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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 My Reviews & etc 2017-04-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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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가토 노리히로 저/김난주 역
책담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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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 책(경제학)의 몇몇 대목을 짚으며 그러시던 게 기억 납니다. "이 설명은 잘못된 것이고, 심지어 용어 번역조차 바르지 않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기초를 가르칠 때, 다소의 왜곡을 감수하고 뭔가를 전달하는 편이 그나마 나을지, 아니면 아주 원칙대로 꼬장꼬장하게 학습자의 힘들고도 힘든 각성을 유도하는 정석을 걷게 할지는, 선택이 쉽지 않다." 만약 전자의 선택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쪽이라면, 어려운 내용도 무조건 쉽게(왜곡되든 말든) 풀어 주는 게 최고의 미덕으로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것도 쉽게 설명해 줘야 할 판에, "가뜩이나 쉽고 재미있는 것"을 오히려 어렵게 꼬고 든다면, 그런 작업이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지는 물어보나마나입니다. 책 제목이 더군다나 <...는 어렵다>라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1) 하루키의 작품 중 알쏭달쏭했던(그런 게 뭐가 있었을까 싶어도 이 책을 읽고보니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싶더군요) 대목들에 대한 작가론적,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든가, 2) 독자들은 엄청 환영해도 동료 작가(물론 까마득한 선배들을 포함)나 평론가로부터는 "버터 바른 상업적 치장"이라며 홀대, 폄하되었던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그들이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끔" "심각하고 본격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내용이더군요.

어려운 걸 쉽게 풀어내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저 감성적으로 상쾌해질(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감을 해 주고 지나칠) 내용에다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울 텐데, 하루키의 작품에다 하루키스럽지 않은 심각한 비평 용어로 옷을 입힌 걸 보니(사실은 벗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당혹스럽다가도 재미있어집니다. 당혹스럽다는 건 "내가 예전에 끌렸던 하루키가 정말 그런 모습 그런 의도였을까" 하는 생경함이 아마도 그 이유일 텐데, 하긴 끌리는 걸 언제까지나 미지의 영역에 남겨 두는 것보다 한번쯤은 정색하고 "분석"해 보는 작업도, 차라리 독자(우리 자신)의 성숙을 위해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아예 이런 번거로운 생각도 (하루키의 독자답게?) 떨쳐 내고 나면, 저자(비평가) 가토 노리히로 선생이 하루키의 개인사를 짚어 가며 그 숨은 의도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대목이 그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비평 용어를 몰라도, 정말 하루키의 팬이라면 그 느낌이 딱딱한 외피를 깨고 바로 접수되는 "텔레파시"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독자 하기 달렸습니다. 읽고 나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저자께서 꽤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고, 하루키 말고도 여러 당대의 일본 작가들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는 분이지만, 하루키에 대한 든든하고도 순도 높은 애정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정의 방향을 공유하고 밀도까지 비슷하다면, 한 마디를 던져도 그 말이 품은 의미 열 개가 얼마든지 접수 가능합니다.

저자는 하루키의 활동 시기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눕니다. 1979~ 87, 1987~99, 1999~2010이며, 하루키의 팬이라면 저 연도의 구획이 대강 무엇을 기준으로 이뤄졌는지 책을 펴 읽기 전부터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각 시기는 "부정성의 행방", "자석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 "어둠 속으로" 등의 제목이 붙었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저 거창한 세 개의 어구보다, 각론(저자는 각 시기를 다시 2, 3개의 구간으로 나눕니다)에서 등장하는 "디태치먼트", "내폐성", "맥심(칸트식 개념입니다)", "폴리티컬" 같은 개념어들이, 하루키 문학의 핵심 개성과 은밀한 무의식 등을 속속 잘 짚어낸다 싶었습니다.

제가 특히 공감한 건 제1기, 2기(이 책 저자의 기준)를 향한 분석입니다. 이념의 대립이 청춘기 지성을 족쇄처럼 억압할 때 이미 역사의 향방이 다른 쪽으로 고비를 틀었음을 알고 초연한 듯 쿨한 듯 개인의 내면으로 시선을 집중하면서도 감각의 쾌락("청춘이 자신의 특권을 누리는 건 죄가 아님")에 몰입하는 듯, 그러면서도 스스로 정한 원칙은 지키는 내향성(책에서는 "내폐성"이란, 보다 강도 높은 용어를 씁니다) 따위가, 특히 그런 조류가 자신의 청춘기를 휩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어필을 했을 거란 분석이죠. 여기서 저자는,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은근 그의 작품에 깔린 "역사성"에 대해 주목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널리 공감을 얻는 비결이 있다면, 일본인으로서의 죄의식이나 초국적성의 청춘적 방황 같은 게 도처에 향수처럼 뿌려져 있다는 건데, 저자가 서문에서 특히 최근 고조되는 동아시아의 긴장된 정세를 언급하는 것도 깊은 사려가 깔려 있습니다.

사실 하루키의 문학은 엔터테인먼트 장르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게, 모든 작품이 읽기에 말쑥하고 똑떨어지는 경쾌한 내러티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일부 건방진 독자들이, 그의 작품세계라면 아주 익숙하고, 마땅히 이러겠거니 여기는) 어떤 경로로부터 크게 이탈합니다. 한국에서는 당시 알 수 없었으나, 이 점 관련 "대체 뭐냐", "쓰다 만 것 아니냐" 같은 항의를 적잖게 듣고, 편집진도 (벌써 거물이 된 그에게) 문의를 하기도 했다는군요. 이때 하루키는 "(그런 점들을 혹은 의도를) 이해하려면 (나의 시대에는) 오래 걸릴 것" 같은, 어찌 보면 정말 그답지 않은 고답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물론 아닙니다만). 저자는 "왜 우리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별도의 이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시론(프레임)을 제시하는 거죠. 이 시도들이 정말 작가 하루키의 내심과 일치한다면, 이제 (책 제목대로) "하루키는 (알고보니 정말로) 어려웠다"가 되는 겁니다. 물론 모르고 지나친 게 알고 보니 어려웠음을 깨달았다면, 깨달은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어려운 게 아니죠.

저자는 평단과 작가들이 모두 하루키를 폄하할 때 거의 혼자서 그를 옹호하던 스탠스를 보이기도 했고(이 때문에, 그의 표현을 빌리면, "역시 버터바른 치장형 평론가군" 같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반면 (이제는 하루키의 작가적 위상을 거의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된 후인) 최근 몇 년 동안엔 오히려 하루키에 대한 과격한 비판을 시도하다 매체 편집자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치기는 어느 조직, 직역에 속한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데, 그만큼 확고한 신뢰와 분명한 공감에 이르렀기에, 소신 있으면서도 분명한 개성이 깃든 보편타당한 패러다임(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까지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닐지요. 이 책, 한 번만 더 읽고 나서, 지금까지 읽었던 하루키의 작품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책장에 꽂힌 모든 그의 책을 다시 만나는 여행을 떠나봐야겠습니다. 위대한 정신은, 즐겁고 예사로운 말투 속에 진짜 진리를 심어 주는 게 그의 진짜 성취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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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세상의 모든 꿈을 팝니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7-04-2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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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디즈니, 세상의 모든 꿈을 팝니다

빌 캐포더글리,린 잭슨 공저/서미석 역
현대지성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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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어라, 믿어라, 도전하라, 실행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사실 자본주의가 고도의 성숙 국면을 보여야 탄생하고 성황을 누릴 수 있는 분야입니다. 매뉴얼과 설계 도면에 맞춰 공장을 짓고 컨베이어 벨트를 돌려 판에 박힌 제품을 찍어내는 제조업과는 달리, 혹은 사람의 일차원적 욕구만을 만족시키는 도구, 소모품성 제품을 생산하는 섹터와는 달리, 사람의 깊은 마음 속에 숨겨진 욕망과 꿈과 아름다운 이상을 대리 만족시키는 생산활동이란, 차원이 다른 창의성과 공감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지속,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실사 영화를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진귀한 풍경을 보여 주는 패턴은 20세기 초반부터 등장하여 이미 산업의 중요 양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제작으로, 어린이 뿐 아니라 성인 관객까지 끌어들여 90분 가까운 시간 동안, 고급 연극을 보듯 강렬한 희열과 감동을 유발하는 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은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월트 디즈니 말고는.

