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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박물관 산책 | My Reviews & etc 2015-05-3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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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터키 박물관 산책

이희수 저
푸른숲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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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라는 정치단위가 주는 감흥, 동경, 위엄이란 실로 남다른 바 있는 듯합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임했다가 상대가 저지른 뜻밖의 전술적 실책에  힘입어 광대한 소(小) 아시아 영토를 만지케르트에서 확보했을 때, 이들은 이곳에 룸  술탄국(國)이라는 경계를 새로 설정해서 다스렸습니다. 천 년을 지중해에서 패권자로 군림해 온 실체에 대해, 이름의 잔해라도 그대로 보존해 주는 게 자신들의 자존에 그리 해 되 것은 없다 여긴 소이입니다. 이로부터 다시 수백 년이 지나서야, 부족 시조를 달리하는 별개의 제국이 나서서, 최종적으로 "로마"란 이름을 지닌 제국의 심장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정복자인 메메드 2세는 현지의 신앙, 풍습, 언어에 대해 일단은 원상의 존중이란 관용적 정책을 취했습니다. 인종과 사고, 기질이 판이한 종족을 다스리는 제국이라면, 그 정도의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덕입니다. 여튼 과거의 늙고 쇠잔한 제국을 정복한 젊은 제국은, 인수한 유산과 그 유산이 뿜어내는 영광을 가능하면 본 모습 그대로 후대에 전하려고 애썼고(쉽지 않은 결단이었겠죠), 그 결과가 우리 현대인들이 목도하는 대로, 그저 평범해 보이는 공화국 터키에 그토록 많은 "인류 문화 유산"이 분포해 있는 바로 그 사실입니다. 터키 정복자들의 야만적이고 잔인한 행태에 대한 평판에 그 표현, 그 글자 하나마다 신뢰를 준다면, 이는 대단한 모순과 인지부조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지에 가서 보아야, 투르크 제국 이전과 이후가 얼마나 긴밀하고 따뜻한 호흡을 교차하고 있었는지 그 확인이 가능할 테니까요.



이 책은 한국에서 터키사 연구, 현대 터키 정세 연구에 권위자이신 이희수 교수님이, 천연색 사진 자료와 인문적 통찰, 지론을 복합해서, 현재 터키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이해가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지, 일반 독자 입장에서 편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돕는 내용입니다. 터키는 최근 IS의 발호로 다시 국경 일부가 정세 불안에 빠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서아시아에서 보기 드물게 치안 유지, 건전한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당장 여행자들의 안전이 위협되는 수준은 아니죠. 이 서평이 작성된 5월 31일 현재, 터키는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교부에서 발동한 어느 주의단계(여행 자제 등)에도 해당되지 않은 국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다방면의 교류를 해방 직후부터 이뤄 오기도 했죠.

책에는 "서양이 터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신적 빚을 졌는지"에 잦은 언급이 나옵니다. 이 논의의 배경을 알려면, 서양이 터키에 대해 얼마나 나쁜 선입견, 편견을 지녔는지부터 먼저 살펴야 합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소위 "성지"를 점령하고, 동시에 동서 무역의 요충지를 장악한 후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부터, 서유럽인들은 터키에 대한 경계와 증오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십자군의 원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사실상 현지인들에게 피해를 준 건 우리가 잘 알듯 기독교들의 과오가 더 큽니다. 종교를 표지로 한 두 진영의 대립이 이처럼 첨예해지고 나서는, 보다 격렬한 양상으로 군사적 갈등이 야기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잔혹한 만행이 자주 빚어졌죠. 어느 싸움이건 가해자가 피해자가 분명히 구별되는 건 아니고, 대개 자신이 도발한 범위에 대해선 쉽게 잊는 게 상례입니다. 중근세사 전체를 통해 투르크는 기독교 세력에 대해 공세적 태도를 유지했고, 서구 국가들은 자연 과장, 왜곡된 인식을 그들에 대해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술탄의 일인 전제정이 통치 전반에 걸쳐 불러온 해악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해소, 극복되지 않고 이어졌기에, 터키에 대한 나쁜 인식이 더욱 고착된 건 일부 그들이 자초한 면이 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불가리아와 아르메니아에서 그들이 저지른 제노사이드 역시, 비슷한 시기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에게 자행한 만행을 잊을 수 없는 처지에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소행입니다.

여튼 터키, 투르크는, 근 오백 년(그 이상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에 걸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 만나는 접점 일대의 광대한 영토를 호령하던, 세계사적으로 겨우 중화 제국 정도나 그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강성한 제국이었고, 통치 시스템의 지속성과 세련됨 면에서 몽골 제국과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원칙과 일관성, 독특한 신조에 의해 피지배 종족 다수를 다스렸기에, 문화 유산은 지배자 고유의 것이 성취한 수준을 훨씬 넘은 기존의 유산을 넉넉히 아우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 이희수 교수님이 지적하는바 "서양이 터키에 크게 빚진 사실"입니다. 투르크는 그때까지 현지에 내려오던 소중한 유산을 제국의 이름으로 끌어안아 품위 있는 컬렉션을 만들다시피했고, 이를 제국이 망해갈 무렵에도 사방에 흩뜨리지 않은 채 비교적 잘 보존하여 현대인이 온전히 감상하고 그로부터 정신적 효익을 얻을 수 있게 도왔다는 것입니다.

성 소피아 성당의 사연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처음으로 이 도시에 이슬람의 깃발을 꽂았을 때, 정복자의 관용 덕에 대대적인 약탈이 이 성스러운 건물에서 행해진 바는 그닥 크지 않았습니다. 이 유적이 큰 시련을 겪은 건, 그보다 이백 년 앞서 라틴인(프랑스인, 베네치아 인 등)들이 "못 받은 빚을 받아내려 자력 구제를 시도했을" 그 시점이었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토록 대대적인 약탈, 파괴, 신앙에 대한 능욕이 행해진 적은 없었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그토록 어이없는 만행이 이뤄진 점과 대조하면, 터키(투르크) 정복자들이 어느 정도 여유와 관용으로 제국을 다스렸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스탄불 현지에는 1453 파노라마 박물관이라는 게 있습니다. 터키인들로서는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이룬 이 정복이 자랑스럽기도 하겠으나, 패배한 그리스인들에게도 지존의 황제까지 그 목숨을 바쳐 가며 마지막 투혼과 애국심, 신앙심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장엄한 긍지를 갖는 대목이죠. 저도 구경한 적 있습니다만, 이 당시에 벌어진 양측의 대접전은 인류 역사상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극적인 이벤트였습니다. 이곳을 둘러보고 온 한국의 모 전직국회의장이, 그 관람의 감흥을 살려 책 한권을 지어 내었을 정도죠. 터키 당국의 훌륭한 정책적 안목이 돋보이는 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또 그 조상들은 타 민족으로부터 인수한 바를 잘 보존한) 유산만으로 관광객을 끄는 게 아니라, 이처럼 지난 역사의 현대적 재현을 통해서도 볼거리를 제작하여 웅대한 과거의 위용을 외부인들에게 상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터키는 공화국을 수립하고 수십 년 동안의 노력으로 재건에 성공하여 현재는 인구 대국, (전성기에야 턱없이 부족하나) 영토 대국, 지역 강국의 위상인데도, 제국의 해체 몰라기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아직도 외국인들 사이에 그닥 존경받는 이미지를 쌓지 못하는 게 유감이긴 합니다.

