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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강역과 지리 - 방학봉 | My Reviews & etc 2018-01-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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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발해의 강역과 지리

방학봉 저
정토출판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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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노래로 그 과거의 영화와 기백을 빚어내기도 했던 고대 정치 단위 "발해"는 아직도 역사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가 하면, 제법 많은 대목들이 생생한 유적과 함께 벌써 해명되기도 했습니다. 기록의 미비로 알 수 없는 사항을 아쉬워하는 건 어쩔 수 없으나, 후손된 도리로서 이미 규명된 역사적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발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고, 다양한 이민족들이나 정치 단위들과 대치했었기 때문에 각종 정치외교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교통 수단이 개발되어야만 했습니다. 5개의 큰 "길"은 발해가 처한 미묘한 외교적 스탠스를 잘 보여주는데요. 우선 학자들마다 설이 갈리기는 해도 동쪽의 일본으로 통하는 길은 첫째 동경용원부에서 출발하는 경로, 둘째 성진(지금 북한식 명칭으로는 김책시)을 기점으로 삼는 경로 등이 있었습니다. 동경용원부는 지금의 "훈춘"입니다. 이 책은 정확한 지도를 여럿 독자에게 제시하지만, 간혹 어떤 책을 보면 일본으로 떠나는 기점을 남경남해부로 잘못 표시하기도 합니다. 남경남해부는 오히려 통일신라로 향하는 외교 사절이 준비를 차리던 거점이었습니다. 남경남해부가 정확히 어디 위치했는지는 아직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며, 함흥설과 북청설이 대립합니다.

신라도 통일 후에 5소경(小京)을 두었는데 영토가 넓고 원 수도가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발해는 처음 동모산 인근에 수도를 비정했으나 이후 중경 현덕부로 옮겼고, 가장 오랜 동안 수도로 기능했던 상경 용천부로 다시 옮깁니다(도중에 잠시 동경 용원부에 두기도 합니다). 서경 압록부는 당나라에의 조공 루트 기점이었다고 하는데, 발해가 당나라와 그토록 잦은 충돌을 빚었으면서도 많은 경우 외교적 타협을 이뤘던 흔적이기도 합니다. 조공은 오늘날 우리가 오해하는 개념과는 좀 달라서, 대국이 소국의 존중을 받을 만큼 국력이 넉넉지 않은 경우 이런 의례를 따라 주는 정성에 오히려 고마워하기도 합니다. 외교 문서 속에는 당나라가 신라에 대해 이런 감사를 여러 번 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장령영주도의 경로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고증이 이뤄진 대목이었습니다. 보통 5도의 이름을 간략하게만 표시하고 마는데, 이 책은 압록조공도, 장령영주도, 용원일본도, 부여거란도, 남해신라도 등으로 다섯 글자씩 맞춰 정확히 알려 줍니다. 용원일본도인 이유는 앞에 적었듯 동경용원부에서 출발하기에 그렇습니다. 부여거란도가 이름인 이유도 "부여부"라는 곳이 거란도의 출발기점이라서고요. 장령영주도는 보통 "영주도"라고 간략하게만 부르는데, 도착점인 영주는 오늘날의 "조양"입니다. 돈화(발해의 첫 도읍)을 출발하여 "장령부"에서 중요한 절차를 거치는 길이기에 이름이 저리 붙었습니다.

발해는 이름을 진(震)으로도 쓰는데 우리 나라의 별명 중 하나가 "진단"이며, 일제 때에도 "진단 학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이때의 "진"과 한자가 같습니다. 이뿐 아니라 궁예가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마하진단"의 약칭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한편 고대 삼한 이전의 정치 단위 이름이 "진"이었는데, 이것과 진한이라고 할 때의 "진"은 辰으로 쓰기에 글자가 서로 다릅니다. 한편, 여진족이라든가 동진국이라고 할 때의 진은 글자가 眞입니다. 우리들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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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신이 되는 날 | My Reviews & etc 2018-01-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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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AI가 신이 되는 날

마츠모토 데츠조 저/정하경,김시출 공역
북스타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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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입니다. AI의 성과가 고대의 신탁처럼 기능할 수 있는 세상. 그런데 일단 특이점에 도달한 후 인류의 삶이 이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라니요.

AI가 문명의 기초를 위협할 수 있다는 예측은 꼭 상업적인 SF 영화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예컨대 스티븐 호킹 같은 정통파 석학들도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간헐적으로 몇 마디씩 한 적 있습니다. 도구로서의 AI가 일상의 다양한 분야에 요긴히 쓰일 수 있다는 전망은 총론으로서는 드물게 나오는 편인데, 이는 아직도 어떤 패턴 어떤 개념의 AI가 상용화 실용화될지 분명한 전망이 서지 않아서입니다.

한편 인공지능의 진단이 마치 신탁처럼 취급되며, 실체를 알 수 없는 권위(그 누구도, 어떤 경로로 그런 결론이 도출되었는지 모르기에)에 의해 휘둘리는 사회를 상정하며 음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이들도 있었는데 저 개인적으로 대중서를 통해 접한 범위에선 주로 일본 학자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 저자는 방향성을 다르게 잡은 셈입니다. 방향성도 다를 뿐 아니라 상상의 전개 폭도 훨씬 넓습니다.

저자는 나이가 지긋한 중견 기업인이며 직종도 컨설팅 분야이지만, 마치 망가를 즐기는 오타쿠라든가 천진한 중학생처럼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는 필치입니다. 제 주위에는 "너무 황당한 논의 아닌가" 같은 반응도 있었습니다만, 논의의 단계가 넘어가는 모습이 흔한 잡담과는 달리 치밀한 상상(논거까지는 아니라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습니다.

AI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장악한 미래처럼)에서도 소수의 인간이 반란군을 조직하여 과거의 자유를 꿈꾸는 몸부림을 벌인다... 이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빈약한 공상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빈틈없는 논리연산체계를 구축하고 완벽한 추론 능력을 갖춘 그들에게 통치력의 누수지점은 없으며, 이런 그들이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인간이라는 종에게 보호 장치를 통해 근근한 생존을 가능케 하거나, 절멸시키거나, 아니면 다른 계로부터 도달한 또다른 AI에 의해 멸망한다거나 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게 그저 기계적으로 경우의 수를 나눈 게 아니라, 그가 경영인으로서 관측한 현 시점의 AI의 기술적 완성도를 놓고 추론한 결과이므로, 예컨대 그들(?)이 레지스탕스의 봉기를 허용하는 시나리오는 과감히 배제도 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공산주의라는 이념 체계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목표를 전혀 달성 못 한 채 현실의 비능률과 자체 모순에 의해 붕괴했습니다. 저자는 일각에서 이는 "기본 소득제" 옹호를 놓고, 인공지능이 초래한 일자리 감소가 전혀 의도치 않게 공산주의 사회의 원형에 사회 구조를 수렴케 하는 결과를 낳는다고도 합니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과거의 종교사를 잠시 개관하며, 어떤 경위로 종교라는 신념 체계가 발흥했으며 어떤 이유로 현재의 거대한 4대 종파가 살아남았고, 역사상의 어떤 고비를 넘다 교세가 쇠퇴하거나 반대로 급격한 발전을 보았는지에 대해 잠시 되짚습니다. 여기서 제가 흥미롭게 본 건 불교에 대한 개관이었습니다. 불교는 일체의 종교 허례 허식을 배제하고, 만사가 공(空)이라는 초월적 결론으로 신도를 이끄는 매우 고차원적이고 소수 엘리트의 입맛에 맞을 만한 교리를 내세웠으나, 그만큼 일반 대중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고도 합니다. 이러던 게 이슬람 교 무장 세력의 침략으로 사원과 승려와 경전이 대거 파괴, 사상(死傷), 소실되어, 인도 아대륙에서는 교세를 잃은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고 하네요. 기존의 정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으나 강조하는 포인트가 미묘하게 다른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자가 느닷 종교를 끌어대는 이유는 뭘까요? AI가 바로, 인간의 내면이 끊임없이 갈구해 온 종교적 욕구를 풀어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AI는 첫째 현세의 의문을 놓고 그 압도적인 정보 처리 능력으로 상당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현세 기복에 대해서는, 어차피 고등종교가 이 needs를 해결 못하고 그저 정신적 위안에 그치는 현실에 비추어, 일정 신뢰만 마련되면 넉넉히 종교를 대체하리라 봅니다. 그럴싸한 추정입니다.

저자는 또한 현대 문명이 근본적인 모순점을 안고 있다 봅니다. 현재까지는 요행 혹은 파멸에의 두려움 때문에 전면 충돌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핵무기란 인류라는 종의 기본 생존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거대 변수, 아니 상수입니다.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본주의 역시 정치적 포퓰리즘, 자원 배분 구조의 취약점 때문에 과연 올바로 지속될 수 있을지 큰 의문과 우려가 생기는 형편입니다. 이런 모순과 위기는 현생 인류의 지혜로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며, 사적 욕망도 없고 감정에 흔들릴 가능성도 없는 AI가 올바른 해법을 도출해 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는군요.

AI가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면, 이 산업이나 학문 영역에서 주도권을 쥔 국가가 미래를 주도해 나가는 게 당연합니다. 그 유력 주자로 저자(다시 강조하는데, 일본인입니다)는 중국을 꼽습니다. 전망이 불확실한 각종 산업에의 투자는 민간에 그 시행과 도전의 기회, 성공의 과실과 실패의 리스크를 전가할 수 있지만, 이런 중추적 과제는 전국의 영재(얼마나 인구가 많은가요)를 뽑아 단일 기관에다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연구를 진행시킬 수 있는 중국이 현재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입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이슈와는 무관하나 최근 원숭이 복제를 성공시킨 뉴스가 전파를 타기도 했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AI가 인간의 두뇌 기능을 대신하면 과학을 포함 모든 지적 영역에서 인간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고, 대신 육체를 이용한 활동이 새로이 주목받으리라고 전망합니다. 문명이 대뇌 피질상의 진화를 통해 도약을 겪은 이래 정반대의 방향 전환을 맞는 셈이지요.

