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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리뷰를 보아하니 책 내용도 너무나 궁.. 
이무것도 안 하는 직업이라는 책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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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 My Reviews & etc 2021-11-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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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도행전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이재기 저
샘솟는기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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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실로 놀라운 기록입니다. 우선 4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극적인 행적이 일단은 마무리된 후 그를 의심하거나 부인하기도 했고 또 눈물을 흘리며 이를 참회하기도 했고 마침내 스승의 부활을 목도한 후 완전한 사도, 성도로 거듭난 그의 제자들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바로 사도행전이 후속편(?)으로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행전은 기존의 열두 사도 외에 새로운 주인공인 바울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분은 초기 기독교를 조직으로나 이론상으로 튼튼한 토대를 놓은 큰 기여가 있습니다. 바울을 데뷔시킨 경전으로서도 사도행전은 너무도 중요한데, 지금 이 책 저자인 이재기 목사님은 이로부터 "리더십의 모범"을 추출해 냅니다. 
 

한국은 당연 기독교 전래의 역사가 짧으나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7년 평양 대부흥(p23)을 계기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들 평가합니다. 어찌보면 기독교에 관한 한 완전 불모지나 다름 없던 곳에서 이처럼이나 많은 이들이 해당 종교를 신봉하게 된 것도 하나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만'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대신) 일하신다." 이는 허드슨 테일러의 말이라고 하는데 기도의 힘을 역설한 명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힘이 한계를 만났을 때 주저하지 말고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왜 기도를 하지 않을까요? 아마 우리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오만함이 우리 마음에 깃들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간절히 원하고 기도한다는 건 그 순간 그분의 절대적인 힘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존과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 기도에 헌신해야 한다. 그럴 때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영향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p25)." "부활의 증인으로서 앞으로 열두 지파에 사역하기 위해서는 열두 사도의 충분한 인원이 필요했고 그래서 (가롯 유다의 빈 자리를 채워) 맛디아를 포함시키게 되었다(p26)." 저자의 말입니다. 물론 신약의 시대에는 이미 열 지파가 자취를 감췄지만 여튼 Jews and Gentiles, 세상 만방의 길 잃은 어린양들에게 기쁜 소식을 고하려면 스승을 배신하고 제 스스로 목을 맨 악당을 대신하여 영성과 능력 가득한 사도가 들어와야 했던 거죠. 이 역시 맛디아의 선출 과정에서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겠고 그 결과 맛디아의 이름을 후세가 기역하게 되었겠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마치 공산주의와도 비슷한 원리에 의해 작동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공산주의와 닮았다기보다는 태초 이래 인류가 염원하던 바를 초기 공동체가 몸소 실천에 옮겼고 이를 공산주의가 차용하여 그 선전에 쓴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공산주의가 결코 그 구성원이 만족하는 바를 현실화한 적이 없었죠. 혹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 모두는 소련이 선도했을 그 좋다는 공산주의 사회의 혜택을 누리는 중이었을 겁니다. 

 

"거룩이 능력이다(p89)."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거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교회의 세속화, 타락, 불신 풍조의 자초 등에 큰 우려를 나타냅니다. 물론 교회 외적인 곳에서 교회를 부당한 시선으로, 편견을 갖고 바라보기도 하며 때로는 악의적인 폄훼를 합니다만, 그래도 성도들은 스스로를 반성해 봐야 합니다. 어쩌다가 교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무엇보다 불신자의 모범이 될 만한 삶을 살아야 하며 존경을 얻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길을 걸었던가? 예수라면 지금 나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살았던가? 이 질문에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단 열 명의 의인만 있었어도 심판을 면하고 처참하게 불 속에서 파멸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이 이처럼 타락한 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성도들이 성도답게 살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성도들이 마치 소금기둥으로 화한 며느리처럼 자꾸 세상의 사치와 향락에 눈을 돌리기 때문에, 세상 전체가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도는 세상에 휩쓸리고 그를 추종할 게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남 위에 군림하는 가짜 리더십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몸소 모범을 보여 주신 것처럼 섬기는 리더십으로 세상을 깨끗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거룩이며 세상과 나 자신을 바꾸는 능력이고 그 안에 성령이 임재하는 증명일 것입니다.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초기 모티베이터인 새무얼 스마일즈는 "천재는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인격자는 존경을 부른다"고 했습니다(p147). 우리는 무엇이 부럽습니까? 천재보다는 인격자가 되고 싶지 않을까요? 저자인 이재기 목사 역시 쟐생긴 미남이라는 평가보다는 훌륭한 인격의 힘을 인정 받고 싶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어 성경 속에 인물이 나열된 순서는 나이나 알파벳 순이 아니라 그 인격의 완성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초기에 바나바가 선두에 언급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록에서는 서서히 바울이 앞을 차지합니다. 이는 바울이 그 인격의 힘으로 이미 성도들 사이에서 확고한 리더의 자리를 다져 나갔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도 이처럼 돈이나 외모나 헛된 정치질 따위로 남 앞에 설 게 아니라 참된 인격의 평판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합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p173). 어떤 마귀는 참으로 교활하여 그저 의인임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타인을 마귀로 규정하여 제 정체를 감추려 듭니다. 그런 얕은 수에 누가 속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죠. 물론 마귀에 지목당한 자 역시 만만찮은 마귀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선수를 친 그 마귀만큼 악독한 놈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술수를 잘 쓰는 마귀만큼 성도들이 경계헤야 할 녀석은 없습니다. "가장 강한 성도가 소매를 걷어붙이면 마귀가 이를 비웃으나, 가장 약한 성도가 기도를 하면 마귀는 두려움에 떤다(p177)." 마귀는 어차피 중상모략자(diabolic)이므로 그가 무슨 모습을 하고 방해를 한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놈은 본디 해 오던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며, 문제는 성도가 제 할 일이 기도임을 빨리 깨닫는 것입니다. 

 

리더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남한테 받은 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이기적이고 좁은 마음으로는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결국은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소통해야 합니다. 현재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폐쇄적이라는 건데, 바울이 유대인들과 생판 모르는 이방인들을 방문하며 사역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종래의 고루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영향력 아래 놓인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이방인보다 복음화가 더 어려웠습니다. 이런 절대 난관을 딛고 바울은 지중해 세계를 기독교의 권역 안에 넣는 초석을 다진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있는 오늘의 성도들은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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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 | My Reviews & etc 2021-11-2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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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

이관호 저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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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해 논의합니다(p35).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쳤으리라고 막연히 추정되는 경우에는, 자유라는 좀 더 큰 이익을 위해 그 정도 불이익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 저자는 젊었을 적 018국번(X솔정보통신)에 가입하여 이동통신 서비스를 받았는데.. 소개팅에 나온 여성분이 "웬 018?"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 예를 든 이유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했다는 이유로 온갖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어색한 시선에 시달리는 불편함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이동통신 요금은 10초 19원 정도였는데 저 회사는 자사의 국번과 18원이라는 최저 요금을 연결시키는 마케팅을 펼쳤다고 하죠. 이동전화는 잘 터지면 그만인데 구태여 작은 회사서비스를 쓴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웬 OOO?" 같은 말투도 딱 1990년대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처럼 어떤 주류(아무리 사소한 영역에서도)에 속하고 안 속하는 걸 이상하게 따지는 문화권에서, 소수파의 자유가 억눌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한때는 소수라도 나중에 얼마든지 그 장점이 발견되어 다수파가 될 수 있고 문화든 정치든 다양성이라는 게 존중되어야 시스템 전체의 건강성이 담보될 수 있습니다. 꼭 보면 정작 직장, 학교, 재산 등 인생을 좌지우지할 큰 영역에서는 주류에 끼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말도안되는 시시한 걸로 대세 여부를 나누고 부심을 부리는 걸 보면 우습지도 않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이론적 완성을 보거나 러시아에 현실사회주의가 들어서기 훨씬 오래 전에 활동한 사람인데, 저자는 만약 J S 밀이 공산주의를 봤다면 다음과 같이 평가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국가는 머지않아 그런 왜소한 국민으로는 진정으로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구절은 실제 <자유론>에 나오는 말인데 저자가 이를 공산주의 비판에 유추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자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하는데 한창 이상주의에 들떠 있을 젊은이들이 들으면 대단히 맥빠지고 실망할 이야기들이지만 어차피 세상에 불평등이란 사라지기 힘들고 그 결과적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억지로 다른 가치들을 희생시키면 사회의 다른 순기능들이 희생되기 마련이라는 게 그 결론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불완전하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제시키려는 체제는 반드시 실패한다." 저자는 이분의 사상(을 이 책 저자가 요약한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심경을 잘 대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J K 갤브레이스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칼 마르크스를 두고 "공산주의의 창시자일 뿐 아니라 무엇이 공산주의이고 아닌지 감별하는 데에서도 최고의 권위자"라고 한 걸 봤는데 후반부는 아마 비꼬는 의도로 쓴 말이겠죠. 그만큼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비판이란 걸 용납하지 않고, 마치 중세 가톨릭처럼 이단, 마녀라고 지목된 이들에 대해 더할 수 없는 독선으로 단죄를 일삼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마이너리티였을 때는 지배자를 향해 관용을 강조하다가, 일단 권력을 잡고 나면 가장 무서운 독선으로 폭정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는 건 스탈린 이후 소련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1-4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충 이 정도만 말해도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보수주의자들이 믿는 대로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점에 대해서도 단호히 아니라고 말합니다. 류현진이 현재 시점에서 김광현보다 잘 던지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5배의 연봉 차를 합리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엄청난 논쟁 유발 소지가 있고 어떤 논자는 아마 야구의 각종 지표를 동원해서 5배 정도가 적정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야구 외적인 사회학, 경제학적 논의의 틀을 이용해서도 어떻게 "5배의 연봉 차이"가 형성되는지 꽤 볼 만한 주장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물론 그 반대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특히 불평등의 문제는 현재 4차 산업혁명 이행의 과정에서 소수의 빼어난 두뇌들의 부가가치 기여분이 지나치게 높이 평가된다는 비판과도 연결됩니다. 

 

어떤 성과든 우연이라는 게 개입하는데 이 모든 걸 "그 사람의 유능함"으로 돌릴 수는 없고 과연 사회에서 전개되는 경쟁, "게임"이 공정한지도 의심이 됩니다. 요즘 비디오 판정이 어느 종목에서나 도입 시행되는데 이런 걸 보면 저런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던 시절 얼마나 많은 오심이 결정적 경기의 향방을 바꿔 놓았을지를 생각하면 그저 아찔합니다. 나이 많은 세대 중 상당수는 자신이 관람한 어떤어떤 경기를 인생 게임이라 생각하고 일생 동안 그 추억을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윤색하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책 제2장으로 넘어가며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꺼냅니다. 일자리는 이제 개인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거대한 재편 움직임 속에 누구의 손으로부터건 슬슬 빠져나가는 게 보통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유발 하라리의 저서를 인용하며 누가 데이터를 보유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향방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과연 얼마나 "마사징"으로부터 자유로운지는 모르지만 매주 열 몇 개의 대선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며 많은 전문가들이 세부지표를 통해 그 숨은 의미를 밝히느라 갑론을박을 벌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자기 서비스를 "구독"하라면서 온갖 인센티브로 소비자를 유혹하는데 확실히 자신들의 팜에 가둬 두고 그 행태를 철저히 분석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런 판에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걸 과연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며 매도할 수 있겠냐고 저자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묻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급격히 재편되는 판에 과연 기존의 좌우 대립 구도를 여전히 고집하는 세력이 과연 미래 정치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른바 제3지대(p164)이면서 진보 이념을 대변하는 정치인들 중 하나인 심상정씨도 최근 부쩍 자주 입에 올리는 듯하며("거대 양당 체제 혁파"라든가), 보다 우파쪽이면서도 제3지대 연대를 강조하는 안철수씨도 그렇습니다. 안철수씨는 아직 "성인지", "감수성" 같은 용어가 일반인들에 엄청 낯설 무렵에도 이 용어를 제일 먼저 아젠다로 삼기도 했었죠. 또 저자는 이런 노선을 시도하는 정치인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게 섣불리 유권자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겁니다 최근 한국의 20대들이 기존 정치인들의 노선을 맹종하지 않고 정당 게시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이제 그들의 치밀한 논리, 미래 비전을 배워야 하며 집단 지성이다 뭐다 하는 말은 이런 경우에나 써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댓글부대들이 집단지성을 대표하는 양 엄청난 착각이 지배해 왔죠. 

