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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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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강의 (하) | My Reviews & etc 2020-11-3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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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상법강의 (하)

정찬형 저
박영사 |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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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정희철 교수님과 수제자(?) 정찬형 교수님 두 분 공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거의 출간과 동시에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앞 리뷰에도 적었지만, 저는 책을 고를 때 디자인 등 외관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인데요. 이 책 역시 법서치곤, 예를 들어 바탕색을 (천편일률적인 흰색이 아닌) 연황록색으로 처리했다든가, 본문에서 저자(들) 의도상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든가 하는 점이, 당시 시중에 나온 다른 법서들(상법 분야 뿐 아니라 전 분야 통틀어)과는 차이가 나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공저자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은,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 서적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볼드체로 학자의 이름을 밝히고 꺾은괄호로 묶어 준 후, 두 분의 견해를 각각 다른 문단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돋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나중에 참여한 제자 교수님의 견해가, 원저자인 스승의 것과 큰 차이가 날 경우 이 본문을 유지할 수 없어서의 궁여지책일 수도 있었겠지만, 여튼 시장에선 독자들 사이에 오히려 이런 점이 큰 호응을 불러, 이 책이 이 분야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는 데에 한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법서는 (여느 다른 학술서적과 마찬가지로) 물론 저술자 개인의 견해를 적는 책이지 편집물이 결코 아닙니다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이론의 대립과 논박이 가장 치열한 학문이 바로 법학인지라, 간단한 인용의 형식이건 제법 긴 논술이건 간에 타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면의 한정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력설, 다수설, 통설이 무엇인지 그 본의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소개, 인용해야 하며, 동시에 책이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이상 자신만의 학술적 기여가 될 독자(獨自) 견해 역시 명료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후자에 치우친 책은 독자(讀者)들에게 외면 받고, 전자에 치우친 책은 학자들에게 경멸 받는다는 게 이 분야 저술의 가장 큰 애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이 두 가지 과제 사이에서 아주 균형을 잘 맞춘, 깔끔한 책으로 정평이 나 있었죠.

제 생각에 법서는 기술 서적, 공학 서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구조상 기승전결의  우아함이 끼어들 여지가 부족하고, 표현상 문학적 수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작은 포인트 활자로, 각 제도의 연혁과 배경 같은 것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민법이라면, 어느 정도 성숙하고 표준화한 제도를 구비하고 있는 사회의 시민인 이상, 예컨대 임대차라든지 부동산 등기, 혹은 상속 같은 제반 제도들이,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낯설지를 않습니다. 반면 상사(商事) 사항은, 설사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회사원이라고 해도, 자신의 제한된 업무 영역에서 국지적 지식에 일부 소양이 생길 뿐일까 제도 전반에 대한 개관이라고 하면 누구도 자신 있게 나서질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물며 어린 학생들에게 상법학은 대단히 난해한 분야일 수밖에 없는데, 저자(들)의 이런 친절한 (내용상, 편집상의) 처리는 그런 의미에서 독자에 대한 큰 배려일 수밖에 없죠.

상법학은 법학 중 기술적 성격이 매우 두드러지면서도, 다루는 영역이 광대하고 내용 또한 생소합니다. 보통 총칙, 상행위, 회사법, 어음수표(상법전에는 없고 별개 단행법 형식이지만 대체로 교과서들에는 이렇듯 네번째 순서로 다룹니다), 보험, 해상의 여섯 분야로 나뉩니다. 이 하권은(다른 저자의 교과서들도 마찬가지지만) 뒤의 세 분야를 서술하고 있고요.

학생들 중에는 어음/수표를 무지하게 어려워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사실 내용의 난이도로는 회사법, 보험법 등도 어렵다는 면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전자는 법학도가 그걸 모른다면 어디 가서 이야기를 못하니 불평 없이 공부를 해야 하겠고, 후자는 어느 시험에서건 출제 비중이 낮으니 딱히 불만을 토로할 대상이 아닌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심지어 저보고 "어음법 언제 폐지되는지"를 물어본 애도 있었습니다. 마치, 내일 지긋지긋한 공장에 출근하기 싫어서 공장에 불을 질렀다는 어느 철없는 직공이 연상되었다고 할까요. 유가증권이란 인류가 거래의 편의를 위해 창안하고 오랜 세월 다듬어 온 제도인데, 공부하기 싫다고 그 제도가 어느 순간 폐지되길 바라는 그 마음이라는 게 참...

이 책은 어음/수표 파트에서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혹은 제도 자체에 대한 설명을 친절히 베풀어 놓았습니다(이 선을 넘으면 그것은 법서 본연의 기능을 잃을 수도 있죠). 또, 보통 한국의 법제가 대륙법, 그 중에서도 독법계를 계수한 사정 때문에, 정작 거래의 실질에서 근래 더 자주 피부로 접하게 될 영미 제도나 용어를 소홀히하는 수가 있는데, 이 책은 타 저서에 비해 그런 설명에도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정희철, 정찬형 두 저자가 어느 부분에서 대립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책의 또다른 재미였습니다. 정희철 선생님이 대체로 학설의 허점이 노출되는 결과를 싫어하여 정교한 논리를 중시하고 주장의 핵심이 더 잘 부각되는 학설을 선호하는 경향이었다면, 정찬형 교수님은 좀 더 실용적인 입장을 중시하는 편이었다고 할까요. 어음 수표 분야도 학설 대립이 첨예한 곳이기 때문에, 이런 상충점과 대립하는 개성을 찾는 재미가 적지 않았습니다.

정희철 교수님은 이미 당시에도 숱한 제자를 길러내고 은퇴하신 대원로였기 때문에, 그의 제자라 할 분은 정찬형 교수님 외에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분들 사이에서도 학설이 어떻게 분기하는지를 살펴 보는 건 또하나의 재미인데, 이 이야기는 다른 리뷰에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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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 My Reviews & etc 2020-11-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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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저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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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인 덕에 세계에 자랑할 국보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보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잘 아는지 스스로 반성하거나 공부할 시간을 잘 갖지 않습니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부흥에 성공했다거나, 세계에 내세울 만한 좋은 기업을 여럿 갖고 풍요롭게 사는 것도 물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놀라운 문화재들을 이처럼 보유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더 자랑스러운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 실린 문화재들은 아예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것들이니 말입니다.


p56에는 "왜 국보 1호가 숭례문인가"라는 토막 상식이 나옵니다. 사실 이는 여러 매체나 시민단체 등에서 예전부터 지적했던 이슈입니다. 과연 남대문이 국보 1호의 자격이 있는지의 문제가, 2008년에 화재로 전소되기 전에도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어차피 일제가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부여했을 뿐이니 아무 의미를 둘 게 없다지만 그래도 국민감정이 꼭 그렇게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는 "남대문이 국보 1호"라는 일반상식이 돌고돌다 그간 너무 많은 가치가 자연스럽게 부여된 탓이 클 뿐입니다. 어차피 전면 해제 후 새 번호를 부여한다 해도, 이번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이후의 문화재 서열(?)을 놓고 또다시 아무 의미 없는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죠. 그 외, 국보지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저 뒤 p310 이하에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은진미륵은 1970년대에 우표 도안으로도 쓰였고 그 친근한 모습 덕분에 인지도가 꽤 높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보물"의 지위였다가 2년 전에 국보로 격상되었고 책에도 이 사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견훤과 그 패륜의 아들 신검 간 상쟁사가 잠시 언급되는데 황산벌을 이 불상이 멀리서 굽어보는 그 위치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알듯 황산벌은 이 고사의 276년 전(p105)에도 다른 큰 일의 무대이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 뒤에는 관촉사 창건 설화가 나옵니다. 이름이 통칭 은진미륵이지만 석조"관음"보살입상이 정식 명칭이라고 저자는 환기합니다. 왜 민중이 오랜 동안 이 상을 미륵으로 불렀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정제미와 이상미와는 달리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았다는 게 책에 나온 구절인데, 최근에는 고려 시대의 조형에 대해 학계에서 전면적으로 독자적인 미의식 추구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쪽입니다. 