문화 유산은 곧 지난 풍속의 자취를 더듬어, 옛 사람들이 어떤 의식과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 삶을 영위했는지를 짐작게 하는 좋은 단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혼사를 앞두고 시어머니 될 이가 며느리 후보자와 알몸으로 대면하며 서로의 인격과 됨됨이를 살핀 목욕탕 문화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고부 갈등이 심한 당사자가 같이 대중탕에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한 꺼풀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눈길을 끕니다. 아무래도 기원이 같은 동아시아다 보니, 현지 혼혈과 기후 적응을 통해 크게 달라진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 영혼 깊숙한 곳에서는 서로 통하는 바가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터키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이, 그리스 본토보다 더 양적 질적으로 풍부하다면 많은 이들이 놀랄 만합니다. 실상은 이 소아시아 반도부터가, 특히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농경, 무역 등 여러 경제활동으로 터전을 삼던 주무대였습니다. 서양 문명의 태반 구실을 했던 그리스인들의 본향 중 한 군데를 그토록 오랜 동안 지배한 게 터키였으니, 이처럼이나 많은 박물관이 자리하여 귀한 유산을 품고 있음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터키는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물게, 동과 서를 자기 한 몸에 아우른 적이 있고, 오늘날까지 인류 문화의 연속성 유지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큰 공적이 있습니다. 책은 올컬러 편집에 백상지 인쇄이고, 휴대하기에 가벼워 현지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가이드북으로 삼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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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Oui), 셰프 | My Reviews & etc 2015-05-3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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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Oui), 셰프

마이클 기브니 저/이화란 역
처음북스(CheomBooks)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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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먹는 존재"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할 수 없습니다. 짐승과 만물의 영장을 가르는 근본적 차이점이 있다면, 의식이나 비가시적 지표 등 막연한 기준들을 일단 제외할 때, 먹을 것을 날것 그대로의 상태로 먹느냐, 아니면 정해진 조리 방식을 거친 후 섭취하느냐 하는 잣대로, 누구의 눈에도 객관적인 판정이 가능한 게 바로 "요리 문화"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프랑스인들이 그처럼 자문화 중심주의에 마음 놓고 빠져들 수 있는 것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정교하며 인간 보편의 미각을 효과적으로 공략, 마음을 사로잡게 하는 강력한 무기인, "프랑스식 요리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확고한 자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느 미국인 요리장의 회고담을 이야기의 본 줄기로 삼고, 직업인으로서의 철학을 틈틈이 요약한 에세이집입니다. 요리사라는 직업이 아직 한국에서야 확고한 평판과 존경을 얻은 편은 아니지만, 자라나는 세대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요리장이란 직업이 얼마나 큰 성취감과 명예를 안겨 줄 수 있는지 충분히 유리한 조건을 가질 수 있기에, 일생을 두고  영위할 기능인으로서 셰프의 삶을 동경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독자가 곁에 놓고 읽으면서, 소중한 꿈을 가꿀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비단 요리장이 꿈인 이들만 읽으라는 내용, 기획은 물론 아닙니다. 일류 요리사이자 이처럼 멋진 책 한 권을 써서 세상에 내 놓을 실력이 되는, 미국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굵직굵직한 경력을 두루 거친 저자 마이클 기브니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체험을 소재로 하여, "요리장으로서 한 사내가 세상과 소통, 교류, 사랑, 때로는 충돌하는 지점이 어디어디이며, 그가 직업인으로서 큰 성취감을 느끼고, 때로는 패퇴하여 상처를 입는 때가 언제인지", 본분이 이야기꾼 아닌가 싶게 재미있는 말투, 다채롭고 격조 있는 표현으로 독자에게 들려 주고 있습니다. 요리를 안 접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우리가 접하는(사람마다 빈도수에 차이는 있겠으나) 일류 요리가 어떤 과정, 어떤 절차를 통해 "창조"되는지가 궁금했던 이들에게 진진한 흥미를 안겨 줍니다.
꼭 명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일류 요리가 아니라도 무방합니다. 솜씨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사람이 그 존엄을 일상에서 가장 쉽게, 자주 확인할 수 있는 절차인 요리의 음미,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장인의 마음가짐이 어떤 모습인지를 엿보는 재미란, 이 가깝고도 먼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충족시킬 수 있게 해 주니 말이죠.

요리라는 인간 정신의 가장 미묘하고 섬세한 부분이 작동하여 빚는 문화행위, 이 비결과 내력, 애환이 모두 담긴 이 책을 읽고 제가 느낀 건, "요리장, 요리사란 직업이 예사 각오, 집념, 스태미너가 아니고선 누가 함부로 넘볼 수가 없는 영역이구나."하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고객으로 누가 찾아올지 모르는 사업 구조(설령 일류 레스토랑, 호텔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상, 비록 정해진 메뉴 안에서 주문을 받는다고는 하나, (일류일수록 당연히 메뉴의 제공 폭이 넓을 것이므로) 그때그때 손님의 요청에 기민히 응해 최상의 맛을 내게, 자신의 마인드세팅을 기민히 해 낸다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다음으로, 요리란 그 정신의 엄청난 집중과 고강도의 육체 노동이 수반되는 창조 행위란 점입니다. 셋째로, 요리는 그 과정에 대한 존중 감정의 밀도와는 거의 무관하게, 그 결과물에 대해선 잔혹할 정도로 까다로운 심미적 기준이 적용되는 기예의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은 소홀하면서, 그 일의 최종 성과를 놓고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이상형만 염두에 둔 "미학자"들이 몰려 와, 인정사정 없는 품평을 해 대는 그런 냉혹한 환경에 노출된 "예술가의 처량한 처지'라면 그건 오로지 이 셰프들뿐이라는 게 저자의 인식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리란 전쟁과도 같습니다. 영어에서 captain이란 단어는 이 프랑스어 chef와 조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유효하게 활동할 수 있는 중 가장 액티브한 단위를 이끄는 게 캡틴입니다(우리 한국 직장에서 흔히 팀장이라고 말하는). 순간의 정확한 판단으로, 한정된 시간 자원을 최대한 "영양가 있게" 사용하면서, 마침내 손님의 까다로운 미각을 "자발적으로 굴복하게 할 만한" 매혹, 압도를 이끌어내는 게 셰프라는, 주방의 대대장이 이뤄내야 할 책무입니다. 부(副)주방장을 프랑스어로 수셰프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이를 lieutenant라고 표현합니다. lieutenant가 본디 부관이라는 뜻이므로, 셰프와 수셰프의 관계가 captain과 lieutenant의 그것과 일대일대응을 이룸을 아주 잘 보여주는 멋진 명명이자 메타포어죠. 우리 한국어 번역본에는 이를 "중위"라고 옮겼는데, 그러면 일단 일차적 문맥 의미가 잘 안 통한다는 게 단점이겠습니다.

요리장들의 애환도 많습니다. 일류요리장(匠)으로서 익힐 기능을 다 익히고 나면, 제아무리 재주가 좋고 수완이 빼어나 고속 승진을 해도(경쟁이 아주 치열해서 일반 기업 못지 않게 라이벌을 멀리 떨구기 위한 무자비한 레이스가 펼쳐진다는군요. 초심자는 주방의 가장 힘든 직책부터 다 거쳐야 하는, 고된 사다리오르기가 기다리고 있음은 당연하고요. 허드렛일 하는 게 한이 맺혀서 반드시 셰프가 되고 말겠다고 결심한 이가 다 있으니 말 다했죠), 일단 정상에 오르면 그때부턴 내리막길 타는 게 다반사랍니다. 이유는, 고객의 입맛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해서이고, 나이가 들면 이 변화를 추격하는 자체가 너무도 힘들기 때문이죠. 밑에서는 더 기민하게 트렌드를 좇을 수 있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이에 대해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애를 쓰는 그 자체가 고역입니다.

