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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대 | My Reviews & etc 2019-11-3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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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의 연대

이승욱 저
레드우드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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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solidarity)란 프랑스 혁명 3대 정신 중 하나인 "박애"와 매우 밀접한 관계입니다.  동양에서도 옛 성현들은 "군자는 화이부동"이라 하여, 시류에 간사하게 영합하는 처신을 소인배의 가장 큰 악덕으로 보되, 주위의 공론과 대세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처세의 미덕도 잊지 않고 떠올리게 했습니다. 소인은 힘에 버거워 애써 쫓아가는 시류를 두고 "대세"라고 애써 미화, 왜곡하지만, 둘의 차이는 건전한 양식을 지닌 모두의 눈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판명될 것입니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존재라서, 아무리 자유로운 개성, 자각, 자긍을 갖고 사는 개인이라도 고립된 섬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소통, 관계의 패턴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갈 것이냐 하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 이런 전제에서, "연대"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처음에 책을 펴기 전에는 "제목이 별로 임팩트가 없다"고 느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책에 붙을 제목은 이것 말고는 없었겠고, 책을 위해 책 제목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의 연대라는 주제를 위해 책의 몸을 그저 빌렸을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처럼 체제 위기가 고조되고, 생산성이나 효율성은 그것대로 부진하며, 정치적으로나 경제 구조상으로나 양극화가 진행된다는 실상을 감안하면, 이 "마음의 연대"는 새로운 시대 정신(Zeitgeist)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신 독자도 그 수가 제법 되는지, 인터넷 서핑하다 보면 "마음의 연대가 필요한데!"를 외치는 글도 제가 간간히 구경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연대의 작은 불씨가 피어나 마침내 온 들을 뒤덮게 되는 걸까요. "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그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심리학적 도구"를 쓰고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사실 인간의 행동이 왜 그런 패턴으로 이뤄지는가, 저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내려면 그게 인간의 거동(bewegung)인 이상 심리의 발생, 전개 기제를 더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사회 전체에 적용하려면, 그 사전 준비 작업으로서 역사에 대한 고찰이 또 필요할 수밖에 없죠. 저자는 유난히 질곡과 고비가 많았던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며, 왜 특정 세대가 특정 정치인에 대해 특정한 감정과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일종의 발달 과정상 심리 구명(究明) 방법론을 개인이 아닌 집단, 세대 전체에 적용해 "부가가치 창출, 신분-계층 상승, 저축 잔고의 증대, 위신의 유지"에 대한 거대한 규모의 총체적 강박이 오늘날의 정치 지형 고착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성장지향의 가치관(때에 따라 윤리관)을, 환경상의 궁핍이 낳은 정신적 장애 요소로 꼽는 것입니다. "왜 OOO을 지지하는가? 정신이 병들어서이다." 이게 정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온 결론이라면 심드렁하게 지나칠 수 있는데, 심리학 베이스에서 출발하니 다른 관심과 주목을 모으는 거죠.

지금의 세대는 다르다는 거죠.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할아버지가 겪은 시대의 제약, 아픔을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지난 세대가 깔아 놓고 지나친 시대의 또다른 모순과 부작용을, 온갖 상처를 받으며 부대껴야 하는 그들에게, 지난 세대가 "그들만의 역경"을 헤쳐 온 방식으로 극복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1) 환경 조건, 문제의 성질이 다르고, 2) 애초에 지난 세대가 가친 가치관부터가 뭔가 근본적 잘못을 안고 있기에, 지금 세대가 귀따갑게 듣고 있는 처방 아닌 처방, 훈계 아닌 훈계는 그들의 상처를 전혀 치유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치유는 고사하고 오히려 상처에 독극물을 주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시야입니다.

효율성의 극대화, 타인보다 나은 지표의 달성, 오늘보다 수치상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내일, 일초일각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는 모든 시간의 자본화, 이런 패러다임으로는 시스템의 붕괴, 파산을 면할 수 없다는 저자의 전망. 이 대표님은 진단에 이어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연대입니다. 왜 남성은 여성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유지하는가? 왜 부자는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서까지 부당한 굴레를 씌우는가? 폭력은 결코 소통의 방편이 될 수 없음에도, 약자조차 종종 폭력에 의존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부모들은 자기 친자식에게조차 혈연이 빚은 자연스러운 소통 경로를 통하지 않고 "외부의 프레임"을 통해 대하고 마주치며 대립하는가? 신자유주의가 모순에 가득한 건, 결국 인간 본성을 배반하는 출발점에서 그 태생을 맞이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소신입니다. 이를 해소하고 지양(止揚)할 방법은,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연대" 뿐이라는 게 결국 최종적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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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 My Reviews & etc 2019-11-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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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저/김소정 역
마시멜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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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재미있습니다. 리안 모리아티 여사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베스트셀러이고 니콜 키드먼 같은 명배우 캐스팅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질 만큼 화제작이지만(케이블에서도 자주 틀어 줍니다) 특히 우리 한국 독자들한테 큰 관심을 받는 건 따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양식 각박한 삶이 개개인의 영혼에 남긴 상처는 아마 21세기 지구촌 어디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평온의 집". 이제는 지긋이 나이 들어 웬만해서는 "여성"으로 대접받기보다.... 그저 노부인 정도로 누구한테나 받아들여지는 정도지만, 프랜시스는 여전히 활기 차고 새침하고 매력적인 "정신"을 지는, 고급은 아니라도 그 나름 스타일리시한 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전직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작가는 대개 상처 입은 타인들, 특히 "독자"들을 잘 어루만져 주는 기술이 탁월할 것 같지만 여기서 프랜시스는 반대입니다. 자신이 누구한테 좀 힐링을 받아야 할 상황이죠, 그래서 그녀가 찾은 곳이 바로 "평온의 집"입니다.


