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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와 드골 | My Reviews & etc 2014-10-2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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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말로와 드골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 저/변광배,김웅권 공역
연암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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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가쥬망"의 의의는 "나"와 "외계"의 "엮임"에 있습니다. 말로가 20세기 문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 "엮임과 참여"를 가장 치열한 형태로 구현한 사람이라는 데에 있기도 합니다.

반면 드골은 어떤가? 사실 두 사람의 정치적, 사상적 성향이나, 심지어 개인적 성장 배경을 놓고 보면, 달라도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저자 뒤발 스탈라가 용케도 추적한 이 양인의 궤적을 보면, 생의 결정적 국면에서 절묘하게도 닮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치기 어린 젊은 시절, 인도차이나의 유적을 도굴하여 뜻하지 않게(아니, 어쩌면 가장 의도적인 양상으로였을) 유명인사가 된 말로와, 대위 시절 1차 대전 서부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샤를은, 이미 그 개입(참여와 교전[交戰] 모두 철자가 engagement입니다)의 정열적 외관에서 서로를 몸서리치게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좌와 우, 계급과 민족이라는, 어찌 보면 조우와 융화가 불가능한 스탠스에서 각자는 출발했었으나, 시대의 격랑은 둘을 극적인 포인트로 맹렬히 수렴하게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 역시 핑계에 불과합니다. 둘을 만나게 한 건 결국 영혼의 운명적 상사(相似)형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혼의 끌림이란 꼭 남과 여의 모습으로 갈린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주제야 둘 사이의 운명적 우정을 다루고 있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런  일반적 교감이나 유대를 넘어선, 어떤 자성(磁性)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파리 해방이라는 결정적 개인 전과(戰果)를, 반은 애국심으로, 반은 어거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든 드골이었지만, 비시 체제 붕괴라는 권력의 진공 상태에서조차 드골은 정국을 자신의 페이스로 몰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마뜩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정통 우파이자 내셔널리즘의 적자로서 라인 이동의 강력한 전체주의를 물리쳤음에도, 여전히 국내적으로 그에 대항하는 도전자들은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야말로, "나치"라는 괴물을 빚은 라인 이동의 내셔널리즘과 생래적 차이를 이루는 갈리아만의 특질인지도 모릅니다.

말로 역시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문재 하나로 젊은 나이에 꽤 높은 지명도를 얻기는 했으나, 그에게는 적이 많았습니다. 강렬한 개성과 폭발적 성정도 문제였고, 생각의 차분한 정돈보다 일단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그의 성향은 주변과의 마찰을 빚기 일쑤였죠. 어쩌면 이 둘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잠재적 라이벌과의 관계 설정에서 더 애로를 겪었다는 게 공통점이요, 이 점이 좌와 우라는 정치적 진영을 떠나 서로를 알아보고 끌어당긴 근본의 동인인지도 모릅니다.

드골주의에 대해서도 사실 그 정체성 규정이 모호한 채, 오늘날까지도 의견이 서로 갈리는 부분입니다. 말로 역시, 그 전 족적과 성취, 혹은 속성을 앙가쥬망이다 실존주의다 하는 프레임에 편하게 넣기에는 여러 모로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5공화국 성립 후 국민투표에서의 패배로 물러나기까지, 드골은 기이하게도 자신이 세운 "드골주의"의 패러다임에 갇혀, 또 한번의 통일 전선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반드골주의"에 맞서 싸우다, 거의 필연적이다 싶은 과정으로 패배한 것입니다. 벗으로부터까지 변절,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내각에 합류한 말로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이 두 거인과 여러 국면에서 접촉하며(혹은 "엮이며"), 현대 프랑스사 혹은 각각 자국의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다른 위인들의 이름이 많이 거론됩니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인물들과 곳곳에서 만나고도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올 만큼, 이 책은 두 사람과 대립, 충돌, 혹은 교감한 "리스트"의 역사적, 역동적 제시에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미테랑, 퐁피두, 가톨릭 작가 모리아크. 먼 동양의 인디라 간디까지.... 말로와 드골은 참으로 다방면에서 파장을 남기고, 또한 서로를 타원의 두 초점으로 삼아 격렬한 상호 작용의 진원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팩터란, 예컨대 그들과 동시대인이었던 히틀러 같은 이의 광기 같은 걸 꼽을 수도 있지만, 결국 승자로 남고 근원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야 위대한 영혼의 의지, 개성, 그리고 소통에의 강렬한 욕구가 아닐지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사전의 기대와는 달리, 반드시 두 사람의 교감과 우정에 한정된 주제는 아니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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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대담한 미래 2 | My Reviews & etc 2014-10-2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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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30 대담한 미래 2

최윤식 저
지식노마드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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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이 학문으로서 자리를 잡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 최윤식 소장님처럼 저기 텍사스의 휴스턴 대에서 미래학을 전공하고 오신 분도 있지만, 미래학이란 분야가 원체 다양한 타 분야에서 복잡다기한 소소를 끌고 와 논의를 전개하는 학문이라, 독자적인 방법론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죠. 경영, 정치(현실정치), 경제(주로 실물 경기 이론), 기술 등에 주안을 두고, "미래"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로 "예언" 비슷한 저술로 대중의 흥미를 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좀 상반된다 싶게 철학, 인문에 방법론적 기초를 두고 구조를 구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북유럽 쪽의 현재 트렌드). 후자라고 반드시 환영할 일은 아닌 게, 이 책처럼 읽는 재미를 강렬하게 독자에게 선사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죠.

그만큼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전작도 그랬지만, 사실 이 책은 서술 방식과 문체에 있어 참 "대담"합니다. "~에는 ~ 일 것이다. ~ 할 것이다." 같은 어구, 종결어미가 두어 문단 내내 반복되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의 인상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책이 구체적인 논거는 제시하는 바 없이 저자의 단정, 독단으로 일관한다며 불쾌함을 표시하거나, 깊이가 부족하다고 핀잔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자의 스타성에만 의존하는(혹은 상업적 스타성만을 애써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런 비판도 일리는 있겠지만, 1) 책의 주장들은 잘 읽어 보면 그 정도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근거와 논증 과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엄정한 학문적 방법론에 의지하고 있느냐, 미래학 아니라, 또 최 소장 저서가 아니라 다른 어느 대중서라고 해도, 그런 자세를 400여쪽 정도 분량의 제약 속에서 계속 유지하기는 무리죠. 읽어 보지는 않았으나 최 소장님도 대중서 아닌 학술적 저술에서는 다른 규칙에 충실하지 않을까요. 주장 표현의 대담성 때문에 주장 자체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도 곤란할 것입니다.

2) 제가 보기엔, 그 주장들이 아주 참신한 것만도 아닙니다. .우리가 압도당하는 건 주장의 내용이 충격적이어서라기보다, 사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여기저기서 들어 본 것들이, 이처럼 질서를 이루며 좁은 공간에 꽉 채워져 한 번에 제시되는 그 밀도의 생경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사실 저자의 박식함이라고 봐야 하며, 저자의 참신함이라 느끼는 건 일종의 착시 같습니다.

3) 전작에서 삼성의 몰락을 예견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1년이 지나고 나니 과연 그 "예언"대로 삼성은 여기저기서 위기의 징후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최 소장은 후일담을 들려 주면서, "삼성 쯤이나 되니까 막연한 불쾌감 표시보다는 나를 불러 강연을 시킬 줄도 아는 것이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 1년 후에 삼성이 어떻게 된다는 건지 자못 궁금해지는 마당에서, 그는 이 책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에서 강연을 요청하지 않은 채 다시 1년이 지나면, 내년에 나올 수 있는 3권에서 다시 모종의 예측이 등장할까요? 기대해 볼 일입니다.

4) 빡빡한 예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돌연 낭만적이고 느슨한 문화와 예술 이슈로 화제가 옮겨가기도 합니다.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거지? 분위기를 노련하게 전환할 뿐 결국 마지막에 꺼낼 결론은 단단히 예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저술가들이 고지식하게 할 말만 늘어 놓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 스타일입니다. 영미권의 글쓰기 고수들이 자주 쓰는 방법을, 세련된 그는 이 책 곳곳에서 적절하게 잘 구사하고 있습니다. 배울 건 여기에도 있었네요.

