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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해부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5-01-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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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각의 해부

대니얼 카너먼 외저/존 브록만 편/강주헌 역
와이즈베리 | 201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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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물을 보는 것이 "눈"이지만, 자기 자신을 볼 수는 없는 것이 눈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현재는 많은 이들에 의해 비합리적인 사유 쳬계로 간주되고 있는 창조론이, 인지 발전 초기 단계에 거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 건, 어떻게 보면 "생각이라는 정신 작용의 신비성, 불가해성" 때문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작은 원자 속에 갇혀 있던 에너지를 해방시켜, 자신이 터잡고 사는 행성 전체를 몹쓸 곳으로 만들 능력까지 갖추게 된 인간인데, 반경 몇십 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건 정말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일단 책이 참 예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고(책덕후라서 저는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서 일 년을 기다려 한 권씩 완성되어 가는 콜렉션을 보며 뿌듯해서 정신을 못 차립니다), 다음으로는 페이지를 넘겨갈 때마다 "머리가 꽉 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부담스럽다기보다, 지성도 우수하고 나이도 더 드시고 아마 인격이나 품행도 원숙의 극치를 달리실 여러 석학들이 등장해서, 내가 평소에 막연하게나마 궁금해해왔거나(생각이 "엣지"하지 못했기에 명제화하질 채 못했을 뿐), 마땅히 궁금해 했어야 할 내용을, 자상하게, 권위 있게,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체계를 갖춰, 그러면서도 잘 모르시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인정하는 태도(전 이 시리즈에서 이런 게 좋더라구요)로,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며 설명해 주시는 내용이 너무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엣지 파운데이션이 내는 "베스트 오브 엣지"의 세번째 책입니다.

뇌신경과학, 인지이론, 진화심리학, 그리고 심리학에 기반을 둔 행동경제학(행태경제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진보는, 우리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합니다. 수학과 통계, 미분방정식과 복소 해석 변수 체계들이 난무하는 첨단의 성과를 우리들이 이해하려면,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가서 책과 씨름하거나, 머리 속에 갖춰지지 않은 회로, 근육을 짜 넣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모릅니다. 엣지 시리즈의 최고 미덕은, 이런 어려운 내용들을 최대한 우리들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낮은 데로 임하는(down to the earth)" 매너로, 과연 그런 학문적 발견들이 우리 삶을 앞으로 어떻게 바꿔 놓을지를 가르쳐 주고, 아득히 먼 지평선을 고개들어 바라보게 하며, 일상의 각박함에서 조금이라도 풀려 나, 당장의 좀스러운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먼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작은 빛, 그러나 우리가 오랜 동안 잊고 있었던 그 섬광, 예지의 한 자락을 우리 머리 속에 살포시 놓아 주는 듯합니다.



1960년대 후반에 자고 일어나 보니 갑자기 스타가 된 배우라면 누가 있을까요? 대니얼 길버트의 설명으로 유추해 보자면("평소에 진지하게 연기 수련을 다졌으며, 스타가 된 그 주에 각종 잡지의 표지 인물로 등장했다"), 아마도 더스틴 호프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습니다. 이 배우가 수수께끼처럼 제시한 개념은 "빅 옴바사"입니다. "정서 예측"이라고 보다 구체화된 술어로 치환해도, 감이 퍼뜩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쉽게 말해서 "A와 같은 행동을 하면 내 기분이 B와 같을 듯하다"고 미리 두뇌가 룰을 정하는 패턴을 말합니다. 이 명제가 옳다는 보장은 전혀 없고, 오히려 많은 이들은 "기분에 의해 좌우되어 합리적 의사 결정을 저해하는 어리석음"으로까지 규정해 왔습니다. 일본 문예에서 유행어로 널리 쓰이는 "그저 기분 탓인가" 같은 표현 역시, 특별히 합리적 성향이 강하거나 감정을 잘 절제하는 이가 아니라도, 우리 평범한 사람들 역시 "기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을 갖고 산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빅 옴바사"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말은 첫째, 기대 이상으로 이 정서 예측 기제가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며, 둘째, 치밀한 조직적 사고 과정을 거친 결론보다, 때로는 이 정서 예측이 더 유효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분"은 그저 기분일 뿐일까요?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많은 일을 겪어 온 사람은, 직감적으로 턱 다가오는 "기분"에 의해 주식 매도, 선물 옵션 계약 따위를 척척 처리합니다. 옆에서 보면 미친 짓 같은데, 내가 프로그램 짜서 열심히 수동으로 보정하고 도출한 해(解)보다 훨씬 정확합니다. 길버트 교수님은 아주 적확한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명백한 평행 속성을 지닌 두 직선이, 먼 끝에서 만나고 있을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늘상 경험한다. 그렇다고 헤서 착시 현상을 제거해 주는 정밀 외과 수술을 받아야만 할까?" 일단 교각살우의 고사처럼, 사소한 결점 하나를 고치려다 다른 좋은 점들이 더 많이 망가질 위험이 있으며, 무엇보다 생각만으로도 몸이 오싹해지는 수술을 구태여 치러 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수술 진짜 싫어!" 같은 정서, 느낌, 과연 오류이고 비합리성의 징후이기만 할까요? 우리가 올랜 세월에 걸쳐, 특정 경험이 기분상 들뜨게 한다거나 반대로 진저리쳐진다는 식으로 느끼게 된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깊숙한 곳에, 비합리적인 듯 보일 뿐 본질적 유효성, 합리성을 더 단단히 갖춘 인과 구조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단지 우리 인간이 그를 미처 발견 못하고 있었을 뿐.