별것 아닌 듯해도 나중에 벌어질 큰 사달의 꼬투리가 되는, 사소한 듯해도 사소하지 않은 충돌과 불편이 꼭 보면 있습니다. 이 책의 전작이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입니다. 사소했었는데 나중에 확 커져 버린 거짓말, 아무것도 아닌 듯했으나 결국 이후에 큰 재앙으로 번진 그 어떤 불편, 충돌... 리안 모리아티의 모든 장편은 부분이 전체를 슬쩍 암시하고, 전체는 다 읽고 나서 돌아보면 그 어느 한 사건, 장면으로 되돌아옵니다. "결국 그 지점이 이 모든 소동과 비극의 시작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것. 


한때 불륜 소재로 큰 인기를 끈 <사랑과 전쟁>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었었는데 저는 모리아티 여사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등장인물들의 대화, 성격, 갈등 양상 등이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긴 중년 여성의 수다, 허세, 다툼 등은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서로 닮은 모습이긴 하죠.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마찬가지였듯이. 모리아티 여사의 작품들은 큰 사건의 줄기에서 소소하게 가지를 치는 에피소드와 대화 같은 게 깨알 같은 재미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배우자, 친구, 이웃, 이제는 소원해진 동창,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 그리고 "퍼펙트 스트레인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합니다. 때로는 무례하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애교를 부리고, 때로는 서로 챙길 걸 챙기고 우아하게 빠집니다. 그러다가 터무니없이 엉겨붙기도 하는데 사실 이분의 작품에서 요런 대목이 참 일품입니다. 물론 둔한 우리 독자들이 눈치를 채건 말건 진짜 사건의 큰 줄기는 배후에서 수면 아래에서 도도하게 흘러가다 뜻밖의 지점에서 머리를 확 내밉니다. 사실 작가는 이 모든 효과를 치밀하게 계산했으니 "뜻밖"은 전혀 아니지만 말입니다. 


낯선 곳에 일단 들어가는 것, 입문의 지점이 일단 어렵긴 합니다. 들어가는 단계를 일단 통과하면 다음부터는 별 문제 없이 일이 잘 풀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난제는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어렵습니다. 우리들 현대인 대부분은 자신의 영역을 어느 정도 굳혀 놓고 일상을 영위하므로 대부분의 생활에서 큰 불편을 못 느끼며, 능력에 아예 부치는 일이야 멀찌감치 떨어진 세상일 뿐입니다. 


힐링을 받으러 찾은 장소에서 프랜시스는 대뜸 이해 불가인 불편과 조우합니다. 그 불편은 우연히 마주친 교란이라 여기기엔 조금 복잡하고 예외적이며, 혹시 의도적으로 마련된 "불친절", 혹은 "거부"가 아닐지 의심까지 될 만큼입니다. 아마도 비슷한 체험을 공유하게 될 다른 젊은(상대적으로)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이 방금 겪은 불편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남의 덕을 봤다는 만족감도 들 수 있고 이제 지긋한 나이인 프랜시스는 금방 자신의 감정을 성숙하게 추스릴 줄도 알죠. 헌데 심상찮았던 예감은 결국 존재 증명을 하고, 일은 희한하게 꼬입니다. 애초에 짜증 크게 내고 발길을 돌리는 만도 못했던 건지.


거절을 하는 방법, 우아하게 누군가와 "손절"하는 기술도 현대 사회를 사는 중요한 노하우, 아니 예의, 매너 중 하나입니다. 그저 당장 편해지는 부수적인 노련함이 아니라, 어쩌면 이게 본질일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프랜시스, 어쩌면 리안 모리아티의 약한 페르소나일 수도 있는 이 부인은 그때 방향을 바로 돌렸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 역시 잘나갈 때는 남들을 기분 좋게 내려다 볼 수도 있었고 마음껏 과장된 에고를 남들에게 강요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배려를 받기보다 베푸는 지점에 더 신경을 써야 하며, 그래도 여전히 삶의 이런저런 지점이 팍팍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조심하며 살아도 뜻밖의 재앙은 닥쳐 옵니다. 우리 독자는 이 난감한 상황을 프랜시스라는 인물을 통해 대신 치러 내지만, 우리가 저 상황에 실제로 떨어졌다 쳤을 때 과연 흥미진진한 소설과 함께 예습한 내용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여튼 결론은 "모리아티의 소설은 참 재미있다"입니다. 각자 취향에 따라 스릴러로 읽든 막장 드라마로 즐기든, 아니면 인생 독본으로 진지하게 "공부하든" 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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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디자인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9-11-2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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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BIGDESIGN 빅디자인

김영세 저
kmac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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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말할 때 "디자인"은 우리가 아는 좁은 의미 외에도 "계획, 의도, 큰 설계"라는 뜻이 따로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덕분에 유명해진 어느 대사 "OOO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할 때의 그런 의미입니다. 속된 선입견으로 디자인이라고 하면 그저 잘된 제품의 마무리 장식 같은 뜻 이상이 아니며, 이 때문에 "디자인이 좋다"는 말은 그 속에 "품질은 별로다"란 뜻을 은근 감추는 식으로 곡해되거나 통용되기도 합니다. 저자 김영세 소장님의 "빅 디자인" 이론은 이런 우리의 천박한 선입견을 사정 없이 깨부숩니다. 제가 읽고 나서 얻은 결론은 "디자인은 뒷마무리, 치장 정도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기능과 퀄리티를 미리 담은 그릇이고, 나아가 모든 것이다."였습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모바일 시대 혁신의 아이콘에 속합니다. 이들은 차량을 대량 보유하거나 호텔 체인을 가진 업 체가 아닙니다. 많은 물량과 시설로 승부하는 거대 자본의 생존 방식은 이미 지난 세기의 유물에 불과합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야심 가득한 젊은 창업자가 그저 아이디어, 컨셉 하나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고 대승을 거둔, 혁신과 창의, 그리고 빅 디자인의 시대에 멋진 모범 사례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기존의 발상에 구애받지 말고 솔직한 감성으로 모든 사물을 재해석하라"는 충고를 던집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남의 소유물을 임차해 다른 이들에게 빌려 줄 생각을 품는 건 봉이 김선달의 도둑질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지혜입니다.


