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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님! 이주의 우수 리뷰에 선정 .. 
제게는 어려운 부분이 더 많았는데 이.. 
멋진리뷰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 
책을 사서 읽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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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왜 이디야에 열광하는가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09-29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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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젊은이들은 왜 이디야에 열광하는가

김대식 저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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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야, 언젠가부터 거리를 지나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브랜드이고 그 로고입니다. 라틴어 edere를 그 어원으로 했을 것 같은 이 신선한 메이커는, 다른 경쟁자들과는 달리 너무 자주 눈에 뜨이지도 않고, 소비자들의 괜한 허영심을 자극하지도 않는 조용한 행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커피점을 보았을 때 느끼곤 했던 이미지는 친근함과 믿음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 실제로 이 회사가 어떤 원칙으로 제품을 만들고, 개별 점포를 관리하며, 고객을 보는 시선을 어떻게 가지는지야 알 수 없었습니다. 소비자, 혹은 지나가는 손님이 그런 것까지 알 수는 없는 게 당연하죠. 막연하게 형성된 이미지만큼, 합리적인 구매에 지장을 주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마케팅이라는 게, 씁쓸하지만 바로 이런 소비자의 심리와 허점을 노리고 들어오는 겁니다. 이디야에 내가 언제 이런 식으로 "마케팅을 당하"기라고 했던가? 뵨디 소비자 마음에 언제 파고들어왔는지도 모르게 하는 게 마케팅의 정석이긴 하지만요.

음, 그런데 이 책을 보고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 기업은 간단히 말해 "마케팅을 잘 안 하는 기업"이더군요. 이런 요식 브랜드에서, 지나친 마케팅은 어찌 보면 이미지 조작이요 나쁘게 말해 세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전 작업에도 다 돈이 들게 마련이니, 그 투입 원가는 고스란히 우리가 마시는 커피 값에 입혀져서, 기분 한번 내느라 내 호주머니는 그만큼 가벼워지게 됩니다. 근사한 옷 입고 넷북이나 모 패드를 보며 그렇게 숍 바깥에 풍경으로 전시되는 무드에 빠지는 걸 두고 우리는 "된장질"이라는 점잖지 못한 용어로 부르기도 하죠.

된장질은 결국 거품입니다. 이 거품은 기업이 부추겨서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이전되는, 없어도 그만이고 너무 잦으면 결국 부작용을 일으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해악 중 하나죠. 커피 한 잔에 과도한 거품을 쏟는 건, 결국 모두를 위해 좋지 못한 일입니다.

지나가며, 혹은 가끔 문 열고 들르기도 하며 느낀 친근감은, 괜한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품을 뺀 경영은 합리적인 가격을 낳고, 또 우리의 진짜 혀와 뇌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맛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커피, 아니 어떤 상품이라도, 그것을 구매하며 원하던 것은 기분이었을까요, 아니면 상품의 본체적 효용이었을까요? 게다가 커피는 우리의 인체에 흡입되는 것이니, 될 수 있으면 건강도 함께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업은,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 주머니를 노리는 곳이 아니라,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우리들과 공유하기를 원하며,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곳입니다. 진심이 아닌 마케팅은 속임수일 뿐 아니라, 이미 소비자에게 통하지도 않습니다. 책을 읽고 느낀 건, 내가 거리를 지나며 느낀 감흥이 괜한 환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죠. 이 각박한 도심에서 때론 이런 진심이 전해져 올 때도 있구나 하는 안도와 희망이었다는 걸 오히려 깨달았습니다.

이디야는 또한 직원들을 존중하는 내부 풍토를 가지고 있나 봅니다. 고객과 직원은 먼 과거에는 업주의 착취 대상이었죠. 현대에 들어선 고객 접대 때문에 직원을 닦달하는 행태도 흔히 봅니다. 그런데 이디야는 그런 게 없다고 합니다. 주된 고객이 젊은 층이고, 그 고객 중 일부는 잠재적으로 이디야에 취업하려는 지망생일 수 있습니다. 고객을 살폈던 바로 그 마음으로 직원의 기를 최대한 살리고, 이로부터 창의적 업무 성과를 이끌어 내어 서로가 윈-윈 하는 풍조가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디야의 철학 중 하나는 개별 점포를 상대로 "갑질"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업이 그를 둘러싼 사회, 공동체와 분리된, 생태계 포식자적 존재가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존을 위한 소통을 해야 하고, 영업에 있어 진심을 먼저 내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아침에 바쁜 발걸음으로 출근하면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 검은 속셈이 아닌 선명한 채도의 낭만이 담기길 원합니다. 마냥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그 짧은 점심 시간에도, 우리는 진정한 회복과 위안을 커피 한 잔에서 얻길 바랍니다. 이디야가 이런 지친 직장인과 소비자에게, 가식 없고 서로 통할 수 있는 친구로 오래 남아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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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강의 (하) | My Reviews & etc 2014-09-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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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상법강의 (하)

정찬형 저
박영사 |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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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정희철 교수님과 수제자(?) 정찬형 교수님 두 분 공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거의 출간과 동시에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앞 리뷰에도 적었지만, 저는 책을 고를 때 디자인 등 외관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인데요. 이 책 역시 법서치곤, 예를 들어 바탕색을 (천편일률적인 흰색이 아닌) 연황록색으로 처리했다든가, 본문에서 저자(들) 의도상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든가 하는 점이, 당시 시중에 나온 다른 법서들(상법 분야 뿐 아니라 전 분야 통틀어)과는 차이가 나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공저자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은,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 서적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볼드체로 학자의 이름을 밝히고 꺾은괄호로 묶어 준 후, 두 분의 견해를 각각 다른 문단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돋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나중에 참여한 제자 교수님의 견해가, 원저자인 스승의 것과 큰 차이가 날 경우 이 본문을 유지할 수 없어서의 궁여지책일 수도 있었겠지만, 여튼 시장에선 독자들 사이에 오히려 이런 점이 큰 호응을 불러, 이 책이 이 분야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는 데에 한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법서는 (여느 다른 학술서적과 마찬가지로) 물론 저술자 개인의 견해를 적는 책이지 편집물이 결코 아닙니다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이론의 대립과 논박이 가장 치열한 학문이 바로 법학인지라, 간단한 인용의 형식이건 제법 긴 논술이건 간에 타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면의 한정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력설, 다수설, 통설이 무엇인지 그 본의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소개, 인용해야 하며, 동시에 책이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이상 자신만의 학술적 기여가 될 독자(獨自) 견해 역시 명료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후자에 치우친 책은 독자(讀者)들에게 외면 받고, 전자에 치우친 책은 학자들에게 경멸 받는다는 게 이 분야 저술의 가장 큰 애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이 두 가지 과제 사이에서 아주 균형을 잘 맞춘, 깔끔한 책으로 정평이 나 있었죠.

