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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KBS 한국어능력시험 봉투모의고사 | My Reviews & etc 2022-06-3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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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해커스 KBS 한국어능력시험 봉투모의고사

해커스 한국어연구소 저
해커스자격증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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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모고 치고는 좀 두툼해서 의외였습니다. 모두 3회분인데 2회분은 평균난이도이며 1회분은 고난도 문제로 이뤄졌습니다. OMR sheet가 3매(3회분이니까), 1장짜리 최종체크 요약지(띄어쓰기, 맞춤법, 외래어표기법 중 잘 틀리는 항목들 정리), 3회분 모의고사 약점 보완 해설집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해커스 교재가 언제나 그렇지만 해설집의 퀄리티가 참 좋습니다. 또하나의 교재라고 할 만합니다. 

 

실제 시험에 맞게 100문항 120분 시간 제한으로 되어 있습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120분에 100문항을 풀어내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며 한국어 고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실수 없이 풀어내는 건 한국어 실력과는 또다른 자질을 요구하며 단 이는 노력을 통해 극복이 가능한 이슈입니다. 그러나 문법과 맞춤법의 정확한 이해 능력은 사실 노력만으로는 극복 안 되는 어떤 지점이 있습니다. 허울만 좋은 전공자라며 약점을 보완 안하는(못하는) 현실 도피 성향과 과장된 에고, 여기에 거짓말 습관까지 끼어들면 더욱 답이 없죠.

 

KBS 한국어능력시험은 마치 (영어의) 토익이나 텝스처럼 LC 파트가 있습니다. 그러나 난도는 그런 시험들에 비해 그리 높지는 않고 청력에 딱히 문제만 없으면 무난히 풀어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3회차의 19번은 어휘 파트인데, 한자가 병기되었지만 한자 틀린 걸 묻는 게 아니라 어휘 뜻이 정확히 쓰였는지(문맥적 의미)만을 묻습니다. 답은⑤인데, "불식"은 "의심이나 부조리를 말끔히 떨어없앰"이란 뜻이므로 이 지문에서의 쓰임은 적절치 못하다고 합니다(해설집의 p87). 그런데 독자인 저의 주관적 생각으로는, 차별적 대우라는 것도 부조리의 일종이므로 완전히 틀렸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어색한 건 사실이며, "해소, 종식" 등이 해당 자리에 더 잘 어울릴 듯합니다. 

 

20번도 좀 어려운데 ③에서 "수주"를 알기 전에, "주문(order)"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만 알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이 20번도 문맥 의미를 묻습니다. ⑤의 방증은 직접 증명이 아닌 간접 증명인데, 변호사라면 일단 직접 증명을 해야지 방증부터 한다는 건 어색하므로 ⑤가 답이라는 것 같습니다. 타당하지만, 생트집을 구태여 잡자면 변호사가 방증을 해야할 때도 있지는 않겠습니까. "반증"이 더 잘 어울린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21번도 보수라는 발음을 가진 두 단어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풀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고친다는 수(修)와 지킨다는 수(守)가 크게 봐서는 비슷한 범주에 속하므로 혹 같은 글자가 아닐까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자어 병기 문제는 까다롭게 내면 한도끝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일간 신문이나 책에 한자가 많이 노출되었으나 지금은 국어사전 말고는(?) 어디서 한자를 찾아볼 수가 없으니 아런 문제가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과거에는 책만 많이 읽어도 옷이 비에 젖듯이 실력을 늘릴 수 있었으나 요즘은 특별한 책으로 공부를 해서 인위적으로 지식을 늘려야 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진짜 실력은 평소 실력인데 말입니다. 

 

어휘 파트 후반부는 (고난도 모고인데도) 쉬운 편이며 단순암기(그나마 어렵지도 않은 사자성어, 속담) pool만 눈여겨 봐 두었다면 충분히 풀 수 있거나 아예 기본 실력으로도 해결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어법 파트의 32번은... 일단 ①과 ③은 똑같은 경우, 즉 문정성분 보어+서술격 조사 "이다"의 어간+종결어미 오 구성입니다. 그러니 "오"와 "요"가 혹 헷갈린다고 해도 이 두 선지는 절대 답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답이 되러면 둘 다 답이 되어야죠. 의지가 종결어미 "리"에 들어 있고, 이것이 보조사 "요"로 다시 강조되는 게 ②입니다. 종결어미가 이미 "리"가 왔는데 또 종결어미 "오"가 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②가 틀렸으며, "요"는 "예 아니요로 답하시오"라고 할 때의 그 용법과 같습니다. 과거에는 교과서에서도 이걸 틀려서 "아니오"로 잘못 가르쳤고 일부 나이든 세대가 오히려 바르게 된 "아니요"를 "아니오"라고 잘못 고쳐 주곤 하는 게 이것 때문입니다. 이런 건 맞춤법 개정의 문제가 아니며, 과거에 문법 분석을 이치적으로 틀리게 행한 것이므로 과거에나 지금이나 무조건 "아니요"가 맞는 것입니다. "했읍니다" 같은 건 과거의 원칙에 따르면 맞는 표기인 것과 지금 이건 경우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37번도 참 어려운데, 일단 ①②③④⑤ 모두 뜻은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①③④⑤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훨씬 널리 쓰이며, ②는 그렇지 않고 둘의 쓰이는 빈도가 비슷하므로 둘이 복수 표준어라는 거죠. 이런 건 이치적으로 따질 수가 없고, 국어학자들이 그리 합의해서 정한 결과를 무작정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짜장면"과 "자장면"도 이제는 복수 표준어인데 국어학자들의 생각으로는 이 두 단어가 빈도가 비슷한가 봅니다. 생활 속에서 "자장면"이 쓰이는 예가 있나요? "짜장면"을 인정해 준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자장면"은 아예 퇴출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누가 어원 灼(작)을 떠올리며 쓰겠습니까.

