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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감성의 협상 기술 | My Reviews & etc 2019-12-3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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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성과 감성의 협상 기술

리 L. 톰슨 저/김성환 공역
한울아카데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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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라기보단 근본이론 탐구에 가깝게 전략, 방향을 설정한 이 책은, 진지한 서양 학자, 저술가들이 갖는 기본 자세에 대해 다시 감탄을 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실전에 적용해 보니 꽤 도움이 되는 협상 관련 서적도 여태 많이 읽었습니다. 자계서라고 해서 그저 동기 부여에나 도움이 될 뿐, 그 속에 적힌 주문이나 가르침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실전에서는 쓸모가 없다, 뭐 꼭 이렇지는 않더라는 거죠. 예를 들면 제가 2014년 초에 읽은 전직 미 정보기관 중견 관리자가 쓴 책(서평도 남겼지만)은, 그때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금 오히려 한국의 여러 실정에 도움이 되더라는 체감을 제가 지금 하는 중입니다. 

협상이라 하면,  아직 한국의 비즈니스 실정에서 그 누구라도 그리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일방적으로 연설만 늘어 놓거나, 최초에 자기가 짜 갖고 온 페이스에 상대가 말려들기만을 바라며 밀어 붙이는, 그래서 자신이나 상대나 황당함만을 느끼며 파탄 나는 초등학생들의 촌극 같은 모습이 어디서나 벌어집니다. 한국인들이 아직도 약한 분야가 토론이라든가 바로 이 협상 분야죠. 기본 룰이 도통 마련되어 있지 못하고, 최소한의 컨센서스가 부족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써 먹기에 유용한 팁이 많긴 해도, "왜 그러그러한 전술과 태도가 현실에서 유용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답을 못 해 주는 게 또 보통이었습니다(물론 팁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말이죠. 최소한의 팁도 못 가르쳐 주는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책은, "대체 협상의 본체가 무엇인지. 왜 그런 방식으로 진행해야 결실이 나오는지"까지 알려 주는, 보다 근본적인 사항까지 해명을 돕는 내용이었습니다. 책 읽는 보람은 사실 이럴 때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협상의 본질과 근본 속성을 가르쳐 주니, 독자 입장에선 현실에 응용할 범위를 찾아도 이제 적용 가능성이 훨씬 커지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로 이미 4년 전에 국내 독자들에게도 관심을 모은 바 있던 분입니다. 그 책은 이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진 않았으나, 앞서 제가 말한 "현장에서 써 먹기 좋은 유용한 팁을 많이 가르쳐 주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이 책은 그보다는 더 심화된 내용이고, 독자가 알아서 숨은 가르침까지 파고들어 찾아내어야 할, 보다 "하드한" 컬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논의의 시작을 "어린 형제들 간의 다툼"에서 잡습니다. 엊그제에도 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읽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형제보다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친구가 아무리 친해 봐야 남인데, 피를 나눈 형제보다 때에 따라선 더 의존이 된다니 사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한국에서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서양에서는 당연히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도 제3자일 뿐이니(이탈리아 같은 일부 라틴 문화권에서는 캥거루 족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딱히 별나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둔 건, 유독 어려서부터 형제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성장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이해 다툼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심지어 늙어서도 여전히 갈등과 분란이 끊이지 않는 양상이 꼭 존재한다는 겁니다. 만약 어려서부터 협상의 묘미와 기술을 배운다면, 동기간의 끈끈한 정을 평생토록 자산으로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판 모르는 타인 간에도 갖가지 충돌이 빚어질 시 능숙하게 협상으로 다루는 체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죠.

협상은 권력위상이 현격히 차이 나는 경우에도 규칙과 요령을 달리해서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모든 가르침이 그러하듯) 가정에서 시작되는데, 부모가 현명하게 이 시작점을 주도하고 잘 마련해 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인격과 판단이 미숙하여 무조건 자기 충동과 욕구를 우기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때 무조건 다 들어 주는 것도 문제고, 반대로 윽박지르면서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둘을 적절히 병용하는 것도 원칙이 만약 없다면, 아이들 입장에선 "왜 이렇게 반응에 일관성이 없지?"라며 혼란을 느끼는데, 역시 교육상 좋지 않습니다. 변덕스럽지 않고 실제 효과는 그것대로 거두면서 아이 버릇을 잘 들이는 방법은, 적절한 협상력의 발휘입니다. 아이에게 소통의 규칙을 가르치고, 성인이 되어 타인과의 소통, 관계를 형성할 때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 삼조라고 하겠습니다.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말이 안 통해서 불가능, 양보할 수 없는 투쟁이라서 불가능, 여기도 불가능, 저기도 불가능의 연속입니다. "대체 가능한 협상 영역이 있기나 한가?"를 물어야 할 판입니다. 저자의 지론에 따르면, 상대가 누구이건 이슈가 무엇이건 협상의 여지는 반드시 남아 있고, 상대가 그걸 인식 못 하면 내가 먼저 알아내어 "이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협상의 요체입니다. 이 포인트를 놓치면, 나뿐 아니라 그 역시 손해라서, 이름 모를 누군가를 공연히 웃게 해 줄 뿐입니다. 이 점을 눈치채고도, 처음 시나리오만 고집하다 테이블을 깰 자가 과연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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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대왕자료집 3 비지, 명릉, 어제어필 | My Reviews & etc 2019-12-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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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숙종대왕자료집 3

장서각 편저
한국학중앙연구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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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에 비해 상당히 고가인 도서입니다만 책을 실물로 접하면 "아 그럴 만했구나". 하고 다들 수긍할 법도 하겠습니다. 조선의 왕 중 "대왕"이란 말을 들을 만한 경우가 아주 많지는 않으나, 대개 이런 경우 별 주저없이 "대왕" 칭호를 붙입니다. 마치 죽은 왕후 등에 "대행"을 그 시호 앞에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영국의 경우 "대왕" 소리를 듣는 이는 덴마크 해적의 대대적 침공을 극복한 알프레드 대왕이 유일하다고도 하죠. 가까이는 지지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한테 "대교황" 칭호를 수여하려 했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본문 중에 보면 "인조대왕용잠시별서유기비 음기(仁祖大王龍潛時別墅遺基碑 陰記)"가 있는데 물론 우리가 잘 아는 능양군 그 사람입니다. "陰記"는 비석의 뒷면에 지어진 글을 뜻하며 이 책에 실린 이유는 바로 숙종이 짓고 어필로 내려 준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편찬 이유이기도 하죠. 책에 실린 모든 글(의 사진)들은 숙종의 작품입니다.