진리 앞에 겸손해지자는 충언과 권유를 지성인들에게 던지면서,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는 "당신들은 생각만큼 그리 멍청하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라며 따뜻한, 그러면서도 진정성 있는 격려를 보내는 이 책은, 세상이 꼭 보이는 대로인 것만도 아니며, 반대로 때로는 너무도 빤해 보여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만 같은. 그러나 엄연히  그 정당성을 지니는 진실도 존재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좋아지는 느낌, 석학들이 일방적인 훈계, 교리 주입이 아닌,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며 소크라테스처럼 "같이 생각해 보자."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글들, 대화들. 빨리 네번째 권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만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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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과 짐 | My Reviews & etc 2015-01-2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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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줄과 짐

앙리 피에르 로셰 저/장소미 역
그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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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애욕과 본능이 오로지 자신의 형질을 자연계 속에 보다 널리 퍼뜨리기 위한 데에만 그 목적이 있다면, 이토록 복잡한 감정의 변화와 격동, 설렘과 아픔이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구애가 실패하면 다른 이성을 모색하면 되고, 거절의 두려움 때문에 접근을 주저할 까닭이 없습니다. 결합에 성공하여 자식을 보면 관계의 사명은 완수되었으니, 상대가 지겨워지면(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무엇이 지겨워지는 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럽습니다) 언제든 유대를 해소하고 다른 방향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뭔가 부끄러워지고, 타락했다는 자괴감, 죄책감을 떨치기 어럽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이성을 만나 죽을 때까지 처음의 결합을 유지하는 건 아름답고 윤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혹은, 그 정도가 되어야 인간다운 처신이라는 데에 우리 인간은 거의 합의를 보았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가식과 기만 없이, 한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완벽하게 기대고, 만족하고, 마르지 않는 애정의 샘으로 기능할 수가 있을지요. 처음에 걸었던 기대가 배반당할 수도 있고,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데 상대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전속적 관계란 언제나 파경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배신의 징후, 불륜의 현실화, 혹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가, 보기 좋게 익어가는 사랑을 망치기도 합니다.

영화 <엠마뉴엘> 2편에서 "진정한 사랑은 세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메인인 두 사람이 같은 정도로 신뢰, 우정, 때로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제3자가 끼어들어야,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상대의 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기꺼워하는, 환희에 가득찬 표정, 자태를 보며 상대를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그런 "공유적" 태도를 아직은 내밀해야만 할 우리식 남녀 관계에 적용하기는 무리겠다는 생각도 물론 유지했습니다. 또 그 영화에서 강조한 건, 주로 육체적 사랑에 한정된 명제인데, 애인 사이의 관계가 육욕으로만 채워지는 게 당연히 아니기에, 이 메시지는 그런 점에서도 다분히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했죠.

<줄과 짐>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상의 무대일지언정 이렇게나 자유분방하고, 그러면서도 타인과 자신에게 솔직한 관계 형성, 노력,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트뤼포의 영화에서는 세 사람의 관계에만 초점이 놓이지만, 이 원작 소설은 1/4 가량이 지나서야 카트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소설 초두에서 제시된 에피소드와 설정은,  3각의 핵심 축이자 사실상 구심점 노릇을 하는 카트린이 비록 등장하지 않지만, 이 소설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첫 세 페이지는, 이후 전개될 모든 사건을 열 두어 문단 안에 다 암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청자가 되어 줌을 발견하고는, 바이에른 인 줄과 파리지앵 짐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이렇게 두 남자가 친한 사이로 발전하면, 오늘날엔 다소 우려스러운 시선이 던져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소설은 그런 동성애적 해석 여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관점이 개입한다면(불가능합니다만), 아마 소설의 가치는 크게 깎일 것입니다. 왜냐면, 이 소설은 "영혼과 영혼의 교감, 이해, 소통, 전쟁, 그리고 타협과 화해"를 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뤼포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오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프로이센 여인 카트린일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역시, 줄과 짐 두 남성은 사실상 거의 폭력적으로 자기 중심적 성향인 카트린의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오직 카트린에만 온 주의를 집중하는" 두 사람이었기에, 육체적 매력이 월등한 다른 남자들을 마다고 카트린은 두 남자를 양 축으로 삼고 진자 운동을 반복합니다. 한쪽에 머물 때 그 남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걸 얻어 내고, 복수(남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거나 않음에 대한)의 동기건 단순한 싫증에서건 다른 쪽으로 옮겨 올 때, 이번에는 앞선 남자가 베푼 모든 서비스 외에, 다른 것까지 바라고 요구하는 카트린. 그러나 그럴 자격이 있는 여신 같은 그녀이기에, 두 남자는 묵묵히 충직하고 사랑스러운 시종의 역할을 해 냅니다. 두 남자 역시 매력이 있는 편이기에(줄은 정신적 매력, 짐은 육체적 매력), 물론 카트린이 폭군과도 같은 약탈자로 구는 건 아니고, 그렇게까지 사악한 영혼도 아닙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사랑도 전쟁 같은 속성이 있기에, 주도권을 잡는 편은 있기 마련이며, 더 강한 주도권을 더 오래 잡고 놓아 주지 않는 편이 카트린이라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두 남자를 상대로 해서요.

