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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표현형 | My Reviews & etc 2016-07-3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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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확장된 표현형

리처드 도킨스 저/홍영남,장대익,권오현 공역
을유문화사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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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 존재론에서는 나의 동일성(Einheit)에 대해 아주 깊은 논변을 전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체성과는 또 다른 개념으로서, "나"인 것과 "나 아닌 것"의 경계 획정, "나인 것"의 외연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사유와 분석을 통해 규정하려는 노력입니다. 한편, 지지난 세기 멘델은 자신이 무엇을 다루는지 대상의 정체도 모르면서 이미 유전자형과 표현형의 대강을 직관과 실험을 통해 파악하는 놀라운 천재성을 보여 이후 생물학이라는 분야의 큰 얼개와 방향성을 개인의 힘만으로 정초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멘델의 시대로부터 어언 두 세기가 지나도록, 우리는 아직 "인간"과 "개체"의 정의와 내포가 무엇인지, "진화"의 실체적 운동성을 진리로 긍정할 때 이의 지향과 동인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는 채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 미지의 영역은 조만간 인식론의 대상으로서건(인문), 자연과학의 탐구 주제로서건 언젠가는 명확한 해답에 도달함을 약속하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최재천 전 서울대 교수님은 "더 이상 도킨스를 거치지 않고서는 진화생물학을..."이라고 말씀하셨다지만, 현대 한국의 대중은 당연히 도킨스의 업적과 활동상의 의의에 대해 그 이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진화생물학, 혹은 (이런 경계지음이 다분히 그 학문 외적인 인사들에 의해 이뤄짐을 감안할 때) 순수자연과학의 훨씬 안쪽 영역에 진입하여 연구하는 이들의 연구 업적 전체를 논의 대상으로 삼아도, 도킨스의 업적은 "진화"생물학은 물론 생물학 본연의 스펙트럼에서 확고부동한 자취를 이미 남긴 바 있습니다(그것도 그가 아직 젊었을 시절). 이미 젊은 시절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기고, 아직 더 많은 성취가 기대되던 무렵 그는 인문과 실천, 나아가 (어느 정도는) 정치의 영역으로 몇 발 넘어와 같은 시대 대중과의 교감을 시도했습니다.

도킨스는 이 고전(이미 삼십 년도 전에 나온 책입니다)에서, 당시의 대단히 지적이고 기존의 통념에 얽매이지 않는 진보적인 독서층에게도 큰 출격으로 받아들여졌을 과감한 가설들에 대해 일종의 법칙화를 시도합니다. "...이런 사례들과, 숙주-기생 간의 차이가 있다면 별개로 구획된 유기체의 몸(대단히 모호한) 안에서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네커 정육면체뿐 아니라, 삼차원 물체를 이차원에 정사영할 때, 혹은 같은 삼차원에서 왜곡 없이 인식할 때에도, 어떤 물체가 관찰자의 시야에 어떤 상을 맺는지는 주위의 환경에 따라, 혹은 그저 시점상의 소소한 이동에 따라 전혀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유려한 산문가인 도킨스 박사가 이 두툼한 책의 논의 그 서론(緖論)의 테마로 이 도형을 끌고 나온 건, 독자들을 매혹하기 위한 유익하고도 효과적인 시도로 평가받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도킨스 박사는 직정적인 성품에 에둘러 말하는 습관도 적은 분이라, 이런 아름다운 사례가 그저 청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 편의적으로 선택되었다곤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꼭 네커 정육면체 같은 외관상의 신비를 부르는 대상이 아니라도, 또 이 책 전체에 걸쳐 인용되는 숱한 비의적 생태 사례가 아니라도, 도킨스 박사 자신의 논변에 의해 역시 얼마든지 다른 결론의 귀납적 도출이 가능하겠다는 점을, 오히려 이 책을 읽고 깨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진화의 본질, 유기체의 궁극적 방향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 혹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뤄진 건 인간 스스로가 의미 있는 분량과 분야의 창조주 역할을 직접 떠맡고 난 이후의 경향입니다. 그 대표적인 게 이 책이 저술될 무렵 한창 기반을 마련하였을 정보화 혁명의 배경입니다. 허무하게도 유전자에 담긴 정보의 맹렬한 릴레이 이상 생명체와 대사 작용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을 거의 최초로 우리에게 소개한 것도 도킨스 박사의 "업적"이죠.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허무주의에 빠져들길 그가 의도한 건 아니며, 역시 보는 관점에 따라 더 맹렬한 의미의 탐구 노력에, 그저 지향점만 다양화하여 더 몰입할 수도 있습니다. 개체와 개체의 경계를 분리하는 건 어찌 보면 대단히 단순하게도 그저 "몸이 별개인지 아닌지" 같은 원시적, 직관적 기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당연히 믿었던 과거처럼 이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를 그대로 간과한 무지의 폭주일 수 있습니다. 개체(어쩌면 불필요한 개념 정의일 수 있죠. 과거의 "에테르"처럼)보다 더 효과적인 개념, 실체의 기초 단위가 "표현형", 그것도 "확장된 표현형"일 수 있다는 제안은 아직 단단한 기반을 마련한 단계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 위에 광대무변한 인식의 구조가 구축될 수 있는,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문을 열어젖힌 호쾌한 첫 발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주가 대폭 늘어 전에 간과했던 많은 사항에 대해 다시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독자에게 친절히 제공하는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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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바이러스 | My Reviews & etc 2016-07-3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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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나리자 바이러스

티보어 로데 저/박여명 역
북펌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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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미처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딴 세상의 가능성이겠거니 안심하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소설속의 사례를 들 것도 없이, 지금 우리가 뉴스에서 거의 매일 같이 목격하는 다양한 테러의 연발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대중 밀집 시설을 거의 매일같이 지나가고 또 경험하지만, 시설의 관리자들은 태평하게 출입하는 우리들에 대해 일일이 (공항에서처럼) 수색이나 검사를 실시하지 않습니다. 불순 분자가 간단한 동작과 단순한 악의만으로 대형 참사를 일으킬 소지는 매분 매초마다 충분한데, 어쩌면 오늘도 번화가 한복판을 다녀오고도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행운인지 모릅니다.

