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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7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3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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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예수 소리만 언뜻 귀에 걸릴라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아버지인 줄 번연히 알면서 누님은 여봐란듯이 검은 가죽표지의 두툼한 성경책 천연덕스레 옆구리에 척 끼고 이따금 밤마을을 다녀오곤 했다. 산서 어느 동네 어떤 은밀한 처소에서 목사 부인을 비롯한 여러 신자들과 함께 수시로 집회를 갖는 눈치였다. 지난번 심야 타종 사건 이후 샛내교회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목사는 헌병대에 붙잡혀 끌려가 이미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고, 목사 부인과 몇몇 주요 신자들 또한 피의자 내지 참고인 자격으로 헌병대 문턱이 닳도록 뻔질나게 불려 다니는 실정이었다. 그 와중에서 누님은 담장 바깥뿐만 아니라 담장 안쪽 세계에서도 노골적으로 자신의 신심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이곤 했다. 사랑채까지 낭랑히 울려 퍼지게끔 목청 곱게 가다듬어 찬송가 가락을 텃밭에다 망아지처럼 풀어놓는가 하면 때와 곳 가리지 않고 중얼중얼 끊임없이 기도 소리를 새처럼 하늘로 날려 띄우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제까지 음지에만 머물던 예수가 최순금 성도의 방조 행위에 힘입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양지 속의 예수로 모습을 바꾸면서 온 집안을 멋대로 활보하고 다니는 형국이었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던져볼까요? 만약에말입니다, 최순금 성도가 신봉허는 예수 그리스도허고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이 떠받드는 덴노헤이까허고 둘이서 씨름판에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그것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질문이고나. 그것이사 뭐 보나마나 덴노헤이까 쪽이 이기잖겄냐?”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이사 뭐 뻔헌 노릇이지. 샛내교회가 하로아침에 폐문되고 우리 목사님이 잽혀가신 것만 봐도 얼매든지 알 수 있는 일이잖냐.”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허고 맑스, 레닌이 맞붙을 경우는요?”

 

  그것도 뭐 노서아 혁명을 보면 얼매든지 짐작헐 수 있는 일 아니냐.”

 

  그렇지요? 누님도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허고 있지요? 그런디 누님은 뭣 땜시 인간 선수들 상대로 겨루는 씨름판에서 단 한 판도 못 이기고 번번이 주저앉고 벌렁 나가떨어지기만 허는 그런 헛신을 그렇게 참신맨치로 알뜰살뜰 뫼시고 지성으로 섬기는 겁니까?”

 

  아까도 어리석드니만 시방도 여전히 어리석고나. 너는 하나만 알었지 둘은 모르는 겉똑똑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헐 것 같으면, 번번이 지시면서 동시에 번번이 이기시는 분이니라. 역부러 상대방한티 지는 척허시는 허허실실 전법을 써서 막판에 가서 됩데 이기는 전략을 구사허시는, 참으로 지혜로우신 장수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사로 낮아지심으로 결국에는 하늘로 높이 들리셨다. 죄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심으로 종당에는 빌라도 총독으로 하야곰 영원형벌 면치 못허게코롬 인류 역사의 법정에다 그자를 꽁꽁 묶어놓으셨다. 세상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치욕을 영광으로 바꾸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권세 깨트리고 부활허심으로 끝내 천국보좌에 오르셨다. 가이사를 수용허심으로 대로마제국을 기연시 영구불변 절대진리 앞에 복속시키셨다.”

  무신 사연들이 그렇게 복잡허고 기괴망측헙니까?”

 

  자아, 진실이 이러헌디도 너는 씨름판에서 우리 주님 아니라 덴노헤이까 쪽이나 맑스나 레닌 일당 쪽에다 돈을 걸 작정이냐? 날더러 매번 패배허심으로 판판이 승리허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장 저바리고 개종허라고 충고허는 거냐? 그 대신, 당장은 승리허는 것 같으면서도 종당에는 패망으로 끝장을 보고 말 덴노헤이까를 섬기지 않는다고 나한티 시방 충고허고 잪은 건 아니겄지, 설마?”

 

  박수갈채라도 짝짝짝 보내드릴까요? 차라리 집안 살림 죄다 접어뿔고 요번 기회에 전도부인으로 본때 있게 나서시지요.”

