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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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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전 - 오함 著, 박원호 譯 | My Reviews & etc 2017-09-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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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주원장전

오함 저/박원호 역
지식산업사 | 200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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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도 공산당 외 전국 조직망을 갖춘 단체가 등장하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탄압하지만, 지난 역사를 보면 과연 신경을 곤두세울 만도 한 게, 시스템의 대 변전은 반드시 기층 민중이 자발적으로 뭉쳐 세운 유사 종교(사이비 신앙)의 결집, 봉기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읽은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인 <큰비>를 읽고 쓴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선 숙종 연간의 그 정변과도 매우 유사한, 한참 후 청 제국의 수도 베이징 자금성 주변에서 일어난 그 기괴한 사건이, 얼마나 청나라 황실의 위신 추락에 큰 몫을 했는지 모릅니다. 백련교도의 난 역시, 광대무변한 영토와 그 영토조차 인구압을 못 견뎌할 만한 숱한 백성을 경영하는 데 실패한 원 제국의 무지몽매한 처사를, 격렬히 응징하려 분연히 일어난 농민들의 필사적인 저항이었습니다. 원은 이들 농민, 종교 결사에 의해 축출되었다기보다, 그 전부터 내부의 지리멸렬상, 자충수, 부패, 분별없는 막된 경영 등의 이유로 스스로 파탄을 맞았습니다.

홍건적은 처음에야 종교 결사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자경대, 참칭 치안 유지 세력 등 성격을 여러 번 변모시키다, 토착 지주 계급과 손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중국 공산당식 관제 역사 해석으로 매끄럽게 설명이 안 됩니다. 이 이른 단계에서 봉건 신분 질서, 경제체제를 전면 해체하려 들었다면 아마 시스템 전체가 붕괴했겠고, 이 과정에서 찾아든 혼란을 틈타 또다시 유목 민족이 남진하여 제2의 정복왕조가 개창되었을 겁니다.

농민 입장에서도, 생산 질서와 기초 치안, 공동체의 인륜이나 온전될 수 있는 체제를 원했을 뿐이었겠죠. 주원장이 신속하게 시대의 요청에 대한 정확한 실체 파악 후 복고풍의 유교 질서를 표방한 게 결국은 민심 수습의 비결이었습니다. 요악하면, 지주와 손을 잡고서 오히려 대세를 장악했다는 대목에서, 농민과 향신층의 이해가 대립상이 아니었음이 증명됩니다. 농민의 적은 지주가 아니라 "무질서, 약탈"이었던 거죠. 주원장이 유방만큼 기층 민중과 지배층으로부터 사랑 받았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만, 적어도 지주들에게는 최소한의 신변, 재산에 대한 보장이 주어졌고(산적 출신의 지도자가 내세운 정책이라는 점에서 꽤나 역설적입니다. 여튼 지켜지긴 했으니), 농민들에게는 탐관오리의 학정으로부터 세심한(때로 통쾌한) 보호가 베풀어졌으니 위와 아래의 마음을 공히 사로잡은 노련한 정치가, 농민 출신 창업자였던 그에게서 나온 셈입니다.

수, 당 등도 선진(先秦) 시대부터 내력이 있던 지명이고, 임의로 글자를 골라 창업자가 붙이거나 새로 고안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러던 전통이 쿠빌라이칸에 의해 깨어졌고, 주원장은 본디 한미한 출신이니 조상이 분봉받은 어떤 연(緣)을 내세울 근거도 전무했습니다. 하필 명교의 떳떳지 못한 연상과 맞닿은 이 글자 명(明)을 국호로 고른 과정에 대해, 책은 그 나름의 설명을 베풉니다.

주원장은 현명하고 품성이 너그로웠던 마황후와의 멋진 인연으로 더욱 그의 삶이 풍요로워진 경우입니다. 간단치 않은 온갖 곡절이 다 개입했던 그의 인생에, 마황후 같은 후덕한 여인이 균형을 잡아 주지 않았던들 이 성마르고 불안한 사내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불길한 전환을 맞았을지 아무도 모를 만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한 고제 유방과는 이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확실히 남녀의 성격상 궁합은 외부에서 관측할 수 없는, 미세하게 숨은 차원이 있고, 이 작은 부분이 운명의 거대한 향방을 결정할 만큼 큰 기능을 행한다는 게 특이하죠.

이 책은 제가 전에 리뷰한 소설과 저본이 같은 듯 보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은 사료 중심으로 인물의 생애에 대한 객관적 조명과 추적에 중점을 뒀고, 그 책은 역자분이 윤문, 내용 보충, 상상력 발휘 등의 개입으로 보다 소설(거의 대하 소설)에 가깝게 내용을 늘렸다는 데에 있습니다(역자분이 다릅니다. 이 책은 박원호 선생, 그 책은 정철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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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스타강사 쭌샘의 혼공 영어 학습법 | My Reviews & etc 2017-09-2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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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혼공 영어 학습법

허준석 저
꿈결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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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강사 레벨의 실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려면 어떤 공부 방법, 혹은 학력 이수가 필요할까요? 뭘 어떻게 실력을 쌓고 체험을 쌓아야 입에서 말이 술술 나오고 흠 없는 유려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지는 많은 이들에게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 저자 허준석 강사님은 특목고 출신도 아니고, 어려서 조기 유학을 다녀온 경험도 없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들 다수가 겪은 어학 연수는 마쳤지만, 우리들 중 역시 다수는 "과연 그 정도로 영어가 ...?" 같은 의구심, 자신감 결여를 만성적으로 겪고 살죠. 그런데, 현재 허준석 님은 EBS 최고 인기 강사 중 한 분이라고 합니다. 저도 EBS를 자주 볼 일은 없어서 얼마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분인지는 모르지만, 여튼 많은 학생들이 그 선생님 강의가 최고이며 성적 향상 효과를 봤다고 소문이 자자하다면, 성공한 인생임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영어 구사 능력에 있어선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아닐까요?



외국어는 십대 초중반에 그 압도적인 사용환경에 네이티브와 함께 노출되어야 안정적 실력이 갖춰진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힘들다는 게 중론인데, 어떻게 하면 "혼자(책을 읽어 보니 완전히 혼자는 아니셨으나, 여튼 이 정도면 독학으로 늦은 나이에 마스터한 영어 도사님이 된 경우로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공부해서(즉 혼공), 영어를 잘 할 수 있을지, 이 허준석 님의 진솔한 자기 고백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허준석쌤은 학창 시절 특별히 공부를 잘하던 학생도 아니었고, 대부분은 조용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던 타입이었나 봅니다. 그러던 그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성격도 활달하며 세상을 자기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듯 의욕과 자신감 가득한 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건, 바로

"영어를 즐기게 되고부터"
라고 하시네요.

사실 영어뿐 아니라 사람이 무엇 하나에건 몰입하고, 사랑하고, 집중하여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눈빛도 달라지고 자존감도 생기는 게 보통입니다. 영어 실력은 대한민국에서 취업, 업무 수행, 비전 설계, 대인(對人) 응대 등 여러 분야에서 핵심적으로 대접 받는 기능입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쓰고 못 쓰고에 따라 그 사람이 활동, 참여할 수 있는 범위와 레벨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영어를 못 하면 심지어 출신 집안까지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다 있을 정도입니다. 사회에 대해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아도 영어 능력만은 "그까짓 스펙"이라며 함부로 폄하할 수 없죠(그런 사람은 꼭 일찍 퇴사하여 갈 곳을 마련 못하고 떠돕니다).

대개 이런 분들이 입시 칠 때에는 수학 때문에 엄청 고전하죠. 그래도 다른 과목 점수는 꽤 나온 편이었는지, 재수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사범대(영어 교육과)에 지원해서 합격하셨나 봅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건, 어차피 사회 나가서 한 가지 적성에 올인하여 성공을 꿈꾼다면, 정말 자신이 애착을 갖고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는 한 분야에만 집중해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영교과에 들어가보니 역시 특목고 출신, 조기 유학파 출신 등 다양한 배경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실력(정확히 알 수야 없으나 최소한 발음이라도 멋지게 들리는)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학생 쭌샘이 눈길을 돌린 건 어학연수였습니다. 부모님께 천만원을 타서 바로 캐나다 등으로 향했는데, 호리호리한 체구의 그가 난생처음으로 말도 안 통하는 벽안의 외국인들 틈에서 부대낄 마음을 먹은 자체가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겨우 그걸 갖고?" 근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자신을 던질 마음을 먹는 자체가(상황에 떠밀려서가 아닌 자발적 결단으로) 쉽지를 않죠. 이분에게는 이런 결심과 체험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게 틀림없습니다.

영어에 대한 열정과 취미 하나를 동기로 삼고, 그는 현지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슬랭이나 문맥, 뉘앙스를 열심히 파고 들었습니다. 영어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정이나 생각이 자발적으로 언어가 되어 입으로 튀어나와야 합니다. 술먹다가 얼굴을 크게 다친 어느 여학생을 병원으로 자신이 앞장서 이송했고, 이 과정에서 간호사들에게 "어쩜 그렇게 말을 잘 하냐"며 칭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침착한 대응에 대해 동료 학생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인간적으로 확 성장하는 계기가 이런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영어 구사에 대한 자신감이, 어른으로서 성숙한 행동과 사회적 인정에까지 결합된, 성장 체험을 적정 단계에서 맞이하는 행운은 결코 흔치 않습니다. 이제 그는 주변의 존경과 선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이때의 짜릿하고 뿌듯한 느낌이 "영어 실력"과도 연결됨을 내면 깊숙히 자각하게 된 겁니다. 남들 죽을 맛으로 공부할 때, 그는 인격이 완성되고 주변에서 인정받던 행복한 체험을 연상했으니 능률이 남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처럼 낯선 환경에서 타인들과 잘 어울리고 적응을 잘 해나가는 태도가, 어린 시절의 풍요로운 환경에 기인한 바도 크다고 봅니다. 남들의 장점을 시샘하고, 왜 자기 생각대로 안 되었을까 원한을 곱씹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객관적으로 시인 안 하고 고립된 세계에서 우기거나 왜곡하고, 비열한 뒤통수나 치면서(머리가 워낙 나쁘기에, 고작 이런 짓으로 보상을 찾습니다) 썩은 자아를 위로하는 습관이 붙은 이라면, 이런 즐거운 모험을 할 생각을 못할 뿐 아니라 그로부터 뭘 배워나가지도 못하고 언제나 그자리에 머물거나 퇴행합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거죠. 저자 준쌤은 그와는 정확히 반대 지점을 이루는 인성을 지녔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사람이 마음에 응어리진 바가 없으면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이든 그의 장점을 취해서 내 것으로 만듭니다. 영어 공부뿐 아니라, 사람이 성장을 위해서는 일단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게 다 이런 사례에서도 확인이 되죠.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자신이 표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쉽고 직관적이고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영작하거나 말하려면 어려운데 영어로는 엄청나게 쉬운 문장, 이런 걸 볼 때 우리 한국 학습자들은 절망한다고 쭌샘은 말합니다. 어떻게 극복할까요? 우리 주변에 널린 모든 문장, 영화 대사, 책 속의 한 구절이 다 선생님입니다. 그렇게 일상을 공부 교재로 만들어야, "일발장전, 즉시성"이 몸에 밴 네이티브로 거듭날 수 있는 겁니다.

