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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이무것도 안 하는 직업이라는 책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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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미라클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5-3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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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반역의 미라클

서상원,배윤성 공저
스타북스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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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정수근에 대해 여러 평가가 엇갈립니다만 그가 남긴 말 중 "야구에 만약이란 없습니다. 만약을 붙이면 다 우승이죠." 같은 건 깊은 공감을 부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는 기존 명언의 얍삽한 변형으로도 보이지만, 왠지 저 말만큼은 자신의 절실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직한, 그리고 순도 높은 깨달음의 토로 같아서 마음이 끌리는 게 사실입니다. 별로 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도 그럴 정도니 참.

"만약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얕은 자기위안을 일삼는 자는, 현재의 자신이 진짜 자신, 스스로 마음 놓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쁜 습성을 가졌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서태지의 노래(<환상 속의 그대>) 가사 중에도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라는 게 있죠. 실패를 해도 "그때의 나는 잠시 내가 아니었기에 실수를 한 것"으로 치부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진짜 참된 나의 모습은 언제 발견하고 전면 수용할 것인가? 모릅니다. 아마 그런 사람에게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성인은 이미 "자신이 될 수 있는 용량, 가능성"을 다 채우고 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어떤 능력, 품성 등이 새로 채워지기는 어렵죠. 예전에 윤종신이 지금처럼 예능에 많이 나오지 못하고 015B 객원 싱어 종료 후 뚜렷한 커리어를 못 찾을 때, 어느 방송에서 "서른이 될 때까지 못 배운 건 앞으로도 영원히 내 것이 못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게 체념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그때까지 형성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활로를 찾겠다는 무서운 현실 인식과 고백, 다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로 그는 지금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습니까.

저자분들이 주장하는 건, 지금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현실이 마음에 안 드니 모종의 페티시나 중독성 오락에 빠져 현실도피를 일삼고, 그 와중에서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고 있는 듯 스스로에 최면을 거는 거죠. 그게 독서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읽는 족족 막장드라마로의 자동 각색이 독후감으로 생산된다면 그게 가뜩이나 병든 정신을 더욱 썩게 하는 자폭이지, 무슨 손톱만큼의 향상, 발전이 남는 행위겠습니까. 하긴 중독자에게 말이 통하면 그게 이미 중독이 아니지만,

가공하고 과장하고 허풍을 치지 않아도, 사람은 다 그 나름으로 개성 있고 귀한 존재입니다. 그게 없는 걸 있게끔 허위로 꾸민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직한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때 가능한 거죠. 그런 사람이 입으로는 무슨 말을 떠들어도, 속으로는 자신이 루저고 거짓말쟁이라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까지 철저히 모르는 타입은 드물더라고요.

희망이라는 걸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희망이고, 없는 걸 찾는다면 그건 망상이나 환각일 뿐이죠. 이렇게 자신에 대해 올바로 파악이 이뤄졌을 때, 그 다음부터 진정한 책임이 생깁니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분명, 자신이 책임져야 할 누군가, 무엇인가를 방기하고 있습니다. 백이면 백 틀림 없더군요. 사람에 대해 무책임한 건 아마 그 사람(가족)을 마음 속으로 크게 원망하고 있어서일 겁니다. 무책임으로 일종의 복수를 하는 건데, 그래 봐야 관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이상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올 뿐이죠. 무엇이든 배움에는 한계가 없고, 섣부른 체념은 자신에게 독소를 심을 뿐이겠으나, 이런 노력에는 올바른 방향성을 전제로 합니다. 잘못된 목표와 현실 인식으로부터는 아무런 성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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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여관 | My Reviews & etc 2016-05-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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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가의 여관

임수진 저
이야기나무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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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삼천리 강산 중 어느 한 곳 사연과 정기가 깃들지 않은 데가 있겠습니까만, 충남 예산 역시 반만 년 역사 동안 숱한 인재를 배출하여 조국의 역사를 떠받들어 온 고장입니다. 직접 찾은 적은 없으나 수덕사란 이름 높은 사찰이 소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수덕여관이라고 해서 전 처음에는 여러 명사들이 거처하거나 혹은 잠시 몸을 머물다 간 지난 연혁을 빗대어 그리 별명으로 부르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고요,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정식으로 그 이름을 단아히 쓴 현판이 그리 붙은 현황입니다. 하긴, "여관"이란 명칭이 우리 일상인들에게 그리 건전하거나 정감 어리다거나, 그저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한 의미로 다가오지도 않는 판에(칙칙한 불륜의 현장), 고찰(古刹)에 그런 별칭을 내력 없이 붙였다면 불경스럽고 무엄한 태도가 아닐지요. 다행히도 이 안온한 사적은, 그런 불측한 세인의 시선이 고정되기 훨씬 전 그 이름을 보다 자연스런 내력을 통해 얻은 걸로 보입니다.


"수덕여관"에 몸을 담은 유명인들 중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인물은 세 사람입니다. 책은 첫 부분이, 이 무정물 "수덕여관"을 1인칭 화자 삼아(따라서 유정물이겠을) 자신의 몸에 안겼거나 스쳐 갔던 다양한 인물들을 회고하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서부터는 그 인물들의 사실적인 행적, 시대를 앞서갔기에 부당한 편견과 억압 기제로부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그 발걸음들을  조명하는 글이 이어집니다. 그 판단 기준과 비평적 분석은 일단 저자 임수진 님의 세계관에 기초한 듯 보입니다만, 남녀를 불문하고 대개의 결론에는 우리 독자들이 다들 동의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이름을 떨친 신여성 나혜석이 처음에 등장합니다. 화려한 남성 편력을 자랑한 우리 시대, 혹은 가까운 시대의 여성이라면 누굴 예로 들을 수 있을까요? 딱히 몇 사람을 거명하기 힘들 만큼 일반화되었다고 봐야 할까요? 지난 시대의 명배우 김지미 씨 같은 경우, 본인처럼 잘난 이성 여러 분을 남편으로, 동거인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당대에조차 극심한 비난 대상이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이는 아홉 번이나 "결혼"했고, 그런 잘난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살기도 하나 보다 같은 인식이 이미 지난 시절 어르신들의 뇌리에도 자리해서가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허나 나혜석은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분. 민족 차별이란 시련 뿐 아니라 성별의 우열 기제가 시퍼런 기세를 드러내던 시절의 인물입니다. 얼마나 그 삶이 고단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녀의 그 가시밭길 같은 행보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 익히 아는 바지만, 이 책에서 흥미롭게 소개하는 대목은, 바로 이 수덕여관에서 그녀가 어떤 자취를 남겼는가 하는 점들입니다.