우리 독자가 카트린보다 더 유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줄과 짐 두 남자의 관계입니다. 이 소설 제목이 "줄과 짐"인 것도, 거칠게 말해 그렇게 붙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정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삐를 날카롭게, 매섭게, 쉬지 않고 잡아채는 카트린이지만, 두 남자는 결코 굴종이나 예속이 아닌, 나름 주체적 위치에서 관게의 건강성과 생기를 유지하는 역할입니다. 매력이 시들지 않는 여신으로 싱싱히 가꿔 나가는 것도 이 두 남자의 몫인데, 카트린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줄과 짐이 마냥 이타적이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짐의 경우, 여러 여성에게 어렵지 않게 구애를 받는 입장이니만치, 카트린 같은 여성을 해바라기하느라 정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죠. 그가 소중히 여기는 건 정신적 교감(둘 다 문인에 가까운데, 백아와 종자기가 서로를 알아 주듯 정신적 교류를 완벽히 이룰 수 있는 상대가 이 친구밖에 없다는 데에 둘이 완벽한 합의를 이룹니다)이고, 이 점에서 그는 줄에게 큰 유대와 우정, 채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건, 줄에게 가혹하거나 불공평한 결과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우선적 신조입니다. 줄은 자기가 못 가질 바에는 줄리를 짐에게 주려고 했고, 이런 고마운 마음과 우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혹 줄리와 맺어지면 그는 줄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려 합니다. 카트린 이전에도 이미, 짐은 줄이 배제된 이성 관계를 생각할 수 없었던 거죠. 까마귀떼에게 봉변을 당하기 직전까지 가면서도 친구를 위해 희생양처럼 실험 대상이 되기를 마다지 않는 줄을 보며, 짐은 더더욱 깊은 우정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가장 분방한 개인주의 같지만, 어느 집단주의보다 더 철저하고 유효한 연대 의식이 자리한 관계입니다.

삼각 관계라면 보통 추악하고 비윤리적인 관계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세 명(앞서 말한 대로 카트린 이전에 여러 여성이 나옵니다. 그 여성들의 장점을 한 몸에 다 가진 존재가 카트린이고요)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의 장점에서 이익을 취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배려가 작용하는 곳입니다. 질투도 있고 의심도 있지만, 서로의 영혼을 아끼고 상처 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성숙한 의식이 우선입니다. 시대는 1차 대전을 사이에 두고 긴 시간을 이어가지만, 세 주인공(간간히 끼어드는 다른 인물들조차)은 늙지도 않고 처음 줄과 짐이 만난 20대 초반을 그대로 유지하는 느낌입니다. "시간이 아닌 순간을 살았다는" 카트린과, 그에 동반한 짐의 죽음은 그래서 파멸이 아닌, 영원에의 축배처럼 느껴집니다. 줄의 회고. " 두 투신 속에 나는 살았다"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이 모든 꿈 같은 격정과 사랑을 잘 요약하는 잠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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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를 사랑한 여자 | My Reviews & etc 2015-01-1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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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셰익스피어를 사랑한 여자

최복심 저
문이당 | 201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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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면서도 작은 희망으로 마무리되기는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실에서의 굴곡, 시련이 힘들게 해도, 작가로서 모든 역량을 쏟아 넣은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기만 하면 결국 다 보상이 되어서일까요. 셰익스피어의 어느 작품 제목처럼, 끝이 좋으면 결국 모든 게 좋은 것이어서일지도 모르겠고, 주인공 김문영에게 평소에 잘 대해 준 정부장님, 그 외 여러 "선생님"들, 은사님들과의 인간 관계는 소중히 간직되었기에 해피 엔딩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합니다.

소설의 시작은 신비로운 꿈 이야기와 함께 열리는데요. 셰익스피어로 추측되는 어느 남자가 나타나, 그 옆에는 연상의 아내(?)를 앉혀 둔 채, 마지못한 듯 보이는 태도로 책 몇 권을 주더니, "대신 대가는 치르어야 한다"고 다짐을 둡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나눠 주던 몇 권의 (평범한) 책이 있었는데, 김문영 바로 앞에서 비축분이 소진되고 맙니다. 따라서 김문영이 받은 책은, 운 좋게 걸린 더 가치 있는 아이템이었겠죠. 김문영은 처음엔  "추가의 대가"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기왕 준 후 나중에 토를 다는 듯한 쩨쩨한 태도가 불편하기도 합니다. 애인 장선우(동명의 영화 감독과는 무관한 가공의 캐릭터입니다)는 작가답게 멋진, 그러나 문영의 비위를 맞추는 게 우선인 해석을 내놓지만, 여전히 그 운명 같은 계시를 두고 명쾌한 이해를 하기는 힘듭니다.

