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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이무것도 안 하는 직업이라는 책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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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스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6-12-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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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컨페스

콜린 후버 저/심연희 역
북폴리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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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란 단어는 부끄러움과 설렘이란 감정을 동시에 풍기는 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꼭 청춘의 애정 고백만 그런 게 아니죠. 인생에서 큰 상처를 입고 그 아린 흉터를 아직 추스려야 하는 처지에서도, 어느 순간 미친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 앞에 전율하며 "이제부터 품는 고백의 씨는 꽃을 피울지, 아니면 또 아프게 유산될지"의 섣부른 갈등을 부를 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의 객관적 전망, 가망은 제3자의 눈으로 볼 때에만 정확히 판단이 가능합니다.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씐다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만, 한번 맹렬히 버닝할 때는 그 사람의 정확한 실체가 도통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명망 있는 변호사의 차남이고, 항상 살갑지는 않지만 결정적일 때 엄청난 우군이 되어 주는 든든한 형까지 가진 오언은 불행히도 본인이 "문제아"입니다. 그는 약물 중독이란 나쁜 습벽이 있고, 의지가 유약해서 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배경이 저만큼이나 든든한데도 주변에서 그를 누구의 배필로 추천하기 망설이는 건 이 때문이지만, 적어도 사랑에 빠진 상대를 배려하거나 그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은 아는 인간미는 누구보다 농도 짙게 간직한 남성입니다.

한편 오언과 눈먼 사랑에 곧바로 빠져든 오번 역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만찮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벌써 "시아주버니(물론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끼어든 과한 뉘앙스가 들어 있겠습니다만)"가 곁에서 맴도는 그녀인데, 사실 우여곡절 끝에 혼인 관계가 해소되었으므로 법적인 인척도 뭣도 아니긴 합니다. 그녀는 미장원에서 일을 하며,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오언의 평가에 따르자면) 사업 감각이 탁월한 면이 있습니다. 두 사람 중 어느 하나가 더 (억울하게)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서로 공평하게 죽고 못 사는, 대단히 공평한 사랑이 싹튼 것마냥 보이는데 뭐가 문제일까요? 여기서 "고백"이라는 화두가 제법 심각하고 진지하게 등장합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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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My Reviews & etc 2016-12-3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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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주쯔이 저/허유영 역
아날로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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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한때는 출판의 자유가 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협소한 개인의 행복과 자유의 범위를 넘어, 특정한 사상과 원리가 공동체, 나아가 전 인류의 복리 증진에까지 영향을 주려면, 그 정신적 가치나 기술적 세부 사항 등이 지면을 통해 확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도 웹 페이지의 최종 발표를 위한 편집 기술을 "퍼블리싱"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겠습니다. 인간은 이런 의미에서 "출판하는 동물"이라 불릴 만한데, 이런 근원적이고 양도 불가능한 자유를 제한당한다면 이는 표의자나 잠재적 독자층에게 크나큰 고통이자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주로 서양의 출판, 저작 역사에 초점을 두어, 어떤 빼어난 책들이 여태 금서로 지정되고, 그 지정된 금서가 인류 문화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재미있게 서술합니다. 못된 책, 혹은 요즘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불온 서적"은 그럴 이유가 있어(내용이 불건전하여) 양식 있는 이들에 의해 금지되었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서적에 끌리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내 자신이 어딘가 불측하거나 올바르지 못한 심성이겠다며 괜한 자책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에 의해 이른바 금서로 지정된 서적들 중, 이 책에서 소개한 것들의 경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불후의 명작, 고전 리스트"에 다름 아닙니다. 어떻게 "금서=명작"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모든 금서가 다 명작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오늘날의 눈으로 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풍속물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흔히 음서, 도색물로 분류되는 것들은 교황청이라든가, 엄숙한 지역 교구라든가, 정부의 출판 규율 당국 등으로부터 "금서 목록"에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흔히 "물건"으로 다뤄져 발각 즉시 소각되거나 압류되었을 뿐이었죠. 따라서 위험한(당시의 지배 계층이 보기에) 사상이나 주장을 담은 책들, 혹은 우아하고 잘 제련된 언어 속에 성(性)의 지향(행태가 아닌)을 담은 책들이 비로소 권력층에 의해 "금서"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적용되었기에, 당대인들이 이해 못 하거나 질서(낡은 적폐를 포함할 가능성이 높죠)를 위협할 만하겠다 싶던 책들이 제재를 받았겠고, 그런 책들 중에 명작, 고전이 많이 낀 것도 당연합니다.

아마도 금서라고 하면 <데카메론>이나 <우신 예찬> 등, 교회와 지배특권계층의 이해에 반했던 여러 선구자들의 문예 작품이나 논설을 대뜸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작품 목록들은, 오히려 근현대에 들어서까지 정부 당국에 의해 경원시된, 불멸의 명작들을 더 많이 포함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 중에는 노동자층의 비참한 근로 여건을 고발하는 소설, 희곡도 있고, 인습과 제재를 넘어 남녀 간의 자유로운 사랑을 주장하는 문예물도 있습니다. 이 정도의 표현이 이처럼이나 가까운 시기에까지 금지되었다는 점도 의외이겠으며, 이런 책들을 개인 간에 우송, 교환하는 행위도 무려 "우편 당국"에 의해 검열, 규제되었다는 사실이 많은 독자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사적 비밀, 통신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금서들 중, 유독 제정 러시아의 폭압적 처사라든가, 이후 소비에트 시절까지 포함하여 많은 명작, 정의로운 외침을 담은 저술이 포함되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제정 시대에는 다른 예속 민족의 자유를 외치는 행위가 금지되었고, 공산 정권 때에는 우리가 잘 알듯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라든가 솔제니친 등의 작품들이 엄혹한 조치에 족쇄가 묶였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제정러시아나 공산당 일당 독재나 결국 체제의 내부 적폐를 청산, 극복 못 해 무너지고 말았다는 사실이죠. 선각자,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문학가들이 외치는 소리에 제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스템이 한결같이 맞아야만 했던 운명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반드시 체제에 반대하거나, 음란한 풍습을 다룬 책들만 금지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야수적이고 잔인한 면을 그대로 묘사한, 졸라 풍의 자연주의 작품들도 결국 윤리와 미풍에 반한다는 이유로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죠. 어느 사회나 부모자식간의 바른 범절, 부부 윤리, 공동체 질서의 이상적 방향을 성원들에게 가르치고 사회화의 지침으로 삼기 마련인데, 이런 정책에 방해가 되는 내용을 담은 책 중 파급력이 있겠다 싶은 책은 흔히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인간의 품성 중 어둡고 부조리한 면을 그대로 서술했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이 금서로 묶여야 한다는 정책은, 오늘의 관점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조치이겠습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고, 다만 워낙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 자유시장의 원리에 의해 개별 저작의 튀는 성향이 그저 대중의 눈에 쉽사리 안 뜨인 결과일 뿐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금서들의 경우, 문제작이다 음서다 불쾌하고 불온한 저서다 이런 막연한 선입견을 확실하게 배반하며, 오히려 "고전, 명작 엄선 리스트"라 불려 무방할 정도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게, 이 많은 명작들이 하나같이 금서로 묶인 적이 있다면, 금서가 대체 인류 문명의 진보를 선도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어째서 이런 모순된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을까요? 당대의 정부 당국자들,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눈멀고 아둔한 자들만이 그 자리에 앉혀졌다는 뜻일까요? 그 해답은, 어느 체제나 질서라도 그에 대해 정당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거나, 비판과 개선 사항이 반영, 수용되지 않는 닫힌 사회라면 결국 그 존속이 어려워지고, 자체 붕괴나 발전적 해체로 치닫는 게 필연이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훌륭하지만, 이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보자는 외침이 죄가 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은 작가 트럼보의 유명한 말이죠.

사실 이 책은 인류 문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엄선 소개로 파악해도 전혀 무방한데, 절묘하게도 "금지, 금압"의 코드로 이 많은 책들을 엮어 소개한 저자의 센스가 탁월합니다. "센스"라고만 표현하면 어딘가 감각적인 능력만 강조하는 것 같은데, 이 책의 필치는 찬란한 고전을 선별하고 소개함에 있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엄정하고도 세련된 필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저자는 어느 작가를 소개하면서, "위대한 고전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변형, 재창조하려 든 계획"을 가졌다고 서술하는데, 이는 아마도 저자 본인이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섭렵하며 가졌을 꿈의 일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갖게 합니다.

