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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0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09-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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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주인 성기상은 진용의 소학교 동기이자 불알친구였다. 산서 바닥을 휩쓴 간밤의 불상사하고 자기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그냥 미친 척하고 지나쳐 버릴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삽짝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밤새 별고 없었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도 정말 거식한 노릇이었다.

  자네들 먼저 가게.”


 
성기상네 집 조금 못미처에서 마침내 진용은 단안을 내렸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마다 않는, 참으로 야박하기 그지없는 세상인심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자지 맞잡고 자란 괴복 친구의 안위조차 모르쇠를 잡고 그냥 지나친다는 건 도무지 사람 된 도리가 아니었다.


 
질을 가다가 혹간 어디 사는 누구를 만나 무신 말을 듣드래도 상곡 그 어르신 말씸을 시방 절대적으로 명심혀야 쓰네.”


 
진용은 혀끝에 매달고 수없이 반복했던 당부의 말을 일행과 헤어지는 마당에 한 차례 더 되작였다. 네 친척은 마냥 심란해하는 진용의 낯꽃을 보더니만 덩달아 기가 팍 죽는 기색들이었다. 그들은 진용의 복잡한 심사를 헤아렸는지 잠자코 눈인사만으로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최씨 피붙이 아닌 춘풍이 하나만은 특별한 예외였다.


 
님은 보고 잪으지요오…….”


 
세월아 네월아, 하고 마냥 게으름피우며 따라오던 흥얼거림이 그제야 뒤늦게 일행에 합류했다.


 
노잣돈은 똑 떨어졌지요오…….”


 
반편이 입에서 십팔번 풍월이 읊조려지기 시작한 이래 언제나 순서도 없고 맥락도 안 닿을 뿐만 아니라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그 꼴머슴 노래 속에서 앞뒤 짝을 이루어 마땅한님과 노잣돈이 최초로, 그리고 우연의 일치로 신통방통하게도 딱 맞아떨어지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상곡 그 어르신께서 너무 오래 적적허시들 않게코롬 자네들이 시방 춘풍이 저 잡놈을 시방 사랑채까장 무탈허니 잘 데려다가 어르신 면전에 반듯허게 대령혀야 쓰네.”


 
젊은 친척들이 앞뒤에서 춘풍이를 당기고 밀며 멀어지기를 기다려 진용은 외딴집 삽짝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어이, 기상이!”


 
나간 집구석같이 썰렁한 기운이 감도는 방문 쪽에 대고 진용은 짐짓 심상한 목소리로 불렀다. 방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안 나자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상이, 시방 집에 있는가? 날세, 진용이네.”


 
제각기 빛깔 다른 종이로 얼룩덜룩 땜질해 놓은 누더기 방문이 누군가의 발길에 걷어차인 푼수로 와당탕 열렸다. 어찌나 세게 열렸던지 문짝은 벽면에 탕 부딪친 반동으로 반나마 다시 닫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흉측한 몰골의 여자 머리통 하나가 문틈으로 불쑥 비어져 나왔다. 다름 아닌 기상이 처였다. 산발하다시피 아무렇게나 풀어헤뜨린 그니의 머리칼과 팅팅 부어오른 눈두덩을 보는 순간, 진용은 밤새 친구의 신상에 심각한 변고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삽짝문 살짝 지그려만 놨응깨 그냥 밀고 들어오시요!”


 
밤새도록 얼마나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지 기상이 처는 마치 시험 삼아 첫 울음 뽑아 보는 장끼마냥 꺽 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산동 고갯마루 넘다가 산서 쪽에서 오는 행인한티 얼핏 들으니깨 밤새 산서 땅에 난리가 쓸고 지나갔다고 혀서…….”


 
여울목 건너는 장마 도깨비처럼 진용은 중얼중얼 혼잣말하면서 삽짝 안으로 주춤주춤 들어섰다.


 
생목심 잡어가는 저승사자가 산동 땅은 용케도 건너뛰고 어째 산서 땅만 지나갔답디여?”


 
기상이 처가 의심에 찬 눈초리로 진용의 위아래 행색을 골골샅샅 찬찬히 살피면서 악에 받친 소리를 던졌다.


 
산동 땅이 원판 넓어놔서 면내 전체 사정은 시방 자세허니 몰르지만, 우리 친척이 사는 점촌 부락은 아직까장 별일 없는 것 같습디다.”


 
식전부터 산동은 무신 화급헌 사무로 댕겨오는 질이다요?”


 
그니가 완연한 추궁조로 표독스럽게 따지면 따질수록 진용은 더욱 태연을 가장하고자 무진장 애를 써야 했다.


 
식전 아니라 실은 어지께부터 산동에 가 있었소. 시방 점촌 생원댁 탈상례 뫼시고 오는 질이요.”


 
, 생원댁인지 진사댁인지는 몰라도 그 집 탈상례 한번 때맞춰서 잘도 뫼신 것 보니깨 최씨네들은 참말로 하늘이 점지허신 복인들이요, 복인들!”


