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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74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2-3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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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은 집 안팎 사람들로부터 이미 한 번 혼인 경력이 있는 여자로 대접받기를 원했다. 어린 덕기를 상대하면서도 순금은 내심 그 철부지 입에서 기혼녀를 가리키는 아짐씨란 호칭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를 기대했다. 녀석은 아짐씨 말에 고분고분 순종할 의사가 전연 없음을,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걱정 말거라. 우리 덕기 군입정거리 뺏어 먹을 아짐씨 아니다.”

 

  그래도 덕기는 여간해서 의심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손에 남은 누룽지를 한꺼번에 모조리 입 안으로 욱여넣고는 볼때기가 미어지도록 어적어적 씹으면서 여차하면 대문간으로 힁허케 내뺄 태세였다.

 

  까막깐치가 성님, 성님, 허면서 우리 덕기 되린님 뒤꽁댕이 졸래졸래 따러댕기게 생겼고나. 아짐씨랑 같이 가서 우선 그 손발부텀 깨깟허니 씻고 나서 고 다음 일을 도모허기로 허자.”

 

  덕기의 대답도 안 들어보고 순금은 앞장서서 우물이 있는 뒤란을 바라보고 사부작사부작 걷기 시작했다. 처음 그 자리에 붙박인 채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덕기는 계속 의심에 찬 눈빛만 번뜩거렸다.

 

  먼저 손발이 말짱혀야만 공부도 머릿속에 쏙쏙 잘 들어가는 법이다.”

 

  공부라고라?”

 

  오냐, 이 아짐씨가 오날서부텀 덕기한티 와따꾸시다찌를 가르쳐 주기로 할머니허고 약조를 혔다.”

 

  아까막시 아짐씨 보고 쎗바닥 낼름낼름 내둘렀다고 나 혼내 줄라고 그러는 게 아니고라?”

 

  그깟녀르 낼름낼름쯤이사 아짐씨도 덕기한티 똑같은 것으로 갚어 주면 될 것 아니냐.”

 

  녀석한테서 받았던 것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기 위해 순금은 혀뿌리 부분부터 끌어올려 혓바닥을 최대한 길게 빼문 다음 혀끝을 잽싸게 날름거리는 숨은 솜씨를 발휘했다. 그 꼴을 보더니만 덕기 녀석이 히힛 웃음소리를 흘렸다. 녀석은 흘러내리는 싯누런 콧물줄기부터 일단 소맷부리로 매우 익숙하게 훔쳤다. 그러고 나서도 녀석은 여전히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의심 많은 아이를 안심시켜 우물까지 데려가는 데는 황소를 쥐구멍 안으로 몰아넣는 만큼의 품이 들었다.

 

  누룽지처럼 덕지덕지 눌어붙은 손등의 쇠딱지를 뜨거운 물에 오래 불린 다음 반들반들한 조약돌로 박박 문질러 말끔히 벗겨 내고 나니까 방금 전의 까막까치가 어느 틈에 백로로 변했다. 내친김에 순금은 말라붙은 콧물이 더께로 앉은 얼굴마저 깨끗이 씻기고 나서 머리를 검사했다. 때에 절고 북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더펄머리 안 사정은 허옇게 실린 서캐들로 도무지 말씀이 아니었다. 순금은 참빗으로 머리를 빡빡 빗겨 머릿니와 서캐를 자그마치 한 숟갈 분량이나 훑어 냈다. 그처럼 온갖 정성 다 쏟고 나니까 그제야 제법 어연번듯한 본래의 낯꽃이 되살아났다. 여태껏 제 할미한테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후대를 받고 기분이 느끼해진 덕기 녀석이 그제야 비로소 상전 아씨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푸는 눈치였다.

 

  꼭 나무주걱이 쇠주걱으로 바뀐 것 같고나. 고 녀석 참, 똘방똘방허고 이쁘장허니 잘도 생겼다.”

 

  어린 것 돌보고 가꾸는 일이 그토록 기껍고 행복한 작업인 줄 순금은 그때 처음 깨달았다. 못 알아보리만큼 몰골이 확 달라진 덕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퍼뜩 정세권이 떠올랐다. 만일 그하고 결혼해서 일찌감치 신접살림 차렸더라면, 하고 상상하면서 정세권 용모를 그대로 빼쏘아 놓은 자신의 소생을 머릿속에 잠시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귀꿈맞은 상상인가를 알아차리기 무섭게 순금은 귀뺨을 후려갈기는 부끄러움으로 말미암아 낯꽃을 온통 홧홧이 붉히고 말았다.

