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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79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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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기 전연 없는 민낯인데도 뽀얀 살결 덕분인지 제법 공들여 가꾼 듯한 인상이었다. 겁먹은 듯 동그랗게 뜬 유순한 눈매에 짙은 음영이 어려 있어 그간 난생 처음 생경한 시골행을 결단하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보냈던가를 잘 말해 주고 있었다. 금시초면에 생면부지 얼굴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순금은 첫 순간부터 어쩐지 이연실이 자신과 무관한 처지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피차 흉허물없는 관계를 줄곧 유지해 나온 사이인 양 왠지 모르게 친숙한 기시감이 앞서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켜 사람들은 천생인연이라고 부르는구나, 하고 순금은 떡 줄 사람한테 물어도 안 보고 멋대로 김칫국부터 양껏 들이켰다.

 

  최부용 씨 신상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이연실이 갑자기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누님 되시는 분 편지 문면만으로는 도무지 사정을 종잡을 수가 없어서 굉장히 당혹스러웠어요. 그분은 지금 어떤 모양으로 지내고 계시나요?”

 

  칸막이를 중간에 두고 말을 건네듯 무척 사무적으로 들리는 이연실의 어조에 순금은 비로소 정신이 퍼뜩 들었다. 감격과 흥분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이연실의 기분을 터무니없이 앞지르면서 저 혼자 일방적으로 호들갑을 떨었다는 사실을 순금은 그제야 밝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연으로 말헐 것 같으면, 참말로 길고도 복잡허답니다. 요 자리서 한꺼번에 털어놓기가 불가능헐 정도지요. 우선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자세헌 얘기는 집에 가서 천천히 나누는 게 좋겄어요.”

 

  순금의 제안에 이연실은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붙잡힌 손을 슬며시 뿌리쳐 남에게 빼앗겼던 팔소매를 되찾으면서 이연실은 연방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는 없어요. 그분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지금 그 사실 한 가지만 알고 싶어요. 그것만 알아본 연후에 왔던 길을 곧장 되짚어서 전주로 돌아갈 작정으로 집을 나섰던 거랍니다.”

 

  연실 양이 하로바삐 우리 집을 방문헐 수 있게코롬 그 발걸음을 산서 쪽으로 인도허십사, 허고 날이면 날마닥 전능허신 여호와 하나님 전에 간구를 드렸지요. 그랬더니만, 연실 양이 시방 요렇게 내 눈앞에 실지로 나타나셨어요. 나는 시방, 연실 양이 우리 집까장 나허고 동행헐 수 있게코롬 도와주십사, 허고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 전에 기도허고 있어요.”

 

  실례되는 말씀 같습니다만, 누님 되시는 분하고는 달리 저는 종교 같은 것을 안 믿고 있어요.”

 

  괭기찮어요. 연실 양이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지금은 상관없어요. 한 가지 분명헌 것은, 결국 이번에도 연실 양은 역시 내 청을 끝까장 외면허지 못허실 거라는 사실이지요.”

 

  기도하는 자세, 기도하는 심정으로 양손을 가슴에 모은 채 순금은 진중한 어조로 고집 센 방문객을 공들여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연실의 입에서 들릴락 말락 가느다란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분이 자기하고 저 사이를 누님 되시는 분한테 어떤 관계라고 소개하셨는지, 우선 그것부터 알고 싶어요.”

 

  순금은 양산 안쪽으로 넌지시 손을 뻗어 이연실의 어깨를 가만히 짚었다. 때아닌 가을 추위를 타는 듯 가냘픈 몸피를 둘러싼 원피스의 어깻솔기 부위가 사뭇 떨리고 있었다.