실리콘 밸리는 1980년대부터 혁신의 전초 기지로 여겨져 왔습니다만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모든 개혁과 도약의 온상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두고 "디자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도래라 규정합니다.(p42)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생길까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엡스타인 단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좋은 트레이드를 위해서는 내가 필요한 선수가 누구인지 생각하기에 앞서, 다른 구단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누구일지를 먼저 떠올려 보라." 동양식으로 말하면 역지사지입니다. 저자는 비행기에서 겪은 사소한 불편까지도 승객 보편의 불편함으로 차원을 넓혀 생각하여 시장을 놀라게 한 디자인 안(案)을 도출한 분입니다. 시장과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만을 자나깨나 생각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두뇌 사이의 격차가,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이런 세상에서 더욱 크게 벌어지리라는 점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책에서는 지멘스 CEO 조 케저의 말을 옮겨, "4차 산업혁명은 단지 산업이나 기술에 대한 게 아니라 사회에 관한 것(p29)"이라 선언합니다. 앞선 1, 2, 3차의 산업 혁명이 생산 섹터, 공급자 사이드에서 크나큰 혁신이 일어난 후 그 파급 효과가 소비 섹터에까지 미친 것이라면, 다가올 4차 산업 혁명은 반대라는 겁니다. 회사는 소비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새로 생각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생각의 틀과 삶의 틀을 함께 바꾸는 "빅디자인"의 초석이라는 뜻이죠.


저자 김영세 소장님은 해외 유수의 권위 있는 상이란 상은 다 휩쓴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분은, 혹시 삶에서 실패나 좌절 같은 건 한 번도 겪지 않고 평탄한 꽃길만 걸으셨을까요? 이에 대해 그는 마이클 조던의 명언을 인용하여 답합니다. "수많은 슛의 실패가  수많은 슛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p127) 이는 마치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유명한 고백,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와도 비슷합니다. 


안트러프러너십(p130)이란 무엇인가. 우리말로는 보통 "기업가 정신"으로 옮겨지는데 사실 이 단어는 그 이상의 무엇을 담았습니다. 성공이란 어떻게 보면 동기 부여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못하면 죽고 만다는 절박감을 갖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긴 선상에서 큰 그림으로 본 인생을 보다 알차게 꾸리기 위해" 조금은 여유를 갖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과제, 혹은 환경을 보면 더 좋은 컨셉트가 떠오를 수도 있고 그게 바로 빅 디자인입니다. 작은 것에 집착하면 스몰 디자인밖에 안 나오고 이는 곧 졸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티냉자스"란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러시아는 한때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던 엄청난 강대국이었지만 현재의 위상은 매우 초라합니다. 우리 한국인들도 아마 러시아 정도는 은근 깔고 보는 경향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책에도 나오듯이) 전체 국내총생산 규모는 우리와 비슷한 나라인 러시아에 대해 갖는 그런 자신감은 과연 근거가 있을까요? 저자가 말하는 근거는 바로 "티냉자스"입니다. TV. 냉장고, 자동차, 스마트폰을 잘 만드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의 척도라는 건데, 생각해 보면 이 네 분야에서 모두 강한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전자 제품 하면 일본이었고 일본은 이 시기 마치 전 세계 돈을 다 빨아들이는 하마와도 같았습니다. 현재 TV 시장은 한국의 두 기업이 세계를 반분하다시피합니다. 자동차 역시 여러 어려움이 있긴 하나 꽤 선전하는 편이며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혹자는 소프트웨어에 약하다며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지만 최근의 애플은 "혁신에 꽤나 지쳐하는" 모습입니다.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히트 상품은 물론 품질도 품질이지만 디자인의 탁월함이 반드시 어필되어야 합니다. 무기를 잘 만드는 러시아, 자원 부국인 사우디 등이 비록 국부 전체는 대단한 수준일지 모르나 죽어도 한국을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러시아에는, 혹은 사우디에는 과연 김영세 같은 디자이너가 있을까요? 우수한 엔지니어는 수학 잘 가르치고 공학 교육이 보편적인 인도 등지에서 다수 배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수한 디자이너는 선진국에서만 나옵니다. 오늘 뉴스에 보면 중국이 대외적으로 발표만 못 할 뿐 심각한 경제난과 외화 부족에 시달린다는 징후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저가품과 모방 제품은 대규모 자본을 인위적으로 투입하여 만들 수 있어도, 정말 퀄리티 있는 히트작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저자가 말하는 빅디자인은 첫째 기존의 사고를 과감히 허무는 도전 정신과 창의성, 둘째 매사를 여유와 긍정의 마음가짐으로 볼 줄 아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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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 - 주희, 유청지 (홍익출판사) | My Reviews & etc 2019-11-2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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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학

