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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이무것도 안 하는 직업이라는 책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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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의 전체보기
봉신연의 1 | My Reviews & etc 2016-11-3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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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봉신연의 1

허중림 저/홍상훈 역
솔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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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인들의 오랜 판타지에 "연의"의 근대적 생동감을 입힌 걸작이라면 이 작품에 비길 예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명-청대를 지나면서 기층민중의 본격 참여로 그 창작의 수요 공급이 크게 늘어난 "연의류"는 대개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이 일부 끼어들어 보편적 대중 문학의 주류를 형성하기도 했죠. 물론 삼황 오제 시절이나 하은주 등 역사의 연막에 싸여 있는 고대사에 대한 모호한 기술, 혹은 전승을 "역사의 일부"로 보는 관점에선 이 작품 역시 별다르게 분류할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 독자들이 보는 눈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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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독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11-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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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슈독

필 나이트 저/안세민 역
사회평론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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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용품, 의류 등이 그저 전문인의 영역이나 전유물에 머물지 않고 평범한 이들의 일상까지 속속 침투해 들어온 모습이, 아마도 나이키 이전이라면 그리 당연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가 활동의 일환으로 운동을 즐기는 풍속이 생긴 건 현대인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 후의 현상이지만, 선을 넘지 않는 사치와 자기 만족적 소비를 위해 특정 스포츠 브랜드에 돈을 쓰는 풍경이 이처럼이나 일반화한 것, "새로 나온 나이키 용품 하나를 사기 위해 조금 더 열심히 일해 보자"라고 마음먹는 이들의 모습이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뚜렷한 트렌드의 일환으로 눈에 띄는 건 차라리 놀랍기까지 한 현상입니다. 이제 나이키는 이른바 사물인터넷(만물인터넷)의 플랫폼 구축에까지 큰 포부를 품고, 전혀 다른 섹터에서 표준 지위를 얻으려는 경쟁 기업들을 바짝 긴장시킨다고 하니, 일개 "신발 제조업체"가 이만큼이나 큰 영향을 가질 줄은 반 세기 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반 세기 전이라고 하면, 이 자서전의 주인공이자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가, 지금 같은 엄청난 글로벌 다국적 기업을 만들리라고는 자신도 채 내다보지 못하면서(이 책을 완독하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신발에 대한 열정과 사랑 하나로, 자신이 직접 메이커로 나선 것도 아닌, 일본 오니쓰카 社의 미국 판매권(그것도 서부)을 얻어내려 동분서주하던 시절을 가리킵니다. 보통 하는 말로 "그 시작은 미미했어도 끝은 창대하다"고도 하지만, 만약 이 소심하고 확신이 부족했으며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만으로 청춘의 영혼을 채웠던 젊은이가 행여 무슨 변이라도 당하거나 그 부친의 조언을 좇아 다른 길을 걸었다면, 오늘날의 나이키 같은 굴지의 기업은 아예 존재도 하지 않았겠으며, 세계의 모습은 또 얼마나 바뀌었을지 상상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 드러난 창업주의 젊은 시절은, 척박한 시장을 개척하고 라이벌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해 내는 기업가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너무도 큰 거리를 둔 그림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이미 나이키가 그 존재도 채 알리기 전 아디다스라는 굴지의 메이커가 존재했으나, 모르긴 해도 나이키의 분전이 없었으면 아디다스도 오늘의 아디다스는 아니었으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혁혁한 창업의 공을 이룬 기업가들도 특히 미국 같은 나라에 기반을 둔 업체라면 완전 무일푼으로 일어서기는 어렵습니다. 필 나이트 같은 경우 말그대로 개천에서 용난 경우는 아니고, 그 부친은 여러 업종을 거치다 지역 신문사의 성공적 영위로 중산층 정도의 생활 기반은 확실히 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친은 그야말로 빈손에서 출발한 인생이었는데, 이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자식들에게 번듯한 학벌을 갖출 것을 꽤나 요구하는, "건전한 속물 근성"을 갖는 경향이 있죠.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필 나이트도 지역 명문인 오레곤 대에 다니고, 이후 몇 군데의 학교를 더 거치며 자격증과 학위도 여럿 갖게 되었습니다.

오레곤이란 지역적 배경에 대해, 그는 "이곳까지 (동부로부터) 도달하려면 엄청 끈기가 있어야 하며, 길이란 길은 처음 개척해야만 했을 것이다. 오레곤은 오솔길이 아름다운 까닭에 그곳에서 나고자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같은 회고를 합니다. 사실 오레곤은 미국 전역에서 그리 뚜렷한 인지도가 있는 곳은 아니며, 동부 출신들에게는 촌구석으로 하대받는 경향마저 있죠. 좀 뒤에 나오듯 그는 막 사업이 잘 풀려 급속도로 확장하던 시절, 단 두 군데밖에 없던(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은행에서 그나마 한 군데 퇴짜를 맞은 후 필사적으로 창구에 매달려 자신의 사업 전망을 설득하던 시절도 털어 놓습니다.

외모만 보면 상상이 안 가지만 그는 육상 선수이기도 했고, 대학 초년생 시절 학교 육상부에서 대표로 뛰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보다 우월한 기량을 지닌 동료를 한 번도 추월하지 못했고, 이는 그의 자존감 형성에 나쁜 쪽으로 영향을 끼쳤지요. 2인자, 루저 심리란 특히 필 나이트처럼 소심한 청년에게는 지속적으로 그늘을 남길 수 있는데, 본인이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운동화"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극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은사 빌 바우어만(아버지 다음가는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코치를 든든한 인맥으로 알게 되어, 이후 사업 확장 과정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기반으로 의지합니다.

보통 이 정도 성공을 거둔 이(가 아니라 훨씬 못한 수준이라 쳐도)들은, 자서전 속에서 잔뜩 자기 자랑을 늘어놓거나, 이 단계의 이런 체험이 나에게 이런 영향을 주었다며 스스로 의미 부여에 열심인 예가 많습니다. 그러나 필 나이트는 이 책 내내, 자신의 정직한 느낌과 추억의 재생에만 열중할 뿐 어떤 주관적 평가를 삼가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혹 "교훈"을 얻고자 이 책을 통독하는 이라면(책을 꼭 그렇게 읽어야 할 이유는 성인에게 없지만), 그가 치러낸 여러 소소하거나 큼직한 체험들에 대해 독자 스스로가 의미 부여를 해 가며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부도 그닥 잘하지는 못했고(나중에 회계학 조교수 노릇을 하며 자격증 지도도 한 걸 보면 분명 공부머리로도 평균은 훨씬 넘습니다), 운동에서도 2인자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자신의 아버지에게나 스승에게나 뚜렷한 인정을 받지도 못했던 그는, 이상하게도 "신발"을 다루는 동안만은 무한히 행복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장 아끼는 신발을 소비자에게 보급하는 일을 해 보기로 합니다.

명시적으로 강조하진 않지만 그는 세상에 부대끼고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타입 같아 보입니다. 이런 유형 중에는 두뇌 싸움 중에서 벌어지는 스릴을 즐기고, 상대와의 대결에서 이겨 승자의 쾌감을 맛보며, 타인을 결국 자기 뜻대로 장악하는 맛과 사업의 성취를 함께 누리는 이들이 많죠. 자수성가형 기업인들이 대개 또 그렇기도 합니다만 이분은 그런 타입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런 대결적인 면보다는, 자신의 열정을 남에게 전파하는 그 순간을 남달리 애호한다고나 할지. 이분은 대학생 시절 백과사전부터 해서 여러 물건을 파는 외판원 노릇도 했다는군요.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런 고생을 사서 벌이는 아들을 두고, 그 아버지(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가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겼을 지는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더 놀라운 건, 그런 외판원 생활 중 단 한 번도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던 청년이,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화를 취급하게 되자 그 자신도 놀랄 만큼 큰 매상고를 올렸다는 사실이죠.

