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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 My Reviews & etc 2016-08-3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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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저
다산책방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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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는 세상에 신분, 등급의 차별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지귀 설화를 처음 아동용 만화로 접했을 때, 저는 상당히 짜증이 나더군요. 아니,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그저 "분수를 알아야지!"라는 한 마디 말로 억누르라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이성을 좋아하는 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실행에 옮기기에는 너무도 큰 (타인들의 부수적인) 희생이 따르고, 결국 자신도 상처 받을 게 뻔하면서 부득부득 티를 내는 그 추한 모습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상대방인 여왕 입장은 생각도 안 한 셈이니 그게 어디 사랑이겠습니까, 더러운 정욕이지.

서민들은 보통 있는 사람 높은 사람 욕하는 재미로, 고달픈 생의 스트레스를 달랜다고도 합니다. 비록 돈은 없지만 오순도순 사는 맛이 있어, 체면 따지고 뭐 따지고 돌보고 살필 게 많은 상류층 부러울 게 없다고도 하죠. 이 소설은 어쩌면 그런 평범한 독자들에게, 저들을 당신네들의 기준과 범주 안으로 끌여들여 주겠다며, 조금은 끔찍하고 대체로는 통쾌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로 어깨를 토닥여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게 사실이고 아니고를 일단 떠나). 많은 TV 드라마들도 아마 이런 기능을 수행하겠지요.

줄거리는 책 소개 같은 데 잘 나와 있을 테고, 제가 느낀 점 중심으로 간단하게 소설의 매력을 짚어 볼게요. 우선 진욱, 이 사람은 소설의 "도덕적" 주인공 같습니다. 처음에 서회장(용훈)이 이 자의 뒤를 캘 때, 너무도 평범한(악당치곤) 배경만 줄줄이 나와 독자들이 의아해할 만했죠. 결국 눈치빠른 독자들이 예상했던 대로 진상이 드러나고요. 물론, 혜윤(첫째딸)이 "그런 본능"을 타고났다는 것까지 거짓말이라거나 "계획"은 아니고, 실제로 여러 남자를 만나고 다닌 건 사실이더군요. 이제 이렇게 사랑하는 진욱이를 만났으니 그런 더러운 일탈은 꿈도 안 꾸길 바랍니다. 숨막힐 듯한 집안 분위기에 억압된 자아가 과잉보상심리 때문에 억지로 사고를 치고 다녔다는 설명(후천적 요인)이었으면, 보통은 이야기가 심각한 방향을 틀 뿐 아니라 길이도 엄청 길어졌겠죠? 그러나 이 소설은 아주 훈훈하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마무리일 뿐입니다.

제가 위에 지귀 설화를 뜬금없이 꺼낸 것도, "불"이라는 소재에서 연관고리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ㅎㅎ 제 생각에 지귀의 불이 엄청 추했다면, 이 진욱의 "불"은 (좀 얼척없는 비약이긴 하나) 뭐랄까, 일본식 은혜- 수치의 폭발적 언표 같은 느낌? 아무리 별 장점 없고 어리석다시피한 성실함으로 세상을 살아 온 인생이라고 하나, 일관된 도덕성 하나로 난마처럼 얽힌 그 복잡한 말썽을 한 큐에 정리하는, "근본에서 올바른 것"의 엄청난 위력을 상징하는 캐릭터 같았습니다. 뭐 이렇게 말도 안되는 초인적 선량함을 갖췄으니 혜윤이가 끌렸는지도 모르지만, 독자 입장에선 공감이 안 되었네요. 여기 나오는 사람들 중에 가장 그림이 안 그려졌습니다.

혜란은 어떤가. 이름난 신경외과의였다는 부친과 달리 외향적이고 사람들사이에서 짜릿한 게임을 즐기며 사업적 성공을 거두는 쪽에 타고난 적성인 용훈(혜윤, 혜란의 부친), 그런 기질을 잘 물려받았다는 설명인데, 중반쯤 그런 탁월한(냉혹하고 이기적이어도 탁월했다는 점만큼은 부인 못하죠) 계획을 짜 내었으니, 만약 이 안대로 일이 이뤄졌다면 아버지 사업은 그녀가 물려받아 마땅했을 겁니다. "아 왜 이럴 때만 가족들은 내 말을 들었던 거야?" 그녀의 잘못은 제가 보기에 없는 듯하고, 무슨 하늘의 섭리 같은 게 개입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해 보이는 진행이었어요. 이래서 어른들이 착한 사람됨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 아닌가. 확률로만 따지면 혜란의 계획은 (이 훌륭한 가문의) 골칫덩이 두 개를 일거에 쓸어버리기에 충분히 치밀했는데도요. 그래서 honesty is the best policy 라고도 하는 거겠습니다만.

저는 서회장(용훈)이 그 두 "해결사"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서툴렀다고 봅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고전을 안 읽으셨나 봅니다. 위나라 사람 오기는 장병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개의 고름을 빨기도 했는데, 이렇게나 일을 잘하는 아랫사람들에겐 더 과감한 제스처를 취했어야죠. 유미옥 여사도 옆에서 어설프게 거드는 품으로 보아 "진짜 계산"을 잘 못하는 분 같습니다. 결국 세상에 막장성만 폭로하고 서민(누구?)의 품에 안겨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는 데 그친 결과만 봐도, 이분들은 진짜 상류층의 기질이 좀 부족했던 것 아닌가... (ㅎㅎ 농담입니다)

제가 가장 끌렸던 캐릭터는 진환이었는데요. 혜란이가 입으로야 "이게 안 되면 플랜B로 가자"며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 그런 게 있기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이기적이고 말은 많고 못됐지만, 어딘가 어설프고 예쁘지도 않고(본인도 털어놓았듯 화장빨) 혜란이를, 그 단점까지 사랑한 진환이야말로 둘이 잘 어울리는(출신 성분도 서로 비슷하고) 천생연분인 것 같네요. 혜란이도 잔머리 잘 굴리고, 진환이야말로 제 몸으로 플랜B를 집행한 거나 마찬가지인데다, 이게 계산의 결과라기보다(본인이 머리도 좋지만) 다 진심이 뒷받침되어서 가능했던 거니까요.

저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경수 있죠. 그 경수란 캐릭터가 의외로 촘촘히 사연이 짜여진 채 끝나서 좋았습니다. 머리가 안 좋은데 어찌어찌해서 집안에서 뭐 하나 만들어 보려고 서포트해서 인재로 포장하는 예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막상 일선에 나서 보면 세상이 어디 누구 맘 편하게 롤 플레잉하도록 베이스 깔아주는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요. 어차피 낙하산이다 뭐다 이런 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한계가 다 드러납니다. 흙수저니 뭐니 불평만 할게 아니라 정말 본인이 목숨 걸고 있는 포텐 다 끌어올려서 일하면, 저런 경수 같은 애들은 경쟁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 필요가 있죠. 그렇다 쳐도, 이것저것 두루 갖춘 진환이 같은 애들 때문에 세상은 불공평한 게 드러나나요? 뭐, 그럴 수도, 아닐 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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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 My Reviews & etc 2016-08-3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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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정운현 저
인문서원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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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리를 지어 사는 게 존재의 숙명인 까닭에, 자신이 그 정체성 상당 부분을 빚지고, 아울러 (사회화 과정에서) 영혼의 충성을 맹세한 집단을 등진 배신자에게는 가장 높은 수위의 비난과 단죄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나라 전체가 (거의)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단위에서는, 민족 반역자는 본인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파문에 가까운 평판이 뒤따르는 게 당연합니다.

한편으로, 민족(곧 국가이기도 한)이 외세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그 정통에서 벗어난 강점기 동안 불의하게 이뤄진 통치의 잔재가 채 청산되지 않고, 범법자 개인에 대한 법적, 도덕적, 역사적 평가마저 유야무야된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친일파에 대한 정죄(定罪)는 고사하고, 역사적 평가나 연구마저도 그간 금기시되었습니다. 어떤 헌법학자는 민족 정기가 헌법에 우선한다는 말씀도 하는데, 이처럼 무리 전체가 옳다고, 혹은 그르다고 일단 규정짓고 합의한 바의 작은 실천조차 현실에서 각종 장애에 가로막힌다면, 그 사회, 혹은 체제는 총제적이고 근본적인 규모에서 개혁이 필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운현 선생님은 중앙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던 이미 삼십 년 전부터 이 친일파 문제를 언론 섹터에서 열심히 제기한 분입니다. 저도 무크지(그 당시에는 북+매거진의 합성어인 이 단어가 꽤 유행했었어요) 포맷으로 발행된 <친일문제연구>를 몇 권 사 봤습니다. 이때 참여하신 분들이, 요즘 독자들에게는 평전 전문 집필로 유명한 김삼웅 선생 같은 인사였죠. 친일 문제는 광복 후 근 사십 년 동안 버려진 황무지와도 같았는데, 고 임종국 선생의 선구적인 연구, 외로운 투쟁 끝에 작은 불씨가 살아 정 선생님 등 2세대로 잘 전수되었다고 평가하겠습니다. (책에 이런 연혁이 아쉽게도 잘 나와 있지 않아 제 나름대로 서평에서 정리합니다. 현재의 결과만 볼 게 아니라, 독자들이 그 앞에 어떤 고독한 노력이 있었는지 반추함이야말로 역사를 접하는 지행일치의 자세입니다)

속표지에는 44인이라고 나오지만, 이번 개정판은 총 41인을 주제로 다룹니다(3인은 동생, 아들 등 추가된 인물이 있어서입니다). 매국노가 44인뿐이었다면 우리의 역사가 이처럼 혹심한 질곡을 벌써 벗어났겠습니다만, 그 44인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반역자들이 민족의 가는 길을 더럽히고 망가뜨렸음은 우리 모두가 또한 잘 아는 사실이죠. 개정판의 41인 중에는 역시 문인들이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이광수, 최남선, 주요한, 김동환 등등.. 특히 해방 직후 민족의 공분을 산 인사 중 앞 대열에 놓였던 게 이들 문인들인데, 물론 말과 행동으로 친일의 최선봉에 선 구체적 죄과가 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겠습니다.

