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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임홍택] 세대론 이야기의 한계 | Memento 2019-06-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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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90년생이 온다

임홍택 저
웨일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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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들을 지나치게 대상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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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론은 필연적으로 상대를 대상화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즉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엄기호, p.13)”라면, 평가대상이 되는 청년세대들은 아직 본인들의 언어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시간의 문제다. 따라서 동세대가 스스로를 평가하기가 어렵다. 젊은 세대를 분석한다고 한다면, 대부분이 어른 세대의 언어로 어린 세대를 평가하기 마련이다. 언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권력이다.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그 세상에 개입할 수 있다.(앞의 책, p.13) 정치권에서 왜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힘든가. 그들의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있지만, 그것을 정제하여 대변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와 권력이 없고, 항상 평가의 대상으로서 젊은 세대는 못마땅한 존재로 비춰지곤 한다. 기존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20세기 말부터 유행하는 청년 세대의 명칭은 거의 예외 없이 수동적이고 부정적(p.109)“이라고 말하며,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90년생이 온다> 역시 같은 한계를 지닌다. 스스로의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야기가 조직 관리나, 매출성향과 공략방안에 맞춰져 있다. 저자가 참조했던 자료들이 대부분 그와 관련이 있다. 특정 세대를 연구하는 이유가 실용적인 목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저자의 목적이 거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90년생들을 지나치게 대상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스스로 발로 뛰고 노력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주가 아니라 보조적인 이야기인 느낌이 든다. 자신의 논거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 정도로 말이다.

 

  물론 저자의 믿음에 공감한다.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고 싶다.(p.588~589)”는 생각이 책을 만들었을 테고, 많은 공감을 사는 이유겠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의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p.67~68)” 이렇게 살도록 누가 만든 것인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너는 빠져라. 라고 가르친 어른들 세대가 아닌가? 먹고 사는 것 앞에서 누구보다 비겁해지는 모습을 본 이상, 그렇게 살아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임을 아는 이상. 특정 이상에 목숨을 걸 이유가 더 이상 없다. 그리고 그들만을 탓해서는 안된다.

 

  그래놓고 맺음말로 혼자 이룰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한다면, 기존세대의 언어로 은근히 협박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너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만큼, 너희도 우리를 이해해야 한다.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p.19)”은 한 세대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언어를 온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물론 나에게 이렇게 말고 다르게 분석할 대안을 제시하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런 능력은 없다.

 

  아쉽지만, 그래도 저자의 선의를 믿는 수밖에 없다. 꼰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완벽한 탈출을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꼰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개선해나갈 따름이다.(p.260)” 90년생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쉽고 빠르게 그들을 알 수 있는 책이다. 미래에 주역이 될 90년생들에게는 너희들도 언젠가는 기득권이 된다는 잔인한 현실을 알려준다. 더불어 90년생들에게 묻는다. 00~10년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80년생 저자가 90년생을 이렇게 보았듯, 90년생들도 자신만의 세대를 만끽하고 새로운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되새겨 본다.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회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곧 전역할 선임인 나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솔직하게 말해주는 이벤트(?)였다. 회식자리에서, 웃으며 재미있게 들었다. 그 친구들은 무엇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이 90년생이었다. 90년생들 본인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그 이후 세대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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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낡아 사라지고, 다음 세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 p.19

지금의 90년대생들은(p.67)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p.68

20세기 말부터 유행하는 청년 세대의 명칭은 거의 예외 없이 수동적이고 부정적이다. p.109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이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할 때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미국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p.114

꼰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완벽한 탈출을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꼰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개선해나갈 따름이다. ... 우리는 꼰대를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p.260

새로운 세대의 변화는 기업들에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움직임(p.501)을 보이지 않고, 매출과 이익 또한 급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무자들이 장기적으로 고객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발견하고 문제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p.502