빼어난 재능을 지녔던 그녀가 마지막 소품전을 실패한 이유는, 아마도 그간 각종 소문과 분쟁에 엮여 들며 평판이 나빠진 탓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작품 외적인 이유). 붓 놀리는 솜씨라든가 무르익은 감성, 독자적인 관점 등은 그때가 전성기였지 않겠나 하는 추측이 가능해서입니다. 아래 사진은 나혜석의 자화상인데, 화가가 남긴 많은 마스터피스 중에서도 자화상이 특히 중요한 이유를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이미 완숙경지에 접어든 그녀의 화필 놀림도 놀랍지만, 그림 하나가 이처럼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랍니다.


임장화, 백성욱 등 역시 당대의 잘난 남성들과 숱한 사연을 빚은 풍운의 신여성 김일엽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년의 그녀를 담은 화폭 등을 보면, 불가에 입신하여 완전한 영의 안식을 얻은 달관의 표정이 보입니다. 이 점에서 선배(나이는 동갑이죠) 나혜석보다 그녀가 더 행복한 인생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뭇 풍파를 헤치고 자유로운 영혼이 도달한 지점은, 육신보다 정신의 영원한 해방을 지향할 부처님의 품 속이었다는 사실.

보통 우리들이 재외 예술가로서 탄압을 받은 양대 인물로 알고 있는(윤이상 작곡가와 더불어) 화가 이응노 선생이 나옵니다. 선생의 존함이 노나라 노(魯) 자를 쓴다는 건 이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나혜석으로부터 바로 이곳, 수덕"여관"에서 높은 가르침(화법 관련)을 받고 수제자가 된 그는, 스승으로부터 기예 뿐 아니라 그 자유로운 정신 세계까지 이어받아, 시대의 굴곡과 고착화한 기제에 구애 받지 않고 역시 꺼릴 것 없는 경지를 개척해 나갑니다.

세 분의 공통점은, 이성과의 연애(물론 그 이성들도 간혹 이기적이었을망정 하나같이 자신처럼 잘난 사람들이었습니다)에 있어서도 그저 정직한 마음이 시키는 바 그대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이응노 선생이 젊은 시절 그 꿈과 재능을 키웠던 이곳 수덕사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찾고 유명을 달리했다면 얼마나 그분 자신에게 행복한 순간이었겠습니까만, 그는 고향이나 이곳 수련터는커녕 고국 자체에 끝내 다시 발을 못 들여 놓고 말았죠.

인간의 자유혼과 창작의 집념, 천재의 몸부림 등이 모두 이곳, 한적하기 그지없는 고찰에서 이상적인 조화와 안식을 얻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휴가 때 시간을 내어 그들의 숨결을, 먼 시간을 사이에 두고서나마 직접 느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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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명:영웅 홍계남을 위하여 | 서평이벤트 2016-05-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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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天命)

영웅 홍계남을 위하여

 

 

⊙ 기초서지사항

이병주 지음∥신국판∥ 초판: 2016년 5월 20일∥나남

1권: 414쪽∥13,800원∥ISBN 978-89-300-0628-6(04810)

2권: 440쪽∥13,800원∥ISBN 978-89-300-0629-3(04810)

 

 

 

⊙ 해제

 

이병주의 웅혼한 필치로 그려낸 홍길동의 실제모델 홍계남의 불꽃같은 삶!

천출로 태어난 그를 하늘은 ‘영웅’으로 선택했다!

 

양반인 아버지와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노비로 전락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홍계남. 천출(賤出)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냉대를 받지만 이를 모두 이겨내고 임진왜란에서 의병장으로 뛰어난 무공을 세운다. 이후 관직을 얻고 자신과 같은 출신의 서자들을 보살피다 양반을 누르고 천생들을 도왔다는 억반부천(抑班扶賤)의 역모죄를 뒤집어쓰는데….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왜장들이 혼비백산하는 명장으로, 불합리한 신분제도에 숨죽여 살아야 하는 무성(無聲)의 백성의 대변자로 활약했지만 역사의 뒤안길에서 유성처럼 사라져 버린 홍계남. 그의 불꽃같은 삶이 역사소설의 대가 이병주의 웅혼한 필치로 되살아난다.

 

⊙ 차례

 

1권

편집인 노트/고승철

작가의 말

서장

겹겹이 쌓인 한(恨)

옥녀(玉女)의 길

홍계남 출생의 비밀

은하수는 밝은데

명궁(名弓)의 길

망조(亡兆)의 일월(日月)

8인의 협객

빛과 어둠

정여립의 난

이국땅에서 달을 보고

통신사의 무모한 갈등

일본에서 돌아와

허실(虛實)의 시간

풍전등화(風前燈火)

 

2권

 

고독한 영웅

용명(勇名)을 천하에 떨치다

임진(壬辰)의 해는 저물어

사자 몸의 벌레들

여군(女軍)대장 채대수

아아, 행주산성

사람 잡아먹는 사람

홍계남을 처단하라

죽어도 죽을 수 없어

아아! 진주성(晋州城)

영천(永川)의 수령(守令)

경주(慶州)의 싸움

해후(邂逅)

방화(放火)사건의 음모

아버지 같은 권율 장군

역모 혐의로 끌려가다

형틀 앞에서

노을 녘의 사랑

유성(流星)…사라진 꿈

 

 

⊙ 저자 소개

 

이병주(李炳注, 1921~1992)

 

호는 나림(那林).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대 전문부 문예과와 와세다대 불문과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다. 해방 후 진주농대와 해인대(현 경남대) 교수를 거쳐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발한 언론활동을 했다. 516 때 필화사건으로 복역 중 출감한 그는 1965년 월간 <세대>에 감옥생활의 경험을 살린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발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등단하였다. 그 후 1977년 장편 <낙엽>과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공간,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 정부 수립, 한국전쟁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그의 작가적 체험은 누구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의 비극에 고뇌하게 했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5월>, <정도전>, <정몽주>, <허균>, <돌아보지 말라> 등의 대하장편이 있으며, 1992년에 화려한 작가생활을 마무리하고 타계하였다.