적어도, 쭌샘은 알아서 작동하는 호기심과 열정과 학습 기제를 통해 그렇게 배운 분입니다. 천만원 아니라 수십 억짜리 유학을 해도, 열정 없는 좀비 같은 마인드로 시간을 보내면 돈만 날리기 십상이죠. 제 생각에는 일단 어학 연수 체험이 이분 인생과 경력에 primer를 마련했겠으나, 그거 아니라도 순수 독학으로 어차피 이분은 성공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왜? 인성에 긍정이 있고 열정이 있기 때문이죠.



p226을 보면 영어 공부에 고무줄을 활용하라는 팁이 있습니다. 이분뿐 아니라 영어 고수들, 강사님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그냥 입으로 염불 외듯 기계적으로 공부하지 말라는 거죠. 우리말과는 달리 영단어(뿐 아니라 상당수 인구어족, 외국어 일반)는 강세가 있기 때문에, 강세를 적절히 넣지 않고 flat하게 읊조리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상대가 알아 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영어도 이미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세를 넣을 때 고무줄을 함께 당기면 잘 안 잊힌다는 거죠.

이렇게 안 해도 바로바로 알고 잘 써먹은 이들은 두뇌가 남달라서 아닌가? 수학은 몰라도 영어는 끈기를 갖고 관습과 정서를 몸에 배게 해야 마스터할 수 있으므로, 머리 좋아도 초기의 능률만 믿고 중도에 그만두는 타입이라면 나중에는 뒤처집니다. 그런 사람(그건 타고나야 하니까 부러워한다고 뭐가 될 문제가 아닙니다)이 부러운 게 아니라, 이처럼 영어 구사가 생활이 된, 한때는 평범했던 쭌샘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닮으려고 노력해야죠. 단지 영어 공부 한 분야에 대한 진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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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자동차의 최전선 | My Reviews & etc 2017-09-2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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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친환경 자동차의 최전선

다카네 히데유키 저/김정환 역/류 민 감수
보누스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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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존, 탄소 에너지 사용 지양이라는 대의명분이 꼭 아니라도, 친환경자동차는 마치 그 가치추구를 외관으로도 상징한다는 듯, 척 봐도 친환경 컨셉임을 눈치챌 수 있는 기발한 모델이 많습니다. 환경 보호에도 동참한다는 뿌듯함이 느껴질 뿐 아니라, 어떤 분들은 그저 모양이 예뻐서 끌린다고도들 합니다. 최근 몇 년 간 저유가 추세가 이어짐에 따라 많은 분들이 경제적 부담은 줄었다고 하지만, 10여 년 전 유가가 불안정하게 등락을 거듭할 때 크게 이슈가 된 "연비"는, 이제 경제 상황 변화에 무관하게, 차를 고르는 필수 기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듯합니다. 내가 기름을 덜 쓰면 환경도 그만큼 깨끗해진다는 인식이 모두에게 공유된 덕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책 저자는 이미 관련 주제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전문가입니다. 그의 책은 자상하고 친절한 서술뿐 아니라, 자동차 공학의 제반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삼은 설명이 이뤄지기에, 차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마니아급 지식으로 관리하는(혹은 앞으로 어떤 차를 구매할지 전략적 설계를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왔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친환경 자동차의 최전선"입니다. 이 범주에는 (저자의 그간 일관된 철학에 따라) 전기자동차는 물론, 고연비 차량, 하이브리드 등이 포함되며, 만약 "도로 정체에 묶이는 일 없이 긴 연속 주행 거리를 가는(p23)" 운전자에게라면, 성능 좋은 디젤 차량이야말로 친환경 자동차라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괜한 죄의식을 유발하는 일부 저술가들과는 달리, 이처럼 다카네 히데유키 씨는 이념적 지향보다는 차 자체를 뿌듯하게 소유하며 즐겁게 굴리고 싶은 독자들에게 그들의 마음(다양한)을 헤아리고 관대한 시선을 유지하며 글을 쓰시는 개성이 돋보입니다.

연비 고려하고 지갑 사정 걱정하는 우리네들과 달리, 슈퍼카의 소유주들은 그저 파워풀한 성능과 눈이 아찔해지는 디자인 외에 다른 요소를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pp.60~62에 걸쳐 소개된 "라 페라리(이름도 너무 심플)"는  뜻밖에도 해당 회사에서 하이브리드로 시장에 내놓은 모델입니다. 전기자동차 모드(단, 모터만으로 주행하지는 않습니다)로도 30km 주행이 가능하다니 명실상부 친환경 컨셉이군요.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 수야 없지만 여튼 회사 측에서는 이런 모델도 해당 수요자 측(극히 제한된)에 어필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야심차게 출시한 거겠죠.

요즘은 "상성"이란 말을 여러 분야에서 쓰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pp.46~47에서 쓰는 용례는 "얼마나 서로 잘 맞는지"를 뜻하므로 정확하죠. 격투기에서 예컨대 "그 선수가 꽤 강하지만, 이상하게도 A선수를 만나면 상성이라는 게 있는지 맥을 못 춘다"고 할 때는 어의를 반대로 착각한 겁니다. 여튼 자동차 애호가들(뿐 아니라 컴퓨터 조립해서 쓰는 유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는 "특성을 탄다" 같은 관용어를 주로 쓰죠)은 부품 사이에 얼마나 이 상성이 좋은지도 면밀히 따지곤 합니다. 과연 모터는 자동차와 상성이 맞는 장치인가?(즉 오토바이 등에나 적합한 동력 장치가 아닌지, 전통적인 견해에 따라 의심을 제기해 보는 거죠)

흔히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더 빠르다는 착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속력("빠르다")과 가속도를 착각한 소치입니다. 저자가 이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설명하시는 것처럼, 전기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에너지 손실이 적게 발생하게끔 설계된 장치입니다. 모터는 오토바이의 예에서처럼, 발진할 때 얼마든지 강력한 가속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또, 회전수가 변화해도 회전 시간이 같으면 전력 소비에 별 변화가 없고, 토크 수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후진기어, 변속기 역시 전기자동차에는 필요 없기에, 상성이 맞는 단계를 넘어 구조의 진화까지도 이룰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취지입니다.

친환경 자동차 범주 전체가 아니라 하이브리드만 놓고 봤을 때, 마치 스마트폰이 그런 것처럼 모두(전용이든 병용이든) 비슷비슷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공기 저항을 줄이려 한 데서 비롯한 것입니다. 디자인이란 그저 꾸며 놓은 모양새이기만 한 게 아니라, 차가 구현하는 성능과 내적 개성의 압축적 표현이기도 하기에,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그 외관을 통해 어필을 못 하는 차는 이미 전체가 실패한 상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단 저자는 지금이 개발, 보급의 아직 미성숙 단계라 소비자들이 연비만 중시해서라고 볼 수도 있다며, 가까운 장래에는 외관 디자인이 보다 다양해질 것을 예측합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전기차만큼은 중국이 꽤 앞서갑니다. 실험(?)도 중소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데, 7, 8년 전 큰 논란이 되었던 게 주행음이 전혀 안 나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걸을 때 일일이 전후방, 측면 주시를 않아도 "차량 소음"을 통해 대개 정확히 속도나 방향 등을 반사적으로 예측하고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결정합니다. 소리가 안 나다시피하는 자동차는 그간 학습된 인간의 이런 행동 기제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죠. 현재 개발 방향은 의도적으로라도 소음을 삽입하자는 쪽이 아닌 걸로 아는데 당시에는 그런 논의도 있었습니다. 여튼 소리 역시 에너지의 변환 형태(p36)이므로(저자는 이처럼 기본 물리학 원리에 충실한 설명을 일관하므로, 책을 읽고 나면 뭔가 공부가 잘 된 느낌입니다. 팁 위주로 그때그때 찾아보는 책과는 다르죠), 개발자들은 이 장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마차를 자동차가 대체하던 시절만큼이나, 인간들이 알아서 적응해야겠죠.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빠를 것입니다.

고속열차는 20세기 후반 들어 신칸센이나 TGV, ICE 등이 발전시킨 교통수단인데, 제동을 걸 때 "모터를 발전기로 작동시켜, 이에서 얻은 전력을 다른 열차에 공급"하는 원리가 핵심 중 하나입니다(p82). 저자는 "전력 → 구동력"이 모터의 기능이며, 반대로 "구동력 → 전력"이 발전기의 기능이라고 도식화합니다(p82). 전기 자동차의 모터는 감속할 때 발전기로도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항으로 작용하기도 하므로 마치 화석 연료 자동차에서의 엔진 브레이크 기능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전기 자동차에서는 특히 배터리의 역할이 크고, 이 점을 이용하여 하이브리드 카에서도 엔진의 크기라든가 레이아웃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토막 상식이 책의 p152에 나옵니다. 여태는 자동차에 맞는 정격 엔진이 고정되다시피했지만, 친환경 구동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이처럼 꼭 기존의 틀에 맞출 필요 없이, 다양한 엔진이 자동차에도 탑재 가능해졌다는 점은, 또다른 절약과 효율성 제고를 유발하죠. 혁신이란, 이처럼 뜻하지 않은 지점, 방향에서도 연구자들을 언제나 기다린다는 게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건, 이처럼 인프라나 제반 상업 시설도 미비한 상태에서 왜 설익은 제품(암만 너그럽게 생각해 줘도, 연속주행거리가 그만큼 짧은 차라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하기에 부족하죠)을 내놓느냐 같은 점입니다. 가솔린 자동차는 물론, 이동전화 역시 처음엔 기능이 이모저모로 미비한 제품에다가도 소비자들이 성원을 보내 주어 초기 시장이 형성되고, 그렇게 힘을 얻은 제조업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진보된 제품 생산에까지 이른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휴대전화 초기에 우리가 어떤 불편을 겪었던지 생각 나십니까? 제 경우는 고속터미널이나 역사 근처에서, 셀 하나당 감당 할 수 있는 용량이 제한되다 보니 전혀 전화가 되지 않아, 이러려면 뭐하러 가입했는지 크게 짜증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충전도 쉽지 않고 오래 가지도 못하는 차" 역시, 앞으로의 모습이 얼마나 발전할지는 소비자의 애정과 관심에 달려 있겠죠.

4장은 연료전지 자동차를 다룹니다. 지구상은 아니고 우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흔한 원소는 당연 수소겠죠. 원자량도 낮고 구조가 단순하니 말입니다. 지구에서도 물이 (물 부족 국가도 있으니 완전히는 아니라도) 흔한 만큼이나 그 안에 원자 둘이 들어 있는 수소가 흔합니다(바닷물 이용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저자는 한국과 일본에 미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허나 중학교 화학 시간에도 배운 것처럼 전기 분해를 통해 수소(와 산소)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전기분해라는 게 결국 화석 연료의 연소를 통해야 하므로 완전한 친환경은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하며, 이 장벽의 극복이 여태 연료 전지 자동차의 개발에 관건으로 작용했다고 요약합니다.

p150에 그 원리가 잘 나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전기 분해의 역순으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키면 중성인 분자가 이온화하며 수소가 전자를 잃습니다. 이 전류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건져내는 게 "발전"인데, 누구나 짐작 가능하듯 너무도 큰 에너지 손실이 이 과정에서 발생하므로 비효율적입니다. 요즘의 공학상 큰 발견이 으레 그렇듯, 인접 분야에서 뜻하지 않은 성과가 하나 나와 영감, 연결의 원천 구실을 하는 식으로 기술상의 도약이 이뤄지죠. 저자는 "물 한 컵으로 하루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시대를 기분 좋게 예언하시는데, 아직 갈 길은 매우 멀어 보입니다.