 
언중유골이었다. 좀처럼 의심을 거둘 것 같지 않은 그니의 매서운 눈매 앞에서 진용은 갑자기 풀기를 잃고 말았다.


 
기상이는 무사허겄지요?”


 
, 세상에 둘도 없는 꾀복 친구 성기상이가 무사헌지 유사헌지는 이녁 두 눈구녁
으로 똑똑허니 살펴보시요
!”


 
그니가 방문을 다시 활짝 열어젖뜨렸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방 안 풍경이 갑자기 진용을 덮치듯 마당으로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성기상의 모습은 안 보였다. 방 안에는 아이들만 있었다. 어린것들 셋이서 제각기 밥그릇 하나씩 끌어안은 채 속에 담긴 무엇인가를 걸신들린 듯 손으로 마구 걸터먹는 중이었다. 어린것들 모습에 진용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진용은 백상암에 들른다며 저 혼자 뒤로 처져 버린 사촌 동생을 퍼뜩 떠올렸다. 부용이 그처럼 꽁무니를 빼게 된 진짜배기 이유가 무엇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진용은 당장 따귀라도 올려붙이고 싶으리만큼 사촌 동생 녀석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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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9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09-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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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꼴딱 넘어가지요오…… 갈 질은 멀지요오…….”

  등 뒤에서 따라오던 부용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기척에 진용은 뒤쪽을 핼끔 돌아다보았다. 그러자 부용이 어색스럽게 웃어 보였다.


 
먼저 내려가시지요, 형님.”


 
? 시방 같이 안 갈랑가?”


 
생각난 짐에 오래간만에 백상암에나 잠깐 댕겨올까 허고요.”


 
거그는 시방 무신 일로?”


 
부용이 막 나오려던 대답을 도로 목구멍 안쪽으로 삼켰다. 춘풍이놈 바보짓 흉내로 그저 한 차례 싱겁게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범천 스님이 허신 말, 너무 섭섭허니 새겨듣들 말게.”


 
남의 말 물어 나른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켕기는 구석이 있어 진용은 몬존한 말씨로 사촌 동생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스님이 시방 상곡 어르신 집안을 꼭 괄시허니라고 우리 부용이 되린님 부탁을 그러콤 박절허니 물리치셨겄는가? 나 최진용이가 스님이 되야서 시방 주지 자리에 앉어 있드라도 나 역시 달리 용빼는 재주 없겄데.”


 
, 꼭 그런 일로 찾어가는 게 아니라…….”


 
이게 다 시방 그놈에 비렁뱅이 같고 용천뱅이 같은 시국 탓 아니겄는가. 부처님도 몰라볼 지경으로 무지막지헌 시국이란 놈이 시방 그 늙다리 중을 어찌 알어볼 것인가. 콧바람만 약간 쐬야도 저만치 휙 널러가고 말, 그 알량난 토굴 암자 하나라도 시방 왜놈들 터럭손에서 끝까장 지켜내겄다는 각오가 참말로 가긍시럽기는 허데. 부처님 떠받들고 백상암 돌보니라 몸조심 조깨 허다 보니깨 시방 그러콤 맘에도 없는 소리가 엉겁저를에 불거져 나왔을 티지. 요샛 세상에 범천 스님만헌 도승도 별로 흔치는 않을 것이네. 자기 일신 애끼고 위허딧기 시방 범천 스님이 그 토굴 암자 끌어안고 벌벌 떨지 않었드라면 백상암은 시방 어느 바람에 널러가도 옛날 옛적에 펄써…….”


 
아버님한티는 시방 암자에 잠깐 머물다가 시방 집에 돌아갈 작정이라고 시방 형님이 말씸 잘 사뢰십쇼.”


 
한 대 쿡 쥐어박는 기세로 남의 말문을 틀어막고 나서 부용은 매몰찬 몸짓으로 홱 돌아섰다. 진용은 방금 들은 부용의 말투에서 어쩐지 부용답지 않은 구석을 느꼈다. 많이 귀에 익은 듯한 말투였는데, 돌이켜보니 다름 아닌 진용 자신의 말투였다. 시방이라는 군말을 무심결에 이야기 중간중간에 틈틈이 끼워 넣음으로써 듣는 귀로 하여금 왠지 모르게 피곤하게 만드는 말투였다. 이미 고질 버릇이 된 자신의 말투를 부용이 허가도 안 받고 멋대로 차용한 것은 일부러 사촌 형을 비꼬려는 의도임에 틀림없었다. 진용은 사촌 동생한테 흡사 모욕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진용은 왔던 길을 되짚어 휘적휘적 산으로 올라가는 사촌 동생의 뒷모습을 일삼아 째리면서 마냥 어이없어했다. 가슴속에 팥죽 끓듯 육도삼략이 들썩일지 몰라도 겉으로는 늘 맹물처럼 밍밍하게 느껴지는 헐렁이라고 치부해 왔다. 바로 그 헐렁이 인간이 뒤도 안 돌아보고 힁허케 멀어지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진용은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마당골과 감나무골 두 자연 부락을 아우르는 상곡리 풍경이 먼빛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몹쓸 재변에 휩쓸린 비극의 현장답지 않게 감나무골에는 의외의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아침밥을 짓느라 하얀 연기가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띠를 이룬 채 마을과 그 뒤편 감나무 숲을 한목에 싸잡아 서리서리 휘감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감나무골은 마냥 늦잠에 취한 듯 게을러빠진 인상을 주고 있었다. 물색없이 제멋대로 불러대는 반편이 노랫가락 덕분에 오히려 평화롭고 한가한 마을인 양 언뜻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마을이 겪는 고통이나 슬픔 따위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노래였다. 그래서 춘풍이의 잘나빠진 풍월은 도무지 이 세상의 것 아닌 다른 세상의 것처럼 들렸다. 바람받이에 선 간짓대가 윙윙 우는 현상 혹은 봄소식을 알리느라 샛내에서 밤새도록 얼음장이 갈라지며 쨍쨍 소리 내는 현상하고 별반 다를 게 없는 풍월이었다.

