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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TOMS ACT 관세법 - 전순환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9-07-3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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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세법

전순환 저
한올출판사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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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타 관세법 교재보다 좀 두껍습니다. 처음에는 폰트가 큰 편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내용이 굉장히 빽빽한 책이었습니다. 또 본문에, 거의 모든 설명에 법적 근거를 (필요한 경우에 한해) 작은 폰트로 조문까지 명시해 놓아서 수험생이 수시로 참조할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마치 학부 때 공부하던 법학 교과서를 다시 펴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본문 외에, 관세법(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등 법규 전문이 부록으로 다 실린 이유도 없진 않습니다.


p66을 보면 가격신고의 방법이 정리되었습니다. 크게 두 사항인데 수입관련거래에 관한 사항, 그리고 과세가격산출내용에 관한 사항입니다. 이 모두는 세관장에게 서류로 적혀 제출되어야 하며 구두 신고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항에까지도 바로 그 뒤에, 작은 폰트로 관세법 27조 1항 본문, 15조 1항 하는 식으로 조문 명기가 되어 있습니다. 수험용 교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편집이라서 약간 놀랐습니다.

수험생들이 상당히 어려워하는 파트 중 하나가 관세의 담보제도입니다. 일단 담보제공사유는 다양한데, p163에 모두 13가지 경우가 표로 정리되었습니다. 관세법 중 어느 하나의 챕터(장)에 몰아서 규정된 게 아니라 법 전체 범위에 걸쳐 산재되었기 때문에 공부할 때에는 정리, 취합이 된 상태로 보아야 효율적입니다. 예를 들어 ⑬은 법률 규정 사항이 아니라 (책에 나오듯이) 하위 시행령 2조 5항에 근거합니다. 제가 더 놀란 건, 이 표에 정리된 사항 하나하나에 대해 바로 다음 페이지에 13개 사항에 대해 하나하나가 다 설명이 된다는 점입니다. 보통 수험교재는 표로 정리해서 한 번만 보여 주고 끝이거든요.


사실 면세, 세액공제, 소득공제 등 과세 특례는 가능하면 적은 게 국가경제를 위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불가피하게 면세 등의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번거롭기는 해도 시험에는 이런 게 출제가 자주 되므로 철저하게 공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215를 보면 특정물품에 대한 면세가 정리되었는데 제가 여태 공부해 본 중에서는 이 교재가 가장 깔끔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p249를 보면 수출용원자재 등의 감면세 및 환급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이것도 영어 표기까지 옆에 제시되었기 때문에 추가로 더 정보를 찾아서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편집입니다. p328을 보면 제품이나 원료 수입시의 과세방법이 서술되는데, 많은 수험생들이 어려워하는 내외국물품 혼용승인에 의한 비례과세 파트도 일일이 조항 근거가 명시된 데다, 가능하면 쉬운 말로 서술되어서 훨씬 읽기가 편합니다.


수출물품의 검사는 기본적으로 세관공무원의 권한입니다. 관세청장이 그 대상, 범위, 방법에 대해 필요한 기준을 정하는 게 (p396에서 보듯) 관세법 246조 1항에 근거를 둡니다. 현장에서 생기는 그 많은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그 기준이 사실 이 조항에 바탕했던 거죠. 예외적으로 통관우체국장의 권한에 대해 법 257에 규정이 있는데 p407에 나오듯 이 역시 관련공무원을 참석시켜서 진행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관세법은 형사처벌 조항이 많은 편이 속합니다. p456에 표로 관세범(犯) 조사 방법이 나오는데 임의조사, 강제조사 등이 설명되고, 내용이 많은 건 강제조사 파트입니다. 이는 형사구성요건뿐 아니라 절차까지 자세히, 법 자체가 규정하기 때문에 단행법치고는 좀 이례적인 편이긴 합니다. 양이 많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합격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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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in 매너 | My Reviews & etc 2019-07-3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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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엣지 in 매너

서윤정 저
대왕사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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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 말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준별하기란 어쩌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나갈 처세의 본체에 해당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해 줘야 할 것을 제대로 찔러 주는 상황이 과연 무엇인지 언제나 실수 없이 판별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엣지 있는" 대화를 엣지 있는 처세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멋진 대화로 상황을 리드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이건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못 끌어나갈 바 없습니다. 이처럼 소소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얻어내어야 할 모든 이점을 일일이 챙기고 든다면,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른바 "성공에의 편안한 지름길"로 오로지 센스 있는 대화를 통해 질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인생 초기 단계에 시련을 많이 겪은 저자의 1인칭 회고담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자계서를 읽다 보면 이런 서두를 자주 접하기 때문에, 과연 이게 얼마나 자신의 진정한 경험에서 유래했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없지 않습니다. 여튼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저자나 강사(많은 베스트셀러 자계서 저자들이 그러하듯 이분도 이름난 강사 중 한 명입니다)들은, 그런 비장한 회고를 단호한 충고로 변환하여 독자와 청중에게 전달합니다. 어떤 달콤한 위로를 통해 힐링을 기대했던 "귀들"로서는 다소 의외의 "콜드 터키"를 맞이하는 셈인데, 차디찬 현실의 엄정한 맨살과 뼈대 사이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바로 실감케 하고, 뒤이어 지체 없는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는 게 이들 노련한 모티베이터들의 일관된 전략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람들을 겪으며 웃지 않을 수 없는 건, 실제로 미국인들 역시 "자계서의 효용과 판에 박힌 태도"에 치를 떨기도 하며, 성공을 위해 자계서를 파고 드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을 비웃는 게 일상에서 일종의 즐거운 클리셰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한국과 뭐가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니 삶이 바뀌기라도 하냐?" 그런데도 어떤 책은 그런 진지한 기대를 품는 독자들에게 마치 종교 경전처럼 열의 있게 읽힙니다. 아까 퇴근길에도 (아직 취준생처럼 보이는) 어떤 청년이 이건희 회장 관련 책을 떡하니 보란 듯 펼치고 읽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저럴 시간에 다른 책을 보는 게 "진짜 자기계발"을 위해서나 당면 과제를 위해서나 더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긴 그 친구는 나이나 젊지, 그 친구 엄마뻘로 나이를 먹고서도 추첨 중독과 현실 왜곡, 미래를 빙자한 망상에 빠져 죄악에 가까운 시간 낭비를 일삼는 인생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 역시 타고난 성격 결함이 평범한 인간을 "정신나감"의 단계까지 이르게 하는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저런 중독자를 엄마로 둔 아이들의 미래는 또 어떻게 되는 건지 개탄스럽기만 할 뿐이죠. 교도소를 밥먹듯 드나드는 문제인생들의 출발점도 그 먼 시작은 다 이처럼 가정을 소홀히하는 중독자, 문제 부모들로부터 비롯했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책은 필요 없다!" 그렇습니다. 사실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책도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성공을 하고 싶으면 이미 당신이 성공을 이뤘으며, 그 성공한 패턴에 맞춰 일상의 모든 행동을 바꿔 나가라"고 조언합니다. 사람의 동기를 뿌리부터 바꾸려는 일류 모티베이터들의 공통된 전략이기도 하죠. 중독자는 이와 달리 그저 추첨이 요행수로 과녁만 맞추기를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빕니다. 하루 24시간이 있다면 중독자는 이벤트나 모집 껀수를 찾아 25시간을 당첨 기원에 보냅니다. 하다못해 그 시간에 빨래를 했다면 아마 그 늙은 나이에 빨래방 체인 창업주로라도 자립하여 허구헌날 당첨이나 빌고 앉은 처량한 처지를 일찌감치 벗어났을 테죠.