명작 리스트라고 하면 대개 건조한 필치에 내용 요약식 뻔한 체제로 진행되기 일쑤인데, 이 책은 내공 깊은 저자의 소양 있는 문체로 각각의 저작에 대해 멋진 입문적 소개, 현대적 의미 부여가 되어 있어 소재 못지 않게 저자의 입담, 고아한 인문적 취향에 함께 매료되는 면이 있습니다. 고전에 대한 소개가 낡은 문장, 이미 확립된 정평에 의존하는 수가 많은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신선한 시각으로 해당 고전에 눈길을 다시 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직도 출판, 표현의 자유가 널리 확립되지 않은 중국의 저자가 썼다는 점에서 묘한 여운도 남기는 게 사실입니다. 언제나 믿고 고를 수 있는 허유영 번역가의 유려한 문장도,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저술인 양 즐거운 착각을 부르게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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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 2 | My Reviews & etc 2016-12-3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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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봉신연의 2

허중림 저/홍상훈 역
솔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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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권에서는 판타지와 무협, 그리고 역사와의 만남이 보다 장엄한 전개로 펼쳐집니다. 보통 이 무렵에 나온 중국의 연의류에는 시대명이 제목으로 붙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다뿐 수당연의, 북송연의, 남송연의 등도 이미 큰 인기를 누렸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어로 옮겨져 언해본(諺解本)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만은 "봉신"이라는 일반명사와 장르명이 결합한 보기 드문 모습이며, 실존 인물에의 제사를 받드는 게 보통의 관습인 중국의 문화에서, 수천 년 전의 ..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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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Badge of Courage - Stephen Crane | My Reviews & etc 2016-12-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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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The Red Badge of Courage

Stephen Crane/ Wendell Minor(INT)
Puffin Books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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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크레인은 미국문학사상 중요한 작가지만, 한국에는 여태 이 작품, <거리의 여인 매기>, 그리고 <푸른 호텔> 등만이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저 작품들도 독자들에게 백 년이 넘도록 널리 읽히고, 비평가들로부터 여전히 주요 분석 대상이 되는 주제입니다만, 아무래도 크레인의 소설 중에선 이 <The Red Badge of Courage>가 가장 높은 완성도를 지닌, 그리고 오늘날까지 꾸준히 애독되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 작품은 독일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보다 삽십 년 넘게 앞서 발표되었는데, 전쟁의 참사와 무의미함, 어리석음, 반인도적 성격 등을 신랄하고 실감 나는 묘사 중에 부각한 걸로 유명합니다. 다만 레마르크의 그 작품이 휴머니즘과 염전사상에 보다 기울었다면, 이 작품은 그보다는 개인의 공포가 내면을 어떻게 좀먹는지, 어떤 이상 행동으로 나타나며 해당 개인이 마침내 이를 어떻게 수습하고 진정시켜 균형을 찾는지, 공포라는 감정의 작동 모습, 그에 딸린 심리 묘사 등이 세밀하게 이뤄진 모범으로 유명합니다. 어린 사병이 징집되어 영웅심과 의무, 순수한 공포감과 자기보존욕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적나라한 고뇌를 보이는 모습이 레마르크의 저 장편과 닮았을 뿐입니다.

당시(뿐 아니라 이보다 훨씬 후까지)만 해도, 사내로 태어난 이상 소속 집단, 고향, 조국을 위해 분연히 총을 들고 일어서 적군을 무찌르는 미덕은 평범한 시민들의 가정에까지 당연한 미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생활의 윤리나 규범뿐 아니라, 문예 속에서도 애국주의의 고취는 당연한 작가의 의무였습니다. 직접 관련은 없으나(다만, 이 작품 발표와 시기는 비슷합니다) 도일 경이 보어 전쟁 당시 꽤 위험한 논리로 선을 넘으면서까지 영국 정부를 옹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 가능합니다. 이런 가치와 의무를 감당 못 하면 해당 젊은이는 이웃과 타인으로부터의 따가운 시선뿐 아니라, 본인 자신이 부끄러워 공동체로부터의 자진 파문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기조는 1차대전을 치르며 무의미한 소모전과 대량 살상을 신물나게 겪은 후, "전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바보짓"이란 공감대가 널리 퍼진 후에야 잦아들었지요.

작품 속 주인공은 남북전쟁 당시 뉴욕 거주 열여덟의 소년이었던 가상의 인물 헨리 플레밍입니다. 미국은 당시나 지금이나 모병제 국가라서 일정 연령대에 달한 청년이 군에 소집될 걱정은 없었습니다만, 링컨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남부 노예제 지지주들이 CSA를 결성한 후 정면반기를 든 후로는 이 "반역"을 진압하기 위해 전면 드래프트가 실시되었습니다. 헨리 플레밍은 그저 평범하게 자라난 도시 출신 여린 감성을 지닌 소년이었는데, 그뿐 아니라 몇몇 친구들은 "죽기 싫고, 전쟁터에 나가서 빗발치는 총탄을 마주하기 두렵다"며 어린 영혼들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커밍아웃"은 곧 공동체로부터의 항구적 추방을 의미하므로, 이들은 묵묵히 입대하여 본분과 의무로 강조되는 바를 따릅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개전 초기에는 남부군의 사기가 훨씬 우세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제 고장을 지키고 오래 믿어온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모여든 용사들과, 정부의 명령과 어른들의 우격다짐에 끌려 별 확신도 없이 불려온 오합지졸이, 서로 상대가 될 리 없죠. 소년 헨리가 속한 연대는 사기 충천한 남부연합군에 처참하게 패합니다. 이 과정에서 헨리는 평소에 되뇌어 온 대로, 그저 전쟁터에서 죽기 싫어 탈영합니다. "사람이 생존을 도모하려 발버둥치는 건 당연하며 생래의 권리이다!" 이런 반항이랄까 정직한 자각은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공유되지 않았으며, 정언 명령으로 부과된 의무의 해태, 불이행은 인간으로서 수치를 느껴야만 할 일탈일 뿐이었습니다.

헨리는 숲 속으로 도망치지만 거기서도 패퇴하는 북군 부대를 만나 본의아니게 전투에 임합니다.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병사, 그를 도우려는 전우들, 이 과정에서 빚어진 온갖 난장판과 참상.... 분명 자신은 탈영병이자 도주자에 불과하지만, 사방이 온통 전쟁판이 이 마당에 어디 마땅히 도망칠 데도 없다고 판단한 그는 혼란에 빠집니다. 이러던 중, 전황은 역전되어 북군으로 승세가 기욺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헨리는 여전히 죄의식과 수치심에 괴로워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소속 연대로 복귀했는데, 도망을 쳐도 시원찮게 고전해 가며 도망을 그간 다닌 터라 몰골이 말이 아니며 곳곳이 상처투성이입니다. 이런 헨리를 보고 상관과 동료들은 오히려 용감히 싸운 영광의 상흔이라며 지난 사정을 전혀 모른 채 그를 높이 평가합니다. 승세는 이미 아군측에 기운 것도 있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겸 지난 실수(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도 만회할 겸 그는 정반대로 맹렬한 용기를 보이며 적진으로 돌격합니다. 남군은 패주하며(이 과정에서도 우연한 다른 사정이 개입합니다), 기수로서 모두에게 모범을 보였다며(?)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헨리. 전쟁은 사람에게 원초적 공포를 안기기도 하고, 이의 반작용으로 만용을 낳기도 하며, 실체적 진실에 무관하게 모두의 필요와 환상에 의해 엉뚱한 무공으로 윤색되기도 합니다.