꼭 그의 주장이 아니라도, 한국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변신을 꾀해야 할 시점에서, 비생산적인 권력 다툼에 정력을 낭비하거나, 과거의 영화(그런 게 그런데 과연 있기나 했는지)에 취해 다가올 불길한 전조를 애써 외면하고 있죠. 그런 걸 보면 이건희 회장이야말로 그저 흔한 2세 경영인이 아니라, 그 타이밍에서 진정 한국 풍토에 나오기 힘들었던 혁신적 리더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삼성은 현재의 LG도 능가하기 힘들었을 테며, 심지어 LG도 지금의 LG가 못 되었지 싶습니다. 그 정도 혁신을 이루고서도, 결국 삼성은 다시 지금의 위기를 맞이했으니, 도대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다는 건지 아찔하기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다 같이 읽고 자신을 돌아보게 할 수 있는 좋은 책이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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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My Reviews & etc 2014-10-2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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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적을 만들다

움베르트 에코 저/김희정 역
열린책들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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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가 "특별한 기회에 쓴 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사실 그가 쓴 글은, 특별한 기회(이 "특별하다"는 말도 그의 기준에서 평가한 말입니다만)에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모든 글들이 특별합니다. 어려서 저는 그의 명작 <장미의 이름>, 그리고 (너무도 어려웠지만) <푸코의 추(초판 제목은 이러했고, 저는 아직도 제가 읽은 첫 판본이라 이 이름이 더 친숙합니다)> 등을 읽었고, 앞으로 성인이 되어 독서를 하고 머리 속에 무엇을 정리하고 가꿔 나가야 할지에 대해 기본 프레임을 정하는 계기로 삼았더랬습니다. 그 후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같은 책을 읽고, 저렇게 똑똑하고 박식한 분도, 그 때문에 짊어져야 할 업보, 숙명 같은 것이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졌더랬습니다.

총 14편의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역시 에코 교수는, 자기 책에 달린 부제 한 문구에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법이 없어, "특별한 기회에 쓴 글"의 의미가 무엇인지 간단하게나마 서언에서 해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글들은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어떤 과장이나 미화 같은 의도를 담았다기보다는, 정말로 특별한 투고 요청, 강연, 혹은 주목할 만한 사건 발발에 즈음하여 집필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정이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어느 정도는 부담을 지니고 있었는지, "집필 계기가 특별했다고 해서 반드시 내용까지 창의적("특별"이란 형용사는 피하고 있습니다)일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행여 독자나 팬이 쏟을 과도한 기대를 완화하거나, 자신의 부담을 좀 덜려는 "귀여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의 그답게, 책임 회피라든가, 혹은 대가로서 편안하게 루틴, 매너리즘에 젖은 채 비블리오그래피의 길이만 늘이고 인세수입만 늘리려는 마음은 전혀 먹지 않고 있다는 듯, 자신의 새 글들이 실린 이 책에 대해 "(최소한) 독자가 읽기에 즐거운 글들이 되어야 한다는" 요청에는 변함이 없을 테고, 자신은 그러한 (가상의) 요청에 충실한 글을 썼노라 자부한다는 선언을 온건하게 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부분에선, 각 글들이 어떤 동기, 어떤 환경에서 집필되었는지에 대해, 간단한 소개와 회고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책 읽으시려는 분들은 요 파트를 꼼꼼히 읽어 보셔야, 본문의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에코의 책을 읽다가 언제나 중도 포기하시는 분들은, 죄송한 말씀이지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배려(독자로서는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우리는 이런 대가의 책을 읽을 때만은,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읽는 것이지 쇼 프로그램을 즐기듯 편안하게 뭘 먹으며 소파에서 즐길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가 부족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언제나 에코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지, 이미 서언에서 작가 본인이 충분히 힌트를 준 바에 따라 읽어 나가는 게 정석이며, 또 유일한 해독(?) 방법입니다.

첫번째 실린 글 <적을 만들다>에서, 에코는 다양한 인용문을 들고 있습니다. 하긴 뭐 언제는 이분이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런 재미로 우리는 그의 책을 읽어 나가는 거죠. 혹시 이런 게 지겹다 싶으신 분들은, 자신의 태도를 재고하지 않으시면, 에코 책 읽기는 지속적인 고문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는 본디 이 방대한 문헌의 세계에서 보물 찾기를 하며 "혼자 노는" 사람이며, 이런 데에 공감 못 하는 분들은 처음부터 그의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에겐 이 세계를 무대로 한, 또 시간의 총체를 배경으로 한 책읽기와 기호 분석이 삶의 유일한 소명이요 존재 이유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에 공감을 못하면 우리 역시 자신의 시간을 더 생산적인 다른 작업에 바쳐야 현명한 태도이겠습니다.

그의 인용문을 읽는 데 큰 거부감이 없는 분들도, 과연 이런 지식을 머리 속에 새로 정리해가며 읽어야 하는지(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암기가 수반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저 에코가 말미에 덧붙이는 코멘트만 소화해 가도 충분한지 갈등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봅니다. 에코의 초심자는 전자의 수고를 하려 들어도, 처음부터 그게 불가능한 과제입니다. 그 사람이 만약 에코 급의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면야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그의 책(소설 포함)을 읽다 보면, 그가 인용하는 저자와 문헌에 대해 자연스럽게 흥미가 붙습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지 않으면, 괜한 거리감과 권태감만 첫 단계에서부터 몸에 밸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성문종합영어> 등에서 "Beauty is only skin deep." 같은 말을 접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대개, 이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고 지나칩니다. 어떤 이는 <성문종합영어> 옆 페이지 쯤에 나오는 "용자만이 미인을 차지한다(None but the brave deserve the fair)."와 착각을 일으켜서, 이 말의 출처가 드라이덴인 줄 잘못 아는 수도 있습니다. 이 책 27페이지를 보십시오. 에코는 "10세기에 살았던 클리뉘 수도원장 오도"라는 분이 이 말을 언급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클리뉘 수도원이야 당연히 알아도, 오도 수도원장이란 이름은 태어나서 저는 처음 들어 봅니다. 에코가 이 책에서 "최초"라는 평가나 단정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저 말의 이제 전거나 출전을 논할 때 이 어카운트를 거론해도 큰 실책은 아니지 않을까 하며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변이나 타인의 땀 같은 체엑이 내 몸에 묻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쳐 한다. 그런데 여자란, 아름다운 피부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이 온통 그런 것들이다." 사실 우리는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군 제대한 예비역 선배들한테 그 비슷한 말을 듣곤 합니다. "여자의 배를 갈라 보면(의대생 등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남자보다 훨씬 많은 지방과  노폐물로 가득차 있다. 여성의 몸은 그저 겉으로만 아름다울 뿐이며, 사실은 남자보다 성분, 체형, 구조면에서 훨씬 추한 존재이다." 하긴 이런 인식이 근래 확산되어 여성들도 몸매 관리, 특히 체지방 관리를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제게 이런 말을 해 준 선배 본인은, 어쩌다 캠퍼스를 지나칠 때마다, 혹은 시내 번화가에서 만날 때마다  매번 다른 여성을 곁에 두고 있더군요. 여성분들은 하여튼 말만 번지르르 잘하는 남자한테 절대 솔깃하면 안 됩니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남자한테는 자기 신조와 정반대되는 감언이설을 퍼뜨리는 게 이런 분들이고, 오늘 나한테 잘해주고 내일은 다른 여성에게 더 잘해주는 게 이런 분들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 위의 오고 수도원장 같은 분은 그렇지 않고, 진심과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 주시는 분입니다. 사실 그렇죠, 아름다운 "거죽" 밑에 숨겨진 실체를 상상하면, 마음에서 육욕이 끓어오르더라도 한순간에 스러지고 마는 효과를 내는 게 저 말입니다. 에코는 이 글을 최근에 썼으나, 아마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읽고 머리 속에 정리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장미의 이름>에도 그 비슷한 말이, 윌리엄 수도사의 입을 통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드소가, 마을에서 도둑질하러 온 가무잡잡한 피부의 다람쥐 같은 소녀와 마주치면서, 그녀의
"젊고, 미남이시군요."
한 마디에 넘어가, 태어나서 처음이라 할 열락과 환희의 하룻밤을 겪은 후, 이를 통회하는(아드소는 평생 순결을 서원한 수도사이니까요) 그에게 해 주는 말이 이겁니다.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그 추함, 그 비루함, 그 부조리함, 그 덧없음에 대해, 내가 지금 아무리 이야기해 줘도 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건 지금 네 나이에 알 수 있는 지혜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해 주면서 老윌리엄 수도사 역시 평소의 침착을 잃고 어조가 떨리는 품입니다. 서평을 쓰면서 저 역시 타자를 치는 손이 흥분되기도 하네요.