여기서 우리 독자들은 제목의 EDGY가 저자의 맥락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E는 극한(익스트림)을 뜻합니다. 이때 뭘 극한으로 몰고가야 하냐면, 다름 아닌 노력입니다. 아직도 미국 굴지의 대기업으로 거시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제네럴 일렉트릭은 바로 노력의 화신 토머스 앨버 에디슨이 세운 회사의 후신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아주 공명될 만한 주장을 폅니다만, 노력에 있어 평균치만 하고 마는 건 없다. 아주 극한까지 밀고나가야 경쟁자들을 제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는 타인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성공을 이루려는 당신이 매 순간 극한까지 밀고나가며 새로 정하는 것이다." 이때 노력과 정성이 건설적인 방향에 쓰여져야지, 추첨 중독자처럼 극한의 단순 반복 행동과 헛소리 낭독에만 투자된다면 결국 정신도 나가고 눈도 멀 수밖에 없습니다.

두번째로 D는 단련된 활동입니다. 역자 겸 사장님께선 이를 "단련"으로 번역하셨지만 제가 책을 읽어 보니 맥락 속에서는 "규율"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앞의 조언과 연결되는 실천적 훈령이기도 합니다만, 단순 반복이나 그저 평균치만 채우려는 얄팍하고 불성실한 마음에는 깃들 수 없는 게 이 "규율, 단련"이기도 합니다. 독자인 제가 이해하기에 이 가르침은 첫번째와 대비하여 어떤 "양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전자는 "정도"의 문제). 단련이든 규율이든 이에 확고한 실체를 부여하려면 일단 최초 계획이 존재해야 합니다. 물론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존재하고 정직한 노력과 감당 가능한 목표를 전제로 하는 게 계획이지, 어떤 망상이나 정신 나간 헛발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추첨이나 하던 머리로 등단을 망상한다든가 하는 건, 단련이나 규율 혹은 그 무엇으로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입니다.

셋째로 G는 "기버(giver)"의 마음가짐입니다. 보통 자기만 아는 돼지형 추첨꾼들은 자기만 아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으로 추첨에 몰입하지만, 추첨 경품이란 대개 경제적 가치와 재생산 여지가 전무한(최소한 추첨꾼에게는 그렇습니다) 것들이기에 그들은 언제나 궁핍 상태를 못 벗어납니다. 많은 일류 저자들은 이런 졸렬한 테이커형 행위자들이 결국은 자기 잇속도 제대로 못 챙기고 평생 헛된 기원과 망상만 품다 눈먼 실패자로 전락함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멋진 지적을 하는데, 기버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삶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파악하고" 무엇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결정적 요인인지 핵심을 잘 꿰뚫기 때문이라는군요. 대체로 추첨꾼들의 외모는 "아름다움"과는 매우 거리가 먼 비틀린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대단원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전략"으로 멋진 논의를 마무리합니다.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당사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서툴고 탐욕스럽고 근시안적인 "인간"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런 서툴고 박복하며 미숙한 인간들은 사리의 본(本)과 말(末)을 전혀 가리지 못합니다. 이미 시냅스와 일체의 신경점이 파괴되었기에, 무엇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며, 그저 장내미생물이나 먼 조상이 제어하는 DNA 탓이겠거니 하며 엉뚱한 핑계를 대며 파멸에 가까운 우울로 썩은 내면을 가득 채웁니다(모두가 자업자득일 뿐).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이런 잘못된 늙은이들의 정해진 실패 패턴에서 벗어나려면, 바로 진정한 "사랑"을 품고 자신의 현실적인 과업에 애정을 쏟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헌데 실패하는 사람은 꼭 배우자와의 관계 설정도 배배 꼬인 게 사실이라, 이런 명절에도 괴이쩍은 객설이나 늘어놓으며 자신의 불행을 사방에 전파하며 개인적 농도를 낮추는 데 여념이 없죠. 허나 세상의 이치는 확산이 아닌 삼투(?透)로서, 오염의 근원은 결국 자체 파괴 기제로 인해 더욱 더러워지고 오염되게 마련이라 아무리 빨래를 해도 지워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불륜이나 간통이 아닌, 바로 진정한 "사랑"이 내면으로부터 각성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어찌 성공과 엣지 있는 삶과 개인의 참된 행복 그 비결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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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팬북 - 이안 스프라그 | My Reviews & etc 2019-07-29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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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팬북

이안 스프라그 저/이성모 역
한스미디어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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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그런 말이 한때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한 번쯤은 거쳐 보고 싶은 직업이 셋이 있는데..." 사실 이 말 안에는 왜곡된 남성 우월주의도 깃들었을 뿐 아니라 해당 직종에 대한 부정확한 낭만주의까지 자리했기에 그리 즐겨 입에 올릴 만한 "금언" 축에 낄 수는 없습니다. 저 말을 처음 코이닝한 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저 개인적으로 처음 저 말을 접한 "책의 저자(즉 인용자)"가 또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서... (요즘 시국에 이 사람 이름을 입에 올리면 큰 물의가 빚어질 듯ㅎㅎ)

아무튼 20세기 이후 연예인, 특급 스포츠 선수 등 이른바 셀럽들이 새로운 권력을 차지한 세상이 된 후로는 때로 필요 이상으로 이들 유명인사들이 과대 포장되어 대중의 선망을 받는 일이 잦습니다. 꼭 호날두 소속이 아니라 해도, 이탈리아 세리에A 소속 유구한 역사의 명문 팀인 유벤투스가, 주전 중심으로 내한한 사실 자체가 화제성 충분한 이벤트였음도 분명합니다. 아주 예전, 1980년대 초반에 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성적도 좋았을 뿐 아니라 역사도 미국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명문)가 내한하여 OB(현 두산), 삼성 등과 친선 경기를 가진 적 있는데, 이때에는 감독 행크 아론이 유명했을 뿐 한국에 온 선수들은 2진급이 많았습니다.