이 책은 두 분 저자에 의해,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생애 중요 국면과, 창업자 사후에도 끊이지 않고 면면히 전개된 해당 회사의 왕성한 활동, 그리고 월트 디즈니라는 한 인간의 개성과 기업가 정신뿐 아니라 그의 창업혼을 그대로 계승한 후임자들의 성취로부터도 강력한 영감을 받은 다른 회사들의 성취에 대해, 경영학 각론(혁신, 의사결정 구조, 인사관리 등)과 자기계발적 요점을 잘 뽑아내어 독자에게 재미있게 가르치는 내용을 담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성공적인 개인, 혹은 조직이 활발히 그 성공을 이어나가며, 언제나 변함 없는 듯 그 자리를 지키는 걸 두고 감탄하기보다는 그저 당연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이 쉴 새 없이 생산해 내는 상품과 서비스를 일상에서 (충성스럽게) 소비를 하면서도 말입니다. 소비자들 역시 직장에서는 생산 활동에 가담하는 노동자, 혹은 관리직이기에, 비록 내가 예사롭게 접하고 소비하는 제품이지만 내가 만약 저들 입장이라면 과연 이 정도 완성도, 만족도를 이뤄낼 수 있을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게 정상입니다.

헌데, 실사영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창의적인) 개발자들에 대해서는, "뭐 정해진 룰과 루틴이 있겠지" 하는 정도로 그냥 봐 넘깁니다. "픽사" 같은 놀라운 혁신의 사례로 꼽히는 팀, 조직에 대한 강의, 연수를 받고서도, 극장에 가선 무심히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고 적당히 감동 받으며 기분 업 되어서 나오는 우리들을 보면, 당연히 바쳐야 할 찬사와 존중이 너무 소홀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특히 이런, "디즈니社의 진정한 도전 정신과 혁신의 모범" 같은 책을 읽고 나서는 더욱요.

디즈니가 운영하는 곳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의 감정과 정신까지 한껏 정화해 주고 고양시켜 주는 애니메이션 제작섹터뿐 아니라, 어린이들(우리들 대부분도 누리면서 성장기를 보낸)이 좋아하는 테마파크가 또 있습니다. 이 역시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한 번쯤은 방문하여 마음껏 환상에 빠져들고 꿈을 키우는 체험을 하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월트 디즈니의 위대한 면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인간 누구나 겪고 치르고 거쳐가고 싶은, 한없이 즐거우면서도 때묻지 않고 맑은 심성으로 누릴 수 있는 "꿈의 향연"을 자신의 의도와 공간 속에 유감 없이 풀어낼 수 있었던 그 저력과 야망입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품을 만한 순수한 욕망을 먼저 한 발 앞서 알아내고, "당신 자신도 몰랐으면서 언제나 꿈꾸던 게 바로 이것 아니었습니까?"라며 완성된 형태로 척 제시하는, 이런 내밀하면서도 건전한 감동을 자극하고 끌어내는 사업가야말로 궁극의 레벨입니다.

디즈니의 정신은 첫째도, 둘째도 철저한 고객 우선주의입니다. 저자도 말하지만, 이런 표어를 회사에 안 걸어 두는 이는 없습니다. 실천으로 옮길 생각이 있건 없건 누구나 하는 말입니다. 월트 디즈니의 행적에 차이가 있다면, 그는 이를 철저한 실천으로 옮기고, 자신의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공유하게 하고, 직원들마저 조직의 이념과 지향성을 내면화하여, 고객들에게 서비스했다는 사실입니다. 감동 받은 고객 하나가, 자신도 자기 회사에서 관리직이다 보니 이런 놀라운 서비스를 실천한 직원의 사례가 이후 디즈니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살펴 봤다고 합니다. 요란스럽게 포장되거나 홍보할 것도 없이, 디즈니에서는 그런 고객 감동의 서비스가 일상이었다고 하는군요.

이 책은 디즈니의 사업 섹터뿐 아니라, 그런 디즈니의 사업 정신을 실제로 이어받은 다른 회사의 CEO들, 혹은 (놀랍게도) 비영리단체(데이케어 센터라든가)의 관리자들까지 인터뷰하고 실사 결과를 잘 정리하여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저자들의 관점에서 "이 사례는 디즈니 정신에 포섭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실제로 그 현장의 책임자들이 "나는 월트 디즈니의 고객 우선주의, 혁신의 정신에서 크게 배우고 각성했으며 이를 실천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들 털어 놓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꿈꾸는 사람도 그 꿈을 믿지는 않을 수 있고, 꿈을 믿는 이도 감히 도전할 마음을 못 품으며, 실행에 옮기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월트 디즈니의 위대한 점은, 이 네 단계를 모두 자신의 내면에 소중히 가꾸고 결실을 맺어, 그의 사후에조차 면면히 이어지는 경영 이념으로 수천 수만 직원들에게 함양하여 널리 퍼뜨렸다는 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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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 수업 | YES24 파블미션(舊) 2017-04-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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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점 수업

양옥미 저
BOOKK(부크크)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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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 표지를 접했을 때 제목이 "감정 수업"인 줄 잘못 봤더랬습니다. 하기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혹은 몇 뼘 되지도 않는 아주 소규모의 네트워크에 속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할 때에도, 개인이 자기 감정을 안 다치게 하고(남의 감정을 배려하는 건 일단 이런 자기 앞가림이 이뤄지고 난 둘째 과제) 일은 일대로 관계는 관계대로 밀고나가는 게 참 힘든 과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감정을 잘 다스릴까?" 대한 좋은 가르침을 있을까 기대하고 책을 펼쳐 보니, "감정"이 아니라 "강점"을 다루는 내용(물론 제목 역시)이더군요. 그런데 비록 그 주제와 제목을 오해하고 펴든 책이긴 했으나, 결론 면에서 크게 다를 바도 없더라는 게 제 개인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느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대화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느 인물에게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막 자랑하던 끝에, 그 상대가 반박으로 쏴붙이는 말이 "그러면 뭐하냐? 넌 조금도 지금 행복한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잖아?"였습니다. 한국 같은 획일적 잣대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어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라면 과연 저 말이 제대로된 공격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전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사회에서 최소한의 인정을 받을 만한 성취를 거둬야 이게 씨알이 먹힙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뜨내기가 어디서 주워 들은 말만 - 마치 자신이 그 근처에나 가 보기라도 했다는 듯 - 허세로 주워섬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격 비슷한 객관적 기준을 갖춘 인생이라야 설득력이 있죠.

무자격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이런 용어를 주워섬기면 다른 이들이 지레 자신을 그런 세계에 속한 레벨로 대접하겠거니 같은, 삼류 사기꾼이 품는 자폐적 망상에 빠지기도 하죠. 여튼 외적인 스펙을 거의 나무랄 데 없이 갖춘 인생도, 정작 주관적으로 행복하질 못하다면 저런 허접한 공격에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물론 아Q식 허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인생이 망상과 기만 속에서 아무리 행복하다 한들 그게 전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님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누구라도, 자신의 바른 강점과 대체 불가능의 매력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바탕에서 성장과 도약의 기초를 마련해야 그게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점은, 책에서 분명히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고, 저 역시 몇 년 전에 특정 종교 교파에서 발전시킨 입장을 책 한 권으로 펴 낸 걸 읽고 서평도 쓴 적 있습니다. 제가 도구로서 에니어그램이 인용, 원용될 때마다 느끼는 게, 원형으로서의 소스와 논의의 틀이 아무리 충실히 다져졌다 해도 그런 초기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게, 연구자, 강사의 실제 사례에 대한 성실한 응용이라는 점입니다. 책에서는 에니어그램 말고도 MBTI, DISC 등 보편적인 이론을 통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함"을 독자들에게 깨우칩니다. 형식적인 이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와 청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특히 개별 피상담자와 구체적으로 교류,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피상담자(내담자)는 자신대로, 상담을 통해 효과적인 치유,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어 내며, 능력 있는 상담자는 개별 내담자와의 밀도 있는 소통을 통해 자신도 종전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한 컨설턴트로 성장하는 게, 상담 모델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건설적 상황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저자, 상담자로서의 농도 짙은 고백과 성장담이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실제로 성공적이었던 상담이라면, 그 회상 부분과 효과적으로 추출된 교훈이 책 문장에 그대로 느낌이 녹아 있습니다. 절실한 독자는 "이게 바로 나를 위해 나를 향해 들려 주는 이야기"라며 바로 공감하고 목마른 부분을 채웁니다.