제 생각에 법서는 기술 서적, 공학 서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구조상 기승전결의  우아함이 끼어들 여지가 부족하고, 표현상 문학적 수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작은 포인트 활자로, 각 제도의 연혁과 배경 같은 것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민법이라면, 어느 정도 성숙하고 표준화한 제도를 구비하고 있는 사회의 시민인 이상, 예컨대 임대차라든지 부동산 등기, 혹은 상속 같은 제반 제도들이,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낯설지를 않습니다. 반면 상사(商事) 사항은, 설사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회사원이라고 해도, 자신의 제한된 업무 영역에서 국지적 지식에 일부 소양이 생길 뿐일까 제도 전반에 대한 개관이라고 하면 누구도 자신 있게 나서질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물며 어린 학생들에게 상법학은 대단히 난해한 분야일 수밖에 없는데, 저자(들)의 이런 친절한 (내용상, 편집상의) 처리는 그런 의미에서 독자에 대한 큰 배려일 수밖에 없죠.

상 법학은 법학 중 기술적 성격이 매우 두드러지면서도, 다루는 영역이 광대하고 내용 또한 생소합니다. 보통 총칙, 상행위, 회사법, 어음수표(상법전에는 없고 별개 단행법 형식이지만 대체로 교과서들에는 이렇듯 네번째 순서로 다룹니다), 보험, 해상의 여섯 분야로 나뉩니다. 이 하권은(다른 저자의 교과서들도 마찬가지지만) 뒤의 세 분야를 서술하고 있고요.

학생들 중에는 어음/수표를 무지하게 어려워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사실 내용의 난이도로는 회사법, 보험법 등도 어렵다는 면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전자는 법학도가 그걸 모른다면 어디 가서 이야기를 못하니 불평 없이 공부를 해야 하겠고, 후자는 어느 시험에서건 출제 비중이 낮으니 딱히 불만을 토로할 대상이 아닌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심지어 저보고 "어음법 언제 폐지되는지"를 물어본 애도 있었습니다. 마치, 내일 지긋지긋한 공장에 출근하기 싫어서 공장에 불을 질렀다는 어느 철없는 직공이 연상되었다고 할까요. 유가증권이란 인류가 거래의 편의를 위해 창안하고 오랜 세월 다듬어 온 제도인데, 공부하기 싫다고 그 제도가 어느 순간 폐지되길 바라는 그 마음이라는 게 참...

이 책은 어음/수표 파트에서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혹은 제도 자체에 대한 설명을 친절히 베풀어 놓았습니다(이 선을 넘으면 그것은 법서 본연의 기능을 잃을 수도 있죠). 또, 보통 한국의 법제가 대륙법, 그 중에서도 독법계를 계수한 사정 때문에, 정작 거래의 실질에서 근래 더 자주 피부로 접하게 될 영미 제도나 용어를 소홀히하는 수가 있는데, 이 책은 타 저서에 비해 그런 설명에도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정희철, 정찬형 두 저자가 어느 부분에서 대립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책의 또다른 재미였습니다. 정희철 선생님이 대체로 학설의 허점이 노출되는 결과를 싫어하여 정교한 논리를 중시하고 주장의 핵심이 더 잘 부각되는 학설을 선호하는 경향이었다면, 정찬형 교수님은 좀 더 실용적인 입장을 중시하는 편이었다고 할까요. 어음 수표 분야도 학설 대립이 첨예한 곳이기 때문에, 이런 상충점과 대립하는 개성을 찾는 재미가 적지 않았습니다.

정희철 교수님은 이미 당시에도 숱한 제자를 길러내고 은퇴하신 대원로였기 때문에, 그의 제자라 할 분은 정찬형 교수님 외에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분들 사이에서도 학설이 어떻게 분기하는지를 살펴 보는 건 또하나의 재미인데, 이 이야기는 다른 리뷰에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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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My Reviews & etc 2014-09-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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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엘러리 퀸 저
해문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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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은 언제나 박학다식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건의 추리에 도구로 쓸 논리적 자원을 마련할 수가 없죠. 그런데 홈즈의 경우,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건 그 반대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고까지 했으므로, 그 지적 편력이 다소의 치우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파일로 밴스의 경우 홈즈가 즐겨했던 실험의 영역을 아우르는 화학에 밝았고,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고전의 글귀 등으로 모아 인문의 대가라고 불러 줘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쿨한 성품에 빈틈 없는 지적 능력, 그리고 노숙하고 열정적인 부친 퀸 경감과 묘한 요철 궁합을 이루는 젊은 탐정 엘러리 퀸은, 그에 앞선 시대의 모든 탐정의 장점을 한 몸에 가진 유형입니다. 장르로서의 추리 문학은 퀸에 이르러 그 완성을 보았고, 퀸은 그의 유명한 국명 시리즈를 통해 이 분야 불멸의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세계 3대 추리 문학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최고봉으로 <Y의 비극>을 꼽습니다만, 저는 어려서 읽은 그 작품이 특유의  어둡고 암울한 결말을 하고 있던 탓에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그 절묘한 기교에 감탄할망정요). 반면 이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소설이 갖춘 모든 요소에 매혹되면서, 무척이나 몰입하면서 읽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을 당시 주권국가가 아니었던 나라도 여럿 등장하고, 퀸의 시대에는 이런 나라가 있었구나 하는 지식을 얻는 것만으로도 읽는 보람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이 작품은 그 괴기성, 절묘한 트릭 등 장르물로서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작품 내내 인문의 향연으로 지면과 텍스트가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 "인문 사항"의 상당 부분은 가공의 것, 작가의 머리에서 창조된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런 면조차 작품의 폭과 깊이를, 장르물 이상의 그것으로 확장하는 데에 톡톡한 기여를 하고 있죠.

브라운 신부는 대도 플랑보를 경찰에 넘기는 순간 그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내가 가짜 신부인 줄 언제 아신 거요?" "당신이 이성을 가볍게 여기는 발언을 할 때요. 신학은 결코 이성을 우습게 알지 않는다오." 세상에는 엉터리 지식이 많고 얕은 속임수로 대중을 현혹하려는 시도가 빈번합니다. 퀸 역시 소설의 말미에서, 애써 읽어 온 독자의 기분을 허무하게 만드는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이 성취한 그 빼어난 기술적 완성도보다, 그 한 마디(이 리뷰에 적을 수는 없죠)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을 갖고 사는 이에게는, 세속의 그 숱한 거짓이 침노할 틈이 없다는 걸, 이 매력적인 명탐정은 지면 너머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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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비친 달 | My Reviews & etc 2014-09-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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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천강에 비친 달

정찬주 저
작가정신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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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들은 세종대왕을 두고, 위대한 정치가다, 혹은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같은 생각을 맨 먼저 떠올리지는 보통 않습니다. 물론 그는 가시적인 정치적 업적을 너무도 뚜렷이, 다수 남긴 군주였고, (이 소설에서도 잘 묘사되는 것처럼)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온화하고 너그로운 모습으로 관료와 사대부, 뭇 백성을 잘 다독인 리더였습니다. 하지만, 세종 대왕 하면 그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개념, 단어는 바로 "한글"입니다. 한글이야말로 우리에게 세종대왕이 선사해 준 가장 값진 선물이요, 이후 그 숱한 민족적 수난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우리의 혼과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해 준 근원적 신분증이자 고통과 간난의 항해 중 가라앉지 않게 우리를 꼬옥 품어 준 방주와도 같습니다.

