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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 우유, 피, 열 | 기본 카테고리 2023-02-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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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저/박경선 역
모모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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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시엘 W. 모니츠 작가의 데뷔작인 우유, 피, 열은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에너지, 붉고 하얀 색감, 퀴퀴하고 야릇한 냄새 등 모든 감각을 생생하게 건드리며 소녀, 엄마, 딸, 친구, 자매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여러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열한 편의 소설을 담은 소설집이다.

 

- 프레드는 글로리아가 자신을 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글로리아가 말하지 않는 모든 것들, 자신의 모든 질문에 괜찮다라고 대답하며 자신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막는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프레드는 위장이 콱 옥죄어드는 느낌이었다. 프레드는 어쩐지 글로리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p. 98)

 

- 엄마는 분명 세상이 원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프랭키의 모습이 갑자기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단지 엄마가 아니라 한 온전한 인간으로. 두려움 가득한 별개의 존재. 나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엄마에게도 지구상에서 처음 보내는 시간이라는 걸 마고는 문득 깨닫는다. (p. 162)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한 여성으로 살기라는 통일된 주제의 단편들에 담겨있는 여성 캐릭터들은 연령, 피부색, 직업, 성격, 경험, 상황 모두 제각각이지만 평탄한 삶을 살아주지 않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상한 여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으며, 살아남은 여자, 죽어가는 여자, 죽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사람들은 남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틀림없이 거짓말이다. 누군가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미 그 필터를 통해 그 사람을 보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다. (p. 199)

 

- 분수대가 꺼진 물은 하나의 거울이 되었다. 건너뛰어야 할 것, 그리고 잃게 될 것과 찾게 될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거울. 빌리는 어쩌면 그 어떤 것이든, 어떤 블랙홀, 어떤 몸, 어떤 선택 모두 하나의 관문이 될 수도 있으며, 관측되지 않는 다른 어디에서든 택하지 않은 모든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60~261)

 

우유, 피, 열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보여주는 모습이나 이야기들이 풍기는 분위기들과 느낌들이 뭐라고 정의하기 힘들만큼 낯설어 굉장히 기묘하고 기괴한 느낌의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삶은 이해되고 공감되는 부분도 화가 나는 부분도 공감되기 보다는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읽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어렵고 버거운 이야기들이었다.

 

-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홀린 채 그들 속에 섞여 앉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엄마에서 딸로 그리고 다시 엄마로, 시간의 중심부로부터 뻗어 나와 끊어진 적 없이 젖과 피로 이어진 사슬 속에서 서로를 잇는 고리라는 사실을 난생처음 깨달았다. 문득 할머니와 나 사이에 비어 있는 그 공간에 대해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p. 325)

 

* 모모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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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 그리고 희망에 대하여 희망의 이유 | 기본 카테고리 2023-02-2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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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저/박순영 역
김영사 | 2023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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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며 영장류학자, 환경운동가로 자연 환경과 동물 보호에 앞장서온 제인 구달의 대표작 희망의 이유가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인생의 여정에 담긴 철학과 신념 자연과의 연대,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는 노력 그리고 인류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은 희망적인 생각이 아닌 희망에 이르기 위한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 나는 세상일이란 것이 한때 그래 보였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란 모호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p. 42)

 

- 곰베에서 여러 달을 지낸 후 나는 새로운 눈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화된 세계를 보았다. 그 세계는 벽돌과 회반죽, 도시와 빌딩, 도로와 자동차와 기계의 세계였다. 자연은 거의 언제나 아름답고 영혼을 풍요롭게 했지만, 사람이 만든 세계는 끔찍하게 추악하고 영혼을 메마르게 하기 쉬운 것처럼 보였다. 곰베에서 영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두 세계 사이의 이러한 대조가 선명히 떠올라 나를 정말 슬프게 했다. (p. 136)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 대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키우도록 격려 받으며 자라온 환경으로 동물에게 매력을 느끼고 동물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제인 구달은 늘 아프리카에 가는 것을 꿈꿔왔고 23살 친구의 초대로 아프리카 여행을 하게 되면서 실현되기 시작한다.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를 만나 연구를 돕다가 새로운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곰베에서 침팬지 연구를 시작하며 동물학자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 나는 침팬지들이 인간들보다 더 낫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혹은 인간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압도적인 의견을 내놓을 기반을 마련하려고 곰베로 간 것은 아니었다. 배우고, 관찰하고, 내가 관찰한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갔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정직하고 분명하게, 나의 관찰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사실들이 아무리 마음 편치 않더라도 억지로 부정하면서 불안 속에서 사는 것보다 그것을 직면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p. 181)