 

    님은 보고 잪으지요오

    해는 꼴딱 넘어가지요오

    노잣돈은 똑 떨어졌지요오

    괴얄띠는 안 끌러지지요오

    똥은 매랍지요오…….

 

  상곡리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반편이였다. 부모가 호적에 올린 신춘복이란 성명 삼자가 엄연히 따로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어연번듯한 이름으로 반편이를 불러주는 법이 없었다. 줏대 없고 소갈머리 없는 사람을 놀리는속없는 춘풍이란 말에서 연유한 별명만이 사시장철 그의 본명 행세를 하고 다녔다. 앉아도 춘풍이, 일어서도 춘풍이였다. 가도 춘풍이, 와도 춘풍이일 뿐이었다. 그런 춘풍이를 상곡 어르신 최명배는 오래전부터 머슴으로 부려 왔다. 그들 두 사람 사이는 그냥 보통 주인과 머슴 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철천지원수같이 미워도 하고 또 때로는 자기 피붙이 살붙이처럼 애지중지도 하면서 노상 아삼륙 골패짝처럼 붙어 지내는, 이를테면 세상에 둘도 없는, 아주 기이한 주종 관계였다.


 
먼 길을 한참 에돌아 산동에서 산서로 넘어오는 큰길까지 일단 나갔다가 인가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숲정이 마을 근처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진용은 일행을 편을 갈라 같은 동네 같은 방향끼리 몇 사람씩 동아리로 묶어 해산시켰다.


 
진용은 상곡리와 동천리 그리고 오암리(
五岩里) 사는 겨레붙이들을 인솔하고 길을 재촉했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나기 시작한 샛내의 물소리를 옆구리에 끼고 가다가 숲정이와 모듬물[合水] 어름에서 큰길을 버리고 다시 소롯길로 접어들었다. 감나무골을 지척에 두고 일부러 멀고도 험한 길들로만 골라 힘들게 우회해서 귀가하는 중이었다.


 
마당골 전경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언덕에 다다랐다. 진용은 그곳에서 다시 동천리와 오암리 패거리를 따로 떼어 각각 다른 길로 떠나보냈다. 이제 상곡리 사는 겨레붙이 넷과 춘풍이만이 자기 휘하에 남았다. 그들을 이끌고 마당골 복판을 가로질러 감나무골로 향할 일이 진용은 꿈만 같았다. 반드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목을 지키면서 외딴집 한 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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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8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09-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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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여, !”


  
어린 새신랑이 저보다 곱절은 더 세상을 많이 산 춘풍이의 살진 엉덩판을 거세게 걷어찼다. 춘풍이는 약간 움찔하는 듯하더니 반대편으로 끙 돌아누워 계속 잠을 잤다. 새신랑이 이번에는 저보다 곱절 이상 푸짐한 춘풍이 몸뚱이를 짚자리 밖으로 굴려내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불이여, 부울! 산불이다아!”


 
새신랑이 또다시 춘풍이 귓구멍 속으로 쇠꼬챙이 같은 고함을 밀어 넣었다.


 
? 부울?”


 
그제야 비로소 진피(
陳皮)같이 거칠고 두툼한 춘풍이 눈꺼풀이 몹시 게을리 벌어지면서 흰자위 우세한 눈알이 마지못해 드러났다.


 
오냐, 춘풍이 니 똥구녁에 불붙었다!”


 
? 춘풍이 똥구녁?”


 
잔소리 말고 싸게 못 일어나겄냐, 이 빙신아?”


 
춘풍이 뱃구레를 겨냥하고 재차 발길질을 가하려는 새신랑을 진용이 붙잡아 말렸다.


