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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성자 만델라가 들려 주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나 자신과의 대화] | My Reviews & etc 2013-12-3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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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 자신과의 대화

넬슨 만델라 저/버락 오바마 서문/윤길순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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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의 자서전은 이미 한 권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RHK에서 펴낸 이 책은 그 포맷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네요. 이 책은, 만델라가 남긴 메모라든가, 동료, 기자, 그 외 여러 관계자와 나눈 대화의 기록, 편지 등에서, 의미 있는 기록들을 발췌해서 주제별로 엮은 모습입니다. 그러니, 소설처럼 연대기를 읽어 나가고 싶은 분들에게는 두터운 볼륨을 빨리 읽어내기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전에 나온 자서전과는 다른 "존재 이유"를 갖는다고 봐야겠는데요. 비유를 하자면, 빠른 속도로 돌리는 영사기의 필름과, 앨범에 정리되어 한 순간 한 순간이 분명히 찍혀 나온 스틸 사진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볼 때에는, 장면의 전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정확한 사태의 전개가 무엇이었는지 놓치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장면 하나하나를 정확히 관찰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진실을 이해하기보다는 주변의 맥락과, 보는 우리 자신의 선지식에 의해 적당한 "해석"을 거쳐 받아들이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반면 스틸 사진은, 우리가 정지 화면으로 몇 분이고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대한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반면 전후 맥락을 알 수 없고, 캡처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오히려 지나치게 미시적인 관찰이 전체를 왜곡할 수도 있죠.

이 책은 만델라의 긴 인생의 순간순간, 그가 가장 자신의 영혼에 진정성 있게 다가간 때에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남긴 말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잡아낸 단편적인 기록들을 편집한 모습입니다. 만델라 재단이 기록물 자료로 보존하고 있는 1차 문헌에서, 전체로 묶어내어 하나의 완성된 의미틀을 갖출 수 있는 언명들을 모은, 만델라라는 위인의 인성을 그대로 잘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을 캡처해 낸 조각들이라고 볼 수 있네요. 이 책의 자매편으로 <만델라 어록>이 있는데, 그 어록집은 만델라가 남긴 가장 정제된 문장만을 모은 것이고, 이 책이 인용하는 기록들은 "날것 그대로의 만델라 육성"을 채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 책만의 장점이라면,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와 인권, 인류 보편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그래서 인생의 태반을 영어의 몸으로 보낸 영웅, 투사, 성인으로서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 외에, 인간적인 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또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거죠. 전에 나온 자서전이,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처럼 "집단 창작"의 느낌이 짙은 편이고, 그의 구체적인 행적들을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묶으려고 다소 윤색과 가공이 입혀진 색깔이라면, 이 책은 피사체의 정직한 (때로는 당혹스러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가 마치 마하트마 간디처럼 숭고한 정신과 완벽한 도덕주의로 일관했던 걸로 알고만 있지만, 그는 감옥 안에서나 그 이전 ANC 활동 중에서나 "무장 투쟁"의 가능성과 효력을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겁니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이나, (게릴라전이 아닌 정규전의 정석을 가르치는) 클라우제비츠의 저서를 탐독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단호한 투사로서, 비겁하고 잔인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험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투사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려서 족장의 후예에게 관습적으로 강요되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도피했다든가, 법학사 학위 취득에 장애가 되는 라틴어 이수를 면제해 달라고 청원하는 모습이라든가, "결국 내가 읽은 책이라곤 이런 것들밖에 없네요.. 아, 그 책의 저자 이름이 뭐였더라?" 하고 격의 없는 속마음을 토로하는 장면 등은, 이 책 표지와 속지 곳곳에서 가식 없이 환히 웃고 있는 그의 모습과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 그의 매력을 자연스레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서에도 없는, 한국어 번역본만의 빼어난 점이 있습니다. 역사, 인문 대작 번역의 대가인 윤길순 선생이 언제나 독자를 위해 정성껏 마련하는 성의이기도 하죠. 책 말미에 보면, 등장하는 인물들의 약력, 생애, 만델라와의 관계 등을 잘 정리해 준 소사전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서 이해 안 되는 항목이 나오면 수시로 참고할 수 있고(인명은 퍼스트 네임 기준 가나다 순입니다. 혼동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미리 이 소사전을 읽고 본문을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뒤에는 지도까지 실려 있는데, 지명을 범례로 따로 정리하고서는 이 지명에 얽힌 만델라의 행적을 연도별로 하나하나 정리해 주고 있어서, 만약 "만델라 능력 검정 시험" 같은 게 있으면 이 책 한 권 읽고 만점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만델라의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실려 있는 백과사전 같은 책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남아공 백인 지도자 데클레르크라든가, 투투 주교, 그리고 만델라보다 세 살 많은 그의 "조카" 마탄지마 같은 인물들에 대해 정확한 좌표를 잡고 읽어야 100% 소화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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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토론이 창의적 인재를 낳는다 [유대인의 형제 교육법]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3-12-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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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대인의 형제 교육법

에제키엘 이매뉴얼 저/김정희 역
와이즈베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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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성공 스토리, 유대인식 교육법, 유대인식 재테크,..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은 요즘 부쩍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탈무드"라는 제목을 단 처세술 매뉴얼이 한때 크게 유행한 적도 있었는데요. 대체로 이런 책들은 내용이 서로 비슷해서 독자는 몇 권 읽다 보면 질리는 게 보통입니다. 저만 해도 그렇고요.

이 책이 주제로 다루고 있는 "유대인 형제들"은, 그런데 그런 실용서, 자계서에서 다루던 추상적인, 평균적인 형제가 아닙니다. 마치 케네디 형제, 베르누이 형제, 반 아이크 형제, 라이트 형제, 비트겐슈타인 형제들, 이 책에도 잠시 언급되는 로트쉴트(로스차일드) 형제들.. 처럼,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분명한 존재감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위인 반열에 들 만한 형제들입니다. 그 형제들은, 에제키엘, 람, 아리, 이 세 명입니다. 이 삼형제가, 그리 여유롭지도 유리하지도 않은 환경(가난한 데가 이민자 출신 배경)에서, 질곡과 시련이 많았던 성장 과정을 어떻게 거쳐서 오늘날 만인이 우러러보는 승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주로 유소년 시절에 초점을 두고 차분차분히, 그리고 진솔히, 독자에게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보통, 자녀들 중 하나 정도를 위인으로 키우는 일도, 위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드문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대단히 힘든 일이겠죠. 위인은 고사하고, 좋은 대학만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만 시켜도 주변에선 자식 농사 잘 지었다며 그 부모를 향한 칭송이 자자합니다. 애가 원체 좋은 머리를 타고났거나, 성격이 차분하고 야무진 편이라면, 최소한 좋은 학교를 보내는 일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는,.. 아주 나쁜 수준은 갓 면한 정도고, 성격은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 큰 이슈가 되고 있는) ADHD를 의심할 만큼 산만하고 통제 불능에다 야생적인 활력만 가득하다면, 그런 아이를 모범생, 성공자로 키우기는 고사하고 그저 남들만큼 정상적으로 양육하는 일도 어려울 것입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아들 키우..:" 까지 단어를 입력하면, 자동 완성 후보 중에 "아들 키우다 미쳐 버리겠어요."라는 어구가 바로 등장할 정도입니다. 요즘처럼 민주적, 자유방임형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분위기, 게다가 사회적으로 갖가지 유해 환경 요소가 아이들에게 직접 노출되고 있는 세상에서, 아이를 표준적 모범생으로 키우는 게 목표이든, 그저 아이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게 도와 주는 정도의 목표이건, 특히 사내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어머니들(아직 아버지의 육아 부담 부분이 명확히 합의되지 않은 사회이므로)에게 지극히 어려운 숙제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큰아들 에제키엘은 생명윤리학계의 세계적 거장입니다. 저는 생명윤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이 책을 꼼꼼히 읽은 후에도 따로 여러 문헌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저 "윤리"만 강조한다고 권위자가 되는 분야가 아니라, 법학, 인문 제 분야에 대한 소양은 물론이고, 본업 격인 생물학, 의학에 대해서도 정통해야 할 필요가 있더군요. 이 중 어느 하나만 잘하는 것도 벅찬 일인데 말이죠. 요즘 유행하는 말로 "통섭"의 자질이 갖추어져야 그 무리 없는 업무 수행이 가능한 분야였습니다. 아들을 이런 인물로 키우려면 대체 엄마는 어떤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그저 열심히, 남들 해주는 일만 다 챙겨 준다고 이뤄질 결과는 아닐 것 같아요. 특히 대한민국 어머니라면 그 중에 열의 없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통섭은커녕 학과 공부 두루두루 잘하게 만들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둘째아들 람은 미국에서 뉴욕, LA에 이어 세번째로 큰 도시의 시장을 지내고 있는 거물 정치인입니다. 그 자신과 두 형제가 모두 시카고에서 나고 자랐으니,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가장 큰 영예를 누린 셈입니다. 백악관 비서실장을 역임한 건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였으며, 오바마 역시 이 시카고에서 정치적 경력을 다지고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까지 역임한 사람이므로 그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셋째아들 아리는 헐리웃에서 손꼽는 규모의 연예인 에이전시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막내 아리의 캐릭터가 가장 인상 깊게 남더군요. 큰형은 그나마 차분하고 지적이며, 둘째형은 결국 활동적이면서도 조정능력을 배양하는 쪽으로 자질과 성격을 정리해나갔습니다. 하지만 막내 아리는, 끝까지 자유분방한 성격의 미덕을 그대로 살려서, 자신의 적성에 가장 맞는 분야에서 커리어를 확립한 것입니다.

