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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최재천의 공부

최재천,안희경 저
김영사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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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솔깃할만한 제목의 이 책은 ‘2022년 올해의 책으로 뽑힌 베스트셀러다.

최재천. 생태학자, 생물학자. 서울대 교수 역임, 이화여대 석좌교수. 과학자의 서재, 개미제국 발견30권이 넘는 책의 작가. 2020년부터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유튜브도 운영 중. 서울대 동물학과를 나와 펜실베니아 주립대에서 석사를 하고 하버드 박사까지. 누가 봐도 본 투비 수재인데 자꾸 손사래를 친다. 그 땐 서울대학 가기 쉬웠고, 그 중에서도 동물학과는 최하위 과여서 재수 끝에 2지망으로 붙은 거라고. 발끝도 따라갈 수 없는 내겐 이런 모습이 한 문제 틀렸다고 우는 전교1등의 엄살처럼 보이지만 학계의 탑들이 모인 곳에서 평생을 보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천재들 속에서 계속 좌절해봤기에 교만해지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고 결국 이런 책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최재천 교수와 저널리스트 안희경의 대화문으로 이루어진 대담집이다. 제목으로 알 수 있듯 최재천 교수의 공부 이야기가 주로 나오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독자가 궁금해할만한 질문과 추임새를 넣고 최 교수의 말을 정리하는 안 작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의 본문은 기존 한국 교육의 공과에 관한 성찰로 시작된다.

비록 주입식일망정 수십 년간의 교육 덕에 우리의 의식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 결과 코로나 위기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 잘 넘겼다고 말이다. 물론 서구인들 기준으로는 정부 지침에 잘 따르는 우리가 비민주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최 교수는 이를 정부에 대한 순종이 아닌 교육을 통한 집단지성의 성장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교육,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부의 뿌리, 공부의 시간, 공부의 양분, 공부의 성장, 공부의 변화, 공부의 활력으로 나뉘는 6개의 챕터에는 각각 잠재력, 자기주도 학습, 창의력 등에 관한 얘기가 경험담과 함께 나온다.

공부의 대가가 설파하는 비법인 만큼 짧은 리뷰에 다 담아낼 수 없는 좋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분을 몇 군데 소개해 보겠다.

 

다양하게 배우면서 쌓아가고 조금은 어설프게 흔들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 관심이 가는 분야를 찾습니다. 그럴 때 저는 심도 있게 들어가도록 도움을 줍니다. 언젠가는 전반적으로 이해를 높이는, 쓸 만한 학습 성취 구조를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하는데요. 저는 교육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지금도 제가 지도하는 수업에서는 시험 대신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풀어보게 하죠. 자칫하면 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다른 분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 비해 기초가 조금 부족할 수도 잇어요. 제가 모든 걸 다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꼭 그렇게 꽉꽉 다져 넣고 확인하면서 가르쳐야 할까요?

(p.84)

 

최 교수의 수업은 토론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며 평가 또한 시험 대신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풀어보는 과정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기초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수업의 목적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르치고 주입하고 다지는 대신 자유를 주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게끔 하는 수업이다.

수업의 결과로 스스로 공부를 찾아하고 자기만의 진로를 찾은 학생들이 많아졌다니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개방적인 수업이 이상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실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방법이 적용될 곳이 어디 있을까. 입시와 연관이 덜한 유치원, 초등학교. 그리고 대입이 마무리된 대학교육 이상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이상적인 교육에 앞서 사회적 안전망이 만들어져서 성적이 미래를 좌우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안 작가의 첨언처럼 대학입시가 미래를 결정하고 패자부활전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요원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독서는 일입니다. 빡세게 하는 겁니다. (p.144)

유튜브에서도 여러 번 듣던 말이다.

기획독서를 강조한다. 쉬운 책으로 시간낭비 하지 말고 어려워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독서량을 늘려야한다고. 또한 평생 교육의 시대에는 젊은이 뿐 아니라 장년층 이후에게도 독서가 필수라고 설파한다.

그리고 궁금했던 최재천의 글쓰기.

수십 권의 책을 쓰고 교과서에도 여러 번 글이 실린 그의 글쓰기 비법은

일단 미리 쓴다. 계속 검토하면서 물 흐르듯이 넘어갈 때까지 손본다.’였다.