크레인은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해당 세기가 다 끝나갈 무렵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로서는 전쟁을 전혀 겪어 본 적이 없었는데도 뛰어난 상상력과 분명한 주제의식에 의해 이런 명작을 완성했고, 오늘날도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론(반전 사상, 개인주의, 심층 심리의 천착 등)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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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 My Reviews & etc 2016-12-2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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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한시준 저
역사공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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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을 보면 낙엽을 두고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은유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쓸쓸히 거리를 구르며 누구의 눈에도 무력하고 처량해 보이는 늦가을자락의 한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한 한국문학사의 절창이겠는데요. 영토와 국민은 이민족에게 앗기고 집행 강제 수단이 없는 이름뿐인 "주권"만 대행하는 어느 피정복민의 망명단체라 해도 그 애상적인 감상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의 나라 다른 민족의 망명 주권 행사도 이 같은 느낌인데, 하물며 근현대사와 직접 맞닿은 우리네 순국 선열의 사연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책은 3. 1운동 직전부터 해방까지 시기에, 주로 상해와 중경에서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들의 활약과 일생을 조망한 "열전" 과도 같은 성격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수립되고 주요 외국들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보다 앞선 7월 17일에 헌법이 공포되었지만(제정은 그보다 며칠 이른 7월 12일), 헌법에서 지난 시절 많은 고초와 수난 속에 민족 자존의 끊긴 맥을 이어 온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에 대해서는 언급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현행 헌법은 제9차 개정으로 탄생했습니다만, 이 9차 작업시에야 비로소 본문도 아닌 전문에 "임시 정부의 법통" 언급이 들어갔을 뿐입니다. 남도 아니고 후손들이 그 피땀 어린 역사를 외면해 왔으니 그 죄과와 불민함이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늦게나마 학계 일각과 독서 대중 사이에서 임정 시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구체적인 성과도 나오는 건 만시지탄 속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보통,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3. 1운동의 성과로, 그로부터 한 달여 후인 4월 13일에 상해 임정이 수립되었다고들 합니다만, 민족의 자존과 자립을 위한 노력과 분투가 느닷 공지에서 솟을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시점상으로는 1919년 이전부터 여러 곳에서 꿈틀대던 선구자, 투사들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조망하는데, 제1장에서 "정부의 기반을 마련한 지도자들"의 활약을 다룸이 그 방법론입니다. 이 장에서는 홍진, (현순), 그리고 누구라도 교과서에서 그 존명을 익혀 배웠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행적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임정의 연대기(태동, 발전, 수난, 침체, 재기)에 맞춘 서술 편제라서, 인물들의 유년, 청년기나 기타 개인적 행적이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 내용들이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이 출판사에서 펴내었거나 근간 예정인 "독립운동가들" 시리즈를 찾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자께서도 그런 평을 간단히 하시지만, "일반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인지도"의 지도자 홍진 선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제인물입니다. 우리 국사 교과서에도 "한성 정부" 사항이 주된 학습목표로 제시됩니다만, 그 한성 정부의 주도적 인물이 누구였는지는 잘 가르쳐지지 않는데, 홍진 선생은 (일제 강점, 강압의 직접적 타겟이었던) 서울(경성, 한성)에서 그 힘든 작업, 활동을 해내신 분이라 후손들이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한성 정부는 무엇보다 국내 활동의 성과물이라는 데에서 당시나 지금이나 주목받습니만, 책에 잘 정리되어 있듯 이후 노령 정부, 상해 정부, 미주나 하와이에 거주한 개별 거물 지도자들이 대립상을 보일 때 통합의 촉매, 명분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특유의 인품과 합리적인 사고 방식, 높은 식견 등으로, 통합 망명 정부 수립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실무와 정치적 교섭, 대화 주선, 알력 해소 등 여러 어려운 임무를 해내신 점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안도산의 경우 오늘날로 치면 "노동부장관" 역을 주로 촉탁받고 해당 직함을 유지하셨는데(명목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훨씬 많은 일을 떠맡으셨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죠), 이는 이보다 앞선 시기 조선땅에서 미주로 소위 노동이민을 떠난 이들을 현지에서 지도한 업적과 평판과 연관이 있다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지도자연하며 덜 수고롭고 더 큰 명예가 따르는 영역에 몸담기는 쉬워도, 험한 일을 자청하며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몸소 이뤄내는 건 확고한 인품과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책의 장이 바뀌어, 임정이 온갖 진통 끝에 정식 출범한 후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대통령, 국무령, 주석" 등 정식 직함을 지닌 역대 국가 원수들을 조명합니다. 다 알다시피 초대 대통령은 (임시 정부에서도) 우남 이승만인데, 저자는 "6개 정부에서 모두 추대된 인사는 이승만뿐"이었다며 최소한 1919년 당시만 해도 명망과 정치력으로 그를 능가할 만한 인사가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안도산도 일부 단체에서만 (그것도 장관급으로) 거명되었으며, 이동휘 같은 분은 노령(연해주 일대를 가리키며, 이 책에서 자주 거론되는 "아령[俄領]"도 러시아의 한자 가차명에서 유래한, 같은 뜻의 단어입니다)에서 조직을 갖춘 실력자였지만 그에 못 미치는 5군데에서 직책에 추천되었을 뿐입니다. 독자인 제 나름대로 그 배경을 분석하자면, 일단 서북이 아닌 기호 지방 출신인데다(분단 전 황해도는 서북이 아니며, 오히려 범수도권에 들어가죠), 전주 이씨의 확실한 족보를 지닌 명문가 출신, 번듯한 풍신의 귀족형 신분, 미국 명문대 학위 등이 그 주된 원인이었지 싶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도 나오듯 "민족 자결 주의"로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우드로 윌슨의 "친구"라는 점이 모두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용했겠죠. (미국식 기준을 적용한다 쳐도 "친구"까지는 아니며, 세대가 너무 다른데다 오히려 "은사-제자" 관계가 더 적당할 정도입니다). 안도산 역시 이승만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거세질 무렵에도 그의 이런 미국쪽 인맥을 고려하여 무마하려 애를 썼을 정도죠. 그가 사임한 후 2대 대통령을 맡은 분은 박은식 선생인데, 이 책에는 그가 과공이라 할 만큼 몸을 낮춰 이승만에게 쓴 서신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이로 보아도 16년이나 연상인 그가 "저"같은 1인칭 대명사를 쓴다든가(이 시절에는 "여[余]" 같은 중립적이거나 다소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1인칭 대명사가 자주 쓰였음은 이 책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의 "본인"과 비슷한 느낌이죠) 하는 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형성된 계급 서열 의식이 느껴져 좀 씁쓸한 맛이었습니다. 여튼, 이만큼이나 추앙받던 분이 이후 그처럼이나 왜곡되고 원성 듣는 길을 걸은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요.

책에서도 누누이 지적되듯, 가뜩이나 영토와 국민을 갖지 못한 망명정부가 그나마 내분, 알력으로 "무정부 상태(책의 표현입니다)"에 자주 빠졌다는 게 읽으면서 매우 개탄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와중에도 모두의 비극을 막기 위해 화합형, 중재형 정치인들의 활약이 눈에 띄어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더군요. 수반의 권한이 축소되고 이를 반영한 개헌이 이뤄진 후에는 "국무령"으로 명칭이 조정되는데, 여기서 책 맨처음에 굵직한 비중으로 다뤄진 홍진 선생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의 개명 사연은 제1장, 그리고 2장의 중반 등 여러 차례 비슷한 사연이 언급되는데요. 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함자를 벼락 진(震)으로 고르신 건, 예컨대 대발해의 국명인 대진국이라든가, 우리 땅의 옛 이름 진단(震檀) 등을 염두에 두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 예 말고, 삼한 시대의 "진한"이라든가, 고조선과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정치 단위 "진"국 같은 건 한자가 달라서 지지 진(辰) 자를 씁니다.

우리는 소박한 상식으로,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를 거의 동의어로 취급합니다. 근현대사에 어두운 이들은, 이승만은 그저 미국에서 호강하고 나이만 먹다가 해방 후 밥숟갈만 얹은 파렴치한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튼 그런 상식이 자리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없지만도 않은 터라, 이 책의 중반 이후, 가장 큰 비중으로 서술되는 인물은 다름아닌 백범입니다. 책에서는 아무래도 "임시 정부"가 서술의 초점인 터라, 백범의 개인적(영웅적) 활동상보다는 임시 정부 안에서의 활동상에 보다 주목하는 편이네요.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백범의 재임기에는 "정부보다는 당(한국독립당. 줄여서 한독당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위의 원칙"이 여러 여건상 지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반드시 백범만의 노선은 아니라서, 예를 들어 위의 홍진 선생도 해외 활동보다 국내 유일당 형성 운동에 진력하러 상해를 떠난 것도 통일된 조직의 역량 강화가 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 때문인데,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지도자들이 대체로 공감한 대목 같습니다. 당과 정부의 이원적 관계라고 하면 대뜸 공산 체제가 떠오를 수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죠.