장선우는 문영에게서 선배 소리를 듣는, 그녀보다 많이 연상인 남자이고, 그녀를 "귀여니, 사랑이" 등의 애칭으로 부릅니다. 미모의 여성을 두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노총각일까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어 나가다 보니 기러기아빠인 유부남으로 나오네요. 플라토닉한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고, 모텔 등에서 뜨거운 사랑(이들은 서로의 공통점 중 하나를, "밝힌다"로 꼽습니다)을 불사르는 분명한 불륜 관계인데요. 선배라고 해서 처음에는 대학 선후배 관계로 긴 인연을 가진 사이일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만난, 그리 오래지 않은, "신선한 열정에 타오를 수 있는", 상하지 않은 불륜이었습니다.

김문영은 남자의 탐심과 변덕에 놀아나는 구시대적 여성이 전혀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회사에서 일도 최고로 잘하고(여튼 설정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내 정치, 세력 다툼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파이터 기질을 보이며, 같은 라인 안에서도 후원자에게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당찬 커리어우먼입니다. 이런 김문영 과장을 내내 괴롭히는 상급자가 있으니, 김문영의 표현에 따르면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 같은, 싸이코패스에 이중인격자인 신 상무입니다. 신 상무는 권위 의식이 강한 음모형 인간으로서, 고분고분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은 전력이 있는 김문영을 찍어 놓고 두고두고 코너에 몰아넣습니다. 라인이 다르면 그렇게 지속적 원한을 가질 필요는 없는데, 불필요한 전선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싸이코패스라기보다는 그냥 무능하고 멍청한 주제에 성질만나쁜 유형으로 보입니다.

여러 번 함정을 팠으나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사내에서 위신과 명분만 잀게 된 신상무는 결국 명퇴자 리스트에 오릅니다만, 같이 퇴직할 대상자를 추리는 업무도 신상무가 맡게 되고, 이 와중 사내 자기 인맥을 확실히 구축하려는 부사장과 공 이사(둘 다 낙하산입니다)에게도 다시 "찍힌" 김문영은, 영어 입문 사전 출간 기획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퇴사자 명단에 들게 되네요. 근데 김문영은 고분고분 회사 실력자들의 의지에 굴하지 않습니다. 제부인(동생은 당연히 그녀보다 일찍 결혼했겠죠)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그녀는 해고의 효력을 다투며 끝까지 투쟁합니다. 채 받지 못한 야근수당까지 모조리 챙기고 회사와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를 본 후, 여유로운 승자의 입장에서 적들에게 적절한 위로의 말까지 던진 후, 홀가분한 심정으로 그녀는 회사를 그만둡니다.

불륜 관계 - 그러나 김문영에게건 장선우에게건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너무나 잘 맞고 달콤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 역시 그녀의 바람과는 반대로 파탄을 맞게 됩니다. 장선우와 데이트하던 장소에서 우연히 그의 아내 친구 부부를 만나게 되고, 낭만적이라면 낭만적이고 경솔하다면 다분히 경솔한 그의 말 때문에 불륜 사실이 결국 미국에 체류하는 아내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네요. 그런데 아내도 이미 현지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먼저 이혼을 요구한 건 아내였습니다. 다만 남편도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유방암 초기 진단을 받은 일 등이 겹쳐 결국 그녀는 마음을 바꾸게 되고, 불륜인 채로도 그저 오래 만남이 지속되었으면 하던 김문영의 희망은 이 때문에 깨지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장선우는 매너도 좋고 작가답게 소양도 풍부한 인물이지만, 그가 즐겨(문영의 비위를 맞추려) 인용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나 특유의 썰처럼 늘어놓는 철학 등은, 제가 느끼기로는 별 깊이가 없는 겉발림 같았는데요. 그런 선우 -더군다나 나이도 많은 - 에게 김문영 같은 여자가 왜 집착하는 걸까요. 작품 도중에 슬쩍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여성은 연상의 남자에게 집착한다"는 말이, 혹시 김문영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습니다. 아니라고 해도, 둘의 관계는 섹스 파트너 이상이 아니어 보이기도 했고요.

여튼 직장과 남자관계, 두 전선에서 동시에 치명타를 맞은 김문영. 남자가 이런 일을 겪어도 그게 참 견디기 힘든 일인데, 하물며 여자가 치르어야 할 시련으론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마구 무너져내리는 여성의 심정을 감상적으로 늘어놓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여러 인용구 속에 담담하게, "아 본래 인생이 그런 거려니"하는 쿨한 태도로 넘기고 있단 사실이었어요.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인생은 본디 연극 무대에 불과한 법" 정도로 생각하면, 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사실이죠. 어쩌면 이 소설이, 작가 최복심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건 아닌지 조심스러운 추측도 들었습니다.