강점은 착각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현재 느슨한 정도로만 사회 생활을 하기에, 자신의 허상이나 착각이 (2차적) 관계 속에서 "깨지고(용어를 약간 순화해서 쓰겠습니다)" 재구성, 리빌딩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혹은 의식적으로 피하는지도 모르죠). 이런 걸 두고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느니 행복하다느니 하는 말로 포장하는데(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극히 불투명한 가능성에 모든 걸 건다거나, 이미 해당 분야에 한 발 들여 놓았더거나 무슨 명성이나 쌓은 듯 자신과 타인[어리숙한]들에 대해 최면을 걸고 과장, 기만을 합니다), 이게 냉정히 말해 그 상태를 계속 유지나 할 수 있으면 그러든 말든 남이 상관할 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닌 건 곧바로 파탄을 맞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엉뚱한 남탓을 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인간이 꼭 있기에 이게 문제가 되는 거죠. 자신의 장점, 강점에 대해 바른 인식을 하면, 엉뚱한 데서 갈증을 채우거나("나는 여기에 재능이 있을 뿐 아니라 곧 성공할 것이다") 허위의식에 빠지거나 하는 폐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꿈, 열정, 행복"은, 확실히 "강점"과 친한 세 가지 팩터가 맞습니다. 내가 이 분야에 확실히 강점을 갖고 있기에 여기에 열정을 쏟을 마음부터가 먹어지며, 이런 활동을 냉정히 평가해 줄, 자격 있는 지인과 관계의 단초가 주위에 형성되어 있기에 기복 없이 그런 열정이 유지되며, 마침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성공, 즉 꿈의 실현에까지 이르는 겁니다. 반대로, 자신의 참된 강점을 모르는 인간은 남들에게 사기를 치고, 남들이 어설픈 사기를 안 받아들이면 자신한테 사기를 치며, 이로부터 저급한 막장 드라마가 아주 구태의연하게 창작되는 거죠. 심지어 자신의 유년에 대한 훤히 속보이는 날조 과장이 이뤄지는 추태도 흔히 보는 바입니다. 이게 다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한 열등 컴플렉스 때문이죠. 부모가 애 능력은 생각 않고 과도하게 주입한 기대가, 성인 아니 노인이 되어서까지 자아를 왜곡하고 속박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이 아닌, 자신 이상의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어떤 허상에 의해 말하고 행동하는 참담한 결과가 벌어지죠.

이 책에서 특히 집중해서 읽을 부분이 2장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의 강점, 약점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정평 있는 도구가 제시되며, 저자의 적절한 응용 변형(자신의 지도, 상담 경험에서 유래했겠으나)이, 특히 요즘 내담자의 사정, 개성, 성격을 잘 반영한 pool을 염두에 두고 마련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고, 평균적인 고충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읽고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긍정성, 주도성, 사회성". 역시 뭐랄까, 꿈을 갖고 행복해지되 그것이 사회 속에서 공인 받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똑같은 조건에 처해서도, 좋게 해석하고 난국을 타개하거나 선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사람이 있고, 비틀린 시선으로 왜곡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이런 사람이 자기 개인의 꿈이라도 올바른 방식으로 실현할지 참 의문이죠. 기왕 맞닥뜨릴 상황이면 자신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헤쳐 나가고, 또 정리해서 조직 전체를 자신에 우호적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어떤 게 던져졌을 때, 물론 타석에 선 교타자처럼 잘 커트해 내고 마음에 드는 코스는 정타로 만드는 기술도 중요합니다만, 야구에서도 경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건 이니셔티브를 가진 투수입니다. 디펜스보다 중요한 건 오펜스고, 내가 선제적으로 사태를 제압하는 적극성, 주도성입니다. 이 모든 게 균형감각과 결합할 때, 참된 의미에서의 "사회성"이 완성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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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마트 슬리핑

숀 스티븐슨 저/최명희 역
위즈덤(WISDOM)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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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이라는 말에 정말 공감, 찬동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완전한 숙면을 취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원기가 회복될 뿐 아니라, 때로 수면방추가 유도하는 효과적인 잠 속에서 얼마간의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얻게 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이것 말고도, 효과적으로 취한 숙면 하나로 얼마나 많은 건강상의 문제까지 덩달아 해결되는지, 체계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설명, 정보가 가득 실려 있습니다.

저자 숀 스티븐슨은 <보다 스마트하게 잠자라>라는 책(그 한국어 번역서가 지금 리뷰하는 바로 이 책입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와 개인방송으로 미국 전역에서 꽤 유명세를 타는 인기 강사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제를 바꿔가며 재미있게 청취자, 시청자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바로 효험을 보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정보, 혹은 자신이 개발한 여러 숙면 요령을 가르쳐 주는데, 지지자와 동참자들이 꽤 많습니다. 아마도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나 정신 구조(스트레스를 받는)가 고도로 도시화한 공간에서 생계,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들이 서로 닮아서인지, 제가 가끔 그 사이트에 들러 진행자(저자 숀 스티븐슨)이 가르쳐 주는 내용, 청취자들이 보이는 덧글창의 실시간 반응 같은 걸 보면 공감되는 내용이 꽤 많았습니다.



숀 스티븐슨이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건 물론 "잠 그 자체"가 아니며, "원상대로 회복되고 최상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강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의 프로그램("쇼") 제목도 "모델 헬스 쇼"죠.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드웨인 존슨이나 빈 디젤을 보듯 머리도 시원하게 밀고(?) 단단한 체구를 갖춘,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인데 이런 이미지 구현은 대개 트레이너나 스포츠맨들이 즐겨 갖추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그는 (저런 타입의 남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곤 하는 대로) 꽤 앞길이 창창한 스포츠 유망주로서 십대, 이십대 초반을 보낸 인생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기치 않은 부상이라든가 사고, 혹은 (비슷한 레벨들끼리 붙어 보고 나서 비로소 늦게 깨닫곤 하는) 적성이나 능력 부족 등의 요인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앓고 있는 퇴행성 골격 질환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고 모든 꿈을 접어야 했던 아픔을 절절히 겪은 게, 이처럼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한창 나이의 청년이 청천벽력 같은 유전병, 희귀병, 평생 안고 관리하고 살아가야 할 질환 등의 선고를 받는 그 사실만으로도 끔찍한 일인데, 하물며 이 숀 스티븐슨 같이 세상 무서울 것 없는 팔팔한 정력과 혈기, 스포츠 재능의 소유자가 그런 절망적인 진단을 받았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 이야기를 방송에서 하는데 그 표정과 어조가 순간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걸 보고 아무 관계 없는 제가 다 마음이 찡해지더군요. 여튼 완전한 절망, 좌절의 시간을 그 나름 불굴의 투지로 극복한 후, 건강과 생리학 이슈에 대해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영역부터) 하나하나 개척해 나간 후, 그는 이제 관련 학위와 자격증까지 갖춘 전문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본래는 자기 인생의 구원, 자립, 재기, 재활을 위해 시작한 공부였지만, 하다 보니 이제는 남들 문제에까지 유익하고 독창적인 조언을 베풀 수준까지 다다른 거죠. 이처럼, 동기부여라든가 자기계발의 대가가 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가 남 앞에 나서서 그런 말과 가르침을 베풀 자격을 갖추는 게 우선입니다. 자격도 없는 인간이 말만 번드르르하게 읊고 다닌다면 그게 사기치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대체. (예스 책 소개 문구[해당 출판사에서 작성했겠습니다만] 중에는 "자칭"이란 말이 있는데, 이걸 숀 스티븐슨이나 그의 추종자들이 알면 꽤 화낼 만도 하겠네요. 그만큼 자격을 갖춘 인력이 또 어디 있다고 "자칭"이라니...)