미인 대회는 우리가 잘 알듯 대회 일정 기간 동안 참여자들의 합숙을 통해 진행됩니다. 리얼리티 쇼 포맷도 아니고 요즘처럼 미디어에서의 취급    이 소홀한 풍토에서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이게 또 의외로 오래된 전통이죠. 이들을 이송하는 버스를 두고 테러가 일어납니다. 탑승자들은 큰 부상을 입는 등 신변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지는데, 신체의 상해가 이전 상태의 미추에 별 관련 없이 그것만으로 일률적인 심각한 침해이지만, 우리 독자나 대중들은 어찌된 일인지 "미인들이 집단으로 상해를 입고 신변이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에 더 경악하고 불안을 느낍니다. 여태 실제 역사에서 이런 일이 벌여졌던 적은 없으나, 대중의 시선을 한데 모으고 유효한 공포를 유발하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책동도 드물 듯합니다. 이런 인트로가 이 더운 여름 독자의 눈을 바로 붙들어 두는 데는 아주 그만이더군요.

소설은 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이 다빈치 선생은 참 여러 작품에도 번갈아 등장하느라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바쁘신 몸인데, 이책에서는 그의 내밀하고도 당혹스러운 성적 취향의 암시와, 그의 미묘한 재능과 직관, 탐구욕이 빚은, 미심쩍고도 아름다운 여러 마스터피스가 먼 후대에 끼친 기괴한 영향(!)이, 매 챕터 앞마다 등장하여 복선를 깔기에 또 바쁘군요. 이 대목들마다 다빈치가 보여주는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씁쓸합니다. 사실 댄 브라운의 작품은 매우 단순한 플롯을 취하고 있고, 그 모티브도 다른 르포의 주제와 얼개를 빌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이 소설은 동기와 플롯 구성, 주제 면에서 그와는 비교가 안 되게 참신합니다. 이 소설뿐 아니라 현존하는 스릴러 작가 중 댄 브라운만큼 단순한시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는 별로 없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미인을 볼 때 설사 그 겉모습의 아름다움이 어떤 개성과 함의를 지니든, 그녀의 속마음까지 잘 정돈되고 선한 모습이겠거니 짐작을 합니다. 단지 성적 욕구의 충동질이 아니라는 점은 그와는 아무 관계 없을 할머니나 꼬마들(여자아이)도 늘씬한 미녀를 보고 더 호의를 베풀어 주고 싶어하거나 동경하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겉모습과 속의 실체는 서로를 가장 극명한 국면에서 배신하곤 합니다. 우리가 가장 집착하는 건 어느 정도의 생존 욕구가 해결되고 난 뒤라면 아름다워지고 싶고, 혹은 그 아름다운 것을 손에 넣으려는 원초적 본능입니다. 이런 본능과 욕구에 대해 우리는 아무 의심도 반성도 품지 않지만, 많은 경우 이는 우리 자신을 근본적 안위부터 뒤흔들어 놓거나, 치명적 위험에 빠뜨리기조차 합니다. 극단과 극단이 서로 통한다는 통찰은 일찍부터 있었지만, 미와 추가 결국은 긴 연속체상의 한몸일 수 있다는 건 아무도 동의하려 들지 않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한편으로는 쓴맛을 다시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Beauty is only skin deep이란 금언의 타당함이 새삼 깨달아지는 정체 모를 상쾌함을 느끼게도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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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행력 높이기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7-3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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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실행력 높이기

어용일 저
지식나무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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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잘 꾸리는 건 물론 중요합니다. 어느 회사이건 최고의 두뇌가 곧 기획통으로 키워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죠. 하지만 19세기 독일 통일의 주역 大 몰트케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전투 한 번만 거치면 살아남는 작전안이란 거의 없다." 아까 낮에 마이크 타이슨 특집 방송에도 잠시 그 비슷한 "명언"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사실 현장에서 직접 여러 상황을 진두지휘해 보면, 어떤 완성된 안(案)이나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돌발상황에서 얼마나 잘 돌아가는 머리로 즉흥 대처법을 잘 꾸리는지가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 인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갱요가 준가르를 평정하고 귀환했을 때도 옹정제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짐짓 게을리하며 말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이었는지 그저 정치 투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너 따위가 알 리 없다"는 무언의 시위였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행력이란, 책상머리에 앉아 도출된 그 어떤 시안이나 아름다운 알고리즘보다 중요합니다. 직접 성과를 내어야 하는 인재에게, 실행력은 그가 가진 역량이나 잠재력 모두라고 할 만큼 중요한 tool입니다.