청풍부원군은 숙종의 외할아버지 되는 분입니다. 아마 드라마 같은 데서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가 아주 기질 드센 여인으로 나오기 때문에 숙종의 가정 사정에 대해선 대중에 꽤 널리 알려진 편이죠. 재미있는 건 이 김우명의 경우 물론 서인 소속이지만 송시열 등이 세력을 넓혀 가자 엉뚱하게도 남인과 손을 한때 잡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후 경신대출척 등을 겪으며 남인과 서인이 완전히 척을 지게 된 후에는 이런 "낭만적인 합종연횡"을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되죠. 


김우명이 남인들과 제휴하여 송시열을 공격한 사실은 마치 성종~명종의 치세에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을 연상케도 합니다. 그러나 김우명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질자인 김석주 역시 당당한 과거 급제자이며(이 시대에 이르면 과거 급제 - 혹 형식화했더라도 - 가 아니고서는 출사할 길이 매우 좁아지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포지션이 그러할 뿐입니다. 김석주는 대단히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였으며 벌써 출신 자체가 장원 급제자입니다. 게다가 김석주는 송시열의 제자 중 하나이죠.


2002년에 방송되었던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 김석주 역은 전인택 씨가 연기했습니다. 보통 책사라고 할 때 <왕과 비>에서 최종원 씨가 연기한 한명회처럼 뭔가 코믹하고 경박스러운 이미지완 크게 대조되게도, 저 전인택 씨의 경우 절제된 연기가 돋보였습니다(콧수염이 무슨 엘퀼 포와로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ㅋ). 


특히 조선 시대 엘리트의 경우 명필이란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기도 했으며 말도 탈도 많지만 양녕대군의 글씨라고 전해지는 "광화문" 현판이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점도 다시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기계적으로 반듯하게만 쓴다고 다가 아니며 독특한 풍취와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격조를 벗어나면 안 되니, 높은 품격을 갖추는 교양이라는 게 얼마나 습득하기 어려운지 거듭 생각하게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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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 | My Reviews & etc 2019-12-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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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

하진희 저
인문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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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반(半)신들, 영웅들의 계보를 머리 속에 잘 정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도인들이 섬기는 힌두의 신들은 무려 "수백 억 명(이 책 p8)"이나 되기 때문에, 이 정도면 해당 충실히 믿는 이들에게라고 해도 결코 만만히 볼 게 아니지 싶은데요. 소설 한 편 읽을 때에도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면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라 해도 따라가기 힘든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힌두 신화를 매우 낯설어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멀리하기에는 힌두 신화가 너무도 재미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인도, 중국 등에서 전래된 불교를 믿어 왔는데 그 역사가 거의 천 오백년이나 되며 이와 관계된 문화 유산도 많습니다. 불교 설화도 파고 들면 재미난 게 많은데, 불교를 멀리서 잉태했던 인도의 전 신화 체계를 (그 대략이나마) 섭렵하면 얼마나 흥미롭겠습니까. 근래 한국에서는 라틴어 공부 바람이 부는 중인데, 라틴어 어원, 문법을 깊이 공부하면 그 먼 친척뻘인 산스크리트와 만나는 대목이 많습니다. 그런데 산스크리트 문헌 공부는 또 이 힌두 신화와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당장 불의 신 "아그니" 같은 것만 해도 그 이름의 복잡한 변화(denomination)를 외워야 하는데, 아그니가 누구인지를 알면 그 암기의 고역이 조금은, 아니 상당 부분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330여쪽의 예쁜 동화책, 민담집처럼 보입니다. 어린이들이 읽어도 쉽게, 재미나게 술술 읽힙니다(어떤 아이에게 시켜 봤는데 아주 좋아하더군요 ㅎㅎ). 그런데 어른들, 특히 산스크리트어, 인도 문화 전반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공부하고 싶은 완전 초짜들이 읽어도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려운 내용은 처음 들어갈 때는 쉬운 포맷으로 시작해야 장벽이 낮아집니다. 힌두 신화의 주인공 격 몇몇 캐릭터만 확실히 잘 알아도 그게 뼈대가 되어 다른 연관 신들이 머리 속에 잘 정리됩니다. 


저자 하 박사님은 "인도에서는 특히 부녀자들이 익히는 필수 교양 중 하나가 인도 신화이며,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베틀로 천에 수를 놓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를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도 조선 후기부터 서민층의 각성을 통해 고급 예술의 컨벤션에 얽매이거나 기 죽지 않고 자유로운 붓끝을 놀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작품들은 보기에 유쾌하고, 공감을 끌어내고, "뭘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선을 잡아챕니다. 사실 이 책의 텍스트를 구태여 쪼아붙이지 않더라도, 책에 실린 그림 구경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림에 설명이 없어도 재미있는 각각의 그림들인데, 전공자의 정확하고 흥미로운 설명까지 달려서 더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신들은 하나이지만 다른 이름들로 불린다." 그 심오한 뜻이야 우리가 미처 깨달을 수 없겠지만, 창조, 보호, 파괴를 각각 담당하는 세 신이 힌두 신화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명심헤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신화에서건 "빛"이 창조의 수단이요 시작점이라는 건 공통이라서 재미있습니다. 제임스 캐머론의 영화 덕분에 더 유명해진 "아바타"라는 단어(그 이전에 게임의 역할도 컸지만)도 이 신화, 이 오리지널리티 속에서 그 생생한 의미를 새로 우리에게 밝힙니다. 