이번 사태(?)가, 경기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여전히 웹상에서 화제이며,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을 양분하는 두 스타 중 한 사람의 인성 등 실체(....)가 드러났다고까지 평가하는 이들이 워낙 많은지라 당분간은 계속 한국인의 화제에 오르내릴 것 같습니다. 이번 게임에는 호날두뿐 아니라 레전드 골키퍼인 부폰도 내한해서 좋은 기량, 좋은 인터뷰 태도, 좋은 영어 청취 실력(스피킹 실력은 확인 불가) 등을 보여 주었는데도 그냥 아오안입니다. 이 부폰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 국대와 16강전을 벌였을 때 바로 그 비운의 당사자이기도 해서 여러 모로 관심(저 개인적으로는)이 갔는데, 경기 후 인터뷰 하는 걸 보니 뭐 나이도 있고 해서 대인배스러운 면모가 이제는 살짝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저 레전드 부폰이 뒷전으로 밀릴 만큼, 호날두는 현재 슈퍼스타입니다. 이미 기량이 하강 곡선 변곡점을 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지금도 말입니다. 스타는 확실히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가 뒷받침을 해 줘야 하는 건데, 2002년 당시에는 브라질 출신의 호나우두가 원탑 플레이어였고 기술적 완성도도 후배 호날두(로마자로 쓰면 철자가 같고 심지어 같은 포르투갈어 기반이지만 발음이 다릅니다)보다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지만 인지도 차이는 엄청납니다. 2002년 당시에도 FIFA 홈페이지에 "또하나의 RONALDO"라는 아티클이 메인에 오를 만큼 주목을 받았으나 그 글(피파 홈페이지 메인 아티클은 엄청 격조를 갖춘 명문들이 게시되었던 게 당시 트렌드였습니다. 이게 축구 주제 글이 맞나 싶을 만큼)의 저자도 이후 자신의 주인공이 이처럼 슈퍼스타가 될 줄은 아마 짐작도 못 했을 겁니다.

(참고로, 호날두가 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에 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그는 당시라면 자국 청대에 간신히 얼굴을 비출 정도의 어린 나이였고, FIFA 홈피의 저 아티클은 "이 소년을 주목하라!" 정도의 취지였을 뿐 월드컵과 직접 연관은 없는 글이었습니다)

아무튼, 마치 화보집처럼 잘 포장된 스타의 헌정 도서는 설령 해당 선수에 큰 관심이 없던 저 같은 독자 입장에서 봐도 흐뭇하고 눈길이 갑니다. 세상 천지에 문자 그대로 믿을 글은 아무것도 없고, 하다못해 불경 성경이라고 해도 "해석"이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세계에서 제일 열성이라는 한국 네티즌들이 2, 3일 새 이른바 "현타"를 겪고 나서 쏟아 내는 드립과 짤방들이 지금 홍수를 이루는 판인데, 그저 유머가 아니라 계약서(한국측 주관사 "더 페스타"와 대표 로빈 장이 공개했다는) 원문을 보면 호날두 관련 조항에 조동사가 shall이 아니라 will이라서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등 전문가 뺨치는 분석도 나오는 판입니다(저 개인적 생각으로는, 요즘 영문 계약서에서 구태여 shall과 will을 과거처럼 준별하지 않는 실정이기에 다소 무리한- 혹은 좀 구시대적인 - 의견이 아닐까 싶지만요). 아무튼 스타에 배신감을 느끼기에 앞서, 우리 대중들 자신도 그간 인식과 열광에 근거 없는 거품을 스스로 키운 건 아닌지 반성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한국어판 번역 출판은 미스테리물 출간으로 독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한스미디어 솜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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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장로교의 한국 선교 - 송현강 | My Reviews & etc 2019-07-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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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국 남장로교의 한국 선교

송현강 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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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냉철한 이성으로 사물과 세계에 접근하는 게 몸에 밴 유형이라 해도, 인간인 이상 누구나 자신의 환경, 조건의 제약을 받은 선입견, "느낌" 따위에 판단이 좌우될 수밖에 없지 않다는 점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한국의 현실에서) 장로교이니 전세계적으로도 당연히 그렇겠거니 하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꽤 거리가 먼 편입니다.

십여 일 전 한국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팀의 감독이 경질(대외적으로는 "자진 사퇴"라며 모양새를 취함)되었는데, 38년 리그 역사상 한 시즌도 못 채운 경우가 이번 일이 처음이라서 더 충격을 주었습니다(그의 성과나 리더십에 찬성이었건 반대건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후임자로 거론된 인사들 중 한 사람이 힐만 전 SK 감독이었는데, 이분의 고국인 미국에서는 침례교인이 최대 교파이고 인터뷰에서도 아니나다를까 그 점이 다시 피력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사정이야 어떠하든 간에 한국에서는 장로교인이 프로테스탄트 내에서 압도적 다수이며 종교인 전체를 pool로 삼아도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한국에 개신교가 전래된 건 아직 150년이 채 되지 않으니, 유독 동아시아 3국 중에 한국만 이처럼 해당 교파가 크게 성행하는 현상은 역사적, 사회학적으로도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며, 그 먼 뿌리를 캐는 작업은 여러 모로 의의가 큽니다.

미국 장로교도 남/북의 양 갈래가 있었으며, 흥미로운 점은 19세기 당시 제 교파가 과잉 경쟁, 불미스러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조선의 각 지역을 구분하여 특졍 교파가 전담하도록 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명문대(설립 당시에는 4년제 대학이 아니었으나)들 중 몇몇 군데가 채플 학점을 요구하고 명목상으로나마 기독교 이념을 내세우는 게 다 이런 배경에서인데, 예컨대 연세대는 장로교(중에서도 이후 예장통합으로 분립한 곳), 이화여대는 감리교 기반이라는 점이 매우 눈에 띕니다. 이 외에도, 숭실대 같은 곳은 또 예장 통합 연계 학원이며 그 입구에 "안익태 기념관", 좀 깊숙이 들어가서 "고당 조만식"을 기린 경영대(대학원) 건물이 위치한 것도 다 이런 배경을 감안해야 충분한 이해가 가능하죠.

이 책은 여러 "스테이션"의 설치 후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건실한 선교 활동을 펼쳐 나간 저간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감리교 등에 배정된 타 지역에서 해당 교파는 물론 개신교 자체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성취에 그친 걸 감안하면, 확실히 당시 미국 남 장로교 교단의 정성, 열의, 역량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130여년이 지난 지금, 해당 교파의 다소 복잡한 사정, 초기 선교사 가문 그 후예들의 미묘한 입장을 지켜 보면 여러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인데 이 리뷰에서는 그런 제 개인적 느낌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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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도전하며 개척하라 | My Reviews & etc 2019-07-2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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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청년이여 도전하며 개척하라

원 베네딕트 저
상상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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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이라고 제목이 붙었지만 오지나 험지를 탐사한 분들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적 의미에서 남들이 전혀 걷지 않은 길을 처음 걸어간, 그래서 일신의 안위까지 흔들리기도 한 강단 있는 위인들의 인생에서 그 결정적대목을 포착한 에피소드 모음이더군요. 이미 아는 사연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분명한 주제의식 아래 편집된 포맷으로 읽으면 또 맛이 다릅니다. 그래서 큐레이터의 센스가 중요하다는 거겠고요.

