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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이무것도 안 하는 직업이라는 책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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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마리아 못된 마돈나 | My Reviews & etc 2016-01-3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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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던 마리아 못된 마돈나

박초초 저
나무옆의자 | 2015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모던걸"은 일본어로 "모갸루"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전통을 도외시하고 경박한 서구풍의 겉멋에만 찌든 여성을 비웃는 말로 쓰이기도 했죠. 그런데 이 말이 정말 음소상의 유의점 때문에 "못된 걸"로 형태상의 비틀림을 겪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널리 쓰이고 안 쓰이고의 차이지 강점기 당시 사회 일각에서 그런 우스개, 혹은 통찰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이 소설에는 아주 바람직한 신여성상의 미덕을 두루 갖춘 소위 "모던 걸"도 나오고, 그 반대의 왜곡된 이미지를 잔뜩 몸과 마음에 묻힌 빗나간 영혼도 등장합니다. 우리 민족은 여태 900여 회가 넘는 외침을 겪으며 간난 가득한 삶을 이어 왔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국권과 자존을 송두리째 빼앗긴 역사라면 이 일제강점기만큼 치욕적인 시기는 없었습니다. 이 시절을 민족적 양심과 자아 성취 욕구가 서로 반대 방향에서 길항하는 시대적 모순을 헤치고 살아 온 이들이라면, 오늘날 먹고 사는 문제, 그리고 민족 자존의 과제가 어지간히 해결된 현대의 눈으로, 각별한 동정과 관심이 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현재의 우리들 그 개성과 자부심, 상처, 이상을 형성함에 있어 지근거리의 조상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우를 둘러싸고 일본과 이뤄진 합의가 다시 한번 큰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나라나 민족이 외세의 마수에 짓밟히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집단은 여성들입니다. 몽골 족이 남긴 기록 중에는 "정복전이 끝나면 패전국에 남겨진 여성들이 지아비와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소리를 듣는 게 가장 큰 쾌감이다."라는 소름끼치는 대목도 있습니다. 광주학생운동도 통학길 여학생이 부당한 희롱을 일인 고교생들에게 당한 사건으로부터 촉발되었죠. 이 소설에도 아름다운 자태, 당찬 포부, 빼어난 지성, 그리고 조국과 동족을 향한 속 깊은 사려를 갖춘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며, 그들은 별반 예외 없이 식민 체제가 죄 없는 개인에게 부여한 모순과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고 삽니다.

소설 속에는 그 시대를 실감나게 재현한 여러 배경이 등장합니다. 스탈린이 붉은광장에서 휘하 병력의 "친열"을 받았다든가(보통 사열을 받았다고 할 뿐인데 일어식으로 한자를 막 줄여쓰는 관행이 드러나서 신기하게 봤네요), 히틀러가 광장의 행사에서 한 시간 넘게 열변을 토했다든가, 만주철도의 파괴, 봉천의 함락 등 시대상이 잘 드러나는 여러 서술이 작품에 무게를 더하는 것 같았어요. 당대의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하신 분답게 어휘 면에서 적절하다 싶은 표현이 많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매혹적인 미급" 이라든가(이 역시 일본식으로 막 줄여쓰는 그들 특유의 조어죠)...

"카추샤의 노래"는 다 알다시피 톨스토이의 명작 <바스크례시니에>, 즉 <부활>을 모티브로 창작된 당대(강점기)의 유행가죠. 이런 문화적 소재가 딱 필요하다 싶은 곳에 쓰여서 작가님의 의도가 한층 잘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 유학은 아직 가는 사람이 드물어서..." 같은 신흥국이라고는 하나 이 당시의 미국은 자체적으로 기반 튼실한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었으며, 그저 생산력만 무지막지하게 키우던 거대 공업 단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에게 충분한 지점을 제공할 수 있는 문화의 생산 기지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습으로나 지금 G2라며 뻐기는 태도로나 여전히 뭔가 촌스럽고 야만적인 중국과 비교할 바가 아니죠.

어느 시대에나 개인은 그 소속 집단과 시대가 요구하는 바, 그리고 자신의 정직한 내면이 갈망하는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마련입니다. 모던 걸이든 못된 걸이든 억눌린 욕구가 비틀어 놓은 괴물화한 자아가 아니라 내면의 정직한 소리를 듣는다면 다 제 나름대로 매력적이게 마련입니다. 문명의 세례를 한껏 받아 화사한 미를 갖추지 않더라도,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수수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으로도, 한 인생이 세상에 움트고 나와 호흡하고 마침내 시드는 의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이라는 이민족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고 남긴 흔적이 비단 군사적, 경제적 침탈 같은 것뿐 아니라, 이처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문제에까지 그토록 큰 영향을 남겼다는 사실, 생각해 볼수록 마음이 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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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 /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서평이벤트 2016-01-3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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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16,800원








42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2천5백만 부가 팔려나갔지만,

출판 당시에는 '실패작'으로 낙인찍혔던

<위대한 개츠비>의 숨겨진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들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모린 코리건은 자타공인 《위대한 개츠비》의 열성팬이다. 이미 이 작품을 50번도 넘게 읽었고, 전국을 돌며 이 작품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 역시 처음 읽었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될 줄 전혀 몰랐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는 미국의 역사적, 사회적 사건 속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게 되는 여정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위대한 개츠비》만을 위한 독서 에세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지만, 이 작품이 왜 훌륭한지, 왜 고전 목록에 오른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그 매력을 다각적으로 풍성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소설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뜨겁고 치밀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개츠비》의 마력은 시와 같은 힘찬 문체에 있다. 미국 사람의 일상 언어가 다른 세상의 언어로 변한다. 그뿐 아니다. 우리가 어떤 미국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콕 짚어내는 힘도 있다. 지금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이다. (13쪽)

이 책은, 무엇보다도 내가 장 사랑하는 소설로 떠나는 개인적인 여행이다. (25쪽)





📖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서평단 모집


인원 |  총 5명

기간 |  ~1월 31일(월) 까지

발표 |  2월 1일(월)


신청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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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글에 덧글로 스크랩 주소<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나의 느낌을 짧게 적어주세요.

예) 영화로만 보았는데,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요~


* YES24에 입력한 개인정보 및 주소가 실제와 같은지 확인해주세요.


