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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My Reviews & etc 2015-12-3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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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앤드류 망고 저/곽영완 역
애플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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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國父)라는 말은 현대에 들어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게 넌센스이며, 어떤 의미에서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개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반대로 허위에 가득찬 확대 가부장 상징 체계가, 독재로 쉬이 이어지는 비극이 부를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의미에서겠죠.

그런데 현대의 터키 공화국에서는 사정이 그렇지도 않나 봅니다. 지금은 사세(社勢)가 많이 주춤해진 시사주간 TIME의 경우, 밀레니엄이 바뀌기 전 독자 온라인 투표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뽑으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 못지 않게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유저들이 좀 극성맞은 곳인) 터키의 거주자들이, 케말 파샤라는 인물에 대해 전략적 투표 행태로 임하는 바람에, 해당 매체를 구독하는 평균 독자의 성향에 무관하게, 이분이 압도적 1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TIME은 이례적으로 특별 성명을 내어, "터키 국민의 입장에만 서려 하지 말고, 세계 시민의 처지에서 해당 투표를 바라봐 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아타튀르크"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정규 교육을 받던 시기, 교과서나 방과 후 활동에서 이 인물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 과정 사회과에서의 셰계사 커리에서는 언급이 안 된 것 같고, 고등학교 때에는 아마 교과서에 그 이름이 실려 있었겠으나 출제 비중이 미미했던 탓에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제가 이 인물의 생애에 대해 처음 배운 건, 집에서 구독하던 일간지의 주말 특집 어린이용 섹션에서였습니다.

흔히 이 인물에 대해서 오해하는 바가 있던데요. 케말 파샤는 쿠데타로 터키의 정권을 잡은 케이스가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즉,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행위로 권좌에 오르기는커녕), 국제 정세의 흐름을 잘못 읽고 동맹국(독-오 동맹) 측에 가담하다 영국 등의 응징을 받고, 혼란과 권력 공백을 틈타 아나톨리아에서 이삭줍기를 기도하던 그리스의 침략을 받아 말 그대로 국망(國亡)의 위기에 놓였던 터키(터키라는 정식 국호부터가 근대 공화국 체제 수립 후의 산물입니다. 그 전에는 exonym에 지나지 않았죠)를 건국한 사람입니다.

그는 직업 군인으로서 탁월한 전략 능력을 보였고, 누구보다도 용맹한 기백으로 적군과 맞섰으며, 그 결과 아나톨리아 본토 수호는 물론 이스탄불 위요지인 유럽의 일부까지 재탈환하여, 종전 협상과 국경 획정에 관한 전면 재조정을 이뤄 냈습니다. 물론 술탄이 다스리던 시절의 영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협소해진 판도였으나,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수천만 터키인은 지금의 쿠르드족처럼 나라 없이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거나, (그리스가 식민 체제 혹은 합병 종속 구조를 오래는유지할 역량이 못 되었겠으므로) 현재의 이라크처럼 구심점 없이 사분오열된 안보 부재의 역정을 이어나가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 지역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냉전의 승패가 미-소 중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기울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또한 이슬람 성직자가 강력한 영향을 끼치던 신정 국가 체제를 강력히 지양하고(술탄 통치 하에서도 그닥 종교의 영향이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철저한 세속 국가의 시스템과 헌법적 기반을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를 채택하고, 페즈 같은 전통 복식을 폐지하여, 그 자신부터 잘 손질된 맨머리를 서양식 양복의 착용과 함께 공식 석상에서 노출하고 다녔습니다. 풍채가 의젓하고 미남형이었던 그는, 이런 외형적 트렌드를 국민의 일상에 빠르게 심는 데에 아주 적격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업적을 이룬 인물이라면 아예 세습 왕조(터키의 역사에서 그토록 친숙한)를 구축해도 무방했을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욕심 때문에, 일생을 통해 스스로 마련해 온 근대 국가의 수립이라는 사명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터키인들이 그의 인격과 업적에 감복하는 이유는,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는 이 같은 청렴하고 고귀한 그의 정신에 여전히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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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허목 | My Reviews & etc 2015-12-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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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수 허목

허찬무 저
진한엠앤비 | 201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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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선비들의 나라였습니다. 다소 섬뜩하게도 들리는 말이지만, "임금과의 혼인(국혼)은 놓치지 말고, 열 재상이 한 왕비만 못하다는 걸 명심"하라는 게 조선 후기 집권 세력인 노론의 모토에 가까웠다고 하죠. 그런데 저 말 끝에는, "열 왕비가 한 산림만 못하다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이 또 달려 있습니다. 지극히 마키아벨리적인 사고로 현실을 바라보았던 그들도, 학자의 중요성을, 즉 정치에 오불관언인 채 오로지 옛 성현의 가르침에만 책을 파고 들며 매진했던 순수 학자의 중요성을 결코 소홀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인의 영수이자 이후 살벌한 정쟁의 한복판에서 자측 진영을 지도했던 송시열 역시 그 태생은 산림이었습니다. 송시열보다 나이로 12년 위인 허목의 경우, 남인, 그 중에서도 청남이라 불린 일단의 정치 집단을 이끈 이였는데, 이분 역시 나이 60이 다 되도록 은거하며 유학 경전만 연구하던 선비였습니다. 당시로 나이 육십이라면 자연인의 수명 한계에 가까웠을텐데, 실력이 넘쳐나면서도 구태여 세속에서의 영화와 권세를 멀리하고 고독한 길을 걸었다는 점은 오늘날의 시선으로도 경이로운 바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허목이라고 하면, 교과서에서는 현종 때의 예송 논쟁으로 일반에 알려진 정도일 것입니다. 1차 예송에서 3년설을 주장하다가 송시열 측에 패배하고, 2차 예송에서 대비가 기년복을 입을 것을 주장하다 이것이 현종 측에 가납되어(조정에서는 남인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국조오례의>에 따랐을 뿐이라고 는 했지만), 자신이 속한 남인 진영의 인재들을 대거 조정에 복귀시키는 쾌거를 올리기도 합니다.