헬렌 켈러는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강연자, 저술가로 우뚝 선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오늘날 성인(成人)들이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진보적 사회운동가로서 그녀가 남긴 족적입니다. 그녀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기풍의 남부 명문가 출신이었기에 이 사실이 더 눈에 띄는 점마저 있습니다. 그녀는 활발한 개혁 캠페인에 몸 담을 시절 어느 남성과 열애에 빠지기도 했는데, 그 남성이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는지는 미지수이겠으나 사랑과 일 모두에 있어 불 같은 정열로 임했던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업적을 이루거나 개척을 시도하려면, 그 인격의 개성에 이런 정열이 필수로 장착되어야 하나 봅니다.

조지 스티븐슨은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분이죠. 증기기관 자체를 발명한 분은 제임스 와트고요.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한다" 이런 끈끈한 근성은 발명왕 토머스 앨버 에디슨의 인생과 성공담에서도 발견되는데요. 서양 과학과 기술의 발달사는 얼핏 보아 깔끔하게, 이론과 정제된 실험 속에서 순수 연역적 방법으로만 결론이 도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수한 "삽질"과 "헛발질"의 연속, 그 실패를 자양으로 삼아 고난 끝에 얻어낸 귀납적 결실입니다. 이 두 분, 아니 세 분 다 앵글로색슨의 혈통이라는 데에도 관심이 쏠리는 대목입니다. 몸소 실패도 겪어 보고, 다양한 시행 착오를 일일이 체크하지 않고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형체를 띤 성과가 나오기 힘든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 순수 사유의 힘만으로 세계를 바꿔 놓은 과학자라면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인슈타인 등을 들 수 있겠죠. 후자가 더 힘들고 근본적인 성격의 업적이지만, 이런 건 평범한 사람이 흉내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노력이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에선 다르죠.

페니실린의 발견은 "실수가 큰 업적으로 이어진 드라마틱한 사례"로 인구에 널리, 그리고 길이 회자됩니다. 초등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듯(저희 때에는 그랬습니다). 이른바 페니실륨노타튬(끝말잇기 게임에 왓다죠 -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지금까지 안 잊혀지네요)을 발견한 건 사실 항생제의 합성이 본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실수를 통해 위대한 성취로 이어지는 건 그저 행운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와 과학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라도 헌신하고 말겠다는 치밀하고 성실한 집념이 따라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행운이란 결국 자격 있고 준비된 이에게 찾아 주는 법이니 말입니다. 다만 처칠과의 일화는, 그 역사성이 확실히 검증된 게 아니며, 많은 사가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최초의 휴대폰 창시자라면 꽤 우리 시대와 가깝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마틴 쿠퍼는 2차 대전에도 참전했던 노인입니다. 이런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신 것도 놀라울 정도죠. 오래오래 사셔서 모바일 기기가 어디까지 진화하는지 웬만한 phase는 다 보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저도 며칠 전에 백화점에서 새 폰을 사서 지금 만지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처럼 휴대폰이란 예컨대 증권 시세를 쫓는 등 생업의 도구, 긴급한 연락을 취하는 생활 필수품 외에도 삶의 잔잔한 기쁨을 소유자에게 안겨 주는 고마운 존재죠. 며칠 전 어떤 영화를 보는데 "난 아직도 무선 통신이 최고라고 생각해. 지구가 멸망해도 전파는 여전히 돌아다니지 않겠어?"라는 대사가 귀에 들어오더군요. 백 번 맞는 말이긴 하나 우리 인간이 유한한 생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자아실현은 문명의 바탕 위에서 꿈꾸거나 손 안에 넣는 것들입니다. 마틴 쿠퍼의 일생은 현대인이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다 말하지 못했다." 마르코 폴로의 시절이라면 서유럽과 중국 사이의 문명 격차가 너무나 클 때라, 어지간히 교육을 받은(자신의 성장 환경에서 가능한 수준의) 그로서도 지금 눈 앞에 무엇이 펼쳐지고 있는지 정확한 인지가 어려웠을 겁니다. 야만인에게 문명을 갑자기 노출시켜도, 그 혜택을 누리기는커녕 그 제한된 두뇌의 프레임에 무엇을 수용하는 작업조차 벅찰 뿐이니 말입니다. 본 것의 절반도 말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존재하던 것의 절반도 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마르코 폴로에게 다만 중국인들, 몽골인 정복자들이 감탄한 건, 그 열악한 장비로 오로지 모험심, 이윤 추구욕 하나에 기대어 먼 동방까지 항해와 육상로로 찾아올 마음을 먹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근 6백년이 지나 청말의 어느 황제도 말했듯, "짐이 다스리는 땅에는 안 나는 물산이 없도다"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이었죠. 하지만 정말 한 푼어치의 추가 수요도, 그들 서양 상인들이 유발하지 않았겠습니까? 현실이 비록 풍족하다 해도(평민들에겐 해당 사항 없죠) 그 자리에 혁신 없이 안주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수치스럽게도 그대로 증명해 보인 셈이었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이런 의미에서, 아득한 예전 모험심이 개인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익과 자부심이 어느 수준까지 달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준 위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산강장팔의 <덕천가강>에도 "남만인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먼 곳에서 목숨을 걸고 배로 찾아온 게 어디인가?'란 대사가 나오죠. 아, 하긴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출신이긴 하나 저 북유럽의 먼 혈통이 좀 섞인 베네치아인이므로 남만인(ㅋ)의 범주에는 넣기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루 게릭은 베이브 루스와는 달리 버젓한 중산층 출신이고, 대학까지 나온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엘리트의 배경을 지닌 야구선수였습니다. 루 게릭이 근육 소실증에 걸려 달리지도 못하고, 그 강타자가 배트에 힘도 못 싣고 툭 떨어지는 플라이볼을 치는 걸 보며 팬들은 수근대었지만, 그가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라운드를 돌 때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죠. 이처럼 평소의 인격이 성실하고 모범적이어야 순도 높은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운동에서의 성취와 실제의 인격이 조화로운 곡선으로 그라운드에 공명을 일으킨 위대한 플레이어, 이런 사람을 보고서 꼬마 팬들도 스포츠의 치열한 승부 그 이상의 영감과 감흥을 어린 정신에 새기고 성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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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에 강한 아이로 키워라 | My Reviews & etc 2019-07-2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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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맥에 강한 아이로 키워라

양광모 저
위즈덤하우스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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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활을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점은, "공부보다 인맥"이라는 점입니다. 인맥이 부실하게 구축된 인생은 위기에 몰려 누가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먹깨나 쓰는 사람들을 불러 뭘 해결한다는 쪽에나 생각이 미치면, 그건 아직도 마인드가 십대 불량청소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자백이죠. 그런 건 인맥도 아니고 돈만 집어주면 즉시 가용자원에 드는 류일 뿐 아니라, 부린 쪽이나 부려진 쪽이나 나중에 뒷감당도 못할 졸렬한 범죄에 불과합니다. 