활동방법 |

1. 도서를 받고 2월 15일까지 YES24에 리뷰를 작성한 후

2. 당첨자 발표 글에 리뷰글 주소를 남겨주세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모린 코리건 저/진영인 역
책세상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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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루팅의 정석 | YES24 파블미션(舊) 2016-01-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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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크루팅의 정석

문충태 저
중앙경제평론사 | 2016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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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대학 동기는 아니고요) 중에 이 리쿠르트분야에 종사하는 애가 있습니다. 얘한테 들은 게 있기 때문에 누가 이것 관련 화제를 (잘 모를 만큼) 꺼내도 바로 이 이야기구나 하고 알아챌 정도가 됩니다. 과거에는 영업직에 종사한다고 하면 잘 이뤄지던 혼담이 바로 깨지는 정도였습니다. 영업직이란 본래 나머지 90%(정확히는 그 이상)가 고전하고 위태로운 처지라서 그렇지, 실적 좋고 유능한 상위 몇 %는 일반 월급쟁이보다 훨씬 고소득자들이죠. 이런 인식도 과거에는 거의 동의를 얻지 못해서, 말 그대로 탑클래스 영업직도 혼처 물색자들로부터 괄세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고급 승용차 키를 보여 주고 평수 큰 집에 데려 가도 소용이 없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풍습이겠죠. 물론 요즘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없고, 다만 상위 몇 %는 좀 다른 처지겠구나 같은 평판이 좀 확산된 정도죠.

영업직이라는 게 구직자 입장에서도 큰 함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맥과 연줄로 어찌어찌 목표량을 상회하면 위에서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런데 어디 커넥션이라는 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운 곳이 계속 생기던가요. 아주 큰 돈줄을 확보하지 않고서야(설사 그렇다고 해도 처음 몇 년이 고작이죠) 나중에 자기 능력이 따로 계발되거나 아예 천성이거나 하지 않으면 못 버팁니다. 위에서는 압박 장난 아니게 들어오는데 그 모멸감이란 웬만해선 못 감당할 정도고, 지독한 감정 노동이라 내부의 에너지가 어지간히 소모되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내가 성격이 좋아서 잘 적응한다"고 자기기만에 빠지지만, 나중에는 욕구불만과 성격왜곡의 요인들이 하나 둘 축적되어 인성 망가지는 예도 부지기수죠. 영업직이란 사실 "너도 해 봐"라고 권하기가 너무도 난감한, 거칠고 승산 없는 야생의 영역입니다. 상위 포식자만 (그나마 불안한) 평화를 누리는.

이 책은 참 다양한 현장의 사례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해당 분야의 달통한 전문가가 풀어주는, 지금 이 순간 이 섹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전형성을 보여 주는 사례 제시가 많은 책에 우선 신뢰가 가더군요. 책의 내용은 1) 일등 세일즈맨을 키우고 관리하는 방법 2) 그런 일등 세일즈맨의 자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천적 논의, 이 둘이 주입니다. 세일즈맨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이미 백 년 전부터 "물건을 팔아야 회사가 굴러갔던" 미국에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졌고, 그 오래된 원칙과 팁들이 절대 진리인 양 한국에서도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통용되었습니다. 다단계도 최근에 문제가 되는 것 같지만 이미 1990년대 초, 혹은 그 이전부터 크게 성행했죠. 지금 간혹 미디어에 노출되어 물의를 일으키는 어떤 분들은 어디서 그 많은 돈을 벌었을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다 다단계 해서 번 재산입니다. 당시에는 사회가 허술했던 시절이니까요. 이처럼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지만, 일단 일류 세일즈맨들은 자기 나름대로 분명한 사회적 강점과 경쟁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훤칠한 외모(사실 이게 중요합니다)라든가, 눈치가 빠르다거나, 언변이 화려하다거나..

그런데 저자께서는 "보다 근본적인 자질"에 대해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보는 시각은 확실히 피상적인 상황만 살피기 쉬운 우리들의 고정관념, 선입견을 저 먼 수준까지 넘어서는 통찰을 지닙니다. 이 책의 주제는 세일즈맨의 자질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흔한 편견을 기분 좋게 깨 주는 결론으로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이게 비단 세일즈 영역에 관심 있는 분들만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세일즈는 말 그대로 적자생존의 원칙의 칼날처럼 적용되는 자본주의의 압축판이며, 최상위 영업자들은 거동에서도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는 성공인의 표본입니다. 이런 자질을 익히면 내 사무 영역뿐 아니라 훗날 내 사업을 하나 가질 때 반드시 참고할 만한 자산이 생깁니다.

리쿠르트 활동(영업 사원 채용, 교육, 관리까지)은 이처럼 바른 이론, 유효한 컨셉을 익히는 것도 중요합니다만(이 대목도 통념을 깨는 내용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에 못지 않게 (어차피 실전에서 쓸 요령들이니만큼) 끊임 없이 몸에 배게 하고 현장에서 바로바로 튀어나올 수 있게 하는 체질화가 더 중요하죠. 인통, 심통, 소통으로 리쿠르트의 대원칙을 요약 정리하는 저자님이지만, 사실 이게 리쿠르트, 나아가 세일즈에 한정된 교훈이 아닙니다. 사회인이 이 거친 환경에서 제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한 시라도 빨리 성공인의 대열에 서려면 뼈 속 깊이 새기고 가다듬어야 할 금과옥조와도 같은 요구 사항이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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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 YES24 파블미션(舊) 2016-01-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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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크리스텔 프티콜랭 저/강주헌 역
나무생각 | 2016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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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타인의 말을 들어주기"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는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깨우치는 체험 못지 않게,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실천해 보는 단계도 중요합니다만, 일이 워낙 많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은데다, 본래 자신이 떠드는 걸 훨씬 즐기는 편이다 보니 애써 배운 바를 잘 체화했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분의 말을 들어 주는 건 그만큼이나 어렵고, 습관으로 몸에 배게 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분 전환도 할 겸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을 골라 읽어 보았습니다.

저자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해외에서는 이미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는 심리 치료 전문가이자 저술가이며,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로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던 저자라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 일반적이고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결론만 찾아 읽는(혹은, 주된 편집이 그쪽으로 의도된)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만(시간이 없으니까 요점만 취하자는 생각이죠), 저는 반대로 실제 사례가 많이 인용된 책이 더 신뢰가 가더군요. 핵심 결론을 추출하는 일은 물론 쉽지 않고, 해당 분야를 통달한 이라야 가능한 작업이긴 합니다만, 그 "일반화"라는 게 많은 오류가 수반될 수 있습니다. 설사 저자가 탁월한 추상화, 명제화에 성공했다 해도, 동일한 raw material을 두고 독자도 "나는 이 사례들에서 다른 교훈을 배워 보겠다."며 스스로의 힘으로 분석할 여지를 남기는 게 의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 저자 크리스텔 프티콜랭처럼, 자신이 겪어 온 고객, 환자들의 구체적 사례들이 많이 제시된 책을 접할 때 독서의 동기가 더 크게 부여되곤 했습니다.