팔만대장경의 가치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널리 가르치는 편이지만 종교편향이라는 오해를 부를까 우려가 있어서인지 최근에는 그리 강조를 안 하는 듯합니다. 책에 나오듯 추사 김정희도 "판각이 마치 신선이 쓴 듯한 필체"라며 한참 후대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국난 중에 이런 성과물이 나왔다는 사실도 놀라우며, (그런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겠으나) 만약 우리가 국보를 단 한 점만 보유할 일이 있다면 단연 첫손에 꼽힐 만합니다. 실록 완역으로 최근 널리 인용되는 고사가 "왜인들이 자주 찾아와 특히 세종에게 대장경을 내어줄 것을 간청 혹은 위협했다"는 일화입니다. 정부에서 대내외적으로 숭유 억불책을 쓰니, 필요도 없는 대장경은 우리에게 준들 어떠겠냐는 참으로 뻔뻔스런 작태였죠. 책에는 이 당시 존불정책을 편 무로마치 막부의 그 나름 급한 사정이 작용했다고 합니다. 임란 당시에는 왜의 모 승려가 "팔만대장경이 훼손되면 일본이 망할 것"이라며 경거망동 자제를 촉구했다고도 합니다. 세종 자신이 불교를 깊이 믿은 이유도 있지만, 여튼 먼 훗날을 내다보고 국보를 미리 지킨 그 혜안에도 감탄하게 됩니다. 


p139에는 "영국인은 인도를 잃을망정 셰익스피어를 지키겠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석굴암이 있다"고 한 고유섭의 말이 인용됩니다. 셰익스피어 운운은 저명한 평론가 칼라일의 것인데 현재는 영국이 아대륙을 포기한 지 이미 70년이 넘었고 저 말 자체가 제국주의의 뻔뻔함을 나타낸다고 해서 지명도가 확 낮아졌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아마 성장과정에서 자주 접했을 겁니다. 고유섭 선생은 이른바 "무기교의 기교"라는 명언으로 잘 알려진 분이었죠. 석굴암은 고대 건축의 한 경이에 속하는 걸작이지만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 일제가 섣불리 콘크리트, 시멘트 등으로 떡칠을 한 탓에 가치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급한 수단으로 보전하려는 최선의 시도였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현재의 눈으로 보면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죠. 


마르코 폴로가 황금의 나라를 찾아 떠난 게 지팡구, 즉 지금의 일본이었다고 하지만 진짜 황금의 나라는 p221에 나오는 대로 201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전시회의 별칭이기도 하듯 신라였겠죠. 국보 83호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작이지만 그 관리번호(아무리 행정기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가 83이란 사실은 잘 모를 듯합니다. 이 83호를 놓고 2013년의 저 전시회에 출품할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의 반대가 있었으나 상급 기관인 문체부가 중재에 나서 겨우 출품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p221). 야스퍼스가 극찬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에도 잘 나오는 것처럼 그 극찬은 원래 일본 고류지(광륭사)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향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다루기 힘든 청동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83호가 미적 가치가 더 뛰어나다는 게 저자의 단언이고 또 중론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화제가 되었지만 한글 창제에 대해서는 승려 신미가 기여했다는 설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는 실록을 인용하여 세자(나중에 문종이 되는 분), 딸 정의공주의 도움을 받았으리라 추정합니다. 그 따님의 총명함에 대해서는 민간기록인 <죽산안씨 대동보>(즉 해당 가문의 족보입니다)에서 따로 언급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총명한 여성이 있는가 하면, 멍청한 자신의 지능에 대한 열등감과 전문성 부족 때문에 오히려 피해의식에 쩔어 있는 한심한 고자질쟁이도 있는 법이죠. 


미술품에 대한 평가는 확실히 시대가 바뀌면서 같이 변천하기도 하나 봅니다. 예전에는 고려대의 작품에 대해 앞 신라대의 그것에 견줄 바가 못된다는 듯 폄하하는 입장이 보통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죠. 책 p313 이하에서, 2013년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연 전시회에서 정작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이 보원사지 철조여래좌상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는 석굴암과 비슷한 시기인 8세기로 그 제작 시점이 짐작되며, 물론 고려가 아닌 신라 代입니다. 그러나 책에서도 설명하듯 철불 양식은 중국에서도 송대에 접어들어 널리 퍼졌는데 우리는 이미 이 시기에 철불을 능숙히 만들었으며 철불은 이후 고려대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자리잡습니다. 이 작품은 미국인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정작 우리의 평가는 박한 편이어서 아직도 국보는커녕 보물 등 어떤 형식으로도 문화재 지정이 안 된 상태입니다. 이 작품은 책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라 나옵니다만, 부여군 등에서 최근에 연 전시회에서는 "국외 반출로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와야 할 문화재"를 언급하는데, 이분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향토, 본향으로 돌아와야 함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현재가 영화스럽고 과거가 다소 부끄럽다고 해도, 조상님들의 노력과 은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우리가 없는 법입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데 하물며 찬란한 문화유산까지 이렇게나 많이 남겨주셨으니 그 은공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보다 밖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감탄하는 우리들의 국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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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씽킹과 서비스 경영 - 김승욱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0-11-2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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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디자인 씽킹과 서비스 경영

김승욱 저
(주)박영사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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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은 현재 삼성전자, 또 LG전자의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특히 삼전의 공장은 파운드리를 위한 것인데, 이것이 기존의 D램반도체,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시스템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용도입니다. 몇 년 전 누가 디램반도체의 강자로 남을 것인지를 두고 한국의 삼전, 하이닉스 등과 다른 나라의 업체들이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였는데 여기서 한국의 업체들이 결국 이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세계 산업계의 최전선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대만의 TSMC는 그 후 절치부심하여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업체로 기어이 도약하고 말았으며 이걸 다시 삼전이 추월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이것이 현재 평택에서 용틀임을 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여파에 따라 한국의 소부장 업계들에 펼쳐질 미래도 완전히 색깔이 달라지겠습니다. 미군 부대가 나가고 난 후 이런 놀라운 역사가 펼쳐지는 거죠.


저자께서는 현재 평택대학교 정교수로 재직 중인 분입니다. 이런 평택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분이니 그 소회가 남다를 만도 합니다. 이 책에서 담은 내용은 서비스 경영인데, 흔히 직원들을 고용하여 감정노동만 시키면 되는 양 착각하지만 고객들을 감동시키고 제품의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바로 이 서비스 파트에서의 업무 완성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 비중은 결코 경시될 수 없으며, 향후 전개될 AI 등을 이용할 고객응대에 있어서도 이 부문의 전개와 귀추가 크게 주목된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인간과 소통함에 있어 그 인상이라든가 감동은 제품의 수월성이 안기는 만족감을 일반적으로 능가합니다. 저자는 이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1) 고객 이해: 인지 유발 (2) 고객 기대: 감응 유발 (3) 고객 반응: 행동 유발의 3단계로 구별합니다. 마케팅에서 이른바 고객 충성도라고 하는 것도 "감동 유발"이 없다면 아예 발아 자체가 안 됩니다. 


책의 내용이 아주 상당히 자세히 전개됩니다. 서비스 하나에서 이만큼 다양한 각론이 도출되는지에 대해 놀라게도 됩니다. 과거에 안주하는 자에 대해서는 미래가 없는 법이죠. 특히 요즘 대한항공과 모 부실항공의 합병 이슈가 불거지는 중, 이 책 챕터14를 잘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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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축의 전환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0-11-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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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30 축의 전환

마우로 기옌 저/우진하 역
리더스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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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본디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2030년이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맞는 전환점이리라 예측합니다. 이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한국어 서문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 한국은 모든 면에서 중간 규모의 나라이며, 자체적인 인구 수나 경제규모에 의존해서는 미래의 번영을 장담할 수 없으며, 주변국들과 협력해야 한다. .. 지정학적 한계 속에서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권역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분석할 경향들 속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다....(p5)"라고 말합니다.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도 지적했듯 한국은 어떤 면에서 그저그런 나라의 한계를 못 벗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종래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이런 성격과 특징이란 게, 앞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이할 세상에서는 메리트로 작용하여 번영의 큰 실마리를 먼저 나꿔챌 수 있다는 뜻입니다. ㅎㅎ 이렇게까지 말하는 저자의 책이니만큼 우리 한국 독자들이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일자리 소멸 현상이, 중간 정도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몰려 있는 제조업 분야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야말로 쉽고 좀 더 경제적으로 기계화 혹은 자동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p52)" 그래서 트럼프 같은 이가 미국 블루칼라 백인층을 특히 타겟으로 삼아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인기가 높다는 게 (역설적으로) 투표 결과 확인되어, 4년 뒤 가장 유력한 후보로 벌써부터 부상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도 여튼 잘 지적하고 있듯 이런 이들의 일자리를 뺏는 건 이주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계"인데도 이들은 분노를 엉뚱하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새로 일어나야 할 듯하네요. 


