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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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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감정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3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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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툰 감정

일자 샌드 저/김유미 역
다산지식하우스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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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쓰여진 여러 고전 문학이나 에세이 들을 읽어 보면, 필자나 등장인물들이 그리 "감정"이라는 팩터를 중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감정은 낭만주의의 대흥성 이후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도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자 소재였으며,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자신의 신조나 신앙보다도 차라리 감정에 가까웠습니다. 일개 미물인 동물에 대해서도 학대 등을 해서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들도 생명과 감정이 있다" 같은 것을 들기도 합니다. 지식과 이념 때문에 살인 등의 폭거를 일으키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도, 감정을 상한 경우 거의 누구라도 뒷일을 생각지 않는 무리수를 둡니다. <사기>에 보면 "필부라도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칼을 뺀다" 같은 말이 있을 정도죠.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만큼, 의지나 신조, 인격의 수양 같은 덕목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 안 받기, 내 마음을 잘 챙기고 평안해지기 같은, 감정의 다스림에 신경 썼던 인류는 아마 지상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세계화가 진척 되어서인지(?) 동양과 서양이 전혀 그 양상이 다르질 않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개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추상적인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 되고 난 여파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직장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고, 이직이나 사직을 하는 이유 대부분은, 일이 힘들거나 능력이 감당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대개 적응을 해 냅니다. 그러나 직근 상사, 동료 들과 감정적으로 심하게 맞부딪힌 후에는, 많은 이들이 가차없이 사표를 던져 버립니다. 이후의 일은 채 대비나 생각도 않고 말입니다. 물론 감정을 잘 챙기지 못해서 억지로 환경을 참아 내다 병을 얻거나 몸을 망치는 것보다는 그런 결단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감정을 현명히 관리하여, 애 써 얻은 직장에 충실하는 편이 전 인생 설계의 관점에서 더 유리한 선택임을 감안하면, 감정의 작동 원리에 대해 잘 파악하고 평소에 (향후 큰일이 터지기 않게) 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사람의 감정이 상처를 입는 건 혼자만의 세계에서 벌어지진 않습니다. 보통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건 그 타인을 배려한다기보다, 그 타인과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해야 할 나 자신(의 감정)을 위해 중요한 선택입니다.

여태 많은 자계서를 읽으며 그간 심리학자나 뇌과학자들이 밝혀 낸 성과를 바탕으로, 여러 몰랐던 지식이나 팁 등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걸 많이 봐 왔습니다. 아마 책을 자주 골라 정성껏 읽는 많은 다른 독자들도 사정이 같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고, 나에게 너무 무리한 주문을 한다 싶은 것도 있었겠으며, 다 맞는 말이고 수긍하지만 실천에는 가능하면 옮기고 싶지 않다,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알아 보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들게 한 것도 있었겠습니다. 

만약, 소개하는 정보가 비교적 정확하고 근거 있으며, 여러 상황을 전제로 한 제언(충고)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무난히 다가오는 책이라면, 그런 책은 일생을 두고 곁에 가까이하며 좌우명처럼 활용해도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새롭다기보다는 깔끔하고 센스 있게, 여러 독자에게 잘 어필할 만한 사항을 잘 정리한 책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저자께서는 현직 하버드 의대 심리학 교수이므로, 학문적 권위까지 충분히 갖춘 분이기도 합니다. 또, 그녀만의 임상례와 상담 사례를 친절하고 시의적절하게 여럿 소개하기에, 여태 여러 책에서 엿봤던 듯한 익숙함 내지 식상함도 가능한 한 최소로 줄이고 있습니다. 

책의 목표는 저자 스스로 말씀하시길, "감정의 민첩성"을 기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서평 처음에도 말했지만, 우리 이전의 사람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행동과 결단을 머뭇거리기보다는 "고지를 향해 전진(물론 그리 말하는 사람 본인부터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서)!"을 외쳤습니다. 그 시대에 나온 자계서(많지는 않으나 있었고, 또 인생 독본 등으로 이름 붙여졌을 뿐 자계서라고 부르진 않았죠)는 감정이란 중요 팩터를 대개는 무시했습니다. 허나, 아이디어의 질(퀄리티), 의지의 지속도, 종합적인 삶의 만족도, 구체적인 개인의 삶에서 후회 없음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잘 보듬고, 좋지 않은 감정을 재빨리 유리한 것으로 바꿔 주는 요령이, 그 어떤 다른 목표나 이상보다 중요합니다. 매일, 덜 늙고 덜 피곤해하며 더 행복해할 수 있는 나를 위해서 말이죠.

감정의 민첩성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저자는 크게 네 가지 과정(혹은 세부 목표)을 제시합니다. 1) 마주하기, 2) 비켜나기, 3) 자기 목적대로 걸어가기 4) 전진하기. 일단 예전 사람들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녀석과 눈을 마주치며 응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최상위 전제이자, 이 책이 담고 있는 모든 주장의 발판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감정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거나 노예가 될 게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길을 들여야 한다는 거죠. 1)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다음 2)가 의미 깊다고 봤습니다. 

1) 관련해서는 대개 의지력 충만하고 뭔가 비범한 이들이 종종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런 유형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없기에 큰 신경은 안 쓰지만, 그래도 그들과 비슷한 오류를 잘 저지르죠. 예전에는 거꾸로 그런 사람들을 높이 평가했으니까요. 대개 가부장적 유형이기도 한데, 요즘 일부 독서 트렌드에서 "남자 역할의 종말"을 거론할 때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무작정 무시하는 일부 남성"을 특히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2)와 관련해서는, 제 개인적 생각으로 나르시시스트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입니다. 이들은 전근대적 가부장들과는 정반대 지점에 위치하지만, 그들 나름의 이유에서 역시 불행합니다. 그들에게는 감정이 곧 자기 자신의 주인입니다. 왜 나의 부모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할까(사실은 그들 부모는 자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평균보다 훨씬 자주, 그 정제되지 않은 욕구를 풀어 주었습니다). "왜 사회는 내 감정, 내 욕구,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발상을 바로 수용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 내가 맞는 것 같은데." 반응하거나 생각하는 품이 그저 아이들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그 부모가 단단히 버릇을 잘못 들여 놓은 건데, 물론 나이 들어 그 책임은 본인 자신이 지겠지만, 이들은 여튼 팍 싫어지고, 비위에 거슬리고, 당장 기분을 망치는 모든 요소를 "악"과 동일시합니다. 매사에 합리화를 하려 들고, 희한한 데서 이유를 찾아내어 자기가 맞는 것 아니냐고 우기고, 상황을 거칠고 어이없는 방식으로 정리하곤 자신의 세계에 팍 파묻힙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자기 감정을 어떤 초자연적 명령이나 일생을 걸고 완수해야 할 사명으로 보지 않고, 그저 길들여야 할(물론 존중은 해야 합니다만)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들어가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나에게 혹 그런 요소가 있으면 고치고, 타인이 그리한다면 (여튼 그의 인생이므로 중뿔나게 주제넘게 개입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 사람은 그런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이해, 정리"를 하면 됩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에 휩쓸리지 않은 채 거리를 두었다면, 이제는 이미 대상화해 버린(따라서 "내"가 아닙니다. 내가 나를 처리하고 다루고 처분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으며, 이미 과업이 불가능합니다. 아니면 정신병에 걸리거나 말이죠), 이 감정이란 녀석을, 어떻게 잘 달래느냐의 과제가 남았습니다. 이 책 70% 정도는, 다양한 상황에서 감정을 어떻게 핸들링하는지, 저자께서 참으로 정성껏 정리해 둔, 환자나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중한 가르침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네 가지 패러다임을 잘 몰라도, 그 본문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만, 패러다임을 먼저 머리에 넣고 그 개별 팁과 교훈, 처방을 접한다면 훨씬 내면화가 쉽고 오래갈 뿐 아니라, 사람이 기계가 아니고 창의적인 정신 작용이 가능한 이상 그 "응용"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개별 방법론의 상세함, 진정성에 못지 않게, 저자의 프레이밍이 매우 유익했던 책 중 한 권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세번째 단계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또하나의 중요 과제는, "감정은 나의 감정이지, 어떤 일반화하고 추상적인, 혹은 공통적인 무슨 별개의 감정 이데아 같은 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자기 감정에 휘둘리는 이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감정만을 최우선으로 배려, 고립화하면서도(즉 타인을 고려 안 함), 동시에 감정을 절대시하는데 이게 자가당착입니다. "그건 너의 개인 감정일 뿐이야"라는 말 중에는, 다른 사람이 자기 감정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 들어 있죠.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은 "너(혹은 그)는 내 감정을 이해 못 해"를 두고, "너(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 못 해"로 일반화, 혹은 격상시킵니다. 내 감정이 내 감정이 아니라 인류 일반이 존중해야 할 위대한 가치로 바꾸어 버리는 거죠. 이런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그럼 이해라도 하고 저런 요구를 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목전의 이익을 얻기 위해 알랑거리기는 합니다. 그조차도 대단히 피상적이죠.