 

쓰기 파트는 대체로 수능시험 국어 영역의 유사 파트와 비슷하거나 더 쉽기까지 합니다. 읽기 파트도 NCS 대비를 위해 많은 독해 연습을 해 온 수험생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겁니다. PSAT보다는 훨씬 난도가 낮습니다. 한국어 능력 시험이므로 마치 수능이나 공무원 국어처럼 문학 영역이 일정 부분 출제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해설집의 상세한 해설은 언제나 수험생들이 감사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하나 아쉬운 건 옆면 인덱스를 기왕 찍어 주시는 것, 1회 2회 3회를 좀 다른 층으로(내려 가면서) 찍어 주시면 좀 더 편하게 찾아볼 수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태도는 친절하면서도 가르침에는 엄격한 해커스 교재라서 언제나 만족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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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의 시대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2-06-2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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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긴축의 시대

김광석 저
21세기북스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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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이란, 허리띠를 졸라매고 씀씀이를 줄이는 걸 대체로 가리킵니다. 아마도, 경제적 곤경에 빠져서 쓸 것을 애초에 못 쓰고 가난에 시달리는 건 긴축이라 부르지 않을 듯합니다. 그보다는, 아낄 수 있을 때 자발적으로 아끼는 게 긴축의 뜻에 가깝겠으며,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국가의 정부에서 긴축 정책이란 쉽게 쓸 수 없는 옵션입니다. 국민들 중 어느 누구라도, 종전보다 많은 이자를 내고 종전보다 줄어든 혜택에 만족하라면 좋아할 이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유명한 긴축이라면, 1970년대 후반 연준의장 폴 볼커가 취한 살인적인 고금리 긴축이었겠습니다. 이때 그가 큰 마음먹고 긴축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겠으며 이후 바로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었을지 모릅니다. 짧게 굵게 고생하려는 각오가 없다면, 이후 내내 불황에 시달리며 회복의 기회를 도통 못 잡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공급망 붕괴 때문에 이 모든 위기가 닥쳐왔다고 하는데 아마 트럼프 재임 기간 반중 정책의 폐해를 꼬집는 의도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1) 코로나 위기 당시 지나치게 많이 풀린 지원금 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 자원 가격 폭등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지금 이 책은 풍부한 도표, 컬러 편집, 최신의 글로벌 사정 반영 등으로 우리 독자들이 지금 위기가 어떻게 비롯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태가 전개될지 잘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저자님 특유의 진단과 해결책 제시 부분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코로나 위기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세계는 어떤 근원적인 변동을 맞고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대전환의 시대"라 요약하며 그 방향성 셋을 꼽습니다(p49). 첫째는 디지털 대전환, 둘째는 에너지 대전환, 셋째는 긴축 시대로의 대전환입니다. 그러니 저자는 현재 각국 정부가 겁내는 어떤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게 닥치기 이전부터 이미 긴축을 내다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12년 그리스 위기 당시 미국을 위시한 서유럽 경제 강국들이 모여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실시한 적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력이 크게 나아진 바 없는데 돈만 공연히 많이 풀렸으니, 이 완화는 이제 거꾸로 몸을 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꼬인 줄을 허공에 띄워 놓으면 알아서 반대방향으로 주르륵 풀리듯 말입니다. 