일단 저자는 이주 노동자는 선진국 입장에서 환영해야 한다는 편입니다. 왜? 인구 노령화 추세가 선진국일수록 두드러지니 말입니다. 일자리의 공백(?)은 이들이 채우는데 "대체 이주"로 명명된다고 합니다. "대체(replacement)"는 사실 영어와 우리나라말에서 쓰이는 용법이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문제도 2030년을 기준으로 삼아, "절반 이상의 인력"이 "여러 일자리(꼭 앞에서 말한, 기계화되기 쉬운 일자리만은 아니라고 하네요)"를 채울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필립스는 1939년에 벌써 전기면도기를 내놓았고(지금도 유명하죠), 983년의 CD 플레이어(한국에서는 1990년부터 널리 팔렸습니다), 1998년의 DVD 플레이어 등도 모두 이 다국적 기업의 작품이라고 책(p83)에서는 말합니다. 이런 기업도 희한하게 저 놀라운 혁신 상품을 내내 출시하던 그 무렵부터 거대한 적자의 덩어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2011년 프란스 반 하우턴이 새로 CEO에 부임하고 나서야 비로소 문제의 해결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다름아닌 인구통계학적 흐름을 애써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선택이었다고 하네요. 


뭐 삼성그룹도 이를 알아채고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회사를 새로 만들어 헬스케어 분야에 적극 뛰어들었으며 셀트리론의 서정진 회장 같은 이도 이 트렌드를 일찍부터 내다본 것입니다. 노령자가 많으면 당연 노령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뭔지를 알아채어야죠. 몸을 들썩이며 워크맨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세대가 많으면 소니 같은 기업이 흥합니다만 지금은 1020이 선진국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튼 저자는 이를 두고 "노년의 재발견"이라 합니다.


"Z세대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첫번째 세대다."(p105) 저자는 이들이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태도와 법률이 그야말로 번개처럼 바뀌는 모습을 본다"고 합니다. Z세대가 아닌 우리들도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뀌는 과정을 다 봅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어렸을 때 형성했던 관점들을 대체로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고정관념이 생기기도 전에 대세와 주류가 바뀌는 걸 보며,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교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세대가 공히 어떤 가치를 셰어하는지도 의심스러운 판입니다. 


그런데 이제 갓 산업화의 과실을 맛보기 시작한 중국은 어떠한가? 우리 생각에는 아직도 이 나라가 청장년층이 열정적으로 사회를 이끄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쪽이지만,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현상을 관찰한다고 합니다. "선진국들이 노령화로 걸어들어가고 있다면, 중국은 달려들어가고 있다(p107)." 60세 이상의 인구가 2억이 넘으며, 5천만명 넘는 노인들이 자녀들과 떨어져 산다고 합니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도 이미 1980년도부터 목격되었으나, 중국은 그 추세가 훨씬 빠른 편이라는 거죠. 한편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의 또래보다 저축액이 3배 정도 많다고 합니다. 중국이 가난하다고 무시 받는 건 그 앞 세대의 문제에 그칠 수 있다는 암시입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청년들은, 나라는 부강하나 자신들은 가난함을 느끼는 첫번째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독자인 저는 암시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일각에서 열렬히 찬성하는 기본소득제는 과연 대세가 될까요? 미국에서 좌파성향으로 여겨지는 루스벨트 연구소도 "세금으로 지원하는 기본소득제로는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p147). 사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이들도 어떤 장밋빛 환상을 무턱대고 내놓지는 않습니다. 대체로는 정직하게 "성장이라는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며, 이런 전제 하에서라면 기본소득이 큰 모순은 아니죠. 실제로 알래스카에서 시범 시행을 한 결과는, 의미없이 금방 써버린다거나, 오히려 빈부 격차가 더 커졌다든가 하는 현상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유는 여유 있는 계층일수록 이를 성공적으로 재투자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어느 나라나 중산층의 성장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지표야말로 빈곤층의 감소를 직접 증명하며, 사회의 건전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중간층(중산층은 중간층과 다릅니다만 일단)이 수적으로건 질적으로건 상층부와 하층부를 압도해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그 예전부터 지적(p119)했었다는군요. 그렇다고 중산층이 마냥 선량(p125)하냐면 그건 아니겠죠.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은 계급으로서 언제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그 쇠퇴의 기미는 어느때보다도 뚜렷합니다. 반면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중산층은 나날이 성장합니다. 이 역시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2030년이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표면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게 수자원이지만 인간이 식수 등으로 이용하기에 물은 턱없이 부족합니다(p211). 특히 남아시아에서는 깨끗한 물이 날로 부족해지며, 가장 가난한 나라일수록 깨끗한 물을 길어 오는 노동이 주로 여성에게 부과되며 이는 우리나라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았겠죠. 상하수도 시설이 온전히 갖춰진 나라에서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특히 물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작업을 벌이는 강도와, 수질 오염이 서로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농업 역시 여러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는 분야이지만 비판자들은 새로운 기법이 과거와는 달리 환경파괴적 경향을 띤다고 지적합니다. 농업 역시 사실 마냥 환경친화적이진 않아서, 사하라 사막이 점점 커지는 이유도 무분별한 관개 작업 때문이었으니 애초에 인구가 지나치게 느는 자체가 환경에는 재앙이겠습니다. 이런 까닭에 선진국에서는 "수직 농업"이 각광받는다고 책에 나옵니다(p215).


애플의 스마트워치는 여러 신기한(더 이상 뭐 신기할 것도 없는) 기능으로 소비자들의 주목 대상이 됩니다. 책에서는 유명한 코믹스 캐릭터인 딕 트레이시가 이미 1946년에 이런 신기방기한 손목시계를 차고 나왔음을 상기합니다. 1970년대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기술 중 하나는 일본이 선뵌 것으로, 수정 진동자를 이용하여 더욱 정교함을 높였다고 합니다(p237). 휴대전화가 널리 사용되면서 사실 시계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 추세가 굳었으나 애플 등이 스마트워치를 출시함으로써 폰의 기능도 보조하고 패션 아이템 기능도 제고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p256에서는 사물인터넷 기술이 언급됩니다. 사실 이 기술도 이미 2015년 즈음에 책이나 미디어에서 널리 회자되었는데 아직도 생각보다는 진척이 느리며 자율주행보다도 더 늦게 대중화할 듯합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포인트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진다"입니다. 단순 반복 노동은 없어지는 반면 인간의 창의력이 상대적으로 더 요구되는 분야는 늘어나리라는 함의가 읽힙니다.


공유경제 개념은 이미 미국인들이나 우리 동아시아인들의 삶 속에 깊이 침투했고 우버나 (한국의) 쏘카 같은 서비스가 널리 보급되었지만 여전히 현행법과의 충돌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책에서는 공유경제 개념의 함정을 살짝 주목하여 이른바 "공유지의 역설" 등이 설명됩니다만 결국 이런 컨셉이 더 널리 받아들여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유익을 믿게 된다(p308)"고 합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급등합니다만 아무래도 화폐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만한 게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입니다. 암호 관리는 비단 가상화폐 관련뿐이 아니고, 널리 지적 재산권을 보호할 때에도 필요합니다. 지적재산권이 해적질의 대상이 된다면 결국 아무도 머리를 써서 무형의 자산을 만들려 들지 않을 것이며 현재 뮤지션들이 그럭저럭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각종 플랫폼이 아슬아슬하게 장벽을 쳐 주는 덕분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은 블록체인이나 양자암호 시스템이 두루 이런 지적재산권 관리 체계로 편입이 되어야 합니다. 