오니쓰카 운동화의 유통권을 얻어 막 사업을 시작할 때, 어느 청년(나이트가 이 책에서 묘사한 대로라면 "상체는 빈약하나 하체 근육만 이상하게 발달하고선, 뭔가 켕기는 듯한 표정으로 찾아와")이 "벅(필 나이트의 아명)이란 분 여기 계신가요?"하고 집(아버지와 함께 살 때)에 찾아와서까지 신발을 사 가더라는 겁니다. 그 청년은 아마도 필 나이트 자신과 매우 닮은 타입이었을 겁니다. 사람이 그 가진 열정이 뚜렷하면 이처럼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법이겠는데, 오니쓰카의 중역들을 만나 새파란 대학생이 유통권을 따 낼 때도 오직 그 열정 하나가 눈에 띄어 일이 성사가 된 거겠죠. 그는 학생 때도 세계 일주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부친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도 않고(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말로 보아 중산층 이상이 아니었나 봅니다. 더군다나 생활 터전이 오레곤임을 감안하면 뭐) 기어이 여행 자금을 마련, 세계 구석구석(말 그대로더군요)을 돌다 이런 일까지 연이 닿은 거죠.

후지산 등정 과정에서 첫번째 여인을 만났는데, 자신과는 달리 동부에서 엄청 몀문가 출신인데다 인문 교양에 밝은 처녀였다고 하는군요. 부티나는 차림이었으나 왠지 "부활절 달걀" 같은 차림이라 웃음이 나기도 한 "남친 같아 보이는 청년"과 함께 있었는데, 자신을 덜 따분하게, 더 재미있게 해 줄 만한 필에게 갑자기 끌렸는지 둘은 급속히 친해집니다. 이 새러라는 처녀를 집에도 데려가고 부모님께 소개도 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서로 안 맞는다는 걸 알고 편지 몇 번 왕래 끝에 헤어졌다고 하네요. 이런 체험을 털어놓는 모습이랄까 문체도 실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 솔직하고 소심해서 어떤 실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분은 나중에 모 대학 조교수 생활을 하며 두번째 여자(팍스)를 만나는데, 대체 이런 분이 어떻게 사업을 할까 싶을 만큼 숫기 없는 태도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이런 그이지만 사업을 확장하고 기존의 인맥을 활용하여 내부 조직을 다지는 과정에선 얄짤없이 냉혹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게 드러나서 다소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본래 그런 성격이라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업을 이루는 대목에선 정(情)보다 일이 우선이라는 거겠죠. 특히 "내가 (부하인) 아무개를 대하는 것처럼 그가 XX를 대하는 게 아닌가에 생각이 미치니 매우 서운해졌다"고 털어놓는 대목에선, 솔직한 건 좋지만 나중에 이 회고록을 읽을 수도 있는 그 당사자(실명이 나옵니다)는 뭐가 되는 건지 좀 난감해지더군요. "모두가 반항아를 자처하던 시절 나처럼 유순한 청년이 있다는 게.."를 회고하는 그이지만, 회사 안에서 자신에 반기를 드는 세력에겐 단호히, 혹은 티 안 나게 진압을 시도하는 걸 보면 기업이나 기업가는 어디서나 다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하게도 되었습니다.

초일류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나이키가 2인자, 혹은 그보다 훨씬 못한 브랜드로서 이만큼이나 미미한 출발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요. 딱히 유리한 출발점이 아니었는데도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 쏟는 열정만으로 그 많은 난관을 헤치고 간 과정에서, 어떤 비틀린 욕심이나 거짓이 드러나지 않는, 정직한 기업가의 단면이 엿보인 점도 좋았습니다. 책에 표현된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으나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려는 젊은이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에 접근해야 하는지는 절실한 교훈을 알려 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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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쟁탈의 한국사 | My Reviews & etc 2016-11-3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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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패권 쟁탈의 한국사

김종성 저
을유문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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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언제나 패권의 소재와 장악을 놓고 혈투를 벌인 종적으로 채워졌습니다. 현재의 패자(覇者)가 영원히 그 강성한 권력을 휘둘러 왔을 것만 같아도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미한 위상에 머물러 있기도 했고, 반대로 패권 투쟁에서 밀려 약자의 처지로 떨어진 민족이라도 먼 과거에는 인접 국가나 부족을 두려움에 떨게 한 위세를 떨친 예도 허다합니다. 이처럼 여러 정치 단위에 흥망성세를 교차하게 한 "패권"의 실체는 무엇인지, 과거의 그 패턴이 이러이러했다면 현재의 우리가 미래를 위해 직시해야 할 대목은 무엇인지, 지난 역사는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던져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과거의 종적을 어떤 비생산적이고 패배주의적 틀에 갇혀 바라보게만 된다면, 그런 시선을 고집하는 이에게 어떤 발전이 있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먼저 우리 고대사를 돌이켜보며, 동아시아의 패권이 무역로의 이동을 따라 부침과 이동을 거듭했음을 지적합니다. 초원길을 따라 물자와 문명이 교류하고 이전되던 시절에는, 이 초원길을 장악하던 세력이 곧 패권을 쥐는 형국이었습니다. 이 무렵엔 농경 생활에 의존하던 중화 제국이 유목 민족(널리 우리 조상들도 포함합니다)에 비해 그리 나은 처지가 아니었고,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공자가 동이의 문명에 법도가 있다며 동경한 것도 문화권 간의 실제 역량 차이를 반영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게 서역과 동맹을 추구하던 한 무제의 원대한 계략에 따라 장건지가 (본의 아니게) 개척한 새로운 무역로가 트이고, 이 새로운 "비단길"을 따라 동과 서가 새로운 교역 루트를 왕성히 이용하면서부터, 패권의 중심은 (보다 저위도에 놓여 있던) 농경 문명권으로 이동했다는 거죠.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바닷길을 이용하는 세력은 여전히 제3위 서열에 머물러 있었다"고 지적하며,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본격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며 "세력 관계는 크게 역전되어, 현재처럼 유목 민족 세력이 가장 열위에 놓이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대체로 통설이나 유력설에 따르는 편이며, 다만 저자의 문장력이 좋아 읽는 독자가 그 박력 있는 흐름을 잘 타며 읽게 되는 맛이 있다고나 하겠습니다. 어째서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등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종족들이 현재처럼 미미한 꼴로 떨어졌는지에 대해, 저자의 단순명쾌한 프레임은 분명한 경로와 일관된 시야를 제공합니다.

우리의 고대사로 보다 주제를 좁히면, 저자는 여기서부터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묘청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전과(戰果)를 살리기 위해, 모화 사관과 왜곡된 반도 중심적 패러다임을 고집하며 여러 사료를 폐기하고 자신의 관점에 맞춰 내용을 축소, 왜곡했다는 태도입니다. 여러 문헌(이 중에는 그 신빙성이 의혹의 눈초리로 보여지는 것도 상당수겠습니다만)을 참조하고, 심지어 일부 드라마(<기황후>라든가)의 내용까지 거론하며, 저자는 광대한 만주 영토를 포기하고 서방(여기서는 중국 본토) 경략까지 단념한 몇몇 군주(장수태왕 등 - 저자는 고구려의 군주 칭호가 "태왕"이었음을 강조하는데, 책봉왕도 아니고 그렇다고 황제도 아닌 외왕내제 시스템에서 이 점의 부각은 의의가 있죠)의 전략적 실패를 거론하며, 우리의 이후 역사가 옹색하게 반도에 한정된 것이 그런 단견에서 비롯했다며 전략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일견 타당하기도 합니다). 저자 특유의 흥미로운 관점으로는 "소서노가 실질적인 백제의 창업자였다"라든가, 송나라 서긍이 지적한 재가승려가 실은 화랑도, 낭가 사상의 추종자였다는 것 등입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임란 당시 큰 전공을 세운 승병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하겠네요.