서양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 중에 golden rule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통용될 수 있는 행동의 공평한 준칙이란 의미겠는데요. 기독교의 신약성경에 나오는 "네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행동하라."가 그 내용입니다. 우리 동양에도 유가의 금언으로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란 게 있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말을 하고 싶어 하며, 상대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이런 상반된 욕구가 동시에 부딪혀 말 그대로 "소통이 안 되는" 상황도 왕왕 발생합니다. 면전에서는 아닌데 간혹 전화를 하다 보면 어떤 강박 같은 게 있는지 상대가 말을 할  타이밍에 우격다짐으로 계속 자기 말만 소리 높여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 능력에 비해 의욕이 많이 앞서거나 자기 분야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인 이유가 크더군요.

전 이런 게 "문콕 테러" 심리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내가 좀 문 확확 열고 나가고 싶은데 웬 장애물이 버티고 있지?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사실 이런 게 자신을 객관화할 줄 모르고 타인과의 건전한 소통 방식을 어려서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우리네 실정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탓입니다. 누가 지적을 하면, "남들 다 하는 대로 했는데 왜 나만 걸렸지?"라며 무척 억울해하더군요. 다 자란 성인이 이런 행동 양식을 보이는 게 사실 끔찍하기도 합니다만(발달 장애의 전형),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주위(학교 친구, 직장 동료)와의 소통 능력,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혼자만의 폐쇄적인 영역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꼭 위기에 몰리면 혼자 힘으로 위기를 벗어날 생각은 않고 "연대 의식 부족"을 들먹이기도 하더군요.

역지사지. 남의 입장에 서서 나를 바라보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를 생각함이야말로 타인과의 성공적인 소통, 건강한 관계의 구축을 담보하는 비결입니다. 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을 객관화"하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객관화하는 일은, 먼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혹은 모르는지)"와 같은, 인식의 객관화, 혹은 반성 작업에서 시작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의 1장은 (많은 자계서들이 매우 자주 인용하며, 종종 깔끔한 도식화에 성공하곤 하는) 무지의 무지, 무지의 지,... 의 4유형을 설명하는 데에 할애됩니다.

(이 책의 1장에서 설명된 바) "나의 지/무지를 객관화하는 단계"가 끝나고 이를 토대로 "경청"의 미덕의 중요성으로 화제가 이어지는 식의 태도는 다른 자계서에선 제가 잘 보지 못했습니다만, 저자는 특이하게도 위의 토픽을 자신의 책 본론으로 이어가는 직접 근거로 삼고 있더군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여타의 동물보다 정교한 시각을 발달시켜 왔고, 상황 판단에 최적화된 대뇌 피질 구조를 진화시켜 왔습니다만, 정작 나 자신을 올바로 판단하는 데에는 매우 서투른 게 사실입니다. 반대로, 다들 서투른 "자기 주제 파악"에 성공한 사람은, 남들이 곤란을 겪는 phase에서 혼자 물 만나 고기처럼 매끄럽게 자신의 태스크를 수행해 나가는 특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전 무대리(무과장) 만화에서처럼, "그저 내가 못나서이겠거니" 쿨하게 인정하면 그때부터 만사가 편합니다. 정말 못난 인간은 내가 못났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고, 아예 뭔지도 모른 채  남일인 양 겉도는 식으로 현실 도피를 하려 듭니다. 남들, 특히 회사에서 누가 내 스타일, 근태에 대해 지적하면 일단 그걸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당장 힘에서 밀리니 건성으로 순간만 모면하고, 이후엔 또 유체이탈 모드니 그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모든 두꺼비 안에 왕자가 잠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비유는 아닙니다만(왠지 재벌의 숨겨진 핏줄이었다는 식으로 터무니없는 요행수를 부추기는 느낌이라서요), 나 자신을 치열히 응시하고 숨겨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저자의 취지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 장에서 특히 저자가 꺼낸 주장, "대부분의 행동은 최선의 선택이다"에 특히 관심이 쏠렸습니다. 단 이 "대부분"이란 말에는 함정이 있으니 읽을 때 주의를 쏟을 필요가 있겠습니다(무슨 뜻인지는 직접 읽어 보면 알 수 있고요).

3장에 나온 소통의 여러 양상 역시 아주 드물게 보는 논의, 소재는 아니지만 이 저자분이 다소 독특한 맥락에서 재구성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경청은 거품의 상호 작용이다" 얼핏 들어선 무슨 말인가 할 수 있지만 발화나 경청이나 알고 보면 어느 주체로부터의 확정적 인식, 객관적 주도 같은 게 없는, 두 거품이 만나서 형성하는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이게 터져서 둘 다 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쌍방이 만족하는 최상의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소통과 관계 형성에 있어 대부분 초보자인 우리들에게 해당될 뿐이며, 정말 고수를 만나면 이런 원칙은 안 통하겠지만요.

6장, 7장은 다른 책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팁과, 두 개 이상의 상황에 두루 응용할 수 있는 일반 원칙이 자상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압권"이라 부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은 "끼어들고 싶어하는 자아"입니다. 이에는 여러 발현태가 나와 있더군요. 고쳐 주고 싶어하는 욕구, 상대에 대한 과소 평가, 섣부른 가치 판단(대화가 망하는 지름길이죠. 관계 형성을 못 하는 사람은 이런 어설픈 거대 담론을 머리 속에 잔뜩 쌓아 두고 사는 사람일 수가 많습니다. 스스로를 신의 반열로 올리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감정 이입의 거부 등이 저자가 제시하는 유형화의 표본입니다.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돕더군요.

7장을 읽으면 아예, "듣기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란 느낌마저 듭니다. 남의 말을 들어 주는 건 얄팍한 선심을 쓰는 게 아닙니다. 남의 말을 들어서 "구원 받는 쪽"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의 말을 잘 듣기 위해 귀와 눈만 동원할 게 아니라 상대의 태도, 몸짓에 호응하고, 호흡에 박자를 맞추며, 감정상으로는 일관성과 진정성까지 확보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생각 없는 추종이나 부회뇌동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이 당면한 과제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객관화 작업의 기초라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내가 바로 서야 남과의 소통도 원활하다는, 오히려 바른 자아를 찾는 뿌듯한 여정의 일환이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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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리티를 찾아서 | YES24 파블미션(舊) 2016-01-3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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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리지널리티를 찾아서

김훈철,김선식 공저
다산4.0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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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한 명언이 이 책 주제의 상당 부분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 잠재력의 3/4을 상실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의미 없이 타인을 모방하는 것으로 잘못 설정한 인생의 좌표가 끼치는 해악이 그에 그치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남의 가치관을 추종하는 삶의 방식이, 그렇게 사는 내면에 근원적 불안을 야기한다는 거죠. 실제로 "공황 장애"같은 증상은 일분 일초를 쪼개어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오히려 자주 찾아 옵니다. 저 역시 업무 중에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같은 당혹스러움을 문득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을 진행하지 말고, 심호흡이라도 한 번 한 후 루틴에 복귀해야 합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이런 체험을 한 후 느끼는 불안감과 충격은 상당하고 기억도 오래가는 편입니다.