<섬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는, 혹시 <전날의 섬>을 읽으며 많은 피로를 느끼셨을 분들에게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에코의 독자들 중, "왜 이분은 지난 시절의, 이미 극복된 과학 기술에 대해 이렇게 천착, 혹은 집착할까?"하며 불만을 가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과학 기술(심지어 경제학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은, 아웃오브데이트 된 것은 이미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코는, 본연의 영역을 넘어선 이 경계에 대해 대단히 고집스럽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고 정확하게 연구하여, 이를 독자들에게 흥겨운 분위기로 들려주는 일을 즐기죠(흥겹고 즐거운 건 물론 화자인 그고, 듣는 우리는 보통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인문이란 당대의 과학, 기술에 대한 인식과 이해 없이는 반쪽짜리의 불구입니다. 둘째, 설령 자연과학의 첨단을 이해하는 순간에도, 그의 지난 과거 이력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는, 이미 그것은 천박한 암기이거나(공대생들은 아쉽게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이런 길을 밟는 수가 많죠. 예컨대 수학 정리의 증명은 사치입니다. 그냥 외워야 합니다! ㅜㅜ), 부정확한 타협인 수가 많습니다. 어느 교수님 말마따나 "모르면 모르는 거고 알면 아는 거지 그 중간은 없"는 법이니까요.

에코는 비판적 성향의 지식인입니다. 그래서 이 책 말미에 실린 <위키리스크에 관한 고찰>은 누구나 안 읽어 볼 수 없는 중요한 문헌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특히 마지막의 이 아티클을 통해, 에코가 진정 과거에 매몰된 화석이나 고립된 천재가 아닌, 우리 모두와 소통하며 친교를 즐기는 고마운 동시대인임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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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즈 | My Reviews & etc 2014-10-2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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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인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저/변용란 역
오퍼스프레스(OPUS press)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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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미스테리 장르도 진화한다." 이런 느낌을 요즘 작품들을 읽으며 강하게 받곤 합니다. 사실 이 블레이그 크라우치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바 없었고, 그가 지난 세대 작가 그 모든 미덕과 장점에 대해 야심찬 도전장을 내밀었기에,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과연 그 장담한 바를 실현하고 있었을지 적잖은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결과는 제 개인적으로 상당한 만족이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작가는 여러 명작들을 거론하며, 그 정평 있는 성공작들의 성취를 그대로 계승했음을 자부합니다. 아무리 장르소설의 경우라고 해도, 언제나 소위 "반전"이 말미에 부착되어야 하는지, 혹은 구축되어야 하는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반전"이란 언제나 일회적이며, 소설이 본연의 사명으로 추구해야 할 "저편의 완결된 세계" 건설에 있어 작가가 미흡, 미진했던 지점에 대해 감성적 은폐를 시도하는 방편으로 악용되곤 하는 게 보통이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 장르물에 대해, 작가가 애써 꾸려 놓은 "반전'이, 그  얄팍한 기능성 눈속임이 아닌, 소설 본체의 완결미를 이루는 본분을 완수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충격적인 반전을 마련한 작품은 근래 들어 좀 피곤할 만큼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반전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조로운 복제품에 해당한다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마술쇼를 관람하러 간 손님들이, 어차피 중력 법칙이 속속들이 작용하는 이 천박한 지상에서, 뻔한 복제와 모방의 예외는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유쾌하게 속아 주는 건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익숙한 장르의 공식은 오히려 고향에 돌아온 듯 안온한 느낌마저 선사합니다. 그 장르의 법칙이 싫은 사람은 해당 엔터테인먼트를 찾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익숙해서 지겨운 게 아니라, 눈과 귀에 익었기에 도리어 반가운 것입니다.

미국은 광대한 땅입니다. 험악한 산악 지형도 퍼져 있고, 고립되어 타 문물을 도저히 수용 못할 것 같은 이색지대도 따라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괴이쩍은 고장에 갇혀 사는 괴이쩍은 이들이, 이제 자신과 그 후손들에게 괴퍅한 유전자를 물려 줘 가며 비극을 되풀이한다는 설정은. 사실 <트윈픽스>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이 크라우치라는 작가는, 데이빗 린처의 그 뻔뻔하게 그로테스크한 화면을, 놀랑운 재주로 활자에 구현하여 우리 독자에게 섬뜩한 전율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속속들이 파헤쳐져 모르는 구석이 이미 없을 것 같은 현대의 첨단에, 아직도 "차이나타운'이 건재하다는 점은 우리에게 경악을 선사합니다. 결국은 그 미지의 괴물은 우리의 내면 속에 존재했던 거죠.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마, 패륜과 배덕은 모두 선량한 시민의 마음 한 켠에 확고한 똬리를 틀고, 그 갑작스러운 대면을 벼르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괴물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힘과 재치를 겸비한 문체로 두터운 볼륨 내내 잘 전달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 1편(계획대로라면)에서 너무 많은 걸 보여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인데, 어디 후속작을 기다려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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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감옥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10-1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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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리감옥

니콜라스 카 저/이진원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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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기기의 폐해라고 하면, 이를 지적함에 있어서 특별히 인문적 소양이 필요하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해, "아무나 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인문적 패러다임을 그 도구로 하여, 남들이 쉬이 보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 그 구체적인 패턴 변형까지 지적하는 저자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을 쓴 니콜라스 카가 그 사람입니다. (작성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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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코리아에 없는 취업 멘토링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10-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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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잡코리아에 없는 취업 멘토링

오세종 저
미래지식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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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의 문제가 오늘날처럼 청년층을 괴롭히고 있던 시대는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탐색층이, 출산율의 뚜렷한 추세적 저하 덕분에 크게 감소하기도 했음에도 불구, 일자리가 워낙 적다 보니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자조적 목소리까지 나오기도 하죠. 책 제목에 쓰인 "잡코리아"라는 사이트도, 예컨대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저 같은 사람도 그 이름은 들어 봤을 정도니까요.

취업 때문에 좌불안석인 세대라면, 아마 그 사이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나에게 맞는 어떤 offer가 없을까"하며 주야로 노심초사했을 만하고, 지금도 역시 그러할 것 같습니다. G20국가답게, 한 번 들어 본 적도 없는 기업 이름이 있을 만큼, 대한민국의 기업은 많고도 많습니다. 평소에는 듣보잡 취급 하고 말았을 이런 기업조차 그 입사가 만만치 않으니, 어르신들이 알아 주기라도 하는 대기업이야 지금 처지에선 언감생심일 뿐입니다. 사실 대기업의 offer야 잡코리아에서 보기도 힘들 것입니다(경력직 모집 제외).