네번째 단계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전진하기"는, 퇴행과 현실 도피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생을 살며 순간 맞이하는 모든 도전에 대해 정면으로 응전하고, 사소한 작은 나쁜 습관을 교정해 가며 큰 변화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어찌 보면 공자나 맹자, 주자의 가르침처럼 대단히 윤리적이고 지행합일의 경지를 바라보는 성격입니다. 일일이 실천에 옮기다 보면, "감정(옛 사람들이 무작정 억누를 것을 주문했던)"에서 토픽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수신제가와 덕업정진으로 마무리되는 느낌도 듭니다. 

책은 또한 유머 감각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처음에 읽다가 "카드신용을 휴지통에 버린다"는 대목에서, 오타는 오타인데 참 이상한 오타다, 귀엽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는데, 한 장 뒤로 넘어가니 "마음챙김, 마음흘림"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고의적인 미스프린트였더군요. 저자는 관심사가 참으로 넓으신지, 시대별로 서양이 동양과 접촉하며 소중한 교훈이나 수련 방법으로 얻어내고 발전시킨, 예컨대 요가라든가 다양한 노하우를 망라적으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효험을 본다 싶은 모든 바람직한 트렌드는, 우리의 현재에는 특히 다 "감정 수련"과 직결되어 있음을 재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습니다만 감정이 다스려지면 결국 의지, 도덕성, 추구해야 할 목표 까지 덩달아 해결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이 결국 감정 트리트먼트를 위한 학문이었던가 싶기도 하게, 이 석학의 자상하고 위트 넘치는 충고가 어느새 인생 전체를 관조하는 계기까지를 만들어 주더군요. "감정은 곧 당신 일상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결코 노예가 되지는 말라. 마주하고, 다루고, 친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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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창조경제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2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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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스라엘과 창조경제

정성호 저
살림출판사 |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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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란 개념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소박한 언어로 바꾸면 '생산'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작은 물건을 공정에 따라 생산하는 것도 창조고, 아침 출근길 시민을 실어 나르는 전철 기관사 역시 운전이라는 용역을 통해 효용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결국 경제 시스템의 영원한 과제인 '생산에의 고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농경 혁명 이래 인류가 언제나 떠 안고 있던 이슈이지 현대에 들어와 새삼스레 부상한 화두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정부가 그 출범과 더불어 새삼스럽게 "창조"라는 단어를 강조했다면, 사전적 의미 이상의 각별한 주석이 덧붙여져야 하고, 관찰자의 실망을 유발하지 않게 구체적인 각론이 성실히 전개되어야 마땅하겠습니다. 표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실감 있는 방법론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아젠다 설정이 과연 어디까지 상호 모순 없이 그 적정 길이와 외연의 리스트를 확보할 수 있을 지도 중요합니다.


김광두씨는 서강대를 나온 분입니다. 이 학교 명칭이 주는 느낌에 너무 주시할 것은 없습니다. 얼마 전, 박정희 정부에서 오랜 기간 경제부총리로 재임했던 남덕우씨가 타계했습니다. 이 분의 영향력이 당시 정, 관계를 통틀어 상당했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서강학파라는 명칭도 붙여지곤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서울상대계열도, 성장을 중시하는 정통 관료들(김학렬씨 등), 성장과 복지를 두루 중시하는 분위기(조순- 정운찬), 진보 성향이라 할 수 있는 변형윤교수 라인 들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출신 학교에 따라 일률적으로 그 성향이 정해진다고 보는 시각은 나이브하고 부정확합니다.  


김광두씨를 어느 클래스로 분류하건, 그 개인의 성향은 중도 보수에 가깝고, 리버럴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과거 그는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글을 기고할 시절부터,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선단식 경영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그의 스탠스는 보다 우성향으로 선회하는 것으로 보였는데요,  이 책에서 그를 "박근혜의 경제 과외교사"라고까지 표현한  건 다소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만, 보수정당의 집권 시 대체로 그 경제정책 기조를 옹호하거나 우군화한 입장이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기업에 대해 집중 견제하는 듯 신랄한 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말입니다.


상대 대담자이자 주로 인터뷰어의 입장인 김영욱씨는 오랜 시간 중앙일보에 글을 써 온 기자입니다. 이분의 태도에 대해 제 개인적으로 느껴 온 바는, 어떤 독자적인 거대 시각을 갖고 현상을 포섭, 해석하기보다는,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와 절실한 니즈"를 저널리즘의 미덕을 잘 살려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능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김광두씨가 패러다임 메이커에 가깝다면, 이분은 "캐스터"에 유사합니다. 스포츠 중계도 캐스터가 있고 코멘테이터가 있듯, 이 두 분의 대담집은 반대되는 입장의 격론이 아닌, 협업의 정책 설명회에 유사합니다. 두 사람 모두, 체제의 변혁보다는 개량과 생산성 강화를 지향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내는 쪽입니다. 이분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출신이나, 그 정보는 이분의 성향을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보광과 삼성에 긴밀한 연을 대고 있는 중앙일보사에 일생을 몸담은 그 커리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김영욱씨의 견해와 시각이 상당히 대기업의 이익 옹호에 편중된 감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광두씨의 발언이 진보적으로 들립니다. 만약 이분이 정말 박근혜의 경제 과외 교사였다면, 앞으로 이 정부의 대기업 관련 정책은 상당히 볼만한 게 많을 것만 같습니다. 두 분의 성향이 이처럼, 크게 봐서 초록동색이나 세부적으로 음영차가 진하게 대비되기에, 어찌 보면 섀도우 복싱 같고 어찌 보면 신경전깨나 벌이는 진짜 승부 같은 인상도 줍니다. 대체로 신정부에 대해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두 인사가 그래도 의견이 갈라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놓고 벌이는 논쟁입니다.


여기서 다시 "창조"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제가 "창조"라는 단어에 큰 방점을 찍을 게 없다고 한 건, 이 책 곳곳에서도 드러나는 주장과 통합니다.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이래, 이 이슈는 지구 어디서나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던 이슈입니다. 책에도 나와 있듯, 김대중정부의 "신지식인" 프로그램과 소위 창조경제는 내용상 대단히 유사합니다. 표절 문제가 거론될 정도로요. 냉전 종식 이후 신성장 동력의 고갈은 언제나 기업인과 정책 당국자를 괴롭혀 왔습니다, 과거의 컨벤션을 깨고 새로운 생산 프레임을 정립해야 함은 국지적 과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표어의 문언이 어떠했든, "창조경제"는 과거의 "신지식인"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문제는, 그 다음 진보정권에서의 "참여" 요소를 어느 정도 배합하느냐에 있습니다.  


김영욱기자가 묻기를, "너무 경제민주화만 강조하면 대기업의 사기가 죽지 않겠는가?"라고 합니다. 사실 질문의 표현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사기"는 약자의 입장에서 고려되어야 하지, 덩치 큰 거인을 배려할 계제가 아니죠. 여기에 대해 김광두씨는 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느낌입니다. "경제민주화의 뜻은 대단히 넓어서, 물적 생산품의 범위가 아닌 지식 생산 작업도 포함시켜야 한다." 어찌 보면 동문서답입니다. 아마 그는 "경제민주화의 초점을 지식산업에 둔다면, 대기업의 입장이 딱히 위축될 건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판을 키워서 봐야지, 대기업과 벤처의 제로섬 게임으로 볼 게 아니라는 점 강조하고 싶었겠지요. 대기업 공격의 예봉이 과거보다 다소 무뎌진 느낌도 저는 이 언급에서 받았습니다.  


리버럴이 진보 스탠스와 뭐가 다른지 김광두씨는 자신의 이 언급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창조경제는 노조도 그 예외가 아니다. 흔히 창의성과 노조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반 협약으로 근로시간과 임금을 규정하여 틀에 박아 두려는 것이 노조다. " 어떻습니까? 이 점에서 그의 입장은 정운찬 등의 "동반성장"과 궤를 같이하거나, 더 보수화한 느낌마저 있습니다. 창의성과 노동 계급의 이익은 정반대의 상관 관계를 보이는 건 최근의 그 예뿐이 아닙니다. 산업 혁명 초기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게 다 뭐겠습니까? 혁신은, 단순 반복 혹은 저부가가치 업종 종사자의 이익을 가장 먼저, 그리고 큰 폭으로 침해합니다. 혁신과 창의의 적은 대기업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음이 그리 어색한 명제는 아닙니다. 세상은 다변수 다각 대결 구도이지, 자본 - 노동의 이분법 구도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죠.


이 책의 제목은 "한국형 창조 경제의 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포인트는 오히려 "한국형"에 놓여 있습니다. 그만큼 "창조"의 이슈는 새로울 게 없는 오랜 것이기 때문이죠. 역설적이게도, 창조경제의 성패는 오히려 그 상충 요소에 가까운 "경제민주화" 비중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이 책을 읽고 정리한 제 개인의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이 발간된 지 몇 주가 채 되지 않아, 그 당시 직전 정부는 증세와 복지 후퇴를 변명하고 나서서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두 대담자는 그 점을 일치된 어조로 이미 예견하고 있었구요. "창조경제"의 허와 실은 그 점에서 이미 누구의 눈에도 뚜렷이 보이는 바 있었던 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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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전략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2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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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존전략

장석만 저
다할미디어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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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한국인들은 "량원건"이라는 기업가도, "싼이"라는 대규모 기업의 이름에도 익숙지 못한 게 보통 아닐까 싶습니다. 뚜렷한 실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의 지난 이력이 보잘것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실체가 우리의 생존과 번영, 안위에 직접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까지 애써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썩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겠죠.