ㅎㅎ 너무 과감한 상상과 추론이 잔뜩 펼쳐지지만, 어떤 건 정말 공감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보수뿐 아니라 일에서의 성취감 때문에 그 직무에 전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특히 과학이나 공학 쪽에서 하는 일마다 판판이 AI보다 저성과를 낸다면, AI가 다가와서 "넌 그거밖에 못하니?"라며 무시하지는 않겠으나 당사자의 모멸감이 얼마나 크겠냐는 겁니다ㅋㅋ. 총이 무장 수단으로 일반화되었을 때 검술의 대가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나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지만, 감정적 선호를 목청 높여 표시한다고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거죠. 어떻습니까?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근본 결함"에 대한 견해도 경청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과학책도 아니고 경영 서적도 아니지만, AI가 부른 거대 체제 담론상의 시끄러운 동요에 대해 한번 조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네요. 이 저자의 주장을 추종하라는 게 아니라, 이 발랄한 주장을 경청하고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따로 발전시킬 촉매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지(衆智)가 모아지면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되어 가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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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치제도와 관료제 - 김운태 | My Reviews & etc 2018-01-2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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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려 정치제도와 관료제

김운태
박영사 | 200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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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두껍지는 않으나(321페이지) 고려 문화를 공부하고 싶은 일반인들이 필요한 사항만 찾아보기 좋게 정리한 멋진 책입니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게, 고려 시대 관리 등용에서 이른바 8조 호구법을 시행할 때 "8조"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이는 먼저 자신의 부, 조부, 외조부, 증조부, 다음으로 자신의 처가에서 부, 조부, 외조부, 증조부 등을 밝히는 절차입니다. 고려 시대는 조선과 달리 신분적 차별이 까다로웠으므로 이처럼 출신 성분이 확실치 않으면 과거 응시는 물론 관직 진출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고려 시대사를 공부하면 반드시 나오는 게 재추합좌회의입니다. 재부는 재상들이 소속, 근무하던 부서인데 당의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친 기구로서 고려 특유의 명칭, 구조로 변형하여 "중서문하성"으로 운용했습니다. 추부는 중추원을 가리키는데 이곳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기구입니다. 요즘식으로 따지면 전자는 국무회의, 혹은 당정연석회의,  후자는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수보회의"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이 재추합좌회의를 가리켜 "도병마사"라고 부르는데, 왕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고 신하들이 모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던 당시 정치 구조의 특징을 잘 밝혀 준다고 하겠습니다.

고려 시대의 강력한 신권을 잘 보여 주는 증거 중 하나가 대성(臺省)이 행사하던 "서경권"입니다. 서경은 조선 시대에도 있었습니다만 5품 이하의 관직에 대해서만 행사되었습니다. 반면 고려 시대에는 모든 관직의 임면, 신설에 대해 어사대와 중서문하서의 낭사가 동의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제도적으로 치밀한 것은 좋으나 이처럼 왕권이 강력한 견제를 받아서야 국정 개혁 추진이 과연 용이했을지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합니다.

보통 2군 6위라며 고려의 중앙군제를 설명하죠. 2군은 응양군과 용호군입니다. 이들은 주로 국왕의 친위대 노릇을 맡았다고 합니다. 6위는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 등인데 이 중 앞의 3위가 더 우대받았다고 하는군요. 금오위는 경찰 기능, 천우위는 의장대, 감문위는 궁성 수비 역할이었는데 전기의 이 천우위와 비슷한 게 중기(무신집권기, 특히 최씨 정권 시기)의 마별초입니다. 마별초는 삼별초의 일원이 아닙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892년에 견훤이 왕 노릇을 하기 시작했으나 감히 공공연히 왕이라 칭하지는 못했다는 게 연표에 나와 있고, 열전 본문에는 900년에 백제 왕으로 칭했다는 점을 따로 적습니다. 이때 국호는 "후백제"라고 김부식이 표기했다는 게 특이합니다. 여튼 학자들은 견훤이 고른 국호는 그저 "백제"였으리라는 데에 대개 동의합니다. 반면 궁예가 왕위에 오른 건 서기 901년이었으나 <삼국사기> 본문에는 그 국호가 고려, 혹은 고구려, 후고구려였음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이후 마진이나 태봉으로 바꾸었을 때는 분명히 기술하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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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결산] 정크 DNA | My Reviews & etc 2018-01-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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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크 DNA

네사 캐리 저/이충호 역
해나무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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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와 불필요, 주류와 비주류의 분류만큼 과학 본연의 태도에서 벗어난 건 없습니다. 이야말로 인간의 가치 판단이 가장 선명하게 개입하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들어서 과연 "적자 생존"의 적자(the fittest)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강력히 제기되는데, 당연, 자명하다고 여겼던 분야가 알고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새삼스러운 각성은, 거대한 진리의 체계 앞에서 인간의 인지 기능이 얼마나 (아직은) 미미한지 그 슬픈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불필요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뭐 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객 전도의 지경까지 갔던 거라면 학자들의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대체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수 세기 동안 거대한 크기의 천체는물론 자그마한 지상 물체의 사소한 낙하까지 거의 모든 물리현상을 설명해 왔던 뉴튼 역학은 미시 세계의 기괴한 작동을 대면하고부터는 그 유효성이 심각한 회의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른바 복잡계의 속성을 거론할 때 항상 대표로 꼽히는 기상 현상 예측의 어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클린턴이나 토니 블레어 등 세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성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줄기세포 연구 규제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많은 유전병 연구에서 그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단계에까지 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명이 이뤄져야 할 분야가 여전히 미지의 베일에 싸여 있어서인데, 대체 98%의 정보가 "쓸모없다"고 분류되었다면 그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과연 얼마나 큰 실용의 영역으로 이어질지는 넉넉히 짐작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그저 발상의 전환으로 시야의 맹점을 보완하는 데에 그칠 게 아니라, 아예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계제가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고작 "유행의 변덕" 같은 천박한 시선으로 파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과학은 여튼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지성의 몸부림 그 역정이며, 어떤 비천하고 열등한 정신이, 그저 무엇 하나가 축의 양방향을 진자처럼 발전없이 왕복한다고 자기 수준에 맞춰 왜곡, 단순화하는 것과는 달라도 크게 다르죠.

저자 네사 캐리는 과감한 비유와 명쾌한 설명으로 그간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축복받은 두뇌입니다. 어떤 이들(제 가까운 지인 중 그래도 신뢰할 만한 식자에 낄 법한 누구)은 "쉬운 말로 문외한에게까지 납득이 가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 전문가라는 사람의 이해도도 의심해 봐야 한다"고도 하던데, 아, 그건 진짜 아닙니다. 자기 머리 속에는 선명히 그려지고 응용 가능성도 시원시원히 떠오르긴 해도, 전혀 모르는 문외한에게 3원색의 채도마냥 이해시키는 건 또다른 과업이요 도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류 대중서 저자와 본격 과학도의 위상을 겸한 네사 캐리는 진정 축복받은 두뇌입니다. 이 깔끔하면서도 유익한 대중서를 읽은 후 종전의 그런 느낌, 인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짐작은 쉬운데 증명은 어렵고, 심증은 흔하나 물증은 귀한 법입니다. "정크 반복 DNA(얼마나 부당한 이름이었는지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통렬히 깨닫게 됩니다)"는 대개 덩치가 크고, 어쩌면 그 이유 때문에 더 손쉽게 부당한 오명을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껏 종전 대중서의 오도 때문에 지성 용량이나 자원을 낭비했다고 여기진 마십시오. 올바른 최신 지식의 업데이트는, 오히려 당신이 종전 지식을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했을수록 더 빠르게 더 정확히 이뤄지는 법입니다. 공부하느라 들인 수고는 결코 무위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식은 언제나 전복, 대체, 반박되게 마련인데 이런 걸 두고 지식의 획일화 타령을 하는 자는 그저 학창 시절의 개인적 악몽을 한심히 호도, 합리화하려는 새빨간 거짓말 외에 다른 의도가 없습니다.

학자들이 "단순 서열 반복"이라 부르는, 저보다 훨씬 작은 반복 단위들은 인간 유전체 중 약 3%를 차지(p67)한다고 합니다. 이 분야뿐 아니라 어떤 학문의 영역에서도, 미지의 패턴 그 정체를 밝히는 과업은 출현 빈도가 높으면서도(용이한 일반화 가능), 개체마다 뚜렷한 대조가 가능한 단서에 의해 결정적 도움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 대목을 언급하며 저자(뿐 아니라 모든 일류 연구자)가 느낀 환희와 스릴, 영감이 어떤 것인지 생생히 전해 오는 문장입니다. 입증의 문제는 과학 영역에서 가설의 타당성 검증 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범죄의 과학 수사에서 용의자의 유무죄를 실제 입증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전혀 다른 영역의 성과를, 비유적으로건 실체의 설명으로건 교묘히 연결하려 버무릴 줄 아는 게 (학자 스탠스를 잠시 떠나) 순수 글쓰기 재주꾼으로서만의 자질이겠습니다.

p134를 보면, 좀 놀라운 일이지만 "한 종류의 긴 비암호화 DNA는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물론 네사 캐리를 포함한 학자들)가 이 종류의 분자를 무시해 왔다"는 정직한 고백, 혹은 자성의 한 마디가 나옵니다. 사실 무시했다기보다는 자 이용할 자신이 없어서 외면했던 단서라고 해야겠습니다. 먼 훗날 자신들보다는 더 유리한 정보 여건에서 연구를 진행할 후배들에게 미루면서 말이죠. "긴 비(非) 암호화 RNA가, 신뢰도가 높은 수준으로 감지되지 않았는데, 이는 필요한 기술의 감도가 충분히 높지 않아..." 역시 보십시오. 또, 어느 분야에서나 나타나는 측정의 신뢰도, 그리고 통계상의 표본 처리 신뢰도 문제입니다. 두 이슈가 독립적이지 싶어도 결국은 같은 말입니다. 이 책에서 수도 없이 자주 등장하는 감도, 감도... 감도가 향상되면 deviation의 significance를 따질 필요가 줄어듭니다. 이 세부적 국면에 한정해서라면, 패러다임은 교체된다기보다 더 정교화하는 겁니다. 단지 해석의 병목 현상때문에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안 통한다고 많은 이들이 착각할 뿐이죠.

"하지만 긴 비암호화 RNA는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처럼 뚜렷한 서열 표지가 없으며 종들 사이에서 잘 보존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캐리 교수의 결론은 "인간 유전체에서 기능적으로 연관이 있는 서열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라는 겁니다. 캐리 교수처럼 명철하고 의욕 가득한 학자도, 구절양장과도 같은 경우의 수, 수형도의 분기(分歧) 앞에서 이처럼 "인간적인 주저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 가장 활발하게 조절되는 건 아주 오래된 긴 비암호화 RNA들이고, 이것들은 대부분 발달 초기에 관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 우리와 우리의 친척들은 모두 발생을 시작할 때 비슷한 경로를 사용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 다음 문단의 한 줄이 의미심장하죠. "이들 '정크' RNA를 암호화하는 서열들은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서열보다 훨씬 빨리 진화하고 있다." '정크'에 벌써 따옴표가 붙었고, 일부 저자들의 주장이라고 한정하긴 하며, 바로 다음 문단에서 저자 개인의 유보("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를 피력하지만, 이런 입장을 (공정히?) 소개한다는 것부터가 저자의 내심을 어느 정도는 드러내는 흔적입니다. 물론, 저자는 유보적 입장의 논거 중 하나로, "염기 서열은 종들 사이에 보존되지 않더라도, 3차원 구조는 보존될 수 있다"고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 마지막 인용구 같은 시원한 반박(혹은 암시) 덕분에 네사 캐리 교수의 책이 빛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긴 비암호화 RNA의 발현은 본질적으로 방관자 사건이다." 다시 필요-불필요/메인-정크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들어옵니다. 방관자 사건이란 말은 바로 뒤 문장에 나오듯 "부산물"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더 구체화한 설명은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데, "... 특정 지역의 유전자들이 발현될 때 억제가 완화된 결과로 나타나는 부수 현상...."이란 거죠. 이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물론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며, 이들을 가리켜 저자는 "정크 마니아"라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부릅니다. 저자는 두 입장의 대립 속에서 절충을 하려는 듯 보이나, 잘 읽어 보면 그래도 어느 한쪽에 조금은 선호가 기울어 있습니다. "성급한 범주화"에는 언제나 무리가 따르며, 새로이 출현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어설픈 범주화에 맞춰 왜곡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를 드는데, 이런 교훈은 비단 분자세포생물학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서 더욱 울림이 깊어요. 범주, 정의, 이름표가 중요한 게 아닌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편의대로 붙여 둔 "우상"에 먼저 매몰되곤 합니다.