 
아서라, 아서. 아무리 생기다가 만 사람이라도 연장자한티 시방 너무 함부로 뎀벼들다가는 필경 죄로 가는 법이다.”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미장가 상태라서 그런 게 아니라 춘풍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직도 어른이 아니었다. 그는 어린 상대방하고 똑같은 어린애요 어떤 어린애와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노는 동무지간이었다. 그는 송아지 눈만큼 큼지막한 눈을 연방 꿈적이며 진용을 한참 쳐다보더니, 그제야 생각이 났던지 제 엉덩이 밑에 얼른 손을 넣었다. 실제로 불이 붙었는지 어땠는지 확인하고 나서 그는 한 차례 씨익 웃어 보였다.


 
에잉, 그짓말…….”


 
서너 박자는 좋이 늦는 춘풍이 반응은 곧바로 모든 시름을 한목에 거두어 날려 버리는 때 아닌 웃음판을 일행에게 안겨 주었다.


 
춘풍이, 너 시방 어디 갔다 오는 질이냐?”


 
녀석이 우람찬 덩치를 비척비척 일으키기를 기다려 진용이 신문하는 투로 날카롭게 물었다. 녀석은 아직도 잠이 설깬 탓인지 어리둥절한 낯꽃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니놈 붙잡고, 시방 어디 갔다 오는 질이냐고 물어 보면 으떻게 대척허라고 나가 초장부터 자상자상허니 안 일러주드냐?”


 
귓구멍에 쇠딱지가 앉게끔 장시간 경을 읽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그걸 말짱 다 까먹어 버린 모양이었다. 녀석은 얼음판에 나자빠진 황소처럼 연방 눈만 꿈적거리면서 도통 말이 없었다.


 
산동 생원댁 탈상 마당에서 이것저것 허드렛일 거들어 주고 오는 질이라고 나가 골백번도 더 일러주들 않드냐, 이놈아!”


 
, 산동 생원댁 거들어 주고 오는 질이다, 이놈아!”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되살아났던지, 춘풍이는 제법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진용에게 놈 자를 맞놓고 나서 타고난 버릇대로 한 차례 또 씨익 웃어 보였다.


 
그놈, 말대답 한번 싹수대가리 있이 잘도 허는구나.”


 
진용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녀석에게 말을 팍팍 낮추는 것과 피장파장으로 녀석 또한 어떤 상대를 막론하고 아무렇게나 반말지거리로 맞받기가 예사였다.


 
산동 생원댁 탈상 마당, 또 잊어먹으면 때깨칼로 춘풍이 니놈 붕알을 홀라당 발러 뿔란다, 이놈아!”


 
그 말이 무슨 칭찬이라도 되는 양 녀석의 입이 또 헤벌쭉 벌어진다 싶었는데, 어느 겨를에 녀석의 한쪽 손이 코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생원댁 때깨칼로 붕알을 발러 뿔란다, 이놈아!”


 
녀석이 엄지손가락을 콧방울에 갖다 붙이는 걸 보고 주변 사람들은 질겁해서 저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춘풍이 네 이놈!”


 
아무래도 자신을 과녁으로 정한 듯싶어 진용은 방패막이로 대뜸 으름장부터 놓았다. 녀석이 장승같은 키로 진용을 내려다보며 히쭉 웃는가 싶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코를 세차게 풀었다. 팽 소리와 함께 녀석의 콧구멍을 빠져나온 콧물 덩이가 아침 햇살을 가르며 탄알처럼 허공을 날았다. 녀석은 순번을 바꾸어 이번에는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반대편 콧구멍을 막고는 두 번째 팽 소리를 터뜨렸다. 누르께하고 끈적끈적하고 걸쭉한 콧물이 두 차례 모두 노송의 둥치를, 그것도 거지반 비슷한 자리를 차례로 맞히는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후에야 사람들은 경계 자세를 허물었다.


 
, 저런 육시럴 잡놈을 봤나! 굼벵이도 궁그는 재주 한 벌은 타고난다드니만, 춘풍이 저놈이 바로…….”      


 
예서제서 혀를 차는 소리가 끌끌끌 울렸다. 아무한테나 천연덕스레 반말지거리로 수작하는 재주와 함께 춘풍이가 지닌 또 하나의 비상한 재주였다. 녀석은 콧물을 날려 마음먹은 목표물을 어김없이 맞히는 남다른 솜씨로 사람들을 놀래곤 했다. 부대한 몸집 속에 그득 들어차 있어 원래부터 바보를 더욱더 바보답게 만드는 어떤 물질의 덩저리가 체온을 만나 걸쭉한 콧물로 변하는 듯했다. 녀석의 벌름한 두 콧구멍 안쪽에는 아무 때나 기분만 내키면 서너 방이고 예닐곱 방이고 간에 임의대로 계속 쏘아댈 만큼 상당량의 콧물 탄알이 항상 장전되어 있는 성싶었다.


 
이놈아, 옷에 붙은 그 검부락지나 시방 탈탈 털고 내려가거라. 탈상집 참예허고 돌아온다는 놈이 시방 그 검부락지투셍이 옷매가 웬 말이냐.”