이런 한글의 창제 과정에, 집현전 학사 외에 다른 누군가가 개입하여,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역할을 해 내고 있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크게 당혹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피치 못할 곡절이 있어 그의 공헌이 기록에서 누락되었다면, 우리는 매우 늦었으나마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저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게 아니라 그의 공적이 아니었으면 영영 우리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던 한글에 대해, 다시금 고마움을 되새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일단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한 것은 서력으로 1443년이고, 이를 시용(試用)한 후 세상에 반포한 건 그로부터 3년 후입니다. 한편, 조선이 대체한 고려 왕조의 대(代)에, 승려 묘청이 서경 천도 운동을 통해 민족 정기의  부활을 시도한 건 1135년의 일입니다. 두 사건 사이에 대략 삼백 년의 간격이 뜨나, 한글 창제의 시점과 우리 시대는 그 곱절인 육백 년을 격(隔)하고 있습니다. 아주 큰 관점에서 보자면(더군다나 기계적으로 측량 불가요 순환적이기까지 한 불가적 시간 개념에서는) 묘청과 세종의 시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서로이웃의 구간인지도 모릅니다.

신라 원광 법사가 세속 오계를 통해 해동 식의 호국 불교 개념을 정립한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이웃의 거대한 중화 제국의 유교적 문화 유입에 맞서, 민족적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치열한 움직임을 보여 왔습니다.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사대주의적 유교 관료에 맞서, 이들은 대체로 풍수 지리 사상, 전통의 풍류도를 대폭 수용하여, 차츰 의식과 예법이 대륙의 그것을 좇아가는 겨레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바로잡으려 애썼습니다. 그 중에 원효가 있었고, 묘청이 있었으며,  무학 대사가 있었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신미대사가 있었습니다. 아마 백 오십 년 후의 휴정, 유정 대사 같은 이들도 이 범주에 넣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신미 대사를 축으로 하여, 민족 정기와 부처님의 가르침(유학보다 이 땅에 정착한 지 훨씬 오래된)을 지키려는 세력과, 반대편에 서서 사대와 모화를 촉진하여 자측의 기득권을 유지, 확장하려는 세력 간의 집요하고 처절한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종 대왕은 그 선왕인 태종 이방원과는 달리,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모후 원경왕후에 대한 애틋한 추모의 정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개인적 소신과 성향 때문에, 유학도들의 등쌀 때문에 궁지에 몰린 불교계를 음으로 양으로 후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어리석은 백성에게 행정적 통치 지침이 잘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행적을 정확히, 그리고 널리 깨우치게 하기 위한 의도로, 한글이라는 표음 문자를 창제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세종 자신도 산스크리트어의 문자 표기인 범자의 원리에 대해 밝은 편이었지만, 신미 대사 역시 남다르게 영특한 두뇌와 스승인 함허 대사의 가르침에 힘입어, 젊은 시절부터 범자의 원리에 익숙한 편이었습니다. 세종 대왕을 우연히 알현하고(꼭 우연은 아닌 게, 법석에서 신미 대사의 독경 소리가 유난히 낭랑하고 우렁찼다고 합니다), 그의 신임을 받아 여러 차례 독대한 끝에, 그는 민족 고유의 문자를 고안하라는 밀명을 받게 됩니다. 한자와 다른 문자를 만들어 내는 건 사대의 원칙에 반하고 공맹의 가르침(특히 성리학인 걸로 이 소설에선 설정되고 있습니다)에 어긋난다 하여, 이 사실이 알려지면 대역죄로 추포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현대의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소설은 그런 정황을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미대사를 남몰래 사모하던 희우(기쁜 비라는 뜻으로, 신미대사처럼 몰락 양반가 출신의 처녀입니다)는 역시 우연한 기회에 미행(微行) 중이던 세종 대왕을 만나 사헌부의 다모로 발탁됩니다. 양반가라고는 하나 이 집안 역시 불교를 오래 숭상하던 가풍이 있었고, 그 때문에 풍비박산의 아픔을 겪은지라, 희우는 행동거지 말 한 마디마다 부처님 섬기는 마음을 숨기질 못합니다. 물론 이를 지켜 보는 우리 독자는 조마조마하기 이를 데 없구요.

우리는 한글 창제 작업이라면, 세종 대왕이 주도하고 그 기술적 실무를 집현전 학사 정인지가 맡아, 책 <훈민정음>에 그 서문까지 쓴 걸로 알고 있습니다(이른바 정인지 序). 그러나 이 소설은, 정음청 학사를 제수 받은 신미 대사야말로 創과 製 중 후자의 핵심 직무를 위임 받아,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자 모 28자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정인지가, <훈민정음> 서문까지 쓴 공로자로 기록되었는가? 그 속깊은 사연(작가가 창조해 낸)은 이 소설을 직접 읽어 보셔야겠죠.

문장이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표현이 많아, 월탄이나 김성한 풍의 역사 소설 줄겨 읽으시는 분들이 크게 반길 만합니다. 몇몇 고문(성녕대군 추도문)은 작가님의 뻬어난 한문 실력과 우리말 표현력으로 (원문인 한문으로부터) 번역되어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되고 뜻 깊은 문학 감상이 됩니다. 다만 생소한 불교 용어가 몇 있어서(예를 들어 院主 같은 말은 한자 표기도 빠져 있어, 저는 사람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읽어 나갈 때 다소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세자 문종, 수양, 양녕, 이 세 왕자가 모두 신미 대사를 스승으로 섬기고, 그에게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꼼꼼히도 받아들이는 모습은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삼형제는 하나같이 불교에 경도되었고, 수양은 특히 <석보상절>을 직접 지어 부왕 세종으로부터 그 화답인 <월인천강지곡>을 받아들기도 했죠. 천 개의 강에 달 하나가 그 빛을 고루 내린다는 이 소설의 제목은 여기서 따 온 것입니다. 신미대사는 소설 말미에 세종을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칭하는데, 결국 백성을 살리고 바른 정치를 베푸는 위정자가 부처님이나 마찬가지고, 부처님처럼 중요한 위상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로도 들립니다. 아니면, 깨어 있는 백성 하나하나의 몸짓과 덕행이 모여 이 더러운 땅(예토)을 서방의 극락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일까요? 오늘 밤에도 떠오를 달을 보며 깊이 생각에 잠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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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경제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09-2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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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평등 경제

토마 피케티 저/유영 역/노형규 감수
마로니에북스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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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본디 "정치경제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범한 학문입니다. 이는 애덤 스미스 때도 그러했고, 리카도와 맬서스의 시대까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던 것이, "순수"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란 존립 가능성이 의심스러웠다기보다, 그 존재 이유가 위태로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정치 문제이며, 따라서 정치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아니면, 계량적 분석 방법이 채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상황의 한계도 작용했을 터입니다.

물리학에서나 쓰이던 고등 수학의 방법론이 경제학에 도입되고 난 후, 이 학문은 이제 가치 판단이나 계급 간의 (추한)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 이론 세계가 구축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과도한 비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적 세계관을 바탕에 둔 비주류는, "어차피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했음"을 명분으로, 이론적 통합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제 갈 길만 가는 모습도 보였지요. 그나마 최근의 모습은, (주류로부터 "경제학을 파괴하려는 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로빈슨 부인 같은 경향도 다소 완화되고, 주류 내부에서도 "비등하는 대중의 분노와 모순을 가뜩 노정하는 엄연한 경제 현실"을 이론이 반영해야 한다는반성이 일고 있습니다.