한국 사회는 단기에 고도 성장을 겪은 과정에서 "나 자신을 차분히 응시하고 내면에 몰입하는 과정"을 한가로운 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물질적 풍요를 얻게 되자 비로소 당연한 궤도로 복귀하게 된 겁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축복은, 낳아주신 부모님의 형질과도 반드시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조합 중 한 세트의 선택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축복을, 먹고 사느라 바빠서 혹은 주위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포기하고 다른 어떤 전형에 억지로 적응하는 삶이, 결국은 부작용과 불만, 그리고 불안과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치는 "사회화"와는 또 다른 개념적 영역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개별화한 존재라도, 자아실현과 성취를 자신이 속한 사회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뤄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진로를 걷는 방식은 사회가 정한 바를 따르되, 어느 지향성을 내면에 새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바를 골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모두 타인이 정한 바에 따라 삶을 사니, 숨을 쉬고 수족을 놀려도 마치 내가 아닌 타인의 조종에 따르는 꼭두각시 같은 위화감을 정신에서 거둘 길이 없는 거죠.

저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투입해도 근본적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는 인생은 만족을 느낄 수 없거나,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는 불행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설사 노력이 덜 기울여져도,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어떤 과제에 가장 능숙한지만 올바르게 파악한다면, 남들에 비해 소위 "가성비가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사실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란 부자연스럽거나 힘들 수 있고, "생각의 봄"을 맞이하는 사춘기 때에 이 과업이 충실히 이뤄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도 가르칩니다.

저자들은 물욕, 성욕, 명예욕 따위보다 인생의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게 "오리지널리티"라고 합니다. 내가 다른 누구 아닌 나임을 가장 강렬하게 확인하는 순간, 다른 정당화나 동기 유인을 마련하지 않아도 그 사람은 누구보다 큰 열정을 지니고 효율적인 선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리지널리티의 구조는 무엇으로 짜여져 있는가. 저자들은 정체성, 개인성, 창조성 등의 요소가 이를 구성하며, 그 외에 잘 발견되고 조화롭게 짜여진 오리지널리티가 지속될 수 있는 필수 조건으로 "성과"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성을 분석하는 대목에서, 저자들은 바르게 인식된 (자신의)개인성이 오히려 타인의 "다름"을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가 되고, 억지스럽게 형성하려 드는 수고 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재미있게 이루는 동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참으로 올바른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성"의 파악은 미시 단계에 머물지 않고, "우리"라는 거시로까지 확장되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습니다. "나-너-우리"로 이어지는 삼원적 관점이, 기계적, 획일적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기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에서, 관계와 개성과 협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바르게 지어진 개인성의 토대 위에 창조성, 즉 혁신의 씨앗이 움틀 수 있고, 이는 건실한 오리지널리티의 본질을 가꿉니다. 여기서 저자들이 잊지 않고 강조하는 바는, 성과 없이 오리지널리티만 허울 좋게 서 있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길은 결국 자기만족적인 독창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성과가 사회적인 양태로 지속적 재생산이 가능한 삶입니다.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정연하게 확인시켜 준 고마운 책을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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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부르는 결정의 힘 | YES24 파블미션(舊) 2016-01-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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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공을 부르는 결정의 힘

스티븐 로빈스 저/이종구 역
시그마북스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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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고귀함이 결정되는 알고리즘이 과연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부품(module)들의 단순합으로 이뤄지느냐, 그렇지 않고 플러스 알파의 다른 매개가 끼어드는가 여부로 판단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 세기 구조주의 담론이 큰 호응을 얻으며 등장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저 유기체의 부단한 대사 작용 그 로그 기록에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의의를 지닌다면, 기다란 연대기의 본문과 여백에 어떤 호흡을 불어 넣으며 잉크와 섬유 자원이 쓰였는지를 보고 최종의 판정이 이뤄질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 스티븐 로빈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우리들이 내리는 의사 결정의 합이다." 본문에는 "합"이란 글자 뒤에 원어로 sum이란 표기가 따로 이뤄져 있습니다. 외국어 중에는 어원상 아무 연관이 없고(따라서 의미상의 연계가 전혀 없는데도) 서로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어휘들이 있습니다. "합"이란 뜻을 갖는 단어 sum도 물론 라틴어에서 유래했지만 esse의 1인칭 단수 현재형인 sum(I am)과는 전혀 생성상의, 그리고 활용상의 공통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로부터 내려진 실천적인 의사 결정들의 합이야말로 그 인생의 본체를 결정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곰곰 반추하고 나면, 영어 sum과 라틴어 동사 sum도 어떤 필연적인 인과의 끈에 서로를 묶고나 있지 않은지 괜한 과잉추론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 독자들에게, 합리적이고 후회 없는, 그러면서도 최대 효율을 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려면, 먼저 자신의 개성과 특질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충동적이거나 감정 조절에 서투른 편이라면, 그런 이의 의사 결정은 냉정하고 침착한 이가 밟는 경로와는 차별되게 구축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어떤 이는 평균적인 조직인에 비해 빈약한 단서만으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며, 그 결정은 과도한 자기 확신으로 무장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성격과 능력 범위에 대해 전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단점과 장점에 대해 바른 판정을 내리는 작업을 언제나 꺼려하고, 그저 자신이 가지는 환상대로 자신과 주변 상황을 규정하고 싶어하는 뚜렷한 경향을 보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보고 듣는다." 21세기 들어 방 안에 처박혀서도 기초적인 생존 수단은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이런 배타적이고 완강한 고립형 행동 주체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사람은 여간 뛰어난 지능과 건강한 의지를 갖지 않은 이상, 네트워크 속에서 활발한 경제 활동 참여를 보이고 치열한 소통을 주도하는 체험을 하고서야 올바른 자아가 형성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럴싸하게 조작된 외관에 현혹되어 그릇된 의사 결정을 내리고, 거듭되는 실패 요인을 자신의 "의사 결정"에서 구하지 않고 외부 인자의 개입과 교란 때문이라며 오류로 가득찬 귀납 사고를 일삼습니다.