얼마 전에 폭스바겐의 소위 디젤 게이트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만, 여전히 디젤차의 수요도 당분간 주류를 형성하겠으므로 이 분야의 혁신도 필요합니다. 저자는 1) 연소 상태를 조절하고, 2) 미립자 필터로 미세먼지를 처리하는 "후처리 프로세스"를 잘 해결한 모델들을 두고 "클린 디젤"이란 (다분히 역설적인) 이름을 붙입니다. 디젤차는 "강하지만 느린 차"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저자는 "일단 힘이 좋다 보니, 변속기의 기어 비를 낮추는 방식으로" 가솔린 차와 같은 속력을 낼 수 있다며 기본 원리에 충실한 설명을 합니다.

바이오매스란 말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만약 디젤을 이 바이오매스로부터 바로 추출해낼 방법이 개발되면, 디젤이야말로 친환경의 첨단에 선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연료로 자리매김하겠죠. 이처럼 우리가 "시커먼 연기"로 대표되는 환경 오염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은, 꼭 전기식이다, 연료전지식이다 같이 일정 방향으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시야를 넓히고 사물을 보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마음을 가질 때, 부와 명예도 얻고 모럴에도 충실해지는 여러 갈래의 가능성이 눈에 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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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7-09-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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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노무라 나오유키 저/임해성 역/김진호 감수
21세기북스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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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AI 섹터가 4차 산업혁명의 유일한 동력, 본진은 아닙니다만 이 AI를 빼놓고는 해당 메가트렌드의 미래를 논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AI의 최근 발전상, 지향점, 혹은 한계(현 시점에서의)까지를 정확히 파악하면, 많은 이들에게 (부푼 희망보다는) 적잖은 동요와 불확실성을 안기는 이 거대한 흐름에 대해, 거품 없이 비교적 정확한 실체로 접근히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산업 제반에 파급할 영향을 점치려면(이런 시도는 전문가나 경영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중요합니다. 성인보다 차라리 어린 학생들에게 더 다급한 과제죠), 1) 먼저 인공지능에 대해 울타리밖에서 빈약한 식견으로 희미하게 관찰하는 외부인(혹은 일반인만도 못한 엉터리 전공자)이 아니라, 그 성과를 최전선에서 주도해 가는 전문가의 이해가 필요하고, 2) 산업계의 현재 형편에 대해 정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3) 인공지능이 미래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지(이 책의, 바로 제목이기도 합니다)에 대해, 독자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충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2)와 3)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1), 즉 정확히 현재의 인공지능 개발 붐이 어느 방향을 좇고 어디까지 가까운 장래에 도달 가능한지만 정확히 짚어 줘도 유익한 참고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저술가들은 부정확한 마케팅 차원의 홍보나 호들갑만 반성 없이 따라하곤 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안기는 경향이 요즘 보입니다. 2)는 차라리, 한눈에 이 현황을 꿰뚫을 수 있는 전문가가 더 드뭅니다. 기술 섹터는 언제나 그 영역에만 빠삭하면 충분한 엑스퍼트들이 배출이 되지만(단, 그 개인들 간에도 전문성의 차이는 천차만별이긴 하죠), 먹고사는 문제(즉 경제, 산업 문제)를 훤히 통찰하는 전문가는 훨씬 귀합니다(이런 분이 많다면, 지금 불경기라며. 혹은 물가고라며 아우성치는 이들이 안 보일 겁니다). 3)이라면, 독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자기 나름 심사숙고해서 개별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은, 1)에 최고 권위를 지닌 전문가께서, 2)에도 깊은 소양을 갖고, 3)까지 잘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정성껏 정보와 유익한 충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1)만 해도, 탁월한 성과를 내는 테크니션이들이야, 대중들에게 잘 소개가 안 되어 그렇지 우리나라에도 그 수가 적지는 않습니다(그렇다고 많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이 저자처럼, 학문과 연구의 추세를 선봉에서 이끌어가는 분은 당연히 극소수이며, 그런 성과(자신뿐 아니라 다른 학자들의 것까지)를 알기 쉽게 소개, 소통시킬 능력을 가진 분은 더욱 희귀하죠. 연구진을 이끄는 리더급 시니어 학자는, 업계와도 두루 접촉해서 그들의 니즈를 먼저 파악한 후 제자, 후배들의 장래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기에 2)의 현황까지 훤히 꿰뚫고 계신 것 아닌가 추측합니다. 여튼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 충언이 너무 많아서 독자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네요.

인공지능이 꼭 자신의 장래나 직업을 위협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지성이나 두뇌, 혹은 소중히 가꿔온 고유한 관점 등에 자긍심이 가득한 분들이라면, "감히" 기계, 전산처리장치가 인간의 영역을 넘본다는 데에 감정이 상할 법도 합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은 단순 반복 노동직에 더 큰 위협이 될 뿐인데도 말입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최고학부에 입학하려면 한 분야 지식과 적성만 뛰어나서 되지를 않았죠. 전방위에 걸쳐 모르는 게 없어야 합니다. 저자 노무라 나오유키 박사님도, 우리와 비슷한 구조의 학생 선발 시스템을 갖춘(이분 시절에는) 일본 최고 명문대를 나오신 분이라, 이처럼 인문, 상경계 쪽 사정에도 밝으시고, 무엇보다 본인이 이 분야 성과를 이끄는 엘리트이면서 인공지능의 부작용, 한계, 현황보다 과장된 대목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반대편 논자들의 주장을 옹호하기도 하고, 권위자 입장에서 그들이 심각하게 착각, 오해하는 대목은 적절히 교정하기도 합니다.

혹 인공지능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책의 일독이 꼭 필요합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성과들은 어디까지나 가치중립적이어서, 누구한테 딱히 정치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지혜롭게, 성실히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여태 습득하고 정리했다면, 이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기술적 진보이건, 노력하지 않고 머리도 나쁜 요행꾼에게 벼락 행운을 가져다 주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혹 그런 사람이 어떤 혜택을 새로 누리게 되어도, 그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다 접하는 반사효과일 뿐이며, 그런 사람이 누리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더 크죠). 식자층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필연적 대세에 대해 무작정 회피한다면, 저런 게으르고 어리석은 이들과 별 차이 없는 불리한 사회적 위상으로 미래에는 재조정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건 뭐건 기본적으로는 사회와 경제에서 비효율 요소를 제거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인류의 필사적 노력, 그 산물이니 말입니다.

1장에서는, 우리가 미래의 파괴적 혁신 트렌드를 논할 때 항상 그 선구자로서 언급, 인용이 빠지지 않는 레이 커즈와일에 대한 저자의 비판(꽤 신랄합니다)이 나옵니다. 우선 기하급수적 발전이라는 추세 자체가 그리 큰 설득력이 없다고 하시네요. 사실 기술의 발전을 무엇으로 가중, 평가하여 총량 지표를 낼 것인지부터가 벌써 모호하지만 말입니다. 또, 커즈와일이 다소 방만하게 도입한 "진화에의 유비"에 대해서도, 진화론의 정확한 동향도 모른 채 꺼낸 무지의 소치라는 쪽으로 비판을 가합니다(저자는 심지어 "폭력적"이란 말까지 쓰네요ㅋ). 커즈와일은 냉정히 말해 인문적 담론가일 뿐인데, 진짜 전문가께서 체급간 차이도 고려 않고 이처럼 정색하고 나오시면 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ㅎㅎ). 커즈와일의 진단 중 물론 허황된 게 많았으나, 저는 일반 독자 입장에서, 불확실한 미래 추세에 대해서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실체보다 다소 과대평가를 해서라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쪽이라, 커즈와일(싫지만ㅋ)의 주장에도 여전히 경청이 요구된다고 여깁니다.

혹시 1990년대 중반, "퍼지 원리를 이용한 세탁기의 탁월한 효과(이 책 다른 파트에서도, 신경망 원리를 도입 어쩌구 하던 당시의 홍보 문구가 또 인용됩니다)"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저자께서는 당시 젊은 방문 연구자 자격으로 한창 경력 쌓기에 열심이신 시절이었겠는데, 이 과장 광고가 몹시도 귀에 거슬리셨나 봅니다. 이 비슷한 맥락으로, 저자는 동료, 혹은 경쟁 관계인 연구자들의 "거짓말"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이 책은 건조하게 주제 관련 논의, 증명, 반박, 사례 소개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 저자분(다시 말하지만 공저가 아닙니다. 한 분이 이 무거운 멀티 토픽을 다 커버하신 거에요)의 개인사까지 여러 대목에서 소개하는 톤이라서 더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평행우주> 등 여러 베스트셀러 대중서를 쓴 미치오 가쿠 박사의 스타일과도 이 점에서 좀 비슷합니다. 제 개인적 느낌으론 (전공 분야가 현격히 다르다고는 하나)그분보다 이분이 훨씬 치밀하고 이지적이지만요.

미치오 가쿠 박사의 책이 괜한 추억 회고에 머무는 대목도 있었다면, 이 책은 설령 개인사를 토로하는 서술이라 해도, 꼭 관련 토픽으로 넘어가며 논의의 본지를 이탈하지 않는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우리 같으면 <장학퀴즈>와 비슷할, 방송국의 퀴즈 경연대회에서 학생 시절 준우승 입상한 저자의 술회가 등장합니다만, 거기서 여담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예전 IBM의 왓슨이 퀴즈쇼 <제퍼디>에서 보인 활약, (꽤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 기준에서 본 평가 등등해서 책의 주제, 독자의 긴장된 니즈와 언제나 밀착해 가는 서술 방식이 믿음직했습니다.

저자가 일본인인만치, 일본의 현황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모든 토픽에 대한 해명을 이어가는 개성도 두드러집니다. 물론 한국인인 우리가 일본의 사정을 대단한 기준틀로 여전히 여길 이유는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유사한 지점, 닮은 사정들에 한해서 참고할 사항이 많다는 뜻에서입니다.

예컨대 인공지능이란, 어디까지나 성과도 떨어지고 현장의 불만도 많으며, 생산성 대비 임금이 높게 책정된 분야에서 더 도입 필요성이 커지게 마련인데(미국, 혹은 다른 어느어느 나라도, 항공사 노조가 꽤 강성입니다. 자동 항법 장치나 정비 시스템[AI의 효시격이죠]이 일찍부터 연구되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몇 달 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갑질 사건도 현지인들 말 들어보면 무책임한 경영진과 서비스 정신 제로의 막무가내 노조가 함께 일으킨 참사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런 분야의 대표적 예로 "감시 업무"를 듭니다. 이는 물론 교도소 등 고정 서비스를 행하는 공공기관도 있겠지만, 아파트나 생산 시설, 재고 창고, 혹은 대형 매장의 무인 경비 시스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KT 등이 선도한 아파트 무인 경비는 벌써 17년 전부터 도입이 되었거든요(해당 아파트 사셨던 분들은 잘 아실 거에요). "감시 업무"를 어디서 접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꽤 사무친 경험(ㅋ)이 있으셨는지, 책의 여러 군데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저자는 또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고령화 추세가 심각해지는 일본이야말로, 이 인공지능의 "일당백" 효율이 시급히 자리잡아야 하는 환경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저자의 지적을 떠나서, 이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경영계의 현실이 일찍부터 현장에 경각을 촉구했기에, 현재의 일본이 (3차 산업혁명때와는 달리) 글로벌 경쟁에서 다소 앞서나가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 마음 놓고 자체 생존 전략을 짜기가 어렵고, 정치권과 변덕스러운 대중의 분위기에 휘둘리는 팩터가 큰 편이라서, 보다시피 이처럼 성과가 지지부진하죠.