소설 처음에서 소개된, 불길한 예언("대가는 따로..")이 마치 실현이라도 되듯, 결말에 가서는 큰 비극적 사고가 터집니다. 이걸로 보아(김문영을 잡기 위해 새벽에 급히 차를 몲), 선우는 나름 문영을 두고 작품을 위한 뮤즈라든가 섹스 파트너 이상으로 여긴 건 분명해 보입니다. 오히려 김문영은 이 비극을 두고 적잖이 쿨한 태도를 보이며(자신에게도 책임이 없다곤 못할 건데요), 이제는 산 채로 볼 수 없는 장선우를 자신의 뮤즈로 삼아, <셰익스피어 인 드림>이라는 야심작을 발표합니다. 상관이었던(그리고 같은 퇴직자 신분인) 정 부장과 함께 새로운 직장도 잡는 듯 보이니(그녀는 나름 커리어 관리에 까다로워서, 급하다고 아무 회사나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건 뭐 회사를 관둔 게 더 해피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젊은 여성이 이 시대에 겪을 수 있는 일치고는 제법 파란만장한 사건이었는데요, 이 모든 걸 셰익스피어라는 액자 속에 넣고 바라보니 즐거운 풍속도로도 보입니다. 인생 만사가 결국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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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푸는 날 | My Reviews & etc 2015-01-1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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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똥 푸는 날

이승은,허헌선 글/유동영 사진
파랑새어린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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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이라고 하면 주로 농촌에서 벌어진 사업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서울 외곽이나 직할시급 거주지의 외곽이라면 농촌에 비해 딱히 나을 바도 없었다는 게 어르신들의 증언입니다. 먼 예전을 이야기할 것 없이, 지금도 인천 도심 한복판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주택가에 논밭이 버젓이 남아 있으며, 원당과 고양 신도시 사이의 주거 지구에는 힐데스하임 같은 고급 거주 단지와 거름 냄새 물씬 풍기는 농경지가 바로 코를 맞대고 있기도 하지요. 당시에 발간된 잡지 등을 살펴 보면, "수세식 변소(화장실)", "기름 보일러" 등이 중산층 가정에서 구비해야 할 우선 순위 상위의 아이템이라며 이의 설치를 독려하는 광고가 실린 코너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승은, 허헌선 두 분의 공예품 전시회를 재작년 말~작년 초에 경남 어느 소도시를 들를 무렵 우연히 참관한 적이 있습니다. 아는 분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는데, 그 시절을 직접 몸으로 겪어 온 세대가 아닐지라도 목각 인형의 소재적 투박함과 재미 있는 대조를 이루는 그 표정, 동작의 섬세한 구현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긴 이런 감상은 다 철없는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전시회를 돌아볼 무렵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 세대가 거의 없으셨습니다만, 저런 어렵고 궁핍한 시대를 직접 겪으신 분들이라면 재미보다는 아마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감흥이 더 우선 아니었을까요. 무엇보다, 이들 어르신 세대는 이런 전시회를 애써 찾아 다니시는 습관이 안 들어 계시죠. 옆에서 누가 가르쳐 드려야 하고, 또래 어르신 몇이 마음이 모이고 맞아야 힘든 발걸음을 떼시는 게 고작입니다.

전시회에서 작품들을 눈으로 보고, 이제 책의 모습에 예쁘게 담긴 애틋한 글, 시와 함께 다시 그 인형들을 포착한 사진들을 접하니 느낌이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전시회에서 볼 때는 고거 참 잘 만드셨다, 재미있고 귀엽다 정도였는데, 글과 함께 읽으니 작가님들이 이 작품들을 어떤 마음으로,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정겨운 시선 한 가득 담아 제작했는지 비로소 정확한 내력을 알 것만 같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화장실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배변하는 곳과 잠을 자는 곳, 영양을 섭취하는 곳을 가려서 주거 패턴을 이루는 건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이 가지는 특징입니다. 다만 오래된 주택의 경우, 심지어 도시에 소재한 곳이라도 마당 먼 곳에 변소(화장실)을 두고 깊숙하게 땅을 파 대변이 떨어질 때 튀지 않는 정도로 시설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솔직히 생각만 해도 지저분하죠. 저는 5년 전에 어느 경남 양산의 어느 암자를 찾을 일이 있었는데, 그곳 스님이 대단히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시길 "화장실이 더러워서..
였습니다. 주택과는 달리 암자의 경우 뒷간을 더 깊이 파서, 변 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도 잘 안 들릴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일단 "수세식이 아니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손님 대접하는 예의가 아니라는 듯 난색을 표하시더군요.