 


 

 

  집기간_ 5월 23일(월) ~ 5월 29일(일)    

  발표날짜_  5월 30일(월)

  게시기간 5월 31일(화) ~ 6월 9일(목)


참여방법_ 게시물을 스크랩 한 후, 해당 URL 주소와 <천명: 영웅 홍계남을 위하여> 의
기대평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당첨되신 3분에게 책(1,2권)을 보내드립니다.
활동내용_ 책을 받으신 후, 개인 블로그, 서점 블로그 및 서점 리뷰,SNS 에 올려주세요.(총2곳 이상)
모집인원_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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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세계사 | My Reviews & etc 2016-05-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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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압축세계사

크리스토퍼 라셀레스 저/박홍경 역
라이팅하우스 | 2016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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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으로 세계사를 개관한다는 건 매혹적인 체험입니다. 역사에 대해 밝지 않은 독자들은 대략으로나마 아웃라인을 잡을 수 있을 테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면 포인트의 취사 선택 과정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관점을 자신의 것과 비교, 대조하는 재미가 있어서입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소위 빅히스토리의 퍼스펙티브로부터 기획의 큰 틀을 마련하고 있어서, 이런 시각을 역사 시대 이후의 각론들에 일일이 어떻게 투영시키고 결론을 낼 지도 주목거리였습니다. 물론 분량이 워낙 "압축적"이어서 너무 큰 기대를 갖는 건 곤란합니다. 비행기로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이 한 권을 잡고 긴 시간을 채우면 알찬 읽을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고대 파트에선 익히 독자들이 알던 대로,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요령 있게 핵심만 추려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기록에는 (지금 기준으로) 1200BC 경에 "해양 민족"이라는 정체 불명의 세력이 오리엔트 일대를 대거 침입해 왔다고 나와 있죠. "민족"이란 개념은 엄밀히 말해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원어 people은 워낙 막연해서 무리가 없는 반면), 우리 한국 공통 교과 과정에서 이 부분을 잘 안 다루는 통에 여전히 낯설어할 독자가 많겠습니다(물론 페니키아의 설형 문자나 해양 활동은 교과서에서도 언급됩니다). p29의 지도를 보면 지명 "우루크"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어 신선한 느낌이었는데요. 저도 히스토리 아틀라스를 여러 권 가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런 판형이 작고 짧은 요약서에 실린 지도에서는 무엇을 부각하느냐보다 무엇을 생략하느냐가 더 중요한 선택입니다. 레퍼런스북의 자료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담는 게 중요하지만(물론 이 중에서도, 개념도로 편집된 지도는 간결할수록 좋죠), 이런 책에서는 지도에 무엇무엇을 과감히 생략하고 무엇을 확 부각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우루크"는 주류 입장에서 오늘날 "이라크"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는 도시 이름이죠. 예전에 <아시모프의 구약>에서 그 박식한 분이 "아리아 인"을 어원으로 잡은 것을 보고 꽤 실망한 기억이 있어서 이런 태도가 더 반갑습니다.

고대 파트에서 비중이 조금이라도 더 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인도 마우리아 제국의 흥망과 불교 초기사가 적절한 표현과 균형감각으로 소개되고도 있습니다. 저자분이 정통 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에 가까운 분인데, 이 책에서 특별히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길 기대하긴 그래서 어렵구요. 본인 자신이 취재차, 그리고 NGO 활동차 세계를 누빌 때 특별히 거쳐 온 지역에 아무래도 더 방점이 찍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빅히스토리" 관점도, 이 저자분이 기후 협약 관련 활동할 때 특히 인문적 바탕으로 관심을 두던 터라 이처럼 도입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처럼 저자 개인의 고유한 활동선과 역사 서술의 관점이 조화를 이룰 때, 그게 독단에 치우치는 않는 한에서 독자에게 "틀에 박힌 고정 관념"에서 유쾌한 일탈을 이뤄 보는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은 다소 표준적, 모범적인 스텝을 밟고 있어서, 기대했던 만큼보다는 재미가 덜합니다.

중세를 커버하며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왕조까지)의 역사를 언급하다(이 역시 기대보다는 비중이 크더군요), 아주 잠시 샤를마뉴 朝와 비잔티움 일대를 건드리고, 이어서 몽골 제국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태도가 개성이라면 개성이겠습니다(관점에 따라, 당대에 실제로 행사했던 국세를 감안하여 가중치가 바르게 반영된 공정한 서술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 평가가 무색하게도 동아시아 중화 제국 관련해선 서술 비중이 또 떨어지는 게 아쉽지만, 그거야 이 책의 분량이 350여쪽이라는 점도 감안은 해야겠습니다. 샤를마뉴 조, 한참 뒤 신성 로마 제국 초기 판도, 비잔티움 서술의 빈약한 "출현"은 대신 지도 세 장으로 어느 정도는 벌충이 됩니다. 이런 류의 책에서 신성로마 제국을 비추는 지도는 딸랑 초점이 중부 유럽에만 맟춰져 있는데, 사실 "황제"들이 어지간히 골머리를 앓은 이슈는 이탈리아 경영이었고, 이런 관점에서 프레임을 아래로 연장하여 양 시칠리아 왕국(요즘 국내서들은 "兩" 자를 잘 안 쓰더군요. 영어 텍스트[이 책의 원서가 아닌, 일반적 사서]를 보면 Two Sicilies라고 일관되게 표기합니다만)까지 다 보여 주는 게 좋았습니다.

바로 앞 페이지 지도에서 프랑크 왕국의 범위를 이탈리아 반도 중부 아래까지 죽 내려잡는 태도도 흥미로웠습니다. 현대의 국경선 개념처럼 정밀한 계측이 가능했다거나 근대 조약 프로토콜이 확립된 때도 아니라 이런 건 저자의 관점이 그런가 보다 넘기면 그만이죠. 브린디시움과 히포니움 일대(각각 구두 뒤축과 앞머리)만 살짝 남긴 그 과감한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스만으로 넘어가면, 저자는 "자유로운 사상을 열망하는 풍조가 일반화됨에 따라 제국은 점차 쇠망하게 되었다"고 평합니다. 이 문장은 본문뿐 아니라 지도 아래에도 거듭 첨부되는데, 이 책의 태도는 내내 이런 식입니다. 오스만은 대개 세속 제국의 성격이 강했고, 피정복민의 종교, 고유 습속 유지 문제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죠. 구태여 트집을 잡자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이후 파트에서도 잘 밝히고 있듯 군주가 대폭 민중에 양보한 지역은 지금 민족 국가로 잘 살아남아 번영을 누리고, 그러지 않았던 정치 단위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큰 봉욕을 치르거나 사멸해 버린 교훈을 강조하려는 취지 정도로 해석하겠습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을 두고 저자는 "혁명"이라고까지 평가합니다. 리버럴 입장(이 저자분부터가 리버럴 성향입니다)에서는 퍽 환영할 만한 명명이고, 다만 미완의 혁명, 실패한 혁명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알죠. "누가 인도를 다스리는지"를 명확히하기 위해(저자의 표현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정식으로 제국을 창설했고, 이때부터 섬나라의 군주들이 정식으로 "황제"를 칭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소위 대영제국은 불과 70년 정도만 존속했다는..