목표의 수립 역시 중요한 단계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가진 역량 모두를 투입함에 있어, 전략적 목표의 바른 설정이 선행되어야만 괜한 헛수고를 방지할 수 있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안이 중요하고 전략의 자체완결성이 필수적이라도, 이를 현실에서 어떻게 매 단계의 성취와 검증으로 연결시킬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행이 없으면 성과가 없다"라는 명제는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지만, 필드를 뛰어 보면 그 우수한 두뇌를 보유한 많은 이들이 얼마나 "계획 곧 성과"로 착각하는지 놀라울 만큼입니다. 그만큼 기안의 완전무결함에 도달하기가 어렵기에, 인간의 본성인 자기 평가에의 biasedness를 떨칠 수 없음의 실증이지만, 많은 기획이 자체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휴지통으로 향하는 게 다 이런 실행력에의 인식 부족 때문이라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실행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 이게 참 뼈아픈 지적입니다. 부장에게 과장에게 깨지는 직원이 있다고 가정하죠. 대개 이런 경우 뭣 때문에 지적을 받을까요? 안건을 검토해 보면 부실하게 넘어간 중간 과정이 있거나, 숫자 처리가 부정확하거나, 심지어 맞춤법이 틀려서(ㅎㅎ) 이런 걸 못 참고 넘어가는 깐깐한 상사에게 박살이 나는 겁니다. 지금은 많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만 예전 세대 부모님들이 왜 자식을 기술자, 노동자로 키우지 않고 책상 앞에서 펜대 굴리는 사무직 직원으로,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을까요? 이처럼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지 않고 육체적으로 축나지 않고 책상 물림으로 호강하는 녀석들이, 그 알량한(아니지만) 사무 처리 하나 못 하냐면서, 너 같은 건 그냥 공사 현장에나 나가서 뛰어야 한다는 듯 다그치던 풍조가 현재에까지 이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1970년대 초반엔 현대 등 대기업들도 건설업 따위가 성장의 추축이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요즘엔 전세가 역전되어 현장 근로자들이 툭하면 파업한다고 상전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사실 사무직도 실행을 점검하는 알고리즘, 피드백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야 하고, 아직 중국 같은 데서 한국을 못 따라오는 부문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자께서는 이미 한참 윗세대이니까 이런 아쉬움을 책에서 토로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대기업에서 그런 요소 관련 업무 혁신이 안 이뤄졌을 리가 없죠. 기안의 완결성 못지 않게, 실제로 집행 과정에서 개별 단계와 과업이 얼마나 현실화되고, 각 단계가 얼마나 정밀하게 성과가 계측되는지도 이미 일부 대기업에선 눈에 띄게 실무화, 정량화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정작 실무에서 중요한 게 이 단계인데 지난 시절에는 그냥 대충 넘어가거나 "알아서 하라거나" 느낌으로 점검하고 말던 관행이 분명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을 결코 못 따라잡을 것 같은 게 이런 세밀한, 업무 과정의 미세한 정신적, 비가시적 알고리즘의 빈틈입니다. 첫째는 여자처럼 세밀한 살핌과 꼼꼼한 뒷마무리가 요구되며, 둘째 남의 시스템을 통째 베껴 적용할 때 이런 부분이 자기네 조직의 체질과 정반대일 수 있기 때문에 전체가 망하는 게 비일비재하며(따라서 설사 다른 걸 베끼더라도 이 부문만큼은 자기 회사 체질에 맞춰 재 세팅을 해야 합니다), 셋째 기본적으로 창의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실행이 중요하다 함은 "야,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 같은 무식한 군대식 명령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의 체질과 역량에 대한 정확한 SWOT 분석이 이뤄진 후에 달성 가능한 과업이고, 기안이나 기획과는 또다른 차원의 영역임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죠. 우리도 모르던 사이에 발전시켜 온 강점을 잘 유지하고, 이로부터 지속적이며 대체 불가능한 혁신을 추진해야겠습니다. 진짜 혁신은 기술 분야에서라기보다, 경영 섹터에서 이뤄져야 그게 지속적입니다. 기술은 금방 남이 따라할 수 있고,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쫓아갈 수(삼성이 그만큼 빨리 스마트폰 양산 체제를 갖춘 게... ㅎㅎ)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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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7-2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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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루미니타 D. 새비억 저/공민희 역
멜론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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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과잉이라는 건 불필요한 기억을 떨쳐 버리지 못해서 빚어지는 온갖 부작용의 원인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저 역시 초3때 친구 누나한테 큰 실수를 해서 그 나쁜 기억이 종종 떠오르곤 하는데요. 이런 단편적인 기억은 "과잉"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며 오히려 건강한 죄의식을 유지하기위해 유용한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여튼 세상에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런저런 나쁜 감정만 환기되는 기막힌 실례가 많이 있다고 하는군요. 저자도 그런 분 중 한 명인가 모양입니다.

미국 문예 작품이나 드라마를 보면 같은 상처를 안은(마약 중독 등) 이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담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공유"하는 치료 요법이 자주 등장합니다. 저자는 루마니아 사람인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체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유럽은 국경이 개방되어 있으므로 이런 시도를 하는 데에는 확실히 유리한 환경인 게 맞습니다. 저자가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체험을 한 데에는, 이상하게도 나쁜 기억이 떨쳐지질 않아 하루하루가 행복할 수 없었던 자신의 특수한 처지가 그 바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유난히 강조하신 도덕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분을 중3때 담임선생님으로 맞기도 했었어요. 망각이란 여튼, 인간이라는 유약한 존재에게 일종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기억력이 현저히 나쁘거나, 워낙 주변에 나쁜 일만 있어 "잊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 사람에게는 그저 재앙일 뿐이기도 합니다만.

과거를 버리는 건 두려움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물론 비생산적이고 해로운 과거를 버리라는 주문입니다만). 저자에 따르면 과거에 대한 아픈 기억을 많이 간직한 사람은, 앞으로 또 그런 일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미리 잔뜩 예방 접종을 하려는 심리, 그러나 하루종일 주사만 놓고 또 놓는 예방의 중독에 빠진 심리를 가졌다는 겁니다. 물론 닥쳐올 위험에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건 현명한 자의 습관입니다. 그러나 준비가 지나치면 실행이 되질 않습니다. 지나치게 준비만 하겠다는 건 진짜 필요한 대비책을 실천에 옮기지 않겠다는 뜻이나 같으며, 나아가 끊임 없이 같은 상처를 입고 같은 아픔을 겪겠다는 자기 파괴적 선택입니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많은 이들을 구해내겠다는 의도입니다.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건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추한 외모, 낮은 지적 능력, .... 그러나 그 중에서 으뜸가는 건,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감정상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는, 일종의 선천적인 무능력입니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여러 주문을 하지만, 특히 핑계를 버리라는 것, 스스로를 억누르는 믿음(일종의 강박 관념 같은 것입니다)을 버리라는 조언을 합니다. 마음에서 부담을 덜어내는 이가 더 폭 넓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긴 시간을 생각지 않아도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입니다. 집안이나 사무실 정리에 있어서도 과감히 버려야 할 걸 버리는 데에서 활로가 찾아지듯, 마음의 평안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선 나쁜 기억을 버리는 게 빠른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신을 좀먹는 온갖 불건강한 감정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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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잔기술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7-2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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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업무의 잔기술