학자, 정치인, 사업가,... 어쩌면 이렇게, 각 분야로 균형 있게 세 아들을 고루 진출시키는 아름다운 양육의 포트폴리오를, 그 부모들은 빚어 낼 수 있었을까요? 이 책에 자세히 나오는 대로, 아이들은 온순하다거나 질서와 기존의 가치에 순응하는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머리는 우수했지만, 타고난 성격은 거의 야생마에 가까운 타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아버지 베냐민(벤자민), 어머니 마샤는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워냈을까요? 놀랍게도, 타고나길 주체 못할 반항기와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애들을 두고, 그 창의적이고 대담한 기질을 더 부추기는 방식으로  길러냈다는 이야기더군요. "공격이 최상의 방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자명한 진리도 없다. 따지고, 묻고, 권위에 도전하라." "다만, 남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때는 먼저 그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한 후, 어디까지나 팩트와 논리에 의거하여 이를 공박하라." "본디 남다른 일을 시도하는 자에게는, 평범한 이들의 십자포화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특히, 진보적인 정치성향은 어머니 마샤의 영향이 컸더군요. 이른바 오바마케어는 현재까지도 미국에서 기득권 보수 세력의 저항을 심하게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첫째 에제키엘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되어 오던 의료제도 개혁 움직임에서 그 첫째 가는 옹호자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universal health coverage는 대안으로 거론되는 의료 제도 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으로 시민들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어머니 마샤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불의한 힘에 의해 박해를 받고 있다면, 즉시 나서서 그를 도우라."고 가르쳤다는 군요. 삼형제의 부친인 베냐민은, 게다가 (이민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의사가 직업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평소에는 진보적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막상 제 밥그릇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 싶은 단계에서는 초강경 보수로 돌변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진보의 정치적 구호가 제 일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방편이나 위장이 아니라, 진정한 인격과 도덕에 통합된 후라야 주변의 존경을 얻을 수 있죠. 여기서도 이 집안의 교육 풍토, 즉 점수따기나 적자생존식 팔꿈치밀기 테크닉이 아닌, 이웃과 소통이 가능한 통합적 인격자를 키우는 교육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이기는 하나, 심지어 같은 의료제도 개선 방향을 두고도 형제 간에 의견이 갈려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합니다. 흔히 그런 말을 하곤 하죠. "유대인 열 명이 모이면, 열 한 개의 의견으로 갈라져 토론이 벌어진다." 부모는 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세 형제가 한 방을 썼다는 건 집안 형편이 가난했다는 게 일차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들 부모는 그런 열악한 조건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습니다. 한 방에 모인 자녀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괄괄한 기질 때문에 충돌이 잦았습니다. 이 충돌과 대립의 순간을, 그 부모는 각자의 개성과 장점을 최대한으로 키울 기회로 바꾸었던 거죠. 대립과 갈등은, 합리적인 룰에 바탕한 토론을 통해 해소하게 유도했던 겁니다. 한 방에서 자란 형제들은, 눈만 뜨고 밥만 먹었다 하면 토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저 노예처럼 암기만 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과는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저자 이름을 보면, 퍼스트 네임이 에제키엘, 라스트 네임이 이매뉴얼입니다. 참 이름만 봐도 "나 유태인이요." 하고 광고를 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더 이상한 꼴이 있습니다. "이매뉴얼"은 보통 퍼스트 네임으로 쓰이지, 성(姓)으로는 잘 보기 힘든 형태입니다. 아버지 베냐민은 예루살렘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데,  간전기에 영국 신탁 통치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인들이 일으킨 폭동의 와중에 희생된 형제 이매뉴얼을 기리기 위해, 가문의 성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은 그래서 삼촌의 이름을 그 성으로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되었습니다. 어떤 존재라도 그가 현재 생명을 영위하는 것은, 위로부터의 내력과 인과 과정이 긴 시간을 통해 반영된 결과입니다. 이들 부모는, "너는 세상에서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은 특별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특성은, 결국 오늘날의 자신이 있기까지의 긴 이력을 정확하게 인식한 후에 바른 모습으로 정신에 자리할 수 있죠. 실제로 이들 형제는, 방학 중에 이스라엘에서 여름 캠프를 이수하곤 했는데요, 바로 그때에 유명한 6일 전쟁이 발발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진한 삶의 자취는 어떤 식으로건 그 자식들에게 긍정적이고 활기찬 방식으로 상속되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불꽃 같은 열정과 성실성으로 인생을 살았어야, 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물려 줄 수 있겠죠.

세상에 당연한 건 없습니다. 아무리 옳아 보이는 진리라도 세부적으로는 허점이 있게 마련이고, 그를 향한 정당한 지적, 창의적인 정신에 의해 교정되고 개량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토론과 경쟁을 통해, 소모적인 말꼬리잡기가 아닌 상생의 지향을 위해 건전한 룰을 마련해야 하죠. 심판이 따로 없는 대립의 장에서, 결국 참여자 각자가 상대를 존중하며 공동선을 지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바로 서야, 자녀들에게 이런 칼날 같은 지성과 성숙한 윤리의식을 배양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너무도 멀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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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섯 번째 나눔이벤트 발표합니다. [세상의중심예란님이여신이벤트당첨기념] | 서평이벤트 2013-09-0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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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yes24.com/dhrgml27

제 나눔이벤트에 많은 응원과 참여로 성원해주신 예스 이웃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나눔이벤트의 선정기준은 복합적입니다. 먼저 제 마음을 움직여주신 이웃 한 분께 원하시는 도서 3종을 최우선으로 드리기로 했고,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신 두 분, 네이버 사다리 타기는 최대 24명 인원제한이 있는지라 나머지 분들은 제비뽑기로 했습니다. 책이 중복되는 이유로 꽝도 있답니다.


 

발표하겠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여주신 아자아자~

모두가 이벤트에만 댓글 달아주실 때, 아자아자님만은 부족한 제 서평에도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제 마음을 감동시켜주신 그 배려를 책에 담아 드립니다.

1. 최후의 가족

2. 20세기의 셔츠

3. 독이 서린 말


[댓글상]

제 블로그를 북적북적하게 만들어주신 서유당~

그리고 키미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유당님께는 2권의 책이 아자아자님과 겹쳐서

1. 최후의 가족 아자아자님과 겹침

2. 독이 서린 말 아자아자님과 겹침

3.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씨의 행복여행]과 함께 아주 약소한 도서문화상품권(오천원)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키미스님

1. 하늘모험

2. 비정근

3. 로또보다 풍수

히야~ 키미스님은 앞의 두 분과 겹치는 책이 전혀 없군요. 그래서 3권 전부 다 드립니다.

 

회사 출근하자마자 일은 제껴놓고~~

닉네임을 모두 친 후에 하나씩 정성껏 오린 다음.. 모두 뒤집은 채, 눈을 감고 뽑았습니다.

믿어주세요~~~ㅋ 


[제비뽑기]

당첨자는 라떼님김진철님이십니다.

 

라떼님

1. 정글만리1

2. 하늘모험 키미스님과 겹침

3. 스파이시


김진철님

1. 20세기의 셔츠 아자아자님과 겹침

2. 곰곰묘묘 이야기

3. 들살림 월령가

 

 


 

이러고 보니,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최면 심리술] 

2권의 책이 남았네요.

그래서 다시 제비뽑기를 했답니다.


정글만리 1

곰곰묘묘 이야기

로또보다 풍수

들살림 월령가

최후의 가족

하늘 모험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20세기의 셔츠

독이 서린 말

최면 심리술

스파이시

비정근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파란자전거님

1. 들살림 월령가

2. 20세기의 셔츠

3. 비정근

이궁~ 전부 앞의 분들이 고르신 책이라서 꽝이네요..ㅡㅡ;;

죄송요~


북뉴스 조나단님

1. 하늘 모험

2. 비정근

3. 20세기의 셔츠

어이쿠~ 조나단님 역시 꽝이네요..ㅡㅡ;;

송구스러워라~~

 

두 분께는..

염장 지를까 봐 무서워 인증샷 찍은 거 지웠습니다..ㅜㅜ

제 손이 죄인입니다.

 

그리고...

 

짙은_파랑님이 당첨되셨습니다

1.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2.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3.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어찌 아시고 세 번을 모두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에 올인해 주셨네요~ㅎㅎ

제가 뽑아놓고도 신기합니다~ㅋㅋ

 

 

 

[최면심리술]은 신청하신 분들 6분만 따로 추려서 뽑았습니다.