 

 

저는 이 "량원건 성공 스토리"를 읽고, 마치 한국의 정주영처럼 불굴의 기업가 정신을 가진 어떤 개척가의 빛나는 입지전을 훑어낸 후 제 자신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도 나와 있듯이, "미국의 19세기 초 골드러시 당시, 돈을 번 측은 골드 디거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장비를 제조하고 조달하거나 여정에 필요한 식량을 공 급하던 상인들이었다."는 거죠. 마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는 말처럼, 한창 국가 건설의 붐이 일던 도약기의 중국에서, 일시적인 승자와 행운아는 이후 허무하게 자리를 내어 주기도 했지만, 이들 기업가들이 무슨 영역에서 활약하건 그들의 사옥, 그들의 헤드쿼터, 그들의 이동 경로 그 구축과 안위를 보장할 건설 사업만큼은 지속적인 수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 업 분야도 탑 비즈니스맨도 그 부침(浮沈)을 거듭했지만, 그들을 뒤에서 보조하는 중장비 제조 산업은 경기를 타지 않고 굳건히 알짜 수익원으로 남는 게 당연했고, 곳곳에서 흙을 파고 땅을 다지며 건물을 지어올리는 모습이 그칠 날이 없는 만큼, 이 량원건의 싼이집단(그룹)은 여태 큰 위기 없이 승승장구했습니다. 이 책의 제 2장 p31에 나오는 마이클 포터의 말처럼, "무슨 산업에 진출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잘되는 산업을 선택하면 돈을 못 벌기가 어려울 것이고, 전망 없는 산업에 진출하면 돈을 벌기가 어려울 것이다."가, 이 책의 핵심을 잘 요약해 줍니다. 량원건이란 사업가가 특별히 미래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기보다는, 전략을 현명하게 짜서 치밀한 사업 관리와 능수능란한 인맥관리 능력으로 오늘의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한국의 정주영 창업주처럼 남들이 보기에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에 비범한 배짱과 초인적인 집착으로 뛰어들어, 그야말로 무에서거대 제국을 창출한 경우와는 좀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어느 천재 사업가의 일생을 되짚어서 그로부터 교훈을 추출하는 데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지금의 중국 사업가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오늘날의 부와 성취를 이루었는지 그 전형적인 성공 공식을 추출해 보는 작업, 또 책을 읽는 중 얻을 수 있는, 중국의 정치, 사업 환경에 대한 갖가지 부대 지식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뇌리에 깊이 새겨졌던 것은, 중국은 누가 뭐래도 공산당 1당 독재가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당국의 규율과 규제의 수준이란, 다른 자유로운 문화권 출신의 사업가가 쉬이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강도 높으면서도 독특한 컬러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 책의 서두는, 미국 오리건 주에 진출한 싼이 그룹의 미국 현지 법인 Ralls가, 연방 정부로부터 "국가 안보 저해 우려"를 이유로 시설 철수를 명령한 조치에 대한 법원 제소를 결정한 일화로부터 시작합니다. "법치주의가 지배하고, 공평한 기회가 보장된다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부당하고 편파적인 행정이 시행될 수 있는가?" 싼이 그룹은 전 중국의 분노와 의기를 대변하겠다는 듯 가망 없어 보이는 법정 투쟁에 나서는데요. 사실 자국 내에서는 외국 출신 기업가들에게, 도저히 납득 못 할 불합리한 규제를, "여기는 너희 땅이 아닌 중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하는 저들이, 타지에서 당한 불이익에는, 전세계적 차원의 정의 구현 책임을 홀로 떠맡기라도 한 양 과장된 언사를 발하는 모습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중국의 행태는 국외에서도 고운 시선의 대상이 아닌데, 예를 들면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소위 자원 확보라는 기치 아래 벌이는 이기적이고 약탈적인 행보가 현지인의 비난을 받는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죠.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법정 투쟁을 두고 "호상(湖湘) 문화의 의기남아는 천하의 문제를 자기 일마냥 생각하여 총대를 매고 진두에 나서며..." 같은 말로 미화하고 있는 점인데요. 국부 마오도 후난 성 출신이고, 수호지에 등장하는 호걸 상당수도 이 지방 출신이라는 게 의미심장하죠. 의기가 서로 투합한 지역 연고의 협객 집단이, 대의와 조국을 위해 분연히 나선다는 로망은 몇 천 년이 지나도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네요. 물론 그 낭만이 주변 모두를 위해 좋은 결과를 낳을지, 아니면 그들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호기에 지나지 않을지는 큰 의문으로 남지만요.

 

량 원건은 가난한 직공의 아들이었습니다. 집안이 한미했고 학창 시절 학업에서 딱히 두각을 드러낸 바도 없었지만 대단히 성실하고 영리했던 타입이었던 걸로 추측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국영 공장에 관리직으로 취임했는데, 어느 순간 괜찮은 돈벌이가 될 구상이 떠올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아직 중국은 성장의 전망이 보이지 않았고, 관[官]은 민간에 거의 재량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단계였습니다), 동창과 동향 친구들과 더불어 사업체를 차립니다. 당시만 해도 공공 섹터의 일자리를 마다하고 "돈벌이 따위"에나 나서는 모습이란, 명분과 실리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어리석은 짓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창엊 초기의 어려움을 일정 기간 완화해 줄 자본금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었구요. 이처럼 무일푼, 주위의 비웃음을 한껏 안고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한국의 정주영과 공통점이 존재하긴 합니다.

싼 이그룹의 놀라운 점은, 중장비 제조와 건설 부문에서 거둔 국내에서의 큰 성공을 기반으로, 바로 해외 공략에 나섰다는 그 패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기존의 거인들과 마찰이 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책의 초반에 잠시 소개되는 것처럼, 벤츠와 (일본의) Sony를 상대로 법적 쟁송을 한바탕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림에서 보시듯, 벤츠의 로고(우리가 잘 아는)와, 이 싼이그룹의 로고는 대단히 비슷합니다. 저도 책을 받아들었을 때 바로 벤츠가 떠올랐을 정도였는데요. 어쨌든 싼이는 이 투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그때의 승리가 가져다 준 쾌감이 아직도 생생한 듯, 저자는 량원건이 그 미미한 출발을 다질 무렵부터 무명의 한 디자이너에게 받은 이 유서 깊은(?) 도안이 어떻게 탄생하고, 창업주가 지금까지도 그 관대한 보상을 행하고 있는지 자못 유쾌한 어조로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나와 량원건>입니다. "나"는 누구냐면, 허진린(何眞臨. 하진림) 전 싼이 부사장입 니다. 그는 공산당 당료로 초기 경력을 시작하다가, 비교적 일찍 민간 사업 분야에서 진출하여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커리어를 뚜렷하기 다진 케이스로, 싼이로부터는 오래 구애를 받았으나 비교적 늦게 합류한 편이라고 합니다. 장기 비전의 설계, PR, 그룹의 "입"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네요. 량원건 회장이 그다지 학식이 빼어난 편이 아님을 잘 커버하는, 요긴한 가신 노릇을 측근에서 수행하는 핵심 막료입니다. 그 자신도 스스로 량회장과의 인연을 "군신 관계"로 칭하고 있습니다. 제 8기 전인대(아마 1996년으로 추정됩니다)에서 "국가지도자"에게 대담한 발언을 통해, 민간 기업이 그 영역에서 자율성을 보장받기를 강력히 청원한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요. 여기서 "국가지도자"는 "심판이 휘슬도 불고, 공도 차면 승부의 공정성이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소위 state capitalism의 폐해와 모순을 경계하는 이 표현은, 지금까지도 매체에서 즐겨 거론되는 관용어입니다. "국가지도자"는 책에 그 실명이 나와 있지 않으나 장쩌민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마치 "피휘"라도 하듯 삼가는 태도를 저자는 보이고 있더군요.

 

량원건의 출신이 비천한 직공의 아들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명문 공산당 당료의 딸에게 구애했다가 여성의 양친으로부터 거절당한 일 역시 유명하다는데요, 저자 허진린은 이 일에 대해서도 "빈부 격차라는 시선으로 볼 게 아니라, 중산 농민 계급의 끝자락에 속한(참.... 읽으면서도 그런 개념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량과, 소농의 부르주아 근성을 적대시하던 당료의 시각 차이"라고 애써 미화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승자에게는 시비를 따지지 않는 법이라던, 스탈린의 마오에 대한 코멘트가 생각이 나더군요. 하지만 량원건이, 주변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한번 맺은 인연과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 보기 드문 인품의 소유자임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중국이 현재 국제 M&A 시장에서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이책에서도 확인할 수있다는 건데요. 세 달 전에 <국제인수합병>이 라는 책의 리뷰를 통해, "유럽 기업은 콧대가 높아서, 거액만 제시한다고 바로 기업을 팔지 않는다. 하물며 동양인에게는"이라고 적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푸츠마이스터社 카를 슐레히터 회장이, 이 량원건에게 선뜻 회사의 운명을 맡긴 건, 대단한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봐야 한다는 거죠. 이 사건을 두고 저자는 놀랍게도, "육조 혜능이 홍인으로부터 법통을 물려 받은 대사건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좀 분별없는 과장이라고까지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 혜능이 미천하고 빈한한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긴 합니다.