진한은 동만주, 변한은 (이후)한사군이 설치된 만주 서부 지역 등으로 그 판도를 정하고, 마한은 이들 가운데서 다소 옹색한 처지로 명맥을 이었으나 한 제국의 흥기로 인해 진한, 변한의 이주민들을 한반도 남쪽에 비정함에 따라 오늘날의 인식처럼 (후)삼한이 정립했다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매우 낯익은 설이 제기됩니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만주원류고>의 그 충격적인 기사가 이어지는 맥락으로 언급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아니나다를까 금나라의 기원, 즉 고려 건국에 미온적이었던 안동 일대의 세력이 북상하여, 권력 공백 상태였던 여진족의 세력을 북돋웠다든가 하는 주장들이 그 뒤를 받습니다.

저자 고유의 주장 중 가장 설득력있게, 다른 사료적 근거와 잘 녹아들며 독자에게 어필하는 건 "고대 국가들은 영토의 장악보다 노동력의 확보가 더 큰 과제였다"입니다. 고구려와 백제 패망 후, 당나라가 왜 패잔국의 백성들을 본토로 실어갔는지, 혹은 아예 무대를 달리해서 바빌로니아 등 패권국이 피정복지(유대 지방이라든가)의 신민들을 수고롭게 재배치했는지 하는 게, 그저 세력 약화를 노렸거나 재흥을 예방하는 외에 더 본질적인 목표가 존재했던 거죠. 현재의 관점과 필요가 과거에까지 무분별하게 확장 적용되는 태도가 제법 소양 있는 독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그런 안이한 관점에 경종을 울려주는 서술이라고나 하겠습니다. "패권의 이동"이라는 거대 패러다임 아래 이런 하위 구조 인식의 틀이 별 위화감이나 비약 없이 스며드는 논의 구조라서, 개별 주장의 타당성에 무관하게 독자를 설득하는 힘이 큰 듯했습니다.

항몽 전쟁사를 저자는 자랑스럽다는 태도로 되짚는데, 무신 출신 집권자들이 정국을 주도했었기에 이런 장기간 항쟁이 가능했으며, 만약 기존의 문신 출신들이 여전히 주도적이었다면 바로 외교적 수단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들었을 테며(이자겸의 대금 사대처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리라 단정합니다. 항몽 과정에서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장기간의 방어에 성공했으나, 이후 문신 세력 주도로 강화가 이뤄짐에 따라 유리한 협상력을 유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현대 정치와 관련 저자의 의미심장한 주장은, 반도에서는 대륙과의 접촉 루트(외교)를 장악한 세력 사이에서만 왕조 교체가 이뤄졌기에, 중국처럼 내부의 힘이 외부의 힘을 능가하며 카리스마적으로 대두한 "서민 출신" 지도자가 등장할 기회가 없었다는 건데요. 중국은 물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고제 유방이라든가 주원장이라든가 마오 등의 좋은 예가 있죠. 현재 공산당 측에서는 마오를 부농 출신이라며 뭐가 켕기기라도 하는지 미화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만.

단군-기자-위만 조선으로 교체되는 국면에서 역성 혁명이 이뤄졌다면 그건 단일 왕조의 연속으로 볼 수 없으며, 이런 관점에서 기자 조선설이 부당하다고 하시나, 기자 책봉설을 반대하건 찬성하건 무관하게 그런 "왕조 시대를 바라보는 상식" 자체가 뚜렷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다 알듯 여러 번 왕실 가문이 교체되었음에도 단일 법통이 이어진 것으로 보며, 고대사에서 이는 한 가지 관점을 고집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무측천때 이미 당나라가 한 번 망했고, 중종 이후의 왕조는 "후당"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의의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일일이 논거를 들기도 힘들 만큼 반대의 여지가 많습니다.

후반부로 올수록 이 책의 주제의식이 어디에 놓였는지가 명확해지고, 이 책의 최고 장점은 1)이처럼 책의 서두와 본론, 종지부가 일관된 관점(물론 저자의 관점)에서 빈틈없이 연결되며, 2) 저자께서 오랜 연구와 사색을 거치신 듯 주장 사이의 논리적 뒷받침이 매우 치밀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미덕이 물론 사관의 정합성, 타당성까지 담보하는 건 물론 아니겠습니다만, 최소한 책을 읽는 재미는 확실히 보장해 줍니다. 그 결론에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한민족이 그 생존을 위한 중대 기로에 놓인 지금 이런 책 한 권을 읽고 방대한 과거사의 반추를 통해 현명한 생존 전략을 모두가 궁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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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6-11-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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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프레데릭 르누아르 저/이세진 역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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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대한 악의 조건, 압제의 근원이 사라졌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에게 일거의 행복이 찾아오는 건 아닙니다. 저자는 이 책 중 차우셰스쿠의 몰락 후 느닷 늘어난 고아 수를 감당하지 못 해 비참하고 열악한 환경으로 떨어진 루마니아의 보육원 시설을 그 예로 듭니다. 갑자기 찾아든 시대의 변화를 언제나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차라리 태생적으로 현명한 존재라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의 지혜가 (그 동족으로부터도) 그리 신뢰받는 자질이었을까요? 인간이란 종이 그만큼이나 믿음직하고 넉넉한 지혜를 갖췄다면, 철학자라는 직종이 처음부터 필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결국 기쁨이 이겼다!" 모든 드라마와 개인의 분투 노력에 대한 사연이 다 이처럼 마무리된다면 종교라든가 기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고안해 낸 어떤 무형적, 인문적 장치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여튼 저자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려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과 직장에서 필사적으로 땀과 눈물을 경주하는 건, 결국은 조금이라도 삶의 의미를 찾고 긍정의 기운을 몸과 영혼에 채우기 위함입니다. 치과의사 겸 연예인인 김형규 씨도 (지금 말고 VJ로 뛰던 학생 시절) "행복해지고 싶어요."를 사는 목적을 표현하는 말로 대뜸 코멘트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결국....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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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권력의 조건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11-2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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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래 권력의 조건

데이비드 S. 에이브러햄 저/이정훈 역
동아엠앤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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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중국이 동중국해상에서의 외교 분쟁 와중 일본에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공식적인 건 아닙니다. 이번 연예 한한령[限韓令]의 경우도 공식적으로 무슨 훈령 하달이 이뤄진 바는 전혀 없죠)를 내려 일본이 꼼짝 못하고 두 손 든 적이 있습니다. 저 당시만 해도 중국 전체 GDP가 아직 일본의 그것을 추월하지 못했을 시절인데, 지금은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을 능가해 버린 게 그들의 경제 규모입니다. 경제 규모가 엄청난데다 세계에 얼마 분포되어 있지도 않은 희귀한 자원 유통을 그들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실정이니 앞으로 세계 경제 무대에서 그들의 입김이 얼마나 강력해질 지는 불문가지라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꽤 지났지만, 일본은 저때 된통 덴 경험을 교훈 삼아 수입 다변화에 성공했다든가, 혹은 해당 원료를 타 자원으로 대체했다든가 하는 근본적 대책을 세웠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그렇지 못함"입니다. 과거 역사가 안긴 아픈 기억 때문에나, 현재 곳곳에서 충돌을 빚는 국가 근본 이익 문제라든가, 중일 양국은 결코 우정 어린 동행이 가능하지 못한 사이입니다. 민간 기업의 역량이 여의치 않으면 국가라도 대신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왜 그러지 않을까요? 이 책은 "미래의 권력 이동, 쟁탈 문제"가, 이 희귀한 자원의 확보와 활용을 놓고 피터지게 벌어질 것임을 현재 드러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예견,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예견"이라 함은 어느 정도 불명확한 근거라든가, 저자의 주관도 크게 개재하는 정신 작용이지만, 이 책에 서술된 여러 주장은 그런 "예견" 단계를 이미 넘어선 듯합니다. 가까운 장래에 벌어질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데다, 그 일부는 미래가 아닌 이미 현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왜 희토류를 다른 데서 사오든가, 혹은 희토류 없는 생산 공정을 구축하지 못할까요? 첫째 희토류는 앞의 "희"자가 드물 희(稀) 자 입니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분포되어 있으니, 애초에 흔히 구할 수 있는 자원이라면 저런 이름이 붙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른 데서 구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稀토류가 아니라, 頻토류 혹은 豊토류라 불러야 맞겠죠. 이 책은 이미 수십 년 전 등소평이 "중국의 장래는 희토류에 달려 있다"며, 중동이 (당시) 석유 부존 자원을 두고 전세계를 호령했듯, 미래에는 이런 희토류 자원의 채굴, 유통을 놓고 중국의 발언권이 커질 것을 내다보았다고 하는군요(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없으니까(혹은 어디 있는지 현재의 기술로는 탐사가 어려우니까) 딴데서 못 사오는 거고, 다음으로 그럼 희토류가 안 들어가게 생산 공정을 개선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의문에는... 이 책의 저자는 대뜸 들이대는 게 "주기율표"입니다.