피케티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벼락출세자가 아니라, 18세때 파리 고등 사범에 입학한 수재였으며, 학부 시절부터 "불평등 이슈" 쪽으로 파고들어 美 MIT에서도 이 분야의 경력을 혁혁히 쌓았으며,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21세기 자본>이 최근에 학계는 물론 미디어의 주목까지 받으면서 대중에 유명해진 것 뿐입니다. 당장 이 책만 해도 일찍이 1997년에 그 초판이 나온 것인데, 이 책에서 그는 이미 "될성부른 나무"의 싹수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상당히 젊은 나이에 집필한 이 책은, 짧은 분량(본디 교과서라는 게, 각론에서는 분량이 많지 않습니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무게로 다가옵니다. 흔히 갖는선입견대로 "불평등에 대해 불만이나 털어 놓는" 대중서가 아니라, 학생들 공부하라고 지어 놓은 교과서의 성격이 기본이기 때문이죠. 그는 여기서 기존 학문적 성과를, 굳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출처를 밝혀 가며 인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그것도 주로 자신이 반대하는 주장의 소스까지 성실히 끌어오며 꼼꼼하고 치밀한 논변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극복해야 할 테제에 대해, 먼저 그 진의를 파악하고 성실한 인용을 베푸는 것이, 피케티와 같은 수재들이 언제나 잊지 않는 기본적인 아카데미즘 스탠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는 주로 프랑스의 현실에 주목하여,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사이에서 두드러진 건 임금 소득의 재분배 부분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위 계층은 사회 보장 섹터에서 지급, 보조 받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차이를 가르는 건 기본적으로 근로 소득이라는 것입니다. 세습 부문(그는 굳이 이 용어를 쓰네요)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나, 다만 그 분배의 불공평이 극심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했던, 상속-증여와 이전 소득에의 과세 통합을 주 내용으로 하는 부의 소득세(물론 우리 나라 경제학 교과서에도 소개되는 개념입니다. 재정학이라든가 타 분야에서도 익숙하죠. 이 책은 아무래도 프랑스어 원문이라서, 피수식어가 수식어의 앞에 위치하는 이 같은 어휘가 난무합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원 없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impot negatif. 영어라면 네거티브 인컴 택스라고 하죠)를 다시 환기합니다. 프리드먼이라는 이의 족적을 아는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구태여 이 이름을 들고 나온 피케티의 의도를 눈치 채고 미소가 씩 지어졌을 만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생전에 이미 이 이야기를 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은 이미지만 기억하고 디테일을 생략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아마 잊고 있었을 텝니다.

그는 여기서 다시 쿠즈네츠의 법칙을 "까기" 시작합니다. 사실 왜, 세이의 법칙 이래 아름다운 경제학 법칙들은 도통 현실에서 실현될 줄을 모르고 책 안에서만 폐쇄적 유희를 즐기고 있는 걸까요? 경제학의 거의 관성적 진리에 의하면, 선진국의 생산성은 하락하고, 개도국의 역동적 성장은 이와 대조되듯 각국의 자본을 끌여들여야 마땅합니다. 이로서 궁극적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실종되고 공평한 부의 향유로 수렴해야 마땅하나.. 그 현실이야 우리가 보는 바대로입니다.

피케티의 결론은, "완전 균형 완전 시장 청산"이 신화에 가깝듯, 불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어 항상적 특질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왜 인도의 한계 생산성이 그리 높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본은 인도를 향해 러시하지 않는가? 그는 예리하게도 "생산 수단의 불공평한 분배가 아닌, 인적 자본의 공평성 척도"에 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충실한 기존 성과의 인용에 이어, 이처럼 자신만의 독창적 견해를 치밀한 분석과 함께 클리어한 명제로 척척 이어가고 제시하는 솜씨, 과연 프랑스가 낳은 엘리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탁월한 재주입니다.

피케티의 주장 말고도 예컨대 가족 계수(quotient familial) 같은, 프랑스에만 특유한 제도나 개념, 기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책 말미에는 용어 사전도 나와 있어서, 경제학 개념이 생소한 독자들을 배려하고, 쉽지 않았을 텐데도 일일이 참고 문헌 목록을 싣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직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은 내용인데, 한국에서의 피케티 열풍을 감안하여 거의 세계 최초로 외국어 번역본이 나온 셈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피케티의 "리즈 시절"을 이 책을 통해 머리에 그릴 수 있을 겁니다.

오타
p105: 5 시경경제 → 시장경제
p228: 밑에서 10번째 신라카도 → 신리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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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1930 (1) | My Reviews & etc 2014-09-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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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캔들 1930 (1)

김민주 저
단글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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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와 타이요우라는 이름이 소설에 등장했을 때,  왜 긴 금발에다 날씬한 몸매를 한 남성이 일본인 이름을 갖고 있을까 하고 의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로맨스 소설에서 흔히 보는, 어려서 인형처럼 예쁘고 커서 남신(男神)처럼 위압적이리만치 이기적인 미모를 유지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건 어찌 보면 공식이겠지만, 배경이 (아주 사실적으로 세팅된) 일제 강점기이다 보니, 그리 예사롭지만은 않게 다가왔습니다.

로맨스 소설에서 구현하는 세계란, 현실은 물론 소설에서도 있을 수 없는 극단적인 낭만주의가 지배해야 합니다. 왠지 이치카와 타이요우에 대한 세세한 묘사(유모 사치와의 아찔한 장면에서, 그의 나신에 대한 징글징글할 만큼 육감적인 그림이 그려지죠)가 없더라도, 우리 독자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생겼을지) 머리에 훤히 넣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국인 여성과의 혼혈이라지 않습니까. 자신 代의 아름다움을 후손에 물려 주기 힘든, 1세로 끝나야 하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닌 혼혈은, 아름다움을 제 몸에 다 구현했다는 둘도 없는 행운 못지 않게 숙명적 비애도 간직한 셈이죠.

이치카와 타이요우는 이런 아름다움과 (아마도 근원적으로 일본인들의 그것과 조화되기 어려웠을) 영혼의 순결함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가 가진 치명적인 이 두 매력 요소는, 이국적(exotic)한 희소성에 대한 갈망 이방적(foreign)인 낯섦에 대한 병적인 경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일본인의 심성을 정면 자극했습니다. 그가 외부에 대해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할 어린 시절부터 말이죠. 타이요우는 이런 까닭에, 일본에서 가장 고귀한 화족의 혈통이었으면서도 성장 과정 내내 그들 사이로 화학적 융화를 이루지 못한 에일리언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역설적 의미에서 태생적 반일주의자의 길로 내몰린 셈입니다.

모석정은 훌륭한 가문의 태생에다, 매혹적인 미모를 지닌 여성으로서, 그리고 재능 있는 젊은이로서, 그 진로에 아무 장애와 역경이 없는 평탄한 행로를 밟아야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아무리 중추원 참의에다 백작의 지위(이 백작은 일본에서도 통하는 백작이죠)까지 지닌 권세가의 딸이었어도, "센진"이라는 태생으로부터의 낙인에서 어딜 가든 자유롭지 못합니다. 조선에서건 내지(...일본)에서건 일단은 존귀한 계층으로서의 대접을 받고, 압도적인 겉모습과 품위 있는 행동거지로 남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한 걸음은 더 들어가면 문제가 달라지죠. 동족으로부터는 "이민족의 개로 식민 지배 체제의 밑바닥을 핥는" 아버지의 원죄까지 다 떠안아야 하며, 지배 종족인 일인들로부터는 결국 "야만적이고 거친 반도인 계집" 이상도 이하의 처지도 아닙니다.

