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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인사 _ 김서령 :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야 사랑이다. | 기본 카테고리 2023-05-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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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정의 인사

김서령 저
폴앤니나 | 2021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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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일은 참 가슴 설레는 일이다.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의 감정이 생기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오간다. 감정의 교감이 점점 깊어져 서로 떨어지기 싫은 순간이 오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 방향의 감정일 때는 어떻게 될까. 혼자서만 속앓이는 하는 짝사랑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이 외방향의 감정이 왜곡되고 삐뚤어져서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면 스토킹이 되고 집착이 된다. 과연 이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 [수정의 인사]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다.

 

남은 자들의 슬픔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서, 이를테면 만만해 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든 책이다. 표지도 제목도 가벼운 청소년 소설 정도로 보였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빌려온 책이다. 처음에 절반 정도까지는 가볍게 읽어나갔다. 소설의 주인공은 한주은행 연정 시장지점에 근무하는 '한수정' 대리다. 수정의 부모님은 재혼을 해서 세 자매는 성이 다르다. 재혼 가정의 '성씨'가 다른 세 자매의 이야기. 소재도 새로웠고 소소하게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중반쯤 갑자기 '쾅'! 하고 장르가 바뀐다. 이런 반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수정을 따라다니던 시장 청년 철규, 어두운 길에 그 남자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실랑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충격적인 반전이다. 아직 이야기는 중간까지도 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이어져 나갈지 감이 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요, 참 이상해요. 사랑은 두 사람이 같이하는 거 아녜요? 혼자 하는 거...... 그런 것도 사랑이라 쳐주나요? 내가 철규 씨를 사랑한 적 없는데 내가 죽은 일을 두고 사람들은 왜 자꾸 사랑 타령을 하는 걸까요?

[수정의 인사] 중에서

앞의 절반 정도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데에 반해, 뒤쪽의 절반 정도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진다. 읽고 있으니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그러다 점점 화가 난다. 떠난 자와 남은 자 사이에 힘 싸움이 일어난다. 그런데 힘없는 사람은 늘 피해자다. 피해자지만 가해자의 2차 보복이 두려워 또 움츠러들고 고개를 수그리게 된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도 화가 미칠까 피해자 쪽에서 한발 물러서게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읽다 보면 화가 나지만 왠지 실제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묘한 무력감이 든다.

 

엄마는 기어이 수민이를 밀치고 아빠의 뒷덜미를 붙들었어요. 아빠를 돌려세운 뒤 얼굴을 바작 들이대고 말했어요. 너무 앙다물어 피가 밴 입술로요.

" 나는 딸이 둘이나 더 있어. 너는 없지? 너는 아들 있지? 좋겠다. 아들이라 무서운 게 없겠구나. 나는 하나라도 더 잃을까 봐 무서워서 잠도 못 잔다, 씨발놈아."

[수정의 인사] 중에서

피해자의 가정이 파탄 나 가는 과정이 더 보고 있기 힘들다. 오히려 가해자는 멀쩡한데 피해자 주변의 남은 사람들은 갑자기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해자의 보복이나 2차 가해가 두려워 피해자의 가족은 또다시 고통받는다. 남은 가족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지옥을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에 날벼락을 맞았지만 스토킹, 우발적 사고, 일방적인 순정... 이상한 논리로 빠져나간 가해자는 다시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

 

뒤에 남은 자들의 슬픔을 읽으며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가 고개를 돌리지 말고 직시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요즘 데이트 폭력이니 스토킹 범죄니 하는 소식이 꽤나 자주 뉴스에 등장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사랑하다 싸우기도 하고 헤어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적 관심과 시스템의 구축, 좀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좀 더 바르고 건전한 개념을 잡아야겠다. 사랑은 소유나 집착이 아니다. 서로 감정을 교류하고 나누고 맞춰가는 과정이다. 사회가 각박해지더라도 아름다운 사랑의 힘은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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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끝 _ 마르셀 프루스트 : 죽어야만 끝나는 감정, 질투 | 기본 카테고리 2023-05-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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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질투의 끝

마르셀 프루스트 저/윤진 역
민음사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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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만 끝나는 감정,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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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문화권, 인종을 초월해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이 있다. 긍정적인 쪽으로는 사랑, 기쁨, 행복과 같은 것이 있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에는 미움, 분노, 슬픔, 우울과 같은 것이 있다. 이러한 감정 중에 하나가 질투가 아닌가 싶다. 인류가 느끼는 보편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중 하나이다. 특히 질투는 사랑과 동반해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와 관련해 질투의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내 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쏟아붓는데, 상대방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보인다거나, 다른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보이게 되면 불같은 질투의 감정이 솟구친다. 이 책 [질투의 끝]은 질투라는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단편집이다.

