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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아시아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7-07-3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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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슈퍼아시아

KBS 〈슈퍼아시아 제작팀〉 저
가나출판사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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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출판사가 KBS 다큐멘터리와 연계하여 펴 내는, 몇 년씩마다 나오는 이 기획(단, 직전 편 "미국" 권이 나온지는 몇 달 되지 않았습니다)에서, 이번 주제는 "슈퍼아시아"입니다. 동남아시아권에서 여전히 인기 높은 SM의 아이돌그룹 슈퍼쥬니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요. 세계의 경제 성장 동력으로서 지난 십년기 동안 신나게 가동되던 중국의 움직임과 활기가 최근 눈에 띄게 죽은 듯한 지금, 어디를 주목해야 우리 사업체의 미래가 보이겠으며, 세계의 경제 새 심장 정확한 부위를 자극해야 효과적인 제세동(除細動)이 가능할지, 다들 고민에 잠길만한 시점입니다.

이 책 제목을 다시 보십시오. "슈퍼 아시아"입니다. 대체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요? 우리의 미심쩍인 짐작은, 결론만 놓고 보면 그리 틀리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자원과 토지(본디부터 빈약하고 협소합니다), 상상력과 활기와 창의력은 고갈된 지 오래입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미국의 부존자원과 광활한 토양도 어느새 인종과 계급, 신념과 지향성의 갈등 끝에 슬슬 그 한계가 보입니다. 반면 아시아는 아프리카처럼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갈등이 극심하지도 않고, 특히 동남아시아는 최근 지도층이 실리 위주의 약아빠진 정책을 본격 구상하면서 사회 제 세력 간 타협이 이뤄지거나, 혹은 (지난 수백년 간 그야말로 죽어라 싸워 왔던) 인접국 간의 대립이 서서히 완화되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노련한 중국 공산당(여튼, 이 책을 보면 그런 느낌을 부인할 수 없군요. 산전수전 다 겪은 장사꾼 트럼프도 그들의 수완에 혀를 내두르지 않았습니까)이 이 지역 정세에 개입하여, SOC 건설 비용을 대면서 무역 편의를 추구하거나 장기적 관점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무엇보다, 살벌한 국경 분쟁과 자연 지형의 장애물들이 해소되고 나니, 라오스, 캄보디아 사람이 태국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받는가 하면,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에서 "관세 없이(이게 얼마나 중요한 팩터인지요)" 농민들이 장터를 열어 물품을 거래하기도 합니다. 동기가 무엇이 되었건,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도 넘은 이전부터 서양 기업과 정치인들이 꿈꾸던 "자유 무역"의 이상이 지금 전혀 뜻밖의 환경과 원인으로부터 현실화되는 중입니다. 이러니 "슈퍼 아시아" 소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상하게도 우리는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 현재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며 이제서야 부존 자원 등 자신의 장점에 주목하기 시작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일반 대중이 그렇다는 거고, 눈 밝은 이들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현지에 진출하여 최대한 선점과 친숙해짐의 이익을 누리려 애써 왔습니다. 예컨대 라오스에 일찍 관심을 지닌 이들은 "적은 인구와 광대한 영토..." 같은 말을 합니다. 인구가 적은 건 그러려니 하는데, 그 좁은 동남아시아 구석에 박힌 나라가 클 데가 어디 있어서 영토가 광대하다고 하나? 뭐 이런 의문을 가볍게 제기할 만큼 우리는 무신경하고 그들에 대해 무지합니다. 객관적으로 라오스는 한반도 전체와 맞먹을 만한 영역이고, 그 중엔 개발과 번영을 기다리는 자격 갖춘 토지가 상당수인데도 말이죠.

오늘도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났습니다만, 인공지능 분야에서 한국은 내내 제자리걸음인데 중국은 그간 의미있는 발전을 거듭한다고 합니다. 여태 짝퉁 수출로 종잣돈을 모았을 비천한 과거를 지닌 그들이지만,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고 그들은 그간 전망 있어 보이는 온갖 분야에 투자하여 여튼 외관상으론 의미 있는 결실을 낸 듯 보입니다(얼마나 내실까지 갖췄을지는 또 다른 평가가 이뤄져야겠습니다만). 이런 최첨단 분야의 혁신은 별개로 하고도, 최근 중국은 그저 노동집약적 구조의 이점에 얹혀 편한 길을 간다는 외부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비웃기라도 하듯, 생산 자동화와 공정 개선을 통해 전에 없던 세련되고 효율적이며 지속 가능 발전 양상을 갖춘 모습입니다. 중국은 이제 우리가 알고 비웃던 예전의 중국이 아닌 셈이며, 책에 나온 대로 "쫓아가는 중국이 아닌 앞서 나가는" 퍼스트 무버가 슬슬 되어가는 셈입니다. 우리로서는 참 조바심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죠.

인도는 어제도 뉴스에 난 것처럼, 히말라야 인근의 지정학적 구도를 놓고 중국과 영원한 앙숙일 수밖에 없는 사이입니다. 이런 인도도 십여년 전 유능한 경제학자 출신 총리가 이끌던 고도 성장 추세가 한풀 꺾이고 그간 주춤한 기세 같았으나, 우리가 모르는 새 내실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인도 하면 무작정 실리콘 밸리로 그 나라의 최우수 인재들이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세 얼간이>에서 보듯 무작정 주입식으로 공학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고는 원치도 않는 장래에 투입되어 신분 상승이나 바라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어디 그런 불안정한 도약기에 내내 머물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내수가 뒷받침되고, 미국에서 충분히 수련받은 IT 인력이 다시 돌아와 지식 산업을 이끄는 반면, 제조업은 그것대로 다시 도약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미국처럼 제조업 전반이 침체하고 너무 서비스업(아무리 첨단 고부가가치라도)만 발달해도 문제이고, 산업 전반이 이처럼 균형 있게 발전해야 비전이 생깁니다. 이제 중국처럼 "우주 개발"이라든가, 여타 선진국처럼 바이오 섹터에도 광범위한 투자가 이뤄진다고 하니 앞으로 이 거인의 웅비 행보가 기대되는 형국입니다.

인도차이나는 일단 프랑스가 그렇게 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게 다 이유가 있을 만큼 풍족한 자원, 광대한 영토가 기다리는 기회의 땅입니다. 이런 나라들도 이제 자신들의 조건이 얼마나 유리했는지를 늦게서야 깨닫고, 부족 간 국가 간 상쟁(얼마나 치열하고 잔혹했는지는 역사를 공부해야 알 수 있습니다)을 멈춘 채 상생의 길을 도모합니다. 특히 주목되는 건 미얀마인데, 이 나라야말로 영국이 인도 못지 않게 공을 들여 식민지 경영에 나섰던 역사가 있죠. 그간 군부가 무능하게도 기득권만 유지하려고 철저히 쇄국 정책을 폈습니다만, 아웅산 수지 여사와 타협이 이뤄진 것도 "우리 잠재력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이대로 가면 망할 뿐이다"라는 위기의식이 이제서야 공유되었기 때문이죠. 하나 우려스러운 건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인데, 묘하게도 이 부분은 중국의 비호를 받아 국제 사회에서 유야무야 되는 느낌입니다. 사회간접자본 역시 중국의 대거 투자가 이뤄지는 양상인데, 이를 이용해 지역적 영향력을 지나치게 확대하려는 야욕을 현 지도층이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아세안은 또다른 정치단위입니다. 과거부터 이 국가간 협의체는 동작해 왔습니다만 그간 각국의 의견차가 커서 제 구실을 못하다가, 최근 이 지역이 새로운 경제 동력으로 부상하고, 이제서야 대화와 타협, 협력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각성한 모습이죠. 여기에도 최근 거두어진 중국의 성공에 자극 받은 바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이곳은 일본, 인도, 유럽을 잇는 항로가 반드시 거쳐야 할 요충지이고, 최근 문제가 된 남중국해와도 인접해 있으므로 물류의 허브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많은 인구, 갓 성장하기 시작한 중산층이 두텁다는 구조 덕분에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으로 꼽히기도 하죠. 이 책(나아가 방송 프로그램)이 한마디로 규정한 성격은 "넥스트 차이나"입니다.

