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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52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1-3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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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났어도 내 새끼, 못났어도 내 새끼 아니요? 미운 자식 떡 한 쪼가리 더 준다는 옛말도 있는디, 어찌 부모 맴이 그 지경으로 모지락시럽게 자식허고 외어앉을 수가 있다요? 참말로 징상시럽소! 행여 꿈자리 근처에라도 얼씬거릴까 무섭게 이녁 화상이 징상시럽소, 징상시러! 오날 죽을지 니알 죽을지 몰르는 병골 자식한티 애비 노릇 헌답시고 빈말이라도 따땃헌 소리 한 마디 실무시 근네면 한 재산 뚝 떨어져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 뿔 성불르요? 몇 마디 말품 조깨 파는 디도 억만금이 든다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세상인디, 이녁은 세상천지 그 쌔고도 쌘 보들보들헌 소리들 죄다 놔두고 해필이면 왜 뿔 달리고 까시 돋친 소리로만 쏙쏙 골라서 내뱉소? 사위시런 소리로 우리 부용이 가심팍에 꽝꽝 대못을 박어야만 이녁 속창아리가 똑 후련허겄소?”

 

  하지만 야마니시에게는 천만의 말씀이었다. 늙은 마누라쟁이가 당장 추녀 끝에 목을 매단들 왼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나가 그놈 가심팍에 대못을 박었다고? 나 야마니시가 이 많은 나이 줏어먹드락 하루가 멀다 허고 허구한 날 이내 앙가심 한복판에 쿵덕쿵덕 말목을 박어댄 놈이 누군디?”

 

  야마니시는 대청마루 한가운데 책상다리하고 앉아 끌 같은 눈초리를 연장으로 사용해서 마누라 얼굴 요소요소에 옴폭옴폭 확을 파기 시작했다.

 

  이날입때까장 지지리도 이내 애간장 말린 그놈 소행머리만 생각헐라치면 시방도 턱살이 덜덜 떨리고 이가 뽁뽁 갈리는 사람이여! 동양 구신이든 서양 구신이든 상관없으니깨 아무 구신이나 싸게싸게 나타나서 그놈 목심 달칵 채가시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사 지내는 사람이란 말이여, 이 할망구야! 자고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혔는디, 뇌짐 소식 듣고 깜짝 반가운 짐에 나가 왜 빨개벗고 덩실덩실 어깨춤인들 못 추겄냐? 어째피 환갑진갑 전에 사람 되기 영 글러먹은 말자들은 떡잎 시절에 우듬지 확 뿐질르고 뿌렁구 불끈 잡어 뽑아서 말짱 다 씨를 말려 뿌러야 되는 법이여, 이 할망구야!”

 

  너무도 기가 꽉 막힌 나머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관촌댁이 최후 수단 삼아 마침내 어기찬 통곡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젊어 한때 물색 곱던 녹의홍상(綠衣紅裳) 시절 얘기지, 이미 쪼그랑박 다 된 할망구 주제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비칠, 천하의 노랑이 영감을 상대로 새퉁빠지게 그 따위 녹슨 무기 들이댄들 별무신통이었다.

 

  재물이 흔전만전 넘쳐난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그렇게 안 쓰고 안 헐고 아껴만 두었다가 저승 갈 때 걸머지고 갈 작정이냐고, 자식이 원수 아니라 재물이 곧 원수요, 그 원수 노상 껴안고 지내는 영감이 바로 원수 중의 원수라고, 활인(活人)하는 데 써야 재물도 생색나는 법인데 그 재물 잔뜩 쌓아 두고 살인 저지른다면 장차 그 업화를 무슨 수로 다 감당하려고 그러느냐고, 요런 때 산더미 같은 재물 한 귀퉁이 눈 질끈 감고 살짝 헐어서 죽어가는 자식 하나 살려내기만 한다면 이녁 극락왕생은 떼어 놓은 당상이나 매일반 아니겠느냐고 끈끈한 목소리로 읍소하며 매달리는 늙정이 마누라를 야마니시는 끝내 야멸치게 뿌리치고 말았다.