잡코리아에서 유, 무형으로 배울 수 있는 요령은 다 배운다 쳐도, 남들 역시 그 정도야 다 갖추고 지원하지 않을까 생각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들이 뭔가 빠뜨렸다거나, 어디선가 소홀히한 그 어느 포인트를 치고 들어 가야 취업의 그 좁은 문을 뚫는 데에 성공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이것저것 다 갖추고 빈틈 없는 내가, 더 이상 무엇이 또 필요할지를 점검하게 해 주는 가이드"를 기대하고 있던 독자가, 서점에서 고르게 할 만한 그런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펼쳐 보면, 그런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 포털에서도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만, 취준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자기소개서의 작성입니다. 저자는 해당 업계에서도, 그리고 자신의 작품인 이 책 속에서도, 막연하고 뭔가 지향점이 없는 미사여구보다는, 분명한 목표(goal)을 갖춘 컨텐츠를, (한정된 지면일) 자소서 면에 채워 넣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회사 입사 후 무수히 많이 작성해야 할 보고서 역시, 이 자소서가 예고, 예비해 주는 알림장 노릇을 한다고 해도 됩니다. 자소서가 정신 사납고 틀이 갖춰져 있지 못하면, 그 사람이 사원으로서 올릴 보고서 역시 다 그 모양일 거라고 기대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많은 취준생들이 하는 이야기가, "천편일률적인 건 곤란하니 좀 튀어도 되지 않나?"인데, 튀는 거야 물론 좋지만 그게 회사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튀어야 합니다. 아마, 잘 안 맞는다 싶은 자소서를 보면, 담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의 보고서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가 원하는 방향은 아닙니다."라고요. 실제로 회사에서도, "한 줄 보고서"의 장점과 미덕을 엄청 강조하는 요즘입니다. 자소서는 과연 보고서의 전조에 해당한다고 봐야죠.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 회사를 연구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어려워하고 신경 쓰는 업무가 바로 신입 사원의 교육입니다. 일 모르는 사람 일 가르치는 것만큼 힘든 게 드물고, (그렇지는 않겠으나) 느낌상 "보람 없는 시간 낭비"처럼 여기는 선임자들도 꽤 됩니다. 그래서 HR도 적성이 되는 고참이 맡아야 그 분야가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신입사원(혹은 지원자)이, 회사를 철저히 연구해서, 내 마음을 미리 다 알고 던지는 질문마다 정곡을 찔러 준다면, 그런 보석 같은 인재는 입사 후에도 아마 업고 다닐 겁니다. 취업은 이처럼, 간신히 문턱이나 통과할 수준으로 준비해선 안 됩니다. 입사 후에 이쁨 받는 대리, 과장, 부장이 된다는 자세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턴 경력이 그만큼이나 중요해진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그 회사 사람이 되어라."

이런 말은 사실 누구나 강조하는 대목인데, 이 책에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주장도 꽤 됩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어느 고교에 가서 이런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대학 등록금 낼 돈으로 좋은 책을 사서 읽어라. 4년 동안 책을 읽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을 테며, 그게 변변찮은 4년제 대학 졸업장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주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변변치않은 4년제 대학도, "고졸+ 독서의 달인" 브랜드보다는 낫습니다. 4년 동안의 노력으로 "자기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백만 명에 한 명이 채 되지 못하는 비율일 것입니다. 그런 드문 가능성을 노리고, 파격적인 선택을 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디딘 기반이 너무 취약하겠죠. "자기 브랜드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취지이지, 이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아주 곤란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과연 "잡코리아가 강조하지 않는 팁"을 가르쳐 주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다른 지원자들이 갖춘 모든 준비와 미덕을 다 갖춘 지원자라야, 이 책의 추가 가르침을 넉넉히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빼 놓지 말아야 할 점, 이 책은 얼핏 보아 아주 "탈세속적인 튀는 가치"만을 강조하는 별난 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걸 가르치는 면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외모를 깔끔히 하라"는 겁니다. 저자는 거의 연예인 수준의 단정한 외모를 권하고 있는데, 사실 실력이고 뭐고 다 갖춰도 포장이 시원찮으면 바로 탈락하는 게 요즘의 풍토입니다. "외모 지상주의"다 뭐다 핑계를 대려 한다면, 최소한 취업 전선이나 모범적인 직장 생활은 포기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저자는 그래서, 남들 안 하는 말도, 그리고 남들 다 하는 이야기도, 이 책에서 고루 해 주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여기서 찾아야 하며, 나머지는 읽는 독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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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음 30년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10-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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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 다음 30년

로버트 포겔 등저/김영경 역
비즈니스맵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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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20개의 세기(世紀) 중, 중국이 세계 제일의 풍요를 누렸던 기간이 18개 세기에 달한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이며,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이 전제로부터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건, 개인의 세계관과 성향에 따라 다를 뿐, 정답이 따로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그것부터가 벌써 전체주의적 불길함을 풍기는 언사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중국미래 30년>으로, 우리말 번역본의 저 제목은 원제의 느낌을 잘 살려 옮겨졌다는 생각입니다. 말이란 게 언제나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어서, 주어진 선택지 위에 얼마든지 다른 가능성도 있기 마련입니다. 막상 일을 해 보면, 의도에 부합하고 많은 이의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멋진 안이 도출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덩샤오핑이 지명한 장쩌민이, 1999년 일본을 방문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와세다대 학생들의 송곳 같은 질문에 답하느라 곤욕을 치르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불쌍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모습도 다 "도광양회"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싶기까지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어 낸 가장 직접적 기여자이자, 현재까지도 살아 있는 실세 장쩌민은, 거의 신화적 존재로 회고되고 평가되는 중이라서입니다. 진정 이런 걸 두고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써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이 어엿한 모습을 형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뭔가 어설프고 마뜩지 않습니다. 다 자라서 세상에 제 활개를 펴는 모습을 볼 때면 그제서야 소급 재평가가 내려지며 "아 본래 될성부른 싹이었어." 같은 아부, 찬양이 이어지는 거죠. 하지만 중국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거지 국가, 야만인들"의 평가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8세기가 어쨌다구요? 대륙의 제국은 소수 지배층의 소유였을 뿐, 절대 다수 인민은 그저 농노의 신세를 못 면하는 비참한 반 짐승의 처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여튼 중요한 건 현재입니다. 로버트 포겔은 앞으로 10년 후, 중국의 국내 총생산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 예측합니다(이 책은 2011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포겔의 해당 논문은 앞뒤 내용으로 짐작건대 2008년경에 쓰여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구매력 기준 GDP가 미국을 능가했다는 발표가 나온 건, 이 서평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바로 그제입니다. 책을 읽는 분들은 참고하십시오). 포겔의 논문은 사실 이 책에 왜 끼었는지 좀 의문입니다. 나머지 글들과 성격도 맞지 않고, 심지어 평소 쓰곤 하는 그의 글들과 비교해서도 스타일이 좀 튀는 편입니다.

필자들의 붓 놀리는 모양새란 도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자랑스레 여기는 공맹의 도, 군자의 마음가짐이란 간데 없고(공산 중국의 기초를 놓은 이가, 바로 문화대혁명을 주도하기도 한 마오라고 하죠? 공자고 뭐가 다 때려 없애라고 했던?풋), 그 예전, 조공국에 와서 경복궁을 보고 "삼각산 아래 일개 기와집이구나!"하며 조롱했던 자의 오만함이 가득 배어납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민본이랍니다. 이 민본은 서구에서 배워 온 게 아니라, (편리할 때만 또 등장하는) 맹자의 가르침이 그 연원이라는 거죠(그렇게 민본을 잘 베풀어서 수천 년 동안 농민반란이 쉴 틈도 없이 일어났었는지). 다수결의 원리는 이익 집단의 권력 투쟁 유발 원인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진정한 공동체의 조화는, 지금 공산당이 행하는 것처럼 "집정 집단"에 의한 과두적 통치가 바람직하다는 거죠. 분권 역시 엘리트 지배의 기만적 담보 장치에 지나지 않으므로, 권력이 집중되되 소관 업무가 나뉠 뿐인 "분권"이 바람직하답니다.

현재 중국이 고전 중이면 씨도 안 먹힐 선전인데, 잘나가고 있는 중이니 이런 말도 태연하게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대만처럼) 소모적 정쟁에 빠져들기라도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적 논쟁에는 가급적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자국 인민의 성숙함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믿지 않는다는 뜻이며, 국호인 "인민공화국"이 무색한 자가당착의 결론입니다.  손문(쑨원) 선생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요?