(calamis님, 한돌님, stj104님, wildlily님, 파래김님, grace801님)

당첨자는 wildlily님이십니다.


wildlily님

1. 최면심리술

2. 비정근

3. 로또보다 풍수

[최면심리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드리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소위 복불복이라는 생각도 많이들 드셨을텐데요. 당첨이 안되셨다고 우울해 마시고~ 많은 이웃분들 참여로 인해 유쾌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첨되신 이웃님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소 3종세트를 쪽지로 주시면 추석 연휴 전까지 도착되도록 하겠습니다.시 한 번 부족한 제 나눔 이벤트에 참여해 주신 이웃님들 모두에게 진심을 듬뿍 담아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도 풍성한 나눔이 되도록 노력하는 예라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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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도 소통의 일환이다 [아부지도] | My Reviews & etc 2013-12-3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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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부지도

타오돤팡 저/유소영 역
중앙북스(books)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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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그런 데에서도 의외의 쾌감을 찾곤 합니다. 분명 도덕적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말인데, 실제로 치열하고 야비하기까지 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터득한 "교훈"이랄까 요령에 대해, 뻔뻔스럽게 "이것이 진리!"라며 늘어 놓는 말, 이런 말은 최소한 "정직'이라는 미덕을 갖추었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통쾌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지지를 받습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맞는 말 아닌가?" 중국 고전은 물론 유교 윤리를 잔뜩 담고도 있지만, 초월적 명제나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처세와 인간 관계의 법칙을 배운다는 점에서 특히 경청할 게 많습니다. 공자 역시 "괴력난신"을 언급하고 논하기를 꺼렸는데, 이는 그의 개성적이고 심오한 객관적 관념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요즘 "후흑학"처럼, 실용과 처세의 묘한 이치를 "돌직구"의 언명에 담아 대중에게 가르치는 책이 여럿 나오고 있습니다. 읽어 보면 비록 표현은 기분 나쁘고 거칠어서(표현이 세련되어, 그 대의에 찬동하지는 않아도 묘하게 수긍을 유도하는 것도 있습니다) 일시의 반감을 부르지만, 따지고 곱씹어 보면 대단히 타당하며, 무엇보다 실제 인간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게 많죠. "실용성"이란 요즘 같은 스피드와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가장 선호되고 우선시되는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의 쓸모가 없는 건 결국 정신의 공간만 잉여로 차지하여, 결과적인 말썽이나 장애를 빚기기 보통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 책의 제목을 보십시오, "아부지도"입니다. "아부지도, 어무이도, 내 말이 그르다 하지 않으시네."할 때의 어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阿附, 아첨에도, "도(道)"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홍 모 비서관이 아무개 전직 대통령에게 짐짓 비꼬듯 추어올리는 말을 하면서, "아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기자들에게 농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중국의 지난 고사를 여러 시대로부터 추출하여 인용하면서, 상급자의 비위를 달래고 소통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표현을 구사하되, 그저 듣기에만 좋고 내심으로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실패한 아부가 아닌, "이런 말을 해야 상사, 주군이 진짜 좋아할 법한 테크닉"을 골라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가진 최대의 문화적 자산은 바로 그 풍부한 고전입니다. 양적으로 풍부하다 보니 자연 담아올릴 엑기스도 많겠지만, 이 저자 타오돤팡(陶短房. 도단방)은 용케도 그 방대한 사서(史書)에서 적실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만 추려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재미없게 편집한 처세서는, 그저 우리가 잘 아는 고사 몇 개만 짚다 보면 어느 새 식상함에 빠집니다. 이런 책이 우리 독자에게 환영 받으려면, 첫째 교과서나 다른 실용서가 잘 다루지 않는 좀 드물다 싶은 이야기를 취해야 하고, 둘째 그러면서도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를 끼워 넣어 맥락이 산만해지지 않게 해야 하며, 셋째 잘 알려지지 않아 참신하다고 해도 그 주인공(역사 인물)이 너무 생소하면 공감과 동조의 효력이 반감되므로, 되도록이면 인물만큼은 어느 정도 알려진 pool에서 잡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저자의 구수한 입담과 해설, 책의 편찬 취지를 잘 구현할 힘 있는 독자적 서술이 들어가야 합니다. 기껏 역사 이야기만 재미 있게 늘어 놓아도, 나중에 가서 "그냥 이야기책이었나?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시간 들여 읽은 이유와 보람은 뭐지?" 같은 생각이 들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이 책은 이런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매 챕터마다 "요지, 핵심"이 무엇인지 간단한 요약까지 곁들이고 있어서, 이런 종류의 책으로 최고의 만족을 주었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읽는 재미만으로도 최고였습니다.


사람 사이를 잘 줄타기하는 데 있어, 최고의 묘미는 바로 그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A라는 상황에서 분명히 통하던 게, 새로운 B상황에서는 전혀 약발이 먹질 않습니다. 이 책에 나온 예를 들어 보죠. 진 문공은 전쟁상황에서 벼슬을 사양하고 누운 신하에게 그 용태를 살피고 올 것을 측근에게 주문합니다. 이 말을 듣자 신하의 주변에선 "대감님, 즉시 자리보전하고 칭병을 하십시오." 라고 권하죠. 그런데 이 사람은 문공의 측근이 와서 자신을 살피는데도, 아픈 기색 없이 일어나서 뛰기(저자의 유머러스한 표현에 따르면 "유산소 운동"이라는군요)까지 합니다.사실 진 문공은 "그자가 누워서 아픈 시늉을 하면 다른 마음이 있다는 뜻이니 즉시 처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려 두라."고 은밀히 지시를 해 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주변의 권유대로 따랐다면, 이 사람은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정말 딴 마음이 없었느냐, 후에 위(魏)씨 가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韓), 조(趙)씨 가문과 나란히, 진(晉)나라를 삼분하여 나눠 가집니다. 만약 이 때 마음을 들켜 잡혀 죽었다면, 후대의 창업은 아마 없었던 일로 되었겠죠.

진시황의 명을 받들어 초를 정벌하러 가는 장군은, 수시로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어 이런 저런 물질적 요구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황제가 불쾌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말 없이 동병(動兵)에만 힘을 쓰심이... "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국가의 병력 80만 중, 60만을 휘하에 두고 있는데, 무슨 딴 마음을 먹어 군대를 돌릴 지 황제가 어찌 안심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런 시시한 요구를 끊임 없이 보내면, 황제는 나를 그저 물욕이나 채우려는 소인배로 보고 안심할 것이다." 본디 큰 일을 하려는 자는 소소한 금전욕을 채우려 들지 않고, 색욕에도 어느 순간부터 초연해집니다. 대사를 갈무리하면 그런 부산물은 자연스럽게 굴러 들어올 텐데, 뭐하허러 별도의 수고를 들이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방식을 기계적으로 "교주고슬膠柱鼓瑟"하듯 되풀이하면, 상사나 주군은 어느 새 그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꿰뚫어보고 오히려 불이익을 줄 지 모릅니다. 실제로 양수는, 이처럼 주군의 마음을 너무도 잘 헤아려 일을 처리했기에, 이른 죽음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 써먹은 수법은 다시 쓰면 안 되는 것이고, 어느 정도 내 생각의 흐름을 투명하게 누설하기도 해야 진정한 믿음을 살 수 있겠죠.


참 아부라는 게 어렵습니다. 무조건 교언영색만 갖춘다고 윗사람의 마음에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어리석은 대중을 속이려면 그런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도 가능하겠으나, 그 사람이 복합적인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갖추었기에 그 자리에까지 올랐다면, 일차원적 접근 방식으로는 환심을 살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반대로, 자신이 타인들과의 소통에 능하지 못하기에, 남이 시도하는 방법은 무조건 진정성 없는 아부라며 깎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 자신이, 진심이라곤 없는 기만과 허위로 상대를 대했기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거죠. 이렇게, 진정성도 없고 아부에도 서투른 인생이야말로 조직에 있어 암적인 존재입니다. 이런 사람은 업무 처리를 위한 능력도 불비한 경우가 많더군요. 이 책에서 설파하고 있는 진정한 "아부의 도리"란,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나의 처신을 그 주파수에 맞추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상사, 오너)를 이해하는 작업은, 부끄럽지도 않고 떳떳하지 못한 부도덕, 반칙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보는 그 상대가, 동시에 내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 나와 상대 사이의 복합 다차원 게임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균형점에 다다르게 하는 게 바로 아부의 정도(正道)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아부란 해로운 거짓과 교란 요소가 아닌, "세련된 소통의 방식"을 이른다 함이 타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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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처럼 담백하게 인생의 질박한 면을 일러주다 [낭비 없는 삶] | My Reviews & etc 2013-12-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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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낭비 없는 삶

호사카 다카시 저/박현정 역
중앙북스(books)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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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식문화를 두고, 한일 양국의 근본적 스타일 차이를 곧잘 논하곤 합니다. 우리는 한 상 부러지게 차리고, 접시마다 담은 양도 그득그득 넘치며, 다 먹지도 못할 요량으로 벌여 놓은 음식 중에 버리는 양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저렇게 먹고도 사람이 사나? 싶게, 정말 접시나 공기마다 양을 조금만 담고, 가짓수도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소식하면 과연 오래 사는 법인지,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평균 수명을 자랑하는 민족이죠. 이에는 덜 짜고 덜 매운 풍으로 조리하는 그들만의 양식도 크게 작용하지만, 크게 봐서는 유례 없는 질박하고 검소한 기풍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더 잘 이해가 됩니다.


