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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저
나무옆의자 | 2021년 05월

        구매하기

모든 인생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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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조선에는 세책방(貰冊房)이라는, 요즘의 도서대여점 같은 곳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세책방엔 어떤 책들이 있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유교 경전 같은 선비들의 교과서가 아닌 흥미위주의 번역소설과 한글소설이 다수였다고 한다. 아마 불편한 편의점같은 책도 있지 않았을까. 작품을 읽었을 때 드는 첫 느낌이 그랬다. 적당히 재미있고, 따뜻하고, 감동적이고.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지 못한 조선시대라도 재미있다고 입소문 나서 세책방의 인기도서가 되었을 법하다.

 

불편한 편의점은 이번에 yes24북클럽에 가입하면서 다운받은 책 중의 하나이다. 워낙 유명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신간으로 사기는 망설여지고, 도서관에서 대출받기도 번거로워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북클럽 도서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쓴 김호연 (1974~ )작가는 시나리오, 만화스토리, 소설을 모두 쓴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라서인지 소설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읽혀서 일하다가 잠깐씩 봤어도 한나절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어느 골목의 편의점, 시간적 배경은 2019년 가을부터 2020년 봄까지이다.

작품은 8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소설로 편의점 사장과 직원, 손님들이 각각의 이야기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편의점 사장인 70대 퇴직교사 염 여사, 편의점 알바이며 취준생인 시현, 게임에만 빠져 사는 아들 때문에 힘든 오 여사,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매일 밤 혼술 하는 영업사원 경만,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슬럼프에 빠진 작가 인경,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염 여사의 아들 민식, 흥신소 일을 하는 곽, 그리고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해서 평범하다 못해 초라한 소시민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며 자신도 치유해가는 독고 씨. 이들이 작품의 등장인물이다.

 

이야기는 염 여사의 잃어버린 파우치를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독고 씨가 찾아주면서 시작된다. 이것을 인연으로 염 여사는 독고 씨를 편의점 야간알바로 채용한다. 그는 알콜성 치매로 기억을 잃은 상태라 말과 행동이 어눌하지만 의외로 일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다. 험상궂은 첫인상과 다르게 주변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적절하게 조언도 한다. 취업이 안 되어 자존감이 약해진 시현은 그의 권유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아들 때문에 고민인 편의점의 다른 직원 오 여사는 독고 씨 덕분에 삼각김밥을 매개로 아들과 소통한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에게는 참신한 소재를 주고, 소시민 가장 경만에게도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등 독고 씨는 청파동의 해결사가 되어간다. 정작 자신의 문제는 해결해줄 사람이 없었지만 작품의 말미에 보면 그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해결해주면서 스스로도 치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했지만 그냥 읽고 잊어버리기엔 아쉬운 책이다.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았다.

 

첫째, ‘불편한 편의점이란 어떤 의미일까?

편의점은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인데 작품 속의 편의점은 불편한 곳이라고 한다. 이유가 뭘까? 작품에서는 물건을 제대로 못 갖추어서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편의점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아예 제목이 불편한 편의점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소통의 부재로 인해 고통 받는다. 그중에서도 가족. 그들에겐 가족이 사랑이고 고통이다.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의 모순적인 현실을 불편한 편의점이란 말로 표현한 듯하다.

 

가족들에게 평생 모질게 굴었네. 너무 후회가 돼. 이제 만나더라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불쑥 튀어나온 말에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손님한테...... 친절하게 하시던데...... 가족한테도......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그럼...... 될 겁니다.” (137/147)

 

전에 어디선가 사춘기 자녀를 대할 때 조카처럼 대하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나면 덕담해주고 용돈 주고. 딱 거기까지만 하란다. 자녀 뿐 아니라 배우자, 부모 모두 마찬가지다. 너무 사랑하고 가까워서 함부로 대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라는 얘기다. 이 책에서는 편의점 손님처럼 대하란다. 거리두기는 전염병 예방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둘째, 선한 영향력이란 무엇일까?

퇴직 교사인 염 여사는 충분한 연금이 나오므로 굳이 힘들게 편의점을 운영할 필요가 없지만 직원들의 생계 때문에 가게를 접을 수가 없다고 한다. 처음엔 입에 발린 말이 아닐까 했지만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염 여사의 언행을 보면 진심이 느껴진다.