이광수는 특히 해방을 몸으로 겪은 세대(당연히 현재 거동도 불편한 초고령 노인들)에게는 이완용과 동급의 매국노로 꼽힙니다. 이완용보다 나이도 훨씬 어릴 뿐 아니라 정치적 중요성, 가문의 휘광 면에서 비교도 안 되는 일개 문필가일 뿐인데도요. 이에는 아마 1) 젊어서부터 엄청 기대를 모았던, 조선 전체의 자랑이라 할 천재형 문인이었던 점, 2) 그 훼절이 특히 갑작스럽고, 방식과 빈도가 열혈성이었던 점, 3) 해방이 되고서도 구차한 변명과 발뺌이 먼저였던 점 등이 이유겠습니다. 이게 역사 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서인지, 요즘 세대에게 물어 보면 춘원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이광수와 비슷하게 문재로 이름을 떨쳤지만, 전문분야가 역사 쪽에도 깊숙한 한 발을 들인 케이스로서 육당이 있죠. 이분은 한국 문예사의 명문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했고, 그 특유의 동아시아사 패러다임으로 여러 문제적 저술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분은 춘원과는 달리, 자기 나름대로 애착을 뒀던 연구의 지속을 위한 방편으로 친일행위에 빠진 케이스로 봐 줄 여지가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여튼 반일 항일 정신만은 일관되게 유지했던 이승만도, 육당이 죽었을 때 "한국의 토머스 제퍼슨이 타계했다"며 특히 성명을 발표한 것도, 당시 대중의 분노가 춘원에게와는 달리 이 사람에게는 조금 완화되었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작용했겠죠. 이 책에도 나오듯 <자열서>는 다소나마 진정성이 담겼고, 또 그의 거의 모든 저술, 성명이 그러하듯 참 명문으로 꼽힙니다. 이광수는 나이 들어서 친일력(?) 상승과 반비례하여 문필력도 감퇴한 것 같죠.

참담한 자기 반성으로 잘 알려진 케이스라면, 민족 대표 33인 중 하나였던 최린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해당 파트 제목은 <항일은 짧고 친일은 길다>인데요. 그의 영욕에 가득찬 인생을 이만큼 잘 요약한 표현도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특히 이 책을 보면, 이미 3. 1운동 관련 재판기록을 봐도, 그 자술서와 진술 일부를 보면 민족 대표라는 명목이 무색하게, 일제의 논리와 선전의 기조에 그대로 동조하는 말로 가득하다고 지적합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항일"은 그저 "짧기"기만 한 게 아니라, 존재하기나 했나 싶을 만큼 미미하다고밖에 할 수 없네요. 가재는 게편이라고 이 파트에서도 그의 역성을 드는 이로 최남선이 등장하는데("이번 최군의 일을 보며 '백열'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종씨이기도 하네요?), 이로서 우리는 어떤 악행과 배덕의 이면에는 개인의 사정을 떠나 어떤 구조로서의 병폐가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자들은 특유의 비뚤어진 심성 때문에라도 서로 끌리기 마련이죠.

가장 애매한 게, 겉보기에도 "항일의 행적"이 길고 뚜렷하지만, 그 밝혀지지 않은 암흑의 행보에 친일의 등불이 아로새겨진 것으로 의심되는 이갑성 같은 인물의 경우입니다. 이갑성씨는 해방 이후에도 독립 유공자로 예우되어, 광복회 등에서도 큰 역할을 수행했고 지금도 이쪽 인맥이 탄탄합니다. 많은 이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애국지사로 그를 인식합니다. 어떨까요? 이 점에서 우리가 자신을 돌아봐야 할 대목은, 명분이나 원칙을 내세움에 아무 의심이 없고 확신으로 가득찼다 한들, 나의 이해관계, 내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람의 문제에 다다라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를 넘어서서,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당사자를 감싸기까지 합니다. 이 경우는 유일한 예외다 이거죠. 이런 식으로 내 자신의 안면을 봐서 부패와 부정과 비리와 불의에 매번 누구의 역성을 들어 주기 시작하면, 법과 정의가 설 땅이 없습니다. 이분 말고 나머지 40명은, 혹 누가 합리화의 시도와 변호를 펼치면 동원할 핑계가 없어서 단죄가 이뤄졌겠습니까?

흔히 우리가 생계형 친일이라면서 정상을 참작하자는 말을 하는데, 이 책에는 "직업이 밀정이었던" 선우순, 선우갑 고등계 형사 형제가 나옵니다. 우리 중에는 아직도 형사, 경찰직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보시는 나이든 분들도 있는데, 바로 이런 케이스, 즉 같은 조선인 출신으로 공권력 집행에 몸을 담아 같은 동포에게 훨씬 못된 짓을 한 이런 자들 때문에 직분 전체가 오명을 쓴 까닭이 큽니다. 한편으로, 같은 성씨인 선우혁, 선우훈 같은 분은 역시 형제이지만, 우리가 잘 아는 독립 운동 계열의 빛나는 투사로서 유방백세의 대표적 모범 사례입니다. 저 위에 언급한 육당의 경우, 그 셋째아들인 한검씨는 반대로 항일운동에 나섰고, 해방 후 북한 체제에서 일정 역할을 맡기도 했다는 서술이 이 책에 나옵니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은 악질적 친일 가담으로 부친의 명성에 먹칠을 하기도 했는데, 이처럼이나 일제의 지배는 같은 핏줄 한 집안 출신의 여러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갈림길을 만들기도 했네요.

공주 갑부 김갑순은 1980년대 초반 MBC에서 특집 드라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말이라면 어디서 사람 취급도 못 받을 이런 천민 출신이 느닷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떳떳지 못하게 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제의 토지 수탈과 더불어 소위 근대적 소유권제를 정비하던 와중, 특정 지역의 지가가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땅값이 갑자기 오르면 예나 지금이나 투기꾼만 재미를 보게 마련인데, 이런 요행과 얍삽한 처신으로 부를 모은 자들이, 그 씀씀이라고 정정당당할 리 없죠. 해방 이후 반민 특위에 걸려 가세가 풍비박산이 났는데, 근본 없고 배운 바 없고 천성부터 타락한 이런 졸부들의 말로가 언제나 이렇습니다. 민족의 장래에 암운을 드리우는 대세에 영합하여 돈을 모은 자들이, 어디 일제 시대의 혼란기에만 설쳐 댔겠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죠.

제 아비의 죄를 대신 씻기 위해 해방 후 연구자로서 많은 공헌을 한 우장춘 박사의 부친 우범선의 사연은, 이 책 첫머리에 올라 있기도 하지만 읽기가 참 불편합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이, 이처럼이나 역사의 거대한, 그리고 불쾌한 고비에 마디마디 걸려 있을 수 있을까요? 배정자 같은 이는 이런 침침하고 음습한 역사의 언저리에, 언제나 등장하기 마련인 소위 "마타하리형 여간첩"입니다. 김희선은 우리가 흔히 말하듯, "한 번 배신한 x은 두 번 세 번도 거침없이 배신한다"는 속설을 그대로 증명하는 끔찍한 예입니다. 저자는 단지 역사 속에서 규정된 그의 민족 반역자로서의 행적뿐 아니라, 기초 인간성마저 저열하고 추레한 유형으로 그를 규정합니다. "효 앞에 충이 있고, 국가를 욕되게 한 자가 제 가문 제 부모 하나도 바르게 건사하고 모실 수 없다"는 저자의 지적처럼, 민족 정기가 바로 서는 과업은 우리 개개인의 일상이 도덕과 윤리로 지켜지기 위한 선결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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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동양 고전 입문 | My Reviews & etc 2016-08-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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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처음 시작하는 동양고전 입문

이현성 저
스타북스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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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저 과거시험에나 합격하여 입신 양명을 꾀한다거나, 사회에서 (힘있는) 어른들과 교유하려 들 때, 유교 텍스트에 대한 교양이 없으면 도무지 채널을 통과하거나 말을 트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전을 읽고 오의를 탐구하는 게 모든 젊은이들의 필수 과업이었습니다. 요즘은 사회화의 구조, 성년 편입의 경로가 너무도 달라져서, 그저 출판된(인쇄술이 이만큼이나 발전했는데도) 책의 꼴로 동양 고전을 접하기조차 만만치가 않습니다(그 책을 읽고 새기는 건 고사하고). 뿐만 아니라, 본디 진의를 궁구하기 어려운 게 고전이니만치, 설사 책을 구한다 해도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건 또 별개의 어려운 과제입니다. 1) 접하기도 쉽지 않고, 2) 내용도 어렵거니와 3) 깨친 바를 실제에 적용, 응용하기(이는 자계서의 기능이기도 하죠)란 더욱 난감합니다.



