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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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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츠바타 히데코,츠바타 슈이치 저/김수정 역
윌스타일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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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가장 기초적인 단위를 이루는 게 "가정"이고, 그 가정 중에서도 필수 요소, 기둥뿌리를 이루는 실체가 "부부"입니다. 자녀 없는 부부, 가정은 있을 수 있지만, 부부로 이루어지지 않은 1인 세대는 그걸 가정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무리입니다. 물론 편부, 편모 가정도 얼마든지 화목한 분위기와 모범적인 생활을 꾸려갈 수 있지만(실제 역사에서 사대부 포함 만인의 존경을 받은 서포 김만중의 예가 그 대표라 하겠습니다), 원칙이랄까 원형적 가정상에서는 다소 거리를 둔 양상이죠. 나라님이나 고을 수령도, 무지렁이, 촌부, 심지어 백정이라고 해도, 그들이 이룬 부부 단위- 자녀 확장의 가정에 대해서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일구는 기초 경제 터전이 나라 살림의 근간을 이루고, 인륜과 도덕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근원이 바로 이들 풀뿌리 백성이 이루는 개개 가정임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되었기 때문이죠. 가정이 무너지면 그건 곧 국가를 이루는 인륜, 질서의 뿌리가 뽑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어떨까요? 서구인들의 생활 패턴이 물질문명의 글로벌 확산과 함께 급속도로 지구 곳곳에 퍼짐에 따라, 우리 한국도 누백년 누천년 간 유지해 온 생활 풍습과 제도 를 서서히 포기해 가며, 서구형 핵가족을 가정의 기본 단위로 본격 받아들인 지 어언 삼십 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제 "핵가족"이란 말도 잘 쓰지 않습니다. 가족이라고 하면 당연히 2대 직계혈족만으로 이뤄진 단위를 떠올리기 마련이라서겠죠. 혹은, 1인 가구라는, "핵"보다 작은 소립자가 주변에서 지나치게 자주 눈에 띄곤 하는 현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사람 사는 알콩달통한 재미, 효과적인 경제 활동,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자연스럽게 도달되는 인격의 완성 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그 마음이 잘 맞는 이성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어야 합니다. 이는 쾌락이나 사회적 위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는 방식의 정석과 기본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이게 서양과 동양이 그 근본 이치가 서로 다를 이유도 없습니다.

 

요즘 속된 말로, "(남녀 간의 사이가) 많이 상했네."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음식물이 상했으면 얼른 버리든지, 일부만 선도가 떨어졌으면 빨리 덜어내고 나머지를 살리든지, 어떤 구제책을 찾아야 합니다. 저 표현은 주로 청춘 남녀의 관계를 두고 쓰이지만, 이미 법률관계의 형성(=혼인신고), 혹은 사회적 공인을 받거나 실체를 이룬(사실혼) 기혼자들이라고 해서 결론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젊은 연인이면 차라리 해결책이 간단한데, 기혼자라면 (연령대를 불문하고) 처방이 좀 더 복잡하고 섬세해지며,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설계가 달라질 맞춤형이라야 바람직합니다. 흔히 결혼에 일단 "골인"했다는 이유로, 상대를 그저 편하게만 대하거나, 밖에서도 "부부끼리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처럼 가볍게 여기기 쉽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일단 위기에 접어들었다면, 연인보다 적확한 솔루션이 필요한 게 바로 부부 사이입니다.

 

서양의 책들이 보통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다양한 사례 연구를 통해, 현대의 부부들이공통적으로, 혹은 특수한 사례 유형에 따라, 곤란을 겪고 속을 쓰리며 때로는 정신과 전문의, 심리치료사, 기타 전문가들까지 찾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정리, 분석, 진단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제 주위의 많은 부부들은, 두 사람만의 관계에 모종의 위기가 감지되거나, "냉전이 열전으로 변해서 화끈하게 한 방 터뜨리고 난 후"에는,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책을 읽곤 합니다. 그런 책들은, 대개 추상적인(추상적이라서 나쁘다거나 부족하다는 게 아니고요) 교훈, 혹은 총론적인 도덕을 독자에게 일깨워 주는 내용이 대부분이죠. 그런 책들을 읽고 초심, 혹은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여, 다시 옛 정을 회복하고 잘 사시는 부부들은 대단한 경지에 오른 분들이시죠. 문제는..... 각자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 온 이들이(그리고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던 분들이), 일단 처음으로 맞부닥치고 나서 서로의 추한 면(혹은 일방이 보고 싶지 않았던 타방의 어떤 면)을 충격적으로 접했을 때, 개인주의 트렌드가 그 성장기를 내내 지배한 세대의 커플이라면 그 간극의 봉합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이런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지극히 타당한 설교나 훈화로 도무지 해결이 안 되고, 한번 등을 돌리기 시작한 감정이 처음의 설렘으로 회복되지 않을 때, "당신들 두 사람 뿐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커플들이 겪고, 다시 아문 상처의 사연은  이러하다"며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케이스 스터디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잘 정리되고 구체적이라고 해도, 실례 그대로를 (환자이기도 한)독자들에게 툭 던져 주고 나서, 조언이나 다독거림, 가이드 없이 나가버리는 저자는 무책임합니다. 이 책은 추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포섭했지만, 동시에 그 대표 사례로부터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아파서 절실하기만 했지 문제를 객관화해 볼 여유가 없는 우리 일반 독자들에게, 도식화한 교훈, 처방, 팁, 원칙들을 보기 좋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제목은 "부부"를 겨냥한 것처럼 되어 있고, 사례도 기성 부부들의 이야기가 많지만, 젊은 커플(진지한 사이라면)이 자신들에게 적용해도 충분할 만큼 내용이 알찹니다.

 

방어적으로 굴면 곤란합니다. 남편은 물론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두 사람이 구성과 배열이 다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고(근친 관계가 아니기에 결합이 가능하죠) 후천적으로는 매우 상이한 성장기를 거쳤다 해도, 일단 유니언을 이룬 이상 감정상으로도 공동 운명체를 이룬 셈입니다. 방어적으로 나온다는 건 "당신에게 입을 상처가 두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설사 일시의 다툼에서 상처를 입는다 해도, 그걸 어루만지고 새 살을 북돋워 줄 사람은 다름 아닌 배우자(혹은 진지한 애인)입니다. 심리적 방벽을 조금이라도 의식하면, 이는 부부 관계 존립의 기본 이유가 의심스러워지는 거죠. 개개 자존이나 사적공간을 존중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우리말 "부부는 일심동체"에서, 이 "일심"이 가리키는 건 이 서양인 저자가 쓰는 "방어적 애티튜드는 금물"의 조언과 같은 의미입니다. 나중 일(이 있어도 곤란하겠으나)은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일단 둘 사이에는 흉금을 말끔히 터 놓아야 합니다.

 

이 책이 다루는 부부 관계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습니다. 저자는 소설가 로라 먼슨의 자전 소설 한 대목을 인용하며(이 소설은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있으니 찾아 보셔도 되겠네요), 격렬한 다툼으로 최악의 지경까지 간 자신이, 결국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고 이혼을 안 해 준 건, 다름 아닌 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였다는, 다소 충격적인 고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자식 때문에 못 헤어지는..." 사유가 가장 보편적일 텐데, 먼슨 여사의 의도는 이런 것입니다. "이혼 한 후 두고두고 이혼 당시를 생각하며 상처에 고생할 텐데, 그 장래의 희생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당장 편하려면 그때 바로 이혼 해 주는 게 나았다(이런 표현은 없으나 책을 읽고 제가 추측한 겁니다). 내가 선택한 길은, 남편과 그저 거리를 두면서 불화를 피하는 것이었다. 이런 선택 역시, 누구보다 내 감정이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케이스가 딱 내 얘기다 싶은 분들도 있고, 전혀 아니다 뭔 소리냐 라는 반응이 나오는 분들(여성들)도 있을 겁니다. 남편이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냥 참고 살지"하곤 전혀 동기나 감정의 색채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죠. 이런 경우, 한국의 와이프들처럼 참고 사는 건 오히려 저 먼슨 여사의 남편분일 겁니다. 이분은 아주 전략적으로, 이기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거죠.