 

"일본이 동양의 영국 노릇을 하려 드니 우리 조선은 적어도 프랑스가 되어야 하지 않겠소." 이것은 구한말 김옥균이 한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도 인정하지만 김옥균은 너무 친일로 기울었던 사람이며 그의 인생을 보면 과연 근대화/개화와 친일 중 뭐가 메인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판입니다. 백보를 양보해서 개화를 위한 친일이 되어도 되어야지(이것도 물론 곤란하지만), 친일을 위한 개화는 아예 말이 안 되는 거죠. 프랑스는 개뿔. 저자는 대원군의 쇄국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사람들은 틀렸다며 알고보면 그는 야심가이자 동시에 개혁가(p196)였다고 하는데 물론 맞습니다만 결국 결과로 드러난 게 유생들의 보수 여론에 기대어 개화파를 누르는 정치적 곡예를 펼치다가 이도저도 아닌 공포정치가, 혹은 실패한 반란자가 된 게 그의 인생입니다. 애초에 이 두 진영 모두 비전과 미래가 없었으며 고작 이 두 진영 어느 한편을 들어 뭐가 옳았다고 공론을 펴는 자체가 무익합니다. 당시 우리 민족의 역량은 겨우 저 두 부족한 인물들을 테제와 안티테제로 뽑아낼 정도밖에 못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if의 상상력을 펼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더군다나 이 책은 현재 한국의 좌우 양진영을 "모두 까는" 입장인데도 말입니다. 

 

해방 후 토지개혁이 언급되는데 나이 든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당시 농민들이 대체로 만족들을 했다고 합니다. 삼칠제에 대해 거의 입을 모아 "괜찮았다"는 증언이 대부분이죠. 한민당은 지주 세력 중심이라서 이마저도 반대를 했는데 결국은 당시 정부에서 잘 마무리를 한 셈이며 이게 안 이뤄졌으면 한국전 당시 꼼짝없이 김일성이 전국을 무혈 접수했을 것입니다. 안 그런 걸 보면 토지개혁이 잘 됐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이 정도만 되어도 1392년 정도전의 과전법 시행에 맞먹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좌우 대립이 극심했는데도 좌우가 저 정도의 타협을 이뤄낸 게 놀랍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유권자도 좌우 어느 진영에 빠져 극단적인 논리를 펴며 정치인의 주구가 될 게 아니라 반대로 정치인을 나의 주구로 부려야 합니다. 최근 20대 남성 중심으로 어느 정치인을 무척 지지하며 갑자기 어떤 신드롬이 인 적 있는데 개인적으로 참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도 많을 뿐더러 이미 심판이 끝난 사람으로 봤는데 그런 구시대 정치인한테 열광하다니 말입니다. 아마, 예전 세대처럼 특정인에 대해 종교적 열광을 보낼 게 아니라, 공약을 지키지 않고 노선에서 이탈하기라도 하면 바로 유권자의 심판을 내리려고 그런 만만한(?) 사람을 잡아 일부러 띄우는 게 아닐까 하고 (지나치게) 좋게 해석도 해 봤습니다. 이 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여튼 이제는 진정으로 유권자가 중심이 되고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독자로서 확실히 접수가 되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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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글쓰기 수업 | My Reviews & etc 2021-11-2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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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퓰리처 글쓰기 수업

잭 하트 저/정세라 역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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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죽었고, 왕비가 죽었다, 이것이 내러티브이다. 반면 왕이 죽자 왕비가 비탄에 빠져 따라 죽었다, 이것이 플롯이다." E M 포스터가 남긴 유명한 예시이며 지금 이 책 저자 잭 하트가 p39에서 저 구절을 인용합니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고, 더군다나 소설 작법 같은 건 따로 그 비결을 좀 알아내서 퓰리처 상을 받을 만큼 뭇 독자들의 주목도 받고 싶은 게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가져 봄직한 소망일 수 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p53을 보면 "독자는 비록 퓰리처 상은 받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시행착오를 통해 간신히 배운 바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p70 같은 곳을 보면 저자는 팟캐스트 작가 같은 이들의 상담 요청에도 자주 응하는가 봅니다. 

 

이 책은 소설보다는 "논픽션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둔 내용입니다. 원제도 그러하며, "퓰리처"가 이 번역서 제목 안에 들어간 건 저자 잭 하트가 오랜 동안 퓰리처 상 심사위원으로 봉직했고 글쓰기 코칭을 통해 여러 작가를 길러낸 분이라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퓰리처 상을 받기라도 하면 글쓰는 일이 직업인 이들에게야 물론 더없는 영광이겠지만, 상이 중요하다기보다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의도가 전달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성취이자 능력입니다. 특히 준(準) 논픽션 포맷은 전업 작가가 아니라 해도 업무상 자주 작성이 요구될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에 일반인도 요령을 알아 둘 필요가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소설 작법에도 참고될 여지가 많은지, 저자 서문에 앞서 한국 작가들 세 분의 추천사가 따로 나와 있네요. 서문애서 저자 스스로 밝히듯 "이 책에는 편집자의 관점이 (주로)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앞서 E M 포스터의 유명한 문장이 나왔지만 어떤 플롯(논픽션에서도 당연히 플롯이 있습니다)이 특히 선호되는지, 혹은 편집자나 코치의 입장에서 더 선호되는지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입장이 다 다를 것입니다. p46 같은 곳에서 로버트 맥키 같은 이(p72 같은 데서 다시 나옵니다)는 헐리우드 영화 각본 등의 (대체로는) 분명한 엔딩을 두고 "닫힌 결말"이라 규정하는데 이에는 어느 정도 비판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었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닫힌 결말은 주로 소설가들이 선호한다면서 논픽션에서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지만, 자신은 차라리 존 프랭클린의 입장에 찬성한다며(p48) 오히려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지 분명히 드러내는 결말이 좋다고 거의 단정합니다. 이런 지론은 지금 이 책이 바람직한 논픽션 작성법을 다루기 때문에 더 강조되는 면이 있을 듯합니다. 

 

구조를 잘 시각화(p60)한 다음, 발단부에서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사건의 흐름 속으로 끌어들어야(p71) 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상승(발전)되고, 위기를 맞은 후 절정에서 해결을 맞은 후(p83), 대단원에서 하강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순서를 차분히 따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플래시백 혹은 플래시포워드를 주렁주렁(p84) 달며 기교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이때 독자가 흥미와 집중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가능하면 KISS 원칙, 즉 "간단명료하게 쓰기"를 준수하라고 합니다. 저자가 이때 드는 예시는 헐리웃 영화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액션영화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 감동서사물 <용서받지 못한 자>로 어떻게 넘어갔는지입니다. 


 

오리건 주는 미국 서북부에 있죠. 이 책에서 수시로 <오레고니언> 誌의 기자들과 소통한 일이 언급되는 건 그가 25년 동안 저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이 책 앞날개 中). 추상적이고 타인의 저서에서 인용한 문구 위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고 가능하면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서 소재와 예화를 찾는 건 미국 저자들의 공통점 같습니다. 논픽션 글쓰기가 주제이다 보니 당연히 저널리즘 방면의 (명) 아티클들이 자주 언급되며 그 중에는 스튜어트 톰린슨의 르포 기사 한 대목(p111)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톰린슨 필자의 "카메라 스탠스"를 언급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카메라워크의 빼어남이듯, 잘 쓰여진 논픽션 역시 독자의 욕구를 미리 짐작하여 효과적인 스탠스로 카메라를 요리조리 잘 잡습니다. 카메라맨의 발놀림이 능란하면 독자는 그의 존재를 눈치도 못 채고 이야기 속으로 마법처럼 빨려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글 쓰는 이들이 이처럼 카메라의 시야를 염두에 둘 것을 충고하는 저자의 노련함이 돋보입니다. 이 책에서 영화 관련 사항들이 자주 언급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나는 메리가 쓴 글이라면 매체를 가리지 않고 찾아 읽는다(p130)." 누군데 편집장님한테 이런 칭찬을 들을까요? 작가 메리 로치를 가리킵니다. 그녀는 글도 실물도 재기발랄하다고 저자는 평합니다. 이와는 달리 글솜씨나 실제 옷 입는 스타일, 사람 상대하는 매너가 한결같이 단정한 예로는 작가 존 맥피를 꼽습니다. 이처럼 글에 배어나는 무언가가 글쓴이의 정체성을 일부 규정하는데 이걸 두고 "목소리"라 일컬으며 내러티브와는 완전히 구별됩니다. 이 4장에서는 "목소리와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 논픽션에서 이 둘은 각각 어떤 기능을 뚜렷이 수행해야 하는지 풍부한 예문을 통해 설명됩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도 그렇지만 글쓰기 책들은 그 일류 저자가 여러 작가의 여러 책에서 인용한 문장, 문단 들만 따라가며 읽어도 재미가 있으며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등장인물들은 그 캐릭터가 분명해야 일단 독자의 주목을 받으며 심지어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진행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어로 쿠세라고도 하는, 인물의 "버릇" 역시 독자의 주목을 높이고 특유의 매력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5년 전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였던 팀 케인 버지니아주 미 연방상원의원은 눈썹을 독특하게 치켜올리는 습관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p169에서는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거나 팔짱을 꼈다거나 하는 묘사가 "지면을 거의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의 일단을 잘 살리는 효과를 낸다는 점을 독자에게 강조합니다. 사소하지만 이런 작은 매력(잘 보이지도 않는)들이 모여 멋지고 효율적인 논픽션 완성에 기여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좋은 내러티브는 속도감이 있어야 한다(p226)." 저자는 이 책에서 동시대, 혹은 앞선 시대의 다양한 평론가들, 문필가들을 인용하며 문장론을 들려 주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만의 주장은 그것대로 구별을 하면서 타인의 의견들은 일반적인 것들(독자인 제 생각에는)까지 일일이 인용출처를 밝히는 게 눈에 띕니다. 여튼 이 중에는 무려 2800년 전에 활동한 헬라 고전 작가 호메로스도 있습니다. 특히 이 책 저자가 속도감의 모범으로 칭찬하는 건 "독자에게 그 순간을 음미할 만큼 여유를 주면서도 아킬레스가 최후의 일격을 당한 후 몸이 앞으로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특별한 긴박감을 주는" 작가의 기교를 언급합니다. 

