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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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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언제나 정의로 귀착하길 기대하며 [난징의 강간] | My Reviews & etc 2014-04-30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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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아이리스 장 저/윤지환 역
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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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강간>은 한국에 이미 그 번역본이 출간된 적 있습니다. 다만 새로 나온 이 책은 과거의 그 문구를 제목으로 쓰지 않았는데요. 대신 "난징의 강간"이라는 용어는 본문에서 자주 되풀이되며 쓰이고 있습니다. rape라는 단어는, 일방적인 공격, 무방비 상태에 있는 상대에 대한 야만적 공격이라는 의미가 있고, 따라서 Rape of Nanjing(Nanking)이라고 하면, 난징(남경)이라는 도시에 대한 잔혹한 파괴 행위 일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강간"이라고 하면, 왠지 강간 범죄에 국한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썩 자연스럽지는 않은데요. 다만 이 책의 한국어 번역자는, 저자 아이리스 장이 분명 그런 의도로 rape라는 단어를 구사했으리라는 생각 아래, 본문에서 일관되게 "강간"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영어에서 "도시"는 대개 여성형으로 취급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번역상의 태도가 또 하나의 근거를 획득하기도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확실히 난징 대학살은, 구체적인 범죄행위뿐 아니라 추상적 의미에서도 "강간"의 나쁜 의미를 다 지니거나 전달합니다. 개인개인(특히 여성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능욕하고, 신체를 훼손하고 능욕했을 뿐 아니라, 그 살육의 결과까지 세계사에 유례 없는 잔혹성을 띠었으니까요. 이 책에 실린 여러 사진들은,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해서, 아이들에게 교육용 목적으로 보이기 곤란할 뿐 아니라 어른이 보기조차 끔찍합니다. 너무나 절망적이고 안타까운 광경이라서, 차라리 이 사진을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가공할 만한 뻔뻔함을 보이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참이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사진 증거 자료가 전혀 없다고 해도, 아이리스 장의 종합적이고 망라적이며 상세한 서술만으로도 그 참혹상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아마 이 책이 처음으로 출판되었을 때, 바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겠나 생각합니다. 이 책은 또한 용감한 책입니다. 라이샤워, 페어뱅크스, 크레이그 공저의 책에서도, 비겁하게 난징 대학살을 에둘러서만 언급하고 있었는데, 절은 여성 학자가 학자 신분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저서를 통해 이 문제를 수면위로 올렸기 때문이죠. 


십 년도 전에 처음 이 책(번역본)을 읽었을 때, 그 직전까지만 해도 역사적 서술의 엄정성보다는 감각적이고 호소력 짙은 스타일로 이 (결코 짧지 않은) 책의 내용을 전개하지 않았을까 막연히 예단했습니다. 그런데 읽어 나가면서 놀란 건, 좀 충격적이다. 혹은 기존의 책에서 못 보던 사항이다 싶은 대목에서는 반드시 출처와 전거가, 각주 형태로 달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일단 대중에게 읽혀질 목적으로 집필된 것이지 본격 역사서는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로 깐깐한 편제를 취할 줄은 몰랐거든요. 나중에 (권말의) 추천사를 통해 안 내용이지만, 이 아이리스 장은 저술가보다 전문 역사학자, 아카데미즘에서 이미 촉망을 받던 신예였습니다. 적당히 소재(너무 냉정한 말일까요?로부터 거리를 유지했더라면 개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충분히 횅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그녀인데, 지나친 양심(양심에 지나친 게 어디 있겠습니까만)과 불의에 대한 분노로, 그녀로서는 전혀 뜻하지 않게 "정치"의 영역에 한 발을 들여 놓고 만 셈이 된 거죠. 물론 그녀의 의도는,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혀야 한다."는, 한 인간로서의 확고한 소신을 순수하게 추구한 발로뿐이었습니다만, 사악한 자들이 도리어 기본 원칙과 인도주의의 문제를 진흙탕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책은 난징 대학살 당시의 참상만을 전하지는 않습니다. 그 전에, 왜 장개석 측은 수도 남경을 그토록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가. 남경이 설사 일본군의 손에 떨어지더라도, 그토록 큰 규모의 참사를 막을 방법은 과연 없었는가 같은, 사태 전후의 유기적 과정의 분석도 아주 치밀하게 행합니다. 이 책의 "학술적 가치"는 아마 그 쪽에서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아이리스 장의 태도 중 또 두드러진 점은, 일본 장교와 사병이 어떤 과정으로 훈육되고 양성되며 잔인한 살인기계로 획일화되는가에 대한 냉정한 분석입니다. 아마 일본 우익들은, 난징에서의 잔혹한 참사를 묘사한 대목 못지 않게, 그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가 농축된 이 군국주의적 시스템을 신랄한 어조로 비판하는 그 구석이 더 못마땅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도 조목조목 맞는 말만 하고 있으니까 그에 비례해서 더 심기가 상하는 거겠죠.


이 책의 제 10장은 아이리스 장 사후(死後)의 사정을 다룹니다(시사 이슈라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내용이고, 얾마 전 방일을 마친 오바마를 영접한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의 이야기가 있어서 더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원서에는 포함되기 어려운 내용인데, 어떻게 해서 이 책에 실리게 되었는지 분명한 설명이 없어서 약간 어리둥절했습니다(그 내용이야 지극히 타당하고 시의적절했지만요). 일번 우익 언론 매체 문춘 등의 편향적 경향을 짚은 서술도, 상황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리스 장이 직접 규명한 사실로, "그 참상이 벌어질 때 미국은 뭐하고 있었으며, 같은 추축국이었던 독일은 어떤 태도였는가?"에 대한 해명도 시원시원하고 논리정연합니다. 또한, 전쟁의 최종 책임자로서 일본 황실의 여러 인사가 끝까지 책임 추궁을 받지 않고 자연인으로서 안온한 일생을 마쳤다는 점도 고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기 쉬운 내용입니다.


p295:6에 보면, "부이"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푸이" 혹은 "부의"가 옳습니다(이 책 p75, 밑에서 7째 줄에는 "푸이"라고 바르게 나옵니다).p80에 보면, 노구교(루거우차오)의 한자 표기가, 盧라고 잘못되어 있습니다. 蒲(부들 포)가 아니라, 溝(도랑 구)가 맞는 글자입니다. 명백한 오류이므로 개정판에서는 고쳐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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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최고였습니다 [멸화] | My Reviews & etc 2014-04-2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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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멸화

이경민 저
노블마인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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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이처럼 잘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등장 인물 하나하나가 매력적이고, 게다가 소재가 참신하며, 장르소설의 범주에 넣기에 너무 아까울 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재미있는 소설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못 믿을 것이지만, 제 주관적으로는 최근 5년 안에 읽은 스릴러 중에 최고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불"이란, 인간을 다른 동물들의 존재 양태와 근본적으로 구분 짓게 해 준, 고마운 발견이자 도구였습니다. 이 불은, 그러나 인간이 소중하게 가꿔 온 문명의 둥지를 송두리째 소멸시킬 수도 있는, 무서운 응보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다스리던 조선 건국 초기라면, 이 불이 평균적인 한국인에게 환기하는 의미란, 공포, 파멸, 숙명적 재앙 이상이 아니었을 텝니다. 그런데 이 불이, 사악한 인간의 손에 들어가 그 추한 욕망과 원한의 도구로 쓰인다면, 질서와 평화는 돌이킬 수 없이 유린되고, 살아 남은 이들 역시 죄의식과 트라우마에 평생을 시달리게 되겠습니다.