 

  , 까막깐치가 백로맨치로 눈부시게 변신헌 김에 덕기는 인자부텀 아짐씨랑 공부를 시작허는 거다?”

 

  덕기 손을 잡고 순금은 가을햇살 당양하게 내리쬐는 마당가로 가 자리를 잡았다. 몽근 흙가루로 덮인 땅바닥을 판판하게 골라 마당 귀퉁이를 널따란 칠판 삼고 나뭇개비로 백묵을 대신했다.

 

  덕기야, 아짐씨가 쓰는 글씨 잘 봐 두거라.”

 

  순금은 황국신민서사 첫 구절을 히라가나로 또박또박 땅바닥에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가볍게 놀아나는 나뭇개비 끝을 비상한 관심으로 지켜보던 덕기 녀석 입에서 별안간 야릇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웃고 있냐?”

 

  헤헤, 아짐씨가 틀렸고만이라.”

 

  뭣이라고?”

 

  다이닙뽕데이꼬꾸노 신밍데아리마쓰(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가 맞는디, 아짐씨는 시방 고오꼬꾸신밍나리(황국신민이다)라고 적어 놨고만이라.”

 

  순금은 하마터면 기겁해서 뒤로 넉장거리할 뻔했다.

 

  아니, 덕기 너, 히라가나 읽을지 아는고나?”

 

  마치 상수리가 들어 있는 줄 알고 무심코 망태기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덜컥 불밤송이를 만진 기분이었다. 문장 표현과 내용에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소학생용과 일반인용 두 종류 서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만 깜빡 잊은 데서 비롯된 실수였다. 워낙 일반인용만 익혔던 탓에 무심코 저지른 자신의 실수를 일본어에 문맹이라 철석같이 여겼던 덕기 녀석한테 암팡지게 지적당했으니 당연히 놀라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왔다 굿이를 놓고 조손간에 말다툼 벌일 적에 미리감치 눈치 챈 덕분에 일반인용 서사의 맨 앞대가리와레라와(우리들은)’를 소학생용의와따꾸시다찌와(저희들은)’로 슬쩍 바꿔치기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그깟녀르 히라가나도 읽을지 모르는 것들은 죄다 똥멍청이 아니겄어라?”

 

  덕기는 힘도 하나 안 들이고 시원시원히 대꾸했다.

 

  덕기 너, 그렇다면 서사 전문도 암송헐 수 있겄네?”

 

  그깟녀르 암송 따우는 일도 아니고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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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73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2-2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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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야, 우리 함지 어쩔꺼나! 불쌍허고 불쌍혀서 우리 함지 어쩔꺼나!”

 

  양끝에서 팽팽히 잡아당기고 있던 고무줄을 어느 한쪽이 탁 놓아 버린 꼴이었다. 그 고무줄 끝에 매달려 있던, 녹슬고 먼지 덮인 이름 하나가 갑자기 튀겨져 나오면서 이십 년 상거의 세월을 단숨에 좁혀 놓았다.

 

  우리찌리 약속허자, 함지야.”

 

  어린 동생 함지의 볼에 제 볼을 마구 비비대면서 순금은 애타게 말했다.

 

  여태까장 우리찌리 주고받었던 소리가 절대로 따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내 말 알어들었지야?”

 

  오누이의 볼과 볼이 맞닿으면서 제각각 흘리는 두 가닥의 눈물이 한데 엇섞였다. 서로 끌어안은 채 오누이는 소리를 마주치며 울었다. 식민 통치도 모르고 독립운동이나 혁명운동도, 화적패나 강도단도 모르던 어린 시절로 멀리 되돌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함께 울고 나니까 신통방통하게도 들썩거리던 마음이 웬만큼 진정되었다. 가을비에 함빡 젖은 채 으슬으슬 떨리는 몸으로 집에 돌아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궁둥이 지지며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난 뒤끝인 양 개운한 기분마저 들었다.

 

  우리 둘이서만, 너허고 나허고만 아는 비밀이다. 내 말 알어들었지야?”