인맥의 힘은 실로 무서워서, 실정법에 저촉되는 바도 전혀 없으면서 점찍어 둔 이를 완전히 매장시키는 결과에까지 손쉽게 다다르게 합니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게 당연 아니라서, 인맥은 그 사람의 잠재력 계발, 자아 실현 등을 "완전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돕고, 그저 돕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결정적 활로를 열어주기까지 하죠. 능력 있는 사람은 그저 자기 적성 분야만 파고드는 게 아니라, 이를 활용하여 동종 성과에 끌리는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기까지 합니다. "나도 저걸 잘하지만, 저 사람은 그걸 더 잘하네?" 이런 생각이 들면 당연 그에게 접근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다소 파격적인 말을 합니다. 대인 관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 즉 내가 무엇을 베풀었다면 그 대가(對價)를 확실히 받아내라는 게 우리는 상식으로 마음에 새기는 바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군요. "내가 무엇을 주었다면, 아까워하지 말고 다음번에도 또 주어라!" 글쎄요, 물론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숭고한 가르침이긴 합니다만, 또 예수 그리스도 같은 이도 "한쪽 뺨을 맞았다면... " 같은 표현으로 비슷한 가르침을 편 적 있지만, 해당 종교를 독실히 믿는다는 이들조차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모습은 대단히 드물게 보일 뿐입니다. 요즘처럼 눈 감으면 코 베이기 일쑤인 험악한 세태에, 과연 "지난번에 주고 이번에도 또 줄 수"가 있을까요? 그럴 만한 여유가 있기도 힘들 뿐 아니라, 사람의 타고난 본성부터가 그리 이타적인 모양새가 못 될 것 같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4년 전쯤 읽은 책 중에, 유명한 자계서 저자 애덤 그랜트가 쓴 <기브 앤 테이크>가 있었습니다. 그저 군자연하는 투로 쓴 엄숙한 도덕 타령이 아니라, 오히려 꼼꼼한 앙케트(enquete)와 인터뷰를 거쳐, 치밀한 통계 방법론까지 거쳐 결과를 실증적으로 정리한, 대단히 실증적 성격의 저서이더군요. 여튼 그 책 결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악착같이 뭘 챙기려드는 타입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상대에게 기브어웨이를 잘하는 타입이다."였습니다. 

이런 지적은 사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이익을 챙기려 들고, 손해 안 보려 들고, 때로는 부정한 이익까지 주머니에 슬쩍하려 드는 게 이런 천박한 풍조에서 자연스럽게들 나오는 반응입니다. 내가 하는 건 괜찮지만, 남들이 그러는 건 또 못 보고 넘기는 인지상정이라면, 악착같이 제 실속만 챙기고 잘난 척 하려 드는 유형을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얌체짓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무슨 빈틈만 보였다 하면 우위에 서려는 사람, 그 속이 빤히 보이는 인간한테 친구니 인맥이니가 생길 리 있겠습니까? 이런 "악착같은 테이커 타입"은, 대개가 스스로는 똑똑하다 여기지만 남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아주 멍청한, 자신만의 생각 안에서 시종일관 노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는 이게 최선이라 여기는데, 손에 남는 게 없습니다. 왜 따돌림당하고 왜 헛수고만 하는지 도통 깨닫지를 못합니다.

저 책이 서양 저자답게 건조하고 논리적이며, 주장의 정합성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태도로 쓰여졌다면, 이 책은 우리 같은 동아시아인의 정서를 최대한 고려한, 쉽고 피부에 와 닿으며 직관적인 서술, 그러면서도 예증이 풍부히 담긴 체제라는 게 다릅니다. 결론은 두 책이 동일합니다(최소한 제가 읽기로는 그랬습니다). 일단 성공적인 "기버"가 되려면, 1) 일단 본인이 자기 직역에서 확실한 능력, 성과를 보이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남한테 만만하게 보여 질 나쁜 이들에게 뭘 뜯기기나 십상이고, 나중에는 "뜯길 여지"조차 안 남는 게 보통입니다. 2) 이렇게 자신의 처지가 확실히 다져지면, 그때부터는 너무 매번의 거래, 소통에서 뭘 남기려고 치사하게(구차하게) 아둥버둥할 게 아니라, 여유 있게 뭘 던져가는 듯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사라는 게 저자(들)의 충고입니다. 

무작정 던지면 자기만 손해이기 때문에, 그런 제스처를 이해할 만한 소양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 관후(寬厚)한 제스처를 보이라고 합니다. 밑바닥한테 뭘 줘 봐야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당신이 제공한 서비스의 가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게 보통이니, "알 만한 사람"에게 다소의 잉여를 제공하며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보이라는 거죠. 그럼 그 사람도 마음의 빚을 안을 테니 다음 번에 분명 플러스 알파를 들고 당신에게 접근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함의입니다. 혹 이런 깊은 뜻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그럴 만한 깜냥이 못 되는 자와는, 그저 짧은 말을 주고받는 것조차 시간 낭비일 뿐이니 일절 상대도 할 필요 없다는 게 저자의 요지 중 하나입니다. 나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인맥은 이 정도가 되어야 후보에 올릴 가치가 있고, 무가치한 소통을 화끈하게 가지치기 하는 게 (범위와 가동이 한정된) 정력을 잘 배분하는 원칙입니다.

저자는 몇 달 전 <부자의 집사>라는 책에서, 실제 일본에서 사업 모델의 하나로 성업 중인 "집사 서비스"의 운용을 소개하고,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교훈" 몇을 간명히 정리, 제시한 바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과는 처한 상황과 문화적 풍토, 사회적 계급 구조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가 기업화, 독립 업종으로 분화한 형태로 발전하려면 아직 요원하기만 합니다(고급 주택을 분양, 공급하면서 관리 서비스의 일환으로 극히 일부 양태를 끼워팔기할 수는 있어도).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건 자기 일에 워낙 열심히 헌신하고 몰두한 전문가라서 미처 세상을 두루 겪을 기회를 못 가졌다는 안타까움의 표시가 아니라, 그 나이를 먹을 때까지 뭘 했기에 자기 머리로 결론을 못 낼 만큼 판단력이 부실한지에 대한 조롱과 개탄의 의미죠. 단기 메모리, 장기 기억 등이 모두 열악한 성능을 보일 뿐인 자가 어떤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갖고 자기 인생을 일궈 나가기도 어려운 게 당연하며, 진정성 있는 인맥을 구축하기란 거의 무망한 일입니다. 사회 구조가 어떤 모습으로 짜여져 있는지, 무슨 원리에 의해 이 많은 돈의 흐름이 이뤄지는지 정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판단이 서 있는 저자 같은 마인드라야 손에 돈도 들어오고 성취의식으로 충만한 일상이 이뤄짐은, 두 번 강조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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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 My Reviews & etc 2019-07-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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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심