이런 최근의 놀라운 발전상이 가능했던 건, 역시 중국 자본이 지원해 주는 SOC의 확충입니다. 인프라 하나가 깔리고 나서 얼마나 경제 활동이 수월해졌는지 지역 주민들이 그 효과를 알아 보는 거죠. 허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옛 속담이 재현되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기회를 잡으려면 일단 현지화에 성공하고 참된 믿음을 얻어야 하는데, 중국인들이 과연 그 과제를 잘 해나가는지, 아니면 또다른 제국주의적 모순을 키워 나갈 뿐인지는 의문입니다. 우리는 어설픈 우월감을 가질 게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탈의 아픈 역사를 그들과 공유한다는 일종의 연대의식을 키우며, 함께 공영 공존의 마인드를 성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자원과 토지의 이점을 나누며, 우리의 경험과 자본을 그들에게 베풀며 이웃으로서의 위상 매김을 이루는 길이, 이들이 품은 방대한 이점을 최대한 우리 것으로 흡수하는 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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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 | My Reviews & etc 2017-07-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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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화

갈릴레오 갈릴레이 저/이무현 역
사이언스북스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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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정합성을 갖춘 과학적 이론이라도, 그것이 당대 대중의 어리석은 감정과 (근거 없는) 신조에 위배된다면, 그것이 가진 올바른 정도와 무관하게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마련입니다. 그저 논제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에 섰을(의견을 달리할) 뿐인데, 때로는 도덕적 단죄, 법적 의율에까지 이르기도 한다니, 상대주의적 열린 지식관에 기반하여 운용되는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무지몽매한 자들의 손에 의해, 한두 세기에 한 번 날까말까한 천재의 목숨과 이론적 성과가 그대로 매장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하긴, 무지한 자들의 그악스러운 선동과 모함에 의해 진실이 가려지는 건 지금도 다를 바 없는 사정입니다. 무자격자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랄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가 위태하기에, 그저 목소리만 높이고 엉터리로 우기는 행동으로 무능을 보충하려 들게 되어 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대해 정면대응하지 않고, 대신 이런 명저를 남겨 우매한 이들을 교화하려고 했습니다.


역자 이무현 박사님의 서문에 보면, 다비트 힐베르트의 평언에 근거하며 이런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 그가 재판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철회를 통해 목숨을 구걸(1633)한 건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종교는 그 전파와 확증을 위해 순교자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과학적 진리는 시간이 지나면 인간 이성에 의해 자연히 증명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왕이면 무지몽매한 체제에 의해 진리가 억눌리고 탄압 받는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바람직하겠으며, 그런 역할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정도나 되는 석학, 지성인이 몸소 나서지 않으면 누가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압력에 굴하여 양심을 팔고 본심과는 반대되는 증언을 했던 그의 태도가 그리 당당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위신과 정의감을 희생하기까지하며 그가 얻어낸 건, 또 세상에 선사하려 했던 건 무엇일까요? 그게 바로 다름 아닌 이 책, <대화(1632)>와 그의 후속편격 저서들입니다. 그가 그 유명한, 법정에 서서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게 바로 이 책의 출간, 이 책이 부른 종교적 논란이었습니다.

진리의 판정을 어리석고 사악한 소수가 독점하는 체제에서, 그는 아무리 논리정연한 주장을 (편파적인 법정에서) 설파해 봐야 헛수고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과정을 두고 역자 이무현 박사님은 "... 그가 분별력을 잃지 않은 결과"라고 평가합니다. 무모한 싸움을 벌이느라 괜한 정력과 재능을 낭비할 게 아니라, 많은 독서인, 글을 읽을 줄 아는 지식인들을 자기 편(아니, 진리의 편)으로 만들어, 개인과 체제의 싸움이 아닌 진리와 억압 기제의 싸움으로 판을 바꾸려 든 게, 그의 현명한 처세술이었다는 뜻이지요. 역자의 평가에 따르면 "최초의 대중 과학 교양서"의 자리를 점하는 이 책은, 과학 기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학문과 지식 전방위에 걸쳐 통달에 가까운 이해를 지녔던 그가, 유쾌하고 발랄한 문체와 이야기 솜씨를 통해 어리석은 이들을 설복, 교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구태여 순교자의 길을 걸었다면, 이 책의 후속편 격인 그 모든 명저들이 출간되지 못했겠으며, 아마도 세계는 그의 재치 넘치는 가르침과 빛나는 영감을 전수받거나 공유받지 못했을 겁니다.

이 책 제목은 "대화"입니다. "대화"라고 하면 갈릴레오보다 거의 이천 년 전에 살았던 대 철학자 플라톤의 어느 저서 제목이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서양 지성과 사유 방식,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고전적 기초를 놓은 이래, "대화"는 어디까지나 논리와 이성과 상식에 의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기본 포맷이 되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떠드는 건 진리의 소통 방식이 될 수 없습니다. 상대가 반박을 하면, 왜 그 논리가 그릇될 수밖에 없는지,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대화법, 산파법"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쳤고, 플라톤 역시 "진리의 자발적 각성, 수용, 설복"을 위해서는 대화 이상의 좋은 방법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다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 책에서 쓰고 있는 대화법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픽션처럼 구성한 이 책에서 마치 몇 세기 전의 보카치오가 구사한 테크닉처럼, 세 명의 등장인물을 무대에 올려 그들의 입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진리, 합의에 도달해 가는 법칙"을 독자 앞에 제시합니다. 이 등장인물은 물론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이들도 아니고,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으니 같은 공간에 등장해 담론을 나눌 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생전의 그들이 과연 이 책에서 갈릴레오가 꾸며낸 대로 저런 제각각의 철학적(당시에는 과학과 철학이 거의 동의어였죠. 아니, 그 후 수백 년 동안에도요) 입장을 견지했는지도 의문입니다. 허나 당대인들, 그리고 후대의 분석가, 연구가들에게 격찬을 받는 건, 갈릴레오가 대단한 독서가였고 박식한 학자였기에(이렇게 되려면 남의 책들을 두루 읽고, 선학의 성과를 폭 넓게 흡수해야 합니다), 자신보다 한참 앞선 인물들의 성향이나 (암시된) 견해를 거의 정확히 이해했고, 그랬기에 이처럼 실감 나는 재현이 가능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픽션으로 읽어도 (배경 사정을 아는 이들에게) 대단히 재미있게 다가옵니다(단, 여기에 대해 비판적 견해로는 역시 이 책 역자 서문 p14 중간쯤을 참조하십시오. 그 역시 건설적 비판 속에 약간의 아쉬움을 표시하는 취지입니다).


이런 기법은 예를 들어 1990년대 초에 출간된 리언 레더먼의 <신의 입자>에서도 차용됩니다. 그처럼 오래 전 시기의 한 일류 과학자가, 말솜씨도 이만큼이나 재미날 수 있다는 게 한참 후대의 연구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준 것이죠. 갈릴레오는 이 재미난 책에서 일종의 신랄한 풍자도 시도합니다. 역자 서문(p19:6)에 보면 당대의 피사 대학 교수 스키피오네(책에는 "시피오"라고 표기됩니다) 키아라몬티의 그 유명한 말이 인용됩니다. "동물이나 유기체는 관절과 근육과 팔다리가 달린 덕분에 움직일 수 있으나, 지구는 그렇지 않기에 움직일 수 없다." 역자께서는 이 발언을 두고 이 책, 즉 갈릴레오의 <대화>에 대한 반박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그가 전개했던 지론입니다. 그 증거로, p389~p428에 걸쳐 펄쳐지는 "둘째 날" 파트의 하반부 모든 내용이, 바로 관절론 망언에 대한 우습고도 통쾌한 풍자와 반박이기 때문이죠.

혹시 종교를 가진 분들은, 이 책의 역사적 의의와 파장에 대한 연상으로 불필요한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의 주류는 이미 오래 전 현대 과학의 성과를 남김 없이 수용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같은 이는 골수 반공주의자(이런 점을 이해 못하는 바보는 그저 이 교황을 좌파라고 오인합니다)였으면서도 이런 과학의 업적이라든가 교회의 과오에 대해서는 남김없이 인정하며 겸허한 사죄를 표명했습니다. 당장 갈릴레오의 당대 교황이었던 우르반 8세만 해도, 갈릴레오의 천재적 재능에 경의를 표하며 그를 일생 동안 비호했습니다. 세상은 본디 다채롭고 각양각색의 입장이 존재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며, 그걸 아는 우르반 8세나 갈릴레오 모두 융통성 있는 지성들이었기에, 흑백 논리의 대립으로 치닫지 않고 이처럼 적정선에서 타협을 봤던 것입니다. 특정 결론만이 절대로 옳다며 흑백 논리로 치닫는 어리석은 자들은, 입으로 과학을 거론할망정 속으로는 사이비에 가까운 망집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의 어리석은 두뇌로는, 진리의 밝은 빛을 알아볼 수 없음을, 이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고전은 우리에게 담담히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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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 My Reviews & etc 2017-07-2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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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그레고리 포코니,린 일란,조중행,토비아스 C. 힌세 공저
자음과모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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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외국인들이 놀라 감탄하는 평가를 들을 때 우리의 반응은 대개 둘로 갈립니다. 하나는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뿌듯함, 긍지" 비슷한 느낌이 드러나는 미소이겠고, 다른 하나는 "언제는 그렇지 않기라도 했는지?' 같은, 예의만 간신히 갖춘 어색한 긍정입니다.

이런 놀라운 발전을 이룬 건 물론 우리 국민 모두 애써 노력한 결실이겠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남다른 재능과 열정으로 훨씬 큰 기여를 한 분들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성과와 업적이 당사자 개인의 여유와 명성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 나아가 전 인류의 복리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과학, 기술, 의학 섹터에서 이뤄졌다면, 이는 각별한 경의와 찬사, 존경, 기림이 바쳐져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의 부강한 조국이 이 정도까지 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저 놀라운 애국자들, 혹은 천재적 지식인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을까요? 혹은, 그 정확한 이름 석 자와 업적을 채 인식이라도 하고 있을지요?