p263의 지도에 보면 플로리다 병합 과정이 둘로 나뉘어 도시되는데, 1810~12년에 이뤄진 西플로리다 지역 일대의 병합에서, 4대 매디슨 대통령은 이 과정이 나폴레옹 1세와 거래한 "루이지애나 구입"의 일환(즉 미이행된 계약의 완전 청산)이라 주장하여 에스파냐 제국과 대립했고, 1819년이라 지도에 나온 플로리다 반도의 완전 병합은 제국의 양도(겉으로는)가 그 원인입니다. 보통 개즈던 구입, 텍사스 병합까지만 다루는데 이 지도는 그 부분에서 다른 교과서 지도들과 달리 상세했고, 다만 쿠바 쪽으로 문장 부호가 이어져 잘못 보면 쿠바가 2년 동안 병합된 걸로 오해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화살표는 서 플로리다를 향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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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으로 소통하라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5-2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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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정으로 소통하라

함규정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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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금 기준으로 육십 대 이상인 분들이 그저 일만 하고 청춘, 장년기를 다 보낸 분들이라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데 서투른 것 같습니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또 남다른 사명감으로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그저 밤을 새워서라도, 사무실에 엉덩이를 박고서라도 마무리를 짓고 나서 자기 할 말을 해도 하는 게 그들의 전형적인 애티튜드였죠.  근데 이게 공과 사를 엄밀히 구분한다든가, 성격이 냉정하게 합리적이라서 자기 일을 확실히 한다, 이런 게 아니라(차라리 그 반대입니다) 상황으로부터 강요된 합리주의를 서둘러 덮어썼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 부작용은 지금 곳곳에서 나타나며, 이후 세대를 위해 희생한 그들이 억울하게 비판 받는다는 점에서 안타까움도 적잖게 듭니다.

그렇다고 그 이후 세대가 감정 처리 면에서 자연스러우며, 일과 상황,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잘 조화시키는 소통을 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못합니다. 경우에 따라 그 윗 세대보다 더 나쁜 실증이 되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 20대 중반 정도, 사회에 갓 발을 들여 놓은 이들이 일은 일대로 잘하고(준비를 잘해서 들어오죠), 감정 처리도 자신과 남을 고루 배려하며 조직에 융화하는 데 더 능한 것 같습니다. 위에서 하도 말썽을 일으키고 껀마다 싸우고 하는 모습을 봐서, 그게 다 나름 진화한 것 아닌가 짐작도 됩니다. 물론 서양처럼 세련된 직장 문화를 가지려면 아직 멀었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 책은 "소통에 있어서 감정을 억눌러서는 안 되며, 공적인 자리, 일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진정성으로 상대를 대해야 하고, 그 바탕에 솔직한 감성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무조건 속내를 드러내면 협상뿐 아니라 일상의 처세에서도 문제가 있죠. 중요한 건, 치밀한 계산, 합리성과 조건의 유리함, 혹은 갑을관계(물론 바람직하지 않지만)의 협상력 우위만으로 판을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위에 열거한 조건들도 다 필요한 사항인데, 저자의 말씀은 "그런 게 주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감정을 앞세운 소통이 오래간다"는 뜻입니다.

책의 1부는 개인적 사항, 즉 상처 입은 자신의 감정을 혼자서 힐링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당연한 지침이겠습니다. 아니 자기 감정이 상처를 입어 피를 줄줄 흘리는데, 누굴 지금 웃는 얼굴로 진정성을 담아 접대하겠습니까? 자신의 상처를 잘 보듬는 게 타인을 잘 대해 주는 전제 조건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남한테 잘하려고 해도 자기 감정이 뒤에서 목덜미를 끌어당깁니다. 올바른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도 자기 감정을 잘 정돈하는 게 필수 조건입니다. 또 그런 사람을 상대하는 게 거래 상대방 입장에서도 아주 편합니다. 상사에게 그 사람을 칭찬하며, 말이 통하고 이해력이 빠르다며 다음 번에도 그 사람을 나오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감정이 뒤틀린 사람은 무엇보다 "일을 못하는 무능한 사람"입니다.

2부에서부터 이제 나 아닌 타인의 감정을 읽는 요령이 제시됩니다. 사실 본인 자신이 감성이 풍부하고 어딘가 꼬인 구석이 없다면 남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잘 읽어냅니다. 이런 사람은 또한, 마음에 배배 꼬인 구석이 있어 겉으로 아닌 척 위선을 떠는 사람을 잘 잡아내고, 요령껏 멀리 떨어뜨려 놓다 점차 선을 끊습니다. 그런 상대는 곁에 둬 봐야 나한테 이로울 게 1도 없기 때문이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결국 실속을 잘 챙기는 영리한 사람입니다. 또, 속으로는 누구나 부러워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기도 합니다. 머리 똑똑한 사람보다 감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물처럼 조화하는 사람이 더 행운아이며, 심지어는 "더 똑똑해보이기"까지 합니다.

무작정 상대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게 장땡이 아니라, 때로는 엄하게 다룰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 하나를 장악하려 들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지금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되어야 함을 "감정으로" 상대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설사 그 말이 치밀한 근거와 정합성을 지니더라도), 감정이 잘 표현되고 소통되는 게 중요합니다. 싸움을 하면서도 얼굴은 서로 웃고 있을 때가 있는데("아 지금 우리 뭐하는 거냐고 이거" 같은), 이런 게 이 책에서 가르치는 감정 소통 방식에서 가장 바람직한 패턴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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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나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5-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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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들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나