백범의 행적과 주장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철저한 자주적 정책 노선으로 펴는 독립운동"입니다. 이승만이 탄핵 당한 것도 직함 남용 등 개인적 일탈이나 "신탁 통치 청원" 등 비자주적 노선이 그 사유였는데, 백범은 이를 배격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장개석 정부에 그처럼 의존할 시절에도 "광복군이 연합군 자격이 아닌, 중국군에 예속되어야 한다"는 정책에 강력 반발하여, 앞으로는 중국 정부의 자금 원조를 받지 말자고 결의할 정도였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상해, 중경의 국민당 레짐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지 이런 일화는 그간 소개가 드물었죠. 백범은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고도 긴 한숨을 내쉬며 "우리가 기여한 바 적으니 이후 발언권이 적을 게 걱정이다"라는 발언으로 위인전에까지 나오는 모습입니다. 시진핑이 작년에 飮水思源(음수사원)을 백범이 언급한 맥락이라며 기분 나쁜 소리를 한 적 있는데, 과연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나 하는 소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후손인 우리도 모르는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망명정부는 강력한 활동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정책 수립 역할인 "이론가"와 "무장 투쟁 사령관"들이 또 필수입니다. 이 책 3장과 4장은 이분들을 각각 주제로 다룹니다. 이분들이 등장할 무렵이면 임시정부의 활동 반경은 대개 중국과 만주(현 둥베이) 등으로 제약되는데, 삼균주의로 유명한 조소앙 선생과 신익희 선생은 "내외 관계(원래는 부부를 일컫는 말이죠)"로 불릴 만큼 정부 안에서 내무, 외부 담당 장관역으로 맹활약했습니다. 신익희 선생의 존영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당직회의실에도 걸려 있는데, 이는 민주화 운동의 먼 명맥이 곧 독립운동에 닿아 있음을 표방한 의도라 하겠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활약상은 왜 중점적으로 언급이 안 될까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겠는데요. 이분들은 주된 활동시기가 임정과 연관을 맺은 활약, 시점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노선과 연대기에 초점이 놓여 있고,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노선을 커버하는 목적이 아닙니다(팔로군 설명이 길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죠). 책에는 대신 우리가 그간 공부를 게을리한 "황학수 장군"의 무공과 활약상이 이청천 장군의 업적과 함께 제시되어서, 무장 독립 운동 중에서도 "광복군"의 의의, 공헌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파악됩니다.

아무래도 사료에 충실한 분석이다 보니 고어, 사어, 문어투가 자주 등장합니다. "난"은 현대 주격 조사 "는"으로 새기면 되겠고, "쥬의", "죠선' 등은 아직 단모음화가 이뤄지기 전 혼란스러운 표기, 음운 현상의 흔적입니다. 각지의 임시 정부 "주권자 3인"이 모여 과두정을 이루자 같은 문장에서는 아직 "주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이뤄지지 않았음이 엿보입니다(그때나 지금이나 주권자는 국민이고, 그래서 "대한"민"국이죠). 책에는 후주와 각주가 동시에 세밀히 배치되었는데, 후주들도 그저 출처 언급만 담은 게 아니며, 대한 제국 당시 군인들의 계급 명칭 같은 게 정리된 항목도 있으니 앞으로 뒤로 넘겨가면서 차분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하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2년 전 상해와 홍콩 증시가 서로 완전연동이 이뤄졌을 때 이걸 扈港通(후강통)이라 부르지 않았습니까? 상해(상하이)를 대표하는 글자가 "호(扈, 북경어 발음으로 '후')"인데, 이 책에도 마치 재미교포, 재일교포 할 때처럼 "재호인"이라든가, 내한(=방한)이라고 할 때처럼 "내호"라는 말을 일상어처럼 쓴 기록이 자주 인용됩니다. 

근현대사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게 상해 프랑스 조계에 위치한 "김신부로"입니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인데 중국식 성씨가 金이었던 까닭입니다. 불어로는 "루뜨 뻬르 로베르"죠. 이 주소는 바로 상해 임정 소재와 관련이 있어 우리가 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포와급미주"라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 급(及)은 우리말의 연결격 조사 "와, 과"와 같습니다. 미주는 물론 아메리카 주, 그 중에서도 미국을 가리키며, "포와"는 하와이의 가차 표기입니다. 이 책에서 자주는 안 나오지만 박용만 선생 등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흔적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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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 My Reviews & etc 2016-12-2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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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저/송병선 역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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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월, 9월 세 번에 걸쳐, 한국에 번역 소개된 유일한 "동아시아(중국) 배경 법의학 소재 추리소설"인 "디 공(적인걸. 狄仁杰)" 시리즈 중 세 편을 읽고 리뷰를 올린 적 있습니다. 동양인의 생활 방식과 사고의 특성, 독특한 문화 풍습과 세계관이 저들 서양인에게는 매우 흥미롭게 와 닿았나 봅니다. 순전히 픽션으로만 꾸려진 것도 아니어서, 로베르토 반 훌릭의 경우 물론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전달 능력, 치밀한 미스테리 플롯 구성력도 돋보이지만, 상당 부분은 중국의 사서(史書), 기록물에 근거를 두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된 것들입니다. 이는 같은 동아시아인으로서, 꼼꼼하고도 방대하게 이뤄진 기록물의 깊이와 질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주는 방증이며, 완성도 높은 서브컬처나 대중문학의 훌륭한 소스를 제공해 주는 문화 유산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 마땅한 일이겠습니다.

이 소설은 그 반 훌릭의 "디 공 시리즈"와 궤를 같이하는, 그러면서도 현대에 고도로 발전한 법의학의 최신 성과도 충분히 반영한, 게다가 역사성까지 면밀히 구현한 팩션입니다. 작가 Antonio Garrido Molina는 스페인 태생의 소설가인데, 학문적 배경은 인문이나 문예 창작 쪽이 아니라 산업공학입니다. 산업공학이라는 게 사실 공대에 마련된 분과 중에는 가장 문과 색채가 농후하고, 특정 분야를 깊이 파기보다는 두루 너른 분야에의 비전, 이해가 중시되는 쪽이라서, 아마도 인기 대중 작가로 이만큼성공하는 데 바람직한 지적 밑거름을 제공해 준 듯합니다.

주인공은 우리말로 송자, 한자로는 宋慈라고 쓰며, 작가의 모국어이자 이 작품의 원본을 이루는 말인 스페인어로는 "송씨(Ci Song)" 정도로 읽히겠습니다. 작가께서, 역사상 실존 인물인 이 송자(宋慈)에 대해 참으로 깊은 연구와 애정을 기울인 듯, 그의 생애 초반부터 명판관으로 출세의 첫발을 내디디기까지, 상당히 세부적인 대목에까지 묘사가 이뤄지고 있어서 일단 역사에 관심이 있든 없든 책을 펼쳐 든 독자에게 큰 호기심을 심어 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편입니다. 중국사에 관심 있는, 특히 송나라 때의 원숙하면서도 사대부나 서민에까지 제도의 활력이 고루 미친 시대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 필독서처럼 다가올 것 같습니다. 중국사에 대해 거의 이해가 없는 독자라 해도, 마치 요즘 미드 CSI 구경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는, 본격 포렌직 스릴러라서 기본의 법의학물에 좀 질린 분들이라면 바로 매혹시킬 수 있겠네요.

자(慈)는 송씨 집안의 둘째 아들입니다. 보통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조명하는 설정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흔히 그렇듯, 주변의 편견과 시대의 질곡 속에 혼자 "고귀한 인간성,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숙연한 마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뭐 그런 경로를 그대로 따릅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발리앙이 그러했듯, 혹은 올리퍼 푀치의 최근작 스릴러 <사형집행인의 딸>의 주인공 야콥 퀴슬이 그러했듯, 아니면 톰 롭 스미스의 걸작 <차일드 44>에서 소비에트 압제 하에 분투하는 주인공 레오 데미도프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지몽매한 민중과 탐욕스럽고 사악한 지배계층이 쉴 새 없이 몰아넣는 곤경 속에서도, 정의롭고 선한 마음의 프로타고니스트는 자신의 의지를 도덕적인 방법으로 관철해 나갑니다.

송자의 집안은 그 가부장의 벼슬길(이래봐야 잡직의 하급 관리지만)을 위해 솔가하여 린안(책에 설명은 없지만 아마 남송 시대의 수도 임안[臨安. 현재의 항저우]인 듯합니다)으로 떠납니다. 아직 소년이었던 송자(이 책에서는 "자"라는 외자 이름으로만 표기됩니다)는 이곳 린안에서 평생의 은사이자 롤 모델인 펭 판관을 만납니다. 마스터는 자신처럼 대성할 기미가 보이는 어린 싹을 특유의 밝은 눈으로 발견하게 마련인데, 송자가 펭 판관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 못지 않게, 펭 판관 역시 이 소년의 총명한 자질과 성실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불의에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착한 성품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 린안에 머물 시절만 해도 그는 아직 여리여리한 소년으로서, 다만 눈에 총기를 빛내며 접하고 마주친 모든 지식을 빨아들이겠다는 듯 의욕과 꿈에 가득차 있을 뿐입니다.