이 책은 모두 네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문학, 정보통신기술, 의학, 그리고 지식정보입니다.

첫째 파트 "천문학"에서는 우리의 예상대로 세종 대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이순지, 혹은 훨씬 이전 신라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간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측량기술" 등이 언급됩니다. 당대의 우리 조상들이 향유하고 구사하며 발전시킨 모든 테크놀로지가 다 순수하게 우리겨레의 기여는 아니었겠지만, 여튼 우수한 두뇌와 집요한 탐구정신을 지닌(이런 규정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하겠습니다) 조상들은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가꾸는 수단으로 아낌없이 이 기술과 인식틀을 활용했습니다.

이런 우리 조상들의 업적에 대해 서양에 최초로 알린 분은 윌 C 루퍼스라는 학자였는데요(어떤 목적으로 한국에 왔건, 미국인들 중 이런 호감과 선의로 무장한 이들이 꽤 많습니다. 일부의 예만 보고 괜한 피해의식을 갖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이분이 길러낸 빼어난 석학 중 한 분이 바로 이원철 박사입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맥동설"의 주요 이론적 지지 기반을 마련했으며, 일본인들의 조선문화 훼손, 자료 밀반출에 항의하며 군정 총책 하지 중장을 면담한 게 계기가 되어 이후 타계시까지 한국 천문 행정의 큰 어르신으로 뚜렷한 공직 봉사를 하신 분입니다.


이런 분의 업적을 발판으로, 한국의 우수 천문학 연구진들은 "두 개 이상의 항성을 공전하는 행성"의 존재가능성에 대해 종래의 통설과는 반대로 긍정적인 논변을 개진했으며, 세계 최초라는 영예는 미국 NASA 측에 뺏겼지만(좀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파트의 집필자인 토비아스 힌제(책에는 "힌세"라고 표기되었습니다) 같은 독일 등 유럽 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일제 시대 간악한 식민 통치자들의 횡포 때문에, 학자들이 가진 망원경까지 빼앗겨야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마젤란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리 과학자들의 현황은 실로 자랑스럽습니다.

의학 분야에서는 일단 생체 장기 이식 수술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장기려 박사의 일화가 나옵니다. 성인과도 같았던 장기려 박사님의 일생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배웠는데, 상대적으로 잘 몰랐던 이호왕 박사님의 이야기가 제게는 더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소개를 보면 과연 명문의 혈통에서 이런 우수한 인재가 나옴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넉넉한 지주 집안의 후손이었지만 해방 후 무모한 김일성의 공산화 조치 때문에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빈한한 환경에서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지요.

한국전 당시 UN군이나 중공 측 모두, 상대가 생체 무기를 쓰지 않았나 하며 비난을 할 만큼(이 책 중의 표현입니다. p104), 이상한 출혈열의 유행으로 장기가 훼손되어 죽는 병사들이 늘어나 세계적인 미스테리가 되었지요. 세계 의학계가 모두 매달려 원인을 밝히려 애썼으나 무위에 그친 걸, 1976년 이호왕 박사님이 드디어 들쥐의 "폐"에서 바이러스를 발견, 세계가 놀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제가 유감인 건, 쓸데없이 정치인 등에 대해서는 불건강한 맹종 태도를 보이면서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자랑스러운 한국인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몰지각한 시민들입니다. 이 정도 업적이면 당시 미디어에서 엄청 큰 뉴스로 취급했을 텐데, 현재 이호왕 박사님의 이름을 아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요? 당장, 변변치 못한 자신의 건강이 그만큼이나 유지되는 것도 이런 분들의 업적에 크게 기대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일상의 은혜를 모르는 자가 도덕, 윤리를 입에 올리며 정치 현실을 개탄하는 모습도 참 우습게 보입니다. 참고로, "한타박스"의 효능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여전히 회의를 표시하기도 하지만, 이런 독보적 업적에 대해선 비판 못지 않게 응원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IT 분야는 최근 다시 글로벌 수준에 크게 뒤떨어진 현황이지만 여튼 정보통신 혁명 초반기에 한국이 이뤄나간 광폭 행보는 대단했습니다. 이 책은 그레고리 포코니 박사의 책임집필을 통해, 특히 대단지 아파트가 좁은 도심, 부심에 밀집해 있는 한국적 현실이 IT 투자 조기 회수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독자에게 부각합니다. 1982년 체신부 차관으로 봉직하며 이후 십년기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 오명 씨를 특히 언급하는데요. 이분은 YS 정부에서 커리어의 절정을 맞이했죠(진대제 씨가 노무현 정부에서 전성기였던 것과 비슷하게). CDMA 기술은 흔히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정확하게는 세계 최초의 상용화입니다. 이 기술의 직접 적용 분야가 PCS 폰입니다. 그래서 당시 그토록 저렴한 비용(10초에 18원~19원대)로 대중 사이에 널리, 급속도로 퍼질 수 있었지요. 그전 냉장고 셀룰러폰은 요금 폭탄 때문에 누가 함부로 쓰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아니었으면 1990년대의 초호황, 그것이 이끈 신세대 문화 트렌드 같은 건 발생하지도 못했겠으며, 외환위기 당시 재기의 여지도 없이 최후진국으로 침몰하고 말았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 변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이런 융통성 강한 민족성이 한때 IT 강국 도약을 이끌었던 동력이란 점,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공감하는 대목입니다. 린 일란 서울대 교수(미국인이라고 하는군요)는, 이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질이, 세계적 대세이자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인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대거 이행"을 이끌 것으로 전망합니다. 자라나는 세대가 이런 지식 기반 산업의 역군으로 배출되려면, 먼저 우리 한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누가 가장 큰 기여를 했는지, 그 롤 모델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자리잡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누굴 본받고 따라하려 노력합니까? 우수한 인재는 과연 어느 섹터로 과잉(혹은 과소) 진출하고 있습니까? 나라의 미래는 첫째도 둘째도, 지식 기반 인프라,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의 창달 분야가 어느 정도 지원을 받는지를 보고 점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혹은 당신의 자녀는, 한국이 만들어내고 세계가 놀란 과학기술의 선구자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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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화의 무지개다리 | My Reviews & etc 2017-07-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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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간과 문화의 무지개다리

이케다 다이사쿠,조문부 저/화광신문사 역
연합뉴스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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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문화권, 혹은 두 국가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서로를 증오하는 비극이 좀처럼 잦아들질 않을 때, 이의 화해와 타개에 나서야 할 이들은 첫째가 과거의 원한에 물들지 않은,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볼 수 있는 청년들이겠고, 둘째가 이성과 냉철한 판단에 근거해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인들입니다. 이 두 집단마저 구원(舊怨)에 사로잡혀 눈이 멀어 있다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 설정은 거의 가망이 없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과연 한-일 양국의 현황은 어떤 편이겠습니까?

이 책은 일본의 영향력 있는 명사인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 제주대학교 전 총장을 지낸 조문부 교수 두 분의 대담집입니다. 지식인들이 만나 대담을 나눌 때도 마냥 우호적이고 이지적인 톤과 분위기에서 말이 오가는 게 아니라, 때로는 시정 잡배보다 더 험악한 대립상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허나 이 책은 두 연로하신 명사 사이에 시종일관 훈훈한 덕담과 서로를 이해하는 온화한 배려와 전망이 주고받아집니다.