 

그럼, 일단 모든 것을 터놓고 살라는 주문과는 서로 어긋나는 것 아닌가? 저자는 부부, 혹은 연인 관계가 지나 오는 stage(혹은 phase)에 따라, 배우자 쌍방 혹은 옆에서 조율해 주는 카운슬러의 역할이 다르다고 봅니다. 일단 개체로서 지켜야 할 아주 내밀한 자아는, 부부 관계 이전에 인간 존재 본연의 이슈죠. 저자는 오히려, 이런 부분들을 잘 관리하는 스킬을 알려 줌으로써, 반대로 성숙한 부부, 모든 걸 다 터 놓을 수 있는 관계의 초석을 다진다는 방법론을 취합니다. "비움으로써 채운다"는 말과도 통하는 바 있습니다. 결국 사랑이란, 둘 사이의 다양한 소통을 시도함으로써 "처음부터 비어 있던 부분을 채우는" 동시에, 나의 내면을 지금까지보다 더 정밀히 헤아림으로써 상대 배우자의 감정과 기대까지를 배려하는 과정이라는 거죠. 이래서, 사랑을 해 봐야, 혹은 결혼을 해 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하기 어려울 것 같아도, 본래 사는 게, 인생이라는게 그리 쉽지 않은 걸 어쩌겠습니까. 성숙한 사랑은 성숙한 인격을 전제로 한다는 점 다시 깨닫게 해 주는, 진지하고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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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 SMART II - 프린스턴 리뷰 | My Reviews & etc 2018-12-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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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Word Smart 2 : How to Build a More Powerful Vocabulary

by Adam Robinson,the staff of The Princeton Review
the princeton review | 199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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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극성들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고등학생들이 자신들의 더 나은 미래 설계를 위해 입시 준비에 매진하는 풍경은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라면 고급 어휘의 적확한 사용법을 몸에 익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솔직히, 우아하고 품위 있는 문장을 쓰고 표현하는 자질, 능력은 어떤 수험서 한 권을 읽고 속성으로 길러지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거의 취학 전 연령부터 다양한 고전을 읽고 위대한 문장가들의 생각하는 버릇을 창의적으로 습득해야 하며, 이런 버릇이 몸에 배지 않은 채 어설픈 정치 타령이나 입에 담는 인생은 책을 읽어도 대체 뭔 소리를 하는 중인지 전혀 감도 못 잡은 채 헛되이 나이만 먹은 채 (어느 정치인의 명언처럼) 거름처럼 썩어가는 뇌를 부여잡고 가당치도 않은 망령된 헛소리만 입에 담기 마련입니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 같은 입장도 일찍부터 있었으며, 우리 나라의 어느 저명한 영어 교육자는 "단어가 다르면 반드시 용도도 다르며, 다른 단어가 생긴 데에는 별개의 표현을 빚어내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우선 단어 하나하나가 갖는 대표적 의미를 알기 쉽게 전달하고, 서로 비슷한 단어를 통해 뜻을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런 학습서, 혹은 널리 영영사전류의 가장 큰 병폐로서, 풀이 돌려막기 같은 무성의, 무의미한 제시 포맷 같은 게, non native에게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로 작용하곤 합니다. 제가 나온 학교의 어느 교수님은 한국어 사전의 문제점으로 "A 엔트리를 찾으면 B란 설명이 나오고, B란 항목의 해의에서는 다시 A를 쓴다." 같은 지적을 하시던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한국어 사전을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평 있는) 메리엄 웹스터 영영 사전 같은 게 그런 태도를 취하기는 하더군요.

이 책 중에도 나오지만 소위 purist, 즉 까다롭게 일일이 단어의 뜻을 분별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단어 하나마다에 선명히 분별되는 역할을 분배합니다. 이 책에서는 career와 careen을 그런 식으로 가리기도 한다고 purist들의 입장을 전달하지만, 책 본연의 스탠스는 아님도 분명히 표명합니다. 저자 자신들은 그런 입장이 아니라는 뜻이겠습니다.

본문 중, amid 같은 단어의 뜻풀이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The English say "amidst" instead of amid, but you shouldn't.
Unless, that is, you are in England. You can, however, say '''in the
midst."

여기서 두번째 문장 같은 건 얼핏 보아 broken sentence 같기도 합니다. 조건절이 주절 없이 단독으로 와서 문장을 구성했을 뿐 아니라, that is 같은 건 앞의 말 중 무엇을 부연하는 것인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엄격한 문법가들의 눈으로는 지나치게 캐주얼한 문장을 예문으로 든다는 점에서 약간 당혹스럽다거나 비교육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요긴한 기능어들을 단 한 권 속성으로 단기간에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는 탁월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 이상의 의의를 둬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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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혁신경영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2-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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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글로벌 혁신경영

박주홍 저
유원북스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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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다른 책 서평을 쓰면서 "익제티브 써머리"라는 개념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다뤄야 할 이슈가 많은 고위직에게는 가능한 한 최상의 요약을 제공해서 업무의 편의를 도모해 드려야 한다는 취지였는데요.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일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회사 상무를 단다 해도 아마 접하기 힘들 최상의 요약을 브리핑 받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저자 중 한 분은 현직 갤럽 상담역이시고, 다른 분은 세계적 석학이신데도 말입니다. 물론 회사에 상신되곤 하는 보고서와는 다르고, 한 권의 책입니다. 책치고는 분량도 두껍지 않은 230페이지짜리 하드커버지요. 하지만 다루는 주제는 "미래 경영학의 비전" 전체입니다. 아니, 더 과감하게, 이 책의 주제는 "미래 그 자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만인이 생산자 지위를 겸한다는 예측도 있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라면 경영 원론에 무관심한 채 살아남을 수 있을 이가 몇이나 될까 하는 전제 하에서 이 말은 그리 부당하지도 않습니다.

"혁신"은 새로운 주제가 아닙니다. 한 세기 전 슘페터는 좌파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을 때, 불변 자본의 한계 이윤이 고갈될 때 체제는 무슨 수로 생존하겠느냐는 질문에, "기업가의 혁신"이라고 거침 없이 대답했습니다. 창과 방패의 대립 같은 구조지만, 기계는 사람과 달리 잉여가치를 쥐어짜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 특히 기업가의 도전 정신은 그 한계를 돌파하는 "혁신"을 해 냅니다. 이 덕분에 자본주의는 한 세기 전 대공황이라는 시련을 극복해 내고 오늘까지 번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장이 0를 넘어 마이너스로 치달을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있지만, 긍정의 전망을 잃지 않고 차원을 달리하는 도약을 일삼는 인류는 언제나처럼 이 장벽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이처럼 "혁신"은 언제나 있어왔던 현상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점진적인 혁신도 있고, "게임 체인징"을 이루는 파격적인 혁신도 있었습니다. 점진적인 혁신이라고 해서 그 중요성이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난 20세기, 우리 인류는 완만한 추세로 삶의 질 향상을 이루는 가운데, 무리하지 않고 기존의 방법을 잘 개량하여 더 큰 효율을 누리는 방식을 선호해 왔습니다. 20세기 후반 특히 일본의 기업들이 세계를 덮치고 판을 집어삼킬 듯 성장한 것도 이런 점진적 혁신에 기반했었지요.

점진적 혁신 중에는 중요한 것들이 꽤 많았습니다. "총체적 품질관리", JIT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경영기법은 고안 당시 대단한(요즘 눈으로 보면 그저 "개량" 정도일 뿐 혁신이란 이름을 붙이기에도 머쓱한 데도요) 혁신이라며 외부로부터 칭찬이 줄을 이었던 업적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요즘 경영학 교과서(학부 과정)에도 그 기본 개념이 여전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이때의 영화를 잊지 못합니다. 너무도 소중한 추억이기에, 아직도 이 시절의 방법론에 매달려 있습니다. 예전에 잘나갔던 방법에서 뭔가 일탈했기에 현재의 불황이 도래한 것인양 말입니다. 이처럼 회고적으로 과거의 전범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우리 동아시아 문화의 공통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태평스럽고 도덕적이었던 요순 시절을 돌이키듯요.