1주일 전에 미리 써놓고 끊임없이 문장부호와 조사를 고치고, 문단을 바꿔가며 글을 다듬고.

이게 비법인가 싶을 정도로 당연한 얘기지만 딴죽 걸 수 없는 모범 답안이다.  

본래 잘 쓰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쓰는 건 쉽지 않을까 했는데 세상에 저절로 얻는 건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다윈의 이론을 핵심만 말하라 하면 상대성이에요. 다윈이 이야기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성입니다.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적응을 잘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설명해냈습니다.

그런데, 적자생존이란 말이 부각되면서 진화에 대한 오해가 생겼습니다.

(p.166)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다윈 진화론의 핵심처럼 여겨지는 단어이다. 최상급 표현대로 가장 잘 적응한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걸까.

그는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인해 진화에 대한 오해가 생겼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자연계에서는 가장 적응을 잘한 하나만 살아남고 다 죽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시기라면 모두 생존할 수 있고, 힘든 시기라도 가장 적응하지 못한 하나만 도태되므로 1등만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최재천 교수의 이야기 중에는 자신이 경험한 미국 명문대의 엘리트 수업을 이상적인 교육의 기준으로 삼고 독자를 설득하거나,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해 등록금 인하에 반대하고, 기부금 입학에 찬성하는 등 찬반이 엇갈릴만한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공부하여 얻은 바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애쓰거나,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구체적인 개선방법까지 제시하는 모습에서는 평생 교단에 서온 교육자의 고뇌가 느껴진다.

한번이라도 공부로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모두 부정하기보다 배울 점이 있다면 하나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일. 그 또한 공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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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17        
일간 이슬아 수필집 | 기본 카테고리 2023-03-2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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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저
헤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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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를 만난 건 유튜브의 글쓰기 강연을 통해서다.

살짝 어눌하지만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말하는 92년생의 작가가 신기했다. 글 직거래로 인기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글 값을 선불로 월 1만원씩 받고, 매일매일 갓 쓴 글 한편을 소비자(?)에게 이메일로 배달한다. 20183월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단다. 글을 팔아 학자금 융자도 갚고 월세도 내고. 검색해보니 공중파에 나와 강연도 하고 예능에서는 일상생활도 보여준다. 완전 셀럽이다.

 

어떻게 매일 자신의 생각을 퍼 올리고 글로 빚어내는지. 글샘이 바닥나지는 않는지.

고작 일주일에 한두 번 남의 책을 읽고 소감을 정리하는 블로그의 리뷰쓰기도 쉬운 적이 없었는데 생업이 되어버린 글노동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궁금했다.

작가의 마감시간은 평일 밤 12. 9시부터 써야지, 써야지 하며 스트레스 받다가 마감 1시간 전부터 속도를 내고, 자정 몇 분 전에 온점을 찍고. 따끈한 글을 발송한다. 그런데 그렇게 쫓기며 쓴 글이 다 좋단다.

그녀는 어떤 글을 쓰는 걸까?

 

일간 이슬아 수필집20183월부터 9월까지 메일로 발송한 글을 모은 수필집이다.

독자에게 보낸 글 85편과 연재에 관한 몇 편의 글들, 그리고 친구들의 추천사. 모두 합해 거의 백편, 500페이지가 훨씬 넘는 벽돌책이다. 사소한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듯 가벼운 이야기도 쌓이다 보니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 연애, 섹스, 아르바이트, 여행, 가족, 친구 등등에 관한 아-주 자세한 관찰기들. 스스로를 살피고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만 쓸 수 있는 작가의 글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다.

대량 생산하고도 퀄리티가 보장되는 필력도 부럽지만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당당함이 더욱 놀라웠다.

자신이 잉태되던 순간의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를 몇 편에 걸쳐 쓰기도 한다.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이렇게 길고도 자세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한다’, ‘그립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새침한 글에서 진한 정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부모님 이야기. 작가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단어 대신 복희, 웅이 라는 부모님의 이름을 직접 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부모를 이해하고 싶어서였을까.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현생에 치여 여러 가지 노동을 해야 했던 아버지 웅이, 국어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한 환경 때문에 역시나 수많은 고생을 한 어머니, 복희. 그들은 열심히 살았음에도 세상의 부조리 때문에 중년이 되어서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글엔 애틋한 가족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작가가 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나를 놀라게 한건 역시 남자친구얘기와 섹스에 관한 발언들이다. 스무 살부터 집을 나와 자취하며 끊임없이 연애하고, 성인용품점에서 라지 사이즈 콘돔을 사고, 임신이 두려워 루프시술을 하고. 미혼여성에겐 금기로 여겨지는 일들을 친구와 떡볶이 사먹은 얘기처럼 쓴다. 그것도 아주 유머러스하게.