야마구치 마유 저/김현화 역
한빛비즈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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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담론에 즐겨 빠지는 게 결국 디테일을 소홀히하며 업무 부진을 초래하는 게 보통이라는 점을 주변의 예를 통해 깨닫게 되고부터는 반대로 디테일에 몰두하게 되더군요. 물론 너무 디테일에 집착해도 주변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지만, 뭐 남한테 스트레스만 안 준다면 자기 일 자신이 확실히 매조지하는 게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일을 깔끔히 야무지게 마무리할 때 지나침이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대기업 20년 근속에 아마 임원 승진은 못 하고 중소기업에 몸을 옮겼거나 자신의 사업체를 차려 후배들에게 잔소리깨나 하고 다닐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대뜸 떠오르지만, 놀랍게도 저자 사진을 보니 그와는 극과극으로 거리가 먼 스타일에다, 경력도 이런 책 쓸 사람과는 아주 다른 길을 밟은 분이네요. 기업 상대 커리어이므로 뭐 전혀 동떨어진 주제라고는 못 하겠지만, 여튼 이런 분이 이런 주제로 책을 저술할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으로 책장을 넘겨 봤습니다.

"기대치 컨트롤"이란 주장은 많은 공감을 부르는데다, 저 자신 역시 몇 번 실행에 옮겨 본 아이템입니다. 그런데 이 저자분의 주장은 좀 색다른 게, 일단 낮췄다가 확 올려 보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사람이 사소한 편의라고 해도, 일단 어떤 환경적 제약에 가로막혔다가 다시 복원되면 그렇게 해피해 질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일요일 마우스가 고장이 났었는데, 이게 증상만 갖고는 "드디어 메인보드가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컴퓨터를 바꿀 시점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마우스만 고장 난 건지 알 수가 없죠. 진단을 통해 원인을 찾아내고 새 부품을 마련하는 그 시간까지 잠시 겪은 불편이 해소되는 순간, 이런 사소한 편익이 주는 효익이 그만큼 큰 것이었구나 하는 각성이 마구 밀려옵니다. 그저 마음가짐 하나가 바뀌어서 생기는 객관적 업무 효율 개선이 이 정도라는 게, 우리가 평소에 일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숙고할 필요를 부르더군요.

일 잘하는 사원은 고민하지 않는다, 이게 참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한 마디만 던져도 그게 무슨 상황을 두고 하는 소린지 바로 감이 오거든요. 그런데 이 말이 바로 딱 무슨 상황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건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일을 잘 못하는 사원이라서입니다. 자계서라는 게 사실 이처럼 내가 지금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점검을 하기 위해 읽는 거지, 그 책을 읽고 뭔가 교양을 터득하고 심도있는 정신적 각성을 하기 위한 게 아니죠. 그래서 자계서는 저자가 중요합니다. 같은 말을 해도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해야 깨달음이 오는 거고, 사실 자격 있는 저자는 "같은 말, 아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듯 보여도 뭔가 표현이 다릅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전하고 과정을 공개한다는 게, 일 못하는 사람은 이게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있으니까 어떻게 그 결과에 이르렀는지 미리 예상을 하고 다 까는 거거든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라는 주문도 그게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업무에 숙련되고 몰두하는지를 외부에, 그리고 자신에게 확인시켜 주는 지표입니다. 이걸 절대 하지 말라는 자계서도 있고, 제가 몇 달 전에 읽고 리뷰도 썼습니다. 특히 "읽기"와 "듣기"가 조합의 기본이라는 주장에 눈길이 가는데, 공감각의 원활한 작동이야말로 두뇌 계발의 기본이죠. 요즘 어학기기 광고에 "스피킹이 진짜 영어"라는 말이 나오지만, 스피킹을 골간으로 해서 듣기와 읽기가 다 따라오는 겁니다(단 쓰기는 별개입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한국어 글쓰기를 잘하는 게 아닌 이치와 같죠).

희한하게도 서류는 정리하지 말고 다 버리라는 주장이 이 책에서 또 나옵니다. 특히 일본계 저자들이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소리인데, 저번에는 노인분이 그러더니 이 저자님도 같은 주장을 하는군요. 그 배경에는 여러 다른 이유가 있긴 합니다. 이 저자는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근거를 대는데, 저는 솔직히 여기에 대해서는 상황이 다른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옆 사람에게 코끝 차이로 이기면 충분하다는 표현에서 아 이분이 탱고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눈치가 저절로 채어지는군요. 여기서는 제 개인적 생각이 좀 다릅니다. 2등을 누르기 위해서는, 랜드슬라이드로 이겨야 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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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알까 | My Reviews & etc 2016-07-2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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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자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알까?

