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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95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1-3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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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줄 같은 목심줄 한 가닥 간댕간댕 붙어 있다고 고것이 다 사람인지 아냐? 살어생전 밥버럭지 노릇이나 험시나 애비 애간장 바싹바싹 말리는 애물단지로 살어가는 것이 워디 인피 덮어쓴 인간이 헐 짓이여? 불가사리맨치로 생피 같고 생살 같은 내 재물 와작와작 깨물어먹고 산송장맨치로 깔딱깔딱 연명허느니 차라리 일찌가니 칵 자진허거라! 쎗바닥 작신 깨물든가 둥구나무에 대롱대롱 목 매달어서 칵허니 자진허란 말이다, 이 뇌점 구신아!”

 

  점심 무렵, 결국 면소재지 의원이 왕진가방 들고 집안에 발걸음한 사실을 용케 알아차리자 야마니시 영감의 노호는 마침내 극에 다다르고 말았다. 감나무골 전체가 인근 마을 마당골까지 한목에 옮아가게끔 소리소리 악담을 퍼붓고 나서 영감은 대문 밖으로 힁허케 뛰쳐나갔다.

 

  부용의 심상찮은 병세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집안 분위기가 살얼음판 한가지로 위태위태한 판국인데, 엎친 데 덮쳐 최진용이 축 처진 어깨에 잔뜩 풀죽은 낯꽃으로 대문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진용을 대하는 첫 순간, 순금은 대뜸 사촌오라비 수중에 매우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물이 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참말로 면목이 없구만이라, 작은어머님.”

 

  식전부터 내내 제정신 아닌 관촌댁 앞에서 진용은 만고의 죄인인 양 감히 고개도 바루지 못했다.

 

  면목이 없다고? 그렇다 허이면…….”

 

  눈뚜깽이 벌어지기 무섭게 시방 팔랑개비맨치로 시방 소재지 사는 유병택이를 찾어가서 시방 그놈을 만나기는 만났는디…….”

 

  만났는디?”

 

  하따, 참말로 시방 말도 안 나오누만요. 그 비럭질허다 뒤어질 놈이 시방 즈그 동기동창한티 헌다는 말뽄새가 시방…….”

 

  자네가 시방 내 애간장 꼬들꼬들 말려 쥑일 작정인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멋쩍게 뒤통수만 연방 긁적여대는 진용을 상대로 관촌댁은 끝내 표독스럽게 죄인 잡도리를 시작했다.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상서로운 소식 줄줄이 물어 날라줄 까치 대접받던 진용이 이제는 까악까악 불길한 소식 전하러 나타난 까마귀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하따, 유병택이 그놈이 시방 아, 글씨…….”

 

  오라버님, 부용이가 지금 많이 편찮어요. 집안이 왼통 어수선허고 뒤숭숭헌 판이니깨 뜸은 고만 들이고 어서 말씀이나 끄내셔요.”

 

  보다 못한 순금이 진용에게 넌지시 귀엣말을 건넸다. 그러자 진용은 숙모보다 사촌누이 상대하는 편이 훨씬 더 임의롭겠다 싶었던지 얼른 순금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인간 유병택이를 시방 으떻게 보고 시방 고 따우 개수작이냐고 시방 그놈이 내 얼굴에 막 삿대질허고 뎀비잖겄냐. 사람들이 시방 저보고 시방 주재소 정보원입네, 헌병대 밀정입네, 허고 시방 손구락질허고 쑤군덕거리는지 저도 다 알고 있는디, 고것은 시방 천부당만부당헌 오해고 모함질이라고 시방 됩데로 내 앞에서 큰소리치잖겄냐. 오암리 과수댁은 시방 말헐 것도 없고 시방 오암리 근방에도 얼씬헌 적 없노라고 시방 딱 잡어띠잖겄냐. 외려 그놈이 시방 한술 더 떠서 헌다는 소리가, 대관절 어느 입주뎅이가 시방 고 따우 생사람 잡는 소리로 시방 애민 유병택이를 모함혔는지 알기만 허는 날이면 시방 절대로 가만 내비두들 않겄다고 시방 펄쩍펄쩍 뛰고 난리를 치잖겄냐. 그런 판국인디 시방 낸들 무신 헐 말이 더 있겄냐. 화무는 십일홍이라느니,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라느니, 어쩌고저쩌고 시방 그놈이 엉뚱깽뚱헌 소리나 씨월거리는 꼴만 멀거니 쳐다보다가 시방 그냥 돌쳐서 뿔고 말었다.”