이유는 첫째 이케다 회장이 (넓은 의미의) 지한파인 까닭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스스로 밝히길 부친(당연히 일본인)이 징병 조치에 의해 서울(제 추측에는 국권 상실 훨씬 이전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이미 임오군란 전후로만 해도 일본 병력이 한양에 주둔한 적이 많았으니)에서 병역에 복무한 경험(부친에게서 전해 들었을)을 술회하는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 한국 속담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릴 정도로 친근감을 느낀 분이었다고 하네요. 1차 대전 당시 전선 주변에 마련된 참호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대치를 벌인 독- 불 양 군이었지만, 합의 휴전 시기에는 서로 담배도 교환하고 농담도 하던 게 양국 젊은이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투옥된 안중근 의사의 높은 의기와 됨됨이를 사모하여 각종 배려를 베푼 게 어느 일본인 교도관이었으며, 강점기 시절 인권을 침해 받던 조선인의 처지를 동정하여 현해탄을 건너 무료 변론에 나선 일본인 변호사분도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비록 소속 집단이 적대할망정 국지적으로는 개인 간에 은근한 정도 싹트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런 걸 일절 부정하고 증오와 대립만 부추기는 자는 민족 구성원의 자격을 따지기에 앞서 벌써 사람이 되지 못한 말종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은 분위기가 훈훈합니다. 물론 훈훈한 덕담만 오가는 게 아니라, 두 노장 지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이케다 회장의 연세가 조 총장님보다 열 살 가까이 많습니다)들은 그간 인생의 관록을 통해 한국과 일본 고유의 민족성, 역사, 사회 구조적 특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거친 분들이라, 서로 처한 입장이 다를지언정 "심심상인격으로 말이 잘 통하는" 관계입니다. 책에는 이케다 회장과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이 27년 전 어느 공식 석상에서 조우하여 악수를 나누는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이어령 선생이 보다 젊어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어령 선생은 지금 이 책의 조문부 총장님과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이죠. 남자 나이 이 즈음만 해도 누가 연상이고 연하인지는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구별이 되는데, 안타깝지만 일흔만 다들 넘기셔도 특별한 경우 아닌 이상 젊은이들 눈에는 그저 친구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어령 선생이 괜히 언급되는 게 아니라, 젊은 시절 날카로운 탁견으로 일본인 고유의 행동 특질과 정신적 개성을 분석하여 문명(文名)을, 그것도 일본 현지에서 얻은 분이었기에, 지금 한 일 양국의 정치사회적 실태, 그 저변에 깔린 역사적 연원을 분석함에 있어 그분의 담론, 혹은 존재 자체가 빠질 수 없습니다. 조문부 총장은 대체로 당신 본인의 지론을 독자에게 담담히 들려 주지만(형식은, 물론 이케다 회장과의 대화입니다만) 여러 대목에서 이어령 선생의 견해를 인용, 원용합니다.

이 중에는, 국경이 곧 천하의 경계선이었기에 소속 집단의 대의와 명분을 바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자아가 아닌 자신을 절단해야만 했던(요 대목만큼은 이케다 회장의 표현입니다)" 융통성 없는 민족성을 왜 일본인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지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후 시바 료타로 같은 작가도 "융통성 없이 외골수로 자기만의 이상에 매몰되어, 2차 대전 같은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 군국주의 세력"에 대해, 사실 반성이라기보다는 미국인들 보기에 창피하다는 쪽의 각성을 여러 번 토로하는 걸 봤는데, 그냥 제 개인 생각이지만 역시 일본인은 도덕적 참회보다는 "수치심"을 더 중시하는 정신 구조인 듯합니다. 그게 과연 "융통성"의 문제이겠냐 하는 점에서요.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을 두 분은 주고받습니다. 일단 한국에선 가업을 일으켜도 그게 가족 사이의 관계입니다. 사업도 우리 집안의 화목과 번창을 위해 벌이는 것이므로, 일과 가족 둘 사이에 우선관계가 당연히 혈연의 끈끈한 재확인 쪽에 놓입니다. 사업이라는 게 당연히 가족과 집안 안에서만 범위가 끝나는 게 아니고 사회에 경계와 교차 부분을 확장하는 것인데, 사고 방식이 이러니 기업 내 정실, 부정, 비리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세금은 으레 정직하게 내지 않고 빼돌리는 게 원칙(?)입니다. 반면 일본은 일, 가업이 우선이고 그를 중심으로 자녀를 훈육한 후 계승시킵니다. 서양의 비즈니스 제도와 문화를 이어받을 때 이 점이 특히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게 조 총장님의 견해인데, 아니나다를까 내내 "코리아 디스카운트"되던 한국 기업, 특히 삼성 등의 주가가 "사주가 투옥되고 나서" 내내 상승 행진인 것도 외국인이 이제서야 뭘 믿기 시작했다는, 그래서 기업의 진짜 가치를 평가해 주기 시작했다는, 대단히 씁쓸한 해석도 부각되는 게 사실입니다.

남북한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정립될 것 같습니까? 라는 질문에, 십여 년 전 조 총장님은 "그건 중국의 장래에 달려 있다"고 답하셨다는데, 이 부분에 대한 더 심화된 논의랄까 고견이 전개되지 않아 저 개인적으로는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책의 주제와 의도가 그렇다보니 어쩔 수 없죠) 이케다 회장이 남북한에 대해 고루 보이는 관심, 한국(남북 모두)이 평온하고 번영해야 일본도 안정된 장래가 보장될 수 있다는 평화주의적 세계관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한일 양국이 서로의 좋은 점을 보고 우의를 다져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을 공유하며, 무엇보다 젊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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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 My Reviews & etc 2017-07-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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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저/최필원 역
오픈하우스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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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둘이 딸려 있는 당신, 그 부인은 사랑스럽긴 하나 별다른 생활 능력이 없는 평범한 가정 주부일 뿐인데, 어느날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면, 당신은 아마 꽤나 절박한 심정일 겁니다. 처음부터 직업에 대한 강한 애착도 능력도 갖지 못하고 반쯤은 허공을 떠다니는 현실 도피자 마인드(이런 사람이라면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없습니다)라면 모르겠으나,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일을 잘하던 사람인데, 회사의 사정으로 이 꼴이 된 겁니다.

배경은 1990년대 후반 한창 미국 업계를 덮치던 사무자동화 트렌드(당시 경영학과에서도 열을 내며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토픽이죠)가 초래한 대량 해직 사태를 메인으로 삼습니다. 이 소설을 읽던 독자 중 혹시 서두(주인공 버크의 1인칭 독백)를 꼼꼼히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 이거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양산되던 그 실업자 그룹에 속한,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의 상승에 대한 꿈이 갓 좌절된 세대 이야기구나 하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고 혹 192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창작된 각양각색의 실업자 소재 미스테리인 줄 오인하는 독자들도 있겠죠. 허나 이 장편(조금 분량이 짧습니다만)은 그 중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낀 1990년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 두 메가트렌드 스타일과 이처럼이나 닮아 있을까. 점점 드물어지는 자본주의의 호황기, 만성화된 경기 침체와 저성장, 이런 현실을 어느덧 필연으로 수용해 가는 대중에게, 어느덧 분노한 실업자, 중산층에서 하류층으로 떨어지는 중 가정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1인칭 화자의 사연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닌 보편상에 가까움을, 어쩌면 이 작품은 성공적으로 납득시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판단과 선택은 독자의 몫입니다.

실업자가 궁지에 몰려 범죄의 나락에 한 발을 담그는 진행은 (앞에서도 말했듯) 일찍부터 (다시는 그런 시절을 겪고 싶지 않다는 듯 진저리치는 대중에 의해) 미스테리 장르물의 인기 높은 소재로 이미 부상했던 적 있습니다. 근데 이 작품은 그런 익숙한 경로를 밟는 게 아니라(즉 누가 마련해 준 범죄 음모에 소소한 도구로 쓰인다는 식이 아니라), 이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세운 플랜에 의거하여 사람들을 해친다는 게 특이합니다. 무슨 동기로, 누굴 해친다는 걸까요? 다름 아닌, 자신이 이력서를 제출할 회사에, 같이 지원하여 경쟁자가 될 만한 이들입니다. 혹은, 자신보다 하등 나은 자격을 못 갖췄으면서 그 자리만 차지하고 앉은(주인공 버크 본인의 독특한 해석, 혹은 인지입니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죠), 따라서 자신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 마땅한 기 취업자들을 죽이려 다닙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여튼 이 작품의 메인 플롯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취업난에 신음하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옆에 면접 보러 온 경쟁자들에게 "너(희들)만 좀 어디가서 죽어줬으면 내가 당장 합격이 될 텐데." 같은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텐데, 여튼 젊지도 않고 먹여 살려야 할 입만 잔뜩 딸린 주인공 버크는 이처럼이나 놀라운(어찌보면 기발하기까지 한) 망념에 사로잡힙니다.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지금 버크 데보레 씨는 매우 진지하고, 이 길만이 사회에 폐를 최소한으로 끼치면서 동시에 자신이 자신의 긍지를 지키면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작가도 그런 의도로 이런 집필 방향을 잡았겠습니다만, 주인공은, 더 이상 사회 시스템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핑계를 잡아, 부당한 방식으로 남의 부를 가로챈다며 재산가들로부터 직접 돈을 탈취하고 다니는 소위 "의적"으로의 비화보다는 이 방식이 훨씬 온건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 체제 전체를 부정하기보다는 몇몇 개인에게 흠을 잡는 편이 훨씬 부담이 덜하기도 하겠고요. 제가 짐작하기로 더 합당한 이유는, 시스템 전체를 적으로 삼기보다, 자신의 앞길에 장애가 되는 몇몇 개인을 응징하거나 제거하는 편이, 응보와 추적의 손길(공권력)에서 도피하기에 훨씬 편하다는 이유도 있었겠습니다. 실제로 그는 처음에 저지른 몇 건의 살인을 성공적으로 은폐했고, 아 이거 해 보니 할 만한 노릇이구나, 내가 감당 가능한 영역이구나 같은 어이없는 확신도 체득했을 법합니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나는 이처럼이나 체제에 순응하고, 그를 긍정하는 성실한 사회인이다. 부적격자를 제거하여 회사의 비능률요소를 함께 없애 주고, 더 유능한 나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다소 비상식적이며 긴급한 방식으로 이루려 했음이니, 어느 누가 나를 범죄자라며 비난하겠는가?" 신랄한 반어법으로 모두가 모두를 적대하고 갉아먹는 신자유주의 트렌드를 비판하려 했음은 어느 독자라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웨스트레이크는 스타일리시한 문체와 개성 있는 구성으로 오래전부터 독자를 매혹해 온 전업 장르물 작가입니다. 그런 그가 어쩌면 시대를 앞서간 안목으로, "궁지에 몰려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실업자의 킬러 변신기"의 기괴한 행각을, 의외다 싶은 뚜렷한 주제의식까지 겸해서 이렇게 한 편의 소설로 빚어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예전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이 익숙해할, 사회 비판 성향의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Z>, <계엄령> 등이 유명하죠)가 십 년 전쯤 영화화하기도 했는데(그 다운 선택이죠?) 설정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지회사의 중견 관리직으로서 소설 곳곳에 배어 있는 업계의 디테일도 제 눈길을 끌었는데요. 당시 한국의 한솔제지도 삼성그룹에서 갓 독립해 나와(예전 상호:전주제지) 공격적인 경영으로 주목을 받았었거든요. 신기술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가, 당시 글로벌 규모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던 해당 업계의 상황을 잘 반영합니다(이런 거 보면 진정 작가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죠). 여담입니다만 한솔은 이 기세와 성과를 발판 삼아 PCS 이동통신업에도 진출했으나,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였습니다. 만약 잘 되었다면 그 사세가 지금의 CJ를 능가했을지도 모릅니다.