 

  꼭 그런 식으로 빈정댈 일만은 아니다. 부용이 너만 웬만침 건강이 회복되고 나면 혹시 또 누가 아냐, 최순금이가 진짜 전도부인으로 나서게 될지?”

 

  우리 순금이 누님께서 본격적인 전도부인으로 나서는 꼴 보고 잪지 않어서라도 제 병은 아매 죽는 날까장 낫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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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6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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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이 한목에 같이 울어뿔면 한물이 져서 우리 집채가 둥둥 떠내려갈깨미 나는 울고 잪어도 못 울겄다.”

 

  누님이 정 싫으시다면 별수 없지요. 저도 그만둘랍니다.”

 

  잘 생각혔다. 귀용이랑 낙철이 문제는 진용이 오라버님한티 온전히 다 맽기고 너는 그저 약이나 꼬박꼬박 잘 챙겨 먹거라. 너까장 덩달어서 노심초사헌다고 당장 해결될 일은 아니니깨.”

 

  산송장 매일반인 이 최부용이란 인간이 무신 기력으로 그 녀석들 걱정까장 떠맡고 나서겄습니까. 다 엿들으신 것 같어서 허는 말이지만, 그 녀석들 붙잽힌 것이 참말로 다행이라고, 한근심 덜었으니깨 인제는 두 다리 쭉 뻗고 자도 괭기찮겄다고, 진용이 형님한티 제 진정을 토로혔습니다.”

 

  위악도 위선 못잖이 질이 낮은 상품이다. 역부러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몰아세우고 학대헌다고 사정이 달러질 게 뭣이 있겄냐. 부용아, 제발 부탁이다. 모쪼록 자중자애허기 바란다.”

 

  과연 누님은 우리 최씨 집안에서 고등계 민완형사시고 인정사정 모르는 헌병대 군조십니다그랴.”

 

  참말로 못 허는 소리가 없고나.”

 

  그것은 결코 실없쟁이의 객쩍은 말장난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고등계 형사나 헌병대 군조 그 이상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치 참새가 봉황으로 바뀌듯 누님은 불과 달장근에서 달소수에 걸친 그 짧은 기간에 최 씨 가문의 새로운 실력자로 그 지위가 몰라보리만큼 격상해 있었다. 오나가나 노상 구박만 받던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한 집안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영솔자 신분으로 놀랍도록 변신에 성공한 것이었다. 한 집안의 운명이 바야흐로 풍비박산의 위기에 처하자 누님은 충격과 허탈감에 휩싸인 집안 분위기를 잽싸게 다잡고 나섰다. 그리고 여태껏 소복담장 내부 은밀한 구석에 잠들어 있던 자신의 숨은 능력을 깨워 일으킴으로써 부재중인 아버지와 심약한 어머니 대신 집 안팎의 대소 살림을 도맡아 관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부용으로서는 한 번 죽었다 두 번 깨어나도 감당치 못할, 참으로 막중한 역할이었다. 한갓 여리디여린 처자인 줄만 알았던 누님이 어느 한 순간에 느닷없이 여장부로 돌변해서 댓바람에 집안 살림꾼 역할을 꿰차고 나서는 광경을 부용은 내내 경탄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차라리 누님이랑 저랑 남녀 성별을 맞바꿔서 꺼꿀로 태어났드라면 피차간에 얼매나 좋았을까요. 우리 집안은 애시당초 남매관계가 잘못 되얐다는 생각을 요새 와서 자주 허게 됩니다. 만약에 누님이 아들로 태어나고, 제가 딸로 태어났드라면……”

 

  그렇게 되얐다면 나는 일찌감치 강제모집 바람에 휩쓸려서 지금쯤 북해도 어느 탄광으로 끌려가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싫다. 딸로 태어난 것 도로 무르고 아들로 바꿔달라고 인제 와서 삼신할매 붙잡고 떼쓰고 잪은 생각 추호도 없다. 그러니깨 너도 인제는 고만 냉수 먹고 속채려서 지금맨치로 그냥 아들로 남어 있는 편이 니 신상에도 아매 이로울 게다.”