 

큰 물에서 놀면 같은 그릇이리도 성공의 가망이 높다는 뜻을 유명한 표현으로 남긴 고사는, 사실 이사(李斯)의 그것을 따를 말이 없죠. 어느 날 관의 창고를 지키며 쥐가 배불리 쌀을 갉아먹는 모습을 보고, 같은 쥐라도 담장 밖을 떠도는 놈은 배를 주리는 반면, 곳간 안의 녀석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호강을 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대국의 무대로 진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진시황의 아래에서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말로가 말할 수 없이 비참했죠. 저자 허진린이 그 고사를 모를 리 없음에도 굳이 인용하지 않은 건, 주군의 장래에 행여 불길한 언사를 띄우기 저어하는 마음이 컸을 줄 압니다. 량원건이 한고조 유방 같은 성공한 창업주가 될지, 2인자 권신으로서 그 극심한 명암이 교차했던 이사와 같은 길을 걸을지는 지켜 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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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신뢰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2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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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기신뢰

랠프 월도 에머슨 저/전미영 역
창해(새우와 고래)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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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도 논의의 기본 전제로 사용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에 일본계 미국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저서를 내어서, 신뢰가 경제 작동의 기본이 되고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로 세계의 국가들이 이대별될 수 있다는 논의를 발표하여, 전세계를 한때 치열한 논쟁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그 구성분자들의 자격을 평가함에 있어서, "신용불량자"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활동자로 나누는 데서 알 수 있듯, 현행 자본주의 경제는 철저히, "신용'이라는 추상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 신용을 공여받은 자와 부여한 자 사이에, 물리적 족쇄나 법적 강제(많은 비용 지출이 수반됩니다) 없이도 원활한 거래, 혹은 계약 관계 안의 급부 교환이 가능하다면, 그 사회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 소비에만 신경을 기울이면 되고, 별도의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예를 들어 채무자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다든가, 계약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매 단계마다 별도의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면, 시스템의 공적 인력을 통한 이행 확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이 지출될 것입니다(예전에 "좋은나라운동본부"같은 TV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세요. 체납자, 채무불이행자의 추적과 처벌에 적정 수준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면, 그 사회는 세금 징수 단계에서 붕괴할 수 있습니다.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가진 자들은 더 이상 저축 섹터에 자신의 부를 노출하지 않고 "장롱"속으로만 은닉해 두거나, 신뢰가 확보된다고 판단하는 해외 경제 단위로 돈을 빼돌릴 것입니다).


저자 오영호씨는 행정고시 재경직 출신으로, 평생을 경제관료 생활을 통해 커리어를 다진 분이고, 서강대 교수, 무협 부회장을 거쳐, 현재는 KOTRA 사장에 재직 중인 분입니다. 이분이 1952년생이시고, 대략 20대 중후반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고 보면, 한국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를 갓 해결하려는 단계에서 벗어나 원자재 가격 폭등, 중화학 공업 위주 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극심한 성장통을 알던 시기인 1970년대말, 그리고 이른바 "3低의 호황"을 누리던 최전성의 도약기 1980년대를, 아직은 국가가 그 컨트롤타워를 관장하던 시절 정책 결정 관료로서 지켜 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분처럼, 한국 경제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 없는 기적 같은 도약을 맞이하던 시기를 회고하며, "현재의 교훈과 자율성 등은 충분히 살리되, 그 시절의 장점과 희열을 다시 살릴 수는 없을지?"를 담담히, 혹은 안타깝게 저술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정구현 자유기업원 이사장이 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있었구요.


베테랑, 원로들이 현 경제의 건강성과 실태를 활력 부족의 관점에서 걱정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성장하고 인생의 최절정기를 보내던 방식과는 달리, 현 경제의 성장과 건설을 담지하고 나가야 할 젊은 세대는 이른바 "3포"의 함정에 빠져 자활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추 세대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실정을 정확히 반영이라도 하듯, (비록 24000$의 사상 최고 규모의 국민소득을 달성했다고는 하나) 거시 실질경제 지표는 도무지 살아날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오영호 저자는 우선 1부와 2부에서 과거 회고담을 펼치고 있습니다. 1부의 1장은 1960년대, 그야말로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아 외화획득원의 주요 수단으로 삼던 시절의 눈물겨운 사연이 주를 이루고 있고, 2부로 넘어가면 때맞춰 발발한 월남전의 특수 덕에, 한국으로 대거 달러가 유입되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한국 장병들이 한사코 일제군수품 사용을 거부하여("일제 마크가 찍힌 제품을 입고 착용하면 싸울 사기가 살아날 수 없다!") 말단 병에 이르기까지 강력 항의하여, 미군도 공급선을 (가까운) 국내 업체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도 나오네요. 박정희가 당시 서독 대통령 뤼브케에게 충고를 받아 "산과 강이 많은 한국에서는 철도보다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독일의 아우토반을 염두에 두고)"라는 말을 귀에 새겼다는 대목도 흥미로웠고, "산업 전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깡다구 하나로 열악한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노동자들,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며 사우디의 사막에서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고 파이잘 국왕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거리라도 배려하여 할당하라."고 명령을 내렦다는 이야기에선 잠시 눈물이 돌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다시 오랜 화두를 꺼냅니다. "과연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우리는 저신뢰사회가 맞는가?" 이 보람찬 고도성장기에는, 사회가 온통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진만을 마음에 채우고, 다른 구성원을 향한 신뢰의 충전에 여념이 없었다는 거죠. 저자는 이 기저에 동아시아 한국 특유의 유교 윤리, 공동체 우선 사상, 연장자는 부모나 형, 누이처럼 대접하고 손아랫사람을 자식처럼 아끼는 풍조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적 같은 성장이 불가능했으리라 단정합니다. 유교 윤리는 당시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가장 순도 높은 신뢰를 제공하는 원천이었으며, 후쿠야마 교수가 주장하는 "신뢰"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우리 독자의 신뢰가 폭발적으로 발생하여, 성장과 번영의 가망이 보이지 않던 최밑바닥에서 여기까지 발전을 이뤄왔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현 시점에서 유교 정신의 복원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만(아마 저자와 비슷한 정치 경제관을 갖고 있을 리콴유, 마하티르, 또 홍콩의 재계 거물들도 같은 논리를 펴긴 합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에 족쇄매이지 않고 도약을 감행하려면, 구체적인 방법론이 따라붙는 "신뢰 재구축"의 컨센서스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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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계약 영어 | My Reviews & etc 2018-11-2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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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무계약 영어

김용설 저
넥서스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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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당사자 간 계약이라든가 회의 절차에 대해 규정한 어휘가 무척 많습니다. 어려운 점은 이런 어휘들이 정말 단어 하나당 한 가지씩의 뜻만 담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다른 단어들과 교집합을 이루기도 한다는 겁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휘의 뜻이 변천하기도 하므로 인위적으로 뭘 바로잡으려거나 하는 노력은 불필요하겠으나, 계약 당사자는 최대한 말의 뜻, 조건의 의미를 명확하게 사전에 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계약은 어떤 경우에 제 수명을 다하고 종료되기도 합니다. 이때 만기가 되어서 종료하는 경우는 이를 expiration이라고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이며, 그렇지 않고 딱히 만기가 정해지지 않았거나 만기 도래 이전에 계약을 끝내는 경우 이를 termination이라고 합니다. 몇 달 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를 "끔찍하다"고 하며 개정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종료시키겠다고 했는데, 이때 쓰인 어휘가 터미네이션이며 물론 미국뿐 아니라 우리 한국도 보유한 계약상의 권리일 뿐 어떤 파격적인 협박, 횡포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국제 정치의 현실상 미국 같은 강대국이 무슨 구실을 들어 terminate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우리 뜻에 안 맞는다고 "이거 그냥 이제 관두죠?"라고 제안하기란 무척, 무척 힘들기는 하겠습니다.

나라 사이뿐 아니라 개인 간 계약도 일정 요건이 발생하면 이를 해제, 해지할 수 있습니다. 민사 계약법에서 해제는 소급효가 있는 종효행위라고 하며, 해지는 원상회복 같은 의무는 없고 앞으로 끝내는 효력만 발생하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근로계약은 이를 끝낸다고 해서 그간 이뤄 놓은 근로의 결과를 "원상 회복"하는 게 불가능하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기에 이런 건 해지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 일상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termination은, 해제가 아니라 해지일 것입니다.

당사자 간 계약은 서로가 의사능력, 행위능력, 권리능력이 있는 이상 무엇이 그 내용에 포함되든 자유입니다. 그래서 구태여 어떤 사전에 정해진 사회의 틀에 맞출 이유가 없는데, 그래도 너무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내용이면 일단 두 당사자가 만족하기가 힘들겠죠("이런 걸 누가 해 줍니까?""이런 조건 하에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관행상 보기 드물다고 바로 무효가 되거나 계약 내용이 축소되는 건 아니며, 당사자가 도장을 찍은 이상(혹은 다툼 없는 구두 계약이라 해도), 그 내용은 애초에 약속한 대로 이행되어야만 합니다.