김미성 선생님과 제자들 저/방상호 그림
꿈결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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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의 모습만 하고 태어났다고 해서 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 합당한 처신을 하고, 그런 처신을 할 정신적 각성이 이뤄져야 그게 온전한 사람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에게 우선 요구되는 덕목은 그래서 "인성"이어야 함이 유난히 강조되는 요즘이죠. 이런 인성 역시, 지식이나 특정 감수성 못지 않게 어려서부터 계발되어야 함에도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른 인성 함양에 대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확실한 지침과 사표가 될 분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인 공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공자님 같은 대성현의 가르침을 자구까지 정확히 익힌 인재라야 높은 관직이 보장되는 풍토에서 살고 있었죠. 그래서 예전에는 지식뿐 아니라 인성까지 동시에 학습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 가르침의 한복판에 공자의 사상이 자리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인문적 지식과 학습자의 인품, 인성, 인격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교육 체계란 대단히 효율적이고 동시에 이상적이라는 판단이 드는데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여러 모순과 문제들이, 이처럼 우리 조상들에 의해 직접적인 해법이 오래 전부터 마련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고개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자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원전에서 그대로 배우고 이해하며 실천에 옮기기엔, 첫째 중국의 언어(한문)로 쓰여졌다는 점, 둘째 너무도 오래 전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익히고 읽히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내용을 보다 쉽게 풀고 우리 아이들의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에 적용하도록 어른의 지도가 꼭 필요한 편인데요. 이 책은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인 김미성 선생님이 오랜 지도 경험을 살려 아이들의 눈높이에 꼭 맞는 서술로 독자(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합니다. 책을 읽어 보니 내용이 쉬울 뿐 아니라, "아 그 말이 그런 뜻이었나?" 하는 깨달음이 올 만큼, 해의가 깊이 있으면서도 참신합니다. 쉽다고 무작정 좋은 게 아니라, 그 가르침의 핵심을 정확히 꿰뚷는 설명이라야 교육적 효과가 있겠죠.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인데, 게다가 꿈결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 편집이 예쁩니다. 아이들에게 조금만 의욕을 불어넣어 줘도 술술 읽히고 내용 소화도 완벽하게 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진짜 장점은, 저자이자 지도교사인 김미성 선생님이 성인, 어른, 교사의 언어로 쓴 게 아니라, 자신이 지도하는 중학생 아이들의 표현과 깨달음, 느낌으로 쓰여진 글들의 모음이라는 겁니다. 아이들이 이해한 바 그대로를 정직하게 쓰고 있으니, 비슷한 또래들의 마음에 더 쉽게 이해되고 다가올 수 있죠. 어른은 아무리 쉽게 쓰려 해도 감성의 레이어가 이미 다르게 형성되었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내용을 배운 친구들이, 생활 속에서 자신이 느끼고 겪은 바를 대화하듯 전달하는 게, 공자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구성도 참 많은 숙고를 거친 편제인데요. 첫째 파트는 (공자님을 통해 알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 둘째 파트는 마주하는 상대로서의 "너", 셋째 파트는 나와 네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는 유교, 유학의 오랜 교리인 삼강령 팔조목의 핵심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용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각 파트마다 아이들이 쓴 글 열 편이 담겨 있고, 그 글들에는 공자의 가르침 중 대표적이라 할 만한, 그리고 주제에 부합하는 도그마가 주제로 꼽혔습니다.



구본혁 학생의 글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나비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고가의 학원이나 교습을 받는 애들이 부럽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하게 보입니다. 어떤 애들은 처음부터 별 노력 없이 척척 어려운 과업을 해 내는 듯합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분노와 좌절감을 키우기 쉬운데, 세상은 어차피 미숙한 개인들이 숙련과 사회화 과정을 거쳐 조직의 성원으로 편입됨을 알지 못하는 탓에, 이런 감정이 인성에 그릇된 영향을 항구적으로 남기기 쉽습니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허구에 불과한 통념입니다. 공자님의 가르침인 "잘못을 알고도 고치치 않는 게 가장 나쁘다(過則勿憚改. 잘못이 있으면 그를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가 이렇게 실생활에서 다가올 줄은 몰랐네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치를 내면화할 생각을 해야지, 무시받고 따돌림당했다는 과거의 상처를 비뚤어진 권력욕으로 바꿔서, 유치하고 미숙한 자아만을 꽁꽁 싸매고 감싸는 것처럼 잘못된 선택이 또 없습니다.

이가희 학생의 글은 매우 짧지만, 어른들도 미처 이해하지 못한 깊은 가르침을 잘 전달하는 느낌입니다. 미혹(迷惑)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사리 분별을 못 하는 단계를, 아주 쉽게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잘 풀어내는 것같네요. 사람은 좋은 감정이건 나쁜 감정이건 자신의 격정에 휘말리면 사리의 바른 분별을 못 이루는 수가 많습니다. 공자님은 일찍이 이 감정이 이성을 그르치는 위험을 내다보고, 제자들에게 마음을 침착히 다스릴 것을 주문했던 것입니다. 종심소욕 불유구라는 궁극의 경지가 공자 자신도 나이 칠십에 이르러 도달했다는 진솔한 술회를 보면 이야말로 인격자가 성취하기 가장 어려운 과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성적 부진으로 인한 부모님 간의 다툼에 비유하여, 중학생 수준에서 가장 깊이 소화하려 애쓴 점이 정말 돋보이네요.



공자님의 가르침 중에는 딱딱하고 엄숙한 윤리적 교훈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를 바라본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털어 놓는 감회가 "못하는 게 없으시니 진정 성인이시다"인데, <시경>은 춘추 시대의 노래 가사집이지만 공자는 이를 두고 "시 삼백은 한 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음이다"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사람이 누굴 좋아하고 애모할 때 솟아나는 정직한 감정에는, 남을 해코지하거나 그릇된 물욕을 추구하려는 못된 마음이 전혀 끼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심지어 어린 학생들도, 그 나이에 맞는 연모의 감정이 무엇인지 건전하게 느끼고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진 학생의 글은 시경을 자주 인용하는 공자의 습관에 주목하여, "로맨티스트로서의 공자"에게 어린 학생들이 배워야 할 바가 무엇인지 재치 있게 풀고 있네요. 나와 너의 관계가 사랑으로 가득찰 수 있다면, 그런 너와 나의 바른 관계가 모이고 모여 형성되는 세상과 사회 역시 부도덕한 다툼과 미움이 사라진, 참된 공동체로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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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7 | My Reviews & etc 2016-07-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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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치통감 7

사마광 저/권중달 역
삼화 | 200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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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가 여러 면에서 아쉬운 분들은, 연의 포맷이 아닌 정사로서 삼국시대를 접하고 싶을 때 이 자치통감의 해당 파트를 보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정작 "삼국시대"라고 제목이 붙은 책은 말 그대로 삼국시대만 다루기 때문에, 조비와 손권 등이 건원 칭제한 그 이후 시점부터 역사가 전개된다고요. 그러니 책을 고르고 나서야 아차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권도 물론 숙독해야 하지만 "삼국시대"의 참맛을 보고 싶은 분들은 바로 이 권부터 읽어야 합니다.