이런 석정과 타이요우가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 운명적 이끌림을 경험한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이런 로맨스 소설에서 남녀 간의 연을 맺는 데에 외모가 결정적 요소라고는 하나, 결국은 영혼의 궁합이 안 맞으면 좋은 끝을 못 보는 게 또 보통이더라구요(그런 경우, 치명적 매력을 가진 남자 캐릭터의 이해할 수 없는 완패로 끝나는 게 정해진 길이기도 하죠). 다만 여성 캐릭터는 순정(純正)의 조선 혈통과 천부의 무용 재능만으로 승부를 보는 진성의 천재인 반면, 타이요우는 그 출생에서 서양 어머니의 유전적 개입(반칙이죠) 덕을 본 데다 깨놓고 말해 사회인으로서 딱히 잘하는 재주가 없는 한량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석정보다 열위의 존재입니다. 모석정을 위기마다 구해 주는 유력 신분이지만, 그가 언제나 갈구하던 모성의 위안을 통해 받을 영혼의 구제는 결국 모석적이 예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둘 사이에서 주도권은 여성인 석정이 쥐고 있습니다. 타이요우가 그녀에게 베풀어 주는 백마 탄 왕자의 노릇은 결국 써빙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두 영혼의 만남이, 당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세계적으로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점이 이 소설의 비극성을 더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여린 것과, 가장 잔인하고 살벌한 것의 만남. 모석정은 열차 안에서 헌병 오장에게 수색을 당하는 와중, 태어나서 처음 겪었을 수준의 모욕을 당하고, 일황 암살 미수 사건 후에는 곧바로 수사 당국에 연행되어, 앞의 오장과는 신분과 자질, 그리고 학대의 세련도(?)에서 차원이 다르다 할 장교 데오루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은 물론(이 장면에서 많이 놀랐습니다. 아무리 국사범 혐의라지만 바로 막장 고문으로 이어지다니), 능욕을 당하기 일보 직전까지 갑니다. 이 결정적 시점에서 바로 타이요우가 등장해 마지막 선을 넘지 않게 하는 건 장르물의 공식이 또 그러하니 넘어가기로 하죠. 하나 아쉬운 건, 로설에서 빠질 수 없는 에로틱 씬의 묘사가 좀 진부하다는 점입니다.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과 설정은 본격 소설을 능가할 정도여서 더 아쉬웠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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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한국경제 100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4-09-2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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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포그래픽 한국경제 100

황인학 저
프리이코노미북스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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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문 기사 하나를 봐도 줄글로만 이뤄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종전에는 일반인이 보기에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선명하고 단순한 일러스트를 삽입하는 일이 잦았는데, 요즘은 인포그래픽 형식을 도입해서, 내용의 접근성과 정보 파악의 정확성을 동시에 기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어떤 일이건 하나의 미덕이 달성되면 다른 좋았던 점이 희생되곤 하는 trade-off 관계가 있기 마련인데, 의사와 소통의 효율을 기하기 위한 기술적 발전 과정에선 그런 마뜩지 않은 상식도 통하지 않나 봅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 책의 처음에는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표제가 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우리만의 자기도취성 구호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우리를 보곤 하는 시각, 혹은 stereotype성 이미지가 그대로 반영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그런데, "산업화"라는 표현은 곧잘 쓰곤 해도, "경제화"란 표현을 이 경우에 쓰는 게 과연 정확한 지는 좀 의문입니다. 보통 "경제화"라고 하면, 뭘 절약하거나 합리적으로 쓴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이 과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잘 이루어 내었는지는, 정작 내부 당사자인 우리 시각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더 큰 의구심이 일기도 합니다. 산업화에 관해서라면, 이 책 속에서 누누이 지적되는 것처럼 우리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둔한 성장률의 덫에 빠진 "조로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민주화 역시 그 훌륭한 성과가 왜곡되거나 반대로 악용되는 모습이 특히 근래에 아주 빈번히 노출되어, 국민적 피로감을 자아내기 때문이죠. 이런 관점에서, 이런 책이 깔끔한 편집으로, 또 매우 선명한 정보를 담고 지금 이 시점에 출판된 건, 시의적절하다기보다는 왠지 지나간 시대의 영화(榮華)를 씁쓸한 마음으로 회고하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요.

이 책은 다양한 출처로부터, 인포그래픽의 기본 바탕이 될 통계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큼직큼직한 통계는 세부 사항에서 다소의 차이를 보일 뿐, 인포그래픽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대동소이한 게 보통이죠. "수출의 날"로 정해서 꼬박꼬박 개발 독재 시기에 기념하던 건 어느 새 "무역의 날"로 그 이름이 바뀌어서, 인풋과 아웃풋을 구별하지 않고 총량적 개념으로 계량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교류하는 상대로부터 무조건 뭘 남기고 봐야지."하는 미성숙하고 조급한 입장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현황을 뵬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는 반증입니다. 또한, 상대의 아량과 후견을 기대하는 개발 도상국의 위치에서, 보다 종합적인 변수를 고려에 넣어야 하는 선진국(음...)의 위상으로 바뀌었다는(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시그널이기도 하겠습니다.

28페이지에 보면 제목이 <경제성장과 함께 꾸준히 증가하는 일자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론상의 당위로는, 경제성장과 함께 일자리가 꾸준히 증가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층이 거의 습관적으로 아우성치듯(혹은 직장에서 밀려난 장년층이 푸념 이상의 절박함으로 외치듯) 피부에 와 닿는 일자리 사정이란 결코 호조건이 아닙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주위로부터 타박깨나 받을 것입니다). 그래픽에서 보듯, 성장률은 들쭉날쭉한 모습 가운데 추세적 하락을 그리고 있으며, 바탕에 보이(히스토그램)는 일자리 수치는 상대적 인덱스가 아닌 절대치입니다. 인구가 늘어나면 여튼 경제활동인구(곧 고용인구) 역시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는 점에서, 이 그래픽은 사실 해석과 시의적절성 모두를 갖춘 모범은 아닙니다. 출처는 세계은행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이 정도 자료는 국내의 정부, 민간 어느 기관에서나 다 가지고 있죠(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일지언정). 굳이 그곳 통계를 가져 온 건, 아마 더 높은 객관성의 확보(라기보다 상징적 시전?)가 그 의도였을 텝니다.