 

  ,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차라리 이 내 몸이 쎗바닥 작신 깨물고 칵 죽어 뿔고 말지 그 빌어먹을 뇌짐 곤치는 용도로는 내 돈 노린전 한 닢도 축낼 수 없지. , 없다마다! 나한티 상의 한마디 없이 지놈이 자량으로 업고 들어온 뇌짐이니깨 산신령 전에 축수허고 옥황상제 전에 백일치성 드려서 천 년 묵은 동자삼 뿌렁구 읃어 먹고 낫든가 말든가 지놈 자량껏 알어서 몸보신허라고 그냥 내싸둬 뿌러!”

 

  밤이 꽤 이슥한 시각이었다. 울며불며 야료 부리는 마누라를 앞으로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을 작정인 듯이 마치 상추밭에 똥 싼 강아지 잡도리하는 본새로 호되게 윽박질러 안채로 쫓아 보내고 나서 야마니시는 그들먹한 몸뚱이를 모기장 속 이부자리 위에 질펀히 뉘었다. 몹시 불편한 심기 달래느라 그는 석쇠 위 자반고등어 뒤집듯 연방 제 몸뚱이를 좌로 뒤치락거리고 우로 뒤치락거리면서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옘병헐 놈에 세상이 장차 어느 대목까장 폭삭 망조가 들어 뿔라고 요 모냥 요 지경으로 뒤숭숭허고 어지러운지, 참말로 심란헌 노릇이구만! 그나저나 참말로 꺼억정이구만!”

 

  입으로 내뿜는 세찬 바람에 놀란 모기장 베가 출렁출렁 경기 일으킬 만큼 야마니시는 대짜배기 장탄식을 뽑았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거금 암만이 삼베 바지에 방귀 새듯 노점 고치는 용처로 빠져나갈 염려를 틀어막는 데는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질겁이야 하고 허둥지둥 물러갔으니 늙정이 마누라는 앞으로 한동안 돈타령을 사랑채 신방돌 근처에 올려놓을 엄두도 못 낼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처지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마누라의 자발없는 입에서 그놈의 돈타령이 또다시 흘러나올 게 뻔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또 하나의 심각한 골칫거리는 장차 집안에 틀림없이 등장하게 될 인쥐의 존재였다. 잘난 자식 퍼지른 어미랍시고 그 늙은 인쥐가 보나마나 제 자식 살려내려는 일편단심으로 풀 방구리 속 생쥐 드나들듯 영감 몰래 밤이면 밤마다 고방 출입 일삼으면서 솔래솔래 적잖은 재물을 밖으로 물어 낼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림없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

 

  화등잔같이 더욱더 눈에 불을 켜고 자잘한 바늘쌈, 커다란 쌀섬서껀 들며나는 재물들 모든 동태를 철저히 감찰하지 않으면 장차 큰일 나겠다며 야마니시는 연방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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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51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1-2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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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니시는 마치 햇볕 다냥한 마당에 쳐 놓은 빨랫줄에서 잘 말린 옷가지처럼 새물내 폴폴 풍기는 자신의 일본식 새 이름에 크나큰 만족감과 자긍심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먼젓번 것 여덟 자에서 요번 것 일곱 자로 창씨명이 한 글자 졸아드는 바람에 약간의 아쉬움은 없잖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요시 메이바이보다는 야마니시 아끼라 쪽이 최소한 두어 뼘 정도는 더 윗길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산서를 뜻하는 야마니시로 창씨함으로써 마치 짓고땡 노름에서 산서면 땅덩이가 몽땅 걸린 어마어마한 판을 통쾌하게 이긴 끝에 마침내 한 고을 전부를 통째로 따먹은 기분이었다. 온갖 잡상스러운 주둥이들이 부일입네 친일입네 하고 함부로 떠들어 대며 별의별 입방아를 다 찧고 까불었지만, 이미 단단히 작정한 바 있어 기어코 황우고집으로 끝마친 창씨개명이었다. 그토록 무리해서 얻은 일본식 이름인데, 감히 천황 폐하 성은을 면사무소 호적부 한구석에 처박아둔 채 거들떠도 안 보는 배은망덕 행위로 그 좋고 또 좋은 소오시가이메이에 허옇게 곰이 피고 쉬가 슬게끔 방치한다는 건 후떼이센징 아니면 히고꾸밍들이나 저지를 어리석은 짓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춘풍이를 조선 이름으로 부르든 되놈 이름으로 부르든 그것은 당최 야마니시가 괘념할 바 아니었다. 자기 혼자만이라도 하루가제라는 새 이름으로 춘풍이를 힘차게 불러줌으로써 반편짜리 머슴 놈에게도 천황 폐하의 성은을 십시일반으로 적선하는 것이 지각 있는 주인으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루가제, 이 기사마야!”