주희,유청지 엮음/윤호창 역
홍익출판사 | 200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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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은 말 그대로 조선 시대 유소년층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 교과서였습니다. 과거에는 문자를 익히고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과, 소위 인성 함양 커리큘럼이 둘이 아니라 하나였기에 이 책은 더욱 중요시되었습니다. 소학은 대학, 논어 등처럼 독립적으로 저술된 경전은 아니고 송대 주희가 제자 유청지와 더불어 편집한 책입니다. 유학은 송대 주자학의 성립을 맞아 더욱 교조화하였으며 까다롭고 일반이 접근하기 힘든 예학이나 범절 등을 이 책이 비교적 쉽게 전달하며 일상의 실천을 도운 한편, 공맹의 가르침을 보다 선명하게 요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 저자는 유청지(劉淸之)라고 나옵니다만 사실 이분은 주희의 제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 말고는 자세히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는 고교 교과서에서 <소학>의 언해본이나 일부 발췌문을 공부할 때 "유자징(劉子澄)"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들었을 겁니다. 어떤 참고서에는 아예 주희를 빼버리고 유자징만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게 더 객관적인 태도입니다. 주희는 요즘 말로 편집 기획 정도의 역할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사실 소학은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아주 널리 알려진 책은 아닌데 이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편집 서적이 대체로 비슷한 형편입니다. <명심보감>도 한국에서는 거의 유림이나 독서가들 사이에서 바이블 과도 같은 인기를 누렸으나 정작 중국에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수준이죠. 소학은 조선조에서 세 차례에 걸쳐 번역(언해)되었고 아마도 가장 유명한 건 중종 대(代)의 번역일 것입니다. 이 중 일부는 국어 교과서에 실려 조선 중기 한국어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는 교본으로 쓰였습니다. 한문 원본과 언해 텍스트가 모두 교과서에 실렸지요(전문이 당연 아니고 일부입니다). 

소학은 한때 금서로도 여겨졌는데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의 당여가 유독 소학을 중시하여 파벌의 도그마처럼 여겼다는 사유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어처구니없는 생트집이며, 이후 선조가 사림파를 본격 중용하며 훈구파가 거의 숙청되다시피한 후에는 이 책이 다시 사대부의 필수 교양서로 자리를 확고히 잡았습니다. 사화 전후에서 특히 이런 수신서가 탄압 대상이 되었다는 게 흥미로운데, 연산군과 좋지 못한 관계였던 소혜왕후("인수대비"로 널리 알려진, 연산군의 조모)는 소학에서 특히 상당 구절을 인용하여 <내훈>이란 책을 따로 짓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분은 유교 경전에 대해 조예가 상당히 깊었으면서도 불교를 중시했다는 건데, 이는 그녀의 시아버지 세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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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경 - 서긍 | My Reviews & etc 2019-11-2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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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려도경

서긍 저/민족문화추진회 역/조동영 감수
서해문집 | 200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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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문집이란 출판사는 고전 완역을 우리 독자들에게 곧잘 제공(물론 유료지만)해 주는, 제 개인적으로는 고마운 곳이라고 느끼는 그런 회사입니다. 물론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한국어 번역본은 고사하고 원문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책을, 권위 있는 역자의 적절한 해석, 평설과 함께 읽어나가는 건 확실히 유익하고 즐거운 체험입니다.

서긍의 <고려도경>은 우리가 고등학교 정도 과정에서 이름을 접해 본 고전입니다. 중국이나 우리나 사대부의 필수 교양 중 하나로 반드시 그림, 즉 화(畵)의 재능, 기예가 들어가곤 했는데 서등 같은 유능한 인사가 그림에도 빼어났다는 건 그가 섬긴 군주에게는 물론 현대 한국인들에게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 삼십대 초반에 고려에 사신으로 와 수도를 방문하여 자국의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쯤이면 권신 이자겸이 방약무인하게 권력을 휘두를 무렵입니다. 이자겸 같은 자가 국정을 농단한 건 물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당대 고려는 딱히 큰 내우외환 없이 귀족 사회의 안정적 번영을 누릴 무렵이었습니다. 물론 기층 민중은 수탈과 차별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으리라 짐작되긴 하지만 말이죠.

... 실제로는 궁벽한 곳이어서 풍속이 뒤섞여 오랑캐 풍속을 끝내 다 고치지 못했다. 관혼상제는 예를 따르는 것이 적고, 남자들의 두건은 당나라의 제도를 어느 정도 본받고 있으나, 부인들이 땋은 머리를 아래로 내려뜨리는 것에는 변발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궁벽하다 함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데, 사실 한반도는 특히나 압록강, 두만강 등으로 대륙으로부터 꽤나 분리된, 말 그대로 반쯤은 섬이라 할 만한 곳입니다. 그렇다고 이 무렵이면 일본 열도에 딱히 화려한 문화라 할 만한 것이 전성기를 누릴 시절도 아니고 말이죠. 황해 건너 중국이 있긴 하나 풍랑이 거세고, 북쪽으로는 기질 드센 오랑캐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기다리며, 게다가 아직 청천강 이북, 영흥 일대는 온전히 우리 강토가 아니기도 했으니... 그러나 조선처럼 억상, 말업 등 탄압 정책이 실시 안 될 시대라서 "궁벽"이란 저 진단이 과연 객관타당한지는 의문입니다. 대륙인 특유의 우월 의식과 허세의 발로일 수도 있고.

대체로는 평가가 후한 편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에게 경서를 배우고,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는 군졸과 어린아이들까지도 향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조선조 들어와서야 양민 보편에 과거 응시 기회가 열렸을 뿐인데 겨우 고려 중기에 이 정도로 "항학열"이 불타오른 풍속은 후대인이 봐도 놀랍습니다. 우리는 역시 뭘 좀 배우고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사람 대접을 해 주는 그런 사회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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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만 더 긍정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9-11-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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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늘 하루만 더 긍정

김예솔 저
마음지기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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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긍정할 수 있어야 행복해집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에서도 역시, 자신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다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단계를, 마음의 평정을 찾는 첫째 단계로 규정하더군요. 이때 자신의 단점을 끌어안으라는 건, 무작정 합리화를 일삼으라거나(그렇게 하면 나중에 문제가 더 커집니다) 단점에 눈을 감으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쪽이죠.