이 책은 "과거의 방식도 걷어치우고, 과거의 방식을 살짝씩만 손봐 그대로 쓰려는 방식도 걷어치우라"고 주문합니다. 옛 방법에 집착해서 안된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옛 방법을 뜯어고쳐야지 하는 그 마음가짐의 정도까지 확 뜯어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혁신의 혁신"이요, "메타 혁신, 메타 이노베이션"입니다. 이는 마치, 물리계의 현상을 해석할 때 거리를 미분하면 속도, 속도를 미분하면 가속도 하는 것처럼, 표면의 기저에 깔린 근본 원리부터 뜯어 고쳐야 표면의 본성까지가 확 바뀌어짐을 역설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혁신을 두고 "혁명적 혁신'이라고 합니다. 이 배경에는 첫째, 모든 면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냉엄한 현실을 들 수 있습니다. 둘째, 이제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물질적 곤궁에서 벗어난 게 보편적이므로, 보다 정신적(비물질적)이고 각자의 개성대로 취향이 차별화한, 소비 시장의 근본적 구조 개편이 거론됩니다. 셋째로, 생산자가 거대한 설비를 바탕으로 우월적 조건을 구축한 후 유리한 경쟁 고지를 선점하던 지난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공룡스러운" 생존 패턴은 회사가 망하기에나 딱 좋다는 상황의 변화를 들고 있습니다.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직원을 고용한 인스타그램이 막대한 수익을 내고, 십만이 넘는 직원을 거느려야 회사의 운영이 가능했던 코닥은 운영 부진으로 파산해 버린 예를 듭니다. 오로지 창의성이라는 대응 전략을 메인으로 밀어야, 이 험난한 환경에서 경쟁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How to do things right의 시대에서, How to do right things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일을 잘하기만 하면 되는 시대"에서, "필요도 없고 소비자가 원하지도 않는 일 암만 저렴하게 양껏 잘해봐야 소용 없고, 소비자의 니즈를 잘 찾아서 만족시키야 하는 시대"로 변천했다는 뜻입니다. 영어 단어 둘의 순서가 바뀌었을 뿐인데 뜻이 그처럼이나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닫고 통찰의 근본적 깊이에 감탄했습니다(한국어로는 전자를 "효율성", 후자를 "효과성"으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혁명적 혁신, 역량파괴적 혁신(기존의 방식이 모두 쓸모없어져도 감행해야 하는 혁신)"이 중요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How to do right things, 즉 효과성의 원칙도 이미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How to do new things, 즉 전혀 새로운 것의 출현, 창의성을 현실화하는 혁신을 추구해야 살아남는다는 거죠. 이게 요즘 흔히 카피에서 말하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게 된다는", 소비자조차 기대도 생각도 못했던 혁신을 일컫는 겁니다. 요즘 애플이나 삼성이 신제품을 내면, 음 이런 점이 확실히 좋아졌구나, 이런 기능이 들어가야 대세인가 보지?라며 순응적 만족, 신상에 대한 최면적 반응을 소비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신상에는 무슨 "혁신"이 이뤄졌냐며, 딱히 자신에게 필요도 없을 어떤 기능성을 "당연한 서비스"처럼 바랍니다. 다들 경영 평론가처럼 용어를 써 가며 한 마디씩 합니다. 우습기도 하지만(이 역시 미디어의 주입과 선동이 작용한 바지 자신의 생각이 아닌데도 말이죠), 여튼 시장이 이만큼이나 소비자 주도형으로 바뀐 지금 적절한 대응(정도가 아니라 파괴적 혁신!)을 못 보이면 죽는 건 그저 기업입니다.

마지막 단계, 혁신은 융합(퓨전)이 아닌 컨버전스라야 한다고들 합니다(저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이미 학계와 경영 일선에서 일반화한 컨센서스지요). 전자와 후자가 무엇이 다른가? 전자는 그저 이미 노출한 소비자의 기호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며 얻는 소극적 시너지입니다(경제학 용어로는 "적응적 기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자는 그와 달라서, 소비자가 자신이 채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도 전에 미리 콕 집어서 출시한 후, "어웨이크닝 익스피어리언스"를 겪게 해 주는, 완전한 생산자 주도의 액션과 전략, 그리고 실천으로 시장에 임하는 겁니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주장과 개념은 기간(旣刊)의 여러 경영서, 대중서에서 눈에 익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처럼 적은 분량의 책에서 효율적인 편집으로, 군더더기를 일절 제거하고 필요한 요점만 머리에 쏙 들어오게 저술된 책을 처음 보았습니다. 미래 경영의 먼 지평, 아니 불균등하게 도래했을 뿐 이미 우리 곁에 성큼 와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알고 싶다면, 혁신적으로 깔끔하게 쓰여진 이 책을 꼭 일독하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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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서비스 전달체계 개편방향 | My Reviews & etc 2018-12-2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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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서비스 전달체계 개편방향 : 경력단절 예방기능 강화를 중심으로

오은진,박성정,장희영 공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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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라고 하면 아직도 그 말 뜻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맞벌이"라는 패턴 자체를 보기 힘들었고, 남자 혼자 버는 수입으로 가족 부양이 힘든 경우에나 볼 수 있는 "사정이 딱한 집" 정도로 인식되는 게 고작이었다고 할까요. 허나 지금은 남편과 아내 모두 생계의 전선에 나서고, 여성 역시 자영업 운영이나 남편 업무의 보조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니라, 기업의 정직원 신분으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흔히(혹은, 절박하게) 관측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취업"이 보편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런 여성이 일정 연령에 달하거나 기혼자 신분을 얻을 경우 당연히 퇴직하겠거니 같은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조성하는 고용주는 부당노동행위 사유로 처벌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경단녀"라는 말이 있다는 자체가, 정규직(그저 "생업" 정도가 아니라 regular job이란, 더 강한 의미입니다) 신분을 상당 기간 유지하는 게 여성들에게도 당연히 보유되는 권리이겠다는 의식이 확산된 결과입니다.

어떤 정책적(혹은 도덕적) 주장을 할 때, 듣기에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말을 꺼내는 자체야 누구에게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 발언자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냐 아니냐는 데에 있죠. 예를 들어 "경단"도 아니고 "녀"도 아닌 일개 독자인 저 역시도, 이 책에 나오는 말을 적절히 인용, 편집하여 누군가에게 근엄한 투로 "이래야 하느니라"면서 일장 설교를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주장이 담은 내용의 맥락단절적 개별 타당성보다 훨씬 긴절한 사항은, 말하는 사람과 발화되는 내용 서로가 상호 지지, 조화를 이룬 일체적 설득력, 입체적 정당성입니다. 이 책의 저자 이정미 선생님은 여러 근거와 이유에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여성", "경력 단절로 물리적, 심리적 장애를 겪으며 자책, 번민, 불안에 시달리는 여성" 독자에게, 정말 필요한 조언을 베풀어 주고 있으며, 또한 강력한 설득력으로 독자를 inspire 해 주는 능력자 작가입니다.



저자는 본인 자신이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인데다, 현재 주로 여성 청중들을 상대로 동기 부여라는 과업을 멋지게 수행하고 있는 이름난 강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1)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한 후 바로 취업에 성공, 2) 결혼 후 일정 시련을 거친 뒤 소위 "경단" 시기를 거쳐 이처럼 재기했다는 점에서, 일반 여성들에게 괜한 위화감만 부르는 특출 케이스가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공감형 롤 모델로 위상을 잡은, 진정 여러 이유에서 "이런 책 쓰시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적 자격을 갖춘" 저자입니다.

저자는 여러 시대상의 변화를 언급하며, 1) 기대수명이 증가한 현실에서 정년은 조금도 늘지 않은 상황에선, 과거처럼 퇴직 수당만으로 노후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점 2) 전반적으로 고용 불안도가 증가하고 육아비용이 상승하는 추세에서 어차피 남편 수입만으로 가계 운영이 어렵다는 점 3) 결혼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는 청년 남성층이 점차 싱글로 평생을 보내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여성들에게 현실을 피곤하게 여기지 말고 내가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함이 환경적 필연이자 자아실현임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라고 일단 조언합니다.

문제는 이미 그런 확신, 현실적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처지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결정하며 이를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 하는 점이죠. 저자는 자신을 거듭 소개하기를, "현재 나이 서른 아홉이며 지독한 생활고를 겪어 봤고, 싱글맘으로 홀로 선 이래 지난 10년 동안 안 해 본 일이 없는 여자"라고 털어 놓으십니다. 인테리어업을 영위한 부친의 영향으로 학교 졸업 후 동종업계에 뛰어들어 만족스러운 성취를 쌓고 있던 저자는, 결혼에 대한 환상(저자 자신의 표현입니다) 때문에 소중한 커리어를 중단하고, 전업 주부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성실한 육아, 가사관리 중 틈틈히 문센 수강으로 자아실현의 꿈도 가꾸려던 그녀의 소박한 희망은 철저히 좌절됩니다. 손에 물 한 번 안 묻히고 자란 귀한 댁 따님이 어느새 아빠의 도움을 못 받는 어린 아이와 함께 "막막한 생계"를 오늘 내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 거죠.