 

  마침내 함지가 고개를 끄떡이는 순간이 왔다. 뭔가 크게 잘못을 저질렀을 적마다 감당키 어려운 그 책임을 항용 손위한테 떠넘김으로써 제 대신 순금으로 하여금 부모한테 야단맞게 만들곤 하던 그 옛날 모습처럼 함지는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낯꽃이었다.

 

  아이고, 우리 함지 참 착허기도 허지. 그럼 누님은 너만 꽉 믿는다.”

 

  순금은 오동포동 살이 올라 있는 함지에서 급작스레 온몸이 철골되고 껑더리된 부용으로 되돌아온 동생을 다시 한 번 으스러지게 껴안아 주었다. 참새처럼 할딱거리는 부용의 숨기척이 순금의 젖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으리만큼 무서운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부용은 어느새 다소곳하고 고분고분한 동생으로 변모해 있었다.

 

  한숨 푹 자거라. 자고 나서 또 보자.”

 

  순금은 마른 짚단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부용의 수척한 몸뚱어리를 요 위에 뉘었다. 이불자락을 끌어올려 턱밑까지 덮어 준 다음 자장가 부르듯 부용의 가슴을 가만가만 다독거렸다. 스스로 목숨을 버릴 작정으로 끊임없이 음모와 반역을 획책하는 동생을 위해 누이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순금은 익히 알고 있었다. 동생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건질 수만 있다면 자신의 여생을 건, 아무리 길고 험난한 싸움일지라도 결코 마다하지 않겠노라고 거푸 속다짐했다. 부용의 눈꺼풀이 무겁게 감긴 걸 확인하고 나서 순금은 쟁반을 챙겨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구석방을 벗어났다.

 

  들릴락 말락 낮은 인기척이 들렸다. 벽 모퉁이를 돌아 잽싸게 모습을 감추는 섭섭이네 치마꼬리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순금은 곧바로 섭섭이네 뒤를 밟았다.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다는 듯이 섭섭이네는 뒤란에서 손바닥으로 연방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불시에 젊은 아씨하고 정면으로 맞닥뜨리자 섭섭이네는 술래잡기에서 술래 역할을 맡은 가시내처럼 황급히 양손바닥으로 안면을 덮는 동작을 취했다.

 

  쇤네는 참말로 아모 낌새도 못 챘구만요! 참말이어라!”

 

  약사발이 얹힌 쟁반을 손에 든 채 순금은 그 사발 빛깔만큼이나 새하얗게 실색한 낯꽃으로 섭섭이네의 자발없는 거동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얼굴을 가린 손가락들 틈새로 젊은 아씨를 빠끔히 내다보면서 섭섭이네는 잠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쇤네를 꽉 믿으시기라! 참말이지 쇤네는 오날 요때부텀 귀먹당수에다 당달봉사에다 버버리가 되기로 아조 작심허고 말어 뿌렀고만요!”

 

  언제부텀 엿듣고 있었어요?”

 

  ? 쇤네는 참말로 아모 소리도…….”

 

  되얐어요. 가서 함지 되린님 미음이나 끓이셔요.”

 

  , 누구라고라?”

 

  부용이 되린님 미음 준비허라니깨요.”

 

  암먼이라, 끓이다마다요! 한 번 아니라 열두 번이라도 끓이라 허시면 끓여야지라! 미음죽 아니라 불로초 뜯어다가 장생죽이라도 끓여서 큰되린님 상에 올려드려야지라!”

 

  섭섭이네는 젊은 주인아씨의 서슬 퍼런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혼잣말로 간단없이 중얼거렸다. 순금은 검정 광목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부엌을 향해 부랴사랴 달려가는, 부대한 몸피의 섭섭이네 뒷모습을 일삼아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볼지어다 때가 이를 것이니 곧 지금이라 너희가 다 흩어져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가고 나를 혼자 두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바지께서 나와 함께 계실 터이니라.’