 

삶을 집어삼키는 '질투'

이 책 [질투의 끝]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단편 4권을 담고 있는 단편집이다. 이 4편의 단편은 25살에 발표한 마르셀의 첫 작품집인 쾌락과 나날(Les Plaisirs et les Jours)에서 뽑은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질투의 끝]은 이 4편 중 한편의 제목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은 아래와 같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어느 아가씨의 고백

질투의 끝

이 네 편의 단편은 공통적으로 '질투'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질투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는데 바로 사교계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작품들의 저자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1871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사교계 생활에 꽤나 심취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마르셀 프루스트는 사교계나 들락거리고, 겉멋만 부리는 '댄디'라고 경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교계의 모습이 아주 실감 나게 그려지고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애정과 질투의 감정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작품들에서 묘사되고 있는 질투의 감정은 보통 사랑의 감정과 함께 나타나는데, 사랑의 크기가 강할수록 질투의 크기도 커진다. 더 사랑할수록 더 강렬한 질투를 느끼게 된다.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질투라는 감정은 인간의 원초적인 민낯을 드러내게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포장해 보려 하지만 불타는 질투는 왠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누군가 그녀의 감각을 흥분시키고, 내가 주던 것보다 더 많은 쾌락을 주는 일이, 그녀에게 쾌락을 준다는 상황 자체가 무조건 싫어서다. 내가 원하는 바는 누구라도 그녀에게 행복을, 사랑을 주어야지 쾌락은 아니다. 누구라도 그녀에게서 쾌락을 얻고, 그녀 또한 쾌락을 얻는다면, 나는 질투를 참을 수 없다.

[질투의 끝] 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애써 포장해 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음속 깊은 곳의 진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바로 '질투'다. 참을 수 없는 질투의 감정이 솟아난다. 그녀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시작했지만 사실은 나의 행복을 위한 마음이다. 질투는 이기적인 감정이다.

이 단편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 중 또 한 가지는 '죽음'이다.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질투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인데, 죽음이라는 개념도 동시에 등장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결국 이 불같은 질투의 감정을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종착점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죽음'이 아니고서는 인간이 '질투'라는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질투가 길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에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다른 누구보다도 더 특별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나의 형제들"이라고 되풀이했고, 자기 눈동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프랑수아즈에게 향하는 까닭은 오로지 그녀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머지않아 닫히게 될, 이미 더 이상 울지 않는 그녀의 눈에 연민이 일었기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그는 의사보다, 늙은 친척들보다, 하인들보다 프랑수아즈를 더 많이 사랑하거나 다르게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게 질투가 끝났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생명이 꺼져 갈 때에야, 불같이 타오르던 질투의 감정이 사라진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수아즈가 의사나, 친척들 심지어 하인들과도 별반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 사라지는 순간, 드디어 질투가 끝난다.

이 책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사람과 질투, 그리고 죽음이라는 인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읽어보면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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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카페 _ 존 스트레레키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23-05-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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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저/고상숙 역
클레이하우스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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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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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바쁜 세상이다.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항상 정신없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현대인의 삶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휴가 때도 그 짧은 휴가를 어떻게 알차고 최대한 많은 것을 할까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렇게 맹렬히 앞만 보고 달려가다 문득 뒤돌아 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뛰어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방향을 잃기도 한다. 이 책 [세상 끝의 카페]는 이렇게 앞만 보고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소설 형식의 특이한 자기 계발서이다.

 

인생이라고 불리는 모험을 하는 여행자

이 책의 제일 앞 쪽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을 '인생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모험을 여러분과 함께하는 여행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 자신에 관한 이 정의가 이 책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고 영감에 찬 하루하루로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 집단적 열망 때문에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모든 사람이 공감대를 가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 [세상 끝의 카페]는 소설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저자 혹은 주인공이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고 어딘가로 가던 길에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길을 잃고 우연히 세상 끝 카페에 도착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여기서부터 이미 여러 가지 의미가 생긴다. 어디로 가는지, 무얼 위해 가는지 모를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에서 길을 잃는다. 우리의 인생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세상 끝의 카페'는 그런 의미를 가진 것 같다.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에서 갑자기 우리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시점 혹은 어떤 계기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도달한 어떤 생각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줄 발견을 하게 된다. 그렇게 그 카페에서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라는 이야기다. 픽션과 논픽션을 적절히 섞어서 실제 같은 가상의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

 

주인공은 그 '세상 끝의 카페'에서 메뉴판을 받게 되는데, 그 메뉴판에는 세 가지 질문이 쓰여 있다.