저자가 우리 시대의 경단녀들에게 우선 강조하는 바는, "스펙, 학벌, 나이"에 스스로 위축되지 말라는 겁니다. 전 몰랐는데 저자께선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지 않다시는 군요. 하긴 이 나이 또래 분들이면 현역 고3의 1/4도 안 되는 수효만이 대학 진학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그러니 스카이 들어가기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지나고 생각하니 정말 꿈만 같군요 ㅋ). 대개 자수성가형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그 양친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지만, 사람의 실제 능력이 중요하지 서류상의 번듯한 자격 증명 사항이 뭔 대수냐는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영락없는 경단녀 처지로 이곳저곳에 지원을 시도할 때, "대학 졸업란"을 기재하는 단계에서 많은 좌절감을 느끼셨나 봅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한 건, 책에 기술된 저자의 그 태도였습니다. "아, 여기서 나는 안 되는 거구나." 보통 경단녀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고졸 학력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평판이 높지 않은 4년제 출신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저자의 (책에 나온) 반응은, "아니 내가 일하겠다는데 이런 게 왜 필요하냐고?"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저자 역시 "무대뽀로" 고졸 스펙을 밀어붙인 건 아닙니다. 이후 "대졸" 결격 사항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학위 취득으로 공란을 채웠습니다. 사실 저 상태로 너무 일관하면 고용주가 딱히 학력 차별을 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은 구직 과정에서 최소 성의를 안 갖추는 무례한 인성이거나, 사회의 실정을 너무 모르는군." 같은 생각으로 커트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건 지혜와 열정이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심지어, "당신이 성실한 태도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 왔다면, 가사와 육아 과정에서조차 남달리 배우고 터득한 바가 있을 것이다." 면서, "그 지혜를 일에다 얼마든지 결합시켜서" 나만의 업무 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절절한 사연으로 인생을 물들인 저자만이 할 수 있는 힘있는 조언입니다. 심지어 나이조차 경단녀에게 결정적 장애가 아니라고 합니다. "먹은 나이가 있으면 원숙함이 같이 있을 것 아니냐?"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책으로만 읽고 마는 것보다, 저자의 강연장에 직접 찾아가서 기(氣)를 받고 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마냥 의욕과 정열만을 무기로 도전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저도  인터넷 서핑 중 "민간자격증"이란 말을 자주 접하는데, 저자 역시 경단녀들이 아무 자격 증명 사항 없이 맨땅에 헤딩할 수는 없다는 전제로 이 화제를 꺼내고 있습니다. 미래의 고수익이란 표현은 다소 막연하게 들리고, 솔직히 제가 보는 바에서는 "이거다!" 싶은 유망자격증이 눈에 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처한 환경과 적성이 다 다르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한 분이라면 리스트를 보는 즉시 뭔가 확연한 친화력으로 다가오는 분야가 있을 겁니다. 저자는 경단녀 탈출의 지름길이 "부지런한 정보 탐색"에 있음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나하고 있어 줄 수가 없어요?" 딸 시연이에게 이런 말을 듣자 저자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엄마는 시연이라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능력이 있잖니? 능력 없으면 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라고." 며칠 후 딸은 손수 그린 그림에다 응원문구를 같이 써서 엄마에게 보여주는데, 뭐 전 잘 모르지만 맘들은 이런 일에 엄청 감동하시지 싶습니다(엄마라는 말 외에 실명도 같이 사용하는데, 철이 없어서라기보다 미국식 사고방식, 즉 관계, 신분 외에도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부모를 대하는 소이가 아닌지 생각했어요). 근데 전 이 저자분의 말에서 다른 점에 주목했습니다. "능력 없으면 일도 못한다."

여기서 능력이란 뭘 말할까요? 스펙은 능력이 아닙니다. 보통 보면, 경단녀, 아니면 취준생분들은, 능력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스펙, 나이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백이면 백 답니다. 이 책의 저자 이정미 선생님은, 고졸자에다 (출발 당시) 서른을 넘긴 나이에다 애까지 딸린 처지였습니다. 이 정도면 재도약을 위해선 여자로서 아무 가망이 없는 현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죠.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당신이 능력계발에 그토록 절실한 인생이라면, 사회는 결코 당신의 몸짓을 외면하지 않는다"입니다. 능력 있는 여성을, 사회가 한가하게도 학벌을 핑계 삼아 거절하겠습니까? 문제는 당신이, 서 푼 짜리 자아가 상처 입을까봐 몸을 던져 능력을 키울 생각, 일에 뛰어들 생각은 않고, 손쉽게 겉치장 스펙만 채우려는 안이한 마음만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알아주는 스펙은 명문대 졸업장 뿐인데 그건 당신에겐 이미 10대때 지나가버린 사항 아닙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능력 계발에 헌신해서 스펙의 공백을 채우는 거고, 사회 생활이 장난이 아닌 이상 몸을 던지고 영혼을 바쳐서 해결할 과제죠. "당신에게 부족한 건 차라리 스펙이 아니라 능력이었다."

책의 본지와는 무관하지만, 한국이란 시스템 자체가 빨리 정상으로 회복궤도에 들어서야 합니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만 할 수 있게 해 줘야지, 남자도 버티기 힘든 생업 전선으로 언제까지 여자를 내몰겠습니까? 와이프가 무슨 번듯한 기업에서 밑에 남직원 부려가며 과장님 대접 받는 거라면 또 모를까, 외간남자인 사장 밑에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지시 받는 모습을 그거 남편된 입장에서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한국 같은 나라는, 여자가 그저 수입만 바라보고 직장 생활 꾸역꾸역 이어가는 거지, 자아실현 이런 건 턱도 없는 소립니다. 이게 남자 입장에서 응당 가져야 할 자세고, 여자가 경단녀니 뭐니 가외의 걱정을 하지 않게 더 정신차려서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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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화텅과 텐센트 제국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2-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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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화텅과 텐센트 제국

린쥔,장위저우 공저/김신디 역
린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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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기회다. 시간은 결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는 마화텅이 학생 시절,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마화텅은 물론 우리도 잘 알듯 "텐센트"의 창업자이며 현재도 중국 안 최고의 기업으로 이를 이끄는 CEO죠. 아이들에게, "기회"로 잡으라며 그 교사가 주시했던 것은 당시 막 경제적 도약을 일구던 중국에서, 누구나 기업을 일구고 부자가 될 수 있는 문이 열리던 순간이었습니다. "강물에 지천으로 널린 게 미꾸라지지만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과는 달리 당시의 중국은 관료나 당원으로 출세하는 길을 젊은이의 유일한 비전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책에도 잘 나와 있듯, 능력 있고 뱃심 좋은 청년들은, 벤처나 스타트업을 통해 자신의 포텐셜을 십분 발휘하여, 향후 몇 십 년을 향유할 수 있는 부의 장악 그 기회가 눈 앞에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습니다.

저자 우샤오보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이 당시 마화텅 같은 일류 인재, 사업가들에 의해 웅비할 조건이 잘 갖추어진 편이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마화텅 같은 이들이 청소년기였을 때 교육열도 극성스럽게 불었고, 위의 예화에서도 나오듯 교육자들이 적절한 비전과 미래관을 아이들에게 잘 불어넣기도 했고, 무엇보다 잘 교육 받고 넉넉한 중산층(이런 계층이 이미 전 세대에 형성되어 있어야 하죠)에서 교육이나 지식, 자본 면에서 유리한 출발점을 가진 세대가 출현하여, 맨땅에 헤딩 식의 무모한 도전이 아닌, 체계적이고 세련된 창업에 도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이런 지식기반 산업이라면 더욱요.

마화텅은 불리한 여건을 딛고 일어난 입지전적 성공 유형이라기보다, 신생 개발도상국에 가까웠던 당시 중국이 차세대 촉망 받는 주자들로 눈여겨 본 후보군 중 가장 눈부신 성공을 거둔 "총아"라고 봐야겠습니다. 한국 역시, 예컨대 정주영씨 같은 맨손에서 일어선 거인보다, 영리하고 기민한 사업 전술로 한순간에 일어서려는 창업형 젊은 기업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이런 유형이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죠. 물론 무주공산이었던 거대한 시장은 현재 선발 주자들이 장악한 확고한 이점 때문에 진입이 어렵지만, 대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장이 다시 개척되는 요즘이기도 하기에, 전략과 기술, 첨단 지식으로 무장하여 거대 기업을 일군 그의 인생과 성취는 여러 모로 벤치마킹의 대상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텅쉰(騰迅)" 같은 상표명 등록도 그의 부친이 직접 나서 마친 것이라고 하죠. 원래는 네 개의 후보를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헌데 앞의 세 개는 이미 선점자가 있거나 자격요건 미달이고(동일 영역에서 범용성 칭호는 특정인에게 독점 불가하죠), 마화텅 본인은 자기 이름 글자가 너무 빤히 드러나 싫었다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네요. 일본이나 서양에선 대개 상호를 기업가 본인의 이름에서 따옵니다. 반면 우리나 중국은 다른 추상적 가치를 담거나, 어감이 좋은 단어를 따는 일이 더 일반적이죠.