"정립"이라는 건 다들 알다시피 솥의 발이 세 개인데서 연유한 단어입니다. 정 자가 솥 정자를 쓰는 거죠. 우리가 공간도형의 특정에서 점이 세 개 있어야 평면이 결정된다고들 하는데, 두 개면 불안정하고 네 개면 과잉이거나 부정합을 유발합니다. 세 개면 하나의 평면을 결정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제갈량이 기하학 소양에 얼마나 밝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하가 권력자 아닌 백성을 위해 존재하려면 일단은 삼국이 솥의 발처럼 나란히 서서 체제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만큼은 진정 시대를 초월한 탁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연의 혹은 정사에서 독자를 전율, 격동케 하는 단 한 대목만 꼽으라면 적벽대전이나 오장원의 전투가 아니라 바로 이 부분입니다. 소설적 흥미를 넘어 역사에 새겨져야 할 도덕적 정당성이나 명분이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찾아 보기 힘들 만큼이죠.

조조의 경우 사실 이문열 아니라 누구의 번역으로 읽어도 삼국연의 초반 사실상의 주인공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특히 과거 <職場人> 등의 잡지에서 현대 경영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여러 가르침을 정리할 때 항상 첫손에 꼽히는 인물상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어설프게 논의되는 인물론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수준으로 이미 1970년대에 분석될 게 다 분석되다시피 했는데, 이에 비하면 진순신의 <비본 삼국지> 같은 건 그저 아이들 만화 수준이라고나 해야겠습니다. 이문열이 한국어로 번역해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건 1980년대 후반에 와서나입니다. 초기에는 본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되다, 나중에는 정반대로 정치적 이유로 마녀사냥까지 당했으니, 한국 문화의 지적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됨을 노출함이나 마찬가지였죠. 이 자치통감의 기사는 다분히 촉한 정통론에 기울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맹덕의 탁월한 창업자적 업적을 논함에 있어서는 아무런 폄하나 왜곡이 끼지를 않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한 반인반신의 공덕을 논하는데 어디 감히 사마광 따위가 붓으로 장난을 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에 비하면 유비는 사실상 떠돌이 건달 수준인데, 정치인으로서 체계적인 비전이 처음부터 결여되었던 건 그가 현저히 학력이 부족해서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막연한 명분론 하나로 일개 유협 집단에서 출발하여 그만큼이나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건 뭔가 상당한 인간적 매력이 있었다고 선해할 수 있겠죠. 여튼 삼국시대(공식적으로는 아직 후한 말이지만) 초반에 가장 눈부시게 전개되는 건 누가 뭐래도 조맹덕의 창업 과정입니다. 일본인들이 기업으로 세계를 접수하려 들 때 이같은 맹덕의 활약상에 매료된 건 다 이해될 만한 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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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의 선비 리더십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7-2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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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법고창신의 선비 리더십

김진수 저
북랩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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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대학 법과대학의 모 기념관에 가면 어느 분의 명필로 "법고창신"이라는 큰 휘호가 걸려 있습니다. 뭐 터프하게 말하자면 "온고이지신"과도 비슷한 뜻이겠는데, 옛 것을 새기고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온"보다는 "법"이란 글자가 더 간절하며, "지"보다는 "창"이 훨씬 강하고 적극적인 의미임에 아마 누구라도 동의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께서는 바로 이 "법고창신" 네 글자에 우리 한국의 전통적 사상이자 "얼"인 선비정신이 강하게 농축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고"를 "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우선 옛 것 중에서 폐풍과 인습이라 할 만한 것을 모두 걸러낸 후, 남은 중 가장 순일하고 옛 성현들의 가르침 정수를 추려내어, 이를 본받고 나의 정신에 함양하는 게 바로 "법(法)"이라는 글자 하나에 담겨 있는 자세입니다. 영어의 law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 체계라 하겠는데요. 한자 문화권의 이런 풍성한 형이상학 구축에 우리 조상들이 기여한 바는 비단 이런 예 하나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문의 거대한 사상 체계에서 반드시 거대 지분을 마음 놓고 주장할 수 있는 건, 김부식, 안향, 점필재, 퇴계, 율곡 등의 엄청난 성취가 객관적으로 존재했고, 이를 중국, 일본 어느 나라에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죠.

한편 "창(創)"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도 옛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의 기쁨을 특히 강조하셨지만, 배우는 자가 성현의 글자와 어구에 매몰되기만 하면 이는 선비의 정도에서 치명적으로 어긋난 길을 걷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동양 문화권의 현자들은 이런 썩은 선비를 가리켜 "자구 수집에나 몰두하는 천한 것들"이라며 크게 비웃은 겁니다.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강력한 검색 엔진의 도움을 얻어 어떤 문구, 팩트, 기사(아티클)의 일부, 혹은 전부라도 찾아낼 수 있는데, 그런 걸 노트에 적어 놓고 박제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꿍쳐 두고 바른 방식으로 활용도 못하는 건 과거 의적을 자칭했던 김강용 같은 범죄자도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는 수법이죠. 혁신을 강조하는 요즘 같은 때에, 이 "창신"이야말로 선비 정신의 현대적 변용이라 하겠습니다.