 

  춘풍이 본인은 돌절구가 무쇠 절구로 변하듯 하루아침에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제 이름 때문에 주인을 상대로 끙짜놓거나 시비 거는 법 일절 없이 그저 남의 일인 양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조카 옷을 아자비 몸에 억지로 입혀 놓은 듯이 그 이름으로 불릴 적마다 잠깐씩 어리둥절한 낯꽃을 지을 따름이었다.

 

  , 하루가제…….”

 

  몹시 굼뜬 반응이 마당을 건너왔다. 놈의 느리광이 걸음이 사랑채 지대 위로 올라설 때까지 야마니시는 그새를 못 참고 대청마루를 향해 쭈르르 마중을 나갔다.

 

  큰되린님인가 지랄님인가 허는 그놈 방문 앞에다 당장 굵은 왕소곰 한 박적 쫘악 찌클고 나서 철통같이 금줄을 쳐 놓거라!”

 

  , 금줄…….”

 

  심지를 한껏 돋운 장명등의 노르께한 불빛을 금가루처럼 흠뻑 뒤집어쓴 채 천치의 웃음을 히죽이 흘리는 춘풍이놈 너부데데한 낯짝이 얼핏 야마니시 눈에 들어왔다.

 

  , 저런 단매에 물고를 내뿔 놈이 훨훨 널러 댕기는 참새 붕알이라도 봤는가! 네 이놈, 뭣 땜시 자꼬만 실떡벌떡 웃고 자빠졌냐? 하루가제 기사마야, 싸게 가서 팔뚝만침 굵은 산내끼(새끼줄) 배배 꽈서 큰되린님 방문 앞에다 삥삥 둘러감시나 금줄 안 치고 뭣허고 자빠졌냐!”

 

  , 산내끼…….”

 

  춘풍이는 재차 미음같이 희멀건 웃음을 흘리려다 말고 열린 장지문 틈새로 빠끔히 얼굴 내미는 관촌댁의 살쾡이 같은 눈초리에 부딪히자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니알 새복부텀 뇌짐 구신은 금줄 너머로 한 발짝도 얼씬 못 허는지 알거라! 만약에 사랑채 마당에 그놈 그림자 끝자락이라도 빛감허는 날이면 이놈에 집구석은 지둥뿌리 한 개도 못 남어날 지 알거라!”

 

  어느새 칠푼이 머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야마니시는 안채 건넌방에 산송장 다 되어 뻐드러져 있을 노점병자한테 득달같이 달려가 귓구멍에 정통으로 꽂히라고 우조풍(羽調風) 고함을 사나운 짐승 떼처럼 마구 사랑채 마당에 풀어 놓았다.

 

  아무래도 심상찮아 뵈던 작금의 거조로 미루어 큰아들 놈이 걸려 있을 질환에 대해 웬만큼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늙정이 마누라 입을 통해 그 병이 노점으로 판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덜컥 무섬증부터 앞서는 것이었다. 땅위에서 사람 씨를 말린다는 호열자 버금가리만큼 무섭고 장질부사보다 훨씬 더 고약한 돌림병이 다름 아닌 노점인 줄 야마니시는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큰아들 놈 서패(허파)를 아귀아귀 다 파먹은 연후에 노점 구더기들이 그놈 한 몸뚱이만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며 감히 사랑채까지 넘보려 떼거리 지어 몰려올 것만 같았다. 수챗구멍 개숫물에 몸집 잔뜩 부풀린 밥알처럼 오동통 살이 오른 노점 구더기들이 허옇게 무리를 지은 채 당장이라도 안채를 출발해서 마당을 구물구물 기어 사랑채로 들이닥칠 성만 싶었다.

 

  고슴도치란 놈도 즈그 새끼 터럭은 비단결이라고 벅벅 우긴다든디, 황차 인피 뒤집어쓴 인간으로 어찌 그리 참혹헌 언사를 입초시에 올릴 수가 있다요? 이녁은 참말로 하눌 밑에 둘도 없을 독종이요, 독종!”