산림이 산림으로서 인정 받으려면 첫째 어느 정도는 이름 있는 스승을 모시고 어린 시절에 수학을 한 바 있어야 하며(정통 학맥의 계승) 둘째 벼슬을 탐하지 않고 올곧은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하였다는 주위의 평판을 얻을 정도가 하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서 얻은 학문의 깊이가 누구 앞에 나서도 의심 받지 않을 만큼 심오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앞서 "한 산림이 열 왕비보다 낫다"고 했는데, 대를 이어 열 왕비(실제로는 한 왕이 여러 번 상처[喪妻]하거나 폐위를 단행할 수 있으므로, 꼭 1대에 1후[后]만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를 보기보다, "제대로 된 산림" 하나가 탄생하는 게 훨씬 드문 일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산림 나오기가 왜 그토록 드물었는가, 첫째 어려서 일단 명문가에 태어나, 위대한 스승을 맞이할 수 있는 행운부터가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었겠으머, 둘째 명석하고 박식한 두뇌의 산물일 빼어난 글쓰기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겠습니다. 왜 글쓰기 능력이 그토록 중요했는가? 요즘 같으면 잘 쓰여진 남의 독창적인 문장을 베껴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게 어렵지 않게 가능하지만, 조선 시대(고려 시대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라면 일단 한문으로 문장을 적어야 하고, 책이 귀하다 보니 일단 남의 문장을 따라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고전에서 정확한 문구를 인용하고 남들이 잘 인용하지 않는 문구를 인용하는 게 능력의 척도로 인정 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이겠습니다.

왜 글 잘 쓰는 사람이, 여론의 중심을 형성하고 권력의 향방까지 좌우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조선 시대를 지탱하는 시스템의 핵심이 과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저분처럼 글을 잘 쓰면 판서와 정승에의 길이 눈 앞에 열린다!" 물론 신분도 중요하지만, 원칙적으로 천인만 면하면 누구에게나 과거 응시의 자격은 주어졌던 게 조선시대였습니다. 하물며 사농공상이라고, 농업과 그 종사자를 나라의 큰 근본으로 여겼다고 (겉으로는) 내세웠던 시대 아니겠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미수 허목과 같은 빼어난 두뇌, 걸출한 문장력을 지닌 인사는, 요즘 말로 하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이돌과 같은 존재로 부상하기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입니다.

미수 허목은 그러나 송시열처럼 성리학 한 길만을 파고든 인사와는 다릅니다. 허목은 일찌감치, 주자는 물론 공자 외에 도가라든가 불교 등의 다양한 출처에서 모두 배움을 취할 만큼 열려 있는 사고의 소유자였으며, 이 때문에 보인 경전의 탄력적 해석이 빌미를 주어 사문난적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전방위적 천재, polymath로 손꼽혔을(따라서 성리학 경전 해석 말고는 다른 재주가 별반 없었던 송시열과 다른), 대단한 재주꾼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림, 약학에도 능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긴 공자 역시, 예법의 시행에서 철학의 논변, 악기의 연주까지 막히는 게 없었기에 성인 대접을 받았던 것이고 말입니다. 빼어난 사람은 진정 두루 빼어나고, 서투른 인간은 작은 일 하나에도 뭔가 미흡함을 남긴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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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멘 | My Reviews & etc 2015-12-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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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멘

데이비드 셀처 저/홍성표 역
범우사 | 200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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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멘"이란 그저 "징조" 정도의 의미를 지닌 단어일 뿐이지만, 이 데이비드 셀처의 작품이 나오고서부터는 대단히 불길한, 그것도 지구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악한 존재의 출현을 예고하는 징조로 대중에 널리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마치 어느 블록버스터의 흥행 성공 이후 "에일리언"이라는 단어가 우주 괴물과 동의어가 된 것처럼, "오멘" 역시 이제는 666으로 상징되는 악마의 출현과 거의 같은 함의를 지니게 된 것 같아요.

예수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 지방에서도 (본토로 취급 받지조차 못하는) 가난한 마을 나사렛에서 나고 자란 소년일 뿐이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격인 저주 받은 운명의 어린 남자아이는 고위 외교관의 아들입니다(물론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진짜 아들은 어려서 바꿔치기 된 채 죽었지만요). 여기에, 베일록 부인이라는 보모가 로버트 썬의 집안에 고용되어, 악령의 씨를 돌봄과 동시에 사악한 계획을 완수하려는 정지 작업을 착착 진행하게 되죠.

서구권 문예에서 가톨릭 사제는 경우에 따라 초자연적인 비의를 파헤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전근대적 풍습과 사고로서 일찌감치 타파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했으나 미처 그것이 청산되지 않은 영역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일종의 퇴마사(엑소시스트) 노릇을 수행하게 되죠. 필요할 경우 사제가 이를 담당하는 게 가톨릭 교단의 계율로도 정해져 있습니다만, 여튼 많은 경우 고등종교에 괜히 끼어든(아직도 채 극복되지 않은) 미신적 요소로 취급 받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게 보통입니다.