 

- 조그마한 집단의 부분이 되는 것은 아무런 해악도 없다. 실제로 수렵 채집 집단적 성향으로 인해 작은 집단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또한 완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내부의 친구 집단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한다. 위험은 오직 우리 집단과 달리 생각하는 다른 어떤 집단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긋고, 도랑을 파고, 지뢰밭을 만듦으로써 생긴다. (p. 198)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겪은 일, 그로 인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과 자연의 경이로움, 가족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 중 인상깊었던 것은 연구한 새로운 내용들을 발표할 때 제인 구달이 관련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라는 이유로 불신하는 이들에게 편견 없는 관찰 내용과 솔직한 생각들을 공유하며 점차 인정받는 과정, 침팬지 연구를 위해 처음 곰베에 갔을 때 5개월간 어머니가 함께 했다고 하는데 생명에 대한 애정과 지식에 대한 열정을 길러주고 격려해준 어머니의 무한한 믿음과 응원이 있었기에 제인 구달이 원하던 일을 하게 될 수 있었단 생각도 들었다.

 

- 인간이 성품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 (p. 312~313)

 

무분별한 환경파괴,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 파괴, 전쟁과 폭력의 시대의 이야기 등 20여년 전에 문제를 인식하고 지적한 부분들은 아직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거나 이제야 관심을 받게 된 것들도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제인 구달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과 철학을 담아 행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되어 각자의 희망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 김영사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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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가 되길...경험이 언어가 될 때 | 기본 카테고리 2023-02-09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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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험이 언어가 될 때

이소진 저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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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프티부르주아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작가는 데이트 폭력, 학과 내 성폭력 사건 해결에 나서는 등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여성학과에 입학한다. 이후 페미니스트 노동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페미니스트로 세상을 바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 본 결과를 담고 있는 경험이 언어가 될 때는 자기성찰의 결과물이 담긴 책으로 작가의 생각을 입증하기 보다는 논쟁적일 수 있는 생각들을 쉽게 설명하는 데 방점을 두고 ‘나는 이렇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정도로 독자들이 받아들여 주길 바라며 썼다고 한다.

 

-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내가 못난 사람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나만의 생각에 갇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가 이 과정에서 실수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상처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p. 21)

 

- 나는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보편이라 생각한다. 무릇 보편이라 함은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기준을 아래로 맞춰야 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존재들에 맞추는 것이 바로 보편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편으로 설정하면 우리는 모두가 편한 세상에 살 수 있다. 누군가의 불편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 아닌, 불편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p. 47~48)

 

여성학적 시각에서 노동을 연구하는 작가의 관심사인 여성, 계급, 자본, 시간, 생산 그리고 소비와 부채라는 주제를 교차 시키며 생각들을 펼쳐 놓고 있는데 남성중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개념들이 아니라 서로를 규정 지으며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러 이야기들 속에는 작가의 흑역사 이야기들도 담겨있는데 미성숙했던 자존심만 높고 무지했던 모습들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이후의 보고 듣고 느낀 경험과 인식의 변화로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 분노가 혐오로 치환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과적 사고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개인적 분노의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응징에 대한 욕구를 사회적 안녕에 맞추고, 자신을 분노하게 한 사회적 상황을 바꾸려 노력할 때, 분노는 사회 변화를 이끄는 긍정적인 감정이 될 수 있다. (p. 82~83)

 

- 노동에 대한 연구는 시간을 가로지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노동을 노동의 양으로 측정한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시간으로 측정되며 시간으로 계산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과거 잠에 들어야만 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일을 할 수 없었던 그 공간들에서도 일을 하거나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4시간 노동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p. 122)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일까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읽으면서 많은 것을 알고 배우게 되는 시간이었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이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여성으로 태어난다고 획득되는 것이 아닌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훈련되고 학습되는 것이라는 작가의 관점은 공감되었다. 다수자가 소수자가 되는 순간이 성별에 따른 일방향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보편이라는 개념이 쉽사리 정의되기 어려운 개념이며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정의 될 수도 있다는 것 등 어떤 부분은 공감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시간으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또 어려우면서도 쉬운 책이었다.