 

  관촌댁은 두 눈에 쌍불 켠 채 이판사판 각단을 내고 말 작정으로 물불 안 가리고 영감한테 검질기게 들러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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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50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1-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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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잠자리에 들지 못한 날짐승들이 숲 속에서 수상한 인기척의 동선을 따라 차례로 우짖으며 날갯죽지를 퍼덕여 댔다. 편안한 잠을 훼방당한 날짐승들의 항변에 일리가 있다 생각하며 부용은 새 떼의 동요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본디 모습으로 숲이 다시 고요히 잠들면서 공동묘지에 어울리게끔 괴이쩍은 분위기가 자리를 잡자 이번에는 한동안 머츰하던 무더위가 다시 엄습했다. 새삼스럽게 기승부리는 여름밤의 열기로 말미암아 부용의 부실한 허파는 또다시 곤욕의 때를 맞이했다. 손바닥 위에 날름 올라앉은 수면제 봉지를 내려다보며 부용은 그것이 막다른 골로 통하는 지름길 노릇을 떠맡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당장 그것을 입 안에 홀랑 털어 넣고 싶어 안달복달이 날 지경이었다. 간헐적으로 시작된 기침이 이제 본격적인 발작 단계로 진행되기 전에 어서 그 지름길로 들어서고 싶어 부용은 수면제가 들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지막이란 단어의 꼬리를 물면서 느닷없이부활이란 단어가 어둠 속을 뚫고 물미작대기처럼 날아들어 부용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으로 그는 큰 충격을 느꼈다. 살상용 흉기나 진배없는 그 단어는 곧바로 수염이 텁수룩한 똘스또이 영감 화상을 이끌어낸 다음 그 영감을 시켜 부용을 마구 고문하기 시작했다. 노서아문학전집을 통해 초대면한 바 있던 똘스또이 영감 화상은 부용의 뇌리에서 어느새 다른 얼굴로 뒤바뀌어 있었다.

 

  젊고 어여쁜 얼굴이었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이었다. 기억의 밑바닥에서 아예 뿌리째 뽑아 까마아득한 망각 지대 저편으로 집어던진 다음 오랫동안 철두철미하게 외면해 나왔던 여자였다. 바로 그 여자가 발소리 또박또박 울리며 과거 속에서 오롯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백일몽 가운데서 똘스또이 영감 주선으로 오랜만에 여자와 덜컥 해후하는 순간, 부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회한으로 말미암아 온 몸과 마음이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는 가슴속을 종횡무진 치달리며 마구잡이로 기승을 부리는 통증을 연거푸 신음소리로 바꾸어 토해 냈다. 그는 망각의 견고한 벽을 뛰어넘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여자를 도로 멀찌감치 쫓아 버리기 위한 방편으로 황급히 기침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격렬한 발작을 자초했다.

 

 

2

 

  뭣이 워찌고 워쪄? 뇌짐병이 틀림없다고?”

 

  자칭 내지인 야마니시 아끼라는 대뜸 소래기부터 버럭 내질렀다.

 

  기차 화통을 푹푹 고아서 장복을 허셨소? 무신 인간 목청이 고로콤 겁나게 무지막지허다요?”

 

  영감 면전에서 쫄쫄 눈물주머니 쥐어짜다 말고 화르르 놀라 자빠지면서 관촌댁은 째지게 눈을 흘겨 댔다. 그러나 늙정이 마누라 지청구도 일단 발동이 걸려 버린 야마니시의 험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 육시럴 잡놈이 배깥에서 뇌짐을 짊어지고 집안으로 들어왔다고? 어허, 우리 최씨 집안에 경사 났구나! 지화자 좋구나, 좋아! 칠년대한에 억수장마 만난 것맨치로 그 뇌짐 기별 한번 시연허기도 허다!”

 

  부용이 갸가 듣겄소. 지발덕덕 그 목소리 조깨 몬존허니 바닥에다 내려놓으시요, 영감!”

 

  지깟 놈이 들을 티면 열두 번이라도 들으라지! 나가 시방 그놈 귓구녁 뻥 뚫어지라고 역부러 목청 키우는 거여!”

 

  보자보자 허고 듣자듣자 허니깨 참말로 혀도 혀도 너무나 허요. 의붓자식이라면 또 몰라도 이녁 속으로 낳은 친자식인디, 무신 친아부지란 사람이 자기 친자식한티 요다지도 무심허고 무정헐 수가 있다요?”