그리스 신화 등과는 닮은 점도 간혹 보이지만 다른 점이 당연히 압도적으로 많고, 그 전에 비교 대상도 아니다 싶을 만큼 내용이 많고 풍부합니다. 신의 숫자만 수백 억이라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태양신은 많은 신화 체계에서 주신(主神) 포지션이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헬리오스, 아폴른 등이 따로 맡고, 여기 힌두 신화에서도 "수리야"가 별개로 있습니다. "삶의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신"이라는데, 가장 당연한 듯 그 혜택을 접하면서도 우리가 그 고마움을 곧잘 잊곤 하는 존재입니다. 천체의 비중 면에서는 상대가 안 되지만, 해의 신이 있으면 항상 달의 신도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찬드라입니다. 이들에 관한 그림만 해도 여섯 폭이 책에 실렸는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그림 같기도 하고 피카소의 작품마냥 달관의 생략이 느껴지기도 하며 마치 신문 만평처럼 풍자와 해학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문화권에 무관하게 사람의 도리, 예절, 의리, 윤리는 어느 신화 체계에서나 강조되는 덕목입니다. 사람이 받은 게 있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갚을 때에는 엉뚱한(무고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해서 안 되지만, 은혜를 갚을 상황에서는 (은인 혹은 그 관계인에게 갚는 게 불가능하다면) 누구에게나 베풀어도 무방합니다. 어차피 처음에 베푼 이가, 이자까지 쳐서 되받을 생각으로 그리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 어미새는 새끼를 구해 준 은혜를 갚고 청년이 꿈에도 그리던 처녀와 결혼하게 도와 줍니다. 동물도 그 사는 이치가 이러하거늘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인종적으로 지리적으로 다소 먼 거리지만, 이런 훈훈한 정서(그리고 이를 표현한 그림의 개성)만큼은 우리 문화와 확실히 닮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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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토익 스피킹 입문 | My Reviews & etc 2019-12-2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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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결정적 新 토익 스피킹 입문 Level 5-6

김소라 저
Pub.365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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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토익이 아주 요령 위주의 시험이라서 설령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 못 하더라도 그저 점수만 높이는 요령이 널리 통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점수따기 경쟁이 벌어지는 한국인들이 그저 요령만으로 시험 제도 하나를 유린하기란 그저 식은죽먹기였을 뿐입니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으나 토익 본부(주관 단체인 미국 ETS 등)에서도 이 점을 의식했는지 제도를 크게 개편하였습니다. 스피킹 같은 것은 예전 분들에게는 꽤나 낯선 파트이겠습니다.

외국어는 그저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가서 무수히 많은 접촉, 자극, 소통을 해야 발음도 나아지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발화가 바로바로 나오겠으나 그럴 여건이 못 되는 이들도 많고, 어쩌면 구태여 외국에 안 나가고 독학만으로 터득하는 게 진정한 능력이고 성취인지도 모릅니다(무엇보다 돈을 덜 들이는 게 메리트죠). 이런 토종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장벽이, 발음기호, 철자 따위와 전혀 매치가 안 되는 듯한 발음 익히기입니다. 사실 국제음성기호는 "아, 에, 이, 오, 우"가 명확히 읽히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에 영어에는 잘 통하지 않는 면이 많고, 미국, 영국 등에서는 아예 잘 쓰지도 않습니다. 프린스턴 리뷰 같은 데서 내놓는 영어 교재는 발음기호를 잘 쓰지도 않고, 한국어판에서 부랴부랴 국내 학습자를 위해 병기하는 해프닝이 벌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 김소라 강사님의 <결정적 토익 스피킹>에서는 단어나 문장마다 일일이 한국어로 발음을 적어 놓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영어 교재에 이렇게 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발음은 어디까지나 원어민의 발음을, 음원을 통해 익혀야 올바른 학습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초심자, 입문자에게는 아무리 그렇게 하라고 시켜 봐야 그 첫번째 장벽을 넘지 못하고 매번 그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레서 이 책 저자님처럼 최대한 한글로 원 발음에 가깝게 써 놓은 건 매우 실용적인 접근이라고 생각되네요.

예를 들어 maintenance 같은 것은 [메인-는쓰]같이 쓰고, 강세가 놓이는 첫 음절은 볼드체로 굵게 써 놓았습니다. 책에도 여러 차례 강조되지만 t 발음은 특히 미국 구어에서 거의 발음되지 않습니다(정확하게는, 발음이 되기는 하나 성대가 긴장된 채 울리는 단계에서 그치죠. 아랍어에도 이런 발음이 있습니다).

operation, approach 처럼 첫 음절에 강세가 안 오는 단어들은 [어]처럼 발음을 써 놨지만, occasion 같은 것은(같은 o로 시작하는데도) [으]로 써 놓았습니다. 이건 사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실제 원어민의 발음을 들어 보면 그렇게 정말 들립니다. 저자의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죠.

토익 스피킹 점수 안 나오는 분들은 대략 두 가지 유형 같습니다. 1) 하나는 말하는 스크립트 내용 자체를 머리 속에서 바로바로 구성 못하는 경우이며, 2) 다른 하나는 문장은 잘 만드는데 발음이 나빠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점수를 다 까먹는 케이스. 물론 상당수는 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합니다. 제가 2주 가까이 이 책을 "초보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본 결과, 책은 한국 학습자들의 약점을 정확히 캐치하고 이 두 가지 학습자층을 집중 공략한 듯합니다.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점수가 안 오르는 사람한테 "점수 오르는 방법"만 딱딱 찍어서 컴팩트하게 정리한 책이, 수험서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답변에도 전략이 필요한데,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바로바로 말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가만있자, 이 말이 문법적으로는 오류가 없나?"라며 자체 점검을 하고 머뭇거리고 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때 저자는 앞에 나온 표현을 최대한 활용하라(p76), 어떻게 하든 내용 전체의 요지를 잘 파악하면 설령 몇가지 정보를 빼먹었다 해도 순발력 있게 재구성할 수 있다(p120), 그 와중에도 "묘사할 인물 등을 미리 정해 두라(p50) 같은 걸 전략으로 제시합니다. 이런 건 사실 영어뿐이 아니라 한국어로 진행하는 PT, 인터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 문단에서 1)이 안되는 이들은 사실 영어만 안되는 게 아니라 한국말도 잘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초보 스킬을 넘어 "문장들이 응집력 있게 연결되어야 한다"거나, "표의 정보가 일치하는 어휘가 들리면 위치를 바로 파악하라"거나 "한 가지 해결책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라" (p161)같은, 어떤 근본의 원칙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토익 단기 고득점도 고득점이지만, 언어 소통에 있어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소통의 정석(언어 종류와 무관하게)을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되어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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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0대 병법 | My Reviews & etc 2019-12-2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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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 10대 병법

노병천 저
연경문화사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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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꾀주머니였던 장자방도 혼자 힘으로 그런 경지에 오른 게 아닙니다. 장자방은 본디부터 존귀한 가문 출신이었고, 입지전적 출세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던 몸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마치 전국시대의 책사, 세객처럼 지혜를 갈고 닦으며 "누군가에게 쓰일 몸"이라도 되었다는 양 거사의 풍모를 갖추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사서에 나온 하나 확실한 전거를 들자면, 황석공이라는 신이한 노인에게서 전수받은 <삼략(三略)>을 탐독한 사실을 꼽을수 있겠습니다. 가문 내력으로 이어오던 한(韓) 왕실에의 보좌, 그 중흥을 꿈꾸다 좌절된 의기를 자기 수련의 동기로 승화시켰다는 시각이 유력한 상황이죠. 