"프래더- 윌리 증후군 환자 중 25%는 완전히 정상인(결손 부분이 전혀 없는) 염색체 2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p184)" 문제의 15번 염색체를 부모 양쪽에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둘 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사실에 학자들은 주목합니다. 이런 패턴은 오직 각인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바른 해답이 나온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학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건, 대체 왜 그럼 다른 문제에서는 각인 패턴이 아닌 다른 원리, 가설을 적용해야 쉬운 설명이 가능하냐는 건데, 이처럼 다양한 맥락의 통일적 적용, 우선순위까지 남김없이 해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연구결과가 축적되어야 할지 아무도 모르니 그저 아찔하기만 합니다. 이때 "각인"은 콘라드 로렌츠의 그 각인과 철자가 같습니다만, 이 저자 네사 캐리 등이 근자에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후생유전학(우리는 네사 캐리라는 이름을 이 성과 때문에 지금 아는 거죠)에서는 전혀 다른 뜻을 갖습니다. 네사 캐리의 다른 히트작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배운 적 있습니다.

"먼저 시동을 걸기나 해야 무슨 작동이란 게 일어나는 법이다." 생각해 보면 아찔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인데, 예컨대 "프로모터", "인핸서" 같은 용어도 교과서를 펼치며 공부하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이처럼 일반화한 말- 프로모터니 인핸서니-로 이름이 붙으면 더 어렵게 다가와요). 허나 이처럼 부가티 베이론(이런 고급 승용차를 사려면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할지- 캐리 교수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이라서인지 아니면 본인이 자동차 마니아라서인지 유독 이런 비유가 잦네요)을 들어 비유를 하시니 조금 긴가민가하면서도 일단 독자들은 큰 개념을 쉽게 잡을 수가 있습니다, 감사하게도요. 암튼 프로모터나 인핸서(라고 이름 붙은 구역들)나 예전에는 다 "정크"로 간주되던 학자들의 불청객이었습니다.

정크가 알고보니 특정 기능을 요긴히 강화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어떤 인핸서는 그냥 인핸서가 아니라 슈퍼인핸서라고 합니다(p215. 다능성 줄기세포의 엄청난 의의에 대해서 혹 생각이 안 나시면 앞 p143으로 다시 돌아가 복습해 보십시오). "마스터조절인자는 배아줄기 세포에서 아주 높은 수준으로 발현되지만, 전문화한 세포에서는 그보다 아주 낮은 수준으로 발현된다." '아주'라는 부사가 문장의 전반부, 후반부에서 두 번 다 사용되었다는 데에 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상대적 경향성만 지적하려는 게 아닌 의도죠. "많은 질환들을 치료할 대체 세포들을 만들 가능성"에 학자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6년의 이 대발견은 네사 캐리의 전작 대중서(같은 해나무 출판사에서 이충호 선생의 번역으로 나와 있습니다)에도 언급이 있습니다.

RNA 분자들에서의 기묘한 스플라이싱(p315) 예를 설명한 대목을 보며, 우리는 지금 순수 자연과학이 확실히 전세기, 전전세기와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실감치 않을 수 없습니다. 단지 단백질 암호화와 무관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간 무시되었던 이 수많은 정크야말로, 그간 해명되지 않던 무수히 많은 난제에 접근할 열쇠였음을 발견하는 이 과정은, 특정 학문의 방법론적 성과, 혁신을 넘어, 해변에서 조개 껍데기와 조약돌을 주으며 노닐던 인류가 어떻게 저 광대한 대양을 주시해야 하는지 그 겸손한 자세를 새삼 일깨웁니다. 물론 모든 정크가 알고보니 귀금속 벌크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FSHD 단백질을 발현하는 근육세포들을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파괴하는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은, 이 특권적 위치(캐리 교수만의 독창적 표현)의 단백질을 면역계가 낯설어한 나머지 위협적 외부 요소처럼 간주해서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정크는 이처럼 오작동(?)할 때 특정 질환을 결정적으로 발병시킬 수 있는데, 그건 얘가 정크라서가 물론 아니라 우리가 이 정크(아니지만)의 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할 때 오히려 특정 질환의 예방과 질환에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마운 단서 구실을 합니다.

과학자들의 앞길에 놓인 보다 근원적 난제는, 어느 인과 관계가 최우선순위에 놓일 결정적 원리이며, 어느 인과 관계들이 대등한 자격에서 비슷한 비중으로 가중치를 받으며 결합 작용하는지를 결정하느 것입니다. 정크가 정크 나름대로 독자 기능을 함이 분명히 밝혀지면 새로 이름표를 붙여 주면 끝입니다. 그게 아니라 (정크인지 정크 아닌지도 모를 녀석들이) 상위 다층의 프로세스에서 미묘한 기능을 숨어서 행하는 경우가 골치를 썩이는 겁니다. 이걸 언제 다 분류해서 길들여가며(생텍스의 어린왕자처럼) 인간의 인식 우주에 제 자리를 찾아줄지, 그저 아찔하기만 하지만 이처럼 정크(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에 의미를 부여해 가는 우리 인간의 자태와 노력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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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량으로 투자하라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01-2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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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래량으로 투자하라

버프 도르마이어 저/신가을 역
이레미디어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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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량으로 투자하라!" 무슨 뜻일까요?

현재 가장 많은 학부생들이 애독하는 투자론 교과서인 Bodie, Marcus 등의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대다수의 교재들도 "어디까지나 가치 투자"라는 모토 아래에서 모든 논의를 전개합니다. "무엇이 가치 투자"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지만(불가능하죠), 회사의 참다운 가치와 시장이 매긴 가격 사이에 분명한 갭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이후의 그 방대하고 치밀한 분석과 논의를 시작하는 겁니다.

워런 버핏 역시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건 가치 투자에 철저하고도 일관되이 집중했기에 가능했다고 토로합니다. 요약적 결론만 (보기 좋게) 그리 내세운 게 아니라 <스노볼> 등의 자서전에서 생의 어느 대목(기로)에 성공적인 가치 투자의 결행을 이뤘는지 자세히 밝히고도 있습니다. 타인들이 간과한 알짜 기업을 미리 알아보고, (흔한 말이지만)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전략을 유지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거래량 팩터"는 사실 따지고 보면 저 "가치 투자" 기조에 반드시 모순되는 건 아닙니다. 이 책을 (저 때문에) 읽은 제 주변 분들도 종종 오해를 하시던데 저자는 "가치 투자는 개에게나 줘 버리고, 거래량 분석에 올인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런 말을 보세요. "기술적 분석가들은 펀더멘털 분석이 주가 분석에 있어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는 걸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게요. 가치 투자와 (저자님의) 거래량 포커스 투자는 얼마든지 공존, 병행, 시너지가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왜 당신들은 가치 투자 같은 추상적 주관적 요소에만 주목하고, 보다 손쉬우며 객관적인 징후에는 눈을 감는가?" 같은 안타까움을 통해, 작심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이처럼 자세하게 풀어 놓은 의도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네요.

여튼 저자는 이런 말도 분명히 서문에서 하고는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장이 1980년대나 1990년대처럼 그 탐색이 손쉬우리라고 기대하는가?" 확실히 판은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방식 중 맞는 건 살리고 틀린 건 버리자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대응이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파괴적 혁신론이 힘을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니게 말입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펀더멘털 분석은 가치가 어떻게 주가에 반영되는지를 분명히 주목한다. 그러나 매도 시기, 매수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 사실 중요한 건 언제 치고들어갈지 언제 빠질지의 타이밍인데, 현재 펀더멘털 분석이 위주인 많은 정통파 스탠스의 교과서들에선 이런 언급이 상대적으로 (양, 질 모두) 빈약합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속 시원히 받아칠 수 있는 전문가나 학자도 제 생각에 별로 없지 싶습니다.


잠시만 학계 주류 입장(을 넘어 거의 상식) 중 하나인 Treynor와 Mazuy의 분석틀에서 타이밍 팩터를 어떻게 다루는지 짚어 보겠습니다. 이분들은 상수항을 a, 시장포트폴리오와 안전자산 이자율 사이의 차에  붙은 계수를 b(젠슨의 식에서 베타로 취급되는), 그 이차항의 계수를 c(이 부분이 다른 학자들의 식에 없었죠)로 각각 두고 저 c를 "타이밍"으로 규정합니다. 알파와 베타 이야기는 자주 하는데, 학자는 물론 실무가와 애널리스트들도 저 Treynor의 c는 드물게 언급합니다. 타이밍은 그만큼 계량화하기 어려운 이슈라서입니다. 그리고 펀더멘털 분석의 "실속"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량주라도 천년만년 끼고 있어야 어느 시점에서 궁극적 헤택을 준다면, 당장 돈이 아쉬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차입 투자를 해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인 충고지요. (과도한 레버리징은 절대 금물이며, 뭐 여튼 안정된 여윳돈으로 투자하는 게 정석임은 언제나 타당합니다만) "해당 주식이 장기 보유종목이라는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분류되어 그 업종 전체나 해당 기업이 상승할 때까지 손해를 보면서도 보유해야 하는" 결과를 통렬히 개탄하는 저자의 말 역시, 반박할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타당한 지적입니다. 추세가 이처럼이나 변덕스러운 시대에, 예를 들어 시스코 시스템즈 株를 거론하며 보유 기간에 따라 65%의 손실, 64%의 이익이라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면 더욱 허무해지는 게 "가치 투자 예찬론"입니다.

번거로운 말 다 생략하고, 이 책 저자님이 주장하시는 요점이 뭔지 정리하겠습니다. 캔들 차트를 보되, 첫째 주가 변동 곡선이 어떤 모양을 띠는지에 주목해서, 둥근 바닥인지 둥근 천장인지, 다이아몬드 톱인지  역머리어깨형인지 그 심상치않은 모양에서 "징조"를 분명히 캐치하라는 겁니다. 조런 모양들이 나타나면 앞으로 어느 기간 안에 폭락이 발생할지, 상승이 갑자기 나타날지, 향후 상당 기간 동안은 가격의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지, 이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둘째 거기만 봐서는 안 되고, (이 책 제목이 뭔지 다시 확인하십시오) 차트 하단의 거래량 부분을 들여다본 후, 거래량과 가격 등락이 어떤 패턴으로 상관하는지까지 함께 주목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뭐가 강세깃발이고 뭐가 페넌트인지는 차트 상단만 봐선 쉽게 판별 안 됩니다. 아래의 거래량 패턴까지 함께 고려해야 지금 이게 저자의 분류 중 어느 타입에 해당하는지 가려낼 수 있습니다.