패권국이란 타의 모범이 될 장점을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막고, 가리고, 가두고, 조작하고, 억누르는 정치 체제가 아무리 국부를 많이 축적한다 한들, 그로부터 이웃 나라가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30년은 그들이 말하는 한 갑자(甲子)의 절반인데, 수천 년이 지나도 미신적 수비(數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합니다. 하긴 남을 탓할 때가 아니죠. 지금 우리의 모습은? 솔직히, 30년은커녕 당장 3년 뒤 어떤 꼴이 되어 있을지가 아찔할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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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지휘하라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4-10-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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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창의성을 지휘하라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공저/윤태경 역
와이즈베리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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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뿌듯한 보람이 느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이런 책이라면 누구한테 권해 줘도 욕 안 먹겠다 싶었고, 만약 만족 못 하는 이가 있다면 찾아가서 제가 욕을 해 주고 싶을 만큼요^^ 책을 잡고 보통 하루면 끝을 냅니다만, 이 책은 지난 9월 말에 사서 지금까지 읽었습니다.

일단 자계서 같은 책 제목도 그렇고, 첫 1장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권두에 "스티브 잡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같은 말이 뜬금 없이 붙어 있는 것도 그렇구요. 잡스 책은 그간 너무 많이 읽어서 좀 지겨웠고, 에드 캣멀의 첫 저서라고 해서 샀는데 잡스 이야기가 나오면(이 사람 이야기가 일단 나왔다 하면, 어디 적당히 나오고 마는 수준이겠습니까?) 에드 캣멀에 대해서 좀 알고 싶었던 독자로서는 아무래도 품었던 기대가 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에드 캣멀 단독 명의가 아닌, 에이미 월러스라는 (제게는) 낯선 이름의 공저자가 같이 붙어 있는 것도 일단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썼다고 해도 대필인 경우가 많은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제목을 보니, 더더욱 자계서처럼 보였습니다. 자계서라고 해도 진정 자기 발전을 위한 의욕으로 가득한 독자에게는, 설사 흔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다 성장을 위한 자양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특히 기업가의 책이라면 정말 그 기업가 본인의 육성을 듣고 싶은 게 독자의 바람입니다. 명언 인용은 이제 좀 지겹다고나 할까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최소한 제게는 "이 책은 에드 캣멀 본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책이고, 할 수 없는 말이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어느 책이든 그렇듯, 책 처음(혹은 뒤표지)에는 각계 인사들의 다양한 추천사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을 보면, "..... 인 작품"이란 말이 나와 있더군요. "작품"이라... 유명 인사의 회고록, 혹은 어떤 형식의 테마북이라고 해도, 그걸 "작품"이라고까지 불러 주는 건 그리 흔치는 않습니다(아니면 단순한 오용이던지). 그 말을 읽고 나서 다시 책 표지를 보았더랬습니다. 라틴어로 "작품"이라고 하면 opus, 그 복수 형태는 opera죠. 벌건 배경에 실루엣으로 표현된 어느 지휘자가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하자면 지휘자이니, 그 지휘자가 내 놓은 책이라 '작품'인가?" 처음 책 읽기 싫을 때는 이처럼 온갖 잡생각이 꼬리를 무는 게 제 버릇이어서요.




읽어 보니, 이 책은 정말로 "창의성을 지휘하는" 내용이더라구요. 에드 캣멀은 다들 아는 것처럼, 그냥 팀이라고 해야 할지, 밴드라고 해야 할지, 정말 회사로 분류해야 할지 모를 어메이징한 집단 픽사의 설립자이자 CEO입니다. 다들 기억하는 것처럼 1990년대 초반은, 한때 활기를 완전히 잃었던 미국 애니메이션이 화려한 중흥을 맞이했던 시기입니다. 1990년부터 4년 연속으로 흥행 대박을 쳤던 디즈니의 성과는, 지금에 들어서야 분석가들의 평가 대상이 되고 어느 정도 고착된 어구로 자리매김된 게 아닙니다. 이미 그 당시에도 (심지어 한국 언론에서도) 대중 문화가 아닌 경영이론상의 관심사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캣멀은 제가 보기에 화려한 변설가는 못 되지 싶습니다. 그 예로, 과연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싶은 사람 입에서 나올 만한, 이거는 진짜 자기 표현 맞는가 보다 싶은 개념이 나옵니다. "아기 키우기"와 "짐승 먹이 주기"가 그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소규모 조직을 정성 들여 성장시키고, 본래의 목적에 맞게 매뉴얼한 주의를 매 단계마다 일일이 기울이는 건 "아기 키우기"입니다. 아기를 키우는 건, 엄마가 들인 노력에 꼭 양적으로 비례해서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양적으로 정성을 들여도, 자기가 원하는 보호를 못 받는다 싶으면 꼭 울고 보채고 하는 게 아기겠죠(모르긴 해도). 별 노력을 안 쏟는다 싶어도, 꼭 필요한 정성이 제공되면 바로 만족하고 해맑은 웃음을 띠는 게 아기겠죠. 이러다가도 언제 한 순간 돌변해서 자기 집은 물론 이웃들 잠까지 다 깨울 지도 모르는 게 아기입니다. 회사에서 분명, 이런 "아기 키우기"의 마인드로 임해야 하는 작업과 섹터가 따로 있다는 게 그의 의견입니다.




"짐승 먹이 주기"는 그 반대입니다. 짐승은 질보다 양입니다. 일단 외적 시설을 잘 갖추고, 먹이를 풍부히 공급하고, 치밀한 시스템적 관리에 소홀함이 없는 게 "사랑" 같은 비정형적 요소보다 더 우선입니다. 캣멀은 예컨대 GM이나 IBM 같은 대형 회사가 보다 더 의존하는 조직 패턴이 이것이라고 분류합니다. 반면 자기가 꾸려 온 픽사 같은 회사는 "아기 키우기"를 하는 조직이라는 거죠.

자, 그럼 "짐승 키우기"는 나쁘고, "아기 키우기"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가 한때 상관으로 모시고, 지금도 여전히 숭배하는 스티브 잡스라면, 아마 "A는 좋고, B는 나쁘다"는 식으로, 명쾌한 도그마화를 시도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자 캣멀은 (이 책 곳곳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잡스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른 유형"의 인간입니다. 그런 그가, "모든 회사는 아기 키우듯 키워야 한다"고 주장할 리 없습니다. 사실 캣멀 아니라 누구에게도, 회사를 "전사(全社)적으로" 아기 키우듯 키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요즘 구멍가게도 그런 식으로 운영되지는 못하지 싶습니다.

캣멀은 오히려 "짐승 먹이주기"는 어느 회사에 있어서든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합니다. 당연하죠. 외연 확장에 무관심한 회사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은 고사하고 그저 현상 유지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사실 디즈니가 1990년대 초 이래 계속 픽사와 외주의 형태로만 관계를 유지한 건, 캣멀이나 디즈니로나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때는 디즈니 역시 (의식을 했건 못했건) "아기 키우기"를 잘하는 기업이었고, 캣멀은 아직 신출내기라 경영에 눈에 뜨이지 못했을 시점이었겠죠. 결국 그를 알아 본 것도, 기이한 독불장군이자 나르시스면서도 인재를 감별하는 안목만큼은 탁월했던(안 그럴 것 같아도) 잡스였습니다.

캣멀은 드디어 디즈니의 CEO로 부임합니다. 첫날 회사를 둘러 보니, 직원들의 책상 위가 깨끗합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직원의 개성이 최대한 살아 있어야 할 사무실 개인 책상의 모습이 이러니 그는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세 번을 묻고서야 "오늘 사장님 부임을 맞아 좋은 인상을 드리기 위해 일제 점검 지시가 내려졌습니다."라는 실토를 들었습니다. 캣멀은 이미 밖에서부터, "왜 디즈니가 점점 하향세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답을, 무려 취임 첫날에 들은 셈입니다.