책은 유진 오닐의 말로 마무리됩니다. "행복을 추구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행복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추구되어야겠으며, 이 자격은 지구상의 다른 이웃과 공존과 공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자가 축의 전환으로 규정하는 2030년에는 더 많은 공감과 유대, 형제애가 지구를 채우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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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 My Reviews & etc 2020-11-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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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드, 코로나

강인성,김가연,김지영,노소영,박선영,신진우,오정민,이재영,이희경,임후남,주미희,홍소희 공저
생각을담는집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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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전에 없던 일을 겪습니다. 지인들과 만나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차 안에는 마스크 몇 장을 상비해 둬야 뒤에 당황하는 일이 없고, 잠시 편의점 갔다 오려 해도 신경이 쓰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필자분들의 사연을 보면 이런 소소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겠구나, 혹은 (이미)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보름에 하나씩은 연극을 반드시 보겠다는 강인성씨의 바람(본인 표현에 따르면 "근거 없는 확신")은 깨어졌습니다. 먼 지방으로는 이사 가기 싫다는 분들이 많은데 용인 정도면 그래도 문화의 혜택을 누리는 데 아주 큰 지장은 없는 듯합니다(서울까지의 거리 감안). 올해 5월에는 "해외 극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바냐 아저씨>가 예정"되었는데 역시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전자는 뭐 잘 알려져 있고 후자는 체홉의 작품인데 올타임 리퀘스트이긴 하나 요즘 부쩍 상연이 는 듯합니다. p14에는 왜 필자분이 연극을 그토록 사랑하는지 열렬한 고백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대략 15년 전부터 배우분들의 역량이 부쩍 늘어 참 볼만해졌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여튼 코로나 때문에 가장 타격을 받은 건 (필자의 표현대로) 이런 오프라인 공연을 기획, 연출, 또 연기하는 분들이며 또 이런 공연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코 앞에 무대를 놓고 그들의 호흡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벅찬 체험이란 지난 1년간 불가능했고 앞으로도 쉬 재개될 가망이 안 보이죠. 


직장을 재미있는마음으로 다니고 업무의 매 순간이 즐겁고, 상사를 대하는 시간이 유쾌하고 설레고... 뭐 이런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구나 일을 지겨워하고,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다니는 게 직장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공감하는 이가 많죠. 필자 김가연 씨도 마찬가지였던 듯합니다. 필자는 안식년으로 마침 휴직중인데, 그 와중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게 되었습니다. 직장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코로나 때문에 유급 휴직을 실시하는 곳도 많으니 하필 지금 안식년이라면 손해라고 여기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와중 참으로 소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전에 심드렁하게 여긴 온라인 강의나 취미 생활도 전혀 새롭게 다가오며,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모든 교육, 컨텐츠의 소중함도 절감합니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좋고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바뀝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편한 세상에 살고 있기에, 하루쯤은 사고로 서비스가 중단이라도 되어 봐야 그 고마움을 절감합니다. 징글징글한 코로나가 우리한테 스승이 되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최고로 여겨지는 게 교사 직업입니다. 김지영 필자는 14년이나 교편을 잡으셨으나 작은 동네 책방을 최근 여신 분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에는 정부나 사회단체, 출판사 등에서 동네 서점을 후원한 정책 덕도 있지 않겠나 제 멋대로 짐작합니다만 생업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건 여전히, 지극히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게다가 이런 판에 코로나까지 터졌으니... 저자는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신의 문화적 욕망에 충실하여(?) 이런저런 시도를 과감히 해 보기도 하고, 밖으로는 뜻 있는 이들과 프로젝트를 열기도 합니다. 놀랍습니다. 의욕이 있어도 외부 여건이 안 맞으면 쉽게 좌절하는 게 보통인데, 오히려 "나만의 리듬을 찾고 원 없이 하고 싶었던 것 해 보자"는 식의 역발상.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덕업일치, 즉 취미와 생활의 일치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요즘의 우스개가 더욱 설득력을 얻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같은 역병이 닥치면 인간은 더욱 악착같아지고, 더욱 현명해지고, 더욱 신나(?)합니다. 이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신진우 필자님은 대학에서 강의를 합니다. 다들 알다시피 대학이건 그 이하 과정의 중등학교이건 지금은 학교를 못 갑니다. 온라인으로 출석을 부르고, EBS 같은 데에서 방송하는 수업을 듣습니다. 필자님 같은 분도 전에 무슨 비대면 수업 같은 걸 해 봤을 리 없으니 당연히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대면 소통도 그 나름 애로가 있겠으나, 아예 다른 공간에 있는 이들과 랜선으로 소통한다는 건 인류가 아직 넉넉히 경험해 보지 못한 일입니다. 쓰잘데없는 채팅류도 아니고 교육을 그저 비대면으로 진행한다는 건 확실히 당혹스러운 시도입니다. 필자는 말합니다. "비대면이 대면보다 더 절실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감정을 이미지하여 이런 색, 저런 색으로 표현하게 하는 필자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그의 본래 전공 성격을 감안한다 해도 참 기발하다는 생각입니다. 


책에는 참 다양한 사연이 나옵니다. 우리 이웃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코로나 시국을 맞아 한결같이 토로하는 건 소통과 공감의 어려움,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통한 자각과 기쁨, 성취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치 <데카메론> 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는 듯도 하고, 역시 본질은 이웃과의 소통이요 우리 자신과의 정직한 대화가 아니었나, 이게 책을 다 읽은 저의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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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제10권 - 吉川英治 | My Reviews & etc 2020-11-2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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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야모토 무사시 10

요시카와 에이지 저/강성욱 역
문예춘추사 | 201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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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필요없는, 일본 대중소설의 스테디셀러입니다. 吉川英治, 요시카와 에이지는 이 작품 말고도 <삼국지>등을 자신의 버전으로 지었는데 일본에서는 그 역시 공전의 히트를 쳤으며 한국에서도 이문열 평역판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작가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설 내용 누설이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이 작가의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드디어 두 맞수가 "외나무다리(즉 외딴 섬인 간류지마. 엄류도)"에서 만나 최후의 쇼다운을 벌이는 장면은 의외로 담백합니다. 미국에서도, 유명한 OK목장의 결투가 몇 분도 안 되어서 끝났다고 하죠. 이 소설에서는 사사키 고지로가 검술 기량 면에선 압도적 강자였으나 미야모토 무사시의 멘탈을 결국 이기지 못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패배를 당하는 걸로 나옵니다. 그는 여인들이 반할 만한 미남자였던 데다 바지랑대 같은 독특한 무기를 휴대하는 캐릭터성으로 유명한데 모두 이 작품의 영향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는 그리 재밌게 읽은 작품은 아닙니다. 제가 이걸 처음 읽은 건 중3때였는데, 한창 이런 걸 재미있어 할 만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읽은 전혀 다른 본격 문학에서 느꼈던 재미조차도 못 느꼈습니다. 보다시피 전 10권으로 된 풍부한 볼륨인데도 이상한 노파와 티격태격하는 전반부, 혹은 운명의 여인과 이뤄지는 로맨스 같은 것도 제 눈에는 그저 시큰둥했습니다. 특히 노파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갈등 설정은 읽으면서 짜증이 날 정도였죠.