어느 정도는 역사적 기록에 근거를 둔 재구성이겠지만, 송자의 집안 식구, 그 중에서도 손윗어른들은 꽉 막히고 자기 중심적이며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전근대적 인간형들입니다. 그 아버지 되는 분도 지혜롭지 못하고 비틀어진 인간성을 지녔지만, 이 작품에서 어린 송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못된 안타고니스트는 바로 그의 친형 "루"입니다. 의붓형도 아니고 친형이 자기 피붙이들에게 이럴 수까지 있을까 싶을 만큼인데, 심지어 그는 자신의 친아버지에게조차 (한때 자신의 의사를 거스르고 대처로 나가 살았다며) 냉대를 퍼붓고, 이미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부친에게 이제는 자신이 가장이라며 폭언이나 학대도 서슴지 않습니다. 유교의 효순(孝順) 도그마에는 정면으로 어긋나는 모습인데, 실제로 중근세 중국에 이 정도 막나가는 인물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참된 인간적 각성이 부족한 채 그저 인습이나 제도적 강압에 의해 유지되는 인륜의 한계를 정확히 내다본, 그래서 재구성에 성공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지와 끊임없는 투쟁을 벌인 끝에 오늘날의 내 기질이 형성되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회고하는, 우리 눈에는 어이없이 보이는 마오의 영혼 한 구석이 투영되어 보이기도 하더군요. 중근세가 암울한 건 단지 물질적으로 궁핍해서만은 아닙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가족과 같은 일차 집단 안에서는 무엇보다 거짓 없고 진실된 인간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축복이라면, 이처럼 가족 사이에 건전하고 따스한 연대, 사랑의 감정이 구축되었다는 걸 가장 첫손에 꼽아야 하겠습니다.

여튼 갑자기 송자의 할아버지가 죽는 바람에, 송씨 일가는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야만 하게 되었네요. 이 대목에서 작가(혹은 번역자)는 "장례 의식"을 치르러 낙향했다고만 하지만, 서양 독자는 물론 우리들도 "왜 부모님이 돌아가셨는게 공직에서 물러날 사유가 되는지"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인데, 이 표현을 그저 "삼년상"이라고만 옮겼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알다시피 삼년상에 들어가면 공직 생활이건 개인적 학습이건 올스톱입니다. 모든 걸 멈추고 시묘살이를 해야 공동체와 동료들로부터 도리를 다한 사람으로 인정 받는데, 이 풍습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이해 안 되는, 그 비슷한 예가 전혀 없는 경우라서, 심지어 이 작가도 충분히 소화 못 한 채 작품화했을 수 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와 가부장이자 맏형의 독재에 시달려야 하는 송자는 그런 와중에서도, 병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여동생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한창 나이때라 또래 소녀에게 눈길이 갈 만도 하건만, 엄마가 없는 이 집안에서 동생 병간호하느라 무지막지한 형이 부과하는 노동을 수행하느라 기운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이처럼 이 장편 소설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유일한 캐릭터"는 주인공 송자뿐입니다. 그 아버지 되는 위인도 어쩌면 자식에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한심하고, 한편으로 그 장남이 휘두르는 폭거에 비굴하게 굴복하는 모습이 처량하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이 주인공 소년 송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우선은 그의 연약한 여동생을 버젓한 성인으로 키워내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굴의 정의감까지 이어지는 동력인 듯 보입니다. 펭 판관이 아니었다면 바른 길을 찾지도 못했겠지만, 일단은 착한 주인공이 범죄를 적발하고 정의를 세우는 판관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그의 내적인 자질이 더 강력한 동력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농장에선 물소가 쟁기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거 한국을 소개할 때 외국의 교과서에서 이처럼 물소가 농사에 쓰이는 그림이 나오곤 했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남중국은 제주도보다 다소 저위도인데, 과거 중화 문명의 영향을 깊이 받은(그 중에서도 남중국의 망명 정권과 교류가 잦았던) 우리를 그런 식으로 오해한 것도아주 무리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수한 두뇌와 불타는 사명감 중, 어느 것이 명판관(현대의 명탐정)을 키워내는 데 더 우선적 요소일까요? 물론 둘 다 필수불가결의 자질이나, 이 작품은 송 자 소년의 정의감과 바른 인성이 그를 (앞으로) 위대하게 만들 불씨였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갑니다(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것도 같습니다). 물소가 쟁기를 끌고 나가는 질퍽한 논에서, 잘린 머리 하나가 발견되고, 이 머리는 소년이 몰래 사모하던 소녀의 아버지임도 드러납니다. 형과 지방관은 무슨 꿍꿍이인지 이 끔찍하고 억울한 죽음을 은폐하려 듭니다. 개인 차원의 불의와 부조리가 결국은 비틀리고 왜곡된 시대상 전체를 상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흥미진진한 장편은 앞으로 이어질 장대한 시대물, 스릴러의 시작을 알리는 흥겨운 나팔소리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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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quette: The History of Eliza Wharton - Hannah Webster Foster | My Reviews & etc 2016-12-2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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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The Coquette: The History of Eliza Wharton

Foster, Hannah Webster
Createspace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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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켓"은 요부란 뜻입니다. 이 즈음만 해도 아직은 프랑스가 서유럽 문화 첨단 양식과 유행을 주도하던 시절이라 어휘이건 사회 제도이건 심지어 패션이건 곳곳에 프랑스풍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저자 해너 웹스터 포스터 여사 역시 남편과 사별한 후로는 프렌치 캐나다로 이주하여 몬트리얼에서 생을 마치기도 했죠. 물론 그녀는 유서 깊은 영국계 가문의 후예이긴 합니다. 이 작품, 그리고 두번째 발표작인 <기숙 학교> 중에도 잘 드러나 있듯이요. 그러나 작품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 주인공 엘리자나 모델로 삼아진 엘리자베스 휘트먼이나 모두 "요부"와는 매우 거리가 먼 유형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저술 당시로부터 십여 년 전 실제로 벌어졌던 화제의 추문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앞서 말한 엘리자베스 휘트먼은, 작가 해너 포스터 웹스터 여사처럼 명문가 출신 규수로 저명한 성직자와 부부의 연을 맺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난치병에 걸리고, 힘들고도 기나긴 병간호 끝에 결국 그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헌신과 애정의 미덕에 대해 주변에서는 칭송이 자자합니다. 사별 후에도 그녀가 보여준 절제와 애도의 태도에 대해, 사교계나 일가 친척 가문에서 모두의 모범이라며 아낌 없이 존경과 애정을 표합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아직 나이도 젊고 누군가의 배우자로서 훌륭한 노릇을 해 줄 만한 아까운 여인이 내내 수절(?)하길 기대하는 풍토는 저들 문화권에 없습니다. 가장 엄격한 개신교 윤리의 관점에서도 이런 경우 남겨진 여인의 합당한 재혼을 주위에서 오히려 추천하고 드는 편이죠. 그에게는 두 명의 구혼자가 찾아드는데, 한 명은 신실하고 후덕한 인품의 성직자(죽은 남편처럼)이지만 매력과 열정이 부족한 편입니다. 다른 한 명은 평판이 나쁘고 공공연히 방종한 생활을 영위하는 바람둥이 스타일입니다. 정숙한 부인이 후자에게 마음을 줄 리 없지만 주위에서 너무 전자로 몰아가는 터라 남 눈이 아니라도 충분히 정숙한 처신을 할 줄 아는 그녀로서는 반발심이 생깁니다. 게다가, 아무리 못 믿을 인성이고 불량한 몸가짐이라곤 하나 생애 처음으로 감정과 몸이 끌리는 상대와 즐겨 보고도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숨 막힐 듯한 모범생의 삶 그 굴레에 언제까지나 얽매일 수는 없기도 하겠고요.

반듯하고 도덕적이긴 하지만 너무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보이어 씨에게, 그녀는 살갑게 대하질 않고 거리를 둡니다. 보이어 씨는 아마도 이 여성이 저 난봉꾼에게 넘어갔나 보다 여기고, 세상의 평판이나 여성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전혀 믿을 게 못된다면서 그녀를 포기하고 다른 여인과 바로 약혼을 맺습니다(급하기도 하지 원). 보이어 씨의 바로 저런 기계적이고 패기 없는 모습이 싫었던 그녀지만, 바람둥이 샌포드를 남편으로 맞을 수는 결코 없음을 알 만큼 이성적입니다. 보이어 씨를 다시 찾지만 꽉 막힌 그가 이제 와서 파혼을 감행하기란 어림도 없죠. 자포자기 심정에서 그녀는 샌포드를 다시 부르지만, 지독히 이기적인 이 바람둥이는 그새 다른 여자, 마음에도 없으면서 다만 돈만 보고 만난 어느 여인과 자신도 약혼했다고 밝힙니다. 졸지에 그녀는 모든 가능성을 놓치고 만 거죠(라고는 하나 과연 그런지는 너무도 의문입니다).