 

염 여사는 편의점으로 돈을 왕창 벌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매출이 줄어 망한다면 직원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 걱정될 뿐이다. 하지만 이토록 경쟁이 심한 줄은 몰랐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었다. (20/147)

 

직원을 가족처럼 아끼는 어른다운 어른이다. 평소에도 늘 넓은 마음으로 살아왔기에 노숙자도 편견 없이 대하고 그 영향을 받은 독고 씨도 주변을 선하게 만든다. 바이러스만 강력한 게 아니다. 선한 마음도 빠르게 전파된다. 이런 영향력이 작품으로 전달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그 중 하나는 지나치게 동화적인 전개이다.

편의점 알바가 유튜브로 금세 유명해져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된다든지, 은둔형 외톨이 오 여사 아들이 삼각김밥과 편지 한 장으로 엄마와 사이가 좋아진다든지 하는 등의 소망하지만 좀처럼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독고 씨가 개입만 하면 쉽게 이루어진다. 이쯤 되면 염 여사가 데려온 독고 씨는 그냥 노숙자가 아니라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하느님의 벌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와 구둣방에서 일하는 미하일 천사처럼 보인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어설프다는 점이다. 독고 씨가 기억을 찾는 부분이 생뚱맞게 코로나와 엮여 부랴부랴 끝나고, 이미 중년인 그가 몇 년씩 노숙을 할 정도로 방황하는 이유도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앞의 에피소드들이 동화 같은 결말이었다면 마지막 편은 시청률은 높았지만 뒷심 없이 끝나버린 드라마를 닮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는다. 정보나 교훈을 얻으려할 때도 있고 재미와 감동을 찾기도 한다. 사람들은 역경에 빠진 소설 속 인물을 응원하며 자신도 힘을 얻곤 한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이 개연성 없는 행복을 찾는다면 잠깐은 즐거워도 마음속에 긴 여운이 남기는 어렵다.

 

몇 가지 미진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고 지금은 2권까지 출간된 상태다.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를 보여준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줄 알면서도 많은 사람이 찾아 읽고 좋아하는걸 보면 작품 속 밥 딜런의 자서전에 나오는 말처럼 모두들 힘든 싸움을 하고 있나 보다.

 

“......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79/147,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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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장편소설 | 기본 카테고리 2022-08-2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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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저/이은선 역
이봄 | 2020년 05월

<그리스 신화>에서 님프는 어리고, 예쁘고, 장난을 좋아하는, 공주님보다도 한참 더 높은 존재였다. 존재감은 미미할망정 이니까.

매들린 밀러의 장편소설 키르케는 님프, 키르케가 자아를 깨닫고 신계(神界)를 나와 자신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영원하지만 발전 없는 신생(神生)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영웅이 이런저런 모험 끝에 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는 가끔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인간이 된 은 처음이라 꽤나 인상적이었다.

인간이라면 모두 갈망하는 영원한 젊음과 생을 포기하다니.

 

요즘 일이 많아 집중해서 책 읽기가 어렵다.

큰맘 먹고 산 벽돌책 인간 본성의 법칙3분의 1정도 보다 말았고,우리말 어감 사전도 반쯤 보고, 지금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는 중이다. 공부하려고 보는 책까지 합치면 4권 이상이니 책상 위가 어수선하다. 나름 병렬독서라고 위안해보지만 그러려면 조금씩이라도 매일 봐야하는데 못 보는 날이 많으니 과자봉지만 이것저것 열어두고 조금씩 먹다 남긴 듯 찜찜하다.

하루 24시간 중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실상 얼마 안 된다.

세탁기 돌려놓고 기다리는 시간, 밥 안쳐놓고 몇 분, 직장에서도 짬 날 때 잠깐. 이렇게 시간을 쓰다 보니 온전히 한 권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벽돌책을 들고 다닐 수도 없어서 e-book도 보고, 편하게 읽히는 얇은 책도 보고..... 책의 종류, 장르 모두 잡다하게 읽는다. 그나마 바쁠 땐 이것도 할 수 없으니 언제나 시간이 아쉬워 종종거린다.

책에서는 다들 나이 들수록 내면과 외연에 모두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바로 그 책 때문에 안팎으로 여백이 사라지니 아이러니하다.

 

키르케에서 주인공 키르케는 하급이긴 하지만 이라서 영원한 삶과 젊음을 가진 존재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조연이었지만 최근에 출판된 이 소설에서는 당당히 주연이다. 그녀는 무의미하게 영원을 사는 신의 삶을 거부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신은 대부분 영원한 생이 지겨워 재능낭비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저 그런 금수저들이다.

이 작품은 가부장제의 불합리성과 성차별의 부당함을 보여주는 여성주의 소설로 알려졌지만 내겐 영원한 생을 거부한 인간이 된 신의 이야기로 읽혔다.