세종 연간에 두 차례에 걸쳐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10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사건이지만, 현장에 남은 단서나 범행 수법이 유사합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물론, 프레임 밖에서 사태의 귀추를 주목하는 우리들도, 당연 동일범의 소행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하지만 추리물깨나 읽은 독자의 눈에는, "눈에 빤히 보이는 단서야말로 교활한 범인이 깔아놓은 오도의 밑밥"임이 잘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발걸음이라면 추적하는 마음과 머리는 두 배로 힘들어집니다.

10년 전의 진상과, 지금의 진상이 한 치 어긋남 없이 아귀를 맞혀야 하는데, 전쟁도 두 전선을 앞에 두고 벌이는 싸움이 힘들듯, 해결해야 하는 작업이 퍼즐이건 범죄수사이건(독자의 입장에선 둘 다를 겸하죠) 간에, 한쪽에만 달린 두 눈으로 앞뒤를 살피는 일은 까다롭고도 고생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호림은, 이게 무슨 취미나 도락이라도 되는 양, 그 튼실한 두 다리로 쉼 없이 현장을 쫓고, 그 와중에도 잘생긴 이목구비 위쪽에 붙은 좋은 성능의 두뇌를 부지런히 회전시킵니다. 천성이 영리한 데다 대단한 정력과 민첩성을 지녔지만, 수사 과정에서 쉴 새 없이 위험에 처합니다.

셜록 홈즈나 제임스 본드의 태평스러운 처지도 아닙니다. 그는 (알고보니) 태생부터도 존속의 죄에 연루된 몸이었고, 정말 우연에 불과하지만 재수없게도 가는 길마다 마주치는 불운이 하필 그 연좌된 죄와 관련된 누명입니다. 그는 그러나 타고난 재치, 그리고 언제나 그의 정신을 떠나지 않는 여유와 침착성으로 위기를 면하고, 이 과정에서 그의 비범함을 용케 알아보는 귀, 천 각층 인사들의 뜻하지 않은 도움도 받아 오히려 출세의 발판까지 마련합니다(지나친 우연이 아닐까 싶었지만, 끝에 가 보니 다 복선이더군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체로 그 잘생긴 외모가 빼어나고 민활한 정신을 그대로 대변하곤 한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출신 성분의 격차는, 고관대작의 핏줄부터 정체 모를 중인, 그리고 농투산이보다 못한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다만 사람의 그릇이 그 족보에 있지 않고, 위기에 처해 어떤 재치와 융통을 발휘하는 처신에 있다는 걸 서로 알아 보는 까닭인지, 그들은 일단 쉼 없이 머리를 굴리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며 게임에서 신의 한 수를 두기에 바쁩니다. 장르 소설에서 평면적 캐릭터들의 빤한 수놓기에만 길들여진 독자는, 오히려 중세의 자식들인 이 똘똘하고 영악한 배역들(따지고 보면 선, 악의 구분도 없는 셈이었습니다. 편의상의 좌표로 우리의 감정을 의탁할 주인공 호림이 있었을 뿐)의 빠른 호흡(실상은 빈틈없는 두뇌회전)을 못 따라간 채, "어, 이 사람 알고보니 나쁘네? 왜 배신하지?" 같은 가뿐 숨을 몰아쉬기에 바쁩니다.

구성만 치밀한 게 아니라, 개별 장면의 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도 눈부십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장면.호림이 결박당한 채 감금된 곳에 채령이 (거짓 기별에 유인되어) 찾아 옵니다. 인화성 물질을 가뜩 쌓아 놓은 채, 둘의 목숨을 함께 빼앗기 위한 의도입니다. 당장 불을 붙이지 않는 의도는, 그 긴박한 순간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 (호림은) 짐작합니다. 집단 살인과 방화라는 결과 못지 않게,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기까지 하다니 대단한 악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부싯돌 소리가 멈추는) 정적이 흐르다, "이를 보상하기라도 핟듯" 거대한 화광이 일어난다고 한 작가의 묘사는 실로 탁월합니다. 멀리서 같은 멸화꾼인 용석 등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으로 보아, 갑자기 구원의 손길이 유효하게라도 뻗쳤을까 순간 기대한 독자의 안도를 무참히 무너뜨리는 솜씨, 정말 대단하다고나 할까요.

작가는 소설 곳곳에, 소설적 재미 외에, 시간의 초월하여 타당한 갖가지 쓰라린 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잠언도 심어 놓았습니다. "대신들은 궐내에서, 기녀들은 기방에서 자리 싸움을 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가장 높은 신분과, 가장 천한 신분의 매음녀가 벌이는 짓이, 실상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통렬한 고발입니까. "관리들이 하는 짓이란 언제나 그 모습이다. 잘 되면 제 덕, 안 되면 남의 잘못." 같은 문장도 그 좋른 예입니다.