 
춘풍이의 검정 무명옷 등덜미에 달라붙은 검부저기들을 발견하고 진용이 신칙해 마지않았다. 춘풍이 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산에서 한뎃잠 자고 내려오는 길임을 광고라도 하려는 듯 내남없이 희고 검은 옷자락에 밤새 깔고 덮었던 짚자리 흔적을 닥지닥지 붙이고 있었다. 서로 도와가며 상대방 매무새를 단속해서 말끔히 정리한 다음에야 일행은 하산 길을 잡아 마을로 향발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아, 영락없는 소핵교 아그들맨치로 시방 그러콤 줄 맞춰서 걸어가야만 쓰겄는가? 서너 명씩 적당허니 흩어져서 동네로 들어가야 넘들 눈에도 제법 그럴싸허니 뵈들 않겄는가!”


 
몇 발짝 뒤처져 따라가며 진용이 칠칠찮은 며느리 잡도리하는 시어미 본새로 앞선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쏘내기는 쏟아지지요오…….”


 
바로 그때였다. 일행의 맨 꽁무니에 붙어 산자락을 느럭느럭 내려가던 춘풍이가 느닷없이 청청한 산골 아침의 하늘을 두고 엉뚱깽뚱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송아지는 도망가지요오…….”


 
듣기 싫다, 이놈아!”


 
꼴지게는 넘어지지요오…….”


 
시끄러 죽겄네! 저놈에 입주뎅이, 그냥 댓바람에 한일자로 짜악 찢어 뿌러, 말어 뿌
?”


 
똥은 매랍지요오…… 괴얄띠는 안 끌러지지요오…….”


 
제아무리 막된 꾸지람일지라도 산서 일대가 죄 알아주는 반편이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춘풍이는 누가 뭐라 시비하건 말건 상관없이 꼴머슴들이 물미작대기로 지겟다리 두들겨가며 장단 맞춰 부르곤 하는, 그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랫가락을 마치 풍월 읊어대듯 신명나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무 눈치코치도 모르는, 가사 순서마저 제멋대로 무시한 채 걸걸한 목청으로 아무렇게나 뒤섞어 부르는 꼴머슴 노래가 마을이 점점 가까워오는 줄도 모르고 줄기차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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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7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09-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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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은 잠깐 말허리를 자르고 나서 곁눈질로 부용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부용은 그새 아무 말도 못 들은 것처럼 무심한 낯꽃을 가장하고 있었다. 사촌이 보기에도 안심찮기 짝이 없는 위인인데, 하물며 어르신 눈에는 얼마나 오죽잖아 보이실까. 주는 것도 없이 공연히 미운 녀석이었다. 언제나 눈엣가시 같은 놈이었다. 진용은 제 속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 같아 아까부터 자꾸만 부용의 존재가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는 한 차례 심호흡으로 감정을 정돈하고 나서 잘린 말허리를 되이었다.

  핏발이 서고 독이 올를 대로 올른 동네 사람들 눈에 우리가 시방 참말로 탈상 마당 참예허고 돌아오는 것맨치로 비치고 잪다면 자네들은 시방 한바탕 굿을 꾸며야 된단 말이여. 탈상집에서 빈껍데기 곡소리나마 애고대고 흘리다가 돌아오는 친척 행세 헐라거든 으떻게들 처신혀야 되겄는가 각자 각자가 시방 잘들 알어서 판단허도록 허소.”

  그리하여 최씨네 겨레붙이들은 새벽같이 산동면 점촌을 출발해서 산길 이십여 리를 걸어 마침내 산서 땅을 밟는, 명실상부한 문상객들인 것으로 다시 한 번 말을 맞추었다. 마을 사람들 의심을 다독이는 데 다소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그들은 백상산 정수리 바위가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말끔히 씻겨 상아색으로 벗겨질 때까지 추위와 허기를 참으며 하산의 적기를 한참 더 기다려야만 했다.

  차마 못헐 짓이여.”

  혹시라도 누군가의 눈에 띌까 봐 한군데 우부룩이 몰려 있던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어 놓은 다음 진용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사람 탈을 쓰고는 참말로 못헐 짓이여.”       

  아무 도움도 못 되야서 정말 미안헙니다, 형님.”

  부용이 말했다.

  그렇지만, 형님 같은 분이 아니라면 누가 이 막중허고도 복잡다단헌 일을 그러코롬 빈틈없이 처결헐 수 있겄습니까.”

  진용은 저도 모르게 입아귀에 웃음 가닥을 매달았다. 이를테면 그것은, 먹물 많이 묻은 사촌 동생이 지도자의 고충을 알아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일자무식 농투성이들이 득시글거리는 일행 가운데서 저 혼자만 군계일학으로 맵시를 뽐내는 사촌 동생이 떨떠름하게 느껴지기는 방금 전이나 매일반이었다. 매사에 낱낱이 옳은 방귀만 뽕뽕 뀌어 대는 것은 언제나 부용이 쪽이었고, 뭔가 집안에 사달이 생길 적마다 정작 악역을 도맡아 수습에 골몰하는 놈은 번번이 따로 있게 마련이었다. 병골입네, 약골입네, 하는 유세로 집안 대소사에 진자리는 피하고 마른자리만 골라 디디려는 부용의 소행머리가 여간만 괘씸한 게 아니었다.