 

논픽션이라고 해도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마치 소설처럼 직접인용으로 전개될 때가 많습니다. 이게 한국 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설기 때문에 논픽션 장르가 큰 인기도 못 끌고 혹 잘된 작품이 있어도 그 참된 가치를 잘 못 알아보는 거죠. 현실 속에서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인터뷰 같은 것과는 또 달리 스토리 전개나 인물 구축에 기여한다(p248)."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소설적 재미까지 덩달아 안깁니다. 

 

우리는 TV 등에서 유명인사(존경 받는 인물이건, 지탄의 대상이건 무관하게)들의 기이한 행동이나 그 실체가 드러나는 언행을 보도를 통해 비로소 접하고 충격을 받곤 합니다. 예전 말로 이런 "특종"은 보통 잠입취재를 하는 기자들의 근성에 의해 잡힙니다. 어떤 특종을 어느 기자가 했는지까지는 대중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단한 특종(단독 보도)을 했다 해도 무슨 큰 보상이 될까 싶은데 동종 종사자들끼리 공유되는 어떤 평판, 인정, 직장 상사의 유무형 포상으로 충분한가 보죠. 여튼 저자는 편집장님답게 이 "잠입 취재(p277)"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성공적인 내러티브 논픽션의 필수 전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톰 프렌치의 말을 인용하며 "작고 소소한 순간과 힘의 중요성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p299)"고 합니다. 특히 기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며 지나가는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도 합니다. 마치 낚시에서 월척을 낚아올리는 그 순간이 중요하듯, 혹은 스트라이커에 크로스 되었을 때 골키퍼와 대치하는 그 짧은 순간 킬러 인스팅트로 정확히 골넷을 가르게 하는 그 순발력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해설 내러티브에는 두 가지 임무가 있는데 그것은 액션과 설명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저자는 자사 민완 기자인 리치 리드(p339)의 멋진 활약상을 들면서 꺼냅니다. 내러티브는 물론 집중력을 잃지 않고 탄탄한 일관성, 맥락을 지켜 나가야 하겠으나 간혹은 "옆길로 새기"도 필요한데 이는 지나치게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의 끈을 때로 늦출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p392에서 E B 화이트의 작품을 예로 들며 생각지도 않은 반전으로 결말을 짓는 우수한 기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책은 날카로운 안목, 깊은 지혜, 투철한 양심을 지닌 편집자의 손을 거치기 마련이라서 특히 회고록류의 경우 대체로는 그 안에 진실만이 담겼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예컨대 p419에서는 논란 많았던 프랭크 매코트의 예, 혹은 스스로 거짓임을 이후에 자백한 재닛 쿡의 예를 거론합니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고 독자를 사로잡는 글을 쓰는 저자라 해도, 그 안에 끔찍한 허위와 날조가 깃들었다면 이미 이는 애써 창조한 우주를 근본으로부터 무너뜨리는 짓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 이전에 먼저 인격과 도덕을 갖춘 인성이 필요하며, 어쩌면 이것이 모든 글쓰기에 앞서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의 마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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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1-11-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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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데일 카네기 저/김미옥 역
미래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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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의 원조라 할 만한 데일 카네기 시리즈 중 <자기관리론>입니다. 원제는 이 책 표지에 나온 대로 <How to stop worrying and start living>입니다. 이 책 표지의 부제에는 저 문구의 번역을 통해 책 내용을 보다 분명히 밝히는데 이렇게 원제를 먼저 머리에 새기고 본문을 읽어 나가는 맛도 색다른 듯합니다. 

 

"캐리어"라고 하면 그 특유의 로고를 한 에어컨 메이커로 유명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캐OO 에어컨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자회사나 현지 종속법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경영자가 브랜드 사용권만 사 와서 제조업을 독자 영위하는 방식인데 그 또한 고유의 기술력으로 인정 받고 있죠. 여튼 이 책 p39에서는 미국의 캐리어 코퍼레이션 사장 윌리스 캐리어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이 번역서는 회사 등의 고유명사에 일일이 원어를 병기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일어난 일의 배경과 등장인물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걱정을 하지 말라, 안절부절하는 마음의 동요는, 최악의 결과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 최악을 현실화하는 촉진제가 된다, 책에 나온 저 캐리어 씨의 일화 취지를 독자인 제가 제 나름대로 요약하면 이 정도가 될 듯합니다. 미국 노래 중에도 "돈 워리 비 해피"라는 게 있죠. 다가올 수 있는 나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아무 소득도 없이 그저 마음만 좀먹히는 건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는 아무 데도 쓸데 없다는 뜻입니다. 책에서 소개된 첫번째 일화부터가 책 제목에 쓰인 문구를 증명하는 멋진 예화입니다. 

 

이 책은 각각의 부(部)가 끝날 때마다 내용 요약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자계서이니 만큼 재미있게 읽고 끝낼 게 아니라 그 내용으로부터 내가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 정리할 시간을 따로 가지는 게 좋을 텐데 책에서 알아서 이렇게 요약을 해 주니 독자 입장에서 편합니다. p83에 제시된, 앞 제2부의 내용 요약 중 특히 마음에 근심이 닥칠 때 대처 절차를 한번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문제가 무엇인가?
2) 그 원인은 또 무엇인가?
3) 해결할 방법에는 어떤 게 있는가?
4) 이 중 최상의 방법은 무엇인가? 

 

독자인 제 나름대로 2-`1) 정도를 추가하자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걱정은 하지 말자"가 되겠네요. 여기서도 그렇지만, 어느 경우에나 저자 데일 카네기가 강조했던 건 "생각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입니다. 

 

p89 이하부터는 특히 저자가 젊은 시절 쓸데없는 걱정에 정력을 갉아먹힌 경험이 실제로 있었던지 "나는 너무 바빠서 걱정할 시간이 없다"라는 찰스 케터링 같은 뛰어난 자기 통제력을 지닌 이들의 명언이 소개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거나 극복할 현실적인 궁리에 몰두하는 이에게 "근심 걱정" 따위는 그저 사치일 뿐입니다.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는 데 골몰하는 이의 마음에 소모적인 걱정 따위는 자리할 데가 없습니다. 공연한 자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일 카네기의 책들 특징 중 하나는 그저 명언이나 교훈적 일화를 모아 놓은 게 아니라, 그 일화에 자신만의 의의를 부여하고, 강연하듯이 맥락을 넣어 술술 엮어간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독자와 청중과 활발히 소통한 모티베이터였기에 독자로부터 받은 서한, 상담 사례 등을 책 속에 강연 속에 풍부히 집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만큼 생동감 있는 저술과 강연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요즘 저술되는 자계서들보다 이 고전이 훨씬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괜한 걱정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았고 현실적인 대처 방법도 충분히 강구했건만 결국 불행한 결과가 터졌거나 임박했을 때는 어떻게 헤야 할까요? 책에서는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라"고 합니다. 맥빠지고 무책임한 충고처럼도 들리지만 인생에서 모든 걸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불가피한 결과는 그대로 수용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이나 <용의 눈물>을 보면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서인지 "이 사람, 자네가 그러고도 의원인가? 세상에 약이 없는 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같은 대사가 자주 들립니다. "약이 없는 병"은 고려 조선은 물론 심지어 지금도 무척 많기에 저 대사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이 책 p125에서는 "마더구스의 노래" 한 소절을 떠올리며 어려울 때마다 힘을 낸 컬럼비아 호크스 학장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태양 아래 모든 병에는
치료약이 있거나 없으니
있다면 찾아 보고
없다면 신경 쓰지 마라."

 

구글링을 해 보니 원문은 다음과 같더군요.

 

For all ailments under the sun, 
There is a remedy or there is none.
If there be one, try to find it.
If there be none, never mind it.

 

라임도 잘 맞지만 품은 뜻도 묵직한,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해학미 넘치는 멋진 구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 대책이 없으면 초연하게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법이 있을 때에는" 사정없이 낱낱이 최선을 다해 그걸 찾아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방법이 있을 때 대강대강 처리하고, 방법이 없으면 근심걱정으로 나와 주변을 모두 힘들게 하는 게 보통이죠. 

 

이런 천하에 쓸모없는 "걱정하는 습관"을 고치려면 어떻게 할까요? 데일 카네기는 특유의 달변으로 3부에서 멋지게 독자를 설득합니다만 p151에 내용 요약이 잘 되어 있습니다. 

 

1) 바쁘게 생활해서 걱정을 몰아내라. 
2) 사소한 일에 법석을 떨지 마라.
3) 평균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라. 

 

실제로 비행기를 타야 할 때마다 끔찍한 사고가 날 걸 걱정해서 못 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한테 3)이 특히 유익한 충고가 될 듯합니다. 

 

링컨은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마침 이 저자 데일 카네기가 링컨 연구의 권위자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나는 증오와 원한 때문에 구겨지고 일그러진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 없이 보아 왔다(p176). 왜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가? 증오, 원한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합니다. 외모 관리를 위해서라도(!) 마음에 증오를 품지 말라는 그의 충고는 실용적이면서도 교훈적입니다. 마음 속에 원한과 열등감, 피해 의식을 품은 자의 표정은 언제나 어둡고 음침하며 촌구석 미용실 안에서조차 그 특유의 불안과 찌듦이 풍기기 마련이죠. 

 

아무리 생을 오래 살아도 진정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핵심적인 가치를 깨닫고 체험해야 하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윌리엄 블리소(p223)는 24세 때 차량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 끔찍한 불편을 항구적으로 겪게 된 당사자의 분노와 좌절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서와 음악 감상에 집중하면서 전에 모르던 지식을 쌓고 사색에 빠졌으며, 특히 지루해게만 느끼던 고전 음악의 참된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대해 아무런 불만 없이, 오히려 새로이 눈뜨게 된 세상에 고마워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반신을 못 쓰는 이조차 이처럼 행복을 향한 각성이 가능한데 하물며 몸이 자유로운 이들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약점이 뜻밖에도 우리를 돕는다."


 

"얕은 철학은 사람을 무신론으로 기울게 하고, 심오한 철학은 사람을 종교로 이끈다.(p259)" 이는 영국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한국형 인문학에 새롭고 천재적인 기여를 한 이어령 박사 같은 분이 말년에 신심을 굳힌 걸 보면 역시 맞는 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단 한국의 경우 사찰이나 교회를 찾는 게 마뜩지 않은 이들은 자신 나름대로 경전을 읽으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스스로 성찰하는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꼭 승려나 목사를 찾아야 종교인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아무리 절이나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마음이 탐욕과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종교를 믿는 의의가 대체 뭐겠습니까. 

 

콜게이트는 치약이나 비누 등으로 이름 높은 미국의 브랜드입니다. 어느 판매원(p301)이 저자 데일 카네기, 혹은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꼭 제 비누를 사달라는 게 아닙니다. 제 판매 방식이 마음에 안 드시면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솔직한 비판을 제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다음에 제가 꼭 고쳐서 더 나은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이 대목에서 그저 남의 비판을 고깝게 듣지 않는 방법을 얘기하는 듯하다가, 한 술 더 떠서 "비판이 나의 자양분이 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게 하는 법"까지 가르칩니다. 비판도 좋게 넘기자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비판을 독이 아닌 약으로 바꾸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거죠. "부당한 비판은 칭찬의 다른 이름이니 절대 걱정할 일이 아니다."