일단 다이어트 때문에 골치 앓으시는 분들은, "잠만 잘 자도 최소한 비만은 예방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일 만도 합니다. 이게 숀 스티븐슨 본인의 말에 따르면, 특히 애 써 뺀 살 다시 요요로 찌우지 않게 하는 데에 아주 특효가 있다고 하네요. 저도 일 좀 하다 보면 조명을 끄지 않고 바로 곯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이게 좋은 줄 알고 흐뭇함까지 느끼면서) 그게 전혀 그렇지 않고 뇌파 활동에 직접 유해한 기제가 발견되었다고까지 말합니다. 음주는 당연히 절제하는 게 기본이고(수면 관련 아니라도), 카페인과 수면을 동시에, 어느 하나를 희생하지 않고 둘 다를 즐기는 법 같은 게, 딴 데서 잘 보지 못하던 그만의 처방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건강 관련 정보는 이처럼 문제가 오래 전에 다 해명되고 결론이 난 것 같아도 전혀 뜻밖의 도움을 얻는 수가 있으니, 특히 이런 의욕 왕성하고 팬들과 소통을 즐기는 강사, 연구자의 말과 글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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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자가 보지 못한 것을 감은 자는 본다 | YES24 파블미션(舊) 2017-04-2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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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뜬 자가 보지 못한 것을 감은 자는 본다

강규섭 저
지식과감성#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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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보면 이 사람이 원래는 눈이 멀쩡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던 게 신들에게 죄를 얻어, 육안(肉眼)을 잃은 대신 심안(心眼)을 뜨게 되었다고 스스로도 의미심장하게 고백하는 대목이 있죠. 소포클레스 등 그리스 고전 황금기의 시인들이 쓴 작품에 보면 "테이레시아스 왕"이란 호칭도 등장하는데 이는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어떤 초월적 진리를 비로소 어리석은 세인들에게 깨우친 그(신화상의 인격에 불과하지만)에 대한 최상의 찬사, 공경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란 제목도 결국 같은 이치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저자는 그렇게 말합니다. "인생에서 실존의 본질을 제대로 깨우친 자"는 이생(원문 그대로입니다)의 행복을 누리고, "죽음이란 관문을 통해 온전함에 이르는 특권이 허용"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즉 인생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자)는 이생의 삶조차 지옥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해 보면, 정신적으로 안정을 얻지 못하고 온갖 번뇌, 질투, 욕정, 이기심, 근거 없는 우쭐거림, 자신을 실제보다 과장되어 드러내고자 하는 속물적 과시욕으로 가득찬 자는, 알고 보면 물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안정 면에서나 조금도 만족스러운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돈이 없어도 마음만은 풍요로울 수 있는 건데, 인생의 바람직한 도리를 못 깨우친 자는 경제적으로 빈한할 뿐 아니라 정신의 평화도 얻지 못한다는 게 어찌보면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자신의 부족한 수양, 못난 행태가 자초한 바이니 뭐 누굴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이 책은 많은 현자, 성인들의 가르침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저자 자신이 "65년의 치열한 생을 살아 오며" 몸소 깨달은 바를 담담히 술회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여러 저자들이 바람직한 인생론을 그 노년에 이르러 도도히 설파하는 책은 물론 여러 권이 있겠으나, 정말 본인만의 절실한, 정직한 깨달음인지 그렇지 않고 겉만 번드르르한 설교의 편집인지는, 우리 독자들이 읽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문에 밝힌 대로, 저자 자신의, 어찌보면 부끄럽고 어찌보면 고달프기 짝이 없었던 실제 체험을 토대로 담백히 추출된 교훈이라서, 비록 독자들과 나이 차는 많이 날 수 있지만(물론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도 접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공간을 공유하며 삶의 만만찮은 도전에 접해 온 처지에서 많은 공감, 또 생의 여러 시련을 슬기롭게 넘기는 데에 유효하게 응용할 수 있는 참된 레슨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 즉 인생을 건성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저자의 표현을 잠시 인용하자면) "쾌락과 탐욕을 추구하다 죽음의 관문에 이르면 자신의 일생 동안 쌓아 온 수많은 것들 중에서 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공허감과 죽음의 공포"가 그 생사의 기로에서 기다릴 뿐이라는 겁니다. 글쎄요. 사실 우리 동아시아들이 대개 공유하는 정서라면, 죽은 후의 일은 신경 쓸 것 없고, 오로지 현세를 살며 치열하게 부딪히는 도전과 기회에만 집중하자는 게 대세의 처세입니다. 이미 공자 같은 성인도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괴력 난신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며)"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간 바 있죠.

어쩌면 이런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된 탓에, 중국에서는 그저 현세의 물욕이나 실리만 좇으며, 어느 지역에 진출하든 간에 "화상(華商)"들이 끈덕진 생명력을 이어가며 광범위한 성공을 거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일침은, 저처럼이나 무서운 표현으로 그런 세속적인 태도에 대해 단호한 단죄를 가합니다. "생각 없이 살아 온 너희들은, 죽음에 임박해서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 아무도 너희들을 위로, 구원하지 못하리라!" 물질문명의 압도적인 조류가 세계를 휩쓸기 이전부터, 우리 동아시아인들(특히 중국인들)은 인생의 중요한 의의,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핵심의 이치를 편리하게도 간과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인생의 적정 단계에서 짚고 해결하지 않고 넘어간 과제는, 반드시 이후 이자가 붙어 부실하게 산 인생의 허리를 분질러 놓게 마련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회한만 남긴 채 죽음을 거부하며 몸부림치는 비참한 최후"가 바로, 인생을 낭비하며 헛된 욕망의 충족만 좇은, 썩은 영혼들을 기다리는 운명이라고 말입니다. 좀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제가 몇 주 전에 리뷰한 <기독교 교양>의 저자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이 점을 바로 꿰뚫고, 경건한 정신 세계로 냅다 침잠해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또한 당신이 "실존의 존재", 즉 피와 살을 갖춘, 감미로운 쾌락의 매개체이기도 한 육신을 갖고 지금 현세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단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조건에 대한 긍정, 현실에 대한 낙관적 성찰부터가 인생의 바른 본질을 보는 선결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실제 인생 역정에서 비롯한 온갖 쓰디쓴 교훈과, 모든 걸 달관한 듯 담담히 생(과 사)의 비의를 들려 주는 저자의 든든하고 관록 있는 가르침이 책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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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벌과 권력 | My Reviews & etc 2017-04-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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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민국 재벌과 권력

효제 저
지식공방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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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묘를 어디에 써야 후손들이 잘 살고 복된 삶을 누릴까 하는 고민은, 첫째는 유독 풍광이 아름답고 햇볕이 고루 드는 지형을 많이 갖춘 이 한반도의 탁월한 조건에서 비롯했고(삼국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풍류도, 낭가 사상 등), 다음으로는 아마도 원초적인 효도의 마음가짐이 그 원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소중한 국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경건히 여기는 그 자세와 관계 있으며, 둘째는 생전에 양친을 극진히 섬기던 공경의 정신을, 사후까지 이어간다는 극진한 효심의 발로로 못 볼 바 없습니다. 이렇다면 구태여 미신이나 세속적 구복에의 집착으로 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인륜에 정성을 쏟는 이가 현세에서도 복락을 누리는 윤택한 생을 누린다는 믿음이라면, 그것은 사회 질서 유지 차원에서도 건전합니다.