저는 이 책이, 특히 이런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책은 정당한 질문, 필요한 질문 자체를 제기하지 못하고 시시한 주제만 거론하다가 끝납니다. 어떤 책은, 강렬한 힘을 발산하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러고 뒷감당을 할 듯 말 듯하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끝납니다. 하긴, 이 두 가지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그건 대단히 드문 이른바 "명저"의 반열에 속하는 책이겠습니다만. 캣멀의 이 책은, 올바른 질문을 제시하고(독자의 구미를 미리 예상한 계산적인 주의 환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정직하게 품어 왔던 질문), 그에 대한 자기 자신의 성실한 답을 내어 놓고 마무리짓습니다. 정답 강박증 때문에 애써 정형화한 답을 내어 놓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이 살아 온 치열한 과정이 빚은 딱 그 수준 만큼의 정직한 답을 성실히 이야기합니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사실 어디 있겠습니까. 정직하고 성실한 소통 자체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정도지요.

경영학 개론 교과서에서 앙상하게 그 이름만 접해 왔던 저스트 인 타임이니 하는 개념들이, 이 책에서는 캣멀의 버전(혹은 에이미 월러스의?)으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창의력 있는 인재를 기용하는 섹터에선, 아기 키우기 식으로 조직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요즘, 존중받는 직원이 일도 잘한다는 식의 주장도 여러 군데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캣멀은 철저히, "그들의 창의성을 북돋워주라"는 강력한, 그러나 부드러운 톤의 촉구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뽑을 때, 똑똑하다 싶어 뽑은 인재들 아니었는가. 그런데 왜 뽑고 나서는 부품 취급을 하는가"가 그의 말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맞는 말입니다.

한때 창의력은 CEO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죠. 영화 <토털 리콜>에서 회장님은 그렇게 말합니다. "생각을 하지 마, 누가 생각하라고 했나?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바로 이런 독선적이고 디미니셔스러운 스탠스가, 죽은 조직을 만듭니다. 지휘는 지시가 아니죠. 불협화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일 뿐입니다. 아무리 지휘자가 빼어나도, 박자 못 맞추고 음 틀리는 단원을 연주 도중에 교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휘자라는 위치가 어차피 한계가 있다면, 단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고 기를 살리는 게, 요즘 시대의 오케스트라를 가장 잘 이끄는 방책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CEO는 지시가 아닌 지휘를 하는 시대이며, 기계적 능률 부양이 아닌 창의력의 고취야말로 기업이 살아 남을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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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과의 대화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10-1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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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우중과의 대화

신장섭 저
북스코프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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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경제인(사업가)란 언제나 악마적 공생 관계를 이룹니다. 중국도 고대 이래 언제나 상(商)인은 권귀(權貴)에 편의를 제공하면서, 많은 화폐적 혜택을 입어 왔습니다(화폐의 발행이 지배 세력의 독점 권한이었으므로). 권력은 또한 무력과 권위로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고, 이런 기회를 두고, 자신이 애호하는 상인에게 미리 중요 정보를 귀띰하거나, 혹은 칙령, 사실상 압력에 의해 독점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사업가는 그래서 언제나 권력자의 주변에서 그 비위를 맞추어야 했고, 권력자는 다양한 편의와 사치를 제공 받아 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등을 거쳐 현재 자본주의에까지 이행해 오면서도, 이 패턴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청렴 결백한 관료의 미덕이란 교과서나 유교 사서를 벗어나면 현실에서 찾아 볼 길이 거의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는 그 임기가 몇 년이든 간에 언제나 부패했고, 제 분야에서 제 할 일만 성실히 수행하는 사업가란 (어찌 보면) 책에서조차 찾기 힘듭니다. 정(政)과 경(經)은 거의 언제나 유착 관계에 있었으며, 이 책의 주인공인 김우중 창업주의 경우,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정부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 차례도 남한 수뇌부와 모종의 연이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시사에 둔감한 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 책이 가르쳐 주는 내용 중 좀 충격적이다 싶은 건 다음의 두 가지일 것입니다.
1. 김우중 회장은 이미 전두환 정부 후기 무렵부터 북 정권과 매우 긴밀한 연락과 친분을 유지했다.
2. 김 회장이 성취하고 잘 홍보했던 업적 중 소위 "세계 경영"이라는 것의 실체가, 생각보다 규모가 큰 것이었다.

좀 부수적이다 싶은 내용 중에서 약간의 놀라움을 안겨 주는 건 "노무현 대통령과 김 회장 간의 관계가 생각보다 돈독했다"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많 은 이들은 대북 사업에서 가장 앞서 갔던 기업으로, 1989년 방북해서 김일성을 만났던 사실 때문에 아마 고 정주영 창업주의 현대를 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도 인용되어 있듯, 이건희 회장은 1994년 당시 "매출액에서는 현대에 뒤지고, 가전에서는 엘지에 뒤지고, 대북 사업에서는 대우에 뒤진다"며 임직원을 질책한 적이 있죠. 이 책에서 저자 신 교수에게 자랑스럽게 털어 놓듯, 그 경색된 상황에서도 결국 최고지도자를 끼고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던 이는 김 회장이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김 회장 자신이 강조하는 건 "직언"입니다. 최고 권력자, 특히 독재자 주위에는 직언자가 드문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입니다. 아무리 영리하고 냉철한 인간이라도, 측근자는 언제나 도전자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몇 전 직언을 용납하다 보면 권위의 실추를 겪게 되고,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문제로서 이런 측근을 경계해야만 하죠. 김일성, 김정일 뿐 아니라 리비아의 카다피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김 회장은 최고 지도자의 은전에 목을 매어야 하는 처지가 아니므로, 독재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판단을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서 제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일단 실용적인 정보와 조언부터가 아무나 제공할 수 없는 희귀한 자원이지만, 김 회장의 경우 그를 넘어 최고 지도자들의 기분과 눈치를 잘 파악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 김 회장은 아무 언급이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사업가의 밑천이자 승승장구의 비결이요, 어쩌면 자신의 치부와 직결되어 있는 사항인데, 하물며 책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 공개할 리가 만무합니다. 여튼 책을 통해 김 회장이 계속 강조하는 비결은, "눈치 보지 않는 직언"입니다. 이것만으로 독재자로부터 그만큼이나 큰 환심을 샀다는 뜻입니다. 읽는 이들은 고성능 필터를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볼 것도 아닙니다. 여튼 그는 갓 개방이 시작될 무렵의 동유럽에서, "대우"라는 브랜드를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익숙한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기업의 마케팅 역량이 전례 없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그 광대한 미개척의 시장, 언어와 인종,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시장에서 그만한 성과를 냈다는 건, 거의 경이에 가깝습니다. 초인이라야 해 낼 수 있는 성과를 그는 그토록 광범위하게 이뤄 내었던 거죠. 지금도 최소한 이머징 마켓 중 베트남에서 이뤄 낸 업적은 저 과거의 성취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사업이란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오면, 주주와 투자자에게 공정히 배분하는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성과란, 가시적이고 손에 쥘 수 있는 달러 뭉텅이가 일단 사업가 본인의 손에 들어 오고, 그 다음으로 돈을 댄 물주들에게 서운치 않은 나눔이 이뤄져야 하죠. 김 회장의 경우, 그가 이룬 놀라운 성과와 빼어난 수완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 성과가 끊임 없는 외적 팽창에 투입되기만 했을 뿐, 그가 빌려 간 그 막대한 자본이 원 주인에게 회수되는 일이 매우, 매우 드물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선단식 경영, 차입 경영은 대우만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대우의 경우는 대체 무엇을 위한 세계 경영이었는지가 의심될 만큼, 내실과 중간 정산을 외면한 사업 확장에 집착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미 대우는 1991년에 조선發 부도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전혀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지 않은 채 기존의 패턴만 일관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황제식 경영의 폐단은 대우에서 아주 집약적으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는 자신의 장점에만 나르시스적으로 빠져 있을 뿐, 일단 큰 문제를 일으킨 단점에 대해 전혀 돌아보지를 않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또 나오는 그의 말은 "GM이니 뭐니 하는 미국 굴지의 대기업도, 실제 경영하는 모습을 보면 허술한 구석이 많이 보였다."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행태도 물론 문제지만, 대우처럼 한 천재적 개인이 전사적으로 간여하고, 회장 한 사람이 빠지면 되는 일이 없는 기업도 문제입니다. 둘 중 굳이 택일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안정적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쪽을 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일성 부자와의 에피소드도, 그처럼 잦은 방북(정주영 씨의 경우, 국가 보안법 위반 여부가 문제되자- 당시에는 아직 교류 기본법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는 "통치행위"라는 궁색한 구실을 내걸기도 했습니다)이 있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만큼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건 딱 하나입니다. "김 회장이 체제 상호 보장을 거론하자, 김정일이 '남쪽의 보장이 없으면 우리가 존속할 수 없기라도 하단 말인가'며 고성을 내었다. 밖에서 듣던 이들은 '이제 김우중은 남으로 귀환 못한다'며 술렁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김 회장 자신은 결코 저자세로 대북 사업에 임하지 않았고, 당당한 태도를 견지했다는 메시지를 애써 전달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진실은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나 알 수 있겠죠.