 
부용이 자네가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혀서 노느매기로 내 짐을 맡어 준다면 얼매나 좋을꼬.”


 
한바탕 악몽에서 그럭저럭 벗어나긴 했지만, 새아침과 더불어 새로운 악몽이 눈앞
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 진용은 조석으로 이마를 맞대고 도타운 인정을 나누며 살갑게 지내온 이웃들과 대면할 일이 또 다른 악몽처럼 여겨졌다. 밤의 어둠 속에 잠시 가려져 있던 최씨네 치부들이 밝은 아침 햇살 아래 낱낱이 까발려지는 건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 최씨네 시커먼 오장육부마저 모조리 투시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디 춘풍이란 놈은 어째 여적지 코빼기도 안 비친다요?”


 
하산할 임시에 새신랑 소년 입에서 갑자기 엉뚱한 지적이 튀어나왔다. 모두들 어리벙벙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기 시작했다. 미상불 일행 가운데 유독 춘풍이만 빠져 있었다. 다른 얼굴들은 다 보이는데 춘풍이놈 그 잘난 낯짝 하나만은 어디에도 안 보였다. 날이 밝은 다음에 그놈을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일행 모두가 한동안 그놈의 얼뜬 목소리 한 마디 들어본 기억조차 없음이 이내 밝혀졌다.


 
대관절 어떻게 되야먹은 셈판이여?”


 
진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만일 춘풍이 그놈이 일행하고 따로 떨어져 혼자 마을로 내려가기라도 했다면, 그것은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몸뚱어리는 깍짓동 같아도 머리는 철부지 어린애 푼수밖에 안 되는 그 바보 천치가 눈에 핏발이 선 마을 사람들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아무 얘기나 나불나불 다 읊어댈 경우,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모다들 산지사방 흩어져서 시방 그놈을 찾어내! 당장 그놈을 못 찾어내는 날이면 참말로 난리가 나뿌러, 시방!”


 
너무도 다급해진 나머지 진용은 펄쩍펄쩍 뛰었다. 그는 일행을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산을 뒤지게 하고 다른 한 패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더듬으며 목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그 속없는 춘풍이놈이 기연시 또 사람 애간장을 말리누만!”


 
진용은 부앗김에 발부리에 걸거치는 돌멩이를 힘껏 걷어찼다. 곁에서 그 꼴을 지켜보던 부용이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지었다.


 
춘풍이를 그러콤 걷어차 봤자 형님 발만 상우게 헐 뿐이지요.”


 
시방 내 발고락 작신 뿌러져 나가는 한이 있드래도 내 당장 그놈 엉덩짝을 축구공맨치로 뻥뻥 내질러댈 수만 있다면사 십 년 묵은 체증까장 쑤욱허니 내려갈 것 같으네, 시방!”


 
우리 춘풍이로 말헐 것 같으면, 돌이나 풀 같은 자연의 일부지요. 인간이 돌이나 풀을 보고 나무람허는 건 실상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지요. 설령 춘풍이 때문에 우리 일행 전부가 낭패를 보는 한이 있드래도 그것은 어쩔 도리 없는 노릇이겄지요. 하늘이 시켜서 된 일로 믿고 형님이나 저나 우리 문중 전체가 달게 벌을 받어야 될 겁니다.”


 
부용이 또다시 옳은 방귀를 뀌어 대고 있었다. 딴은 맞는 말이기도 했다. 춘풍이놈 하는 짓거리는 참말이지 하늘님도 탓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용이 그처럼 초롱초롱한 정신머리로 옳은 방귀를 뀌면 뀔수록 진용의 마음은 점점 더 편찮아지기만 했다.


 
진용은 사촌 동생을 상대로 뭔가를 더 말할 듯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입씨름보다 춘풍이놈 찾아내는 일이 훨씬 더 시급했다. 밤새 그놈은 일행한테서 멀찌막이 떨어져 앉은 채 외돌토리로 군밤 같은 시간을 까먹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의 신분이 머슴인 까닭이었다. 일행 가운데 춘풍이는 유일한 아랫것이었다.


 
찾었다아!”


 
난데없는 환성이 솟아올랐다. 전혀 예상 밖의 장소에서 누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백상암으로 오르는 오솔길 옆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리 멀지도 않은 그곳이 바로 등잔 밑이었다. 깜짝 반가운 김에 진용은 체통이고 뭐고 땅바닥에 질질 흘리면서 부리나케 그쪽으로 달려갔다.