충격적이다. 나는 안 되겠다. 역시나 꼰대인걸.

일제 강점기 신여성을 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이 이랬을까. 발목이 보이는 통치마를 입고 남성들과 어울리는 여성에게 당시의 기성세대는 새로운 가치관을 이해하기보다 유교의 잣대를 들이대며 말세라고 비난을 퍼붓곤 했다는데 지금 작가를 보는 나의 불편함도 그와 다르지 않을듯하다. 하지만 어쩌랴. 머리와 마음이 각각인 것을. 작가가 표현하는 이 정도의 수위가 솔직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솔직한 글은 한 줄도 못 쓸 것 같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글을 셀프로 연재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슬아슬한 일이지만 가능한 한 오래오래 계속하고 싶다. 누가 나를 고용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니 다행스럽다.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몸도 마음도 튼튼하고 싶다. 튼튼하고 싶어서 매일 달리기를 하고 물구나무를 서고 뭔가를 읽고 뭐라도 쓴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날마다 용기를 낸다.

(p.526)

 

어떤 날에는 반응이 뜨겁고 어떤 날에는 차갑다. 재미없다는 피드백이 곧바로 날아오기도 한다. 구독자 중 일부는 내 글의 오류와 문제점들을 꼼꼼히 지적한다. 나에게 필요한 비평들은 잘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글을 쓸 때 곰곰이 떠올리곤 한다. 같은 실수를 또 하고 싶지 않아서.

한편 글과 상관없는 말들도 메일함에 쌓인다. 외모에 관한 평가나 브라자를 안 하고 다닌다는 점에 관한 조롱들이다. 그런 문장들은 금방 잊어버린다. 하찮은 이야기가 나를 함부로 바꿔놔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p.528)

 

내가 20대 때 작가를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책을 좋아한다는 걸 빼고는 닮은 점이 없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하고 동경했을 것이다. 작가의 모든 면을 이해하긴 어려워도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 생각이 깊고 자존감 넘치는 친구를 싫어할 수는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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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 기본 카테고리 2023-03-2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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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백상경제연구원 저
한빛비즈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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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입문의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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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붐이 일던 2018년에 출간된 책이다. 출간 당시에는 모르고 있다가 2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 3권을 모두 구매했다. 신나게 밑줄 그으며 읽고 밑줄 친 부분을 필사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 리뷰를 남기려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읽었다.

 

이 책은 크게 생존과 공존, 대중과 문화, 경제와 세계, 철학과 지혜라는 4개의 대목차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의 대목차는 3개씩의 소목차로 나뉘고 소목차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순서로 다섯 꼭지씩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문화창작부 교수, 정신과 전문의, 한문학자, 소설가, 영화평론가, 경제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이다 보니 전문성은 있지만 할당된 분량이 적어서인지 독자가 흥미를 가질만한 정도에서 끝난다. 인문학 입문의 마중물. 이 책의 역할은 그 정도가 아닐까.

 

문학, 역사, 철학, 신학, 음악, 영화, 미술, 경제, 과학 등을 주제로 하는 여러 분야의 이야기가 실려있어 읽는 이는 각자의 흥미에 맞는 부분을 먼저 골라 읽을 수 있다. 그 중 이번 리뷰에서는 조선의 대중문화편에 수록된 <어우야담><도문대작>이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보겠다.

 

<어우야담>

<어우야담>은 공자왈, 맹자왈하는 유교서적이 대세이던 조선시대에 인어, 귀신, , () 등의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이다. 현세에 집중하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조선의 사대부는 사실이 아닌 것을 기록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도 튀는 인재는 있는 법. <어우야담>을 지은 유몽인(1559~1623)이 그런 존재였다. 그는 선조 시대의 수재로 학문과 문장에서 모두 뛰어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내정을 살피고, 명에 세 번이나 사신으로 가는 등 외교업무도 맡았다고 한다.