저자는 현재의 인공지능 열풍이, 결코 평지돌출격으로 갑자기 발생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지난 백 년을 돌이켜 볼 때 단속적으로 일어났다 수그러들다 하던 것이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아 큰 활력을 새삼 얻는 과정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통시적 고찰은 인문적 소양과 시야가 갖춰져야 가능한데, 그 점에서도 저자의 식견과 시야가 믿음직했습니다. 저자의 회고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아니 금세기 초만 해도, 머신 러닝에 있어 "신경망 방법론"을 연구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대뜸 보이는 반응이 "아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걸 파세요?"였다고 합니다. 이미 일찍부터 컨셉의 맹아가 여러 번 보였고, 다만 인풋-아웃풋 세트가 워낙 미비하던 시절이었는데다, 각별히 창의적이거나 천재적(경제적) 발상이라기보다는 무식한 노가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엇겠죠. 그러던 게 지금은 시대의 총아처럼 새로 각광을 받으며 찬사를 한몸에 접수하는 겁니다. 트렌드라는 게 참 무상하다는 식의, "인간 냄새 물씬 나는" 구절이 여러 번 보여 더 친숙한 게 이 책이기도 하고요.

"강한/약한"의 한정 표현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널리 쓰입니다. "강한"은 효과가 강력하다는 뜻이 아니라(경우에 따라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장 엄격한 기준까지 다 충족하는 정의(definition)란 뜻입니다(누가 봐도 이견 없이, 저건 진짜 지능, 지성체라고 말이 나올 만하다는 것). "강한 인공지능"은 그래서, 정말 지능의 가장 깊숙한 영역까지 낱낱이 해명된 후, SF에나 나올 법한 미래상(디스토피아까지)도 부를 수 있는 성과물이겠죠. 저자의 말씀이 재미있는 게 "약한 인공지능이 기능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소한 일상까지 파고들어 많은 효용을 낳을 수 있는 '강한' 녀석이다" 같은 서술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독자 중에 그 점을 헷갈릴 만한 이가 있겠는지는 좀 의문이지만, 이어지는 저자의 언급은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처럼 여러 강도, 레벨의 정의가 통용되고 있으니 현장의 학자, 연구진에 대해 너무 사기꾼들이라며 매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다양할 독자들의 (잠재적)성향, 반응에 대해 일일이 신경 써 가며 말 한 마디를 해도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주 절차는 업무 자동화와는 그간 가장 거리가 먼, 인간 고차원 소통과 판단, 혹은 감성까지 같이 개재한 영역으로 여겨저 왔습니다. 다른 누구의 판단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독자들도 생각을 해 보면 압니다. 아니 거래사와 접촉하여 치열한 협상(혹은 경쟁사와의 레이스)를 거쳐 일감, 프로젝트를 따내는 게 인공지능에게 맡겨서 가능이나 할 법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pp. 82~83에 나오는 알고리즘은 이게 어떻게 인간의 손을 떠나 체계화할 수 있는지 잘 알려 줍니다. 뿐이 아닙니다. "일드 매니지먼트"를 호텔 예약 접수 업무에도 적용하여, 고객의 정보 중 입수 가능한 사항을 토대로, 과연 이 고객이 "노 쇼" 행태를 보이지는 않겠는지, 앞으로 우리 호텔에 얼마나 로열한 소비 패턴을 가질지 등을 미리 예측한 후(이에는, 상담 당시 실시간으로 고객의 음성이라든가 말투, 버릇 등 미세한 요소까지 다 AI가 감지해서 자료로 쓴다는 뜻입니다), 공실이 있음에도 만실이라며 거절한다든지, 혹은 직접 찾아온 고객의 옷차림이나 표정, 안색에서 드러나는(빅데이터를 통해 일정한 모델, 판단 경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보를 통해 어느 수준의 응대를 할지까지 결정하는, 참으로 영악하고 놀라운 접객이 가능하다고도 저자는 말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가장 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라 불려 마땅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현장에서 달인으로 통하는 전문가, 대가들에게 "어떻게 해서 그런 손놀림, 혹은 빠른 판단이 가능한지"를 물어 보면 그들도 설명 못 합니다. 설명을 못 하므로, 그런 지식은 타인에게 전수하기도, 매뉴얼화하기도 힘듭니다. 과거 프로그래밍을 통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이었다면 이런 건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개발자가 뭘 알기나 해야 기계한테 가르치죠. 이런 대체 불가능의 "암묵지"를, 이제 방대한 양의 인풋-아웃풋 세트를 컴퓨터에게 학습시켜, 전산처리장치가 자동적으로 "해답을 찾는 경로"를 그 내부에 형성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저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할 이런 기본 개념을, 혹 낯설어할 독자들을 위해 책의 여러 파트에서 반복적으로, 적실한 예와 함께 설명해 주는 태도 역시 자상하다고나 해야겠습니다. 빅데이터의 반복 학습, 이런 말은 어떤 책에서나 설명하지만, 저런 호텔 접객 사례와 함께 생동감이 느껴지게 이해시키는 건 쉽게 발견되는 여유, 요령이 아니죠.

특히 머신 러닝은 언어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저자께서도 회고하시듯이, 이십 여 년 정도 간격을 두고 매번 인공지능 열풍이 일었다가 잦아든 것도, 도대체 "번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서 연구진이 번번이 좌절했기 때문이죠. 일본어(한국어가 몇 배는 더합니다만)가 가진 고유의 복잡한 통사 구조를 놓고, 컴퓨터의 단조로운 논리 체계(사실은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한계입니다만)로는 도저히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저자는 긴 문장 요약, 집필자의 의견 파트와 팩트의 구별까지도 이제는 능숙히 해 내는 추세라며 현황을 소개합니다.

요즘 모 포털 사이트 TV 광고에서도 자주 만나지만, 종류가 다양한 고양이들의 품종을 가리는 작업은, 특별히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라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발전된 안면인식기술(바로 이 저자께서 깊숙히 관여했던 프로젝트이기도 하죠)로,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 준별 기능이 이제 실용화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점이 꽤나 중요한 건, 일찍부터 노엄 촘스키가 이 시각적 인지 회로와 관련, 인간만이 언어로 소통 가능한 동물이라며까지 신비한 예언을 내놓았었기 때문이죠(소양이 풍부하신 저자는 이 대목도 놓치지 않고 적소에 언급하시네요). 당시에는 그를 두고 무모하며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입장이 다수였습니다. 이제 AI 연구 섹터에서는, 그의 "예언"에 근거하여 이처럼 사람 일상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놀라운 성과를 내어 놓는 중이고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만이, 지혜롭고 융통성 있으며 자기 논리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만이, 더욱 큰 가능성과 혜택을 누리게 해 주는 고마운 장난감이자 생계의 도구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발 맞춰 교육 과정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단순 반복이나 창의적이지 못한 업무, 활동은 그저 기계에게 맡기도, 인간은 보다 고차원적인 창조에 몰입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죠. 빅데이터를 투입해서, 여태 사람이 채 발견 못 한 패턴을 컴퓨터는 알아내고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과연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가 뭔지 녀석이 알겠습니까? 영리한 인간은 녀석이 열심히 하는 노동의 결과를 보고, 이 결과가 갖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해석해 냅니다. 이 해석은 전혀 뜻밖의 영역에 적용되고(그래서 잡스가, 혁신의 본체는 "연결"이라고 했던 겁니다), AI와 친한 인간은 남들이 생각도 못한 분야에서 막대한 수익과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어떤 환경에서도 훼손되지 않고,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더 아름답게 가꾸기까지 합니다. 단 우리의 존엄이 지켜지려면, 더 풍요로운 성과를 누리려면, 우리가 남의 말을 그대로 베껴 따라한다거나, 대세에 쥐떼처럼 편승하는 동물적 하등 상태를 빨리 탈피하는 게, 그 자격을 갖추는 선결 조건이라 하겠습니다. 영혼 없는 인간이 도태되는 게 바로 "4차 산업 혁명"의 의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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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 수학무기 | My Reviews & etc 2017-09-2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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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량살상 수학무기

캐시 오닐 저/김정혜 역
흐름출판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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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인류 문명을 오늘날처럼 찬연하게 가꾸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학문 분야이며,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벗이자 진리를 향한 지침과도 같습니다. 이런 수학이, 그 칼날을 반대로 향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고, 불행하게 만드는 무기"로 쓰인다면 고개가 갸웃해질 만하죠.

weapon(s) of mass destruction이란 말은 예전부터 널리 사용되었으나, 15, 6년 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자주 거론한 이래 부쩍 널리 회자된 단어입니다. 결국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보니 WMD에 넣을 만한 아무런 심각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에 그는 "사담 후세인이 바로 대량 살상 무기"라고 대꾸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죠.

이 책의 저자는 위의 용어 구성부분 중 mass를 math로 바꾸어, 수학이 무고한 대중을 궁지에 몰거나, 삶을 피폐하게 만들거나, 인종 차별과 부의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데에 악용되는 많은 사례를 들며, 통계라는 허울을 쓰고 이뤄지는 많은 조사, 연구 결과, 시스템, 워킹 툴이 실상은 그닥 확고한 신빙성이나 타당성 검증도 없이 마구잡이로 쓰여지는 개탄스러운 현실을 고발합니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의 농단, 재량권 남용이라면 즉시 지탄의 대상이 되는데, 빅데이터와 실증 연구의 휘광을 둘러친, 외관만 정교해 보이는 많은 통계 연관 데이터베이스들은 그런 비판 대상에서 비껴갑니다. "수학과 통계학을 기반으로 도출된 결과인데 오죽하겠어?" 대중과 전문가 모두 눈먼 신뢰를 보내는 이들 장치가, 실은 고의적으로, 혹은 우연히 개입한 편견과 불의만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중등 교과과정의 학력저하는 심각한 문제죠. 특정 거주지역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교과 이해도를 높이는 일에 매우 성과가 낮습니다(여기까지는 객관적 팩트). 상당수 교사가 제 할 일을 태만히하니 대거 해고를 단행해야 한다! 정치인, 학부형, 교육 당국 모두 이의가 없으니 그대로 실행될 밖에요. 헌데, 여태 학생들과 밀착하여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어려운 가정을 방문하여 최소 생존 여건을 보살피는 등 지역 사회에서 호평 받았던 인력조차 해고되었기에(이런 이들이 많지는 않았겠죠), 일부에서는 이런 눈먼 정책의 융통성 없는 집행에 큰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 역시, 수학과 통계학의 다양한 기법을 편입하여(또한, 막대한 비용과 우수 인력의 노고가 투입되어) 고안된, 비싼 도구입니다. 그러니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놓고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담았다며 불순하게 보는 여론도 생겼죠. (학교 교사 해고 이슈에 대해서는 p26, 한참 뒤 p228 등에서 두어 번 언급합니다)

수학이나 통계학 기법이 아무리 정교히 고안되어 구현되었다 쳐도, 이 기법의 전체 프레임이나 그에 투입된 raw data가 "공정성, 형평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오히려 편견이나 오류가 엉뚱하게도 "과학이 가져가야 할 영예"를 가로채는 셈입니다. 이 문제는 "정성"과 "정량"사이에서 얼마나 균형 감각 있게 조화로운 선택을 할지의 지혜와 연관되었기에,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오랜 딜레마입니다. 문제는, 그저 "수학, 통계학"이란 포장만 둘러치면 그 타당성에 대해 아무도(이 중에는 그로 인해 직접 피해를 본 이들도 포함합니다) 이의를 제기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죠.