의사 결정은 결코 분리되어 이뤄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시 저자의 명제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인생은 우리들이 내리는 의사 결정의 합이다."  어느 순간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경우, 그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모든 것이 그르쳐진 게 아니라, 그의 인생 지난 과정 전체가 누적된 오류로 인한 총체적 부실에 빠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오류와 부실이 구조적 특성을 이룰 경우, 추가적 정보가 입수된다 해도 축적된 지식의 코르푸스 중 잘못된 부위에 접합되기 일쑤이므로, 그 정보가 아예 취득되지 않는 만도 못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저자는 그래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상의 선택"이라고 주장합니다. 잘못된 흐름을 미련스럽게 밀고 가느니보다, 아예 총체적 차단을 통해 국면 전환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 결정이 잘못되면서도 좀처럼 한 인생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 건, 그가 자라온 문화적, 경제적 환경의 영향을 두고, 행위자 자신이 불변의 상수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 정도면 괜찮은 성장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스스로를 기만하지만, 언제나 좁고 척박한 닭장의 벽을 넘으려 들어 본 적이 없는 인생이라 무엇이 객관적 표준으로 여겨지는 지 감을 잡지 못합니다. 롤 모델로 삼는 인생도 자신과는 터무니없이 먼 거리를 둔 위인, 그것도 철저히 곡해된 채로 받아들여진 허상을 마음에 품을 뿐입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강조합니다. "왜 무지가 행복이 아닌지를 깨닫는 그 순간 바른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금언은 이런 관점에서 영원히 유효한 정언 명령입니다.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없는 확신을 가장하지 말고, 승산이 없으면 자신을 바짝 낮추어 무위의 지(智)를 좇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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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천재들의 감성수업 | YES24 파블미션(舊) 2016-01-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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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버드 천재들의 감성수업

탄춘홍 저/전왕록 역
리오북스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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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감성이 뭐기에?" 저자는 중국의 교육자이며 능력계발 분야에서 두드러진 명성을 얻고 있는 개척가이기도 합니다. "탄춘홍"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譚春虹(담춘홍)으로 쓰는데, 마지막 글자는 무지개 홍, 혹은 고을이름 공으로도 읽습니다. 심리학 분야 중 실천적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줄곧 관심을 돌리는 테마가, "왜 어떤 사람은 지능이 충분히 뛰어난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학창 시절에 두각을 못 나타낸 사람이 사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가?"입니다. 저자는 이 과제를 놓고 특히 큰 관심을 두어 연구에 오랜 기간 매진했는데, 그 배경에는 이분이 실제로 교육 시설을 책임지고 운영하며 어린 인재들을 양성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학문적 연구와 실제 성과의 방향성을 일치시키는 게 가능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하겠습니다.

사실 지능이 아닌 감성의 인자(factor)가 한 개인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이미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연구진(역시 행동과학, 심리학 분야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소속은 하버드 대학이었지요)들이 규명하여, 학계뿐 아니라 저널리즘, 나아가 일반 대중(특히 학부모)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이때 정립된 개념이 EQ, 즉 이른바 "감성 지능"이란 것이며, 성공은 IQ가 아닌 이 미지의(당시로서는) 요인에 더 크게 선형적(linear) 의존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들 했습니다. 이 토픽이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당시만 해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사주간 <TIME>에서 그 주 이슈 분량 대부분을 할애하여 연구 성과를 다뤘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연구가 아니라도, 이미 한국에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급격한 고도 성장을 겪은 내력이 있었기에, "학교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으로 떨어질 수 있다."라는 "체험적 진리"가 이미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 정주영 회장 같은 이도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들에게 창피함을 무릅쓰고 서울 명동 번화가 한복판에 나가 큰 소리로 홍보를 시키거나(회사 차원에서 큰 실익이 없는 활동인데도), 한강 백사장에서 씨름을 시키곤 했던 것입니다. 공부에만 찌든 책벌레들에게서 몰감성(沒感性) 의 외피를 벗기고, 알몸으로 사회라는 보다 거대한 유기적 실체와 공감을 시도하게 만들자는 게 그 의도였겠습니다. 여기서도 핵심의 화두는 바로, 지능이 아닌 "감성"입니다.

"공감"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두 단어(형태소) 중, 하나는 "함께할 공"이요 다른 하나는 "느낄 감"이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共이라는 글자가 感이라는 후치어를 수식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중요한 요소는, "공"의 수식을 받는 "감"입니다. 그런데 이 "감"이 중추를 이루는 "감성"이란, 혼자만의 영역에서 고도로 발달시킨 그런 감성이라면, 그게 설사 인류사에 길이 남을 가치를 지닌 레벨이라고 해도 목전의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는 아닙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보십시오. 그가 남긴 작품들은 현재 지구에서 유통되고 있는 그 어느 예술가의 흔적보다도 고가에 유통됩니다만, 생전의 천재 화가는 걸인으로 죽었습니다. 예술가 중에는 이런 그의 장엄하고 불꽃 같은 삶을 추수(追隨)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보다 많은 수는 화려한 세속적 성공과 물질적 풍요를 동시에 꿈꾼다는 게 보다 솔직한 이야기일 터입니다. 따라서 "감성"은 바로 "공감성"이 되어야만 하며, 그게 최소한 성공을 염두에 두고 오늘 하루를 노력으로 채우는 이들이 가져야 할 대전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저자, 담춘홍(탄춘홍) 선생이 정의하는 "감성"은 무엇인가. 저는 이 대목이 특히 읽으면서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하나는 "정서를 표현하는", 또 하나는 "그 정서를 콘트를하는", "예술"이라는 겁니다. 담(탄) 선생의 감성 정의는 그래서 세 부분의 개념 연결로 이뤄집니다. 첫째는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정서를 외부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정서 그 내부적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런 정서, 잘 다듬어진 정서가 오해 없이 전달되게 하기 위해 표현을 세련되게 다듬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정서는 그저 발견되고 표현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타인이 자신의 감성 표현(그것이 아무리 정확히 표현되는 것이라도)을 덮어놓고 수용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이 혹시 남들(물론 자신만큼의 양식과 수준을 갖춘  정상적인 공동체 안에서의)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이것은 차라리 표현되지 않은 만도 못합니다. 그래서 탄 선생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쩌면 EQ에서 이 대목이 핵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감성은, 그저 순간순간 표현되고 통제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예술"로서 다듬어져야 합니다. 예술이란 임기응변의 잔재주가 아니라, 인생과 세상을 보다 깊이 있는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식을 말합니다.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거나 악기를 다루거나 회화로써 조형을 포착하는 게 수련이 필요하듯,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도 예술의 수준으로 다듬어져야만 합니다. 이 정도가 되어야 "성공하는 감성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고, 그저 순간의 잔재주에 머물지 않고 남과 자유로이 소통하는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학창 시절에 공부만 못했다고 자동으로 소통 공감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님은 자명합니다. 널널한 회사에서 그 알량한 자리 하나를 못 지키는 퇴직자가 너무도 많은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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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 살인사건 | My Reviews & etc 2016-01-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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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벤슨 살인사건