게다가 요리장들의 개성은, 대개 독불장군 타입. 자기만의 개성을 타 취향, 가치와 타협하려 들지 않는 고독한 예술가형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대세에 뒤처지지 말라는 위아래의 압력에 부대낀다는 자체가 힘든 노릇일 텝니다. 이 책에 나오는 브루클린 출신 셰프 브라이언의 경우, 키가 2m에 육박하는 거인에 다혈질입니다. 경력도 화려하고 아직 퇴물 취급 받을 나이도 아닙니다. 근데도 보수도 박한 외진 식당에서 고군분투하는 곡절이란, 바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마음껏 펼치고 싶다는, 작은 보스로서의 포부, 주인되는 삶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는 그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위, 셰프! 영어로 말하면 yes, sir! 이란 힘찬 응답이 주는 그 느낌과 비슷합니다. 주방에서는 당신이, 군림하는 유일한 지도자이니 그저 분부만 내리십시오!. 혹은 과연 당신이 빚은 솜씨는 세상에 둘도 없는 것이군요! 하는 감탄과 비슷합니다. 요리장은 그 작은 주방이란 공간을, 독특한 질서가 지배하는 소(小) 우주로 탈바꿈시키는 창조주입니다. 이 책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요리장, 셰프의 긍지와 자부에 대해 일반인이 잘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멋진 문학적 풍미까지 겸비한 책이었습니다. 책 말미에 수록된 용어 해설집은, 이 분야에 문외한인 독자가 다른 분야에도 지식을 적용할 수 있게 잘 편집된, 유용한 참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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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5-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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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

줄리 K. 노럼 저/임소연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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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의 컬러라고 언제나 일원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자계서에서도 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부정적인 생각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주류에서 현저히 이탈한 주장입니다. 지금껏 읽은 어느 자계서도, "그저 긍정, 절대 긍정"을 외쳤을 뿐이지, 그 반대를 이야기한 책이 혹시 기억나는 분이 있을까요? 그런데 요즘의 트렌드 여럿 중 하나가 "역발상"의 힘입니다. 모두 블루오션만을 찾아 대양으로 감연히 항해할 것을 외칠 때, "차라리 레드 오션 사이의 작고 얇은 빈틈을 찾아, 모으고 모아서 당신만의 해양 목장"을 만들라고 외치는 저자의 책을 저는 읽었습니다. 만약 천성적으로 타고난 비관적 감성을 긍정적인 그것으로 전환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막대하게 소요된다면, 그냥 원 상태로 방치하거나, 소위 바이오매스 에너지처럼 필요없어 보이는 그 상태 그대로에서 무엇인가를 획득할 구석이 없는지 탐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요?

이 책은 일종의 창의적 역발상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긍정, 긍정을 외친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던가? 안 되는 사람이 당신 뿐이라면 그건 당신의 문제이며, 따라서 당신은 당신의 생존 명운을 걸고 그 개선 작업을 해 내어야만 한다. 그러나 과연 당신만 긍정 일변도 인간으로 변신하는 게 어렵던가? 주위를 보면, 당신의 동료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을 포함한 그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의) 집단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다른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이게 이 책 1장을 읽고 저자의 취지로서 제가 받아들이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오해는 없어야겠습니다. 이 책은, "긍정적인 사고 방식"의 커다란 효용을 배제, 과소평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주변에 뚜렷한 사회적 성공의 예로서 너무나 현저한 위너들이 존재합니다. 십여 년 전 대한민국 탑 영업사원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오른 김성환 씨의 저서 <절대긍정>을 보면, (당시에는 이런 부류의 자계서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페이지마다 배어나는 진정성을 접하며 "성공하려면 과연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수긍을 (내키든 내키지 않든) 마음 속으로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성환씨처럼 마인드를 긍정 해바라기로 쉬이 개조한 분들은, 그분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인생을 지금 살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김성환처럼 되려고" 애써도, 안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이런 분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좌절 모드에 빠져 들며, 김성환씨 같은 분들이 가장 경계하는 "악성 비관주의"라는 깊은 벙커에서 빠져 나오질 못합니다. 이러면, "긍정에의 강요"는 뜻하지 않게 그 부작용, 반작용만을 확산, 악화시키는 것밖에 다른 결과를 가져 오지 않습니다. 대단히 역설적인, 훌륭한 자계서가 빚는 역효과라고나 하겠습니다.

심리학자인 저자 J K 노럼 박사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는 서로 대척-배반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와 작용에 밀접히 의존하는 공생공존 관계에 가깝다고 합니다. 하나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려면, 다른 하나를 요령 있게 엔지니어링해야 하며, 그 요령은 사람이 갖고 태어난 성격, 성향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 맞는 방법으로 낙관주의를 가동시켜야(만약 이것이 최종 목표라면) 하지, 무작정 힘으로 드라이브하면 손 안 대느니만도 못한 개악(改惡)을 초래할 뿐입니다. 섬세한 인간의 심리는 타고난 개성과 구조에 따라 조심스러운 메스의 손길이 가해져야 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없고 비생산적 감정 소모에 습관적으로 몰두하여 비관주의에 젖는 게 아니라, 불확실하고 위협적인 확률분포 함수 전개 앞에서 자신의 감정 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비관주의를 취합니다. 이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고, 감정의 효과적 운용이 폭발적 에너지를 생산함에도, 반대로 거센 공격 앞에서 vulnerable 체질을 키우는 데에도, 모두 유용함을 알고 있는 성격 유형이 이런 전략을 취합니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걱정을 일삼는 사람은 정작 웬만큼 터무니없는 비극이 자신을 덮치지 않는 이상, 루틴한 불운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실제로 저도 이런 타입의 후배를 옆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불행의 보험금 납입"을 착실하게 하는 애라고 규정이 가능하더군요. 물론 그런 태도로 살아도, 소위 커버("보장")가 안 되는, 해일 같은 재난(매우 낮은 확률이긴 합니다)은 감당을 못하겠지만 말이죠.

부정적 사고의 긍정적 힘! 참 역설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려움, 도전을 헤쳐 나가는 데에는 한 가지 전략으로 일관할 수 없는 게 또한 처세의 분명한 규칙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장점을 갖춘 이라면 생존을 위해 다양한 전술을 채용할 필요가 없겠으나, 대부분의 유형은 그런 행운을 지니고 태어나지 못한 게 사실이죠. 무엇이든 지나친 건 모자람만 같지 못하며, 긍정과잉은 어쩌면 긍정의 결핍보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명백한 재난의 신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현실에서 살아남는 데에 가장 위험한 "현실 도피"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생존 전략의 포트폴리오를 짤 때, 략적 낙관주의와 방어적 비관주의를 고루 혼합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게, 고수가 아닌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생존의 정석에 가까운 태도라는 점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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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기본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5-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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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부의 기본

도쿄대과외교사모임 저/이지혜 역
열린세상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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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참 별의별집단이 다 있나 봅니다. "도쿄대 과외교사 모임"..... 우리보다는 사교육과 출세를 위한 광풍의 열기가 한풀 꺾인 일본으로 알고 있는데, 현업 명문대 대학생들 중 과외를 부업으로 삼는 이들이 모여 소위 "공신들의 족보"를 짜 본 게 이 책입니다. 사실 저는 "만능의 공부비결"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 매우 의심스러워하는 편입니다. 사람의 성격이나 지능, 태도가 천차만별이듯, 그에 맞는 공부법이 다 따로 존재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다 채택해 봐도 안 먹히는 사람은 그저 "공부가 나의 길이 아님"을 깨끗이 인정하고 자신에게 맞는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부에서 멀어지려고 작정해도 요즘은 그게 또 아닌가 봅니다. 화제로 꺼내기 점잖지 못한 소재지만, 몇 년 전 소위 "룸살롱의 황제"란 자가 검거되면서(불법영업), 자신은 동종업에 종사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며 낮에 도서관에 가 경영서적을 탐독하며 그 요체를 실전영업에 고스란히 적용시킨 게 성공(?)의 비결임을 경찰관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털어놓아 세간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유흥업의 번창에도 "공부라는 숨은 공들임"이 요구되는데, 하물며 직장인이라면 그 공부에 대한 절박함이 오죽하겠습니까. "자기계발"이란 매개범주도 이미 번거로우며, 공부는 벌써 생존을 위한 필수, 직통 전략임에 다름 아닙니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공부를 발판으로 삼는 정도로 "공부 졸업이 연기"되는 게 아니라, "퇴직금 타기 직전"까지는 무조건 책을 파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3 수험 생활이 인생의 일대 고비라며 강조하던 시절은 먼 과거로 흘러가 버렸고, 수능 공부 수준은 지금 직장인들이 치르는 전쟁에 비하면 차라리 약과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비단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자신과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중인 고등학생들에게만 참고가 되는 게 아니라,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거나 읽은 책의 내용이 머리에 쏙쏙 정리가 잘 안되는 "직딩"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 편제가, "수험 생활에 특화된 공부" 쪽이 아니라, "공부 일반에 두루 통할 기본적 방법론"을 강조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책의 머리말도, "특별히 기발한 요령이나 수완을 가르치지 않고, 기본에 속하는 원칙을 조심스럽게 강조했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비록 어린 대학생들의 글이지만, 예전 퇴계나 율곡 같은 겨레의 스승들이 남긴 고전에서 항상 강조하시던 그 기본적 원칙에 비해 별반 떨어진다거나 내용의 품격이 못한 바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기본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단지 그 실천이 어려울 뿐이지요.