위생 문제보다 앞서는 건, 당장 일을 볼 때의 그 악취입니다. 이 때문에 옹벽 주위와 지붕에 호박넝쿨 같은 걸 자라게 해서 냄새를 조금이나마 지우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 책, 그리고 원 작품은 그 점을 섬세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돌부채나무로 보이는 무성한 식물이 건조물 주변을 상당 부분 덮고 있는데, 그 시대를 산 분이 아니면 모르겠다 싶은 점까지 세심히 관찰한 결과 같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십시오. 이 컬렉션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고 솔직하며 재미있는 얼굴이지만, 특히 이 작품을 보면 냄새 때문에 죽겠다는 듯 코를 싸쥐고 있습니다. 그런 표정 너머에, "나는 커서 절대 이런 집에서는 안 살 거야!" 같은 각오나 오기 같은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 반면, 오물을 처리하는 아저씨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모습입니다. "먹고 살 방도가 없어 이런 일을 죽지 못해 한다"는 절망이나 불만보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라며 옆에서 구경하는 꼬마들에게 마치 무엇인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듯 자못 엄숙한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태도입니다.


사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더럽고 험한 일"을 하는 아저씨를 깔보거나 기피하는 태도와도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남의 짓궂은 장난에 자기가 골탕이라도 먹는 양 난감한 표정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곤욕을 치르기보다는 자신이 타인(주로 어른들)에게 말썽거리를 안기는 입장일 텐데도 말입니다(아닌게 아니라, 이 책 처음에 "호랑이 할아버지" 한 분이 등장하시기도 합니다). 이 시절 순박한 아이들, 나만 잘되고 남에겐 폐를 끼쳐야 한다, 정당한 제 몫이 아닌 바를 사기와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가로채야 한다는 비뚤어진 강박 없이, 공동체 전체가 겪는 고초와 불편은 감내해야 한다는 건전한 유대감, 순응 의식이 엿보이는 듯합니다.

위에 적은 대로 돌부채나무나 참외, 감 같은 식물, 과일, 야채 등도, 주된 아이템인 건물이나 사람 형상 못지 않게 대단히 정교하게 제작을 해 놓으셨습니다. 책을 보면, 그저 공예품이 아니라 디즈니랜드, 혹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테마 파크에나 온 양, 자체 완결적인 소우주를 구경하는 느낌일 것입니다. 똥을 푸는 아저씨 목에 둘러진 광목 수건, 모자와 색상 질감마저 잘 코디된(이런 코디는 패션 감각 같은 게 아니라. 워낙 옷감 따위가 귀한 시절이다보니 피치 못한 선택이었을 텝니다) 작업복을 보면, 당장이라도 저 인형들이 책 속에서 뛰어 나와, "풍요로운 세상이라고 함부로 낭비를 일삼으면 안 돼!"라고 우리를 꾸짖을 것만 같습니다.

똥 푸는 아저씨 옆을 지나가는 꼬마를 보십시오. 보통 이 시절에 흔히 보는 모습대로, 밭일하는 엄마 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동생과 몇 살 나이 차도 안 날 법한 어린 소녀가 아이를 돌봅니다. 아이는 코를 감싸 쥐고, 누나는 이미 만성이 된 듯 동생 옷에 오물이라도 묻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데에 더 신경이 갑니다. 가만 보면, 은근히 구수한 똥 냄새를 즐기는 듯도 보입니다. 인간의 비위란 결국 길들이기 나름입니다. 남아도는 시간과 물질을 주제할 수 없어, 스카톨로지 같은 변태적 쾌락 향유 패턴까지 창안해 낸 현대 도시인들의 타락을 이 대목에서 거론한다면 당장 죄받을 일일까요?]

대합실의 모습은 붐비는 듯 하면서도 쓸쓸합니다. 타지에서 향수에 시달리며 돈을 벌다 잠시 고향에 들른 이, 도무지 시골에선 생계를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아 떠날까 말까 기로에 선 이, 몇 분 연착은 예사인 듯 다만 생각할 시간 조금을 더 벌어 조바심보다는 마음을 놓기 일쑤인 탑승객들, 올 가망이 없는 누이, 자식을 기다리느라 오늘도 한번 나와 보기나 한 새까맣게 얼굴이 탄 촌부 촌로들... 팍팍한 인생과 다할 길 없는 정이라는 세시 풍속을 그대로 담은 표정, 표정, 표정....

가장 지독한 말썽꾼들이 알고 보면 그러나 가장 마을과 이웃을 아끼는 수호 천사입니다. 성질 드센 엄마 밑에는 아무도 못 말리는 개구쟁이들이 꼭 형제로 패를 지어 온 마을을 들쑤시고 다닙니다. 저 커다란 빗자루로 한 대 맞으면 정신이 아뜩할 것 같지만, 그래도 싸리비가 강단 있대 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 동네 골목은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웃는 듯 우는 아우성과 초가지붕 들썩일 만큼 풍성한 환호로 가득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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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롼문총 | My Reviews & etc 2015-01-1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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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밀의 문 환문총