 
놀랍게도 춘풍이는 제 몫의 짚자리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땅거죽을 뚫고 바깥세상으로 마을 나온 노송 뿌리를 퇴침 삼아 벤 채 드렁드렁 코를 고는 중이었다. 따지고 보면 별로 놀라운 풍경도 아니었다. 오직 춘풍이 그놈만이 할 법한, 역시 춘풍이다운 짓거리일 따름이었다. 범보다 무서운 모집의 위험도, 뼛속까지 후벼 파는 한뎃 추위도 도통 아랑곳없이 그놈은 그저 만사태평으로 꿀잠에 취해 있었다. 그러잖아도 남들 곱절은 족히 되는 우람찬 체구가 아무렇게나 땅바닥에 너부러져 있으니 평상시보다 훨씬 더 푸둥푸둥해 보일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도 얼굴 표정만은 천진난만한 어린애의 그것과도 같았다. 바보의 평안과 천치의 행복이 겹으로 층으로 그 얼굴을 불그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언제 그 부아를 다 냈더냐 싶도록 진용으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정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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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6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1-09-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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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궁벽하기 짝이 없는 산골 오지에 불어 닥친 모집의 회오리바람은 먼동이 희붐히 터올 무렵에야 겨우 좀 잦아들었다. 사냥꾼이나 몰이꾼들의 감때사나운 고함은 어느 정도 머츰해진 상태였다. 탈진할 대로 탈진해 버린 아낙들 구슬픈 호곡만이 마치 잿더미 위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실연기처럼 아직도 가느다란 꼬리를 끌면서 이따금 마을 밖으로 원정을 떠나고 있었다. 쓸모가 없어진 허섭스레기 같은 자투리 소리들만이 어쩌다 간간이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거스르면서 영락없는 세숫대야 형상의 산서분지 가장자리를 방향 감각 잃은 들쥐처럼 정처 없이 맴돌고 있을 따름이었다.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들릴락 말락 아주 작게 시작된 그 소리는 금세 크고도 요란한 소음으로 바뀌었다. 사냥된 포획물을 실어 나를 화물 자동차가 마침내 면소재지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전에 목탄을 만드는 데 쓸 나무를 베어 내느라 일본인 벌목업자가 백상산 울울창창한 솔숲들을 민대가리로 배코 칠 당시 닦아 놓았던 산판 도로를 타고 털털거리는 자동차 소리와 불빛이 완만한 언덕바지를 느럭느럭 올라오고 있었다.


 
화물 자동차가 마당골과 감나무골의 경계 어름에 멈추자 한동안 머츰해졌는가 싶던 소란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양쪽 마을 위 하늘로 또다시 고함과 비명과 통곡들이 난분분히 흩날리기 시작했다. 자지러지는 통곡이 고갯마루를 허위허위 기어오르는 그 사이사이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뛰어들어 어지러이 좌충우돌했다.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엮여 자동차 쪽으로 끌려가는, 토끼 같고 노루 같고 소 같은 초식동물 사내들…… 그들 곁을 따라 땅바닥에 엎드러지고 고꾸라지며 선지같이 시뻘건 울음으로 사내들 발목을 움켜잡거나 옷자락에 매달리는 미물 같은 아낙네들…….


 
그들의 모습이 때마침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눈부신 햇발 속에 또렷이 드러났다. 사내들을 짐짝처럼 쟁여 실은 화물 자동차는 이윽고 부릉부릉 소리도 요란하게 여타의 잡살뱅이 소리들을 압도하면서 내리막 비탈면을 빠른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자동차 꽁무니를 자동차 못지않은 속력으로 뒤쫓으면서 뼈를 갉는 통곡들이 필사적인 경주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무개 즈그 아부지요오!

  우리 아무개, 우리 아무개야아!

  아이고, 내 새끼야아!


 
가속을 멀리 떠나보내는 아녀자들 울부짖음이 메아리로 변해 이 산 저 산 함부로 부딪다가 출발할 당시보다 많이 수척해진 모습으로 본래의 자리에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에 화답하는 화물 자동차 속 남정들 고함 또한 덩치 큰 메아리가 되어 이 산 저 산 함부로 들이받다가 아낙들 울부짖음 위로 엎어지고 포개지며 어지러이 덧게비치고 있었다. 자동차 속 지아비들과 길바닥 위 지어미들이 서로서로 자기네 소생 이름으로 상대방을 목청껏 불러대는 소란으로 말미암아 산서 고을의 무고한 산천초목들마저 덩달아 뻑적지근하게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지아비들과 지어미들 간격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서로 부르고 답하는 두 뭉텅이 울부짖음은 면소재지 쪽을 향해 줄곧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화물 자동차 뒤꽁무니를 밟아 세상 저 끝까지라도 뜀박질쳐 따라가기로 작심한 사람들 같았다. 아낙들 몸놀림이 그 이상 극성스러울 수 없었고, 아낙들 목청 또한 그 이상 그악스러울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기나긴 악몽의 밤이 물러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날이 들어섰다. 산과 산이 병풍처럼 둘린 동녘이 훤히 트이기 시작했다. 굽이치는 거센 파도형상의 산줄기 윤곽이 시시각각 뚜렷해지고, 한쪽에서 늑장 부리던 어둠발이 바투 다가선 햇살에 걷어 차여 어마뜨거라 질겁하고 잰걸음으로 퇴각을 서둘렀다. 어느 먼 마을에서 얼빠진 수탉 한 마리가 어제나 다름없이 또다시 새아침이 찾아왔음을 고하느라 그리 잘나지도 못한 목청을 뒤늦게 뽑으며 꼬끼오 하고 왜장질을 쳤다. 그러자 감나무골 수탉 한 마리도 그 소리에 에멜무지로 화답하는 시늉을 했다. 끔찍했던 지난밤을 고스란히 견디는 동안 짐승들도 인간들 못지않이 잔뜩 주눅 들어 있었음이 분명했다.