이 책은 조상의 묫자리를 명당으로 쓴 이가 과연 당대, 혹은 가까운 후세에 그 음덕을 누리게 되는지를 놓고, 유머러스한 대화, 혹은 우화 형식으로 그 인과적 이치를 논합니다. 저자 효재(본명은 이문호 박사.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응용전자학과 교수. 서울대 공대, 카이스트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각각 마침) 선생은 물론 본인이 현대 첨단 공학의 최정수를 맛보고 현재까지 그 연구를 이어가는 대표적인 지성인이기 때문에, 소위 풍수지리의 엄격한 인과율에 대해 맹신하는 식으로 논의를 이어가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직접 화법이 아닌, (좀 의외지만) 조조, 유비, 손권(관우와 장비는 안 나옵니다) 등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풍수지리를 바라보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시각을 대변하게 합니다. 세 인물 중 어느 누구도, 풍수학에서 말하는 인과율이 절대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저자의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조조는 사실상 이 우스꽝스러운 담론을 주도하는 위치인데, 시대를 추측한다면 아직 삼국이 정립하기 전, 중원에서 황제를 보필하며 제국의 명분을 형식상으로 대변하던 시절 같습니다. 유비와 손권은 직급상 물론 아랫사람의 예의를 다해 조조를 대하지만, 마치 신하가 군주를 대하듯 삼가는 태도가 역력하더군요. 물론 속에는 또한 원대한 포부를 한 자락 감추고 표현하는 정치적 제스처이겠지만 말입니다. 마음에는 다른 생각을 유보하면서, 일단 상대를 향해서는 열심히 주제에 몰입하는 품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건, 우리 현대인들이 풍수지리에 대해 품는 태도를 어느 정도는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뭔가 미심쩍고 아니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그 나름 비의를 갖춘 믿음에 뭔가 숨겨진 그윽한 진리, 혹은 "통계적, 과학적 인과율"이라도 결국 존재하는 게 아닌지 하는 삼가는(더 솔직하게는 뭔가를 기대하는) 자세가 슬쩍슬쩍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가상의 3인, 혹은 저자 자신(?)뿐 아니라, 무심한 듯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여지를 남기는 우리 모두의 심리와 닮거나, 그를 대변하는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풍수지리학을 둘러싸고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엄격한 실증주의가 그 학풍이던 모 명문대 지리학과에서, 가장 유대 깊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큰 분란과 다툼이 벌어져 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프로이트와 융 사이의 대립에나 비길 수도 있을, 방법론과 연구의 지향에 과연 전통의 풍수론이 포함될 수 있냐를 놓고 벌어진 알력이었죠. 현재는 이 책에서도 널리 인용되는 것처럼, 명당의 실체와 이론적 구조를 놓고 "박사학위 논문"만도 수십 편이 발표된 상황입니다. 이제는 최소한 이를 놓고 진지한 학문적 논의를 삼을지 말지에 대한 대립상은 어느 정도 정리된 형편이죠. 배척하는 쪽은 여전히 배척하되, 연구하는 인력은 스탠스와 지향을 분명히하고서 밀도 있는 연구를 이어가는 상황입니다. 이 책 저자께서는 공학도, 과학도이며 젊은 나이에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분이지만, 이질적인 분야에 이만큼 천착하신 건 일단 소속 대학교에 이쪽(풍수학) 연구인력이 집중 포진한 사정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저는 추측합니다.

총 9장으로 이뤄진 구성인데요, 6장까지가 풍수지리학 일반 이론, 혹은 공식의 정립을 다룹니다. 저자께서는 구태여 가상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이들 사이에 주거니받거니 하는 수다, 혹은 말벗 사이에 오가는 언어언의 교감 형식을 취하는데, 이는 그만큼 풍수지리론의 본체가 (어떤 이유에서건)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을 잘 드러냅니다. 저 역시 이 책 한 권만으로는 대체 그 논의체계가 어떤 구조인지에 대해 명확한 그림이 잡히지 않았고, 어쩌면 여태 근대적인 합리주의,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사고 방식이랄까 지적 소양이 이의 납득을 거부하고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혹은 말입니다, 너무 깊이 파고들 생각은 말고 대략 이 정도라는 것만 알아두라는 저자의 [차라리]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일개 독자가 이 정도인데, 공학의 특정 섹터에서 한국 최고 권위자들 중 한 분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좀 현대적 시각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개념으로 변환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소만?" 같은 해학적인 멘트가 등장인물들 사이에 자주 오가는 것도 이 같은, 어느 정도는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진지함의 강도를 조절하려는 저자의 의도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7, 8, 9장은, 속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에 접근한 독자들을 위한 본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아니, 거의 확실하죠). 책에서 명당을 잘 쓴 보람은 첫째 기준이 그 수가 얼마나 번성했느냐입니다. 한국은 지금의 어르신 세대가 소위 베이비 붐 제너레이션이라서, 또 그 성장기가 하필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국가 차원의 고도발전기와 겹칠 때라, 자손 수가 늘어나는 게 무슨 큰 복이나 될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특별히 복 안 받아도 형제자매는 부담스러울 만큼 많음). 하지만 예전에는 출생 직후 질병, 부족한 영양 섭취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고, 아이들을 성년이 될 때까지 양육하는 자체가 집안의 여력 없이는 불가능했겠으며, 그저 대를 잇는 사실로만으로도 부모님과 조상 볼 면목이 선다고 여겼기에 이 팩터는 비중이 크게 다뤄졌지 싶습니다. 앞의 1~6장에서 이런 이유로, 자손의 수효는 발복을 판단하는 중요 기준입니다.

다음으로, 저자께서도 그런 집안 출신이시겠습니만,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벼슬자리(이분 세대라면 문과는 고시 합격, 이과는 이름난 의사나 저자처럼 대학 교수직 취임 등)를 일찍부터 거치는 게 또한 "명당을 쓰는 보람"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죠. 여기서 저자는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명당"인지, 묫자리가 명당/흉당의 이분법이 아닌(예전에는 그런 오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명당/비명당으로 가를 수 있는지, 기존의 풍수론이 혼란스럽게 논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정리"합니다. 여기서 "논리적"이란 말은, 풍수론 자체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란 뜻이 아니라, 종래 혼란스럽고 알쏭달쏭하게 전개된 풍수론의 패러다임을, 그나마 현대인들이 알아들을 수는 있게 공식화, 체계화했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래서 결국 우리 속된 독자들이 궁금한 건, 어디다가 묘를 써야 현재 잘나가시는 재벌들처럼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사느냐, 혹은 (저자께서 아주 심혈을 기울여 분석하시는 것처럼) 대통령 같은 지극히 존엄한 자리에 오를 수 있느냐, 나아가 이제 두 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어느 분이 묫자리를 기막히게 쓰셨기에 당선이 되실 전망인가, 뭐 이런 문제겠습니다. 명확한 답은 없고, 다만 한국의 재벌가나 정치사의 소소한 구석에 밝은 지식을 갖춘 독자라면, 풍수론 그 자체의 결론이라기보다 최소한 저자께서 누굴 염두에 두었는지는, 두고 이런 말씀을 하는지는 아마 감이 올 겁니다.