 

  누님 쪽에서 정 싫다고 끙짜 놓으시면 저 역시 달리 뾰쪽수가 있을 텍이 없지요. 남녀 성별 맞바꾸는 공사는 원래 우리네 인간들 소관사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일이니깨요.”

 

  새롭게 달라진 누님의 위상은 아버지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풀려나 만신창이 몸으로 귀가한 다음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호랑이 같고 그 호랑이 앞의 토끼 같던 지난날 그 부녀관계로부터 아주 멀찌감치 떠나 있었다. 어찌 된 셈판인지 누님은 상처 입은 호랑이 꼴 되어 성질이 더욱더 포악해져서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고도 지난날처럼 겁내는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겁내기는커녕 오히려 욕가마리에 천덕꾸러기 자기 주제꼴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의연한 자세를 견지한 채 끝까지 준비한 말들을 또박또박 주워섬기곤 하는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놀라운 변화는 누님의 신앙생활에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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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5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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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은 두툼한 솜이불 자락을 욕심껏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썼다. 그다지 울고 싶은 기분이 아닌 것 같은데도 어찌 된 셈판인지 눈물이란 놈이 저 스스로 알아서 맥없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인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뜨내기 손님과도 같은, 아무리 문전 축객하려 해도 무가내하로 버티는 각설이패 같은,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눈물이었다. 두둑이 허물어지면서 무넘기가 터져버린 논배미 같았다. 눈자위에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면서 눈시울 거치고 볼따구니 지나 베갯잇까지 속속들이 적시는 중이었다. 부용은 좀처럼 그칠 기미 안 보이는 그 속수무책의 눈물더러, 네놈 하고 싶은 대로 양껏 한번 해 보라고 한동안 그냥 방치해 버렸다. 그것은 아마, 남은 평생 멋쟁이 칠피구두 신을 기회 다시 오지 않는다고 영혼이 귀띔해 주는 소리 듣고 슬픔에 휩싸인 육신이 흘리는 눈물일 것이었다. 영혼은 일찌감치 체념의 경지에 들었을지 모르지만 육신이란 놈에게는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만만찮게 남아 있는 듯했다. 영혼으로부터 절망에 찬 최후통첩을 접수한 육신이 갑자기 비탄에 잠기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성싶었다. 부용은 제 존재를 영혼과 육신으로 정확히 양분한 다음 서로 이해가 상충되는 두 존재 가운데 어느 쪽도 역성 들지 않은 채 순전한 방관자 입장에서 그것들 간의 심각한 갈등양상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불자락 한쪽 끝이 소리 없이 들리면서 위로 올라갔다. 곧바로 따스한 손길이 부용의 이마 위로 명주 헝겊처럼 나긋이 내려앉았다. 그 손길이 방금 전까지 눈물깨나 흘렸던 사내 속눈썹에 아직도 그렁그렁 맺혀 있는 눈물방울들을 마치 농익은 앵두알 거두는 솜씨로 조심스럽게 똑똑 따냈다. 어느 겨를에 방안으로 들어와 앉았던지, 머리맡에서 누님이 웅숭깊은 눈빛으로 병든 동생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용이 형님이랑 주고받던 말, 다 엿듣고 계셨던가요?”

 

  부용의 추궁에 순금은 보일락 말락 미소부터 지었다.

 

  기생첩맨치로 애지중지허던 구쓰를 진용이 오라버님한티 선사헌 것은 참말로 잘헌 일 같다.”

 

  잘허고 잘못허고가 어디 있습니까. 인제는 쓸모가 없어져부렀기 땜시 그냥 배깥에 내다버리는 폭 잡고 형님한티 인심 팍 써부린 겁니다.”

 

  아니다, 후제 쓸모가 뽈딱 되살어나는 날 반다시 돌아올 게다. 그날이 오면, 그때는 내가 새 구쓰를 너한티 선사허마. 아까막시 그놈보담도 몇 배는 더 비싸고 잘생긴 놈으로말이다.”

 

  저한티 그런 날이 돌아올 거라고 누님은 진짜로 믿으시는 겁니까?”

 

  그러면 너는 안 믿는단 말이냐?”