스티븐 R. 샬렌버거 저/이선희 역
시그마북스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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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검 영 대학은 한국에선 괜한 선입견이 묻어 있지만, 미국 현지에선 열 손 안에 꼽는 명문 대학 중 하나입니다. 아직도 한국에선 졸업생들의 사회적 지위 등 계량이 어려운 변수로 명문대의 랭킹을 매기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세월이 지나면 재단에서 얼마나 물적인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그 대학의 서열이 전해지는 게 거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이 책 저자 스티븐 살렌버거(브리검 영 대학이 배출한 인재 중 한 명)도 자계서나 경영서 분야에서 많은 히트작을 낸 분이고, 그런 쪽보다는 실제 경영계에서 두드러진 영향을 끼치는 재계 거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나 최고가 되고 싶고, 최고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업무에서 현재의 자신보다는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대세에 묻어가기만 바라는, 속마음이 비틀어진 이중의식의 좀비는 예외겠지만 말입니다. 이 분야에서, 즉 "최고는 어떻게 최고가 되었나"는 주제를 놓고, 서로 비슷한 제목을 단 여러 책들이 지금까지 출간되었고, 대부분은 한국말로 번역, 소개까지 되었습니다. 그런 주제를 표방한 책들을 읽어 보면 저자가 실제로 발품을 팔아 각 분야 최고들을 인터뷰하고, 저자 자신만의 독창적 결론과 자료 취합으로 멋진 제안을 명제화하여 독자에게 제시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니즈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두어 권 읽고 정답이 찾아지는 건 기대하기 어렵죠. 다 좋은 내용들이고 독창성 있고 진정성도 담겨 있지만, 그래도 여러 권을 읽고 보다 포괄적으로 해답을 모색해야 합니다. 저자는 일단 "당신의 업무 역량이 최고가 못 된다고 스스로 여겨지면, 그 돌파구는 '변혁'이라는 키워드에서 찾기 시작하라"고 주문합니다. 변혁은 첫째 "리더십"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때의 리더십이란 실제로 특정 부하직원들을 이끄는 리더십일 수도 있고(팀장제가 보편적인 현실을 감안하면), 그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에서의 리더십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어제 읽은 일본 저자분의 책이, 정신력이라든가 끈기, 의지 같은 무형의 요소를 강조하는 기조가 아니어서요, 이 책처럼 다시 "의지" "집념", "비전"같은 주제를 내세우는 내용을 읽자니 조금 멀미가 오는 것 같습니다만, 서양 저자의 책에서 또 이런 방향성을 접하니 느낌이 참신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기본 의지, 방침, 비전이 서 있지 않은 개인, 혹은 조직은 아무리 호조건이 몰려오거나 특수한 호황을 타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다만 이분도 무작정 의지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1) 면밀한 계획이 서 있는 의지, 비전, 2) 우선순위가 확실히 정해진 장기 계획의 중요성 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제가 요즘 이런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는, 특히 사회에서 뚜렷한 성공, 성취를 거두고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은, 그 문장이랄까 강연을 세심히, 어느 단어를 강조하고, 어느 개념을(다른 대안이 있을 텐데도) 거론하는지 살펴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말은 남의 것을 따라서 누구나 흉내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 일류들이 하는 말은, 내용이 대동소이한 듯 해도 그 전체 컬러에서 대체 불가능의 개성이 느껴지죠.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유명한 교수님들의 말이나 학설은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그 독특한 인품이라든가 개성은 직접 봐야 뭘 배워낼 수 있다."고들 했죠. 이런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그 소리인 듯 싶어도 대작 대필 아닌 진짜 육성 원고만이 풍기는 아우라가 분명히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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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집중력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5-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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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후의 집중력

나구모 요시노리 저/이혜령 역
21세기북스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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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을 두고 근력, 지구력, 순발력 등과 함께 체력 영역에 분류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특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학급 담임을 맡은 분)들은, 집중 안 하는 애들을 두고 "정신적인 문제점[나태, 산만함 등]"을 집중 훈육하곤 하죠. 덕분에 옆에 앉아 있던 착한 애들까지 함께 혼이 나곤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집중 못 하는 건 태도의 문제지, 무슨 타고난 체력이 나빠서라든가, 환경의 요인 때문으로 돌리진 잘 않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집중의 문제를 이렇게 접근하다가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집중을 할 수가 없고,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다 보니 정작 잘 되어가고 있는 영역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또한, 집중력이 설사 본질적으로는 정신의 문제라고 쳐도, 그렇게 접근해서 나쁜 현황이 개선될 기미를 안 보인다면 실용적 측면에서 폐기해야 마땅한 입장이라는 겁니다. 저자의 관점에서라면, 집중력 향상은 거의 전적으로 "체질, 외적 습관, 당사자의 건강"이라는 요인들에 좌우됩니다. 따라서 이런 "정신 외적"인 문제를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집중력 문제는 향상의 기미를 볼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어서 "집중을 잘 하면 어떤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상세한 분석을 이어가는데, 사실 그에 대해서야 구태여 언급이 없더라도 우리가 절실히 바라마지 않는 사항들이겠습니다. 저는 2년 전쯤에 "올바르지 못한 수면이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 결과"를 다룬 책(물론 그와 연관된 다른 주제가 핵심이었지만)을 읽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르겠죠. 잠은 좀 부족해도 괜찮다며 넘어가는 이들이 많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 심각히 여기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이들은 별로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일본인들이 정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혹독한 시련을 겪고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분위기는 전전에도, 그리고 전후에도 그 사회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게 과연 그 사회에서나마 효과를 보고 통하는 말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요즘 사람들한테 이런 식으로 다그치면 아마 백이면 백 다 거부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아마도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더욱, 정신 부문이 아닌 체력과 체질 면에서 눈에 보이는 개선, 변경을 시도하여 집중력을 개선한다는 이런 발상이, 참신하며 또 심리적으로 뭔가 반가운 감정을 독자에게 부르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단 그가 충고하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한번 살펴 보면,

첫째 수면은 3시간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순전히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될 때도 있고, 전혀 와 닿지 않는 무리한 주문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요. 확실히, 완전히 정신을 소진하고 귀가한 후 쓰러지듯 잔 후에 눈을 떠 보면, 새벽 2시라든가 더 심하게는 밤 11시 정도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속으로는 "아, 본래 이 정도 수면이면 다 해결되는 거였구나"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사람이 어디 그렇겠습니까. 오랜 시간 동안 지켜 온 습관은 지켜 줘야 몸에 탈이 안 날 것 같고, 또 괜히 누워서 잡생각을 하면 재미있으니까 누워 있게 되는 건데, 여튼 이 수면에 대해서 학자마다 또 실천가들마다 별의별 입장이 다 있는 줄 알고 있지만, 3시간은 너무 심했다 싶어도 좀 잠을 줄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적어도 애써서 몇 시간씩 의무적으로 잘 필요는 전혀 없다는 걸 마음 속에 좀 주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들었습니다. 야근을 안 한다 이런 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집중력을 개선하려는 목적 자체가 일을 잘하려는 데 있다는 걸 생각하면 본말이 바뀐 거나 마찬가지라서 그부분은 대충 읽고 넘어갔습니다. 일 안 하고 건강만 신경 쓸 상황이라면 그때 가서 참고해도 되겠죠.