저자가 책 여러 군데에서 개탄과 유감, 분개감을 표현하는 건, 혹여 프로그램 자체에는 그 구조의 엇나감을 들여다 볼 엄두를 안 낸다 해도, 이 프로그램이 실제 낳는 결과가 과연 타당한지, 엉뚱한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어느 부분과 연관이 있었는지, 아무도 피드백 검증조차 시도를 안 한다는 겁니다. 피드백 검증에서 자유로운 대상은 아무것도 없고, 수학 아니라 어떤 학문이라도 자체 기준 아닌 다른 시선에서 타당성 점검 절차에 노출되어야만 하죠. 이걸 운용하는 중인데 결과가 좋은지, 아니면 전보다 더 나빠졌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신뢰하며 눈을 감는 건 무지몽매한 반계몽적, 미신적 행태에 가깝습니다.

저자가 규정한 WMD의 공통점, 혹은 필요충분조건은, 불투명성, 확장성, 피해, 이 세 가지입니다. 앞서 말했듯 도대체 왜 특정 모델이 옳은지 아무도 의심하려 들지 않으며, 타당성에 대한 의혹 제기는 묵살되기 일쑤입니다. 혹 피드백이 있다 해도, "자기 강화"만 유발할 뿐인 악성의 메커니즘입니다.

"확장성" 요소는 특히 우리 한국 독자들이 읽으며 뜨끔해하거나, 폭풍 공감을 유발할 만한 대목입니다. 우리도 이른바 "입시 위주의 서열화 교육"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저자는 "획일적 기준으로 대학들에 한줄세우기를 강요하여, 1) 정작 필요한 분야에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겉치장에만 돈이 낭비되며, 2)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천정부지 상승하고, 3) 데이터 날조, 왜곡 등 온갖 편법이 난무하여 교육 풍토의 타락을 유발한 주범으로,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誌의 "대학 랭킹 평가"를 들고 있습니다. 저자가 통렬히 비판하는 게, 정작 이 어리석은 관행과 상업적 폐단을 창조해 낸 잡지 본체는 몇 년 전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았으나, 엉뚱하게도 "대학 랭킹 매기기"는 별개 사업체로 독립하기까지 하며 덩치를 키우는 현실입니다.

저자는 보장된 종신교수직을 버리고 현실의 매력에 참여하기 위해 헤지펀드의 퀀트로 일한 적 있는 분인데(그래서, 책의 신뢰도나 주장의 권위가 더욱 높아지는 면도 있더군요), 이른바 리스크메트릭스, 혹은 그 이전 이론적 바탕을 이룬 몬테카를로 기법 등에 대해, 기계적이고 비창의적이며 비논리적인, 어제까지 반복되던 관행이 오늘, 내일도 변함없으리라는 잘못된 기대에 기대었다며 비판합니다.

빅데이터는 이른바 약탈적 광고주, 즉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노리며 그들이 잘못된 구매나 지출을 행하게 유도합니다. 또, 구직에 필사적인 젊은이들을 현혹하여 왜곡된 "취업률"을 내세운 후, 비싼 등록금을 챙기며 4년 후 학위를 발급한 후, 정작 취업에는 별 도움도 안 되는 헛된 경험에 인생을 낭비하게 조장하는 "for-profit college", 즉 영리추구 대학(학위 공장)들 역시, 수학과 통계학에 의해 고안된 사악한 알고리즘으로 돈을 버는 집단이라고 저자는 신랄히 꾸짖습니다.

불투명성은 피드백 절차 부재로 더 심각한 악성 영향을 낳는 WMD의 특성입니다. 저자는 실제 자신의 경험을 들며, 도대체 금융사들이 외부에서 자문(상품)을 구한다면서 대외적으로 생색만 낼 뿐, 전혀 제3자 조언이나 비판에 귀를 안 기울이다 지난번처럼 큰 재앙을 낳았다고 통박합니다. 그나마 이런 사람들은 머리나 좋고 자기 분야에서 과거 한때라도 뚜렷한 성과나 내고서 남의 말을 안 듣는다고나 하지만, 한국 사회의 상당 부분 섹터에서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이들일수록 더욱 자신만의 엉터리 같은 세계관에 사로잡혀 나오지를 못합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치안 문란, 부재가 심각한 사회 문제이죠. 저자는 경찰 당국의 범죄 예측 프로그램이 주로 빈민가, 유색 인종 밀집 구역을대상으로 이뤄진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불심검문에 걸려들거나 경범죄로 입건된 이들이, 오히려 낙인 효과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악성 상습범"으로 재생산된다며, 분별 없는 통계와 모델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장본인임을 지적합니다.

채용에서도 이른바 인적성검사는 여러 회사들이 우수한 인재를 잘못된 도구 하나만 믿고서 대거 외면한다거나, 구직 희망자들의 인생을 황폐화시키는 족쇄 노릇을 한다고 저자는 비판합니다. 저자께서 참 두뇌가 명석하신 분인 게, 이후 이 구직자가 의학 소견을 바탕으로 한 채용 차별을 사유로 해당 기업에 소송을 건 경위를 소개하면서, "이제 책임은 이 테스트를 고안, 유통, 판매한 연구자 측과, 이 테스트를 통해 해당 구직자를 채용 거절한 회사 중 누군가가 져야 하겠다"고 한 마디로 요약한 구절입니다. 어쩜 이렇게,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포인트만 정확히 짚어, 짧은 말로 요령껏 전달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p102, p207 등에서 언급되는 이른바 false positive란, 쉽게 말해 "~라면 파리가 새다"같은 주장을 뜻합니다. 파리가 새일 수는 없는데, 잘못된 가정 하에서는 어떤 황당한 주장도 다 참(true)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논리학 이슈를 가리킵니다. p225에서는 같은 맥락의 "false negative"가 언급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도입이 이뤄질 많은 산업 분야에서도, 그저 "빅데이터와 고성능 신경망 AI가 도출한 결과이니 무작정 믿고 보자"는 위험한 맹신 풍조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중세의 암흑으로 퇴보시킬 가능성이 큰 요인입니다. 책에도 나오듯 GIGO, 쓰레기가 투입되면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도대체 애초에 인풋된 데이터셋, 프록시 데이터 자체가, 오염되지 않고 특정 환경과 부합하지도 못하는 부적절한 material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냐는 거죠. 또, 원인에서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명확한 알고리즘이 투명히 밝혀지지 않는 이상, 과거 몇 번의 유효한 성과가 나왔다고 앞으로도 마냥 믿을 수는 없는 겁니다. 과거 제사장이나 무당의 말을 덮어놓고 믿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과학, 수학, 전산학" 같은 간판, 타이틀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내건 개인이나 전문가, 집단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인 사고 과정과 검증 절차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계나 학문의 외관만을 무분별하게 신뢰하는 행태는, 그 안에 감춰진 또다른 불순한 의도나 정치적 흉계를 강화, 추인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죠. 공동체의 정의와 질서를 회복하고 가꾸는 소명은, 오직 인간만이 행할 수 있고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저자의 이 책은 "사람이 먼저"임을 모든 페이지에서 강조하는 인간미가 느껴져서 더욱 좋았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저자의 수다, 열변 등이 지면 너머로 와 닿는 이야기 톤이라서 금세 읽히는 것도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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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종말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7-09-2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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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직업의 종말

테일러 피어슨 저/방영호 역
부키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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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의미에서의 "직업"이 하나둘 없어져가리라는 전망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듯합니다. 다만, 그런 직업들이 사라진 빈 자리를 어떤 시스템, 어떤 분위기의 사회가 메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죠. 확실한 건, 뻔한 사고와 판에 박힌 생각, 작업의 틀만 고집하는 정신은 반드시 도태된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남들 하던 대로만 열심히 뛰어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철저히 개인화한 고유의 방식, 창의적인 발상 없이는 경쟁에서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같은 말이 한 번도 본문 중에 나오지 않지만(단, "제4경제"라는 용어는 1회 등장합니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어떤 직업들이 도태되고, 홍수에 쓸려나갈지 자신 있게 예언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직업" 전체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저는 처음에 책 제목이 "직업의 종말"인 게 다분히 비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직업"은, 조금은 좁게 해석해야 타당한 결론이 나오겠습니다만(아주 광의로 잡은 "직업"이라면, 경제활동을 인류가 이어가야 하는 이상 결코 사라질 수 없죠).

직업이 없어지면 그를 대체할 활동, 시스템은 그럼 무엇인가? 저자는 단언하건대 그것이 "창업"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직업과 창업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입니다. 동시에, "학위, 지식 위주의 경제 활동"은 직업에 대응하고, "창의력과 기발한 사고, 자유로운 개성 발현, 고유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체험, 경험, 만족, 행복 중시"는 창업에 대응합니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며, 이것이 생존이냐 도태냐, 혹은 상위 20이냐 하위 80이냐로 갈리는 계기라고 주장합니다. 즉, 이 책은 직업의 종말과 동시에, "창업의 시작"을 독자에게 (강력히, 신나게) 권한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한때의 자신을 포함한) 미국, 나아가 세계의 젊은이들이, 왜 버젓한 학위를 갖고서도 실업, 저임금, 불만족스러운 직장에 머물런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제기합니다. 그 해답은 먼저, 1) 세계 경제가 종래의 지식 위주 구조(여기서 "지식"은 다분히 저자의 편의에 따라 재구성된 개념이죠)에서 혁신, 창의 위주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2) 그만그만한 학위 소지자의 노동 시장 공급은 크게 늘었으나, 이를 소화(채용)할 수요는 완만히만 늘거나, 아예 줄어드는 현실을 지적하는 취지입니다. 세상이 바뀌면 그에 대처하는 개개인의 정신 자세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예전 식대로만 먹고살려드니 곤궁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마이크로-멀티내셔널은 기업이 세계 각지에서 소규모의 직원들을 고용하여 각처의 사정에 맞게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처럼 인건비가 비싼 시장에서 사람을 구하느니, 예컨대 베트남이나 인도에서 비슷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 인력 몇 배수의 직원을 더 쓸 수 있다는 거죠. 예전 같으면 통신 시스템의 미비로 이런 상황을 상정하기 어려웠겠으나, 지금은 (책 중에서 예를 드는 대로) 와이파이가 설치된 카페 아무데나 들어가 스카이프 같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한국의 소규모 기업가들도 근 십 년 전부터 이런 방식을 써 왔습니다). 이런 충고는 "그런 게 있다" 정도의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려는 취지도 아니고(그런 건 우리도 벌써부터 다 알고 있는 사항이죠), 많은 비난을 받는 이른바 "오프쇼어링" 행태를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당신, 의욕과 아이디어는 넘치나 창업이라면 괜히 주저하는 당신에게, "지금 바로 시작해서 하위 80을 탈출할 것"을 권하는 맥락입니다. 남들이 그렇게 하더라, 이게 아니라, 이제 당신도 얼마든지, 당신의 자리에서 바로 임해 볼 수 있는 도전이라는 뜻이죠.