 

  혹 떼러 왔다 혹 하나 더 덤터기 쓰고 돌아갈 판세였다. 관촌댁은 죽어가는 맏아들 살려내기 위해 사생결단이라도 할 기세로 앞세웠던 눈물 바람을 싹 거두었다. 그리고 평상시 그토록 어려워하며 하늘같이 받들어 모시던 영감을 상대로 바락바락 악을 쓰며 대들기 시작했다.

 

  옛말에도 부자지간은 천륜이라고 안 그럽디여? 그런디 시방 그 천륜까장 범허고도 이녁이 질래 무사헐 성불르요? 뇌짐이 어디 여름 한때 고뿔이요? 그러고 고뿔 푼수도 못 되는 몸살이라 쳐도 그렇지, 자식이 시방 아푸다는디 의붓애비도 아니고 피를 나눈 진짜배기 애비 처지로 홀라당 빨개벗고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출 것맨치로 이녁 입에서, 얼씨구 좋네, 지화자 좋구나, 소리가 똑 쏟아져 나와야만 쓰겄소? 그러고도 이녁은 청천 하늘에 뇌성벽력이 무섭들 않으요?

 

  하루가제야!”

 

  야마니시는 가볍지도 않은 사랑채 처마가 들썩거리도록 냅다 고함을 날렸다. 아쉬울 적마다 수족처럼 부려먹기 아니면 원수지간처럼 티격태격 다투기 일삼곤 하는 춘풍이를 찾는 소리였다. 떡 삶은 물에 중의 데치듯 기왕지사 최성바지들 창씨개명 단행하는 김에 당자하고는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봄 춘바람 풍두 글자를 왜말로 풀어하루가제라 제멋대로 작명한 다음 툭하면 엎어 놓고 보나 뒤집어 놓고 보다 갈데없는 토종 조선사람 춘풍이를 그런 이름으로 불러 버릇하는 야마니시였다. 집 안팎을 탈탈 털어 그처럼 해괴망측한 이름으로 춘풍이를 부르는 사람은 달랑 야마니시 하나뿐이었다. 머슴으로 부리는 주인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춘풍이는 그저 한결같이 비가 와도 춘풍이요 눈이 와도 춘풍이, 똥통에 빠뜨려도 춘풍이요 불구덩이에 던져 넣어도 춘풍이로만 머물러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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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49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1-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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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는 없어요. 절대로 그렇게는 못혀요. 낙철이 성님이 옳으니깨요. 옳은 일을 헌다고 믿기 땜시 인자 와서 낙철이 성님을 배반허는 행위는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저지를 수 없어요.”

 

  거참, 모순당착이란 놈이 이율배반을 등에 업고 있는 형국이구나. 옳다고 믿으면 무서워허지 말든가, 무섭다 생각되면 옳다고 믿지 않든가, 둘 중 하나여야 맞을 것 같은디, 거참, 참말로 딱헌 노릇이구나. 지아모리 무서워도 옳은 사람이 틀림없으니깨 어쩔 도리 없이 혁명가 이종형이랑 동사동업을 허는 것이 최귀용이가 타고난 숙명이다, 그러니깨 아버님을 겁박허는 강도질에 친자식인 너도 동참허겄다, 이런 말이냐?”

 

  그끄저께 경성을 출발헐 당시까장 낙철이 성님은, 악덕 지주 아버지를 그 아들인 제가 직접 털어야 된다고 귀에 못이 백이게코롬 경을 읽었어요. 노서아혁명 당시에 반동 아버지를 직접 고발헌 소년 영웅이 있었다면서 자꼬만 저더러 아버님 목에 비수 들이대는 주역을 맡으라고요.”

 

  말소리에서 온도가 느껴졌다. 얼음장 같은 냉혈의 소리가 맨살에 닿는 순간, 부용은 부르르 진저리쳤다. 그 진저리가 고스란히 귀용에게 전달되었는지 그 또한 한바탕 몸을 떨었다.

 

  물론 한사허고 거절을 혔지요. 혁명도 좋지만, 그런 일로 영웅이 되고 잪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요. 낙철이 성님도 결국 웃고 말데요. 제 의지를 시험헐 요량으로 괘얀시 한번 떠본 소리였대요. 매사를 그런 식으로 강팔지게 몰아붙이는 낙철이 성님이 무서워서 악몽을 많이 꿔요.”