저자께서도 지적하시는 대로, <삼략(三略)>은 그 기원을 한참 더 거슬러올라가 아예 태공망 여상의 명의로 잡는 입장도 있습니다만 이 설은 많은 이들에게서 지적 받듯 그 근거가 희박합니다.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여겨진 많은 저술이 후세의 고증을 통해 드러나듯, 이 책 역시, 장량이 보좌해 건국을 도운 전한이 망하고, 후한 역시 광무제의 출중한 재능과 노력에 의해 건립된 지 이백여년 만에 무너졌으며, 통일의 가망이 보이지 않던 이후 누백년 간의 분열상을 다 거쳐 관롱 집단의 부각이 결국 기반을 마련한 수- 당 초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저술되었다는 지적이 이론적 호응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즉, 실제로는 (강태공은커녕) 장량의 활약기보다도 근 8백년이 지나서야 쓰여진 셈인데, 이는 사실 우리 동양뿐 아니라 서양의 많은 고전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 편입니다. 평판이 확고한 저자의 책이 아니면 읽지 않는 풍조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으며, 따라서 탁월한 내용을 담은 저서라고 해도 위조된 명의를 겉에 걸어야만 독자층의 저변 확대를 기대할 수 있었겠죠.

"병법"이라는 분류 범주, 혹은 제명(題名) 때문에 현대의 독자들은 간혹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예컨대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는 흔히 병법서로 일컬어지지만, 내용의 실질은 군사 운용의 원칙과 세부 지침에 대한 게 아니라 검법 수련, 자기 연마, 처세와 경륜의 도(道) 등을 논하고 있습니다. 만약 미야모토 무사시가 실제로 그 책을 지은 게 맞다면, 그 저술의 아득한 전범은 그의 시대로부터 천 년 가까이 전에 지어진, 바로 이 책이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실제로 이 책은 실전에 임하여 뭇 부하들을 통솔하는 요령,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쌓는 기법, 방약무인-황음무도를 피하고 부하들과 일체가 될 수 있는 리더십 등에 대해 주로 "도덕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가르침을 잔뜩 담고 있습니다. 편제는 상-중-하의 세 방략(方略)으로 나뉘었다 하여 우리가 보다시피 제목이 "삼략"입니다. 흔히 전국 시대 책사들이 즐겨 원용하는 "상-중-하의 삼책"과는 의미가 좀 달라서, 이 책에 실린 "상중하략"은 그 위계나 경중을 따져 논하기가 어려울 만큼 소중한 가르침과 지혜로 가득합니다. 

권변이란,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황에 따라 태세를 바꾸는 게 아니라, "임기응변"이 그 본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그게 그 말 아니냐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른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적응적 기대"와 "합리적 기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죠. 변하는 상황이 어떤 대응을 요구할 때, 상황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반응만 보여서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국면을 바꿀 수 없습니다. A라는 문제 제기에 맞서 으레 A`라는 답을 내놓겠거니 주위에서 예상할 때, 느닷 A``에 이은 B를 내놓을 줄 알아야 그게 참된 임기응변이란 뜻입니다. 인간이 알파고가 두는 상수(上手)를 보고 그저 방어에 급급하면 그건 임기응변이 아닙니다. 컴퓨터가 예비한 모든 국면(경우의 수를 일일이 다 따지는 게 아닙니다. 그걸로는 도저히 사람이 기계를 못 당해내죠. 종목이 바둑인 이상 어느 국면으로 번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한 수가 꼭 있습니다)을 선제 제압할 수 있는 파훼법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사람의 장기는 계산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임기응변 능력에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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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계획성 | My Reviews & etc 2019-12-2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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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린이를 위한 계획성

서지원 글/이영림 그림
위즈덤하우스 | 201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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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잘 꾸리는 건 물론 중요합니다. 어느 회사이건 최고의 두뇌가 곧 기획통으로 키워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죠. 하지만 19세기 독일 통일의 주역 大 몰트케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전투 한 번만 거치면 살아남는 작전안이란 거의 없다." 아까 낮에 마이크 타이슨 특집 방송에도 잠시 그 비슷한 "명언"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사실 현장에서 직접 여러 상황을 진두지휘해 보면, 어떤 완성된 안(案)이나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돌발상황에서 얼마나 잘 돌아가는 머리로 즉흥 대처법을 잘 꾸리는지가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 인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갱요가 준가르를 평정하고 귀환했을 때도 옹정제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짐짓 게을리하며 말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이었는지 그저 정치 투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너 따위가 알 리 없다"는 무언의 시위였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행력이란, 책상머리에 앉아 도출된 그 어떤 시안이나 아름다운 알고리즘보다 중요합니다. 직접 성과를 내어야 하는 인재에게, 실행력은 그가 가진 역량이나 잠재력 모두라고 할 만큼 중요한 tool입니다.