이성재 저
수필과비평사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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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 역시 예술가 아닌 사람, 혹은 예술가들과 잦은 컨택을 않고 사는 이들에게는 별 의미를 못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위 "4차 산업 혁명"이 거센 파고로 일상과 직장의 모든 전선에 밀어닥치는 현실 속에서, 예술가의 "크리에이티브"는 이제 모든 경제참여인구의 필수 자질로 부각되기에 이릅니다. 크리에이티브야말로 혁신의 모태이며,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고등정신만의 특질입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 둘 사라지면 공동체의 기본 질서도 붕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어차피 지금도 간신히 현상유지나 하려 들며 정해진 타성의 쳇바퀴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은 자기 자리도 못 지키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 과정에서 탁월한 창의력으로 과업을 완수해 내는 사람은 기업주에게 타 고용인 몇 사람분의 대우를 받기도 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며, 직장에서의 기여도가 있기에 더욱 높아진 협상력으로 고용주와 맞대면할 수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직원에게 잠재적 파트너십 지위를 인정하는 구글의 체제를 떠올려 보면 납득이 될 것입니다. 일도 안 하는 직원을 구글이 대접해 주는 게 아니라, 알아서 혁신을 이루는 직원을 미래형 직장인 구글이 모셔온 거죠.

"세상에 처음 왔을 때의 순수함과 열정".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뜻이겠습니다. 하다못해 갓 이사온 동네에 중국집이나 카페, 미장원이 어디어디쯤 있는지 알아보고 다니는 시간도 처음에는 다 즐겁습니다. 그러다가 지겹고 싫증나는 타성 속으로 서서히 침잠되어 가고, 마침내는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하는 오염된 풍경으로 바뀝니다.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이성친구, 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만나고 서로에게 강렬한 관심, 호기심, 설렘을 안기며 끌렸을 때는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고, 그 시간도 몇 배로 늘려 한몸이 되는 잠시를 영원으로 늘리고 싶던 그 마음도 시간이 지나고 습관으로 바뀜에 따라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헉, 쟤봐"라며 잠시 동안 시선을 딴데 줄 수가 없었던 그 강렬한 충격이 서로 공유하는 감정, 체험임을 알고 세상을 다 얻은 듯 흐뭇하고 좋았던 시간도, 무정한 세월의 힘에 밀려 빛바랜 추억의 장으로 밀리기 일쑤이죠.

저자께서 다양한 직종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취재하고, 그들만의 희열 넘치는 성취감과 고백을 듣고 쓴 이 책은,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과 자기 업종에서 뭔가 남다른 성취를 이루는 게 결코 다르지 않다는 강력한 교훈을 던져 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라는 상위개념, 보통명사가 참 무력하다는 것(기능과 직분에 있어 공통점이 없다는 이유에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라 불리는 이들은 사는 방향과 모습, 태도 등이 참 서로 닮아 있구나 하는 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미 십 년 전에도 생각 있는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어떤 직업을 갖게 유도해야 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으며, 그때 자주 운위되던 게 이런 창조적인 직역이었습니다. 확실한 이론적 바탕이 없어도, 그저 실제 사회 생활이랄까 견문을 넓히기만 해도,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바른 감이 다 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 역시 기계적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열정과 삶에의 건전한 애착을 가지고 사는 이가 항상 정확한 결론에 먼저 도달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 주는 부분입니다.

책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매사를 초심으로 대하고, 그 초심에 서려 있는 열정과 환희, 호기심, 애정, 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창의적인 직업인이며, 이런 사람은 잘 늙지도 않고 매 순간을 자신의 업적과 함께 기뻐할 수 있으며, 사회의 비능률요소가 다 제거되어 가는 작금이라면 더욱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생존과 처세의 답이 예술가들의 초심에 있다는 결론은 얼핏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급변하는 경제구조의 핵심을 냉연히 통찰하면 결국 운명의 지침은 의외로 일관되게, 한 방향만을 가리킴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기계화, 공업화,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가 몰고온 인간소외와 영혼의 메마름을 이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일신의 물결이 다시 정상으로 돌려 놓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과 생령, 능률과 환희는 결코 별개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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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내 뜻대로 절묘한 화술 | My Reviews & etc 2019-07-2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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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상대를 내 뜻대로 절묘한 화술

타고 아키라 저/정유선 역
바른지식 | 200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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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시키는 삶, 남의 기대에 맞추는 삶이 당장은 주변과 충돌할 일 없어 당사자를 편하게 만들지만, 지나고 보면 다 손해난 듯 억울한 듯 남은 게 없는 듯 회한을 남긴다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자신의 삶과 관계 없는 모토(정반대라고나 해야)를 마치 자신의 좌우명이자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든 원칙인 양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던데요. 평생 남의 기준에 자신을 옥죄며 산 그런 인생도 결국 허수아비처럼 걸어온 과거의 자취에 허탈함이 느껴지긴 하나 봅니다. 그렇다고 막 내키는 대로 살며 사회에서 공인한 표준적 커리어를 마냥 무시해도 노년에 미련이 남지 않을까요? 이 역시 위험한 도박임은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억울한 건, 남들 시키는 대로 하고 살며 전혀 기를 못 펴고 산 인생이 결국 늦은 나이에 손에 물질적으로 쥔 것도 별로 남지 않은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참 인생이 이래서 어렵습니다. 정해진 경로를 밟을 것이냐, 내 맘대로 내키는 대로 살 것이냐, 이 두 가지 옵션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은 한 코스를 묵묵히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걷고 보니 죽도밥도 아닌 결과나 기다리고 있을 때가 참 난감하겠죠. 

이 책의 제목이나 주제는 아주 단순명쾌합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라! 니 맘대로 해라!" 예전에 소위 신세대 코드가 젊은이들 감성을 휩쓸었을 때도, 저 비슷한 제목을 단 책이 인기를 끌었던 게 기억납니다. 실제로 대학에 입학한 후 그런 원칙(?)에 따라 산 이들(방종과 쾌락)도 많았지만, 그것도 다 때가 정해져 있는 자유이자 일탈이지 직장 잡고 가정 꾸린 후까지 그런 마인드로 살기란, 무엇보다 한국처럼 틀이 꽉 정해져 있는 사회에선 불가능한 옵션입니다. 앞에서 1)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속도 없더라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 많다고 했습니다만, 반대로 혹시 2)를 선택했다고 여겼는데 알고보니 주위의 시선에 따라 위축된 인생에 불과했더라, 뭐 이런 경우는 전혀 없을 것이라 봅니다. 1)은 사람 능력과 재량에 따라 큰 편차가 있겠지만, 2)는 지나고 보면 누구나 비슷한 느낌일 겁니다. 2), 즉 내 맘대로 원없이 사는 옵션은 미련을 안 남기는 선택인 건 확실합니다. 