커네빈 프레임워크는 철자가 Cynefin인데 왜 그렇게 읽는지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웨일즈어는 특히 철자와 음성이 매우 특이한 패턴으로 결합하기에, 가뜩이나 불규칙적인 영어식 관습보다도 정확한 발음을 알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커네빈"으로 읽어야, "다양한 팩터들이 동시에 작용하는 현상"이란 원의를 잘 살릴 수 있게 되죠. 이 책 맨처음에 나오는 방송인 Stephen Colbet 역시, 모계가 프랑스인이라서 당사자만 유독 "콜베어"라는 발음을 고집한다고 합니다. 그 부친은 아일랜드계지만 자신의 성씨를 그리 읽지 않습니다.

여튼 커네빈 프레임워크의 골자는 "난해성(complicated)" 영역이건 단순성 영역이건, 이른바 practice를 통해 업무에 숙련되면 충분했던 직업이, 현재와 근미래 시점에서는 점점 사라져간다는 겁니다. 대신 융통성과 창의력이 보다 요구되는 "복잡성(complex)", "혼돈(chaotic") 영역이 늘어나,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이른바 "창업"의 셰어가 한층 커지는 중이라는 거죠. (이 이론은 꼭 이 저자의 맥락을 떠나서라도, 다른 현상의 설명에까지 광범위하게 응용되므로 권위 있는 서적을 찾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 후반부에도 예화로 드는 것처럼, 저자는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고, 자신만의 사업을 당장 구상하라"는 쪽입니다. 투자은행 직원 같으면 꽤 주위의 선망을 모을 만한 "직업"이겠는데, 한 사람은 "그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좋은 자리를 포기하고 현재 개인 사업 중이랍니다. 다른 사람은 열심히, 다른 이들보다도 몇 배의 정력과 시간을 쏟아 그 자리를 지키는데도, 현재 돌이켜 보면 개인 사업자보다 수입이 훨씬 적다네요. 물론 이런 사례는 미국이라고도 해도 모든 이에게 일반화하기 어렵고, 하물며 4대 보험 등 여러 부가 혜택이 많은 한국에서는 더더욱 과감한 실천에 리스크가 따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워낙 빠른 속도로 바뀌는 만큼, 전향적으로 생각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p83을 보면, 저자는 역시 고유의 프레임에 따라 "지식 활동/창업가형 활동"으로 이대별한 후, 창업가형 활동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더 고부가가치 경제활동이 가능함을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돕습니다. 이때의 "지식활동"이란, 한 분야에만 기계적으로 반복 적용되는 근대형 고정 지식을 가리킵니다. "부업을 가진 고용인"보다, "기업 임원". "기업가형 고용인(우리식으로 따지면 프랜차이즈 지점 사장님 정도겠죠?)"이, 이 피라미드에서 더 하위에 위치하는 점을 눈여겨 보십시오.

저자는 창업을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위험 중립형 내지 위험 선호형"으로 마인드셋을 전환하는 과감성이라고 합니다. 물론 전통적 경제학 개념에 따르면 위험 선호형이란 실속도 없이 미친 듯 행동하는 유형이므로 지향할 게 전혀 못 되지만, 적어도 위험이라는 bads와 이익이라는 goods를 유연히 대체할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익이 90이고 위험이 10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1/9로 낮은 그 위험을 회피하느라 현명한 선택을 못 한다는 겁니다. 워런 버핏의 예를 들며, 분산투자란, 확고한 투자 원칙이 선 이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으며, 자신은 확신이 섰을 때 모든 걸 베팅했던 서너 번의 기회로 부자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회고하는 사실(역시, 우리 독자들도 그간 여러 책을 봐 와서 아는 내용이긴 합니다)을 다시 거론합니다.

저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현재의 사회가 "평범의 왕국", 즉 그저 중간만 적당히 가도 생존의 최소 조건은 보장되던 안온한 과거가 아니라, "극단의 왕국" 즉,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고, 현명한 선택 몇 번으로 단번에 위상이 높아지는 변동성 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을 통렬히 지적합니다. 요행수를 노리라는 게 아니라, 형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감정보다는 냉철한 이성과 계산에 의해 움직이라는 뜻이겠습니다.

학교에서 비싼 등록금 내고 무엇을 배우기보다,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각종 창업 기법과 마케팅 감각을 익히는 게, 급여도 받고 일도 배울 수있는 좋은 기회라고 저자는 역설합니다. 이런 걸 두고 "착취형 도제 시스템"이라며 비난하는 쪽도 있으나(이런 반대 의견을 저자는 넉넉히 의식하면서 논지를 전개하더군요), 세상이 단편 지식 전수, 반복 실행 패턴에서 현저히 이탈하여, 급변하는 환경에 수시로 적응할 것을 요구하니 이 편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고, 저자 자신도 그런 식으로 현재의 지위를 일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되는 인맥의 구축도 빼놓지 않습니다(단, 이런 논리대로라면 학교를 다니면서 얻게 되는 인맥은 기회비용으로 치르는 셈입니다).

"월가를 점령하라!" 물론 분노할 때는 분노하고, 시스템의 비위에 대해 지적할 것은 지적하며, 대세에 무지렁이처럼 휩쓸려가기나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격변이 오히려 내가 기존 구조에 빼앗기는 것보다, 빼앗아 올 수 있는 기회가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합니다. 이 역시 저자뿐 아니라 다른 "4차 산업혁명 이론가"들도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내용이죠. 이른바 "롱테일 산업 구조"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용케 틈새 시장을 찾아내어 블루 오션을 경영하듯 자신의 아이템을 팔 수 있게 된 것도 엄청난 기회인데, 제가 이 블로그에 서평도 올려 온, 몇 년 전부터 출간되어 온 다른 서적에서도 그 타당성이 입증되어 온 논의입니다.

"설계할 것인가, 설계 당할 것인가." 예전부터 노예로 사는 삶, 하루를 살아도 자신의 주체적 의지로 사는 삶의 구별에 대해선 많은 주장들이 있어 왔습니다. 저자의 경우, 그리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여건에서 여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어떤 틀에 휩쓸리기보다 분명한 소신에 기대어 신나게 살아 온 분 같습니다. 책에서는 다양한 논의들의 소개, 유용한 이론의 요지, 또 저자 본인의 성공담 등이 제시되지만, 전체적으로 꽤 흥겹게, 일관된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라 읽기에 대단히 편합니다. 저자의 흥이랄까 박력도 느껴지는 문장입니다. 남의 장점을 과감히 배우고 따라하라는 팁도 여러 대목에서 반복, 강조되는데, 이 역시 격변하는 세상에 각자가 융통성 있게 몸에 배게 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겠습니다. 결론은, "삶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해지려 애쓸 것이며, 이를 위해 창업하라, 과감하게" 정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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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의 게르니카 | My Reviews & etc 2017-09-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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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암막의 게르니카

하라다 마하 저/김완 역
인디페이퍼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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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의 게르니카"라고 하니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겠는데요. "검은 장막을 둘러친(~이 드리워진) (피카소의) 게르니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게르니카는 작품 이름일 뿐 아니라, 해당 작품의 창작 모티프가 된 (나치 독일에 의해 민간인 살상이 벌어졌던) 바스크의 지방 이름이기도 합니다. 일본어 "の"는 종종 너무 광범위한 뜻을 담기도 하죠.

이 소설은 상당 부분이 실화에 근거를 두었으며, 실존 인물의 이름들이 그대로 나오는 등 "팩션(요즘은 트렌드가 지나가서인지 이 말을 잘 안 쓰더군요)"의 성격도 짙게 풍깁니다. 물론 소설의 뼈대가 된 줄거리, 즉 이미 40여년 전에 스페인으로 돌아간 해당 대작(大作)이, 대서양을 건너 뉴욕 MoMA로 다시 전시차 여행을 떠나며, 무사히 특전이 성사되기까지, 해당 기획을 추진한 큐레이터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다거나 하는 기묘한 곡절이 다 개입했다는 등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입니다. 소설 중에도 여러 번 강조되듯, 이 예술 작품이 워낙 큰 규모를 가진 터라 웬만해서는 거동이 어렵죠. 일본에서는 구미에 비해 고급 문화 창작, 향유의 주변부라는 컴플렉스가 널리 자리해서인지, 문예나 영상물 속에 이런 마스터피스들의 전시회 성사를 어렵사리 이뤄낸다는 동기가 여럿 등장하는 편입니다. 단, 이 작품은 주인공 여성이 일본인일 뿐 배경은 미국이고, 일본스러운 피처를 작중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제에 대해선 선명하게 "반전(反戰), 평화, 정의로운 시민들의 연대, 휴머니즘"임을 명확히합니다만, 그 평화의 "적(敵)들"로 규정된 무리라면 나치 독일, 프랑코 원수 추종세력, 파시스트 이탈리아, 호전적인 미국 매파 진영, 바스크 분리주의자 등이 거론될 뿐 지난시절의 "제국주의 일본"은 빠져 있습니다. 물론 작가님의 주제의식 그 순수성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겠고요. 구태여 언급 않아도 수치스러운 과거사에 대해서는 당연한 반성이 전제되었다는 쪽으로 독자는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본풍의 서술, 소재가 거의 발견 안 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이 장편이 더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함도 확인 가능하죠.

소설은 각 장(章)이 두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오가며 교차하는 식의 편제입니다. 우선 1930년대, 파리에 거주하며 미술 트렌드의 첨단을 소화하고, 타고난 재능 덕을 입어 이를 자신만의 표현양식으로 경이롭게 소화하는 한 천재,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라기보단 이미 명성을 확고히 굳혀 가는 신성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그를 다루는 과거가 펼쳐집니다. 이어, 2000년대 초반, 요코 야가미라는 젊고 유능한 MoMA의 기획자와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하나같이 높은 신분, 탄탄한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이)들의 사연이 소개되죠. 이런 juxtaposition의 의도라면,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달라도, 평화와 반(反)폭력, 연대(solidarity)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영혼들의 결단과 행동, 그 숭고한 노력의 결실이란, 반 세기라는 간격을 두고서도 그 평가에 차이를 둘 바 없이 소중하다는 쪽이겠습니다. 그렇다고, 파블로 피카소와 요코 야가미를 놓고, 서로 미러링하는 관계로까지 볼 건 아닌 것 같고요. 파블로 피카소에 대해서는 작중에서도 도라 마르의 입을 빌려 "창조주"로까지 극구 칭송되지만, 요코는 비록 선한 마음을 지닌, 똑똑한 유명인사일망정 그 정도의 신적 재능을 부여받은 이는 아니니까요.