마치 관상이나 풍수지리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무슨 상 무슨 상 하며 기본 카테고리는 명쾌히 나뉩니다만, 실제 인물의 상이나 지형이 그 중 어디에 정확히 포섭될지는 해당 분석을 행하는 이의 공력에 크게 좌우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그 형태가 안 보이는데도 용케 개형을 잡아내어 무슨무슨 분류에 집어넣는데, 이게 억지인지 핵심을 정확히 짚었는지는 오로지 결과가 말해 주는 거죠. 책을 보면서도 "왜 이게 손잡이가 있는 컵이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림만 보지 말고 텍스트에서 저자가 말하고자는 의도를 면밀히 숙고해야 하며, 다시 말하지만 하단의 거래량 부분을 함께 봐야 합니다.

거래량도 그냥 거래량이 아닙니다. 일중 주가 변화(혹은 종가 변화)를 반영한 것, 틱 거래량, 거래량 토대 주가매집, 각종 지표에 의해 수정된 것, OVB, VZO, WAD 등 다양합니다(더 앞선 시기에 레전드들이 이미 개발해서 업계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들이죠). 왜 이렇게 저자는 거래량에 주목하라고 권하는 걸까요? 소박하게 말하면, 정확하게 국면을 본 큰손이나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여튼 개미 입장에서 무시할 수 있는 조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전에 속는 건지 아니면 진정한 변화를 반영한 시그널을 캐치한 건지는 정말로 신중히 분별해야 하는데, 그에 도움을 주는 자료들, 기준들이 (저자의 말에 의하면) 차트의 저런 심상치 않은 조형들이란 거죠.

좀 어렵다는 반응이 제 주위엔 많았습니다. 공부할 때도 중간 진도에서 헤매는 건 기초 개념을 충실히 학습하지 않아서입니다. 저는 특히 pp. 98~113에서 저자가 잡아 준 기본꼴 바(bar)들이 갖는 함의, pp. 122~140의 "추세"에 대한 힘 있는 개념 제시를 정독하시길 권합니다. 후반부는 이 논의가 확실히 이해되면 큰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논의들입니다. 읽어 보면 너무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정말 차트만 보고(물론 아니지만) 기술적 분석만으로 실패 없는 투자가 가능할 수도 있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하던 게(아니면 룸쌀롱에서의 실없는 허풍) 현실에서도 진지한 논의가 슬슬 시도되는 셈인데, 대단히 흥미로운 게 사실입니다. 단,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정석은 어디까지 가치 투자, 펀더멘털 분석임도 잊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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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삼국지 100년 도감 | My Reviews & etc 2018-01-26 21:39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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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도로 읽는다 삼국지 100년 도감

바운드 저/미츠다 타카시 감수/전경아 역
이다미디어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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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너무도 많은 "삼국지 마니아"들이 계십니다. 우리 북뉴스 카페에도 삼국지를 사랑하시는 뛰어난 전문가급 회원들이 많으시고요. 이때 "삼국지"라 함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부정확하게 일컫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이겠고요. 다른 하나는 본 명칭이 그것인 진수의 정사서입니다. 명청대에 완성된 모습을 갖춰간 삼국연의를 너무도 열독 애독하기에, 많은 이들은 진수의 정사서에까지 관심을 넓혀 가며 픽션에 대한 본문비평까지 시도하시는 모습도 종종 봅니다. 어떤 분들은 사마광의 자치통감 중 해당 대목까지 대조해 가며 독창적이고 예리한 평설을 짓기도 합니다.

꼭 이처럼 전문가급으로 연의, 혹은 정사서를 열독하는 분들이 아니라도, 즉 아직은 중국 역사의 가장 역동적이었던 그 시대에 대해 낯설어하고 한문 지명 인명의 행진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지금 이 멋진 책처럼 복잡한 사항들을 간단하고 명쾌한 도식화로 간추려 놓은 "컴패니언"이 혹 곁에 있다면, 훨씬 쉽게 본문을 읽어 나가실 수 있겠습니다. <삼국지연의>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대개 인명, 지명이 헷갈리거나, 아님 그 단계는 넘어섰어도 장군들(과 그들의 책사)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구체적인 전장의 전략에서 어떻게 효력을 발휘한다는 건지 서술을 따라가기 힘들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남보란 듯 삼국지연의의 구체적인 사건, 정황 묘사를 즐겨 입에 올리는 이들도 다른 장면의 디테일을 짚어 가며 누가 질문, 논쟁을 시작하면 시원한 답을 못 내어 놓는 수가 많습니다. 마음에 드는 몇몇 장면에 마니아처럼 몰입하여 전문가처럼 해설할 수도 있지만, 이 방대한 소설 전편을 놓고서 일관된 부연 설명과 주석을 달 만한 도사님들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혹 삼국연의를 통독한 이들 중, 이 책 한 권만 곁에 있어 준다면, 도원결의에서 오장원의 장렬한 폐막까지, 혹은 관도에서 적벽까지, 어느 한 지점을 턱 짚어도 진정 제갈량이나 순욱 주유 사마중달처럼 청산유수 같은 변설이 입에서 술술 나오게, 텍스트에 대한 안목이 훤히 밝아질 듯합니다. 정말로요. 그만큼 자세하고 내용이 알차며, 수회독을 마친 마니아들이 항상 헷갈릴 만한 사항을 잘도 알아서 긁어 주는 놀라운 "족집게 참고서"입니다.

우선 pp. 64~65를 좀 보죠. 연의에서 사실상 주인공이라 할 유비가 자립 기반을 (無로부터)일궈나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혹 명청대 이전에 생존하여 역사 전반에 달통한 교양 높은 선비라고 해도, 정사서만 읽어서는 유비에 대해, 마치 성장 소설의 히어로처럼 인생의 성취를 가꿔 나가는 과정을 놓고 감정 이입을 하긴 힘들 것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벌써 조선 후대 이래) 그토록 연의에 열광하는 건 "주인공" 유비의 매력이 그만큼 크게 작용해서입니다. 헌데, 왜 유비가 손바닥만한 땅뙈기 하나를 마련 못 해 그처럼 고생했는지, 왜 특정 시점부터는 운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는지는 사실 누구 눈에도 의문입니다. 심지어 조조마저도 그의 그릇과 인품과 웅대한 포부를 인정했는데도 말입니다. 이 배경은, 당대 중국 대륙 구주가 어떠어떠한 세력가들에 의해 과분되었는지를, 지도를 통해 살펴 보아야만 정확한 파악이 가능합니다.



조조는 부친의 원한을 갚는다면서 서주에서 대거 학살을 저질렀고, 이 경위는 비교적 상세히 연의에도 기술되어 있습니다. 헌데 이 사건과 장평관 전투, 이각-곽사의 난, 예주 정벌과 무평 전투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는 소설을 꼼꼼히 읽어도 이해가 분명해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건은 삼국연의에 생략되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연의는 독자(청중)이 충분히 감정이입할 만한 인물을 중심으로, 의리와 충절의 승리, 악인스러운 잔꾀의 패배 등에 드라마틱하게 초점을 맞추긴 하나, 서사의 흐름에 몰입하는 중 맥락을 잠시 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하긴 이처럼 다양한 목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텍스트 포맷이란 존재가 불가능하겠지만요. 이 때문에 이런 멋진 책이, 도표와 지도를 통해 일목요연히 정리해 주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죠.

삼국지에는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유표는 의심 많고 안정감이 떨어지는 인물로서, 유현덕에게 대승적 관점에서 일정한 정치 기반을 양보하지도 못하고, 기량이 떨어지는 후계자를 내세운 탓에 결국 영지가 와해되는 운명을 자초한 정도로 우리 인상에 남습니다.



허나 사료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면, 그는 (마치 이후에 위나라에서 실권자로 군림한 사마의처럼)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청류파 관료 출신이었고(사마의와는 대략 부자지간 정도 나이 차가 납니다), 형주로 부임한 후에는 일거에 정치적 평화를 도모한 효융의 면모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정확하고 공평한 면모를 독자에게 고루 소개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책은 정확하고 상세한 지도를 담았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실질적이고 유기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인물 사전 구실을 겸합니다.

관도의 전투 대목을 읽으신 분들은, 이 대회전이 이후 중원의 역사 향방을 가름한 이정표와도 같다는 평가에 다들 동의합니다. 어떤 이는 "당대 인류가 짜낼 수 있는 모든 꾀와 책략, 문명의 이기가 모두 동원된 일대 결전"으로도 비정하는데, 역시 그 과정을 살펴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책에서는 관도전투가 종료된 후, 원소는 허도로귀환하고 유현덕은 예의 그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는 대목을, 상세한 지도와 함께 설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나 치명적이고 규모 큰 패배를 당한 후에도 아직(비록 잠시 동안뿐이지만) 세력을 유지하는 원소의 정치적 자산이 얼마나 방대했었는지 다시 감탄하기도 하죠. 단 왜 이 시점에서 유현덕이 조조에게 다시 몰리게 되고, 처참한 양상으로 패주했는지(그래서 형주로 향했는지)는, 지도를 함께 고찰해야 그 정확한 동기와 추세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공도와 유비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배경, 조인의 승리가 얼마나 향후 판세에 크게 기여했는지의 판단, 패주한 유현덕이 그마나 악조건에서 세력을 추스려 피해를 최소화한 후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과정이 눈에 선히 그려지는 듯합니다.

이미 쓰러진 자에 발길질을 가하거나, 시체에 대고 부관참시를 하는 격 아닌가 같은 빈축을 사기 일쑤이지만, 조조는 원소 세력의 잔당을 토벌하는 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원소의 두 아들이 소모적인 내홍을 피하고 단결했다면 추이가 어찌 변전했을지 모를 형국이었고, 지도를 보면 설령 둘로 갈려 파쟁을 벌일망정 일거에 이를 진정시키는 게 만만치 않았겠다는 짐작이 절로 듭니다. 다시금, 조조가 얼마나 열악한 기반에서 시작한 입지전적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연의>만 읽다 보면, 뻔한 결과론이나 승자 위주의 선입견에 함몰되어 정사(正史)에의 바른 접근이 힘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예쁘고 정확히 뽑힌 최고의 지도 중 하나를 꼽으라면 p131의 컷입니다. 예전에 나온 책들에서 흐릿한 흑백 도판으로 작성된 구주(九州)의 지도는,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지명 표시가 오류를 낸 부분이 많았습니다. 허나 이 책은, 일단 거의 모든 컷이 아홉 고을의 영역과 판도를 일관되고도 선명히 포착합니다. 그뿐 아니라 색상 배치도 센스 있게 이뤄져서, 책을 열독하고 나면 눈을 감고도 중원의 강역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눈호강이란 실로 이런 경지를 두고 이르는 말이죠.