작가가 구사하는 우리말 표현도, 참 적실하고 유머러스한 게 많았습니다. 읽다보니 "어둑시니'라는 말이 나오기에, 혹시 "두억시니"를 잘못 쓴 게 아닐까 해서 찾아보니, 두 낱말의 용례가 서로 별개의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다만 "그 말이 그르다는데 내 양물 두 개를 걸겠소." 같은 문장에서, "양물"은 보통 "음경"처럼 성기 자체를 가리키지 고환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라는 게 좀 문제가 아닐까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 외에 재미있는 표현으로서, "저승사자(使者)가 사자(死者)를 두려워하다."라든가, "그 돈으로는 귀향길에 코도 못 풀 것 같았다.", "그 자가 없으니 숨만 쉬어도 살이 찌겠다." 같은 게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내용은 참 살벌하고 잔혹한 이벤트의 연속인데, 이처럼 인물들의 입에서 오가는 표현이, 한국어 화자라면 무릎을 칠 만한 멋지고 해학적인 것들이라서, 미학적으로 멋진 균형을 이룬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습기도 하고, 인물들 간의 긴장이 해소되는 멋진 장면으로 다음과 같은 게 있었습니다. 수총차를 처음 들여 일종의 시운전을 하는 과정에서(당시로서는 최첨단  소방장비였겠죠), 훈련의 강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갑, 을, 병, 정, 무, 기, 경,... 등으로 조(組)를 짜서 경쟁을 시킵니다. 보통 장르소설의 클리셰는, 공식적 조직의 수장과 (내부)비공식적 조직의 실력자 사이의 알력을, 육체적 완력 혹은 지혜의 우열로 해소하는 게 보통인데, 이 레이스에선 앞선 이의 방귀 냄새에 기를 쓰기 힘들게 된 호림이 뒤처지는 모습이라든가, 호림이 흘린 땀을 제 입으로 먹고, 그 입에서 뱉은 침을 뒷주자가 다시 맞는 등, 희극적이기 짝이 없는 모습 끝에 둘 다 패자가 되는 걸로 낙착되고, 그 과정에서 용석이 자발적으로 호림에게 호형(號兄)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대목이 딱히 소설 전체에서 맡는 기능은 없지만, 영화 한 씬을 보듯 재미있을 뿐 아니라, 해학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인물들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서 놀라웠습니다.

그저 독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치레만 벌이는 것과, 주제 의식에의 깊은 몰입을 놓지 않은 공들인 문장 제련은 서로 큰 차이가 나죠. 다음과 같은 예는 말만 멋들어진 게 아니라, 그 안에 작품 전체의 주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웠습니다.

"꽃 하나 잘못 꺾다가 목이 꺾일 판이네."

"하늘에서 날리는 눈이, 알고보니 불이 사른 찌끼인 재[灰]였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선과 악의 심성이 묘하게 얽힌 입체적 캐릭터들입니다. 주인공 역시 어느 악한이나 정상배 못지 않은 냉혹함을 지니고 있으며, 결국 최종의 악인으로 드러나는 어떤 이도, 그 내면을 살펴 보면 독자의 동정이나 공감을 살 여지가 충분한 논리와 내러티브를 품고 있었으며, 하다못해 K(이름은 스포일러이므로 밝힐 수 없습니다) 같은 "몸으로 때우는 악당"도 그 썩은 독기가 무지막지한 농도라서, 우리는 미워할지언정 (이런 평면적 인물을 두고도) 최소한 우습게는 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 결말에 이르서고, 과연 누가 최후의 웃음을 지을지 반전에 반전이 이뤄지는지라 독자는 안심을 못할 지경인데, 스릴러를 읽는 보람은 사실 여기에 있음을 아는 우리는 궁금하면서도 페이지 넘기기를 아끼게 됩니다. "불덩어리가 된 채 한몸으로 뒹구는 남녀"는, 이게 에로틱한 묘사나 비유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몸에 극렬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라는 점에서 기막힌 역설을 자아내고, 이게 바로 이 소설의 주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겸한 최고의 읽을거리였으며, 아직 젊은 작가분이 이런 멋진 성취를 이뤄냈다는 사실에 기립 박수를 미친 듯 보내고 싶어요.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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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의 우(愚)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샤워실의 바보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04-2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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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샤워실의 바보들

안근모 저
어바웃어북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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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프리드먼 교수의 통렬한 우화적 진단은 결국 단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조삼모사". 어리석은 자는 당장 뜨거우면 레버를 오른쪽으로 돌리되, 적절히 조절함이 없이, "오른쪽이 절대 선이다!"를 다짐하듯 큰 폭의 핸들링을 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온 몸의 동작 기제가 멈출 만큼의 냉수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번에는 "어마차거라"를 외치며 반대 방향으로 또 한 번의 급격한 전회를 시도합니다. 그 결과는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2006년, 빈 구석 없이 그 긴 생애를 남다른 밀도로 매 피리어드를 가득 채웠던 프리드먼 교수는, 백 살을 불과 몇 년 남기고 타계했습니다. 자연인으로 오래 살았을 뿐 아니라, 학계에 데뷔한 이래 거의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 거인은, 그 가열찬 행보 때문에 거의 언제나, 우리의 할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들의 시대에, 바로 곁에 서서 쓴소리 한 마디를 상시로 던졌던 듯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케인즈다, 힉스(물리학자가 아닙니다)다, 새무얼슨이다, 이런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시대라 불릴 만한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살기도 살았을 뿐 아니라,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끊임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 많은 반대자들에 맞서 일일이 논박과 대거리를 펼치고, 그 시간 동안 경제활동인구와 경제정책결정당국의 골머리를 썩게 하고 때로는 안위의 위협까지 가한 그 많은 경제위기에 대해, 일일이 처방을 내놓고 그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려 했던 분이었기에, 우리는 대체 그의 "동시대" 가 과연 어디쯤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올타임 리퀘스트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그 긴 생애 동안 일관된 주장을 해서인 덕도 있지만, 경제이론처럼 유행의 부침이 심한 영역에서, 도대체 올타임 플레이어가 있다는 자체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칭송의 대상이었나 하면 그렇지도 전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정부의 존재 이유는, 유연성 있게 통화정책을 폄으로써,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유효적저절히 대처하기 위함인데, 법으로 통화 증발률을 정해 두고 이를 절대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시류를 따라 주류를 이루는 이론의 유행이 많이도 변화해 왔지만, 그의 이런 준칙주의는 누구나로부터 "까임"의 대상이 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를 편들어 줄 만한 학파가 큰 목소리를 낼 무렵에도 심지어 그러했습니다.


책의 저자인 안근모 기자님이, 본격 학문의 길도 아닌 저널리스트로서 경력의 대부분을 채운 그가, 하필 이 인기 없는 통화주의를 기조로 해서 이 책을 저술한 것도 저는 달리 보입니다. 사실 경제 현실이건 정치 현안이건, 명제화, 공식화된 답은 없습니다. 아이들 말로 "케바케"로 해결하고, 중용의 도를 취하되, 내게운 명분을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는 게 출세와 인기의 비결입니다. 고지식하게, 단순한 원칙론을 고집하는 자는 어디에서나 외톨이로 몰리게 마련입니다. 누구보다, 현장의 여러 목소리르 듣고, 복잡다단한 세상에 정답이 결코 하나만 있을 수 없음을 잘 아는 기자로서, "답은 통화주의!"를 내세운다는 건 어찌 보면 배짱이 필요합니다. 통화주의란, 일단 한 번 "까 주고 들어가야" 배운 티가 나는, 만만한 샌드백에 가깝다고 극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분위기가 그렇게나 좋지 못합니다.