 

  편지에다 적었던 그대로지요. 서가에서 똘스또이 부활을 찾어서 책주인한티 돌려주라는 부탁 외에 다른 말은 일절 없었어요. 나를 시켜서 우리 부용이가 연실 양한티 보내고 잪었던 신호는 그것이 전부였지요. 허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 부용이가 입으로 직접 말헌 적은 없어도 나는 그 표면적인 신호 뒤에 숨겨진 다른 신호, 말허자면 진짜 신호를 얼매든지 눈치 챌 수가 있었어요. 부용이 진짜 부탁은 빌린 책을 돌려주라는 게 아니었어요. 자기 진정을 연실 양한티 대신 전달허라는 부탁이었어요. 달랑 그 신호 하나만 갖고도 나는 지난날 두 청춘남녀가 어떤 관계였는지 대충 짐작헐 수가 있었지요. 본시 그 방면에 우리 여자들은 비상헌 육감을 갖고 있고, 그 육감은 대부분 적중허는 법이니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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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78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3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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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저녁놀을 앞뒤로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는 화사한 꽃무늬 양산이 별안간 어떤 설명하기 힘든 예감을 다빡 덮씌우는 바람에 순금의 가슴은 쿵덕쿵덕 널뛰기를 시작했다. 양산의 존재는 늦가을 시골길하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치렛거리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햇덩이를 통째로 눈에 담아도 전혀 뜨겁게 느껴지지 않으리만큼 이미 풀이 팍 죽은 석양볕인지라 굳이 양산의 도움을 빌릴 필요조차 없는 시간대였다. 내리쬐는 햇볕 때문이 아니라 낯선 외지인을 주목하고 경계하는 산골 농투성이들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엄폐할 요량으로 받쳐 든 양산일시 분명했다.

 

  곧잘 걸어오던 양산이 갑자기 움직임을 딱 멈추었다. 마치 시골 불량배가 타관 뜨내기 상대로 텃세 부리듯 앞길 떡 가로막고 있는 웬 사람 때문이었다. 어떤 예감이 몰고 오는 긴장감으로 말미암아 순금은 길 한복판에 우뚝 버티고 선 채 낯선 양산에게 길을 비켜줄 생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어…… 실례지만 말씀 좀……”

 

  길을 막는 상대가 시골 불량배 아닌 젊은 여자임을 언뜻 확인한 양산이 마침내 입을 열어 수줍게 첫말을 보내왔다. 순금은 벌렁벌렁 마구 뛰노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자발머리없이 구는 심장 동계부터 먼저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혹시……”

 

  여기 감나무골이란 동네가……”

 

  연실 양! 맞지요? 이연실 양이 틀림없지요?”

 

  !”

 

  짤막한 부르짖음과 동시에 양산 저쪽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척이 전해져 왔다. 터무니없이 들썩거리고 촐랑대는 감정을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어 순금은 영락없이 길거리에서 양민 붙잡고 불심검문하는 관헌과도 같은 자세로 양산을 향해 바투 다가들었다.

 

  맞어요! 맞었어요! 이연실 양이 틀림없어요!”

 

  마치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완력에 의해 심하게 꺼들림이라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방패 역할을 수행하던 양산이 휙 젖혀지면서 위로 들려 올라갔다. 동시에 양산을 가리개 삼아 내내 그 뒷전에 꼭꼭 숨어 있던 젊은 여인의 얼굴이 눈앞에 활짝 드러났다.

 

  , 최순금 씨……”

 

  달랑 이연실이란 성명삼자만 놓고 순금이 혼자서 제멋대로 추측했던 생김새와 별반 차하지지 않는, 상상 속에서 자주 그렸던 초상화하고 어금지금한 미태였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정들로 하여금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끔 만들 법한 이목구비였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마음이 들썩이기는 이연실 또한 매한가지인 듯했다. 최순금이란 성명삼자 정도만 겨우 알았을 뿐 용모파기에 관해서는 전혀 백지 상태이던 편지 발신인과 노상에서 공교롭게 딱 맞닥뜨린 그 초대면 상황에 이연실은 어지간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기만 하는 얼뜬 거동이나 표정이 마냥 요조해 보이던 첫인상에 상당한 흠집을 내고 있었다.