목표의 수립 역시 중요한 단계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가진 역량 모두를 투입함에 있어, 전략적 목표의 바른 설정이 선행되어야만 괜한 헛수고를 방지할 수 있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안이 중요하고 전략의 자체완결성이 필수적이라도, 이를 현실에서 어떻게 매 단계의 성취와 검증으로 연결시킬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행이 없으면 성과가 없다"라는 명제는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지만, 필드를 뛰어 보면 그 우수한 두뇌를 보유한 많은 이들이 얼마나 "계획 곧 성과"로 착각하는지 놀라울 만큼입니다. 그만큼 기안의 완전무결함에 도달하기가 어렵기에, 인간의 본성인 자기 평가에의 biasedness를 떨칠 수 없음의 실증이지만, 많은 기획이 자체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휴지통으로 향하는 게 다 이런 실행력에의 인식 부족 때문이라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실행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 이게 참 뼈아픈 지적입니다. 부장에게 과장에게 깨지는 직원이 있다고 가정하죠. 대개 이런 경우 뭣 때문에 지적을 받을까요? 안건을 검토해 보면 부실하게 넘어간 중간 과정이 있거나, 숫자 처리가 부정확하거나, 심지어 맞춤법이 틀려서(ㅎㅎ) 이런 걸 못 참고 넘어가는 깐깐한 상사에게 박살이 나는 겁니다. 지금은 많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만 예전 세대 부모님들이 왜 자식을 기술자, 노동자로 키우지 않고 책상 앞에서 펜대 굴리는 사무직 직원으로,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을까요? 이처럼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지 않고 육체적으로 축나지 않고 책상 물림으로 호강하는 녀석들이, 그 알량한(아니지만) 사무 처리 하나 못 하냐면서, 너 같은 건 그냥 공사 현장에나 나가서 뛰어야 한다는 듯 다그치던 풍조가 현재에까지 이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1970년대 초반엔 현대 등 대기업들도 건설업 따위가 성장의 추축이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요즘엔 전세가 역전되어 현장 근로자들이 툭하면 파업한다고 상전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사실 사무직도 실행을 점검하는 알고리즘, 피드백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야 하고, 아직 중국 같은 데서 한국을 못 따라오는 부문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자께서는 이미 한참 윗세대이니까 이런 아쉬움을 책에서 토로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대기업에서 그런 요소 관련 업무 혁신이 안 이뤄졌을 리가 없죠. 기안의 완결성 못지 않게, 실제로 집행 과정에서 개별 단계와 과업이 얼마나 현실화되고, 각 단계가 얼마나 정밀하게 성과가 계측되는지도 이미 일부 대기업에선 눈에 띄게 실무화, 정량화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정작 실무에서 중요한 게 이 단계인데 지난 시절에는 그냥 대충 넘어가거나 "알아서 하라거나" 느낌으로 점검하고 말던 관행이 분명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을 결코 못 따라잡을 것 같은 게 이런 세밀한, 업무 과정의 미세한 정신적, 비가시적 알고리즘의 빈틈입니다. 첫째는 여자처럼 세밀한 살핌과 꼼꼼한 뒷마무리가 요구되며, 둘째 남의 시스템을 통째 베껴 적용할 때 이런 부분이 자기네 조직의 체질과 정반대일 수 있기 때문에 전체가 망하는 게 비일비재하며(따라서 설사 다른 걸 베끼더라도 이 부문만큼은 자기 회사 체질에 맞춰 재 세팅을 해야 합니다), 셋째 기본적으로 창의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실행이 중요하다 함은 "야,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 같은 무식한 군대식 명령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의 체질과 역량에 대한 정확한 SWOT 분석이 이뤄진 후에 달성 가능한 과업이고, 기안이나 기획과는 또다른 차원의 영역임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죠. 우리도 모르던 사이에 발전시켜 온 강점을 잘 유지하고, 이로부터 지속적이며 대체 불가능한 혁신을 추진해야겠습니다. 진짜 혁신은 기술 분야에서라기보다, 경영 섹터에서 이뤄져야 그게 지속적입니다. 기술은 금방 남이 따라할 수 있고,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쫓아갈 수(삼성이 그만큼 빨리 스마트폰 양산 체제를 갖춘 게... ㅎㅎ)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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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9-12-2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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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

이장원 편
한국노동연구원 | 200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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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으로 당장 눈에 밟히는 더러운 이익 추구에 몰두하면 그 획득 과정이 오래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행여 법적 제재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라도 한다면 쓸어모은 이익의 몇 배를 환수, 추징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시적, 현실적 불이익을 떠나,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어디까지나 체제와 사회 구조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익도 올리고 영리도 추구하며 자아실현도 이루는 겁니다. 그렇다면 만인의 박수와 환호, 나아가 "사랑"을 받으며 돈을 벌어도 버는 게 무엇보다 본인(개인이든 기업이든)의 마음도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수조 원의 돈을 꿍쳐두고 행여 여론으로부터 주목받거나 공권력의 응징이 덮쳐 올까 전전긍긍하며 잠을 못 이룬다면 그 많은 돈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돈을 멋지게 버는 것과, 그 번 돈을 멋들어지게 쓰는 건 다른 재주라고도 하지만(예전 인촌 김성수 선생의 부친이 한 말이죠), 번 돈을 뜻 있게 쓰는 게 다른 채널로 돈을 벌어들이는 인접 단계, 전초 과정이기도 하다면, 사회 참여나 봉사는 그저 선행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비즈니스 프로세스요 "돈 버는 머리"이기도 합니다. 저자 두 분은 실제로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의미 있게 돈을 쓰고 돈을 버는" 예를 취재, 체험도 했을 뿐 아니라, 이른바 "메디치식 참여와 후원"이 (그리 널리 홍보도 안 된 채) 이미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집행되어 가치 사슬의 확고한 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팩트에 주목했습니다. 큰 규모와 명성, 재력을 지닌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나아가 개개인도 얼마든지 이 새로운 비즈니스 채널에 몸을 담고, 새로운 이익 창출의 한 통로나 모델로 삼을 수 있을 듯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구체적인 여러 실제 사례를 통해 이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CSR은 그저 도덕군자의 훈계가 아닙니다. 저자는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어느 말(그의 말은 유명하지 않은 게 드뭅니다만)을 인용하며 시어스(백화점)의 회생 사례를 소개합니다. 