책은 참으로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런 우려와 기존의 회의를 몰라서가 아니다. 다만 지금 당장 편하자고 대증 요법을 쓴다 해도, 그 빚은 미래 세대도 아닌, 잠시 후의 우리 자신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몫이 아닌가?" 책이 은근히 암시하고 있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도 감안해야겠습니다. 비록 시카고가 까이고 있지만, 합리적 기대이론은 지난 반 세기에 이 학문이 확인하고 성취한 가장 강력한 명제와 도구 중 하나입니다. "한 번 한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지는 않으며, 경험은 다음 예측에서 어떤 식으로건 쓰이게 되어 있다." 예리한 감각으로 움직여야 살아남는 시장에서, 이제는 민간 경제 주체들도 더 이상 연준의 마술, 중앙은행의 전지전능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수(手)는 가위-바위-보 처럼 단순합니다. 이 단계에서 이 정도 카드가 나올 줄은, 대응하는 쪽에서 머리를 짜 내고 노력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판에, 정해진 룰에 의해 발권을 행하든, 소위 재량에 의해 하든, 큰 차이가 과연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 시점에서 다시 통화주의인가? 아마도 우리가 처음에 예상했던 이상으로, 이 단순한 조언이 엄청난 타당성을 내포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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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과 문인들의 그 오래 전 이야기 [사랑아 피를 토하라] | My Reviews & etc 2014-04-2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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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아, 피를 토하라

한승원 저
박하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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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선생님께서 아주 오랜만에 내놓으신 장편 소설입니다("박하"는 자음과모음의 임프린트입니다).


일제 시절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널리 수용되고 공감되는 연예인은, 전통 음악의 가창자(歌唱者)라 할 수 있는 판소리꾼 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그나마 문물의 혜택도 채 받지 못한 채 볼품 없는 체모에 꾀죄죄한 꼴을 하고 있는, 스물 다섯의 한창 좋은 나이에도 태깔이라곤 전혀 나지 않는 청년 임승근. 그러나 그에게는, 무슨 까닭에선지 하늘이, 지상의 수많은 생령을 젖혀 두고 유독 그에게만 부여해 놓은, 천하 절창의 목청과 박자 감각,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레퍼토리의 해석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연주도 아니고, 배워서 아는 기교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작은 몸에 하늘이 심어 놓은, 자연스럽고, 몸에 익고, 대사(代射)에 따른 놀림만 풀어 헤치면, 마주한  이들은 순간 "이것이 시방 내가 보고 듣는 소리, 마당이 맞는 것인가?"하며 눈과 귀를 의심하다가, 그 짱짱하고 아름다운 소리에 제 몸을 떨고, 마침내는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러 무아(無我)의 바다에서 초극의 유영을 벌이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가 벌이는 모든 마당은,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도 큰 믿음이 없는 회의를 청중과 공유했다가, 막상 입을 떼고 고수(鼓手)를 제 호흡에 동참시킨 후에는, 듣는 이와 소리하는 이, 그를 낳은 자연과 그를 품은 대지, 그를 볼 수 있게 빛을 뿜어 주는 태양과 그가 이 세상에 날 때 그의 모친의 품에 쏘옥 들었다는 달님도, 피아의 구별이 없게 매혹하는, 소리가 삼라만상의 파장과 실체, 점유 공간을 대체하는 위력을 지닌 것입니다.


호적(戶籍)상 공식 호칭(號稱)이 임승근으로 되어 있었다는 이 명창의 이름은, 지난 세대가 - 비록 전통의 소리를 즐기지 않은, 대중 예술 트렌드 전환의 끝물에 속한 분들이라도 - 잘 알고 있고, 그의 타계 후에 태어난 세대들도 그 이름만은 들어 알고 있는 임 방 울, 이 석 자입니다. 소설 도입부를 잘 읽어 가다가, 전개의 상단에 해당할 "전국명창대회" 장면에서 이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소설의 맨 처음에는, 작가 한 선생께서 분명 "이 작품은 ... 거의 전설로만 구성된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사실(事實)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버젓이 선언하고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알고 보니 실존 인물 임방울 명창을 분명한 주인공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이어지는 부분에서 시인 백석, 조선일보 창업주(소설에 그런 말은 없습니다만) 방응모 등 당대의 저명 인사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천하의 방 사장님", "단아한 얼굴" 등으로 묘사되는 그는 이런 말을 젊은 임 명창에게 건넵니다. "예전이라면 명창을 나라에서 대접하고 상을 내렸지만, 나라가 망하고 없는 지금은 누가 챙기고 돌볼까나?" 대략 방 사장과 임 명창은 나이 차가 십 오 년 정도 납니다. 이때쯤이면 광산에서의 잭팟으로 확고한 기반을 마련했을 무렵이겠습니다(한 선생님은 실제 역사로 읽지 말라고 하셧습니다만).


데뷔 무대(요즘 같으면 슈퍼스타 K나, 코리아 갓 탤런트에 비교될 행사일까요?)에서 이미 청중을 사로잡은 천재적 예인인 그였지만, 갈고 다듬고 배움의 여지는 천재에게도 주어진 법인지, 그는 스승님을 옮겨 가며 수련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소리가 그를 이끌어가는 과정이란, 모든 배움과 수양이 그러하듯 고통스럽고 앞이 안 보이는 길이지만, 소리가 그로부터 나올 무렵이란, 마치 "예쁜 처녀를 보고 몽이 달아오르듯 전신이 발기하는 과정(소설 표현 그대로입니다)" 과도 같이, 그에게 희열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나라와 주체성을 빼앗긴 겨레의 일원, 그리고 대대로 천시 받던 가족사적 내력, 이 둘로부터의 한(恨)을 고스란히 품고 사는 숙명의 굴레를, 재능의 이면으로 무덤까지 갖고 갈 인생입니다.