 

  퍽도 장헌 일을 혔구나. 만약 최귀용이 같은 효자를 슬하에 안 두셨드라면 악덕 지주 우리 아버님은 오날날 어찌 되실 뻔혔냐. 전대미문 횡액을 당허셨잖겄냐. 아버님이 낭중에라도 그런 내막을 아시게 된다면, 애비 목에 비수를 들이대는 패륜 만행을 죽음을 불사허고 본때 있이 거부헌 당신 둘째아들한티 무신 상을 얼매나 크게 내리실지 참말로 궁금허구나.”

 

  울컥 미운 정이 치받치는 바람에 부용은 사나운 입정을 놀렸다. 그러자 귀용이 부쩍 더 힘주어 형의 손을 바스러지게 움켰다. 부용의 손등으로 동생이 흘리는 굵은 눈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귀용은 아직도 깔축없는 어린애에 불과했다. 주둥이로는 연방 희떠운 소리 팡팡 내지르며 어른인 척 혹은 투사인 척 행동하지만, 녀석의 속내평은 여전히 어린애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 철부지인 주제에 버거운 시대의 짐 잔뜩 걸머멘 채 그 무게에 깔려 낑낑거리며 험준한 고갯마루 허위허위 넘는 중인 동생이 너무 짠하고 안타까운 나머지 부용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

 

  한바탕 푸지게 쏟아낸 눈물 줄기가 귀용의 내면에 괴어 있던 철부지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낸 모양이었다. 제법 의젓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어느 틈에 말씨마저 어수룩한 고향 사투리에서 경성 깍정이 말씨로 매우 경우지게 개비되어 있었다.

 

  아버님을 대적허는 직접 행동에는 절대로 가담시키지 않기로 낙철이한티 단단허니 약조를 받었다.”

 

  가까운 숲에서 성질 사나운 때까치가 다까다까다까 하고 쇠꼬챙이같이 뾰쪽한 울음 끝으로 귀청을 마구 쪼아 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군호 삼아 별안간 귀용이 몹시 서두르는 기색을 나타냈다. 녀석은 움켜잡고 있던 형의 손을 허망하게 탁 놓아 버렸다.

 

  , 이만 가봐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요.”

 

  홍수 같던 그 눈물 줄기 내가 언제 쏟았더냐, 시치미 떼듯 귀용은 결기에 찬 음성으로 작별을 고했다. 자신이 사나이 중의 사나이임을 과시하듯 녀석은 발소리 뚜벅뚜벅 울리며 무덤들 사이를 지나 어느새 어둠 속으로 파묻혀 들어가려 했다.

 

  귀용아.”

 

  귀로는 발소리를 면밀히 추적하면서 입으로는 어둠을 향해 은밀하게 귀띔을 건넸다.

 

  아마 사랑채에 현찰은 별로 없을 게다. 괘얀시 헛수고 말거라.”

 

  그러자 씩씩하게 앞으로만 내닫던 발소리가 갑자기 뚝 멎었다.

 

  괘얀시 헛걸음허고 잪지 않으면, 족자로 개려진 대청마루 쪽 벽을 찬찬히 잘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게다.”

 

  고맙습니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어둠이란 놈이 아궁이 속같이 시커먼 아가리를 한껏 크게 벌려 감정이 듬뿍 담긴 반응을 보내 왔다.

 

  빌어먹을 기침 발작이 도지려 했다. 이번에는 진짜였다. 결코 보호색을 띠기 위한 엄살이나 죽는 시늉이 아니었다. 긴장감에 짓눌려 가슴 저 밑바닥에 한동안 잠잠히 머물던 기침이 그새 만만찮은 세력을 이루어 또다시 활화산 같은 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용은 안간힘을 다해 기침의 통로를 차단하려 했다. 만에 하나, 주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이목을 꺼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둠을 도와 어둠의 음모에 한몫 거들기로 일단 약속한 이상 부용 또한 이제 어둠의 일부로 편입된 셈이었다. 이미 어둠의 세력에 가담한 뒤인지라 신중한 처신은 필수적이다 생각하면서 부용은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단속하기 위해 어금니를 꽉 사리문 채 짐승처럼 모질음을 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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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48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1-2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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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해필 그 영감인지는 어느 누구보담도 형이 더 잘 알고 있지. 그럼 형만 꽉 믿고 나는 이만 가봐야겄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금의 미련도 안 두고 야멸치게 돌아서려는 낙철을 다급한 목소리가 붙들었다.

 

  “무신 조건?”