전쟁 동안 직접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명의 문물을 접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명에서 들어온 소화집 <절영삼소>등을 통해 조선에서도 통속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소화집은 음담패설이 많고, <금병매><수호지>같은 명나라 유명 소설에는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이 많아서 조선 문인들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유몽인은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전통적인 글쓰기를 거부하고 <어우야담>을 집필했다. 임진왜란이라는 대전란을 겪고 난 후 정치적 혼란과 당쟁, 그리고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보면서 현실을 풍자하고 싶었을 것이다.

(p.243~244)

 

<어우야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이며 조선 중기 대중문화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막상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는 시대와 화해할 수 없었나 보다. 인조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으니 말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을 겪고도 변화하지 않는 지배층으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고가 더욱 소중하고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도문대작>

조선의 자유로운 영혼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 허균.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지만 이번에 소개할 책은 <도문대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은 허균이 유배지에서 지난날 먹던 산해진미를 생각하며 쓴 책으로 온갖 맛있는 음식에 대한 품평이 실려 있다. ‘도문대작(堵門大嚼)’라는 제목도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시다라는 의미로 유배지에서 산해진미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하며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의 식도락 책이라니. 특이하다. 선비의 글들은 한술 보리밥과 나물반찬이 어쩌고 하는 청빈한 삶을 추앙하는 내용이 다수가 아니던가.

허균은 당시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났고, 처가도 부유했으며, 임진왜란을 겪으며 팔도의 음식을 다 먹어볼 기회가 있었고, 중국인들과의 교류도 있어서 중국 요리에 대한 식견도 갖춘 인물이라고 한다. 맛 칼럼리스트가 되기 최적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런 조건의 선비가 허균 뿐이었을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대부들도 허균과 비슷한 배경을 지녔고 그들 또한 온갖 산해진미를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문대작>같은 책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음식에 관한 다양한 경험 덕분이라기보다 당시의 선비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게 더 타당한 설명이 될 듯하다. 이것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다라는 저술의도에서도 드러난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홍길동전>이 그랬듯이 이 책 또한 시대와 타협하지 못하는 자신의 생각을 음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몽인과 허균.

최근 한국사책을 읽으며 경직된 조선시대에 답답함을 느껴서인지 조선의 이단아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

 

빡빡한 삶에 지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자기성찰과 치유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동시에 인문학에 대한 지적 갈등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근로시간 단축을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작용했다.

(p.7)

 

프롤로그에서 밝히는 기획의도 중 일부이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정책이 화제가 되는 지금, ‘근로시간 단축을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문구가 서글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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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2 | 기본 카테고리 2023-03-1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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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민의 한국사 2

한국역사연구회 저
돌베개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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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2근현대편으로 개항기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개항기

한국이 근대국가를 수립하려는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에 병탄되는 1910년까지.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외세를 배격하지만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국정기조가 변화한다. 일본, ,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열강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은 근대적 세계질서에 편입되었다. 개화세력은 갑오개혁을 추진해 한국사회의 모습을 근대적으로 변모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독립협회의 근대국가 수립 시도도 고종과 충돌하며 좌절되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내정을 장악했고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투쟁이 있었으나, 1910년 한국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식민지기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부터 해방을 맞이한 1945년까지.

한국은 역사성 처음으로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억압, 차별, 수탈하고 민족성 말살정책을 폈으며, 경제는 식민자본주의로 일본에 예속되어 불평등이 심해졌다.

이에 한국인들은 비밀결사운동, 독립군 기지 건설운동, 사회주의 운동, 무장투쟁 등 다양한 노선과 방식으로 저항했고 이 과정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민족의식이 강화되었다.

식민지기에는 외래의 기술, 학문, 사상 등이 도입되고 확산되며 사회가 근대적으로 변화하였고 농민, 노동자, 학생, 여성 등의 사회 세력이 성장하며 대중운동을 펼쳤다.

 

현대

1945년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는 동시대사.

해방 이후 미소 분할 점령으로 남북한이 분단되었고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3년 만에 휴전했으나 남북의 대치상태는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는 1950년대 원조경제, 1960~70년대 개발독재를 거치며 1990년대 중반까지 고도성장을 이뤘으나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후 외환위기는 빠르게 극복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력이 집중되었고 양극화가 일어났다.