여튼 이 작품에도, 프로테스탄트의 성직자(본디 개신교 목사는 사제 계급이 아니기도 하니)가 아닌 로마 가톨릭 신부 브레넌이라는 이가 등장하여, 마치 동양권의 도사나 불교 승려처럼 지극한 비밀의 영역에서 한 줄 사연을 꺼내 들려 줍니다. 로버트 썬은 이치에 닿지 않은 비이성적 담론이나,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두려움에 전혀 흔들리지 않을, 고등 교육을 받고 최상류층의 문화 혜택을 받은 사람이나, 명백한 증거의 존재, 그리고 그 자신이 지닌 올바른 심성의 도움을 받아 결국 정확한 진상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선과 악의 대결에서 결국 승리하는 편이 악이라는 사실은, 많은 독자들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하지만 본래 장르로서의 오컬트라는 게 근거 없는 우울감과 비관주의의 탐미적 확산이나 향유를 노리고 존재하는 것이니만큼, 이런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이 소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연작의 영향은 실로 막대하여, 1980년대 B급 호러가 한결같이 배드엔딩의 플롯을 갖게 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다만 불건강한 쪽으로 결말이 나기에, 어린 독자들에게 읽히기에는 좀 꺼려지는 마음이 드는 부모님들이 많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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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 100장면 | My Reviews & etc 2015-12-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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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교사 100장면

임혜봉 저
가람기획 | 200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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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신 문화사(史)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필수 불가결일 뿐 아니라, 양적으로도 막대합니다. 특히 근세와 근대를 구성하는 조선 왕조기에는 유가가 중심이 된 지배세력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교세를 유지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이는 첫째 유교의 가르침이 미처 채워 주지 못하는 부분을 알뜰하게 보살핌으로써 사대부의 갈증까지 해소해 주었고, 둘째 피지배층의 고단한 삶을 밀착거리에서 위무함으로써 민중의 벗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특히 저 후자의 관점에서 한국 불교 천오백년사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당대에 이름을 높인 고승이라고 해도, 일반 백성의 삶을 도외시한 채 귀족 계급의 이해에만 관심을 집중한 이에 대해서는 냉혹한 비판을 시도합니다. 반면, 종래 통념상 지배층의 이익에만 이데올로기적으로 봉사했을 것 같은 명사에 대해서도, 실상은 꼭 그렇지 않았다는 식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합니다. 

이 책은 제목이 표시하는 그대로, 저자가 선정한  100장면에 대한 탐구와 편집, 정리를 시도합니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세계 불교사라기보다는 "한국" 불교사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100장면 중 무려 92개의 컷이 세계사의 다른 무재가 아닌 바로 이 강산에서 벌어진 일을 주제로 삼고 있음이 이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민족사의 굵직굵직한 궤적 중 불교가 숨어서 기여했던 장면, 불교사 독자적인 발전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장면 등이 섞여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로는 이 둘을 가르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결론도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저자뿐 아니라 공정한 독자의 시선에서, 불교사가 곧 한국사요, 한국사가 곧 불교사라는 다소 과감한 규정도 전혀 무리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는 우리 역사의 발전, 우리 민족의 생존, 우리 민족 문화의 창달이 오롯이 불교의 덕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결론이 수렴할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타락한 불교 문화가 국민의 생산력을 저해하고 정치 윤리를 파탄시키는 폐해는 비단 정도전 같은 이가 그 저서 <불씨잡변>을 통해서만 강조한 게 아닙니다. 고려 유학사에 이름을 남긴 저명한 선비, 관료, 학자들은 웬만하면 한 번쯤은 이 당대 불교의 악덕을 짚고 나선 바 있습니다. 우리가 호법 군주로 알고 있는 세종대왕 역시, 집권 초기에는 매서운 칼날로 썩은 불교의 환부를 도려내었는데, 이는 그 부왕 태종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함이었습니다.

보통,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에 나온 대로, 소수림왕(고구려), 침류왕(백제) 대(代)에 불교가 이 땅에 최초 전래된 줄로만 압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 이미 이 정교하고 세련된 외래 종교가 민중의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었으며, 다만 국가 차원에서의 공인이 그 즈음에 이뤄진 정도로만 간주하는 태도입니다. 다만, 이차돈의 고사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을 유지할 수 없을 텐데, 저자는 오히려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는 용도로 이 소재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 중 하나는 강점기와 민국 건국 직후 불교계의 친일 인사들의 행적에 대해 서술한 부분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강력한 왜색 불교 청산(그는 불교계 정화에 있어서만큼은 일제 잔재 척결에 있어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과정에서 또다른 부작용으로 남은 것이, 바로 "폭력 승려의 교단 주도"였습니다. 대처승 세력을 몰아내려면 논리나 시스템적 접근이 아닌, "주먹을 통해서 행사하는 실력적 처분"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깡패가 승복 입고 삭발한 후 그대로 눌러앉아 사찰의 살림을 관할하는 웃지 못할 실정을, 무려 반 세기 이상 남겨 놓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저자는 "이들이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지려면 이천 십 수 년 정도 시점이 되어아 가능"하리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이 쓰여진 건 이십여 년 전, 그리고 지금은 2015년입니다. 과연 한국 불교의 위상은 어떤 모양새를 이루고 있는 요즘일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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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트렌드 2016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12-27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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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바일 트렌드 2016