저자가 아무래도 이쪽에 종사하는 분이다보니, 텍스트로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나가기보다, 주전공일 일러스트에 곁들여, 간결한 아포리즘이랄까, 자신이 직접 맞대면해 온 여러 문제를 함축적인 몇 마디를 거드는 형식입니다. 이 책의 저자님과는 종사 분야가 크게 다르지만, 저는 과학자 박경숙 박사님이 자신의 무기력증(helplessness)를 극복한 과정을 진솔하게 서술한 어느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도 무엇보다 저자가 그 "병"을 얻고, 싸우고, 끝내 몸과 마음에 떨쳐 내기까지의 긴 여정을 가감 없이(그리고 간결히) 서술한 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불안장애"의 근원을 저자는 "자기 혐오"에서 찾습니다.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현재의 자신"을 혐오한다는 뜻으로 저자는 설명합니다. 왜 현재의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는가? 본디 있어야 할 나를 "현재의 나"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나"는 아마 많은 현실과 내키지 않는 타협을 하고, 이상을 훼손하면서까지 자리를 보전한, 좋게 말하면 융통성 있고, 나쁘게 말하면 비겁한 자아일 겁니다. 내가 꿈꾸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너는 왜 빛나고 순수한 꿈을 희생하고 구차한 이익을 택했니? 결국은 (이상적 자아를 향한) 자기애의 발현이 (현재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로 바뀐 것입니다.

이제 결론은 간명해졌습니다. 비록 소중한 많은 것을 잃은 나이지만, 그것을 어떤 대가(代價) 없이 날려 버린 건 아닙니다.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희생했다고도 볼 수 있죠. 무엇인가를 잃었지만, 그것을 아쉬워라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여전히 남아 과거를 그리워하기에, 현재의 나는 홍수에 떠밀려가지 않게 나를 지켜 준 고마운 은인이고, 한때 소중히 여겼던 무엇인가의 대상(對償)물로 여전히 남은 "나"입니다. 조금 더러워지고 금이 가긴 했어도, 여전히 "나"라서 소중한 그 자체로 보듬어 주면 안 될까요? "더 좋게 될 수도 있었는데"에 미련을 갖지 말고, "더 나빠질수도 있던 것을 이렇게라도 지켜 온 나"에 자긍심을 가져 봅시다. 나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IT을 쫓아내고 나와 화해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게 저자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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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9-11-2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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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

도널드 트럼프 저/권기대 역
베가북스 | 200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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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거의 언제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왔습니다. 소련과의 패권 경쟁이 한창일 때, 레이건의 공화당 행정부는 가능한 한 최대한 동맹국들의 체면과 이익을 챙겨 주는 듯한 제스처를 폈으나, 의회는 그때에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죠. 이 당시 민주당은 가장 강한 보호무역정책을 펴서, 이른바 슈퍼 301조의 발동으로, 우리 같은 개발도상국들을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일반특혜관세(GSP)가 폐지된 것도 그 즈음의 일입니다. 1980년대의 실정이 이랬고, 1970년대에는 닉슨이 달러 금 태환을 정지하는 초유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언제나 미국은 좀스러울 만큼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해 왔던 셈입니다.

저 당시만 해도 민주당이 국수주의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상황이 바뀐 느낌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TPP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와 이니셔티브를 결코 중국 같은 나라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당장 미국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먼 장래를 내다본 안정된 시스템 하나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 역시 광의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임에 틀림없으나, 여튼 타국의 이익도 단기간(미국 측의 전망대로라면)일망정 기대는 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던 게 오히려 공화당 정부 들어서서, 이제 안면몰수하고 몇 푼의 동전까지 보이는 대로 갈무리하고 나서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거죠. 어떤 나라가 자기 나라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걸 막거나 반대할 이유, 수단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미국이 더 이상 먼 장래를 내다볼 여유가 없다는 사실만이 확인된다고 봐야죠. 반면, 안타깝게도 중국은, 허황될 만큼 몇 십 년 단위를 바라보고 장기 투자 설계에 골몰합니다. 싫건 좋건 이게 객관적 현실이므로 우리는 명백한 팩트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튼 이 책은, 이제 목전의 소소한 이익까지 번거롭게 챙기겠다는, 보다 구차해진 미국의 정책 변화가 앞으로 세계 경제, 미국 국내 사정, 그리고 소규모 개방경제의 전형이라 할 한국의 상황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오바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국이 언제 위대하지 않은 적 있었던가?" 이는 마치 YS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를 들고 나왔을 때, 보수 진영에서 "역사가 언제 비뚜루 눕기라도 했었나?"로 퉁명스레 대꾸한 양상이나 비슷합니다.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게 고작 치사한 이삭줍기, 보호무역 강화, 시장에의 무분별한 개입 등이 그 수단이라니, 다시 위대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좀스러워지는 꼼수라고밖에 안 보입니다. 반면, 잘못된 정책으로 국세가 기울어갈 뿐 아니라 본인 자신이 중국에서 치욕적인 푸대접을 받고 돌아와서도 "언제나 미국은 위대했음"을 강변하는 오바마도, 고작 정신승리에 파묻히려는 구차한 모습만 드러냈을 뿐입니다. 하나 확실해진 건 "더 이상 안 위대한 미국이 뭔가 몸부림을 쳐서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겠다"는 전망 정도입니다. 현실은 그대로 인정해야 바른 전략이 짜지며, 적실하고 정확한 미래 대응 방법이 강구될 수 있습니다. 