4월 혁명, 3선 개헌 반대운동으로 이어진 1960년대 민주화 운동은 유신 반대운동, 재야민주화운동 등의 197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고,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성장을 예고했으며, 19876월 항쟁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고 이후 각종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촛불집회는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적폐 청산요구 시위를 거치며 촛불혁명으로 승화됐다.

 

개항기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는 약 150년의 역사가 500여 페이지에 정리된 한국의 근현대사. 현대로 올수록 동시대의 문제가 등장하여 역사라기보다 시사(時事)처럼 느껴진다.

이번 리뷰에서는 아직 판단이 어려운 현대사보다 근대사 중에서 전부터 궁금했던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고종은 그저 불운한 군주였을까?

고종 집권기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세력다툼으로 기억된다. 책이건 드라마건 그렇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고, 왕은 둘 사이에서 시달리며 국내외 문제에 대처해야하는 안쓰러운 존재였다. 선한 의지는 있으되 상황이 따라주지 않은 인물. 구한말 민생을 파탄에 빠뜨린 민씨 일가나 을사오적 등의 매국노가 비난받는데 비해 조선의 최고 책임자 고종은 민생 파탄과 국권 상실의 직접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고종은 피해자였을까? 그에게 국가와 백성은 어떤 의미였을까?

 

황제는 아관파천으로 실추된 군주권을 강화하려 했고, 서재필은 민중 계몽을 통해 근대 국민국가 수립을 지향했으며, 정동구락부 세력은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해 내정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18982월 이후 독립협회가 민권운동과 참정권 획득운동을 전개해가는 동안 황제권력과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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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괴가 주요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자, 황제와 보수파 관료들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5월 서재필을 중추원 고문에서 해임하고 미국으로 추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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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는 국정개혁안으로 헌의 6를 제시하고 참석한 정부 고관들에게 이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헌의 6조는 표면적으로는 황제 중심의 정치체제를 구상했으나 이것은 황제가 희망한 무제한적 군권 행사를 의미하지 않았다. 1조 외에 다른 조항들은 황제권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강력한 전제 황권을 추구한 황제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던 것이다.

...

고종 황제는 1223일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만민공동회를 진압하고 독립협회를 해산시켰다. 이로써 독립협회의 근대 국민국가 수립운동은 좌절됐다.

(p.65~68)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 고종은 대한국국제를 반포하며 황제권을 절대화했다.

협회 해산 이후 황권에 맞설만한 세력이 없자 고종은 구본신참의 명분으로 옛 제도를 부활시켰고, 국가의 자주독립과 군주의 안위를 위해 경찰력과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개항 이후 고종은 외국의 여러 외교관, 선교사들과 국내 개화 인사들을 통해 구미 근대국가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여러 인사들이 황제를 알현하고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정보를 전달했다. 고종은 전기, 전차 등을 받아들였고, 복식을 바꾸고 커피를 즐기는 등 외래 문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는 구미 국가의 겉모습만을 보았을 뿐 근대국가 대한 이해가 없었다. 서구 열강의 정치체제가 입헌군주제나 공화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독립협회의 입헌군주제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전제군주제를 주장하는 모습에서 고종의 한계가 잘 드러난다. 절대군주국가에서 군주의 역량은 국가와 국민의 운명과 무관할 수 없다. 조선은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근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고 주권마저 지켜낼 수 없었다.

 

둘째, 친일파도 할 말이 있다?

사회진화론은 19세기 중엽 허버트 스펜서(1820~1929)가 생물학의 진화론을 사회현상에 적용한 이론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정의가 아닌 힘이라 주장하므로 당시의 제국주의 국제질서를 잘 설명해준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구의 문물과 함께 이 이론을 받아들이며 조선이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힘을 길러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일협력활동은 개인의 욕망문제만은 아니었다. 친일협력을 정당화하는 다양한 논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친일협력을 정당화한 핵심논거는 민족의 주체성에 대한 불신이었다. 한민족은 독립국가를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충실한 제국 신민이 되어 현실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 친일협력 세력인 윤치호에 의하면 물지 못하면, 짖지도 말아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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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통치가 전개된 1920년대에는 이런 논리가 더 구체화됐다. 가망 없는 독립을 주장하기보다는 일본제국 신민의 권리를 혹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표적인 예가 1920년대 최대 친일단체였던 국민협회가 추진한 참정권 청원운동이었다.