각 장에 교차하는 두 별개 흐름의 이야기들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스페인 유수의 공작 가문 출신인 파르도 이그나시오는, 1930년대 후반 파리에서는 갓 실연(연인을 조국에게 빼앗겼습니다)한, 유약하고 소심한 청년으로, 열렬히 이 예술의 "신"을 숭배하고, 도라 마르에 대해서는 누나를 향한 애틋한 우애를 간직하는 모습으로 세팅됩니다(단, 나중에는 <게르니카>의 반출, 소장을 위해 미국 측 거물들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교섭력을 발휘하는 등 귀족 가문 핏줄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 주죠). 이랬던 그가, 배경을 바꾸어 2000년대 서유럽에서는 "자국 총리를 시종처럼 졸졸 따르게 만드는" 위엄과 관록 넘치는 실력자의 중후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두 세계를 넘나들며(물론, 이 두 세계는 시간적으로 연속된 구조고요) 숭고한 정신의 단절을 막으려는 듯 때로는 필사적으로, 때로는 초연하며 우아하게, 때로는 야속하게 처신하는 이 노귀족은 많은 독자들에게 주인공 못지 않은 흥미와 매력을 발산하는 듯합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물론 실제 역사에서의 모습 그대로, 변덕스럽고 색(여러 의미겠죠?)을 밝히며 격정적인 성품으로 우리에게 제시됩니다만, 단 소설 속의 모습은 이무렵 이미 50대를 넘어선 것치고는 다소 젊은 언동들입니다. (과거에서의)비중이 좀 적긴 하나 두 무대를 넘나드는 인물은 파르도 이그나시오 공작 말고도, 루스 록펠러 여사 한 분이 더 있긴 합니다. 이분은 젊어서 파르드와 끈끈한 유대를 쌓았고, 나이 들어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 요코 상을 결정적인 순간마다 후원하고 평생의 커리어를 쌓게 돕는 은인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넬슨 록펠러(부통령까지 지낸)라고 나오는데, 이는 픽션 안에서의 가공이며, 루스 같은 딸을 둘 만큼 나이 든 인물이 아니죠. 실제 역사를 따지자면, UN의 태피스트리 포맷 복제품은 넬슨 록펠러의 부인 마그리타 여사의 소유였습니다. 소설과 현실의 차이가 어느 지점들에서 목격되는지 따져 보는 것도 이 장편을 읽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소설의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메인 이벤트는 "게르니카의 탈취, 훼멸을 통해 독립의 대의를 전세계에 호소하려는 ETA의 테러리즘과, 연약한 여인 요코의 대결"이지만, 전반부에서는 특히 독자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화제가 "과연 누가 게르니카(태피스트리 모조품)에 암막을 씌웠나?'하는 것입니다. 미국 국무장관 파워가 대(對) 이라크 강경 조치를 UN에서 발표할 때, 거장의 평화주의를 불멸의 예술혼으로 표현한 대작 <게르니카>가 그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면 이런 난감한 모순이 또 없죠. 만일 정말 그 세팅으로 보도 사진이 찍히기라도 했다면 세계의 평론가들로부터 두고두고 풍자 대상으로 회자되었을 겁니다. 주인공 요코와 그녀의 후원자 루스 여사는 이에 크게 실망하여, UN 측에 경위 해명을 요구합니다. 이 사건은 콜린 파월(극중 캐릭터와 이름도 비슷하죠)의 발표 당시 실제로 있었던 해프닝입니다. 당시 드리워졌던 커튼은 실제로는 청색이었는데, 소설 속에서는 진남색이었다고 서술합니다. 물론 "암(暗)"은 진실을 가리려는 떳떳지 못한 흉계를 비판하려는 비유적 의미이지, 색채로서의 "블랙"을 가리키는 건 아니겠습니다.

소설 중에도 나오지만 MoMA와 경쟁 관계인 구겐하임 미술관 측이 스페인 바스크 지방 빌바오에다 분점을 연 건 사실이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한국에서도 여길 다녀오신 분이 많죠). 또, 이 구겐하임 빌바오 분관 당국에서 "게르니카는 우리가 영구 소장할 자격이 있다"며 마드리드 측에 양도 요구를 한 사실도 있습니다. 하지만 ETA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해, 특히 그 극단주의자들이 어떤 흉계를 꾸몄다든가 한 적은 없죠(그 전에, 세계 어느 미술관 측에서도 "게르니카를 우리에게 임대해 주시오" 같은 대담한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거의 무망한 일입니다). 좀처럼 상정하기 힘들지만, 루스 같은 재력가가 파르도 같은 실력자의 힘을 빌려, 요코 같은 당차고 정의로운 기획자의 의지를 실현시키지 말라는 법도 없기에, 가능성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이런 사연의 전개가 더욱 독자의 주목을 끄는 듯합니다. 이는 또한 작가 상상의 전속적 특권이기도 하겠고요.

소설 중에는 어느 카탈루냐 인의 입을 빌려, "우리도 마드리드와 사이가 안 좋지만 바스크 사람들은 진짜...."라며 혀를 내두르는 대목이 나오는데, 현 시점에서는 (얼마 전에도 뉴스에 났듯) 카탈루냐 자치정부에서 시행하려던 주민 투표 행정 관리자들이 대거 체포되는 등 스페인 정국이 꽤나 심상찮게 돌아가는 판국입니다. 황해도 신천 사건이 전파를 타자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을 발표한 일도 있는데(단, 이 작품은 그리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 중에는 "고야의 귀환"이라는 구절도 나오는데, 이 사건 관련해서 다소 의미심장한 말이죠),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의 정세가, 험한 말이 오가며 일촉즉발의 긴장을 자아내는 판입니다. "평화"는 그 무엇보다, 우리 한국 독자들의 입장에서 가장 간절히 희구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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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 화이질서의 완성 - 단죠 히로시 | My Reviews & etc 2017-09-2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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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락제

단죠 히로시 저/한종수 역
아이필드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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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 동양사학파를 대표할 만한 학자 단죠 히로시의 연구서입니다. 조선 태조에게 정안대군, 이연에게 당 태종, 누르하치에게 홍타이시가 있었듯, 주원장에게는 가장 아꼈던 아들은 아니라도 가장 능력이 뛰어났던 아들이 있었습니다. 특이한 건 저 앞의 세 명 군주와는 달리 이 주체만큼은 묘호가 "태종"이 아닌데(원래는 그랬었죠),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사연이 있었고,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됩니다. 참고로 이 때문에 바뀐 사정을 알지 못한 조선 사신들이 몇 백 년 후 타박 받은 일이 발생하죠.

외세에 짓밟히고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 대륙에, 새로이 들어선 한족 주체 세력이 질서를 확립한 뒤, 여전히 불안했던 내정을 주원장이라는 걸출한 경세가가 세심한 통치 기법으로 잘 어루만졌습니다. 그러나 패주한 몽골 잔존 세력(북원), 정권을 교체하고 국정을 일신하여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던 조선 등이 여전히 심상찮은 동향을 보였지요. 이후 하필이면 어린 황제가 자리에 올라, 간신히 안정을 찾은 제국의 질서가 일대 위협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정복군주형 야심가가 정통성 시비를 무릅쓰고 군사 정변을 일으켜, 강력한 지도력 밑에 제국의 위태한 기초를 다시 확고히 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방효유 같은 대유(大儒)로 상징되는 식자층의 여론이 맹렬히 들끓었음에도, 전대와 유사한 국란, 외환, 혼란이 재발되는 사태를 원치 않은 향신층은, 결국 카리스마형 군주의 "결단"을 사후 추인하기에 이릅니다.

단죠 교수의 이 책이 포커스를 두는 토픽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신생 민족주의 정권이 예전의 제국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강력한 대외 정책을 표방할 때, 내부의 반대 세력을 어떻게 강온 양면술을 써서 회유/진압하는지, 현재의 공산당 정권(저자의 진짜 의도는 이 대목 분석에 있습니다)과 과거 명대의 사례가 어디서 중첩되고 어디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이는지, 그 전개 과정의 병치를 통해 분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저자가 인물과 그의 치세를 요약하는 한 마디의 키워드는 "화이질서의 회복"입니다. 몽골의 원조(元朝)는 비록 유례가 없는 광대한 강역의 제국을 일궜으나, 피치자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한족의 순도 높은 충성과 동의를 얻지 못했기에, 어렵사리 수립한 시스템의 영속을 전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세련되지 못한 기질의 지배층이 내부 알력을 잘 다스리지 못해 패주한 면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제국 질서 자체가 화약고와도 같은 근본 모순을 안았던 까닭입니다.

북원을 패퇴시키고 화북과 강남을 통일했다고는 하나, 강성한 유목민족은 잃었던 위신과 영토 회복을 빌미로 언제든 재침을 시도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영락제 주체가 이런 외부의 도전을 직시하고 강공책으로 나간 건 그 나름으로는 충분한 절박함, 전략적 적실성을 갖춘 선택이었지요. 이를 저자 단죠 교수는, 마치 몽골 세력을, 만주와 화북 일대를 한때 점유하다, 확장된 전선을 감당 못하고 패망한 일본 제국주의에 빗대고, 이후 공화국 체제로 경제대국을 건설하며 재흥의 기회를 맞이한 현대 일본을 두고 북원에 매칭시키며, 강경 민족주의 노선에 기대어 국력을 결집하는 현 중국 공산당 정권을 영락제 체제와 대어 메타포어 구조를 완성하는 겁니다. 그 발상이 어느 정도 절묘한 면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현대 한국의 국세가 그 당시의 조선처럼 빠릿빠릿한 면이 없고, 지리멸렬 패잔병의 그것이나 마찬가지로 쇠퇴 일로를 걷는다는 점 정도겠죠.

"화이질서"는 호혜 평등의 국제정치 시스템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중국인들 입장에선, 만국 공법 질서를 믿고 문호를 개방하고선 제국주의 세력에 호되게 뒤통수를 맞았던 경험이 있기에, 순진하고 관대한 대외질서를 실제로 밀고 나가거나 신뢰를 줄 이유가 없긴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무시 못 할 국세를 뽐내는 미국과 서유럽에 대해서는 그 분풀이를 못 하고, 엉뚱하게도 동남아 제국(諸國)이나 한국 등에 불똥이 튀는 게 문제죠. 현 공산당 정권이 보편적 덕목과 가치와 위배될 뿐 아니라, 자신들이 내세우는 공산주의의 지향점과 노선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런 시대착오적 화이관을 사방에 강요하고 나설 때, 그 해로운 파장이 어디까지 악영향을 끼칠지는 쉽사리 측정이 어려울 만큼입니다.

저자가 쿠빌라이칸과 영락제를 나란히 놓고 대조하는 대목도 꽤 흥미롭습니다. 꼭 현대 국제정치 주제의 환유적 서술이 아니라, 이처럼 "위인전기"로서의 재미도 충분하니 몰입하여 일독을 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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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8세기 북방 민족과 정복 왕조 연구 | My Reviews & etc 2017-09-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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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0 ~ 18세기 북방 민족과 정복 왕조 연구

윤영인,이정신,이용규,박원길,김두현,조병학 공저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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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도 물론 정주 농경 세력과 유목 민족 간의 끊임 없는 충돌이 있었지만 우리 동아시아의 경우처럼 뚜렷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지는 않았죠. 대륙의 중화 문화라는 게 그 "중심성, 정통성"을 내세우는 게 무색할 정도로, 중원은 유목 민족들에 의해 침투, 약탈, "능욕"당한 체험이 잦으며, 심지어 거란의 대대적인 흥성 이후로는 정복 왕조의 통치가 "뉴 노멀"의 하나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사마광은 당조(唐朝) 황실에서 빚어진 여러 문란한 스캔들과 정치의 난맥상에 대해, "이는 오랑캐의 습속"이라며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국제적 문명을 꽃피우고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삼백여년의 기간을 고스란히 "이적(夷狄)의 공덕, 치세"로 돌리는 셈입니다. 어떻게 견강부회해도 자기 모순에 부딪힙니다. 이는 어떤 인위적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 벌어진 현실 그대로를 역사로 인정, 수용하면 그만입니다. 번거로운 윤색은 곧 과장, 왜곡에 다를 바 없습니다.