이 책은 동양 고전의 정수만 잘 뽑아 독자에게 전달할 뿐 아니라, 이 핵심의 가르침을 우리 독자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요긴히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저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쉽게 전달라는 내용입니다. 잘 모르는 독자가 읽어도 재미있고(머리 속에 일단 들어가기라도 하려면 일단 텍스트에의 접근 장벽이 낮아야 하죠. 숙성 과정은 그 다음이고), 동양 고전에 꽤나 밝은 이가 읽어도 "아 그런 뜻이었나" 혹은 "그렇게 새길 수도 있겠네" 같은 곱씹음의 마당을 제공합니다. 본디 우리 의식 구조의 심층을 꿰뚫은 성현들의 가르침 자체가 아주 알찼던 까닭도 있고, 이 저자께서 깊이 깨달으신 분이라 좋은 말씀을 잘 간추린 덕분도 있겠습니다.



제가 위에서 "유교 텍스트"를 언급했지만, 모두 3부 12장으로 이뤄진 이 책에는 노장 사상이 1/6을 차지합니다. 과거에는 이 두 입장이 서로 날카로운 대립상을 보였지만(성현, 교조들이 그랬다기보다 그 일부 후계자들의 그릇된 태도로 인해), 통 트게 핵심의 궁극을 엿보기라도 한 이들에게는 결국 "원융회통"의 차원에서 모든 가르침이 하나의 통로로 연결되기 마련이죠. 궁색하게, 혹은 편협하게 칸막이를 나누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두루두루 연결되고 사람 사는 이치를 막힘 없이 짚고 나가시는 저자의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유가와 도가 외에는, 손자의 병가가 한 장을 차지하고, 그 외 과거 합격을 위한 필독서였던 십팔사략이 주제로서 또 한 장을 점합니다. 앞서 말했듯 답답하게 특정 주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른 장에서 논의되었던 주제가 다시 끌여들여져 하이퍼링크처럼 상호 언급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게 일품입니다.



<논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첫째 문장이 소략하고 번거로운 수식이 없다는 점, 둘째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이 대단히 소탈하며 말하는 본인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딱딱한 유교 경전이라고 하면 이상화한 현인, 성인의 엄격하고 절제된 모습만 강조할 것 같은데 그 반대이니 말입니다. 저자도 이 점을 누누이 지적합니다. 성현들도 이처럼 가식 없는 어투로 진리를 논하고 일상을 걱정했는데, 아무 잘난 바 없는 어린 후손들이 말과 글과 체면과 형식에 얽매어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거죠. 이처럼 참된 고전은 그 겉모습에서부터 어떤 긴한 이치를 깨우치고 들어갑니다.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다."
"군자는 항시 마음이 편안하고 너그럽다."

이는 공자가 책상 앞의 문건으로 허상의 지식 체계를 잔뜩 담은 이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많은 경험을 체득하고, 소인배든 군자든 날품팔이 하층민이든 왕실의 금지옥엽이든 사이이 과학을 내세우는 병적인 거짓말쟁이이든 수완 좋은 사업가이든 간에, 폭 넓게 인간을 상대하여 깊은 지혜를 깨친 위인이라서 자연스레 내뱉을 수 있던 멋진 언명입니다.

저자는 특히 "군자"라는 말을 오늘날의 의미로 바꾸면 "지도자"와도 통한다고 했습니다. "지도자"란 꼭 연단에 올라 정견을 발표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직업 정치인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조직에서 아랫사람을 잘 이끌고 동료간의 협화를 도모하며, 정해진 기간 안에 소기의 성과를 잘 올리는 리더, 나아가 수신제가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잘 돌보고 통제하는 모든 사람이 다 "지도자, 리더"입니다. 꼭 공적 모임, 2차 집단, 이익 사회일 필요도 없습니다. 가정에서 아내 혹은 남편에게 존경, 사랑을 받고, 자녀를 잘 돌보는 부모 자신이 바로 "지도자"입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 역시 군주나 기업체 오너가 하는 일 못지 않게 어렵고 중대합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도 먼저 가정이 각각 바로서야 천하가 태평하다고 말씀하신 겁니다(어느 드라마 제목이 아니라도).



대략 30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그간 유교 도그마에 억눌리고 권위주의 체제의 잔해를 떨치려는 동기에서인지 노장 사상이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아니, 꼭 이렇게 현대사적 의의와 결부시킬 필요도 없을 지 모릅니다. 제가 어쩌다 실시간 시청률 순위를 보면, <자연에 산다> 등 현대인의 모두스 비벤디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산 속에 들어가 독특한 자신만의 터전을 일구는 분들을 다룬 다큐가 의외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그런 분이야 어떤 사회에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분들을 소재로 (적지 않은 제작비를 들여) 다큐를 제작하고, 이런 프로그램이 시청률까지 높다는 사실에 더 놀라곤 합니다. 이는 이미 노장 사상의 정수가 우리 민중, 우리 국민의 정신 깊숙한 곳에 침투해 들었다는 작은 반증입니다.

조참은 한나라에서 명재상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의 행정 기법은 딱히 두드러진 게 없고, 선임자가 잘 다져 놓은 전철을 조심해 밟는 것이 첫째 원칙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그가 황로술에 정통한 어느 노인에게 하달받은 깨달음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장 사상에 경도된 사마 천 등의 사가가 주로 제기하는 주장이기는 합니다. 각양 각색 기상천외의 취향과 개성을 지닌 수백만의 인민이 모여 사는 공동체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각박하게 통제하면, 달성하려는 목적이 주는 이점 이상의 악폐가 새로 생겨날 뿐이니, 상선약수, 모든 것은 그저 물 흐르듯 제 타고난 본성에 맞게 다뤄야 한다는 이치가, 사실 중원 본토나 여기 한국을 넘어, 인간 생리의 깊은 구석을 잘 갈파한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맹자는 도탄에 빠진 백성의 생활상에 크게 의분을 느껴, 백성을 못살게 구는 위정자를 향해서는 역성 혁명에의 결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등, 집권자나 권세가의 입장에서는 크게 불온해 보일 수 있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제기한 인물입니다. 이런 정의롭고 민본주의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반면, 의외로 실용의 기법이라 할 "설득술(저자의 표현입니다)"의 흥미진진한 각론도 찾아 익힐 수 있다는 게 그만의 매력입니다. 아마도 정치상황은 더욱 복잡히 꼬이고, 유세가들의 주장에 더 이상 솔깃해하지 않는 군왕, 재상 들의 행태에 적응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출된 노하우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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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 [편역본] | My Reviews & etc 2016-08-2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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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봉신연의 3 (封神演義)

안능무 역
솔 | 200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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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보니 <봉신연의> 편역본(솔출판사)도 집에 있더군요. 이걸 내가 언제 샀지? 아무튼 출판사로부터 신간 완역본이 도착하기 전에 예습(복습인가?)  좀 하려고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편역이라곤 하지만 역자께서 정성들여 잘 옮겼고,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만화책을 읽고 나서 보다 텍스트화된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이 책을 골랐겠으므로, 그런 제한적 목적만 지닌 이들에게는 이 책도 넉넉히 도움이 되는 컴패니언입니다.

회사에서 이걸 읽기에는 꽤나 눈치가 보였지만, 여튼 한 번 읽었던 내용이라 책장은 잘 넘어갔습니다. 만약 만화도 안 읽고, 그렇다고 다른 경로로 접한 바도 없다면 아마 이 책은 판타지라기보다 무협지같이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나온 신간과는 상당히 다른 저본을 갖고 번역한 책이에요. 신간은 전문 연구자가 글자 하나 빼놓지 않고 옮긴 완역이지만, 이 책은 저본부터가 다릅니다. <봉신연의>를 글자 그대로로는 현대 독자들이 매우 버거워할 수 있으므로, 이를 다시 쉽게 풀어 쓴 대만 저자의 책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겁니다. 당연히, 연의 혹은 회장체 소설에 단골로 끼어드는 한시가 다 빠져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도 내용은 상당히 충실합니다. 뼈대가 되는 줄거리는 다 수록되었고, 독자에게 쉽게 다가오게끔 윤문도 잘 되었습니다. 허나 요즘은 고급의 독자들이, 보다 까다로운 입맛과 수요로 시장에 다가오는 추세. 완역 정역만이 선사할 수 있는 독특한 고전의 맛은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고급진 취향, 대세의 하나로 자리를 굳혔지요. 이 책도 좋지만, 곧 개봉할 영화를 200% 맛깔나게 즐기려면 필수라고 할, 완역본을 읽어 보는 것도, 아직 남은 더위의 끝자락을 이기거나, 혹은 추석 연휴의 정겨운 분위기, 그 흥을 돋우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정 어렵다면 그냥 이 편역본도 OK!