거기엔 '기다리는 동안 생각해 볼 것'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세 질문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 끝의 카페] 중에서

이 세 가지 질문이 바로 이 책이 던지는 화두이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면서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책이다.

 

주인공의 인생은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나름의 성과도 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만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좌절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의미가 과연 성공하느냐 마느냐로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아니라면 우린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런 원론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인생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형편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 좌절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훌륭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평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꽤 괜찮은, 좋은 인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 어디엔가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 끝의 카페] 중에서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신비한 분위기의 판타지 소설 형식으로 풀어나가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이야기들,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다. 너무 무겁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 읽듯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살면서 인생의 해답을 찾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싶지만, 만약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책에서 답을 찾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세상 끝의 카페'는 책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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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_ 아베 코보 : 모래 구멍 속 여자는 함정의 미끼였을까? 또 다른 피해자였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23-05-1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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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저/김난주 역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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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구멍 속 여자는 함정의 미끼였을까? 또 다른 피해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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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귀신'이라는 곤충이 있다. 모래에 구덩이 같은 함정을 파고 모래에 흘러내린 개미를 잡아먹는 곤충이다. 영어로는 'Ant-lion'이니 '개미사자'에 가깝지만 모래 언덕을 힘없이 흘러내린 희생자에게 갑자기 튀어나와 구덩이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 모습은 귀신이 더 잘 어울린다. 많은 공상과학물이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우주 괴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이 곤충은 명주잠자리의 유충으로 이런 모래 함정을 만들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머리로 모래를 끼얹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체액을 빨아먹는다. 이 소설 [모래의 여자]는 마치 개미귀신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다.

 

모래 구덩이 속의 여자

주인공은 평범한 학교 선생님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생활, 아슬아슬 먹고살 만한 수입으로 숨 막히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걸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에게는 남모르는취미가 하나 있는데 바로 곤충 채집이다. 평범한 곤충이 아니라 남들이 찾아내지 못한 특별한 곤충을 찾아내고자 휴가를 내고 외진 사구의 해변 마을을 찾아간다. 답답한 일상에서 무언가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구석구석 오지를 뒤져 찾아간 마을이 뭔가 좀 기괴하다. 바다와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 낸 모래 주머니 같은 구조의 마을이다. 주인공은 이런 특이한 곳에서라야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한 곤충을 찾아내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교통수단도 끊기고 마을에는 변변한 숙박 시설도 없다. 이런 주인공의 사정을 알았는지 마을의 노인이 접근해 이것저것 사정을 묻더니 하룻밤 편의를 봐주겠다고 한다.

갑자기 참견쟁이 노인네처럼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투로, "보시다시피, 가난한 마을이라 그럴듯한 집 한 채 없지만, 자네만 좋다면야, 내가 그 정도 편리는 봐줄 수 있지" 하고 말했다.

딱히 악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무언가 - 아마 조사하러 나올 예정인 현청의 공무원이나 뭐 그런 사람 -를 경계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경계만 풀면 선량하기 짝이 없는 어민에 지나지 않는다.

[모래의 여자] 중에서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따라간 집은 평지가 아니라 거대한 동굴 같은 웅덩이 안에 있는 집이다. 마을 전체에 강한 모래바람이 계속 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줄사다리를 타고 하룻밤을 묵으러 내려간다.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이 모든 일이 시작된다. 정말 기기하고 으스스 한 이야기다. 아주 예전에 '미저리'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야기 전개가 흡입력 있고 다음 상황이 너무 궁금해서 빨려 들어가 읽게 되는 이야기다. 헤어날 수가 없는 게 꼭 개미지옥 같은 소설이다.

의외로 마지막은 꽤나 철학적이다.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는 회사와 일에 묶여 살아가다 자유를 찾아 휴가를 내고 떠나간다. 그런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반복되는 일상을 자유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시지푸스가 신들의 형벌로 매일매일 바위를 언덕 위로 굴려 올려야 했던 것처럼 노동은 과연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형벌일까? 우리에게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그것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자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모래와의 투쟁과 일과가 된 수작업에 미미한 충족감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자학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게 쾌유되는 방식이 있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법이니까.

[모래의 여자] 중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참 재미있다. 긴장감과 반전, 추격전, 탈출, 감금, 성과 폭력 등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한참 숨이 멎을 것 같이 몰입해서 읽다 보면 마지막에 많은 생각의 잔상이 남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재미와 의미'를 갖춘 이야기다.