결혼도 필요없고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외로움을 도무지 달랠 길 없어 그녀는 충동적으로 바람둥이 샌포드와 여러 밤을 보냅니다. 이 소문이 퍼지고 그녀는 집을 등지며 타향에서 출산 중 숨을 거둡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기보다, 대체 그토록 처신이 훌륭하던 여인이 어쩌다 최악의 나락으로 빠졌는지에 충격을 받습니다. 이 모든 사연이 등장인물들 간의 오가는 서신 중에 쓰여져 있으며, 이런 서간투 형식에서 독자들은 사태의 진상이 무엇인지 머리 속으로 정리해 가며 읽는 재미를 체험합니다. 세간의 뜨거운 화제에 오른 스캔들을 다뤘지만 절제되고 도덕적인 문체와 시선으로 소재를 처리했고, 구성 솜씨가 빼어나 오늘날까지도 초기 미국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여전히 읽힙니다. 물론 제목의 "요부"는, 오히려 독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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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력없이 인맥없이 헤드헌터가 되었다 | YES24 파블미션(舊) 2016-12-2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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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경력없이 인맥없이 헤드헌터가 되었다

문보연 저
나비의활주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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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아주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이런 예와 잘 연결됩니다. 왜 저기 현장에서 뛸 나이가 지나 버리면, 임원직으로 옮겨는 주되 밖에서 일거리를 알선해 와야 하는 압박이 오너로부터 엄청 들어오곤 하죠. 로펌도 사건을 직접 해결하지는 않되, 사건을 잘 물어 와야 파트너들한테 눈치 안 보이고, 고참 기자들도 (눌러앉은 자리에 따라) 업체한테 광고를 잘 따 와야 하는 것 비슷하게, 경제 활동 참여의 전성기가 지나면 더 이상 정력이나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아닌(나오지를 않으니까), 그간 쌓아 올린 인맥으로 품위 유지, 현상 보전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장년기를 지나서도 여전히 사람은 그 살아온 실적(나쁘면 인맥이 없죠)으로 인생의 가치를 평가 받을 뿐이며, 본인이 능력이 없으면 그냥 직장에서 짤리는 것뿐 아니라 이런 이유에서도 몇 배는 더 서럽게 나이를 먹게 마련입니다. 냉혹하지만 이게 또 정직한 인생의 법칙, 사리일 뿐입니다. 그게 싫으면 후회하기 전에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겠죠.

여튼 아직 산업, 직종 구조가 고도로 세분화했다고 볼 수 없는 우리나라는, 완전한 은퇴 그 직전의 경륜, 관록 가득한 중견들이 마치 예전에 노인네들 복덕방 운영하듯 인력 알선 업무를 비공식적 경로로 수행하는 경향입니다. 혹 전업, 전문적으로 이 일을 하시는 분들 역시, 적지 않은 연령대인데다 타 분야에서 어지간히 경력을 쌓은(그래서 인맥이 두터이 구축된) 이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까다로운 일을, 이십대부터 한 당찬 여성이 줄곧 자신의 천직으로 삼고, 지금까지도 혁혁한 실적을 올리며 주관적으로도 자긍심과 활력이 가득한 모습이라면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물건을 중개하고 거래하는 일을 해도 그 다양한 취향과 개성과 처한 입지가 다른 이들 사이에서 절묘한 매칭을 이루고 성사 후 좋은 평가까지 받으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하물며 적절한 자리에다가 "이 사람 쓰세요!"라고 알선하는 업무란, 일단 pool을 갖추고(수요, 공급 양면에서) 탐색과 연결도 힘들 뿐 아니라 대체 얼마만큼, 언제까지 (내가 하는 일도 아니고) 남이 수행한 결과로 내가 평가받아야 하는지 그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것도 여태 만들어 놓은 인맥이, 혹 해당 알선, 연결이 실패로 끝났을 경우 "그양반한테 덕본 것도 많은데 이번은 넘어가." 같은 쿠션이라도 만들어 준다면 모를까, 이제 사회 생활을 갓 시작한 젊은 여성한테 소개받는 사람(혹은 일자리)이라면 이건 참...

일도 일이지만 그 첫발걸음을 떼는 게 보통 힘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개척적인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 중 많은 경우가, 사회 생활의 첫 일자리는 또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시작했다는 게 역시 눈길을 끕니다. 꼭 연관 분야에서 경험을 쌓지 않아도, 이 시작 단계에서 치열히 일에 임하고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살아있는 눈빛으로 상사와 고객들과 소통하는 이들이 꼭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나중에 가서 성공을 합니다. 좀비처럼 그저 시키는 일이나 구색맞추기식으로 때우는 인력은, 그 알량한 자리, 면피용으로라도 시간만 지나면 시켜 주는 승진도 못하고 밀려나는 것과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분이 수행하는 헤드헌팅의 영역도 다양한데요. 앞에서 말한 대로 내부 리쿠르트(리쿠르터)라든가 그저 인맥 좋은 분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의존하는 경우와는 이런 점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사실 원칙은 책임과 계약상 의무의 한계와 효과가 분명히 요구되는, 전문 전업의 손에 맡겨서 최적화한 인력을 공급 받아야 회사의 효율, 만족이 최대화되는 겁니다. "쓰는 사람 능력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죠. 이게 감이 잘 안 오는 분들은 프로야구 트레이드, FA 시장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특정 팀에서 유난히 궁합이 안 맞고 포텐이 안 터지던 선수가, 그리 대우가 좋아진 것도 아닌데 이적하고 나서 펄펄 나는 경우, 또 그 반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이게 그저 블라인드 럭이라고 생각한다면 좀 곤란하죠). 그저 체질과 성격, 개성 팩터만으로도 이 정도 효과가 날 수 있는데(그래서, 프로 스포츠단의 프론트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프론트는 이때 "내부 리쿠르터" 역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개개인의 능력, 실적 변수를 훤히 파악하여 특정 조직에 배치될 때 활약상의 그림이 그려지는 전문가의 알선이라면 어떨까요.

제가 이 서평에 자세히 적지는 않겠지만, 분명, 분명 사회 초년생 시절이라면, 또 튼튼한 대규모 조직에 몸담는 경우가 아니라면, 남성보다 훨씬 여성이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 근데 저자분도 이 책 중에서 밝히는 것처럼, 이 직종은 확실히, 특정 자질을 갖춘 여성들에게 유리한 면이 분명히 있긴 합니다. 이게 이제, 불리한 점도 되고 동시에 (소수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계기도 되는 거죠. 예전에 저는 어느 여성 아나운서분이 쓰신 "부끄러움을 버리고 부러움을 사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 있는데,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그저 수줍어서, 뭔가 자신이 안 서서(당연합니다. 어디 남자들은 매사에 당당하게 임하던가요?) 자신의 적성에 딱이다 싶은 분야에 과감히 첫발을 못 내디디는 일이 흔합니다. 남성 특유의 뻔뻔스러움이 부족해서인데, 뻔뻔해지라는 것보다 용기를 갖고, 딴 것도 아닌 내 적성을 발휘해 보자는 뜻에서, 많지는 않겠으나 젊은 대학생, 대졸자들이 이분 책을 읽고 아 이게 내 길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수가 적어도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나의 맞춤형 인생을 비로소 개척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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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assic Works of George Washington Cable | My Reviews & etc 2016-12-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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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The Classic Works of George Washington Cable

Cable, George Washington
Createspace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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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케이블(이분 성함은 미들네임이 잘 생략 안 된 채 거명되는 것 같아요)은 19세기 후반에 전성기를 보낸 미국 작가인데요. 주로 소외된 이들의 그늘진 삶이 미국 근현대사와 만나는 지점에서 어떻게 비극성을 노출하는지를 놓고 들인 진지한 고민을 작품 속에 표현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영미권에서는 꽤 중요한 저술가, 소설가로 자리매김되는데 이런 분들 중 상당수가 그런 것처럼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번역서 한 권이 채 안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번역은커녕 이름도 처음 들어 보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 문학이 아니라 역사, 사회과학 서적에서 저자 이름이 거명, 인용된 걸 몇 번 본 적 있고요.