웨스트레이크의 평소 스타일대로, 어쩜 이런 순간에 이런 기괴한 상황과 공교롭게 맞닥뜨릴 수 있을까? 싶은 희한한 장면들이 대거 삽입됩니다. 예를 들면 버크는 잠복 중 뜻하지 않게, 자기 어린 딸(질이 안 좋은 여대생)을 스토킹하는 어느 교수로 오인받아 그 어머니에게 항의를 받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황당하기로는 지금 자신이 저질렀거나 저지르려는 범죄의 동기가 훨씬 더하죠) 여튼 이런 결정적인 목격자를 남겨 둬서는 안 되겠으므로 그 부부를 모두 죽여 버립니다. 부잣집에서 잘못된 성장 과정을 거쳐 "내 부모가 모두 죽고 유산으로 편히 살았으면" 같은 미친 생각을 품는 여성은 소설 속에(간혹 현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여기서 버크가 우연히 마주진 케이스도 그러합니다. 그 딸은 귀찮은 늙은이와 성가신 부모가 몽땅 죽어나갔으니 이런 대박이 또 없다 여기며 쾌재를 부릅니다. 버크 역시 딱 의심 받기 좋은 용의자가 알맞게 자살까지 해 줘서 살인 혐의를 말끔히 벗습니다(이 건에 한해). 여기서 그의 심리 묘사에 주목해야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여인이었던가. 이 역시 죽어서 아까울 게 없는 인생이었으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합리화에의 한계가 없는 듯한 정신입니다. 루신이나 니콜라이 고골 등이 일찌감치 정착시킨 "광인 일기"류를 엿보는 느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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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유수와 이십팔장수 | YES24 파블미션(舊) 2017-07-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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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광무제 유수와 이십팔장수

김창수 저
하문사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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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만 읽다가 질려서 역사 소설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중국에서는 일반대중이나 역사학자나, 폭군 왕망을 몰아내고(이 사람이 과연 폭군이기만 했는지는 요즘 개인적으로 부쩍 회의가 밀려오고 있지만, 최소한 정치감각이 빵점이었거나 급격히 현실적응능력이 퇴조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지 싶습니다) 후한의 개조가 된 광무제 유수에 대해 관심도 높고 평가도 (반대세력이 미미할 만큼) 높은 편입니다. 허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요. 무너져가는 황실을 다시 재건한, 혈통 좋고 품성 바르며 엘리트로 자란 중시조에 대해 이상하게도 관심이 적은 편입니다. 송 고종과 달리 이 사람은 인물과 무용, 인품, 기개가 고루 출중한, 거의 창업형 군주라고 해도 될 만큼 매력도 풍부한 데도 말입니다.

뭔가 비극적 요소로 가득찬 생애라야, 특히 한을 많이 품고 사는 우리 한국인 전통적 정서에 부합하는 위인, 혹은 사당이라도 지어 놓고 복을 빌 만한 혼령, 귀신 자격이 생기는 듯합니다. 그냥 제 생각인데, 우리는 특정 인물을 놓고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뭘 존경한다기보다, 내가 일생을 두고 복을 빌거나, 그 사진이라도 벽에 붙여 놓고 행운을 기원한다거나 하고 싶은 그런 타입을 마음에 새기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빼어난 인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그저 능력과 매력이 탁월했다거나 출신 배경이 유리해서, 혹은 그 모든 걸 다 갖춰서만은 결코 아닌데도(그의 마인드셋에서 보고 배울 게 있다는 뜻), 그저 운 좋게 황실 방계 집안에 태어나 누릴 거 다 누리고 살다 기회 하나를 잘 잡아 확 출세한, 그 정도로 파악하고 마는 게 보통인 듯하네요.

책 제목은, 보다시피 "광무제와 이십팔장"입니다. 난세에 무너져가는 한조를 재건하겠다고 나선 인물은 유수 뿐 아니라 이백년 정도 후 유현덕도 있긴 했고, 아마도 그에게는 그를 따랐던 출중한 인물이 두 의형제, 혹은 (그들을 포함한) 오호대장군밖에 없어서 뜻을 못 이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기보다, 냉정히 말해 자질이 부족한 탓). 평면적으로 비교할 것은 아니나 한 고제 유방에게는 백여명의 공신이 함께했기에 역대 존재한 적 없던 파천황의 대업을 이뤘을 수도 있겠고요. 여튼, 하필 이 광무제에게 스물 여덟의 용장이 거느려졌다는 사실은, 그 수비적(數秘的) 함축 외에도 다양한 개성이 영웅을 보좌했다는 점에서 후대인의 눈길을 끌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훨씬 후대에 창작된 <수호전>을 재미있게 읽는 이유도, 인물들의 다채로운 개성이 이야기 본 줄기를 아름답게 수놓고도 남기 때문입니다(현대인의 감성에 큰 상처를 주는, 일부 잔혹하거나 반인륜적 묘사가 많긴 합니다만).

무능이든 불운이든 제 본뜻을 못 이루고 장렬히 산화한 유현덕 일파의 이야기가 비장감을 안긴다면, 이 광무제와 스물 여덟 충신 호걸의 이야기는 뭔가 든든히 마련된 "정의의 승리"라는 뚜렷한 고지의 깃발이 보이는 식의 구성이기에, 독자가 마음을 졸일 이유가 없으며, 현실 쟁투의 승자가 갖춰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 교훈을 추출할 바도 많이 보입니다. 저자는 아주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천하에서 뜻을 이루고 못하고는 오로지 명분을 같이하는 동지를 얻고 못 얻고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어제 망고식스 강훈 대표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듣고, 초창기 여러 유능한 경영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세운 카페베네가 그렇게 잘나가던 때(책이 한두 권 나온 게 아닙니다. 만인의 모범이자 살아있는 성공 창업 교과서라고까지 불렀죠), 그리고 지금 고전하는 때를 대조하면서, 무엇이 이들의 성패를 가르는지 깊은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합니다. 다들 아시다피시 강훈 대표는 카페베네의 창업 멤버이기도 합니다. 제가 강훈 대표 관련 책 한 권도 몇 년 전에 리뷰를 써서 여기 예스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 책을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긴 내용(역사 장편물들이 취하는 표준적 분량)을 한 권에 이처럼 담아서 펴낸 책이 저는 (서평 중에서 여담으로 여러 번 밝혔지만) 개인적으로 좋더라구요. 이 작가님 다른 책도, 예컨대 서평 앞에서 적었듯 관운장을 다룬 작품도 있고, 그 외 독특한 세계관을 우수한 필력에 담아낸 게 많으니 추천 드립니다. 이 책은 장장 작년 겨울부터 읽기 시작하던 걸 지난주 토요일에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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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defense - Jonathan Kellerman | YES24 파블미션(舊) 2017-07-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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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Self-Defense