1990년대 지구를 지배했던 시대정신은 "세계화"였습니다. 각 나라는 각기 잘하는 산업에 전념하여 가장 싼 가격으로 물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이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으며 모든 기업은 이른바 "오프쇼어링", 해외에 있는 더 싼 생산 기지를 찾아 본국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리쇼어링의 시대입니다(p56에 표를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기업 철수 사례가 정리됩니다). 해외에 나가 보니 본국과는 다른 문화, 다른 규제가 장벽으로 우뚝 서 있고, 임금이 싸 좋은 줄만 알았더니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개도국 정부는 은근히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며 알짜 기술과 정보만 빼가려 혈안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세계화의 종식"으로 규정합니다(p53). 그 종식의 포성은 바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선진국은 공장 증설을 해도 자국에 하려 들고, 그 결과 부품이나 소재의 병목 현상이 일어나도 제때 원활히 공급이 늘지 않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난다는 경제학의 철칙이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탈세계화가 이처럼 진척되면 기존 더 저렴한 부품이나 소재를 개도국으로부터 사 쓰는 게 어려워지고, 대신 더 비싼 자국 것을 사야 합니다. 이러니 인플레가 더 가속화하거나 빈발하게 되는데 저자는 책 p66에서 반도체의 예를 듭니다. 반도체는 산업 전반에 걸쳐 안 쓰이는 데가 없으니 반도체의 사례가 모든 분야를 대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는데 왜 우리 나라 경제가 타격을 입을까요? 이제는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당연하게들 여깁니다. 2012년 그리스 사태 때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주식 시장의 붕괴를 보며 그리스를 욕했습니다. 지금은 입을 모아 러시아를 비난합니다. 지구 반대편의 사정은 더이상 지구 반대편의 사정이 아니라 목전에 떨어진 발등의 불입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 큰 리스크를 지고 경제를 꾸려 나가는 걸 선진국들은 더 이상 용인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자국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거리도 줄 겸 이제는 장벽을 치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거죠. 물가 상승은 필연입니다. 불과 30년 만에 지구 도는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WTO 같은 건 뉴스에도 잘 안 나오는 요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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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유전자 | My Reviews & etc 2022-06-2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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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감하는 유전자

요아힘 바우어 저/장윤경 역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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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고전 <이기적인 유전자>는 많은 독자들에게,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유전자라는 대상에 대해 적어도 어떤 감정이나 인상을 받은 데에 기여했습니다. A, G, T, C라는 무미건조한 성분으로 구성되었을 분인 유전자를 놓고, "이기적"이라는 가치 규정을 한 것부터가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도킨스 같은 석학이 그를 두고 이기적이라고 했으니 여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유전자 아니라 무엇이라고 해도, 번식과 생존, 혹은 진화에의 의지를 가졌다면 그냥 이기적이기만 해서는 목적(그런 걸 혹 가졌다면)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자신(어폐가 있지만)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타자(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공감의 전략이라는 건 이기적 관점에서도 매우 유익합니다.


 

도킨스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사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건 개체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널리 유전자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이 반드시 도킨스의 주장과 상충하는 건 아니겠습니다. 그런데 개체가 아닌 유전자 단위에서도 타(他)와 공감하고 협동하며 이타적으로 구는 편이 현명하다는 건 그 고전의 견해와 분명 대조를 이룹니다. 여튼 저자는 도킨스를 콕 짚기보다, 찰스 다윈 이래 이어져 온,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서로 밀어내는 존재(p29)"라는 어떤 믿음, 혹은 인상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려는 듯합니다. 또 저자는 같은 페이지, 또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도킨스는 유전자를 연구한 학자가 아니며 따라서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그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고도 명시적으로 주장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책 저자께서 이해한 바대로의 도킨스적 관점이므로, 저자의 이런 이해와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가능할 것입니다. 

 

"인간의 게놈은 누군가에 의해 연주되는 피아노와 같다(p32)" 어찌보면 저자가 주제와 연구 대상을 참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멋진 문장입니다. 이 표현은 지금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한 건 아니며, 미주(p241)에 의하면 동 저자의 전작 <몸의 기억> 중에서 이미 시도했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저 책은 04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어판은 그 2년 후인 06년에 나왔습니다. 지금 이 멋진 책의 전작 <협력하는 유전자>도 이미 08년에 나왔다고 하니, 이 책이 22년인 지금에서야 우리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게 아쉬운 면마저 있습니다. 도킨스의 책은 벌써 4년 전에 40주년 기념판이 나왔을 정도인데도 말입니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저 개인적 느낌도, 쌀쌀맞고 투쟁적인 도킨스의 책들보다는 뭔가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책을 고르고 읽음에 있어 그런 "느낌"이 전부일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우리 독자들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기보다, 이런 책도 읽어 보고 저런 책도 접해 봐야 견문이 넓어지고 균형 잡힌 생각을 갖게 되겠으니. 

우리는 성격이나, 특히 건강에 관련하여 "나쁜"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여깁니다. 유전자가 좋고 나쁜 게 애초에 있겠습니까만 인간은 제 생존과 행복에 이롭고 그렇지 못한 걸 그 나름의 기준으로 갈라서 볼 권리 정도야 가집니다. 그런데 저자는 심지어 그런 관점에서조차, 나쁜 유전자라는 건 없다고 합니다. 개별 인간의 삶 속에서 유전자는 (말하자면 피아노 연주자 같은 무엇에 의해) 특정 기능을 발현하거나 자제될 수 있겠고, 만약 그렇다면 설령 "나쁜 유전자"라 해도 어느 상황에서는 좋은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유전자뿐 아니라 널리 자연과 인생, 사회를 보는 눈을 훨씬 심원하게 틔워 줍니다. 또 유전자 편집 기술이 꽤 발전한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우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붙여 넣는 선택이 왜 신중해져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감을 줍니다. "유전자는 소통가이며, 또한 코퍼레이터(협력자)이기도 하다(p34)." 사실 08년 전작의 독일어 원제도 "협력적인 유전자"이긴 합니다. 