여튼 이 10권은, 그간 길게 전개되었던 모든 갈등의 해결, 그것도 무사시 같은 노력파가 결코 넘을 수 없던 산인 사사키 고지로가 결국 무너지는 그 장엄한, 그러면서도 갑작스러운 돈강식 결말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사사키는 죽어가면서도 자기가 진 줄, 혹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드디어 놈(무사시)을 잡았다는 환희에 가득합니다. 이 역시 다른 명작에서 미처 못 접해 봤을 만한 개성적인 심상이며 사실 이런 담백하고 멋진 마무리만으로도 이 작품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픽션에서와 현실의 인물은 무척 차이가 있으며,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분들도 다른 팩트상의 기록을 찾아 소설과 어디서 거리를 두는지 살펴 보는 재미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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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피와 제국 - 스테판 로란트 | My Reviews & etc 2020-11-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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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과 피와 제국

스테판 로란트 저/윤덕주 역
엔북(nBoo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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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피"라는 말은 비스마르크가 빌헬름 1세로부터 수상(칸츨러)으로 지명된 후 프랑크푸르트 의회에서 연설할 때 "내가 중시하는 건 어떤 형식적이고 겉치레에 치우친 번잡한 미덕이 아니라 오로지 철과 피"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활동하던 시기는 19세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문, 또 의회 의원들과 격렬한 여론전을 펴 가며 대립하는 모습이 마치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그것과도 비슷해서 어렸을 때 무척 놀랐던 기억입니다. 물론 프로이센의 왕에게는 신문을 검열하고 의회를 해산할 권한이 있었기에 단순 비교할 사항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근세 독일 하면 동시대 프랑스, 영국에 비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후진국을 떠올리지만, (실제 그런 면이 있었긴 해도) 그 정도로 숨막힐 듯한 억압적 체제는 아니었습니다. 또 비스마르크에게는 지독한 적수가 있었는데 가톨릭중심당을 이끈 루트비히 빈트토르스트라는 자그마한 체구의 정치인이었습니다. 독일을 통일하고 나서도 비스마르크는 바이에른 등의 가톨릭 세력과 격렬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를 두고 "문화투쟁"이라 합니다. "문화투쟁"은 1992년 40대의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전혀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물론 1960년대에 부상한 히피, 반전 세대와 그 이전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던 층과의 대립을 뜻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 트럼프 지지 진영과 바이든-힐러리-유색인종- 리버럴 세력의 범 연합 간 대립도 저 1990년대 후반에 싹을 틔운 것입니다. 


빌헬름 2세는 시대정신(...)이 범게르만주의에 있음을 깨닫고 종래의 비스마르크가 확립한 노선을 전면 폐기, 러시아와 적대하고 오스트리아와의 동맹을 꾀했습니다. 그렇다고 프랑스와 대립하는 정책을 버린 것도 아니어서 결국 고립과 파멸을 불렀습니다. 시원찮은 오스트리아 따위와의 연합으로는 족탈불급이었던 거죠. 프랑스와 서부 전선에서 싸우고 동시에 러시아를 동에서 맞는 이런 양면 전선이란 아무리 군사강국이라 해도 독일이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의 도전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영국, 나중에는 미국까지 전쟁에 참여하자 요즘 말로 완전 GG를 치고 만 것입니다. 


여튼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려면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게 맞긴 맞아서 빌헬름 2세는 결국 도박의 방향 자체는 제대로 잡았던 겁니다. 아예 도박을 하질 말았어야 더 옳았긴 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훗날 빌헬름 2세를 무능하고 사악한 군주라 평하지만 그 역시 시대의 요구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며, 살 길을 그런 쪽에서 찾으려 했던 독일 민족이 나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의 히틀러 출현도 뭐 어디서 없던 악마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독일이 그런 (광대 겸) 악마를 원했던 겁니다. 이제와서 자신들은 잘못 없었던 양 행세를 하지만요.


어떤 사람은 비스마르크의 잘못이, 그가 아니면 핸들링할 수 없는 너무 어려운 기본 방침과 디테일을 잡은 데 있다고 하지만 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원래 외교는 가장 세련되고 가장 심오하며 가장 난도가 높은 과제였고, 이는 19세기 독일뿐 아니라 어느나라 어느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죠. 


사진뿐 아니라 재미있는 일러스트가 많아서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역시 역사는 텍스트 온리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공감각적 체험이 되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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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딜로와 산토끼② | My Reviews & etc 2020-11-2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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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르마딜로와 산토끼 2

제레미 스트롱 글/레베카 베글리 그림/신지호 역
위니더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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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친구 사이라고 해도 오해나 서운함은 언제나 쌓일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터 놓고 나누는 대화일 듯합니다.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또 서로 마음 상하는 말이 오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관계의 큰 그림, 본질을 바로 보고 공유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베스트셀러 작가 제레미 스트롱의 이 동화를 읽고 나서 드는 것 같았습니다. 


"재규어라고!" 생쥐는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p24)


아르마딜로는 자기 집에 동물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데 그 중에는 재규어도 있습니다. 고양잇과 동물 중에는 북미 대륙에 사는 중 최상위 포식자라서 우리한테라면 호랑이 같은 느낌이겠습니다. 재규어도 배가 고프면 생쥐(만약 근처에 있다면)를 얼마든지 잡아먹을 테니 생쥐가 놀란 건 당연합니다. 책 저 뒤 p134에는 재규어가 안 잡아먹겠다고 농담을 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p101에서는 바닷가재가 지네를 보고 놀라 심장이 마구 뛰기도 하네요. 사실 지도 징그러우면서 말입니다.


산토끼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쥐처럼 초라한 모습을 하고(책 p12에서는 젖은 행주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얼마 전(정확하게는 일년 5개월 23일 반나절[p15]이며, 그들은 "오래 전"이라고 말은 합니다) 아르마딜로의 집에 찾아와 신세를 지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르마딜로는 이 토끼를 무척 좋아하며, 토끼와의 만남을 기념하여 파티를 여는 겁니다. 


웜뱃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는 낯선 동물일 텐데 호주에 살며 이름 중 "웜"은 warm도 worm도 아니고 그냥 wom입니다. 영어 어근에는 이런 형태가 없겠고, 호주 선주민들의 단어라고 하네요. 이 이야기에서 웜뱃은 손재주가 아주 뛰어납니다. 친구(손님)들 중에는 대벌레도 있는데 물론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여튼 이들과 친구입니다. 저 생쥐는 "나이가 많은 것 같(p21)"은데도 여튼 또 친구입니다. 그러니 크기도 나이도 먹이사슬상의 서열도 아무 상관 없이 이들은 모두 친한 친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벌레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 작가분도 이를 의식하고 매번 대벌레 앞에다 "눈에 보이지 않는"이란 수식어를 일부러 붙입니다! 독자들 재미있으라고 말입니다.


책 마지막에도 다시 나오지만 사실 이중에서 좀 특히 신비한 동물은 산토끼입니다. 얘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서 악기 튜바를 물려받았는데 하도 족보가 길어서 마치 기독교 신약의 한 구절을 읽는 듯합니다. 이 튜바에서는 연주할 때마다 네온사인 같은 게 막 튀어나옵니다. 아르마딜로도 결말에서 이게 신기했는지 그 내역을 물어보는데 산토끼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토끼의 대답은 아마 이 책을 어린이와 함께 읽을 부모님들이 더 마음 찡해할 것 같아요.


아르마딜로와 그의 친구들은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소리(p30)"가 숲에서 들려오는 걸 듣고 그리 향합니다. 그런데 저 국혐하는 표현은 아르마딜로의 "견해"이며 산토끼, 재규어, 거북이 등은 "박자가 있는 음악"임을 깨닫고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헤비메탈(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듯이 말입니다. 사실 유독 아르마딜로만 그 음악을 싫어한 건, 나중에 드러나듯(p74) 그 연주자의 다재다능함을 앞으로 자신이 시기하게 될 것을 알려주는 묘한 전조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미 복선이 깔린다는 뜻입니다.


연주자는 곰이었는데 우리도 악기 연주 잘하는 친구가 인기 좋듯 곰은 이들 사이에서 단박에 스타로 떠오릅니다. 산토끼가 곰한테 특히 관심을 보이는 걸 보고 아르마딜로는 자신도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 생각(p55)"을 갖게 합니다. 곰이 음악에 재주가 있으니 자신은 미술로 승부를 보겠다? 여튼 아르마딜로가 꽂힌 대상은 치즈입니다. 위에서 본 치즈, 아래에서 본 치즈... 치즈... 이 치즈(?)는 하늘에 뜬 모양으로 뒤에 다시(p138) 나옵니다.


바다에 간 그들은 수영을 합니다. 수영 솜씨가 가장 좋은 애는 의외로 아르마딜로였는데, 다들 이렇게 우아하게 힘 안 들이고 잘할 줄 몰랐다면서 칭찬이 자자(p78)합니다. 아르마딜로는 아빠가 수영 선수였다고 하는데 역시 재주는 부모님한테 물려받아야 하는가 봅니다. 바닷가재는 원래 여기가 홈그라운드고, 거북이는 얘가 바다거북이 아니라서 의외로 수영을 못하네요. 대벌레는 수영복이 없다면서 부끄러워하며 수영을 사양하는데 얘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잊었습니다. 