그럼 이 책은 독자들더러 막살라고 부추기는 내용인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무책임한 주장을 (아무 안면 없는) 상대에게 전파할 수는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뜻대로 살고 꿈을 좇되 적성을 살려 경제적 실리도 취하거나, 혹여 물질적 축적과는 전혀 무관한 주관적 이상과 가치에 헌신한 삶이라도 그 궁극적 성취감이 존재를 가득 물들일 수 있는, 누구 눈에서도 존경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삶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저자의 관점에서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에 실린 어느 모범된 예라고 해도, 우리들 평범한 일상인이 그대로 따라한다거나, 과감히 저런 진로를 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인생이란 한순간의 충동이나 결단으로 무책임하게 모든 걸 던져도 되는 유희가 결코 아닙니다. 그런 권리는 자신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마구잡이로 행사해선 안 되죠. 이 책에 소개된 실로 다양한 인생(뜻대로 꿈대로 산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구체적인 행보가 이처럼이나 다양합니다)은, 독자에게 "당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어디까지나 딴 방향을 틀 수 있는지" 건전한 방향으로 어떤 영감을 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을 읽고 무작정 던져도 되겠구나 하는 방심 내지 타락은 결코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사실 일반인이 넘볼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패스했습니다만, 누구나 알고 있듯 대체 왜 그가 안정된 삶을 그토록 흔연히 뒤로 한 채 초월적 결단을 내렸는지는, 우리 독자 모두가 염두에 두고 "세상에 아주 드물지만 이런 옵션도 있구나" 하고 진지한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파우자 싱도 많은 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익숙한 이름일 텐데요. 이 책에는 안 나오지만 20대 시절 최강의 주먹으로 군림했다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한 후 은퇴, 이후 40대 후반에 다시 링에 복귀하여(기독교 전도도 일부 목적이었습니다) 또다시 최강자에 오른 조지 포먼 같은 이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불꽃 같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의 사례에서 저자가 뽑은 교훈을 보십시오.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때 인체의 일부에 칩을 심어 기곝처럼 영생할 수 있다는 파격 주장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테크놀로지가 그런 과부하 비전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둘째치고도, 과연 현생 인류의 정신적 내성이 불로불사(가능하다고 쳐도)를 누릴 만큼 강한 편이겠습니까? 물질적으로 풍요해져도 도를 넘은 양분 섭취가 결국 신체 기능의 붕괴를 가져 오듯, 사람이 그 생리적 진화와 함께 발전시켜 온 도덕관념 역시 버텨낼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리셋이 가능하고 과오에 책임지지 않는 타락한 인생에게, 불로불사란 그 자체로 영겁의 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헤세야말로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어진 삶의 모든 제약과 조건(때로는 특혜와 행운도 있었을 텐데)을 거부하고, 반항아처럼 자기만의 궤도를 개척해 온 특이한 인생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 세계란 파격과 자유와 분노와 도전 속에 안온한 질서가 결론처럼 자리잡히니, 일탈과 반항이 진정 가장 큰 성과를 본, "이유 있고 보람 있는 rebel"이 아닐 수 없습니다. 페르귄트 설화가 알려 주는 교훈처럼, 무슨 반항과 방랑 그 자체를 위한 몸짓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이런 건 심지어 청소년기에도 도가 넘으면 추할 뿐이며 또래들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기 좋을 뿐). 출가는 궁극의 귀가를 목적으로 해야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자원을 낭비 없이 살았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음수사원이란 말이 있죠. 물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내가 마시는 이 물을 있게 해 준 근원을 돌아본다는 뜻인데, 다른 예를 떠올릴 필요 없이 부모님을 바로 떠올리면 됩니다. 대체 내가 육신과 혼을 갖고 대지에 두 발을 내디디며 활개를 펴게 해 준 은인이 누구겠습니까? 만사는 이유가 있어야 그 결과가 생기는 법입니다. 탤런트 최성준씨는 (저는 TV를 잘 안 봐서 모르는데)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나쁜 남편 역을 자주 맡는 탤런트라는군요. 이분이 알고보면 남다른 효자라서, 부친께 간 이식을 해 드린 남다른 결단을 내린 건 그리 많이는 노출되지 않은 미담이라고 합니다(이 책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가, 좀 의외다 싶은 다채로운 빛깔의 인생이 두루 소개되었다는 겁니다). 우리 예전 구전 민담이나 <오륜행실도> 같은 책을 보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사경을 헤매는 양친께 먹여 드렸다는 일화가 자주 나오죠. 제 생각에 누구라도 갑작스러운 결단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고, 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당시 유교 사회에서) 전시용 제스처로라도 결행이 힘들었을 겁니다(출세를 위한 스펙쌓기용 이벤트라든가). 효행(극단적인 경우뿐 아니라)은 물론 다른 과감한 결단이라도, 어디까지나 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인생이라야 내실 있는 실천이 가능합니다. 그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체신 없고 나잇값 못하는 촐싹대기가 언제나 경멸을 부르고 그 진정성 없음이 누구 눈에도 빤히 비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결국 이런 진정성과 성실, 절박함의 내면화가 "일탈과 도피 아닌 진정한 꿈과 현실의 일체화"를 이루는 것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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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심리학 | My Reviews & etc 2019-07-2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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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긍정 심리학