 

과학자가 자기 본래의 연구 분야가 아닌, 예를 들어 "인간성, 인격, 도덕" 같은 주제를 놓고 이를 정의하거나 긴 논변을 펼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책이 그런 책 같습니다. 저자는 유전자를 평생 공부해 왔고 또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연구 결과의 정수 외에 오랜 동안 성찰해 온 사회와 인간에 대한 심오한 결론까지 함께 제시합니다. 특히 저자는 근래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정신질환, 마약 중독 등이 인터넷의 발달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합니다(인터넷과 인간 사이의 연대에 대해 책 후반부인 p182 이하에서 저자는 자세히 논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인간 소외, 사회적 차별, "좋은 삶", 유전자에 기어이 도달하고 마는 "사회적 경험"까지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관점에서 협력적인 살믜 유익함이, 그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신경을 거쳐) 저 깊은 유전자 단위까지 도달하여 영향을 끼치고야 만다는 저자의 "과학적" 주장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공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영화 <스피시즈>를 보면 포레스트 휘태커가 연기한 스미슨 역은 사소한 흔적만으로도 그 흔적을 남긴 사람 혹은 생명체가 어떤 감정 상태였는지 알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책 p105에서는 "타인의 음성언어나 신체언어의 신호가 아주 약할 때에도 직관적으로 공명하는 사람이 있으며 이런 사람을 두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부른다... 이것은 신경세포의 공명 능력이 얼마나 놀랍고도 중요한지 보여 주는 사례"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공감능력과 동정심 등은 그저 윤리적이고 추상적이며 감상적인 자질이나 특성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량적으로 계측이 가능한 하나의 연구 대상인 것입니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좋고 나쁜 건 고정된 게 아님"을 지적했었습니다. 마냥 좋을 것만 같은 저런 세포 공명 기능도, 잘못 쓰이면 "비합리적으로 전개되거나 파괴적인 결과(p108)"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악한 자의 선동에 의해 많은 이들의 정의감정이 조작되고 왜곡되는 사례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죠. 이처럼 저자는 아무리 바람직한 논거가 발견되어도 이것 하나로 폭주하지 않고 엄밀한 논리와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며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된 구조를 유지합니다. 책의 최종 결론만 그저 타당하고 유익한 게 아니라 이모저모 다층적으로 독해해도 그 단면마다의 일관성이 모두 유지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공감적 관계를 맺지 못한 대상은, 인간은 결국 보호하지 않는다(p137)." 그래서 개 등을 먹는 동아시아인을 서유럽인들이 저리 끈덕지게 비판하는 거겠고, 일식에서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조리되는 물고기에 대해 저들이 아무런 거부감(은커녕 열광하며 먹어대죠)을 안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튼 저자는 이로부터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건설적이고 동화적이며 기여적인 태도가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도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 결론(자연을 보호하자)이야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바이지만, 이 책은 그 논거를 "공감하는 유전자"로부터 마련한다는 게 흥미롭고, 또 사회적 당위성의 합의와 자연과학적 엄밀성이 이렇게 교차하고 합입할 수 있다는 게 다시 놀랍습니다. 

 

"인간의 뇌는 주관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p159)." 서양인들은 문학작품에서 특히 기억을 중시하는데, 기억은 그저 머리에 저장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주위와 교감하며 열심히 산 흔적과 맥락이며 어찌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과 존엄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치매에 걸린 이들에게 그 최소한의 존엄이 무너졌다며 우리가 그토록 안타깝게 여기고 또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무서워하는 거죠. 달리 말하면 타인과 건강한 관계 맺음을 통해 인지적 건강을 유지 못하는 개인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위중한 상태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불건강은 곧 유전자 단위의 병듦과 직결된다는 저자의 대전제와 연결하면 더욱 섬뜩한 결론이 나옵니다. 

 

복내측 전전두엽피질, 배외측 전전두엽피질, 후방대상 피질, 이 세 가지는 자아 연결망의 세 가지 요소(p209)입니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세밀히 정의되고 파악된 자아는 심리학에서 일찍이 말한 여러 개념과도 잘 통하며, "무의식의 존재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신경망은 자신에 대해서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정신화(p210)"를 시도할 때에도 활성화된다는 게 특히 재미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 자아(이미 고립된 내가 아닌)에게 특히 필요한 건 바로 공명(p225)"이라고 저자는 결론을 맺으며, 과학과 윤리가 이처럼 한 지점에서 포옹하며 궁극 최종의 결론이 언제나 하나임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감동적입니다. 20세기 독일 가수 마를렌 디트리히의 노래 중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을 위해 태어난 사람(p65)"이란 가사가 포함된 게 있다고 합니다. 이 통속적인 구절이 자연과학의 결론이 될 수도 있다니!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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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죄가 없다 | My Reviews & etc 2022-06-2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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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판도라는 죄가 없다