커넥팅랩 저
미래의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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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쌤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와 함께, 한해를 정리하는 시점에 꼭 챙겨 읽어봐야 하는 아이템이 바로 이 커넥팅랩의 <모바일 트렌드> 기획입니다. 작년판 이 책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가 "모바일 온리를 넘어 모바일 중심으로"였는데, 올해판은 이미 모바일 중심의 세상이 대세를 굳혀 이런 말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보았는지 "온디맨드"란 다소 소박한 표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본디 말이 조용하고 차분할 때 더 무서운 실속이 숨겨져 있는 법이지요. 모바일 디바이스, 모바일 플랫폼이 이미 당연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요즘, "온디맨드"의 숨결이 기업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의 일상에 어느 정도 침투해 있는지 공부할 수 있었던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절말 무서운 건 옆에 바싹 다가와 있는 줄도 모른 채 우리의 손가락과 감각을 지배하던 그 강력한 논리와 맥락, 시스템, 그리고 "트렌드"였다고나 할까요.

요즘 소카나 그린카 같은 앱은 워낙 광고를 많이 해서 모르는 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강남권 등 회원차량이 많이 확보된 지역에서야 효용을 느낄 수 있는 정도지만, 대중의 관심이 부쩍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저자는 차량공유경제의 새 패러다임을 열어젖힌 우버 사의 놀라운 성공 사례와 최근의 승승장구까지 자세히 소개하며, "어느덧 우버라는 이름은 공유경제 전체를 대유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는 취지로 이 현상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형편이 그렇겠으나, 한국에서는 택시업계의 반발과 현행실정법규와의 충돌 때문에 이 우버라는 이름만 들어도 불법, 물의 같은 부정적 느낌이 드는 게 보통입니다. 우버 측은 "공유경제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으나, 아직 공유경제라는 거대 지평 자체에 대해서도 어떤 긍정의 컨센서스가 이뤄지기는커녕, 개념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공유경제 자체가 바로 "온디맨드"性과 필연적 친화성을 갖는 건 아닙니다. 온디맨드는 오히려 문화 컨텐츠 소비 플랫폼에서도 알 수 있듯 배타적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존의 시스템과도 능숙히 밀착하는 성격이죠. 문제는 이게 철저히 개인화한 모바일 디바이스의 급격한 진화와 맞물려, 오히려 지난 세대와 달리 참여 의지, 연대의식, 환경 친화주의를 더 내면화한 젊은이들과 본연적 호흡을 같이하는 흐름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사실이겠습니다. 우버의 경우 미국은 거의 半 SNS화하여, 가입 회원들부터가 서로 특별한 친밀감을 느껴 가며 서비스의 내실을 회사 외적으로 채워 가는 인상마저 줍니다. 이게 우버라는 한 업체의 사정뿐이 아니라, 이런 트렌드에 올라타 성공하려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벤치마킹을 해야 할 사례로까지 꼽히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의도겠습니다.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성황을 이루는 건 이미 작년, 재작년부터의 대세였던 배달앱이라든가, 올해 광고 덕분에 더 두드러지게 노출되는 숙박업소 앱 같은 것입니다. 이런 수요야말로 "속에서 욕망이 생기는 즉시 그 해결을 봐야 하는" 말 그대로 "온 디맨드"의 가장 첨예한 속성이 드러나는 분야입니다. 손가락 몇만 까딱해서 즉시 최적의 조건(개인화한 것이건 혹은 가격 같은 객관적 지표이건)을 갖춘 서비스를 알아내고, 욕망의 불꽃이 사라지기 전 이를 소비하여 "물건"아닌 "체험, 추억"을 소비하려는 이들. 그런데 업체가 양질의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해당 앱에 친밀감을 느끼는 정직한 소비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앱은 "머물렀던 모든 곳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는 게 말이 되냐?"며 정직한 리뷰쓰기가 보장된다는 차별성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임시직의 수요 공급을 중개하며 갑을관계에서 비롯하는 차별이나 부당대우까지 완화해 준다는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는 앱도 있습니다.

