음은 어김없이, 정면으로 맞게 될 삶의 과정이다. 살면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을 떠올릴 때 내게 절실해진 화두가 된다. 저자가 나누는 지혜 속에 본인이 해야 할 역할과 몫은 본인이 해야 한다’(260)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저자가 삶과 대면하여 어떻게 살고자 했을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은 삶은 한번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존재다. 모든 단계가 처음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양육을 잠시 부모에게 맡겼던 것을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말하며 힘들게 배운 교훈이 바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역할,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해낸다는 말이 이처럼 생경하고 무겁게 다가온 적이 있을까. ‘부단히 노력하고 전력투구하고 난 뒤 삶을 돌아보는 저자의 모습에서 평생 한결같이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시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최근에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던 순간이, 죽음을 말하는 저자의 태도와 오버랩 되었다. 나 역시 살아있는 동안 무엇보다 내가 해야 할 내 몫을 다할 수 있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저자의 말대로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과 경험을 보다 많이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내 몫을 나름대로 해낼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과 나누고 베푸는 일이 보다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이제는 내가 가진 부실한 것들도 좀 더 나눌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내가 가진 것 모두 언젠가는 버려지거나 타인에게 넘어갈 것이니까. ‘나는 자유다라고 외친 카잔차키스의 선언이 오늘따라 낯설고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책을 덮고서도 삶의 본질에 파고드세요라는 저자의 한 마디 역시 쉽게 떠나지 않는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관습과 유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지만, 내 삶은 어떠해야할지, 내 죽음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는 이제부터라도 살펴보고 돌보아야할 나만의 과제가 되어야 할 테다. 저자는 어려운 철학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꾸준히 성찰하고 깨달은 지혜를 독자에게 나누어준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사랑해온 방법을 소개한 책이었다.

 

 

[책 속으로]

 

[1] “진정으로 럭셔리한 삶은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럭셔리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174)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의 말

 

[2] "오늘도 나는 내 분신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214)

 

[3]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227)

 

[4] "삶의 우선순위를 알고, 삶의 본질에 파고드세요." (260)

 

[5] "인간에 죽음을 뛰어넘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좋은 글을 남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좋은 자식을 남기는 것이다." (261)

- 움베르토 에코의 말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1 2
진행중인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