이 책뿐 아니라 다른 마화텅, 텐센트 관련 서적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이 창업자는 무슨 록펠러라 밴더빌트, 한국의 1세대 재벌 총수들처럼 거칠고 무자비하며 과단성 있는 전략으로 자신의 제국을 일군 타입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그저 평범한 학생 같은 타입이었는데,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자신의 유일한 자산이라 할 전공 지식을 적실하게 활용할 줄 알았던 게 성공 비결이니,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그의 궤적을 유심히 살필 필요가 더 커집니다. 저런 일화에서도 어떤 비범한 기상이나 비장한(때로는 슬프기까지 한 - 출발점이 다른 인생이, 이런 걸 배워 따라하기란 좀 어렵죠) 성취 동기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마냥 그들의 성장 과정이 탄탄대로였던 건 아닙니다. 1990년대말~ 2000년대 초에는 이른바 닷컴 버블이 전세계를 휩쓸 때였습니다. 버블이 그 당시에 이미 버블인 줄 알면 우려할 필요가 없는데, 당시에는 회사 하나만 만들면 마냥 잘나갈 줄 알고,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 안 된 채 위험한 투자가 횡행하던 시절이기도 하죠. 난감한 건 당시 기준으로, 대체 어떤 회사가 우량기업인지 알 방도가 없었던 겁니다. 저자 우샤오보 역시, 재무제표만 보고서는 텐센트의 가치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고, 심지어 지금도 그렇다고 합니다. 지금의 텐센트에서 여전히 구조적 부실 요소가 발견된다는 게 아니라, 종래의 보수적 자산 측정 기준으로는 이 기업의 창창한 미래가치를 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20년 전이었으면 사상누각 같은(같지도 못했을 듯) 깡통 기업 이상이 아인 듯 보였겠죠. 지식기반 기업은 고유의 특성을 감안해야 합니다만, 회계기준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그 나름의 소명이 따로 있으니 어렵긴 합니다.

투자 확보도 어렵고, 경쟁은 경쟁대로 살인적 치열함을 보였습니다. 한국도 그 무렵에 PC방(당시에는 게임방이라고 했죠) 열풍이 불었는데, 메신저라는 상품의 특성상 유저들에게 점유율을 높이는 게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용자들이 찾는 가게에는, 업체마다 자사 메신저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크게 붙여 두고, 경쟁자 측에서는 그걸 찢고 자신의 것을 다시 게시하는 등 추잡한 행태가 속출했죠. 중국은 당시만 해도 경제 특구라 알려진 여러 도시에서조차, 비루하고 초라한 주거지가 밀집해 있었을 뿐입니다. 이런 밑바닥 같은 곳에서 게임 따위에 몰두하는 어린, 젊은 고객에게 자사 브랜드를 인식시키려는 업체들의 경쟁은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오늘의 텐센트는 이런 지저분한 과정도 밟아 가며 탄생했으며, 지식기반 산업이라 하여 결코 우아한 길만 밟은 것이 아닙니다. 텐센트가 결국 이 바닥시장을 평정한 방법에 대해서도 책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탄스럽다기보단, 약간 씁쓸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텐센트가 개발한 메신저의 이름을 따 "QQ인"으로 명명된 신세대는, 그 전과는 다른 유대감과 공통점을 지닙니다. 중국인들은 만날 때마다 "같은 중국인"이라는 정체감으로 바로 뭉치지는 않습니다. "어느 지역(혹은 省) 출신인지?"를 반드시 묻고, 동향이라야 비로소 일체감을 드러내죠. 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란 국가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요인이었습니다. QQ에서는 지역을 안 따집니다. 고유의 표현 양식으로 금세 하나가 되고(물론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서건 벌어지듯 다툼도 한번 벌어졌다 하면 장난 아니죠), 깊이는 없으나 톡톡 튀는 감성으로 각자의 영혼 빛깔을 표현합니다. 방송 등이 표준 관화를 각 지역에 보급하여 상당수가 북경어를 구사하게 돕듯, 이 메신저는 어느새 전 중국인을 QQ인이라는 울타리에 다시 묶어 놓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마 회장이야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의미심장한 발걸음입니다.

사명은 "루슨트 테크놀로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스스로 털어놓습니다. 여기는 모뎀 만드는 회사로 당시 유저들 사이에 인지도가 꽤 높았죠(또 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라든가). 초고속망이 아직은 도입 안 되었던 때라 당시만 해도 친숙한 상표였습니다. 텐센트는 좌우 대칭이 구조의 특징인데, 한국도 아이들 이름을 한자로 지을 때 좌우대칭이 되는 형태의 글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아시아인 공통의 습성이랄까 기호인데, 단 마화텅 본인은 "당시의 유행"으로 정리하는군요.

중요한 건 2003년(마화텅이라기보다는 저자 우샤오보의 견해입니다)을 놓고, 글로벌 추세(저자는 아직도 "세계"와 중국을 구별하는데, 그 공산당 지도자들이 이미 G2를 운위하며 과장된 자신감을 피력하는 것과는 구별되는 신중함, 혹은 "겸손"이겠습니다)와 중국의 경향성이 가지를 치며 갈라선 시점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이때만 해도 세계(라곤 하나 사실상 미국이죠. 제리 양의 야후도 당연 미국 기업이고)의 앞선 추세를 모방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중국의 시장과 대중 취향에 맞는 모델, 상품을 개발하여 널리 어필했고, 아울러 내부 경영 시스템도 독자적인 기법에 눈을 떠, 오히려 트렌드를 선도하는 면모까지 갖추기 시작했다는 소립니다. 이게 IT 기업에 한정된 진단은 꼭 아닐 것입니다.

저자는 존 갤브레이스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과 서유럽을 보는 눈으로 중국이나 일본을 바라본다면, 절반은 오류이고 절반은 오해이다."라며, 오로지 중국 시장에서만 통할 수 있었고, 중국 기업가만이 꿰뚫을 수 있었던 독특한 전략, 그리고 그를 통한 폭발적인 성장 과정을 지적합니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잘 소개된, MS나 페이스북 등과의 혈전 스토리를 다루며 결론적으로 요악한 문장인데, 이게 이제 세계 시장을 선도할 표준으로 자리할지, 그렇지 않고 "중국에만 갇힌 폐쇄 트렌드"가 될지는 지켜 봐야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구 피처폰 시장에서 삼성, 현대, 한화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기업이 이후 세계 시장에서도 선전했습니다. 중국에서 확실히 이긴 텐센트(혹은 그 후의 어떤 기업이라도), 나머지 60억이 사는 다른 시장들에서도 이 자산을 바탕으로 승자로 도약할까요?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해도, 워낙 중국이라는 단일 시장(과거에는 이런 개념을 인정 안 했으나, 저 QQ의 성공 사례를 보면 적어도 "초유의 케이스"를 새로 정립해야겠네요)에서 큰 기업이다 보니 미래 전도에 별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14억만 다 먹어도(현재 그러고 있고요) 그게 어디겠습니까.