7,8년전만 해도 휴대전화에 금융 칩을 넣어 교통요금 등을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와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만, 이게 스마트폰의 등장과 같은 흐름을 타지 못해서 독자 경로 진화를 더 이상 이루지 못했습니다(비슷한 예로는 DMB방송이 있죠).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금도 페이팔 등 여러 결제앱이 등장했지만, 뭐 하나가 대세를 이루고 판을 장악한 형편은 아닙니다. 올해 중반부터 부쩍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삼성페이는 이 책에서 소개된 대로 기존 방식인 마그네틱 보안 전송을 지원하는 거의 유일한 솔루션이라서, 그 편의성 때문에 더욱 주목 받고 있습니다. MST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상점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실정인데, 당장 단말기 교체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게 매우 힘든 시점에서 삼성페이만이 갖는 이점이란 정말 대단할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처럼 철지난 기술 표준에 냉정히 등 돌리지 않는 (오히려) 역발상스러운 보수적 태도가 시장의 호응을 얻을 수도 있다는 점 확인이 가능하고요. 결제앱의 경우 이를 설치한 지불자의 수나 편의뿐 아니라, 결제대금을 수령할 벤더의 편의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에 이처럼 무신경했다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용은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停滯)"입니다. 사실 저는 삼성이 선두주자 노키아를 맹추격할 시절 삼성만이 가진 멋진 디자인 창출 능력으로 조만간 업계 최정상에 서리라고 기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느닷 스마트폰을 만들어 아예 게임의 판 자체를 바꿔 버린 거죠. 노키아건 삼성이건 기존 피처폰 시장의 강자들은 곧 멸종할 운명이었으나, 삼성은 바뀐 룰에 용케 잘 적응해서 오히려 큰 격변의 대표적 수혜자로 등장했습니다. 표절이니 지재권침해니 하는 건 결국 법원에서 판단하는 거고, 지금 거대 소송이 대강 정리된 지금 프리 라이딩을 했든 말았든 간에 삼성은 자기 몫을 잘 챙겨 오히려 이전 판도에서보다 더 나은 위치로 올라섰습니다. 최종 승자는 로엔드 시장에서 다소 지저분한 실속을 챙기는 중국 업체들이며, 이 때문에 이 책에도 나오는 표현처럼 "레드 오션을 넘어 블러디 오션(책에는 "블러드 오션"이라고 되어 있네요)"으로 치닫고 있죠. 사실 디자인을 중시하는 피처 폰이야말로 유행이 돌고 돌면 과거 패션을 다시 채용할 수도 있고 뭔가 신상의 창조 범위가 넓지만, 스마트폰은 모양새를 바꿀 수 없이 그저 기능의 혁신에만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처음 애플워치가 출시되었을 때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그저 모기기에서 보내는 액션의 확인만 가능할 뿐 독자적으로 이루는 기능이 부족해서 예상 외로 고전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는데,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바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킬러앱이 하나 필요하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고, 스마트폰이 처음 확 퍼져 나갈 때 운전자들 사이에선 "티맵" 같은 게 이런 구실을 했었죠(일반사용자 사이에선 공짜 문자라며 카카오톡이었고). 기어S2는 다른 건 몰라도 지원 모델이 너무 적다는 게 제일 큰 약점 같습니다. 그나마 이런 답보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만든 게 웨어러블인데, 이것들조차 획기적인 전환점을 못 만들어내면 당분간은 답이 없겠지요. 책에는 조금 다른 논의선상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이슈를 설명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책이다 보니 조금 아웃오브데이트된 감이 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케이뱅크, 카카오뱅크가 양대 사업자로 선정되었지요.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꼼꼼하게 수익형 시스템을 설계하는 솜씨는 인터파크가 예전부터 공을 많이 들여 온 분야인데 사정을 아는 저로서는 안타까운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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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와 헨차우 사건 | My Reviews & etc 2015-12-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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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셜록 홈즈와 헨차우 사건

데이비드 스튜어트 데이비스 저/하현길 역
책에이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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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다 성의 포로>는 어린 시절 어떤 포맷으로든 한 번은 읽어 봤을, 마음이 포근해지면서도 모험심을 자극하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문으로 분량도 길지 않으면서 이미 저작권이 소멸한 소설이니 구글 같은 데서 쉽게 다운 받아 읽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 D S  데이비스의 멋진 오마쥬작을 만나기 전 복습을 좀 해야겠다 싶어 다시 읽어 봤는데요, 오랜만에 읽어도 참 재미있더라구요. 마치 디즈니 명작 애니를 어른이 되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감상하는 느낌이랄지. 

한편 셜록 홈즈라면 새삼 소개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만화를 떼는 이유식으로 이 고전 탐정 소설을 사용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자면 이 탐정님이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루돌프 라센딜과 셜록 홈즈가 한 작품에서 만나는 설정은 그러나 아무리 유년기를 책에 파묻혀 보낸 사람이라고 해도 좀처럼 상상을 못 해 본 세계일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고전을 아끼고 또 아끼는 영국에선 <젠다>를 두고 많은 패러디나 독자 팬덤이 든든히 창조, 구축되고 있는 실정이라서요. 이런 멋진 시도, 즉 두 주인공이 한 작품 한 무대에서 같이 부대끼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달리는 무대를 만든다는 건 사실 생각해 보면 때늦은 감도 없지 않습니다.

사소한 단서만을 조합하여 기상천외한 결론을 연역하는, 그리고 그 결론들이 사태의 진상에 너무나도 정확히 부합하는, 세상에서 오직 홈즈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 이 소설에서도 그 특유의 콘서트는 어김없이 재현됩니다. 잠시 개업의 노릇을 쉬고 있는 왓슨, 그리고 언제나처럼 정성스러우나 과묵하게 두 사람을 하숙집 주인으로서, 때로는 어머니처럼 돕고 있는 허드슨 부인. 이런 익숙한 풍경이 오랜 팬-독자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중, 웬 낯선 손님이 둘 앞에 들이닥치고, 두 사람 못지 않게 독자들을 놀래키며 쿵!하고 바닥에 쓰러집니다. 선반에서 브랜디를 대령하여 불청객(아마도 앞으로 고객이 될)의 의식을 수습하는 두 사람의 거동까지 너무도 익숙하며 정겨운 루틴입니다.