그 맞은편 페이지에 보면 "더 고도화되는 산업 구조"라는 제목으로 물경 80퍼센트에 이르는 3차 산업 종사자의 비율을 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마냥 반길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자유당 시절부터 비정상적으로 3차 산업 종사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는데(묘하게도 이 파트는, 시계열적 추이가 빠진 채 현황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한국전 직후 농토가 파괴되고, 젊은 층이 상경이라도 해서 취업을 할 직장(그저 공장이든, 아니면 사무직이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 역시 농업의 실태는 원가도 안 빠진다는 아우성이며, 버젓한 기업의 꼴을 갖춘 일자리는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오늘도 여러 경제지에서는, 미용실, 당구장, PC방 등 거의 모든 "만만한" 자영업이, "누가 먼저 망하는지 버티는 게임"이 되어 버린, 극도의 위기에 처한 현실을 르포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 사실 우리의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예쁜 인포그래픽이라는 화장대 거울 앞에서 나르시스적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60페이지를 보면 <세계 경제 성장 평균을 밑도는 한국 경제>라는 題下에, 심각한 기로에 선 우리 소규모 개방 경제의 실태를, 그리 복잡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 포맷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계 평균과 비교해서뿐 아니라(이 수치는 가장 다이내믹한 성장세를 보이는 개도국 포함이니 당연 불리할 수밖에 없죠), OECD 평균과 비교해서도 그리 좋지 못한 형편입니다. 묘하게도^^ 이 자료의 출처는 굳이 IMF로 삼고 있습니다. 다분히 상징적이라고나 할까요?

78페이지에 보면 그나마 희망적인 것이, 기업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선입견으로 미국이니 프랑스니라면 마냥 연구개발에 목돈을 들어 부을 것만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는 건데요. 다만 총액이 아닌 상대 비율이란 점(R&D는 10원에서 9원 투자보다. 1억에서 천원 투자가 더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중국, 일본에 근소하게 앞설 뿐이라는 점 등이 통계의 맹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파트도 있습니다. 이 책은 의원입법의 범람(책 자체 표현입니다)을 문제점의 하나로 꼽고 있는데, 종래 우리가 "국회의원들 일 안 하고 노는" 대표적인 증거로 정부 발의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의원입법 발의 비율을 들었기 때문이죠. 각종 옵저버와 모니터링이 단순 발의 수치만을 기준으로 삼자, 이번에는 그저 묻지마 식으로 쪽수만 채우고 보는 무성의하고 즉흥적인 의원 입법 시도가 또 문제 되는 모습인데, 참 의원 자질 향상이 이처럼이나 어렵다는 게 너무도 한심한 현실입니다. 책은 의원입법의 경우 "구제영향 평가"를 거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들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의 특권 중 하나입니다. 마냥 기업의 영향 하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로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이건 획일적 시스템 개선으로 될 일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각성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또한 "제도경쟁력"의 열악함을, 기업가 정신의 약화 등 여러 악영향을 낳는 주범으로 꼽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정량적 평가가 용이하지만은 않은 부분입니다만, 우리는 워낙 정성 정량 모든 영역에서 미진하니, 결론 도출이 어렵지가 않습니다. 다만 대체 어느 선진국 사례를 두고 우리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지 그 컨센서스 도출이 어려울 뿐이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해가 갈수록 감소한다는 자료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경제력 집중의 완화에서 비롯했다기보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워낙 실적이 안 좋다 보니 나온 결과라고 생각되네요. 오히려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이 책 다른 파트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낙수 효과라도 맛보기 위해) 대기업이라도 월등한 이익률을 올려야 하는 게 그나마 안도가 될 텐데(낙수효과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하고라도)... 과연 지금처럼 열악한 중소기업의 형편에 대기업의 그것이 "수렴"하는 모습이, 아 경제력 집중이 완화되는 징조로군 하며 안심할 수 있을지는 극히 의문입니다. 현기차 1차 협력 업체의 사정 개선 역시 과연 유리한 지표로 마음 놓고 쓰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뚜렷한 근거 없는 반기업적 국민 정서 역시, 개선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서"를 탓하기 전에, 기업부터가 준법 경영을 해야 합니다. 윤리(그 개념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막연하죠)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실정법이나 잘 지켜만 주고, 그에 앞서 혁신과 경영 합리화만 이뤄 줘도, 특별한 경향성 있는 이들 아닌 일반 국민의 이미지는 크게 좋아집니다. 우리 국민은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꿀 줄 아는 융통성 있는 이들이지, 어떤 이념을 머리에 넣고 사는 완고한 이들이 아닙니다(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뿐).

책의 그래픽은 깔끔하고 편의성을 크게 도모했지만, 다룬 자료들과 그 구성 방식이 일차원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인포그래픽의 효용은 일반인들이 엑셀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현할 수 있고, 웹에 공개된 자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이상의 복합적인 것이라야 하는데, 유의미한 가공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정확하고 콤팩트한 건 좋지만, 통계의 구현에 그래픽적 숙려랄까 심도 있는 메시지 전달이 다소 부족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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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퓨처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4-09-22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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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이키드 퓨처 THE NAKED FUTURE

패트릭 터커 저/이은경 역
와이즈베리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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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네이키드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나 분위기는 비교적 일관적이죠.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에서, 작가의 의도는 생과 사의 갈림길 앞에 살의, 적의, 생존 본능, 이타심, 이기심 등 아무 가림막 없이 드러나는 민낯 그대로의 인성과 영혼을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가릴 것이 없다, 숨길 것이 없다는 건 마냥 칭찬하거나 좋은 의미만은 아닙니다. 세상의 때가 비교적 덜 묻은 어린이들이라고 해도, 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을 보고 민망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죠. 가릴 것은 가리고 때로는 고쳐 가면서 다녀야, 타인에게도 덜 민폐를 끼치는 셈입니다.

이건 순전히 정중한 관점에서만 이야기한 것입니다. 가릴 것을 가려야 한다는 건,  일차적으로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목적입니다. 나의 정보가 어떤 안전 장치나 필터 없이 공개되고, 상업적 목적이나 기타 불순한 의도로 공중(公衆)에 떠돌아 다닌다면, 아직까지 개인의 독립성와 존엄을 최고로 삼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큼 큰 충격이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화 혁명이 본격 시작된 건 금세기 초의 일입니다. 당시만 해도 아무 사이트에나 가입하지 말라, 비밀번호는 쉽지 않은 것으로 설정하라, 정도가 개인 정보 관리, 보안상의 상식이었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제작되어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도 이맘때의 일이죠. 당시만 해도 거리에 산재한 CCTV가 (범죄자 아닌 일반 시민의 )프라이버시 침해의 여지가 있다는 우려가 간이 제기되었을 뿐, 곳곳에 숨겨진 칩이나 센서로 개인 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이를 통해 어떤 맥락이나 스토리(허위이든 진실이든 무관합니다)가 구성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선 이들도, "저건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라며, 받은 충격을 달래고 완화할 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나 적나라한 위험의 예고편이라고 여긴 이는 거의 없었을 줄 압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명탐정들이 언제나 고민해 오던 건 바로 자료의 부족이었습니다. 아무리 명탐정이라도, 벽돌 없이 집을 지을 수는 없다던 홈스의 탄식은 유명하죠. 그런데 이제는, 명탐정이 아니라도 단말기와 전산 처리 장치에만 접근할 수 있다면, 학부생이라도 지구 반대편의 가장 은밀한 사정을 알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중대한 정치적 격변을 예측할 수 있게까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 기관이나 정부에서 예측해 오던 것은 "A이면 B"식의 단순 인과 관계 경로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개별 확률 역시 다 계산되어 밝혀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사태만 제외하고는, 이런 예보된 확률은 맞히는 경우보다는 빗나가는 일이 더 잦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추론에도 오류가 개입하기 마련이므로, 가능한 한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 만족해야 한다는 이른바 "만족 모형"도 이때 등장했죠. 하지만 만족 모형은 그걸 주장하는 사람이나 만족시킬 수 있을 뿐이었고, 만족보다는 자기 위안이나 합리화에 가까웠습니다.