책프 지난 주에 해너 웹스터 포스터 여사의 작품 둘을 리뷰했었는데요. 리뷰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매사추세츠 주는 그때나 지금이나 관용과 진보 성향이 지배적인 고장이죠. G W 케이블은 여사가 타계한 후 출생한 인물이니 활동 시대를 판이하게 달리합니다만, 여튼 그는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즈, 그리고 아직도 내전이 상흔이 아물지 않아 적대적 감정이 농후하던 남부 일대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소재로 삼아 왔지만, 그의 소설이나 논설은 일관되게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기조였습니다. 이런 그의 경향성을 현지인들이 곱게 볼 리 없었고, 때로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 그는 뉴잉글랜드 매사추세츠 주로 이주합니다. 저는 아직도 2004년 미 대선 토론 TV 생중계에서, 조지 W 부시가 상대방을 향해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이신 존 케리 후보께서는..."이라며 카랑카랑하고 적의 어린 목소리로 운을 떼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냥 제 주관적 느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두고 동시대의 공화당원들이, "저 자는 자기 계급을 배신한 자"라며 성토했지만 여튼 FDR은 동부 출신이긴 하니 계급만 배신했을 뿐 출신 지역을 배신하지는 않았죠(농담입니다). 미국 남부 출신 지식인들 중에도 철저히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나 남부러울 것 없는 윤택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면서 성인이 되어서는 "철저한 배신자"가 된 이들이 꽤 있습니다. 뭐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도 그런 인물이고, 소위 시대 정신이라는 게 정말로 각 시대마다 분명한 개성을 지니기 때문에, 부모의 가치관을 등지는 인물들이 이처럼 출현하고 대세를 바꿔 나가는 것도 다 건강한 역사의 필연 중 하나이겠습니다. 그가 고향을 등진 건 나이 40에 이르러서였는데, 이후에도 논설과 수필, 문학 작품 창작 등의 활동으로 꾸준히 세상에 소신을 피력하는 모습은 변함 없었습니다.

생전에 매우 왕성한 활동을 보인 그였기에, 그의 "고전 저작"을 묶어 놓은 이 선집은 얼마나 두껍고 비쌀까 걱정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는 않고 총 페이지수가 160쪽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장기는 주로 단편 속에서 인생의 부조리랄까 치명적인 불의를 보고서도 무감각하게 넘기곤 하는 소시민들의 행태를 페이소스 속에 부각하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단편들이 부담 없이 선정되었기 때문에, 역시 일주일 안에 읽어낼 수 있는 분량입니다.


제가 지난 기수 책프할 때 이른바 "해방 노예"들의 음습한 범죄를 다룬 로마 시대 배경 탐정물을 리뷰한 적 있는데요. 확실히 낮은 신분에서 여러 한계를 딛고 보통 시민의 지위를 간신히 취득한 자들에 대한 시선이 어디에서나 곱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도일 경의 홈즈 단편 어느 구석에서는 "소위 종남작(baronet)이란 자들의 품성과 처신이 가장 악질인 법이다."라는 단정적 서술도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나오는데, 이런 시각은 아마도 도일 경 본인의 관점을 다분히 대변한 듯도 보입니다(단, 이게 원본에 있는 말인지 아니면 일어- 한국어 중역 과정에서 역자의 윤색이 들어간 흔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본래 "크리올"이라고 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뜻하는 바, 그리고 루이지애나 구입, 스페인령 식민지 병합 과정에서 부각된 미국의 크리올, 이 둘이 지칭하는 집단이 전혀 다릅니다. G W 케이블의 주된 관심사였던 크리올은 물론 후자이겠고요. 그는 순혈 흑인도 아닌 이들 혼혈인들에 대해 최소한의 인도적 배려를 베풀자는 비교적 온건한 주장만을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책과 비난을 받았으니, 그 경색된 시대의 분위기를 독자들이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진보적인 관점과, 실천이 따라오는 주장은 시대를 초월해서 주목받고 또 재조명되는 법이죠. 남북 전쟁 종료 후에도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던 인종 차별 이슈를 둘러싼 적대적 사회상이 거의 모든 작품에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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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4차산업혁명의 미래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12-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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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0년 후 4차산업혁명의 미래

미래전략정책연구원 저
일상과이상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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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이 대체 뭐길래 이처럼 야단들이지? 궁금하거나 때로 불안하긴 한데 어딜 참고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 분들은, 딱 한 권으로 단시간에 현황을 파악하고 싶을 때 이 책을 고르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입문자에게 최적화한, 현상적 급변상과 각 산업별 최우선 순위 과제, 가장 도드라진 트렌드가 망라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항들은 과감히 생략되었고, 매우 평이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쓰여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편집이 뛰어나서 선이해가 부족한 독자들도 쉽게 접근하고, 내용 파악이 한눈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란 말, 개념, 공감대, 컨센서스가 이정도나마 실체를 갖추기 전에도, 글로벌 경제는 이미 끝없는 혁신과 변혁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째 투병 중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최초 대중서가 대략 3년 전쯤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었는데요, 그 당시라면 아직은 한국에 "4차 산업 혁명"이란 용어가 일상화되지 않았을 무렵입니다. 헌데 이미 그때부터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심지어 종래의 좋은 선례조차 도움보다는 방해가 될 뿐이니 일체의 토대를 파괴한다는 기조로 임하는 혁신이라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위기의식, 각성이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 책 역시, "아무리 늦잡아도 십 년 후면, 세상에는 익숙히 여겨 왔던 모습이 단 하나도 제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살벌한 경고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대단히 온건하고 단정한(?) 품으로, 잘 정돈된 정보와 주장을 독자에게 PT해 주는 편인데, 이런 책에서조차 그 담은 핵심 주장은 "모두 다 바뀐다. 남아나는 게 없다"이니, 현황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합니다.

4차 산업 혁명이란 제목과 컨텐츠 속의 키워드를 보고서 아 경제 관련 서적이구나, 나하고는 별 관련이 없겠는걸 하며 뒤로 밀어놓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와 경각심을 다져 온 이들보다, 이런 분들이 더 먼저 꺼내들어야 할 게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배려에서 비롯한 편집, 혹은 내용 편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은 1장에서 기후 변화 등 인류 전반이 처한 환경적 조건의 실태, 셰일 가스 혁명 등 4차 산혁과 직접 관계는 없는 여러 중요 사건, 트렌드 등도 짚으면서 시작합니다. 어차피 4차 산업 혁명이 인위적으로 특정 집단에 의해 촉발된 흐름도 아니고, 의도치 않았던 여러 흐름이 합류하여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 변혁이 세계를 휩쓰는 것인 만큼,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는 목적에서 이런 거시적 전망으로 주제를 고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변화 협약은 시대의 대세이지만(이런 관점에서, 트럼프 등 일부 정치인과 산업계의 움직임을 비판합니다), 반면 셰일가스 개발이 식수난, 환경 오염 등의 장기적 원인이라는 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더군요. 이 책이 이 토픽을 책 처음에 배치한 데 대해서는, 원자재 가격 하락이라는 작금의 한 거대한 대세를 짚으려는 의도가 있었겠습니다.

트럼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책의 출간 시점에선 아직 미 대선 결과가 확정 발표가 안 되었었나 봅니다. 서문에서 박경식 원장께서는 미 대통령 당선인들이 언제나 보고(報告) 받는 <NIC 글로벌트렌드 20XX(연도는 당연히 매번 달라지죠)>를 거론하시는데, 전체로서 이 책은 우리 독자들에게 선사되는 "성의 있고 유익한 보고서"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도 아닌데 이런 내실 있는 정보, 리포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입수할 수 있는 것도, 지난 시대의 "산업 혁명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남기고 간 그 혜택 중 하나입니다. 회사에서 힘들다고 너무 불평할 게 아니라, 분명 세상의 진보, 변혁으로부터 우리가 혜택을 입는 바가 더 큰 것입니다. 아니라면 아마 문명의 종말이 먼저였겠죠.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야말로 4차 산업 혁명에 가장 취약하다며, 이런 점에서 한국은 "준비가 그리 잘 된 나라라고 볼 수 없다"는 게 클라우스 슈밥(한국에서 4차 산혁의 전도사처럼 인식되는 학자, 저술가)과 다른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반면 이 트렌드를 현재 선도해 가는 듯 보이는 독일의 경우 숱한 강소기업, 소위 "히든 챔피언"들이 잔뜩 포진했다는 게 과연 그래서 리더로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지요. 사실 전(全) 역사를 통틀어 이런 경제구조의 특성을 언제나 유지해 온 게 다름아닌 대만인데, 최근 정치적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드디어 빛을 볼 만한 시점에서 주춤한다는 게 제3자 눈으로도 안타까운 점입니다. 물론 이 책 중에는 예컨대 일본의 샤프 전자 같은 기업을 인수하기도 하는 등 그 나름 적극적으로 4차 산혁에 대비하는 대만 산업계의 현실도 일부 조명됩니다.