 

  그 순간, 관촌댁이 이마에 손을 짚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온몸을 빈 쌀자루 모양으로 아무렇게나 구기박지르면서 마당으로 털썩 무너져 내렸다. 두 사촌남매가 동시에 달라붙어 땅바닥에 쓰러진 관촌댁을 부액해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관촌댁은 딸의 손도, 장조카 손도 한목에 뿌리치면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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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94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1-3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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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이가 뭣이라 그러디야?”

 

 아모 염려 말라고 그러드래요.”

 

  갱신조차 여의롭지 않은 동생을 대신해서 순금이 잽싸게 엉너리를 쳤다. 그 순간 온몸을 흠칫 떠는 부용의 반사적 움직임이 겨드랑이에 낀 손을 통해 순금에게 전해졌다. 관촌댁까지 한 덩이로 합세해서 세 사람은 급히 구석방으로 향했다.

 

  날이 밝는 꼴로 진용이 형님이 소재지에 나가서 유가 건달을 만나 보겄다고 약조혔습니다.”

 

  방안에 들자마자 이부자리 위로 픽 고꾸라지면서 부용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모했던 밤마을에서 거둔 성과를 아까보다 약간 더 구체적으로 전했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바탕에서 진땀이 끈끈히 배어나온 탓에 부용의 낯꽃은 기름 다룬 양철초롱처럼 불빛에 번들거렸다.

 

  유간지 왜놈들 밑씻개 노릇인지 헌다는 그 옘병헐 놈허고 친구지간이 틀림없다고 장담허디야?”

 

  진용이 형님이랑 동기동창이랍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귀용이 학자금 전달헐 인편 핑계대고 신용헐 만헌 인물 골라서 당장 경성으로 올려 보내겄다고, 그 인물 시켜서 시방 경성 쪽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판속인지 소상허니 알어보겄다고 형님이 자진혀서 약조허드만요.”

 

  아이고, 우리 진용이 장조카가 나서서 고로코롬만 심을 써준다면사 얼매나 고마운 일이겄냐! 우선 그런 말만 들어도 이 에미 맴은 한근심 덜어낸 것 같으다!”

 

  관촌댁은 연방 앙가슴을 손바닥으로 싹싹 쓸어내렸다. 부용은 네 활개 활짝 펼친 채 이부자리 위에 방만하게 드러누워 숨을 가삐 몰아쉬면서도 음색만은 제법 밝은 것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우선은 오지랖 넓은 우리 진용이 형님 수완을 믿고 지달려 봐야 되겄지요. 경성 쪽 실상이 정확허니 밝혀지고 나면 두 놈들 차후 문제 역시 진용이 형님이 잽싸게 수완을 발휘혀서 뭔가 좋은 해결 방도를 반다시 찾어내 줄 거라고 믿습니다.”