저자 우샤오보는 이런 경영서를 쓰면서도 꼭 철학, 인문 담론을 끼워 넣는 습관이 우리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죠. 1장에서는 자끄 데리다의 해체주의 담론이 살짝 등장하더니, 12장에서는 바흐진의 "불가종결성"을 거론합니다. 현재는 텐센트가 메신저, 통신판매, 심지어 포털의 장벽까지 넘보는 강자로 자리매김했으나, 이 추세가 언제까지 갈 것이며, 치열한 인터넷 대전(이 세계는 현실과 분리된, 독자적인 생존 법칙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감상적인 저자의 평가가 인상적이었습니다)이 누구를 최종 승자로 결정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제국의 쟁패는 덕망과 과단성과 지혜를 갖춘 패권자가, 중원 통일을 위한 마지막 한 수를 둔 후 자신의 혈육에게 통치 시스템을 물려주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업계에서는(제 생각엔, 오프라인이라 한들 이제는 다를 바 없는듯요), "싸움의 끝, 영업의 종결"이란 단계는 이 새로운 양상의 "영원한 전투"에서 애초에 부재하다는 뜻입니다. 멈추고 안주하는 그 순간이 바로 시장에서 도태되는 지점이라는 걸, 우샤오보의 개성적이고 날카로운 필치, 그리고 평범하게만 보이는 마화텅 회장의 날카로운 안광은 이미 꿰뚫고, 이를 독자들에게 차분히 깨우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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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 My Reviews & etc 2018-12-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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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조너선 콧 공저/김선형 역
마음산책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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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 기사 하나를 보니, "경제, 경영"보다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어느 사회가 문화적 성숙기에 접어들면, 이처럼 인문의 영역이 제 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지금 대중에게 각광 받는 "인문"이 그 본연의 인문이며, 주목의 참된 값어치를 하고 있는 분야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런 평가와 반성의 역할이 전적으로 "인문학자"들의 손에만 맡겨져 있는 것도 불안했고, 몇 년 전 이윤기씨와 그리스 신화 해석의 권위를 두고 일었던 작은 분쟁도 생각나서 씁쓸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인문의 도구는 어디까지나 책이 그 첫째 중요성을 띠겠고, 따라서 "책에 대한 책", 메타북이 최근 연달아 나오는 건 당연하기도 하고 환영받을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강창래 선생의,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6년여의 기뢱 시간을 가진 작품이고, 기획의 의도와 편집도 참신하며, 무엇보다, 한국의 기성 세대가 길게는 저 식민지 시절부터 구축해 놓은 패러다임을 전복하려는 관점을 깊숙히 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바로 지금" 불고 있는 인문학 바람의 정체와 향방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이런 메타북을 쓰시려면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인문 현상의 지난 역사와 현황에 대해 박식해야 하고, 다음으로 책 에 대한 넓은 식견이 있어야겠으며, 마지막으로 동시대에 나온 우리, 그리고 다른 나라의 메타북에 대해 분석이 잘 되어 있는 저자라야겠죠. 강창래 선생의 명망과 실력은 사실 누구나 인정하며, 이 책에서도 그의 빼어난 자질은 증명되고 있습니다. 책은 뭐니뭐니 해도 읽어가면서 배울 게 있어야 하고, 이 책에서 우리 독자들이 깨치고 습득해야 할 지식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 책을 접한 분이라면 누구나 동의하시겠지만, 얼마나 모양이 예쁘게 만들어졌습니까?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이 책은 모습만 멋지고, 그 담은 내용은 시시한 아포리즘 아닐까 하고 괜한 의심까지 하지 않을지 공연한 걱정이 될 만큼입니다.

다만 저는, 다분히 의도적이셨을 편집 중 일부, 즉 책의 맨 앞에 포르노그래피의 의의와 역사를 배치하신 데 대해서는, 읽는 내내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네요. 우선 저자는 푸코식의 관점, 체제의 기능적 수월성을 갖추느라 대중과 지식인을 일단 억압하고 들려 한다는 권력을 상정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분석틀이 과연 현대 한국에 들어맞을 지는 큰 의문입니다. 음 란물의 단속, 혹은 성 표현에 있어 일정 제재와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는 압력은, 대중과 대치되는 권력 쪽에서 나온다기보다, 사회로부터 요구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권력(그렇게 규정할 정도로 충분히 강한 실체가 있다면)은, 노출과 욕망을 자극하여 돈벌이를 하려는 자본의 압력에 순응하여, 풍속 단속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고, 보다 못한 대중이 "이를 규제하라!"는 볼멘 소리를 내는 형편에 가깝지 않을까요?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는 도식화한 프레임을, 챕터 내에서 무리하게 끌고 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영화 "래리 플린트" 에 나오는, 살인과 포르노그래피 간의 유비는 한마디로 난센스입니다. 래 리 플린트는 파렴치한 장사치일 뿐인데, 언제부터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투사로 둔갑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왜 이런 경우에만, 그 신랄한 자본의 대중 조작 기제 타령이 쑥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나, 공공의 장소에서 표현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고, 성을 은밀한 장소와 시간에서 정해진 파트너와만 향유하는 습성은 인류의 본성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는 권력의 강제가 아닌 우리의 도덕적 본성의 요구입니다. 예컨대 과연 지상파에서 낯뜨거운 성인 영화가 24시간 흘러나옴이 민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걸까요?

잘 읽히지 않는 고전의 문제를 다룬 다음 장도, 뭔가 논의의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은 인문사의 의의를 지니기 이전에, 기술 서적으로서의 가치가 더 우선이었습니다. 천문학 서적이 <데카메론>, <우신예찬>과 달리 잘 잃히지 않으리라는 건 당연한 예상이고, 필요한 이들에 의해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히는 현상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프린키피아>를 두고 "그 누구도 제대로 읽지 않았을 저작"이라 평하는 것은 들었습니다만, 한때는 당대의 지식 수준을 너무 앞서가서, 그리고 지금은 상당 부분이 시대에 뒤떨어져서 완독이 힘든 건 사리상 당연합니다. <일리아스> 같은 고전이 잘 읽히거나 정독되지 않는다는 의미와는 달라도 크게 다릅니다.

그러나, "권장도서 목록"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금서 목록을 지정하고 있다는 지적은 깊이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권장도서란 사실, 지성의 본질에 반하는 난센스적 개념입니다. 더군다나 가장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발전해야 할 청소년, 청년의 지성에 강요되는 목록이란, 공동체의 발전(이런 목표에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졌다면)에 장애가 되기까지 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일체의 지향점이 없이 무규범으로 방치되거나, 의도적으로 질서의 문란을 조장하기까지 한다면, 책과 교양을 통해 인식과 지성의 고양을 이루려는 인간 보편의 목적에 반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중용의 도를 어느 정도 유지해 나가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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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최고의 질문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2-2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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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터 드러커의 최고의 질문

피터 드러커,프랜시스 헤셀바인,조안 스나이더 컬 공저/유정식 역
다산북스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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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의 시대가 도래한다며 많은 이들이 신(新) 양극 체제의 전망을 내놓았고, 지금도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초강대국의 패권 다툼을 우려(혹은 기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만약 G2의 패러다임이 타당하다면,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뭔가 개연성이 결여된 사태입니다. 우크라이나가 G2 중 미국의 세력권 안에 들어 있다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을 받을 수 없고, 만약 중국의 세력권이라면, 중국은 즉각 개입해서 자신의 패권을 확인해야 하죠.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러시아라는 지역의 강호가, 우크라이나는 물론 다른 강대국의 반응을 살펴가며 교묘히 자신의 영토 확장, 경제적 지배력 확대의 계기로 삼아 가고 있는 형편이에요. 그렇다면 이제 G3의 구도로 국제정치를 바라봐야 할까요? 국지적으로 미, 중(그리고 러)의 입김을 거의 받지 않는 다른 강국(인도나 브라질, 남아공 등)이, 로컬 영역에서 자신만의 막강한 발언권을 행사한다면, 그 때마다 G의 숫자를 한 카운트 늘려야 할까요?

지도자, 맹주국의 지위가 딱히 존재하지 않고, 여전히 지역 차원에서 강국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세라면, 그런 현실은 리더의 지휘를 받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언 브레머는 이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명쾌하게 짚어 준 대단한 혜안을 보였습니다. 문제의 인식이 바로잡혀야, 문제의 해결, 현상의 타파(혹은 발전)가 가능할 텐데요. 종래 G2의 지배라는 인식틀로는 현재 우리의 눈 앞에 벌어지는 문제의 해결은커녕, 올바른 설명조차 힘든 경우가 많았죠. 이언 브레머는, "지금은 맹주국, 초강대국이 하나, 둘, 혹은 다섯 정도가 존재하여 전체 패권을 노리는 형세가 아니라, 그저 힘 좀 쓰는 강대국이  각자의 영역에서 할거하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모습이다."라고 규정합니다. 저는 최근에 니코 멜레가 쓴 <거대 권력의 종말>을 읽었습니다만, "거대 권력"의 상정 자체가 구시대적 패러다임의 일부입니다. 현재는 어떤 이유에서건, 모든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룰의 형성과 결정에 자신이 일정 부분 참여하기를 강력히 요구하는 모습입니다. GXX의 시대라면, "G"가 이 모두를 책임지고 결정하면 됩니다. "G"가 상징하는 강력한 패권 주체가 없기에, 다자적 파워 게임이 일상화되고, 외견상 혼란스러운 정세가 빚어지고 있죠.