90년대생들은 답한다. 우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라고 말이다. p.522

앞으로는 점차 듣기 힘들어진 90년대생들의 의견을 어떻게 직간접(p.577)적인 참여로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성향과 감성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낼 수 있는지에 기업들의 성패가 달려 있다. p.578

기성세대가 되면서 느끼는 진리는 이 세상 속에서 나의 힘 하나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존 세대의 호의와 사회적 혜택을 통해 지금까지 자라왔다고 생각하고, 다음 세대가 더 나은(p.588)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고 싶다. p.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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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4권-박시백] 최소한의 도리 | Memento 2019-06-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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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고화질] 35년 4권

박시백 글,그림
비아북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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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요구 앞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정신, 그들의 투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를 위해 싸웠던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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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세대는 항상 고통 받습니다. 기득권이 아니기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권리는 적지만 해야 할 의무는 많습니다. 게다가 늘 싸가지 없고, 게으르고, 도전하지 않는다고 야단 듣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시 기득권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기득권이 된 청년세대는 다음 세대를 비난하고,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역사는 반복한다고도 말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동일한 역사적 사건은 발생하지 않습니다만, 비슷한 양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역사에서 주인공은 사람이고, 사람의 본성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때는 말이야!”는 변할 수 없는 본능인지 모릅니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꼰대는 숙명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해도, 결국 인간은 본인의 기준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세대와의 갈등은 인간이 본성에 따라 반복합니다. 그렇기에 역사에서 예외적인 순간들이 눈에 띕니다.

  35년의 제3권은 그 예외적인 순간들을 보여줍니다.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는 말에 예외적인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위기의 순간, 나라를 잃은 그 지점에서 항상 골칫거리였던 청년세대의 위상은 전혀 다른 의미를 보입니다. 독립을 위한 동력이자, 새 나라의 미래가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 날을 만든 이유겠습니다.

어린 시절 이 시기의 학생 운동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와 나는 과연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못하고 있습니다만.... 시대의 요구에 당당히 응한다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과 압박이 있었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그저 국가라는 대의에 소모된 청춘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시백 화백이 머리말에 남긴 이야기를 곱씹어봐야겠습니다.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방법은 다양할 겁니다. 좌우의 스펙트럼으로 만으로는 역사를 볼 수 없음은 명확합니다. 항상 역사는 현재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한 꼰대처럼 말입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임을 자각한다면, 결국 정도의 차이겠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요.

 

"시대의 요구 앞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정신, 그들의 투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를 위해 싸웠던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라를 팔고 민족을 배반한 이들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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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거울] | 취중잡설 2019-06-2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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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다가 가끔


내 얼굴이 악마의 얼굴이 아닌가


한참 들여다볼 때가 있다


거울이 가끔 내 얼굴을


와장창


깨뜨려버릴 때가 있다



 

<거울> 정호승 (밥값(2010))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가급적이면 외면하려 한다.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별히 얼굴을 볼 필요가 없기도 하다. (잘나서 그런건 절대로 아니다.) 얼굴을 봐도 특별히 달라지는 일도 없고, 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따금 얼굴을 볼 때가 있다. 뭔가 이상이 있을 때다너무 지쳤거나, 몸에 이상이 있거나. 스스로를 확인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무표정의 인물이 거기에 서 있다. 멀뚱히 바라보며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웬일이래. 무슨 일 있는 거냐는 표정이다.

  아니 두려운 표정이다거울을 본다는 일은, 스스로를 살필 생각을 한다는 일은 뭔가 제대로 일이 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일을 하며 재미있을 때, 살면서 즐거울 때, 그 순간 오히려 거울을 보지 않는다. 항상, 괴물일 때, 돌아봐야할 때, 반성할 때, 견뎌야 할 그 고통의 순간에만 거울을 본다. 그곳에는 항상 의뭉스러운 표정의 내가 있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오늘도 거울을 봤다. 그곳에는 잔뜩 시달린 내가 서 있었다. 깊은 한숨을 쉬는 내가 있었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했을까. 결국 나인데. 달라질 것 하나 없는 나인데. 오히려 나는 나를 모르고 살고 있다.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지금 내가 절실히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그저 하루하루 버티면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와장창.