 

  또다시 문 목사 사모의 쪽지에 적힌 성경 구절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그때 사모가 쪽지에 언급했던 예배당 종소리란 주물로 만들어진 진짜배기 놋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다른 종을 가리키는 말인 듯싶었다. 어쩌면 핍박받고 시험당하는 뭇 성도들을 실어 하늘로 둥둥 띄워 올리는 거대한 비행선 같은 운송 수단을 의미하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엉뚱깽뚱한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치기도 했다. 막연히 예고된 그 종소리가 다른 어느 때보다 부쩍 더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누가 입으로 훅 불라치면 흔적도 없이 스러질 것처럼 온몸이 자꾸만 땅바닥으로 까라지려 했다. 그러나 마음만은 그렇게 가뜬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로 마음만 먹을작시면 언제든 지친 육신을 작은 새로 둔갑시켜 바람 타고 파란 하늘 향해 포르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이것을 너희게 이름은 나를 힘입어 평안함을 얻게 함이라 세상에 있을 제 너희가 환란을 받으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때마침 부엌문을 나서는 덕기 녀석이 눈에 띄었다.

 

  덕기야.”

 

  난데없는 부름에 흠칫 놀라면서 덕기 녀석이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순금하고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한 움큼 손에 쥐고 있던 누룽지부터 얼른 등 뒤로 빼돌리려 했다.

 

  이리 오니라. 아짐씨가 우리 덕기한티 쪼깨 헐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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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72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2-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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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은 손바닥으로 부용의 입술을 덮쳐눌렀다. 정말 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차라리 자초지종에 접하기 이전의 애매모호한 상태 그대로 영원히 땅속에 묻어 버리고 싶은 이야기였다. 전대미문의 패륜만행에 어떤 형태로든 두 동생이 깊숙이 관련된 것이 부동의 사실로 굳어질 경우, 순금은 곧바로 들이닥칠 무시무시한 결과를 예측하면서 미리감치 부르르 몸서리쳤다. 입을 막았던 순금의 손바닥이 옆으로 치워지기 무섭게 부용은 잠시 끊겼던 말허리를 다시 잇기 시작했다.

 

  야소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전주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지요. 범티 고갯마루에 앉어서 잠깐 숨을 돌리고 있는 참인디…….”

 

  제발 그만두라니깨!”

 

  느닷없이 귀용이란 놈이 제 앞에 턱 나타나는 겁니다. 경성에서 한참 학업에 몰두허고 있어야 될 때가 아니냐, 그런디 니가 시방 여그는 웬일로 나타났냐, 무신 일로 요로콤 급작시럽게…….”

 

  순금은 마개로 틀어막듯 양쪽 귓구멍에 손가락을 깊이 꽂아 소리가 출입하는 모든 통로를 차단해 버렸다. 급경사 내리막을 제멋대로 굴러 내려가는 거대한 눈뭉치를 닮은 부용의 이야기에 화급히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순금은 스스로 귀머거리가 되어 철골을 이룬 부용의 앙상궂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마침내 울음보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자아, 울 만침 실컷 다 울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인자는 나머지 말을 끝까장 다 들어보실 차례지요.”

 

  얼마나 울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부용의 말소리가 귓전을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부용아, 너 대관절 왜 이러는 거냐? 내가 너한티 무신 죽을죄를 졌다고 날 이렇게 고문허는 거냐?”

 

  누님이야말로 우리 집안 전체를 탈탈 털어서 저랑 대화가 잘 통허는 유일무이헌 혈육 아닙니까. 누님이기 이전에 우선 진실을 함께 논헐 수 있는 동지라고 생각허다 보니깨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을 솔직허니 다 털어놓고 잪었을 뿐입니다.”

 

  부용은 그새 한결 차분해진 말투로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악질 반동 지주 야마니시 아끼라를 단죄허는 수준의 소극적 행동이 아니고 차제에 아조 끝장을 내뿌리는 차원의 적극적 행동이 바로 애당초 낙철이 계획이었지요. 그런디 귀용이가 그 계획에 끝까장 동의허지 않고, 저 역시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고 극구 말렸지요. 인자 와서 허는 말이지만, 차라리 그때 낙철이가 계획헌 대로 그냥 모르는 척 내비뒀드라면 얼매나 좋았을 뻔혔는가, 허는 생각이 요즈막에 저를 엔간히 괴롭히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 들으면 순금의 놀란 가슴과 지끈거리는 골머리를 살살 다독이기 위한 것처럼 부드럽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예사로이 내뱉는 부용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낱낱이 다 서슬 퍼런 흉기로 변해서 순금의 가슴을 조각조각 자디잘게 저미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낙철이 갸 처음 계획이 옳았다는 게 증명된 셈이지요. 물실호기, 그야말로 다시 없이 좋은 기회를 그때 우리 최가 형제들 반대로 놓치고 만 것이지요. 허지만 아즉도 영영 늦지는 않었지요. 지금이라도 누님허고 제가 힘을 합치기만 헌다면, 그때 낙철이가 못다 끝낸 일을 우리 남매가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울 수 있다, 이겁니다.”