왜 어떤 사람은 잘나가다가 말년에 운이 크게 어그러지는가, 명당이 사후적 요인으로 명당의 조건을 잃기도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기존의 이론이 명확히 구명한 바가 미진한지, 혹은 저자께서 확신이 아직 없으신지 여러 의문으로만 의견을 표명합니다. 이 중에는 "한때 총기가 넘치던 인생이 갑자기 그 총기를 잃기도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는데, 혹시 저자 자신의 사정을 은근 반영하신 문장은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묫자리를 어느 지관에다 물어봐도 명당이라는 품평을 듣는데, 왜 자손이 복을 못 받는는가를 놓고 통박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가 "명당은 충분조건이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그저 필요조건일 뿐"으로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즉 "묘만 잘 쓴다고 저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정도죠. 이것도(이 말이 절대진리라고 아주 기냥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뒤집어 해석하면, "묫자리를 비명당으로 쓴 이는 복을 못 받는다."란 결론이 (논리적으로!) 나오니 그리 허술한 규정도 아닙니다. 뭐 제 생각을 곁들이자면, 조상의 묘를 명당으로 쓰고 안 쓰고를, 여러 전문가(?)들에게 묻고 다니는 분들 같으면, 이미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그 나름 여유있게 사는 이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꼭 인과관계라기보다는, 상관관계(나아가 역 인과관계, 즉 돈이 있으니 묫자리도 잘 쓰게 된다ㅋ) 정도를 보여 주는 자료, 사례가 아닐까 , 뭐 그런 느낌을 가져 봤습니다. 책 속지는 최고급 용지를 써서 읽고 넘기기에 상쾌하며, 재미로 읽어 넘기건 진지하게 운명(?)을 해석하는 도구로 쓰건 이야깃거리는 충분히 제공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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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Time of Jeffrey Grayson | My Reviews & etc 2017-04-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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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In The Time Of Jeffrey Grayson

Krohn, Pattie Leo
Createspace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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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는 흑인 등 유색인종(요즘은 colored란 말 자체도 중립적이지 못하고 차별색을 품는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 한국인들 포함 아시아계도 엄청 많이 살죠) 밀집 거주지구도 많고, 정반대로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고급 주택 지구도 여럿 있습니다. 1992년에도 큰 규모의 소요가 일어났지만, 대규모 흑인 봉기의 시초격이자 이후로도 정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태의 대명사라면 1965년의 와츠 시위가 또 있겠습니다.

패티 리오 크론은 지난주, 또 이번주 책프에서도 제가 두 권을 먼저 읽고 리뷰한, 이야기를 잘 엮어내는 재주가 뛰어난 현대 작가지만, 대체로 다루는 주제나 소재들은 익히 잘 알려진, 가령 수 세기 전의 경향 속에서 창작되었다고 해도 별 새로울 건 없는, 익숙하고 통속적이기까지 한 작품 세계였습니다. 다만 작품을 빚는 태도가 매번 진지하기는 하고, 한 가지 경향성만에만 치우치는 작가도 아니라는 점은, 이 장편만 읽어 봐도 우리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프리 그레이슨은 실존 인물은 아니고, 무엇보다 성별이 다를 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여태 알려진 바로는) 출신 배경이라든가 살아온 경력 등이 서로 판이하기 때문에, 이 캐릭터와 작가 본인을 (그 일부라도) 동일시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제프리와 그 개성 넘치는 친구들(그저 "개성" 정도가 아니지만 일단 이렇게 표현하죠), 그리고 작가 크론 여사는, 격동과 불안과 창의와 절망과 파괴, 이 모든 폐허의 토대 위에 새로 세워질 희망을 청춘기에 공유했던 같은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중 문화의 갖가지 기발하고 새로운 양식, 시대 정신, 정치의 지평 따위가, 21세기의 두 십년기가 지나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원형이라 할 만한 것들이 마련되기 시작한 1960년대를 치열히 살아 온 영혼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요즘 열광과 진지함과 동경의 시선으로 새로이 조명되는 그 시기(사실은 이 "시대" 자체를 주인공으로 파악해도 무방하며, 오히려 작품 이해[이해라고 하니까 꽤 거창해지지만]에 더 도움이 됩니다)는 작가의 비블리오그래피에서 한 번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 할 관문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평소 스타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식상하지 않게, 인물의 생생함과 사건의 기발함은 그것대로 유지하면서 다루기는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 같습니다.

제프리 그레이슨은 개인적으로 타고난(세팅된) 기질 면에서나, 그의 부모나 성장 배경 면에서나, 제퍼, 낸시, 씨슬, 빈스 등 체제와 사회와 전통에 정면 반항하며 모든 것의 전복을 꾀하는 "당대의 전형적 청춘들"과는 매우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입니다. 이런 그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워, 제퍼나 빈스가 아닌 제프리 그레이슨이 겪어내고 치러낸 1960's을, 사건과 인물과 사연 중심으로, 덜 인위적이고 덜 설교투로 형상화한 건 확실히 그녀만의 솜씨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이든, 최대한 독자들의 공감과 동의를 끌어내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깊이나 철학은 (언제나 그랬듯) 너무 기대해선 안 되겠고요. 이분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만 계속 나오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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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 My Reviews & etc 2017-04-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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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너를 본다

클레어 맥킨토시 저/공민희 역
나무의철학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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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등에 얼마나 많이 우리 자신에 대해 자발적으로 무신경한 노출, 공개를 일삼을까요? 소설 중에도 그런 대목이 나오지만, 자신은 일기장에다 적듯 무심히 솔직한 느낌, 일상의 여러 순간,신상 정보 따위를 게시했는데, 전혀 기대 안 한 남이라든가, 때로는 지인이라도 뜻밖의 순간이나 장소에서 그 정보를 읽고 있다면, 당황하는 게 당연합니다. 물론 똑똑한 사람은 그런 당황, 후회의 순간을 만들지 않게 평소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만.

"어떻게 내 계정에 접속할 수 있었죠?"
"이건 누구나 볼 수 있게, 당신이 게시해 놓은 것들이에요. 전체 공개로 해 두셨나 보죠."

상당히 분량이 두꺼운 이 스릴러는, 어떤 못된 X(들)이, 무작위(?)로 수집한 남(주로 여성)들의 정보를, 불법으로 개설한 사이트에 게시한 후 유료 회원들에게 팔아넘긴다는 끔찍한 음모, 사건을 주된 소재로 삼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부수적으로, 이혼과 별거, 재결합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아픔, 갈등, 오해, 포용이라든가, 번잡한 만큼 위험하기도 한 런던 도심 생활의 여러 선명한 단면, 혹은 생계를 위해 치열한 경제 현장에 뛰어들어 여러 고충을 겪어야 하는 여성들의 노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도 있습니다. 긴 만큼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도 다양하고 그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여러 연상, 감동, 혹은 그저 지식도 풍부하다는 게 매력입니다. 물론 이 소설의 최고 장점은, 제법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도사리고 있는 충격적인 진상이겠습니다.

이 소설은 여러 장면에서 스토킹, 미행, 성폭력(혐오스럽거나 구체적인 묘사는 전혀 없고 과거 회상 속에 사건 요약 형식으로 간단히 언급될 뿐이라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된 묻지마 폭행 등, 주로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또는 범죄 미수)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아마도 여성 독자들이 읽으면서 오싹오싹해진다거나 마음을 쓸어내릴 대목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여성 작가가 다분히 의도한 바겠고요. 특히 (위에도 언급한) 마지막의 진짜 반전은, 아마도 주인공 "나(조 워커)" 또래의 중년 여성들이 읽으면 소름이 안 끼칠 수가 없을 것 같더군요. 물론 중년 여성이 아닌 독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충격적입니다.

주인공 조 워커는 글쎄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평범보다는 좀 더 여러 혜택을 누리고 사는 편에 속하는(이렇게까지만 써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요) 이혼 후 새 애인을 만나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둔 두 아이(아들, 딸)을 키우고 사는 여성입니다. 전문직까지는 아니지만 먼데인 워크는 아닌 수준의, 부동산 중개인(한국과는 달리 영미에선, 잘나가는 분들은 꽤 고소득을 올리는 직종입니다. 한국도 서서히 그렇게 되어 가는 듯)의 사무 보조역을 맡았으며, 다만 고용주 헤일로(책에서는 "할로"로 표기)와는 관계가 좋지 못합니다. 여러 스트레스를 받아서, 특히 이 소설이 다루는 구간에서는 특히 현저한 위험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정서가 불안해져서 그러려니 이해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 할로 사장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 같은데 "나(조 워커)"가 너무 민감하게, 근거 없는 자기 감정에 따라 멋대로 판단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 조도 나중엔 지레 체념하듯 "해고되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까지 가는데, 여튼 우리 독자들이 봐서 알듯 그는 결국 조를 배려하지 않습니까? 관대하게 휴가도 주고 말입니다.

제가 좀 불만이었던 부분은, 재미있긴 했으나 구태여 주인공을 1인칭으로 설정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조금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일방적으로(혹은 근거가 있든 간에) 의심하고 못미더워하는 인물은 진짜 범인으로 드러나는 게 드물죠. 여튼 불안해하고 흔들리는 주인공의 동요하는 시선과 화법 때문에, 독자들도 괜히 혼선을 빚으며(때로 멀미까지 느끼며) 힘들게 사건을 뒤쫓게 됩니다.