또 그렇게 하루를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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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이연식]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 Memento 2019-06-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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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저
역사비평사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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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아의 목소리와 비아의 목소리 모두가 역사를 만든다. 이 책은 비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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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말했다. 우리의 근대사는 필연적으로 아에 치중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해서 한국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알려야 했다. 독립 후에는 식민지의 피해를 극복해야 했다. 필연적으로 우리의 소리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만 집중할수록 우리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신채호의 말을 떠올린다면, 나만으로는 역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나 이외의 존재들의 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 우리가 놓친 공간을 채울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을 떠나며>는 식민지 말기의 비아에 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역사의 효용 중 하나가 돌아보는 일이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결국 비아를 본다는 일은 비교를 통해 나를 더 풍부하게 알 수 있다.

  “패전은 반세기 동안 아시아를 호령한 일본제국에 총체적 균열을 가져왔다.(p.22)” 이런 상황에서 원초적 본능만 남은 조선의 일본인들에게”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인 사회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p.23)” 그전까지는 인식하지도 못했던 조선인들의 존재가 패전 후에야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이 생경한 공포로 다가왔(p.31)”. 일본인과 조선인의 가해와 피해’,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는 악순환 고리는 패전 후 일본인의 귀환과 조선인의 귀환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p.244)” 여기에 미 군정의 적절하지 못한 대응 역시 한 몫을 했다. 미 군정은 관심이 없었고, 우리는 약했으며, 일본은 제 살기 바빴다. 피해는 결국 일반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적반하장의 태도를 살펴 볼 수 있다. 본인들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들 말이다. 분명 일본인들도 피해를 입었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귀환민들을 광의의 전쟁 피해자(p.271)” 규정하는 것.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의 피해를 통해 전쟁 피해자로 자리 잡음으로 전후 배상을 최소화하고, 자신들의 내부를 단속하며, 식민지 피해국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이 전략이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은 근대 이래의 한일관계와 조선에서 보낸 자신의 삶 전체를 상대화할 수 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관념이다. (p.23)” 연이어 터진 6.25 전쟁은 우리에게 반성을 촉구할 기회마저 날려 버렸다.

  조금 지루하고 딱딱한 내용일 수 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한일 양 민족이 모두 피해를 입었, 피해의 정도의 차이는 논외로 하더라도 피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p.271)”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이에 대한 해답을 양 국민이 납득 하고 공유(p.272)” 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비아의 목소리를,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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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은 반세기 동안 아시아를 호령한 일본제국에 총체적 균열을 가져왔다. 그것은 단순히 제국이 지배하던 영역의 공간적 분리나 지배 네트워크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다. 좀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은 그동안 애써 감춰왔거나 제국의(p.22) 논리로 강제 봉합되었던 일본인 사회 내부의 잠재된 불신과 갈등이 패전을 계기로 뚜렷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특히 비상시국을 맞아 사리사욕과 개인의 보신만을 추구하는 사회 지도층의 낯 뜨거운 행태는 결국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다. 또한 그것은 오랜 기간 해외의 일본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낸 제국의 이념과 가치관을 급속도로 무너뜨렸다. 지도력과 상호 신뢰의 붕괴는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위기감과 피해 의식을 고조시켰고, 급기야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게 만들어 곳곳에서 일본인 공동체의 해체를 촉진했다. 이제 나만 살겠다는 원초적 본능만 남은 조선의 일본인들에게 천황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정제되고 균질화된 제국의 일본인 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본인을 상대로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인 사회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p.23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은 근대 이래의 한일관계와 조선에서 보낸 자신의 삶 전체를 상대화할 수 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관념이다. p.23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은 조선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는 이웃 일본인 집에 불이 났다거나, 동네 부잣집과 순사 가족이 차례로 화를 입었다는 심각한 대화가 늘 따라붙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른들이 부쩍 조선인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는 조선의 일본인들이 패전 후에야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이 생경한 공포로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p.31