개인적으로 한 선생의 작품을 처음 읽은 건, 이상문학상을 공동 수상했던 중편 <해변의 길손>을 통해서였습니다. 토속미 물씬 나는 배경과 문장 속에, 역사의 질곡과 사회의 모순까지 그대로 담아 내면서, 슬프긴 하되 예쁘게 슬픈 사연 속에, 주체의 자각과 희망적 비전을 동시에 갖게 하는 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는 선생님께서 그저 건강을 유지하셔서 앞으로도 이런 "전설인지 동화인지 역사인지 잘 모를, 한국식으로 아름답고 호남풍으로 슬픈 이야기"를 우리에게 계속 들려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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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대사 그 원죄의 현장 [지슬] | YES리뷰어클럽 [나]조 2014-04-2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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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슬

김금숙 글,그림/오멸 원저
서해문집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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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민족처럼 동일 공간에 천 년 이상 단일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고 유지하며 살아 온 예는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유럽처럼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적지 않은 역사적 사례를 이뤄 왔고(예: 유대인, 집시), 내부에서의 이동, 교잡도 활발히 이뤄진 공간과는 경우가 많이 다릅니다. 본디 기원과 풍습, 외관이 많이 다른 일족 간에 "생활 공간"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질 만한 조건이었다면, 정복민과 피정복자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생존 경쟁이 펼쳐진다거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든가 하는 사태는, 가령 수백 년 정도의 시간적 간극을 갖고 관망자적 자세로 지켜 본다면 냉연한 인과율의 적용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같은 피붙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를 세기 단위로 헤아려야 하는 단일민족의 경우라면, 그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학살"이란 비극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타이완에서의 2.28사태와 흔히 비교되곤 합니다만, 타이완 원주민(이른바 본성인)은 대륙의 지배층과 크게 정체성, 집단 정서와 역사감정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4.3은 완전히 별개 차원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보편적 휴머니티라는 측면에서 학살이라는 범죄에 경중이 있을 수 없습니다만, 예컨대 살인에도 존속살인, 혹은 비속 등 피보호자에 대한 위해가 가중 처벌을 받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4.3은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에 벌어진, 미국과 소련의 패권 다툼이 엉뚱하게도 한반도를 배경으로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저 돌발적이 아닌 어느 정도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만 역사적 비극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대사건입니다. 가해의 한 축인 미국은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이 미진한 상태이지만, 굳이 타 민족을 탓할 것도 없이, 자국 정부와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어처구니 없는 대랻 학살에 대해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할 계기라고나 하겠습니다. 같은 겨레를 애매한 죄명을 뒤집어 씌우고 비참한 학살을, 가학적 쾌감으로 태연히 저지르는 이들의 마음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을까요?


몇 달 전 제가 읽은 <버둑할망 돔박수월>이란 책에서도 잘 드러나 있지만, 이 제주도라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은, 그 기후가 빚어낸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올망졸망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지상 낙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람의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사람이 보존하고 가꾸는 소중한 생태계로서 그 모성을 누대에 전합니다. 여기에, 외부인의 탐욕과 권력 의지가 개입하는 순간, 지옥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오래 생계의 터전을 함께해 온 겨레를 배신하는 패륜과, 자연과 그의 순리를 어지럽히는 배덕이 결합하는 순간, 단테도 폴포트도 채 알지 못했던 지옥은 마침내 현실이 됩니다. 지옥을 현실로 만드는 초인적(?) 재주를 시전하는 순간, 죄악의 손길은 자신을 낳아 준 토양과 순리를 겁간하며 시간(時間)을 역류합니다. 인간은 애써 일군 문명을 모조리 부정한 채, 짐승보다 못한 타락과 야만으로 구천의 길을 자진 역행합니다. 정의는 생매장당하고, 도덕은 형틀에 높이 매달린 채 가뿐 숨을 몰아쉽니다.


흑백 영화 <지슬>은.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것처럼 단편 영화가 아닙니다. 상영 시간이 거진 두 시간에 육박하는, 누가 봐도 정통 극영화에 가까운 분량이자 완성도, 그리고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하는 작춤이었습니다. 흑백의 톤에서 펼쳐지는 대사와 장면장면들은, 순박한 대사와 캐릭터들의 성격이 잘 빚어내는 다소 코믹한 분위기였으며, 이런 희극적 아우라는, "점령군"의 폭력과 악마성이 도래하여 온 섬(계절상 순백의 배경입니다)을 생지옥, 피바다로 만들고 나서 순식간에 절대 비극의 성격으로 바뀝니다. 단일 민족의 오랜 내력을 한 순간에 부인하는 패륜의 아비규환이 펼쳐진 그 현장을 묘파함에 있어, 오멸 감독은 평온한 구도와 롱테이크 촬영, 그리고 막간을 지배하는 긴 침묵의 미를 최대한으로 살립니다. 영화는 그 주제 의식을 잠시 한켠에 모셔 두고라도, 이런 미적 성취만으로도 격찬을 받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쾌거입니다(로버트 레드포드의 창설 사실로도 유명하죠). 이제 4.3은 영화 <지슬>을 통해, 세계사적 사건, 영화사적 모멘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화 <지슬>을 보면서 저는, 거대 사찰 경내를 빙 둘러치고도 남을 기다란 병풍에 그린 수묵화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김금숙 화백님의 솜씨로 이번에 영화의 그래픽 노블 버전이 독자들의 환영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그래픽 노블이 먼저고 이의 성공을 바탕으로 영화화가 이뤄집니다만, 이번 경우는 그 정반대라고 하겠습니다. 띠지의 소개는 "한 폭의 수묵화"로 펼쳐지는" 민족사적 비극 4.3의 재현입니다만, 영화의 성취와 아름다움을 손상하지 않고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양, 품격과 절제미 가득한 컷 하나하나가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냅니다. 영화에서 롱테이크로 잡은 화면은 큰 박스에, 레귤러 시퀀스는 보통 박스로 처리한 센스도 돋보이고, 무엇보다 "한국형 그래픽 노블"의 한 모범 사례를 이룰 것 같은 독창적이고 안정감 있는 그림들이 일품이었습니다. 4,3이 남기고 간 그 쓰라린 상처를 소재로, 위대한 예술혼은 역사 자체보다 위대한 치유력과 포용력을 발휘하여,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이처럼 아름다운 이정표 둘을 빚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게르니카 둘을 소유한 셈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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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맞은 자본주의, 어떤 출구전략을 선택할까 [부의 진화론]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04-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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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의 진화론

김송호 저
태웅출판사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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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도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칭하지만, 저자 김승호씨는 지금까지 여러 권의 경제, 시사, 정책 관련 저서를 낸 분이고, 제가 이 책을 읽기 전 그 저서들을 일별해 본 결과, 그 수준도 상당한 경지에 이른 분이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학문이건 업종이건 경계가 허물어져, 그 분야 최고의 스킬을 갖춘 이가 마음껏 발언권을 누리는 형편인데도, 아직 우리 나라만큼은 "출신 성분"의 족쇄가 재능 있는 이들의 발목을 옭죄는 상황입니다. 학부 시절 전공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의 주장을 평가할 때 반드시 출힌 학과, 졸업장 명의를 따지는 걸 보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이 책 뿐 아니라, 최근에 제가 읽은 <샤워실의 바보들> 역시, 어설픈 전공자의 비전을 훨씬 능가하는 경제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 안근모씨가 굳이 서문에서 "필자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같은 태그를 불여야 할 만큼, "전공"의 카스트는 그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굴레로 작용합니다. 혁신과 경계허묾을 논하는 시대에,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병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책은 두 가지 관점을 고루 구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 유학 시절, 저자 개인이 겪은 체험으로부터, 겉으로 보아 가장 잘 굴러가는 듯하나 그 실상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던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글로벌 차원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체제 위기의 징후들입니다. 전자가 초미시적 차원에서 바라본 체제의 빈틈과 위기라면, 후자는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이론을 준거틀로 삼은 현상 비평입니다(말하자면 초거시적 비판이죠). 이 책은, 말하자면 시점 교차, 이동의 기법을 통해, 개인 차원에서 바라본(겪은) 위기와 모순, 그리고 조감도적 전망에서 진단한 체제의 비꺽거림을 교묘히 왕복합니다. 호흡을 잘 끊고 조절하는 편이라, 산만하지 않고 소설적 흥미를 자아내기까지 합니다.