 

  마치 죽은 목숨도 살려내는 무슨 신묘한 재간이라도 지닌 인물인 양 부용은 말끝마다 사촌형의 비범한 수완을 강조해 마지않았다. 순금은 서늘한 밤기운 속에서도 진땀이 찌걱찌걱 배어나는 부용의 얼굴에서 왠지 모르게 낙관 아닌 비관을 읽고 있었다. 일 저지른 두 경성 유학생들 쪽보다 한 발짝 앞서 부용이 제일착으로 잘못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산서 최문의 젊은 지도자이자 천석꾼 살림의 집사로서 여태껏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의 수족처럼 또는 입 안의 혀처럼 집안 대소사 휘어잡아 두루 충실히 처결해 나온 최진용의 그 능수능란한 재간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저마다 가슴속에 알뜰살뜰히 갈무리한 채 두 모녀는 부용의 거처방을 나섰다. 관촌댁은 안방으로 들어가고, 순금은 밤샘 작업을 위해 또다시 제 베틀공방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날이 밝자마자 밤새 어둠에 가려 있던 우려의 조짐이 곧 눈앞에 실상으로 드러났다. 간밤에 크게 무리를 범한 부용을 심통 사나운 병마가 그냥저냥 곱게 놓아둘 리 없었다. 이마에 얹은 물수건이 금세 꾸덕꾸덕 마를 지경으로 신열이 펄펄 끓는 데다 기침 또한 부쩍 더 심해졌고, 울컥울컥 뱉어내는 가래에는 선홍빛 핏기마저 덩이져 섞여 나오곤 했다. 두어 달장근에 걸쳐 어머니와 누이가 지성으로 병구완이야 약수발이야 매달린 덕분에 꽤나 차도를 보이는 듯싶던 부용의 병세가 단지 그 하룻밤의 무리로 말미암아 그만 원점으로 멀찌감치 되돌아가버린 셈이었다. 공든 탑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리는 허망감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관촌댁은 연방 장탄식 늘어놓기 바빴다.

 

  손톱 밑에 피멍 맺히드락 밤낮으로 죽어라 호박씨 까서 한입에 홀라당 털어옇고 말어 뿌렀고나! 한입에 홀라당 다 털어옇고 말어 뿌렀어!”

 

 여느 날과 달리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레 안팎으로 나부대며 유난떠는 안채 분위기를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이 얼른 눈치로 때려잡고는 식전부터 부아통 질렀다 끄기를 거듭하면서 혼자서 족히 열 사람 몫의 야단법석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기침 발작이 한 파수 고빗사위 넘을 적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누르지 못했다. 사랑채까지 한달음에 건너오는 큰아들의 그 악의에 찬 기침 공세에 대거리하기 위해 그는 마치 힘껏 팡개를 쳐서 가을 볏논 해치는 참새 떼 멀리 쫓아버리듯 안채를 겨냥하고 번번이 무지막지한 저주의 말들을 흙덩이처럼 휙휙 날려 보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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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93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1-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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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라.”

 

  듬뿍 뜬 깨죽 한 술을 부용의 입 근처로 운반하면서 순금은 어린애 다루듯 입을 한껏 크게 벌릴 것을 지시했다.

 

  너 밤마실 나갈 적에 나도 같이 따러가마.”

 

  우격다짐으로 입 안에 들어온 것을 마지못해 목젖 너머로 넘기고 나서 부용은 소태라도 씹은 듯 잔뜩 우거지상을 지었다. 그 깨지락거리는 먹음새가 순금은 아무래도 안심찮게 느껴졌다.

 

  시방 무신 말씀을 허시는 겁니까?”

 

  몸져누운 이래 맨 처음 시도하는 부용의 대문 밖 출입이요 밤나들이였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그 몸뚱이로 야밤중에 이웃 마을까지 다녀온다는 게 아무래도 이만저만 무리가 아닐 성싶었다.

 

  누님이 그러시면 될 일도 안 됩니다. 제가 배깥에 나가 있는 동안에 누님은 보통 때랑 똑같이 열성으로 베를 짜고 계셔야만 됩니다. 철커덕철커덕 베 짜는 소리가 헛간에서 밤새드락 울려야만 집안에 별다른 일 없는지 알고 아버님이 안심을 허시지요.”