남북한을 막론하고 일본인의 본토 귀환과 정착 과정은 강고한 지배체제 속에 숨어 있던 구 제국의 균열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확대 심화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p.135

식민지 시기부터 패전과 해방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일본인과 조선인의 가해와 피해’,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는 악순환 고리는 양 지역 간의 인구 이동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p.244

(이소가야 스에지) “북한의 역사적 비극(한국전쟁)을 지켜보면서 대다수의 일본인은 자신들이 입은 고난을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전쟁 행위에 따른 결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조선 민족에 대한 일본의 반세기에 걸친 박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했을까. 그저 자신들이 조우했던 고난에만 매몰되거나, (p.264)은 조선 민족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미워하며 조선을 떠나지 않았는지 ...” 그는 일본이 제국을 유지 확대하고자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도발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다양한 피해에 눈을 감아버린 것, 그리고 이를 간과한 전후 일본 사회의 평화 이데올로기가 지닌 역사 인식의 오류와 허상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p.265

전후 일본 사회가 해외에서 돌아온 일본인을 광의의 전쟁 피해자로 자리매김 한 것은 이들의 궁상과 피해를 연합국에 호소해 전후 배상을 최소화하고, 은급법의 부활 등 차별적 원호행정에서 비롯된 사회집단 사이의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아시아, 태평양전쟁 이전 그들이 자행한 식민 지배로 말미암은 구 식민지 사람들의 피해를 어떤 구도로 설명할 것인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한일 양 민족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면 가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한일 양국(p.271)이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이에 대한 해답을 양 국민이 납득하고 공유해야만 할 것이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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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서민] 무리한 설정이 아쉽다. | m o r i 2019-06-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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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서민 저
생각정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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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를 열면서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의사들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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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 교수의 재치있는 글을 좋아한다. 자칫 어렵고 재미없을 분야가 확실한 기생충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뒤로 그의 팬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책까지 찾아보지는 않지만, 종종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다.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역시 같은 기대감을 가지게 했지만, 다소 아쉽다. 신석기인 외치와 타임슬립을 빌어 과거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어쩐지 몰입감을 떨어뜨렸다. 무리한 설정이나 반복되는 패턴은 지루하게 느꼈다. 정말 서민교수가 쓴 글이 맞나 싶었다. 내용 자체는 분명히 쉽게 전달되지만, 평소의 재치있는 이야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방대한 양을 주어진 틀 안에서 소화하려다 보니 무리수가 되지 않았나 싶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차라리 외치가 아니라 서민 교수가 직접 이야기했으면 나았을 듯 하다.

  그래도 서민 교수의, 의사들의 마음만은 알겠다. "이 강좌를 열면서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  그것은 "어떻게 하면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지 고뇌"하고, "자신의 능력으론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을 미안해했" "의사들의 그런 마음을(p.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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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셀수스는 지식은(p.194) 관찰과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라고 믿은 사람이었다. p.195

의학 발전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여러 의학자들의 의도하지 않았던 연대에 의해 이루어진다. p.261

논문은 학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동료들에게 알리면서, 후배 과학자들에게 내 발견을 발판으로 삼아(p.344) 더 대단한 뭔가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서로 경쟁도 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측면이 더 많다. 어지간한 발견은 영업비밀이나 특허로 만드는 기업들과 달리, 과학자들이 논문에 자신의 연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쓰는 이유는 협업 때문이다. p.345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진실이다. p.396

많은 의사를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의사들을 직접 만났죠. 제가 만난 의사들은 말입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지 고뇌했고, 자신의 능력으론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을 미안해했어요. 시대와 지역은 달랐지만, 그 마음만은 똑같았습니다. 이 강좌를 열면서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의사들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p.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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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