S. S. 반 다인 저/김재윤 역
황금가지 | 200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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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Benson) 살인사건>은 파일로 밴스(Vance) 탐정이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데뷔작이자, 박학다식하고 방대한 인문 교양으로 무장한 주인공이 시크하게 난제를 해결하는 이 분야 원형의 탄생 요람이기도 합니다. 특정 포트폴리오가 다른 대안 B, C의 모든 장점을 압도하는 걸 dominate한다고 표현하는데(정착된 학술 용어입니다), 고고의 성을 울렸을 때 많은 독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SS 반 다인(필명겸 작중 관찰자 캐릭터의 이름)은, 유감스럽게도 후배 엘러리 퀸이 등장하자 오래지 않아 "dominate"되어 무대의 한켠으로 밀려나고 말았죠. 바꿔 말하면 엘러리 퀸의 선구이긴 하지만 하위호환에 지나지 않았기에 화려한 전성기를 짧게만 가져가야 했다는 "정리된" 평판이 있었고, 이 고전을 읽은 지 꽤 오래되었지만 그 익숙한 프레임 안에 갇혀 저도 여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간만에 이 기념비적 작품을 다시 읽어 보니(나온 지가 무려 백 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런 선입견과는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고전의 독해가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셜록 홈즈와 엘러리 퀸을 스펙트럼의 양 축에 놓는다면, 이 파일로 밴스는 차라리 홈즈에 가까운 유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다고 홈즈처럼 유능한 탐정의 강렬한 개성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데에는 (최소한 이 1탄 속에서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되다 만 셜록"으로 비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홈즈는 필요 최소한의 액션, 익스프레션으로 독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쪽에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능력을 보인 캐릭터죠. 반면 밴스는 상황에 맞지도 않는 고전 경구를 잔뜩 늘어놓는 현학의 악취미 하며(이 장편에서 펼쳐지는 그의 장광설은 진정 현학을 위한 현학입니다), 사건 현장 방문 후 5분만에 범인을 알았다는 식의 그 허세 하며, 자칫하면 전시효과를 노리고 날림으로 일반 공개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부를 만큼 비경제적인 제스처 남발이 현대 독자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면 있습니다. 반면 홈즈는 어느 단편에서건, 어차피 장르 속성상의 한계 때문에 대뜸 시작부터 범인의 정체가 공개될 수 없는 자기 모순을 최대한 벌충하려고 습관적으로 도입부에서 (본무대보다 더 화려한)"개인기"의 촘촘한 시전으로 플롯의 토대를 튼튼히 세웁니다.

반 다인(본명은 W H 라이트)은 전문 작가가 아니며, 병상에 오래 누워야 했던 시간 소일거리 삼아 읽었던 이 장르의 본질에 대해 자기 나름으로 터득한 후,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구상, 단기에 완성했다고 합니다(이 역시 한국 추리팬에게는 인기 있는 전설이죠). 그런데 확실히 현대의 눈으로 보면 그런 티(준비 안 된 기획이라는)가 많이 납니다.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할 결정적 한 방에 대한 단단한 채비가 안 된 채, 주어진 분량(이 작품은 장편입니다)을 채우긴 해야 할 때(능력보다 의욕이 앞선), 잉여의 "질소 포장"이 선호되는 건 당연합니다. 파일로 밴스의 대사에선 공연한 헛스윙이 슬랙을 채우는 기미가 민망하리만큼 자주 노출됩니다. 반면 퀸이 수수께끼처럼 도중에 툭툭 던지는 인문 지식의 단편은 끝에 가서 다 하는 일이 배당되어 있습니다.

홈즈 시리즈에서의 왓슨, 포와로 곁의 헤이스팅스 등은 비록 관찰자, 기록자, 전기 작가일망정 극 속에서 구체적으로 맡아 행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처녀작에서의 SS 반 다인(캐릭터)은, 오랜 친구인 밴스와 마크햄 검사가 논리적 공방을 벌이고 사소한 감정 다툼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순서를 바꿔가면서 증인을 심문하며 마침내 친구의 위대한 능력을 확인해 주느라 서로 입에 침을 튀기는 그 긴 시간 동안 공기처럼 투명인간처럼 옆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난 화자며 작가니까 어차피 존재감은 충만하잖아?" 그건 초보 소설가의 착각이자 몰인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면 증인의 겸손됨으로 자체 편집을 깔끔히 마친 결과일까요? 고전에 대한 외경을 최대한 간직하고 싶은 독자로서는 애써 그리 새기고 싶 기도 합니다.

헌데 최소한 저는 예전에 미처 몰랐던 밴스만의 매력과 장점을 이번 한파 속에 다시 읽으며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그는 퀸이나 홈즈와는 달리, 실시간으로 발화자의 미묘한 표정 변화, 어조의 흔들림 따위를 면밀히 관찰하여 그 속을 꿰뚫는 장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명작 회화의 진위 여부는 작품에 쓰인 원료를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가리는 게 아니라, 터치와 붓 간 길에 실리고 남긴 품격과 정신의 색채를 보고 아는 것"이라는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파편처럼 흩어진 물증이니 형식 논리니 하는 건 범죄의 진상을 가리는 데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점에서 수사에 엄정한 논리를 동원하는 홈즈나 퀸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비록 알고리즘화가 시도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그의 방법론은 직관에 의존하는 바 크다는 겁니다.