...

친일 세력은 다양한 논리로 친일활동을 정당화했지만, 결국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또 다른 지배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친일 논리의 귀결점이었다.

(p.201~203)

 

서구의 제국주의 논리인 사회진화론이 약자의 입장에서 무비판적으로 해석되었을 때 패배의식으로 흘러 친일파의 주장에 이용된다는 설명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동안 친일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판단만을 했을 뿐 그들의 논리를 살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그런데 정말 사회진화론 때문에 그들이 친일을 했을까? 사회진화론은 합리화도구일 뿐 친일의 본질은 지배층이 되고자하는 그들의 욕망이었다. 이것은 이 시대 뿐 아니라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적국의 지배층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없었다면 친일파가 생기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친일파는 어떤 상황에서도 등장했을 것이다. 사회진화론이 아닌 다른 그럴듯한 이론을 이용해서라도.

한편 친일파의 주장 중에는 언뜻 보기에 조선인에게 이롭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참정권 청원운동은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을 주자는 주장인데 당시 차별받는 평범한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교육, 경제활동 등의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받는 게 멀어만 보이는 무장독립투쟁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그 시대를 살았다면 내 행동이 친일인 줄도 모르고 포섭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진다.

 

한국사 근현대사 편을 만날 때는 심호흡이 필요하다.

고만고만한 이름의 복잡한 사건이 많고 외울 연도가 빼곡하다는 점도 힘들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패배와 굴욕의 역사, 그리고 그 흑역사가 지금의 우리와 맞닿아있기에 중요한 만큼 더 외면하고 싶어진다. 끊이지 않는 민중의 저항,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조차 자기 위안처럼 보여 안타깝다. 그래도 이 책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국가주의적 해석으로 미화하거나 사건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덧붙여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점이 좋았다.

한 번에 짧은 리뷰로 정리하기엔 방대한 분량이다. 두고두고 찾아 읽으며 역사 지침서로 활용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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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1 | 기본 카테고리 2023-03-1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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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민의 한국사 1

한국역사연구회 저
돌베개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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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에서 한국사 통사를 펴냈다.

시민의 한국사1, 2. 70여명의 연구진이 10년에 걸쳐 연구하고 집필한 이 책은 1전근대편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2근현대편에서는 개항기부터 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 이야기할 1전근대편은 선사, 고대, 통일신라·발해, 고려, 조선의 7편으로 나뉘어 있고, 각 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순서로 서술된다.

 

시대별 특징을 간략히 요약해보았다.

 

선사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노동과 분배가 공동으로 이루어진 평등한 사회였지만 굶주림과 결핍에 노출된 불안정한 형태였다.

 

고대

고조선부터 삼국시대까지.

한반도뿐 아니라 만주를 무대로 역사가 전개되어 중원, 일본, 몽골초원, 중앙아시아의 나라와도 교섭하였다.

 

통일신라·발해

신라의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시대, 발해의 건국과 멸망까지.

7세기 신라가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대동강 이남을 차지한 이후 1세기 정도 정치, 경제, 문화의 번영이 이어졌다. 그러나 자연재해로 농민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지배체제가 약화되어 지방 호족이 득세하는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7세기 말 만주 지역에서는 고구려 유민이 발해를 세워 2세기 가량 번성하다가 거란족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고려

10세기 초 고려 건국부터 14세기 말 조선 건국 전까지.

과거제를 도입하는 등 유교의 정치이념에 따라 관료제를 강화했다. 11세기 이후 내외 정세의 안정으로 번영하였으며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 외부 문화를 수용하는데 개방적이었다. 12세기 이후 사회모순이 드러났고 국제정세도 불안정해져 무신정권기와 몽골의 침략을 겪었다. 정치, 경제의 폐단을 개혁하려면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야했는데, 원말명초 국제정세가 변화하는 동안 성리학을 공부한 신흥유신이 개혁을 추진했다.

 

조선

조선이 건국된 14세기 말부터 근대 국가가 성립되기 전인 19세기 후반까지.

고려 말의 신흥 세력은 조선왕조를 개창하고 중앙집권체제의 강화, 관료제 지배의 확대, 성리학 질서의 확산을 목표로 국가체제를 개편했다. 이를 통해 장기간 안정을 유지했지만 16세기 이후 사림이 정권을 장악하고 붕당대립이 거듭되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이후 붕당 대립은 왕권강화와 탕평책으로 완화됐지만 19세기 세도정권의 출현으로 지배질서에 많은 폐단이 있었다.