 

"1만년의 관점에서 상황을 판단하라! 당신의 일상에 대한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은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p364)"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전쟁사, 정치사, 외교사 등을 놓고, 까다로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애써 찾아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듯합니다. 왕이나 지도자, 혹은 도시의 시민들이 외침이나 경제 공황 등을 겪으며 이를 어떻게 타개하는지를 읽어 나가면 그 지난한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되죠. 나의 고통은 그게 비록 엄지발가락을 찧은 작은 규모라 해도 내 개인에게는 지독한 고난입니다. 그러나 큰 난관을 헤쳐 나가는 선례를 참조하여 얼마든지 내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엘머 톰머스의 사례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에 자신보다 나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이들을 보고 그는 언제나 열등감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교사 자격증 등에 도전하여 남을 가르칠 자격을 얻고, 그 과정에서 많은 지식을 쌓고 더불어 인격까지 수양하게 되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자가 타의 어엿한 모범이 되는 과정이 이러합니다. 나잇값도 못하고 남의 흠이나 잡으러 골몰하면서 어디 공짜 협찬 자리나 없나 살피며 더러운 머리결에 눈이 뻘게진 인생이라면 참으로 뼈에 새기며 본받아야 할 사례가 아니겠습니까. 

 

잭 뎀프시(p407)는 영화 같은 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미국의 레전드 복서입니다. "내가 싸운 최대의 강적은 바로 나의 걱정이었다."가 그가 남긴 명언입니다. 한국의 프로야구 투수 최고봉을 밟았던 선동렬은 "최대이 라이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명언들의 공통점은, 어차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변수와 위험에 집착하기보다, 내 자신과 내가 직면한 과제에 보다 집중하는 게 현실의 성과를 내는 데 훨씬 유익하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걱정을 떨쳐 버리고 나의 문제에 몰두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참된 "자기 관리"의 요체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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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My Reviews & etc 2021-11-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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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이어령 저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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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자 수필가, 베스트셀러 저자인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더군요. "마지막이란 말이 왠지 슬프게 느껴지고 특히 이어령 선생님 같은 분은 마지막 아니라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좋은 말씀 들려 주셔야 하는 스승인데 책 제목을 보며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 보니 여전히 정신이 건강하시고 젊은이들 몇 배의 총기와 활력을 갖고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독자로서 안도가 되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날씨처럼 변하는 게 감정이지요.(김지수 인터뷰어)" "마인드로 채워지기 전의 그 void는 사라지지 않아. 공허를 채웠던 영혼은 빅뱅과 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거야.(p23)" 빈 공간은 화나는 마음, 기쁜 마음 등 다양한 변덕이 교차하지만 빈 공간은 여튼 그래도 있죠. 그럼 그 빈 공간이 평상시에(심지어 빅뱅과도 만났던)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느냐? 바로 그게 영혼이라는 게 선생의 뜻입니다. 이렇게 글로 읽어도 좋지만 김지수 저자처럼 현장에서 저런 석학의 말을 바로 그 기운을 느껴 가며 들었다면 더 깊은 울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서양이 전통적으로 이원론 바탕에 선 건 맞으나 여기 영혼을 추가한 삼원론은 선생님이 처음은 아니시고 독일쪽에서 많이들 하던 거죠. 

 

"왜 연구자가 되지 않으셨습니까?""논문 통과가 되려면 주 수십 개를 달아야 해. 그게 싫었거든.(p40)" 사실 연구자라면 앞선 학자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학계에서 지금 어떤 논의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 훤히 꿰뚫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석을 위한 주석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의 노력을 통해 기존의 성과를 알 만큼 안다는 증명인데.... 선생님처럼 천재형 두뇌에게는 그저그런 선배들의 밋밋한 주장들을 읽는 자체가 고역일 수 있었겠죠. 그 자유로운 상상력이 천재의 전유물인데, 따분하게 기존의 성과를 더듬는 게 서로 안 맞기는 할 듯합니다. 수시로 쏟아지는 그런 영감의 샤워를 받아 본 천재가 아니니 그저 추측이긴 합니다만.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읽고 또 읽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세 번을 읽었으니.(p41)"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저 대작을 고전 읽기 의무감으로 읽지만, 저런 천재는 라이트노벨처럼 술술 읽힐 것입니다. 평소의 관심사이기도 하니 얼마나 재미가 나셨겠습니까. 선생은 과연 천재라서 p25 같은 곳에서 빅뱅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김지수 작가에게 설명도 해 주는데 이 과정에서 "눈을 빛내며"라는 지문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재(p77)들이 갖는 공통점은 신이 나서 이야기할 때 그 눈에서 보통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광채(p21)가 난다는 점이기도 하죠. 

 

"라스트라는 말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라스트 콘서트, 라스트 인터뷰....(p47)" 이 앞부분에서 이어령 선생은 "책은 꼼꼼히 읽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 건너뛰면서 읽는다"고 했습니다(<카라마조프...> 같은 건 예외).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 전체를 다 보는 게 아니라) 불현듯 뛰어들어가 후반부만 보는 거랑 같지."라고 하시는데... 이 대목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젊은 시절이라면, 그것이 화려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풀 무비를 처음부터 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김지수 저자(인터뷰어)가 고마운 설명을 하나 달아 주네요.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과의 헤어짐이니까요." 그것도 참 명언입니다. 

 

따님(p29)도 암으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선생께서도 지금 투병 중이라고 합니다. p57에서는 선생이 암(癌. cancer)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놈이 라틴어로 게(영어의 crab)라는 뜻이라고 하시네요. 본문 중에도 그 비슷한 뉘앙스로 말하지만 몸에 암이 퍼진 게 마치 게가 여덟 다리를 편 모습 같다고 해서 병명이 그렇게 붙었지요.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신이 네게 준 게 무엇이냐? 차라리 신을 저주하고 죽어라.(p59)" 기독교 구약 욥기의 아주 유명한 구절이죠. 이 구절들이 너무나도, 현세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심경을 잘 대변하기에 심지어 이어령 선생 같은 분도 결국 언급을 하시나 봅니다. 독자는 그저 선생께서 힘을 내시길 기원할 뿐입니다. 

 

니체는 마지막 십 년을 미쳐서 식물인간처럼 살다 죽었다(p32)" 그렇게나 똑똑한 사람이 말년에 발광하여 토리노의 말 같은 사건을 겪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는 게 참 불쌍하죠. 아마도 투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선생이 특별히 감정이입하실 만도 하겠다고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선생은 토리노의 그 광장에서 채찍을 맞는 말, 그리고 대신 맞으려 들었던 니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행을 봅니다. 여튼 선생은 여기서 어느 영화 <토리노의 말>로 화제를 돌리는데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루말할 수 없이 지루한 영화(선생이나 김 작가에겐 전혀 지루하지 않을)라고 평합니다. 좀 뜬금없지만 그래도 한국은 반도라서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나은 창조성의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좀 국뽕 같기도 하지만 다른 분도 아니고 선생의 평이니 일단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영어에서 직업을 콜링(calling)이라고도 하는데 장 칼뱅의 직업소명설이 남긴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 콜링이라는 다의적 어휘를 선생은 p31 등 여러 군데에서 다양하게 풀어 주기도 하네요.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이라고 하셨지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p70)." 김지수 작가의 이 말은 중의적으로도 들립니다. 여기에 대해 선생은 "맞아, 잊고 있던 것 중에 진실이 있어. 은폐가 곧 거짓이야."라고 답합니다. 반대말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반대말을 안에 품는다는 게 형식논리상으로는 좀 재미있게도 들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뭘 의도하시는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잠시 달 말고 손가락도 구경 좀 했습니다. 

 

"... 이게 곧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이야. 할아버지, 증조부, 증조모... 이분들 중 단 한 분이라도 잘못되셨으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질 않았어.(p86)"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애석하다 뭐 어떻다 할 느낌과 판단의 주체가 없는 건데 태어나서 이처럼 고마움을 느끼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저 앞 p22에서 선생은 "고려 청자는 수백 년 동안 무덤 안에 있었어. 내 눈 앞에 없었고 있는 줄조차 몰랐어도 고려 청자는 수백 년을 존재했다는 거야."라고 합니다. 이 구절들을 연결시키면 선생이 생각하시는 답이 나올 듯합니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못해(p76)." 석가모니는 네 가지 고통 속에 "태어남"을 넣었지만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이상한 게 대번에 보이는데도 어른들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프레임에 갇혀, 혹은 권위에 짓눌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선생은 어렸을 때에도, 똑똑해서 항상 사람 받았던 형과 달리 자신은 언제나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지적했기에 오히려 경계 받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항상 그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 것을 경고하며,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해야지!"라며 김지수 작가에게 호통을 칩니다(p97). 그래도 사회 생활 하면서 마냥 매번 의문을 제기할 수야 있겠습니까. 설익고 미성숙한 느낌을 함부로 표현하다가는 넌씨눈 소리나 듣기 쉽죠. 선생님은 천재니까 열외가 되는 거고.

 

"우리는 유교의 영향으로 자신의 추함을 숨기지만 일본 작가들은 숨기지 않아.(p121)"라고 하시지만 앞에서 김지수 인터뷰어의 말도 그렇고 작가들이 어디까지나 안 숨기고 드러내는 거지 일반인들은 한국인보다 더합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작가한테 그런 특별한 위상을 허용해 주는 거고(일본뿐 아니라 문명국은 어디라도 마찬가지) 우리는 작가 아니라 누구라 해도 그런 예외를 허용해 주지 않는 거고 말입니다. 이렇게 된 건 다른 나라에서는 특별한 지적 훈련을 거치고 일정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대개 글을 쓰는 반면 우리 나라는 개나소나 다 작가를 참칭하는 풍조라는 데 기인한 게 아닌가 싶지만요. 다만 김승옥 작가(이분도 인생 후반부에 기독교에 귀의했죠)에 대한 언급은 흥미롭습니다. 

 

확실히 작가는 외모도 좀 빼어난 구석이 있거나, 적어도 자신의 사유 그 성과와 흔적이 외양에 배어나는 분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수 인터뷰어는 <우상과 이성> 시절의 이어령 선생을 돌아보며 "날렵한 턱선에 수려한 콧날... 흑백사진 속의 잘생긴 사내(p157)" 등의 표현을 씁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모친(ㅎㅎ)도 예전에 그렇게 이어령 저자의 책을 좋아했던 데에 그런 영향도 있었는지 모르겠네요ㅋ

 

"천재가 있으면 특별한 교육을 시켜야 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눈곱을 떼어내어 붙여 주면 그게 화가가 되고, 귀지 좀 붙여 주면 그게 음악가가 되는 거에요." 이런 그의 천재관은 어째 좀 슬프게 들립니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도 "아인슈타인이 한국에 태어나면 배달 일을 하게 된다"고 한 적이 있는데 한국이 유독 평준화를 강조하는 풍조다 보니 천재들이 그 재능의 가치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 원인이 있습니다. 반대로 좀 모자란 백수가 협찬질에 맛을 들여 비참한 현실을 잠시 잊은 후 뭐가 싫다느니 뭐니 이상한 불평을 꾸물꾸물 늘어놓기도 하는 여유가 생기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선생은 그래도 특유의 문재(文材)를 살려 세상에서 널리 인정을 받은 분이고 (그 살아온 궤적이 크게 다른 데도) 마치 드골 내각에서의 앙드레 말로 같은 사례에 비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전 정원식 내각(p168)에서 약간 소외 받으신 이야기도 여기서 풀어 놓으시고, 또 게임이론 창시자 잔 내시의 생을 다룬 영화 <뷰티플 마인드>를 놓고 주인공의 삶에 깊이 몰입(p201)하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이 40페이지 이상 이어지며 당신만의 천재론을 들려 주시는데 솔직히 이렇게 어두운 색깔일 줄 몰라서 놀랐습니다. 그래도 천재는 이데아를 직시하는 순간이 잦아 그 동안이라도 행복하기 때문이죠. 계속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세상에서의 쓸모"입니다. 이는 사실 천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아픔이죠. 특히 한국 같은 나라에서. 그런데 정 머리가 좋으면 다른 영역으로 쉽게 방향을 틀어 돈 되는 분야에서 두각도 나타내고 인정도 받고 잘 삽니다. 아무리 한국이라도. 