전호태 저
김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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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이 그린 그림, 채 종이가 발전되고 보급되기 전 시점이라면 부조, 벽화로 남겨진 그런 그림이라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됩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 그 전에, 이 그림은 대체 뭘 소재로 그린 것일까? 소재가 뚜렷이 드러난다 해도, 이번에는 그 표현 양식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렇게 그려도 될 것을 왜 하필 저런 표현을 선택한 것일까? 선 하나에 종교적 심상, 철학적 배경, 아니면 당시 화가의 그저 내킨 대로의 기분... 그림은 문자 이상으로 상상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아득한 상념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는 중국, 당시 미국을 제치고 신흥 패권국으로 떠오르던 중국에 대해 꽤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각종 여론 조사에서,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나라 1위가 중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이 모양으로 악화된 건 하필 그 무렵 국가 차원에서 띄웠던 동북 공정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게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1500년 전에 멸망한 만주 지역의 고대 국가 문제가 그리 절박한 사정은 아닐텐데, 우리 민족은 이런 걸 보면 정말 역사와 자존을 소중히 생각하는 민족 같습니다. 내 조상의 자랑스러운 자취를 넘보고 왜곡하는 작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자세의 발현이니 말입니다.

환문총이라 하면 평균적 대중의 상식으로는 그 이름이 낯설 것입니다. 장군총 무용춍 각저총은 들어 봤어도 환문총이라... 사실 고분 이름이 이렇게 붙은 것도, 아직 그 조성 연대나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채 밝혀지지 않은 탓이 큽니다. 문헌적 증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있다 해도 중국 당국이 역사를 역사로 바로 보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은폐하거나 왜곡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픽션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저자가 소설가라서가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이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는, 한국에서 거의 첫손에 꼽는 대학자이시죠. 그런 분이 왜 이런 포맷으로 책을 내었는가. 앞에 적은 대로 그만큼 연구의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척시키기는 고사하고, 그저 팩트 위주의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만도 벅찬 게 현실이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자신의 시점에서 펼쳐 나가는 화자 "나"는 그리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닙니다. 1980년대 후반에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박사 논문을 준비하였다면 지금 연세가 지긋한 노인일 것입니다. 어떤 천재적 영감으로 연구를 척척 진행시키는 것도 아니고, 외국어에 여럿 능통해서 손에 걸리는 문헌마다 이건 이 말이군 저 맥락과 연결시키면 이런 결론이 나오겠는걸? 하며 주위를 경탄시키는 마법의 해독사도 아닌 터라, 처음에는 읽는 이를 다소 답답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고태일이라는 액자 속의 기록자를 다시 등장시키기 때문에, 시대는 다시 한 번 20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 적성국 중공, 그리고 반국가단체 북한이라는 장벽을 더 실감하게 만드는 배경이 등장합니다. 가뜩이나 열악한 연구 여건에 덧대어, 정치적 긴장과 적대 상황까지 순수 학문의 세계에 걸림돌로 대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매력은 지금부터입니다. 제국이었던 고구려, 그 멸망에도 국제적 변수와 사정이 개입했던 고구려의 지난 자취를 두고, 말 그대로 아시아 동서남북의 각종 개성 있는 인사들이 끼어들어, 과거의 내력에 대해 자기의 시선에서 설명과 사연을 풀어 놓고 있습니다. 굳이 통일적인 시점을 취하지 않고, 여러 입을 통해 제각각의 시선을 전개하는 건, 아직까지도 미지의 장막에 싸여 있는 고제국의 역사를. 가장 겸손하고 신중하게 바라보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저자 자신의 상상력과 양심(다만 충분한 물적 증거가 부족한)을 희생하지 않으려는 의도 아니셨을까 짐작합니다.

책의 편집상 가장 큰 매력은, 컬러 도판이 거의 4,5페이지마다 최소 한 건은 삽입되어, 활자만으로는 도통 뭔 사연인지 난감해할 독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도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웬만한 용어에는 일일이 각주와 설명을 달아 놓아, 역사 지식과 상식이 부족한 독자들에게는 그 자체로 공부가 되게 한 배려도 돋보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만 같은, 어느 고분의 거듭된 동그라미 무늬, 그리고 본디의 형상을 회칠로 지우고 그 위에 다시 형상화를 시도한 그 노력의 의미에 대해 깊은 성찰을 가질 시간을, 이 책은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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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충격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1-0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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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능의 충격

이일용 저
글드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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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지능의 충격"입니다만,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지능의 충격의 충격"을 받았다고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분에 대해선 일절 약력 표시 사항이 없어서 대체 어떤 분이실까 하는 궁금함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가능하면 찾아 뵙고, 테이블 아래에 떨어진 가르침의 부스러기라도 좀 주워서 가져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요즘 "이것이 퓨처다"라고 선언될 만한 R&D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분야가 되겠습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과거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 지능이 이 추세대로 발전하면, 인류는 그 생존에 위협을 맞이할 것이다"라는 취지의 발표를 한 적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무리 회로 집적 기술이 발전하고, 또 빅데이터의 이용 방안이 개선된다 해도, 과연 CPU와 하드, 메모리가 그 본체에 불과한 EDPS가 인간의 두뇌를 넘보는 일이 과연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감정"이라는 요소를 아무리 분석한다 해도, 이를 부호화(코딩)하거나 프로그램으로 구축할 수 없는 이상, 지능은커녕 지능 유사의 어떤 시스템 구축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는데요.