우아한 기린은 어느날 다리를 다쳐 절게 됩니다. 재능이 많은 곰은 그의 무릎을 고쳐 주는데(p118), 곰은 이처럼 다재다능하고 매력적입니다. 곰은 저 앞 p38에서도 거북이를 도와 줍니다. 아르마딜로는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하고 샘이 났던 거죠. 그런데 이런 곰도,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애가 아닐까?"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며 솔직히 고백(p83)합니다. 그래서 곰은 드럼을 열심히 쳤던 거라고 합니다. 그런 괴로운 생각을 떨칠 수 있으니까요. 


"산토끼야, 너는 가끔 이상한 말을 하더라? 물론 여기는 저기가 아니야. 여기가 만약 저기였다면, 저기는 여기가 아니지 않겠어. 안 그래?"(p94) 우리 독자는 여기서 마치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웜뱃은 산토끼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멋진 해석을 합니다. 무엇인지는 직접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둑이라든가 스도쿠 같은 걸 우리는 스포츠라고 잘 생각하지 않는데 이미 아시안게임에서는 e-sports가 정식 종목입니다. 기린이 요가를 하다 다친 걸 보고(p127) 더욱 아르마딜로는 두뇌스포츠(ㅋ)에 빠져듭니다. 


드디어 바닷가재는 기린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여 사랑에 빠지고(pp. 144, 146) 거북이는 이를 눈치채어 매번 놀려댑니다(p132). 애들은 꼭 이런 걸 놀리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만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어 후회가 되는군요. 


"음 바닷가재야 여기 흥미로운 게 있어. 네가 괴물을 만났을 때 네가 "앙녕하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괴물이 절대 아닌 경우가 많아."(p103) 맞는 말입니다. 이 대목은 마치 생떽스의 <어린 왕자> 한 구절처럼 그윽한 의미를 담았네요. 그 괴물은 참고로 지네였습니다.


아르마딜로는 치즈가 너무 좋았는지 풍선에 매달려 달을 향해 가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합니다. 다행히 키 큰 친구 기린이 있어 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숲도 기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아르마딜로, 그건 네 기분이야. 넌 네 기분을 숲을 통해 보는 거라고."(pp.87~88)

"내가 튜바를 연주할 때 내 기분에 따라서 튜바가 그 감정과 꿈을 깨워서 밖으로 내놓는 거야."(p156)

언제나 산토끼는 아르마딜로보다 어른스럽습니다. 이래서 아르마딜로가 산토끼를 귀여워하는 것 같습니다. 안 그럴 것 같은 애가 그러니 말이죠.


"난 널 멀리서 볼 때 참 크다고 느껴. 그런데 네가 가까이 다가오면, 난 갑자기 깨달아. 네가 참 작다는 걸." (p128)


이 말은 산토끼가 역시 아르마딜로에게 한 말이고, 우습다는 듯 아르마딜로는 막 키득거립니다. 전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원근법은 무슨 법칙이 아니고 하나의 가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에 따라 모든 걸 바꿀 수 있으니 우리는 과연 다 특별한 존재입니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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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적은 민주주의 | My Reviews & etc 2020-11-2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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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0% 적은 민주주의

가렛 존스 저/임상훈 역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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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추천사(김정호 교수)에도 나오듯,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의문을 제기하는 건, 지난시절 왕의 존재이유, 존엄, 정당성에 도전하는 만큼이나 "불경"스럽게(p6) 다들 받아들입니다. 과거에는 "민주역적"이란 말도 종종 쓰곤 했는데 그만큼 민주주의라는 게 체제, 사회의 절대 전제가 되어야 하며, 민주주의 외에 다른 어떤 시스템도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합의(민주주의의 구체적 작동 방식에 대해서는 설령 이견이 있을망정)가 확고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천사를 쓴 김정호 교수는 "민주주의 과잉시대(p8)"를 사는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표현도 오해받기 딱 좋습니다. 민주주의에 일시적 오용, 오도가 있을망정 과잉이 있을 수가 있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원리가 무절제하게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역시 추천사에서는 한국은행총재와 금통위 위원을 두고, 민주적으로 선출할 때 운용이 곤란해지는 예로 듭니다. 문명 사회에서는 전문가의 영역이 존중되어야 하며, 외견상 바로 판단하기 어려운 응급환자를 치료할 때 문외한들이 민주주의랍시고 모여 "다수결"로 수술 방향, 방법을 결정해서는 큰일나는 이치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사법절차에 민주주의를 무제한 도입하면 이는 인민재판(p7)으로 타락할 뿐이라고도 합니다. 플라톤은 이를 일러 중우정치의 폐단이라고 일찍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려 깊지 못하고 목소리만 큰 사람, 논리고 이성적 판단이고가 없고 비뚤어진 자기 감정만 따라 징징거리며 폭주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비슷한 패를 모아 저급한 선동을 통해 자기 의사를 관철하는 사회는 이미 치유될 가망이 없는 중병에 걸린 공동체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확실히 요즘은 (그 표현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과잉의 시대"가 맞습니다. 


1980년대에 레이건 행정부를 지배하다시피했던 경제정책기조를 뒷받침하는 원리 하나가 래퍼 곡선입니다. 매우 직관적인 모습을 띠고, 아주 상식적이고 솔깃한 결론을 간단명료하게 주장하던 터라 인기도 얻고 반발도 그에 못지 않게 크게 샀었습니다. 세율을 필요 이상으로 올리면 세율이 낮았을 때보다 오히려 세수가 감소한다는 결론인데, 사실 이런 말은 맞다고도 틀렸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반박하려면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이 말이 틀림없이 들어맞는 경우도 많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저 경제학적 결론에 찬성하건 그렇지 않건 무관하게, 일정 선을 넘으면 오히려 안 한 만도 못한 역효과가 난다고 하는 그 구조상 레토릭은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습니다. 


p48에서 이 책 저자 가렛 존스 교수는 로버트 배로 교수(이분은 하바드에 계신데, 노벨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교수 등 시카고 보이즈와 결론을 함께하죠)의 1996년 연구를 인용하며, "민주주의의 지복점은 상당히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라는 그의 놀라운 결론을 소개합니다. "민주주의의 수준이 낮을 때는 조금만 민주주의가 발전해도 경제수준이 놀랍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면 경제성장률은 훨씬 낮아졌다." 여기서 지복점(至福點)은 bliss point가 그 원어이며 한국의 거의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서 저렇게 "지복점"으로 번역들을 합니다. 혹은 요즘 저널리즘에서 자주 쓰는 용어로 "골디락스"라고 해도 어느 정도 통합니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최적의 균형을 찾자면 그만큼 중용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만 같은 민주주의에, 넘지 말아야 할 어떤 선이 있다는 결론은 충격적입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연구 방향을 조금만 달리하고 표집을 조절해도, "지나친 민주주의는 경제 성장을 늦추거나 퇴보시킨다"는 결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책에서도 그 점은 인정(p50:2)합니다. 래퍼 곡선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엄격한 경제실증도구라기보다 하나의 정치적, 문학적 비유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이 개념은 저 뒤 p208에서 비판적으로 리뷰됩니다.


저자는 다시 존스와 올켄의 연구를 인용(p55)합니다. 후주(p344)에 보면 이는 그들의 2005년 발표논문이 그 출처입니다. 흥미롭게도 독재자가 죽으면 그 나라의 경제성장은 크게 요동치지만, 민주주의 리더가 죽은 후라면 별반 변동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의 결론, 혹은 전제를 다시 강조합니다. "민주주의의 10% 하향은 이미 고도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국가에만 제언될 뿐이며, 독재의 폐단에 신음 중인 경우엔 해당 사항 없다"는 취지입니다. 


민주주의와 평화는 그 향유의 정도가 비례할까요? 아니면 평화와 자유의 상관관계는 어떻습니까? 민주국가는 대체로 다른 민주국가와 다양한 공식, 비공식의 채널(p38)을 유지하고 있기에, 내심으로는 불필요한 전쟁, 전쟁터에 자신의 자녀들을 보내고 싶지 않은 유권자들이 어떻게든 평화적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고 또 이는 대체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독재국가와의 충돌에 있어서는 전쟁에 돌입하기 쉬운데, 이 부분은 연구 출처가 책에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의 사례 하나를 지나치게 일반화한 듯합니다. 이념의 방향성만 반대일 뿐 똑같은 독재국가, 전체주의였던 소련과는 결국 미국이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또 1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제정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독일 제국 등은 많은 전쟁 위기를 노련한 외교술로 넘긴 적이 많았는데 황제가 다스렸던 이들 국가를 민주주의로 보기는 힘들죠. 다만 독재자가 체제 통솔을 위해 인위적으로 전쟁을 유발, 도발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겠습니다. 