 

"앵프라망스라고 아주 엷은 막을 느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말야. 그런데 그걸 뚫는 게 바로 (나한테는) 영성이라네.(p218)" 예를 들어 개신교 안수기도 같은 걸 할 때 당사자(놈이 아주 악질이라든가 하는 이유로)가 느낄 수 없어야 마땅한 이상한 뜨겁고 후회스럽고 눈물 나는 것 같은 체험이 그런 걸까요? 그게 영성이고, 앵프라망스를 꿰뚫는 순간이다... 흠... 보통 사람 사이에선 제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엷은 막 같은 게 아니라 당연히 장벽이 느껴집니다. 안 그러면 그게 이상한 건데... 여튼 이런 한국 최고의 두뇌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기막힌 게 돈이라네. 핵심 교환은 세 가지야. 첫째 피, 둘째 언어, 셋째 돈. 돈은 돈의 교환을 해야지 피의 교환을 하면 안 되는 거거든? 그런데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재벌가는 정략 결혼을 한단 말야.(p262)" 이 대목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선생에 대한 특별한 회고를 하는데 이 중에는 선생이 젊은 시절 프랑수아 모리아크(당시 표기로 "모리악")를 만나고 쓴 칼럼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모리아크는 요즘 가톨릭 성향 작가 정도로 기억되지만 1970년대에는 여러 문제적 장편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분인데 선생이 그런 분도 직접 만났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본문 p42 이하에는 선생이 그 특유의 박식으로 inerview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대목이 있는데 비록 마지막이란 수식이 있으나 이 대담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특히, 가슴 뭉클하게 읽힙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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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셰프 서유구의 식초 이야기 | My Reviews & etc 2021-11-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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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셰프 서유구의 식초 이야기

곽미경,박병애 저
자연경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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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리즈 제8권 <식초 음식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 제7권도 문간공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중 정조지 미료지류를 기본 출처로 삼고 정성들여 그 레시피를 현대 감각에 맞게 복원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유독 미료지류 편에는 식초와 그를 적용한 음식들이 자주 언급된다고 합니다. 저자의 현대식 복원뿐 아니라 이 책에는 문간공 저서 한문 원문이 상당 부분이 번역(직역)과 함께 소개되었으므로 이중삼중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유익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후속권이 발간되겠으나 여태 나온 여덟 권 중 두 권 분량이 오로지 식초와 그 응용에 대한 내용이니, 문간공 원저에서 식초 적용 발효음식의 비중이 얼마나 높았을지 이 분야 완전 문외한인 독자조차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식초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압축 성장기를 거치며 우리 조상들이 애써 가꾼 전통의 맛과 메뉴, 조리 방법이 많이 사라지거나 잊혀져서 고서들을 통해 이를 복원하자는 취지입니다. 이 중 식초에 초점을 맞추자면, 우리 현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게 빙초산(헉) 희석 합성 식초, 양조 식초 정도이겠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임원경제지> 등으로부터 복원한) 전통 식초는 발효 식품에 적용하는 본원의 기능에 훨씬 더 적합하고, 우리가 잊었던 맛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또 의외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도, 현대 한국인의 식단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게 저자의 뜻 같습니다. 

 

저자는 예를 들어 이 책 p9 같은 곳에서 "우리 조상들은 다섯 가지 맛을 고루, 균형 있게 갖춘 식습관을 중히 여기고 이것이 올바른 정신 상태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현재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빈번히 겪는 건 극단의 단짠맵으로 치우친 식단 역시 그 원인의 일부"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사람 사는 국면의 모든 것이 조화를 갖추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지극히 타당합니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식생활 습관의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죠. 


 

p16의 프롤로그에서는 저자가 개인적 추억을 회고합니다. 어려서 어떤 친구가 "서커스 단원들 몸이 유연한 이유는 식초를 많이 먹어 뼈가 부드러운 덕분"이라고 한 것, 어머니께서 민물고기의 디스토마 균을 식초가 죽인다고 한 것(좀 뒤 p86의 식초 소독 기능에서 체계적으로 다시 설명됩니다), 고모분이 특히 강조한 식초의 효능 등을 회고합니다. 미디어에서 비블리오 패혈증, 디스토마의 위험성을 널리 강조하던 게 1980년대라고 들었는데 아마 이 부분 집필자께서는 그즈음 성장기를 보내신 건 아닐지 추측해 봅니다. 과거 식초는 그저 약방 감초처럼 어디나 끼는 부수 재료 정도였으나 지금은 아예 독자 병입으로 건강식품이 따로 나올 만큼 현대에 더 주목받습니다. 프롤로그 정독에 이어 이 책 본문까지를 다 읽고 나니 식초라는 게 아예 자신의 영역, 왕국 하나를 뚜렷이 구성하는 으뜸 식자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8권까지를 읽으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오로지 식초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음식의 세계 하나를 탐방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p34 이하에는 문간공의 원저나 조선 후기 다른 실학 서적들의 관점을 일단 떠나 현대 식영학에서 식초가 갖는 의의, 성분, 종류 등이 자세히 설명됩니다. 전통 식초를 공부하기 전 우리 일반 독자들은 일단 이 부분부터 정독하여 앞으로 이어질 본문의 전통 식초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지 먼저 기본을 갖출 수 있습니다. 

 

어느 문명권이라도 주류가 그 문화권의 특색에 맞게 발전되어 어떤 형태로든 널리 사랑 받는다는 사실도 과거 교통의 불편함과 정보 교류의 제한성을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인간이 그만큼 술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는 거고 그 술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식초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각 문명권에서 개발하여 음식에 쓰는 것도 놀랍다면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당화, 전분 등 식초의 제조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과정과 성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처럼 이론적 바탕이 잘 되어 있어야, 우리 독자들이 전통 레시피를 따라해 보는 체험을 넘어 창의적으로 식초(전통이든 현대식이든 간에)를 여러 음식에 어떻게 적용할지까지도 생각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풍미를 중시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자국의 풍토에 맞는 여러 식초를 개발한 것은 그렇다 쳐도, p70 이하를 보면 확실히 중국이 넓기는 넓은 나라이며 역사도 오래된 곳임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식초 하나도 이처럼 다양하게 발전했으며 그 지방색을 잘 반영합니다. p73에는 섬나라이기에 생선이 풍부하고 염장의 필요성이 특히 높았던 조건의 일본, 그 일본에서 자기네 식으로 발전시킨 토착 식초의 개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한국도 삼면이 바다인 지형인데 어째서 일본처럼 생선 요리가 넉넉하게 성행하지 못했는지 그 점이 아쉽긴 합니다. 세계 방방곡곡, 그 술이 다양한 만큼이나 식초도 다양하다는 결론도 다시 확인합니다. 그건 그렇고 식초 맛이 다 다른 이유를 생화학적으로 따지면 "초산균의 대사 차이(p87)"라고 요약 가능합니다. 

 

술도 과일, 곡물 등이 그 원료가 되듯 식초 제조도 마찬가지라서 pp. 93~98에는 여러 대표 곡물에 대한 설명이 니오는데 식초를 떠나서 곡물에 대한 간명한 설명으로 참 유익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p99의 술지게미 설명도 여태 못 보던 측면을 이해시켜 주어서 좋았습니다. 8권에는 "온몸을 강타할 정도로 강렬한 신맛의 기억"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 7권 p116에는 "마음의 잡념을 몰아내는 강렬한 신맛"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수양과 정진은 유가의 중요 지침이기도 하지만 불가에서도 매우 강조합니다. 이 7권이 각종 식초를 소개하는 내용이니만치 醋(초)라는 글자가 자주 나오며, 예컨대 p116 상단 한자어는 "선초방(仙醋方)"입니다(方은 그저 처방, 레시피라는 뜻이겠죠). 잘 생각해 보니 비록 도교가 (더 오래된)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저 글자가 禪이 아니라 仙인 만큼 이 대목은 불교보다는 도교 관련으로 생각의 방향을 잡아야겠네요. 

 

p118에는 문간공 본인의 말씀이 간만에 인용됩니다. "선가에서는 식초를 화지(華池)라고 한다." 식자재에 대한 일종의 극찬이죠. 화지... 화지... 불교든 도교든 수행자가 아무것도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기본 대사를 유지하는 데 최소한의 섭식을 하되 그 정신을 맑고 정갈하게 지키는 여러 전통의 비방이 있었을 터입니다. 그런 분들이 고작(?) 식초를 두고서 그만큼이나 큰 의미를 부여했으니... 책에서는 아예 "수행"을 위한 식초를 따로 논할 정도입니다.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밀을 주식으로 삼지는 않으나 여튼 밀은 민중에 친숙한 작품입니다. 정조지 중 "소맥초방"으로부터 인용(복원)한 p142의 밀식초는 밀의 별칭을 따라 소맥초라고도 불리나 봅니다. 술을 좋아하건 안 좋아하건 간에 원 주정의 냄새까지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그리 많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책에선 "밀식초의 달콤한 꽃 향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밀식초 담그면서 종래의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고 심지어 그 고유의 향기까지에 놀랐다는 거죠. 인공적 방법을 배제하고 그저 자연의 섭리를 좇아 순응하듯 만든 음식과 자재는 이처럼 그 과정부터가 건강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이런 오랜 섭리를 거역하고 온갖 첨가물로 범벅이 된 몹쓸 걸 먹으니까 몸에 탈이 나고 아토피 같은 게 생기는 겁니다.