 
저런, 모가지를 확 비틀어 쥑일 축생 같으니라고!”


 
욕지거리와 동시에 누군가 눈에 뵈지도 않는 감나무골 수탉을 겨냥하고 힘껏 팔맷돌을 날렸다. 돌멩이는 그다지 멀리 날지도 못하고 바로 지척지지에 툭 떨어졌다. 그 소리를 군호 삼아 산속의 사내들이 한꺼번에 엉덩이를 탈탈 털면서 짚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각각 깔고 앉았던 짚자리를 모아 한군데 쌓은 다음 다복솔 사이를 일없이 바장이고 서성거렸다. 장시간 추위에 부대끼느라 서로 어긋물린 듯 쩌릿쩌릿 마치고 쑤시는 뼈마디들을 도로 끼워 맞추기 위해 하낫둘 하낫둘 도수 체조를 하는 자도 더러 눈에 띄었다.


 
어서 하산을 서두르자는 주장이 한쪽에서 불거졌다. 모집 지랄이 다 끝났으니 이제는 마을로 돌아가도 무방할 거라는 주장이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가시지 않는 추위에 고드름똥 싸는 한이 있더라도 한참 더 산에서 지체해야 된다고 야단들이었다. 모집인들이 산서 각 마을에서 모조리 철수한 사실이 확연히 밝혀질 때까지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는, 섣불리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자네들 정신머리가 시방 온전헌 사람들인가, 고장 난 사람들인가?”


 
최진용은 멀쩡한 이목구비를 한껏 일그러뜨려 험상을 만든 다음 시시비비에 한창 고부라진 면면들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커니, 아직은 안 된다커니, 아까부터 콩팔칠팔 우김질을 계속하던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진용에게 쏠렸다.


 
우리가 시방 왜놈들이 모집 나올지 미리감치 거니를 채고 시방 우리찌리만 작당혀서 부랴사랴 동네를 빠져나온 참이든가? 우리가 시방 동네 이웃들 나 몰라라 허고 시방 우리찌리만 살 궁리 도모허는 인면수심 악질들인가? 이 사람들아, 제발 정신들 채리소! 정신 조깨 채려! 자네들은 시방, 밤쥐도 낮새도 몰르게 살째기 피난질 댕겨오니라 명허시던 상곡 그 어르신 신신당부 말씸도 그새 말짱 다 까먹고 말었는가?”


 
진용한테 호되게 지청구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아뿔싸 후회하는 낯꽃이었다.


 
아차, 그렇구만요!”


 
맞었어라우. 진용이 아제 말씸대로 우리는 시방 왜놈들 모집 바람 겁나서 도망 나온 처지가 아녔구만요.”


 
그렇다마다. 어짓밤에 우리는 문중 어른 탈상 마당에 참예혔다가 오날 아침에 집구석으로 돌아갈 참이었지? 에또, 그러고 그 탈상집은 어디였드라? 가만있자, 산동면허고도 점촌이었지, 아매?”


 
시끄럽다, 이 사람들아!”


 
진용은 거푸 소래기를 지르고 소가지를 부렸다. 자고로 매사는 불여튼튼이라 혔느니, 하시던 사랑채의 상곡 어르신 말씀이 백상산 중턱까지 그의 꽁무니를 좇아와 있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진용은 지각없는 사람들 가슴속에 재차 말뚝을 콱 질러 주기로 작정했다.


 
이 판국에 시방 우리가 겁낼 것은 모집 지랄도 아니고 왜놈들도 아니란 말이여, 이 사람들아! 그것들은 시방 멀찌가니 물러가고 근방에는 없단 말이여. 산서 땅에서 시방 우리를 지달리고 있는 것은 조선 사람들이고, 우리 이웃사촌들이고, 그 사람들 피맺힌 원한들이여. 왜놈들 모집보담도 그것들이 몇 배, 몇십 배나 더 무섭고 겁나는지 자네들은 시방 명심혀야 되야. 동네 고샅 안에 발 들여놓기 무섭게 그 사람들한티 우리가 시방 무신 봉변을 당허게 될지 아무도 몰르는 판국이란 말이여, 이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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