정확하게는 pp. 130~131 양쪽에 걸쳐 실린 도판인데, 왼쪽에서는 원씨 형제의 골육상쟁 과정과 몰락 개요를 텍스트와 함께 요약합니다. 오른쪽 페이지에서는 같은 시기(204~206 CE) 다른 군웅들은 어디서 뭘 했는지의 국면 포착이 역시 입체적으로 이뤄집니다. 저자는 소설상으로 과장, 극화한 승자 위주의 동선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 최고 최대의 기반을 갖춘 거대 정치 세력이, 무너질 때도 어떤 경위와 곡절을 거쳤는지 실증적으로 조망합니다. 마치 이때로부터 1200여년 후 일본 열도의 최고 실력자 중 하나인 이마가와 가문의 쇠퇴를 보는 듯도 한데, 역사의 정확한 이해와 평가는 역시 잘 고안된 지도의 도움이 필수임을 다시 실감합니다.


제가 이 책을 보며 또 한 번 놀란 건, p146의 이민족 지도입니다. 사실 이무렵은 고조선이 망한 후 대략 300여년이 지난 시점이며, 아직도 한사군의 잔재가 남아 활동했으며, 이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나면 위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쳐 동천왕에게 큰 고초를 안기기도 합니다(그래서 조조의 위나라가 한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없거나 원성을 사는지도?) 아무튼 우리 민족 역시, 중원 북방의 위와 밀접히 교통, 항쟁한 역사가 있기에, 이 지도는 더군다나 예사로 봐 넘길 수 없는 면이 있죠. "한 제국에 반역과 복종을 거듭했고, 위나라와도 대항했으며, 7세기까지 살아남았다."는 저자의 요약이 인상적입니다. 외부에서는 그리 본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고, 우리의 역사에 우리가 따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정리할지는 우리의 별개 과제입니다.

서량을 보면 마치 중국집 배달원들이 한 손에 높이 쟁반을 들고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는 모양 같습니다. 험준한 지형 때문에 두루 중원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고, 용맹스러운 유목 민족 사이에서 걸출한 호걸과 용맹한 기마 병력이 자주 배출된 지역. 물론 우리는 마등의 아들인 미소년 마초의 존재로 더욱 깊은 인상이 남은 곳이기도 하죠. 이 지도는 특히나 잘 봐 두어야 하는 게, 이후 역사인 5호 16국사를 살필 때 매우 중요한 연계점을 갖기 때문입니다.

211년쯤으로 넘어가면 조조의 기세는 더욱 거침없습니다. 위나라를 중원의 정통으로 두는 이유는, 중국인들은 그들의 인구 주류가 거주하고 물산과 시스템과 문화의 중추가 놓인 지역을 누가 다스렸는지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수완이 좋았고 단호한 결단력을 지녔으며, 이 무렵이면 지난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중원의 주요 지역이 확고한 그의 장악 하에 떨어집니다. 오, 촉과의 대립, 항쟁뿐 아니라 크고작은 반란이나 할거가 빈발했는데, 강장 밑에 약졸 없다고 여러 우수한 장수나 관료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여 질서와 안정을 찾습니다. 한편, 강남의 오 역시 여몽(우리에게는 괄목상대의 고사로 잘 알려져 있죠) 등의 활약으로 번영과 활력을 이뤄갑니다. 이 모든 과정이 역시 지도에 잘 표시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장군 칭호가 절제되어 쓰이는 편인데, 막부의 집정 총책임자에게 "정이(征夷)"다음 그저 큰 대(大) 한 글자만 달아 "쇼군(將軍)"을 일컫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특히 우리의 경우 고려 시대로 가면 상장군, 대장군, 장군 등의 직함이 매우 남발되는 걸 봅니다. 이 책 pp 238~239에는 그런 호칭 이슈에 대해, 저자의 명쾌한 관점과 분류를 통해 독자의 혼선을 정리합니다.

공명의 출사표는 유교적 질서 하에서 인신(人臣)된 자가 보여 줄 수 있는 처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는 명문입니다. 오로지 주군에 대한 충의의 표상으로 신료의 길을 곧게 걸은 그는, 국력을 총동원하여 선대로부터의 영원한 과업이었던 북벌을 도모하는데, 이때 북벌이란 대개 왕화가 미치지 못한 미개한 오랑캐에 대한 토벌을 일컫는 말이었으므로, 그와 촉한의 관료들이 스스로 자부한 정통의 긍지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짐작게 합니다.

육출기산이란 한자 성어로도 잘 알려져 있듯, 공명의 군사 원정은 실로 집요했으며, 기변의 책략이 부족했다는 등 정사서 저자 진수의 박한 평가도 남았지만 사마의가 그처럼이나 야전 대결을 회피한 걸로 보아 여튼 용병 솜씨도 사람의 한계를 넘었음이 분명합니다. 책에는 대체 기산이 어디이며, 마속의 실수가 얼마나 뼈아팠기에 이후 정세의 대종이 이 무렵 사실상 결정되고 말았는지, 천고(千古)의 후(後)에 우리 독자들의 이해를 돕습니다.

삼국지는 비록 중국 명대의 창작 문학이지만, 특히 조선 후대에 수입되어 지식층, 관료, 평민 계층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급되어 큰 인기를 누렸으며, 현재도 처세와 책략과 수신의 원칙 마련에 있어 수도 없이 인용되는 지혜와 영감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픽션의 신 나는 내러티브와는 달리, 실제 역사의 고증과 정확한 이해를 기하려면, 인명 정보의 파악과 경제, 물산의 판도까지도 함께 접근해야 합니다. 이 모든 부가 작업은, 도대체가 깔끔하고 권위 있는 지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책은 그래픽 컴패니언으로서 단 한 권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되며, 앞으로도 종이책 포맷으로는 이를 능가하는 레퍼런스 북이 나오기 힘들 듯합니다. 최고의 독서 체험이었으며, 차라리 감동적인 여행 한 꼭지를 마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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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결산]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My Reviews & etc 2018-01-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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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이리스 라디쉬 저/염정용 역
에스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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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다."

마케팅 (혹은 어느 부서라도) 담당자들이 치밀한 기획 끝에 소비자, 시장의 심판을 받는(선택이 되느냐 안 되느냐) 바로 그 순간을 두고 "moment of truth"라고도 부르죠.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다들 희망 섞인 관측도 하고, 대박 치면 앞으로 뭘 하겠다느니 잔뜩 부푼 포부를 재미 삼아 털어놓기도 합니다. 잘 될 수도 있지만 안 되는 경우도 많고, 이때 환멸이 깨진다는 이유에서 저런 말을 쓰는 건데, 여튼 인간은 누구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작건 크건 환상을 품고 삽니다. 반면 남의 삶에 훈수를 둘 때에는 그렇게 현실적이고 정확할 수가 또 없습니다.

이 책은, 우리 같은 범속한 이들이 아나라, 나이 지긋이 드신 작가분들께서, "인생에 대한 환상이 서서히 사라져갈 무렵" <ZEIT>誌와의 인터뷰에 응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갖가지 속 깊은 상념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랫말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 생의 후반기 온갖 영욕과 쓴맛 단맛을 다 겪고 "무엇인 인생인지"에 대해 담담한 관조가 가능한 문인들의 말씀이기에, 설혹 젊은 독자들이 읽어도 깨우치는 바가 많을 뿐 아니라 심금을 울리는 진정 가득한 명언이 많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늙는 것은 죄악이다." 하 이런! 예전에 문인 전혜린은 "서른 그 추함을 어떻게 견딜까."라는 명언을 남기고 죽음을 택하여 전설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늙건 젊건 범속한 우리들은 "Life goes on."을 되뇌며 각자의 일상에 그래도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저 말을 (인터뷰에서 한) 쥘리앵 그린은 프랑스 태생 미국인 소설가입니다. 인터뷰 중 부친에 대해 언급하며 "남북전쟁(미국 내전) 참전"이 나오기도 하는 건 이 때문이죠. 유난히 전쟁과 정치, 강대국의 횡포에 대한 평가가 많이 나오는 인터뷰 중 "이라크" 이야기는 2003년 부시 행정부 관련이 아니고 1990년의 걸프전을 환기하는 의도이니 우리 독자들은 오해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린은 1998년에 이미 타계한 분이니까요. 참고로 저 말은 늙음에 대한 경멸과 가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죄악"이 과연 무엇인지를 놓고 재고해 보자는 촉구에 가깝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와, "사는 게 다 죄지요." 중 후자에 더 가깝다고나 할지요.

"Kehrdiannix!" 행동주의 문학을 옹호한 페터 륌코르프는 "당신이 이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지만"이란 전제를 달며 자신의 "초연함, 냉담함"을 표현합니다. 역주에 "신경쓰지 마"라는 독일 북부 방언이라고 친절한 설명이 있죠. 더 상세하게는 이게 니더작센에서 자주 들리는 표현입니다. 이거 원 말은, "Kehr dich(2인칭 친칭 명령) an nichts!"죠. 빨리 말해서 저리 들리는 걸 아예 관용어로 굳게 한 건데요. 우리말로 하면 글쎄... "쫄지마" 정도? 영어로 하면 Back off from nothing 쯤 될 겁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컨테이너선은 갈수록 배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지고, (사회의 부속으로 편입되는) 우리들은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진다.(p71)" 음울하지만 삶의 씁쓸한 요체를 제대로 파악했지 싶은 그의 명언이더군요.

"영어는 동사, 독일어는 명사, 러시아어는 형용사" 안드레이 비토프는 세류에 휩쓸리기를 거부하고 변함없는 모성으로서의 러시아적 정신 탐구에 헌신한 작가입니다. 인터뷰는 푸틴 체제가 슬슬 제 꼴을 갖춰갈 무렵인 2004년입니다. 단 저 말은 비토프 본인의 창안이 아니라, 세간에 그런 평가가 있다는 걸 떠올려 주면서 자신이 그에 대해 열렬한 동의를 보낸다는 걸 재확인하는 멘트입니다.

인터뷰어 이리스 라디쉬의 "의견, 평가, 정리"가 더 의미심장한데, 그녀는 "... 그 말씀은, 유럽은 이미 수명이 다했고 러시아는 아직 살아갈 날들이 남았다는 뜻인가요?"라고 묻습니다(p97).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에서 비토프가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런 질문이 나오나 하실 수도 있겠으나, 비토프의 규정이 무엇이었든 관계 없이(!) 의미심장한 통찰이라고 보지 않으십니까? 이는 "러시아가 옳고 유럽이 그르다." 같은 가치 판단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러시아는 도스토예프스크의 맥락에서 여전히 "타락하고 추접스러운 나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오로지 쇼펜하우어적 의미에서(혹은 니체) "생명력"이란 기준으로 하는 말입니다. 다시 이 책 제목을 들여다 보십시오.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삶은 정의롭고 가치로 가득찬 것이어서 오래 지속되고, 죄의 응보 때문에 돌연 종지부를 찍는 게 아닙니다.