밴스는 관찰력만 뛰어난 게 아닙니다. 그는 죽은 표본이나 객체를 대하는 무정한 손길, 눈빛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심리를 어루만지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행동을 유발하며 감정을 드라이브하는 데에 매우 빼어난 솜씨를 보입니다. 사실 이런 건 "마에스트로, 사령탑"이 하는 일이 아니라 현장의 말단 수사관이 갖춰야 할 덕목이긴 합니다만, 하버드 출신인 그가 현장에서 부리는 재주이니 이게 더 돋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예컨대 검사의 추궁에 지금 막 발뺌을 하려 드는 숙녀에게, "지금 당신이 하려는 증언은 그저 삼켜 두십시오. 어차피 거짓임이 다 드러날 텐데 그런 진술은 당신의 품위를 해칩니다. 게다가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미리 막아 주고 싶을 만큼 저는 당신의 편이 아닙니까?"라는 메시지를, 말이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길고 번거로운 말이 아니라, 눈빛과 제스처로 상대 여성에게 십분 전달하는 그 신사적이고도 유능한 매너가 독자를 사로잡습니다(수사의 효과도 제고함은 물론입니다). 쓸데 없는 지식 과시로 까먹은 점수를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훌륭히 만회하고도 남는 거죠. 퀸이나 홈즈에게는 이런 귀족적 매너를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냉철한 기계적 사고를 가장한 밴스의 스타일 그 수면 아래에서만 발견되는 인격의 진가요 고유의 미덕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밴스는 현대적 금융 시스템의 발전에 염증을 대놓고 드러내는 구식 인간입니다. 본인 자신이 누구보다 유럽 정통 귀족 가문 출신의 사고방식이나 컨벤션을 존중하면서도(방대한 인문 소양은 그런 가치관 세팅 아래 더 아름답게 축적될 수 있었겠죠) 그들의 못 말릴 자부심이나 배타적 귀족 의식에 대해서는 일관된 반감과 냉소를 보입니다. 헌데 이 작품이 갓 발표될 무렵엔 대공황의 암운이 전 미국, 나아가 유럽 대륙을 덮을 기미를 보일 시점입니다. 향후 호된 빈궁의 십 년 기를 보낼 독자들에게는 아마 저런 기술 혐오적 언사가 마치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큰 공감을 주었을 텝니다. 허나 현대의 시선으로는 이건 뭐 대책이 없는 레트로의 그나마 식상하고 비건설적인, 지면만 메꾸는 푸념으로나 받아들여질 뿐이죠. 밴스는 예의 그 종잡을 수 없는 현학 타령 중 슈펭글러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우리에게는 고전의 저술가지만 그에게는 동시대인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비판의 뉘앙스가 달리 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럼 구성이 마냥 허술하기만 한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처음에는 필요 없는 바람잡기, 맥거핀식 지면 채우기(?)가 좀 심한 듯도 보이지만(이런 건 퀸의 초기작 <로마 모자의 비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막판에 "얘 같지? 그런데 알고 보면 쟤로 눈을 돌릴 가치가 있어, 그렇다고 쟤냐고? 그건 또 아니고 ㅎㅎㅎ" 노골적으로 장난을 치는 게 영화가 아니라도(영화로도 몇 년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눈에 훤히 보입니다. 이렇게 작품 후반에 가서 급격히 긴장 수위를 높이고 트위스팅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플롯 밀도의 균형도 맞춥니다. 이게 다 지적인 두뇌만이 벌일 수 있는 기교라고 추측되며(비록 전업 작가가 아니었더라도), 구태여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독자에게 "재미"라는 요소로 피부에 맺히는 바가 있습니다. 밴스가 이처럼 단칼에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 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닙니다(성격도 물론 나쁘긴 하지만). 1) 그에게 있어서 퍼즐의 풀이는 답의 도출보다 풀이 과정의 묘미가 있기에, 결론이 정해져 있어도 자신이 배회한 경로를 더듬고 회고하는 그 맛을 친구(그리고 독자)와 공유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고("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알아?") 2) 확실한 증거 없이는 어느 누구도 무죄라는 원칙에 끝까지 충실한, 지성인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밴스에 공감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교양인이라고 여겨도 그리 큰 무리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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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단하게 살 것이다 | YES24 파블미션(舊) 2016-01-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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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단단하게 살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 저/김소영 역
흐름출판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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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닥 어감이 좋지도 않은 "헬조선"이란 말이 너무 남용된다는 느낌입니다. 자기 비하가 심한 사람도 옆에서 보기 부담스럽거나 불쾌한데, 범위를 국가나 민족 단위까지 생각 없이 넓히는 게 과연 쉽게 공감을 보낼 수 있는 행동인지 의문이 들죠. 생각의 방향 그 전환 계기를 타국인, 그 중에서도 일본인이 쓴 저서에서 찾는 게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요즘 나온 책 중에서 그나마 동감의 포인트를 많이 짚어 주고 있는 책이다 싶어서 개인적으로 끌렸습니다. 집에 와서 차분히 읽어 보니 성찰할 소재를 더 많이 품고 있는 책이라 기분이 뿌듯해지더군요.

출신 배경과 개성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라도, 성공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지하는 행동 방침 중에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게 있습니다. 선불교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온 우화 중에, 맹수에 쫓기다 벼랑 끝에 몰려 쥐가 갉아 먹는 낡은 밧줄 끝에 매달린 자가 꿀(버전에 따라 딸기라고도 하죠)을 빨며 그 절박한 순간의 고통을 잊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게 존재를 흔드는 차원의 위험 속에서 현실 도피를 일삼는 어리석은 인간을 풍자하는 의도로도 받아들여지지만, 여튼 본인 힘으로 좌우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선 차라리 눈 앞에 닥친 과제에 더 집중하자는 가르침으로 더 널리 수용되는 것 같더군요. 여튼 그 사람은 최선를 다하다가 그 지경에 다다랐고, 공연한 불안으로 심적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차라리 당분이라도 아쉬운 대로 섭취하여 혹여 행운의 반전이 닥칠 경우 도약의 에너지라도 축적하는 편이 최상의 선택일 겁니다. 말하자면, 그 사람은 제 나름대로 "현재에 충실"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화 속의 저 인물은 신체에 ATP를 축적하고 있었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당분 함부로 섭취했다가 비만이라는 덫에 빠질 수 있습니다. 체형 유지도 분명 자기 관리의 중요한 일부인 요즘 풍토에서, 마음이 허하다고 아무것이나 먹어대다간 자신을 망치는 계좌에 알뜰히 적금 납입을 하는 꼴이 될 수 있죠. 몸은 이미 충분히 강하니, 이제는 마음의 체력을 키울 때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팁들은, 험한 세파를 타격 안 받고 이어갈 수 있는 튼튼한 마음을 기르는 게 목표입니다.

고장난 냉장고 안에 갇혀 있다 동사자들과 비슷한 시간이 지난 후 사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계 안의 온도가 실온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도, 곧 얼어죽겠거니 하는 불안과 초조감 때문에 명을 재촉한 것입니다. 저자는 무엇보다 이런 쓸데없는 자기파괴적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권고합니다. 이런 비생산적인 감정은 일단 멘탈과 육신을 파괴하고, 동시에  건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에너지를 놓고 괜한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해롭습니다.

역사상 일본 문화에서 독특하게 발전해 온 요소가, 고등 종교인 불교가 되었든, 종교라기보다 문화적 컨벤션에 가까운 다도가 되었든, 혹은 알아서 자생한 명상법이 되었든 간에, 이들을 심신 단련의 매개로 삼는 일종의 토착 종교로 변용해 왔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당신의 마음을 든든히 기를 수만 있다면, 이들 종교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는 다분히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볼 수 있는데, 종교가 자체로 목적이 된다기보다, 받아들이는 이의 세속적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쓰이는 한에서 장려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죠. 사실 이는 수백 년 전의 칼뱅 등 개혁파 기독교의 창시자들도 은근히 신도들 사이에 퍼뜨려 온 기조입니다.