나탈리 헤인 저/이현숙 역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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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결코 착하지만은 않았고" 아마도 그래서 의도적으로 "바보로 만들어졌는지" 모릅니다. 이는 저자 나탈리 헤인즈의 말이며 사실 우리 독자들이 생각해 봐도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매도되고, 단죄된 감이 있습니다. 반면 남성인 신과 영웅들은 훨씬 난폭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한 때에조차 찬양과 기림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왜 죄 없는 여성들이 대신 오명을 뒤집어썼으며, 그 죄목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거침 없는 필치로 써내려가는데 내용이 타당할 뿐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현재 일곱 편이 남아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오이디푸스 왕>이라고 합니다(p47). 우리말로 저렇게 옮기면 별 느낌이 없는데, 인문 고전 지식에 능통한 저자는 도대체 왜 이 작품의 이름이 <오이디푸스 렉스>라는 라틴어로 두루 통하는지에부터 의문을 제기합니다. 당연히 소포클레스는 그리스인이었으니 원전대로 <오이디푸스 티라노스>라 불려야 마땅하다면서 말입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원래 마땅히 주목받아야 할 인물은 이오카스테 왕비였으며, "대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p70)"라는 의문까지 제기합니다. 비단 소포클레스뿐 아니라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서도 그러하며, 저자는 다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에우리피데스의 안티고네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지에 대해서까지 논급합니다. 이어 그녀는 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여인들이 더 적극적인 행동과 독자적인 목소리를 갖게 되는지로 결론부를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트식 분석틀과 그 분석틀 자체에 대한 비판이 끼어드는 건 물론입니다. 공교롭게도 라틴어 "렉스"와 그리스어 "티라노스"는 모두,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어느 쥐라기 공룡의 이름을 구성하는 성분입니다. 한국에서는 그저 티라노사우루스라고만 부를 때가 많으므로 약간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으나 미국에서는 거의 언제나 저 공룡의 이름 뒤에 "렉스"를 붙이며 이것이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말장난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한국어판에서 정영목 번역가가 친절히 설명). 


 

헬레네는 정말로 큰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그녀에게는 아름답다는 사실 자체가 죄였으며, 그랬기에 아무 잘못도 없는 파리스를 타락시키고 마침내 전 지중해 세계에 전쟁을 불렀다는, 일종의 전범으로까지 매도되었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 부당한 비판도 없습니다. 냉정히 서사를 우리 독자들이 살펴 봐도, 평화가 전쟁으로 바뀌기까지 헬레네의 잘못은 없으며 오히려 객으로 받은 환대를 정면 배신하고 남의 아내를 납치해 간 파리스가 부당한 짓을 저질렀음이 명백합니다. 파리스는 심지어 제 조국의 앞날과 부모 형제에 대한 책임마저도 저버런, 비겁자이자 매국노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이를 분석하며, 흥미롭게도 이성들 간에 쟁탈이 되는 대상으로 그리스 신화의 헬레네와 맞먹는 캐릭터가 히브리 설화의 요셉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왔으나 남다른 미남자였으며 그에 눈독 들인 여성들의 과오로 인해 파장 큰 불화를 빚은 장본인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민담에 등장하는 미남왕 아라도 언급됩니다. 왜 뒤의 두 남성은, 헬레네에 비해 덜 비난받고, 차라리 영웅으로까지 칭송될까요? 서사 중에서 맡은 역할은 거의 같은데도 말입니다 이런 부분이 이 저자만의 독창적이고 대담한 시선, 평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요셉과 헬레네를 연결시키다니! 흥미롭게도 이 논의는 스타트렉의 엘란(이 캐릭터는 원작 드라마에서도 명백하게, 그리스의 헬레네를 염두에 둔 피조물이긴 합니다), 실존인물인 메리 스튜어트(스코틀랜드 여왕),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가 재해석한 헬렌에까지 이어지네요.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린 메두사도 재평가의 연단에 오릅니다. 사실 메두사는 처음부터 아무 잘못이 없었으며, 이기적인 페르세우스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부당하게 희생양이 되었죠. 여기서도 저자는 히브리인들이 만든 여성 영웅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도나텔로의 그 유명한 그림을 예시합니다, 그러고 보면 전혀 아닐 것 같아도 히브리인들은 의외로 여성들에 대해 온당하고 대등한 비중을 부여했으며, 그리스인들이야말로 일방적인 남성 편향을 내비친 성차별주의자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성별만 반대일 뿐 정확히 대칭적인 역할이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부여되었을까요? 저자는 "참수"를 "거세"의 행위와 연결시키는 독창성을 또 뽐냅니다.