 

  윗몸을 곧추세우면서 순금은 홉뜬 눈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부용의 뺨 위로 긴 줄을 그으며 눈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부용은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중이었다. 눈물줄기가 홀쭉히 파인 볼 고랑을 타고 연달아 흘러내렸다.

 

  제 말 잘 들어보십쇼, 누님. 장차 우리가 끝장낼라고 허는 인간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최명배도 아닙니다. 야마니시 아끼라란 이름 가진 괴물이란 말입니다. 그 인간은 벼멸구나 메뚜기맨치로 세상 농사에 백해무익헌 존재지요. 수많은 사람들 들들 볶아먹고 고혈 빨어먹는 그 흡혈마 같은 인간을 우리 손으로 하루속히 끝장을 내야만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 남매가 기필코 그 일을 끝내야만 산서 사람들 전체가 숨을 쉬고 살어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부용의 말에 순금은 계속해서 도리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러지 마십쇼, 누님. 어차어피 우리 남매는 거대 악마 소생 군소 악마들이잖습니까.”

 

  순금은 또 한 차례 세찬 도리머리와 함께 부용의 눈동자를 구멍이 뚫리게끔 쏘아보았다.

 

  안 된다, 부용아. 상상 속에서 도모허는 것만으로도 벌써 그것은 치명적인 죄가 되는 법이다, 부용아.”

 

  그러자 부용의 얼굴이 맥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새롭게 비어져 나오는 굵은 눈물방울들이 후두두 떨어지면서 베갯잇을 적시기 시작했다.

 

  야마니시라는 괴물을 우리 손으로 차마 어쩌지 못헌다면, 그 괴물 대신 속죄허는 뜻으로 다른 누군가가 죽어 주는 것도 한 방법이겄지요. 의젓잖고 꾀죄죄헌 모양새긴 허지만, 그러는 것도 야마니시 영감 머리 우에 형벌을 내리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동생이 하고많은 날들을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음침한 구석방 구석에 틀어박혀 병든 육신 혹사해 가며 기껏 짜냈다는 궁리가 결국 저토록 음험하고 참담한 내용이었나 생각하니 순금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함지야!”

 

  순금의 입에서 느닷없이 엉뚱깽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함지란 이름으로 동생을 부르는 순간, 순금 자신이 먼저 놀라고 말았다. 부지불식간에 입에서 튀어나온 부용의 아명이었다. 어머니가 함지박이 철철 넘치도록 밭에서 굵은 가지를 따 담는 태몽을 꾼 연후에 들어선 아들이라 해서 붙인 아명이었다. 애들이 자꾸만 놀려먹는다며 부용이 한사코 듣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소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불러본 기억이 전혀 없는 이름이었다. 그 새퉁스러운 이름이 오랜 세월 자신의 내부 어느 심연에 가라앉아 가만히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기회는 바로 요때다, 하고 그처럼 입 밖으로 불쑥 뛰쳐나오게 된 것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순금은 부용 아닌 함지를 두 팔로 와락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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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71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2-2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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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니시 영감님은 강도단 아니라 화적패라고 주장헙디다만, 야밤중에 강도단을 끌고 나타나서 천석꾼 영감한티 되알지게 혼겁을 멕이고 간 그 장본인이 누구였는지 누님은 아즉도 전연 짐작이 안 가십니까?”

 

  ! ! !”

 

  마치 악의로 가득 찬 동생의 가슴을 향해 힘껏 돌팔매를 날리는 심정이었다. 순금은 하나의 이름을 세 토막으로 나누어 한 음절씩 또박또박 아금받게 발음했다.

 

  허어, 우리 누님께서 그 은밀헌 강도단 속내를 무신 수로 그러콤 정확허게 알어냈을까요?”

 

  놀라 자빠지는 시늉으로 부용이 요란하게 감탄해 마지않았다.

 

  고등계 형사나 헌병대 오장 아니라도 그 정도 추리는 얼매든지 가능헌 사건 아니냐!”