제품 개발을 연구할 때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은 "열에 강하다, 변형에 탄성적이다, 전도율이 우수하다" 등등의 미덕을 놓고 최상의 결과를 빚을 구조를 연구합니다. 특정 부품이 소기의 성능을 최상으로 발휘하려면 이들은 비교적 흔한 철, 탄소, 구리 등이 아닌, 원자번호가 하나나 둘, 혹은 주어진 설계 구조에서 허용되는 최대치로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라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죠.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과 환경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상, 주기율표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소재를 끌어와서 제품의 대량생산을 이루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합성은 가능한가? 심지어 뉴튼조차도 일생의 과제로 삼고 집착한 게 "연금술"입니다. 원소의 속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업이 과연 언제쯤, "경제적으로 유효한 방법으로" 현실화할까요?

주기율표상에 존재는 하는데, 대단히 드물게, 그것도 특정 지역에 편재할 뿐인 게 희토류입니다. 산업 발달이 미진했던 과거에는 그야말로 발끝에 채이는 흙이나 돌덩이에 불과했던 것이, 공정에 최적화한 소재가 방정식에 의해 원자번호 단위(혹은 그 이상)로 답이 나와 떨어지는 지금은 말그대로 귀하신 몸이 되고 만 겁니다. 실감이 잘 안 나는 분들은, 휴대전화나 핸드드릴, 혹은 하이브리드 카에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가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들어보기나 한 존재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리튬은 그저 화학 교과서 주기율표 상단에나 등장하는 추상적 광물에 불과했던 겁니다. 그러던 게 지금은 석유나 금덩이나 되듯 각국이 찾아내려 혈안이 된 판이죠.그나마 리튬은 다른 희토류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희토류는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에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침투해(?) 들어왔을까요? 책은 "권력이 이동해 갈 미래"뿐 아니라, 이들 희금속류의 과거에도 매우 꼼꼼한 분석과 회고를 시도합니다. 서유럽과 미국 굴지의 대기업, GE라든가 보잉, GM, 크루프 사 들은 그들의 중후장대한 설비와 거대한 생산품들에 필수적으로 이들 희금속을 채택해 왔습니다. 저자는 "철기시대의 시작 이후"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는데요. 히타이트 족이 1500도의 고온에서 여러 번 특수처리를 거치면, 이 흔해빠진(상대적으로) 철광석으로부터의 추출물이 엄청난 강도를 지닌 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다는 걸 안 후, 인류의 역사는 근본의 궤도를 바꿔 왔죠. 빈곤하고 미개했던 무명의 족속들을 단숨에 세계 패권의 지위로 올려 놓은 게 철의 재처리 기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분포도 드물고 세계 경제의 각종 생산물의 탄생과 부가가치 첨부의 과정에 필수적으로 끼어드는 이 희금속의 경우, 보유와 존재 자체가 이미 권력입니다. 앞의 표현("철기 시대 운운")이 반드시 유머의 의도가 아니라, 이제 이 희토류의 향방과 장악을 놓고 인류는 또다시 역사의 분기점에 서고 말았다는 저자의 관점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죠.

한 말로 "희토류"라곤 합니다만, 희토류 중에서도 어느 원소가 "뜨고", 어느 원소가 "퇴물로 저물지"는 아무도 모르는 형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료와 자원으로서 희토류 확보 노력은 더욱 치열한 두뇌 게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전망을 위해서는 합당한 교육 과정을 거쳐 전문가들이 양성되어야만 하며, 뜬구름 잡기 식의 예측과 마구잡이 감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여기서도 체계적 시스템에 의한 인재 발굴과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우리가 한때(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공계를 3D처럼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했듯, 세계적으로도 이들 금속 공학에 지원, 헌신하려는 분위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연구 섹터를 우대하고 지원하는 여건을 갖춘 국가가 장래 유리한 고지에 설 것임도 분명합니다. 중국 등 소수의 나라들이 애초부터 자원 매장과 분포에 유리한 입지라 하더라도, 자원을 마냥 놀리거나 묶어 두는 건 유리한 선택이 아니므로(기회 비용 발생), 당장 긴요하지 않은 품목은 외국에 팔거나 개발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현명한 전문가가 많이 포진한 나라라면, 이런 "게임"에서 많은 경우 이익이 남는 선택이 가능하기도 하겠고요. 자원 빈국이면서도 이런 쪽의 전략 마련으로는 거의 시선도 못 주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형편이 참으로 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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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이야기 | My Reviews & etc 2016-11-2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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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일한 이야기

정혁준 저
꿈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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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박사님은 엄격한 가풍에서 특별한 훈육을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을 거쳤습니다. 그에게는 사업에 전념하여 가문을 융성하게 할 개인적 책임감과 동시에, 하필 그때 우리 민족 전체에 닥친 암울한 시련을 극복해야 할 집단적 책무가 동시에 부과되었습니다. 그는 유교적 교육을 명문가의 전통에 따라 뼈속까지 새기며 일깨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맞춰 서구의 신지식과 문명을 습득하는 다른 과제까지 성실히 해내어야 할 짐까지 지워진 청춘기이기도 했죠.

유일한 박사님은 이처럼 생의 매 순간마다 "두 가지 이상의 숙제"가 주어진, 다른 이들보다 갈등해야 할 이유가 많은 삶을 산 분입니다. 한국 최초의 제약 회사 창립자로서 유일한 선생은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현대적 과제와 이슈에 비추어서도 메우 모범적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있는 위인입니다.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아름다운 이상을 그 이른 시기에서부터 몸소 실천한 점도 위대하지만, 기업 활동의 친환경 목표 설정이라든가 하청 기업에게 갑을 관계를 따지지 않고 공존공영의 생태계를 조성하려 애 쓴 점 등은, 왜 한국이 지금 고도성장의 과실을 마음 편히 못 누리고 이처럼 불편과 분쟁을 겪어야 하는지 그 모든 대답을 내려 주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사람의 업적에 대한 평가라는 게 시일이 지나면 퇴색하거나 정반대 방향을 틀기도 일쑤인데, 선생처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존경, 흠숭 받는 인생을 살기도 참으로 드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일형(유일한의 아명)은 기독교 신도이자 부유한 상공인이었던 부친 유기연의 슬하에서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자라난 장남이었습니다. 당시 평양 일대에는 그간 조선왕조 통치하에서 서북인이라며 차별 받던 설움을 극복하려는 듯,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큰 활기를 띠며 널리 퍼지고, 신교 특유의 자활자조 이념이 이들 사이에 자리잡아 전에 없던 경제 호황을 맞는 중이었죠. 이 무렵이면 아직 국권침탈 국면으로 넘어가기 대략 십 년 전쯤인데, 특히 유기연 선생은 개화파 청년 박장현을 만나 신문물의 놀라운 성취에 눈을 뜨고, 장차 엄청난 국난을 맞이할 민족의 앞날을 대비하고 개개인(자신과 자녀들)의 장래를 윤택히 만들려면 선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탁견이었으며, 위대한 인물은 그 부모님의 각별한 정성과 교육에서 탄생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 책은 어린이용이지만 고증이 비교적 치밀하게 된 모습이 돋보입니다. 페이지를 넘겨 가며 저자께서 한 문장, 한 점의 정보라도 정확하게 전달하려 애쓰신 흔적이 잘 드러나는데요. 정확히 그가 몇 살 때 유학길에 올랐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밟아 목적지에 이르렀는지 다소 엇갈리는 다양한 기록들을 최대한 다 소개해 주시는 성의가 좋았습니다. 유기연 선생이 "미국 중부 지방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중심부가 가장 문물이 번성했을 테니..."라고 하는 말에 박장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장면(물론 작가의 상상력이겠지만)이 재미있었는데요. 아마 작가님도 미국 사정에 밝으시겠지만 사실 네브래스카 등 중서부 일대는 이른바 "인 비트윈 에어리어"로 불리는, 개성도 재미도 흥청거리는 부유함도 없는 심심한 촌구석으로 미국에서는 통하기 때문이죠(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말입니다). 다만 저자는 날카로운 분석도 곁들이시는데, 만약 동아시아 출신 철도 노동자들이 잔뜩 몰려들어 인종 차별과 갈등상이 첨예한 서부로 갔다면 어린 일형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나마 인간미가 남아 있는 중서부라야 교육 여건이 유리하지 않았을지를 짚는 대목이 좋았습니다.