 

앞서 p99의 술지게미 설명이 예사롭지 않다고 했었는데 p157에도 이 술지게미가 놀랍게 응용됩니다. 밀기울식초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역시 오른쪽 상단의 한자는 보리 맥(麥)변에 사내 부(夫)를 쓴 것인데 "밀기울 부"자 입니다(윈도 기본에서 지원하지 않아 이 독후감에 쓸 수 없네요). 저자분의 경우 이 밀기울 레시피는 그리 고유한 맛이 나지 않아 실패로 여기지만(책에서 드물게 봅니다), 대신 술지게미의 활용법 하나를 얻어 가신 듯합니다. 저는 이 파트 제목이 "돌아갈 수 없는 고향 같은 맛"이라고 해서 무슨 뜻인가 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그 의도를 겨우 알았습니다^^

 

뷸가에서는 연꽃을 신성히 여깁니다. 어찌 보면 연은 그리 화려하고 존귀하게 보이지 않는데, 그 중에서 깊은 뜻을 애써 찾아내는 자세부터가 경건한 종교적 마음가짐이겠습니다. 정조지가 소개한 레시피 중에는 "연화초방"도 있는데 이 역시 복원 결과가 그리 확연히 드러나는 건 아닌가 봅니다(독자인 제 생각입니다). "연꽃을 닮은 사람만 이 식초에서 연꽃의 그것을 느낄 수 있다시니 말입니다. 어떤 분은 복원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지 않을 때 이것을 환경 오염의 탓으로도 돌리신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대추, 창포... 나아가 꿀, 엿으로 만드는 식초도 있습니다. 위 밀기울 식초에서 저자는 제조 도중 벌 한 마리가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주위에서는 이러면 못 먹는다고들 했으나 그렇지는 않다고 저자는 말씀합니다. p213에는 벌들과 벌집 사진이 나오며, 이곳뿐 아니라 이 시리즈 전체가 컬러 사진으로 가득하여 텍스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과 정보를 독자에게 넉넉히 전달합니다. 식초는 두루 소독 기능을 가지지만 특히 p237의 녹두식초는 해독 기능까지 있습니다. 크림빵 하면 생각나는 흑임자, 그 흑임자로 만들어 두놔에도 좋다고 하는 식초도 나오네요. 선비의 첫째 덕목은 지조인데 그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식초(p262)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먹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서양 격언도 있지만 조상들이 남긴 지혜의 집결 중 이처럼이나 식초 단일 품목(차라리 장르입니다만) 안에 엄청난 처방과 효험이 깃들 줄은 몰랐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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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환상이고 부부는 현실이다 | My Reviews & etc 2021-11-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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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결혼은 환상이고 부부는 현실이다

공진수 저
마음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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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아무 계산 없이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드는 젊은 남녀의 감정입니다. 이처럼 숭고한 관계이고 시간이지만 감정에 치우지기 쉽기 때문에 상대방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서서히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때부터 현실의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물론 어떤 난관이 있어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이 모든 게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현실, 부부 생활이라는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대화는 몇 번이나 있어야 할까?(p64) 책에는 놀랍게도 일주일에 한 시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부부가 많다는 통계가 소개됩니다. 일주일에 서너 시간이 보통이라면 하루에 30분입니다. 이 대화에 일 관련 말고도 "성적인 부분"이 조금 추가되기까지 하면 행복감이 가장 높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30분! 어떻게 부부인데 그 정도밖에 대화가 없을까 싶지만 그 정도 시간만 확보되어도 매우 바람직하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매일 조금씩"을 권합니다. 하긴 다이어트 상식 중에도 매번 소식하고 끼니에 과식하지 말라는 게 있죠.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p67)." 사랑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만나 맺어진 사이조차도 그걸 가꿔 나가는 데 이처럼 많은 노력이 든다는 게...

 

"많은 문제가 결혼 전에 드러난다. 관계가 점점 깊어지면 다양한 문제를 무의식 중에 노출하게 마련이다(p38)." 그래서 요즘은 충격적이고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많이 터집니다. 결혼 며칠 전에 혼수 문제를 놓고 파혼이 일어난다거나, 혹은 상대방의 과거에 대한 충격적인 팩트를 비로소 접하고 참사가 빚어진다거나 하는 일 말입니다. 신혼여행 중 비로소 상대에 결정적으로 실망하는 일이 생겨 도중에 이혼했다거나 하는 건 좀 지난 세대에 있었던 패턴인 듯하기도 하고요. 결혼 날짜가 임박하면 안 드러나던 게, 안 보이던 게 슬슬 나타나는 거죠. 착시현상, 확증 편향, 책임 전가... 결혼을 앞둔 이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혼 사유로 가장 빈도가 높게 표시되는 게 "성격 차이"라고 합니다. 성격 차이라니... 그런 막연한 범주에 가장 많은 사례가 포섭되는 게 통계 분류의 무책임함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많은 부부들이 그 이유로 관계 파탄을 설명하고 싶어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겠죠. 저자는 말합니다. 성격 차이 때무에 헤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이게 뭔지를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망 탓이라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가난에 사무친 이라면 부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며, 정서 결핍이 심한 사람은 그 보상에 대한 욕망이 강한데, 상대방이 그걸 채워주리라는 기대가 이미 일방적인 것이다.(pp. 17~19)" 

 

또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헤어지는 이들은 보통 '만남부터가 잘못되었다'고들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은 비장하고 거창하지만 사실 만남부터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일방적인 기대를 그 상대방한테 건 것부터가 잘못된 걸 무슨 운명이 자신을 잘못 이끌기라도 했다는 듯 저리 남탓하며 표현하는 거죠. 다시 만나지만 만남이 잘못된 게 아니라 상대한테 자신도 모르는 무엇을 엄청나게 기대한 게 잘못이었던 겁니다. 그 사람한테 자신의 기대 같은 걸 그리 엄청나게 투영하면 안 되는 거였죠. 

 

"당신은 민감한 것 같아." "당신은 예민한 것 같아." 이 두 문장, 표현은 비슷한 듯해도 전혀 다른 말이라고 저자는 지적(p56)합니다.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적 느낌을 풍긴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앞의 말은 니가 이걸 민감해하는 걸 내가 캐치했으니 앞으로 배려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고, 후자는 니가 무슨 이 점에 열등감 같은 게 있어서, 다른 사람이면 예사로 넘기는 걸 너 혼자 유난떤다는 비난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표현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어서 어떤 사람은 전자의 표현을 비난의 뜻으로도 쓰고, 후자의 표현을 걱정스러워 하는 뜻으로도 쓸 겁니다. 표정 등 부대적인 넌 버벌 익스프레션도 감안해야 하고 발화의 맥락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나야 나쁜 의도가 없었다 해도 내 언어 패턴에 문제가 있어서 상대가 오해하는 건 아닌지 "먼저 자신을 좀 돌아보자"고 합니다. 내가 사전에 조금만 조심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결과는 거의 다 피해갈 수 있습니다. "예방이 치료보다 더 효과적이다(p172)."

 

자존감은 나 자신도 높게 간직해야 하지만, 나의 배우자도 높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낮으면 그 역시 관계에 위험을 끼칩니다. 화를 자주 낸다, 감정 조절을 못한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존감이 낮아서 이러는데 더 큰 문제는 배우자 역시 이런 상대방의 성향을 점차 닮아간다는 겁니다. 저자는 이것을 "하향평준화"라고 정리합니다(p82). 이때 어떤 결과가 나오냐면 서로 자존감이 낮아서 싸움이 피해지는 게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작은 것에도 서로 예민해하며 과잉반응하다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큰 싸움이 매번 벌어진다는 거죠. 더 나쁜 건, 이런 부모 밑의 자녀조차도 덩달아 자존감이 낮아지는 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어디 가서 자신을 낮추고 사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걸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아예 다른 개념이니 말입니다.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정겹게 들릴 수도, 또 개인보다는 부모의 의무를 우선시한다는 의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비인격화(p89)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호칭의 비인격화가 진척되면, 예를 들어 "쟤, 저 사람" 등로까지 번지면 이미 비인격화를 넘어 하대로까지 이어집니다. 적절한 호칭을 평소에 사용하면 나중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불필요한 오해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왜 결혼하는가? 결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성숙해지기 위해서(p94)"라고 답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 저자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이처럼 이미 답을 준비해 두고 질문을 던지는 건, 저자가 생각하는 답이 이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도 보입니다. 저자는 일단 결혼은 자녀를 두는 게 보통이며(물론 여러 사유로 자녀가 없을 수도 있고 이것이 비정상이라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적어도 이전의 자신들보다는 더 성숙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자녀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적어도 이전에는 없던 자신의 반려자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성숙해지려고 의식 무의식으로 노력합니다. 심지어 저자는 결혼이란 모든 과정이 다 새로우며 재혼이라고 해도 "한 번 해 봤던 결혼"이 아니라 "처음 해 보는 재혼"이라고 합니다. 정말 명언 아니겠습니까? 억지로 잘하려는 강박이 아니라 처음 걷는 길이라는 겸손으로 조심스레 내딛는 걸음 속에 사람은 적어도 과거의 자신보다 성숙해지는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책에서 이 대목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 성숙이라는 키워드는 책 후반 p140 이하에도 다시 강조됩니다. 


 

부부싸움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참아지지도 않거니와 억지로 참는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관계가 병드는 선택입니다. 문제는, 나쁜 부부싸움을 나쁜 패턴으로 반복하다가 마침내 관계 자체를 방치하고 포기(p110)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저자의 결론은 그래서 부부싸움에도 룰이 있어야 하며, 시간의 룰, 주제의 룰, 방법의 룰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시간의 룰"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싸움에도 순기능이 있는데 여튼 상대를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는 하게 됩니다. 나쁜 면의 이해라고 해도 말이죠. 

 

또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올 때에는 보통 내가 아니라 상대 배우자가 문제라고 봐서 상대 배우자를 선생님들한테 상담 시키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말합니다. "남편(혹은 아내)분 말고, 전화 해 주신 본인부터 먼저 상담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럴 때 많은 이들은 대개 반발합니다. "아니 엉뚱하게 나한테 왜?"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 같은 걸 보면 예를 들어 어느 불임 부부가 처음에는 아내 쪽에 원인이 있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무정자증이었다는 것 등이 자주 쓰이는 클리셰입니다. 참 아이러니컬한 게, 철석같이 상대가 문제라고 여긴 바로 그 사람이 문제였다는 게 이상하게도 자주 밝혀진다는 거죠. "먼저 자신을 돌아보자"는 게 이 책에서 자주 강조되는 포인트이며, 여기에 저자는 "두 사람 중 자발성과 동기부여가 강한 쪽이 먼저 앞장서도록 하며, 이런 좋은 성향이 상대에게 번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나쁜 것뿐 아니라 좋은 것도 부부니까 서로 닮기 쉽지 않겠습니까.

 

"나만 최선을 다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 그러면 듣는 사람은 아 저분이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가 나빴구나 하고 여기기 쉽지만 이걸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면 전혀 아닌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분이 저런 인간 말종을 그만큼이나 참고 견딘 게 용하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하죠.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도 오히려 잘못이 큰 자가 저런 식으로 최선을 다했다니 뭐니 하며 자기 연민,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정말로 문제가 큰 사람은, 까맣게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게 어찌 보면 너무도 신기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잘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기에 상대방보다 먼저 나 자신의 단점을 돌아볼 줄도 아는 것입니다. 단점투성이인 인간은 애초에 반성의 기제가 없습니다. 남도 아니고 내 배우자인데, 잠시만 더 참고 자신을 돌아보는 게 당연한 도리이고, 버럭 화를 내기 전 먼저 내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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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을 알면 노래가 쉽다 | My Reviews & etc 2021-11-2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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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악을 알면 노래가 쉽다

김정현 저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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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노래를 잘하고 싶으며 특히 연말 회식이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한 곡조 뽑아야 할 일이 잦아지면 더욱 아쉬워지는 게 노래실력입니다. 성악가처럼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다 해도 적정 수준으로만 듣기 좋은 노래가 되어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책은 성악의 기초 원리만 잘 이해하고 자신에게 적용시키기만 해도 실력이 나아진다고 하네요. 