 

  어디까지나 그저 막연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 추측마저도 최순금 고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눈 번히 뜬 채로 거액의 재물 강탈당한 끝에 정신머리 해뜩 뒤집어진 아버지가 분노의 절정에서 도나캐나 추켜잡은 무모한 억측일 뿐이었다. 어떤 근거에 바탕을 두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놀랍게도 배낙철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이질에게 화적패 수괴 혐의를 두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심히 난감한 지경에 몰려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두 관촌댁 자매, 다름 아닌 어머니와 이모였다. 자매는 천륜에 인륜을 곱빼기로 범한 천하의 패덕한을 각각 이질과 아들로 두었다는,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죄목을 홀랑 뒤집어쓴 채 각각 남편과 형부로부터 솔찮이 시달림을 당하면서 호소무처의 폭폭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여학교 때 일찌감치 고등계 취조를 몸소 겪어본 솜씨라서 그런지, 역시 우리 순금이 누님께서는 범상치 않은 안목을 구비허셨고만요.”

 

  그러나 순금은 아버지의 뚱딴지같은 의심을 당초부터 명명백백한 억측으로 아예 치지도외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사회주의에 흠뻑 물들어 있기로서니 설마한들 제 이모부 멱에 비수를 들이대는 극한 폭력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렇다면 공범이 누구누군지도 누님은 펄써 다 뜨르르 꿰고 있겄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질한 장본인으로 배낙철을 명토 박아 대거리한 것은 순전히 부용의 퇴행적 언동에 대한 반발심과 오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그렇게 시작된 일인데,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툭 내뱉은 그 대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논두렁에 물꼬를 트면서 점점 수상한 방향으로 논물을 흘려보낼 조짐을 보이는 게 아닌가.

 

  최부용이 바로 니놈이다, 이 나뿐 놈아!”

 

  핫핫하, 틀렸어요. 저는 아닙니다. 이 최부용이는 강도단 일원으로 낙철이 패거리에 직접 가담헌 사실이 결단코 없습니다. 누님이 섬기는 신을 두고 맹세헐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정말로 무고헙니다. 다만, 한 다리 슬쩍 건너서 저는 낙철이네 범행을 약간 방조만 혔을 뿐이지요. 핫핫핫하.”

 

  감쪽같이 상대방을 돌라먹는 데 성공한 것을 자축하는 악동처럼 부용은 요란한 웃음소리로 마냥 즐거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순금은 극심한 혼란 속으로 급작스럽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쩐지 부용의 태도가 장난삼아 그냥 괜스레 떨어보는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저도 모르게 꿀꺽 삼켜지는 침 때문에 말허리가 잘렸다.

 

  그 말이 사실이란 말이냐?”

 

  갑자기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사뭇 추위를 타는 낯꽃으로 순금은 동생에게 바싹 다가앉았다.

 

  낙철이가 실지로 강도단을 끌고 와서 우리 집 사랑채를, 즈그 이모부를 털었단 말이냐?”

 

  혹여 어느 엿듣는 자 있어 말소리가 그 귓구멍에 들어갈세라 순금은 방문 밖 동정에 부쩍 신경 쓰면서 목청을 방바닥에 착 깔았다. 그러자 부용이 벌컥 소가지를 부렸다.

 

  여태까장 누님은 제 말을 농담으로 알어듣고 있었소?”

 

  아니, 그렇다면 부용이 니가 낙철이네 강도 행각을 방조혔다는 것도 사실이란 말이냐?”

 

  우리 배낙철 두목님께서 소인한티 부여허신 사명은 사전에 복구란 놈한티 수면제를 멕여서 밤새드락 얌전허게 잠을 재워 놓는 것이었지요.”

 

  , 주여…….” 

 

  감당키 버거운 시련과 맞부닥뜨릴 적마다 늘 해 나온 버릇대로 순금은 얼른 두 손을 모아 가슴에 갖다 붙였다.

 

  겨우 그 정도 사실 갖고서 뭣을 그렇게 놀래 자빠지십니까? 만약 그날 밤에 야마니시 영감님 둘째아들 최귀용이란 작자도 복면을 허고 강도단 일원으로 가담헌 사실을 아신다면, 그러고 최부잣집 사랑채에서 야마니시 영감님이 꽁꽁 포박당헌 채로 만판 곤욕을 치르던 그 시간에 그자가 바로 지척지간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까장 아시는 날이면 누님은 필경 까무러치고 말겄습니다그려.”