Jonathan Kellerman
Ballantine Books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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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모험("배드 러브")에서 호되게 당하고 난 후 닥터 델라웨어는 행동 반경을 좀 줄인 듯합니다. 이 과정이 궁금하다면 먼저 요 직전작을 읽어 보셔야 할 것 같고요. 지금까지 읽은 중에서는 절친 마일로 사일러스의 도움이 가장 적게 끼어든, 알렉스 델라웨어 본인만의 노력과 분투가 가장 농도 깊게 구현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당 방위"란 과연 뭘 말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독일법학계에서 여러 (우리에게는 현학적,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요건을 제시해 왔고 이를 일본이나 한국이 수용하여 사건들을 다룹니다만, 현재는 꼭 그렇지만도 않아서 미국에서 확립된 여러 유명한(또 타당하기도 한) 원칙과 사례를 많이 참고하는 추세입니다. 우리는 몇 년 전에 어느 건강이 부실한 도둑이 남의 집에 침입했다가 접이식 건조대에 맞아 죽은 사건을 놓고 "상당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논란이 인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왜 상당성 요건을 좁게 해석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미국과는 치안 유지의 정도와 수준이 비교가 안 될 만큼 안정된 편이기 때문이죠. 미국은 영토가 넓고 경찰 병력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흉악범들의 행태가 말할 수 없이 잔혹합니다. 반면 한국은 그 정도로 범죄자가 활개를 치는 편이 아니고, 공권력이 범죄 발생 반경을 상당 부분 성공적으로 커버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함부로 물리력을 휘두를 필요가 그만큼 적습니다. 반면 미국은 일단 주거침입만 했다 하면 상대가 언제 무기, 흉기 따위로 돌이킬 수 없는 위해를 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정당방위의 폭이 넓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범죄자의 행위를 판정함에 있어 어떤 일반원칙이 있다기보다, 현재까지 미국 연방법원, 주법원, 하급심 법원 등에서 내려진 여러 판례들이 "법이나 마찬가지인 원칙"으로 존중되며, 전에 이러이러한 사건에 이런 기준들이 적용되었음이 "똑똑한 변호사들에 의해" 부지런히 환기되고 "발견"되는 게 미국의 사례입니다. 여기서도 범인 하나를 단죄하기 위해 치열한 논쟁과 방대한 선례들의 인용이 법정에서 행해지고, 그 복잡한 논쟁 과정을 지켜보며 배심원들이 평결을 이룹니다. 미국 대중 문학의 어떤 장르물이라도 "유어 아너!"를 외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보는 재미에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배심원단 중 한 명의 여성은 몇 년 전(또 몇 년 전이군요) 알렉스에게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입니다. 이 여성이 환자가 된 데에는 또(!) 그녀의 변변치 못한 생부가 한몫을 했다는 사연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라피스트를 찾아오는 것도, 세라피스트의 과거가 이런 사람들과의 접촉과 그로부터 파생된 인연으로 채워지는 건 너무도 당연하겠는데, 아무리 그렇다 쳐도 좀... 아니, 아니죠, 이런 피곤한 생을 살아야 하는 닥터 디를 우리는 동정할 일입니다.

사람 보는 데에 기막힌 안목이 있는 직종이라면 뭘까요? 택시기사? 매춘부? 아니면 개업의들? 닥터 디 같은 세라피스트? 다들 만만치 않겠으나 여기서는 잠시 어느 바텐더 한 명이 등장하여 알렉스 델라웨어와 갑론을박을 벌입니다. 이들 직종 모두 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저 생계를 위한 수입만 올리는 게 아니라 사람 보는 안목, 혹은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를 어느 정도는 터득할 이점 비슷한 게 있습니다. 허나  본인이 옹색하고 좁은 소견에만 사로잡혀 사는 타입이라면, 제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아 봐야 여전히 자기 세계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는 게 당연합니다.

연쇄살인마들은 비뚤어진 과잉 자의식 때문에 희생양들을 살해하며 일관된 족적을 남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고독하게도 자기 힘만으로 범인을 추적하던 알렉스(환자도 덜 받겠다, 이제는 아예 직업 탐정으로 전업하는 게..)는, 이 권에서 뒤에서 지원만 하는 듯한 마일로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듣습니다. 여튼 거리에서, 수상한 건물에서, 비협조적인 증인들에게 시달리며 진상을 캐는 건 그의 몫입니다. 그가 여자들과 노닥거리며 작업인 듯 진지한 호기심인 듯 느끼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보다, 이처럼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신변에도 큰 위험을 접하는 그의 모습이 훨씬 더 신뢰가 가며, 동시에 책장 넘기는 재미도 한층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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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Love - Jonathan Kellerman | YES24 파블미션(舊) 2017-07-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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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Bad Love

Jonathan Kellerman
Ballantine Books | 200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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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잡을 수 없는 기괴한, 그리고 으스스한 어떤 일련의 사태가, 그것도 내 신변에 벌어졌을 때, 그 근원이랄까 배후는 여러 방식으로 캐어갈 수 있겠습니다. 허나 이건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지금 이 델라웨어 시리즈 여덟번째 권 속에서처럼 소름끼치는 사건이 연달아 자기 주변에서 터지면 누구도 침착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대부>에서도 그 담대하고 냉혹한 사업가, 영화 제작자인 월츠 씨가, 애마의 잘린 머리통이 침대 시트 속에서 발견되자 바로 손을 들고 "(경멸해 마지 않던) 굼바" 측의 요구를 다 들어 주었지요.

우리의 주인공 닥터 디도, 첫째 권에서 반성과 자괴감, 실의에 가득차 은거 모드에 들어갔던 걸 제외하면 대체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침착성과 잘 작동하는 이성을 유지하는 편입니다. 혹자는 여태 내내, 닥터 델라웨어가 어디까지나 국외자로서 간여하게 된 사건을 만나(직접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관할 경찰입니다), 피해자나 실종자를 돕기 위해 진상을 캐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위협에 직면하기만 했지, 직접 그를 겨냥한 범죄 시도나 협박은 없었다고도 합니다만, 다시 첫째 권을 읽어 보신다면 그 역시 사건 때문에(워낙 오지랖이 넓다 보니) 신상에 위험을 느끼거나 문제의 인물로부터 대뜸 방문(...)을 받거나 해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땐 거대한 본격 음모의 목표물이 된 건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여튼 얄미울 만큼 침착한 닥터 델라웨어(겉으로 태연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수명이 단축될 만큼 노심초사하는 돌팔이 엉터리 소심쟁이와는 크게 다르죠)는 이 권에서 비로소 본격적인 "직접" 위해 시도에 직면합니다. 명시적으로 해치겠다는 메시지가 포함된 건 아니지만, 정체 모를 범인에게서 전해지는 파편 같은 전갈은 그의 "과거" 중 심각했던 몇 가지 사건을 분명히 연상시킵니다만, 앞에서 말했듯 워낙 그가 끼어든 사건(상당수가 해결에 큰 기여를 한)이 많다 보니 분명한 연계를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리뷰들에서 제가 닥터 디를 두고, 20대를 불꽃처럼 연애 사업에 헌신했던 것 같다고 했는데, 이 권에서 비로소 "꼭 그렇지만도 않았음"이 밝혀집니다. 우리가 여태 확인한 대로, 그는 학창 시절의 전공으로 이처럼 생계를 유지할 만큼 학문적 지식이 탄탄한 엑스퍼트인데요. 15년 전 그가 공동 주관한 어느 세미나(그 젊은 나이에 학계 활동도 열심이었음을 간접으로 알 수 있죠)에 참여한 인물들이, 뭔가 연쇄적으로 위협을 받거나 (혹은 가해자 중 하나가 숨어 있든가), 자신이 겪는 지금 이 기분 나쁜 소란, 테러와 관계 있음을 감지한 겁니다. 또, 게이 형사 친구 마일로의 도움으로, 몇 년 전 시차를 두고 발생한 미제 살인 사건과도 뭔가 연관이 있음에 (이들 친구가) 의견 일치를 보기도 합니다. 이렇다고는 하나, 애써 찾아낸 단서나 사건들이 외견상 전혀 동떨어져 있다 보니, 치밀하고 노련한 이들에게도 진상 전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알렉스 델라웨어는 여전히 청소년, 아동들, 그 중에서도 여자애들과 능숙하게 소통하는 모습입니다. 미국이나 여기나 아비 구실 못하는 못난 중년 사내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행패를 부리다 범죄로까지 비화하는 일은 (유감스럽게도) 자주 발생하는데, 여기서 닥터 디는 끔찍하게 엄마를 잃은 소녀 티파니, 이블린에게 특유의 유효하고 친절한 상담 솜씨를 뽐냅니다(말이 그렇다는 거고 그가 뽐내는 성격은 물론 아니지만 우리 독자들에게는 겸손한 제스처마저도 왠지 좀 그렇군요). 닥터 디는 (솔직히 티파니 자매 케이스가 이 책에 나와서 우리 독자들도 그리 끌려가는 거지, 이 사건과 딱히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현재 수감 중인 이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혐의점을 두기도 합니다.