 

  오누이는 서로 어긋물린 톱니 틈새에서 연방 삐거덕거리는 소리 비어지는 것 같은 대화를 몇 고팽이 더 주고받았다.

 

  누님, 제 말 잘 들으십쇼. 희망이란 이름 가진 엄마는 재를 넘다가 벌써 죽어뿌렀습니다. 숲속에 숨어서 요긴목을 지키던 절망이란 이름 가진 호랭이한티 일찌감치 잡어멕힌 것이지요. 누님은 시방 그런지도 모르고 절망이란 놈한티 속아서 희망이 반다시 살어 돌아올 거라고 헛 믿는 것이지요. 절망이란 놈이 고갯마루에서 엄마 희망 잡어먹고 엄마 희망 옷으로 갈어입고 엄마 희망 얼골로 변장허고 나타났지요. 누님은 시방 그 털북숭이 절망이 집을 보던 새끼 희망 남매들 귀에다 대고, 엄마 희망이 돌아왔으니깨 어서 문을 열으라고 속살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누님, 속지 마십쇼! 털북숭이 가짜 희망이란 놈한티 절대로 문을 열어줘선 안 됩니다!”

 

  어쩐지 많이 귀에 익은 줄거리 같고나.”

 

  아니지요, 그게 아닙니다. 엄마 희망이 벌써 죽어 없어져뿌렀는디 어린 자식 희망들이 문고리 붙잡고 밤새드락 죽살이쳐봤자 무신 소용이 있겄습니까. 차라리 일찌감치 문 활짝 열어젖히고 절망이란 호랭이를 집안으로 불러들여서 속전속결로 끝장을 봐뿌리는 편이 더 낫을지도 모르지요.”

 

  부용아, 내 눈치 볼 필요 없다. 눈물주머니든지 울음보따리든지 아즉도 덜 풀었걸랑 마저 다 풀어라. 한바탕 서럽게 실컨 울고 나면 기분이 다소 풀릴지도 모른다.”

 

  여태까장 인생 살어오는 동안에 누님은 눈물이 바닥 나드락 원도 한도 없이 울어보고 잪은 적이 없었습니까? 만약에 없었다면, 우리 남매찌리 시방 의초롭게 작반혀서 밤이

새드락 거쿨지게 한번 울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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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4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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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검정 고무신이었다. 명색이 양복 차림인데 거기에 검정 고무신이라니, 그게 어디 당키나 한 조합인가. 하이칼라 머리에 망건 되똑 얹은 거나 진배없는 꼴불견 바로 그것이었다. 더군다나 눈만 한 번 세게 흘겨도 금세 짝 찢겨 나가리만큼 밑창이 종잇장처럼 얇게 닳아빠진 고무신이었다.

 

  왜 그러는가, 시방?”

 

  진용이 가던 걸음 되짚으며 뜨악해 하는 낯꽃으로 되돌아왔다. 부용은 불편한 몸을 얼른 일으켜 방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방문 밖 벽에 붙은 선반 위에서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쓴 채 오랜 세월 혼수상태로 지내고 있던 자신의 외출용 구두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고무신 품귀현상이 극에 다다라 있는 실정이었다. 근자 들어 장터나 잡화가게 등에서 고무신 구경하기가 폭우 쏟아지는 밤에 북두칠성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울 정도였다.

 

  형님, 요놈 한번 신어보시지요.”

 

  전시 경제체제 속에서 군수산업 쪽으로 고무 원료를 몽땅 빼돌리는 바람에 반도 안의 신발 공장들 거개가 문을 닫다시피 했다. 그런 데다가 재생고무로 만드는 하등품 고무신마저 워낙 소량생산인지라 그나마 돈 싸 짊어지고 사방으로 발싸심하고 다녀봐야 괜스레 헛고생에 그치기 십상일 정도로 그동안 사람들 발밑 땅바닥에서 놀던 고무신은 어느 겨를에 상투만큼이나 지체가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다.

 

  자네가 시방 뭣 땜시 그 구쓰를 나한티 시방……”

 

  재차 뜨악해 하는 시선으로 진용은 상견례라도 치르듯 먼지 흠씬 뒤집어쓴 그 신사용 구두와 어색하게 수인사를 마쳤다.