이 책의 저자분께선 일단 지능의 정의를 달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능이란, 아주 제한된 분야에 특출한 솜씨를 보이는 게 지능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통해, 혹은 타고난 천성, 선호 본능에 의해 뭐 하나를 제한적으로 잘 수행하는 건 "지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란 거죠. 돌고래가 곡예를 펼치는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애완 동물이 신기한 짓을 하면, "지능이 높다"는 칭찬을 자주 해 줍니다.


그런데 이건 모순이 있습니다. 만약 "지능이 높다"는 말을 그렇게 해석하고 활용하면, 왜 그 애완동물은 그 단계에서 한 치의 발전도 못 보인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요? 인간은 나무 위에 머물러 있다가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저 나뭇가지를 손으로 집어, 손으로 못 하는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존재하는 도구(처음부터 도구로 존재한 게 아니라, 인간이 손을 뻗어 도구로서 활용하고 나서야 그것이 도구가 되었습니다)를 그대로 손으로 잡고 휘두를 게 아니라, 간단한 건 이어붙이기도 해서 기능과 모양을 게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겠습니다만, 여튼 기존 패턴의 반복에 그친 게 아니라 발전이요 진화였습니다. "지능"을 가진 주체라면, 이처럼 우연히 습득한 행동 패턴을 반성 없이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머리 속의 아이템을 종합, 통합하여, 새로운 컨텐츠와 행동 지침을 만둘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동물한테는 그게 있습니까? 우리는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규정하는 "지능"이라면, 그 지능은 단순한 "흉내내기", "베끼기"의 기술에서 벗어난 것이라야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귄위 있는 소스를 베낌"을 자랑으로 삼고(실제로 그 저자들 급의 뻬어난 선생에게 배운 적도 없으면서, 몇 십 년 전의 활자 잔해를 두고 자기 기만의 페티시로 삼습니다. 실제 저자들이 보면 어이없어할 일이죠), 굳어 버린 머리로는 단 한 줄의 신선한 컨텐츠도 창조해 내지 못합니다. 이십 년 전 대학 리플렛 쪼가리에서 주워 들은 구호의 파편이 머리에 든 것의 전부일 분, 정작 정평이 난 텍스트 본의는 해석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실한 정보 조각과 일치하는 것만 골라 근근히 꿰어 맞출 뿐입니다. 


저자분은 "지능이란, 특수한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항에 대해 두루 통하는 이해, 발견, 응용력, 그리고 재창조"에 연관된 것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만 잘하는 건 지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저 우연히 감정적 선호가 그 대상에 꽂힌 결과일 뿐입니다. 저도 싧제로, 어느 전기 작가가 처칠에 대해 논한 글에 이런 말이 나왔던 것이 생각납니다. "처칠이야말로 정치, 예술, 문학, 군사"에 두루 능한 사람이었으므로 진정한 천재라 할 만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저 뛰어난 장군이었을 분이니 천재라 불릴 자격이 없다." 여기서 이 사람은 "천재"란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건 단어의 오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 말("천재")을 "(이 책의 저자분처럼) 우리가 계발하고 지향해야 할 참다운 지능"으로 해석한다면, 앞뒤가 척척 들어맞는 맥락이 완성됩니다. 


수 세기 전 그토록 뛰어난 천재들도(특히 조선 시대라면), 기초적인 수의 개념이나 도형을 이해하는 데에 그토록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분도 지적하시다시피) 지금 세상엔 유치원생들도 장난처럼 다루는 내용들에 불과합니다. 이 아이들이 머리가 특별히 뛰어나져서 그런 걸까요? 결국 인간은 자기 두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자기가 속한 시대의 첨단 지식 정도는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특별한 컨텐츠의 창조야 천재의 전속 권한이라고 가정해도 말입니다.


저자분께서는 "어떤 사람이 학습에 실패한 것은, 정말로 실패해서가 아니라,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무가치한 학습에 대한 자발적 차단을 행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공감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이런 걸 뭐하러 배우나" 싶어 미뤄 놓았던 분야를 지금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게 이렇게 재미난 분야였나 라고 지금 깨달아서 신나게 하는 중이죠. 과연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건지, 다만 어깨 근육에 무리가 안 갈 정도로 몰두하면 이 분야에서 못할 게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저자분이 말씀하시는 학습의 새로운 쾌감 발견 아니겠습니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좋은 내용, 평소에도 어렴풋이 이거 아닌가 하고 여겨 왔던 생각들을 콕콕짚어 주셔서, 정말 큰 기쁨과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완독은 했으나 아마 제가 채 캐치 못하고 지나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두고두고 읽어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게 아니라 내 능력을 계발하는 소스,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싶네요. 이런 책을 써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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