제목의 "배드 러브"는 알렉스에게 배달되어 온 소름끼치는 아이의 비명소리 녹음에 함께 담긴, 역시 기분 나쁜 노래에 실린 수수께끼의 구절입니다. 사랑은 분명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내밀하고 존중되어야 할 감정이며, 동시에 필멸의 존재로서 한계를 뛰어넘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는 동기이자 동력입니다. 헌데 "나쁜 사랑"이라니, 겨냥한 방향이 사악하거나 그 방법이 잘못된 애정 말고, 이 세상에는 오히려 재앙의 원인이 될 법한 "나쁜 사랑"이 얼마든지 있긴 합니다. 책을 덮고 착잡한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우리들 역시 자기딴에는 순수하다 여기며 간직하거나 표현하는 사랑이, 이기적인 음욕이나 미친 집착과 과연 얼마나 차별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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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My Reviews & etc 2017-07-2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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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저/이상희 역
추수밭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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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짧다고만 할 수 없는 356페이지의 책을 내내 유쾌하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나니 약간 비장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은 태초의 빅뱅, 지구의 탄생, 300만 년 전 처음 등장한 "우리와 같은 외모를 한" 조상들, 7만 년 전에 처음으로 네트워크 방식으로 전략을 짤 수 있는 뇌를 갖게 된 인류의 등장, 1만 2천 년 전 농경 혁명을 통해 처음으로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계기 등에 대해, 짧지만 논의 체계 전체를 잡는 언급을 한다는 점에서 빅히스토리론과도 한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서의) 문명과 역사에 대한, 즐거우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의 이야기들입니다. 한편으로, 문명사 전반에 대한 통합적 시야를 바탕에 깔고 있기에, 우리 시대의 사상가나 지적인 기여자들, 예를 들면 레이 커즈와일,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저자의 친한 친구라며 본문 중에 몇 번이나 자랑삼아 거명되는) 유발 하라리 등의 관점도 적정 수준으로 서술에 녹아 있습니다. 친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하라리의 주장 중 상당수가, 선사 시대와 먼 미래를 보는 저자의 문명관과 논점을 같이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 혹은 역사를 요약해서 들려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부분의 에세이나 대중서 들은 연대기순을 따르곤 합니다. 이 책은 그렇지 않고, 개요, 결정적 전기(轉機), 도시, 영웅론, 악당들(영웅과 종이 한 장 차이), 발명(기술론), 말의 힘, 사상, 예술 등으로 토픽을 나눕니다. 역사를 파악하는 여러 시야, 개념, 화제 등을 통해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총체적 모습을 바라보자는 건데, 이런 개성적인 편제는 다른 책에서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개별 챕터도 흔히 보는 역사 개론서와 달리, 저자가 관심을 갖거나 큰 비중을 둔 주제 중심으로 매우 자유롭게 전개됩니다. 대부분은 품격 있는 말투에 담긴, 우리 동시대인들이 공유할 만한 보편타당한 상식적 결론, 문화 상대주의, 양성평등, 물질주의 배격,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적 시선, 미래지향적 사고, 관용과 포용을 중시하는 평화주의, 반(反)부시- 반 트럼프 주의(ㅋ) 등의 기조입니다.

저자는 휴양지에 가족과 함께 놀러갔던 체험을 화제로 꺼내며 책 서두를 엽니다. 틴에이저를 둔 평범한 아버지(사실 그렇지는 않은데, 이유는 리뷰 끝에서 밝히겠습니다)로서 그는, 역사적 장소에 관광을 와 현지의 유적과 호흡하며 실물과의 감개어린 만남 자체를 만끽하기보다, 자기가 여길 다녀왔다는 흔적을 인스타에 올리기 바쁜 자녀들을 보며 많은 상념에 젖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 서문에서 이어가는 상념은, 우리들 인류는 얼마나 많이, 큰 폭으로, 현재(현재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라며 회의적인 태도입니다)와 달라질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책 본문 중에서 "그래도 우리들 조부 세대는,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예측이 가능한 시절이었다."라며, 변화 자체가 존재의 본질을 위협하는 조짐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리뷰 맨앞에서 말한 것처럼 책 대부분은, 우리가 대중 역사서에서 익히 접해 온 다양한 사건들을 놓고 저자만의 시원시원한 분석과 평가를 내리는 재미에 읽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 문단에서 얘기했지만, 저자의 역사관은 인간 본성에의 불안한 통찰과 옅은 비관주의에 어느 정도 손이 닿는 성격입니다. 이 때문에 브라이슨의 저작들보다는 심각하게 읽히고, 문장은 더 우아합니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더 늦게 알아차린다" 같은 그의 견해는, 대체 무엇이 역사 근본을 바꿔 놓은 결정적 계기이며, 어디까지나 그저 우연의 장난인지를 두고 제기되는 오래된 질문에 대해 우리 동시대인으로서 현대적 감각과 체험이 더 반영된 해답에 가깝습니다. 이사야(아이자이어. 이하 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 벌린 경, 로버트 그로세테스테(그로스테스트), 헤겔,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기까지 그가 신뢰를 보내거나 깊은 영향을 받은 사상가, 역사가들은 속한 시대도 다양합니다(제 생각엔  E H 카도 언급해 줬으면 했는데요).

시리아에서 발흥하여 한때 근동의 제국을 형성했던 제노비아 여왕에 대한 저자의 열렬한 지지와 선호도 눈에 띕니다. 탈 서유럽, 탈 남성 등 여러 관점에서 좋은 토의 소재를 제공해 주는 사례이겠는데요.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실제 인물의 행적에 낀 거품과 신화를 과감히 제거하며(예: 그녀의 최후는 전쟁터의 죽음이나 포로로 잡힌 후 신전에 바쳐진 제물 처지가 아닌, 좀 깨지만 로마 원로원 의원과의 결혼 후 교외에서의 안락한 거주로 장식되었다), 위인을 평가할 때도 정확한 그의 행적과 영향까지만을 기준으로 삼자고 합니다. 이런 관점은 책 부록으로 실린 "잘못 알려진 상식" 여러 꼭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우리 독자들이 눈 크게 뜨고 볼 만한 대목은, 대체 위대한 영웅과 저주받을 악당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혹은 있어야 하느냐를 놓고 저자가 (적어도) 두 챕터에 걸쳐서 개진하는 지론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통속적인 이유에서도 재미가 나게 마련이죠. 저자는 실제로 히틀러 체제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망명 생활까지 했던 집안 출신인데요. 그래서인지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매우 긴 분량을 할애하여, 책의 여러 대목에서 자세히 논합니다. 물론 히틀러 개인에 대한 증오나 단죄보다, 그의 사례를 통해 역사 전체가 어떻게 합리적으로, 비판적으로 재정립될 수 있느냐는 데에 무게중심이 놓입니다.

"세계정신은 무엇이며 위대함의 본질을 규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헤겔은 일찍이 "구태와 현상을 깨뜨리는 일체의 도약과 결단" 정도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기준에 의하면, 지옥과도 같았던 경제 공황과 국가적 열패감을 한순간에 떨쳐 버리게 한 히틀러가 정면으로 "위대함"에, 난감하게도 해당됩니다. 허나 저자는 망설이지 않고, "편협한 증오에 의해 추동되는 행동과 철학, 배금주의, 유대인은 물론 동족까지 혐오한 변덕스럽고 관용 없는 정신" 등을 거론하며 위인의 반열에서 히틀러를 끌어내린 후 준엄한 단죄를 시작합니다(거듭 말하지만 저자는 직접 피해를 입은 집안 출신이란 점에서 개인적 동기를 유대인들과 달리할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하고도 친구?ㅋ).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 3세 같은 이는 어떠한가? 여기에 대해 "자기 중심 과대망상, 근거없는 낙관주의, 선민사상, 대량 학살 책임" 등을 들어 저자는 (히틀러만큼은 아니라도) 역시 결격 판정을 내립니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당대의 기준으로 분명 패배자에 불과했는데도 이후 역사를 통해 영원한 영감과 각성의 근원으로 군림한 예수, 사도 바울이라든가, 인간에게 자유의 의미를 깨우친 모세 같은 인물들입니다. 혹은 구체제의 완강한 지배에 맞서 양심과 정의감, 용기의 가치를 일깨운 마르틴 루터, (저자의 표현으로, 그와 이름이 같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등을 꼽습니다. 시선이 서양에 꼭 편중된 건 아니라서 예컨대 기독교와 불교의 좋은 점만 한데 모아 잠시 중근동에서 큰 인기를 끈 마니 교의 가르침도 옹호합니다.

여기서 저자 특유의 비관주의가 눈길을 끄는데요. 그의 말에 따르면 왜 이런 좋은 종교가 한때의 흥성에 그치고 이후 장기적으로 발전할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는지, 이것이 바로 역사의 맹목성이나 무작위성을 반증하는 대목이 아닌지 하는 것입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책 본문은 맥베스의 한 대사를 통하여, 인생은 별 것이아니고 무대 위의 백치처럼 의미 없는 분노와 헛소리를 떠들다 짧은 생을 마감할 뿐이라는 인용으로 마무리됩니다. 책에는 시애틀 추장의 유명한 항복 연설도 나오는데, 이 역시 비관주의와 허무주의를 진하게 표현한 내용이죠.