 

  형님 발에 맞는지 안 맞는지 조깨 알어볼라고요.”

 

  이 사람이 시방! 아니, 자네 구쓰가 내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시방 알어서 얻다가 써먹을라고 이 장난인가, 시방?”

 

  부용은 양손에 각각 구두 한 짝씩 나눠 들고 사촌형에게 다가갔다. 비록 중고품이긴 할망정 칠피(漆皮)로 지은 고가의 맞춤구두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멀리 출타할 경우에나 잠시간씩 아껴 신었던 까닭에 아직도 신품이나 별반 차이 없는 꽤짜 물건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형님 발 조깨 빌리겄습니다.”

 

  이보게, 자네가 시방 뜬금없이 시방 요게 뭔 야단인가? 부용이 동상, 자네 시방 이 무신 객광시런 장난질인가!”

 

  남의 발에서 우격다짐으로 헌털뱅이 검정 고무신 벗겨내고, 대신 그 자리에 호사품 신사용 구두 한 켤레 강제로 신기려 드는 부용의 해괴망측한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나머지 진용은 벌컥 화를 내기까지 했다.

 

  요 구쓰가 인제사 지대로 임자를 만났고만요. 진짜 주인집 찾어 들어간 몸종맨치로 형님 발에 기가 맥히게 딱 들어맞누만요.”

 

  실인즉슨 맞춤 구두처럼 진용의 발에 썩 잘 맞는 물건은 아니었다. 구두 뒤축과 발꿈치 사이에 손가락 하나 정도 너끈히 들락거리고도 남을 여분의 공간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작으면 못 신어도 큰 경우에는 얼마든지 신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무신이고 양혜(洋鞋) 아니던가. 구두코 안쪽에 솜뭉치 적당히 끼워 넣기만 한다면 그걸 신고 경성을 몇 차례씩 도보로 왕복한다 해도 발병 날 염려 전혀 없으리라.

 

  이왕지사 한번 신으신 짐에 그냥 계속 신고 댕기시지요. 제가 형님한티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

 

  아니네, 아니여! 나가 시방 터럭만헌 명분도 없이 시방 부용이 동상이 여적지 기생첩맨치로 애지중지허든 요 귀물 구쓰를 나가 시방 대관절 뭣 땜시 시방 공으로 그냥 받어 챙긴단 말인가. 아니네, 아니여! 자네가 시방 이러면 참말로 곤란허네! 당최 이러들 마소, 시방!”

 

 형님도 잘 아시다시피 요 구쓰허고 저허고는 인제 인연이 다 끝나뿌렀습니다. 저한티는 인제 아모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말었습니다. 멋쟁이 구쓰 신고 팔도유람 댕길 기회는 앞으로 제 평생에 두 번 다시 찾어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요놈을 관 속에다 내 시체랑 같이 넣고 순장시켜서 저승질에 신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겄습니까.”

 

  그 말이 결코 공연한 엄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촌형 앞에 입증할 요량으로 부용은 쿨룩쿨룩 가래 끓는 기침소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가라앉은 뒤에도 사촌형제끼리 서로, 제발 받으라느니, 절대로 못 받겠다느니, 하는 승강이질이 한참 더 이어졌다. 헌 구두 한 켤레 둘러싸고 벌이는 괜한 승강이가 필요 이상 길어지기 전에 부용은 등을 떼밀다시피 해서 사촌형을 사랑채로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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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3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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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기가 꽉 막히는지 진용은 잠시 우두망찰한 채 먼산만 바라보다가 깜빡 잊을 뻔했다는 듯 서둘러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 시방 당장 말씸 사루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나는 시방 분간이 안 서누만. 어르신께서 시방 얼매나 상심이 크실지 뻔허니 다 알고 있는 판국에 시방 그 숭칙헌 소식 짊어지고 사랑채 올라가자니 차마 입설이 안 떨어질 것 같고, 또 그런다고 시방 입주뎅이 딱 함봉허고 어르신 눈치만 실실 살피자니 그것도 시방 아랫사람 된 도리가 아닐 것 같고……”

 

  그야말로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는 식의 실토정이었다. 사촌형이 사랑채로 직행하지 않고 안채 구석방부터 먼저 들른 이유를 부용은 그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다들 싸게 알어야 될 급박헌 소식인디, 그걸 형님 혼자서 끌어안고 고민허면서 차일피일 보고를 지체헐 이유가 뭣이 있습니까? 다른 경로 타고 흉보가 아버님 귀에 먼저 들어가기 전에 형님이 선수를 쳐서 후딱 알려드리는 편이 외려 더 득이 되지 않을까요?”