현재 트럼프의 경제정책을 가늠하려면, 측근 중 누가 짤렸다 사퇴했다 갈등을 빚었다, 진영을 옮겼다 등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측근 라인업 중에서, 최소한 자기 세력 확보나 영역 확장에는 아무 잡음이 안 들리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의 행보를 지켜 보면 정확합니다. 책에서는 "그의 경제팀이 월가를 점령했다"고 평가하는데, 이기적이고 약삭빠르게 대세를 파악하고 거시 경제의 향방을 점치는 데에, 이 트럼프와 "그의 오랜 친구들"만큼 촉 좋은 이들이 없습니다. 사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지금 짤리거나 좌천당한 이들은 나중에 합류한 축이고, 트럼프가 한창 리조트 개발로 떼돈 벌고 세계를 누빌 시절에 알던 친구들은 건재하게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단기의 미미한 변수와 상수를 구별할 줄 아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정확히 점치는 길입니다. 

책에서는 또하나의 재미있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특히 공화당은 오랜 전통적 정책 중 하나가 반(反) 러시아 자세인데, 이번에는 정반대가 되어 민주당에서 러시아 내통 의혹을 들고 나왔고, 공화당이 이를 무마하려는 태세였습니다(지난 선거는 참 여러 면에서 기상천외한 풍경이 벌어지는 난장판이었죠). 그간 저는 그 사위 쿠슈너의 개인적 인맥 때문에 장인인 트럼프 역시 사업상 음으로 양으로 엮인(다른 말로 코가 꿴) 게 많아서 저처럼 러시아 관련 이슈에서 궁지에 몰리는가 보다 짐작했는데, 이 책에서는 백인우월주의, 극우파의 정치적 코드로 보다 거대담론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제가 참 우습게 본 게, 소련 망하고 나서 러시아 젊은이들을 바로 사로잡은 게 네오나치 트렌드였다는 겁니다. 러시아는 우리가 다 잘 알듯, 2차대전 당시 가공할 만한 위력의 나치 침공을 숱한 인명, 물자 희생을 치르고 막아내어 자국의 독립과 위신, 세계 평화를 지킨 나라인데, 그 후손들이 그런 행태를 보인다는 게.. 마치 한국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숭배 열풍이 분다고 가정하면 이에 비길 수 있을지요. 

얼마 전 버지니아 샬로츠빌에서 대규모 극우파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처음 모호한 태도를 취하다가 마지못해 한 마디를 한 후, 다시 골수지지층을 의식한 "트윗"으로 지지층 달래기에 나섰지요. 독일에서도 1차 대전 직후 경제가 최악일 때 극우 세력이 부상했던 과거를 감안하면, 사실 이런 동향은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는 지금 가장 불리한 환경에서, 가장 시원찮은 수단으로, 미국 패권주의를 다시 세우겠다고 나선 겁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말했듯 "점점 외연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고립되어 가는" 그에게, 이는 너무 벅찬 과제처럼 보입니다.

엉뚱하게도 민주당 행정부의 빌 클린턴은, 금융 섹터의 건전한 운용을 저해할 수 있었던, 저축은행과 투자은행의 엄정한 준별을 규정한 글래스- 스티겔 법을 폐지하면서, 그로부터 십 년 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재앙을 부를 단초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건 본래 공화당 우파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이었는데, 뭔 생각이었는지 그는 탈규제,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대단히 위험한 선 하나를 과감히도 넘었죠. 하긴 이는 영국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도 않아서, 이른바 "빅뱅"으로 불리는 대규모 규제 철폐를 그 오랜 보수주의의 아성에서 그 무렵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본 대목은, 불과 몇 년 전에 그토록 뜨거운 맛을 보고서도 다시 도드 - 프랭크 법을 폐지하여 금융계의 기강 해이,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만한 위험을 키우려는 현 행정부의 정책입니다. 제 생각에는 다른 어떤 변수나 정책 변경보다, 이 점에 주목해서 향후 미 행정부의 동태를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 지도자들의 현명한 타협 덕분에, 전세계는 간신히 대공황의 위기를 넘겼고, 중국은 타이밍이 지금이다 싶어 "기축통화 이슈"를 들고 나오며 혼란을 틈타 패권국으로 부상하려 들었으나 실패했죠. 월가의 단기 이익보다 자국 전체 국민의 장래를 중시해야 올바른 선택일 텐데, 여러 모로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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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 평전 - 한영우 | My Reviews & etc 2019-11-1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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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율곡 이이 평전

한영우 저
민음사 | 201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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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좀 후회가 되는 건... 고교 시절 그 두꺼운 문학 자습서를, 수능에 직접 도움이 되건 안 되건 더 열심히 보는 건데 하는 후회입니다. 아니면 바로 버릴 게 아니라 두고두고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은 좀 놔 두고 보는 건데 같은... 사실 고교 참고서는 내신, 수능을 대비해서 어려운 내용을 두고도, 다양한 소스를 다 참고하여 보기 좋게 꾸려지기 때문입니다. 지학사(지금도 있죠)에서 나온 고전문학 참고서가 특히 그랬다는 기억인데, 당나라 두보의 시부터 해서 이율곡의 문집 일부까지 발췌하여 그 많은 한자 어휘에 일일이 주석을 달고 배경을 설명하는데(=했었는데) 도대체 앞으로 어떤 책을 봐야 그 알찬 내용을 그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지옥으로 여기지 말고, 이런 좋은 환경(워낙 입시가 치열하다 보니 온갖 좋은 책들이 다 출판되는 그런 나라)에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오히려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할 겁니다. 어려서야 온갖 어설프고 설익은 생각에 자신이 최고인 양 착각하지만 나이 들어서 그런 자신을 돌아보면 부끄러움에 치가 떨립니다. 물론 그런 최소한의 자기 반성도 못 하는 인간은 애초에 떡잎부터가 썩은 종자겠지만 말입니다. 