 

마음이 급할 때, 자꾸 시간에 욕심이 나려할 때, 영원한 시간을 반납한 키르케가 생각난다.

24시간이 모두 자유롭다면 정말로 행복할까. 출근해서 일하고 온 날보다 휴일이 더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는 걸 보면 시간이 유한하기에 집중할 수 있고, 보다 유익하고 재밌는 것들을 찾는 게 아닐까.

오늘 저녁, 모니터 앞에 앉아 예전에 읽은 책을 반추해가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몇 자 적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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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재발견 | 기본 카테고리 2022-08-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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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알고 있다는 착각

질리언 테트 저/문희경 역
어크로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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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은 인간과 문화에 대한 과학으로 인간을 문화적 측면과 생물학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류학은 사회과학일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성격과 자연과학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인문·사회과학 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이며 기초적인 학문에 속한다. 인류학은 시간적으로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기를, 공간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지역의 인간과 문화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인류학은 21세기의 전문화된 지식을 생산하는 학문임과 동시에 모든 지식을 두루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종합학문이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학과소개 참조)

 

대표적인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1901~1978)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오지에서 장기체류하며 원주민들을 연구한 것처럼 인류학은 그동안 현대인들의 생활과는 별 관련이 없는 학문으로 인식되어왔다.

 

<파이낸셜 타임스>편집국장이자 인류학 박사인 질리언 테트는 기존의 사회 분석 도구들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복합적인 원인들을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하며, 세상 속 진짜 문제를 읽어내기 위한 도구로 인류학을 제시한다.

인류학은 아마존 밀림만큼 아마존 창고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말하는 그는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그 이면에 감춰진 단서를 포착하고,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새롭게 문제를 통찰하는 인류학의 새로운 쓸모를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보여준다.

(책 날개 인용)

 

 

이 책의 저자인 질리언 테트 박사는 인류학이 일반인의 고정관념과 달리 현대 사회의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다고 주장한다.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들기,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기, 사회적 침묵에 귀 기울이기라는 인류학의 3가지 핵심원리는 오지 부족을 연구하는 데만 쓸모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인류학이 우리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도움으로써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기던 많은 문제의 해답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학의 3가지 원리가 현대 사회의 문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의 예시를 여러 분야의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들기

 

2014년 초여름 에볼라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시에라리온과 기니, 라이베리아 정부는 국제 보건 기구들의 조언에 따라 격리조치와 봉쇄령을 내리고 환자들을 에볼라 격리 치료소로 보내고 감염자가 친지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p.97)

마을에서 격리 대상이 된 사람들이 다른 집으로 피신했다. 당국이 그들을 제대로 보살펴줄 사람들과 강제로 떼어놓을 거라고 예상하고 그에 따라 대응한 것이다. 심지어 에볼라가 마법이 저주가 아니라 전염병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조차 환자를 집안에서 몰래 간호했다.” (p.98)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마법이나 정부의 계략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거라고 믿었다. (p.99)

오랜 내전과 식민지배에 시달린 지역에서 일반 국민이 정부나 위협적인 서구의 전문가들을 신뢰할 이유는 거의 없었다. (p.102)

 

위에서 인용한대로 전염병 퇴치는 의학만으로 할 수 없다는 게 인류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의 조언대로 현지 문화에 맞는 투명한 격리시설, 마을 안의 치료시설, 의료 지침 전달 방법의 개선 등의 대응책을 세우고 나서야 에볼라가 종식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기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은행들이 회계 장부에서 리스크를 집중시켜서 문제가 터졌다. 하지만 금융증권화를 통해 신용 리스크가 널리 분산되어 다수의 투자자에게 손실이 발생하면 누구도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을 터였다. 한마디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 논리가 틀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이 논리가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불투명했다. (p.133)

금융인들은 시장 유동화리스크 분산의 가치와 같은 이론을 근거로 그들의 작품에 얽힌 탄탄한 창조 신화를 지어냈다. (p.134)

2007년 여름에 부채의 사슬에서 미국의 모기지 대출자가 부채를 상환하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사실 이들의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초기의 손실은 크지 않았다.

.....