가뜩이나 이처럼 검약하게 사는 일본 사람들인데, 거기서 뭘 더 줄이고 아끼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절약이라는 키워드를 물질 아닌 정신의 영역까지 확장해서. 사람 사이에 맺고 사는 관계에까지 확장 적용하여, 감정과 에너지의 낭비 없는 건강한 인생을 영위할 것까지 추가로 주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목의 "낭비없음"은, 인생을 통합적으로 고찰했을 때의 개념입니다. 음식이나 금전 지출에 있어 낭비를 줄이면, 인생 전반의 영역에 그 절약과 합리의 정신이 두루두루 미친다는 가르침으로 정리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서, 과연 이 책이 일본인 저자에 의해 쓰여진 게 맞는지 수시로 책 앞으로 돌아가 확인하는 소모적인 버릇까지 들였네요. 일본이 확실히 우리하고 닮아도 닮은 점이 많은 건지, 한 대목 한 구절을 저 섬나라가 아닌 우리의 실정에 적용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잘 들어 맞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왜 우리도, 절은 층에서는 솔로족이 많아서, 노년층에서는 자식들 다 분가시키고 넓은 공간을 놀리기 싫어서(물론 금전적 부담이 더 큰 이유입니다만), 점차 대형 평수에 대한 선호가 줄어들고 있죠. 얼마 전만 해도 큰 평수 아파트에 사는 게 지위나 신분의 과시가 되어, 부르는 게 값이 되던 대단한 거품 현상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상전벽해의 느낌을 부릅니다. 저자 호사카 씨는,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노년층은 과감히 다운사이징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자, 이러면 기껏 빚을 얻어 내집 장만을 했다가 상투잡이의 봉변을 당하 하우스푸어들께는 달갑지 않은 공기를 부르겠습니다만, 이게 시대의 대세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거품은 줄여야 개인에게나 사회에나 합리적이니까요. 아무튼 기존의 무분별한 투기 광풍이 선량한 중산층의 피해를 낳은 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요즘 "비우기, 잘 버리기"의 바람이 적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관심 대상입니다. 꽉 쥐고 놓아 주지 않는 모습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져 옵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소용이 크지 않은 물건은 과감히 버리는 게 상책이고, 이게 앞에서 언급한 "거주저택의 다운사이징"에도 일정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어떻게 버릴 것인지의 방법론인데, 동거 가족이 있으면 최대한 합의를 이뤄 내야 하고, 폐기물을 인수하려는 업자가 있다면 그를 알아보는 게 한푼이라도 이익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한국에도 그런 업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인터넷에는 틈새 시장을 노린 다양한 서비스가 수요자를 향해 구애 중이니까, 혹시라도 인근에 업자가 있는지 알아 보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한 선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은 일, 혹은 일상에서 의미 없이 지나치던 소소한 일이라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나만의 세레모니로 치러 낸다면, 그 작은 행복과 뿌듯함이 몇 배는 커져서, 오롯이 존재적 만족으로 남는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삶의 정수는 소유가 아닌 체험에 있습니다. 모 광고 카피에 나와 있었듯이, "사는 게 힘들어 자꾸 사게 된다"는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가질 게 아니라, 이 구매는, 소비는, 나만을 위한 귀중한 예식임을 자신과, 잘 통하는 지인 사이에서 나눔으로 추억에 남기라는 주문입니다. 이 저자는 "뭘 살 때 많이 사면 결국 버리게 된다. 소량을 사도 고급품을 사서, 그것을 소비하는 추억을 각별하게 남기는 게 더 현명한 소비"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만족은 양적 측면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좀 속물적이다 싶어도, 남들이 좋아하는 질적 측면에 누구라도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죠. 특별한 소비를 가까운 지인 소수와 함께, 즐거운 분위기에서 소비하는 게 총체적 만족의 측면에서 더 현명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점원한테 "하나만 주세요."라고 하기가 좀 꺼려지거나 미안하지 않은가? 저자는, 공손하고 정중하게 말을 거는 손님에게는 언제나 점원들도 흔쾌히 맞아 준다면서, 괜한 체면의식은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한국에도 잘 맞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세상에는 믿을 만한 친구가 세 명 있다. 늙은 아내, 늙은 개, 그리고 저금.

이 말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입에서 나왔다는군요. 확실히 프랭클린이라면 자기 관리, 체계적인 경영의 삶에 있어 대가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인생의 결어(結語)를 맺듯 남긴 말은, 어느 연령대의 독자라도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이 말로부터 노년층의 독자에게, "나를 위해 이제 조금씩 소비하는 건 죄가 아니니만큼,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작은 즐거움이나 기쁨이라도 맛보는 게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그 방식은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용도로" 돈을 쓰는 것이라야 한다는군요.


중장년층에게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이슈가, "웰빙"이 아닌 "웰 다잉"이라고 합니다. 품위 있고 미련 없는 방법으로 이 세상을 떠나려면, 일찍부터 여러 방향에서 정리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엔딩 노트의 작성이 중요한데, 그 항목은 진솔하되 꼼꼼하고 광범위하게 작성하라고 하네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손글씨로 남기는(정보의 용량도 제한되었을) 기록의 의의는 무시 못할 범위로 다가옵니다. 정리, 검약의 기본은 어찌 보면 잘 마련된 정리가 그 출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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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교육을 위한 완벽한 참고서 [돈의 거의 모든 것] | My Reviews & etc 2013-12-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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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돈의 거의 모든 것

대니얼 코나한,댄 스미스 공저/박수철 역/김대중 감수
원앤원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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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라면 별 10개도 아깝지 않습니다. 처음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마치 아이들용 비주얼 백과사전인 미국의 DK 시리즈처럼, 총천연색 도판에다, 구겨질까 겁이 나서 함부로 넘기질 못할 만큼 질 좋은 용지에 인쇄된, 최고의 책이라고 불러 주고 싶네요. 요즘 책은 확실히,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처럼 편집에 정성을 들여야 특히 어린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좋습니다. "돈"의 생리와 특성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테크의 원리는 처음 접하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딱딱하고 복잡한 수식(數式)만 잔뜩 나열하면 아이들이 그저 버거워할 뿐이죠. 명료하고 요령 있는 설명과 풍부한 도판이 곁들여져야, 까다로운 주제가 쉬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책이, 어린 독자들을 상대로만 삼은 기획인가. 그렇지는 전혀 않습니다. 과연 이 책을 펼쳐 보고, 학부 때 해당 분야를 전공한 이라고 해도, 한 항목도 막힘 없이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요? 어른이 보아도 "아 그런 내용이었군, 그런 사실이 있었군, 그런 논리로 돌아가는 거였어,'라며 무릎을 치거나 고개를 긁적일 이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내용과 주제가 제법 깊이 있는 편인데도, 영리한 아이들에게 책을 쥐어 주고 읽혀도 부담이 없을 만큼, 깔끔하게 편집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책은 주로,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몸을 담고 의지하는 거대한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혈액처럼 그 운용에 필수요소로 작용하는 "돈"에 연관된 모든 개념, 제도, 현황에 대해, 백과사전처럼 항목을 설정해 놓고 친절한 해설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요즘 흔히 보는 재테크에 대한 개념도 있지만, 그런 팁 위주의 명제 정리(이런 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만 가져올 뿐입니다)보다, 경제 제도 전반에 관한 근본 운영 개념과 원리를, 키워드 부연 방식으로 설명해 주면서, 왜 흔한 재테크 기본 명제들에서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의 이유를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꼭 학습용도로만 쓸 게 아니라,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이 책의 색인이나 차례에서 해당 항목을 찾아 읽어 봐도 됩니다. 그냥 읽어 내려가도 좋은 읽을거리이고, 필요할 때마다 참조식으로 사용해도 무방한 구성입니다.


경제는 박물관에 전시된 고색 창연한 화석이 아니죠. 현재 살아 숨쉬는 맥박으로 모두를 추동하고, 구속하며, 승자에게 짜릿한 전리품을 안기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바로 지금의 현황을 잘 반영하는 통계와 실증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 지식은 반은 죽고 쓸모 없는 공연한 치창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고전적인 개념 설명도 빼어나지만, 최신의 통계를 반영해서 우리가 발을 디디고 호흡하는 세계의 실상이, 숫자와 그래프로는 어떻게 대변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어린 독자에게 읽힌다면, 경제뿐 아니라 통계의 개념, 분석에도 친근해질 것 같고, 나아가 인문지리적 지식에도 익숙하게 두뇌가 훈련되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요.


항목 설정도 기존의 책에서 보던 방식과 크게 다릅니다. "극빈곤층", "심리", "중년기", "아동기", "사이버 범죄" 심지어 "사기" ... 이런 항목이 주제어라면 그게 경제서적이라는 느낌이 오실까요? 이 책은 버젓이, 마치 사회학 서적의 외피를 쓰기라도 한듯 이런 주제어를 깔아 두고 서술을 해 나갑니다. 읽어 보면 결국 돈 이야기이고, 실물 경제에서 이런 변수들이 어떻게 의미 있는 경제적 파장을 낳는지 납득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돈과 관련 안 된 사회 현상이 더 이상 뭐가 남아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런 시도는 대단히 참신하고,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서 모든 현상에 고루 적용되는 학문의 모습을 일깨워 줍니다. 그런가 하면 "다국적 기업" "신용 창출" ,"은행" 같은 전통적 경제학 키워드를 두고도,실용적이고 최신의 지식이 반영된 설명이 이어집니다. 특히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리먼 쇼크, 아직도 여진이 남아 있는 그리스 등 남유럽의 경제 위기, 이런 가장 최근의 사정까지 다 업데이트된 내용이라서, 돈이 그저 만능이고 규칙에 따라야 상책이라는 기계적 체념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라는 토픽으로는 분명 비관적인 분석이 뒤따를 것 같은데, 이 책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점을 찾아 나간다는 게 특이합니다.


p168 이하의 통화공급량, 그리고 이어지는 인플레, 디플레이션 파트를 보십시오. 적절한 일러스트와 그래프가 곁들여지기도 했지만, 저는 일반용 대중서에서 이처럼 명확하고 유창하게 이어지는 설명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기술적인 설명만 있냐 하면, 바로 앞에는 "경제학의 거장들" 항목을 통해 칼 마르크스를 포함한 이론의 거장들을 소개하여, 이 책에 인문적 품격까지를 더하고 있네요. 이렇게 공을 들인 경제입문서를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윤리은행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은행의 운영 기법을 비영리 사회재단이 받아들인 새로운 법인 패턴입니다. "돈"과 사회봉사가 어느 접점에서 연결되는지, 색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예입니다. 얼마 전 우리도 특별법 제정을 두고 이슈가 되었던 "이슬람식 은행"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습니다. 만약 이 책으로 경제 기본 개념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라면 이런 최신의 균형 잡힌 지식 포트폴리오가 첫 경험으로 연한 머리에 자리잡힐 것을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네요. 어른들이라고 해도 새로운 지식은 허세나 거품 없이 이런 좋은 책의 도움을 받아서 정리하면 그걸로 충분하겠죠. 정말 너무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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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의 귀재가 엮은 통쾌한 비즈니스 기적 [미라이 공업 이야기] | My Reviews & etc 2013-12-3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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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라이 공업 이야기