이제 빅데이터라는 놀라운 실체의 탄생 덕분에, 예측은 보다 체계화하고, 실용적 결과의 달성과 도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래의 단순 경로 예측과 이를 토대로 한 확률 계산은, 보다 정확하고 실제적인 값으로 수렴해 갈 수 있습니다. 확률에는 (현실감 없는) 모든 경우의 수를 모집합으로 한 "고지식한 확률"이 있고, "일반적으로야 그렇지만, 바로 너라는 특수한 경우에는 확률이 이렇게 재조정돼."라며 맞춤형 값을 일러 주는 "조건부 확률"이 있습니다. 수학자 베이즈가 처음 이론적으로 정립하여 발표한 이 확률은, 근세 블레이즈 파스칼 이래 가장 유의미한 이론적 발전이었으나, 그 전제가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분명히 특화되지 않으면, "일반적 확률"보다 더 유익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빅데이터라는 "유효하고 수적으로 넉넉한 조건"의 수집이 가능해진 현재에서는, 이제 개인별로 정확한 미래 예측이 가능해졌습니다. 그저 전자책 기기인 줄로만 알았던 아마존 킨들은, 알고 보니 전자책을 읽는 독자의 개인 취향을 일일이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읽고 마는지, 책의 어느 부분에 주로 밑줄을 치는지, 킨들은 정확한 사항을 유저의 인적 정보와 함께 본사의 서버에 전송합니다. 나의 가장 내밀한 순간이 베조스의 개인 장부에 실시간으로 그 추이와 함께 기록되고 있었다는 거죠. 아마존닷컴의 입장에서, 고객의 성향과 장래 무엇을 구매하고 수요하며 욕망할 것인지의 그 모든 사정이 실시간으로 보내져서, 그냥 주먹구구식 감으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분명한 근거와 논리적 절차에 의거하여, 회사에 확실한 장래 수익을 안겨다 줄 단단한 모델을 구축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친분 있는 이에게, 그리고 친분은 없으나 나를 볼 수도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이게 나의 모습입니다."하고 내 보여 주는 매개이자 통로입니다. 이 유용한 사이트에 가입할 때, 저커버그의 분신일 지도 모르는 기계어의 논리가 빈 양식을 채우라고 자꾸만 요구합니다. "출신 학교는? 직장은? 사는 곳은?" 대외적으로 공개는 않을지언정, 당신의 소셜 액티비티를 대신 수행하거나 최소한 도와 주는 나만은 알아야겠다는 듯, 집요하게도 요구합니다. 사람이 아닌 기계인데 뭐가 어떨까 싶지만, 무심히 입력하는 순간 나의 일부인 개인 정보는 옷을 다 벗은 채 주인의 치부를 여기저기 노출하며 부지런히 그 누군가에게 달러와 유로를 벌어다 주고 다닙니다.

사물에 달린 센서와 칩이 중앙정보처리 장치에 정보를 보내고, 이를 토대로 나의 편의와 쾌락이 증진되는 건 정말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특히 개인의 의료 문제에 있어, 사전 사후에 소요되는 그 번거롭고도 비용이 많이 드는 절차와 노력을 말끔히 덜어주다시피하며, 그 정확성(다른 것도 아닌 내 몸의 건강에 관한 사항이니, 정확도라는 게 얼마나 중요할까요!) 역시 종래의 원시적인 방법과 비길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기적적인 효용과 편의 못지 않게, 나의 존엄과 가치가 시장 화폐 단위로 환산되어, 이리 팔리고 저리 유통된다는 사실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 변수에 싸여 있습니다. 미래의 본질은 "불가측성"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런 미래가, 데이터의 연쇄라는 거의 확실한 콘베이어 벨트에 실려 투명한 용기에 씹어 먹기 좋은 형태로 가공된다면, 그건 실로 놀라운 기적이라 불러 줘도 됩니다. 마냥 도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이미 우리 곁에 현실화한 모습으로 일부 다가와 있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단지 편하다는 이유로 네이키드한 차림으로 대로를 활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취향, 우리의 은밀한 쾌감, 우리의  열정을 쏟을 대상, 우리의 체온.... 이 모든 것의 단순합이 우리 자신 바로 그대로일 수는 없습니다. 보다 진지한 반성과 성찰, 편익에 대한 비판적 시선, 자본주의가 자체의 숨은 계산에 따라 교묘히 제시하는 유혹에 내 자신을 그대로 맡기지 않는 선택과 각성이,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벌거벗고 다니는 생각 없는 대중 속으로 매몰하지 않는 길입니다. RFID는 진공 청소기나 아이팟에 얼마든지 붙여도 됩니다. 하지만 소중한 우리 영혼에 어떤 식별표를 붙이는 그 순간, 우리는 아무 가치 없는 화폐 적출 대상으로 기업에 이용되고 말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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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4-09-22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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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알프레드 아들러 저/오구라 히로시 편/박미정 역
와이즈베리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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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고 하면 보통 프로이트, 융과 함께 이분을 꼽죠. 이분은 스승 프로이트와도, 그리고 융과도 달리, 심리학과 사회학적 측면을 결합한 경향과 공로가 있습니다. 인격의 distortion이, 개인의 열등감과 이를 만회하려는 노력 사이에서 빚어진다고 한 그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의도와 관계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많은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이런 아들러의 이론적 성과를 자기계발 분야에 알맞게 적용, 변형하는 노력도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독자들에게 아들러가 (상대적으로) 생소하다고는 하지만, 최근 일이 년 사이에 "자계서 포맷"으로 많이 소개된 편이라서 요즘 독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여튼 오늘날 우리에게 자기계발의 대가로 알려진 많은 저자들이, 알고 보면 이 아들러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약간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베스트셀러 자기계발 저자들에 대해서는 훤히 정보를 알다가도, 정작 이분처럼 순수 학문의 거장에 대하서는 까맣게 모르는 풍토가 과연 참된 독서를 위한 분위기가 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하지만, 결국 독서는 나 자신을 위한 노력이고 활동입니다. 아무리 아들러에 대해 원전을 읽고 정확한 이해를 얻었다손 쳐도, 그것이 읽은 이의 삶에 근본적 변화를 주고 역동적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한다면, 해당 분야 연구직에 있는 처지가 아닌 이상에야 별 큰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이 알프레드 아들러가 우리 현대인, 바로 회사에 다니고 바쁜 시간 쪼개어서 내 몸값을 높일 궁리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에게 미친 영향만 놓고 보자면, 프로이트나 융보다도 더 고마운 사람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 들여라." ,"나와 주변 환경을 절대 긍정의 정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말들은 요즘의 자계서 작가들이, 그 최초의 출처가 어딘지도 모르고 열심히 퍼 나르는 말(물론 그 작가들은 나름대로 자기 확신과 흥이 있어서 하는 일이겠지만요)은, 알고 보니 이 아들러 박사가 학문적 동기에서 최초 규명하고 명제로 정립한 것들이었으니 말입니다. 파생적 저작이나 카피본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감동과 동기 피부여라면, 오리지널 저자(author)로부터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책의 분량은 그리 두껍지 않습니다. 250여쪽이 채 안 되어서 처음엔 조금 실망도 했습니다. 저자 명의는 아들러 본인"으로 되어 있지만, 정말 자계서 필진의 편집이 대거 개입한 느낌을 줄 만큼,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러 특유의 긴 호흡의 함축적인 육성은, 이 세련된 텍스트 속에서 많이 증류, 정류된 느낌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장 이 팍팍한 사회 생활 속에서 핀치에 몰리고 메말라진 우리 마인드를 구제하려면" 긴 시간과 정력을 들여 읽어야만 할 텍스트보다는, 이런 포멧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영화 <대부>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난 억울해하거나 복수하려 들지 않았어! 왜? 이 모든 건 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거든!" 어쩌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엄청 책을 많이 읽은 분이죠)도, 아들러의 이 언명에 영향을 받아 그런 대사를 구상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들러의 인생관은 그것입니다. "You are what you have chosen." 내 의지가 작용하지 않은, 던져진(被投的) 요소가 아닌, 의식을 가진 후 독자적으로 선택을 해야 했던 그 무수한 순간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내가 이뤄진 것입니다. 결과가 나쁘다 해도, 현재의 처지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도, 그것이 다 나의 귀책이라면 억울한 마음이 들 이유가 적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음 번에 같은 실책을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는 최화정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쇼를 듣다가, 자신의 질문에 성의 있게 대답하지 않는 게스트 가수에게 "뭐 괜찮아, 성격은 바꿀 수 있으니까."라며 농담을 던지는 걸 들었습니다.  이 말의 속뜻이야 외모지상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니, 오히려 다른 이들은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중요한 건 "성격도 결국 본인의 각성 여부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각성'이라는 게 힘든 것입니다만.