이 책의 핵심은 아무래도 외환위기 당시 "대우 자산의 헐값 매각"과 "정치적 외압    " 여부입니다. 그럭저럭 잘 굴러갈 수 있는 기업집단을 공중 분해시켜, 국부의 유출과 손실을 공연히 입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저자 신 교수는, 이헌재 전 부총리의 주장과 김 전 회장의 주장이 어디서 어디가 다른지를, 상세한 표와 함께 정리하여 책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사건 당사자의 일방적 주장 정도를 넘어서는 건 이 점에서 분명합니다.

과연 대우는 당시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기업이었나. 대우만큼 오너 한 사람의 역량에 많은 걸 기대는 기업이 없었으므로, 기업의 역량 평가는 이 경우 결국 김우중이 과연 빚을 갚을 만한 사람이었냐로 바꿔 물을 수 있습니다.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데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당시의 정부가 중대한 판단 착오 혹은 부조리를 저지른 것으로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대우는 이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유동성 경색의 위기에 몰린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특혜 시비를 유발했고, 청구 유예는 물론 추가 자금 지원까지 챙기곤 했죠. 1999년에도 같은 방법으로 당시 정부가 대처했다면, 아마 엄청난 정경 의혹 유착이 일었을 겁니다. 당시의 취약한 기반으로는, 정권이 그 의심의 식선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으라는 것도 짐작이 됩니다. 책에서도 김 전 회장의 "투정"은 주로 이헌재 등 실무자 선을 올라가지 않습니다. 독자가 기대한 건, 당시 정부에 뭔가 밉뵈어 (예컨대 전두환 시절의 국제그룹처럼) 부당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뭔가 한 방" 같은 거였겠지만, 그런 건 유감스럽게도 없습니다.

김 회장은 막판까지 승지원에서 이건희 회장과 소위 "빅딜"을 두고 심야 담판을 시도하는 등 필사적이었습니다(대우의 가전을 주고 대신 삼성자동차를 받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이 협상은 무산되었고(일부 신문에서는 일이 성사된 것처럼 오보를 내기도 했죠), 그 결과는 대우의 공중분해였습니다. 증권 등 일부 업종에서 여전히 대우라는 브랜드가 시장 인지도면에서 퇴색하지 않는 걸 보면, 김 전 회장이 이뤄 놓은 업적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공은 공대로 인정하면서도, 이미 한계 상황에 달했던 부실 경영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군 이래 추징금 규모로 능가할 자가 없는 특등 경제사범이 된 김 회장은, "중복 계산에 징벌적 의도로 이처럼 고액이 매겨진 건 부당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저자 신 교수가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하게) 법리적 관점에서 이를 다시 가다듬어 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벌금도 아니고 추징금에서 "징벌적" 추산을 행한 건, 영미법이 아닌 독법계를 따르는 우리 법제상 무리한 처사입니다. 아마도 저는, 형벌인 "벌금"으로 처리할 경우 "사면"의 형식으로 유야무야될 수 있기에, 부가형인 추징금으로 이의 감면을 어렵게 한 숙려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어떨까요? 이에 대한 판단 역시 독자가 해야 할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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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 | My Reviews & etc 2014-10-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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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랑 주떼

김혜나 저
은행나무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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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의 삼부작 중 마지막이라고 하는 이 작품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지만, "짧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전작 두 권이 하드커버로 나왔을 때도, "이렇게 짧은 분량을 양장본으로 낼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죠(양장/페이퍼백 선택이 책의 분량과 직접 관계는 없습니다만).

출판사에서 그녀의 작품을 평가(하고 홍보)할 때, "한국문학의 탈출구, 새 지평을 제시"했다는 문구가 보통 따라붙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나갈 때, 어려운 말도 없고, 심오한 사상을 표면적으로 표출하지도 않는 그녀의 스타일(오히려 정반대라면 모를까) 때문에, 그런 미덕과 가치를 발견하게 되지는 보통 않았습니다. 다만 출판사에서 그런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기에, "아 우리 무지한 독자들도 그래야 하나 보다"며 머리를 싸매고 읽어 나가기는 했죠.

전 2작을 읽으셨을 분들은 어떤 느낌이시던가요? 솔직히 말해, 어떤 이지적인 작용을 그 독해 과정에서 내 뇌에 기대하고 명령하기보다는, 말초적인 흥미에 먼저 민감해지던 모습이 보다 정직한 기억 아닌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충격이다.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같은 반성과 소감을 누구나 이야기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분들도 서평에 "짜릿짜릿 재미있었다" 같은 말을 쉽게 적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부조리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듯 암울하게 막을 내리는 결말에서 뭔가 살짝 숙연함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그 역시 은밀한 죄책감을 적당히 덮으라는 작가의 독자에 대한 영리한 배려로도 해석되었습니다. 우리의 금붕어 기억력은, 결말의 인상에만 지배되고, 이는 우리의 자발적 선택이기도 합니다, 골치 아픈 것 싫지 않습니까.

전작 <제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답이 없는 인생이고, 혐오스럽고 타락한 삶입니다. 겉으로는 일단 태깔이 나나, 속은 다 썩어 있고, 과연 늙어서 뭘 할지 혀를 끌끌 차게 되는, urban tragedy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여튼 주인공은, 얼마 있지 않아 도래할 처참한 시듦을 겪게 될지언정 아직은 빛나는 청춘입니다. 우리 독자는 그래서 불편할지언정, 그 성적(性的) 행태에 대해 혐오스러워할망정, 전적인 불쾌감과 분노만큼은 독후(讀後)에 면(免)하는 결과였습니다. 여튼 청춘을, 실수도 하고 비위도 저지를망정 아름다운 존재 아닙니까. 무슨 성(性)을 어떻게 향유하건, 젊은 시절에 벌이는 모습은 그리 추하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젊으니 나중에 무슨 돌파구가 생길지 또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 이 <그랑 주떼>는 그렇지도 않더군요.

주인공은 이중의 불행을 겪는데, 그것이 일생을 두고 치르는 고통입니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성폭행이 가져다 준 트라우마요, (이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힘든) 다른 하나는 또래들로부터의 왕따입니다.

작품에서의 서사 순서를 따르자면, 일단 주인공은 학창 시절 내내 극심한 왕따를 겪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키도 또래에 비해 큰 편입니다. 학습 능력이 아주 떨어진다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왕따입니다.

본인이 알고 다른 또래들이 느끼는, 왕따의 분명한 이유는 바로,
"저년은 그저 재수 없음, 드럽게 재수없는 년임." 입니다.
공부도 못하고, 센스도 없고, 평균치만 했으면 될 키까지 딱 재수없을 만큼만 크니, 저런 애는 왠지 싫다는 게 또래들의 "판결"입니다. 아이들은 반드시 어떤 상대가 열등해서만 왕따를 시키는 게 아닙니다. 우월한 존재도, "부러움"과 범벅이 된 묘한 "적대감"은 보통 아이들에게 왕따에의 충동을 유발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그녀의 친구(유일한 친구인데, 같이 왕따를 당하다 보니 당연하죠) 역시, 귀여운 외모에, 부유한 가정 환경에, 아무한테나 반말(미국에서 살다 왔으니 어쩔 수 없죠)을 하는 행동 따위가 처음엔 선망의 대상이다가, 나중에는 왕따의 좋은 표적이 됩니다.

