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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국부론 | 서평 2021-09-2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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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애덤 스미스 국부론

이근식 저
쌤앤파커스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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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국부론

이근식 (지음) | 쌤앤파커스 (펴냄)

상공업을 발전시켜 모든 사람이 생업을 갖는 것이 범죄 예방의 최선이라는 스미스의 법학은 도덕철학과 경제학이 만나는 종합 철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제목만 보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번역해놓은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국부론을 읽은 저자가 주관적인 해석과 풀이를 해놓은 책이다. 어려워서 주저했던 국부론에 다가서는데 부담이 조금 들어든 기분이었다. 더불어 애덤 스미스의 생애에 대한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애덤 스미스가 제시했던 "경제적 방임주의". 21세기에는 어떻게 재해석하고 적용해야 할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근대 사회의 두 기둥이다. 정치와 경제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경제적 자유주의는 중소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함이었으나 현대의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는 최소화 해야한다고 얘기했지만 그가 살던 시대에는 없던 대기업과 재벌의 등장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독과점과 담합에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경제를 통제하는 중상주의에서는 정경유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정경유착은 아무래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과 관련되기 마련이어서 재벌의 비대화와 비리라는 문제점을 가진다.

스미스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을 인정했지만, 개인과 상공인들의 탐욕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쉽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정의를 강조하며 공감과 양심을 통한 법과 윤리를 말하고 있지만 복잡한 세상사와 인간의 탐욕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것이 아니었나 싶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악의 체제로 본 것과는 반대로 애덤 스미스는 소수 부자들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등장한 법과 국가가 결과적으로 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시각을 가졌다.

자본가들을 비판하고 노동자들의 편에서 공감하는 스미스의 이론을 보고 있자니 현시대를 미리 본 사람인듯 느껴진다. 일부가 아닌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본다면 시대를 앞서는 혜안을 가지게 되는걸까?

자본가들을 비판하면서도 사회주의가 아닌 신자유주의 이론을 펼친것을 보면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효과와 결과를 더 크게 보는 그의 낙관적인 관점은 유신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독점과 반대되는 선의의 경쟁은 훌륭한 경영 촉진과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소비자에게 이익을 준다.

그러나 독점과 경쟁도 아닌 담합이라는 편법도 존재한다는 씁쓸한 사실을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 접하는 현실이다.

국가의 부를 얘기하는 경제학인 국부론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할 수 없는 정치경제체제에서 인간의 탐욕과 맞물리며 도덕과 윤리, 법을 함께 적용시킬 수밖에 없는 종합 철학이다. 애덤 스미스가 현대에 국부론을 다시 쓴다면 어떻게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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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NOON세트] 자기만의 방 | 서평 2021-09-2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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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조지 오웰,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저/황현산,박경서,이종인 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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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NOON세트]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전에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과는 다르게 소설의 형식이 아닌 에세이의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생각이 시대상과 맞물려 표현되어 있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식어 만큼이나 그녀에게 붙는 또 하나의 꼬리표 "페미니즘 작가".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우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고 한다. 여성으로서의 차별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그저 남자와 여자를 떠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성의 역사.

도서관 이용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처지로 시작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매질에도 순종할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꼬집는다. 교육의 기회조차도 공평하게 가질 수 없었고, 공개된 공동의 장소에서 일상의 방해를 받으며 쓰던 글을 압지로 덮어가며 글을 쓴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남성에게 소유 아닌 소유물로, 명령을 거부하면 방에 감금되어지고 폭력에 시달리는 사실이 별다른 사건 사고랄 것도 없이 평범함이던 시대들. 고양이에게 조차 있는 영혼이 여성에겐 없다는 무시와 여성이 쓰는 글을 누가 읽어주겠냐는 비아냥 속에서도 자의식을 가진 여성들의 고뇌와 번민 속에 오늘날이 되었다.

'레이디 퍼스트'

어릴적에는 이 말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서양의 여성들은 양보와 배려 속에 사는구나' 하고. 하지만 실상은 결혼과 함께 주어진 성(라스트 네임)조차도 뺏기고 남편의 성으로 사는 그녀들이 가질 수 있도록 허락된건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과 편견은 현재에도 존재하지만, 약자라는 위치를 무기처럼 휘두르며 역차별이 일어나는 곳도 있다.

성희롱을 당하는 여성을 대변해주는 단체들은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예를 들면 매맞고 사는 남편과 여성 상사에게 성희롱 당하는 직장내 남성들의 얘기는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남자 연예인이 여성 출연자에게 건네는 딱히 성희롱의 의도가 보이지 않는 농담에는 분노하면서 여자 연예인이 나이 어린 남자 아이돌의 엉덩이를 대놓고 만지는 티비 프로그램은 웃음코드로 받아들이며 가볍게 넘기는 경우를 수차례 보았다. 미투사건에서도 고발 당한 남성은 있지만 여성은 화제가 되지 못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약자라는 이유로 여성이 보호받는 면책의 특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배려와 양보, 보호도 차별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역차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등도 기대할 수 없다.

울프는 돈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자기만의 방이 글을 쓰는데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찾는 것이나 자아를 드러내는 것과도 통할지 모르겠다.

현대에 이르러 자기만의 방, 공간이 필요한 것은 꼭 여자들 뿐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울프가 현재에 다시 글을 쓴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쓸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위해 시간을 대가로 지불함으로써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없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자유를 누릴 시간이 없다.

현대를 살아가며,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런 자유가 존재할 수는 있을까?

그녀의 글에선 왠지 인간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여성 뿐만이 아니더라도 군중 속에서 익명으로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와 자유를 위해 돈과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 것은 남녀 모두가 아닐까.

그녀는 '살아있음'을 쓰는 행위로 표현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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