예전에 어느 연예기획사와 소속 가수가 이른바 "노예계약"을 이유로 법정 다툼을 벌였는데, 대체 어디까지를 노예계약, 혹은 현저히 불공정한 처사로 보고 무효, 혹은 취소 사유로 삼을지는 판단이 쉬운 이슈가 아닙니다. 계약은 원칙적으로 이행되어야만 하며, 그래서 재판부도 마냥 법리로만 몰고 가면 어떤 극단적이고 당사자 모두가 불만족하는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라서 조정, 화해 등으로 유도하는 일이 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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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과 국제지적재산권법 - 임호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2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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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중보건과 국제지적재산권법

임호 저
한국학술정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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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과 미국 사이에 첨예한 무역 마찰이 벌어지는 양상이며, 트럼프의 선전 포고로 개시된 이 대립상은 그로부터 수 개월이 지난 지금 중국이 보다 "아쉬워지는" 형국으로 자리하는 듯합니다. 미국의 피해도 무시 못 할 수준이긴 하나, 중국의 "아쉬운" 부분은 미국 아닌 타국으로부터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대부분이라서, 중국 측이 보다 절박한 태도로 협상에 나서는 듯합니다. 어제 뉴스를 보면 특히 중국 측은 "미국의 지적 재산권에 대해 대폭적인 보호를 취하겠다"는 카드를 꺼내들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그 귀추를 지켜 봐야 하겠습니다.

여튼 지식재산권, 혹은 공업소유권으로도 불리는 이 무형의 영역에 대해서는 유체재산보다 당사자 사이의 분쟁 소재가 훨씬 더 큰 대상임이 분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 "재산"으로서의 성격 자체를 부인하려 들기도 합니다. 이번 삼바 사태에서도 분식 회계 여부가 그 다툼의 핵심을 이뤘는데, 특정 무형재산의 평가라는 게 자칫하면 "분식회계"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음을 이번 사태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삼바 측에서도 그저 억울해만 할 게 아니라, 왜 자신들의 자산이 그만한 평가를 받아 마땅한지 이번 기회에 사법부와 사회 앞에 더 뚜렷히 "증명"을 할 필요가 새로 생겼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에 대한 비유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건을 유상으로 파는 사람은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는 현실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미래의 불확실한 사건에 대해 무한대의 부담을 질 수도 없습니다. 특히 외국에 대한 수출의 경우는 그 나라의 사정을 아무리 열심히 파악해도 미비한 바가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면책을 미리 선언하고 이를 계약의 내용으로 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무역 실무에서는 "... 비록 매수인의 주문에 따라 생산하여 수출하기는 하나, 혹여 그 나라(수입국)에서 이 제품이 제3자의 특허를 침해한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매도인은 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꼭 넣어야 한다고 우리 무역 실무에서 가르칩니다. 물론 면책 조항을 넣어도 이는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만 효력을 지닐 뿐 제3자에 대해 이를 주장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다만, 계약상의 의무에 의해 그 수입자가 가능한 한 최대한 그 피해(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가정 하에)를 자기 책임 하에 수습하고 배상, 보상해야 할 뿐이겠죠. 또 형사법, 형사벌은 정부에 의해 시행, 적용, 부과되는 것이므로 민사 계약으로 이의 면제를 주장할 수도 없고, 이것이 상관행상 규정된 것도 아닙니다. 상관행상 정해진 건 법규와 대등한 효력을 지니므로(민사 관습법과는 다릅니다) 물론 강력한 효력을 지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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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생태계 보호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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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생태계 보호

크레이그 토머스 저/신승미 역
지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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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이 되어서는 안 되고, 약자나 성장 유력 주자나 자신만의 고유한 몫을 추구하며 전체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근래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또 이제는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이런 조화로운 생존의 도모 옹호가 대세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무분별하게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거나, 재벌 독과점의 풍조를 예찬하는 풍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허나 어떻게 해야 "생태계의 조화로운 조성"이 가능한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장들이 엇갈리며, 무난한 중론이 모아지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저자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 본디 한국처럼 정부 주도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나라에서는, 정책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각 단계의 사이클도 짧아서 기존 생태계에 주는 충격도 크다....." 그러나 개발과 성장이라는 과실의 수확이 이 모든 부작용과 충격을 어느 정도는 흡수해 준다며 그간의 고도 성장이 이뤄 온 긍정적 효과에 의지할 수 있었던 게 과거상이라고 정리합니다. 현재는 이런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며, ".. 노동 생산성과 자본의 한계 효율이 급속도로 낮아지는 지금" 잠재적인 성장률이란 거의 바닥까지 떨어졌으며, 이런 충격파는 생태계에 대해 거의 병리적인 상처를 남기고 선순환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만든다고 저자들은 단언합니다. (p18)

저자들은 어느 나라의 경제이건, 경제 생태계 단독으로 조화로운 생리와 성장, 유지가 기대될 수는 없고, 정치 생태계, 사회 생태계가 두루 그 곁에서 건강한 호흡과 대사를 이뤄야 경제 역시 건강한 작용 유지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허나 한국 사회는 이마저도 낙관하기 힘들며, "과잉 정치, 이념화, 담합 구조의 덫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무한 루프를 그저 뱅뱅 돌 뿐이고,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나쁜 생리에만 적응한 관료제의 병폐까지 더해져 국가의 장기 과제를 소신껏 추진할 수 없는 풍토까지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거시경제가 건전하고 참여 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운용되려면 신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해야 합니다. 허나 기업은 더 이상 R&D를 놓고 역량을 쏟아 붓는 모험, 결단을 선호하지 않으며, 지난시절 고 이병철 회장 등이 보엿던 미래에의 통찰과 소통은 이제 재벌 총수들에게서 좀처럼 찾기 힘든 미덕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의 추격도 무섭게 이뤄지는데, 이미 중국은 우리를 추격해 온다기보다 첨단 산업 분야에서조차 몇 발짝 앞서가는 세계의 거인, 선두주자로 위상을 바꾼 지 오래입니다. 한국은 재래식 공산품 시장에서도 중국산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고, 신산업 동력 역시 그들에 선수를 놓쳐 장래의 도약 발판 마련도 기대하기 힘든 판입니다.

노동 시장 역시 경직성이 개탄스러운 실정입니다. 왜 노동 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과도하게 높은지는, 저자들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짚습니다. 하나는 생활에 필요한 필수 기본 지줄 비용의 비중이 꽤 높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안전망의 질적 양적 기능이 미비하기에 임금에서라도 넉넉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려는 노동자층의 욕구가 교섭 과정에서 전투적 대립상을 소모적으로 도출한다는 분석입니다. 타당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이 사회 전체를 좀먹다 보니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저출산 국가가 되었는데,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과도한 출산을 억제하기 위해 3자녀 이상 가구에 대해 과태료까지 부과하던 규제를 떠올려 보면 실로 상전벽해의 감회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계 부채는 물론 우리뿐 아니라 미국도 심각하고, 어느 나라건 생애 소득 전체 전망을 고려치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아 일단 쓰고 보는 풍조는 경제 전체를 심각히 위협하는 불안 요인이 됩니다. 허나 한국은 전반적인 개인 소득 증대 가망이 희박해진 국면에서, 여전히 구조적 요인으로 가계 소비가 줄지 않고, 이른바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 생산, 유행 풍조를 봐도 짐작할 수 있듯 빚 내어 어렵사리 장만한 집이 언제 시한 폭탄으로 변해 중산층과 서민의 살림을 벼랑으로 몰지도 매우 불투명한 국면입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 정부는 "이제 내수도 넉넉히 키워야 경제의 지속적이고 건실한 성장을 이끌 수 있다"며 정책의 기본 방향 전환을 암시했습니다. 또 중국 경제가 무한한 잠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동인은 바로 든든한 인구 집단 덕에 활기가 줄지 않는 안정적 내수 시장의 확보로 기업들이 마음 놓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환경적 여건에도 크게 기대는 면이 있죠. 그러나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더 인구가 많고 더 부존 팩터가 넉넉히 포진한 다른 국민경제에 수출을 늘려 부가가치를 해외에서 창출, 유입해야 지속적이고 질적 우위에 선 건전한 경제 사이클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말합니다. "일본도 과거에 비교적 큰 인구 볼륨을 기반으로 내수에 기댄 구조 걔혁을 꾀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듯 "잃어버린 20년"의 거대한 침체와 상흔에서 헤어날 줄을 모릅니다. 우리도 똑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습니다.

자연 생태계에도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3각 구조가 존재하듯, 경제 생태계 역시 생산과 소비 못지 않게 "분해"의 기능을 원활히 이뤄 상품과 서비스의 유통, 순환이 경화, 교착 상태를 피할 수 있게 어떤 장치적 담보가 이뤄져야 합니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금융 기관의 원활한 작동이 이를 적절히 대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헌데 한국 경제에서 가장 경쟁력이 취약한 섹터 중 하나가 금융 영역이다 보니, 이런 기능마저 아직까지는 소기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은행으로부터 대출한 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대로 변제 못 하는 한계 기업은 그 수효가 줄지 않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 역시 이를 필터하고 유효한 모니터링, 심사를 벌일 역량이 대단히 미비합니다.