 

대중가수, 성악가, 뮤지컬 가수 등은 모두 멋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대중 앞에 선다는 점이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이들이 차별되는 걸까요? 책에서는 "공명(共鳴)"에서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p21에는 "돔 모양의 구강 구조"가 그림으로 나옵니다(p77의 그림도 같이 참조하면 좋겠습니다). 즉 사람의 구강을 돔 구장과 같은 구조를 지녔다며 저자는 비유하는 건데, 연주홀도 "그 실내 구조가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진 건 그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p32)" 이 공명을 최대 효과로 내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연주홀 자체가 이처럼 공명을 극대화하게 만들어졌다 해도 정작 연주자인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성악에 맞게 공명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성대를 잘 쓰라는 조언은 요즘 TV 예능 같은 데서 보컬리스트들이 많이 해 주기에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대의 내전근을 잘 써야 하는 건 물론이지만, 몸 전체, 사람이라는 악기를 두루 잘 쓸 줄 알아야 한다(p38)"고 합니다. 

 

"정지된 물체는 운동 에너지가 제로(p39)" 이 원리는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저자는 상기합니다. 또 베르누이의 원리도 언급하는데 직접 레슨을 받는 게 아닌 이상 이렇게 원리를 책에서 언급해 주는 게 효과적인 듯도 합니다. "압력과 위치 에너지, 운동 에너지의 합은 일정하다(p42)." 이로부터 저자는 공기가 소리의 내전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성대 사이에 공기가 흐를 때 성대는 서로 가까워진다(p44)"고도 합니다. 소리를 낸다는 건 바로 "성대가 진동한다는 뜻이다(p46)." 이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내가 예사로 내는 소리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감이 잡히는 듯도 합니다. 저기서 "내전(adduction)"이라는 말의 뜻은 책 후반부 p172에 보면 아주 자세히 나옵니다(외전도 함께).


 

물리학에서 모든 현상은 입자 아니면 파동으로 설명됩니다. 이 중 소리는 파동이며, 파동에는 종파와 횡파가 있는데 성악가의 소리는 횡파가 아니라 종파인 점에 유의하라고 합니다(p49). "성악가는 공기를 소리의 매질로 사용한다." 그리고 p54부터 "공명", 즉 이 책의 핵심 주제가 상세히 설명됩니다. "음정을 만드는 건 정확한 진동수, 즉 Hz를 만드는 일이다." "타고난 성대가 짧으면 진동수가 많아져서 고음을 내는 데 유리하다." 중고교에서 배운 물리의 원리가 이처럼 일일이, 좋은 목소리를 내는 방법에 적용되는 과정이 신기합니다. 이 파트의 설명이 무척 자세하고 체계적이어서 물리학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보조 교재로 활용해도 될 듯합니다. 

 

p66 이하에는 "포먼트"라는 생소한 개념이 나옵니다. "앞 음정의 울림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음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음이 툭툭 끊어지고 노래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들리는 거죠. 제 개인적으론 특히 흑인들이 이런 점에서 뛰어난 듯하더군요. 이 간격이 아주 짧기에, 높낮이가 크게 차이 나는 여러 음을 그처럼 빨리 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앞에서 저자는 성대뿐 아니라 몸 전체를 악기처럼 두루 잘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p80에서는 그 중 하나로 "흉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대의 울림이 저음에서 고음보다 배음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강보다는 흉강과 인두강 등의 울림이 비교적 크게 형성되어야 하는 게 저음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면서 성대를 울리게 해야 하는데 호흡을 일정히 유지하며 점차 비강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노래를 잘하는 건 그저 타고난 줄 알았는데 이처럼 구체적인 원리가 있으니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훈련을 통해 노래 실력을 낫게 하는 게 가능한 거죠. 

 

"형, 저는 베이스 아리아를 부르면서 저음을 낼 때 왼쪽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아요(p126)." 저자는 각자가 감각적 루틴이 다 다르다고 해도, 근육의 위치와 신경감각의 전달은 서로 비슷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레슨을 하는 분들이 쓰는 말 표현이나 짚어 주는 포인트는 달라도 결국 내고자 하는 효과는 같은 것입니다. 만약 모든 레스너들이 과학적 원리를 이해한다면 전부 이 책과 같은 방식, 같은 표현으로 가르치겠죠.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공명"입니다. 이는, 폐의 구조와 기능을 정확히 알아 가장 (성악에) 효과적인 호흡을 내는 방법과 통합니다. 네 발로 다니는 동물은 흉식 호흡이 어렵고 복식으로만 가능한데, 사람은 둘 다를 할 수 있습니다. 횡격막을 충분히 내려가게 하고, 이로써 복압도 충분히 발생하게 하는 게 노래 잘하는 비결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쓰는(use) 식이 되어야 하며, 억지로 가지고 버티는(hold) 게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p138). 언제나 염두에 두고, 이렇게 해야지 라며 의식해야 할 명제 같습니다. 여튼 복식호흡의 중요성을 인식하던 중 수영을 하며 또다시 복식 호흡의 다른 면을 깨달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수영 하시는 분들은 특히 유념해서 볼 대목 같습니다. 수영 선수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파" 파고 내뱉는 그런 방법으로 횡격막을 충분히 쓰라고 합니다. "쓰다 남은 숨을 버리고 새 숨을 쉬어야 한다(p147)."

 

이어 p152 이하에는 바른 숨 쉬는 방법이 나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일일이 인용하지 않겠으나, 과연 이렇게 숨을 쉬어야 타인이 듣기에 좋은 소리가 나오며 어쩌면 이게 건강에도 올바른 숨쉬기 방법이지 싶었습니다. 

 

p164부터 이어지는 3부는 후두 등 목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옵니다. 여기서 저자는 성대를 두고 "쓰지 말고, 쓰이도록 하자"고 합니다. 보통 골프를 칠 때도 그렇고 노래를 할 때도 "힘을 빼라"는 주문을 하는데, 이러려면 "단기간에 뚜렷한 성과를 내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은 이런 문화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노래뿐 아니라) 어디서든 힘을 빼고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소리는 단기간에 멋진 소리를 내려고 지나치게 골몰할 게 아니라, 자신의 소리가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연습을 하면 목이 막히고, 성대가 잘 붙지도 않게" 된다는 거죠. 

 

"처음 볼륨의 절댓값은 없다. 그런데 마지막 솔 음의 볼륨이 가장 작아야 하는데 이게 많은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된다. 고음에서 날숨의 압력이 강해지고 성대에 강한 압력을 주게 된다. 이러면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p197)." 실제로 제가 소리를 내어 보니 과연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노래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거죠. 또 원리도 모르고 방법도 틀렸으니 개선이 안 되고 더 흥미도 잃게 됩니다. 

 

p222에는 모음 삼각도가 나오는데 우리가 중3 국어시간 때 배웠던 것과는 가로축으로 대칭이 된 모습입니다. 이탈리아어에 정통한 저자는 일일이 단어의 예를 들며 모음을 바로 내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이처럼 음성학, 호흡법, 인간 신체 구조의 의학적 분석까지 뒤따르는 무척 복잡한 과정입니다. 허나 노래를 잘하고 싶은 절박함이 있다면 이 원리들이 어렵게만 다가오지는 않겠으며 오히려 어떤 이치가 규명되었으니 이대로만 따르면 되겠다며 안도감이 느껴지겠습니다. 고급용지에 인쇄되었으며 컬러 도판이 많은 멋진 구성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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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정신분석치료를 받고서 다시 태어나다 | My Reviews & etc 2021-11-2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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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니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서 다시 태어나다

윤정 저
북보자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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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지식은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이다(p4)." "언어와 사유라는 문법적 구조를 발명함으로써, 인간은 언어 뒤에 숨어 다양한 의미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pp. 4~5). 몽환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가장 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우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19세기의 사상가 니체를 놓고 저자는 분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작가 윤정님이 니체를 임상의 침대에 눕혀 놓고 요모조모로 분석하며 소통하고 마침내 (아픈 곳이 매우 많았던) 그를 고쳐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아파서 더 매력적이었고 아팠기에 그처럼 놀라운 사유의 결과물을 빚어내었던 니체. 이제 그를 멀끔히 치료해서 "재탄생"시키면 그만의 천재성까지 덩달아 밋밋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만 은근히 우리 평범한 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 줬던 천재의 아픈 상처를 요리조리 뜯어보는 건 그 자체로 뭔가 복수감(?)의 충족이 되는 듯도 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물론 천재의 신들린 필치이기에 황홀하지만 그 행간에서 "그만의 아픈 상처와 약점"을 솜솜 긁어 보는 건 좀 비겁할지는 몰라도 은근히 통쾌합니다. 

 

만약 정말로 니체가 현대의 정신분석학과 의학이 결합한 영역의 놀라운 발전을 알았다면 과연 자신의 내면이 낱낱이 파헤쳐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까요? 니체는 일단 약게, 교묘한 핑계를 대며 회피할 수도 있고, 아 그렇지 않고 복잡다기한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기에 아직은 그 도구가 미진하다고 판단하여 흔쾌히 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소 불안정하고 충동적이었던 그의 성격을 감안할 때 작가님의 입담에 별 생각 없이 넘어가서 덜컥 응했다가 나중에 가서 큰코다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죠. 여튼 p19에서 니체는 작가님의 제안에 응합니다. 작가님의 분석이 그의 정체를 과연 어디까지 드러낼지도 궁금하고, 이런 리스키한 상담에 (아마 이 기회에 자신의 오랜 병 좀 고쳐 보자는 생각도 있었는지) 대뜸 응한 그의 속셈도 혹시 알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을 듯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p35에서 "피분석가" 니체는 분석가(이 책 저자)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어려서 아버지, 남동생 등이 모두 죽고 여성들만 가득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폴란드 귀족 집안이라서 자부심이 가득했다 등등... 폴란드 귀족들은 본국에서 버림 받고(기층민중과 불화했든, 외세에 의해 축출되었든 간에) 남의 나라에 와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한 듯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할머니, 고모(p38) 등의 다소 억압적인 양육 분위기가 그의 반 기독교적 성향 등에 영향을 끼친 게 크겠죠. p42에서 그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횔더린을 언급합니다. p43에서 분석가는 중요한 말을 하는데 왜 약물 처방 등을 해 주지 않냐는 니체의 질문에 대해 "결국 치료의 주체는 선생님(피분석가)이다"라며, 사는 방식, 말의 구성을 보며 스스로가 문제를 알아차리도록 도와 줄 뿐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윤 정 저자님 같은 분이 현실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 이런 방향성을 갖고 있구나 싶었네요. 

 

"...역(逆)전이 현상은 아직 없다. 글을 쓰고, 성서의 구절을 읽고, ... 보이지 않는 보편적 흐름에 저항을 느끼며 깊은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횔더린의 시에서... 강렬한 충동을 간직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열망하는 저항의 존재로 나아가려고 한다...(p46)" 

 

p55에서 "니체"는 다시 질문을 합니다.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묻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분석가는 "인간의 모든 의심은 언어와 의미에 대한 강박적인 자아 기제의 반복입니다... 언어를 선택한 말로 인하여 말도안되는 소리를 믿을 위험마저 있습니다.... 본질에 닿을 수 없는 한계가 있어요... 인간은 결국 언어의 의미에 매달려 부유하는 기생적인 존재이므로 스스로 삶으로 언어의 의미를 버려야 하는 운명의 주체인지도 모르죠." 그리고 "분석가"는 이제 니체를 두고 "주변 분들의 칭찬과 격려를 자기 꿈과 동일시하는 강한 애착은 불안으로 인한 집착으로 보여진다(p59)"는 결론에까지 이릅니다. 역전이 현상의 일단을 관찰하면서 말입니다.