* 신간 완역본 전 7권 박스세트는 벌써 토요일에 도착했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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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힐러리 | My Reviews & etc 2016-08-27 21:23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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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프레지던트 힐러리

캐런 블루멘탈 저/김미선 역
움직이는서재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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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롤 모델"을 이야기할  때, 특히 그들의 성별이 여성이라면 이제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을 빼놓곤 논의가 아예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작년, 대략 4월까지 이분을 다룬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는데요. 이들 중 제법 볼륨이 두터운 진지한 분석서만도 두 권이었죠. 이런 책들을 읽고서 그간 오래 품어 왔던 저 자신만의 생각이 냉큼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 생각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죠.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새파란 정치신인이었던 일리노이 주 연방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에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내놓아야 했을 때, 누가 보기에도 그녀의 정치생명이 그것으로 끝인 듯 했을 겁니다. 경륜이 일천한 상대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외에도,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들이 그녀에 대해 품은 감정적 장벽이 생각 외로 높다는 점이 새삼 모두에게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 앞에 어떤 방해나 애로가 놓였을 때, 이를 돌파하고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바꾸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오바마에의 패배가 그녀 경력의 끝이 되기는커녕,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 장관 4년을 지낸후 "역시 다음 대안은 힐러리밖에 없다."는 대세론이 확산되기까지 했죠. 퇴임 후 다음 대선을 노리라는 여론이 그녀의 진영에서 주도된 게 아니라, 장관으로서의 업적을 보고 자연스럽게, 여러 섹터에서 붐이 일듯 조성되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합니다. 더 이상 그녀는 자신만의 의욕과잉에 의해 정치 노선이 추동되는 정치인이 아니었던 거죠. 한때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젭 부시가 들고 나온 구호가 "누군가는 그녀를 막아야 한다"였듯, 호불호를 떠나 여성이 그만큼이나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정치인으로 우뚝 선다는 자체가 세계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힐러리 로댐은 우리가 흔히 잘못 알듯 엄청난 금수저 가문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여성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소박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꿈을 간직할 줄 알았던 평범한 분이었고, 아버지는 직업 군인의 경력을 유지하다 늦게 사업에 뛰어든, 규율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 인사였습니다. "힐러리"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주셨다고 책에 나오네요. 남다른 인생을 살라며 이런 중성적인 이름을 택했다는 설명인데요(여자란 티가 뻔히 나는 이름이라면, 평범한 여성들처럼 정해진 길을 갈 것 같다는 뜻이겠죠?). 저는 고교 때 영어 선생님이 라틴어 어근("즐거운")을 설명하시면서 이분 이름을 거론하던 게 기억 납니다. 그때 우리들은 다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저 정확한 설명이었을 뿐 웃을 일은 아니었네요.

이 책에 나온 힐러리 로댐의 웰슬리 여대 재학 중 사진은 와 이분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귀엽고 때 안 묻은 모습입니다. 이 책에는 그녀의 지난 역정이 어땠는지 단계별로 추측이 가능할 만큼 여러 컷의 대표적인, 그리고 상징적인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여대생 때는 뭔가 엉뚱한 생각만 잔뜩 하고 있는 듯 순수하고 꾸밈 없는 착한 표정입니다. 그러다가 30대, 남편 클린턴 주지사를 만나 중요 공직 한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에는 당차고 야무지면서도 20대 시절보다 훨씬 세련되어진, 약간 무서워보이기까지 한 의지가 눈빛에서 풍기는 모습이에요. 사람의 인상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해 말해 줍니다.

어떤 사람의 인격과 영혼의 색채를 이루는 건, 그 사람이 어느 누구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아 왔는지가 아닐까요. 힐러리 로댐은 어렸을 적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활동을 보고 인생의 지표를 결정했다고 털어 놓습니다. "허영은 그것이 인기가 많은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양심은 그것이 옳은지를 묻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양심의 문제는 도외시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부각되고 주목 받으려는 의도 하나로 별의별 파렴치한 짓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허영을 양심인 양 위장하여, 정작 그런 양심적 결단과 지적이 필요했던 시점에선 실리를 쫓아 조용히 묻어가다가, 상황이 다 끝난 후에야 무엇이 옳다며 진리를 자기가 독점한 양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더군요. 킹 목사의 저 말은 진실과 허위를 가리는 준열한, 그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의 불 같은 시금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로댐의 양친이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이었고, 힐러리 자신도 (다소 기인으로 평가받던) 배리 골드워터 같은 정치인에 자원 봉사를 나섰다는 점은 이후 그녀의 행보를 고려할 때 정말 흥미롭습니다. 사실 배리 골드워터는 이후 엄청 젊은 부인을 맞이하고, 그 부인의 정치적 성향을 따라 리버럴로 전향했다는 걸 고려하면, 힐러리는 대학생 때부터 사람을 정확히 알아봤던 셈입니다.



빌 클린턴이 어느 인턴과 추문이 생겼을 때, 당사자의 아내로서 그녀가 처했던 입장은 세상 누구도 그 곤경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의 난관이었을 겁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남편의 실수가 안긴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치적 입장만 고려해서 본심을 숨기고 남편을 옹호하는 척한다는 일각의 삐딱한 시선이 더 참기 어려웠을 겁니다. 세월이 그때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런 당치도 않은 편견이 얼마나 사악한 것이었는지는 최소한 증명이 되었습니다. 빌 클린턴이 퇴임만 하면 둘은 즉시 이혼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후 이어진 전례 없는 잉꼬 부부의 금슬이 드러나면서 스스로 꼬리를 내렸죠. 저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얼마 전 TV 생중계로 보면서, 이제는 노인인 빌 클린턴이 아내의 후보 수락 연설을 경청하며 "어쩌면 내 마누라는 저처럼 말도 잘 하고 똑똑할까. 어쩌면 말 한 마디를 해도 저렇게 사랑스러울까."라고 고백이나 하듯,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미소를 지으며 연단에 시선을 주는 걸 봤습니다. 지금 이분이 건강도 안 좋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게 남들 보라고 가장하는 연기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게 의심된다면 의심하는 그 사람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crooked) 인간일 겁니다.

힐러리는 단지 "내가 대통령 한 번은 해야 되겠어." 같은 맹목적 권력 의지를 지닌 유형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지표를 갖고 이미 영부인 시절부터 대중 앞에 나서고, 이를 공개적인 토의와 검증의 장에 내세우려 했던 인물입니다. 모범적인 정책 지향 정치인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분야에서 과감하게 개혁을 내세웠기 때문에 그토록 오해와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겠고 말입니다.



그녀 역시,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리빙 히스토리>를 처음 출간했을 때처럼 아집과 허상에 사로잡힌 미숙한 모습이 아닙니다. 반대 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단점을 개선하고 전의는 몇 배로 더 키웠으며, 상대를 포용해야 할 순간에 감정을 이성에 의해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함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바마측과 경선 직후 대타협을 이루고, 줄 건 주고 받을 건 확실히 챙기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상대에게 배울 건 과감히 배우는 대범함도 어느덧 자신의 덕목으로 내면화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어느 정도 시련을 거쳐야 재목으로 성장하는가 봅니다.



힐러리 클린턴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1)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한 후 정면돌파하는 그 의지 2) 보편타당한 대의 명분을 추구하는 노선이라야 정치인으로서 장수할 수 있다는 바른 신념 3) 무엇보다도 여성에게 인습이 부과하는 장애와 한계를 거의 완전한 방식으로 타파, 극복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 등이겠습니다. 그녀는 유려한 연설가이기도 한데, 책 말미에 실린 영어 원문과 번역은 좋은 독해 교재로 쓰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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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있게 살아 갈 용기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8-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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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배짱있게 살아 갈 용기

로버트 슐러 저/강준린 역
북씽크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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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온 힐, 데일 카네기 같은 저술가(분명 자계서 저자)들의 책을 자계서로만 인식하는 이들은 오히려 적습니다. 무슨 톨스토이 인생독본처럼 경건한 고전이라든가, 넓은 범위의 경영서에 한 자락 걸치는 명저처럼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죠. 정말 직장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려는 용도로 자계서를 (곧이곧대로 순수하게) 소화하고 싶다면, 그리고 요즘 나온 책 중 알곡과 쭉정이를 바로 고르는 데에 자신이 없다면, 정평이 난 자계서 고전을 고르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 로버트 슐러의 책도 그런 범주에 들어갑니다.