이 소설을 쓴 클레어 매킨토시는 전직 경찰로서 집필의 길에 투신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1인칭 주인공 조 워커 말고도, 켈리라는 진짜 경찰(여순경)도 한 명 등장하여 진행을 양분하면서 극을 주도하는데 글쎄요, 왜 켈리를 "나"로 세팅하지 않았는지는 여러 추측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 독자가 극중의 여성 경찰관을 (과거의) 자신과 행여 지나치게 동일시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일 수도 있고, 여튼 의도는 평범한 직장 여성, 엄마, 주부 들이 느끼거나 노출될 수 있는 가상 혹은 진짜 위험을 부각하는 쪽이기에 초점의 분산을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1인칭 화자가 공연히 여러 남성에게 불안한, 혹은 스테릭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갈팡질팡하기에, 독자는 읽으면서 살짝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만은 결말을 다 보고서야 그 휘청거리는 진행에 납득하고서 어느 정도 잦아 듭니다.

중반 넘어가면 경찰들의 근무 패턴이나 구조, 내부 소통 등이 매우 상세히 묘사됩니다(그 훨씬 전에 주요 캐릭터로서 켈리가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만). 아줌마들의 착각, 히스테리, 수다가 혹시 진상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걱정(설마 그럴리가)은 여기서부터 확실히 해소됩니다. 작가가 중년 여성들의 실체 없는 수다와 패러노이아로 소설을 다 메꾸지는 않을지 하는 불안은, 아 이런 디테일이 나오는 거 보니 진지하고 본격적인 스릴러 맞구나 하는, 좋은 전조와 느낌과 함께 해소되는 게 보통이니 말입니다.

서평 맨 위에, 인터넷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 신상 등에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온라인 프라이버시의 취약성 등에만 경각을 촉구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끔찍한 범죄의 발단은 오프라인에서의 변화 없고 빤한 반복적 행태가 예비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기계 부품처럼 일정 경로를 오가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자초하기 쉬운(물론 나쁜 X들의 범죄적 행각이 더 결정적이지만) 비극을, 이 스릴러는 잘 꼬집고 듭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는 언급 못 하지만, 일상에서 매번 만나고 교감하고 사소한 불만이나 고민, 행복감 등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소중한 관계가, 나의 부주의 혹은 상대의 악의나 우연한 불운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망쳐질 수도 있음을, 섬뜩하게 소설은 지적합니다. 그리고 악(자기 입장에서는 이게 악이다, 범죄다 하는 인식이 없습니다. 언제나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일삼는, 범죄 DNA가 존재의 본체를 이루는 비천한 자들의 공통점이죠)은 제 악행의 대가를 신랄하게 치르고 파멸합니다.

남의 정보를 불법으로 사 가며 비천한 변태적 성욕을 채우는 자들의 섬뜩한 행태는 현대 정보화 사회의 신뢰 근간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원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마지막에 범인이 제깐엔 변명이라며 지껄이는 헛소리를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런 데 공감하며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인생도 똑같이 비천하고 한심한 겁니다). 한국에서라면 글쎄요 이런 사이트 영업이 과연 가능할지, 경찰들이 상당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입소문이 빨라 어느 순간부터는 건전한 네티즌의 시민 정신 발휘로 한순간에 적발될 것 같아, 비즈니스 모델(이 표현이 직접 나옵니다)로는 좀 곤란할 것 같군요(실정법 위반은 둘째치고). 서버에 청소부가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고 USB를 꽂아 한순간에 해킹 툴이 깔리고 지구대와 전철 CCTV 화면을 모두 가로챌 수 있었다는 대목은 좀 무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그 정도 사고면 서장이 갈려야 합니다. 켈리의 재소자 폭행은 유가 아니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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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 Stew - Pattie Leo Krohn | My Reviews & etc 2017-04-2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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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Rabbit Stew: Printemps En Provence de Henry Bravo

Krohn, Pattie Leo
Createspace Independent Pub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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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갈 때 무거운 종이책 꾸러미를 챙기는 것만큼 이후 고생을 자초하는 선택은 없습니다. 트렁크에 넣어도 부담이며(객실로 올라갈 때 과연 얼마만큼을 챙길지도 부담이고), 잘 분류하지 않으면 음식물이나 이물질이 튀어 모양이 망가지기도 십상이며, 부피와 공간을 그만큼 알뜰히 차지하며 무겁기까지 한 아이템이 또 없습니다. 전자책의 출현은 특히 여행과 독서를 함께 취미로 갖는 이들에게 진정한 축복입니다.

앙리, 아니 헨리 브라보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외견상 꽤 정상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지만, 그에게는 그가 신뢰를 갖는 여러 가르침들, 따라하고 싶은 모범들, 이전부터 그가 소중히 가꿔 왔던 "스토리"를 제공했던 여러 사진들이 담긴 "종이책"들이 있습니다. 그의 생업이라든가, 현재 충실해야 할 가정과 가족들을 위한 의무와는 무관한,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부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꿈"은, 남부 프랑스에 그만의 아담한 집과 농장을 갖고 전원을 매일 마주하는, 평온하면서도 하루하루가 소중한 땀방울로 가득 젖을 만한 그런 생활입니다.

그는 그의 부인과 썩 좋은 사이가 아니며, 다 자란(아직은 부모로부터 학비를 지원 받아야 할) 딸과도 어째 갈수록 서먹서먹해지는, 소속된 일상으로부터 슬픈 소외를 겪는 위기의 남성입니다. 이제 그는, 몇 권의 책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침과 동기 부여를 얻었고, 그 이전부터 오랜 동안 꿈으로 간직한 전원 생활을 누리기 위해 과감히 생활 근거지를 떠납니다. 미국만 해도 꽤 넓은 땅이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프랑스 남부, 따뜻한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연중 거주민을 감싸는 동경의 고장입니다.

농장과 저택을 구입하고 막상 현지에 도착해 보니, 헨리 같은 (자신은 유별나다 착각하지만 알고 보면 꽤 많은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표준화하여 자리 잡은) "귀농의 꿈"을 상업적으로 잘 구현한, 깔끔하고 아담하며 손 볼 곳 하나 없는 멋진, 그가 또 익히 봐 온 잡치책에나 나올 만한 세트형 농장이 그를 기다립니다. 누군가(?)가 미처 계산 못 한 게 있다면, 이 헨리는 여기서 농장 생활을 그저 흉내내러, 기분 내려 잠시 들른 이방인이 아니라, 없는 수고도 애써 만들어 내며 자연 속에 진심으로 묻히고 싶은, 어떤 갈망을 가진 이주자란 점입니다. 이 때문에 헨리나, 수상쩍은 이웃(?) 여러 명이나, 각각의 이유로 예상 못 한 여러 트러블에 부딪히게 됩니다. 현실로부터 탈출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던(그렇게 보였던) 그는 여튼 어설픈 계획대로 밀고 나가며 사소한 불편은 무시하려 드는데, 그를 둘러싼 수상쩍은 이웃들에겐 그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이웃들은 필사적으로 그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의 서투름은 이 수고와 배려를 매번 무산시킵니다.

하루아침에 남편이란 작자가 비상금까지 챙겨 행방을 감췄으니 그 아내가 팔짱만 끼고 있을 순 없습니다. 프랑스 현지로 날아가, 역시 뜻하지 않게 새 동료(?)를 만나 여러 조언도 듣고 이 마음에 안 드는 험난한 사태를 해결할 방도를 강구하는데, 새 친구가 가만 보니 이 여성, 문제가 많습니다. 남편이 도망갈 만도 하다 싶게 말이죠. 인생관 애정관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이 남과 여는, 우리 독자들이 능히 예상할 수 있게 새로운 애정을 싹틔우고, 한편 저 프로방스에서 첫봄을 맞으려는 앙리, 아니 헨리 역시 그 이웃 중 한 명과 슬슬 정을 쌓으려는 찰나입니다.