 

  그건 또 왜?”

 

  고름이 살 되는 법 없지 않습니까. 쇠뿔은 단 김에 빼고 호박떡은 더운 김에 먹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차어피에 금명간 곪아터지고 말 사달이 분명허고, 또 부모 된 입장에서 아버님도 일찍 아시는 게 마땅헌 소식인디, 괘얀시 그걸 뒷전으로 빼돌리고 쉬쉬허느라고 형님 혼자 사서 고생허실 필요가 뭣이 있습니까? 어차어피에 피헐 도리 없는 매라면 한시라도 일찍 맞는 편이 휘낀 덜 아픈 법이지요.”

 

  부용의 긴 설명을 진용은 그저 잠자코 듣기만 했다. 마치 생면부지 남의 집안이 겪는 불행 대하듯 매우 심상한 어조로 들으나 마나 한, 들어봐도 답답하긴 매일반인 훈수 따위나 건네고 있는 사촌동생 태도에 진용은 그만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기색이었다.

 

  부용이 동상 말이 시방 일점일획도 틀린 구석이 없는 것 같으네. 내 귀에는 시방 자네 말이 낱낱이 다 옳은 방구 뀌어대는 소리로만 들리네. 그렇기는 헌디……”

 

  형님, 막중헌 짐을 죄다 형님한티 떠둥그치고 노상 터럭만침도 도움을 못 드려서 참말로 죄송만만입니다.”

 

  부용은 재빨리 말머리를 돌림으로써 사촌형이 사랑채를 향한 흉보 배달을 주저하고 망설거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절약할 수 있게끔 동생으로서 모처럼 한 번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죄송은 시방 무신 죄송……”

 

  정말 그랬다. 부용이 항상 무지근한 부채감을 안은 기분으로 사촌형을 대해 버릇하는 건 여축없는 사실이었다. 소유권자 아버지 허락도 없이 부용이 자신의 임의대로 사촌형을 시켜 논 잡히고 급전 변통해서 읍내 관가에다 흥청망청 뇌물 뿌린 결과로 말미암아 온 집안에 거센 풍파 몰아닥쳤던 지난번 소동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뒷일 일체를 책임 지겠다 장담하는 사촌동생 말만 믿고 진용이 대리인 자격으로 나서서 벌인 공사인데, 결과적으로 죄는 개천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당산 고목나무가 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한갓 주인 한번 본때 있게 잘 섬기려는 일념으로 어렵고 힘든 심부름을 감당했던 죄밖에 없는 진용이 모든 허물 흠씬 덤터기 쓴 채 걸핏하면 사랑채로 불려 다니며 상곡 어른한테 곤욕 치르느라 연일 입술 부르트고 발바닥에 물집 잡히는 등 수고가 도무지 말로 다 표현 못 할 지경이었다.

 

  알겄네, 알겄어. 자네 훈수대로 시방 사랑채로 당장 근너가야 쓰겄네. 어르신 찾어뵙고는 시방 사실이 여사여사허고 사건 속내가 약차약차허다고 시방 이 최진용이가 이실직고허는 편이 암만 혀도 시방 여러 사람 신간 편허게 맨들 것 같으네.”

 

  마침내 진용이 무척 결기에 찬 동작으로 문지방에 걸쳐 있던 반쪽 엉덩이를 뚝 떼어 위로 들어올렸다.

 

  정말 죄송헙니다, 형님.”

 

  흉보 배달이라는 고약한 임무 한 짐 그득 짊어지고 비장한 각오 아래 사랑채 향해 떠나는 진용의 뒷모습이 아무래도 딱하고 안심찮게 느껴졌다. 부용이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입으로만 배웅하던 바로 그때, 어쩐지 부실하게 느껴지는 사촌형 아랫도리가 우연히 시야에 들어왔다.

 

  잠깐만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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