  “패륜 자식을 맨드는 불상사만은 무신 수로든지 피허고 잪으다. 요번 일에 귀용이를 가담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귀용이가 가담허고 않고는 전적으로 당자 의사에 달린 문제겄지.”

  “약속혀라!”

  “형 뜻이 정 그렇다면, 약속허지. 만에 일이라도 끙짜놓을 경우 요번 거사에서 귀용이 짐을 벳겨 주기로 허지.”

 

  “귀용이랑 단둘이서만 잠깐 만나고 잪으다.”

  “알었어. 금방 내려 보내지.”

 

  낙철은 헤어지는 절차 따위로 시간 낭비하는 법 없이 곧바로 어둠 속을 향해 자취를 감추었다. 혁명 투사가 우격다짐으로 떠안긴 수면제란 놈이 제 약 기운에 제풀로 취해 부용의 손바닥 위에서 초저녁잠에 들어 있었다. 수면제를 싼 포장지의 까끌까끌한 질감을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부용은 문득 그걸 한입에 털어 삼켜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걸 먹여 깊이 잠재워야 할 대상은 사납고도 충직한 진돗개가 아니라 비루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인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병골 사내, 다름 아닌 최부용 자신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떨치지 못했다.

  그동안 지근거리에서 내내 대기하고 있었던 듯 귀용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모습을 드러냈다. 밤의 공동묘지 풍경에 걸맞게끔 녀석은 귀신처럼 혹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소리 없이 형 근처에 몸뚱어리를 내려놓았다.

 

  “귀용아, 못났어도 나는 엄연히 니 형이다. 혹시 형한티 뭣인가 허고 잪은 말 없냐?”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몸조리나 잘하라고 형님한테 전해 달래요.”

 

  “그건 낙철이 말 아니냐? 내가 듣고 잪은 건 사랑허는 동생 우리 귀용이 말이란다.”

  멀리 가지 않고 방금 전까지 귀용이 대기했던 그 장소에 아직 머물러 있을 낙철이란 놈도 같이 들으라고 부용은 턱없이 목청을 높였다. 귀용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입을 꾹 다문 채 밤새도록 버틸 심산인 듯했다.

 

  “요 마당에 와서도 따로 허고 잪은 말이 정 없다면 허는 수 없지. 그건 그렇고, 느그들 문자로 그 군자금인지 거사 자금인지가 확보되고 난다면, 그 다음 느그 조직 계획은 뭣이냐?”

  “모르겠어요.”

 

  “비밀이라서 그러냐? 형을 못 믿어서 그러냐?”

  한참을 머뭇거린 다음에야 귀용은 도로 목구멍 안쪽으로 뒷걸음치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당분간은 멀리 떠나가 있을 계획인 것 같아요.”

  “어디로? 서간도나 북간도로? 아니면 상해로?”

 

  “더 묻지 말아 주세요. 낙철이 형님 말고는 그걸 아무도 몰라요.”

  “시방 니 처지가 너는 행복허냐? 그런 일들이 니가 평생을 두고 후회허들 않을 만침 보람 있는 과업이라고 확신허는 거냐?”

 

  형제간의 대화는 다시 끊겼다. 숲 속 어느 구석지에서 여러 마리 때까치가 몹시 수선을 떨어대며 형제 사이에 끼인, 거북살스러운 침묵의 덩저리를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사납게 쪼아대기 시작했다.

  “귀용이 너, 시방 떨고 있구나?”

 

  부용은 어둠 속으로 넌지시 손을 뻗어 동생 얼굴을 더듬었다.

  “귀용이 너, 시방 울고 있구나?”

 

  “겁나요. 겁이 나서 죽겄어요, 성님.”

  귀용의 형상을 닮은 어둠의 덩저리가 갑자기 경성 말씨 아닌 고향 사투리로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참말로 낙철이 성님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어요.”

  어둠이 또다시 입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뜻밖의 고백을 들이밀면서 부용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 지경으로 무서운 사람이라면 더 늦기 전에 빨리 그 작자허고 갈러서면 될 것 아니냐! 그런 연후에 너 갈 길 니가 가 뿔면 그만 아니냐!”

  붙잡힌 손을 통해 붙잡은 손의 떨림이 부용에게 곧이곧대로 전해져 왔다. 부용의 몸속에 들끓고 있는 신열 때문인지, 아니면 귀용의 간을 졸아붙게 만드는 공포심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튼지 소름이 좍 끼치리만큼 차디차게 느껴지는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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