 

  아닌 게 아니라 순금은 거의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시야를 하얗게 표백시키면서 현기증이 엄습하는 바람에 정신이 별안간 어찔어찔해졌다. 이마에 손을 짚으려는 순간 윗몸이 앞쪽으로 기우뚱 쏠렸다. 순금은 방바닥과 몸뚱이 사이에 양팔로 급히 버팀목을 질러 가까스로 자세를 바룰 수 있었다.

 

  제발, 부용아!”

 

  순금은 무릎걸음으로 문칮문칮 다가들어 부용과의 간격을 아예 없애 버렸다. 그니는 뼈마디들이 울툭불툭 불거져 나온 부용의 앙당그러진 손을 붙잡고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말짱 다 거짓말이라고, 장난삼어서 그냥 되나 못되나 한번 뱉어본 소리였다고, 내 앞에서 시방 당장 분명허니 밝히거라!”

 

  그러나 부용은 세차게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즉도 제 말을 못 믿으시는 모냥인디, 그렇다면 자초지종을 소상허니 밝히지요. 낙철이 지시를 받고 귀용이가 저를 찾어온 것은…….”

 

  되얐다, 그만두거라! 더 듣고 잪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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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70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12-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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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마리 악마들이 모여서 우리 최가네 집구석을 구성허고 있지요. 최명배라는, 야마니시 아끼라라는 거대 악마 슬하에 군소 악마들이 우그르르 딸려 있는 형국이지요. 악마들은 과연 악마답게 각자 제 밥값들 허니라고 날이면 날마다 난리법석을 떨지요. 서로가 서로를 못 잡어먹어서 밤낮없이 으르렁거리고, 물어뜯고, 싸움질허고, 노상 서로가 서로한티 상처를 주고받고, 배신허고, 해코지헐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면서 살어가고 있지요.”

 

 부용아, 인자 제발 고만…….”

 

 순금은 두 손을 모아 가슴에 갖다 붙였다. 부용은 불똥이 뚝뚝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순금을 노려보며 말했다.

 

  거대 악마는 군소 악마들 고혈 빨어먹고, 군소 악마들은 떼거리로 뎀벼들어서 거대 악마 살점을 한 입씩 욕심껏 뭉청뭉청 뜯어먹지요. 요게 바로 산서 최가네 집구석 실상이고 진면목입니다. 지옥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집구석이 바로 지옥이고, 지옥 중에서도 제일 뜨끈뜨끈헌 아랫목에 해당허는 상등석 지옥이란 말입니다. 앞으로 얼매 못 가서 산서 최문은 필연적으로 망허게 되야 있습니다. 망조란 놈이 벌써 오래전부텀 우리 집 담장 뛰어넘고 중방 뚫고 집 안에 들어와서 맹렬허니 활동을 개시혔단 말입니다. 악마들만 우글부글 들끓는 요따우 집구석에 망조가 안 든다면 이 세상 어느 집안에 망조가 들겄습니까!”

 

  나뿐 놈!”

 

  부용의 귀싸대기에서 철써덕 소리가 차지게 울렸다. 눈 깜빡할 사이의 일이었다. 신열로 말미암아 그러잖아도 발그레하게 상기돼 있던 부용의 뺨에 대뜸 손도장이 벌겋게 찍히는 걸 보자 순금은 제 손회목에 칭칭 감겨오는 얼얼한 통증을 느꼈다.

 

  이 손찌검, 고맙습니다. 누님 역시 여러 군소 악마 중 하나라는 증거를 방금 행동으로 뵈야 주셔서 참말로 다행입니다.”

 

  연방 음험하게 낄낄대는 부용의 웃음소리가 순금의 머리끝을 쭈뼛 곤두서게 만들었다.