이 책의 장점은, 여러 도표와 실증적 데이타를 사용하여, 자신이 전체 표본 중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그리고 각자가 처한 위상에서 "어떤 기본 방법론을 채택해야 최대 효율을 올릴 수 있는지"를 자체점검할 수 있게 돕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목표를 무작정 높이 잡고 무리하게 자신을 몰아 붙일 게 아니라, 역으로 자신의 역량과 습관을 계측하여, 최종 목표로부터 거꾸로 계산한 단기 목표(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해야 하죠)를 체계적으로 잡게 돕는다는 점도 돋보였습니다. 무려 63가지 원칙(모두 "기본 원칙"이라고 합니다)이 제시되어 있으니, 공부가 잘 되는 분들은 "내가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지"를 점검할 수 있고,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들은 "내가 이처럼이나 기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군" 같은 자기점검이 가능하겠습니다. 최근 제가 읽은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에 나오는, 맥락별로 분해해서 도해화하는 요령도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고수들의 길은 일견 출발점부터 달리잡는 구절양장처럼 보이지만, 진리가 하나로 통하며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말처럼, 정상에 서는 이들은 결국 지점을 보게 마련이라는 점도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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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챔피언들은 경기 전에 껌을 씹을까?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5-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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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 챔피언들은 경기 전에 껌을 씹을까?

이시가미 게이이치 저/이준현 역
클라우드나인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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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껌을 잘 안 씹는 편입니다. 다 씹고 나서 처리가 귀찮기도 하고, 입과 턱을 쉴 새 없이 동작시키는 게 주의도 산만해지고, 피로도 빨리 부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요즘도, 수업 시간에 학생이 껌을 씹고 있다면, 그가 대학생이라고 해도 주의를 받는 게 보통일 겁니다. 껌을 씹는 동작은, 그 주체를 두고 뭔가 진지하지 못하거나 무례하거나, 때로 공격적이거나 건방지게 보이게 만드는 게 드물지 않은 일입니다. 소개팅 나가서 이성 앞에서 껌을 씹지는 않을 것입니다(다른 특별한 의도가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어떤 이는, "어려서부터 껌을 너무 씹어대는 바람에 턱이 길어졌다"는 이상한 푸념도 털어 놓던데, 이게 의학적 근거는 상당히 부족한 진술이라 쳐도, 최소한 "껌을 씹는 습관"에 대해 일반의 인식이 어느 정도 부정적인지 보여 주는 사회학적 지표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껌 씹기"는 경우에 따라선, "담배 피우기"보다 더 나쁜 인상을 타인에게 줄 수 있습니다. 요즘은 "담배 피우는 여자"가 뭔가 능력 있는(강도 높은 업무에 종사하기에 그 스트레스를 흡연으로 푸는) 인상까지 풍기기도 하므로, "껌 씹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욱 더, 남녀의 편차조차 줄이면서 "평등하게", 그 행위자에게 가치저하의 효과를 안깁니다.

이 책은 혹시 비유적 의도로, "껌 씹는 행위의 인문적 고찰"을 풀어 놓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처음엔 살짝 품게 했습니다만, 페이지를 넘겨 보니 정말로 시종 일관 "껌씹기"의 효능에 대한 찬사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 사실 자계서건 어떤 장르건, 그 책이 달고 있는 제목에 끝까지 충실한 책은 오히려 드물게 관찰되는 법입니다. 너무도 자신의 출발점, 초심에 신의를 지키고 있는 책이라서, 저는 평소보다 더 성의를 기울여 책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껌을 잘 씹는 것만으로도 자기계발에 일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구라도 이런 질문을 품거나 표시할 때에는, 진지한 기분에 쌓여서 그러지는 않을 텐데요. 이 책은 정말로 진지하게, "껌 씹기와 성공의 함수 관계"에 대해 설명, 설득해 주고 있었습니다.

책을 중간쯤까지 읽고 나서, 조금은 겸손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성모씨 작품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중에 "과학은 이론이지만 나는 현실이다." 가 있죠. 물론 독자들이 우스개로, 희화화하여 인용할 뿐인 문구지만, 때론 (의도했든 그 반대였든 간에) 심오한 진리의 일단을 품고 있기에 그토록 인구에 회자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껌 씹기"를 경시하거나 폄하하는 것, 혹은 전혀 (실용) 과학적 의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관행이거나 이론적 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이 껌을 씹는 이유는 (이 책 본문에서 서술하고 있듯) 백 가지 이유도 넘게 제각각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실제로 껌을 씹는 데에는 백 가지의 효용이 있을 수도 있기에 "그런 현실"이 눈 앞에 빚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추측에서, 책 논의의 기초를 잡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흡연자, 심지어 마약 중독자, 알콜 의존증 환자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악습에 빠지는 건가?"하는 반문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껌 좀 씹었다고 암에 걸리거나, 사회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폐인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불량스러운 인물, 건달 들이 "껌을 요란하게 씹는"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에 클리셰처럼 쓰이는 건, 오히려 "껌 씹기"의 긍정적 생리기능을 반영하는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인물들도 속으로는 큰 불안을 느끼고 겁을 집어먹기에, 요란한 제스처(와 실제 동작)를 통해 내심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필사적으로 수행하는 거죠. 인간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을 시 이의 처리에 에너지를 쏟느라 사고 기능의 일시 저하를 겪습니다. 껌을 씹는 저작운동은, 혈류기능을 촉진하여 대뇌로 활발한 자극을 보내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이를 악물고" 각오를 다진다는 게 있는데, 이는 실제로 저작근 외 12가지의 근육을 함께 사용하는, "턱과 치아를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씹는 동작"만으로도 생각 외로 넓은 범위의 복합적 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껌을 씹는 게 단지 스트레스를 풀고 뇌에 자극을 주는 그 정도가 효능의 전부는 아닙니다. 저자는, 그저 바르고 정확하게, 적정 빈도로 씹기만 해도 자세가 교정되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특히 스포츠 선수들이 그토록 시합 중, 시합 전, 혹은 준비기간 중에 껌을 씹는 건, 이론 이전에 경험적으로 그 타당성이 입증된 바 있어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균형감각 유지, 동체 시력 상승, 근육 반응성 제고 등은, 순간의 민활성으로 일생을 좌우할 중요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느냐 마느냐가 달린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표라는 겁니다. 책을 읽고 나서, 그 깔끔한 뒤처리에 신경이 쓰이더라도 오늘부터 "생산적 껌 씹기"를 다시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건, 그 충동대로 따라가 봐도 그리 해롭지 않다는 판단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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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어떻게 일하는가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5-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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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어떻게 일하는가