 

p72에서 니체는 다시 묻습니다. "탈구조, 탈언어란 무엇을 말합니까?" 사실 이 부분은 독자로서도 더 명징하고 더 쉬운 설명이 없을지 궁금했는데 운동성의 강조, 착각, 환상, 자아의 방어적 개념 등을 써서 분석가가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니체의 시대에는 아직 이런 사조가 등장하지 않았겠으므로 그(아무리 천재라 해도) 역시 시대상의 업데이트가 필요하죠. 


 

"정신분석에서 '부재'란, 소외되고 결여된 모든 삶의 다른 이름이다(p75)." "정신 분석에서 분석 공감이란, 분석가와 피분석가가 똑같이 관찰자가 되고 참여자가 되는 과정의 관계다.(p77)" 분석가는 피분석가 니체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또 분석가가 채택하는 방법론 자체가 매우 공정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분석은 결국, 결국, 어떤 이론의 세심한 적용. 처방이라기보다 특정 도그마의 원색적 표명, 반복으로도 보이며 니체는 마치 실험용 모르모트처럼 분석가의 언표에 무기력하게 굴복당하는 불쌍한 존재로 결국 전락하는 게 아닐지. 

 

"말을 반복하게 되면 무의식의 억압량이 늘어나게 되고 더 충동적인 반발을 가져오게 되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문명의 관점에서는 정신병적 이상행동으로 분류되어 질병의 이름을 달게 됩니다(p92)" 결국 이런 분석은 니체(의 치료)를 향했다기보다, "향정신성 의약품의 처방"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현실의 풍토에 대한 비판과 개탄이 더 주된 목적인 듯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비극은 이제 디오니소스적인, 혹은 아폴론적인 것도 아닌,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생성적인 대립은 무너지면서 생명력을 잃고 멸망했다는 것이죠.... 새로운 예술은 도덕적 합리화가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힘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하죠. 이런 기대를 걸고 기다렸던 디오니소스적 예술가가 바그너 선생님이라고 믿었습니다.(p107)" 후반부로 갈수록 발언량(자유연상[p206]의)이 늘어나는 니체의 말입니다. 이제 바그너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믿었다는 건데...

 

"모든 질병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택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p115)" 맞는 말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해당이 안 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처럼도 보입니다. 정신분석학 명제의 가장 취약한 점은, 그 추상성 때문에 먼저 이 말을 꺼내드는 사람의 선제적, 일방적인 언표로 분석 대상에 어떤 부당한 낙인이 찍히고 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의 노예(p119) 역시 노예라서 불쌍하지만, 그래도 어떤 폭력이나 권력의지, 충동의 노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해 이 노예들은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그 멍에를 둘러멘 이들 아닐꺄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그 선율이 무척 아름다운 것처럼 도덕의 노예 역시 헤겔의 표현대로 인륜의 최고 형태인 국가 안에서 제 자리를 겸손되이 찾습니다. 어디 세상에 조악한 위선(p141)만 있겠습니까? 니체 선생님, 울지(p145) 마십시오. 많이 아프신 건 사실인 듯합니다. 

 

사실 빅바운스(p181)도 시기적으로 니체보다 뒤에 나온 가설인 만큼 그의 영겁회귀사상로부터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니체와 동일한 영감의 원천을 공유할지도 모흡니다. 베르그송이나 데리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동생과 함께 마지막으로 연구소를 찾은 니체는 자신의 아픈 상처를 함께 더듬다 burst into tears하고 마맙니다. 참 불쌍한 모습이네요. 그런데 이미 죽은 니체보다도, 혹 마음이 아프다면 아직 현실을 살아내어야 할 이 시대의 우리들이야말로 이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더듬고 진술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놀랍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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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도 인공지능이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1-11-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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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포츠도 인공지능이다

김명락 저
미문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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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라는 분야는 요즘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합니다. 의료, 법률, 경영, 교통, 레저... 그런데 저자는 스포츠 여러 영역에 특히 인공지능이 중요한 구실을 하리라고 이 책에서 전망합니다. 그럼 저자는 전문 체육인이거나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분일까 추측할 수 있는데 책날개에 소개된 약력을 보면 스포츠와는 적어도 거리가 꽤 멀어 보입니다. 모 대학 학부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분인데 이 저자분 연배라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소위) 입결이 높았던 때이기도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분야에 종사하려면 면도날 같은 두뇌가 필수일 듯해서 학력과 약력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또 이 저자분 또래 세대가 유독 스포츠에 (야구를 비롯해서) 열광하던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수한 두뇌와 집단 열정의 교차점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게 되더군요. 

 

<스토브리그> 같은 드라마만 봐도 요즘은 프로 선수들이 "부상 방지"에 늘이는 노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연투에 연투(뿐 아니라 완투까지)를 거듭해 4승을 챙기고 팀에 우승을 안기는 최동원 레전드 같은 말도안되는 혹사는 요즘 세상에 상상도 못합니다.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재일교포 출신 김성길 피처는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너무 혹사당한 끝에 선수생명이 단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떠어떠한 패턴으로 훈련해 온, 혹은 실전에 투입된 선수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부상을 당할 수도 있을지 예측(p27)을 하는 시대입니다. 이를 통해 선수(의 건강과 능력치)를 최대한 보호하고, 혹은 연봉 협상에 중요한 참고 자료를 쓰는 등의 용도를 생각할 수 있겠죠. 물론 전자가 최우선이지만. 

 

또 야구의 경우 통계가 정말 다각도로 활용되는데 요즘은 각 팀의 전력 분석원들(p27)이 타자의 타구 방향을 분석하여 수비 위치를 이동시키는 전술 수립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인공 지능이 적용된다면 정말 놀라운 결과가 나올 만합니다. 미국에서는 경기 진행 스피드 촉진 등의 이유로 시프트를 금지할 것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리는데 여튼 어떤 종목보다 야구는 인공지능 등 통계의 체계적인 활용이 기대되는 종목입니다. 

 

책날개에는 스스로를 "부족한 운동신경과 형편 없는 체력"으로 소개하지만 p45을 보면 학사장교 출신임이 나옵니다. 한국 남성 평균 체력과 신체 능력을 넉넉히 상회하지 않으면 장교 생활을 감당할 수 없죠. 아무튼 청년 시절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틈날 때마다 야구 시합에 몸소 참여하고 싶어했던 저자는 자신처럼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취미삼아 운동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전문가에 레슨보다 더 큰 도움이 되고 더 저렴한 비용으로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게 바로 AI라고 말합니다. 

 

마음으로는 하고 싶어도 막상 해 보면 전혀 적성이 발견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이 남거나 할 때 인공지능은 당사자에게 여러 테스트를 시켜 보고 그에게 가장 맞는(혹은, 가장 맞지 않는) 종목을 정해 줄 수 있습니다(p60). 야구로 만약 정해지면 그에게 가장 잘 맞는 포지션이 무엇인지도 인공지능이 추천해 주는데 팀에서 그냥 목소리 큰 순서대로 위치를 정하거나 주먹구구로 선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도 부상의 위험을 최소로 줄이는 게 가능합니다. 

 

사회인 스포츠를 우습게 볼 수 있으나 직장에서 생각보다 낮은 만족, 직위 등으로 인해 자존감이 크게 낮아진 이들에게는 자신의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종목을 골라 부상 위험 없이 체계적으로 운동에 몰두함으로써 일종의 힐링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회인뿐 아니라 젊은 혈기를 주체못해 맨날 사고나 치던 틴에이저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을 골라 한우물을 파게 되면 이는 한 인생에 대한 멋진 구제 방법이 됩니다. 엘리트 스포츠건 생활체육이건 가리지 않고, 인공지능은 모두에게 예상치 못한 큰 규모의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셈입니다. 

 

요즘은 야구에서 이른바 클래식 스탯 외에 WAR, WPA 등 다양한 통계 지표를 활용해서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며, 케이블 스포츠 채널에서도 OO톱OO 등 여러 단일지표를 개발해 내어서 투수와 야수를 통합하여 순위를 매기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EOPS라는 지표를 소개하는데(p84) 이는 주로 야수로서의 능력치를 계산하는 방식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인 야구는 수비수의 실책이 잦고 포수는 도루하는 주자를 거의 잡아내지 못합니다. 책에는 또 스낫 상황에서 포수가 포구 미숙이나 1루 송구 능력 부족으로 타자를 출루시키는 일이 잦은데 이럴 경우를 상정해서 E-출루율이 사회인 야수 능력치를 재는 데 보다 적합(p85)하다고 합니다. 또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객관적으로 체크할 수 있어서 뜻밖의 탄핵(?)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경영의 영역으로 옮아가면, p110에 그 구체적인 적용례가 나옵니다. 특정 선수에 주목하여 어떤 기업이 장단기 스폰서십을 체결하고자 하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삼성그룹도 1990년대에 테니스의 전미라, 골프의 박세리 등 유망주를 조기 발굴하여 장기 후원을 시도한 적 있습니다. 책에서는 NBA 스테픈 커리의 예를 들며 이 선수가 아직 어린 나이였을 때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선수로 성장할지 인공지능 예측을 시도할 수 있다는 에피소드를 전달합니다. 또 이건 독자로서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선수로서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장래 대스타가 되었을 때 그의 이미지 방향성과 기업 자체의 지향점, 비전이 서로 얼마나 잘 맞을지에 대한 예측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또 선수가 광고에 출연했을 때 가장 잘 맞을 분야를 미리 예측하여 괜한 실패 광고에 출연해 선수 이미지를 괜히 소진하지 않게 방지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자는 p185에서 "과거 3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공간과 역량 부족으로, 예컨대 100개의 데이터가 있으면 이 중 10개의 정보(인포메이션)와 90개의 비(非) 정보 데이터로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서는 이 100개를 모두 데이터 상태로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 잘 보존된 데이터는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준을 통해 제련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지난시대의 IT가 아닌, 보다 진화된 DT, 즉 데이터 테크놀로지로서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IT와 DT의 차이, 잘 알아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격변하는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일단 컴퓨터 언어 몇 개를 잘 배워 두어 코딩 능력을 향상시킬 필요(p197)가 있습니다. 또 클라우드 기술에 익숙해져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접근하고 가공하는 쪽으로 항상 관심을 유지하며 또 업무에도 활용해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그저 컴퓨터공학의 한 분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신경과학, 경제학, 심리학, 언어학 등이 두루 만나는(p205) 학제적 영역인 만큼, 정말 큰 야심이 있다면 다방면에 두루 관심을 두고 천착할 필요도 있습니다. 

 

한국은 알고보면 올림픽 종합 순위 10위권 안에 꾸준히 드는 편이며 국내 프로 스포츠 시장의 규모도 매우 큽니다. 그런 만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이 스포츠 시장에서 새로운 입지를 마련할, 이른바 창업의 여지가 생각보다는 넓은 편이라고 저자는 귀띔합니다. 스포츠와 동시에 첨단 발전 학문 분야에 두루 주의가 쏠리는 젊은이라면 꿈을 크게 가지고 도전할 만한 비전이 있다고나 할까요. 진정한 적성은 생각지도 않은 계기에 뜻밖의 방향으로 발견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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