 

아마존은 현대 영화 <원더우면>에서 묘사되듯(p173) 그리스 신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이고 전투적이며 주체적인 역할이 부여된 종족입니다. 물론 그 이름은 "무엇인가의 결핍(무엇인지는 생략하겠습니다)"을 뜻하는 다소 비하의 의미가 있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히폴리테, 또 트로이 헥토르의 부인 안드로마케, 그리고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의 그 묘한 주인공에까지 또 상상력의 나래를 펼칩니다. 이런 주제적이고 싸움 잘하며 남성에 완력으로도 밀리지 않는 똘똘한 여성들은 그 편향적인 그리스 신화에서조차 완전히 말살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뒤의 두 영화에서처럼 현대에 들어 흥미롭고 매력적인 여전사 캐릭터의 창조에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인 듯합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마 가장 논쟁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여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부재시에 별 양심의 가책 없이 부정을 저질렀고, 전장에서 십 년만에 귀환한 남편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누구의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아도 악녀 악처가 맞을 듯하나(p208), 저자는 차근차근 왜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짚습니다. 일단 남편인 아가멤논 왕은 출정 전 딸 이피게네이아를 별 갈등 없이 제물로 바치려고 했으며, 귀향길에는 크리세이스를 전리품으로 데려와 아내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자격도 없던 자가 이제는 남편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의무도 저버리다니! 저자는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이 그나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행동과 판단에 정당성을 (공정하게도) 부여한다고 결론 맺으며 사실 이는 많은 고전인문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거의 갈리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에우리디케는 신화 원전에서 남편 오르페우스와의 비극적 사랑으로 유명합니다. 영화 <흑인 오르페>에서도 이 설정은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캉캉으로 잘 아는, 오펜바흐의 유명한 작품 <지옥의 오르페우스>에서도 에우리디케의 비중은 적지 않은데 바로 저 캉캉이 그녀가 추는 춤(p239)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20세기 시인 힐다 둘리틀을 인용하며 그녀의 서늘한 분노와 의기양양함이 어떻게 멋지게 구현되었는지 설득력 있게 들려 줍니다. 사실 이는 에우리디케의 분노이자 동시에 저 시인의 격앙이기도 합니다. 


 

악녀 하면 또 파이드라가 빠질 수 없습니다. 요절한 미남배우 앤서니 퍼킨스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페드라>에서도 그녀는 현대인에게 일종의 악몽으로 다시 현현합니다. 하필이면 의붓아들을 정부로 골라서는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파멸의 길로 몰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 즉 잔인한 미와 애욕의 여신에 의해 그녀 역시 운명의 장난감으로 선택되었을 뿐이며, 그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이 지키려 들었던 모든 이들에 대해 장엄하고도 가차없는 방법으로 보호하려는 의도였을 뿐이었다고 저자는 변호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악행에 대해 이런 변론이 가능한 건 아니며 또 그럴 필요나 동정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메데이아 하면 독극물 사용의 대가이며 사실 악녀 중에서는 이 캐릭터야말로 이해의 여지가 있는 편에 속합니다. 우리는 그녀가,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이아손에게 어떻게 버림받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녀의 분노는 그녀보다 한 수 아래 남자(p303)인 크레온 왕을 향합니다. 아무리 그가 오만해도 여인은 그 단순한 남자의 동기를 훤히 꿰고 있습니다. 이 모든 해석의 영감을 제공한 고대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탁월한 필치에 저자는 찬양과 존경을 아끼지 않습니다. 여인의 한과 분노는 그 끝을 모르며 테세우스니 아이게우스니 하는 모든 남성 권력자들은 그녀의 치밀하고 영리한 복수의 손길에 속수무책입니다. 현실에서 패자나 을의 위치에 놓일 뿐인 여성들에게 메데이아는 영원한 대변인이자 챔피언입니다. 악녀는 알고 보면 대체 불가의 존재 이유가 있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은 페넬로페가 장식합니다. 현모양처의 아이콘이자 남성에겐 어떤 궁극의 안식, 위안을 제공하는 여상상인데 어느 부당한 차별주의자에 의해서도 결코 폄훼되지 않는 미덕의 상징입니다. 사실 신화는 이런 불가침의 요새를 여성들에게 마련함으로써 최후의 승자를 남성 아닌 여성으로 예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가뜩이나 여성 중심으로 이뤄진 <오딧세이아>가 이 거대한 어머니, 아내를 통해 마무리됨을 지적하며 결국 그 모든 모험과 승리와 영광이 오직 여성에게 예비되었을 뿐이라고 회심의 미소를 어리석은 남성들을 향해 날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논의는 고전(어)에 대한 치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통해 이뤄지니, 서양 고전 지식(헬라어, 라틴어)이라는 게 학자나 작가에게 저쪽 동네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질이요 무기인지도 다시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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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2권 | My Reviews & etc 2022-06-2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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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나코 2