책은 유일한의 일대기만 서술하지 않고, 당시 국제 정세가 어떠했는지, 조선(한국) 내의 정치, 경제적 실정은 어느 단계였는지에 대해서도 유익한 정보를 싣습니다. 역사와 인물의 일대기란 이처럼 교차 조명되어야 그 참된 의미를 독자가 깨달을 수 있죠. 앞서서 유기연 선생이, 청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국의 실정을 개탄하는 장면에서도, 어린 독자들은 한국의 근대사 어느 지점에서 인물이 성장했는지 다시 확인이 가능하겠고요. "왜 유일한이 빈손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는지, 왜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고학했는지"는 본문에서 다루지 않고, 여객선상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음을 박스 속에 넣어 유일한 생전의 회고 형식으로 가르쳐 줍니다. 편집이 단조롭지 않고, 어려운 단어 뜻풀이나 배경 설명을 최대한 친절히 곁들이는 태도도 책의 큰 장점입니다.



터프트(이 책은 정확히, 소년 일형의 은인이었던 가족 이름을 "터프트"라고 명기합니다) 가족은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고(책에는 왜 독일계 이민자들이 이 시기 대거 미국으로 몰렸는지 배경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소년은 지역의 헤이스팅스 고교에서 공부면 공부, 리더십이면 리더십, 운동 능력이면 운동 능력,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인재라고 해도 이처럼 그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구요. 미국 고교에서 백인 친구들을 다 제치고 풋볼 센터포워드("센터"가 맞겠죠?)포지션을 맡았을 정도이니 그 체력과 센스, 튼튼한 체구 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궁금한 건 소년 유일한이 미국에서 꿈을 키울 때 그 가족분들은 뭘 하셨냐인데요. 여기 대해서도 용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 주시려고, 책에선 "간도로 진출(1909)하였으나 의외로 큰 손실을 봤다"며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책의 뒷부분에서 이어지지만 아마도 이때부터 유일한이 호미리 씨와 결혼할 무렵까지 가족들은 계속 북간도에 거주한 것 같네요. 확실히 이재에 밝은 분들은 어떤 시스템이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생존과 번영에 성공하는 것 같지만 이런 예기치 못한 역경도 언제나 따르게 마련입니다. 일형 소년이 헤이스팅스 고교에 입학할 때가 막 한국(조선)이 국권을 잃었을 무렵임이, 이 책 맨 뒤의 깔끔한 연표를 통해 잘 나와 있습니다.

고교 성적이 워낙 좋아 어디든 입학할 수 있었겠지만 이런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보고 마음이 편할 수 없었던 유일한은, 잠시 대학 진학을 미루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을 송금하여 본가를 부양하기로 합니다. 이때 처음 멀리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 변전소에 취직하여 하필 크리스마스에 그 지역 일대가 정전을 맞게 하는 큰 사고를 내지만, 동료와 직근상관이 한사코 "누구보다 성실한 미스터 유의 잘못이 아님"을 입을 모아 변호하는 통에 해고의 위기를 잘 넘깁니다. 이때의 아찔한 경험은 그의 일생을 통해 큰 교훈이 되었음을, 본인과 그 조카분(유승흠 이사장) 등의 입을 통해 술회됩니다.

이 책에는 유일한의 성장기에 영향을 직간접으로 끼친 독립투사, 애국지사들의 이름도 여럿 등장하는데,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알력 관계로 잘 알려진 박용만 선생이라든가, 독립협회에서 주동적 역할을 맡은 서재필 생 등이 그 좋은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당대 미국 산업상의 눈부신 발전상을 설명하며 에디슨, 포드 등 자수성가형 기업인들의 활약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뿐만 아니라 록펠러와 그의 사업 스타일, 철학 등을 비교한 대목도 있습니다.

중국 출신 호미리씨와 결혼하며 유일한은 더욱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다져 나갑니다. 중국에 체류할 당시 어느 허름한 행색에 낡은 가게나 운영하던 장사꾼이, 집으로 돌아오자 고대광실 살림에다 더할 나위 없는 호사를 누리는 걸 보고 이유를 묻자, "잘 꾸며 놓으면 탈세를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때 그가 다짐한 건 한국(이미 일제에 병탄되었지만)에 돌아가서는 걸코 탈세하는 일이 없어야 국가가 위난에 처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었는데요. 훗날 유한양행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구고서도 모범 납세자로 여러 차례 표창을 받은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선생은 통조림 사업 성공을 기반으로 큰 돈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금 상당 부분을 광복군의 독립 투쟁 지원에 썼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가 단지 신의와 자조 정신으로 성공한 사업가일 뿐 아니라, 민족 모두의 귀감이 될 만한 애국지사이시기도 함을 알 수 있죠. 해방 이후에는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아 사리의 추구보다는 민족 경제 전체가 고루 회생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애쓰셨는데, 그 척박하고 악착스러운 경쟁 풍토에서 이런 선비 정신으로 경영과 처세에 임한 분이 계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산업화 초기 많은 기업들은 헐값에 부지를 사들여 점유하다가 뜻하지 않게 지가가 급등하여 가외의 횡재를 맞게 되었는데요(이런 풍토는 이후 20년 후까지 이어져, 당시 정부에서는 소위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보유"를 제한하려 절치부심했죠), 유 회장님은 주저없이 "사회 환원"을 내세우며 처분을 지시합니다.