조지 타보리도 예전 분이긴 하나 이 인터뷰는 04년에 이뤄졌고 이분이 워낙 오래 산 분이라서인지 글과 (우리 한국 독자 사이의) 감성적 갭이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OO 말인가요? 우리는 그 말을 아무데서나 함부로 내뱉지만, 본래 의미와는 전혀 관련이 없지요(이거는 제가 중학교 때 국어쌤도 그런 말을 하던데). 나에게 친척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아흔 둘의 나이에 아이를 만드는 일을 저질렀답니다." 이 말을 인터뷰에서 할 당시의 타보리도 비슷한 나이였습니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독일식 햄 요리가 맛이 끔찍하다고 불평하시네요. 우리도 요즘 굴라시 메뉴를 취급하는 레스토랑이 늘고 있습니다만 이분이 헝가리 분입니다. 젊어서 얼마나 풍미 이슈에 까다롭게 구셨을지도 짐작이 가고 말이죠.

"나는 히틀러를 직접 보았습니다. 1933. 1 빌헬름 슈트라서의 어느 발코니에 서 있던데 무척 슬퍼 보이더군요.(p117)." 누군가의 표정이 어둡거나 밝거나 단호하거나 불안하거나 한 건 제 생각으로 대체로는 보는 사람 마음에 달린 겁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두고만큼은 타보리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습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슬픈" 사람이 아니었겠습니까? 세계와, 자신과, 보편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스스로의 운명을 잘 알았기 때문에 말입니다. G E 레싱의 <현자 나탄>에 대해 말하며 (그 앞에서) 느닷 TV의 의의에 대해 논하는 건(타보리와 라디쉬 모두), 이분이 본디 텍스트와 공연예술 모두로서의 "연극"에 엄청 열정을 쏟은 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라도, 혹은 잠시라도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닌지 절망에 빠지고 두려워집니다." 문인에게 있어 집필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들 역시 익숙한 루틴의 그 무엇이 빠져나가면 잠시라도 당혹감에 압도됩니다. 데리다, 베케트, 롤랑 바르트, 조르주 바타유 등의 작품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저런 공황 상태에서 특히 그랬다는 뜻이겠죠?)고 고백하는 마이뢰커는 우리가 그의 작품을 읽으며 으레 그런 분이겠거니 짐작했던 대로 섬세하고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의 결을 인터뷰에서 무시로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꽤 재미있습니다. "(그럴 때) 글을 쓰는 건 당신인가요, 당신의 자아인가요?" 라디쉬는 저 위(이 책 맨처음) 쥘리앙 그린의 말("내 글은 누군가의 말을 받아적은 것들이다")을 상기하며, 이 질문을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린의 인터뷰는 1990년대 중반에 이뤄졌고 지금 이 만남은 04년 중에 이뤄졌습니다(간접으로 차이트 지의 연륜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죠. 이제 중견을 넘어 거물 대접을 받는 라디쉬는 저때만 해도 30대 아니었겠습니까). 이 질문에 마이뢰커는 "나도 에른스트(에른스트 얀들)이 내 귀에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나이로는 (아직도 생존해 계신) 마이뢰커가 얀들보다 한 살 위입니다. 아쉽게도 얀들과의 인터뷰는 이 책에 없습니다. 이 이슈는 마치 18세기의 괴테가 말한 "데몬"을 떠올리게도 하네요.

이 책에서 우리 한국 독자들이 가장 유의깊게 볼 만한 대목은 귄터 그라스와 마르틴 발저의 조인트 인터뷰입니다. 두 분이 동갑이고 문예나 사회 활동에서 (누구나 다 알듯) 평생의 동지로 살아왔습니다. 책에는 2015년 그라스의 서거를 회고(우리 한국에서도 당시 큰 반향이 일었죠.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에게 특히 의미 깊은 문인이며, 1989년에 드디어 해금된 영화 <양철북>도 많이들 아실 겁니다)하는 라디쉬의 건조한 듯 의미심장한 감회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참 멋진 말씀이, "아우슈비츠가 도덕적 곤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입니다. 아니, 그 전에, 도덕이 곤봉 노릇을 하면 이미 그건 도덕도 아닙니다. 간혹 우리는 엄혹한 위기의 시대에는 정작 숨어서 뭘 했는지 모를 사람이, 투쟁과 고난을 거쳐 다 이뤄진 밥상에 날선 목청만 높이며 숟가락만 올리려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논리의 비약도 심하고 매사가 견강부회인데다 인성도 참으로 거칠고 나쁜, 그러면서도 간악한 거짓말쟁이더군요.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시도는 대개 도덕과 무관한, 추악한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비뚤어진 영혼의 흉계가 그 이면에 깔려 있기 십상입니다.

책은 (섬세한 기획의 결과물이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정말로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 할 연령의 문인들만 만나, 치열한 언어와 투명한 통찰로 그들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라디쉬의 "맹활약"이 오히려 더 볼만합니다. 인터뷰 앞에는 라디쉬 본인의 "회고, 감상"이 일일이 정성스레 쓰여졌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라디쉬의 책이라 불러도 될 듯합니다. 인터뷰의 질은 인터뷰어의 공력과 천재성에 전적으로 좌우된다고 봐도 되는데, 이 책은 정말 흔한 인터뷰의 범주를 넘어선, 그 자체로 힘찬 미학과 지긋한 교훈, 멋진 감성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삼가(그러나 자신 있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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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결산] 나의 마지막 대륙 | My Reviews & etc 2018-01-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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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마지막 대륙

미지 레이먼드 저/이선혜 역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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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나오는 대로 1979년 "에어뉴질랜드901"이라는 비행기가 재난을 당한 적은 실제로 있었습니다만, 오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의 남극 크루즈 여객선이 정착빙에 부딪혀 715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가 빚어진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남극이 "책임 있는 관리 당국"이 부재한 채로 방치되며, 게다가 남극 조약이 종료되기까지 하는 몇 십 년 후에 이른다면, 이런 사고가 언제든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여튼 역자 후기에 나오는 대로 이 소설은 이른바 "재난 장르"는 아닙니다. 남극 대륙이라는 예외적 환경에서 다양한 아종의 펭귄들, 그 밖의 동식물군에 정을 붙이며 생업에 정열을 쏟는 어느 전문직 여성이, 여느 통상의 대륙에 사는 남들처럼 개인적인 사랑, 직업상의 갈등, 관계 속에서의 마찰과 유대를 두루 거치며 생의 일정 시점에서 어떤 겨결론에 도달한다는 사연입니다. 사람은 남극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환경 속에서도 인격 파탄과 완전한 안식 중 어느 지점에도 도달할 수 있는, 감정과 상상을 통해 존재 방식을 결정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만, 누구에게는 그 배경(무대)가 하필 남극이라면 마치 사막의 구도자가 맞는 특별한 운명처럼 우리는 그이의 유별난 운명과 행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1인칭 시점으로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보라 가드너입니다. 대개 5년 전 "그 참사"가 빚어졌던 언저리에서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는 어조이지만, 많은 대목에서 시제는 현재를 취하며(엄연히 5년 전 과거인데도요), 아주 간혹 십수 년 전 대학원생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다가, 결말에서는 본 주소를 내내 두고 있었던 오리건 포틀랜드(남극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집은 여기를 삼았습니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남극 같은 극한의 원격지에서 수 개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현지에서 부부처럼 "커플(해당 대목에서는 이 흔한 단어에 특볗한 의미가 주어지더군요)"로 지내다가, "원 대륙"으로 복귀해서는 본연의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소속되곤 하는 관계가 종종 생기나 봅니다.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도, 다시 생각해 보면 뭠가 거북한 느낌이 드는 게 또 당연합니다.

주인공 데보라 가드너는 아직 미혼인데다 본인 표현(p217)에 따르면 남자를 진지하게 사귀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채드, 데니스 등이 생각나는 정도이며, 그 중 전자와는 제법 깊은 사이까지 진행되었는지 임신까지 한 적도 있지만 출산은 하지 않았습니다. 중반쯤에 보면 "다시 관계가 복원된" 켈러 설리번에게 청혼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호칭이 "미스 가드너"입니다. 한 번도 결혼을 하지않았으니 당연하며, 이런 까닭에 그녀는 별반 께름칙한 느낌 없이 어떤 이성과도 가벼운, 혹은 진지한 관계를 만들 수 있지만 그녀가 사람 고르는 데 까다로운 편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유년기에 그녀가 부친의 부정(不貞)을 뜻하지 않게 눈치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친의 생일보다 한참 앞선 시점, 하트가 그려진 축하 카드를 아빠가 쓰는 걸 훔쳐봤는데, 이 일을 기억한 그녀가 몇 달 후 엄마에게 주어진 카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걸 지적하며 가정은 결정적으로 파탄이 났던 거죠. 그 전부터 이 부부는 어린 딸의 눈에도 꽤 어색한 관계였는데, 이 악몽 같은 기억 때문에 뎁 가드너는 내내 소극적인 대(對) 이성 자세를 가지게 되었나 봅니다.

그녀는 학창 시절 내내 그리 여성스럽지 않은 모습을 유지했고(지금 키가 180cm에 가까우니 저 시기에도 작은 키는 아니었겠죠?), 친하게 지낸(그녀의 평가에 의하면 "정말 괜찮은") 친구 알렉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남사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알렉은 우리 독자들이 빤히 눈치챌 수 있지만 남성 동성애자이며, 이런 그와 깊은 공감을 나눴다는 고백으로 미루건대 그녀 역시 적잖은 혼란을 겪었음도 감지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녀는 우리가 봐서 알듯 이성애자입니다.

켈러 설리반은 변호사 자격도 가졌었고 실력도 좋았지만 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나서다 석사 학위를 세 개나 단기에 추가하는 등 뛰어난 지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한 번 결혼에 실패했고, 그래서인지 뎁에게도 조심스러운 태도였지만(뎁은 본래가 조심스럽고요), 결국 다시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고 뎁은 (아마도) 두번째의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광객 케이트- 리처드 아처 부부를 알게 되는데, 리처드 아처는 젊은 나이에 여러 사업에 손을 대어 큰 돈을 번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책 뒤표지에는 이런 대화가 인용되었는데요.

"남극 대륙에 온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과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사람이로요."
"이곳은 저한테 마지막 대륙이에요. 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셈이네요. 당신은요?"

사실 이 대화는 p248에서 케이트와 뎁 두 여인이 주고받는 내용이 살짝 바뀐 것입니다. 해당 대목에서 케이트는 "남극은 나의 일곱 번째 대륙"이라고 합니다. 넉넉한 형편에 육대륙을 다 다녀 봤다는 자랑으로도 들리는데(그렇게 듣는다면 물론 오해입니다), 뎁은 "여긴 저의 세번째 대륙이지만 마지막 대륙"이라며 "마지막"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합니다.

(이하 약간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설령 더 이상 숨을 곳도, 갈 곳도 없는 이들이 우연이건 필연이건 택한 행로가 남극이었다 해도, 반드시 그곳에서 물리적 파국을 맞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객선 오스트랄리스는 정말로 백 년 전  저 북극해 근방의 타이타닉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요. 이 과정에서 아깝게도 켈러 설리반과 딕 아처가 목숨을 잃습니다. 약간은 위험 중독 증상이 있는 아처는 (맞는 진단인지는 의심스러우나) 뱃멀미 때문에 부착한 패치형 약 때문에 극한 상황에서 판단력까지 잃습니다. 여튼 두 남성 모두, 그들이 각각 사랑했던 여성들 "앞(물리적 거리는 다소 납니다만)"에서 평소보다 더 품위 있는 대처를 하려 애썼음은 분명합니다.