어설픈 남편과 박정한 아내, 정신없는 딸내미가 어쩌다 엮여 한 가정이 희한한 소동과 파탄을 겪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니 이 배후에는 엄청난 규모의 음모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처구니없이 스케일이 확 커지는 플롯의 도약 속에, 독자들은 인생의 아이러니가 어느 지점에서 소중한 진리를 평범한 일상인에게 따끔히 깨우쳐 주는지 공감과 웃음과 잔잔한 수긍을 교차하며 반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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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비전 | YES24 파블미션(舊) 2017-04-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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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더의 비전

신동준 저
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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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학자는 문헌의 비교 고증에 능합니다. 이미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최고 정예의 지성들이 그 뜻을 낱낱이 밝혀 놓은 것만 같아도, 신동준 선생의 책을 읽다 보면 "아직도 문구의 정해(正解), 성현과의 공감까지 이렇게 먼 길이 남아 있는지" 새삼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동시에 "궁극의 목표에 이르기까지 험하고도 불투명한 진로를, 신동준 선생 같은 분들이 후학들의 앞날을 위해 이처럼 힘들여 닦고 다듬고 계시구나" 하는 각성에 감동과 고마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전의 해의는 그저 문자의 정확한 판독, 지엽말단의 시비를 가리는 데에 그 본 뜻이 가려져서는 안 됩니다. 문구의 해석은 진리에 이르는 수단이라야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신동준 선생의 저서들은 경전의 바른 뜻을 밝히고 탐구하는 기술적 의의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난관을 타개하며 미래의 비전을 밝히는 과감한 제안을 독자에게 편다는 데에 그 본연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중국의 역대 창업 군주들의 족적을 되돌아보며, 이들의 전철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극력 회피해야 할지, 작금의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교훈들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잘 정리, 추출하여 곱씹을 수 있게 가공, 구축한 경세의 금언들로 가득합니다.

진의 시황 영정은 보통 실패한 폭군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가 통일 제국의 주추를 놓지 않았던들, 이후 한 왕조의 기반이 마련되었을 리 만무하며, 나아가 통합 중화 제국의 성립은 이후 몇 세기를 더 기다리거나, 아예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백성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한(漢) 질서의 원형이 이처럼 이른 시기에 마련되었었기에, 여러 번 이민족의 침입으로 분열기를 맞이해도, 민중과 지식인, 의기지사들은 "언젠가 이 흩어졌던 것이 반드시 합쳐지고 말 것임"을 확신하고 면면히 문화의 맥과 혼을 이어올 수 있었지요. 한(漢)의 융통성 있고 넉넉한 시스템 원형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건, 역으로 그 이전 단계 혹독한 통합의 과정에서 누군가가 악역을 떠맡고 장애물을 모조리 제거해 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배드캅" 뒤에 "굿캅"이 나타나야 효과가 극대화하는 법입니다.

시황 영정의 시야가 "천 년을 내다보았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천 년이 다 뭐겠습니까. 오늘날 중국이 그 숱한 시련을 겪고 난 후, 공산당의 초기 혼란상, "삽질"의 와중에도 기어이 통합된 거대한 덩치를 키워 여기까지 이른 것만 봐도, "size does matter."를 이미 2200년 전에 꿰뚫어 본 영정 개인의 웅대한 비전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천하는 반드시 하나로 합쳐져야" 같은 통합 의지를 낳은, 중화혼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이죠. 표준화 작업은 이후 한대 무제의 치세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진행되어야 했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후임자들이 감히 시도할 엄두도 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최초의 첫 발걸음은 지나고 보면 쉬워 보여도,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발상과 착수가 지난한 법입니다. 다만 그처럼 주도면밀하고 과단성 있던 통치자가, 어떻게 해서 후속 질서의 설계에는 그만큼이나 허술한 구석을 남겼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인의 창업도 유능한 후계자의 수성 없이는 한낱 꿈처럼 거품처럼 무너질 수 있습니다.

외국 문헌에서는 한고제 유방을 소개할 때 항상 "농민 황제"라는 규정을 앞에 붙이곤 합니다. 봉건제, 혈통 정당성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편인 그들 문화에선, 그토록 강성하고 방대한 권역을 다스리는 체제의 창업이 "농민 출신"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못내 신기한가 봅니다. 이런 유형의 군주 최초례가 유방이며, 이후 중화 문화의 원형을 형성한 왕조의 창업자를 겸하기도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황제권이 그토록 강력하여 혹정을 통해 농민 반란도 여러 번 유발, 역사의 향방이 바뀌기도 한 중국이지만, 백성을 따뜻이 살필 천자는 농민의 아들, 혹은 그 핏줄의 후손이라야 정책의 융통성, 실용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힘이 강한 컨센서스의 발현이 아닐지도 생각해 봅니다. 역대 이런 농민 출신 창업주로는 명조의 주원장, 그 명조를 뒤엎고 자칫 새 황조를 열 뻔한 이자성, 그로부터 거의 오백 년 전 중원을 감히 넘본 소금장수 황소, 그리고 현 시스템의 개조인 마오 등이 있겠죠. 저자는 고제의 탁월한 역량으로 "인재를 알아보는 감식안", "주저없는 실행력",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 등의 자질 요소를 듭니다.

시황제 영정처럼, 분열의 시기 난맥상을 정리하고 어려운 통합 과업을 마쳤지만 후계자의 무능 혹은 만용으로 모든 수고를 무위로 돌린 군주로는 수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창업자의 생애로부터도, 후계 선정의 중요성을 간과한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지 절감하며 이 안타까운 실책을 통렬히 개탄하고 있습니다. 여튼 오랜 분열상을 극복하고 통합된 질서를 일궈 낸 개척적 위상은 문제 양견에게서 결코 후대의 평자들이 박탈할 수 없습니다.

수 문제의 업적이 혁혁했기에, 사실 어부지리마냥 그의 알토란 같은 유산을 나꿔챈 당 고조 이연은 책에서 중요성이 덜 언급되며, 그 출중한 아들이자 창업 과정에서의 실세 이세민의 자질과 역량에 대한 집중 분석이 이뤄집니다. 만약 이세민이 범용한 인물이었다면, 수-당 황조는 통일 제국 시스템이 아닌, 예컨대 5대 10국기의 양당진한주 정도로밖에 그 비중이 매겨지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북위의 분열 이후 나타난 동위, 서위, 혹은 그들을 각각 계승한 북제와 북주를 거의 기억하지 않듯, 어쩌면 이들도 남북조 시대의 잔재나 잔영, 혹은 연장으로밖에 평가되지 못했을 겁니다. 당 태종은 사실 권력 장악 과정에서 여러 무리수를 저질렀고, 그 중 일부는 먼 훗날 투르크나 무굴 제국 왕위 계승 투쟁에서나 볼 수 있는 잔혹한 패륜 행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 사가들이 한결같이 그를 최고의 군주로 높이 평가하는 건, 리더로서 그의 선택과 결단이 군주 개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퀄리티였기 때문이죠.

당대(唐代)의 절대 군주 중에선 태종 말고도, 그의 후궁 노릇을 한때 한 바 있는 무측천의 통치례 역시 모범으로 꼽혀 이 책에 선정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교훈화 중 하나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가 아니라) 자신의 분수 따위는 깨끗이 잊고(?), "아무리 높아도 꼭대기까지 보라"는 것입니다. 권력자에게는 이처럼 거의 맹목에 가까운 권력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성별로나 출신 성분으로나 모든 면에서 족쇄를 안고 시작해야 했던 무측천 같은 이가, 확고한 목표와 책략과 집요한 욕망 앞에 거칠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잘 보여 준 최초의 예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잘 바뀌지 않고, 그런 본성과 음습한 욕구가 모이고 모여 정치와 외교의 장이 열리겠으니, 오늘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가시밭길과 옹색한 진로가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한 이 조국의 앞길도, 고전을 통해 무엇을 본받고 무엇을 내동댕이쳐야 할지를 깊이 숙고한 후, 모두가 지혜를 모아 번영과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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