야마다 아키오 저/김연한 역
GRIJOA(그리조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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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아키오 사장의 이야기는 우리가 방송에서도 여러 번 접하곤 했습니다. 선풍기를 돌려서 이름을 적은 쪽지가 멀리 날아간 사람에게 승진이나 휴가를 준다는 사연, 직원들에게 근태 체크를 엄격히 하지 않고 자유 방임으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사연 등, 한국의 평균적인 샐러리맨들이 보면 눈이 번쩍 뜨일 화젯거리가 많았죠. 이번에 이 책을 읽고, "과연 그런 식으로 수익 창출은커녕, 건물 유지비라도 뽑을 수 있읋까?" 하는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는데, 다 읽고 나서 얻은 결론이란, "세상에 쉬운 건 역시 없군!"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아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고 땅 짚고 헤엄치는 마구잡이로 비춰져도, 그 수면 아래에서는 마치 백조가 우아한 모습의 유영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미친 듯 물장구를 치는 것과 비슷하게, 이 야마다 사장의 필사적인 노력이 뒤따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야마다 사장은 경력이 특이합니다. 제 생각에, 비즈니스의 냉혹한 논리와 가장 안 맞을 것 같은 직종은 바로 연예 오락 쪽입니다. 연극이나 음악 공연을 뒤에서 갈무리하고 기획하는 사람은 사업가이지만, 퍼포머들은 그 사업가와는 정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죠. 연극기획자도 아니고, 무대가 좋아 그저 연극판에서 청춘을 보낸 낭만주의자라면, "사업"만큼 안 어울리는 게 없습니다. 설사 그런 사람이 사업을 한다고 해도, 기업 운영은 여타의 오리지널 저리가랄 만큼 보수적이고 냉혹한 스타일로 꾸러갑니다. A국면에서 보이는 모습과, B국면에서 보이는 모습이 완전히 다른 거죠. 말 그대로 연극, 연기를 하는 인생인데, 그 실질은 정신분열, 이중인격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야마다 사장은, 놀랍게도 그런 무대에서의 자유로운 스타일, 창의적인 기질을 사업 운영에 그대로 투영하여, 판에 박인 "무대"에서 대박을 친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살벌한 사업도 연극쟁이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꾸려나갔다는 뜻입니다. 부하직원, 고용인들을 대하는 태도나, 사업의 장기 비전을 꾸림에 있어서나 그가 젊은 시절 못다 이룬 꿈인 무대에서 그러했듯, 그 영혼과 스타일에 조금도 바뀜 없이, 이를 냉혹한 사업판에 그대로 가져와서, 보기 드문 성공을 일구어 냈다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카멜레온처럼 능란한 변신으로 처세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 관상을 잘 들여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패배한 기미를 보이는 일이 있습니다만, 이 야마다 사장은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표정, 혹은 "나는 아무에게도 꿀리거나 켕길 게 없이 한 생을 살았다."는 푸근한 동네 아저씨처럼 편한 표정입니다. 이걸 약간 과장한다면, 달관한 처사나 산중의 불상처럼 초연하고 평안한 분위기입니다. 인생의 진짜 승자들만이 풍길 수 있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제 그의 스타일을 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야마다 사장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단순한 구조를 지닌 소모품 생산 업체라는 점입니다. 제가 위에서 "창의적 사업" 운운한 건, 이분이 다루고 있는 업종이 창의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뻔하고 낡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평판도 좋지 않은 레드 오션에서, 주변의 경쟁 포식자를 따돌리거나 흔한 플랑크톤을 도망 못 가게 나꿔채는 그 스타일이 창의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야마다 사장이 몸담고 있는 판은, 레드 오션 중에 레드 오션입니다. 사장님이라고 해도 단순노무직 고용 노동자만큼이나 뻔한 패턴으로 일을 수행하는 마당이라는 뜻입니다.


남들이 그저 노가다꾼처럼 틀에 박힌 양상으로 하루의 루틴을 잡고 나갈 때, 이 야마다 사장은 "이렇게 다른 방법으로 뭘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실낱처럼 가느다란 틈새를 파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김난도 교수님은 "울트라 니치"를 찾아 나설 때라고 이야기하지만, 설사 가장 모던한 외양으로 자본주의 구조의 어느 한 구석을 꿰차고 있는 영역이라고 해도, 그 미세차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죠. 하물며 전기부설 소모품 시장 같은 레드 오션에서 무슨 "니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안 될 건 뭐 있겠어?"라며 보란 듯이 그 틈(존재하는 줄도 몰랐던)을 파고 든 게 바로 이 야마다 사장입니다. 알고 보면 별 것도 없습니다. 흔해 빠진 전선 피복도, 똑같은 색을 하고 있으니 식상하죠. 퍼플이나 핑크로 색을 바꿔 보면 뻔한 성능이라고 해도 뭔가 달라 보인다는 겁니다. 법정 표준 규격이 있으니(워낙 오래된 형식이다 보니 창의가 개입할 틈도 없는 그야말로 붕어빵식 제형입니다) 함부로 외양을 못 바꾸는 것도 있습니다. 야마다 사장은 그때마다 "이 제품에서 법으로 규율 안 하는 구석은 어디인가?"를 생각하며, 하다못해 색깔, 도장 하나도 좀 튀어 보이는 식으로 살짝 바꿉니다. 다른 사업자들은 그런 역발상의 묘미를 이해 못 한 채, "아 이제는 시장의 상황이 바뀌어서 이 색깔로 통일하기라도 해야 하나?"며 무비판적으로 추종합니다만, 미라이가 이미 선점한 시장의 쉐어를 뒤집기에는 늦었죠. 사장은, "그 무비판적 추종 태도가 문제다. 나 같으면 차라리 기왕 하나를 바꾼 것, 두 개를 추가해서 뒤집어 보기라도 하지, 그냥 누굴 따라하진 않는다. 물론 그래봐야 소용도 없겠지만." 이라고 하는군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두 번째 대목입니다. 무조건 바꾼다고 능사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바꿔야 하고, 그 범위를 한 번에 짚어 내는 것도 능력이며, 또 다른 경쟁사업자가 어디까지 액션을 취할지 예상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야마다 사장은 사실 너무 만만한 판에서 들어와 센스를 발휘했기에, 이만한 성공이 가능했다고 보여집니다. 어쨌든 사업이라는 게 기사도 정신으로 이끄는 게 아니므로, 남다른 이익을 내면 그 자가 바로 승자입니다.


이렇게 약은 템포가 성공의 비결 전부는 아닙니다. 야마다 사장은 예컨대, "이런 제품은 만들어 놓아 봐야 원가와 시설비가 더 들 뿐, 작은 수요를 대종 없는 타이밍에 맞출 의의가 없다" 며 경쟁 업체가 제작을 꺼리는 부품을, 성의껏 다 만들어 비치해 둡니다. 그러면 거래처에선 혹시나 하고 왔다가 마침 찾던 부품을 보고 반색을 하죠. "아니 이런 게 무슨 수지가 맞는다고 다 구비해 두셨대요?"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미안해서라도 다른 (흔한) 부품을 야마다 씨의 업체에서 (이게 중요합니다) 좀 비싸더라도 사 준다는 거죠! 결국 야마다 사장은 후한 인심을 쓰는 척 하면서, 사업상의 손해는 안 보고 지내는 셈입니다. 쓰고 보니 이것 역시 약은 짓이 맞긴 하지만, 어쨌든 이 업계에선 남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 본 행보입니다.