오시마 사치요 저/강성욱 역
머니플러스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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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社의 경영상 황금률은 이미 여러 책을 통해 독자 대중에게 큰 어필을 한 바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유효하고 존중 받아야 할 준칙으로 널리 평판이 나 있습니다. 이를 다룬 책을 저도 다양하게 접해 봤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일본인 전문가 오시마 사치요의 정리 버전(이른바 "7S 경영")이 제게는 오랜 동안 선명한 인상을 남기더군요. 일년여 만에 그의 새 책이 나와서 얼른 구해 읽어 보았습니다. 제목은 저처럼 되어 있지만 그 담은 내용은 역시 맥킨지 관련 사항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책 저자 오시마 사치요氏뿐 아니라, 동양인 저술가들은 경영실무, 이론에 천착하는 이들조차 "감성적 접근"을 매우 중시합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나는 왜 구글을 그만두고 라쿠텐으로... >의 저자 오바라 가즈히로氏도, 왜 미래가 일본에 있느냐는 의제에 자문자답 형식으로, "고맥락 소통을 당초부터 중시하던 일본인이야말로, 미래의 트렌드를 생래적으로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단한 자부심을 표출한 바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왜 서양인들이 "이성적이고 명료한 의사 표현과 소통 방식"에 대해 그리 집착해 왔는지가 오히려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간이란, 피부색과 눈동자, 머리칼의 빛깔에 무관하게, 계산이나 논리보다는 감정에 좌우되는 동물임이 밝혀지다시피 한 요즘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일본인들은 흔히 "리더는 아랫사람들을 반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쓰곤 합니다. 현장에서 두 말 나오지 않게, 똑부러진 일처리를 해 내는 능력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마음으로부터 하급자를 사로잡고, 협상 카운터파트너나 이해관계자 모두를 마음으로부터 승복시키는 인격적 감화 능력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역시, 결과 지상주의로 흔히 오해되기 쉬운 맥킨지의 사훈, 경영 지향에서 결코 하위 순번에 밀리지 않는 가치 중 하나입니다. 태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사원의 마인드에 정확하고도 바람직한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 이상, 그 인재는 장기적으로 바른 성장과 건전한 비전을 확립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가 이해하고 제시하는 맥킨지의 정신입니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임시통변을 위한 고식적 처방"이 있고, "판에 박힌 관성적 해결책"이 있으며, "근본적이고 창의적인 솔루션"이 따로 있습니다. 저자는 이 중 마지막 옵션의 이상적 대안으로, 프레임워크로서의 "로직 트리" 모델을 제안합니다. 저자가 맥킨지식 모델로 예시하는 프레임워크 중에는 이 외에도 "포지션 매트릭스"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대안이, 당면 문제만 아슬아슬하게, 잉여의 성과 없이 해결한다면 그 방안은 아마 재활용이 어려울 것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맥킨지식 섹시한 문제 해결"이란, 개별 과제의 능숙한 마무리 외에도, 범용의 투입가능성, 나아가 행위자의 창의적 주도/참여를 통해 성취감과 의욕까지 고취시키는, 프로페셔널의 자긍심에 어울리는 총체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게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라는 평판에 어울리는 성취를 보이려면, 자질, 능력, 태도, 마인드 등 전방위적 수월성이 요구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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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싸움에도 지름길이 있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5-3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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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말싸움에도 지름길이 있다

앤 딕슨 저/이미숙 역
부자나라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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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논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주제로 다룬 어느 국내 저자의 실용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회 생활이 아무리 도리나 규칙을 준수하는 식으로 영위된다 해도(혹은 그렇게 믿으려 애쓴다 해도) 결국은 근본 성격면에서 전쟁과 다를 바 없기에, 자기가 손수 쓴 책을 통해 "이기는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는 분의 말이라면 한번 들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들어서였습니다. 책을 펼쳐 본 결과, 너무도 실망스러운 그 내용에 거의 경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논쟁에서 승리한다"기보다, 자신이 명분과 논리에서 밀릴 때, 어떻게 하면 치욕적인 패배를 면하고 지저분한 논점 흐리기로 최소 무승부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테크닉은 조금만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껴 봐도, 그리 지능이 높거나 성격이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언젠가는 터득하거나 몸에 배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다 알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부끄러운 술책들이라 대놓고 꺼내기 주저하는 것들을, 책의 저자라는 사람이 그토록이나 자랑스럽게 출판물이란 수단을 통해 세상에다 공표하는 행태.... 이런 분이 있으니 사회 분위기가 갈수록 혼탁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아연할 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와는, 기본적으로 잡은 스탠스부터가 다릅니다. 우리 동양인들, 특히 일본 쪽 처세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포인트 중에, "논쟁에서 이겨 봐야 아무 소용 없다. 당신과의 논쟁에서 패배한 자는 생각을 바꾸기는커녕, 당신을 향해 앙앙불락하며 언젠가 비겁한 방법으로라도 설욕할 기회만을 노리며 절치부심할 것이다." 같은 게 있습니다. 서양에서, 깨끗하고 완벽한 논리적 우위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높이 평가하는 것과는 천지차이가 나는 분위기지만, 이것이 우리 동양 사회를 지배하는 기조에 가깝기에, 저 처세훈은 따를 만한 가치와 무게가 있습니다. 헌데, 서양인 저술가 중에도 "결국은 별수없는 인간 본성의 감정적 속성"에 주목하여, 대립하는 상대를 어떻게 하면 마음으로부터 승복시킬 것인지에 주안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는 예를 근래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 책의 저자 앤 딕슨은, 속된 표현으로 "어그로를 끌면서 논점을 흐리거나", 반대로 복싱, 펜싱에서처럼 정격, 교과서적인 테크닉으로 상대를 꼼짝없이 제압하는 토론의 기술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최고의 가치를 두는 덕목은,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패하는 수법"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안심하며 전쟁에서 승리하게 가르쳐 주는 원칙"입니다.

흔히 "지름길"이라고 하면, 뭔가 정도(正道)를 거치지 않고, 남의 눈을 속이며 편법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매너를 슬쩍 암시하기도 합니다. 저자 앤 딕슨 박사는 그러나 그런 의미를 품게 하기 위해 이 단어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옳고 바른 길은, 결국 궁극적 목표를 가장 빨리 달성하게 이끄는 길이기도 하다."는, 역시 "정석이 최상의 방편"이라는 원칙적 도그마에 아주 충실한 논의를 펴고 있습니다. 말싸움에서 졸전을 펴고 규칙을 어기면서 무승부로 무마하는 술책과는 달리, 이 책은 "상대에게 나와 대등한 인격 존엄을 부여하고, 누가 더 빨리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의 논점을 파악하는지의 경쟁으로 전환, 결론적으로 소모적 논쟁의 우회로를 생략하고 건설적 논쟁으로 싸움의 성격부터를 미리 바꿔 놓는다."에 가깝습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특히 "솔직한 소통, 수평적인 소통"에 주력함으로써 논쟁 후 잔여 분쟁의 소지를 미리 최소화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저자는, 글이 아니라 상대의 진의가 바로 드러나는 표정, 어조가 관측되는 "사적(私的)인 관계"의 가능한 한 확대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논쟁에 있어서, 일단 아무리 잘못이 큰 사람이라고 해도 일방의 비판(설령 그것이 논리적이고 타당하다손 쳐도)을 받는 중에는 누구나 다 "불평등하고 공적(公的)인 자리에서 모욕을 받는다"고 여겨, 이에 대해 자존을 지키는 방식으로 대응(그 대응이 설사 온당치 않은 것이라도)을 펼친다는 거죠. 이렇게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확전이 이어지면, 그 조직은 그칠 줄 모르는 분쟁의 상처에서 회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면 온정과 이해가 지배하는, 사적(私的)인 소통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로, 회사는 구성원들의 최대 최선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책의 요지입니다. 생산적 성과를 보장하려면 공과 사를 무조건 준별해야 한다는 선입견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는, 참고할 만한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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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5-3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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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김병완 저
아템포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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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연구원으로 재직하시다 퇴사 후 자신만의 독서 요령을 개발, 수많은 독자와 청중들에게 "독서에도 남을 앞질러 뛰어난 성과를 달성하는 지름길이 있음"을 일깨워 준 김병완 소장님의 저술입니다. 독서에 과연 요령이 있을까요? 그저 정직하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 방법론이라야 독자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요? 설사 요령이 있다 한들, 그 요령을 따라 행한 독서는 진정한 인문 소양이나 기술적 지식 습득에 큰 도움이 안 되거나, 최소한 장기적 효과를 창출함에 있어서는 뭔가 미흡한 결과만을 낳는 것 아닐까요?