"공학도가 바라본..." 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저는 책을 펼치기 전에 상당히 독자 연구의 색채가 짙게 배어나는 서술이 펼쳐지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매 장, 매 편에서 전개되고 매조지되는 결론과 논리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궤도는 아니었습니다. 파격이 혹시 "비전공자 특유의 폭주"로 오해받을 것을 걱정하시기라도 했는지, 이론의 전개는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엔트로피의 법칙" 처럼 일반 독자에게 잘 알려진 사항을 설명할 때도, "경제(학) 논의를 한다며 왜 이런 소재가 나오지?" 같은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전혀 캄캄한 수준의 독자를 염두에 둔 듯 조심스럽습니다.


우리 독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을 쓴 저자는 (앞서 제가 제 나름대로 규정한) 미시와 초거시의 관점 뿐 아니라, 스펙트럼상 그 중간 쯤에 위치할 관점에서의 서술 역시 능수능란히 전개할 커리어를 지닌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 차례의 창업도 하신 바 있고, 저술이나 학술활동 못지 않게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경영에 몸담은 세월이 긴 분이기  때문이죠. 어떤 이유에서건, 그 중간의 퍼스펙티브 서술이 (상대적으로)눈에 잘 띄지 않음이 아쉽습니다. 하긴 주제가 "자본주의 위기"라는 초거대담론의 선상에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편제상 간간히 암시라도 던져 주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끝내 떠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미 충분히 시사하신 바를, 눈 밝지 못한 독자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소치일 수도 있겠지만요. 결국 결론은, 엔트로피 수치가 충분히 낮아진, 저탄소 성장을 시스템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경제체제의 구축이 시급하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저자가 실제로 선도적 실천에 나서고 있는 <행복한 시니어 공동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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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에도 품격이 있다 [컨트라리언 전략]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04-2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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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컨트라리언 전략

이지효 저
처음북스(CheomBooks)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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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이란 모호한 개념입니다. 저는 디젤 청바지 창업자 렌조 로소의 책을 작년 이맘때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창업부터 수성까지, 개인의 일상에서 최고 경영자가 되고 나서의 집무 과정까지 모조리, 상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는 점에서 역발상의 온몸 실천과도 같은 인생을 사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역발상이란 말이 쉬울 뿐, 그 중 일부라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못할 짓이 없다며 호언장담을 하지만, 우리 같은 일상인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게 남들(그 중에서도 바로 주변에 있는 이웃)의 시선입니다, 상식은 법보다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우리의 의식을 지배합니다.


위대한 CEO가 존경스러운 이유는, 그들은 대체로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보다 더 까다롭고 더 정교하게, 상식과 관행을 존중합니다. CEO는, 실제로 만나 봐도 알 수 있지만, 옷차림부터 말솜씨, 매너에 이르기까지 가장 세련된 인사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미 컴벤션이 된 규칙과 규약, 전통에 그처럼이나 신경을 쓰는 분들이, 막상 긴급 상황이나,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이 다가올 시, 남들이 전혀 그 단초조차 잡지 못한 기상천외한 생각을 해 내어, 위기를 돌파함과 동시에 오히려 열세를 우세로 전환하는 호기로 바꾼다는 점, 이게 정말 놀랍더군요. 평상시부터 상궤에 벗어난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 필요한 때에 과연 남다른 발상으로 "한 건" 하는 걸 보면 그저 그러려니, 운이 좋았거니, 저렇게 사는 사람이라서 나올 생각이거니 하겠습니다만, 지극히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이가, 파격적인 생각으로 난관을 돌파하면 참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 렌조 로소 같은 사람은 우리 나라에 태어났으면 평생 아웃사이더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전통과 인습의 압박이 심한 환경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죽이지 않고 화려하게 싹을 틔우는 모습이, 더 경이롭고 가치를 지닌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혁신이란, 전통 산업, 첨단 산업 둘 중 어느 분야에서 더 두드러지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이벤트"일까요? 사실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바라보는 시각부터가 전통의 굴레를 과감히 깨어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혁신", "혁신은 으레 이런 것이려니 하는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혁신"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는 해 주지만(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기업과 산업에 도움이 되는 혁신은 아닙니다. 혁신은 어떤 면에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도둑처럼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영감이라는 게 시간표 없이 멋대로 도착하는 녀석이듯 말이죠.

이 책은 먼저, "전통 산업"에서 가장 큰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로 CJ를 들고 있습니다. 이병철 집안의 장손인 이재현 씨가, 제일제당 등을 상속 받았을 무렵, 이 영역이 사양 산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이들은 고인이 죽을 때까지 장남 맹희씨에 대한 노여움을 거두지 않은 걸로 해석하곤 했죠(삼성그룹이 향후 최우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분야가 반도체라며 선구적인 판단을 했던 사실과 비교하면 더더욱 두드러지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CJ라고 하면, 젊은 세대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런 낡은 전통 산업과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뚜레주르가 CJ 소유인지 아는 이들은 드물지만(젊은 세대는 대체로 그 경쟁업체- 실제 기업 규모에서는 상대에 비해 상당히 영세한 편입니다만 - 빠리바게뜨의 아이템을 더 선호하긴 하죠), 여튼 이 기업은 외식업으로 신규 진출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외식업이란 전통적으로 영세업체들이 각축하는 레드 오션이었으나, 미국 등에서는 이 시장을 두고 구조의 재편이 이루어져(이 역시 혁신입니다. 혁신은 개별 제품상의 기술 혁신만을 일컫는 게 아닙니다), 발상의 기초를 새롭게 다진 많은 기업에게 노다지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CJ를 두고 역발상 경영의 모범 사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혁신의 빌미, 틈새는 첨단 산업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미 구조가 완강하게 고착된 전통 산업, 즉 레드 오션에도, 보는 구도(퍼스펙티브)만 달리하면, 새로운 이윤 창출의 지점이 얼마든지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태양광 산업의 전망을 두고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져 있습니다. 초기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이제는 부품 가격의 인하(폭락에 가까웠다고 하죠? 이유는 다른 게 아닌, 바로 태양광 산업에 대해, 거품에 가까울 만큼 과도한 기대를 하고 많은 업체들이 달려든 탓입니다)로 인해, 오히려 시장에 선제 진입하여 한번 치고 빠지기식으로 대쉬할 시점이라고 합니다. 이 주장이 왜 역발상이냐면, 해당 업계에서는 이미 맛본 실패의 쓴맛 때문에, 태양광 산업 자체에 대해 부정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죠.