가상의 지명은 아니지만 가상의 왕국에 가까운 무대를 설정하고 신분도 높은 인물이 친히 찾아와 가상의 왕실에서 벌어진 말썽을 다루는 홈즈 이야기로는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이 있었는데요. 이 이야기도 길이는 훨씬 더 길긴 하나 시작이 매우 비슷했습니다. 찾아온 의뢰인의 신분이 왕에 미칠 바는 못 되나 제법 고위급에 해당하며, 결국 어떤 일(스포일러라 밝힐 수는 없지만)을 맡게 된다는 점에서도 작품이 걸어갈 경로가 많이 비슷해집니다. 아마 작가는 특히나 저 두 소설의 여러 매혹적인 요소를 집중적으로 염두에 두고서 이야기를 구상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만물의 귀감이 될 고귀한 존재일지 모르나 결국은 시간의 노예일 뿐." 셰익스피어를 변형 인용하며 홈즈는 언제나처럼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한 마디를 던집니다. <젠다>에 나오는 터무니없이 낙관적이며 아이들처럼 순수한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어린이들은 이런 홈즈의 지극히 어른스럽고(...) 매혹적이라 할 만큼 현실적이고 냉정한 스타일에 반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우주가 이 예쁜 책 안에서 흥겨운 만남을 이루는 모습을, 한때 어렸던 독자도, 그리고 행복하게도 지금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독자도, 따뜻한 방 안에서 페이지를 넘겨 가며 감상할 수 있는 게 이 겨울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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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12-2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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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게임체인저

피터 피스크 저/장진영 역
인사이트앤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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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란 말은 요즘처럼 혁신이 일상의 과제가 되어 버린 최근이 아니라 그 훨씬 예전부터 널리 쓰이던 표현입니다. 좀 풀어서 옮기자면 "판도를 통째 바꿔 놓을 사건이나 인물" 정도의 뜻인데요. 요즘은 그저 변화의 추세에 보조를 맞추기만 하려 들어도 아예 "게임 체인저"가 될 각오로 일에 임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도 잡스처럼 어느날 갑자기 확 뜰 수는 없을까? 같은 어리석고 허황된 기대에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현재 위상만이라도 조직 안에서 지키기 위해 "판 바꾸기"를 꿈꾸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는 게 참 씁쓸한 요즘입니다.

저자 피터 피스크는 한국에는 그 저서가 많이 소개되지 않았으나 2008년경 <마케팅 지니어스>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경영 구루로 스폿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이후 <커스터머 지니어스>도 다시 화제가 되어 저도 읽어 본 적이 있고, 이 책도 아마존에선 이미 두툼한 하드커버로 판매가 되고 있어 주문할까 하다가 마침 한국어판이 나왔기에 운 좋게 읽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거침 없는 문체가 책 전체를 감싸며, 다른 경영서에서 잘 보기 힘든 신선한 진단이 많아서 일단 책을 넘기기가 재미있습니다.

플레이-체인지-윈. 그답게 챕터 제목은 서늘할 만큼 간명하게 핵심을 찌릅니다. 플레이(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윈"을 목적으로 머리를 짜내고 다리를 재게 놀립니다. 그런데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뻔한 과정에서, 또 남들 다 생각하고 궁리하는 수순만으론 나만의 짜릿한 승리를 기대하기가 어렵죠. 이때 피스크가 제안하는 전략이란, "플레이와 윈 사이"에 "체인지"를 끼워 넣을 줄 아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게임의 룰에 충실하기만 해선 그저 운에 자신의 이익을 맡기고 방관하는 무기력한 플레이어에 그쳐야 합니다. 피스크는 상황에 끌려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대담한 플레이어가 판을 확 갈아치우며 이익을 싹 쓸어갈 때, 어, 어, 하며 초라한 패자가 되지 말고, 선수를 쳐서 판도도 바꿔 놓고 판돈도 다 챙기며 혁신가의 칭송은 그것대로 듣고 즐기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게임을 바꿀 것인가. 그 열 가지 방법론. 혹은 기초 요소를 담은 논의가 2부에서 펼쳐집니다. 생각, 탐구, 파괴, 영감이 속한 구상 단계, 디자인, 공명, 가능성, 동원이 포함된 실행 단계, 그리고 피드백 단계에 해당하는 영향과 증폭 등입니다. 과감한 혁신이 외부에서 구경할 때에는 어느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 같아도, 미칠 듯한(이판에서 하는 말로 약빨고 만든 듯한) 영감이 그 사람을 찾아오려면 그 나름대로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생각과 탐구는 반드시 혁신이나 게임체인징이 아니라도 준비되는 과정이지만, 특히 Clayton Christensen(중병에 시달린지 오래이나 아직 생존해 계시죠)하버드 석좌교수가 강조한 대로 "파괴"를 (태연하게)수행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저자는 이 파괴 단계를 자신의 익숙한 일상, 그리고 컨벤션이 굳혀 놓은 프로토콜 두 분야에서 고루 찾을 것을 힘주어 주장합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을 대목이 "게임체인저는 가능성을 판다"라는 저자의 확신에 찬 명제겠습니다. 물리적 제품을 만들어 팔고 다니는 역할은 언제나 고단할 뿐 아니라, 실속도 없는 거대 고정비의 부담을 지느라 판촉이 몇 배는 더 어렵습니다. 뿐입니까. 제조업 시장이란 언제나 레드 오션이라서 언제 약아빠진 신참자가 남이 애써 구축한 판도에서 체리만 따 먹으려 발을 들이밀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신참자마저 결국은 보잘것없는 박한 이문에 만족하고 기력만 소진한 채 발을 빼야 하는 게 현실이죠.