금융 기관 본연의 소명은, 투자자로부터 여유 자금을 끌어들여, 그들에게 소정의 과실과 성과를 약속하고, 이를 현장에서 간절히 자금 수혈을 갈구하는 유망 기업들에게 적기 적시에 수혈하는 중개자의 역할입니다. 과거에는 대출을 정계의 압력으로 특정 대기업에 몰아다주는 악성 풍조가 뿌리뽑히지 않았으며, 현재는 이런 폐습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대신 대기업들이 사내에 쌓아둔 유보금을 도통 시중에 풀지를 않아 성장의 과실을 모두가 누리지 못하는 악순환의 한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금융 기관 역시 착실히 성장할 기업과 그렇지 않고 흉내만 내다가 도태될 부실 단위를 잘 준별하지 못하여, 악성 돌연변이(좀비 기업)의 생태계 출현을 방조하다시피 합니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성장과 쇄신을 더욱 위협하는 미래 인자는 바로 "핀테크 산업"의 도전인데, 구태의연한 영업방식과 과거 패턴에만 의존한 전략 기획으로 이 거센 미래의 변동 요인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어떻게 해야 한국의 경제가 다시 과거의 활력을 찾고, 서민과 중산층, 대기업 모두가 공존 공생하는 양질의 속성을 재 장착하겠습니까? 저자들은 이 책에서 많은 대안을 내놓습니다만, 그 중 하나가 수천 수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인재의 육성과 지원책입니다. 과거에도 정부와 기업은 성실한 인적 자원, 특급 엔지니어 후보군을 우대하고 그 감별에 정성을 쏟아 왔습니다. 대개 과거에는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기업 전략을 카피하거나, 심지어는 책략을 통해 기술을 훔치는 방식으로 "추격형 성장"을 꾀했습니다. 이런 방식을 현재는 중국이 답습하는 셈인데, 중국의 재래식 산업 구조가 지닌 확고한 경쟁력과 국가 주도의 영리한 전술 구사를 우리가 대응, 감당해 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런 방식이 미래에 더 이상 먹혀들지도 않는다는 데에 나라 안팎에서 거의 합의가 이뤄진 편입니다. 언제까지 과거의 향수에 얽매어 소중한 미래의 비전을 도외시하겠습니까?

미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잃고서도 아직 세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건 "일찍이 세상에 없던 아이템과 서비스"를 무수히 만들어내는 그들의 창의성에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간 축적된 활발한 정치적 에너지를 산업과 핟문으로 방향 전환하여, 혁신과 창의로서 세계의 도전에 맞서야 합니다. 그것이 오염과 방해 없이 맑은 산소를 마시며 건전한 재생산을 무한 담보, 가동할 수 있는 생태계 유지의 근본 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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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개념사전 | My Reviews & etc 2018-11-2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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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상현실 개념사전

정동훈 저
21세기북스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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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깁슨은 "미래는 벌써 우리 곁에 와 있으나 다만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명언으로, 기술 혁신의 일상성과 그에 따른 세계관의 절박한 변화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1990년에 제작, 개봉되어 큰 인기를 모은 오락영화 <토털 리콜>은 미래상의 가장 두드러진 요소 중 하나를 "사실이 아니면서 사실처럼 느끼게 하는 오락"으로 꼽아 극의 중추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이때 일반에 처음으로 그 가능성이 널리 인식된 이른바 "가상 현실"은, 이의 보편적 상업적 활용을 위한 여러 지엽적 기술이 간헐적으로, 혹은 제법 화제를 모아가며 개발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근 이십 년이 지나도록 저 고전 SF에서 제시한 비전에 영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도 그런 진단이 자주 나오지만, 심지어 한때 "가상 현실"은 잊혀진 영역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역시 이 책 중에서 시원하게 지적하듯) 페이스북이 뜻밖에도 오너의 강력한 의지에 바탕하여 이 분야 선도적 사업자로 나섬에 따라 다시 부각되는 요즘입니다.

가상현실은 물론 산업적, 혹은 국가 정책적으로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많은 기업들이나 우리 같은 일반 소비자들이 관심을 두기로는 엔터테인먼트, 여가 선용, 오락 방면에서의 역할 쪽입니다. 사람은 못 먹어 본 것, 못 구경한 것, 못 느껴 본 것을 감각적으로 접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면서부터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종족입니다. 체험을 직접 해 보고 싶지만 여러 사정,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거나, 다른 절실한 과제나 업무 때문에 감행하기 꺼려진다거나(이 역시 기회비용의 문제입니다만) 할 때는 계획을 접는 게 보통이죠. 가상현실은 한마디로 말해, 비용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거의 진짜나 마찬가지인 체험"을 겪게 돕는 도구, 환경,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비용과 가격입니다. 가짜를 즐기는 데 진짜 체험이나 별 차이도 안 나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면 아무도 그 상품을 사려 들지 않을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 혹 판매자 입장에서 가격을 타협할(낮출) 수 없다면, 그 서비스는 구매자에게 "진짜를 차라리 능가하는" 멋진 쾌감을 선사할 수라도 있을 만큼 효과가 좋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면에서 생산자들은 고객의 니즈를 충족 못 시켰기에, 여태 업황이 지지부진했던 거죠. "가상 현실"이 인터넷의 보편적 이용이라든가, 모바일 소통보다 더 가능성이 일찍 주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이 정도에 머문 건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왜 다시 가상현실인가? 저커버그 같은 이들도 마냥 개인적 선호를 동기 삼아 모험성 투자를 결단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우리 동양인들보다는 서양인들이 특히, 머리로는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감각, 특히 시각적 속임수에 자발적으로 넘어가며 "속는 쾌감"을 즐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세계화가 진전되고 보편적 대중 문화의 향유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상의 기쁨이 된 지금, 놀이동산 방문이나 기존의 3인칭(이 말의 뜻은 책을 읽어 보면 명확히 다가옵니다) 게임 몰입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분명한 욕구가, 여러 채널을 통해 소비자들을 길들이고 나의 원 체질이나 기호인 양 침투를 압박해 옵니다. "이거 안 해 봤으면 말을 말지 그래?" 게임과 담을 쌓고 사는 이들에게조차 뉴스를 통해 "포켓몬 고"가 뭔지는 싫어도 개념 파악이 절로 되는 현실입니다.

virtual이란 말은 참 묘한 어감을 가집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실상의" 같은 뜻이 맨 먼저 제시됩니다. 그럼 이건 사실이라는 걸까요, 그 반대라는 걸까요? 우리말 번역 "가상(현실)"을 보면, 아예 가짜라고 단정하는 명명입니다. 빤히 가짜인 줄 알지만 진짜 같고, 진짜보다 더 실감나며 (이게 중요한데) 신나는 효과, 이게 바로 virtual의 본질입니다. p20에는 폴 밀그람 예일대 교수의 규정을 빌려, 현실- 증강현실 - 증강가상(이는 아직 우리, 그리고 산업계, 학계에 낯선 phase입니다)- 가상 처럼, 네 단계가 전 구간을 채우는 개념스펙트럼을 제시합니다. 이 네 단계를 모두 합쳐 "혼합현실"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띠의 양 끝에 위치한 두 단계도 100% 순도는 아닌 셈이죠. 이 스펙트럼이 우리에게 요긴히 가르쳐 주는 한 가지 포인트는,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어떻게 구별되는지에 대해 기술적(descriptive) 설명이 아닌, 어렴풋하나마 전체 구조의 그림이 그려진다는 겁니다. 기술적 설명은 바로 그다음 페이지에 도식화하여 자세히 나오는데, 이 역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핵심만 잠시 발췌하자면, 증강현실은 1) 유저의 시야를 완전히는 가리지 않고(=상당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고), 2)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게 보통이고 3) (생산기업 입장에서)위치 처리, 데이터 처리, 카메라 인식 같은 기술 개발에 주력한다는 점입니다. 가상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이며, 3) 관련해서는 인체의 시각, 청각 등 기초 연구에 보다 집중하는 게 큰 차이입니다. 제 생각에는 개발자들이 주안을 두는 방향인 3)이, 이 책을 읽어나간다거나 혹은 벤처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사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감각이란 그 조작의 주체가 철석같이 믿는, 생존과 존재의 바탕이 될 기제이자 생리 작용이지만, 그 현실은 불완전함과 착오 투성이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상현실이든 증강현실이든 이 인지 메커니즘의 틈을 파고들어 "(객관과 무관한) 주관의 쾌감을 극대화"하자는 상품이자 서비스의 승리를 목적으로 삼는 사업영역이므로, 어떻게든 나약한 인간을 최대한 즐겁게 속여 줄 방법을 찾아내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책에 여러 언급이 나오지만, 이른바 지연속도(그 이하로 화면을 연결하면 단절을 연속으로 착각) 같은 이치의 발견은 벌써 지지난 세기부터 연구를 통해 주목되곤 했습니다. 특히 가상의 세계 하나를 머리속에 자발적으로 생성해 내는 게 VR의 과제이므로, 120도 이상의 시야각을 확보한다거나, 초당 90장 이상의 화면을 처리할 능력을 기기가 보유하게 만드는 게 "시각 기만" 방면에서 업계의 화두였습니다. 나머지 몰입감은 청각 기만이 처리하는데, 이 분야에서도 소위 3D 오디오의 개발 등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체험의 형성은 이제 상용화의 이름값에도 거의 부끄럽지 않은 수준에 다다른 듯 보입니다. 책 뒤 각론에도 나오지만, 화면 중 유저의 시각이 머무르는 그 부분만 해상도를 높인다거나 하는(시선이 머무르는 부분의 해상도로 전체의 선명도를 판단하는 인간 시각의 한계) 선택과 집중의 간단한 아이디어로 큰 호평을 얻은 한국 기업의 예도 나오는데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개별 단말기의 성능이 아직 아주 만족스런 정도가 아닌 만큼, 정해진(시장 가격을 맞출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최대 효용을 낼 수 있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형편입니다. 아직은요. (아니라면 벌써 우리는 VR 기기의 즐거운 홍수 속에 파묻혔을 겁니다)