 

  우리 집안에서 제일착으로 아버님을 배반헌 인물이 바로 누님이잖습니까. 인색한으로 소문난 아버님이 산서 같은 두메산골에서 웬만침 사는 집안 아들자식도 감히 꿈꾸지 못헐 고등 교육 혜택을 당신 딸자식한티 척허니 앵겨준 것은 오즉 벼슬허는 사위 하나 잘 후려서 장차 사대부 집안맨치로 떵떵 울리면서 살고 잪으다는 욕심 때문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허고 우리 순금이 누님은 아버님 기대를 본때 있이 배반허고 객지 유학 생활에서 자유연애에 고부라졌지요. 그것만 허드래도 벌써 아버님으로서는 절대로 용서헐 수 없는 불횬디, 누님은 거그다 한술 더 떠서 야소쟁이까장 되얐지요. 그러고는 그것으로도 모잘라서 다음번에는 야학이다, 독서회다, 허고 이런저런 구락부 맨들어서 애인이랑 어울려 댕김시나 계몽운동인가 독립운동인가에 매달리다가 필경 불령선인 낙인까장 콱 찍히고 말었지요. 그 바람에 약혼자 잃은 생과부 신세에다 일제 사상 감찰 대상에 오른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바람에 아버님 애당초 계획이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지고 말었지요.”

 

  나뿐 놈!”

 

  얼떨결에 따귀 후려갈김으로써 최후 수단을 너무 일찍 써먹어 버렸기 때문에 순금은 동생의 험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님이 어디 불효막심 딸년을 그냥 곱게 보아 넘길 위인입니까? 첫째로 딸년 광주 유학에다 쏟아 붓은 비싼 학자금이 치가 떨리게 아깝고, 둘째로 불령선인 딱지 붙은 딸년 덕분에 앞으로 두고두고 당신 신상에 닥쳐올 가지가지 불이익만 생각헐작시면 원통허고 절통혀서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리하야 야마니시 영감님은 청상 아닌 청상 신세로 돌아온 딸년한티 즉각 무시무시헌 징벌을 내리는 것으로 철저허게 보복을 단행혔지요. 당신이 기왕 입은 손해는 물론이고 장차 입게 될 손해를 합산헌 금액에다 가위 살인적인 복변리, 장변리를 덤으로 붙여서 딸년 장래를 몽땅 볼모로 잡어 뿔고 만 겁니다.”

 

  나뿐 놈!”

 

  기대를 저바리고 애비 얼골에다 똥칠헌 딸년 몸뚱이를 만년 처녀 상태로 딱 고정시켜서 집안 한구석에다 감금허고는 늙어 죽을 때까장 생짜로 꼬장꼬장 말려 쥑일 작정을 허신 것이지요. 허지만 그 애비에 그 딸년이지요. 그런 아버님을 대적혀서 누님은 또 누님대로 아조 고약헌 보복 방법을 고안허고는 즉각 반격을 감행혔지요. 맘보재기 한 자락 살짝 고쳐먹기만 헌다면 얼매든지 다른 좋은 혼처 물색혀서 팔자를 고칠 수도 있었는디, 식은 피 빨어먹고 모기 배 차거워지라고 여름밤에 역부러 꾀벗고 한뎃잠 자는 식 어리석은 오기로 사사건건 아버님한티 어긋장을 놓기 시작혔지요. 청상 수절과부 자임허면서 평생 아버님 발목 붙잡고 늘어지기로 작심헌 겁니다. 둘 중 어느 한 쪽이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장 부녀지간이 서로 사이좋게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되는 그 처절헌 복수극은 앞으로 죽는 날까장 줄기차게 계속될 거라고 본인은 감히 단언허는 바입니다.”

 

  부용이 네 이 나뿐 놈아!”

 

  여전히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순금은 마치 소리꾼 곁에서 추임새 넣듯 연방 같은 소리만 단말마처럼 새중간에 끼워 넣고 있을 따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못 잡어먹어서 한이기는 부녀지간만이 아니지요. 얼매든지 더 있습니다. 누님은 거번에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님을 덮쳐서 털어먹은 그 강도단을 어떻게 생각허십니까?”

 

  시퍼렇게 날이 선 험구를 휘둘러서 급소를 찔러 남의 몸에 치명상 입히는 행위가 떡 먹듯 그렇게 수월한 노릇만은 아닌 듯했다. 시체처럼 가만히 드러누워 입만 벙긋거리는데도 부용은 바윗돌 땅띔 행위에 견줄 만한 중노동이라도 벌이는 푼수로 온 얼굴에 구슬땀을 흠씬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쁜 숨 할딱할딱 몰아쉬느라 헐렁한 핫저고리 앞섶을 풍선처럼 연방 부풀렸다 꺼뜨리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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