한편 역사는 내내 정주 문명 측이 수세에 몰렸던 것도 아니라서, 많은 부작용과 한계가 노출되었으나 일단 흉노족을 향해 대대적인 공세를 폈던 한 무제의 군사 원정이 중국사와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은 심대합니다. 당 초기에는 관롱 집단이 스스로 중화 문명의 적통을 자임하며 돌궐과 대립 구도를 이뤘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한계를 노출하며, 위구르, 키르키즈 등의 강성한 세력 발호 때문에 큰 고초를 겪었습니다. 임란 당시 누르하치의 원병 파견 제의를 류성룡이 거절한 것도, 안사의 난을 평정하려다 끌어들인 위구르에 의해 입은 병화(兵禍)가 너무도 길고 컸기 때문입니다.

송대에 들어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농경 민족 측의 거대한 수난사입니다. 거란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기에 주기적 약탈과 세폐의 갈취 외에 어떤 선을 넘지 않다가, 요즘 말로 "혁신 정신의 부재"와 현실 안주 성향이 굳어지는 바람에, 대체 패권 유목 민족인 여진에 의해 밀려났습니다. 그 잔당이 서쪽으로 몰려가 세운 정치 단위조차도 얼마나 강성했던지, 아랍과 페르시아, 나아가 비잔티움 제국 등은 거란의 음사(音寫)인 "키타이"를 중국과 동의어로 여길 정도가 되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Cathay란 영단어(항공사명을 구성하기도 하는)에 남아 있습니다.

여진은 이후 5백년이 지나 권토중래하여 다시 중원을 점령하여 확고한 군사적 기반 위에 안정된 통치 시스템을 운영할 만큼 저력 있는 민족이었는데, 대개 거란도 몽골의 방계(사실은 거꾸로 된 소립니다만)로 보는 만큼, 서쪽의 유목 세력보다는 뭔가 확실히 세련된 기질, 정신적 특성이 돋보입니다. 뭐 우리하고도 아주 먼 혈연이 아니지 않습니까. 회수를 경계로 적정 수준으로만 강남을 위협하고, 화북을 다스리면서(이 역시 순수 정복 왕조로는 초유의 경험이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그만큼이나 선방한 그들의 노력이 갸륵하죠) 경제적, 정치적 실리를 축적, 향유한 그들의 치세도 꽤 성공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독특한 건 당구트, 즉 서하 족입니다. 이들은 현재의 간쑤 성 일대에 웅거하며 오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유의 역사를 이어왔는데, 간쑤 성이나 샨시 성 모두 중원에서 얼마나 가까운 위치입니까. 이처럼이나 가까운 곳에서 중화의 심장을 노려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 고유의 저력을 높이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이랬던 그들을, 가장 격렬한 저항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칭기즈칸이 절멸 정책으로 대응했기에, 오늘날 그들의 흔적은 (그 수수께끼 같은 문자 해독과 함께) 영원히 망각 속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서하는 비록 우리 민족과 직접 교통이 드물었으나, 이 거란, 여진 등의 막강한 세력을 상대로 그토록 오래 비등한 형세를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배달 겨레의 실력과 활기를 후히 평가해야 합니다. 정복 왕조의 자취는 곧 우리 겨레의 미러링과도 같다는 점에서, 특히 우리들은 이들의 지난 흥망성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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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범한 위인전: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을 담다 | 서평 2017-09-22 20:25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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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위인전"이라는 말 속에는 얼핏 보아 역설이 배어 있습니다. "위대하지만 평범하다"라는 뜻도 되니까요. 하지만 이 책 제목은, 특히 책을 다 읽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독자에게, 어쩌면 반성을 촉구하는 뜻을 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위인'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의 오늘이 있게 한 진짜 위인들을, 위인으로 생각하고 대접해 본 적이 있는가? 그분들께 그저 무심한, 평범한 이웃이나 보듯 열의 없는 시선이나 주고 지나치지는 않는가?"

개인 단위에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 개인이 속한 민족 전체가 다른 겨레에 의해 노예 취급을 받고, 다른 나라로부터 자존을 인정 못 받는 형세라면, 그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번영한 독립 국가을 일구는 데 피와 땀을 바친 애국지사들께 각별한 감사와 존경을 가져야 하는 거죠.

헌데, 아직도 정정히 살아계신 유공자, 지사들께 대해 우리는 조금의 관심이라도 과연 품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들 중 많은 수는, 독립 투사들의 활약과 족적을 그저 과거에 속한 일로 치부합니다. 이처럼 곱씹고 되새기고 현재의 맥락으로 재해석해야 할 과거를 그저 망각의 늪에 묻어 두는 민족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죠. 당장 애국지사,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물어 보면, "응? 그분들 중에 아직 생존해 계신 분도 있나?" 같은 대답이 고작입니다.

겨레의 생존과 자존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들을 그저 이처럼 무덤덤히 지나치니, 침략자의 후손들이 여전히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우리는 최상의 사의(謝意)와 존경을 바쳐야 할 인물들에 대고는, "그저 평범한 장삼이사를 대하듯" 소홀한 마음만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인지, 마음아프고 죄스럽게도 "평범한 위인전"입니다.



지금부터는 "진짜 위인, 우리가 마땅히 기리고 우러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오희옥 여사님에 대해, 이 짧지만 긴 책을 통해 그 생애를 살펴 보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80페이지의 분량임에도, 그리 짧은 책 같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일단 한 페이지에 수록된 텍스트의 양이 꽤 많아서도 있고, 텍스트가 담은 그 가슴아프고 장엄한 사연의 무게 때문에도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오희옥 여사는 아버님 오광선 선생, 어머님 정현숙 여사의 슬하에서, 두 분이 20대 중후반이던 시절 태어나셨습니다. 1926년생이니 아흔을 훌쩍 넘기신 나이이건만, 당신 스스로 자랑하시듯 여전히 정정하시고 맑은 정신으로 그 먼 과거(정작 기억해야 할 젊은 우리들은 까맣게 잊고, 아예 챙기려 들지도 않는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증언하십니다. 특히 독자로서 눈여겨 본 점은, 사항이나 행적을 일일이 새기시는 일도 그 연세에 쉽지 않겠건만, 목격하고 체험하신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그때의 진솔한 감정까지 그대로 재현, 토로하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전략)일어는 몰라. 포로수용소 갔을 때야 봤는데, 뚱뚱해. 돼지같이 앉아서 장기 뜨고 있었어."

저는 이 인상깊은 술회에서, 마치 그 시절 극우파 세력의 연합에 맞서 투쟁한 서양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파시스트 돼지"라고 즐겨 조롱하던 정해진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일제도 분명 이탈리아- 나치 독일의 전범 진영과 "축"의 연대를 이뤘으니, "돼지" 맞죠. 뭐 일인들의 평균체형이야 남달리 뚱뚱한 편인지는 (당시건 지금이건)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하필 오희옥 지사님의 눈에 띈 그 자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신적 특질을 (용케도) 혼자 대변하고 있었나 봅니다. "뜨고"는 "두고"의 강한 발음으로 짐작되나, 지사님의 생생한 육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여 좋았습니다.

"'자'는 일본식이야. 우리는 희, 옥, 숙, 영을 주로 썼지." 사실 지사님보다 훨씬 이후 세대들(여성분들)도, 자신의 세대 명명 관습에 대해 민감히 의식들을 잘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의 특징은, 자신을 외부의 객관적 틀에다 놓고 보지를 못한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예를 들어 "노래는 일본 노래가 최고야!"라며 큰 소리로 술자리 등에서 정체 모를 가사와 곡조를 열창하곤 하는 모습도, 우리는 그리 드물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지사님은 일상을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모습에서도, 이족의 지배가 할퀴고 간 아픈 상처를 일일이 체감하시는 듯합니다.

이 책에는 컬러판 여러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물론 사진술 발달의 한계로, 찍힐 당시에 모노톤인 사진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만, 그 시절 특유의 세피아색채, 흐릿하게 빛이 바랜 귀퉁이 등이 그대로 표현된 도판들은, 텍스트 못지 않게 소중한 기록을 후대인, 독자들에게 남겨 주고 있습니다.



오 지사님과 함께 사진에 실린 분들은, 아무리 못난 후손들이라도 그 함자나 존영을 알아챌 만한, 정말 쟁쟁하신 순국 선열들이십니다. 오 지사님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백범이나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 선생 같은 분의 함자를 예사롭게 거론하십니다. 그도그럴것이, 오 지사님이 어린 소녀였던 시절, 이들 까마득히 거룩한 애국 지사들께서 딸처럼 손녀처럼 돌보고 교양도 가르치셨던 환경이었으니 말입니다. 평생을 헌신하여 조국의 광복만을 도모하신 이 어르신들은, 그 마음씀도 이처럼 다정하고 자애로우십니다. 얼마나 공사에 다망하셨을 텐데도 말이죠. 우국지사들은 평소에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고 연마하셨기에, 학식도 풍부하고 필체도 어쩜 그런 명필이 다시 없을 만큼 글에서 풍기는 혼과 얼이 누구 눈에도 두드러집니다. 그런 분들을 사사하신 오 지사님 역시, 얻다 내놓아도 고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멋진 필체를 선보이십니다.



오 지사님의 부친께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선대 어르신들도 예외 없이 무장 투쟁 계열의 항일 운동가들이셨습니다. 모친 정현숙 여사는 비교적 최근에 타계하신 편인데, 여전히 우리 일반인들에게 그 함자가 낯설게 들리니 근현대사 교육의 부실함과 방향 없음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실감합니다. 오 지사님께선 또 남달리 총명하시고, 운동 신경까지 빼어나셔서 당신이 직접 회고하시는 과거사 중 재미있는 대목이 꽤 많았습니다. 노령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귀중한 기록과 구술을 남겨 주신 것도, 유달리 맑고 청명한 정신에 그 육신이 그대로 조화를 이룸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대의를 위해 헌신한 영혼은 위인됨을 언제나 "승자"로 자리매김하게 마련입니다. 부정한 권력과 재물을 건사해도 사악한 자들은 언제나 건강도 나빠진 채 패자로 죽듯이 말입니다.


오 지사님은 평생을 교직에 복무하다 정년을 맞아 퇴임하셨습니다. 이렇게 불꽃처럼 올곧게 사신 분은 어떤 처지에서도 여한이 안 남는 정정당당한 마음과 뜻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으시고, 그 자체가 거대한 축복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죠. 어느 버스기사가, 오 지사님이 내민 "보훈대상자 카드"를 보자, "여자는 이런 것 안 될 텐데"라고 했답니다. 미국 같으면 전쟁 영웅이 모습을 드러내는 어느 공공장소에서도, 시민들이 기립하여 숭고한 애국심을 기리는 게 보통이죠. 하물며 노령의 애국지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여자"라니요. 그 기사 욕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저 분별 없는 기사가, 다 은혜를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누가 누굴 나무라겠습니까. 오희옥이라는 함자를 들어 본 적도 없는 우리, 아예 들어보고자 노력도 않은 우리들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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