농업생산성 증가와 상업, 수공업의 발달로 신분제가 변화되었고 사회개혁과 실학연구, 민중사상이 전파되어 기존의 지배질서가 힘을 잃어갔다.

 

원체 방대한 분량이라 요점을 짚어내기 쉽지 않았지만 기억하고 싶은 두 가지를 소개하려한다.

 

먼저, 경직된 세계관으로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

 

발해는 요가 요동에 진출한 이래로 당사자인 요와는 한 차례밖에 교섭하지 않았다. 반면 후량 및 후당에는 9번이나 사신을 파견할 정도로 중국 왕조와 친선관계를 중시했다. 그러나 이들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자 신라 등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이조차 실패했다. 결국 발해는 중국 중심의 정세 파악에 치우쳐서 요의 등장에 따른 국제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

(p.210)

 

발해의 멸망은 한민족의 활동 공간이 한반도로 축소되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기억된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발해가 중국 중심의 사고에 갇혀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우리 역사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발전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 국제 정세를 무시하는 중국 중심의 외교로 인해 나라가 위태로웠던 사건은 발해 멸망 외에도 역사를 통해 여러 번 찾아볼 수 있다.

 

16363월 후금의 사신은 후금의 한(), 즉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자는 내용의 문서를 가져왔다. 명이 엄연히 존재하는 속에서 조선은 후금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문서접수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양국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지만 조선의 바람과 관계없이 홍타이지는 전쟁을 일으켰다.

(p.437)

 

백성의 안위보다 명에 대한 의리가 더 중요했던 조선 정부는 병자호란이라는 최악의 외교참사를 초래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어이없는 사건이지만 고정관념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청이 백 년이 넘도록 번영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청과 청문물을 분리하자는 논리가 등장하면서, 북학론이 탄생했다. 청문물을 중화의 남은 문물로 바꿔 이해하게 되면 청의 장구한 번영을 청이 훔쳐서 지니고 있는 중화문물에서 기인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동시에 그것을 도입할 필요성까지 발생하기 때문이다.

(p.503)

 

조선의 지식인들은 망한지 백 년이 넘는 명에 집착하여 청의 문물을 그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원래는 한족의 것이었다고 합리화하고 나서야 받아들였다. 게다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사고방식은 그대로여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 어려웠다. 정조 사후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의 발전이 지체되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세도정치 이전에도 중화중심사상으로 인해 사회 개혁에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 새롭게 다가왔다.

 

다음으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신라의 골품제에 대해 알게 된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왕실의 신성화를 배경으로 진평왕 왕실은 기존의 골족(骨族)과 차별화해 성골을 표방했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의 직계 후손이 성골에 해당하며, 나머지 골족은 진골(眞骨)이 됐다. 그러나 진평왕은 아들이 없어 딸인 선덕, 여자 조카인 진덕이 왕위를 이었다. 그리고 성골은 사라지고 태종 무열왕대부터 진골이 즉위했다.

(p.114)

 

신라의 신분제가 언급될 때마다 성골, 진골 얘기가 나오지만 그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는 자료가 없어 모호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 내용대로라면 신라 왕 중 성골 출신은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천년 동안 딱 세 사람 뿐이다. 워낙 단기간에 있던 제도이고 해당하는 왕도 적어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렇게 열심히 성골, 진골 나누고 외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또한 여왕이 등장할 수 있었던 원인도 성골이라는 명분보다 강력한 왕권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의 한국사는 한국역사연구회가 1992한국역사를 펴낸 후 30년 만에 출간한 책이다. 최신 연구를 반영하여 한국사 전체를 서술했다고 하는데 읽기 전엔 솔직히 의문스러웠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획기적인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역사적 사실이 변한 게 없는데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한국역사를 읽지 않았으니 이 책을 일독(一讀)한 지금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교에서 배운 역사나 이후 다른 책에서 본 것, 드라마로 접하던 상식들과의 차이점은 꽤 보인다. 게다가 이 책은 사건의 나열에 그치지 않으며 주관적 해석보다 설명에 치중하여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시민의 한국사2근현대편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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