한영우 교수님은 이런 대중적인 책을 쓰실 때 어떤 성격 규정에 있어 거침이 없습니다. 그는 대놓고 율곡의 부친을 "한량"으로 단정하는데 뭐 팩트이긴 합니다만 조선 후대는 율곡의 제자들이 관료로 진출하여 대소사를 모두 좌우한 시기나 마찬가지였기에 설령 팩트라 한들 그 부친, 가계를 설명함에 있어 어휘 고르기가 대단히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붕와해의 위기를 벗어날 길은 경장뿐이다" 여기서 경장이라 함은 "갑오경장"이라 할 때의 물론 그 경장인데, 경장= 곧 개혁인지 여부는 다툼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경장을 두고 기존 시스템의 틀을 그대로 두는 전제 하에 다소 조율을 하는 정도라고 하는데, 단어의 어원이야 그런지 모르나 실제로 이 "경장"이 쓰인 용례를 보면 그런 수박 겉핥기 식의 "농도"가 아닙니다. 율곡이 경장을 논할 때의 맥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십만양병론은 대개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가르치는 보편적 상식에 가까운데, 최근에는 이에 대해 고강도의 비판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 진위 여부를 떠나, 조정의 썩은 공론에 일침을 가하며 마치 실학적 논의의 선구자라도 되는 양 율곡의 이미지가 대중에 형성되었지만, 사실 그는 후대에 지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노론의 큰 어버이 격 인물입니다.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만한 대목인데, 그렇다면 두 선입견 중의 하나는 분명 잘못되었다는 뜻도 되죠. 


사실 노론의 주류 가문에서 박지원 같은 인물이 나오기도 했고, 대체로 중상주의 노선을 취한 북학파들은 대개 노론과 친했습니다. 그러니 개혁과 수구의 단순 이분법이 얼마나 크게 대중을 오도하는지는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노론을 낳은 큰 어른 같은 이가 젊어서는 "이단"인 승려들과 교류한 사실만으로도 우리 현대인들은 과연 조상들의 생각 궤적이 어디를 그리고 있는지 좀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율곡은 불가의 논객들과 대판 붙어서 논리로 압도한 일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와 대척을 이룬 반대 진영의 퇴계도 알고 보면 의외로 소탈하고 인간적인 점이 많았는데 역시 근거 없는 선입견이란 진리의 파악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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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 한영우 | My Reviews & etc 2019-11-1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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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도전

한영우 저
지식산업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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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영우 교수님은 한국사학계를 대표하는 거물이며 아마도 교원 임용고시, 공무원 시험 등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필독서 정도로 꼽히는 그 유명한 책의 저자입니다. 몇 주 전 "세종 평전"이란 880페이지 분량의 책을 내셔서 다시 주목받으시는데 조만간 저도 읽어 보고 독후감을 쓸 생각입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면 김무생씨가 扮한 태조 이성계가 "이 나라를 세운 것도, 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삼봉이시오."라고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물론 신하된 입장에서 삼봉은 극구 사양하지만 사실상 그는 새로 들어선 양반 사대부 중심의 유교 국가에서 "파운딩 파더"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도전이 요 몇 년 사이에 다시 대중에 주목 받은 건 "적폐 청산" 이슈 등과 맞물려서인데, 확실히 그는 기존 체제의 모순을 송두리째 뒤엎으려는 개혁 의지가 단단했고, 그렇다고 무모하게 "일단 파괴하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인품이 아니었으며, 그렇기는커녕 마치 모든 걸 다 계획하고 입안해 놓았다는 듯 한 사람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역량으로 건국의 기초 작업을 도맡아 했습니다. 이런 일을 그저 기획 단계에서 한 사람이 다 마치는 것도 어려운데, 그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다 실행에 옮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고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 정도전은 심지어 요동 정벌 계획까지 짜고서 진법 훈련까지 집행했는데, 한국인들은 수백 년 간 이어져 왔던 사대주의에 진저리를 치는 경향이 있고 근세기에는 식민 지배까지 당한 통에 이런 "자주적 기상을 떨치는 액션"에 무척 열광합니다. 놀라운 건 위화도 회군을 통해 "대국에 무모한 도발을 자제하자"고 주장했던 세력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인식이 있는 인사라면 최소한 계획성 없는 열정, 기분에 이끌려 무슨 일을 벌일 수준은 절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동 정벌이 과연 가능했을까 같은 회의감은 오히려 "정도전 같은 이가 추진했을 정도면 꽤 승산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긍정론으로까지 변질할 정도입니다. 


한참 뒤의 위인인 율곡 같은 경우 젊은 시절 한때나마 불가에 몸 담고 승려들과 교분했다는 이유만으로 줄기차게 흠을 잡혔을 만큼 조선 시대 선비들은 철저히 불교를 적대시했습니다. 정도전의 불교 적대감은 좀 놀라울 정도인데, 다만 이게 삼봉 개인의 어떤 성장 배경, 사정에 기인한 것인지 유가 진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과격한 스탠스를 취한 것인지, 그저 개인적 철학의 철두철미한 사색 그 귀결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면 "이 나라는 물론 전하의 것이지만 동시에 백성의 것이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게 별 의미 없는 유교 프로파간다의 후렴구 같은 것인지, 아니면 급진적인 민본주의 사상을 표방한 것인지, 대놓고 신권 주도 정치를 내세울 수 없으니 에둘러 왕권 견제 취지를 암시한 건지는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그 드라마를 다시 보니 작가가 인물들에 대한 연구를 참 깊이 진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탄이 나왔습니다. 역으로, 드라마 대본의 완성도를 평가함에 있어 어떤 기준을 제공할 만큼 이 책의 신뢰도와 깊이가 출중하다는 뜻도 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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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부자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9-11-1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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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의 젊은 부자들

김만기,박보현 공저
앳워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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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는 다른 생각, 패기, 열정을 지니고 실행에 옮겨야 남다른 성공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특히나 젊은 시절에 성공하려면 종래의 구태의연한 사고, 마음가짐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겠죠. "파괴적 혁신을 실현하는 데 격식과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의 말입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젊은 부자들 중 몇몇은 분명 어떤 기준으로도 명문교를 나온 이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학생 시절부터 도운 후원자들은 그런 학력, 지식에 초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지식을 충분히 못 지녀도 성공이 어렵겠지만, 지식만으로는 또 충분한 게 아니라니 젊은 나이에 거둔 성공 그 비결이 더 궁금해집니다.