직급이 뭐든 간에 회사에서 "배짱있게 살아갈 용기"라는 제목을 단 책을 펼쳐 놓고 읽을 때, 남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걸 내가 부하들, 혹은 동료 보는 데 펼쳐 놓고 있으면 뭔가 스스로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걸 노출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OO은 자계서를 읽을 만큼 상황이 한가한가? 등등. 그런데 책이 재미있으면, 또 (고전이 흔히 그렇듯) 시대를 초월해서 참 적실성 있는 교훈이다 싶은 걸 요점만 착착 잘 제시하면, 어느 새 책의 저자와 정신 없는 소통에 빠져 현실의 소소한 눈치가 하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 이거? 다 읽고 나서 잠시 빌려 줄게." 사실 이런 직접적 반응에서의 자신감, 확신이 상대에게도 더 효과 있게 전달되기 마련이기에, 앞 단계에서의 사소한 교란은 진정성 아래 덮이는 게 보통입니다(소위 moment of truth).


이 오래된 책의 원제는 <Let's learn with Boldness>입니다. 당신을 둘러싼 객관적 상황이 어떠한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너 자신의 진짜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것들을 배우기 위해 결코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말라는 의미죠. 영어에서 "배짱"은 grit라든가, 혹은 gut 같은 단어를 써서 표현하기 때문에 좀 그렇긴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어쩌면 모든 문제가 "직장인 자신의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하는 게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형 자계서의 원조라 할 이시형 닥터의 그 책에도 제목에 "배짱"이란 단어가 들어가죠. 집단에 끼기라도 하면 무서울 게 없는데, 혼자 서면 확신도 없고 뭘 해야할 지 모르는 한국인들의 흔한 속성 때문에 아마도 특히 강조되는 덕목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배짱"만으로도 충분한데, "용기"까지 피수식어로 한 번 더 들어갔으니 역자분의 의도가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초기 자계서 저자들 중에는 기독교적(정확히 말하면 "청교도적") 도덕관을 사상적 배경으로 지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저자 로버트 슐러도 목사님이라서 그런 경향성은 한층 더한 편인데요. 현재의 자계서 주류에서 흔히 접하는 "세속주의적 솔직함"과는 거리가 멀게(그렇다고 저자가 솔직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슐러 목사님은 물질적 탐욕과 집착에 젖은 사람은 참된 성공,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걸 갖고 싶다면, 결코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몸소 실천한 저자의 경우, 비슷한 표현을 쓰는 것 같아도 아주 청신하고 경건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언제나 감동을 받는 건, 그게 그저 흘낏 시선을 줄 수 있었던 책 앞표지의 저자 이름란을 확인한 후 비로소 시전하는 위선적인 "결과론"만은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그게 그 (이름난) 저자의 말이라서가 아니라, 그 말 자체가 내 영혼에 진정으로 파장과 공명을 주기 때문에 감동이 밀려 오는 게 분명하죠. 반면 평범한 저자의 경우, 그게 진심의 순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독자도 밋밋한 반응에 그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자, 남 앞에 두드러진 성과를 내려는 자가, 진정 제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에게 정직하라는 가르침을 펴고 있습니다. ㅎㅎ 제목대로 너무 "배짱"만 강조한다거나 안면몰수식 추진력만 내세우는 내용은 아닙니다. 영어의 "boldness"라는 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뉘앙스가 기본으로 깔려 있거든요. 당신이 안주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 재앙, 심지어 죄악으로 화할 수 있다는 게, 그래서 언제나 의존할 것은 도덕적, 객관적, 보편적 진실밖에 없다는 게 이 저자의 일관된 기조입니다. 자계서에서 대체 왜 "물질"의 가치를 낮잡아 말하는가, 그 점이 의아하셨던 분들은 이런 배경을 알고 책을 읽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직장에서 차라리 더, 직원의 일관된 인격, 캐릭터, 개성이 더 필요하고, 이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먼 근본에서는 물질에 초연한 자세가(역설적이지만) 더 필요합니다.


뉴질랜드에 가 보거나, 혹은 친지를 두고 있는 분들이 요즘은 한국에 많죠(대략 십오 년 전부터 이주자가 확 늘었으니). 뉴질랜드는 의외로 정부 정책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나라인데, 이 책이 쓰여진 당시에도 자유방임주의하고는 거리가 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진심으로 구하면 이루어지지 못할 바 없다는 내용인데, 그 예를 저자는 뉴질랜드 최초의 상업(민영) 방송국 허가 에피소드를 통해 들고 있네요(기독교 관련 내용은 아니고요). 제가 또 하나 느낀 건, 독창성 높은 자계서일수록 이처럼 다른 책에서 못 보던(얼핏 봐선 이상하게까지 들리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는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책 최초 출간시점과 동시대의 저자라면 적어도 이 이야기만 읽고서 큰 감흥이 못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요. 사실 공무원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뭐 하나 허가를 따 내거나 승인을 받으려면 이분들 대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만큼이나 많은 비리가 생기고 사건이 터지는 거겠습니다만,.. 여튼 저는 1970년대 뉴질랜드에서 인허가 관련 이런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저자가 이런 형편에까지 밝을 만큼 인맥이 넓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명연설 명설교 명저술로 유명했던 저자지만, 구수하게 풀어 놓는 경험담이나 유익한 일화에만 치중하지 않고, 특히 11장 같은 데서는 좀 독자 머리에 부담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명제화, 교훈화를 시도합니다. 이런 걸 보니 이 책 자계서 맞구나 싶을 만큼요. 내가 최소한 이 정도는 내 실제 인생에서 다 실천해 보고 쓴맛단맛 다 보고 나서 하는 소리다, 뭐 이런 "어조"가 느껴지게, 결론 파트에서 독자에게 교훈을 압축적으로 정리하는 "포스"가 장난 아닙니다. 대담하게 인생을 산 사람이, 같은 말을 해도 훨씬 강렬한 진정성과 교훈을 담아 "대담하게" 결론을 이렇게 추려낼 수 있는 거겠죠? 내가 내 자신에게 "배짱 좋게" 심층 내면을 향해 다가서고 불필요한 감정의 잔가지, 잔해를 정리해 낼 수 있다면, 그 참된 배짱이 대인 관계에서, 혹은 공적 소통에서도 자연스럽게 제 기능을 합니다. 그릇된 외관에서 비롯한 헛된 욕심을 버리라는 그 깨끗한 가르침이 왜 많은 독자들을 설복했는지 잘 알게 하는 고전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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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기회 | My Reviews & etc 2016-08-2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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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두번째 기회

제임스 패터슨 저/최필원 역
황금가지 | 200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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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범은 영어로 serial killer라고 씁니다. 이걸 한국어로 발음하면, "시리얼"이 무슨 먹는 cereal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serial은 한국에서 보통 제품 인증 키 같은 걸 대뜸 떠올리게 하는 이유도 있어서, 여러 모로 어색한 게 사실입니다. 또 제 생각으로는, 사람이 일단 타인을 죽였다면 그 한 번의 행위만으로 뭔가 다른 영역에 들어선 것이기에, "살인자"라는 한 마디로 족하지 그 앞에 수식어를 붙일 필요도 없다는 쪽이라서... 여튼 단수와 복수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저들의 언어 관습에 주목할 때 뭔가 다른 의미가 느껴지기도 하는 표현입니다. 이뿐 아니라 워낙에 느낌과 생각의 체계가 다르기에, 영어 사전 놓고 1:1 대응식으로 풀이해서는 영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가 쉽죠.

어제 리뷰했던 트리베니언의 작품은 국어 시간에 교재로도 쓰이는 등(영미권에서), 문장과 기법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고전에 가까운 위상입니다(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살인 사건이라든가 XXX 같은 소재가 어린 독자에게 읽히기에 교육적이라고는 못 하지만(제 생각으로는요), 앞서 말한 그런 이유 때문에 문학에서 탁월한 성취로 꼽힌다고 하네요. 이 작품은 CD 플레이어라든가, 쿠바 소년의 송환 이슈가 나오는 등 어느 시대인지가 뚜렷이 한정되는 "현대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요 시대보다 좀 앞선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연쇄 살인범"물에 더 끌리는(?) 편입니다. "그렇게나 시대를 앞서간 엽기적 범죄를...!" 독창성이란 심지어 범죄의 영역에서도 사람 눈길을 끌게 하는 법이랄까요. 꼭 농담만은 아닌 게,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도 이런 명언(?)이 나옵니다.

이 작품의 악역인 "킬러"(처음에는 이런 이름으로만 지칭됩니다)는, 공권력의 동선과는 별개로 독자에게 일부 행보가 제시됩니다. 이 역시 추리소설에서 아주 예전부터  쓰이던 기법입니다. 뿐만 아니라 범죄자가 특정 행위에 페티시적 흥분을 느껴 가며 행동의 동기로 삼는 것도, 몇 달 전 책프 다른 기수에 리뷰했던 로렌스 샌더스의 <제1의 대죄>에 나오는 설정입니다. 이런 설정은, 범죄자가 거울 앞에서 서서 자신의 완전한 나체를 보고 쾌감을 느끼며 더 흥분한다는 식으로 보통 다루는데요, 이런 나르시스트적 행태와 심리는 영화 <다이 하드 2>에서 배역인 커널 스튜어트(배우 윌리엄 새들러가 연기)가 잘 보여준 적 있습니다.