빡빡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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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 _ 박지원 :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하더니... | 기본 카테고리 2023-05-1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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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양반전 외

박지원,이옥 원작/장철문 글/이현미 그림
창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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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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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예스러운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실이나 상황을 비꼬아서 우습게 표현하는 경우에 '풍자'와 '해학'이라는 표현을 쓴다. 요즘식 표현으로 하면 무얼까 생각해 보면 '유머'라거나 '패러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풍자와 해학'이라는 표현이 아주 찰떡같은 표현이기는 하다. 이 작품 [양반전]은 '풍자와 해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 작품이 아닐까 싶은 이야기다.

 

양반, 별것 없거나 도둑이거나.

이 작품의 저자는 그 유명한 연암 박지원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작품으로는 열하일기, 허생전 그리고 이 양반전이 있다. 박지원의 허생전도 사회 풍자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아주 예전에 리뷰한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 보시면 보실 수 있다.

https://blog.naver.com/thedanny77/222325890661

 

허생전에서는 허생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양반들의 조선 사회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무능한지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반면 이 작품 양반전은 '양반'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있기는 하지만 허생전에 비하면 좀 더 해학적인 듯싶다. 한마디로 유머러스한 콩트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그대로 대본으로 해서 현대에 '코빅'같은 코미디 프로에서 연출해도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참 재치 있는 글이다.

 

[양반전]의 줄거리는 이렇다. 옛날에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았는데 형편이 좋지 못해 해마다 관가에서 곡식을 얻어먹었다. 그런데 몇 해를 계속 그랬더니 쌀 천석에 이르렀다. 당연히 양반은 갚을 능력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찰사가 고을을 돌다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군량을 축낸 양반을 잡아 가두게 된다. 그때 그 마을의 부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그 천석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 지위를 사면 더 이상 굽신 거리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이를 알게 된 군수는 오히려 부자를 칭찬한다.

군자답구려 부자시여. 양반답구려 부자시여. 부유하면서도 아끼지 않으니 정의롭고, 남의 어려움을 돌봐 주니 어질고. 낮은 신분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를 그리워하니 슬기롭군요. 이야말로 참된 양반입니다.

[양반전] 중에서

 

그래서 군수는 자기가 사람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증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증서를 만들어 자신이 서명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도 우스운 대목인데 양반의 지위를 사고파는 행위를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공공기관의 장이 증빙까지 해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니, 당시 조선 사회의 양반이라는 계층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퇴색하고 무능한 인식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렇게 증인들 앞에서 증서를 제작하는데 1차로 작성하는 증서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외워야 합니다. 굶주림을 참고 견디며, 입에서 가난하다는 말을 내지 않아야 합니다. .... 손에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합니다.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합니다. .... 화롯가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에 침이 튀지 말아야 합니다...

[양반전] 중에서

한참을 멍하게 듣고 있던 부자가 말한다.

양반이 겨우 요것뿐이란 말씀이오? 나는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이것뿐이라면, 너무 억울하게 곡식만 빼앗긴 겁니다. 아무쪼록 좀 더 이롭게 고쳐주시오.

[양반전] 중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막대한 돈을 주고 산 양반인데, 심지어 '신선과 같다'라고 들은 양반인데 듣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온통 쓸데없는 허례허식에 보여주기식 체면치레에 득이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고행길이지 싶다. 그래서 군수는 다시 증서를 만든다. 양반은 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존귀하게 지은 높은 지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용이 묘하다. 훌륭한 남인(南人)에게 잘 보이면 수령 노릇도 할 수 있고, 아랫사람들이 다 떠받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냥 줄 잘 서고 놀고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그러다 잘 안되면 백성들을 착취해서 빼앗으면 된다는 내용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방 안에서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뜰 앞에 곡식을 쌓아 학을 기른다.

(비록 그렇지 못해서)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다가 내 밭을 김 내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네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

[양반전] 중에서

 

그래도 이 부자는 양반은 아니지만 오히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양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다. 듣다 듣다 못한 부자가 증서 만들기를 중지시키고 어이없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만 두시오. 제발 그만 두시오. 참으로 맹랑합니다 그려. 당신네들이 나를 도둑놈이 되라 하시는군요.

[양반전] 중에서

그러고는 머리채를 흔들며 달아났다고 한다. 정말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은 양반들은 얼마나 뜨끔했을까 싶다. 아마 당시의 박지원은 양반 계층의 미움을 샀지 싶다. 같은 양반인 박지원이 보기에도 당시의 양반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사회상을 잘 담고 있는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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