"converting social problems into business opportunities"

잘못 곡해하면 약삭 빠르게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소리로도 들리지만 대중과 사회가 그리 눈먼 호구들은 아니라서, 이 사람이 남의 불행을 얍삽하게 이용하려 드는지 아닌지는 바로 눈치를 챕니다.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를 해결해 준다며 현지에 침투한 중국 자본이 어느새 검은 속내를 들키고 냉랭한 반응만 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과거 경영난에 처했던 시어스에 취임한 로젠버그 회장은 농촌 인구를 새로운 구매층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짰습니다(이제는 시어스의 사례가, 우편 카탈로그 발송을 통한 주문 유도 전략으로 널리 더 알려졌죠). 하지만 농민들이 어디 돈이 있어야 백화점 물건을 살 것 아니겠습니까? 농민의 소득 증대가 곧 백화점 수요 증진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그는 곧바로 농촌의 젊은 지도자 양성 코스, 4H 운동 발주 등을 통해 농촌의 자립, 자조 분위기 형성에 주력했습니다. 훨씬 뒤 이뤄진 한국의 새마을 운동도 이로부터 큰 영향과 참고 대상을 찾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일본은 특색 있는 이념과 경영 마인드를 지닌 상인층이 전국시대나 에도 막부 시절부터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고 정치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중 오오미(近江) 상인들을 보면, 이른바 삼보(三方. 삼방)의 요시(良し)라고 해서, 세 부면의 당사자가 모두 만족하는 게 진정한 비즈니스의 길임을 일찍부터 강조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잘 아는 이토추 상사 역시 이 오오미 상인들의 후신이라고 하니, 지속 가능한 이윤 창출과 사회적 소통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신약 개발과 그를 통한 막대한 이윤 창출 간의 관계 설정은 여전히 해결이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윤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누가 실패의 막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하겠으며, 그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낸들 합당한 보상이 안 따르면 우수한 인재가 이에 헌신, 투신할 동기가 안 생깁니다. 이뿐 아니라 사회에 엄청난 기여, 후생을 베푼 이에게는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정의이기도 합니다. 유명해지고 적당히 칭찬 받았으면 됐네, 그걸로 만족혀." 이건 도둑놈 심뽀죠.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특히 아프리카 특정 지역에 만연한 회선사상충의 퇴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십 년 간 인체에 머무르다 성충이 된 후 인체의 각막에까지 도달해 마침내 실명을 유발하는 무서운 녀석이죠.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적의 3대 신약"이라고까지 부른다는데, 정작 이 약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은 돈이 없어 구매, 투약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기적의 신약 이버멕틴을 두고, 경영자이자 오너인 조지 머크 주니어는 "약은 그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가야 한다"며 대승적으로 아프리카의 환자들에게 무료 보급하는 대결단을 내렸습니다. 머크 컴퍼니는 이 결정을 통해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고 으뜸가는 메이저 의약사로 위상을 다졌지만, 솔직히 이런 인도적인 조치를 단행한 이에게 고작 그런 식으로 "사회적 보상"이 이뤄졌다고 정리하고 말기에는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드는군요. 이익의 주판알을 튕기지 않고, "do the right thing"의 통큰 결단을 내린 분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저런 분의 천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이익을 가지고도 얼마나 좀스럽게 굴곤 합니까. 그러나 당장의 이윤 획득에 연연하지 않는 선한 심성의 증명으로, 이 회사와 CEO는 다른 기업이 백 년 이백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할 존경과 평판을 얻어낸 겁니다. 혹시 머크 컴퍼니의 이름을 아직도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그 위대한 인도주의와 과감한 참여 봉사 정신을 주위에 널리 전파하고 홍보해 주는 게 어떨까요. 

스튜어트 브리트 교수의 명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광고 없이 영업 활동을 하는 건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에서 연인을 향해 윙크하는 것이나 같다." 많은 중소기업은 사회 참여와 csr 구현을 원하면서도, 그 방법을 몰라 결국 지레 중도 포기하고 합니다. 저자들의 제언은, "일단 시도해 보라. 그 역시 봉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면, 영리 추구에 쏟는 열정과 집중력으로 올바른 채널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입니다. 끝까지 목표를 향해 전력하지 않는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봉사" 이상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봉사가 아니라 일이라고 여기면 그 정도에 그치겠습니까? "빅 프라핏 사업 모델"은 그래서 기존 영업과 시너지 효과도 낳고, 이 시대의 위너 기업이 어떤 채널까지도 다양히 열어 놓거나 참여하는지 정확한 안목까지도 넓혀 준다고 하겠습니다.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 대중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업의 횡포나 이기적 행태에 대해 지탄과 원망만 할 뿐, 정작 그들이 잘하는 일에 대해서 칭찬과 관심을 베푸나요? 이기적이고 속 좁은 소비자만 잔뜩 깔린 사회에 대해서는 어느 기업도 통 크게 기여하지 않으려 들 겁니다. 잘하는 선행, 착한 회사에 대해서 우리 대중들도 눈을 밝게 열고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려 들어야 모두가 상생하는 훈훈하고 밝은 사회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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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에 마음 부자가 된 키라 | My Reviews & etc 2019-12-2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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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열세 살에 마음 부자가 된 키라

보도 섀퍼 글/원유미 그림/유영미 역
을파소(21세기북스) |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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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이 그 가진 돈만으로 재단되는 세상이 바야흐로 닥쳐 왔습니다. <금병매>에 보면 서문경 일당들이 농담을 주고 받다 "그런 일을 하면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까?"라는 말을 받아 "아 성님, 돈이면 전부지 목숨은 뒀다 뭣에 쓰려구요?"라 하는 통에 큰 웃음을 터뜨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제 생명을 아끼느라 몸을 도사리게 마련인데, 그 본능마저도 순간 잊게 만드는 게 물욕이며, 이 물욕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생존 양식을 찾아 시스템을 구축한 게 현대 자본주의라 일컬을 만합니다.


저는 일전에 마틴 프리드슨이 쓴, 같은 주제 슈퍼리치를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이 구체적인 부(富)의 형성 과정을, 기술적 내용으로 드라이한 필치를 통해 그려 내었다면, 스티브 포브스가 쓴 이 책은 보다 역사통찰적 성격의 접근을 구사하여, 현대에 있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극소수의 부호가 갖는 사회학적 의의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두 가지 포인트에서 책 읽는 쾌감이 느껴질 것 같은데요. 하나는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거부(巨富)들의 행전(行傳)을 통해 실존 인물들, 그 중에서도 축재(蓄財)에 있어 초인적인 성공을 보인 이들을 통해, 그들의 생애 어느 순간이 서민과 부호로서 행로를 가른 기로였는지 살피는 즐거움이겠습니다. 그들 역시 육신과 감정을 지닌 일개 인간이었을 뿐이며, 이들 인간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도전과 시련을 헤집고 나가며, 나아가 그들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소유한 재물을 지키기 의해 모럴과 원칙을 끝내 희생하기도 하는지, 그 좌절과 타락의 경로까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인간 심리의 조작에 능한 이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산 후 이를 바탕으로 돈을 벌어들였으며,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다시 수단으로 삼아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에 이르렀습니다. 자본은 이런 기만적인 프로세스의 원활한 작동에 힘입어 더욱 덩치를 불렸으며, 다만 이들 슈퍼리치들은 대단히 영리한 수완을 구사했기에, 돈의 노예가 되어 당초 자신의 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상황의 논리에 수동적으로 끌려 가진 않았습니다. 그저 부자들과 이들 "슈퍼 리치"들 사이의 차이점이 어디 있는지, 이 책은 실감 나게 서술해 주고 있었네요.