반면, 이 작품은 소위 Women’s Murder Club 시리즈의 두번째로서, 린지 박서(이 2편에서 경찰 부서장직에 오릅니다), DA인 질, 검시관 클레어, 기자 신디 등 친구 사이인 네 명의 여성들이 수다도 떨어가며 서로의 (여성으로서) 고민도 공유해 가며 범죄를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묘사된 살벌한 남성(바로 알 수는 없으나 남성일 가능성이 크죠?) 살인자의 동선과 대조되게, 이들 여성들은 각자의 직장, 직분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프로들이지만,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 때에는 그저 평범한 아낙네들처럼 친근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앞서 말했듯, 연쇄 살인자의 면모라든가 범죄의 트릭이라든가 이를 둘러싼 대중의 반응 같은 요소는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봐 온 것들입니다. 이 작품을 그런 것들과 차별되이 보이게 하는 건, 전문직 여성들의 편안하고 일상적인, 그러면서도 진지한 관계 형성을 (간접적으로) 통해, 사회 질서의 근본을 흔드는 악질 범죄를 해결한다는 그 "바람직한" 설정 덕택이 큽니다.

여성이 범죄 해결의 중심에 서는 건 여러 문예 작품의 설정을 통해 오래 전에 등장한 바 있고, 경찰 소설 자체가 일반 탐정물에 비해 늦게 등장했지만(경찰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 사이에 인기가 없죠), 여성 경찰관이 사태의 중심에서 범죄를 척결하는 내용도 이제는 보편화되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는 미드 <캐슬> 같은 거죠. 여기서 케이트 베켓은 얼굴만 예쁘게 생겼을 뿐 그냥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남자라고 보면 됩니다. 생긴 게 저런데 일까지 잘하니 더 주변에서 바짝 긴장하게 되지만 말이죠. 물론 관록에 어울리는 카리스마라든가 나이에 걸맞게 높은 직급이라든가 하는 것도 다 갖췄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친구들도 (신장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다 저 케이트 같은 유형입니다. 케이트도 자기 친구 만나면 신나게 수다 떨더군요.

범인이 누군지는, 저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합리적 과정을 통해)짐작이 가능했습니다. 또,.. 소위 증오 범죄라든가 타인종에 대한 배타적 정서 같은 게 이제는 소설,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너무 자주 쓰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좀 빤하게 전개되는 편이며, 다루는 방식이 그리 참신하지도 않다고 여겨졌네요. 앞서 말한 대로 이 작품은 시리즈의 일부이고, 그런 시리즈물을 즐기는 태도로 접근해야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겠습니다. 현재 15편까지 나왔는데(아주 꾸준히 나와요. 그해 연도에서 1을 빼면 작품 순번이 나옵니다), 이 중 다섯 편 정도를 RHK에서 번역하여 출간했고, 이 직전편은 최필원 선생의 번역으로 이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문직 여성들의 비상한 능력과 직업 정신, 그리고 그들의 소소하고 평화로우며 그러면서도 중요한 일상, 가정사 등이 (끔찍한 범죄상과도) 잘 대조되며 독자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게 으뜸가는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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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야의 여름 | My Reviews & etc 2016-08-2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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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티야의 여름

트리베니언 저/최필원 역
펄스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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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이라고 해도 거기 살기에 좀 안 어울린다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향민들이 먹고 살 만한 기반을 이미 이루고 물질적으로 부족한 바도 없으면서 왜 그토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걸까요?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은, 사람의 정신과 영혼, 육체를 구성해 온 요소 중 절대적인 부분이, 그가 성장한 고장의 자연적, 혹은 인문적 환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You are what you are nursed by." 번듯한 귀족 가문이 왜 인적도 드물고 문화 혜택도 덜 입을 만한 시골에 내려 와 사는지, 누구의 상식으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럴 때 그들을 맞는 것은 겉으로야 따뜻한 환대 뒤에 숨은, 근거가 있든 없든 마을 전체에 돌아다니는 불측하고 불쾌한 루머이기가 십상이죠.

바스크 지방은 과거 스페인의 분리주의자들이 극렬한 테러를 일삼던 지방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의 독특한 지방색은, 거주자들이 엄청난 다혈질이라는 점(젊은이들이 대단한 미남미녀라는 건 주관적 편차가 크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외에도, 그 바스크 방언(이라기보다 독립된 언어)이 어느 어족에도 손쉽게 분류해 넣기 어려운 기묘한 구조라는 데에도 있습니다. 말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건,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정신 구조 역시 (주로 감정적 측면에서) 분석하기 매우 어려울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여튼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은 프랑스 영토의 바스크라서 정치적 문제 같은 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바스크도 나바라 지방처럼 피레네 산맥 근방에서 두 나라 사이에 쪼개져 있기 때문이죠.

트레빌 가문은 명망 높은 귀족 집안이고, 가장인 트레빌 씨는 뛰어난 지성을 지닌 학자이며, 쌍둥이인 두 남매 역시 영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젊은이들입니다. 이런 그들이 왜 파리에 살지 않고(그들의 신분에 걸맞는 사교 생활, 그리고 고위층 인맥의 이점을 포기한 채) 이 한적한 시골에 내려왔는지는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모릅니다. 한창 나이의 두 남매가 모두의 선망 대상이 될 만큼 빼어난 용모의 소유자들이기에 (이른바 제8의 대죄-그런 건 없습니다만- 라는) 집중적인 호기심의 대상이 됩니다.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는지, 이 마을에는 몽장이라는 (좀 이상한) 이름을 가진, 용모 훤칠한 젊은 의사가 이미 부임해 있습니다. 닥터 그로라는 경험 많은 의사가 그를 조수로 쓰는 중인데, 이 젊은 몽장 역시 (고향이 바스크라고는 하나) 왜 대도시에서 개업하거나 수련하지 않고 이런 후미진 곳에 내려왔는지도 수상쩍기는 합니다.

이 닥터 몽장과, 트레빌 가문의 그 젊은 처녀가 어느 날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주친 후, 없던 사고도 경박한 수다만으로 만들어 내고야 말 기세인 이 시골에서는 맹렬한 새 루머가 번집니다.  마을에서 오가는 모든 소식의 중심에 서 있는 닥터 그로가 몽장에게 가르쳐 준 바로는, 벌써 두 남녀가 말을 주고받으며 길을 같이 걸은 그 시점부터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몽장은 황당해하지만, 한편으로 카챠(그녀가 자신의 이름이라며 가르쳐 준 것)를 향한 뜨거운 연정을 자신도 부인할 수 없기에, 또 아직은 젊고 미숙한 나이이기에 혼란에 빠집니다. 이 정도 혼란이라면 그 나이에 으레 겪게 마련인 행복한 난관이기도 하겠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군요.

카챠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입니다만, 왠지 그런 자신의 아름다움을 (분명 그녀 본인도 호감을 느끼는 중인) 몽장에게 부인하고 듭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그저 건강하고 매력적일 뿐이라나요. 그런가 하면 마치 덤덤한 제3자처럼 "당신(몽장)은 당신이 미남인 줄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런 치들이 흔히 보이는 거만함이 없어서 마음에 든다." 같은 이상한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일 수 있으나 이게 한창 나이의 처녀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죠. 건조하고 냉정한 남성 훈수꾼의 목소리라면 모를까. 여튼 몽장은 지금 열정에 휩싸여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점을 분석할 겨를이 없습니다.

카챠에게는 15분 차이의 "터울"을 둔 일란성 쌍둥이 남동생 폴이 있습니다. 이 폴이 방해꾼입니다. 물론 폴은 귀족 가문 특유의 냉정한 시각, 점잖고 이성적인 추론 끝에 심사숙고하여 "누나와 당신, 즉 몽장" 사이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사랑에 빠진 남성이 눈에 뭐가 바로 뵐 리 없겠습니다만, 사랑하는 여성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성(예비 처남?)이 뭔가 이유가 있는 듯 충고하는 말이기에 이게 또 바로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몽장 역시 교육을 받을 만큼 받은 사람이고, 자기만큼이나 이성적이며 사려 깊은 이가 하는 말을 흘려 들을 만큼 무모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영화 <몽상가들>이라든가, 1994년작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컬러 오브 나잇> 등의 여러 모티브가 함께 연상되기도 합니다(이 영화들은 모두, 이 작품보다 10~20년 늦게 나온 것들입니다).