 

  결국에는 요로콤 와주셨고만요! 요런 날이 반다시 오리라고 믿고 나는 벌써부텀 그때를 학수고대허고 있었지요!”

 

  일단 제 수중에 들어온 새가 다시는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끔 발목에 끈을 달아매는 절차와 수고가 필요했다. 웬만해서는 놓아주지 않을 요량으로 순금은 이연실의 옥색 원피스가 흉하게 구기질러지도록 팔소매 부위를 덥석 훔켜잡은 채 흔들어댔다.

 

  언젠가 때가 되면 연실 양이 반다시 산서로 찾어오실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요. 그러고 지금이 바로 그때지요. 연실 양이 내 간곡헌 소청을 절대로 거절허지 않으실 거라고 믿고 있었지요. 그러고 먼빛으로 요 양산을 보자마자 연실 양이란 걸 나는 한눈에 척 알어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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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77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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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느닷없이 찾어뵌 것은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고 영감님께 사죄허고 잪어서랍니다.”

 

  , 아니, 사죄라니요? 이 늙은것한티 젊은 아씨께서 무신 그런 천부당만부당허신 말씸을……”

 

  움푹 꺼진 김 영감 눈자위에 다시 한 번 놀라움과 당혹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즈이 아버님 대신 제가 영감님이랑 며느님한티 사죄를 드리겄어요. 그동안 즈이 집안 사람들이 영감님 댁에다 저질렀던 잘못들을 너그럽게 용서허시기 바랍니다.”

 

  ! 때리는 시엄씨보담도 말리는 시늉 허는 시누년이 휘낀 더 괘씸허다드니만! !”

 

  에미야, 버리장머리없이 너 시방 누구한티 자꼬만 찍자부리고 야단이냐!”

 

  참다 참다 못한 김 영감이 그예 고개를 홱 틀어 며느리를 짯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쌍가매네는 아들 멀리 떠나보냄으로써 이미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로 전락해 버린 시아버지 어려워할 줄 도통 모르는 며느리처럼 콧방귀 탱탱 뀌어대면서 옆으로 팽그르르 돌아앉아버렸다.

 

  , 저런 쳐쥑일 년이 시방 비렁뱅이맨치로 얻다가 그 흙감태기 손모갱이 갖다 대고 지랄이여, 지랄!”

 

  느닷없이 쌍가매네 입에서 걸쭉한 욕지거리가 뻗쳐 나왔다.

 

  쌍가매 너 이년, 그것 얼렁 도로 못 집어옇겄냐!”

 

  어른들끼리 이야기에 정신 팔린 기회를 틈타 쌍가매가 임자 없는 물건처럼 쪽마루 한구석에 방치돼 있던 쌀자루 속에서 이제 막 생쌀 한 주먹 욕심껏 움켜쥐려는 참이었다. 제 어미 감사나운 고함소리에 귀싸대기 얻어맞으면서도 쌍가매는 일단 거머쥔 것을 끝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제 몫의 먹을거리 챙기기 무섭게 쌍가매는 등에 업힌 젖먹이 동생을 마구 다뤄도 무방한 물건인 양 위아래로 덜렁덜렁 흔들어대면서 다람쥐처럼 잽싸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뒤쫓는 어미보다 훨씬 더 발걸음 재게 놀려 쌍가매는 순식간에 삽짝 밖으로 멀리 사라져버렸다.