 

  딴은 그 말도 옳겠거니 싶었다. 순금은 먼젓번 것보다 더 고봉으로 뜬 깨죽 숟갈 위에 제가 느끼는 노파심까지 한 덩이 덤으로 얹어 부용의 코밑에 불쑥 들이밀었다.

 

  , 새칠로 아, 혀라.”

 

  입맛이란 놈이 십 리는 달어나 뿌러서 인자 더는 못 먹겄습니다.”

 

  점심때부텀 탈탈 굶은 빈속으로 너를 암야원행에 내보낼 수는 없다. 내가 같이 가고 안 가고는 니가 죽을 얼매나 먹는지 봐서 양단간에 결정헐란다. 자아, 다시 한 번 아아, 혀라.”

 

  사촌형 만나기 위해 은밀히 암야행을 도모했던 부용은 자정이 훨씬 기운 시각에야 지칠 대로 흠씬 지친 몸을 끌고 기신기신 집에 돌아왔다. 베틀에 앉아 작업하는 동안에도 순금은 쫑긋 세운 두 귀를 방문 밖에 척후병으로 내보내 복구의 동태를 감시하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부용의 귀가를 내내 기다리던 참이었다. 갑자기 목에 매인 쇠줄을 철그렁거리며 낑낑대기 시작하는 복구란 놈의 부산스러운 기척을 듣고 부용의 발걸음이 집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아챈 순금이 살그머니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열어 주었다. 부용은 대문 기둥에다 온몸을 부리면서 잠시 가쁜 숨결을 다스렸다.

 

  어떻게 되얐냐?”

 

  언제 또다시 터져 나올지 모르는 기침에 대비하느라 거지반 틀어막다시피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부용이 웅얼웅얼 대답했다.

 

  잘되얐어요.”

 

  뭣이 잘되얐어?”

 

  하나에서 열까장 모든 문제가 전부 다요.”

 

  비로소 손수건을 입에서 떼면서 부용이 한결 또렷해진 음색으로 대꾸했다. 지레 걱정했던 만큼 부용의 상태는 그렇게 기진맥진한 정도는 아닌 듯싶었다. 밤마을 나간 병자의 신상에 꼭 무슨 불상사가 터질 것만 같다는 사위스러운 생각 때문에 순금은 베틀에 앉아 있으면서도 정작 바디질은 부업을 삼는 대신 온몸 구석구석의 오감을 온통 귀 쪽으로 그러모아 방문 바깥 동정 살피는 일을 주업으로 삼아야 했다.

 

  뭣이 뭣인지 잘은 모르지만, 좌우지간 수고 많었다. 어서 들어가자.”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문제가 전부 다 잘 되었다는, 너무도 간결하고 시원시원한 그 대답에 순금은 도리어 일말의 미심쩍음과 불안감을 느끼면서 부용의 허깨비 같은 병구를 곁에서 바싹 부액했다.

 

  아이고, 내 새끼 왔고나!”

 

  한 박자 뒤늦게 낌새를 채고 밖으로 뛰어나온 관촌댁이 어둠 속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병골 자식을 버선발로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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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92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1-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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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미소로 시작된 웃음에 차츰 소리가 덧붙고 오기가 얹히면서 점점 더 커다래지다가 막판에는 온몸을 뒤흔드는 격한 웃음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한바탕 미친 듯이 홍소를 터뜨리던 끝에 부용은 그예 또 기침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웃음으로 기침을 불러들이고, 그 기침을 채찍처럼 휘둘러 자신을 마구 학대하는 그 위악에 찬 행동을 순금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우두망찰할 수밖에 없었다.