자신의 누나를 올바른 방법으로 걱정하고 배려하는 폴이기에, 이 닥터 몽장의 인간적 진실됨을 알고 폴은 진상을 털어 놓습니다. 폴이 진실이리고 믿는 바를 모두 설명 듣고, 닥터 몽장은 그제서야 모든 의문을 해소합니다. 의문이 해소되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게 마련이죠.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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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오히려 지금부터, 아마 극중의 몽장은 물론 우리 독자들에게 혼란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몽장은 갑자기,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이송되어 온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점잖기 짝이 없는 전형적 학자인 트레빌씨가, 딸과 청년 사이의 밀회를 목격하곤 총을 쏜 겁니다...라고 몽장은 설명을 듣습니다. 이치에 닿는 게, (총기 사고가 나기 직전)폴로부터도 동일한 설명을 들은 후였기 때문이죠. 가벼운 부상에 그친 몽장은 의식을 차리자마자 바로 트레빌 저택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몽장이 만난 오르탕스, 아니 카챠, 아니 "폴"은 그에게 끔찍한 현장과 끔찍한 (진짜) 진실을 들려 주는데요....

(아주 심각한 스포일러)
1. A가 B를 죽은 C라고 착각하여 D를 쏘고, 나중에 모든 진상을 알게 된 후(지금까지는 E가 A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사고를 친 게 B라고 거짓말을 해 왔습니다) 자살함.

2. A는 처음부터 아무 잘못이 없었고, 그 끔찍한 사고의 상흔에 의해 광인이 된 B가 이 모든 사고를 저지름. D를 쏜 것도 B고, 급기야 E와 A까지 죽이게 됨.

(스포일러 중 스포일러지만 독자로서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느낌)
마지막이 섬뜩하죠? 결국 몽장은 어느 강간범이 치료를 받으러 자신의 병원에 들어오자, 고의적으로 치료를 빙자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강간범이 어느 분의 인생을 망친 바로 그놈인지는 알 수 없지만(설마), 강간범의 일원으로서 무한연대책임을 지고 넌 그냥 죽어라! 이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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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베니언(필명)의 작품들은 플롯이나 캐릭터의 실감, 박력, 독창성도 대단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만 형성되는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어휘들의 사용이 단연 탁월합니다. 이 책 날개에 소개된 대로, 혹시 당신이 로버트 러들럼 아니냐는 질문에, "난 로버트 러들럼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대차게 대꾸했다는 일화가 우스우면서도 통쾌하게 다가오고, 과연 그 정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다 싶습니다(로버트 러들럼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에요). 트리베니언의 끈적끈적한 심층 심리까지 잘 파고드셔서(신통하시네요. 비결이 뭘까요?ㅎㅎ), 거의 원문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내신 번역가 최필원 선생님의 노고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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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6-08-2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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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본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

정승욱 저
메디치미디어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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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일본의 장기 불황을 가리켜 "잃어버린 30년"이란 표현을 쓰곤 합니다. 여기서 "잃어버린"이란 수식어는,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들어도 어떤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한 것 없이 세월 날렸다"는 소립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남들 뛸 때 자신만 한 게 없다면, 현재건 미래건 형편이 넉넉하길 바랄 수가 없죠. 당연한 이치입니다.

2) 게다가 우리 나라에선, 대략 3년 전쯤 "일본 망국론"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대진재(대지진)이다 원전 사고다 하는 게 물론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보다는 일본 국채 상환 만기일이 한꺼번에 닥치는데, 당시 일본 정부의 국고 상황이 전혀 호의적이지 못하니, 국가 부도가 눈 앞에 다가온 것 아니냐는 논리였습니다. 요즘은 어떤 선동이랄까, 한 가지 프로파간다를 일시에 대거 복사- 붙여넣기 해서 여론을 왜곡하는 일이 (전에 비해)적어졌지만, 저 당시만 해도 넷상에서 다수 여론이 저러니 맞는 결론처럼 통하곤 했습니다.

이 책은 위에 적은 1), 2)에 대개 근거를 둔, "머지 않아 일본은 침몰"이란 전망이 전혀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까운 장래에 "일본 부흥, 급부상"이란 사태까지 우리가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을 담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이게 다 보편 타당한 논리와 구체적인 팩트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간 찜찜하게 저 망각의 창고 안에 쟁여 두었던 근심거리가 다시 살아나는 경각심을 확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뭔가 재앙의 씨앗이 있었으면 그걸 주관적으로 눈만 혼자 감고 애써 잊으려 든다고 객관적 실체가 저절로 사라지는 행운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아 뭐라도 팔 걷어붙이고 해 봐야죠.

1- 1) 경기가 좋을 때에는 그 좋은 흐름을 타고 사업을 크게 벌여 일단은 돈 잘 버는 친구가 대개 인기가 좋습니다. 그 친구가 현재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건, 상환해야 할 투자금이 얼마나 크건 무관하게, 당장 수입이 좋은 친구 옆에 붙어 있으면 떨어지는 떡고물이 큽니다. 그 친구도 갚아야 할 빚이 얼마건 간에, 지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자기 친구에게 밥 사주고 술 사줄 기회가 (원컨 않건 간에) 더 잦을 겁니다. 반대로,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시시한 PC방이나 주식카페 따위로 간판을 차렸을망정, 쌓아 놓은 돈(부모로부터의 증여, 상속분이든, 혹은 한때 잘나갈때 왕창 꿍쳐 놓은 밑천이든)이 많아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당장 잘못될 걱정이 없는 친구가 더 인기 좋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그들은 지난 30년 동안 성장 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30년 바로 앞의 다른 30년 동안, 거의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폭등 성장기와 대조할 때 그렇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30년 바로 앞의 "미칠 듯 잘나간 30년" 동안, 그들은 이미 남이 넘볼 수 없는 엄청난 부를 모아 놓았지요. 그리고 이 부(富. stock으로서의 wealth)는, 양적으로야 크게 덩치를 못 부풀렸을지 몰라도(왜냐면 저성장이었으니까), 질적으로는 그간 놀았던 게 아니라 미래에의 무서운 활력으로 기능할 만큼 탈바꿈을 이뤘습니다. 이게 무서운 겁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 보면, 지난 달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뉴스였던 "브렉시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께서는 "공교롭게도 이 책 주장 내용의 타당성을 입증할 사건이 그새(집필과 출간의 짧은 사이에) 또 터지고 말았다"고 하십니다. 무슨 뜻이냐면, 세계 경기 전망이 불확실성에 휩싸이는 지금(당시), 투자자들의 자금이 "어떤 일이 터져도 기본은 보장되는" 안전 자산에 몰리는 현상이 벌어졌고, 그 "안전 자산"으로 엔화가 선택되었다는 겁니다. 미국 달러야 패권국의 통화니 그렇다 쳐도, 일본은 저성장이다 지진이다 중국과의 갈등이다 해서 아무것도 아닌 나라인데, 왜 그 나라의 통화가 "안전자산" 평가를 받으며 외국의 돈(투자 수요)이 몰려드냐는 겁니다(차라리 미래의 패권국이라는 중국 위안화에 쏠리든지 말이죠. 근데 중국에선 그 시점에서도 돈이 빠져 나가고 있었거든요). 이게 이상해서 시청자나 일반 투자자들도 (TV에 출연한) 애널리스트에 이유를 묻곤 하는데, 대답이란 게 영 피상적이거나 시원찮습니다. 제대로 알지를 못하거나, 혹은 말하기 싫은 "불편한 진실"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죠. 한 달 전에 그게 궁금하셨던 분들은 이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뭘 알아도 확실히 알고 말하는 사람의 답, 혹은 설명의 유효 기간이 제법 긴 답(내일이면 틀리게 되는 일시적인 답이 아닌)이 들어 있습니다.

플라자 합의는, 1980년대 중반에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G7 국가 재무 정책 최고 책임자들이 모여, 주로 일본의 환율을 인위적으로 절상한 결과를 도출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도대체가 일본의 소비자들은 남의 나라 물건을 살 생각을 않는데, 자기 나라(미, 영, 불) 소비자들은 일제라면 환장을 하고 달려드니, 이걸 방치했다간 나라가 망하겠다 싶어 미국이 영, 불을 들러리로 세운 후 이 일을 벌였죠. 하루 아침에 남의 나라 환율을 300%퍼센트 올렸으니 양아치짓도 그런 양아치짓이 없었는데, 이런 건 시장경제나 자본주의와는 아무 관계 없는, 지금의 중국 같은 독재국가도 함부로 못 할 짓입니다. 이 일을 두고, 5년 전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중국이 "너네 일본은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면 굴복하는 나라 아니냐?"고 조롱했으며, 아베 직전 수상이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좀 과장된 면이 있네요. 이 책에도 잘 나오지만, 물론 환율이 저렇게 일거에 절상되면 수출이 안 됩니다. 당연하죠. 비싼 물건을 누가 사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올라갔으니 그걸 갖고 다른 나라의 물건, 자산, 혹은 어떤 가치의 체화물이든 이제는 1/3 값에 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듯이 당시 대장상(현재는 "재무대신"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을 지낸 다케시타 노보루(이때 나카소네 수상 밑에 있었구요. 이후에 일본 총리직에 올랐으나 리쿠르트 스캔들로 사임하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가, "드디어 2차 대전의 치욕을 갚았다"고 감개 어린 멘트까지 내뱉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지금 결과론으로 편하게 왜곡하는 사정과, 플라자 합의가 당시에 가졌던 가능성과 전망이, 서로 판이하게 달랐다는 걸 증명합니다.