책에는 짐 뷰캐넌과 고든 털럭의 연구도 소개됩니다. 이 두 분은 우리 한국에도 예전부터 잘 알려진 공공선택이론의 개척자(p59)로 불리는 학자들입니다. 특히, 고든 털록은 책 저 뒤 p201 같은 데서 다시 등장하는데 저자와 개인적으로 각별한 연이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여튼 이 책에서 인용되는 범위 안에서 그들 연구 분야의 핵심은, 정치인이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과 소모적인 쇼맨십이 과연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사회 체제의 생산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사실 저런 건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양념처럼 꼭 끼곤 하며, 아무리 위선적이고 속이 들여다 보인다고 해도 무작정 금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임기가 한정된 국회의원은 비록 대리가 아닌 대표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무기속위임자이긴 하나, 임기말에는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의제의 존재 의의는 포퓰리즘, 대중영합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대의명분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인데,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이런 풍조는 점점 사라져가며 저급한 대중 선동가가 오히려 더 득세하는 경향마저 보입니다. 수준 이하의 인물들이 인기에만 집착하여, 기억력 나쁜 대중을 향해 말도 안되는 공약을 남발하니 의회에서 합리적인 결론도출보다 진영 간 극한 대립만 되풀이됩니다(21세기 들어 미국도 마찬가지로, 완전 갈데까지 간 모습을 보이죠). 우매한 대중의 싸움을 말려할 지도자들이, 자질과 자격이 부족하다 보니 지네들끼리 더 볼썽사납게 싸워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대표로 국회에 보낸 선거구민들의 수준도 문제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검은 이익을 위해서는 기막힌 협력을 유지하는데, p248에 나오는 로그롤링 같은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본문 중 "미리엄"은 "메리엄"이 맞겠습니다. 


그러면 대표자들의 임기를 늘리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저자는 이런 의문에 대해 책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답을 내어놓는 편인데 주된 논거는 달 보와 로시의 연구입니다. 특히 후자는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인데 20세기 후반 워낙 많은 고초를 겪은 나라이기도 한지라 그 결론이 더욱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아르헨티나야말로 수준 낮고 부패한 저질 군부 독재자들(비델라, 갈티에리 장군이라든가)에 의해 모진 시기를 통과해 왔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정파 간의 극한 대립, 민주화 리더들의 한심한 무능 등으로 인해 여전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수준이 아직 낮은 나라에도, 민주주의 절차의 일부 과잉이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찍어내는 능력(p82)." 물론 돈을 제멋대로 찍어내는 걸 가리키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처럼 기축통화를 운용하는 나라에서는 어느 시점에 얼마만큼이나 돈을 찍어내야 할지 그 판단의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연준 의장의 재량은 미국 대통령의 권위를 간혹 능가하기도 하며, 실제로 제롬 파월은 트럼프에 의해 임명되었지만 그의 강요를 자주 무시해 왔으며 미묘한 시기에 거시경제를 핸들링하는 그의 수완은 민주, 공화 불문하고 찬탄의 대상이 됩니다. 쑹홍빙의 <화폐전쟁>에서는 연준이 민간인들로 구성된 점,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는 점 등을 비난하지만, 이 책에서 잘 증명되듯 현재 미국 시스템 중에 그나마 잘 운영되는 곳은 연준뿐입니다. 저 뒤 p214에는 알렉산더 해밀턴의 유명한 말, "국가의 채권자들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다."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국가 재정 정책, 화폐금융정책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로 하여금 직접 관장하게 하지 않는가? 대중은 전문가의 능력을 바르게 평가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3장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추천사를 쓴 김 교수가 중앙은행을 특히 언급한 것도 아마 비슷한 심리적 배경 아니었을까 제 맘대로 추측해 봅니다. 중앙은행이 정치에 휘둘리고 대중의 변덕스러운 여론에 그대로 노출되면 나라는 마치 말기 원나라처럼 대혼란에 빠지는 겁니다.


아무래도 어떤 민주주의 국가건 간에 사법부의 독립은 미묘한 이슈입니다. 예전 어떤 미국인은 한국에서의 재판을 거부하며 "배심원제가 없는 재판이 과연 재판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지만, 미국처럼 노련한 판사가 배심단을 잘 리딩하지 못한다면 저 추천사의 어느 구절대로 인민재판에의 타락을 면할 수 없습니다. 감정에 들뜬 비이성적인 군중이 팩트체크도 거치지 않은 채 "죽여라!" 같은 선동에 몰려 유무죄를 함부로 판단하는 꼴불견을 상상해 보십시오. p196에는 에피스토크라시, 즉 현명한 이들의 정치라는 서양 고전 시대 이래 내려온 유명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미성숙한 이들에게 분에 넘치는 권한을 줘 봐야 남들도 자신도 똑같이 불행한 운명에 빠뜨릴 뿐입니다. 


택시운전면허는 어느나라에서 뜨거운 감자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이 면허는 뉴욕 같은 데에서 특히 "메달리온"으로 표창되는데, 이게 거래의 대상이 되며 값도 등락을 거듭한다는 게 특이하죠. 택시기사의 기득권을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진입장벽을 낮출 것인가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고 해결책 도출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우버 등 공유경제 산업과의 충돌이 새로 일어나기도 하죠. 어느 나라건 "신뢰보호"라는 원칙은 헌법 레벨이며, p203에도 나오듯 "grandfathering(기득권 인정 입법화)"는 오히려 정의에 부합합니다. 이 용어는 할리웃 고전 <대부 2>에도 상원의원 기어리와 주인공 마이클 콜리언(코를레오네)의 대화 중에 언급됩니다. 그렇다고 경제의 활력을 위해서라도 무작정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은데, 이런 게 민주주의 원칙을 무분별하게 적용하여 여론에 휘둘리게 할 일만도 아닙니다. 


"국가와 정부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정부는 경제를 더 잘 운용한다(p221)." 선거로 표현되는 대중의 평가가 이런 장기적이고 고차원적인 이슈에 항상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어떤 정부의 경제정책이 유효하게 운용되는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재는 척도는 예를 들면 피치나 S&P처럼 신용등급을 매기는 기관에 맡기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권력은 높은 신용등급에서 나온다(p230)." 정부와 체제가 무너지는 건 악정이나 폭주보다, 경제적 신용을 잃었을 때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쇄국을 해서 실각한 게 아니라, 당백전의 무분별한 유통을 강요하여 경제주체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대중적 인기보다 중요한 게, 경제의 실물과 그 표상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국민의 생존과 번영을 지탱하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p150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직전 행했던 그 유명한 연설이 인용됩니다. 이는 저자가 "감독관 함락 이론"의 의의를 설명하는 맥락 중에 나옵니다. 아마 이 연설(문 인용)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할 텐데, 유명한 고전 <파워 엘리트>(라이트 밀즈 著)에도 "군산복합체"를 설명하며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J K 갤브레이스 교수의 "대항적 권력" 이론도 나오는데, 이분은 유머러스한 고전 <불확실성의 시대>의 저자로 역시 한국 독자들에게 무척 잘 알려진, 그리고 인기 있는 분이죠. 


종래의 유럽공동체가 그 이전 경제공동체 단계를 거쳐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기점으로 EU로 더 강한 통합을 이뤘습니다. 과연 명실상부한 단일국가로 기능할 수 있을지를 두고 관심이 모아지는데, 저자는 유럽연합기구를 분석하며 형식적 정통성보다는 "대중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주주의(p275)"로 성격 규정합니다. 결국 형식적이고 구태의연한 민주주의의 요건, 정의, 자격을 따지는 것보다, 유럽연합이라는 state가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 "핵심 엘리트들은 계급을 골고루 망라하는 자유로운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국가권력을 유지하고" 그러면서도 "선거는 정기적으로 시행"합니다(p311). 이는 학자들에게 "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 혹은 "반(半) 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한다는군요(같은 페이지). 이는 정치적 현실주의로 불릴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런 민주주의를 많은 나라에 대해 제안하고 싶지는 않다고 합니다. 과연, 정협과 전인대를 형식적 최고의결기구로 운용하는 중국과는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요?