왕따를 당하는 애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에 뭔가 근원적 우울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애들과 잘 못 어울립니다. 못 어울릴 만한 심성을 떨치지 못하니 정말로 못 어울리게 되고, 원인과 결과는 서로 위치를 바꿔 가며 악순환을 낳습니다. 이 주인공 역시 마찬가집니다. 못난 구석이 많다고는 하나, 하나하나만 따지면 남들한테 비웃음과 경멸의 대상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게 모이고 모이니까, "천하에 재수 없는 년"이 되는 겁니다. 한 성깔 하는 구석이라도 있었으면, 반대로 구석(전면에서는 아니고)에서 나름 애들에게 겁깨나 주는 깡패가 되었을 수도 있을텐데(키가 크다고 하니), 그것도 아닙니다. 천상 왕따로 살아야 할 처집니다.

현재 주인공은 발레 강사(비슷한 것)입니다. 발레라고 하니 모르는 이들에게는 뭔가 있어 보이고, 사람들을 가르치기라도 한다니 허울이야 좋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관련 학과를 졸업하기까지 헸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내면에 깊은 문제가 곪아 있는 모습이 여기서도 반복 재생산되는데요, 그녀는 발레를 전혀 할 줄 모릅니다. 절망적인 몸치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들에게도 엄청 타박만 받다 교육과정을 겨우겨우 마쳤습니다. 그럼 뭘 가르치느냐? 고용주인 원장이 다른 스케줄로 레슨을 못할 때, 기초 몸동작을 원생들에게 반복시키는 일입니다. 어차피 동네 영세 학원이라, 발레를 본격적으로 배우는 이들이 적습니다. 말이 좋아 발레지, 관리를 안 해서 뒤룩뒤룩 찐 살을 빼러 오는 "다이어트반"의 관리입니다. 아무나 다 하는 비숙련 노동 비정규직에 가깝습니다.

왜 이렇게 암울한 인생이 되었을까요? 약간 스포일러성이지만, 리뷰에서 이 이야기를 안 하면 그건 직무유기에 가까울 만큼 중요요소라 어쩔 수 없네요. 모르긴 해도, 주인공이 아주 어린 시절 당했던 성폭행의 끔찍한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이 내러티브의 의도 아닌가 합니다. 자기 책임으로(그 나이에 무슨 "자기 책임"이란 게 있겠습니까!) 조금도 돌릴 수 없는, 악한, 범죄자로 인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젊은 한 인생을 망쳐 놓은 거죠. 아마도 아이들이 그녀에게서 보았을 "재수없음"은, 그녀의 "주저함"이었겠고, 그 "주저함"이란 그 악몽에서 기인했을 텝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사람, 타인에게 가까이 갈 수 있겠습니까.

유아 시절의 그녀를 아파트 옥상에서 성폭행한 자는, 참으로 놀라울 만큼 비열한 품성을 지닌 인간이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성욕을 느끼는 자라면, 자기 인생이 자기 뜻대로 통제될 부분이 없는 정신 장애자이니, 차라리 동정을 느낄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는, 범행 한참 후 우리의 주인공과 다시 만납니다. 자전거를 타다 만난 그녀에게, 그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폭행을 가합니다. "너 이 나쁜 X, 다시 내 눈에 뜨이면 죽을 줄 알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놀라운 광경입니다.

사실 요즘 논란이 되는 화학적 거세니, 전자 발찌니 하는 것도 다 호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이런 것만큼은, 저기 북한이나 중화인민공화국 표준을 따라 법시행을 했으면 합니다. 얼굴 공개하고 대중들 사이에 시끄럽게 떠들어 봐야 소용 없습니다. 지금 누가 "고종석"에서 나주 여야 성폭행 사건을 떠올리는 이가 있습니까(다들 글쓰기 선생님만 생각할 텐데)? 대중은 그저 냄비일 뿐입니다. 입으로 떠들 게 아니라, 법으로 그냥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주인공은 "왕따 유발성의" 우울함을 내면 특성으로 가지게 되었다....라면 그건 우리의 상식? 통념? 이런 것에 과히 어긋나는 바 없으므로, 차라리 편한 이해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번 더 다른 갈래의 이야기를 덧입힙니다. 그것은, 주인공의 성격 자체가, 무언가 가해를 유발할 요인을, 그 성폭행 이전부터 안고 있었다는 은근한 암시입니다. 오해는 마시구요.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일부 있다"는 황당하고 사악한 논리가 아닙니다. 범죄자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취약함"에 끌립니다. 그 취약함이 이 범죄자의 공격에 의해 더 큰 상처로 자라면, 이번에는 "범죄자까지는 아니나 사악한 일반인들"이, 그 틈을 겨냥하여 공격하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그토록 지탄해 마지 않는 범죄자들은, 알고 보니 똑같은 공격성과 가해적 성향을 지닌 일반인들의 선발대, 특수요원이었던 셈입니다.

주인공은 왜 발레를 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여자치고 남달리 큰 발, 그리고 그 발등에 돋아난 두툼한 뼈를 갖고 태어난 모습입니다. 이게 발레에는 천혜의 조건입니다. 발레 선생은 그녀의 그 발, 일반인들부터는 혐오의 대상이었을 그 발을 보고 반한 것입니다. 저런 발을 나도 가질 수만 있다면 영혼의 일부라도 팔겠어! 그러나 그런 발만 가지면 뭐하겠습니까. 몸 돌아가는 게, 균형 잡는 감각이 일반인보다도 못한데 말이죠. 그녀는 다시, 선망의 대상(거의 로또와도 같은 확률로 하나 걸렸던)에서, 다시 공인 왕따로 추락합니다.

인간은 본디 그렇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발이 발레에 최적화한 모습을 지닌 것이, 그녀가 전생에 남다른 공덕이라도 쌓아서였겠습니까? 뭔가 우물쭈물하고, 또래에 어울리지 못하고, 근거 없는 자만감으로 허황한 짓거리를 하다 표적이 되는 인생이 있다 해도,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과의 화해도 도모하기 힘듭니다. 이 소설은 "그렇게 태어난 그녀들과 우리들"에 대한, 정직한 시선을 촉구, 각성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짙게 배어나 있습니다.


좀 재수가 없다 한들, 아니 많이 재수가 없다 한들, 그렇게 태어난 자에게 뭔 잘못이 있겠습니까? 성장 과정에서 엇나간 성질머리를 채 고쳐주지 않은 부모를 욕할망정 말이죠. 그렇게 남에게 치이고 산 인생이, 자기 상처를 비뚤어진 방법으로 치유하기 위해, 유치한 권력 소꿉장난이나 씨도 안 먹힐 공포 분위기 조성에 나잇값도 못하고 집착하는 거죠.

여튼 이 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과의 화해도 도모하기 힘듭니다. 이 소설은 "그렇게 태어난 그녀들"과, 나아가 우리 자신들에 대한, 정직한 시선을 촉구, 각성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짙게 배어나 있습니다.


극심한 경기 불황에 시달리는 요즘 세태가 배경으로, 사실적 설명을 통해 제시된 것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주변부만 떠도는 주인공의 처지와 인생에 대한 적절한 환기 혹은 메타포어 같기도 했습니다. 다만, 성폭행(두 건이 나오는데, 하나는 친척 오빠로부터의 성폭행이었습니다)과 왕따, 비정규직의 문제가 좀 작위적으로 결합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고, 전작과는 달리 도무지 밝은 면, 긍정적 분위기가 전무한 것도 갑갑함을 더하더군요. 희망적 색채를 띤 요소는 오로지 제목 "그랑 주떼" 하나뿐이었다고나 할까요. 내가 좀 조증이다 싶을 때 진정제로 처방하면 그냥 왓다일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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