사실 이 책의 제목과 컨셉은 "역발상"에 주안을 두고 있지만,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보면 "무리한 역발상에 올인하기 보다, 오히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언이 더 많았습니다. 뭔가 기발한 내용으로 가득 찬 전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조금 실망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만(이런 게 혹시 역발상이었을까요?^^), 역발상으로 크게 한 건 하는 식의 기대는, 자칫하면 요행주의, 사행심, 한탕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생각입니다. 평소부터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사는 인간이라야, 천 번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호기를 기회로 선용할 수 있겠으며, 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모범적으로 사는 매너 좋은 CEO들"을 거론한 건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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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덕후의 눈과 뇌를 즐겁게 하는 성찬 [유럽축구 엠블럼 사전] | My Reviews & etc 2014-04-1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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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

류청 저
보누스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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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이란 대회, 구단, 행사의 상징 도안을 말합니다. 한국도 이제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의 프로 스포츠 문화와 팬덤이 확실히 자리 잡은 모습이라서, 예쁘고 품격 있는 마스코트와 엠블럼의 존재는 구단의 효율적인 시스템이나 스타 플레이어 구성만큼이나 큰 관심사가 되어 버렸어요. 경영의 관점(특히 CI 영역)에서도 기업 이미지 정착, 제고를 위한 로고의 도안은 결코 가벼운 이슈가 아니죠. 잘 아는 인텔이나 마소만 해도 만날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지만, 그 분야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이 따로 있을 만큼 제법 길고 다채로운 변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이미지로 먹고 사는 프로 스포츠 구단이라면 긴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죠.


"빅 리그"(혹은 그저 "라 리가")가 괜히 그 위상이 아닌지라, 프로 스포츠 출범 자체가 오래지 않은 한국과는 달리,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지에선 구단 역사만 근 한 세기를 상회하는 일이 흔하죠. 엠블럼 역시 도안이나 장식에 그치지 않고, 그 구단의 업적과 성격, 개성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쪽으로 미묘하게나마 변화해 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확실히 이처럼 역사가 길어야, 엠블럼 사전을 편찬할 만한 동인도 생기는구나 하는 부러움이었습니다. 외국에는 워낙 "덕후 문화"가 입체적 볼륨을 이루고 있어서 이런 류의 사전이 많이도 출간되어 있지만, 국내에는 한 권도 제대로 된 걸 보질 못했어요. 언제나 빅 리그 해외축구에 대해 깊은 소양과 진지한 관심으로 좋은 책을 많이 내어주신 류 청 저자님의 솜씨로, 알찬 정보를 얻고 시각적 호강을 하게 되어 감사한 느낌이었습니다.


책은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구단 엠블럼을 먼저 다루고, (당연하지만) 엠블럼 변천사를 컬러 그래픽으로 소개한 외에 구단 연혁도 짧게 설명합니다. 그리 긴 터치는 아니지만, 핵심적인 서술이라서 몇 줄만 읽어도 재법 많은 지식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영국, 스페인 다음에는 독일의 분데스리가가 소개됩니다. 공정한 배열 같습니다. 독일 리그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장 규모나 경기력 면에서 세계 으뜸이었으니 당연 빅 리그 대접을 받아야 하지만, 근년에 위상 하락으로 국내 팬들은 그리 깊은 인상을 못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의 활약 덕분에 다시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죠. 저는 특히, 독일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거대 기업의 활동상과, 로컬 구단의 연계성을 간략하게나마 짚어주는 책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이탈리아 세리에 A,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로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엠블럼이 좀 독특하다 생각 들어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구단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요. 책에서 다뤄 준 내용 중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서술이 재미있었습니다. 승부조작은 프로스포츠 자체 역사 만큼이나, 알고 보면 오래된 "빛 반대편의 그림자"와도 같은 요소입니다. 대형 악재가 터졌을 때, 기업이나 구단이나 어떻게 이미지 손상 여파를 최소화하며 넘어가는지 그 과정을 지켜 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뒷부분에 "유럽 축구 하이라이트"라고 해서 다소 모호한 섹션이 있어서 내용을 보니, 명문구단들의 트리비아랄까 약사가 간단히 정리되어 있더군요. 조금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읽어서 재미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찾아보기가 깔끔하게 제시된 것도, 책 이름인 "사전:에 걸맞는 저자와 편집 측의 성의가 돋보여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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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 [이방인] | My Reviews & etc 2014-04-1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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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방인

알베르 카뮈 저/이정서 역
새움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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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가 남기고 간 고전 중 유옥 <이방인>은 요즘 들어서도 읽히고 또 읽히는 것 같습니다. 고전의 정의를 "누구나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손 대지들 않는 텍스트"라고까지 말하는 냉소적인 입장도 잇지만, <페스트>는 물론 <시지프의 신화>보다 한국의 독자에게 더 강렬한 인상을 (주인공 뫼르소가) 남겨서인지, 한국의 독서인들은 이 작품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즐겨 찾는 것 같아요.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 용의자일 뿐 아니라, 공권력의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듯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일종의 반사회분자, 보편적 윤리와 관습에의 동화를 거부하는 alien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유명한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아랍인 하나를 아무 생각 없이 죽인, 냉혈한이자 인간으로서 영혼이 결여된 반골의 캐릭터로서, 평균적 현대인에게 낙인이 찍히다시피 한 이미지입니다.


프랑스어 사용 권역에서 <이방인>이 불후의 걸작으로 공인 받고, 카뮈가 노벨 상을 받을 때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한 건 사실입니다(노벨 문학상은 이 작품이 아닌, 다른 저술 덕분에 수여되었습니다만).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 여러 역자들에 의해 다양한 번역본이 나오고, "천하의 패륜아"로 규정된 혐오 캐릭터에 대해 이상한(?) 공감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좀 특이하다고 하겠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역량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번역이 이뤄지는 건 저작권 기간의 만료라는 사정도 물론 고려해야 합니다만, 그 점을 감안해도 다소 별나다 싶은 "붐"이 형성되었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방인>이나 카뮈 뿐 아니라, 불문학 전반에 걸쳐 깊은 소양과 통찰력 덕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폭 넓은 귄위를 지니는 김화영 선생의 번역본은, 그간 독자들에게 가장 친절하면서도 정확한 텍스트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아직 불어 원어로 이 작품을 읽으려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다소 이해가 매끄럽지 않은 대목이 있더라도, 김 선생의 해석이 그러하시다니... 정도로 넘어가고 해당 역본에 가장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지요.