Steve R. Baumgardner,Marie K. Crothers 공저/안신호 등역
시그마프레스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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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긍정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여러 실증적 효과들이 증명 단계를 넘어섰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주장만 나오면 대뜸 "싫증"부터 낼 사람들이 적지 않겠으나, 자신의 삶이 부정적이고 화가 치민다거나 비뚤어진 감정으로만 가득채워져 있다면 "~학"의 입장을 떠나 그 개인의 삶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리라는 전망은 학자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은 그 명칭 못지 않게 주제와 방법론 모두가 실천적인 성격인만치,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은 "소비자"들의 삶에 어떤 구체적인 지침(이의 실천은 개인의 몫이며, 패스트푸드나 청량음료의 섭취와 전혀 다른 기제의 소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돼지라면 모를까)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의의가 의심스러워질 만도 합니다. 일단 이 책뿐 아니라 모든 이 계열 서적에서 강조하는 바는, "성취 = 기술 × 노력"이라는 공식이고, 그 공식 중에서도 "기술"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계서라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게, 맨땅에 해딩하는 식으로 "무작정 노력"만을 강조해 온 그 틀에 정해지다시피한 태도 때문이죠. 많은 현대 독자들이 요구하는 건 그런 무작정 들입다 파는 노력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노력을 들여(우변의 두 인자 중 비경제적인 측면을 최소화하여) 똑같은 성과, 혹은 최대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노력 파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많은 경우 실패자들은 자기 통제가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어떤 자는 DNA의 무작위 배열이라는 거창한 운명론을 들이대면서도, 또 그런 "뽑기" 과정에서 자신이 뽑은 패가 영 시원찮다는 팩트를 인정하면서도, 전혀 근거 없는 자신감과 만용으로 흑을 백으로 우기는 희극적인 만용을 노출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무슨 체제의 불합리한 손에 의해, 자신이 마땅히 상속받아야 할 몫을 빼앗겼다는 등 근거없는 피해의식에 젖어 과거를 조작, 세탁하기도 하는데, 도대체 자신이 받아야 할 대접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다 보니 존재하지 않는 어거지를 지어내서라도 무슨 근거를 마련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발버둥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신봉하는 건, 장내 미생물이나 기타 비(非)의지 요소에 의해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는 식의 사이비 결정론(일부의 객관적 연구 결과를 터무니없이 과장 왜곡함)이기도 하죠. 근대 계몽주의가 비로소 일깨운 인간의 이성, 그 중에서도 자연 과학의 저변을 이루는 합리주의야말로 사람이 자기 의지에 의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 기반하는데, 이런 인간은 입으로 과학을 떠들고 싶어도 실은 그 내면부터가 가장 썩고 비루한 류의 "푸닥거리와 미신"에 사로잡힌 꼴입니다. 이런 미개한 마인드에 어떤 의지와 개척 정신, 나아가 자기 통제의 명분이 깃들 리가 없습니다. 뭘 잘못해도 남탓을 할 타입인데, 실제로 어차피 자기 행동과 사고와 감정(가장 유치한 단계에 머문)을 통제 못하는 인간으로선 어쩌면 (유일하게)정직한 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많은 책들이 그 가치를 강조하는 소위 "그릿(그 두문자 배열에 부여하는 각각의 의미가 다를망정)"론의 오리지널이 바로 이 계열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시고, 지금 추진하는 일에 속도와 박차를 더욱 가열차게 내려고 안달복달(인생은 이처럼 각별한 애착이 있어야 성공하죠)하는 독자들이, 딴 거 필요 없고 지금 어떤 자극제가 좀 필요하다 싶을 때 읽으면 좋습니다. 너무도 의욕이 안 나고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을 때,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저 속는 셈 치고 저자들이 시키는 건 다 따라해보겠다는 마음인 독자들에게 효능을 발휘하리라는 건 말할 것도 없겠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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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19-07-2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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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루츠 니트함머 저/이동기 역
박종철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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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다"라는 말은 "용기"와는 정반대 범주에 속한 개념입니다. "용기 없음"은 곧 "비겁"과 동의어이며, "비겁자(coward)"를 정의할 때 술부(述部)를 다른 어휘로 채울 것 없이 "도망" 연관어를 기용하면 충분합니다. 영어에서도 quitter(중도 포기자)가 곧 loser와 동의어로 쓰인다고, 영어 문화권에서 가장 혐오하는 인간형이 바로 이런 비겁자들(자신에 대해서건 세상을 향해서건)이라고 어느 유명 전문가께서 힘주어 강조하더군요.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건, 그저 기술적 지식만 잔뜩 머리에 담는 걸로 끝나지 않고, 이처럼 문화나 인간 내면에 다져진 근본 이치까지 깨달아야(암기가 아닌 체질화, 내면화, 자발적 동의)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여튼, 이처럼 도피는 결코 용기가 아니라, 그 모순개념 반대개념의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헌데 저자는, 번잡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라든가, 나를 나라는 인간으로부터 점점 소외시키는 "일"로부터 도망치는 게 진정한 용기라고 주장합니다.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그처럼 숨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 모든 풍진과 족쇄로부터 멀리달아나버리고 싶은 마음과 마음들이 인지상정을 (어쩌면) 이뤘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도피 심리는 원칙적으로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니며, 사람이 사람 속에서 부대껴야, 이기든 깨지든 그게 진정한 삶인 법입니다. 도피 속에서 이룬 승리, 안정이란 가장 초라한 자기기만에 불과하죠. 헌데 그럼 저자는 책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걸까요? 오히려 더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도망쳐라" 이것은 정반대로 새겨야 합니다.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면 그건 사람도 아니죠. 사람의 본분을 저버리라는 게 아니라, 의무와 책임과 본질도 아니면서 "남에게 자기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람이 슬쩍 당신 어깨 위에 얹으려는 가짜 책임"을, 대놓고 맞서 싸우지는 말되(아마 당신은 그렇게까지 할 용기는 없을 겁니다), 단호히 결연히 도망침으로써 남의 노예, 이유 없는 마모를 겪지는 말라는 겁니다. 아니, 다 맞는 말 아닐까요? 

그래서, 도망쳐서 어디로 가라는 걸까요? 바로 "사람, 남들"입니다. 특정한 타인은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지옥일 수 있지만, 나 아닌 인간 보편은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학교이고, 정의의 심판자들입니다. 우리가 왜 "길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라" 같은 말 흔히 쓰죠. 이 말에는, 나와 아무 이해 관계 없는 사람을 랜덤으로 골라 이치를 물어 보면, 그 걸려든 사람이 누구든 무관하게 정답을 말해 줄 수 있다는 기대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못사는 사람, 못배운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래도 나와 같은 세상을 사는 무작위의 타인이, 심사가 배배 꼬여 정반대의 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을 만큼 나와 공감을 이뤘으리라는 어떤 소박한 기대가 깔린 것입니다. 

사람들한테 치어서, 사람들한테 질려서 어디 산속으로 도망가고 싶다고들 합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잘 시청해 보면, 그분들 대개 누군가한테 된통당하거나 배신당하거나 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연이 나오는데 거의 95%이상이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걸 이뤘지만 그래도 자연이 좋아서 그런 은둔을 하는 분은 거의 없더군요. 그런데 잘 들어 보십시오. 과연 그분을 둘러싼 네트워크 중, 백이면 백, 혹은 팔십 칠십이 그를 배신하고 등졌을까요? 그 중에 한두 명이 그분에게 큰 상처를 줬기에, 그분들이 사람을 등지고 자연으로 향하게 된 겁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를 이용하거나 하는 사람은, 알고보면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그보다는 당신에게 공감하고, 동정하고, 뭔가 힘을 실어 주고 싶어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게 사람이란 존재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이건 누구도 부인 못할 진실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라"는 결론을 담은 게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나쁜 몇몇에 휘둘려 당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훨씬 많은 다수의 선한 사람들에게 과감히 안기라"는 조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쁜 관계, 소모적인 관계로부터 먼저 절연, 도망칠 필요가 있겠지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인생이라야, 그게 단 1초라도 세상에 태어난 의미, 이유, 의무를 찾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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