"침식을 잊는 경험을 해 보자" 실제로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쌩쌩하게 돌아다녀서 당시 선배들한테 "너 인간이냐?"며 반은 장난인 말을 듣기도 했는데,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건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더군요. 저자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일단 오전 시간은 누구나 맑은 정신으로 보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제법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난 후의 오후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지를 놓고 자신만의 방법론을 풀고 있는 겁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점심을 먹지 말아 보자"는 제언을 하는데, 이 이슈는 저자가 예전에 쓴 <1일 1식>과 연결 지어서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을 겁니다. 앞에 나온 야근 문제와 더불어서 회식 문제도, 조직에 속한 사람이라면 임의대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는 현실적 애로가 있습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독자로서 언제나 난감한 건, 현실적으로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힐 때 어느 부분을 희생하고 어느 부분을 타협해야 하는지 그 취사선택의 문제입니다. 저자가 웹 상에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분이라면(그렇게 해야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고 저술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죠), 그런 주어진 자리에서 개인적 변용 실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유권 해석"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샐러드유나 드레싱 역시 이런 메뉴를 섭취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식도락의 요인인데, 저자는 이런 것도 다 커트해야 한다고 하셔서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아마씨유 같은 건 사 놓고 잘 적용을 안 해봤는데, 저자는 대체 이런 것 하나하나를 자신의 일상에서 실천을 다 해 본 분인지, 아니면 개인이 체질 차이를 정말 고려해 보신 분인지, 일일이 유/무해를 논평해 놓고 있습니다. 술 문제는 확실히 고급 주류가 다음날 숙취 문제에 도움을 준다는 건 알겠고, 우엉차는 책에서 권유하는 대로 한번 지속적으로 적용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걷는 습관, 다리를 놀리는 습관은 매우 중요한데, 일단 어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다리 떠는 습관을 저자는 유지하라고 조언하네요. 서 있을 땐(서서 돌아다닐 때) 모델처럼 걷자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자세가 발라져야 집중력(을 넘어서 체력 전반)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건 예로부터 타당성이 입증되었으니 말이죠.

사실 많은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대목은 "뇌의 관리를 통한 집중력 향상"을 다룬 5장일 것 같습니다. "머리 기억에서 몸 기억으로 이동"하라는 주문은, 특정 습관, 혹은 특정 정보를 처리할 때 머리 속에 쓱 메모하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마치 프로야구 선수가 안타를 치거나 의도한 코스의 볼을 집어 넣을 때 특정 동작을 뇌와 몸 전체에 새겨 두는 것 같은, 신체 전체, 혹은 몸과 마음이 통합된 정신 작용으로 습관화를 하라는 교훈입니다. 뇌는 그저 두개골 속에 고정된 하나의 기관이 아니라, 신체 말단까지 곳곳에 뉴런을 뻗친 통합적 기능체이기 때문이겠죠? 6장은, 종래 집중력을 "정신만의 문제"로 치부한 입장에서 동의할 만한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온당한 주장은, 기존의 것을 전복하고 전부 새로운 내용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반대로 기존의 타당한 주장을 이처럼 자기 안에 포섭할 줄 아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집중이 안 될 때는 반대로 여러 가지 과제를 자기 앞에 늘어놓고 조금씩 시도하라는 주장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역시 고루한 노인네들은 아주 싫어할 법한 말인데, 중요한 건 실제로 해 보고 성공을 거둔 사람이 해 주는 말, 그게 타당한 주장이지, 본인도 실패한 주제에 그저 권위만 내세려우는 의미 없는 단정성 주문은 거부반응을 부르기에나 딱 좋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짤린 무능자도 이런 좋지 않은 습관은 꼭 공유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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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링 에너지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5-2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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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딜리버링 에너지

김진호 저
인더북스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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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이라는 것도 다 개인적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실력이 전혀 없고 스펙만 잔뜩 쌓는 것, 그리고 사람의 참 실력을 보지 않고 스펙에만 따라 그 인적자원의 가치를 평가하는 풍조는 물론 큰 문제입니다. 헌데 우리가 정장을 입고 깨끗이 단장한 모습으로 업무에 일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스펙도 "내가 이만큼이나 노력을 했습니다"라는 일종의 에티켓과 같은 전시 행위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자세가 안 된 사람은, 스펙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실력도 없고, 실력만 없는 게 아니라 기본 태도부터가 틀려먹은 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장인은 절대 스펙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남들 갖추는 스펙은 다 갖추고, 그 위에 실력과 창의력도 기르고 발전시키는 법이죠. 이도저도 아닌 무능자가 "스펙만 중시하는 풍조" 탓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스펙에 얽매이지 않는 실질적 자기계발이나 소위 "당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주장하는 저자, 강사라고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걸어 왔느냐에 따라 신뢰성이 큰 폭으로 왔다갔다 하곤 합니다. 실제로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대기업에 몸도 담아 보고, 거기서 우수한 실적을 내기도 해 본 분이 이런 말을 해도 해야 우리가 거기에 따라갈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스펙 좋으신 분이 그 주장하는 바도 "스펙이 최고가 아니라 진정 당신이 행복해지는 길을 택하라" 같은 파격적인 주장을 하면, 듣는 이가 자연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관적 행복이라는 게 현실도피, 자기 합리화의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실제로 우리들 중 누구도,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바깥 세상을 향해 "그저 내 꿈을 좇으려" 직장을 그만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말도 그렇게 말을 할 만한 사람이 말을 해야 설득력이 있는 법이죠.

저자는 일단 "마음 속의 나침반을 꺼내, 나 자신의 자침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쌓은 스펙이 많고, 지금까지 이뤄 놓은 업적이 많아, 만약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할 경우 "잃을 것이 많은" 이 저자 같은 분이라야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들은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단계에서부터 금기의 껄끄러운 느낌이 엄습합니다. "괜한 사치, 한가한 마음 품지 말자. 나가면 시베리아 벌판이다." 그러나 저자는 전혀 다른 제안을 합니다. 대세에 순응하기만 하는 자세를 버리고, 마음이 정직하게 시키는 바를 자신이 깨끗한 시야로 응시해 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 봐야 한다는 거죠. 물론 능력 부족으로 회사(그나마 소규모의)에서 밀려난 자가 허위로 내세우는 핑계와는 궤를 크게 달리합니다.

저자는 또한 아마 독자 대부분이 공감할 만한, 이런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돈, 시간 또는 재능 등을 가지고 있어야(Have) 돈과 시간을 투자하거나 재능을 살리는 일을 하여(Do)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고(Be) 생각한다. 이것은 현재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생각과도 같다. 그런 생각에 붙잡혀 있으면 늘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재능이 없어서 못하게 된다."(본문 그대로를 인용했습니다) 어떤 선행 조건이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생각은 물론 건실하고 신중한 태도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라는 게 루틴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중대한 phase라면 어떻겠습니까? 우선순위(priority)는 전면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떠밀려가는지도 모르고 레밍(사실 과학적으로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하지만)이나 두꺼비의 떼죽음처럼 무리에만 휩쓸려 살 수는 없습니다.