직원들을 방임하듯 다루는 모습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까. 이 역시 여타의 업종에서 쉽게 따라하기는 힘듭니다. 어차피 이 직종, 산업은 기존 종사자 아닌 누가 와도 해 낼 수 있는 작업입니다. 그러면 사장은 직원 대하기를 더욱 함부로 하게 되고, 직원들은 자긍심과 사기가 떨어져 일의 능률에까지 악영향을 미칩니다. 일 자체가 단순 반복에 가깝다 보니, 그리 특별한 재능이나 업무 강도가 필요 없지만, 그럻다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면 발전이라는 게 없습니다. 야마다 사장은 작은 걸 유효하게 개선해서 큰 효과를 노리는 사람인데, 이 작은 개선의 아이디어는 특별히 머리가 좋아야 나오는 게 아니고, 평범한 사람도 느슨하고 편안한 마음에서 돌연 스치는 영감으로 내놓을 수가 있죠. 그럼 야마다 사장은 본인의 좋은 감각으로 이를 필터링해서 좋은 걸 추려 내면 됩니다. 이 방식이, 기를 죽여 가며 통제 위주로 직원을 들볶는 것보다 훨씬 낫죠. 어차피 능력이라고 해 봐야 거기서 거기니, 선풍기로 날리는 방식도 결과에선 차이가 없는 겁니다. "경쟁은 밖에서 해야지, 안에서 하는 게 아니다." 맞는 말이지만, 밖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수완 좋게 해 나갈 만큼 오너가 깜냥이 되어야 하고, 내부에서 수행하는 일이 고강도의 집중을 요구하지 않는 작업이라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혁신의 원동력은 유연한 사고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교훈은 확실히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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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일의 지성의 영적 구도기 [지성에서 영성으로] | My Reviews & etc 2013-12-3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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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저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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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도 나오는 말처럼, "내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니까 모두들 '아, 예수쟁이가 되었다며?'하고 반 놀림으로 이야기하였다." 같은 이야기를, 종교 안 갖던 사람이 가지면 한국 어디서나 듣기 딱 좋습니다. 본디 동아시아인들은 샤먼에 친할 뿐이지, 지성과 영성이 공히 강조되는 고등종교를 싫어하고, 이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샤머니즘을 인문이라고 하던데, 샤먼을 연구하는 작업은 인문학의 좋은 일부가 될 수 있어도, 샤먼을 무지몽매하게 믿는 사람을 두고 인문학 소양을 갖췄다고는 못 하죠(이는 그 대상이 고등종교라고 해도, 그 믿음의 양상이 맹목일 때는 마찬가지입니다. 단, 샤머니즘의 신앙에는 정도와 레벨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게 다르죠). 주체와 대상을 혼동하는 무지의 소산이거나, 의도적인 사기술의 발로입니다. 그러니, 안 그러던 사람이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면 그를 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는 게 보통인데, 설사 그 주체가 이어령 선생 같은 대석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어령 선생은 그와 동년배의 석학, 지성인(우리 나라에 과연 그런 존재가 있기나 하다면 말이죠)들과는 뭔가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기시는 터라, 기독교로의 회심이 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우선 그는 그 또래의 교수, 학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가식적인 무게를 잡고 상업적 과묵을 과시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다른 동년배들은 입을 무겁게 떼고 위엄을 내세우는데, 그는 좀 가볍다 싶은 느낌을 줄 만큼 새로운 담론과 주장을 끊임 없이 내놓았습니다. 사실 이건 그 주장의 진위 여부, 가치 평가 문제와 무관하게, 그의 두뇌가 그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조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게와 진중함을 지키려고 조용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미 쇠퇴한 두뇌와 기력이 창조적 생산을 받쳐 주지 못하기 때문에 침묵을 지킬 뿐입니다. 그는 기존의 자기 입장에서 크게 변질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첨단 변화의 트렌드를 놀라운 활력으로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젊은 교수들보다 더 명료한 표현, 더 심오한 통찰로 독자들과의 소통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가 즐기지 않는 건 가벼운 잡담이나 시시한 농담이 태반인 트위터질뿐이고, 나머지는 젊은 이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지적인 작업들입니다. 그런데, "창조적"이란 말은, "쉬운 변화 가능성"이라는 개념과 어느 정도 통합니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만큼 "창의적"이었던 그가, 어느 날 기독교(불교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를 느닷 믿게 되었다 해도 별로 어색한 일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언제나 변화와 적응에 능한 그였기 때문이죠.


다음으로, 사실 그의 인문적 자취를 보면, 과학이나 철학적 느낌보다는, 어느 정도 종교적 색채가 강했습니다. 이건 제 주관적인 느낌입니다만, 인문학이라고 해도 "하드한" 영역에서는, 의미 부여와 맥락의 연결이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의 글을 보면, 비록 주제 자체는 하드하더라도, 풀어 나가는 담론은 놀랄 만큼 통합적 의미를 지향합니다(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참 잘 갖다 붙이십니다." 정도죠). 그런데, 삼라 만상이 그처럼 내면에 단순 명료한 의미를 지니며 더군다나 서로 일맥상통하기까지 한다는 건, 그게 인문적 사고라기보단 종교적 사고입니다. "이 모든 게 다 주님(혹은 부처님, 알라신)의 뜻이로다~~" 비록 종교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아도, 이어령 선생의 글에서처럼, 모든 개념, 인식, 논리가 결국 일통(一統)의 한 길로 치달으면, 벌써 초월적 분위기를 마련하는 중에 반(半) 종교로 향하는 거죠. 종교인들은 그 무리한 비약을 위해 카리스마를 동원하고, 선생은 그 빼어난 글솜씨와 해박한 지식을 동원했다는 게 차이일 뿐입니다. 요컨대, 선생은 이미 회심 이전에도 그 체질이 종교적이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러고 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할 이 박사님께서, 이제 영성("지성"과는 보통 대조된다는 점에서)의 길로 들어서셨다고 해도 그게 그닥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해서 저는, (얼마전에 <젊음의 탄생> 개정판도 읽었던지라) 이 책에서 과연 박사님께서 어떤 새로운 말을 펼쳐 주실지, 자못 기대가 되었습니다. 기존 저작에서 하지 않던 이야기, 혹은 풀어 놓으신 이야기들이 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후 어떤 변모를 거치고 미묘하게나마 변경의 의식을 거칠 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타이틀은 비록 저렇게 달아 두셨으나, 그 내용을 보니 사뭇 기대와는 다른 스토리가 펼쳐져 있더군요. 우선 앞선 저작에서는 잘 하지 않으시던, 박사님 개인의 신변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교토에 가서 외롭게 연구 생활을 하신 이야기, 할인 마트에 가서 세일 품목을 챙겨 나오는데 귀갓길에 택시를 이용하면 발품을 판 보람이 없으니 오기로 걸어오셨다는 이야기, 일본 유수의 출판사 H씨를 만나 보니 예전의 그 총기 있는 눈망울이 아니라 백내장에라도 걸렸는지 허연 태가 보이더라는 이야기,.... 아니 박사님도 이런 느낌을 가지고, 또 그걸 숨김 없이 털어놓기도 하시는구나, 이분도 인간이 맞긴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참 안도가 되더군요. 물론 이분은 고희를 넘긴 노령이시죠. 젊어서 아무리 초인이었다고 해도, 그 연세라면 결국 또래의 장삼이사로 동화하는 게 자연의 이치이니 별 비겁한 안도(?)를 할 일은 아닙니다만, 여튼 세상에 별 특별한 분은 없구나 하는 점 새삼 느꼈습니다. 사실 돈을 절약하기보다는 그냥 외로워서 들른 장터이겠습니다만, 거리가 멀다 싶으면 그냥 가질 말거나, 오는 길에 고생하기보단 뭐라도 타고 오는 게 상책이죠(전 그래서 행사가 멀다 싶으면 안 갑니다. 시간과 기름값이 더 아깝죠). 또, 다른 사람의 외모나 분위기가 그전과는 달리 뭔가 쇠락했다 싶은 느낌을 굳이 표현하는 건, 자신감의 쇠퇴나 다소의 열등의식을 폭로하는 겁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박사님 같은 분도 그런 말씀을 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영성"에 포인트를 두기보다,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박사님의 인간적 면모를 새삼 발견한 것에서 독서의 일차 의미를 찾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로, 주관적으로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제목에 "영성"이 들어갔는데, 신앙 이야기를 하신 대목을 안 살필 수 없죠. 대단히 송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 신앙에의 길은 결국 따님인 이민아 변호사, 전 검사, 교수님의 참척이, 그 계기를 마련했더군요. 이민아 씨가 개인적인 불행, 불운(이런 것들은 그녀가 엘리트 코스만을 거침 없이 통과한, 세계에서 손 꼽을 재원이었다는 점과 대조하여 더 도드라지는 비극 요소입니다)을 겪던 차에 크리스트 교에 투신하게 되었고, 영리하고 당차며 선한(부친인 자신을 빼어닮은) 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귀를 기울이고 보는 자상한 아버지였던 박사님은(사실 이렇게 똑똑하신 분은 자식에게 그리 살갑게 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에서도 박사님은 예외라고 봐야죠), 어느 새 아무것도 모르는(그 탁월한 지성이 무색하게) 어린아이가 주일학교 나가는 설렘으로, 초보 기독교 원리를 무식한 동네 아줌마처럼 열렬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 책에서, 그의 버전으로 풀어지는 기독교란 사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동네에서 전도하시는 집사님들도 다 하는 흔한 표현이 주를 이룹니다. 다만 이런 말을 하시는 분이, 반도 오천년 지성사에 가장 빛나는 천재라는 이어령 박사님이라는 점 때문에 더 눈이 갈 뿐이죠.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의 시심이 새로운 눈을 뜨고 이 책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확실히, 소설까지는 지성이 더 강한 영향을 발휘할지 모르나, 시에 이르면 이성과 기계적 정밀성 외의 통찰이 빛을 발해야 창작이 가능합니다. "영감"의 도움 없이는 성립이 안 되는 게 시의 창작이죠. 그런데 이 영감은, 신앙의 깊은 경지와 또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희열과 깨달음은, 반드시 종교를 통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를 통해서도 분명 가능할 것입니다. 이 박사님이 아무래도 노령이시라 그의 시에서 불꽃 같은 활기가 캐치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 책에 실린(저, 아니 어느 독자라도 처음 보게 되는) 그의 시는 자연스럽고 뭔가 초월적인 분위기를 독자에게 확실히 전달합니다. 그의 영혼은 분명, 정체와 타성을 거부하는 끊임 없는 노마디즘에 가장 강한 개성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는 초보 기독교 신자들이 언제나 하는 말을 이 책에서 하고 있는데요. "가장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가장 처참하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의 가르침이, 어떻게 이천 년이나 지속하여 전세계 곳곳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까?"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언제나 긍정주의 일변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는 과연 그다운 해석 하나를 내어 놓습니다.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에서도 굳이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긍정문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거죠, 전 처음에 무슨 말인가 해서 성경을 직접 찾아 보았는데, 확실히 이박사침 말씀처럼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우리 예상으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보다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보통 그렇게 인용하지 않습니까?) 성경 원문을 보니 이 예상을 깨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게 더 쉽다!"고 되어 있긴 했습니다! 과연 문장 형태로만 보면 긍정문이 맞네요! 아 뭐 결론은, 긍정마인드로 살아서 나쁠 것이야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이민아 변호사는 자신의 "아니마"가 고스란히 구현된, 가장 사랑스럽고 귀중한 박사님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사님처럼 장점과 미덕이 많은 분도 분명 내심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있을 터인데, 이 이민아 변호사는 아마 그런 꺼림칙한 면은 모조리 떨구어 내고, 오로지 자신의 좋은 점만 세상에 지니고 나온 귀중한 존재였을 겁니다. 그런 귀한 따님을 먼저 떠나 보냈으니, 그 마음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불의, 부조리가 다시 없는 셈이고, 이 지구에서의 납득할 수 없는 추한 논리에 절망한 나머지, 오로지 사랑만을 내세운 절대자의 품에 귀의하고 싶은 것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우리 인간은 한 줌도 안 되는 뇌의 물컹물컹한 연산 작용으로 우주의 비밀을 다 알고 거대한 세계를 손 안에 넣을 것처럼 허세를 부리지만, 그 실질은 이만큼이나 약한 존재였던 거죠. 다른 데서는 몰라도, 한국과 일본이라면(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존경 받는 분이죠) 이분 앞에서, 나 좀 똑똑하다. 나 좀 많이 안다고 위세를 부릴 자가 없을 만한 지성인이신데, 그런 분이 어떻게 보면 180도 다른 전환을 맞이하여 이처럼 겸허한 모습을 드러내셨으니, 독자들도 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결국 지성과 영성은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요철의 상호보완적 부품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지성은 영성을 만나 온전한 지성이 되는, 그런 관계와 본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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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짜 정보로 가득한 글로벌 시장 종합 보고서 [KOTRA 마켓 트렌드 2014] | My Reviews & etc 2013-12-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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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KOTRA 코트라 마켓 트렌드 2014