저자 피스크는 "아이디어, 생각, 가능성을 제품 대신에 파는 자"라야 영원히 충전되는 창의력으로, 어떤 시장이건 누구를 경쟁자로 삼건 판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혁신가는 사실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영원히 충직한 팬으로 남을 소비자를 거느리며 배타적 텃밭을 경영할 수 있습니다. 혁신이 피곤하다고요? 당신은 지금 그 따분하고 가망 없어 보이던 세상이, 얼마나 많은 변화와 전복의 조짐으로 오색 영롱하게 빛나는 지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생각의 전환만으로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느닷 대박을 칠 수 있는 기회를, 그저 눈을 감고 날려 버릴 작정인지요. 판을 바꾸는 자, 룰에 순응하지 않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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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은 연애다 - 기획 울렁증에서 벗어나고픈 당신을 위한 기획 입문서 | YES24 파블미션(舊) 2015-12-2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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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획은 연애다

최기운 저
북오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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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을 알차게 보내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만약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책이라도 재미나게 많이 읽어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원없이 놀아야 한다"고도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하면 요즘 뱅키스 광고에도 나오지만 늙은 후에 여한이 안 남을 수는 있어도 최소한 직장에서 기안(起案)할 때 그닥 일처리가 수월하지는 않을 겁니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했다고 전부가 아니라, 그 공부가 지금까지 머리에 남은 바가 있을 만큼, 잘 정리되고 즐거운 추억과 함께 남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은 평생 아이디어가 고갈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바로 옆에서 누구, 그리고 누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저자 최기운 소장은 젊은 시절 엘지에서 기획으로 잔뼈가 굵은 분입니다. 이분은 이 저서에서 "기획은 연애와 같아야 한다."는 말로 운을 떼는 걸 보고 문득 생각이 나서 위에 적어 보았습니다. 지식만 방대하다고 기획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적은 지식(너무 적어도 곤란하겠지만)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는 게 중요합니다. 읽으면서 "대체 멋진 기획, 창의적인 기획, 성공한 기획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감되는 점이 무첫 많았습니다. 만약 직장에서 기획이 (연애이긴커녕) 지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이 책의 부제부터 대뜸 거슬리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안된 일이지만, 그런 마인드셋부터 근본적으로 개조를 해야 현재의 교착 상태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힘이 없으니 별수없어 끌려간다는 식이 되어서는 결국 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고, 기왕 버티기로 마음먹었다면 제 나름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구색 맞추기식 기획이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기획이 되어야겠죠.

최 소장님 기준으로 정한 이른바 기획의 1, 2 단계가 아마 연애의 프로세스 해당 단계와 가장 유사한 면이 있겠습니다. 시장 환경 분석을 "요즘 여자들은 어떤 남자들을 좋아할까?"에 비유하는 대목은 꽤나 기발하지만, 사실 연애를 이런 타산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처지라면 많이 슬플 것 같습니다. 노래도 박자와 음정을 기계적으로 정확히 맞히는 것 외에 소위 "그루브"가 살아야 노래가 살듯, 연애 역시 뭔가 자연스럽게 시작을 해야지 인위적인 작업에 의해 불씨가 간신히 생긴다면 그건 참...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결국 "기획 못하는 생초보"를 위해 쓴 내용입니다. 물론 연애도 못하고 기획도 못하는 독자층도 있겠지만, 지금 아무리 기획을 못해도 연애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다 자부하는 층도 있을 거란 말이죠. 대체로 이 책은 그런 유형의 직장인들 쪽에 타깃을 두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기준 3단계, 즉 기획 아이디어와 전략 도출이 성공하는 기획의 코어 엘리먼트라고 봅니다. 나머지는 몇 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 끝에서 니오는 루틴 페이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팍팍한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둘째도 크리에이티브라는 것 요즘 팍팍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 소장님이 이 책 중 마케팅 4P믹스다 SWOT 분석이다 하는 걸 연애의 해당 단계에 유비(類比)하는 대목보다 더 마음에 와 닿은 건, 연애처럼 기획 발안도 연애할 때만큼 창의적이고 순간순간 영감이 샘솟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는 바로 그 지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연애할 때만큼 뇌세포 하나하나가 신생하듯 쾌감을 느낄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여성을 즐겁게 해 주는 것도 결국은 10대때 여러 문화 컨텐츠를 접한 자양분이 깔려 있어야 제대로더라는 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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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태스킹 - 하나에 집중하지 않으면 하나도 이룰 수 없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12-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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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싱글태스킹

데보라 잭 저/이혜리 역
인사이트앤뷰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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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가 진화한 프로세서(CPU)를 내세워 멀티태스킹에 특장(特長)이 있음을 내세운 건 이미 꽤 오래되었으며, 요즘은 모바일 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일만 파는 건 쓸모없고 초라해 보이게 만드는 게 어느덧 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적 자원뿐 아니라 인적 자원(personnel)도 마찬가지여서, 위에서 시키는 일은 여럿을 척척 해 내는 직원이라야 유능하다는 평가를 비로소 받습니다. 한 가지 똑부러지게 잘하기도 쉽지 않은데 여러 과업을 동시에 해 내야 대접을 해주겠다니 참 씁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내 마음 같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일을 해야 능력이 증명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분은 이런 시대에 "멀티태스킹은 오히려 잊으라"는 주문을 합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목할 수밖에요. 대세에 이렇게나 역행하는 한 마디를 대놓고 당당하게도 말하다니! 할 말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아 속은 시원합니다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느낌도 던집니다. 듣기만 해도 초라한 것 같은 단어 "싱글 태스킹"의 미덕이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한 술 더 떠 "요즘 대세랍시고 뜨는 멀티 태스킹은 실체가 없으며, 여러 일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벌이는 '태스크 스위칭'일 뿐이다."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이건 정말 핵심을 찌른 진단입니다. 우리는 흔히 "관점"과 "팩트"를 혼동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가 현장에서 "멀티태스킹"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저 정신사납게 바쁜 척하는 번잡성의 과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건 이사진이건 중간 관리자건 대리건 최말단 직원이건 누구 관점에서 봐도 실체가 동일하다고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태스크 스위칭"에 지나지 않는 걸 "멀티태스킹'이라며 과대 포장하는 건 모두에게 lose-lose 결과를 낳는다는 겁니다. 어느 직급에서건 여러 "태스크"를 동시에 척척 처리하는 건 그저 환상에 불과하고, 어쩌면 어느 시점부터 영리한 "아랫사람"이 자신의 효율성을 과장하기 위해 심어 놓고, 어리석거나 환상에 빠진 관리자가 업무 통제의 수단으로 확산한 신화에 불과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마치 스타하노프 운동처럼).