이 선비 정신은 그저 조선 시대에 들어와 새로이 유행한 게 아닙니다. 과거 화랑들은 임신서기석 같은 도드라진 표석에 대고, 자신이 어느 시점까지 어느 경전을 학습하겠노라며 야무진 다짐을 공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들이 자신처럼 바른 생각과 단정한 태도를 가진 동무를 모아 무리를 형성하여 궁극의 도로 정진하려 애쓴 게 바로 "풍류도" 사상입니다. 이런 도도하고 유장한 민족 정신과 정기의 한복판에, 당나라까지 건너가서 과거에 합격한 최치원 같은 이들의 고고한 정신이 스며 있는 법이지요.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법치주의가 저만큼 실종되어 온갖 소인배와 어리석고 사악한 무리가 말도 안되는 변명거리와 합리화 핑계를 내세우며 준동하는 요즘, 이 선비 정신의 현창은 현대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존재의의를 우리에게 설복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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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핑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7-2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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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크래핑

강동화,박현찬 공저
위즈덤하우스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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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가정에서 행복하게 만들고, 직장에서 자긍과 보람에 가득찬 인생으로 유지시켜 주는 건, 그 근본 동력을 감정의 관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머리로 아무리 행복해지려고 노력해 봐야 내면의 정해진 트랙을 벗어날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속인다는 자각만 굳어져 더 불행에 빠져 드는 수가 있습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감정 속에 스스로를 감싸는 능력은, 다른 능력 여럿으로 대신 발휘하게 하거나 후천적으로 학습한다고 될 것은 아니고, 이 역시 지능이나 외모처럼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감정 조절 능력은 업무 적성 만큼이나 희귀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참된 행복을 위해 필요 불가결의 축복입니다.

긍정적인 감정 전환, 유지가 업무 효율의 향상은 물론 나 자신이 그저 욕실, 화장실 등에서 개인적 만족을 누리는 데에도 필수적임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헌데, 그런 해피한 마인드셋 말고, 부정적인 감정은 어떠한가. 이 책의 저자분들은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그런 부정적 감정들도, 당신의 행복을 질적으로 높이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주장을 들으면, 저는 예전 호언촐러른 제국의 재상(칸츨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말했던 그 유명한 한 마디가 생각나더군요. "제국의 수상으로서 나를 지탱해 주는 건 두 가지의 커다란 힘과 도움이다. 하나는 나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기민당 모 의원(대한 경멸과 혐오)이다." 저는 이 말을 아주 어렸을 때 위인전기에서 읽었는데, 저런 쿼트가 가감 없이 실릴 만큼 좀 성숙한 버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그렇고 일하는 것도 그렇고, 엄청 못 하는 사람, 무능해서 언제나 성과 최하위만 기록하는 사람, 전체에 민폐만 끼치는 열등 분자도 때때로 필요한 게, 이런 사람도 일종의 반면교사로서 다른 직원들에게 뭔가 감정적으로 환기시켜주는 바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좀 이기적이긴 하지만, 미움과 혐오의 감정도 분명 나의 내면을 고양시켜 준다든가,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나의 긍정적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색대비효과로 분명히 부각시켜 주는 효과는 있습니다. 저자는 "닳기도 싫은 사람과 악수부터 하라"고 하는데, 이 역시 위에 언급한 비스마르크의 일화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죠. 19세기에 이미 독일은 오늘날의 한국보다 더 성숙한 의회 문화를 이뤘는데, 수상으로서 비스마르크의 가장 큰 적은 매우 감정적이어서 선동에 잘 놀아나던(심지어 적의 선동과 부채질에조차)프랑스 대중도 아니고, 오스트리아의 오랜 숙적 합스부르크 왕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국내 정치에서 자신(의 노선)과 대척을 이루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가톨릭 계열 정치인들(보수로서 주로 바이에른 왕실과 연결), 그리고 사회민주당(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좌파 정치 세력)이었죠. 이런 정적들과도 그(신념으로나 출생 신분으로나 도저히 융화가 불가능한)는 악수를 했고, 그때의 표정은 만면에 미소를 띠기까지 했는데, 이런 것도 다 정치인의 자질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에 대해 노선상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적의와 경멸을 불태워야, 그의 정치적 야망이 더 순도 높은 상태로 성공에 도달할 수 있었겠죠.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을 보면 패튼과 대단히 사이가 나빴던 몽고메리 원수가, 여튼 공식 석상에서 가식적인 미소를 머금어 가며 인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더 자연스럽게 웃는 쪽은 패튼인데, 왜냐하면 현실의 성과에서 그의 것을 상대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겠으며, 이런 여유에서도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거죠. 진 쪽은 마음 편히 웃을 수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웃지 마시오, 그 뺨에 키스할 생각은 없으니." "아, 오늘 면도 한 게 잘한 선택이었네요." 저자는 "이런 미움과 증오도 일종의 면역을 형성하여, 진짜 부정적인 감정이 일순간 몰아닥쳐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자아를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 하십니다. 그런 면역까지는 잘 모르겠어도,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선명히 사랑하는지 스스로 가늠하고 싶을 때 이 부정적 감정(의 향방)은 아주 유용하게 쓰이더라는 점은 제가 제 자신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자계서의 조언들이 얼마나 귀에 잘 들어오는지는, 독자 자신이 최소한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 봤느냐에 달려 있는 때가 많더군요. 일에서나 한 인간의 됨됨이로서나 성공한 분들이라고 할 만한 저자의 책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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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오스카 | My Reviews & etc 2016-07-23 21:16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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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양이 오스카

데이비드 도사 저/공경희 역
예문아카이브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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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그 서두가 얼마나 함축적인 문장이 쓰였는지를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멋만 부린 의도가 드러나서도 곤란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스피스 고양이 오스카의 실제 동선(?)을 따라 담담하게 술회된 이야기들(실화)이 대부분입니다. 오스카에게 너무 감정 이입하지도 않고, 저자께서 주목하는 건 분명히, 의지할 데 없는 노인 병약자분들일 뿐, 오스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혹은 독자인 우리들에게 기대를 크게 걸라는 듯) 사연을 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런 태연한 태도 덕분에, 이 책에서 고양이 오스카가 펼치는 여러 "활약, 능력"은 다분히 신기하게, 혹은 신비하게 들립니다. 저자께서는 의학박사이자 명문의대의 교수진이므로 이런 에피소드들이 더욱 신빙성을 갖게 되죠.