저자는 사회 생활을 한창 영위해 나갈 이들에게만 좋은 충언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이제 죽음을 앞둔 노년의 인생에게도 묵직한 교훈을 다듬어 진언합니다. "죽음이란, 현재를 열심히 가꿔 오며 미련을 남기지 않은 성실한 인생에게 결코 두려운 그 무엇이 아니다." 곱씹어 볼수록 맞는 말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부실하게 채우는 영혼은 다른 추가의 타락이 없더라도 벌써 죄인이고 거짓말장이입니다. 그런 사람이 느닷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떤 초월자가 무슨 심판을 내릴 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허나 매 분 매 초를 성실히 산 사람은 누구 앞에 끌려 가도 항변의 근거가 있습니다. 결국 경제활동 참여 단계에서 유감 없이 순간순간을 일군 인생은 노년에 이르러도 사멸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거죠. 이래서 다시 한 번 "현재에 충실하라"는 금언의 유효성이 확인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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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 My Reviews & etc 2016-01-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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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프니 듀 모리에

대프니 듀 모리에 저/이상원 역
현대문학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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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책 표지에는 "스크린이 사랑한 작가"라는 소개(blurb)가 적혀 있습니다. 수록된 단편 중 <지금 쳐다 보지 마>, <새> 같은 건 이미 반 세기 전에 명감독, 명배우의 솜씨와 열연으로 영화화한 작품들인데요. 특히 <새>는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으로, 이미 영화의 영역을 넘어 문화사적 이정표의 지위를 누리는 고전으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들의 원작이 이 대프니 듀 모리에의 붓끝에서 창조된 단편들이라는 사실은 아마 모르는 이가 많을 것 같습니다.

대프니 듀 모리에("'뒤' 모리에"로도 표기하죠)라는 작가의 이름만은, 아마 스릴러 장르의 명편으로 알려진 <레베카> 덕분에 널리 알려져 있을 것 같습니다(이 작품 역시 히치콕의 장편 영화로 완성되었고, 당대의 명우들이 극중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입니다).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 듀 모리에는, 원인 모를 공포감과 오싹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바로 그 장기로, 다른 작가가 대신할 수 없는 고유의 위상을 차지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작가의 단편들에서 "웃음과 해학"의 미덕을 탐색하는 시도는 왠지 번짓수를 한참 잘못 짚은 헛다리놀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개 언제 웃음을 터뜨릴까요. 직장에서 상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사교에서 분위기를 돋우거나 흐뜨리지 않기 위해, 때로는 엉큼한 속셈을 채우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억지 웃음을 짓는 것 말고, 마음으로부터의 자연스러운 충동이 배어나와 터뜨리는 그런 순간 말입니다. 침팬지 등 영장류 동물에게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만, 대개는 사물의 자연스러운 패턴에 어긋나거나, 대단히 예외적인 무질서가 눈에 띌 때 우리는 폭소를 터뜨리곤 합니다. "슬랩스틱 코미디"가 시대를 넘어 세월을 건너 영원히 유효한 건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잘 걷던 신사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미끄러졌을 때, 보던 이가 웃음을 못 참는 건 교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해당 종(種)의 유구한 본능으로서, DNA 차원의 재설계가 이뤄지지 않고는 고쳐지지 않을 문제입니다. 주 유왕의 총희 포사(褒?)가 봉화를 보고 달려들어온 제후들을 보고 자지러진 경우나, 조나라 평원군의 어느 첩이 다리를 저는 불구자 식객을 보고 깔깔댄 고사에서도, 이들 모두는 어쩔 수 없는 제 존재의 본능에 따랐을 뿐 그것만으로 해당 여인들의 행실만을 나무라기란 많은 무리가 따르기도 하지 싶습니다.

<지금 쳐다보지 마>에서 남편이 보이는 행동은, 물정 모르는 사람이 관찰하기에 기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헛것을 보고 지레 패닉에 빠져 주위를 마구 수소문하고 다니는가 하면, 애꿎은 두 노파에게 혐의를 두어 경찰서에 출두하는 불편을 끼칩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이란 영화에서도 자기 아내를 느닷 잃고 도심 한복판에서 어쩔 줄 모르고 미친 듯 헤매는 중년 남성이 나오는데(해리슨 포드가 이 역을 맡았습니다), 훨씬 더 이전에 창작된(그리고 영화화까지 이뤄진) 이 작품 역시 그런 테마가 큰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수상쩍은 이들의 음모에 빠져, 이국의 번화한 도심에서 종적을 감춘다.... 물론, 통상적인(?) 실종이라면 성년 남성인데다 사회적 지위도 번듯한 이가 보는 이들 민망할 만큼 마구 허둥댈 이유는 없겠습니다만, 이 작품 속에서의 남편 존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아내(그리고 자신)는 최근 사고로 딸을 잃고선, 안정된 멘탈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당신들 사정을 다 알고 있다"며 "이리이리 처신하라"고 오지랖을 부린다면, 더군다나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쌍둥이 노파 둘이 자기들 딴엔 초능력을 쓴다면서 그런 행각을 벌인다면, 그 역시 우스운 일이겠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광대놀음에 멀쩡한 신사인 자신이 말려든다면, 그 역시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어느덧 존은 자신이, 이 초자연적 촌극의 한복판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머나먼 외국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시내에서, 그는 대체 뭘 어찌해야 이 혼란 밖으로 탈출, 질서정연했던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로라와 존 부부는, 건너 편 테이블의 손님인 쌍둥이 노파를 두고 노골적인 농담 소재로 삼습니다. "저들은 노인으로 분장한 사기범, 혹은 살인자들로서, 레스토랑에서 태연히 식사를 하며 다음 희생양을 노리고 있는 거야." "원, 말도 안 되는 소린 하지도 말아요! 풋."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여유롭고 지적(知的)인 두 중산층 부부의 안온하고 유머러스한 정신 구조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단히 예의바른 사람들이지만, 단지 아내가 최근 큰 시련을 겪었기에, 남편 존은 필사적으로 그녀의 기분을 달래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 작품에는 이처럼, 전혀 다른 종류의 웃음 코드 둘이 나란히 평행선을 달리다가, 결말에 가서 끔찍한 비극을 합성하는 쪽으로 상호 작용을 벌입니다. 웃음이 넘볼 수 없는 바로 그 경계에서부터, 비극은 초자연의 옷을 입고 인간 존재의 파멸을 도모합니다. 이것이 듀 모리에가 보여 준 "웃음 그 너머에의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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