투자자들 사이에 리스크를 분산해서 타격을 흡수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장치가 오히려 시스템에 새로운 리스크를 가져온 것이다. 바로 신뢰의 상실이다. 리스크가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p.140)

사실 누구도 자신이나 자신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p.143)

 

저자는 2007년 금융위기가 금융인, 정치인, 언론인들이 자기들만의 세계를 당연히 여겨 그 안의 문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일반인이 금융상품의 소개나 금융시장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많은데도 그들은 자신들만의 논리로 이론을 만들었다. 저자는 여기서 당연한 것,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는 인류학적 시야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침묵에 귀 기울이기

 

언어 구사는 미국에서 공공연하게 인정받는 엘리트주의와 속물근성 중 하나다. 언어구사는 개인의 교육적 성취도에서 나오므로 나름 실력주의를 담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올바른 언어 구사와 교육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선행 조선으로 보였다. 반대로 언어구사 능력이 부족하면 배척당했다.

하지만 모든 미국인이 돈이나 권력은커녕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신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p.204)

미국의 교육받은 집단은 트럼프의 말이 의미가 통하지않는다고 보았다. (p.205)

누군가는 트럼프가 엘리트가 아니라는 신호로 알아듣고 환호한 것이다. (p.206)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일은 이변으로 꼽힌다. 그러나 저자는 트럼프의 당선은 이변이 아니라 언론이 미국인의 다수는 엘리트가 아니고,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사회적 침묵을 보지 못했을 뿐이라며 인류학적 시야로 트럼프의 승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될 때 나는 도저히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언론의 피상적인 보도만으로는 국지적 전염병으로 끝날 수 있었던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이유도, 시민의식이 뛰어나고 첨단 의료진을 갖추었다는 선진국 국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코로나19로 사망한다는 소식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 교포와 유학생들이 SNS를 통해 마스크 착용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서구인들의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겪은 지금은 그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지만 코로나 초기만 해도 마스크 착용은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거나 본인이 병에 감염되었음을 나타내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자유에 대한 개념도 우리와 달라서 코로나 방역수칙을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서구문화에 대한 이해로 지금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서구인을 무조건 비난하던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인류학적 시야덕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지금 보니 현지에 체류하는 한국인이 현지인의 문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인류학 연구의 기본이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실생활과 유리되었다고 여기던 인류학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알고 있다는 착각은 오랜만에 서평단에 신청해서 받은 책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지만 정의도 잘 모르는 인류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언급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공연히 책 신청을 했나.’하는 마음도 잠깐 들었다. 그렇지만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들기는 인류학의 3가지 핵심 원리 중 하나라는 저자의 말에 용기를 내어 낯선 인류학에 한 발 접근하는 마음으로 리뷰를 남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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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열 문장 쓰는 법

김정선 저
유유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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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문장 쓰는 법은 지난번에 읽은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의 저자, 김정선 작가의 다른 책이다. 15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도움되는 글쓰기 팁이 많아서 내용이 알차다. 저자는 책을 많이 읽어라’, ‘간결한 문장으로 써라’, ‘매일 규칙적으로 써라라고 대부분의 글쓰기 책에서 말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기말고사가 코앞인 학생에게는 예습, 복습 잘하고 수업에 충실하라는 원칙적인 말보다 족집게 과외가 절실하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도 원론적인 말보다 당장 쓸 수 있는 비법이 더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저자는 매번 글쓰기를 막막해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팁을 전해준다.

책에는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글을 잘 쓸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소개되지만 여기서는 내가 도전해볼만한 방법 위주로 정리해보았다.

 

 

1. 긴 문장을 쓰자.

 

대개의 글쓰기 책이 되도록 간결한 단문쓰기를 권장한다. 문제는 어떻게 간결한 문장을 쓰느냐이다. 저자는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긴 문장을 써보라고 한다. 긴 문장을 먼저 써놓아야 다음 문장에 대한 고민 없이 글을 이어 쓸 수 있고, 장문을 단문으로 고쳐가면서 문장의 연결법과 표현법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단문을 쓰라는 얘기만 듣다가 긴 문장을 써보라니 낯설다. 막상 해보니 장문도 쉽지 않다. 내가 어려워한 건 단문, 장문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 쓰기 자체였나 보다. 다만 초고 쓸 때는 되도록 자유롭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칠 초고지만 단문이 좋다는 생각은 은근히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다음에 쓸 때는 되도록 긴 문장으로 써봐야겠다.

 

2. 편하게 쓴 글과 편하게 읽히는 글은 다르다.

 

글쓰기는 나만의 것모두의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한다. 쓰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쓸 것. 나와 지인만 아는 개인정보는 빼되 독자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넣고 어휘선택을 잘할 것.

저자는 아나운서의 뉴스보도를 예로 들며 시청자의 귀에 편하게 들리는 말을 전달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언급한다.