KOTRA 저
청림출판 | 201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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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청림출판의 기획이 여타의 유서(類書)와는 다르다는 점을 느낍니다. 이 책에는 컬러 도판이나 그래픽 자료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각 챕터마다 도표 한둘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대신 현지(외국)에 진출하려는 우리 기업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들이 빼곡이 정리되어 있네요. 비즈니스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정보가 필요한데, 경제경영서를 많이 내는 청림출판에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잘 알고 이렇게 맞춰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해외 시장은 11곳입니다.

1) 유럽(중부 동부 유럽): 폴란드, 러시아

2) 근동, 중동 지역: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3)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4) 아프리카: 남아공

5) 중남미: 멕시코, 브라질


국제 무역을 다루는 입장에서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적 사고 방식과 감성을 현지인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주력해야 하는 건, 팔려고 하는 상품의 가격과 품질이며, 괜한 우리만의 감정적 만족이나 자긍심, 가치 따위를 상대에게 들이대어서는 사업에 유리할 게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죠. 사업가는 교육자나 전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비() 비즈니스적 팩터를 교섭이나 계약 체결 과정에서 중시해서는 일이 성사가 안 될 것입니다. 사업도 무역도 모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요소 외에 그들의 자존심과 긍지를 만족시킴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제아무리 인간 관계와 인맥을 잘 다져 놓았다 해도, 현지 시장에 아무 필요가 없거나, 경쟁력이 약한 상품을 안착시킬 수는 없겠습니다. 쉽게 말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겠다는 거죠.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되는 "이머징 마켓"은 다 그 나름대로의 부상(浮上) 이유가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이라는 말처럼, 현지의 특성을 잘 알고 파고들면 가망 없는 사업도 의외의 대박을 칠 수 있습니다. 사업가는 모두 그 좁은 문을 트고 들어가는 쾌감에 그 업을 유지하는 겁니다. 마치 스트라이커가 골 네트를 기로지르며 구석에 꽂히는 공을 지켜 보는 희열과 비슷하죠. 골 득점이란 90분 내내 많아야 3~4골입니다. 사업의 흥성도 이와 같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인도가 나오는군요. 사업가들이 주의해야 할 건, 이 책도 지적하고 있듯 인도에는 "레드 테이프"가 생각 외로 강력하다는 겁니다. 대단히 경직적인 관료주의가 아직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게다가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이야기가 잘 되어도, 지방에 내려와서 전혀 다른 상황을 만날 때가 많아요(이른바 "라이선스 Raj").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인도의 오랜 지역 분권적 정치전통 때문이고, 다음으로 (이 책에도 나와 있듯) 네루식 사회주의가 남긴 legacy를 무시할 수 없어서입니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건 의료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 외식 프랜차이즈 산업이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라는 점(저는 한국인들이 여기에 주목해서 대박을 노려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만의 고유한 맛을 현지에 적응시키는 게 포인트입니다만), 워낙 국토가 광대하다 보니 스타벅스 같은 업체도 현지에서 원료(원두)를 조달한다는 사실(그러나 물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알다시피 인도는 인프라가 부실한 나라죠) 등이 흥미롭죠. 외국 기업에 배타적이기 때문에 현지 파트너와의 합작을 주로 권장하지만, 그 역시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는 운에 맡겨야 합니다. 물론 자기 할 일을 다 한 후에요.


베트남이 그 다음을 잇습니다. 베트남에 가 본 사람들은 알지만, 대단히 자존심이 강하고 나름의 예의가 바릅니다.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옷은 대체로 협상 테이블에 나올 때조차 허름하게 입고 나옵니다(최근에는 의식을 해서인지 꼭 그렇지는 않더군요). 열대 지방이니까 이 점은 우리가 알아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챕터의 처음에 나오지만, 베트남은 아직도 1인당 GDP가 $1,500에 그치는 등 빈곤한 편이고, 가격 경쟁력은 어차피 중국산을 당할 수 없으니 한국의 장래가 밝지 않다는 의견이 많죠. 이에 대해 이 챕터의 집필자는 강력한 반대 논거를 제시합니다. 소위 볼륨 존을 치고들어가면, 베트남의 신흥 부유층에서는 상당히 구매력이 높은 편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시장을 공략할 때는, 추상적인 평균인을 상정하는 게 아닙니다. 국지적인 섹터에서 분명한 실체가 두터운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다면, 아 통계상의 평균 수치가 무슨 소용이나 장애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 어느 나라의 소비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싼 맛에좋다고 구매한 중국산의 품질이, 싧제 써 본 후에의 큰 실망감으로 다가온 후에는, 당연 재구매가 꺼려지더라는 거죠. 한국은 게다가 그 개별 브랜드의 명품 인식도는 낮은 편이지만(우리가 생각해도 국산에 명품이다 싶은 게 그리 많을까요? TV? 갤럭시? 아니면 샘소나이트?), 대신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는 대단히 고급스럽게 다가오더라는 거죠. 이 책에서는 베트남 지하 경제의 큰손으로 "비엣큐"를 들고 있던데, 이걸 한자로 쓰면 越僑, 월교입니다. "화교"가 중국의 해외 동포이듯, 한자 문화권인 베트남에서는 이런 단어를 쓰는 거죠. 책에서는 이것(월교의 본국 송금) 때문에 베트남에 빈부 격차가 늘어난다는 설명이고(동북 지방의 조선족 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고 있죠), 우리가 군침을 흘리는 볼륨 존 형성의 원동력은 바로 여기서 생겨나는 겁니다.


사우디는 크게 두 가지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미용 욕구가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알다시피 사우디는 가장 강경보수의 원리주의 교파인 와하비 종파가 국교의 자리를 차지하는데, 눈만 내놓고 다니는 무슬림 사회에서 무슨 미용일까 싶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자세한 건 책을 찾아 보시고요).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LG와의 합작으로 인기를 모았던 브랜드 "니베아"가 현지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사실 한국의 화장품 국제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죠, 이미. 또 하나는, 의료 시장입니다. 우리 생각과는 크게 다르지만, 사우디는 사람들의 식습관 때문에 당뇨병의 유병률이 그렇게 높은 편이라고 하네요. 가격이 대단히 중요한 변수라는 점, 알라신으로 시작해서 알라신으로 끝나는 현지의 분위기가 가장 큰 변수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입니다. 몇 년 전에 한국을 다녀간 유도유노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 영도 하에, 몇 년 째 착실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도 무슬림을 오랜 동안 신봉한 나라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한 인종 분포를 이루고 있으며, 화교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런 반면 아름다운 경치, 끝도 없이 부존된 에너지자원, 광대한 국토 등은 야망 가득한 외국의 사업가들에게 한없는 매력을 선사합니다. 물론 이들도 오랜 식민 지배 역사의 아픔과 대외 경계 심리를 떨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형편이 피기 시작하는 지금 각종 장벽이 다시 수하르토 때처럼 강화되는 느낌이죠. 이 나라에서 재미있는 건 첫째가 오토바이 시장입니다. 대중 교통이 거의 미비상태인데다 도로 사정도 안 좋으니, 오토바이는 개인마다의 필수품인데요, 최근에는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승용차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우리에게는 그저 가볍게 스치는 야간 구멍가게 정도인 편의점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사교의 장소로까지 기능한다는 사실입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의 흥미로운 점은 예전에 제가 다른 책 리뷰에서 "포카리 스웨트"의 예를 들며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1998년 독재 체제가 최종적으로 붕괴된 후, 이 나라는 대한민국의 모든 체제를 하나의 롤 모델로 삼고 철저히 배워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여사는 경제 발전, 민주주의 등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한국을 철저히 동경했는데요, 그 예 중의 하나가 정부 조직 체계를 모조리 베껴갔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에는 안 나와 있지만 한때 이 나라가 한국을 보는 시선은 정말 각별했습니다. 최근 일본이 이 나라를 위한 새로운 "대마"로 등장핶다는 말은, 이 기존 사정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좀 의이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왜 여기는 일본이 이제서야 설치는 거지?"). 인도네시아는 굳이 따지자면 한국을 위한 유리한 텃밭이 마련되어 있던 형편인데, 이제 와서 일본에게 좋은 자리를 내어 줄 수는 없죠. 게다가 일본은 인도네시아에 있어 침략국의 입장에 서기도 했습니다. 故 수카르노 같은 사람은 네덜란드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싸웠던 투사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영어를 잘하는 외국 바이어들을 존중하고, 사업 준비를 치밀하게 사전에 해 오지 않으면 상대 안 해주는 세련된 관습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특히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다른 개도국에서의 느슨한 분위기와는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브라질, 남아공, 러시아의 중요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뒤의 두 나라는 사실 우리가 치고들어가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브라질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현지에 한인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편입니다. 저자의 말 중 "알고 보면 우리보다 더 정이 많은 사람들이 브라질 사람들이다."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노려 볼 만한 더 좋은 시장은 멕시코와 폴란드라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 모두 교통(육로 교통)상의 요지입니다. 멕시코는 북미와 남마를 연결하고, 란드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십자로에 위치하죠.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인건비가 매우 싸다는 것, 국민들의 자존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말 조심해서 가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폴란드의 경우 인력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죠. 그런 점은 (우리 선입견과는 많이 어긋나지만) 터키도 마찬가지입니다. 터키 역시 상류층이 교육을 통해 부를 세습(정확히 말하면 세습이 아니지만)해 나간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의 성장은 여러 면에서 한계에 달해 있고, 살 길은 결국 해외에서 찾아야 함이 정답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오타가 있었습니다. p153 표에서 5행 2열, "레토니아"는 "라트비아"로 바뀌어야 합니다(그런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p128: 5에서 대상홀스 → 대상홀 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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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변인의 모호한 흔적 [요주의인물] | My Reviews & etc 2013-12-2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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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주의 인물