왕타오는 드론 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우량 기업을 세운 젊은 기업인입니다. "왕타오"란 이름은 한국인들한테는 아마 1990년대에 탁구 선수로 익숙하겠지만 성도 한자도 모두 다른 글자를 쓰는 전혀 다른 사람이며 나이도 이 사업가가 훨씬 젊습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그의 성공 비결은 "유연한 사고를 할 줄 알았다"는 겁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커브 길을 만나면 질주하기보다 길을 바꿀 생각을 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영어에서 말하는 이른바 "체인징 레인스"인데요. 사실 한 가지 길만 우직하게 파는 미덕도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노선을 유연하게 바꿔 잡을 줄도 아는 융통성 역시 사업가에게는 중요하겠지요. 이 책에는 장루이민 회장이 만든 하이얼의 "고구마 세탁기" 이야기도 나오는데, 회사가 자신의 상품을 고객에게 들이밀 게 아니라, 아무리 어처구니없어도 때로는 고객의 간절한 요구에 맞출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타오는 본래 헬기 연구에 관심을 갖던 유망 사업가였습니다. 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교훈은 "자기 일에 미칠 줄 알아야 한다"인데, 어떤 일에 미치려면 결국 한우물만 파야 합니다. 하물며 개인적 관심사라는 건 시장의 상황, 외부 조건의 변화에 맞춰 그리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왕타오는 "드론 시장이 훨씬 크다"는 어느 미국인 사업가의 말을 듣고 "즉시" 사업 목표를 바꾸었습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바로 이런 덕목입니다. 아마도 왕타오 같은 이는 계속 헬기만 연구했어도 남들 못지 않은 성과는 거두었겠죠. 그러나 오늘날처럼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서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젊은 왕타오와 이제는 고인이 된 잡스를 서로 비교합니다. 잡스 역시 "보이지 않는 컴퓨터 케이스 안쪽까지에도 정성을 기울이라"고 직원들을 채근했다고 합니다. 이런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그는 타 임직원들과 마찰을 빚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한때 축출되는 비운을 겪었죠. 왕타오 역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을 위해 거의 편집증적인 태도를 회사에서 보였습니다. 멍청한 실업자, 낙오자는 아마 이런 CEO 밑에서라면 단 한 순간도 못 버틸 주제에  10대 소녀가 연예인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잡스의 온갖 팬시 상품을 빚까지 내어 가며 소비합니다. 하긴 멍청이들까지 흡인하는 마력은 잡스가 사후에까지 발휘하는 초인적인 역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쾅스커지"는 한자로 광시과지라 읽는 중국 굴지의 안면인식 기술 보유 회사입니다. 이 회사를 만든 이는 인치라는 1980년대생 사업가인데, 한국어로는 "인기" 정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안면인식 기술이야말로 생체인식 관련 기술 분야의 정수이며, 이런 원천 기술을 지닌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유망한 전도를 보일지야 우리들 일반인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인치라는 이름의 이 사업가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다고 하는군요. 그러니 기본 바탕이 안 된 채 그저 "패기와 아이디어" 하나로 모든 게 절로 개척되겠거니 하는 마음가짐은 실패의 지름길일 뿐입니다. 단지, 인치 이분이 그 정도로 단단히 준비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내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놀랍다는 거죠. (p63에 보면 must to have라고 나오는데 to가 빠져야겠습니다)


책에 나온 중국 부자들은 꼭 중국 태생의 인물들만은 아닙니다. 인도 출신도 있는데 무려 1993년생인 리테시 아가왈 같은 이가 그 좋은 예입니다. 물론 이 분은 중국 현지에서 호텔 체인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중국 내부에서 특정 사업 분야에 얼마나 살인적인 경쟁이 벌어지는지를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수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결이야 손으로 꼽을 수도 없겠지만 한 마디만 하자면 "중국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입니다. 이분은 스무 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뜻한 바 사업을 벌였는데, 호텔 사업처럼 기존의 컨벤션에 충실하기를 요구하는 섹터에서 그저 놀랍기만 한스타일입니다. 


한국 교육 분야가 엄청난 경쟁의 장이라고 하지만 중국도 장난 아닙니다. 이 나라 역시 교육입국이 목표이고 대세이며, 사실 과거제 같은 걸 세계에서 최초로 만든 곳이 중국입니다. 마윈도 입시 사업으로 부자의 기반을 닦은 인물인데, 심지어 그 분야에서도 마윈을 능가하는 교육 사업가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미 충분히 안정적인 고소득 직장인 투자 은행을 마다하고 자신의 업체를 만든 이도 있습니다. 무능과 나태함으로 조직에서 떨려 나온 채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무슨 포스트모더니즘의 헛소리를 떠드는 실업자와는 차원이 다르죠.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파괴적혁신에 골몰합니다. 잘 안 되던 방식이지만 매몰 비용이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하는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지금까지 잘 되던 방식도 다 벗어던져야 합니다. "대중 창업 만민 혁신" 참 무서운 구호 아니겠습니까? 무작정 트렌드에 편승하려는 안이한 태도 역시 위험합니다. 진짜 중요한 재능은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게 저자들의 결론입니다. 모든 껍질을 벗어던지고 현실을 직면하는 게 생존의 비결이라는 점 다시 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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