한국 대기업은 그럼 정말로 큰 위기를 맞을 운명이면서도 대책 없이 현상에 안주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나서 많은 투자자들이 불안해하자 후계자는 기민히 대응하여 "전자 못지 않게 차세대 주력으로 바이오시뮬레이션을 키우겠다"는 발표를 이미 3년도 전에 대외적으로 천명했는데, 갤럭시노트 7 사태도 있었지만(이 책에도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대체로 삼성은 학계와 업계의 첨단 전망을 조기에 입수, 이해, 정리, 적응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제 나온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각종 악재(노트 발화, 최순실 등)에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삼전의 주가는 승승장구 중입니다. 섣부른 루머쟁이들의 말대로였으면 벌써 도산을 해도 시원찮았을 텐데요. 돈은 거짓말은 안 한다는 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진리라서, 삼성의 미래는 좀처럼 위기에 휩싸일 것 같지 않습니다.

책은 대체로 한국 대기업들의 대처 자세에 대해 후하지까지는 않더라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며, 최소한 이런 노력을 한다 정도는 상세히 소개하는 편입니다. 물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하는데, 중소기업과의 상생적 협력이 전폭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체 역량 발휘에도 곧 한계를 맞을 뿐 아니라, 클라우스 슈밥 등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4차 산업혁명 본질과 대세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죠. 실제로 4차 산혁에서 기업은 배제보다는 공생, 공유, 협업을 일궈 나가야 오히려 생존이 가능한데, 이 역시 4차 산업 혁명 트렌드가 컨센서스를 얻기 전에도 일부 선구자들의 혜안에 의해 일찌감치 지적되었던 사항입니다. 다만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널리 보급하려 애쓰는 건 좀 다른 전략적 견지에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한진해운, 현대중공업 등이 지난 십년기 그 좋았던 호황을 뒤로 한 채 실업자 대거 양산 등 처참한 몰락을 겪고 있음은 지금 우리가 다 보는 대로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놓고도 "4차 산업 혁명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재래 직종의 대거 퇴장, 사멸"의 일환으로 파악하시는데, 사실 여기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편입니다. 대량 실직이 물론 4차 산혁의 불가피한 부작용 중의 하나이긴 합니다만, 저 기업들의 저런 문제는 경영진의 역량 문제라든가, 사태를 안이하게 본 노조 등 해당 기업 자체의 원인 이 더 큰 비중이 아닐지요. 현재 조선 해운업계 전체가 불황이고 급격한 구조 조정이 이뤄지고는 있습니다만 이는 이 업종이 태생적으로 겪곤 하던 경기연동적 이벤트에 가까우며, 이 과정을 잘 치러 낸 기업은 다음 호황기에 큰 재미를 보는 게 여태 지나 온 패턴이었습니다.

AI가 특수 기능에 한정된 "기계"가 아니라 진정 "지능"에 가까운 범용의 tool로 자리잡으려면(이게 단지 기능성의 제고 때문이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 호환이 가능해야 시장성이 생기지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 책에서도 IBM 왓슨의 예를 드는데, 현재 에어버스 등에서 항공기 정비 기능을 맡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부품들의 노후도를 체크하는 등 숙련공보다 더 정확하고 빠른 완성도, 능률을 보인다는군요. 하지만 이는 문제를 좀 단순화한 감이 있습니다. 보잉 혹은 항공운송사 등이 "전면적으로" 왓슨을 채택하지 않는 건 다 그 나름의 이유, 한계가 있어서이죠. 물론 이 분야의 성능과 신뢰도는 앞으로 급격한 개선을 보일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범용이 아니면 그건 지능이 아닌데, 왓슨은 캐나다와 뉴질랜드 일부 은행에서 투자 업무의 일부를 이미 전담하고도 있습니다.

대한항공 노조가 어제 파업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하셨을 겁니다. 뭐 우리나라엔 많은 국내외의 항공사가 노선 취항 중이니 걱정할 건 없지만, 여튼 대한항공 노사관계가 다른 회사에 비해 매우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많은 우려를 낳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함부로 거론하기 민감한), 그 중에는 승무원, 조종사의 기여분에 대해 노와 사가 인식하는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게 있습니다. 사측의 경우, 이미 자동 항법 장치가 조종사 업무 대부분을 대체하며, 이에 비해 조종사측이 주장하는 기여도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을 폅니다. 이 책에서도 이와 관련, "자율주행에서 혹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를 의미심장하게 거론하고 있습니다. 노조 측의 주장을 제가 구태여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게, 위 이 한 문장(관련이 없어 보이십니까?)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저 기술만능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첨단 트렌드의 현실적 한계에 대해서도 짚어 주는 게 이 책의 미덕 중 하나입니다.

구글이 내세우는 "딥 러닝"의 전략 목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입력한 정보의 충실한 응용, 연산, 혹은 약간 정도의 재생산이 아니라, "자발적, 자체적 학습을 통한 정보의 창조"에까지 다다르겠다는 거죠. 사실 "지능"이라 불릴 정도라면 이런 자격을 갖춰야 하고, 업계나 학계, 일반 소비자 중 눈높은 이들의 수요와 니즈를 충족시키려면 당연 이만큼의 눈높이를 지향해야 한다는 걸 구글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제가 의구심을 갖는 건, 그저 정보를 대량으로 입력하고, 신경망이라 불릴 정도의 정교한 회로 개선이 이뤄져도, 그게 양적인 면에서의 개선, 물량 공세이지 질적인 도약이 가능하겠냐는 점입니다. 양이 질을 대체한다는 건 유물론적, 기계론적 관점인데, 이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기가 주저되는 게 인문적 사고의 부인할 수 없는 조심성, 기질입니다. 이는 과학 vs (협의의) 인문 같은 게 아니라, 양 vs 질 혹은 물질 vs 정신 프레임으로 봐야 하죠. 구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엄밀히 말해 과학 단계가 아닌 엔지니어링의 치밀한 구축으로 기초과학의 성과를 대신하겠다는 포부이기 때문에, 여태 그런 식으로 질적 도약을 이룬 적 없는 인류의 역사 과정에 비추어서도 회의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4차 산업 혁명 트렌드보다는, 언어학과 뇌신경과학 분야의 천재들이 어떻게 하든 협업을 이뤄내어, 이론적 규명이 말끔히 이뤄진 후에야 의미 있는 성과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통역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서는 처음 "통역사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라고 하다가, 논의의 말미에선 "십 년 안에 AI는 각국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에 대해서도 마스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이유의 반론이 가능합니다. 시간만 지나도 현저한 기술적 개량이 가능한 건 반도체 회로 집적 등 일부 분야에서나 가능할 뿐입니다. 하나 유의해야 할 건, 일자리를 잃는 게 과연 누구냐는 거죠. 이 책의 결론은, 책 중 한 문장만 (구태여) 콕 찍어서 정리하자면, "스마트하게 일 못 하는 사람은 모두 밀려나게 된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분야에 애착을 갖고 자기 일처럼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는다"란 뜻도 됩니다. 업무 시간에 딴청피우는 자, 사장에 대해 원망과 탓질이 몸에 밴 자가, 4차 산업 혁명의 도도한 물결에서 첫번째 타깃이 됨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고용주에 대해 기계적 충성을 바치자는 게 아니라, 내 일이 정말 내 일이라 여기고 내 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성실성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논의가 마무리된 후, 별개의 레이아웃으로 "본질이 무엇인지" 리포트 형식으로 정리를 잘 해뒀다는 점입니다. 책 자체가 정리, 요약의 미덕을 잘 발휘하는데, 그로도 부족해서 정리 끝에 또 정리를 해뒀으니 독자로서 참 편하게 읽힙니다. "리쇼어링"과 "글로벌 현지 기지의 확충(타국 도시에의 본사 거점 구축)"이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의 말도 들었는데요, 그건 지적하는 초점이 서로 다른 겁니다. "리쇼어링"은 생산 기지, 자원 조달의 문제이고, 후자는 IT 편의나 세제 혜택 등에 중점을 둔 논의죠. 책에서는 상하이나 뭄바이를 들지만, 송도국제도시라든가 새만금도 이 시장을 노리고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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