실제로 일본이 이런 좋은 기회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부동산 버블로 다 날렸다는 둥 결과가 안 좋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상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버블 붕괴는 원칙적으로 그 나라 안의 사정입니다(예외도 있습니다만). 뭐가 전망이 좋다고 하니 몇 푼 안 되던 푼돈이나 빚까지 내어서 투자를 했는데, 이게 시쳇말로 "상투 잡는 꼴"이 되어 시세 판단에 둔했던 이가 더 가난해지는 게 버블 붕괴의 부작용이죠. 즉 일본이라는 국가 안에서, 영리한 이들에게 부가 더 편중되었다는 것뿐이지 국부 전체의 손실은 크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결과가 경제정의에 반한다는 논의는 또 별개입니다만.

반면 우리나라는 어땠습니까? 1997년 무능한 대통령의 실책으로 나라가 부도위기까지 갔었는데, 이때 성장 동력이 완전히 꺼지고 외채를 갚는다고 IMF 총재가 국가 경제 정책 지침을 대신 내려 주었으며, 알짜 기업체(고도성장기에 그나마 국내에 잘 축적되었던 자산)가 외국에 떼로 팔려 나갔습니다. "잃어버린 몇 십 년"은 이런 나라에다 대고 쓰는 겁니다. 삼성이 그나마 불가사의한 혁신을 이뤄 나머지를 먹여 살렸고(우리는 무슨 삼성이 나머지 국민의 먹고살거리를 다 뺏어 간 것처럼 착각하죠. 한국은 그 이전에 이미 망했던 거에요), 뜻하지 않게 중국이 고도성장을 구가해서 그나마 소소한 기업들이 재미(지속가능한 게 아닙니다. 중국이 단물만 빼먹고 다 털어낼 거니까)를 본 게 있을 뿐 성장의 질적 측면(양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은 이루말할 수 없이 나빴습니다.

일본은 내부적으로 큰 동요가 있었고(버블 붕괴), 이로 인해 그 잘나가던성장이 둔화되었을 뿐 과거 성장의 과실은 그대로 숙성되고 있었습니다. 한 예로 지속적인 R&D가 이뤄진 자동차 산업의 경우, 마쓰다가 "엔진은 우리의 영혼"이라고 공언할 만큼, 대체 불가능한 원천 기술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용케도 한국의 현기차가 (이 책에 잘 나온 것처럼) 수소자동차를 먼저 상용화했습니다만, 일본은 얼마 걸리지도 않아 반값이라는 충격적 스펙으로 다시 시장 점유율을 높였죠. 이 책의 호러스러운 대목은 지금부터입니다. 일본 기업들은 "정신 나간" R&D를 지난 30년 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기술력 면에서 (그 엄청난 자원과 자본과 영토를 지닌) 미국을 능가할 정도였는데, 딴 짓도 안 하고 계속 연구만 했으니 그 내공이 어느 정도겠습니까?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충격적인, 그리고 차마 외면하고만 싶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까고 있습니다.

책의 결론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일부에서 대기업에 엄청난 규모의 R&D 예산을 지원하는 데에 반대하는 입장이, 상당히 걱정스럽습니다. 중국은 본래가 민-관이 구분되지 않는 체제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앞선 출발점을 가졌을 뿐 아니라, 보유한 원천 기술의깊이와 폭이 아예 다릅니다. 한국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국가 지원은 이미 상당한 부작용을 낳은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기업이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국가가 방치하는 게, 더군다나 R&D에 쏟는 지원을 끊는다는 게 과연 바람직할까요? 국가의 알짜 자산이 일부 극소수 대기업에 몰려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나마 그 손에 머물러야 올바른 성장이 가능한 현실적 제약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앞에서 일본 국채 상환의 심각성이 언급되었지만, 그게 채권자가 국내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국가는 망해라 나는 빚잔치하련다 같은 생각을 품을 자가 최소한 일본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남 이야기할 게 아니라 우리나 정신 차리고, 아까운 재산이 해외로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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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플러스 원 | My Reviews & etc 2016-08-2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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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심야 플러스 원

개빈 라이얼 저/최운권 역
해문출판사 | 200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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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나치 점령 하에 있을 때, 진정 용기 있는 이들은 자신을 부각시킬 기회가 왔다며 오히려 위기를 환영했습니다. "오늘에서야 누가 남자인지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마치 평소에는 소 끌며 밭 가는 일로 시간을 보내다, 외적이 침공해 오자 보습 대신 창을 들고 분연히 일어선 킨킨나투스처럼 말입니다. 의인들의 피가 대지에 흐르고 마침내 이족의 철제가 수그러들자 세상의 기준과 안목은 또다시 흐려지고, 용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첨꾼과 모리배들이 주도하는 세상의 한켠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거, 전쟁 때 배운 기술을 평화시에 써서야 될 말이오?" 이렇게 말하는 루이스 케인, 전쟁 중에 통하던 이름으로는 "캉통" 역시, 전쟁 때 이름을 떨치던 그 수완과 남다른 통찰로 생업을 이어갑니다. 영국은 수백 년 간 프랑스와 앙숙이었고, 특히나 나폴레옹 1세 통치기에는 국운 전체가 전환점을 맞기도 했습니다. 평시에는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 세계의 변방에서는 러시아 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의 파트너 사이를 형성하는 등 다자 게임의 명수였던 영국은, 엉뚱하게도 왕실의 먼 혈통을 함께 나눈 호언촐러른 가문과 일합을 벌이다 급기야 가진 재산을 다 까먹는 운명에 처했죠. 이 비감 어린 행운의 변전 과정을 공유한 파트너가 (좋든 싫든) 프랑스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루이스 케인은 통 크게 상대의 장점을 인정합니다. "그런 말 마시오. 레지스탕스는 전적으로 프랑스의 몫이야. 우리는 그저 총에 총알만 재어 준 거지." 사실 전쟁은 물량 보급의 노릇이 태반을 넘는데도 말입니다. 미국이 렌드-리스 정책을 소련에까지 확대하지 않았다면 과연 스탈린이 살아남았을까요? 자원이 고갈되기 이전 이미 전의가 상실되었을 터입니다.

루이스 케인은 청부업자입니다. 사람도 많이 죽였을 것 같고,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짜서 상대를 보기 좋게 한 방 먹이고, "내가 네 머리 위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 적진을 초토화시키는 전략가입니다. 이런 그에게 외견상 대단히 이상한 청탁이 들어옵니다. 어떤 정체 불명의 사업가를, 몇 월 며칠까지 내륙의 작은 국가 리히텐슈타인까지 무사히 이동시키는 일입니다. 우표나 찍어서 수입을 올리는 작은 도시국가에 목숨을 걸고 찾아갈 이유가 무엇이며(여정이 프랑스 브레타뉴 반도에서 시작하니 꽤 먼 거리임에는 틀림없죠), 그 이전에 이 사업가라는 자가 무엇을 하는 위인인지도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정말 이 사람이 대단하기는 한 위상인지, 일을 맡긴 사람이 장난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투르에서 수상한 자들이 교통을 방해하기도 하고, 호젓한 길목에서 총탄이 날아와 케인과 사업가(마간하르트)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살벌한 리얼리즘을 소설 전편에 철저히 구현합니다(심야에 차 몰고 홈플러스에 갔다 온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 예로 차를 몰던 케인 일행을 저격하려 든 자들은, 소설 처음에 일류 보디가드로 거명되던 후보였습니다. 객관적으로 확률을 계산하면 그 반대의 결과(즉 케인과 마간하르트가 먼저 죽는)가 나오기 십상이었으나, 세상 일은 이처럼 수학 공식에서 해가 도출되듯 딱 떨어지는 방식이 아니죠. 청부업자들은 "경찰이야 한 번만 판단이 맞아도 좋지만, 나에게는 한 번만 판단이 틀려도 모든 일이 그르쳐지오."라는 대사를 통해 직분의 어려움을 표현합니다. 이 복잡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건, 혹시 그 수수께끼의 여비서가 배신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입니다.

영화 <화이트 스완>에 보면 가방 속에 잘 숨겨진 주식 뭉치의 행방을 놓고 수십 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활극이 펼쳐집니다. 제 임자가 아닌 자의 손에 증권이 넘어가면, 우리 같아서야 제권 판결을 받거나 명의개서 등 다른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그만일 텐데 왜 저 난리를 피우나 싶죠. 그 영화의 배경이 된 러시아나 이 소설 속의 리히텐슈타인이나 소위 "무기명 주식"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생깁니다. 왜 권리자의 신변을 익명으로 두느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세금 포탈을 위해서죠. 범죄자들은 이처럼 국가의 기초적인 제도 사항에 대해 반감을 가집니다. 법제를 유월하려는 그 필사적인 시도에 드는 비용이, 과연 납세의 출혈보다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금 내기 싫어하는 자 치고 교육 올바로 받은 부류가 없습니다. ㅎㅎ 이 스릴러는 그런 의미에서, 태생적 반사회분자에게 참교육을 시켜 주는 교훈적 내용도 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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