김광호 저
아담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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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모나코"인가였습니다. 1권에는 제 기억으로 외국 배경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이 2권 들어서야 처음으로, 채수희가 캐나다에 어학 연수 가는 사연이 있습니다. 독자인 제 생각으로 채수희가 캐나다에 가서 딱히 뭘 배워 온 것 같지는 않고, 1990년대 대학생들, 특히 서울 상위권 대학생들이 거의 필수로(졸업 필수 요건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주위에 개나소나 다 가니까) 가던 어학연수라서 시대상을 드러내기 위해 등장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제목이 왜 모나코인지는 2권 후반부에서나 밝혀지고 이 부분에서 독자의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이 소설은 정통멜로라서, 아니 정통멜로임에도 불구하고 성애장면은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1권 후반에 최기우하고 드디어 관계를 가지면서 몇 번 오르가즘에 도달했다, 이런 게 거의 유일합니다. 2권에서는 캐나다어학연수 2인 1실 숙소에서 윤애리라는 룸메이트가 알몸으로 파트너와 함께 있는 걸 목격하는 장면 정도. 윤애리라는 캐릭터는 딱 여기서만 등장하고 사라집니다. 최기우를 따라 (팔자에 없던) 공장에 취업하고 그와 동거를 하는 건 1권 후반에서 봤고, 이 2권 초반에서는 그런 아슬아슬한 관계가 드디어 파국을 맞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1권 중반에서 독자들이 다 봤고, 이해가 안 가지만 채수희는 바닥을 다 봤으면서도 최기우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데 기어이 이 2권 시작부에서 지하실까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여자는 답을 다 알면서도 순간순간의 감동으로 남자를...."이란 표현으로 채수희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해명을 해 주는군요.

애초에 최기우는 채수희에게 큰 애정이 없었으므로 이 소설을 테리우스 v. 주윤발로 보는 건 무리이겠습니다. 2권에서 테리우스(?)는 전반에 완전 퇴장하며 다시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1권에서 코믹 릴리프나 깍두기처럼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OOO가 2권 중반쯤에 또 독자를 만나네요. 깡패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대뜸 찾아와서 "순수한 수희를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그가 대견하긴 했으나 나이도 많고 수완도 더 좋은 범주가 녀석을 잘 요리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주윤발(!) 김범주는 이 외에도, 해결사로서 참 능숙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1권에서 재벌 회장의 청부를 받아 사이비 기자 노 아무개를 처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노 아무개는 이 2권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범주의 솜씨가 아니라 MJ회장의 돈이 추가로 투입되고 나서야 입을 다문다고 합니다. p206에 보면 "노효만이 MJ에 매수된 게 확실한 듯했다"고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맥락을 보면 더 이상의 정보를 검찰 측에서 모르는 걸로 보아 노효만이 더 이상 뭘 떠들지 않는다는 뜻이겠네요. 사이비 기자 건이 잘 해결되어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바로 문제가 또 하나 터집니다. 

 

부족한 리더는 부하를 쓸데없이 의심합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도 원로 탤런트 이치우씨가 扮한 양길 캐릭터(한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실존인물)는 지나치게 부하들을 의심하여 은부(박상조), 복지겸(길용우) 등이 기어이 배신하는 걸로 나오는데 이 소설 후반부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됩니다(스포일러라서 자세히는 말 못하고). 애초에 왜 변호사 송정인이라든가 보스 안영표가 자꾸 범주를 구치소에서 안심시키려 드는지가 좀 이상했는데 제대로 된 보스 같으면 집행유예니 뭐니를 미리 떠들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고 솔직한 소통을 하지요(상대가 김범주 같으면). 


(스포일러 조심)
여튼 깡패들이란 답이 없습니다. 신용이나 의리 같은 건 눈곱(눈꼽이 아님)만큼도 없고 기회만 되면 뒤통수를 칠 생각에 골몰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제 이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한때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니 뭐니 떠들지만 이런 놈한테 올바른 친구가 있을 리 없고 끝에 가서는 다 배신합니다. 깡패가 참는 건 감화가 되고 이성을 갖추어서 참는 게 아니라 더 진행하면 골치아파지겠다 같은 일차원적 동물적 판단이 고작입니다. 기회가 되면 바로 과거를 끄집어내어서 묵혀 둔 못난 분노를 폭발시키고 그게 멋있는 줄 압니다. 그래도 이 소설의 김범주처럼 멋지고 착한 놈도 있지 않은가? 깡패가 멋지고 착하면, 범주처럼 뒤통수 맞고 감옥에서 청춘기 십 년을 썩다가 운이 기적적으로 좋아야 빵에서 나올 뿐입니다. 이게 부럽나요? "십중팔구 나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p89)." 놈이 지 입으로 하는 말입니다. 