수잔 최 저/박현주 역
예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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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말보다는 영어 원서로 읽었으면 더 흥미롭게 다가왔을 책 같습니다. 책 소개에 잘 나와 있듯, 작가 수잔 최는 한국계 아버지와 유태계 어머니 사이에서 난 미국인 여성입니다. 그녀 자신은 네이티브이므로 미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고등 교육 이수자의 매 끄러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형편이겠지만, 굳이 "리"라는 이민자의 시야와 처지에서 이 모든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민자의 불안, 이민자 특유의 비소속감, 끝없이 흔들리는 믿음, 주변과의 관계 설정과 성숙 실패 등은 어디까지나 주인공 리의 출신 성분이 주었던 그 모든 한계와 장벽과 연결시켜 보아야 합니다. 몇몇 묘사가 주는 실감은 상당히 빼어나죠. 예를 들어 "40년 동안 몇 가지 구문만 머리 속에 넣어 가지고 왔다가, 현지인이 물어보는 질문에 무력하게 고개만 끄덕인다거나 하는 이민자의 모습" 운운하는 건, 자신은 이민자가 아니면서도 부모의 아이덴티티 일부를 "상속"받을 수밖에 없는 2세의 답답한 처지를,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을 텐데 싶지만) 잘 말해 줍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소설이, 예컨대 <앵무새 죽이기>처럼 집단 따돌림 현상에 대한 고찰을 이면에 담았다든가 하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주인공 리가 느끼는 미묘한 소외감이란, 그렇게 표면적이고 두드러져서 진단이 용이할 이슈도 아닙니다. 주인공 리는 그의 커리어 기반 마련을 윌한 첫걸음을 대학에서 시작하는데, 대학이란 기본적으로 학문 탐구의 전당일 뿐 정글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도 아니고, 또 리처럼 다양한 배경과 출신, 동기를 지닌 이를이 몰리는 곳이므로 나이도 적지 않은 그에게 유치하다 할 악몽이 덮칠 위험은 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우수한 두뇌, 고상하고 훤칠해 보이는 외모 등이 주는 이점이 있기까지 했죠. 문제는 그의 자의식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 곳곳에서 암시되듯, 지배 계급 출신이라는 신분("양반"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에서, 모국의 정치 사회적 격동으로 인해 평범하고 가난한 처지로 떨어졌다는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의 감정은 대상이 신흥 부유층이 아닌(여기에서, 개발 독재 하의 한국 사회상이 암시되지만, 외국인들은 과연 이 대목이 뭘 말하는지 이렇게 짧은 묘사로 짐작이 가능했을까요?), 과거의 조상들을 향한 것에 불과했으므로 질투 시기 같은 건 아니다."는 묘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상실"이라는 모호한 감정의 덩어리가 그의 일생 줄곧 의식을 지배한 것은 분명합니다. "상실감"은, 무엇인가로부터의 사후적 보상, 회복을 필요로 합니다. 탄탈로스적인 갈증은, 어떤 항구적인 만족과 분명하고 가시적인 대상에 의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명민한 지성과 (동양인 출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잘생긴 외모 덕분에, 아주 좋은 자리는 아니라도 그는 대학에서 안정된 강의직을 얻을 수 있었고, 노년에 접어든 지금도 괜찮은 평판을 학내(동료 교수들과 제자 사이)에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상실감과 불만, 초조함만 없으면 외형적으로 그리 실패했다 싶은 인생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이민자라는, 그 기반이 불확실한 신원에서 해방될 줄을 모릅니다.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몰입, 집착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대단합니다. 이는 주위의 강요나 부당한 대우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불이익이자 굴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친구 게이더의 아내(애인도 아니고 아내였습니다) 아일린을 향한 불순한 연정, 그리고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경로도, 알고 보면 그의 이런 불건전한 충동이 더 큰 동인으로 작용했죠. 그는 학원에서 마주치는 후진들, 동료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가늠합니다. 처음에 그는, 첫 대면의 자리에서, 그토록 소문이 파다하던 게이더의 아내가 예쁘지도 않고 에티켓도 없는 거친 여성인 줄 착각하고 야릇한 승리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동행자 루스를 두고 한 자신의 오해였을 뿐, 짧은 시간 안에 "아일린'이란 이름의 장본인을 알아보고 다시 한번 불안에 빠지죠. 대단한 미인에다 매력을 겸 한 여인이었거든요. 아일린과 게이더의 사랑(과 결혼)은, 독실하다 못해 비정상적인 데가 있는 게이더 집안과 양친의 종교적 분위기 때문에 처음부터 방해를 받고 어렵사리 틔워진 것이었습니다. 모상이 어렵게 마련되었으면 각별한 정성이 필요한 법인데, 게이더는 남성에게 요구되는 보편적인 배려와 돌봄의 노력을, 애인도 아닌 아내를 향해 충분히 쏟지 않았습니다. 이런 허점(?)을 리는 놓치지 않고, 대단히 위험한 내연 관계를 아일린을 향해 형성해 나갑니다. 그리 지능적이라거나 인위적인 음모에 바탕을 둔 건 아니었고, 아일린에게도 다분히 책임이 있는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리의 근원적 불안으로부터 이 모든 것이 발단했음은 부인할 수 없죠. 결국 리는, 게이더의 아이까지 배었던 아일린과 부부의 연을 맺기에 이르고, 에스더라는 자식까지 두나, 그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않고 아일린의 죽음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는 아일린의 죽음 후에도 또다시 다른 여인을 깊이 있는 숙고의 과정 없이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더 운이 나빴습니다. 그간의 학문적 활동을 통해 남편이 마 련한 재산 어느 한 구석도 소홀히하지 않은(?) 채, 두번째 아내는 이혼 재산 분배 대상으로 남김 없이 청산해 갔죠. 이런 실수와 좌절 역시, 그의 끝없는 불안감과 고립, 추락에 대한 공포에 기인하며,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끊임 없이 누구 하나를 경쟁과 질시의 대상으로 삼고 자신과 견주는 좋지 않은 악습은 지속됩니다(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더 악화되었다고 봐야죠). 그는 자신의 모습을 실제보다 비하하여 보 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에 자신의 학교로 부임해 온(일종의 스카웃) 옆 연구실을 쓰는 헨들리 교수를 향한 감정이 또한 그러합니다(최악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헨틀리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스타일이 세련되고 사명 의식에 가득하며, 흠잡을 데 없는 백인 출신이자 음울한 구석 없이 유머감각도 많은 밝은 성격입니다. 무엇보다 신경이 쓰이는 건 그의 인기입니다. 이런 와중에, (아마 이 소설의 창작 모티브가 되었을) 유나바머 사건(이 사건은 실제 벌어졌던 일입니다)이 터지죠. 이어서 그 사건과 대단히 비슷한 폭탄 테러가, 바로 이웃의 헨들리 교수 연구실에서 일어나고, 문제의 라이벌(?)은 목숨을 잃으며, 주인공 리는 묘한 승리감과 이로 인한 죄의식, 예상치 못한 사건이 준 물리적 쇼크가 범벅이 된 정신 상태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태가 미묘하게 발전합니다. 당국은 이 테러를 두고, 뜻밖의 용의자를 관찰 선상에 두고 수사 범위를 좁혀 오기 시작한 거죠. 그가 미국에서 커리어를 본격 시작하기 전 이미 학창 시절부터 막연히 심중에 두고, 그 자신이 은근 불길하게 키워오던 악몽은 이제 갑자기 현실에 가까워집니다. 과연 일련의 부당한 불행은 어디에서 일차 원인을 찾아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작가 본인 자신이 애매한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소설이 아닌 실제에서) 적지 않은 그 숙성과정의 피로를 겪었을 수잔 최가, 독특한 결론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질투와 불안은 알고 보면, 폭탄 테러보다 더 드믈고 파괴적인 양상으로 자기과 주변을 좀먹고 있었던 거죠, 비범한 자질을 지닌 이에게도 이처럼 해롭게 작용하는 요소가, 평범한 이에게는 얼마나 치명적인 "폭탄"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요? 뇌관을 미연에 제거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란 걸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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