큰 화제가 된 탓에 다들 아시겠지만, 이 책은 정면으로 김화영 교수의 번역을 대상으로, 수많은 문제점과 오역(이 책 집필자의 시각에서)을 지적한, 아주 직설적이고 통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부는 저자분이 직접 시도한 <이방인>의 번역본입니다. 확실히, 기존 켁스트의 문제(그의 시각에서)를 날카롭게 의식하고 들여다 본 의미 파악이라서인지, 모호한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문학 작품이라서 표현이 언제나 기술서적 매뉴얼처럼 명료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한데도, 이 번역은 마치 뫼르소가 "분명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양" 또렷또렷하게 서사와 표백이 이어집니다. 이 책 2부에서 친절히 불어 원문 일부를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수시로 참조할 수 잇었는데요. 제가 보기엔 "그 문장이 그리 일의적으로만 새겨질까?" 싶기도 하게, 어쨌든 역자는 한 문장 한 문장 "나는 이렇게 해석했음!"을 분명히 짚어 가고 있습니다. 보통 다른 번역본을 보면, 아무리 권위 있는 분의 번역이라도, 일부에서는 두루뭉술한 처리를 하고 넘어가는 일을 흔히 봅니다. 그래도 독자는 "이거 자기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이렇게 쓴 것 아님?" 같은 의심을 하기 보다, "원문 자체도 어차피 모호했겠지." 처럼 이해를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래서 읽어나가며 뭔가 마음에 켕기더라도, 그걸 빌미로 "오역!"이라고 선포할 배짱은 좀처럼 부리지 않습니다. 지식이 부족한 일개 독자 입장이니 더더욱 그렇겠죠.


이정서님(필명이라고 하죠?)은 이 책의 2부에서, 주로 텍스트 내적 맥락을 중시하며 상당히 구체적으로, 김화영 번역 텍스트에 대한 비판을 행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 분량의 절반은 이 2부, 즉 김화영 본에 대한 세부적 비판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이정서님은 대체로 접속사, 대명사, 호칭 등의 미묘한 뉘앙스를 짚으며. 김화영 교수의 다소 모호한 처리(이분의 관점에서)를 신랄히 지적합니다. 문법 사항의 지적에 있어서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타당하다 싶은 대목이 많았습니다.


다만 문장의 오역이라기보다는,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를 문법 오류, 오독으로 좀 부풀리신 경향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화영 씨(혹은 다른 번역자나 심지어 독자) 입장에서, 뫼르소와 그 주변의 사건 전개를 두고, 반드시 이정서님의 "해석"처럼 받아들일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해석과 관점의 문제와, 정역/오역 문제는 구별되어야 하는데, 저자분은 다소 지나치게 정/오의 준별로 이 문제를 인식하시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런 책이 앞으로도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번역이란 분야를 막론하고, 문제가 너무도 많습니다. 권위자의 솜씨라고 무조건 맹신하면, 있을 수 있는 오류가 바로잡힐 리가 없고, 지식과 교양의 바람직한 저변 확대에 크나큰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번역의 정/오 문제가 아닌, 그저 해석 관점 차이로 문제의 비중을 축소한다고 해도, 해석을 두고 갈리는 평론가들, 번역자들의 논쟁을 보고 그 속에서 취사선택을 하는 독자의 즐거움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방인>은 그 임팩트에 비해 분량 자체는 상당히 짧은 편인데, 이 정도 도톰한 책이 된 건 순전히 저자의 "비판 정신" 덕분입니다. 논리와 이성에 바탕한 비판은 (설령 김화영 교수님께는 다소 불쾌한 체험일 수 있지만), 독자를 위해서나 평론/번역계 전체를 위해서나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 못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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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과 행동 중, 어느 정도가 우리의 것일까 [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 My Reviews & etc 2014-04-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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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애덤 알터 저/최호영 역
알키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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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행동심리학과 뇌신경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합리적 사고의 산물이라야 할 필연 패턴과는 너무도 먼 거리의 이탈을 보이고 있는 인간 행동의 주류적 발현에 대한 본격 조명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행동을 이러이러한 상황 하에서 반복적으로 보여 왔고, 다른 패턴의 정형화한 행동은 다른 조건 아래에서 일정하게 두드러집니다. 그렇게 오래 내게 익숙해 온 패턴은, 별반 의심의 여지 없이 "고유한 나의 것"으로 믿을 만합니다.


-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패턴을 보이던데, 그래도 나만의 것으로 고집할 수 있나요?

- 아, 그것은 사회화의 결과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 아니었던가요? 당신의 패턴을 다른 사람이 공유하는 건, 당신이나 그 사람이나 적정한 방법으로 사회화가 완수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뭘 꺼림칙해 하십니까? 마음 탁 놓으세요!

- 네. 알겠습니다.

- 글쎄 제 말 믿으시라니까요!


그런데, 특히 이 책 저자분의 주장에 따르자면, 그런 식으로 속 편하게, 마냥 넘어가기만 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의 그런 행동에는 물론 바람직한 사회화의 소산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보다는 환경과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유형의 노력 그 부산물이랄지, 혹은 진화 과정에서 비롯한 무의식의 잔여라고 할지, 고착된 DNA의 구조적 특성에 기인했건 아니면 개체 변이의 우연적 산물에 불과했건, 당신의 의식과 자유 의지가 제 의사에 기반하여 외부로 표출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행동은, 당신의 의식과 영혼이 만든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성과 논리에 의거하여, 유연한 창의성과 융통성으로 뒷받침되는 게 아니라, 기계적 프로세스에 의해 그저 "뿜어져 나올 뿐"이라는 게 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인셉션>에 보면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생각을 남의 머리에 의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의 두뇌는 '이 생각이 어떻게 해서 떠오르게 된 걸까?'라며 계속 의문을 떠올리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정상적인" 의문을 갖고 살지 않는가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냥 그게 맞고 바르기 때문에, 내가 그런 (바른) 생각과, 그 생각에 따른 바른 행동을 보인 줄로만 알"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고, (나쁜 의미에서) 직관적이고, 결국 일관성(궁극적 의미에서의)도 결여하고 있었습니다. 올바르기는커녕, 무고한 타인에게 버젓이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태연히도 저지르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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