사실 두루두루 효과를 보는 독서법의 타당성이란, 더 큰 사이즈의 샘플과 더 장기간의 시간적 추이(독서법의 가시적 성과에 대한)를 지켜봐야, 그 탁월성이나 효용을 논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중에도 그런 표현이 등장하듯, 김 소장님의 강연을 들은 많은 청중들은 "세상에 그런 독서 방법이 다 있었나?" 하는 충격, 각성에 전율을 느끼는 이(그렇게 고백한 이)들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당시 시간이 없어 먼발치에서 잠시 구경할 수밖에 없긴 했으나 소장님의 강연에 한 번 참관한 적도 있는 저로서는, 카리스마적 전도사 유형이라기보다 착실한 모범생처럼 진정성 있는 매너로 승부하시는 듯한 인상의 김 소장님이, 현장의 반응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진위를 의심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마 김 소장님에 감화(?)된 많은 독자, 청중들도, 예컨대 관객을 휘어잡는 어떤 마력 때문에 그의 강연, 저술에 매료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현대 한국에서 잘나가는 강사님들 상당수가 그러하듯, 친절하고 진실성 있어 보이는 전달 방식이라든가 그 컨텐츠의 실속에 더 끌리는 게, 그 성공과 인기의 비결이자 진짜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김 소장님은 이 책에서, 먼저 왜 책을 읽고 인문 교양을 쌓아야 하는지, 주로 본인의 체험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독서가 근래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기계발(통속적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의 주요 발판, 기반으로 활용되는 게 대세이긴 합니다. 하지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뚜렷한 동기의식이 갖추어지지 않는 독서가 그 능률이 오를 리 없습니다. 먼저 목적지향이 분명히 그 마인드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하며, 독서를 통한 지식이나 기능, 나아가 사태의 이면을 꿰뚫는 안목이 발전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를 위해 김 소장은, 독자에게 빈틈 없고 지속성이 긴 양질의 동기를 심어 주는 데에 우선 주력합니다. 실제 강연에서도 그렇지만, 이 부분 설명하시는 모습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어느 두 편으로 나뉘어 꼭 날카롭게 대립하는 상황이 아니라 그저 일상이라고 해도, 기껏 힘주고 성의를 들여 설명해 주었더니, 김빠지는 허무주의로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은 어디에나 꼭 있습니다. 김 소장님도 어떤 이의 반응이 꽤 마음에 거슬리셨는지, 미리 이 책에서 최종의 방어 변론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애써서 독서를 하면, 결국 뭣에 쓰는 건가요?" 이에 대해 김 소장은, 한국인인이 지난 팔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외경감으로 대해 왔던, 2500년 전 춘추시대의 성인 공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공자의 삶은 대체로 빈한하고, 푸대접과 질시, 방랑과 회의감으로 가득찬 역경에 가까웠다. 제자 자공의 정치-경제적 수완, 자로의 실력 행사가 아니었으면 그의 삶은 더 피로한 상황 속에서 일찍 종료되어, 제자 양성이나 유방백세의 결과를 낳지 못했을 것." 한마디로, 루저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는 범주가 아니었던 공자의 인생에 대해, 우리는 과연 "그렇게 살아서 뭐할 건데?" 같은 경솔한 조소를 날릴 수 있느냐는 반문입니다. 독서로 삶의 양적 지표가 당장 개선되는 바는 없어도, 질적인 깊이, 보람은 눈에 띄게, 또 비교적 단시일 안에 그 효험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말 그대로 초의식 독서법, 저자만의 노하우가 예쁜 편집과 함께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 파트는 출판사의 편집, 레이아웃 솜씨가 특히 빼어나게 이뤄져 있는데, 처음에는 진짜 독서노트에 밑줄, 강조, 부각의 가필을 한 실물을 사진촬영한 이미지인 줄 알았습니다. 강연에서는 여러 장비의 도움이 있어서 이해가 어렵지 않은데, 정작 "책"이란 지면매체, 2차원 미디어로는 전달에 한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초의식이란 어구에서, (김 소장님도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책에 적어 놓으셨지만) "초"는 "초(超)"나 "초(秒)"가 아니라, "초(抄)"입니다. 책의 키워드나 주요 논지를 읽으면서 동시에 노트에 적는 방법인데, 사실 학창 시절에 공부깨나 하셨을 김 소장님이 아마도 암기과목 사항 정리할 대목에서 일찍이 자주 의존하셨던 메써드다 싶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겉치레 독서에서 남는 바가 클 리 없고, 텍스트를 초(抄)하면서 저자와의 쉼 없는 대화, 그리고 독자 자신과의 유기적인 소통이 이뤄질 때, 투자한 시간자원의 기대효용이 남김없이 달성되는 뿌듯한 독서가 완성될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필사"와도 맥이 통하며, 그에 대해서는 초의식 독서의 양적 확장 혹은 근친 관계로서의 방법론으로 김 소장님은 찬의를 보내고도 있습니다. 독서의 규격적, 혹은 메타적 선순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도와 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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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그 한마디에 꽂히는가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5-05-3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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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람들은 왜 그 한마디에 꽂히는가

샘 혼 저/이상원 역
갈매나무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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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등의 저술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이끌어낸 샘 혼 박사님의 신작입니다. 이번 저서 역시 "무난하고 안전한 요령 정리 제시" 대신, 저자 특유의 진취적이면서도 실무적 효용에 주안을 둔, (어떤 건 다소 리스키하다 싶기까지 한) 여러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엮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가르침은, (이 책 본연의 취지와도 통하지만) 읽고 난 후 머리에 강렬하게 남는 바가 많다는 게 두드러진 특징인데, 어떤 챕터, 어떤 문장 하나도 독자를 자신의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대단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 유리한 가격대의 상품을 갖춘 몰이라고 해도, 소비자의 눈길을 한눈에 잡아채지 못하면 존재 목적이 의심스럽게 됩니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글, 말, 기타 일체의 호객 제스처에 다 통하는 원칙일 것입니다. "파는 입장에서, 오직 하나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이란 한 마디의 maxim이, 이 책 전체 내용을 다 요약해 주지 싶습니다. 출시 초기에 다소 모험 아이템이라 여겼던 스마트폰(LG 남용 부사장이라든가, 노키아, 모토롤라의 오판은 유명한 예죠)이 시장의 패러다임을 통째 바꿔 놓은 것도, 단 1초라도 정신이 외부 변화에 업데이트되어 있지 못한 상태를 배기지 못하고, 지루한 시간을 도통 견딜 수 없는 현대인의 변화된 생리를 한복판까지 꿰뚫은 소산입니다. 하물며, 고객에게 물건과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 벤더의 자세라면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 책은 일상과 비즈니스상의 대화에서, 어떻게 하면 청자(listener)를 자신의 화제에 붙들어 맬 수 있는지, 그 실질적인 요령을 독자에게 일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 샘 혼의 책이 언제나 그래왔듯, 이 책에 제시된 노하우들은 개인 단위를 넘어 "업체"의 영업 원칙에까지 이어집니다. 기업의 실무담당자라면, 몰의 구조나 웹페이지를 디자인함에 있어, 상위 틀의 근간이나 세부 페이지의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이 공간은 내가 아니라 고객들의 눈으로, 귀로, 체험되고 다가가져야 하는 곳"이란 전제에서, 운용에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중요한 원칙, 언제나 명심되어야 할 기본 명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감각이 탁월한데도 종종 실패와 질책이 따르는 이유는, 지켜야 할 원칙을 잊거나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인트리그(intrigue)라고 하면, 사람을 혹하게 해서 "꼬시는" 동작, 언사, 표정 등의 거동을 가리키는 동사(verb)입니다. 우리가 통속 소설의 재미가 굉장하다고 할 때, 형용사 intriguing을 쓰는데, 이 동사에서 파생한 형용사입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듯, 말하는 이, 설득하는 포지션의 언사나 표현, 또는 쇼핑몰이 총체적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로 방문자들을 사로잡는 양상도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단어 intrigue를 애크로님(두문자)로 삼아 논의의 각론을 전개해 나가는 모습은, 주제어를 활용한 하나의 서술 양식이랄까 전통으로 우리 독자들이 여타 자계서에서 흔히 봐 온 바입니다.