 

  순금은 오후나절 내내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일하고 싶다는, 일해야 되겠다는 의욕이 전혀 일지 않았다. 집 안팎으로 마구 들이닥치는 돌발사의 연속으로 말미암아 심신이 두루 피폐해 있는 상태였다. 베짜기 작업을 쉬는 동안 순금은 저 혼자만의 공간인 베틀공방 안에 틀어박힌 채 내내 기도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교계의 심각한 분열과 문 목사의 영적 방황이 하루빨리 마감되게끔 전능왕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해 주실 것을 빌었다. 불신자들에 의해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 가정의 평안을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세력의 최선봉에 가담해 있는 아버지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집안의 화평과 안녕을 위협하는 갖가지 간난신고로부터 가족 모두를 건져주고 지켜주실 것을 빌었다. 육신은 물론 영혼의 질병마저 이미 고황에 들어버린 부용이 신유의 은택을 입어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끔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베풀어 주시기를 빌었다. 최귀용과 배낙철 두 젊은 생령이 사상과 관련된 행적으로 말미암아 고초를 겪음은 물론 양쪽 집안을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 없게끔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사고 만유의 주를 향해 빌고 또 빌었다.

 

  남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할 만큼 한 다음, 그래도 남아 있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순금은 마지막 순번으로 저 자신의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장래에서 비롯되는 태산 같은 두려움 덩어리가 연자매처럼 빙빙 돌면서 제 가슴을 곡분 빻듯 몽글게 갈아대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주님 인도하시는 그 길 아닌, 다른 엉뚱한 길로 제 몸뚱이 질질 끌고 가기 위해 제 장래에 코뚜레하고 멍에를 지워 마구 잡아끄는 사단의 세력이 도처에 깔려 있음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그들의 사악한 의도로부터 저 자신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만군의 여호와 앞에 간구하는 것으로 일습의 기도 절차를 모두 끝마쳤다.

 

  낮에 미리 전갈을 받은 최진용이 해질녘에 감나무골 작은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면소재지 나들이에서 돌아온 천석꾼 영감 뒤를 좇아 사랑채로 들어간 진용은 집안 대소사를 방 가운데 놓고 숙질간에 장시간 무릎 맞대고 상의에 상의를 거듭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어머니에게 잠깐 인사드린다는 구실로 안채에 들렀다. 떡 삶은 물에 중의 데치듯 진용은 기왕 내친걸음에 와병 중인 부용하고도 오랜만에 상면했는데, 의례적인 병문안 말고는 두 사촌 사이에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 눈치였다.

 

  긴간사로 용무가 생겼다고, 이따가 밤중에 형님 집으로 찾어뵙겄다고 살째기 운만 띠어놨어요.”

 

  실망스러우리만큼 지극히 짧게 끝나버린 사촌형과의 만남에 대해 부용은 간략히 설명했다. 부실한 몸 이끌고 멀리 밤마을 다녀오느라 무리할 필요 없이 진용이 제 발로 찾아온 기회에 이야기를 끝내는 편이 차라리 좋을 뻔했다는 순금의 지적에 대한 대꾸였다.

 

  사랑채 바로 코앞에서 형님 상대로 그놈들 문제 끄집어낼 기분이 당최 안 들어서요.”

 

  부용은 저녁거리로 개다리소반 위에 날름 올라앉아 있는 깨죽 그릇 쪽을 짐짓 외면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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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91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1-2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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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집안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남녀노소 식솔들 모두의 혼백을 골고루 다 뽑아내고 나서야 아버지는 벽력같은 고함질로 모처럼 오랜만에 안채에 발걸음하게 만든 용건을 밝혔다.

 

  진용이놈더러 해전에 사랑채 댕겨가라고 기별을 혀!”

 

  영감 입에서 진용이란 이름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방에서 부랴사랴 뛰쳐나오면서 어머니 얼굴이 댓바람에 흙빛으로 변했다.

 

  진용이는 또 무신 일로요?”

 

  무신 일이라니? , 다음달치 학자금에다 하숙비랑 암냥혀서 경성으로 올려 보낼라면 심바람시킬 놈이 있어야 헐 것 아녀!”