우리들은 비록 슈퍼리치가 될 수는 없다 해도, 그토록 큰 능력을 가진 이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에선 더 자유로울 수 있기에, 부분적으로 그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될 수는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책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이처럼 물질 일원의 척도가 폭력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시국에, 차분하고 깊은 성찰을 독자 스스로 이어나가게 도와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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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하) - 정범진 | My Reviews & etc 2019-12-2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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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기열전 (하)

사마천 저
까치(까치글방) | 199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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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는 비단 역사 서술 형식을 완성했다는 사실 말고도 다양한 고사를 품은 이야기 보따리라서 더 가치가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계기는 과거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서양고전선 중 제5권이었던 홍석보 譯 <사기열전>과의 만남이었는데 문장이 유려하여 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책프 9기 9주(2014. 3. 3)차에 리뷰를 남겼었습니다( http://cafe.naver.com/bookishman/409754 ).


홍석보 선생의 저 책은 현재 절판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습니다. 삼성출판사는 과거 세계명작 전집을 편찬하여 한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던 곳인데 요즘은 완전히 아동 도서 전문으로 전환해 버린 게 (저로서는) 아쉬울 뿐입니다. 제가 출판사에 개인적으로 연락도 해 봤는데 과거 전집류는 구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번역자들의 저작권은 다 어떻게 되는 건지... (시장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겠죠) 


여튼, 아직 삼성출판사의 책들이 아직 서점에서 다뤄질 무렵 도서출판 까치에서 성균관대 정범진 교수님과 그 제자분들 중심으로 새 번역을 내었고 저는 아직도 이 에디션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김원중 교수님(그 제자 중 한 분이죠), 故 신동준 선생 번역본 등이 나왔습니다만 여튼 개인적 선호는 그렇습니다. 예전에 알마에서 김영수 선생 번역본도 출간했고, 책좋사에서도 이벤트로 나왔었는데 2012년 일이며 이때는 제가 아직 회원 가입도 안 했을 무렵이네요^^ 


홍석보 선생의 책은 열전을 놓고서도 완역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일부 발췌역이었습니다. 다만 <골계열전>은 수록되었는데 물론 정범진 교수님 진용의 이 책은 완역이라서 내용 누락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혹시 야한 내용이라서 빠진 게 아닐까 멋대로 상상하기도 했습니다만 물론 단단히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예전 사극 <용의 눈물>을 보면 베테랑 배우 장항선씨가 개국공신 조영무 역을 코믹하게 연기합니다. 본래 그는 군졸 출신이었으나 방원 밑에서 큰 공을 세워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의 지위에까지 오르죠. 귀양살이 중 울분도 달래고 부족한 부분도 채울 겸 그는 책을 파고 들며 이때 습득한 교양으로 이후 재출사하고는 주변에다 사자성어를 마구잡이로 구사하는데 이 부분이 매우 우습습니다. 그 중 그릇되이 문자를 지껄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쓰인 사자성어가 "상사실지빈"입니다. 한자로는 相士失之貧이라 쓰고 네이버 국어 사전은 다음 링크처럼 풀이합니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b6fb72cbba284982ab7e73cbb8dd647f ). 


그런데 이 풀이를 보면, 특이하게도 다섯 자로 된 이 성어가 어째서 그런 뜻이 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좀 설명을 붙이자면, 이때의 상(相)은 품평하다, 관상을 보다 등의 뜻입니다. 그래서 相士失이란, "선비를 평가함에 있어서 저지르는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뒤의 "지", "빈"과 합쳐서, "그런 실수를 저지를 만한 가난한 형편"이라고 뜻이 풀립니다. 지금 이 책에도 나오듯, 대장군 위청과 동곽선생 사이에 있었던 고사가 그 출전인데, 사실 골계열전에 나오는 동방삭이나 동곽 선생 같은 이들은 그 실존 여부가 좀 의심도 되고, 실존 인물이라 해도 저런 에피소드가 다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큰 회의가 드는 게 사실입니다. 대장군 위청은 이 책의 중(中)권에 "위장군/표기열전"으로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멍텅구리는 언제나 자신의 좁은 소견 안에서 사물을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실수라는 건 어쩌다 한 번이라야 그게 실수이지, 매번 일을 그르친다면 그건 이미 본인의 진면목이지 실수가 아닙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화식열전"이 장식하는데 사농공상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으로는 과감히 할애할 수 없는 서술 혹은 편집태도입니다. 영어에 last but not the least라는 표현도 있지만, 세상을 뒤에서 진짜 움직이는 이들은 대(大)상인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새삼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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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종말 | My Reviews & etc 2019-12-2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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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지 길더 구글의 종말