 

  당장 요 자리서 제가 장담허고 약조헐 수 있어요. 영감님께서는 틀림없이 내년 봄부텀 다시 농사를 지으실 수 있게 된다고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리겄어요. 그럼 일간에 또 찾어뵙겄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단숨에 끝마친 다음 순금은 김 영감에게 대꾸할 겨를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등을 돌려버렸다. 뒤쪽에서 뭐라고 다급히 외치는 쌍가매네 목소리가 들렸지만, 순금은 그냥 못 들은 척하고 김 영감네 삼간두옥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바야흐로 절정을 맞이한 놀빛이 유례없이 곱게만 느껴졌다. 순금은 발걸음도 가뿐하게 꼬불꼬불한 고샅길을 거쳐 큰길로 들어섰다. 봉숭아 꽃물처럼 놀빛이 빨갛게 묻어 있는 흰 저고리 앞섶에서 순금은 그 놀빛을 닮은 소망 한 낱을 마치 검부러기 떼어내듯 엄지와 식지 두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집어 올렸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홀맺힌 매듭부터 먼저 풀어 화해의 첩경을 걷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하나님과 저 사이의 매듭도 덩달아 풀렸으면 좋겠다는, 죄인임을 자복하는 최순금이 가슴속에 품고 있던 바로 그 소망이었다.

 

  순금은 잠시 노을에 덮인 하늘에 두었던 눈길을 무심코 땅으로 끌어내리려다 말고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면소재지 방면이었다. 한길 따라 울긋불긋 꽃무늬도 화사한 양산 하나가 한들한들 걸어오는 중이었다. 사람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으리만큼 양산으로 철두철미 앞을 가린 까닭에 양산이 걸어온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상곡리 인근 마을들을 통틀어 양산을 소유한 신여성은 달랑 최순금 한 명뿐이었다. 두메산골에서 그만큼 귀물 대접을 받는 양산이기 때문에 그걸 받친 여인의 출현은 산서 바닥에서 자연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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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76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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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가매네는 가슴팍에 젖먹이가 안 딸린 홀가분한 몸뚱이를 쪽마루에서 발딱 일으킨 다음 침방울 툭툭 튀겨가며 마구 시악을 써댔다. 천석꾼 영감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힌 쌍가매네를 차마 바로 대할 수 없어 순금은 그 딸인 쌍가매 쪽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울어 보채는 제 동생 달랠 생각은 않고 쌍가매는 오로지 탐욕에 찬 시선을 손님의 한쪽 손에다 꽂고 있었다. 쌀자루가 들린 손이었다. 순금은 꽤 묵직한 쌀자루를 쪽마루 한구석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자루 속에 담긴 물건이 곡식인지 혹은 모래알인지 알아볼 마음 따위는 숫제 없다는 듯 쌍가매네는 처음부터 순금의 손에 들린 자루에 대해 일절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었다.

 

  누가 찾어오셨다냐, 에미야?”

 

  눈만 한번 질끈 흘겨도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오두막집 아랫방에서 갑자기 쿨룩거리는 기침소리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무신 일이간디 요로코롬 왼 집안이 소란시럽다냐?”

 

  방문이 삐거덕 열리고 나서도 한참 더 뜸을 들인 다음에야 김 영감 얼굴이 굴속 같은 방안 그늘 안에서 상당한 시차를 두고 느릿느릿 나타났다. 너무 일찍 든 초저녁잠에서 아직도 덜 깨어난 듯, 아니면 혼절 상태에서 이제 막 정신을 수습하는 중인 듯 어릿어릿한 눈빛으로 바깥을 내다보던 김 영감이 별안간 기급을 했다.

 

  , 아니, 젊은 아씨께서 으짠 일로 즈이 집구석을 다……”

 

  ! 아씨는 무신 얼어죽을 아씨!”

 

  시아버지 말을 받아 쌍가매네가 제꺽 일기죽거렸다.

 

  괜찮어요. 나오시지 마셔요. 그냥 누워 계셔요.”

 

  병색이 완연한 노구 이끌고 쪽마루로 나앉으려 안간힘 쓰는 김 영감을 순금은 급히 손사래 쳐 만류했다. 굶주림에 노환마저 겹친 듯했다. 기력이 형편없이 까라져 보이는 김 영감이 퀭한 눈자위 희번덕거리며 놀라움과 당혹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젊은 아씨께서 혹시 그놈에 뜬소문 땜시……”

 

  김 영감이 쭈뼛쭈뼛 순금의 눈치를 살폈다. 순금은 무턱대고 도리머리부터 세차게 흔들어 보였다.