서두가 중요하다는 건 예전부터, 마케팅 원칙의 확립이나 심지어 자본주의가 성숙기에 접어들기 전부터도, 대중에게 읽히는 통속 글쓰기 원칙으로 널리 강조되어 왔습니다.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 강조" 등은 다른 저자도 하는 말이지만, "사람 얼굴만큼 흥미로운 지평은 없다"라든가, "상대가 거절하는 이유를 먼저 나꿔챌 것","(이 인트로의 단계에서부터) 나쁜 상황의 반전을 위한 킬러 라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그녀만의 컬러가 진하게 입혀진 대목이죠. 여담이지만, 샘 혼의 특히 이 아이디얼 인트로 모델에 있어 실제적 적용이 어떻게 현실에서 이뤄지는지를 보려면, 제프리 디버의 단편 소설 <주말 여행객>에서 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강조 포인트가 다 실려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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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My Reviews & etc 2015-05-2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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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변신

프란츠 카프카 저/박민수 역/남동훈 그림
꿈결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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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카프카의 모든 작품이 10대 청소년들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건 아니지만, 이 <변신>만큼은 어느 권장 목록에서도 예외 없이 그 전체를 빛내는 필수 요소로 꼭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시절 유수의 출판사들에서 찍어낸 세계 문학 전집에도, 이 "변신"뿐 아니라 <성채>, <선고> 등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내 몸이 벌레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내게 베풀어 주던 따듯한 정과 사랑은, 하루아침에 냉대와 멸시, 적대감으로 돌변했다... 너무도 유명한 설정이라, 카프카를 설령 모르는 이라 해도 이 대목만은 반드시 어디애서 한 번은 들어 보았을 겁니다. 사실 카프카의 최초 창작 이후 실로 많은 작가, 예술가 들에 영향을 주어, 21세기를 사는 이라면 어느 다른 문예 영역에서 어떻게 "변신"한 형태로든 저 모티브를 접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책의 표지에는 카프카의 사진이 큼직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 모습 역시, 마치 앤디 워홀이 작품으로 빚어 놓은 그 표정의 마릴린 먼로 얼굴이 하나의 아이콘으로 대중 사이에 확고부동한 자리를 잡았듯, 우리들에게는 (개별 작품은 물론) 작가로서 카프카 본인의 명성보다 더 널리 퍼진, 실로 유례가 드물 정도로 유명한 이미지입니다. 이 책에 실린 <선고>에 나오는, 캐릭터 "아버지"의 한 대사처럼, "그래, 넌 본질적으로 순진한 아이지, 하지만 넌 동시에 악마와도 같은 녀석이었어!"(아니, 이 얼마나 기막힌 형용모순일까요)에서 구현하는 실상의 인물이 존재한다면, 바로 저 사진의 카프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분명 선하고 티없는 성품을 드러내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뾰족 솟은 귀의 모양은, 정말 악마의 전형적 심상을 부분 대변하고도 있습니다. 볼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한 "작품적 표상"이 저 사진입니다.


카프카의 소설은 전혀 안 그런 듯하면서도(이야기 자체는 시원시원하고 해학적인 게 많죠) 난해합니다. 과거 일본어 중역 성인본을 읽었을 때에는, 워낙 작품의 형식도 파격적인 데다(이 책에서도 그 점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번역한 문장이 명료하지 못해서, 다가서기 더욱 어려웠습니다. 이 박민수 선생님의 옮김은, 마치 1920년대 한국문학 초기의 단편을 읽는 것처럼, 우리말로 읽어내기에 전혀 장벽이나 어색함이 없는, 자연스러운 문장이라 좋습니다. 한국에서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이시니만큼, 우리 독자는 전적인 신뢰와 함께, 그 번역에 속속들이 용해되고 침투해 있을 "해석"을 영접해도 될 것입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음이 매우 상쾌해졌다는 그 개인적 느낌에 두고 있습니다. 예전에 카프카를 두고는, 읽고 나면 저는 (감정이 아닌 생리적 반응의 일종으로서)머리가 아파 왔습니다. 카프카의 작품뿐 아니라, (당연히, 다른 사람이 쓴)그의 평전을 읽고서도 마찬가지였죠. 종래의 카프카는 제게 골칫덩이 그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문장의 의미가 명료하게 들어와서, 독자가 텍스트 자체에만 마음 놓고 빠져 들 수 있게 도와 주었습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사실 어떤 언어로 옮겨져도 본연의 의미가(최소한 그 주제의식의 요체만은) 다이렉트로 독자의 의식에 전달이 되어야 정상이라고 봅니다. 게으른 독자가 흔히 즐기는 게 번역의 핑계지만, 번역도 독자를 도울 수 있는 범위까지는 최대한 돕는 게 그 본분일 것입니다.



<변신>. 저는 전에, 어제까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믿음직한 청년 가장에게, 그 쓸모가 완전히 제거되고 혐오감만을 부추기는 외모로 바뀌고 나서, 냉정히 등을 돌리는 가족들의 비정함, 몰인정, 이중인격 등을 비판하며, 인간 본성의 간사함과 잔인함(자기 귀책 전혀 없이 그런 흉측한 운명을 맞은 그레고르는 그들의 혈육입니다)을 풍자하는 소설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산뜻한 번역으로 맞은 <변신>은, 그런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군요! 이 책을 읽고 제가 처음 받은 충격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일단 시점이, 젊은 외판사원 그레고르 잠자 중심이긴 합니다. 그러나 잠자의 오감을 통해 관측된 바가 독자에게 잘 전달되고 있어, 독자는 그레고르 외에 다른 인물의 심리에 대해서도 세부적 추측이 가능합니다. 결정적으로, 소설 후반부 그레고르가 죽고 난 후에도, 그 "남은 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이 "중계가 끊이지 않은 방송 사고처럼" 독자에게 이어져 기록되고 있습니다. 소설의 어조가 그레고르 편향이나 동정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작품에서, 독자는 그레고르에 지나친 감정 이입을 할 필요가 없고, 그걸 오히려 막는 게 작가의 의도에 가깝더군요. 물론 그레고르는 비난할 구석이 한 점도 없는 착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한 그날 아침에도, 그레고르는 출근 기차 발차 시각에 늦을 걱정, 출근 후 관계자들에게 뭐라고 해명(변명이 아니라 해명입니다)할지만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재변을 맞이했다면,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을 텐데 말이죠(내 몸이 괴물로 변했는데, 지금 회사나 가족이 문제인가요!). 그레고르는 일상과 생계 활동에 찌든 나머지, 개념 원형적으로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이미 오래 전부터 바뀌어 있었던 겁니다. 물론 그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 집에서 아무도 경제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그의 세 식구(양친, 누이)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며, 그 다음이 각박한 사회 풍조입니다만, 일단 이건 논외입니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바뀐 후에도 의식은 여전히 사람의 그것이기에, 직립 자세를 시도하니 하반신이 찌르는 듯 아파 왔다. 다리를 접으려 하니(두뇌의 명령) 오히려 펴졌고(신체의 반응), 다리를 바라보니 저렇게 가느다란 것으로 어떻게 몸을 지탱할지 걱정이 밀려 왔다 등, 정말 벌레로 바뀌어 본 사람이 진술하는 것처럼 실감이 뚝뚝 흐릅니다. 요즘 문학에서야 이런 기교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작품이 쓰여진 게 근 한 세기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아야겠죠.

그런데, 그레고르에게도 큰 잘못이 있습니다. 세상에... 그게 뭐냐고요? 벌레로 바뀐 후, 그 벌레로서의 삶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는 인간으로서 존재규정이 이뤄졌던 과거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현실을 외면한 채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려 들었습니다. 그레고르의 운명이 급변한 최대의 실수가 뭘까요?(물론 그 실수를 하든 안 하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겠으나) 제 방에서 기어나와 여동생의 연주회(?)에 참석하려 든 겁니다. "나는 인간이다. 이런 음악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자가 벌레일 수 있겠는가?" 진짜 인간이었다면(이미 부질없는 희망입니다만) 자신의 행동이 몰고 올 파장을 생각해서 자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모습을 하숙인(한때나마 실적이 좋았던 시절의 잔재로, 그레고르의 집은 중류층의 거소치곤 큰 편입니다. 그래서 그레고르가 실직을 한 후, 식구들은 하숙을 치기로 결정했죠)들에게 드러내어 상황을 재앙으로 만들었으니.....