장기간 육상 대중 교통 수단에 탑승하거나 항해 중엔 왜 멀미가 날까요? 실제 동작과 뇌가 인지하는 내용이 불일치하는 데 그 원인이 있음은 우리가 다 알죠. VR도 마찬가지라서 소위 VR멀미(적절한 번역 같고요. 우원어는 simulation-sickness라고 이 책에 나옵니다. sea-sick[배멀미] 같은 기존 어휘를 잘 비튼 신조어죠) 문제가 오랜 동안 해결이 안 된 게 이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은 큰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이 외에도 포컬큐의 혼란(실제 거리와 뇌의 인식 사이의 격차 설정 교란) 때문에 눈의 피로가 가중되는 게 여전한 난제 중 하나라고 하는군요.

전세계에서 3D 영화 <아바타>가 가장 큰 호응을 부른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었는데요. 이때 사실 3D TV도 일부 얼리 어댑터에 의해 호응을 얻고 붐이 일기도 했던 걸 저도 기억합니다. 책에서는 안경 착용의 불편함 등 여러 이유로 이 기막힌 호기를 업계가 살리지 못하고 결국 무위로 돌린 아쉬움을 지적합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같은 게 몇 년 전에 업계 개발자뿐 아니라 유저 섹터에서도 논쟁의 불이 붙는 등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만 또 지금은 지지부진하고, 폴더블 스마트폰 등에 자리를 내 준 형편이죠. 이런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 혁신적 기술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장에서 현실적 수요를 창출할 수 있게 얼마나 단가를 낮추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는 가상현실뿐 아니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번역 서비스(일단 질적 측면은 차치하고)를 패킷당 비상식적 요금을 내야만 이용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쓰려 들겠습니까. 부자들은 그냥 책임도 쉽게 따질 수 있고 융통성도 높은 사람을 쓰면 그만입니다. 책 후반부에서는 패기 있는 한국 기업들의 여러 사례를 소개하는데, 읽으면서 이런 현실, 즉 보유한 첨단 기술의 즉각 상용화가 어려운 한계에 대해 절감할 수 있더군요. 카카오는 어느새 법제상으로나 현실의 영향력에서나 "대기업군"에 속하게 되어, 이런 젊은 도전자들의 요긴한 기술을 사들여 벤처 생태계의 바람직한 양상을 구축해 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재벌기업 롯데도 자신의 테마파크가 제공하는 오락의 방향성을 다변화하는 데 이 VR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데서 엔터테인먼트 미래상의 분명한 비전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VR은 꼭 오락에만 쓸모가 궁리되지도 않습니다. 현재 한국 TV 정보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내시경 치료술 홍보 영상을 보면, 어느 정도는 VR의 핵심인 그래픽을 최대한 채용한 것들입니다. 책에는 미국 어느 대학에서 VR을 활용한 수술, 동시에 이를 이용한 의대생 교육 현황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합니다. 다소 궁색한(?) 응용 같기도 하지만 고소공포증 환자 등을 치료할 때 이 가상의 "환경 구축"은 무엇보다 치료진에 큰 도움을 주는 기술이겠죠. 진통제의 오남용은 결국 환자에게 다른 질환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감각에의 기만"은 이 진통제 처방을 줄이는 데도 크게 도움을 준다는 대목이 특히 공감되었습니다.

VR은 사실 우리 일상에서 이미 바싹 다가온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스크린 골프 연습장"이 VR의 가장 생생한 응용이 아니고 뭘까 싶은데요. 이 외에도 저자는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사업화하려다 뜻이 꺾인 섹터가 바로 "플스방" 같은 예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저작권자인 소니가 강력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인데, 권리자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이긴 하나 보편적 소비를 위해 어찌 보면 알아서 채널 하나가 구축된 셈인데 업자 모두가 상생하는 쪽으로 판로 생성, 정규화가 법제를 통해 이뤄지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점입니다. 뛰어난 기술이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현실에의 안착으로 해피 엔딩이 이뤄지기까지 이처럼 까다로운 고비가 많다는 점 다시 확인되었구요. 책에 소개된 구체적 정보 덕분에 당장 간편히 사용,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아는 기쁨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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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2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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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피터 드러커 저/이재규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0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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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방대한 저작을 남긴 경영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경영에 "사상"이 개입할 여지나 있을까 의심을 갖는 게 더 흔한 인식일 텐데요. 드러커 박사님은 이런 인식이 오히려 그릇된 속물적 태도임을 분명히 계몽이나 하듯, "혁신"이라든가 "사회적 책임", "동반 성장" 같은 개념을 그 이른 시기부터 명확히 규정하며, 대중과 CEO 모두에게 상생과 건전한 성장에 대한 이상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 타당한 지표를 가르쳐 준 그의 저작이라 해도, 한 권의 분량에 압축된 내용을 독자가 접하거나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의문도 적잖게 들었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음 이 한 권으로 드러커를 마스터했다"라는 생각보다는, "확실히 오늘날에는 드러커(의 가르침)란 이렇게, 혹은 이런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라는 느낌이 확실히 오긴 했습니다.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21세기에 재조명되는 드러커의 교훈에선 이런 지점들을 눈여겨 봐야 한다"라든가, "여태 못 읽고 지나친 드러커의 함의 중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종래 고도성장기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쉬웠고, 마냥 편한 보장이 제공되는 건 아니라도 "평생 직장" 개념이 (일본처럼) 자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은 우리들에게 낯설기만 한 단어이며, 지금도 노동계에선 "모두의 정규직화"라는 의미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기도 합니다. 헌데 그렇게나 예전에, 드러커 박사가 "비정규직의 중요성"을 논한 적이 있었을까요? 서구나 북미에선 그때부터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비중이 컸었기에 (우리 막연한 인식과는 달리) 이 점에 대해 언급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긴 했을 것입니다. 저들의 고용 환경에서 일상화된 패턴 중 하나이기에 이런 한 마디가 나왔던 게 당연하지만, 그런 사정(비정규직의 보편화)이 아직도 낯설고 적대적인 우리로서는 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드러커는 "비정규직도 분명 소중한 지적 자본 중 하나"라고 규정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사가 당신을 실망시킨다면 과감하게 자유로운 유목민이 되는 길을 택하라."고 권유까지 하시는 저자님이지만, 독자로서 꽤 망설여지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4대 보험은 있어야죠.

아무리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주권의 시대라도, 회사에서 민주주의가 절대 보장 안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뿐만 아니라 사장님들은 종종 그 직원들의 "부족한 인성"까지 교정하려 듭니다. 회사는 특히 한국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 모인 파트너쉽이나 2차 집단이라기보다 원칙 없는 학교 같은 느낌도 줍니다(요즘은 학교라고 해도 선생님들 자의가 지배하지는 않죠). 보통 경영 관련 서적에서 가능하면 지배적인 리더십을 따르라고 충고하지 이런 문제적 상황을 지적하는 태도는 보기 힘든데요. 저자께서는 "CEO가 선의의 계몽군주는 아니다.'라며 드러커의 주장을 정면 인용합니다. 사실 이 (드러커의) 한 마디는 올해 초 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 김종인 씨의 전횡을 지적하며 조국 교수가 꺼낸 표현이기도 합니다. "군주는 선의건 악의건 현대 조직에서는 필요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죠. 민주화한 조직에서 개인의 창의가 최대한 발현되고, 조직 소기의 목적을 보다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직원의 연수가 아니라 경영자 개발이다" 드러커의 한 마디 중 이것보다 파격적인 언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에 따르자면 소위 "목적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 MbO)"의 관점에서, 당면 과제에 효용을 제공 못 하는 모든 자원은 다 낭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저자께서는 재미있는 비유로, "드러커"라는 이름은 중세 네덜란드어로 인쇄업자라는 뜻인데, 이때만 해도 인쇄업 기능이란 평생 한 번만 배워둬도 그 자손들까지 쓸 수 있는 기능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러커의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노동자나 경영자라도 지금처럼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휴짓조각으로 급속히 변하는 시대는 겪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드러커의 대안은 "지식을 배우지 말고, 배우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드러커는 생전에 일본의 "개선"이라든가, "온 더 잡 트레이닝"에 주목하고 구미의 경영자들에게 적극 도입을 추천했죠. 노동자들, 직원들이야말로 그들 자신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현장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무엇을 배울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게 경영자가 아니라 노동자, 직원임은 또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들에게 자율권, 참여권을 주고 혁신을 스스로 이뤄나가는 주체로 키우는 기업, 경영자 스스로가 무지를 인정하고 함께 기업을 꾸려 나가는 기업이야말로 이 혁신의 시대에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이겠습니다.