예전에 닉슨은 제럴드 포드를 가리켜 "사람은 좋으나 껌 씹기와 걷기를 동시에 못 하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유신시절 어느 요정 운영자를 두고 한 고위 공직자는 "아홉 명의 고객을 동시에 응대하는 구미호"라 부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 일을 똑부러지게 처리하기만 하는 것보다,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겉보기에는 확실히 유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한다고 해도 개별 업무의 처리 완성도는 매우 불완전할 뿐이라며 일침을 놓습니다. 멀티태스킹은 관리자의 관점에서도 과업의 불완전 달성을 목도할 뿐이며, 하급 직원의 경우 노동에서의 소외와 좌절감, 의욕 저하만 부를 뿐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Back to the Basic." 일이 잘 풀린다면 지금의 방식이 "뉴 노멀"이 되어 앞으로의 지침 구실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회사에서 업무가 잘 수행되고 있습니까? 멀티태스킹은 수단입니까 목적입니까? 과업을 위한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고 있다면, 당신은 핸즈프리 없이 통화하는 운전자와 같습니다. 그 순간은 versatility의 환상이 당신을 즐겁게 해 줄 지 모르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파국이 기다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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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 My Reviews & etc 2015-12-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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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저/최현 역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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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번역가 최현 선생이 옮긴, 아마도 한국어판으론  최초가 아닐까 싶은, 제레미 리프킨의 고전입니다. 적어도 제가 중학생 때 서점에 들르곤 했을 때는 범우사의 이 책만 눈에 띄던 시절이었는데요. 이후 모 대학교 선정 고전 백선 같은 리스트에 끼기 시작하면서, 또 한국인들의 환경의식, 혹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전직 저널리스트 출신 저술가가 새삼 그 세계적 지성의 위상을 우리 나라에서도 확인 받고, 여러 출판사에서 우리말로 옮겨 내었습니다.

모 대학교 리스트에는 이 책이 "과학 서적" 범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고등학생은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므로 저런 규정은 수정되어야 한다."면서 끈질기게 당국에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곤 했죠. 하지만 어떤 책이, 도서관 십진 분류표 어디에 끼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언제나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해당 학교에선 "성인 독자 아닌 고교생이라면, 이 책을 과학 교양 서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팩트 아닌 의견, 가치 설정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며 완고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 사람은 전공 분야가 무엇이건 자기 영역에서 대성하기 어렵습니다. 선악의 판단에 있어 자기 주장만을 매사에 고집할 수 있는 사람(직업)은, 저 멀리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고 호메이니 옹 같은 이밖에 없습니다(아니면 IS 간부라든가). 중요한 건 "이 책은 서가의 이쪽 코너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게 아니라, 그 책의 저자가 책 속에서 무슨 주장을 하는지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해당 이슈에 대해 전혀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서, 무슨 배짱인지 내키는 대로 한쪽 편을 골라잡아 논리도 근거도 없이 큰 소리를 지르며 역성을 들고서는, 특정 진영에서 그 공을 인정 받으려는 추태도 보입니다. 토론과 논쟁의 규칙이 전무하다시피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희비극이라 하겠습니다.

여러 달 전 제가 읽은 <백미러 속의 우주>에서도, 이 열역학 제2법칙은 논의의 대전제 중 하나로 열심히 원용되고 있었습니다.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이 법칙은 화학, 자연과학 뿐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 두루 원용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 하나를 설정하고, 이를 훼손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 남에게 강요하려는 이는, 비유컨대 열역학 제2법칙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셈입니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참으로 정연한 논리로 "기적처럼 질서와 조화를 갖춰 수많은 생명체를 포태하고 빚어내며 성장시킨 지구 생태계에 대해" 이제 인간은 열역학 제2법칙을 최악으로 응용, 가속하여 환경 파괴라는 배덕을 범하고 있다며, 이 파괴적 추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인류는 스스로의 멸망을 자연이 본디 예정한 것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앞당긴다는 진단을 내어 놓습니다. 과학자가 아닌 그가 이 책에서 펼쳐내는 논리와 통찰은 너무도 정연하고 체계적이라, 자연과학 명제 하나가 이만큼이나 인문, 경제, 그리고 보통 사람의 일상에까지 속속 침투하여 절박한 규범을 형성할 수도 있는지 감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현 시점에서, 환경정책, 경제 아젠다, 사회 개발-보호 비전에 있어 거의 기본 헌장이나 바이블 같은 위상을 점하고 있어,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와는 대화의 기본 전제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초판은 그 제목이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붙어 있었으나, 원제와 불일치하고 그 자체로도 정확한 표현이 못 되어, 지금처럼 수정되었습니다. 현재에까지 왕성한 저술 활동을 이어가는 리프킨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려면, 기준점, 출발점으로 삼고 우선 재독 삼독해야 할 필독서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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