방향(dream), 마음(think), 행동(doing), 습관(habit) 이 네 가지 토픽이 저자가 주장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기본 얼개입니다. 먼저 바른 꿈, 정직한 꿈을 갖고 내 인생의 방향성을 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진정성 있고 높은 집중도를 유지하며 생각의 구조와 단계를 세밀히 확정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꿈"을 위한 세부 설계도가 그려집니다. 이런 구상들은 머리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행동"으로 거침없이 옮겨져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실천은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이고 체질화한 습관으로 정착되어야겠죠. "에너지"를 외부 주입 동력 없이 자체 마음가짐의 전환만으로 생산하는 존재는 우리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모른다면 결국 떼지어 집단 자살을 택하는 하등동물과 다를 바가 없죠. 매 순간 마음의 자연스러운 희열이 생산해 내는 에너지를 축적하여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주인은 어느덧 나의 소유로 바른 위상을 회복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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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뇌 사용법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5-2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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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적의 뇌 사용법

마크 티글러 저/김경섭,최인식 공역
김영사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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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으로 자기 적성을 잘 살려 성공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물론 뭇 대중의 선망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재능을 타고나기가 그리 쉬운 일도 아니며, 일단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다시 태어나서 취득할 수도 없는 건 당연하죠. 우리의 감동을 일으키는 건, 처음에 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역경을 딛고 일어나, 부족한 머리나마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채워가며 결국엔 천재, 수재 등을 능가하는 성취를 이루는 그 과정에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사람입니다.


물론 많은 바보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결함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자각을 못 한 채, 좀비처럼 사무실을 배회하며 비굴한 눈치나 슬슬 보며 시간을 때우는 걸 "주위와 잘 융화한다"고 자위하다, 위아래로부터 공히 패배자, 무능자의 낙인이 찍힌 채 조직에서 퇴출되며, 정치적 성향이 안 맞아 버림받았을뿐이라는 둥 사후 자기 합리화를 일삼죠. 그런 사람은 그렇게 살다 세상 등지는 겁니다. 다 자신이 선택한 길인데 방법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의식이 지진하고 평범 이하의 멍청한 방식으로 세상에 부적응하는 것도 역시 수정, 포태, 난할 과정에서의 우연의 장난일 뿐인데, 인간이라면 설사 그런 어려움이 있어도 이기고 헤쳐나갈 줄도 알아야죠. "나도 남들과 똑같은 초기 조건으로 맞춰 주고 게임을 시작하게 해 줘!" 참 곤란하기 짝이 없다고나 할까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업무 무능력뿐 아니라 공감 무능도 지독한 수준입니다. 하긴 남한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그따위로 해 놓고 말겠습니까? 그래 놓고 자신한테 향하는 공감은 뻔뻔스럽게 바라고 앉았죠. 무능자에게 공감하면, 똑 같이 회사에 해를 끼치고 똑 같이 쫓겨나 실업자 신세가 되라구요?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마찬가지며, 행여 저러다 범죄자의 길로 빠져 드는 것도 통계적 빈도가 낮은 결과는 아니더라는 게.


난독증을 극복하려다가 결국 속독의 대가가 된다? 저는 본래 속독이란 걸 믿지 않고, 그저 1) 많은 텍스트를 읽고 눈과 뇌의 신경을 그에 맞게 단련하는 길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2) 많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지식이 없는 독자보다야 당연하게도 해당 문장을 더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형식적 수련(1), 실질적 숙련(2)을 거친 후에야 남들보다 책을 빨리 읽게 되는 거지, 무슨 하루아침에 계룡산에서 도 닦은 영감님한테 이상한 신통술을 배워 스킬이 나아지길 기대하는 건, 그저 인생에서 요행수를 바라려는 대단히 불성실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잘 될 리도 없거니와, 그런 어설픈 요행이나 바라는 자가 잘 되어서도 안 됩니다. 남들 노력할 동안에 본인은 뭘 했습니까? 도둑놈 심뽀에 다름 아니지요.

그러나 이 저자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저자는 자신이 난독증이라는 장애를 가졌고, 이를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극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태껏 제가 사기꾼 비슷한 인간들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귀가 따갑게 들어 온 게, "영어권 텍스트를 읽을 때 대각선으로 읽어낸다" 같은 요령들입니다. 특히 저 대각선 드립은 정말로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습니다.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책을 실속 있게, 정보를 잘 취합하고 여기에 독자 본인의 기성 지식이라든가 독특한 감성을 잘 결합해서 읽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본인이 실천을 해 내고 그걸 설파하든지 해야지, 본인 혹은 그 누구도 해 내지 못하는 가공의 스킬로 뭘 팔려 든다면 그게 과연 사기가 아닐까요?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소위 "대각선 독해"의 실효성에 대한 부정을 하고 시작합니다. 속독 기술 같은 걸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저는 저자의 이런 태도가 너무 좋아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저자는, 소위 형식적 속독 비법에 대해 거의 전면적으로 가치를 부정합니다. "단어를 스킵하지 않고, 행과 열의 모든 단어를 읽는 사람이 진정한 속독자이며, 그런 사람들은 빨리 읽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정보를 머리 속에 정리한다." 이게 정직한 설명이며, 또 허황된 기술 향상에 대한 대중의 어리석은 환상을 자극하지 않는 도덕적인 태도입니다.

"... 그러나 속독을 하는 사람들이 더 똑똑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때때로 그들은 글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독자로서 예를 좀 들어보겠습니다. 속독의 대가가 만약 있다면, 그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 없이 다음의 글(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47709&cid=42351&categoryId=42351)을 3분만에 읽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저 아티클의 필자는 공교롭게도 자신의 글 중에서, 자신이 설명하는 내용의 독해 수월도에 대해 메타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3분이 아니라 3초 만에 읽어 내어도, 그 글에서 전달하려는 정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면, 그 활동은 그저 ATP의 무의미한 이화작용에 다름 아닙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기법에 따라 속독을 체득할 수 있는 이라면, "줄 끝까지 눈을 이동하지 않아도 그 줄의 내용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어떤 중립적인(독자의 이해도, 지능, 학력과 무관한) 기술에만 의존한다면 불가능한 결과입니다. 속독은 형식이 아닌, 텍스트와의 유기적 상호작용에 기반한 "실질적"인 것이라야 합니다. 저자가 그런 표현을 쓰고 있지 않으나, 여태 속독에 관한 다른 주장들을 지겹도록 접해 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저자처럼 이런 실질적 속독의 기법에 이제는 독자들이 정직히 눈을 뜰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속독 주제만 이 책에서 다루는 건 아닙니다. 마인드매핑(책에서는 "맵핑'이라고 표기하네요)이라든가, 연상도구(mnemonic device)에 대한 흥미로운 주제 설명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연상도구는 말이 어렵다 뿐 우리식으로 말하면 "두문자 암기법"입니다. Please Excuse My Dear Aunt Sally는 미국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우리 주변에도 조기 유학생 출신이 많죠) 이들이라면 정겹게 기억해 낼 문구겠습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여기는 건, 저들은 이런 문장이라면 즐거운 추억이 동반 연상되는데, 우리는 예컨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라면 치를 떠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겁니다(이제 "명"은 빠져야 맞겠으나). 무튼 속독이고 학습이고 남다른 진행이 되려면 그걸 하는 사람 본 마음이 즐거워야 합니다. 저는 이 책 저자가 이런 기본 원칙을 중시하는 분이라서 그 주장하는 바를 흔쾌히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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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위력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5-2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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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념의 위력