 

  아녀요. 저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문 따우는 믿지 않어요. 영감님께서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란 걸 누구보담도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깨요.”

 

  ! 알고 있다고? !”

 

  옆에서 쌍가매네가 제꺼덕 콧방귀로 응수했다.

 

  알고 있다니깨 기특허시기도 혀라! 참말로 눈물이 매라울 만침 고맙고도 유정허신 말씸이고만! !”

 

  주재소 순사들이 야밤중에 천석꾼 집안 덮쳤을 당시, 왜경들 길라잡이 구실 맡아 복면하고 나타났던 작자가 다름 아닌 김 영감이라는 소문이었다. 순금 또한 한동안 마을에 떠돌던 그 소문에 이미 접했던지라 김 영감한테 덮씌워진 누명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날 밤에 저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지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딧기 달랑 보재기 한 장으로 얼골 조깨 가렸다고 설마 허니 제 눈이 영감님인지 아닌지 못 알어볼 리가 있겄어요? 그자는 체구도 영감님보담 덜썩 더 크고 나이도 훨씬 더……”

 

  ! 올빼미맨치로 밤눈 하나는 밝어서 다행이네그랴! !”

 

  에미야, 너 아까부텀 무신 말버릇이 그 모냥이냐?”

 

  영감님보담 젊은 사나희였지요. 그러고 또 영감님께서 즈이 아버님한티 품고 계시는 원한이 지아모리 크다 헌들 설마 허니 쌍가매 아버지를 강제모집으로 끌고 간 일본에 대헌 원한보담도 클 리가 있겄어요?”

 

  ! 알기는 오뉴월 똥파리맨치로 잘도 아는고만! !”

 

  에미야!”

 

  작은 원수 갚을 욕심으로 그보담 훨씬 더 큰 원수허고 손잡는다는 건 도모지 이치에 안 맞는 소리고 어리석은 소견이지요.”

 

  젊은 아씨께서 고로코롬 가리를 타서 말씸을 허시니깨 이 늙은것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고만요. 그놈에 옘병헐 헛소문 땜시 이 늙은것은 그새 벙어리 냉가심 앓딧기 얼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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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75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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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가슴 높이밖에 안 올라오는 삽짝을 마주한 채 순금은 울안으로 조심조심 인기척을 들여보냈다. 실인즉슨 처음부터 그럴 필요조차 없는, 아주 객스러운 행동이었다. 삽짝 너머로 쌍가매네 모습이 빤히 건너다보였다. 삼간두옥 쪽마루에 나앉아 어린것 입에 젖을 물리고 있던 쌍가매네하고 분명히 눈길까지 마주친 바 있었다.

 

쌍가매 어머님한티 쪼깨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쌍가매야! 쌍가매야!”

 

  삽짝 밖의 손님 쪽은 모지락스레 외면한 채 쌍가매네는 냅다 고함을 뽑아 건공중으로 집어던졌다.

 

  쌍가매 너 이년, 거그서 시방 무신 지랄을 허고 자빠졌냐? 너 이년, 또 벼랑박에 흙고물 파먹고 자빠졌지야? 삽짝 배깥에 누가 찾어왔는갑다! 흙 고만 파먹고 싸게 못 나오겄냐, 이년아?”

 

  그러자 때꼽재기 쌍가매 얼굴이 뒤란 쪽에서 비주룩이 내밀어졌다. 어린 소견에도 뜻밖의 손님에 무척 당황스러웠던지 쌍가매는 슬금슬금 뒷걸음쳐 뒤란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 밖에 선 채로 계속 지정거리고 있기가 좀 거식해서 순금은 집주인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삽짝을 안쪽으로 밀었다.

 

  안녕허셨어요, 쌍가매 어머님?”

