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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되어버린, 한 인물의 삶이 담긴 에세이’ | 기본 카테고리 2021-10-2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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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저/송태욱 역
문학동네 | 2017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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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Suga Atsuko) 지음 |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문학이 되어버린, 한 인물의 삶이 담긴 에세이

 

 

스가 아쓰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 건 올해였다. 우연한 기회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이면서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여 로마 문화의 황금기를 가져온 인물. 동시에 강경파 로마 세력으로부터 유약한 황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이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소설이었다. 이 놀라운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나중으로 미루어 둔다.

 

스가 아쓰코가 등장하는 대목은 그녀가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에 심취했으며, 그녀의 문학적 발자취를 찾아 가기를 꿈꾸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르스나르의 신발이란 책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렇게 1929년에 출생한 여성은 독립적인 직업인으로서 문학도를 소망했다. 그리고 정말 배를 타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너가 공부하면서 조합 형식의 서점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까지 하며 10여 년을 지내고 귀국한 이력의 인물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수많은 이탈리아의 지성인과 교류했고,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책과 서점을 중심으로 확장되어간 인연들의 이야기들이 그녀가 쓴 여러 편의 에세이에 묘사된 중심적인 화제다.

 

특히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이탈리에서도 유명한 밀라노의 짙은 안개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저자 본인이 직접 겪은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남편의 이른 죽음을 중심으로 가족같이 지내던 수많은 인연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적이고 절제된 형식으로 들려준다. 아쓰코는 남편의 죽음 이후 몇 년을 더 지내다가 13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이후 비교문학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하고, 많은 이탈리아 문학을 일본에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녀의 에세이가 지닌 특징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문학 연구자로서 여러 문학적 논평을 포함한 지적인 면모와 그녀가 만나게 된 인연들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내게는 그런 면에서 저자의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이 에세이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일을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 썼던 글이기에 균형감이 더 돋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이외에는 가진 것 없는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서로를 걱정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며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가진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해주었다.

 

본문 중에는 저자가 문학도로서, 좋아하는 일에 그토록 좋아서 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본인이 좋아하는 문학 번역작업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79)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다. 하지만 그녀는 생계를 위해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는데, 그 가운데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 교육을 받으면 곧바로 결혼을 하곤 했던 시절에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과 길을 찾아 용감하게 나아간 인물이기도 했다.

 

나라면 평생 문학을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범에 휘둘리고 나를 잃어버리기가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문학에서 시작해서 문학으로 끝나는, 문학의 삶 자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그녀의 삶은 곧 문학이 된 셈이다. 이번에 읽은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저자가 남긴 에세이 작품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저자의 나머지 에세이들도 모두 읽을 생각을 하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한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책 속으로]

[1] "(나폴리는) 일면에 자꾸 화를 내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도시와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선 전체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살피다보면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73)

 

[2]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79)

 

[3] "책장을 메운 오래전 사건을 오늘 나의 일상과 끊임없이 겹쳐보며 번역을 해나갔다." (119)

 

[4]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아니타 로가 번역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고 이 독일 작가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독일 북부 뷔베크에 사는 거상 가족의 이야기가 아마도 토마스 만 특유의 (즉 내가 읽을 수 없는 원문의) 단단하고 중층적인 문체를 살린 근사한 이탈리아어로 펼쳐졌다." (195)

 

[5] "오뉴월, 아름다운 초여름이었다. 전철이 점점 산에 가까워지자 조토의 그림이 떠오르는, 주황빛으로 메마른 언덕에 핀 금작화가 보였다. (...)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나뭇가지가 휠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하얗고 커다란 아카시아 꽃송이를 지나쳤다. 연초록 이파리 사이로 아른거리는 하얀 꽃이 달리는 전차에 닿을 듯했고, 달콤한 향기가 열린 차창으로 들어와 열차 안을 가득 채웠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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