블룸버그에서 혁신 지수 1위로 한국을 올려 놓았다는 뉴스는 저도 몇 달 전 웹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드러커가 파악한 혁신의 개념은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그는 첫째 혁신은 위험하지도 않으며, 둘째 뛰어난 아이디어나 기적적인 행운에 의하지도 않고, 셋째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며, 넷째 내부에서만 일어나지도 않으며 업종의 현황에 반드시 밝아야 할 필요도 없으며, 다섯째 (개인적으로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영리 기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여섯째 공무원이든 학자든 누구라도 일으킬 수 있는 게 혁신이라고 합니다. 혁신은 심지어 어린 청소년의 반짝하는 아이디어에서도 유발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는군요. 혁신의 이런 본질을 꿰뚫지 못한 채, 혁신이 그저 근로자나 사회 다른 섹터 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의욕을 꺾는 데만 구호처럼 동원된다면 우리 나라는 곧 보잘것없는 변방의 활기 없는 소국으로 전락하리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드러커의 가르침이나 혁신에 대한 이런 통념이, 보다 실질적이고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경영 목표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잘 확인할 수 있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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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조직개론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1-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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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료조직개론

신인수 저
스페라플러스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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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모든 분야 저술이 그렇지만, 실전에서의 효용도를 떠나서는 그 가치릉 평가할 수 없습니다. 회계나 finance처럼 정량적(定量的)으 로 뭐가 딱 나와 떨어지는 필드에서는, 서열을 세우기도 우열을 평가하기도 수월하지만, 나머지는 오로지 그 도그마들이 실용, 실질의 영역에서 얼마나 잘 먹혀 드는지로 그 쓸모를 따져야만 합니다. 그 중에서도, 조직론의 논의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두루뭉술 덕담이 여태 많기도 했었습니다.


 

이 책은, 그 명작이 나온 지 근 30년 만에, "이 시대의 기업 조직은 어떤 모습이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결정판으로, 동일 기관인 맥킨지에서 야심차게 내어 놓은 저술입니다. 집필진은, 당연히 그로부터 시대가 많이도 흘렀으니만큼, 전혀 다른 분들입니다. 새로운 집필진은, 선배들이 이룬 업적의 질을 계승해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최소한) 양적인 자원 투입(긴 준비 기간, 집필 기간, 리서치한 데이터의 양 등) 면에서 전작을 압도한다는 자부심 등이, 이리저리 섞인, 그러면서도 마치 재기 있는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듯, 실로 방대한 사례를 들면서 "이것이 정답이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진의 야심, 그리고 투입한 리소스의 볼륨이 있기에, 책은 엄청 두껍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이 내세우는 바는, 책에서 시종 일관하여, 다음의 키워드로 대변됩니다.

 

 

 

5A

 

1. aspire (포부)

2. assessment (평가)

3. architect (설계)

4. act (실행)

5. advance (전진)

 


aspire에, 우리가 CEO論에서 흔히 말하는 "비전"도 포함이 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4, act에서 보통 action이라고 하기가 쉽지만, 일회성의 action이 아니고 일련의 프로세스를 포함한 실행인 act라는 점에서 저런 표현을 씁니다(책에는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만).  

 

"남과 차이를 내는 조직"에서 궁극의 "차이"란 결국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결 국은 "성과"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주주에게 배당, 직원에게 급여,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채권자 기타 이해관계자에게 정당한 수익을 안겨 주기 위해서, (또는 회계외적 무형의 자산인 평판이나 시장 점유율 상승을 위해) 조직, 기업은 성과를 내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책은, 성과 지향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는 모토는,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과 달리, "조직의 건강"입니다. 내부적으로 효율,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조직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더라도 결국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책의 첫 장에서 대뜸 말하고 있는 예가 코카콜라의 故 고이수에타 회장입니다. 그는 생전에 TIME이나 비즈니스위크에 단골로 게재되던, CEO계의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죠. 그러나 그의 명성과 관계 없이, 그가 떠나고 난 뒤 조직은 단기 생산성 제고라는  근시안적 목표에 치중하느라 체질이 완전히 곪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네빌 이스델의 적절한 "구원투"가 없었더라면 코카콜라는 경쟁사 펩시에 추월당하여, 그저그런 음료수 업체로 주저앉았을 것임을 은근 암시하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경영전략사 분석에는 이처럼 IF가 빠지면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회사의 재무제표와 각종의 외부 지표를 통해, 변수의 조정을 통한 추세적 예측이 가능한 분야이니까요(이 역시 절대적인 건 아니겠습니다만).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프로야 구에서 2009년 김인식 감독의 퇴장 시점 한화 이글스의 현황을 생각하시면 딱 감이 오실 줄 압니다. 당시만 해도 한화는 지금처럼 하위권에서 못 빠져 나오는 팀은 아니었으나, 리빌딩이 필요한 시점에서 무리하게 전력을 혹사한(당장 가시적 성적을 내기 위해) 김 감독의 실책으로, 결국 이후 몇 년을 두고 꼴찌를 도맡아 하는 팀이 되어 버렸죠. 이 부분은 한 마디로, 리빌딩이 필요한 조직은 당기의 성과를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체질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 다음에 재밌는 것은, 그럼 아래로부터의 자율성 강화와, CEO의 확고한 리더십 확립 둘 중 무엇을 중시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딱부러진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딜레마에서 무엇을 택일적으로 지적한다면, 그게 바로 사기 아닐까요? 대신 이 책은, 다양한 기업의 다양한 사례를 들고, 독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골라 잡을" 수 있는 선택의 틀을 줍니다. 이 논의와는 무관한 이슈이지만, 이 책에서 성공례로 들고 있는 P&G의 경우, 철저히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비자에게 일도양단을 강요하지 말고, 여러 개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줘라!" 어쩌면 이 책이, 다소 포괄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자신의 주장을 서술 태도에서조차 관철하려는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좀 짖궂은 말일까요?)

 

P&G의 사례는 특히 흥미를 유발합니다. "회장님, 화장품과 세제는 다른 것입니다." "아니;, 내가 보기엔 같습니다." 결국 같다는 주장이 관철되고, 이는 시장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타당성을 입증합니다.  모든 상품을, 우월적 위치에서 대중에게 강요하는 입장이 아니라, 철저히 시장이 요구하고 원하는 것만 만들고 팔겠다는 무서운 집중력에서 유래합니다. 흔히 기업의 R&D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필요 없는 분야는 스컹크 섹터라고 해서 다 쳐내 버립니다. P&G는 그래서 한때의 도태 위기를 넘기고 지금도 강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 유명한 LG생건이나 애경을 어느 정도 위협도 하는 수준입니다. 이런 사례는 사실 독자에 따라, 오히려 과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내적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 시장추수주의"로 비판될 여지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과연 이런 기조만 회사에서 팽배하다면,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에 그만큼 도박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을까요? 이 책의 좋은 점은, "답을 하나로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선택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현실이 몇 개의 도그마만 가지고 헤쳐 나갈 수 없는 다변수 방정식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의 5A는, 조직 건강성 회복은 물론, 성과 제고 프로세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사실은

 

 

조직의 건강

성과의 창출

1. aspire (포부)

 

 

2. assessment (평가)

 

 

3. architect (설계)

 

 

4. act (실행)

 

 

5. advance (전진)

 

 

의 2×2 매트릭스에 따라 체크를 해 봐야 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중요한 사항은 조직 건강성 제고, 즉 리빌딩이라고 했숩니다만, 실제로 위 표에서 1,2는 두 컬럼에 채워질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3, 4, 5에서는, 내용이 통합된다고 저자들이 스스로 발히고 있습니다(그러면서 저자들은 상당히 안도하는 어조를 보이는데요. 물론 이후 과정에도 다른 과업이 제시되면 독자도 힘들겠거니와, 이 책의 볼륨 역시 얼마나 비대해지겠습니까). 어쩌면 3, 4, 5 부터는 다른 책들의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여길 수도 있습니다(사례는 진심 방대하게 제시됩니다만).

 

 

조직의 건강

성과의 창출

1. aspire (포부)

 

 

2. assessment (평가)

 

 

3. architect (설계)

 

4. act (실행)

5. advance (전진)

그래서 저 위의 표는, 비유적으로 표시하면 이런 표로 바뀌는 셈입니다.

 

책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덕목 중 하나는 바로 균형 감각입니다. 어느 하나의 방침에 치중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잘 되어 왔던 원칙도 어느 날 효용을 다할 수 있고, 같은 기업이 같은 시장에서 맞는 상황도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전술은 극에서 극까지, 다양한 스펙트림을 띠고, 그 중에서 정답을 잘 고르는 능력은 어디까지나 CEO의 역량입니다. 이 역시 직관과 논리 양면에 의지해야만 함은 자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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