 

자꾸 잊는다. 쓰는 사람이 편하면 읽는 사람은 불편하다는 걸.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썼는데도 읽기 편한 글을 쓰는 재주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메꿔야하는 처지라면 연습해야 한다.

 

3. 자연스런 글은 자연스럽게 얻을 수 없다.

 

저자는 좋은 글을 잘 익은 벼가 가득한 김제 평야에 비유하며 농부가 벼를 가꾸듯 글쓰기 연습을 해야 자연스런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우습게도 꾸민 듯 안 꾸민 듯자연스럽다는 화장법이 생각났다. 할 거 다했지만 티 안 나는 화장법, 꾸안꾸 메이크업!

티 안 나는 화장처럼 자연스런 글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임을 잊지 말자.

 

4. 쓸 게 없을 때는 쓰는 주체를 바꿔보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다고 한다.

일례로 저자는 한밤중에 집으로 찾아온 경찰과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그 사건에 대해 경찰의 입장에서도 서술해본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 (1952~ )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

이 작품은 16세기 말 오스만 투르크 제국 화가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장편 소설이다. 50여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장마다 말하는 주체가 다르다. 주요 등장인물과 조연뿐만 아니라 개, 나무, 시체, 금화 등 작품 속에서 사물들이 이야기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관점에서 소설을 전개한다. 말 못하는 사물들까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통에 네모난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었을 뿐인데도 한편의 시끌벅적한 입체영화를 보는 듯했다.

다양한 화자의 입장에서 쓰는 글은 이야기를 넉넉하게 만들뿐더러 대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하니 일석이조다.

 

 

여기서 언급한 방법 외에도 책에는 글 쓰는데 도움 되는 팁이 가득하다.

저자는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교정 일을 20년 이상 하다 보니 문장 쓰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없다. 교정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적도 없으니 경험도 부족해서 빈 모니터 화면이 막막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SOS를 청하듯 글쓰기 책을 찾아보지만 원칙을 강조하는 글쓰기 책에서는 당장 얻을게 안 보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김정선 작가의 글쓰기 책은 원론에 머무르지 않고 진짜 글쓰기의 영업 비밀을 전수한다.

이것이 내가 그의 책을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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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대구여행 | 기본 카테고리 2022-08-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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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의 짧은 여행이 끝나간다.

여행지는 대구.

한여름에 가장 더운 곳으로 피서 아닌 피서를 왔다사실은 피서가 아니라 공연이 목적이다.

 

 

포레스텔라가 전국 투어 중인데 내가 사는 대전에서는 공연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 투어를 하고 있다. 덕분에 연고도 없는 대구에 지난겨울에 이어 두 번째 여행을 오게 되었다. 공연장인 엑스코 앞의 호텔에 투숙했는데 호텔 손님 중 상당수가 포레스텔라 팬이다. 어젯밤에 공연보고, 아침에 근처 맛집에서 어탕수제비도 먹고, 동대구역에서 옥수수빵도 사고..... 연예산업의 나비효과가 상당하다.

지난달에는 전주에 다녀왔는데 그곳(모악당)은 음악 전문 공연장이어서인지 확실히 소리가 좋았다. 엑스코는 콘서트하기엔 안 좋은 환경이다.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난관을 이겨내는 포레스텔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응원봉에 오페라글라스까지 준비해서 즐기다보면 3시간 반이 넘는 공연이 마치 30분 만에 끝나는 것 같다. 코어팬이 많아서 표를 구하기가 어렵지만 다행히 딸아이도 팬이라 티케팅도 해주고 공연도 같이 다닌다. 모든 콘서트에 참석한다는 열성팬도 있지만 현생이 바쁜 나는 같은 컨셉일 경우 두 번 정도 관람한다.

 

다른 지역까지 가서 챙겨보는 팀은 포레스텔라 뿐이지만 대전으로 공연 오면 되도록 찾아보는 팀도 있다.

유튜브로 잘 알려진 클래식 기반 크로스오버 연주팀(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레이어스 클래식의 음악을 좋아해서 출퇴근 할 때 차안에서 듣기도 하고 공연에도 간다. 6월 공연에서는 끝나고 연주자의 사인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클래식 문외한인데도 그들의 음악은 부담 없이 편곡되어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다. 그들의 쉬운 클래식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다른 곡들도 찾아듣게 된다. 관심이 생기다보니 다음 주에 있을 브람스 공연도 예매해두었다.

 

지금은 12일의 음악충전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가는 기차 안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가끔은 이런 이벤트가 에너지를 준다.

22.08.1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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