저자는 앞서 헤겔을 잠시 언급하며, "그는 슈투트가르트 출신 중에 우리 누나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라며 재담 섞인 소개를 합니다. 그 누나라는 분은 이제는 초로에 접어든, 한때 엄청난 과소비와 기행, 도도한 매너와 미모로 전세계적 화제가 되었던, 투른 운트 탁시스 공령의 어르신인(부군 요한네스 공은 일찍 타계) 글로리아 폰 쇤부르크입니다(물론 결혼 후에는 시가의 칭호와 성을 쓰죠). 시집을 잘 가셔서 존귀한 신분이 되셨는가. 그건 전혀 아니고 본래 유럽 역사책 읽다 보면  신성 로마 제국 관련해서 결정적 대목마다 잘 등장하는 쇤부르크 가문이 바로 이 저자와 그 누님(아홉 살 차이) 집안입니다(투른 운트 탁시스 가에 비해 명성, 재산 양면에서 별로 안 꿀립니다. 프린스와 카운트라는 형식상 위계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글라우샤우 계의 현재 당주 신분인, 유럽에서 손으로 꼽을 만큼 귀한 백작 가문의 어른이 이 책 저자 본인이죠. "폰"도 이만저만 폰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유럽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은 명문가의 후손이 집필한, 역사에 대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읽어 보면 뭔가 느낌이 좀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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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My Reviews & etc 2017-07-2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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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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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가리켜 존재의 집이라고 부르는 입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고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감흥을 받는 일체의 기제가 다 언어 속에 이미 근본의 틀을 마련한단 뜻입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보면 "설령 어떤 민족이 자존과 독립을 잃는다 해도, 그 언어만은 간직할진대 수인이 감옥의 열쇠를 맡아 둔 것과 다름없다"고 한 대목이 있습니다. 특히 다른 민족에 의해 일시 주권을 잃고 민족 문화를 말살당할 뻔한 우리로서 큰 공감을 보낼 수 있는 지적입니다.

어떤 분은 그런 말씀도 하더군요. "라틴어, 흐르는 맑은 샘물과도 같은 언어이다. " 이 말 안에는 많은 뜻이 숨어 있겠으나, 다양한 격변화를 통해 명확한 뜻을 표현하고, 그 말과 글을 배우는 동안 평범한 머리도 공부에 최적화한(이 책 중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두뇌로 변환시켜 준다는 뜻에서, 어쩌면 맑은 물이 탁한 물체를 씻어내듯, 발화와 학습 과정에서 우리의 흐린 정신을 맑게 바꿔 준다는 의미도 들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잘 다듬어지고 도덕적인 영혼을 지닌 저자의 맑은 말씀 덕분에 더 타당한 말씀처럼 들리는 건지도 모릅니다.

p39에 보면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산스크리트(संस्कृत)의 '밤에 흐르는 물처럼 모호하다'는 뜻에서 인도-유럽 어족의 no, not 등이 파생되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न(나. na)만 보았다' 등으로 고대인들은 표현하였다.(여기 대해서는 이설도 있음)" 이래서 저자분처럼 뛰어난 학자의 수업은, 그 자체가 인문의 아름다운 연쇄 파장이며 인생에 대한 차분하고 잔잔한 관조일 듯합니다. 하나를 알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만물의 이치에 대한 설명으로까지 완성되는 거죠. 저자는 말합니다. "엄격한 문법에 따라 의미를 형성하는 라틴어는 그 어느 말보다도 수학적인 언어이다."

Quae sunt Caesaris Caesariet quae sunt Dei Deo

그 유명한, "캐사르의 것은 캐사르에게.... "의 라틴어 구절이죠. 기독교 신약의 원문은 헬라어로 되어 있으므로 아주 큰 의의가 있는 문장는 아니지만, 저 예를 통해 영어 등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라틴어 관계대명사의 용법이라든가, 속격이라든가, 여격의 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Beispiel이긴 합니다. 저자 한 교수님도 수업 중에 그런 항의를 듣기도 하시나 봅니다. "왜 특정 종교에 관련된 말씀을 하시죠?" 거참... 서양 문화 자체가 특정 종교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모태로 삼아서 예까지 발전해 온 건데, 종교를 따로 떼어놓고는 문학이든 철학이든 논의가 불가능하죠. 저런 학생의 태도는 중립 지향이 아니라, 본인의 소양 편협, 강박적 거부감을 드러내는 겁니다. 하물며 라틴어는 고대에 사멸한 후 수도원이란 인큐베이터에서 가까스로 생존해 온 셈인데 말입니다.

여튼 이 대목은 세속의 일과 천상의 일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지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입으로 친히 비교적 명확한 답을 내려 준 대목입니다. 저자께서는 이 대목을 놓고, 정교 분리의 의의를 거론하십니다. 반면 그 바로 앞 대목에서 사도 바울의 "국가의 권위는 신이 세워주었으므로..."의 말을 인용하는데, 저자는 "오히려 신학히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p98)"고도 평가합니다.

라틴어에서 가장 신기할 만큼 두드러지는 특성은 바로 관사류가 없다는 점입니다. 신학교에서 많은 이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고전 헬라어의 경우 매우 복잡하게 정관사, 부정관사가 발달해 있죠.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산스크리트도 라틴어처럼 관사류가 아예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명쾌하게 해명된 바가 없는데, 저자는 "... 이후 유럽어에서는 관사가 다양하게 발달하여 명사의 성과 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엄격한 어순을 통해 격도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격변화를 이루는 관사가 있으면 어순이 꼭 엄격할 필요는 없으나, 여튼 독일어는 어순도 엄격하긴 합니다. 라틴어는 반면 명사의 격변화가 워낙 뚜렷해서인지, 세상에서 가장 어순이 자유로운 언어죠. 이는, 조사와 어미의 도움을 받은 한국어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언어는 그를 말하는 사회의 범절, 관습도 투영하는 그릇입니다. 저자는 이 책 여러 대목에 걸쳐, "한국어가 참 거칠다", "나이와 지혜가 정비례라도 하는 양 권위를 내세우다가, 취업 경쟁 앞에서는 한 살이라도 줄이려고 애쓴다" 처럼, 언어가 거울처럼 반영하는 한국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저자는 이어, 이탈리아어나 독일어에서처럼 처음에는 일단 예의를 차리다가,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면 duzen처럼 편안한 투로 바꾸는 관행이 합리적이지 않냐고 독자들에게 제언도 합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수평적 언어화라 명명하는데, 이 역시 라틴어의 영향이 짙게 배어난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라틴어에 완곡어법, 접속법, 정중 화법 등이 발달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정복을 받은 점령지에서조차 이런 영향이 언어 속에 파고들었다는 뜻입니다. 검토가 좀 필요하죠.

p183에 보면 이탈리아어 "티라미수"에 대한 재미있는 분석이 나옵니다. su는 이탈리아어 전치사이며, up 같은 뜻을 담았다고 하시는데, 프랑스어의 sus도 같습니다. 이 책은 전체에 걸쳐, 왜 공부가 인간 정신을 속박해야 하는가, 자신만의 숨겨진 자질을 마음껏 계발하는 게 생의 본질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자유로운 상상이 곧 인간의 해방이요, 문화의 발전을 촉진하지 않는가 같은 주장을 폅니다. 그래서 책의 첫 장도 "Prima schola alba est"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왜 "희다"라는 뜻이 "휴강"이 되냐 하면, alba=희다=비어 있다=blank로 연관시키면 될 것 같네요.

p237에 보면 malus는 그리스어의 μῆλον 어원을 가지는 것도 있고(멜론이 원래는 사과를 뜻했다는 게 재미있죠. 지금은 엉뚱하게 변했지만), μέλας라고 검다, 사악하다의 어원을 가지는 것도 있죠(멜라닌 색소라고 할 때 그것). 그 다음에 상당히 재미있는 주장이 나오는데, 십계명의 여섯번째와 영어의 six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독자는 신중히 이 대목들을 읽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책에는 한일월드컵 당시 8강전의 결과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저자께서 시험을 못 볼 뻔한 사연도 나와 있습니다. 읽으면서 머리가 아찔했는데요. 원 문명국가에서 이런 일이 다 벌어질 수 있나. 이런 한심한 사람들이 학사관리를 하는 학교의 업무 결과를 사회가 어떻게 신뢰를 할 수 있나 하는, 근본적인 신뢰의 붕괴에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저는 라틴어 하면 대뜸 떠오르는 분이, 역시 같은 서강대에 재직하셨고 최초로 비 외교관 출신으로 바티칸 대사에 임명되신 성 염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임명하신 분이었는데요. 그분의 저서도 인간의 자유, 보편적 가치, 해방에 대한 염원이 책 가득 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딱딱하고 엄격한 라틴어 때문에 자살에 이른 소년의 아픈 사연이 담긴(이 책에도 여러 스트레스가 많으셨는지, 건강 때문에 일정 기간 사목을 못하셨든가, 자살에 대한 상념도 여러 번 피력되는 등 좀 심각한 술회가 많이 보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와는 달리, 한동일 교수님처럼 학생들을 푸근히 품어 주시는 스승만 있다면 세상이 보다 따스한 온기로 작동할 것 같기도 합니다(물론, 공부 같은 건 스스로 알아서 해야겠지만). 이 책의 완독을 마친 지금, 유독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르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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