왜 이처럼, "리더가 사라진 세상"이 도래하였는가? 근본적으로는 자본 효율의 한계 때문입니다. 이언 브레머는 대단히 넓은, 장기 역사의 시야를 두고 통시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유럽에서 군주 개인의 사유물이 아닌 국민 국가가 대두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국력을 키우려다 보니, 귀족과 기사 계급의 무력만으로는 유지가 힘들었고, 나폴레옹은 유럽 최초로 국민 개병제를 실시, 특권적 무장 집단이 아닌 보편 징병제 군대로 국가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려 했습니다. 비슷한 모습으로, 각국의 자본은 국내 시장 성장에 있어 한계를 느끼다 보니, 해외로 영역을 넓히려 했고, 처음에는 식민지화의 선택을 추구하다, 2차 대전의 결과로 모두에게 모든 시장을 개방한다는, 종속적 블럭의 전면 폐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무력 침공으로 자국 영역을 확대하는 선택을 포기하다 보니, 타국의 경제 주체를 잘 구슬려 자신과 유리한 조건으로 동맹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닥 강한 나라가 아니라도, 상황에 따라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바로 이런 "다자 참여"의 형세가 마련되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입니다. 이언 브레머는  H G 웰즈의 한 문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그의 예지력은 놀랍다 못해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 인류가 어느 장소에서건 어떤 시각에건 '인류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지식 집결체에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중앙집권적 실체가 타인을 통제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부의 편재는 여전히 극복 안 된 모순이지만, 정보와 지식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모두의 공유 자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아는 것(지식)이 곧 힘이다"가 있죠. 지식과 정보가 보편화하면, 권력 역시 보편화하고, 보편화한 힘은 더 이상 배타적 권력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G로 상징되는 거대 권력은, 빙하기를 맞이한 공룡만큼이나 시대 부적응적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잘 나오는 것처럼, G2의 한 축이라는(일부에서 그렇게 잘못 주장된)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염치 불고하고 소소한 경제적 이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난 냉전 시절 미, 소 두 패권국은, 체면 때문에라도 과감히 "퍼주는" 정책을 고수했지, 이런 낯뜨거운 이삭줍기를 한 적이 없죠. 사정은 미국도 다르지 않고, 그보다 못한 러시아, 브라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언 브레머가 제기하는 주장의 타당성은, 중동의 정세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우디와 이란이 각각 순니, 시아의 거대 종파를 대변하며 지역 패권의 위치를 경쟁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과거 냉전기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특징입니다. 사우디나 옛 팔레비 샤가 다스리던 이란이나,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던, 로컬 강국에 불과했죠. 브레머의 주장은. 현재 우리의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국제 정세를, 매끄럽게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고, 동시에 한국 같은 중진국급 무역 강국이, 어떤 처신을 해야 이 예측 불허의 국제 정세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발언권과 입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번역도 잘 되어서, 마치 소설책이나 인기 블로거의 평론처럼 잘 읽힙니다. 독자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의 무게가 압도적임은 더 말할 것도 없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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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경제의 시대 - 로빈 체이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2-2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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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유경제의 시대

로빈 체이스 저/이지민 역
신밧드프레스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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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수백 년 전에 등장한 자본주의 체제는 개인 창의의 극대화, 이기심의 자극만으로 (어느 정도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자동으로 맞춰지는 기적을 창출함으로써 인류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러나 사회 기층과 자연에 대한 약탈적 스탠스 때문에 과연 현재의 풍요와 성장이 어느 정도나 이어질 수 있을지 그 당시에서부터 벌써 짙은 회의가 제기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성과 반동(reaction)의 일환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이 태동한 것입니다. 현재의 진보 좌파 진영이 생산하고 보급하는 거의 모든 대안과 주장과 비전은 이에 빚진 것이며, 이 점에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대합니다. 몇 달 전에도 시진핑 정권은 구태여 독일의 트리어(트리에르)에 대해 각별한 배려를 배푼 바 있습니다( 기사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277&aid=0004380851 ). 이런 중국 정권이 근래 들어 맑시즘의 교조를 부정하려 든다는 건 우리 같은 제3자의 입장에서 참 역설적이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우스꽝스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죠.

그런데 "잉여가치의 착취는 오로지 노동력을 대상으로 해서만 가능하다"는 맑스의 핵심 테제에 대해서는, 이미 20세기 중반 슘페터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적 논박이 가능해졌습니다. 즉 슘페터는 "잉여가치는 혁신을 통해서도 창출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이쪽이 더 근원적인 자본주의의 동력"이라고 주장했는데, 현재 대중 경제서나 잘나가는 자계서를 보면 뭘 읽어도 혁신, 혁신 타령입니다. 물론 책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혁신에 실패하는 기업은 반드시 도태하고, 느닷 지배자로 올라선 기업을 보면 예외 없이 혁신의 선도자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논쟁의 진정한 승자는 우리가 모르던 사이에(?) 어느 한쪽으로 판명이 나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책은 다시 돌고돌아 시대정신이 공유, 협력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며, 종래 자본주의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자산 축적에만 몰두하느라 창고 안에 가득 쌓인 잉여 자산을 전혀 활용하지 않는 통에 사회적 낭비와 비효율이 심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현재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로 우뚝 선 에어비앤비, 우버 등은, 개개인이 보유한 유휴의 주택(전부 혹은 일부), 자동차 등을 이제 공급의 채널로 밀어넣어, 이런 고질적인 비효율을 해소하고 사회 성원의 정신적 갈증까지 해소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개개인의 협소한 울타리를 깨고 자원의 풀(pool)을 넓힘으로써 모두가 윈윈하는 성과를 낳았다는 뜻입니다. 유휴자원의 해방,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공유경제의 탁월선, 혁신성을 시원하게 설파하는 저자들의 논리가 빈틈 없으며, 공유경제가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라 인류 경제사의 한 패러다임 축을 구성할 만큼 신선하고 강력하다는 걸 다시 확인해 주었습니다.

영국 경제가 도약하게 된 게 헨리 8세 시절의 인클로저 운동(본격 자본주의의 태동은 이때로부터 다시 이백여년을 기다려야 합니다)으로 개인간 소유의 경계가 명확하게 되고부터였음은 초등 교과서에서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동시에, 이런 이기주의와 효율 만능주의가 극에 달하여 이미 많은 사회적, 체제적 모순을 배태하고 가시화했음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지혜는 이제 180도로 전략을 선회하여, 공유에서 경쟁으로, 다시 협력과 공유로 원 지점 회귀한 셈입니다. 물론 아직은 시론 단계에 지나지 않으며, 공유협력 체계의 시원이라 평가 받는 위키피디아 사이트가 아직까지 안정성과 지속 가능 토대를 마련했다 보기 힘든 실정이라든가, 에어비앤비나 우버가 세계 각지에서 소송과 컴플레인에 시달리는 팩트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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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2-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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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유경제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앨릭스 스테파니 저/위대선 역/차두원 감수
한스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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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전세계를 휘몰아치는 가운데 그 하위 테마 중 하나인 "공유경제"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공유경제에서 "공유"란 예컨대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색채의 공유는 아니며, 유한한 공간인 지구에서 개개인마다 고립적 소유를 고집하면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의 파국을 모면할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반영한 각성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청년실업이 급증하면서 젊은 세대가 그 부모가 살던 시절의 패턴처럼 일일이 큰 평수 주택, 중대형 승용차 따위를 소유할 수 없다는, 일종의 씁쓸한 체념이 반영된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여튼 "꼭 차를 내 명의로 구입하고 관리할 필요 없이, 필요힐 때 저렴한 비용으로 책임 부담(예컨대 도로교통법상의 각종 주의 의무라든가, 건강보험 등 각종 공과금의 납부 같은 것) 없이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하는 인식이 전례 없이 퍼지게도 되었으며, 이런 흐름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 게 작금의 모바일 혁명입니다. 연결성과 실시간성의 급격한 증대 덕분에, 애초부터 공유경제를 위해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 열렸던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지요.