 

  순금의 시선과 어머니의 시선이 중간지점에서 조심조심 만나 근심스럽게 상대편 안부를 확인했다. 순사들 감시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부용이 야음을 틈타 사촌형 찾아가려는 계획을 아직은 아버지가 눈치 채지 못했음이 분명해졌다. 안도감 같기도 하고 조바심 같기도 한, 참으로 애매모호하고 복잡다단한 표정이 어머니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엇갈리고 있었다.

 

  알었구만요.”

 

  인자 우리 최씨 문중에서 믿을 구석이라고는 그저 귀용이 그놈 하나뿐이여! 그렁깨 눈꼽만침이라도 귀용이 학업에 지장이 없게코롬 우리가 미리미리 다 알어서 만단으로 뒷배를 봐줘야 쓴단 말이여!”

 

  어머니와 순금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중간지점에서 딱 만나 의미심장한 신호를 서로 주고받았다. 만에 하나 잘못되는 일 생길까봐 유난히도 물고 떠는 둘째 아들이었다. 장차 문중의 어둠을 밝힐 남포등, 아니, 칠흑의 밤바다 밝히는 등댓불 같은 존재인 귀용을 향한 끔찍한 부성애를 새삼스레 집안 식구 모두에게 광고 돌리고 나서 아버지는 면소재지에 볼일 생겼다며 힁허케 대문을 나섰다.

 

  휴우, 십 년은 족히 감수헌 것 같으다!”

 

  흑단나무 몸통에 호사스러운 상아 장식 손잡이가 달린 박래품 개화장(開化杖)으로 죄 없는 땅바닥을 공연히 매질하면서 씨억씨억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성난 발소리가 귀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려 어머니는 대짜배기 한숨으로 한동안 꽉 막혀 있던 숨통을 간신히 틔웠다.

 

  무신 놈에 승깔이 저 지경으로 개차반인지, !”

 

  한 파수 모진 풍파 휩쓸고 지나간 자리 위에 어머니는 서리서리 뭉쳐두었던 가슴속 푸념을 한바탕 푸짐하게 쏟아놓기 시작했다. 순금은 퍼뜩 구석방 쪽에 생각이 미쳤다. 아버지의 마구잡이 저주가 다시 한 번 부용의 가슴에 입혔을 치명상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었다.

 

  나다, 부용아.”

 

  순금은 구석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괘얀시 애쓰실 필요 없어요.”

 

  햇볕 당양한 점심나절인데도 부용의 방안은 어두웠다. 아니, 바깥세상이 당양하면 할수록 오히려 굴속처럼 더욱 어둠침침할 수밖에 없는 구석방 바닥에 똑바로 드러누운 채 부용은 멀뚱멀뚱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심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무신 소리냐?”

 

  누님이 시방 무신 말을 허실라고 헐레벌떡 달려왔는지 다 안다고요. 아버님 말씀에 한 치도 틀린 대목이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고요.”

 

  부용아, 제발 아버님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뿔거라. 따지고 보면 아버님만침 세상을 불행허게 사시는 분도 아매 없을 것이다. 우리 아버님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쌍허신 분이다.”

 

  참말이지 저는 암시랑토 않다니깨요. 그냥 저 혼자 있고 잪을 뿐이지요.”

 

  제발 귀찮게 굴지 말아 달라는 소리였다. 물러가기 전에 상처 받은 부용의 가슴을 다독여 줄 적절한 표현이 당장 떠오르지 않아 순금은 구석방 앞에서 잠시 머뭇머뭇했다.

 

  누님은 우습지도 않어요? 자꼬만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바람에 저는 아까막시 아조 혼났어요. 시방 당신 몸속에서 염통 곪아 터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손톱 밑에 백힌 까시만 걱정허시는 꼴 영락없잖든가요? 아버님 몰래 숨어서 웃니라고 기침이 터지는 바람에 참말로 죽는지 알었다니깨요.”

 

  부용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몸으로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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