아무래도 아들러의 말 중 압권인 건 "인간이란 본디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라는 그 명언이겠습니다. 익히 아는 말이지만, 아들러의 저작으로 표시된 책에서 그 말을 직접 접하니 그 감회는 또 다른 면이 있더군요. 열등감이 문제인 건, 그 열등감이 주는 마음아픔이라든가 감정상의 장애도 있겠지만, 열등감을 만회하려고 벌이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더 큰 실수와 패착입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정 포지션의 적극적 설정의 권유는, 학자치고는 드물게 보는 아들러만의 실용성과 명쾌함입니다. 사실 그는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이런 실용적 분야에서 더 큰 성공과 두각을 나타내었을지도 모릅니다. 강연을 상당히 잘했던 편이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분명히 나의 것인데 그 쓰임이 너무도 어려운 게 바로 "감정"입니다. 오히려 아들러 후대에 들어 감정이란 것을 논리적, 도식적으로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들러는 감정의 실체나 본질을 애써 구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는 그저, "잘 사용하라"고만 했죠. 유한한 인생을 향유해야 할 우리들에게, 학자나 도인도 하기 어려운 작업에 굳이 시간을 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들러는 이처럼, 명쾌하고 단순한 틀로 모든 것을 볼 줄도 알았으며, 그 중 많은 결과물은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우리에게 실용적 가르침의 쏠쏠한 쓸모로 이처럼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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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력 | My Reviews & etc 2014-09-2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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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물의 이력

김상규 저
지식너머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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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면, 과연 김상규 선생님께서 이 책에 담으신 주제가 되는 다양한 사물들이, 그저 "소소한 사물들"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 의문이라기보다는, 흔히 보고, 눈에 채이고 발에 채이던 것이, 그저 흔한 사물이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 중대한 동반자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저자는 이 책 서문에서, "디지털의 문법이 이제는 아날로그의 그것을 배워 가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조니 아이버의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 책에서는 "디자인은 종래의 디자인 개념, 세련된 겉모습의 논리에 그치지 않고, 쓸모와 용도 자체가 디자인임"을 새롭게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분명 "사물의 디자인"에 대해 한 말씀 하시고자 하는 의도였음에도, 내용을 보면 오히려 미시사의 한 범주가 아닐까 싶게, 사물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Every Picture tells a story." 모든 그림은 그 그림에 나타난 한 장면만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제법 지속된 과거의 이력, 그리고 장래의 예측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책에 나타난 그 상세하고 자상하게 풀어헤쳐진 "사물의 이력을 보며, "Every Thing(일부러 띄웠습니다) tells a history."라고 말을 바꾸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Every Design tells a story."라든지요.

그 사물이 하고 있는 모양은, 그 사물의 지난 이력을 알려 주며, 동시에 그 사물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양과 용도는 일체이며, 가장 우수한 디자인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그 효용을, 쓰는 사람 보는 사람에게 바로 알려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거죠.

사물은 우리 일상에서 아주 흔히 만날 수 있어서, 그 소중함과 깊은 가치를 우리 가 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신이 흔히 보던 사물이 결코 하찮은 게 아니며, 너무 소중해서 오히려 하찮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잘 다듬어지고 잘 발전해 온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위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물건, 예를 들면 전구, 책상, 의자, 냄비 등은, 어느 날 하늘에서 불쑥 떨어진, 영화 <부시맨>의 콜라병 같은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경이로운 쓰임새를 담고 있어도,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없고, 결국 일상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죠(영화에서도 결국 부시맨은 그 병을 들고, 그것이 속해야 할 곳으로 돌려 주러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 가장 일상적이라면, 그 일상적임은 우리 느낌처럼 "흔함"이나 "무가치함"이 아니라, 반대로 "가장 일상에 긴요함"을 의미한다는 걸, 이 책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 기막한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 책 중에서 "지게"를 꼽고 싶습니다. 지게가 아무리 한국적 일상에서 가장 고맙고 쓸모 있는 사물로 발전해 왔어도, 우리들 현대인은 물론 당대인조차 "지게나 지고 다닐..."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천대의 대상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전 당시, 미군 인사들은 "A-frame"이라 이를 지칭하며, 그 기능에 대해 "디자인 일체적 표현"으로 감탄을 표시했습니다. 이 사례에서처럼, 희소성(교환 가치와 연결되는)과 효용성(사용 가치)가 서로 얼마나 괴리를 보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읽으면서도 진정 놀라웠습니다.

디자인에 있어 기능과 미학적 수월성은 과연 상충하는 가치일까요, 아니면 여러 선구자들이 지적하는 바대로 일체를 향해 나아가는 중일까요?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사물들은, 지금까지 자신의 몸에 품어 온 기능상의 진화와, 외관상의 화려함이 반드시 한 방향으로 가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한계가 앞으로 우리 일상에 속출할 그 모든 사물들이 걷게 될 길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물은 쓰임새가 다하여 시장과 일상에서 퇴출되는데, 이걸 가리켜 저자는 "퇴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퇴물이란 물론 흔히 쓰는 말이지만, 책 내내 강조되고 있는 "보편 개념"으로서의 "사물"을 접하고 머리에 새기다 보니, 이제는 상당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퇴물이 신선하다니 참 역설적입니다만).

사물은 지속되기도 하고, 퇴물이 되어 일상에서 퇴장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하고 귀치 않은 취급을 받을망정 일상 요긴한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사물이 되느냐, 아니면 예쁜 모양의 정체성만 고집하다 퇴물이 되느냐 역시, 내력과 비전을 균형감 있게 정신 속에서 길러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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