이처럼 산업 구조의 펀더멘털이 근원적인 혁신을 맞는 국면에서 우리가 언제나 유념해야 할 것은, 격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품처럼 소모될 운명에 처하게 될 한계 성원의 처지라고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2012년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가슴 뭉클한 구호를 내세웠던 걸 아직도 기억합니다. 확실히,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먼저가 되어야 하며,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가치와 사항은 바로 사람"이라야만 합니다. 촛불시위가 일어나기 전 백남기라는 고령의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했을 때, 우리는 이 울림 깊은 구호의 참뜻을 다시 생각하게도 되었습니다.

지난주말부터 택시기사들의 대규모 상경 시위가 예고되고, 그 와중에 어떤 기사분이 분신하는 사태를 보면서, 아무리 4차 산업 혁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지만 그 적응에 곤란을 겪는 딱한 분들에 대한 배려가 밀려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 전의 백남기씨, 며칠 전의 김용균군의 안타까운 죽음 못지 않게, 이분의 죽음 역시 마치 19세기의 러다이트 항쟁만큼이나 의미심장한 사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서는 마치 쉬쉬 덮어야 할 불미스러운 일이나 되는 듯, 사회적 약자인 택시기사분들의 치졸한 밥그릇 싸움 정도로 프레임을 짜며, 뜻깊은 희생에 대해 애써 외면하는 태도로 뉴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가슴 뭉클한 캐치프레이즈로 다수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분은 우리가 다 알듯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시며 그분의 소속 정당이 현재 집권당이고 건설교통부 장관도 일생을 두고 진보와 인권, 민생의 가치를 위해 헌신한 분입니다. 헌데 어째서 이런 이슈에는 종전과는 사뭇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참 이해가 어렵고 당혹스러워지는 대목입니다.

일차적으로 경제 구조의 급변 때문에, 현재 공급되는 택시 서비스에는 그만큼의 요금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는 게 냉정한 소비자 대중의 판단이 맞습니다. 이는 젊은층 노년층 가릴 것 없이 인식이 비슷하더군요. 이처럼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위 수요곡선 시프트가 이뤄지면 그 틈을 타고 새로운 혁신가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 나와 시장의 새 판을 짜는 게 인류사 불변의 법칙 중 하나입니다. 이 점은 부인할 수 없고, 이런 상황 변화에 제때 대처 못 하고 카카오 같은 신흥 기업에 시장을 내 줄 위기에 처한 건 택시 업계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해답이 대뜸, "적자 생존의 법칙에 따라 택시는 아웃!"이 된대서야 그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겠습니까.

카풀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택시 회사들이 공동 출자, 연구, 구축하여 신 시스템에서의 이익이 사측과 기사들에게 돌아가게끔 만반의 채비를 했었어야 했다는 게 저 개인적 생각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어느 모임에서 이 주 전쯤 제기한 적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건설교통부에서 며칠 전에 "모든 택시를 우버로 만들자"는 대책을 내놓아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지만) 지인들 사이에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여튼 공유경제의 원취지가 무엇인지를 다시 떠올려 봅시다. 사람이 인간답게 살자고 하는 짓 아닙니까? 혁신을 이룬 건 물론 기업가의 창의이며 그에는 합당한 대가가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나 카풀의 창안은 특정 기업의 독점적 공적이 아니며, 사회 성원 모두의 지혜가 빚은 결실이거나, 외국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역시 특정 기업의 이익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옹호할 게 아니라, 먼 시야에서 국민과 인류 전체의 복리를 고려하고 신중한 정책 입안, 실행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성취이든 과오이든, 종전과 갑자기 방향이 달라자는 게 가장 의아스럽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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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 경제학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8-12-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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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혁신가 경제학

이일영 저
창비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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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속담에 "단체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게 있죠. 지은 죄에 대한 벌은 개인이 지게 해야 한다는 뜻도 되고, 집단으로 몰려 다니며 지은 죄는 그 추궁이 어렵다는 뜻도 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집단에 앞서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내세운 그들이었기에,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며 그 핵심 기능 단위로서 "기업"을 발전시킨 것도 그들입니다. 자연인을 넘어 영속(永續)할 수 있는 "법인"이 란 실체를 처음 고안하여,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업적과 성과를 내게 한 건 놀랍습니다. 그 거대한 경제 체제 안에 편입된 우리들의 삶도, 이제 생산이건 소비이건 기업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참여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능력은 자신이 속한 기업이라는 조직을 통해 발휘가 되어야 사회적 인정을 받습니다. 여기서 "능력 발휘"란, 개인 단위로서 업무 성과를 내는 것 외에도(이것은 기업이라는 조직 구조로 흡수, 용해되어, 대외적으로는 그 소속 기업의 성과로 탈바꿈합니다), 자기가 속한 조직의 문화를 어떻게 하면 개선하고, 최소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며 잘 적응하느냐는 쪽으로도 측정됩니다. 일 잘해도 분위기를 해치는 직원은, 역시 무능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뜻입니다.

이 책은, 기업이 대외적으로 시장과 맞닥뜨려서 어떤 혁신(제품과 서비스 창출에서)을 보여주느냐, 또는 그래야 하느냐의 문제보다, 어떻게 하면 사장이나 직원이 자기 회사의 조직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책입니다. 시장 대응이 우선이지, 내부 문제야 어떻게든 다독이고(혹은 윽박지르고) 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이미 시대에 크게 뒤처진 것입니다. 유능한 CEO는, 시장을 잘 공략하고 경쟁 기업에 맞서 유효한 전략을 잘 짜고 행동에 올길 뿐 아니라, 자기가 건사한 직원들에게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때의 효율이란, "착취" 같은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죠. 같은 보수를 주고서도, 직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하여, 최상의 창의력과 최양질의 성과를 내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직원의 입장에서도, 부하직원이라면 최대한 상사와 동료의 분위기에 조화하여 자아 실현을 원활히 이뤄야 하겠고, 중간관리자라면 아래로부터의 존경과 위에서의 신뢰를 동시에 얻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소규모 기업을 보면, "우리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직원을 대합니다." 같은 슬로건으로 사람을 끄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체로 이런 곳은, 공사(公私) 구분을 하지 않고 파렴치하게 직원의 후생을 침해하는 일이 잦죠. 그런데 미국도, 소위 family라는 컨셉으로 회사 내부 분위기를 세팅하는 곳이 있나 봅니다(제가 알기로는 많지 않습니다만). 저자는 이런 분위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family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각자 해 줘야 할 일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는 team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실제로 그들은, 영역 가리지 않고 team spirit을 강조하는 습관을 가지고들 있습니다. 우리처럼 후진적인 기업 문화가 아직 지배적인 곳에서는, 이런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지만, 주로 미국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을 이 책에서 그런 주장을 보니 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랫사람을 동료들 다 보는 자리에서 사정 없이 박살내는 행태 역시, 한국의 후진적인 문화에서나 자주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만도 그런 예는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습니다(당연히, 미국 내 기업 CEO나 간부와의 인터뷰에서입니다). 이런 걸 보면, 사람 사는 데가 어디나 비슷한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잘못된 풍토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지만요. 실제 인물들과의 인터뷰라서 그런지, 그 폐단을 막연히 말하는 게 아니라, 아주 생생한 표현으로 경각하고 있습니다.

공사의 구별을 명확히하고, 그러면서도 부하직원에게 신사적으로, 필요한 범위 안에서만 적절한 계도를 행하는 방식, 이 둘을 결합하면 "가르침(teaching)"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잡힙니다. 저자는 아주 멋진 결론 하나를 내어놓고 있습니다. 바로, "최고의 리더는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다."는 말이죠. 우격다짐으로 초 보자들을 몰아세우지도 않고, 절도 없이 무능과 결부된 온정주의로 흐르지도 않고, 마치 훌륭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독이고 이끌어나가듯, 그렇게 기업과 조직을 리드하는 CEO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찌 보면 미국의 문화라기보다, 전통적 동양의 군자상을 더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대책 없이 무작정 권위를 부정하고 저항하는 원심적 문화와는 크게 다릅니다. 리더가 부하를 존중하는 것처럼, 직원도 사장에 대해 적절한 존경을 할 줄 알아야 기브앤테이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죠. 실패하는 많은 조직은 이런 인풋-아웃풋의 조화가 잘 이뤄지지 않아서 그런 실패를 맞는 일이 흔합니다. 조직 내부 문화의 혁신이 없이는, 기업의 혁신이 불가능하고, 나아가 시장에 혁신적인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내부를 제대로 다스려야 외부에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 어찌 보면 상식에 속하는 사항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말이 쉬울 뿐 실천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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