유한양행은 그 이른 시기부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내세우며 현대 기업이 지향해야 할 바른 행보를 앞장서서 끌고 나갔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개념이 아니라도, 소비자와 생산자, 기업과 대중이 공존 공영을 도모할 길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답을 제시하고 관대한 실천에 나선 이런 선구자적 기업인, 애국자의 면모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란 끝이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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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그랜트도 모르면서 | My Reviews & etc 2016-11-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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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휴 그랜트도 모르면서

루시 사이크스,조 피아자 공저/이수영 역
나무옆의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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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종이 잡지, <타임>이라든가 <뉴스위크>, <피플> 같은 고퀄의 천연색 사진과 위엄 있는 텍스트가 쿨하게 배열되고 빼곡히 박힌 옛날식 미디어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요. 인터넷 혁명은 그런 세대에게서 참으로 많은 것을 일시에 앗아간 셈인데요. 잡지란, 신문이란, 책이란 여전히 페이퍼 포맷이라야지 "앱"이 다 뭔지 하는 느낌은 정신적 활동상이 막 피크에 이르던 세대가 겪은 상실감이라야 그 대표할 자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업무에 몰두하다 보면 내가 내가 아닌 듯 공황장애도 겪고 때론 그 역시 내 몸의 일부였을 종양 때문에 죽을 고비도 넘기기도 하는 법인데, 특정 세대에게는 그 흔치 않은 액운 때문에 잠시 맞은 휴지기조차 자신의 커리어에 중대 공백을 초래할 어떤 단절로 다가오는가 봅니다. 그것이 사회적 지위이든, 재산이든, 명예감정이든 간에 무엇을 손에 넣었다 상실하는 아픈 느낌은 특히 중년 이후의 인생에게 큰 상처로 남습니다. 음... 특히, 인생의 매 순간을 뿌듯한 성취로 채우며 살아 왔고, 주위의 다른 이들에게 확실한 인정까지 받으며 성과 가득한 사회생활을 해 온 이에게는 더욱 큰 타격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능력"의 감퇴는 그리 한순간에 급격히 이뤄지는 게 아니고, 육체적 매력과는 달리 정신적 수월성은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져!"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이들이 일시적 위기를 맞더라도 그 극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닙니다. 그(혹은 그녀)는 이런 존재의 위기를 극복해 낼 가능성이 여전히 더 높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잘 해 왔던 터입니다.

하지만 이런 직위와 평판의 위기가 개인의 노력이나 자질 문제가 아닌, 문화적, 시대적 흐름의 거대한 변화에 기인했다면 어떨까요? "당신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어." 만약 노하우나 지식의 문제라면 그(혹은 그녀)는 부지런히 공부해서 기존에 쌓아올린 정신적 자산에 잘 통합시키면 됩니다. 오히려 예전의 내력까지 다 갖춘 정신이, 새로운 정보까지 더 깊은 맥락에서 소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치프" 이머진 테이트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육 개월을 항암 투병하느라 쉬고 온 지금은 좀 상황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녀의 능력과 센스는 종이 위에 깨끗이 인쇄된 잡지라는 판형을 전제로 하여 천재처럼 달인처럼 발휘되어 왔었지요. 지금은? 형체도 없고 무슨 과정으로 생성되어 스마트폰 안에 파고들었는지도 모를 "앱"이 그 화려한(화려했던) 전달자를 대신해 버렸습니다. 그 반 년이라는 잠시 동안에 말입니다. 그녀가 위엄 있게 자신의 의자에 앉아 완성본의 페이지를 넘기며 아랫사람들에게 지적할 건 지적하고 자신의 능란한 솜씨를 나르시스적으로 감탄하던 그 매체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존재 일부도 어디론가 가 버린 것입니다. 자긍과, 영감의 원천과, 삶의 목표까지도.

"당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건 모두 지난 시대의 산물이야. 당신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힘들고, 어찌어찌 몇 걸음은 남들처럼 따라갈 수 있겠지만 있는 힘을 다 짜내야 하지. 그래봤자 그 몇 걸음뿐인데, 남은 여정은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나?" 반대로 젊은이들은 어떻습니까? 나이 든 세대에게 무척이나 낯설고 일일이 감정선을 추스려 대응해야 하는 게, 그들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당연한 환경이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일 뿐입니다. 노력하는 사람(힘까지 부치는)이 즐기는 사람(정력까지 팔팔한)을 못 따라가는 건 너무도 당연하죠. "퇴물"이란 말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지식은 배우면 되지만, 센스나 감성은 시대가 바뀌면 통째로 바꾸기에 너무도 힘이 듭니다. 감정선의 집합은 곧 그 사람 인격의 전부나 마찬가지인데, 한번 공들여 내면에 쌓아 놓은 감정의 그 무수한 연결고리들을 어떻게 일일이 손 대겠습니까. 이제 이머진의 상사와 부하들은, "당신의 센스가 낡았으니 당신 자체가 필요없다"고 암암리에 측은한 눈길과 함께 명예로운 퇴장을 권하는 겁니다.

이 소설의 원제는 knockoff, 확신도 없고 감각도 못 느끼면서 어설프게 남들 따라하며 인정은 받고 싶어하는 3류를 말합니다. 3류로 살아온 인생에게는 어찌어찌 하루를 연명하기만 해도 뿌듯할 수 있지만, 이머진 테이트처럼 모든 업무를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센스와 확신으로 처리해 온 이에게는 그런 3류, knockoff 신세로 질질 끌려간다는 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치욕이자 사형선고였을 겁니다. 당신이라면 시대의 대세에 따라 자신의 고유한 감성을 슬슬 타협해 가며, 별 승산 없어 보이는 적응을 시도하겠습니까, 아니면 "이건 나만의 센스, 나만의 해석이야!"를 부르짖으며 대세와의 정면 승부를 선택하겠습니까?

이머진 테이트를 괴롭히는 문제는 사실 이런 "밑에서 치고올라오는 미래"의 이슈만은 아닙니다. 그녀가 예전에 우습게 본 동료나 라이벌들이, 그녀가 잠시 휴지기를 갖던 그새 상황의 요행 덕인지 채 보지 못하고 지나친 어떤 필연의 지원 덕인지 레이스에서 자신을 앞지르며 그녀의 자존을 다른 방향에서 상처 주는 일까지 벌어지네요.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 그 나름 화려한 생을 살게 해 준 무대에서 퇴장하느냐, 그녀의 자존 대부분을 구성하는 감성과 집착과 애정하는 바들과 멋지게 재활에 성공하느냐, 이는 사실 우리 독자들이 바로 우리의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린 문제와 다를 바가 별로 없습니다. 사사건건 그녀와 대립하는 이브이지만, 사실 이는 이머진이 주인공으로서 발휘하는 특권으로, 실상과 다르게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시도하는 왜곡인지도 모릅니다. 이브 역시 이머진처럼 그녀 나름의 필사적인 생존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하필 모든 감정선과 취향이 맞부딪는 이머진을 만나게 된 것일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독자에겐 자유가 있습니다. 이머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그녀가 받는 핍박이 우리의 것인양 일일이 동감하며 성원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뿌듯한 대리만족을 느끼며 책을 덮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머진과 이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관전자의 냉정한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본다면, 혹 직장에서 자신이 겪은 여러 문제들 역시 이처럼 해석과 판단의 문제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고,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도 있을 거고요. 어느 쪽이든 이 요란하고 재미있고 치열한 사연은, 읽고 나기 전과 후의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런 게 또 작가의 재능인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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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주의자 | My Reviews & etc 2016-11-2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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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슬픈 불멸주의자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공저/이은경 역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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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두고 흔히 "필멸의 존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어떤 식으로건 저항하려고 듭니다. 이 책의 제목 일부에는 "불멸주의자"라는 개념이 쓰이고 있는데요. "~주의자"가 있다면 "~주의"도 이미 정립된 용어가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 분명한 출처 제시와 함께 쓰인 용례로는, 우리가 잘 아는 앨런 해링턴의 <불멸주의자>가 있을 뿐이고, 워낙 광범위한 출전과 실증 연구 결과들을 인용하는 이 책의 부지런한 태도가 꼭 아니었다고 해도, 다른 쓰임새나 맥락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멸주의자"는 해링턴의 그 함의, 혹은 명시적인 정의에 따라 이해하면 충분하겠고요. 해링턴의 그 책이 다소 난해한 것과는 달리 이 책은 너무도 재미있게 쓰여져 있습니다. 어찌나 재미있는지, 이 책에서 아무리 설득력있는 결론을 제시한다고 해도, 우리가 필멸의 존재라는 그 사실이 조금도 극복되거나 부정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리를 잠시 잊을 만큼입니다. "필멸이 필멸인 줄 깨달음으로써 오히려 필멸의 비극성을 잊는다"는 말이 역설적으로 들리기에 충분한데, 아닌게아니라 이 책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가 이 대목을 재미있게 짚는 것이기도 합니다.