켈러나 뎁이나 남극의 생태에 워낙 애정이 깊다 보니 해당 분야의 지식과 현황에 아주 밝으며 특히 펭귄에 대해서는 그 지식의 깊이나 애정의 강도를 누가 따를 수 없습니다. 남극에서는 분해자의 활동조차 극한의 저온에서 억제되다 보니 죽은 생물의 사체를 포함 무엇도 썩지 않고 흉한 모습 그대로 방치되며, 그 와중에도 특수 박테리아나 전염균은 펭귄 등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전문 인력의 특별한 방역 조치가 항상 뒤따릅니다. 이 과정에서 승객들과 크고작은 마찰도 따르게 마련이고요. 무심한 행동 속에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생태계에 작은 위험이라도 전파하는 관광객들에 대해 이들은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직무상 의무라는 이유 말고도 그들에겐 "다른 대륙에서 받은 상처"를 이 마지막 대륙에 대한 애정으로 대신 치유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짐작되기도 합니다.

급작스러운 결말에서 뎁은 많은 상처를 입었으나 결국 살아남고, 켈러의 딸을 출산한 후 그 특별한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키우던 집 주인 닉과 결혼하게 됩니다. 여기서 독자들은 약간 놀라게 되는데, 아마도 바다를 보지 않으면 역으로 멀미가 나던 그녀의 증상도 5년이나 지난 지금 많이 나아지지 않았을지, 더불어 관계의 진전에 대한 부담과 공포도 사고로부터의 호된 그 경험을 통해 (역으로) 적잖은 치유가 되지 않았을지 기대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대륙은 다시 첫 대륙으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법이니요.

"세상의 끝, 만물의 기원"이라는 소설 마지막 문장은, 저 앞 p25의 "fin del mundo, principio de todo"라는 스페인어 어구와 같은 뜻입니다. 이 구절을 모토로 삼는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땅끝마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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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나는 문학관 여행 | My Reviews & etc 2018-01-2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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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함께 떠나는 문학관 여행

김미자 저
글로세움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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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좋고 풍광이 수려하며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한국은 본디 뛰어난 문인, 풍류객들이 여럿 배출되어 공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예찬 받던 곳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혹은 인접 고장)의 명소나 어트랙션을 자세히 살펴 보지 않아 지나쳤을 뿐, 알고 보면 가까운 곳에 향취 그윽한 문학관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설령 좀 멀다해도, 이미 고속철이나 수도권 전철의 연장, 혹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거의 연결되다시피한 요즘입니다. 찾아볼 마음만 먹고 정신에 약간의 여유만 품는다면 어느 곳인들 일일이 못 돌아볼 이유가 없습니다.

전국에 문학관은 그 수효(數爻)가 이제는 꽤 많은 줄 압니다만, 중견작가 매강 김미자 선생께서 직접 답사하여 그 소회를 정리하신 이 책을 보면 (몇몇은 이미 저도 개인적으로 다녀온 곳인데도) 그 참된 매력을 못 보고 지나친 구석이 이렇게 많았던가, 혹은 이미 그분을 기리는 문학관이 (과연 있어야 할 만한 곳에) 들어섰는데도 그저 무신경한 탓에 존재도 몰랐구나 하는 자괴감도 느껴지더군요. 저는 <복희 이야기>, <마흔에 만난 애인> 등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저희 어머니도요), 바로 그 김미자 선생이 펴낸 문학과 여행기라서 정말 큰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전라북도 부안 태생이신데, 부안 역시 한국에서 첫손에 꼽는 예향 아니겠습니까. 저도 자주 찾고 제 지인도 여럿 거주하여 개인적으로도 연이 각별한,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이뤄졌습니다. 지역별로 나눠진 차례인데, 서울-경기(인구도 많고 지역은 넓긴 하나 문학관이 의외로 많지는 않더군요. 하긴 빼어난 문인들이 주로 자연이 더 보존된 지방에서 더 영감을 크게 받았을 테니), 충청, 강원, 전라, 경남, 경북 순(順)입니다. 강원도 여러 문학관들은 특히나 부군과 함께 탐방하셨으며, 이 여행기가 완성되기에는 근 일 년의 시간이 쓰였다고 하십니다. 여행도 다녀 오시고 여행기를 쓰시기까지에는 일 년이 걸릴 수 있지만, 이런 멋진 안내와 가르침을 담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 독자들이 한번 따라해보기는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만 투자해도 일정이 완료될 수 있지 않을까요.

청운동에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이 들어선 연유가 무엇일까. 똑같은 의문을 작가님도 가졌다고 하시네요. 답은 "연희전문시절 이 동네에서 하숙을 하셨다"는 겁니다. 청운동이면 제가 일 때문에 한 주에도 여러 번 들르는 곳인데 여태 이런 사실도 몰랐다는 게 (하늘을 우러러?) 좀 부끄러워졌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 "팬"들이 자주 찾는 명소라고 합니다. 과거 자신들의 정부 체제가 식민지로 삼고 탄압하던 때 비참하게 희생시킨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고(글 말미에는 "생체 실험"을 암시하는, 경도[京都]제대 출신의 송몽규 선생의 증언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잘생겨서"라는 이유가 크다고 하네요. 좀 착잡하기도 합니다만 여튼 이런 식으로 민간 차원의 교류가 늘면 반성도 이해도 몇 걸음씩 더 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해외 홍보(일본뿐 아니라 중국에도)가 늘어야 국부에도 도움이 될 텐데 내국인들도 이처럼 까맣게 모르고 있으니.

미모 하면 그보다는 후배 문인인 한무숙 님도 빠질 수 없죠. 한말숙 작가님도 그의 동생분이기도 하고요, 한무숙 님은 <생인손>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데 해당 작은 MBC에서 특집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저희 가족이 모두 모여앉아 시청했었죠. 정말 반갑게도 p27에 그 언급이 나오네요. 매당 쌤도 보셨나 보죠?ㅎㅎ). "단아한 한국 여성의 기품과 자신의 문학세계를 조화시키며 모범적인 삶을 산..." 이런 평가를 사후에 남길 수 있는 분은 얼마나 가득 축복을 받은 인생입니까. 혜화동뿐 아니라 정작 문학관이 또 생겨야 할 곳은 태생지인 부산이기도 합니다.

김수영 시인은 당대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근래 들어 저항정신과 현실 비판 의식 때문에 더 각광 받는 분입니다. 제가 깜짝 놀란 건 1960년대에 불의에 항거한 활동과 족적뿐 아니라 그 다양한 시선과 넓은 폭의 작품 활동인데, 예컨대 <나는 아리조나 카우보이야> 같은 작품도 있더군요. 아시겠지만 1950년대 후반 가수 명국환씨가 부른 비슷한 제목의 트롯풍 가요가 있습니다.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트롯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란 생각이었는데, 무려 김수영 시인의 작품에도 채용된 모티브라니. 참고로 애리조나에는 정말로 전설적인 총잡이도 악질적인 카우보이도 역사(?)에 큰 한 자락을 남긴 바가 있죠. 와이어프 어프 등의 "OK 목장의 결투"가 그것입니다. 왠지 불의에 단신으로 저항하는 코드가 김 시인과 통하지 않습니까?

왜 화성에 노작 홍사용의 문학관이 들어섰을까? 이 역시 그가 유복한 성장기를 보낸 고장이라는 연원이 있다고 하시네요. 화성이라면 꽤 멀게 느껴져도 병점역에서 내려서 찾아가라고 할 것 같으면 그리 멀지 않을 듯합니다. 예전에 숀 코너리, 마이클 케인 주연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번역 제목을 단) 영화도 있었고, 근래에는 같은 이름을 붙인 장규성 감독의 한국영화도 나와 있습니다. 이들이 노작의 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특히나 전자는 더), 여튼 그 멋진 어감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더 앞선 시기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긴 합니다만)

1장에 실린 문학관의 주인님들 중 안양의 김대규 시인은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활동 중인 "할아버지" 문인이십니다. 홍사용 문학관을 찾아가실 때에도 저자께선 1호선 안양역에서 출발하셨다고 책에 나옵니다만 아무래도 현 거주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터잡고 활동하시는 향토 문인(안양은 수도권이긴 합니다만)이시니 더욱 존경과 관심이 생기셨을 법합니다. 김 시인은 꽤 고령이신데도 아직 정정하실 뿐 아니라 문인 특유의 멋이 물씬 풍기는 참 젠틀한 외모이십니다. 바로 앞에 나왔던 토픽의 주제 조병화 선생(역시 큰 시인이셨죠)과 대학생 시절부터 교류하시던 분이라고도 나오네요.

부여는 백제가 도읍을 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고 호암사 정사암 등 무수히 많은 문화재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여기는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이 근거를 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가 본 적 있는데 작가께선 "신동엽문학상 수상작"들이 천장에 "모빌처럼" 매달렸다고 하십니다. 모빌이라 함은 물론 콜더의 그 모빌 장르를 말하는데, 아주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시의 깃발'과 옥상의 구조였다." (p111)

박인환은 참 그 이른 시기 현대 한국의 모던한 정서를 너무도 잘 대변, 표현한 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따지고 보면 별것없는데도 그 말 맛이 너무도 착착 감겨든다."고 평하시던데 가장 헐하게 평하고 들어도 이 정도의 감탄을 자아내는 진정 특출한 재능을 지닌 분입니다. 시로서도 탁월하지만 유행가 가사로 붙여도 참으로 제격인데, 1980년대 대중가요 상당수의 가사가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고답성을 가장하는 건 어쩌면 (훨씬 앞선 시점에서 뜻밖에 요절한) 박 시인의 (예기치 않았던)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문학관이 소재한 인제는 그의 출생지이니 더욱 의외입니다. 그런 벽촌에서 이런 극한 도회적 감성의 소유자가 탄생하다니요.