그레고르가 가장 사랑했던 혈육은 누이동생이었습니다.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최근 외판원으로서의 실적 감소, 기본적으로 지고 있는 빚) 때문에 부모님이 반대할 게 거의 분명하지만, 그는 자신의 평소 성격과는 정반대로, 따로 날을 잡아 동생을 음악 학교에 진학시키겠다는 확정적 결의를 발표할 작정이었습니다. 이 점을 동생도 알기에, 오빠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고, 적어도 벌레로 변한 초기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우리 독자는 이 누이동생이 그레고르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기(轉機)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 자신이 취업을 하고나서부터입니다(당장 생계가 곤란하니 달리 방법이 없죠).

특히 이 누이동생은, 자기 일자리를 잡고나서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오빠의 방을 청소하되, 벌레가 서식하는 장소에 어울릴 만큼만 청소하고, 사람이었을 시절 쓰던 가구를 방에서 다 들어내자고 합니다(그래야 벌레답게 마구 돌아다닐 수 있으니). 엄마가 대청소를 하러 오빠 방에 들어가면, 막 울면서 말리기까지 하는데, 이게 오빠 모습을 보고 놀란 엄마가 충격으로 돌아가실까봐 걱정이 되어서만은 아닙니다. 사회 생활을 해 보니, 어느 존재든 그 생존(이 생존을 두고, 후에 사르트르는 "실존"으로 의미의 격상을 이룬 겁니다)에 어울리는 의식이 따로 존재한다는 거죠. 사람은 사람으로서, 벌레는 벌레로서. 우리도 저 벌레("변신"은 불가역입니다)에게 가져야 할 태도가 어느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이 딸은 어머니에게 가르쳐 주려 했던 것입니다.



하숙인들 앞에서 사고를 친 후, 누이동생은 어머니에게 절규합니다. "저건 이제 나의 오빠, 그리고 엄마 아들이 아니에요. 저건 그냥 벌레라구요! 인간이라면 배려하는 마음에서라도 이렇게 우리를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겠어요?" 그레고르는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었고, 그의 식구들은 그 점 때문에 그를 벌레로 단죄합니다. 묘한 모순이나, 이 행동의 책임은 그레고르가 다 지게 됩니다. "존재, 본질보다 실존이 우선한다"는 명제는 여기서 확인됩니다. 그레고르의 죄는? 엄연한 실존을 부인하고 자신이 인간이라는(이었다는) 허위의식을 앞세운 죄입니다. 마치 돼지와 아Q가 생업은 도외시한 채 망상과 허위의 롤플레이잉에만 몰입하는 추태나 다를 바 없죠.

누이동생은 계속 비탄에 젖어 오빠를 봉양하고, "내가 음악가가 될 수도 있었는데..."라며 현실을 한 치도 직시하지 않으려는 고집을 부리며 퇴행에 머물 수도 있었을 겁니다(아주 고집이 센 성격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현실을 긍인하고, 사환 비슷한 자리나마 직장을 잡아 사회에서 단 몇 푼이라도 돈을 버는 쪽을 택합니다(엄청 하숙인들이 지루해했다는 걸로 봐서 설사 진학을 했더라도 이미 나이가 늦었을 뿐 아니라 재능 부족 탓에 연주인으로서 큰 성공을 못했을 가능성이 크죠).

아버지의 모습도 눈여겨 봐야 합니다. 그레고르는 그 운명의 저녁 밖으로 나와서 자신에게 사과를 던지려는(유명한 장면이죠) 아버지를 보고, "우리 아버지가 저처럼이나 꼿꼿한 자세로 늠름해진 적이 있었나?"는 놀라움에 빠집니다. 그의 부친은 생의 전성기에도 언제나 루저처럼 움츠려든 모습이었는데, 아들의 실직 후 좋은 자리 하나를 잡더니 눈빛이고 태도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그새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활력을 무엇으로부턴가 얻은 후 참된 행복과 원기에 가득찬 거죠. 그레고르는 이에 그만 체념하고,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또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아버지가 대단히 영악한 인간이란 점입니다. 그는 어느 사업가에게 큰 돈을 빌리고 변제하지 못해, 채무 이행 대신으로 아들을 그 사업가의 직장에 취업시킨 건데, 급료를 받고 생활비를 쓴 나머지를 모두 빛 청산에 쓰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자기 가족들도 모름) 비상금 조로 저축을 해 놓았던 거죠. 그레고르는 따라서 이 식구들에게 두 가지 점에서 혜택을 준 셈이고, 보통 독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대목이죠.

결론적으로, 그레고르가 변신하기 전에는 가족들이 그레고르 한 사람에만 의존하는 기생충들, 벌레였고, 그레고르의 변신 후 가족들은 "내 앞가림은 내가 건사해야 한다"는 각성으로 비로소 인간이 된 겁니다(대신 그레고르는 벌레로 남음). 한 사람이 희생하고 세 사람이 거듭나게 된 결과랄까요. 보통 이 작품의 줄거리를 두고 그레고르가 골방에서 죽은 후 가족들이 크게 안도하는 걸로 이해되는데, 그 전 이미 일자리를 잡고부터 이 가족들은 "기생 생활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큰 축복을 받은 겁니다. 다만 그레고르의 존재 때문에 그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그레고르가 죽고 난 후, 이 가족들은 비로소 "왜 자신들이 구원받았는지" 알아차린 겁니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건 마지막으로 고용되어 들어온 파출부입니다. 그녀는 체격이 좋고 배짱 가득하면서도 눈치가 매우 빠른 타입인데, 밑바닥에서 오래 부대끼며 무엇이 생존 비결인지 훤히 터득한 소치입니다. 카프카는 아마, 잠자 씨네  세 식구가 지금처럼 열심히 계속 살면, 언젠가는 이 파출부의 상태에 수렴할 것으로 암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파출부는 벌레 그레고르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훤히 파악한 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처합니다. 그레고르의 죽음을 알린 후 고용인 잠자 씨 식구들에게 "제가 그 죽은 찌꺼기를 치웠어요. 잘했죠?"라고 물었을 때, 이 파출부는 실로 놀라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통찰과 기민성을 발휘한 겁니다. 그러나 하필, 잠자 씨네 세 식구는 그때 하필, 그 의식이 인간으로 잠시 돌아와 있었던 거였거든요. "우리의 해방이 그레고르의 변신 덕"이라는 깨달음만큼,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이 순간 그레고르-벌레에 대해선, 언급 자체를 금기시해야 마땅했습니다. 파출부가 마땅히 받아야 할 칭찬을 못 받은 건 이 때문이고요. 이 작품에서 실존의 모범생 파출부는 따라서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카프카는 여기서, 인간이란 벌레나 마찬가지로, 그 의식이나 정신에 아무 존엄도 없이, 날마다 열심히 생체 작용의 명령에 따라 살아갈 뿐인 신세임을 말하는 겁니다. 몸은 비록 벌레이나 인간다운(?) 두려움, 망설임, 죄의식, 당황함 등으로 가득한 그레고르는 벌레 취급을 당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연민이나 동정 따윈 싹 잊은 채 일상에 충실한 모든 이들은 부지런한 인간으로 존중받습니다. 박 교수님이 후반부 해제에서 억압자/피치자 이대별 구조로 분석하시는 부분은, 상기의 이유로 제 개인적으로는 그에 대해 반대하는 편입니다. 

나머지 단편들은 아주 분량이 짧거나, 너무도 기발한 서사 구조를 갖고 있어서 독자를 놀라게 합니다. <선고>에 대해서는 이 번역본의 명료한 문장 덕에, 한 순간에 어떤 느낌이 오는 바 있었으나(카프카는 법학 박사답게 아주 치밀하고 논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다는 사실 다시 확인했습니다. 힌트는 곳곳에 숨겨 두고 있더군요. 공정하게도요), 서평이 너무 길어져서 그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이 아이디어는 제가 박사 코스 밟을 때 논문에 쓰려고요). 현대적이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 남동훈님의 컬러 일러스트, 그리고 박 교수님이 직접 그리신 "잠자씨네 저택 평면도"도 다른 번역본에서 볼 수 없는 멋진 소품들이었습니다. 제가 접한 중 "가장 예쁘고 명쾌한 카프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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