책의 첫 부(部)가 "공포 관리"라는 주제라고 나와서 이게 대체 어떤 내용을 다루는 건가 궁금했었는데요. 여기서의 "공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킵니다. 생존을 위해 구비된 강한 체력, 치명적 살상력, 회복 능력 등을 가진 동물과는 달리, 우리 인간은 육체적 자질로만 따지만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이라서인지, 다른 동물에게는 과연 그에 대한 어렴풋한 자각이라도 있을지 의심스러운 "죽음에 대한 강렬한 의식"이 존재하고, 일상에서건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건 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통제할 필요가 존재했다는 거죠.

어떻게 하면 "나의 육신이 사멸하고, 그에 따라 나의 정신까지도 완전히 없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잘 달랠 수 있었을까요? 우리의 조상들뿐 아니라 그 조상들이 체득해 지금의 우리들에게 전수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들은 일단 "자존감"을 꼽습니다. 이런 자존감은, "나에게는 연약한 육신 외에 그 무엇이 있음"을 스스로에게 강렬히 납득시켜, 죽음 그 자체, 혹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다른 위협, 다른 생명체 앞에서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다만, 책에서는 특별히 첼리스트 요요마의 예를 들어, 진정한 자존감이 잘 형성된 인간은 딱히 거만하지도, 딱히 비굴하지도 않은, 자신 내면의 평안을 유지할 정도로만 긍지를 가진 유형임을 역설합니다. 무작정 허장성세를 벌이고 거짓말을 지어내는 식으로 과잉행동을 벌이는 인간은, 자존감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었기에 이 같은 특성을 보인다는 거죠. 감정의 통제를 수단으로 "죽음에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혹 미심쩍어하는 분들은, 우리가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 우리의 연약한 운명"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우리의 내면이 과연 무엇 덕분에 그럴 수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시면 납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 자존감만으로는 이런 공포를 완전히 떨치기에 불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유한한 개체의 숙명을 넘어 더 긴 단위의 생존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징적 불멸성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데에까지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기 이전에도, 사후 세계의 이미지를 애써 그려낸다거나, 죽은 동료나 조상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의식(儀式)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본격적인 도시 시설의 정립보다, 죽은 자를 기리는 사당들의 건립이 먼저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우리에게 많을 것을 시사합니다. 동물들이 당장의 허기를 면하는 일 외에 어떤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모습을 보신 적 있습니까? 인간은 이 "죽음에의 공포"가 어떤 식으로건 마음 속에서 진정되지 않으면 다른 일을 못하는 그런 존재였던 겁니다. 여기에서 종교, 예술 등 문화의 상당 부문이 파생하고, 예컨대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대사를 앞두고서도 군사 훈련보다 제의에 더 신경 쓰는 특이한 풍습이 생긴 거죠. "내가 내일 싸움에서 죽어도, 나는 그저 죽어 사라지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존재할 것이다!"

내가 죽고 나서도 존재가 사멸하지 않고, 천국이나 그 어떤 피안에서 복락을 누릴 수 있으려니 하는 믿음만으로는 그러나 뭔가 부족합니다. "자존감"이란 외모의 아름다움, 성격이나 자질의 긍지 등에서 유래하는데, 외모란 나이가 들면 시들게 마련이고, 다른 정신적 특질은 (때로는 생존 경쟁에서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을) 타인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확고한 근거를 갖기 힘들죠. 물론 참된 자존감은 내적인 잔잔한 확신이지 타인의 인정 여부에 달린 게 아니긴 합니다만 여튼 이것만으로는 유한한 존재의 숙명에 대한 절망감을 완전히 떨치기 힘듭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신념, 살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 따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추상적이긴 하나 때로는 구체적 사물보다 더 강렬한 위력을 발휘하는 이런 가치관상의 여러 이념들은, 인간이라는 종(種)이 지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지속되는 게 당연합니다. 불멸의 신념, 가치를 위해 살다 죽은 이들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이런 기억 속의 칭송이 육체적 삶의 짧은 수명을 보상해 주는 것으로 여기기에 이릅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하지 말라!"

책에서는 그런 까닭에, 어떤 인간(들)이 경우에 따라 다른 신념,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대하는 동기가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아메리카 대륙(뿐 아니라 여느 다른 식민의 예에서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에 처음 정착한 유럽인들은, 그들을 환대하고 아무 생존에의 위협이 되지 않았으며 지극히 선량한 품성을 지닌 원주민을(모두가 다 그랬다는 게 아니라 특히 그런 특성을 지닌 종족까지도) 잔인하게 학살하고, 학살하면서 쾌감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이 책의 태도에 따르자면, 자신들이 소중히 믿고 받들어온 가치에 반하는 삶(그것이 더 우월하고 더 성숙한 것임에도)을 사는 타인들이, 이제 자신들의 가치관을 우습게 여길 수 있다는 사실이, 직접 생명에의 위협을 가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분노를 자아내었다는 겁니다. 중근세 유럽이나 인도, 중동에서 왜 아직도 종교로 인한 생사에의 분쟁이 잦은지도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한 게, "죽음에의 공포"를 떨치는 수단이 그들에게는 종교 외에 딱히 마련된 바 없었다는 뜻입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으니 죽자고 싸움이 날 밖에요. 이런 이론이라면, 상대가 자신의 신상을 위협한 것도 아니고 감정상의 상처를 줬을 뿐(?)인데도 죽기살기로 칼부림이 나는 이유도 다 설명이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숙명적으로 "슬픈 불멸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력을 통해 불멸의 존재가 될 수만 있다면 전혀 슬퍼할 이유도 없거니와 노력을 쏟는 매 순간이 환희로 가득찰 것인데, 이 생의 기쁨이 그저 유한할 뿐이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도 슬픈 것입니다. (책에 이런 말은 나오지 않지만) 이 생에서의 삶이 기쁘면 기쁠수록 그에게는 더 근원적 절망을 안겨 줄 수도 있습니다. 미인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며 더 큰 한숨을 짓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싯다르타 역시 이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존귀한 신분이 가져다 준 너무나도 큰 행운 때문에, 그에 비례하여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절망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의 절망이 너무나도 컸기에, 그 절망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가 얻어낸 깨달음의 크기도 실로 위대했던 거죠.

이 책에서는 다양한 연구자, 철학자들의 가르침이 인용되지만, 특히 오토 랭크의 여러 재치 있는 표현과 함축적인 금언이 인상깊습니다. "상징적 불멸을 취득"했다든가 하는 문장들...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억울해서, 상징적으로 뭘 만들어 내어서라도 영원히 살 것처럼, 혹은 "이것만 해 내면 영원히 사는 거나 마찬가지임!"을 인간들끼리 합의하곤 근원적 슬픔을 떨쳐 내려 했던 그 발버둥.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은 공개된 자리에서 성행위를 하지 않는데, 이 역시 종의 신체적 특질에 기인했다기보다는, 후손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물의 모습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한 정신적, 후천적 동기라는 설명이 그럴 듯합니다(확실히 다큐에서 야생 동물의 교미 장면을 보면 뭔가 슬퍼지는 느낌이 들긴 하죠). 이는 어디까지나 문화적 요인의 학습에 기인한 것으로서, 대낮의 공개 성교가 묵인되는 일부 종족도 있다는 반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럼 공개된 자리에서의 식사는 왜 금기시되지 않는가?" 제 생각에는 인간의 양분 섭취는 날것을 그대로 뜯는 게 아니라 "요리"라는 문화적 프로세스를 거치는 행위이며, 이 때문에 부끄러움은커녕 오히려 존재의 위신을 과시하는 의미까지 갖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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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ack Mask | My Reviews & etc 2016-11-24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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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The Black Mask