클라우드 M. 브리스톨 저/최봉식 역
지성문화사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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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에 활동한 클로드 마이런 브리스틀은 우리가 잘 아는 데일 카네기와 비슷한 또래였으며 당대에 이름난 저술가, 강연자였습니다. 욱일승천하는 신흥 공업국인 미국에서, 개선된 미래를 꿈꾸며 능력을 계발하고 자신의 직장에서 보다 향상된 지위를 도모하며 계좌 잔액의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고 뿌듯한 성취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기에, 이처럼 타인의 동기부여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인사들이 그처럼 큰 호응을 얻기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 역시 그의 저서 중에서, 그리고 자계서의 체계 속에선 고전으로 꼽힙니다. 고전은 고전이나 종래 한국에선 독서인들이 주로 문예의 고전, 철학의 고전을 즐겨 찾고 또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다 주며 권했을 뿐 자계서의 고전이라면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을 뿐 아니라 잘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듣기 좋은 말만 잔뜩 써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이들 교육용으로 더 끌릴 법도 했을 텐데 말입니다. 한국에 이 분야 고전들이 본격 번역, 소개된 건 제 기억으로 2X세X 출판사가 새뮤얼 스마일즈 전집을 (이를테면 이곳 예스24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멋진 장정을 입혀 본격 마케팅에 나서던 십 년 전 정도부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데일 카네기의 책이라면 워낙 정평이 나 있던 터라, 1970년대 대기업 다니던 분들이 한국 수출 기조의 대약진이란 운수 대통의 기를 받아 많이들 접한 아이템이긴 하죠. 이 외에도 당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던 일본 독서계의 풍토가, 자계서를 그닥 높이 평가하지 않던 요인도 있지 싶습니다.

"신념"이라고까지 격상시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튼 직장인들은 좀비처럼 분위기에 환경에 묻어가는 식으로 처세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과제를 받아들면 "할 만하니까 나한테 이게 할당(assign)되었고, 기왕 하는 거 중간이나 간신히 맞추자는 안이한 생각보다 '끝내주게 처리하겠다'"라는 악착 같은 각오가 서 있어야 합니다. 애착, 집요한 각오, 쉽게 물러서지 않는 진지함, 이 모든 마음의 자세가 "긍정주의"라는 기치 아래서 유기적이고 통일적으로 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2008년 즈음에 자계서 장르가 서점에서 완전히 위상을 굳히기 시작할 무렵, 김성환이란 세일즈맨이 쓴 수기 <절대긍정>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죠. 저는 사서 보지는 않고 이곳 예스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사은품으로 받아 보았는데,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라면 여튼 매 페이지마다 절절하고 다 타당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더군요. 어디 가서 보란 듯이 펼쳐 놓고 읽는 폼은 영 안 나겠지만 말입니다.

미국인들이 실용을 중시하고 과장 없는 표현을 쓴다고는 하지만 "미라클"이란 말은 의외로 자주 들립니다. 꼭 종교적 맥락에서 쓰는 것도 아닙니다(미국을 무슨 종교 국가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념 체계가 머리에서 엉터리로 자리한 탓입니다. 당치도 않은 소리죠). 브리스틀은 바로 이 신념이, "기적"을 낳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합니다. 있을 법하지 않은(improbable) 일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 이 과정과 결과를 두고 그는 "기적"이라 명명합니다. 영적 각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정신이 도덕적 목표에 따라 정화되는 게 기적일 지 모르지만, 브리스틀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눈에 보이는 실용적 지표를 중시합니다. "내가 이전에 내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 했던, 접근하려고 마음 먹지도 못했던 일을 해 내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성취감으로 가득 차서 다음 과제에 임하는 자신감이 충천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브리스틀의 말은 과연 언표한 바 주제에 걸맞게 자신감과 "신념"으로 활짝 만개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강렬한 충동, 정신의 고양에 이끌려 쓴 문장은, 그를 읽는 독자도 그 느낌이 지면을 통해 전해져 옵니다.

그 당시엔 "잠재의식" 같은 개념이라면, 이게 대중화는커녕 진지한 지성인들 사이에서도 완전한 동의를 얻기 힘들었을 텐데요. 어쨌든 브리스틀은 자신의 이해 범위 안에서 자신의 사고 체계에 자연스럽게 편입시켜 독자(그리고 아마도 청중)들을 설득하는 유력한 도구로 활용합니다. 자계서에서 강조하는 취지, 교조라는 게 크게 봐서는(물론 세부적으로 파고들어가면 계통과 족보가 다 갈립니다. 이섬님께서 예전에 쓰신 포스팅이나 리뷰 참조) 뭐 크게 다르지 않기에, 브리스틀이 이 무렵에 자계서식으로 확립한 개념이 현재에도 널리 애용된다 해도 별반 틀리지 않습니다.

책의 마무리는 "당신의 감정을 지켜라"라는 의미심장한 충언이 채웁니다. 전 이런 시각도 시대를 상당히 앞서갔다고 봅니다. 백 년 전이면 그저 불편하고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노오력하고.. 뭐 이런 주문 위주로 갔을 것 같은데도요. 그런데 감정은 첫째 결국은 내 자신이 지켜야 할 나라는 실체, 영혼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자, 모든 감정을 다 희생하고 털리고 난 뒤 CEO의 자리에 올랐다, 머슴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그레이드까지 다 채웠다, 이런 경우라도, 이미 입사 초기 청년이었던 "나"는 어딜 갔는지 없고 웬 늙은 좀비가 거울 앞에 서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세상을 다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라는 격언처럼, "내 영혼의 일관성"을 잃으면 그게 결국 건강의 치명상을 입은 거죠. 두번째로, 요즘은 이렇게 주견 없는 유령 같은 직원을 윗선에서나 동료들, 심지어 신참들까지 다 안 좋아하고 심각하게 경멸합니다. 즉 처세 면에서 빵점의 옵션이라는 겁니다. 얼핏 봐서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직원도, 결국 전체 조직의 건강성을 위해 일정 부분 용인해야 할 장점이 있다면, (정말 의외로 보이지만) 결국 끝까지 가고 자리들도 다 타내더라는 거죠. 생각해 보면 다 살아남기 위한 게임이기 때문에 오너나 중역들도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암군마냥 눈을 감지는 않는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감정"은 그래서 여하의 전투, 전쟁에서건 끝까지 사수해야 할 본진이라고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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