 

- 내가 느끼는 불편함의 원인을 묻고, 그 답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삶에 적용해야 사회는 달라질 수 있다. 타인에게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느끼는 고통에 내가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나의 삶을 먼저 변화시켜야 한다. (p. 198)

 

* 문학과지성사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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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 서울, 카타콤 | 기본 카테고리 2023-02-0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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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울, 카타콤

이봄 저
위즈덤하우스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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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 묘지로 핍박 받고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 들거나 지상에서 묻어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묻히는 곳으로 사용되어 왔고, 전쟁이 나면 숨을 곳이 되거나 전략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래 들어가 아지트를 삼기도 했던 카타콤. 서울 그것도 가장 복잡하고 번화한 강남 거리 한복판에 서울의 카타콤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라는 작가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는 서울, 카타콤은 바쁘게 지나가는 세상의 아래에 깔려 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지하 공간의 이야기다.

 

- 우리는 그냥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에 치여서 숭숭 떨어지다 가라앉은 거다. 윗물에서 조용히 사라진, 바닥에 깔린 모래랑 흙 같은 찌꺼기, 그래, 그런 거. (p. 35)

 

- 이렇게 크고 복잡하고 오래된 지하에 별일이 다 있었을 테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별의별 사람이 왔을 거고 별의별 일이 있었을 거야. 우리는 딱히 결정권이 없어. 위에서 흘러오는 대로 쌓이는 것뿐이지.

그래도 이렇게 난장판이 나면 모두에게 안 좋잖아요.

그래, 그래서 온 거 아니었어? 난장판이 싫어서? 그런데 그걸 끌고 오니 곱게 볼 리가 있나. (p. 101~102)

 

휘황찬란한 불금의 강남 한복판 어두컴컴한 건물 사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는 뚫린 구멍을 통해 지하철 승강장과 이어진 거대한 지하 공간이 있다. 주인공 나는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 저 아래로. 세상을 버리고 사라지기 위해 지하로 들어가고 그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개미굴만큼이나 복잡한 지하공간은 마치 지상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세상이 버린 세상을 버린 사람들이 흘러 내려와 각자의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 지상엔 저런 인간들투성이였어. 애들이라고 지 입맛대로 이용하고 휘두르려는 쓰레기들.

어르신도 비슷한 말씀을 했었다. 지상에 있든 지하에 있든 하던 짓 똑같이 한다고 했지. 화연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향했다.

나, 올라가면 이번에는 제대로 살고 싶어. (p. 166)

 

서울의 한복판 그것도 강남역 아래의 지하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그들은 왜 무슨 이유로 지상에서의 삶을 포기한 채 지하로 가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해 지쳐 세상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건강한 곳도 밝은 곳도 아닌 불편한 것도 많았지만 못 살 것도 없다며 지하를 선택한 사람들의 생활은 지상보다 나을 것 없어 보이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여기는 모습을 보며 그 삶들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균열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아무도 금이 쩍 하고 갈라지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는다. 어느새 생긴 그 균열을 방치하다가 한참 나중에 금이 길게 자리 잡은 것을 알아챈다. 아니면 겉으로 깨끗해 보이지만 안으로 오랜 시간 동안 가해진 압력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방심하는 사이에 터지던지. 갈라질 대로 갈라진 금은 서로 이어져 길고 거대한 어긋남이 되기 마련이다. 소리가 나면 그제야 놀라 고개를 돌려, 균열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한다. (p. 229)

 

어느 곳이든 사람이 많아지면 갈등과 분란이 생기고 그 안에서 싸움도 발생한다. 지하 센터 공사로 안전까지 위협 되는 상황에서 조용한 삶을 살아가던 지하공간에도 사람들이 늘어나며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생기고 잔잔하던 지하공간에 균열이 생기는 모습은 지상과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지하로 향한 사람들은 또 어디로 향하게 될지, 매일 발을 딛고 다니는 땅 아래의 어딘가 서울, 카타콤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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