"유권자들의 능력은 동등하지 않다(p178)." 불편하기는 하나 결국 우리 모두가 내심으로는 인정하는 현실입니다. 동등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결국은 동일한 한 표를 인정하니 문제가 벌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처칠은 "민주주의는 현존하는 최악의 제도이지만, 현존하는 그 어떤 제도보다도 바람직하게 작동한다."고 한 적 있습니다. 독과점은 결국 부정부패를 부르고, 아무리 수월성을 뽐내는 엘리트라도 결국은 이 유혹에 넘어가 모두의 불행을 부릅니다. 그러나 어떤 제도에도 운용의 묘라는 게 존재하며, 전문가의 절제된 판단, 재량 영역을 선명히 유보하는 선택이 때로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유권자들도 막연히 절대 주권자임을 자부할 게 아니라, 어떤 권리에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철칙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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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 My Reviews & etc 2020-11-2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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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장재희 저
나무와열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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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감정이 없다면, 치열한 생존 경쟁에 얼마든지 몸을 맡기고 사나운 적들과 부대끼며 승부를 치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감정을 온전히 지닌 채로, 싸움에는 싸움대로 또 참여를 해야 하니 그게 문제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기에, 싸움에 설령 이겨도 그 과정에서 다친 감정을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결국 피로스의 승리에 그칠 뿐이죠.


때로 인간은 사나운 소통에 엮이지 않아도, 외로움이나 상실감, 혹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또 감정에 상처를 입습니다. 가만있기만 해도 절로 생채기가 나기도 하는 게 감정입니다. 감정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감정의 결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남에게 통하는 방법이 내게도 듣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생을 가장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을 돌보는 데 능한 유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채 수백억의 돈이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막대한 양의 지폐 다발을 고층 빌딩 위에서 뿌리고 사회에서 잠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은 손에 들어왔으나 마음을 너무 다쳐 돈만 봐도 원수 같은 느낌이 들어서가 아니었을지.


저자는 암 진단을 받으신 부친께서 돌아가시는 과정을 지켜 봐야 했었습니다. "나에게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자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p14)" 그 다음에 저자가 보인 반응은 분노입니다. "나는 슬픈데 왜 저 사람들은 기쁜 걸까?"(p16) 마치 20세기에 활동한 저명한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정립한 교과서적 단계를 보는 듯합니다. 아마 저자께서도 이후 간호학을 전공하며 저 유명한 설명 체계를 공부할 때 더 각별한 기분이 드셨을 겁니다. 당시 아직 어린 나이였을 텐데도 저자는 "지금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아빠의 배우자였던 나의 엄마이겠다."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특한 반응이며, 사람은 이렇게 가혹한 계기를 통해 한 걸음 더 성숙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그 가정이 환자 위주로 돌아간다(p45)." 저자는 간호사가 되신 후 수많은 환자를 봅니다. 쉴새없이 구토하는 환자, 제 힘으로 바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환자... 저는 예전 KBS 어느 다큐에서 등에 큰 상처를 입은 환자를 의대 교수님들이 치료하는 과정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지, 여기를 이렇게 치료하면 당장 아파서 누울 수가 없다니까." 의사든 간호사든 진정한 의료인은 그저 손상된 유기물을 원상 복구에 가깝게 고치는 기술자 그 이상의 존재라야 합니다. 환자 입장에 일단 서 보지 않고서 어떻게 최상의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겠습니까? 결국 멀쩡하게 등의 상처를 낫우어도, 그 과정에서 환자가 편히 누울 수도 없다면 그건 치료가 아니라 그저 공산품의 공정처리입니다. 아니 그 과정의 고통 때문에 결국 환자한테 다른 탈이 날지도 모릅니다. 


어떤 특별한 상처를 누구에게 강하게 입는 것 같은 계기 없이도, 그간 억누르고 숨죽여 참아 왔던 감정들이 갑자기 폭발할 때, 그럴 때 사람은 완전한 혼란에 빠집니다. "내가 왜 이러지?" "오래된 생각과 묵었던 감정이 뒤엉켜 용수철처럼 내 몸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p66) 대체로 이런 일을 겪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할 겁니다. 아 이건 별 일 아니다, 괜찮을 거다. 그러면서 일상으로 다시 복귀하려고 애씁니다. 저자는 이 일을 겪기 전,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기도 하면서 주변과 소통하고 기분도 맞추려고 해 왔다며 솔직하게 털어 놓습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사실 순간순간 감정은 과부하가 걸린 채 노동을 하는 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나를 태우는 줄 모른 채 내 몸은 점점 활활 타들어 갔다."(p70) 감정적 상처가 안으로 곪아 결국 육신에까지 탈이 나는 과정은 정말 섬뜩합니다. 


"병원에서 에너지를 쓰고 나면 내 몸에는 어떤 운동을 할 만한 조금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p76)." 내가 번아웃이라니! 사실 번아웃 증후군은 서양이나 동양 가리지 않고 비슷한 문명 체계에서 복잡한 업무와 소통에 시달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올 수 있는 병인 듯합니다. 제가 제 주변에서 개인적으로 접하기로는 남성보다 여성분들이 좀 더 많은 것도 같지만 정확한 사실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저자분은 친구가 보내 준 루이스 헤이스의 <치유>를 읽습니다. 또 A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p46에 나오는 "교수님"과는 다른 분일까요?)


"부정 모드를 자동으로 긍정 모드가 켜지도록 반복 연습하기 위해 아네스 안의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을 다시 꺼내들었다(p139)." "간절히 원하는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p140)" 사실 저자분은 또래 여성들이 무척 되고 싶어하기도 하는 간호사가 되었고, 또 그토록 꿈 꾸던 미국 간호사가 결국 된 분이니 행운아입니다. 스스로도 말씀하시듯 자신의 몸도 못 가누는 환자들만 당장 봐도, 얼마나 복 받은 인생인지 수시로 확인이 가능하죠. 그러나 이런 분도 소통와 일이 주는 별다른 스트레스를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어야 하며, 그래서 "나에게 사랑을 주는 연습(p141)"을 의식적으로 해 내지 않으면 위험한 지경까지도 가는 병을 스스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땀이 잘 나지 않는 내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p151)" 이는 보이차를 전문가 분에게 직접 내려 받고 처음 겪어 보는, 마치 기분 좋게 사우나를 마치고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참 자연스럽게 붙이는 듯합니다. 내가 살갑게 대하고 어떤 안도감을 받고 싶어도,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때문에 나의 호의가 언제나 보상을 받는 건 아니며, 보상은커녕 어처구니없는 악의로 갚아지기도 합니다. 여튼 이 모든 건 에덴동산이 아닌 현실의 세계를 사는 우리가 마땅히 치러야 하는 세금과도 같고,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겠죠.


"내 안에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 있다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p160) 저자께서도 잘 말씀하고 있듯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이를 애 써 부인할 게 아니라, 이게 내 맘에 남아 곪아터지지 않게, 밖으로 잘 나가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이게 바로 나를 돌보는 길의 대전제이자 출발점인 듯합니다.


저자는 본래 결혼식도 양가 어른들만 모시고 조촐하게 치르시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전통혼례"로 관심이 갔는데, 독자인 제 생각에도 아주 근사한 아이디어였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아 이렇게 상처 입은 한 영혼이 지극한 행복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바른 길을 찾아가는구나 싶어서 마구 응원하는 마음이 솟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책을 쓰는 것도 내 자신을 올바로 들여다보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너무나 큰 오해를 하는 게, 나를 돌보고 나를 케어하는 게 어떤 자기기만을 통한 indulgence 같은 걸로 특효를 본다는 거죠. 절대 속임수로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내면의) 진짜 나를 돌볼 수 없고, 저자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똑바로 보는 게 우선인 듯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저자님보다 혹 더 심각한 경우로 아파하는 분이라면, 그 역시 저자님의 제안대로 "나를 바로보기"부터 치유의 첫걸음을 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책이 참 예쁘게 만들어져서 소장하고 싶은 느낌이 절로 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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