 

  하이고, 요게 시방 뉘시다요? 야마니신지 니시야만지 허는 그 게다짝 소리 때깍때깍 나는 최부자 영감 외동따님 아니시든가요? 금지옥엽 아씨께서 갑째기 무신 바람이 불어서 도야지 우릿간 같은 즈이 집구석까장 행차허셨는지는 몰라도, 보시다시피 요로롬 별로 안녕허지가 못허고만요!”

 

  시작부터 대뜸 노골적인 시비조요 언필칭 비아냥거리기였다. 쌍가매네가 불쑥불쑥 내뱉는 말말이 낱낱이 다 불화살로 변해 순금의 가슴팍에 턱턱 꽂히면서 중화상을 입히고 있었다.

 

  병 줄라고 왔소, 약 줄라고 왔소?”

 

  쌍가매네는 시뻘건 불잉걸을 품은 눈초리로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의 상전이었던 여자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며 섬뜩한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생각만큼 젖이 잘 나오지 않는지 품안의 어린것이 갑자기 칭얼칭얼 보채기 시작했다. 쌍가매네는 풀어헤친 젖가슴으로부터 어린것을 떼어내려고 손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비록 빈 젖일망정 계속 물고 있을 욕심으로 어린것은 고개가 홱 잦혀지리만큼 뒤로 떼밀리면서도 젖꼭지만은 절대 놓치지 않으려 악착을 떨었다. 그 사품에 젊은 젖어미답지 않게 쪼글쪼글 말라붙은 쌍가매네 젖가슴이 고무줄처럼 기다랗게 늘어나버렸다.

 

  들어간 게 있어야 나오는 것도 있을 게 아녀, 이 썩을 것아! 죽어라 쪽쪽 빨어봤자 헛바람만 픽픽 새는 헛젖 백날 물고 늘어진들 무신 소용이냐, 이 웬수 덩어리야!”

 

  쌍가매네가 매운 손바닥으로 찰싸닥 볼기를 때려 어린것을 가슴팍에서 그예 뚝 떼어버렸다. 그러자 어린것은 끓는 물에 손이라도 담근 푼수로 자지러지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쌍가매네는 또다시 소리소리 질러 뒤란으로 꼭꼭 숨어버린 딸을 찾았다.

 

  쌍가매 너 이년, 싸게싸게 욜로 나와서 요 애물단지 안 델꼬 갈래?너 이년,  거그서 시방 무신 지랄을 허고 자빠졌냐, 이 주리를 틀 년아!”

 

  입에서 나오는 족족 모조리 다 악에 받친 소리요 살천스럽고도 툽상스러운 욕설이었다. 어미의 그런 말투에도 이미 이력이 붙었는지 쌍가매는 한껏 불량 떨어대는 제 어미 별로 어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느럭느럭 뒤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마치 함부로 다루어도 무방한 무슨 물건 아니면 짐승 새끼라도 되는 양 아무렇게나 포대기를 둘러 제 젖먹이 동생을 휘뚜루마뚜루 등에 업었다.

 

  저 에린것들 숨쉬는 소리 나는가 안 나는가 들어보고 잪어서 찾어왔소? 그깟녀르 소작권 조깨 끊어졌다고 우리 니 식구 숨줄이 금방 꼴까딱 넘어갈지 알었소? , 천만에 말씸이지! 그깟녀르 소작 조깨 못 부쳐 먹는다고 우리 니 식구가 고로콤 허망허게 죽을 성 부르요? 어느 놈 부자지 꽉 틀어쥐고서라도 그 니시야만지 야마니신지 허는 게다짝 영감보담은 휘낀 더 오래오래 살어뿔라요! 나는 최부자 그 영감탱이가 참말로 청천하눌에 날베락 맞고 벌러덩 죽어 나자빠지는 꼴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어도 못 죽겄소! 그 영감탱이보담도 딱 한 나절만 더 살다가 죽을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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