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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둘러싼 진실 혹은 거짓"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목걸이-세상에는 없는 미술관 | 책미리보기 2012-11-3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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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 <장미를 들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

1783년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베르사유와 트리아농 궁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보석을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평판을 얻는 데는 일명 '왕비의 목걸이 사건'이 한몫했는데, 목걸이를 둘러싼 이 기상천외한 사건은 왕실의 신뢰 하락을 부추기는 계기가 된다.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나기 고작 4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프랑스 왕실 보석공 보에메르와 바상주가 1773년경에 만든 '왕비의 목걸이'를 마리 앙투아네트가 걸어본 적은 사실 한 번도 없다. 사기꾼들이 곧바로 넘겨받아 벨기에 다이아몬드 상인과 영국 보석상에게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보석이 자그마치 647개나 들어간 2300캐럿짜리 목걸이는 원래 루이 15세의 애첩 뒤바리 백작부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1774년 루이 15세가 목걸이를 건네받기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다. 보석상은 갈 곳 잃은 목걸이를 1778년에 새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씀씀이가 헤프기로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도 160만 리브르(약 200억원)에 달하는 가격에 놀라 선뜻 구입을 하지 않았다.

 

 

 

 

 

 보에메르와 바상주(모사)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목걸이

18세기 프랑스, 브르퇴유 성

 

 

1784년, 로앙 추기경이 왕비에게 밉보인 후 신임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을 때 라모트 백작부인이라는 사기꾼이 접근해온다. 백작부인은 자기가 마리 앙투아네트와 친한 사이라고 자랑하면서 왕비와 화해하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공모자들과 결탁해 왕비의 이름으로 된 가짜 편지를 추기경에게 전했고, 밤중에 왕비와의 짧은 회동도 주선해준다. 추기경이 만난 왕비는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똑 닮은 여자였다!

 

추기경의 신용을 얻는 백작부인은 비밀도 한 가지 알려주었다. 왕비가 갖고 싶어 하는 목걸이가 있는데 너무 사치스러운 물건이라 대놓고 사지 못하고 있으니 추기경 이름으로 대신 구입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추기경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주문한 목걸이를 왕비가 보낸 시종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건네준다. 그런데 몇 달 후, 보석상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목걸이 값을 직접 지불해줄 것을 요구했다. 목걸이를 주문한 적도 없는 왕비는 브르퇴유 남작을 시켜 진상을 밝혔고, 조사 결과 로앙 추기경이 개입되었음이 드러난다.

 

사건을 알게 된 루이 16세는 왕비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추기경을 공개적으로 잡아 들였다. 재판이 끝난 후 라모트 백작부인은 유죄 선고를 받았고, 도둑(voleur)을 뜻하는 'V'자 낙인이 찍힌 채 정신병자 수용소에 감금된다. 하지만 법원은 로앙 추기경에게는 보석상에 대한 채무는 인정하지만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다.

 

이 같은 판결을 두고 여론은 왕비에게 죄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추기경의 잘못이 아니라 왕비가 추기경을 이용해 국왕 몰래 목걸이를 샀다고 믿은 것이다. 국민에게 '오스트리아 여자'라 불리며 미움을 받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목걸이 사건으로 가혹하고 부당한 누명까지 쓰고 만다. 이후 사치와 향락, 낭비의 대명사가 되며 1793년 10월 16일,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세상에는 없는 미술관

셀린 들라보 저/김성희 역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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