조지 길더 저/이경식 역
청림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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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도래한 어떤 세상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몰락하고, 그 자리를 전혀 다른 또하나의 질서가 차지한다는 예언. 참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 조지 길더가 "앞으로는 구글의 세상이 올지니 잘 대비하라"고 이 책에서 말했다 쳐도 우리 독자들은 눈 크게 뜨고 집중해서 읽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그를 넘어, 저자는 이제 막 도래한 거인 구글이 괜한 짓을 벌이는 중이며, 이러이러한 이유로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발판이 되리라며, 대담하고 장구한 예언을 합니다. 독자로서 넋을 놓고 그의 박자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광막한 우주의 무수한 생명체들은 이미 떡하니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에 굴종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끝내는 압제를 거부하는 세력이 승리를 거두는데, 아마도 이런 희망적인 결론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토록 저 영화의 세계관을 지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광범위한 사건, 의지, 생각, 거래 따위를 포함하면 할수록 그를 통제하는 확고한 "중앙 집권 세력"을 필요로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럴수록 우주는 이를 배척하며, 또 그럴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디지털 혁명은 이미 사람이 사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았으며, 이는 첫째 개인 레벨에서의 보안 강화, 둘째 (그러므로 필연적이게 될) 탈 중앙집권화의 원칙 준수, 이 둘이, 모든 개체의 생존을 위해, 또 질서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요구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IT 혁명 이후 이 판의 유일한 지배자로 군림하는 구글은 이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중이며, 그래서 구글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단지 구글뿐 아니라, 보안 경시, 광고의 타락한 기획과 집행, 뭐 이런 행태를 일삼는 아마존(특히 이 회사의 알렉사라든가, 애플의 시리 같은 음성 중심 주문 체제의 구축을 두고, 저자는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시도라며 힐난합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저자의 약력을 보면(저는 이 대목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무려 1939년생이시라고 나옵니다. 1939년.... 이분보다 십 년, 아니 이십 년 정도 연하라고 해도, 이미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적응 노력을 포기한 채 꼰대짓이나 일삼는 게 흔한 풍속입니다. 그러나 팔십을 훌쩍 넘긴 저자의 유연한 사고가 펼쳐 놓는 담론을 읽으면, 마치 이십 년 전의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자매)기 <매트릭스>에서 놀라운 환상(아마도 이미 현실이 된?)을 펼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할지(그러나 그들은 젊기라도 했죠). 


이미 <텔레비전 이후의 삶>에서도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신 적 있지만(그의 책들은 고도의 과학기술 이슈를 다루면서도 "문학, 이야기"처럼 신명나고 박력 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 "그런 주제를 이런 투로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싶게, 마치 판소리처럼 독특한 흥이 배어납니다. 나이 40까지 비즈니스, 정치 분야에서 자기 경력을 확실히 쌓다가 그 늦은 나이에 기술 담론 쪽으로 전향했는데, 이 분야 기초 소양인 미적분 등 고급 수학도 비로소 시작했다고 하며 이 책에도 그것 관련 회고가 잠시 나옵니다.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어디에 모여 있다. 당신들은 자발적으로, 또 공짜로 거기 모였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다른 것'을 위해 거기 동원된 것이다." 맥이 탁 풀리지만 정곡을 찌른 날카로운 한 마디입니다. 이게 뭘 두고 하는 말인가 하면, 바로 구글 서비스와 사업 핵심을 간파한 저자의 일침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정보를, 어떤 유능하고 거대한 회사가 제공하는 검색 서비스를 통해 얻습니다. 상당 부분은 오락과 호기심 충족, 상당 부분은 생계와 관련되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결과가 제법 만족스러우니 이를 가능케 한 구글의 "능력"에 속으로 경탄합니다. 바로 이걸 두고 저자는 크게 비웃는 겁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책 서두는, (직전)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 특히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이 어떻게 일반 대중이 모르는 새("대중"이란 개념도 비교적 새롭지만) 세상을 바꿔 놓았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그저 수학, 과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세상이 동작하는 질서를 탐구하여 이를 석명함으로써 그 근본 토대까지 변화시켰다는 겁니다. 직접 비교할 게 아닐지 모르지만,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를 신랄히 비난하며, 직전에 등장한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봉건제 등을 선명히 프레임화한 적 있습니다. 


책 제목을 다시 보죠. "구글의 종말(원제는 '라이프 애프터 구글'인데, 이 말이 벌써 '구글이 한 번은 망함'을 전제로 삼는 겁니다. 우리말 번역이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30년 전의 저서 <라이프 애프터 텔레비전>가 한국에 번역 소개되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비포 구글"에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었고, 구글과 함께 새로 등장한 질서는 이러이러한 취약점, 자기 모순이 있으며, 앞으로 그래서 구글식 질서는 망한다는 겁니다. 


엊그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과 한국형 AI 한돌 사이의 대국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AI도 이 책에서 중심 화두 중 하나인데, 저자의 표현을 잠시 인용하면 "... 문제는 인공지능 그 자체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을 개선한다는 많은 약속을 짊어진 매우 인상적인 기술(p175)일 뿐"이라는 거죠. 그럼 뭐가 진짜 문제인가? p49로 돌아가 보면 저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화폐 등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경쟁, 방황과 혼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처럼 느릿느릿하게 지식을 탐색(초기 알고리즘적 접근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하더군요)하는 게 아니라(본인도 아마 그러셨겠죠?)" 무한히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센서 프로세서(우리의 뇌도 이에 가깝다고 합니다)"가 주도하는 세상이 곧 도래한다... 


저 "느릿느릿 탐구"하는 진리 체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졌던 이가 다비트 힐버트(뿐 아니라 앞선 그 모든 과학자, 철학자들이 거의 다 포함되죠)였으며, 이런 신뢰를 무참히 뭉개 버린 이가 괴델이었고, 힐버트의 저자이기도 했으며 이 과정을 다 지켜 본 폰 노이만이 그 맹아를 다진 게 바로 "정보 중심의 패러다임"입니다. 이것도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사상사를 이런 식으로 간편명쾌하게 정리하는 트렌드도 따지고 보면 이 조지 길더가 선구자입니다. 


새로운 질서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미 전작 <마이크로코즘>에서 잘 설명했지만 저자는 여기서 다시 한 번 1) 개인 차원의 보안 2) 탈중앙집권화 등을 거론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유전자가 이처럼이나 세상에 번성하게 되었는가. 위의 원칙들을 잘 지켜서 그렇다는 거죠. 책 후반부에는 "구글의 종말"을 끌고 올 블록체인 등을 설명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와의 "대화"에 대해 긴 분량을 할애합니다. 아직도 그의 실체에 대해 논쟁이 분분한 가운데 이 책에서의 "나카모토 사토시"는 자신을 사칭한 누군가에 대해 분개하기도 하고, "자기 말을 못 알아 먹는" 저자에 대해 경멸감을 드러내는 등 생생한 피와 살을 지닌 실물의 이미지라 더 재미있습니다.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아인슈타인이 처음 상대성 이론을 들고 왔을 때 이해 못했던 이들도, 그가 새롭게 해석하는 뉴턴 이론을 설명할 때 뭔가 새로운 각성이 왔었다고 하죠. 이 책 저자 조지 길더가 말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해 설사 이해가 어렵다고 해도, 그가 극복된다고 예언한 현 질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참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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