사실 "신빙성"이란 말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여러 재미있는 실화들은, 그런 선입견이나 짐작을 갖고 보면 "허, 그럴 수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구?"처럼 거리를 둔 무관심한 태도로는 그저 일상적 수다처럼 간주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이 책을 다 읽은 후 이야기를 추려서 주위에 들려 주니, 전하는 사람의 태도가 건조해서인지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더 많더군요. 그러니 뭘 믿고 안 믿고의 문제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다시 저자님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기 일을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자신의 일터가 멋져 보인다." 대개 우리 동양인보다는 서양인들이, 영혼과 육신이 완전 사멸하는 "죽음"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종교가 그만큼이나 번성했고, 아직도 "죽어서 지옥 가는 게" 그만큼이나 공포의 대상이겠죠. 그러기에, 죽음을 앞둔 노인들을 수발하고 간호하는 시설에서 일한다는 게, (저자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대체로 비슷한 우려를 부르는 것 같네요. 우리는 그저 보수만 넉넉하면, 그리고 육체적으로 아주 힘든 수고만 따르지 않으면 그 직장의 환경에 대해선 대체로 무관심한 편 아닐까요? 더군다나 저자처럼 시설의 감독자 내지 핵심 사무 담당자인 "닥터"라면 그가 어느 병과에서 근무하는지를 놓고는 "아 괜찮겠네" 정도로 넘어가는 게 보통일 겁니다.

저자는 자신의 근무처를, 적성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경우에 가깝습니다(미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그러하듯요). 실제로 저자가 관찰하는 노인 환자분들은, 죽어가는 자신의 신변을 숭엄하게 정리하고, 주변에 적잖은 배려를 베풀며, 어쩌면 생전 그 어느 시점보다 더 인간적인 자신을 찾아가는, 가장 대하기 편안하고(막 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들입니다(저자에게는요). 우리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도 흐트러지고, 어린아이처럼 자제력도 잃고, 무엇보다 배변 등의 습관에서 최소한의 품위도 잃은 채 동물에 가까워지는 추한 존재들... 이런 생각을 가져선 안 되겠으나 이게 우리의 정직한 태도나 실정에 가까운 표현일 것입니다. 저자분은 최소한, 자신의 직무와 환경, 그리고 환자들을 이와는 정반대의 자세, 소명의식으로 대하는 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에는 아마도, 양친 모두가 메디컬 닥터였던, 흔치 않은 성장 환경에 크게 힘입은 바 있을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게 마련이죠. 부모는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깊은 지적 소양과 확고한 도덕성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법입니다.

이런 저자에게도, 처음 부임해 왔을 때 이미 이 시설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고양이들이 크게 살갑게 와 닿지는 않았나 봅니다. 처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도 절을 한다는데(우리말 속담은 참 표현이 실감나죠 ㅎㅎ), 어디까지나 오차 없는(혹은 드문) 인과관계가 지배하는 생리 현상을 그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한 닥터로서, 무슨 고양이가 예지력을 갖는다느니 하는 "미신"에 대해서라면, 아예 고양이를 실물로 만나기 전부터 나쁜 선입견을 가졌을 만도 합니다. 허나 그 역시, 많은 환자들의 케이스를 다루고 나서, 실제로 죽음이 임박한 이들의 상태를 고양이가 용케 알아채곤 하는 "능력"의 타당성을, 자기 자신이 직접 다룬 환자의 통계로 실감하고 나서야 다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었네요. 척척 맞추는 데야 뭐라고 트집을 잡겠습니까. 이를 "신비"의 영역으로 몰고가지 않으려면, 고양이의 센서(감각 능력)에 여태 인간이 알아내지 못한 어떤 특별한 기제가 존재함을 해명하는 수밖에 없죠. 설명이 이뤄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문제는 "죽음이 임박함"을 어떻게 정의할지 의학계에서도 아직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장기 기능의 현저한 둔화? 세포 상태의 질적인 단계 변이? 무엇으로 정의하든 간에, 고양이가 "감지'하는 그 어떤 바이털 사인의 크리티컬함이 기준이 되면 대단히 실용적이긴 할 것 같네요.

그러나 우리가 호스피스 고양이의 신통함을 절감하게 되는 건, 그 현저한 비사교성(ㅎㅎ 이 이상한 성격 규정에 대해서는 책을 직접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에도 불구하고, 근원적 차원에서 환자와 나누는 그 신비한 정서적 교감입니다. 사람 중에는 뇌의 손상이나 불구 상태 때문에 타인과 정서적 교류를 선천적으로 못 나누는 이가 있다는 게 최근의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 연구 결과를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진성 교감 불능자들이 부쩍 늘어나 뭔가 한 마디씩을 떠드는 것도 희극적 풍경 중 하나입니다만, 사람이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빨리, 혹은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 자체가 아직까지는 미지의 베일에 싸여(쌓여 X) 있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이 책에 실린 우리 새침한 오스카의 신기한 능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역으로 우리 인간의 교감 메커니즘에 대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 어쩌면 그저 우연의 일치이거나 우리 인간들의 행복한 착각의 영역으로 남겨 두어야, 은근한 기대를 몸에 받은 고양이들이 제 할 일(?)을 더 열심히, 더 효율적으로 해낼 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척 남겨 두는 게 더 현명할 수도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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