천재 소설가 김승옥은 오사카 태생이지만 순천에서 성장기를 보냈기에 이곳에 문학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모두의 기를 죽이는 놀라운 재기를 발산했던 그는 젊어서부터 온갖 문학상을 휩쓴 분이지만 장년기에 쓴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문학상 제1회 수상을 하기도 했죠. 이곳에는 정채봉 시인의 코너도 마련되었는데 그는 인접 농촌 승주 출신이지만 현재는 행정구역이 통합되었으므로 이곳에서도 그의 자취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병주 선생은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분이고 하동에 세워진 그의 문학관에 찾아본 적도 여러 번입니다. 순천이나 하동이나 영호남 경계에 붙은 곳이라 작가께서는 인접한 일정으로 다 소화하신 듯합니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도 참으로 멋지고 작가 본인이 4. 19 등에 참여하신 이력이 있는 만큼, 이후 1980년대에도 <그해 오월> 등의 시사성 짙은 대작을 창작하기도 하셨지요. 사람은 이처럼 말과 실천이 맞닿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무슨 자기만의 환상 속에서 민주화운동의 끝판을 보기라도 한 양 말만으로 폭주하는 정신병자도 있으니 참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그저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김 선생께서는 특히 이 문학관에 대해 존(zone)을 나눠 색깔별로 의미를 부여한 선택에 대해 특히 높이 평가하시며, 특히 갈색인 4 zone에는 "끝나지 않은 월광 이야기"란 제목이 달려 있었다고 회고하시는데 저 역시 그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김동리는 책에도 나온 대로 본디 경주 태생이고, 그래서 그의 풍자적 단편 <화랑의 후예>가 더 각별한 의의를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명은 우리가 국어 교과서에서 잘 배운 대로 "시종"이며, "동리"라는 필명(아호가 아닙니다)은 그의 형이 지어주셨다는군요. 김미자 작가님은 "... 곡선이 아름답고 웅장한 기와 지붕은 그 어떤 관문과는 격이 다르다..."는 말로 첫 소회를 표현하십니다.  "먼저 선배인 동리관으로 들어갔다"라는 문장이 있어 잠시 웃었는데 이 책에는 이곳 말고 그 앞에서도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처음에는 김 작가님 개인적으로 선배 된다는 뜻인 줄 착각했는데, 아무려면 김동리 소설가가 연배로든 무엇으로든 김 작가님께 "선배"가 될 수는 없죠. 한 고장에 세워진 문학관에는 그 지역이 배출한 여러 문인을 기리는 코너가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박목월 시인에게 소설가 김동리가 선배인 셈이란 뜻입니다.

우리 자신의 정신적 여유를 찾고 삶의 깊은 의미를 돌아보는 데에 이처럼 문학관 탐방만한 멋진 계기도 또 없을 듯합니다. 예쁜 책이 아니라도 이곳들은 언제나 우리의 팍팍하고 메마른 정신을 향해 손짓하지만, 이런 예쁜 컴패니언까지 곁에 끼고서 한 곳 한 곳 발품 팔아 현지의 정취를 직접 접해 보는 것도 어떻겠습니까? 문학은 그저 종이 저편에서만 우리와 소통하려 드는 세계가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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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일이야 | My Reviews & etc 2018-01-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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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있을 수 없는 일이야

싱클레어 루이스 저/서미석 역
현대지성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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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일이야." 허나 세계사의 모든 재앙은 선량한 시민들이 방심하는 새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1258년의 바그다드 대학살, 1527년의 Sack of Rome 같은 참사 역시 당대인들은 아무도 그 가능성을 점치지 않던 벼락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저때로부터 다시 수백 년 전 훈 족의 유럽 침공 역시 그들(서유럽인들)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재난이었겠는데요. 당시 성직자들은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며 당대인들의 참회를 유도했다고도 합니다. 넉넉히 세속화한 현대에 들어서는 성직자들의 저런 소명은 재능 뛰어난 문필가나 예술가들의 몫이 되었으며 그 유력한 "증거" 하나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1935년입니다. 이때면 FDR이 당선되고 뉴딜 등을 의욕 가득히 밀어붙일 시점이죠. FDR은 나중에 4선에까지 성공합니다만 이때는 아직 다음 재선에 성공할지조차 마냥 낙관은 못 할 무렵이었습니다. 많은 사회학 서적에도 나오듯 공화당 지지층과 초상류 계급은 FDR 공포증에 떨며 사석에서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이라고만 지칭했다고도 하죠. 이때 공화당 진영에서 내세운 게 "독재는 곤란하다"였는데, 다수 국민의 일시적 지지를 바탕으로 법치와 원칙이 무시된 채 포퓰리즘 정책이 마구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민주당 진영에서는 상대당의 반격에 대해 "공포 신드롬"이 일지 않았을까요? 그들 입장에서는 FDR의 피치 못할 경기 부양 정책 드라이브에조차 신경증적으로 반응하며 좌절시키려 드는 공화당, 보수 측의 움직임에 마찬가지의 두려움을 충분히 느꼈을 겁니다.

정파들은 여론의 지지가 상대 진영에 쏠린다 싶으면 서로 "포퓰리즘"이라며 비난의 날을 세웁니다. 내 편이 우세하면 국민의 엄중한 뜻을 업은 것이며, 상대가 우세하면 대중 선동, 포퓰리즘이라며 저속한 여론몰이에 기댄 비겁함을 마구 비난합니다. 우리는 저 시기 역사의 승자가 FDR의 민주당이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승자 측(즉 민주당 지지자나 리버럴)의 공포감이나 신경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버트 랭커스터 주연의 <엘머 갠트리> 원작자라든가, 예전 세계문학 전집에 반드시 포함되던 <메인 스트리트>의 저자로 우리가 잘 아는 싱클레어 루이스가 이 재미난 풍자 문학의 author인데요. 과연 재기발랄한 그 답게 가상의 정치상황을 들어 미국 정치 시스템의 모순과 단점을 신랄하게 풍자합니다.

1935년이면 아직 나치가 유럽에서 그 위험성을 심각하게 드러내기 전입니다. 라인란트 재무장, 안슐루스(오스트리아 병합), 심지어 베를린 올림픽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잊고 있지만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아직 빵 하나에 몇 억 마르크를 호가하던 무서운 인플레이션이 유발한 경제 난국에서 아직 회복이 안 되었을 시절입니다. 사실, 회복될 조짐이 끝까지 안 보이자 히틀러가 무리한 도발을 일으키기도 한 건데요. 경제적으로 비실거리는 독일이 그런 무리수를 둘 줄은 당시 (반대 진영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미처 몰랐다고 해야겠습니다. 싱클레어 루이스 같은 문인들이 마치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위험의 예조를 알고 이런 문학 작품을 창작해 낸 셈입니다.

전쟁이 발발한 후면 상대 진영의 주요 인사나 지도자에 대해 사정없는 폄하와 모욕이 가해지지만 이때만 해도 그 호칭이 조심스럽습니다. 이를테면 나치 독일 선전상 괴벨스에 대해 여전히 "박사"라는 경칭을 작품 중에서도 꼬박꼬박 달고 있으니 말입니다. 허나 싱클레어 루이스는 자국 내에 불고 있는 심상찮은 "우익 독재의 역풍" 조짐에 적잖이 노심초사했던 듯합니다. "만약 우리 미국에서도 애국주의, 보수주의를 내세워 히틀러 같은 극우 독재자가 부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때는 바야흐로 영화, 라디오 등 대중에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매체가 발달해 갈 무렵인데, 이 작품 중에도 등장하는 윈드립 대통령(물론 가상 인물입니다)은 대중의 감성 격동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다 갖춘, 참으로 위험한 정치인입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감정" 속으로 들어가 마음껏 파묻힐 수 있고, 그 감정을 적절한 제스처 속에 담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아돌프 히틀러가 수천만 독일 민중을 홀리고 사로잡은 비결이 아니었겠습니까?

(이 소설 속에서) 루스벨트는 재선에 실패하지만 여전히 여유 있고 인지한 미소를 머금으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데 이런 모습이야말로 당대 미국인들에게 다가온 그의 평균적 이미지였습니다. 의도적으로 작출된 이미지라기보단 그의 본모습에 가까웠다고 봐야 타당하겠는데요. 무솔리니나 히틀러, 혹은 지금의 트럼프 처럼 의도된, 연출된 분노를 가득 담은 표정과는 정말 대조되죠. 역사에 진짜 승자로 남은 지도자들은 이처럼 그 인간적 본모습을 들여다봐도 품격과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반동분자"라고 하면 보통 집권에 성공한 공산 정부가 반대파를 색출, 검거, 숙청할 때 씌워붙이는 오명입니다. 헌데 이 작품 중에서는 우습게도 윈드립 정부(당연히 우파)가 반대파를 지목하고 탄압할 때 즐겨 부르는 누명으로 자주 쓰입니다. 소련에서 볼셰비키가 혁명에 성공하자 이에 대항수라도 놓듯 이탈리아에서 불과 몇 년 후에 극우파 독재가 시작되었는데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한 건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였습니다. 전체주의 정권의 불건전한 속성이란 좌우를 막론하고 공통되는 점이 많다는 걸 그는 날카롭게 비꼬는 셈입니다.

출판, 인쇄의 자유도 탄압 받습니다. 도리머스 사장이 들고 온 비분강개한 내용 가득한 원고를 보고서 식자(공)실장 댄 윌거스는 강력히 항의합니다. "전 이녹 아든이 아니에요!(사장님에 대해 마냥 충성스러울 수 없다는 뜻을 서투른 은유로 표현한 말)" 미니트맨에게 끌려가서 총살 당하기 싫다는 건데, 여기서 미니트맨은 나치 독일의 SS와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를 체포, 감금하는 concentration camp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재현됩니다. 사실 소수파에 대한 탄압과 마녀사냥은 미국 역사에서 그리 드물게 보던 바도 아니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니, 근거 없는 소립니다. 무엇인가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현실의 기정 사실화, fait accompli, 혹은 옐리네크적 의미에서 "사실의 규범력" 같은 것은 모두를 지배하는 지상 권력으로 군림합니다.

사실 FDR이 대중의 지지를 확고히 얻던 무렵에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건 오늘날의 우리로서는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란 유럽에서 이민 온 "실향민"들이 세운 근본 없고 위태로운 공동체였으며, 혹여 유럽 본토 전역이 나치와 파시스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이의 영향을 북미에서 어떤 방식으로 받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판이었습니다. 1932년 소위 보너스 아미의 시위를 군대가 무차별 진압한 것도 어쩌면 파시즘 대두의 전조가 될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적어도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은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만했죠), 더군다나 미국에는 본디 독일 출신의 이민자가 무시못할 상당수를 점하는 인구 분포가 뚜렷했죠.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을 보면 개전 후 독일계 미국 시민이 이웃들로부터 린치에 가까운 폭행을 당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소설은 딱히 특정 인종을 편들거나 적대시하는 게 아니라 "다수에 의한 횡포"가 빚는 불의, 공포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게 본 의도인 듯합니다.

이 소설은 1980년대에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던 미니시리즈 <V>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졌죠. 막상 이 소설을 읽은 분들은 대체 외계인 다이애나가 벗겨진 가면 아래 파충류의 퍼런 피부를 드러내며 쥐 한 마리를 맛있게 먹어치우던 그 드라마와 이 정치 풍자 소설이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습니다. <V>를 블루레이 디스크 등으로 다시 보시면, 서두에 다소 의아한 장면들이 펼쳐지는 걸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명백히 반 우익 풍자라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 수 있죠. 원래 제작진은 소설의 내용에 충실하게 드라마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방송사에서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막았다고 하죠. 제작진은 아마도 당시 배우 출신 레이건 대통령이 너스레를 떨어가며 강경 우익 드라이브를 펼치는 모습이, 반 세기 전 싱클레어 루이스가 예언한 디스토피아와 꽤 닮아간다는 느낌을 받고 이 기획을 밀었을 겁니다. 이 걸작을 2018년에 한국에 번역해 준 출판사의 의도에 대해서도 살짝 흐뭇해지는 면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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