Cynthia Pratt
Kensington Publishing Corporation | 200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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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넝은 성인이 된 후에도 세계 각지를 편력하며 다양한 견문을 쌓은 작가입니다만 성장 과정에서도 유난히 많은 외국을 다닌 부모 밑에서 적절한 영향을 받고 자란 경우더군요. 우리네 아이들에게도 수업 단위수 인정이나 학점 부여를 통해 외국의 정규 교육 시설 같은 색다른 환경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생각, 취향, 의견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구로부터 창의적인 인재가 양성될 수 있고, 틀에 박히지 않고 어디서 세뇌나 당한 꼴이 아닌, 정직하고 건전한 세계관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질도 소양도 없으면서 공교육 시스템이 내 적성을 발견하고선 이렇게 키워줬어야 한다느니 불평만 늘어놓는 정신은 그 무엇으로도 성장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인간은 결국 자기 스스로가 커 나가는 거지 부모님 외에 대체 누구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A J 래플스의 매력은 이런 자립형 인간의 쿨한 개성이 행동이나 말투 하나하나에 다 배어 있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작가 호넝은 특히 범죄자, 반사회분자 들의 정신적 특질에 대해 깊이 연구한 성과를 작품에 반영했는데요. 물론 래플스 본인이 범죄자이기도 하고, 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구태여 아웃사이더 기질과 정체성 한 자락을 포기하지 않고 저런 일탈 행동을 벌이는 기벽의 소유자지만, 호넝 자신이 중산층 가문의 일원으로 책임 있는 사회 성원의 책무의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주인공의 본원적 신분은 저런 깔끔한 신사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시켰겠습니다.

래플스의 의식에 이런 그늘이 묻어나는 이유는, 작가 호넝 자신이 온전히 브리튼인으로 정신적 "귀화", 일체감을 이루지 못한 주변인 의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잘나가던 제국의 심장부에서 거의 모든 경제 영역이 유례 없는 호황을 맞는 듯했고, 그 부친도 왕성한 활동(자원 무역)을 통해 평판과 부를 쌓았지만, 확고히 계층 서열이 이뤄진 잉글랜드 상층부까지 파고들기란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문의 부를 쌓아준 체제에 대해 감사한 마음은 가지되, 어느 지위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 그 얌첵같고 완강한 신분의 피라미드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여전히 자리했겠지요. 호넝보다는 덜하지만 도일 경 역시 근본적으로는 주변인의 신원이었고, 이런 까닭에 둘이 통하는 바가 많았을 겁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제국이 허용하거나 금지한 까다로운 기준에 문필과 기행, 기벽으로 저항하려 든 오스카 와일드에 이 두 명이 그처럼 공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블랙 마스크는 당연히 A J 래플스의 별명 혹은 가명입니다. DC 코믹스 소속의 그 캐릭터와는 전혀 무관하므로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피붙이의 도박빚을 해결하기 위해 가보를 처분하려 나선 어느 여인, 미술관에서 훔친 보석을 팔아 주머니를 챙기기보다 엉뚱한 방법으로 애국심을 발휘하려 드는 괴도와 조수 등 전편만큼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유쾌한 단편들로 채워졌습니다. 이런 구성도 까마득한 후배인 해협 저편의 르블랑이 얼마나 보고 배웠을지는 이 고전들을 직접 읽어 봐야 감이 오겠습니다. 도일 경의 문장력이 과연 좋은 편인지는 사실 의견이 크게 갈리는 편인데요. 호넝의 스타일은 최소한 도일 경의 그것보다는 더 다채롭고 심미적으로 평가할 만한 개성이 있으며 독자와 더 조곤조곤 소통하는 느낌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장르의 관점이 아닌 순문학 측면에서 더 플롯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라고도 저 개인적으론 평가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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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ateur Cracksman | My Reviews & etc 2016-11-2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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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The Amateur Cracksman (Dodo Press)

Hornung, E. W.
Dodo Press |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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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윌리엄 호넝의 작품은 국내에 번역된 게 하나도 없는데요. 그는 영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물면서 현지인(물론 애보리진이 아닌 백인 이민자의 후예들)의 정서를 체득하여 이를 작품 속에 반영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타자의 눈으로 영국 문명을 바라보는 이런 시도는 이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바 있습니다. 철저히 해당 문명권 안에서 의식이 구축된 정신이, 전혀 다른 입장의 통찰과 가치관으로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정신의 지적 우월성을 증명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혹 아니라면, 해당 방문지의 풍토와 거주자들의 감정선이 유독(그리고 우연히) 그에게 잘 맞은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문제에서 인과 관계를 초연히 따지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과제일 수 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대개 A J 래플스 시리즈를 즐겨 거론하지만, 평론가쪽으로 스펙트럼이 치우칠수록 그의 데뷔작이라든가 다른 순수문학 창작물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괴도" 이미지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래플스 연작이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요. 아무튼 이 작품은 부유하고 교양 있고 매력적인 신사 래플스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집이란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래플스는 몇 십 년 뒤에 등장한 프랑스의 아르센 뤼팽과는 여러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일단 뤼팽은 어느 단편에서도 드러나듯 비천한 성장 배경을 갖고 빈한히 자라나 자립(?)에 성공한 경우입니다. 반면 래플스는 비록 베일에 싸인 바가 완전히 드러나진 않았어도 모두가 인정하는 버젓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상류층에 강력한 연줄이 닿았다는 게 다릅니다. 뤼팽의 본모습이 범죄자인 것에 반해, 래플스는 범죄를 알바, 취미 삼아 뛴다는 점에서 차라리 스티븐슨의 피조물 지킬 박사라든가 <오션스 트웰브>의 프랑수아 툴루르 남작과 더 닮았죠.

잉글랜드 상류층의 공통점 중 하나는 너나할 것 없이 귀족형 스포츠를 즐긴다는 점입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그저 평범 수준이라도 유리한 환경에서 줄곧 취미삼아 즐긴 바라도 있으면 또래들만큼은 따라하는 법입니다. 시대를 감안해도 딱히 귀족형 운동이라곤 하긴 어렵지만 래플스는 크리켓을 프로페셔널 레벨로 경기하며, 이런 실력이 그의 매력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합니다. 홈즈도 복싱이 수준급이지만, 복싱은 그때나 지금이나 평민 이하층에서 즐겨 플레이될 뿐이죠.

홈즈 캐넌이나 그 스핀오프, 영상물 버전 등에서 무능하다며 끝없이 평가절하되는 게 레스트레이드(레스트라더) 경감 같은 이들인데, 저는 사실 구태여 자신의 능력을 부각하기 위해 그런 폄하를 (그렇게나 우월한 입장에서) 꼭 늘어놓아야 하는지가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래플스 시리즈에서처럼, 매킨지 경위 같은 이는 자신의 직무상 필요에 의해 주인공을 감시해야 하는 처지이므로, 이런 안티히어로가 경찰을 조롱하는 태도는 또 이해가 되는 면이 있습니다(아니면 뤼팽이 가니마르를 갖고 논다거나). ]

전에도 말한 것처럼 래플스에게는 조수 겸 기록자가 따라붙는데, 셜록 홈즈 스스로가 "나의 제임스 보스웰"이라 부른 적 있는 닥터 왓슨과는 그러나 좀 다른 성격입니다. 왓슨이 홈즈의 절친이기도 한 점과 달리, 버니 맨더스는 고용주와 나이 차가 좀 나는 편이며, 이런 관계상의 특징은 니어로 울프- 아치볼드 굿윈 듀오와 오히려 비슷하다고 해야죠. 뤼팽이 특정하여 조수를 두기보다, 조폭 두목처럼("처럼"이 아니라 실제로 그는 전형적인 범죄 조직의 수괴입니다. 폭력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뿐) 여럿의 수하를 거느려 일을 벌이고 수습한다면(현실적인 설정이기도 하죠), 래플스는 이 전기작가를 자신의 범죄 도구로 써먹기도 합니다. 이 작품집에서 재밌는 점은 벌써부터 호엔촐러른 제국과 갈등상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는 국제 정세가 작품에 반영된다는 건데요. 말년 홈즈와는 달리 주인공의 선택은 꽤나 자기(범죄자)다운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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