(스포일러)

"범인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부을 때 말이야. 그 장면이 재미있는데 너무 짧은 것 같지 않아? 눈을 도려내는 장면을 더 넣었으면 좋겠어(p116)." 과연 놈 다운 말입니다. 이게 데이트 자리에서 하는 소립니다. 주인공이라서 동정은 가지만 사실 놈도 결말에서 저렇게 죽었어야 했습니다.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고 하는데(p275 등), 거 참 큰 미덕이고 선행이네요 네. 십 년 빵살이가 결코 가혹하지 않았다는 걸 과연 놈이 깨달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만 안 죽였을 뿐 깡패 생활 내내 저러고 다녔지 않았겠습니까?(1권 p125:18)

 

(강력 스포일러)
소설 결말에서 갑자기 십 수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채수희가 성공한 대스타가 되는 게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아마 원래 엄청 긴 소설이 될 작정이었는데 모종의 사정상 확 줄인 결과일지, 아니면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현실에서의 눈부신 성공 그 자체보다 성공을 빚게 한 그 모든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길게 서술된)이 훨씬 값지다는 심오한 뜻일까요? 여튼 마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처럼 어느덧 중년이 된 주인공들의 극적인 해후가 가슴을 찡하게 하긴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범주가 수희를 위해 다른 손님 한 명 없는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합니다. 1권에서 첫만남(드럼통을 두들겨패는) 등 두 번, 이 2권에서 p134 이하 놀이공원 장면. 무엇보다 감동적인건 평생 글 같은 걸 써 본 적 없는 범주가 수희에게 차마 말로는 못할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 아닐까 싶습니다. 수희는 끝까지 가도 범주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니지 싶습니다. 기성범이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형수님(채수희)"한테 사태의 진상을 알릴 때, 수희는 "만약 처음부터 범주가 자신이 투옥되었음을 알렸다면 바로 헤어졌을 것"이라 말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끝까지 투옥 사실을 숨기려 든 데에 감동한 건 맞지만 그 마음도 "이런 남자와 어떻게 헤어지겠냐"는 동정심에 가까웠다는 걸 잘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사랑했다면 감옥에 찾아갔어야죠. 뭐라고 편지를 보냈건 간에 말입니다. 놈이 설마 "여긴 왜 왔어? 날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내 체면은 지켜줬어야지!"라고 했겠습니까?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출옥(사형수지만)할 때까지 기다리든가 말입니다. 

 

1권에서 주인공 수희가 하녀로 데뷔하는 장면이 p216에 나오는데 2권 후반부에서는 갑자기 대스타가 됩니다. p293에는 대스타 수희가 상상이 아니라 진짜로 모나코를 찾는 장면도 있습니다. p299, p339 등에서 언제나 나대기 좋아하는 수희 친구 박희준(1권에서부터 계속 나오는 4총사 중 한 멤버)은 제멋에 겨워 또 주인공 행세인데 이런 친구들을 여성이라면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꼭 보면, 괜찮은 여자 옆에 이런 타입이 하나 들러붙어서 초를 치더라구요. 수희가 스타가 된 언급만 있는 게 아니라 정상의 자리에서 갑자기 은퇴하고 조용히 사는 단계(아들도 있음)까지도 나옵니다. 1권에서 아주 인상적인 단역이자 첫사랑이었던 음악 선생을 먼발치에서만 보고 돌아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특정 연령대의 한국인들은 국산 영화 <겨울 나그네>를 슈베르트와는 별개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p30에 보면 "청소년기에 들었던 대만 여가수가 부른.... "이란 노래는 김범주는 무식해서 모르겠지만(제목은 모를 수가 없겠죠. 첫소절 가사니까) 진추하와 아비가 부른 남녀 듀엣곡입니다. 실제 이 곡은 1976년 발표이므로 김범주가 자신의 청소년기에 들었을 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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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1권 | My Reviews & etc 2022-06-2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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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나코 1

김광호 저
아담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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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설은 잘 읽히고 볼 일입니다. 아무리 심오한 내용을 담았어도 가독성이 나쁘면 독자와 소통을 할 수가 없죠. 이 1권은 모두 34개의 장으로 이뤄졌는데 두 주인공인 채수희와 김범주가 번갈아 등장하며 1인칭 화자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시점을 배경으로 삼는지, 둘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는데, 채수희는 분명히 1990년대 전반을 20대의 나이로 살고 있지만 김범주는 나이가 삼십대 초반이라는 것 외에는 현대 한국의 어느 시대에 속했는지 좀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6장, p166에서 둘의 서사가 드디어 교차했기에 답은 분명해졌습니다. 


 

사실 둘이 안 만날 것 같다고 느낀 이유가, 모든 장이 하나 건너 다음 장과 연결은 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또 완결적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채수희가 음악 선생을 남몰래 사모할 때 이런 이야기는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가정해도 잘 어울리고 또 전개가 유쾌했기에 그냥 거기서 사연이 끝나도 이상할 게 없겠다 싶었습니다. 체육 선생, 음악 선생은 뒤에 또 안 나오지만 채수희와 그의 친구들은 계속 등장합니다. 

 

채수희는 아주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집안에서 자란 반면 김범주는 밑바닥 출신에 주먹 하나로 일어선 자입니다. 깡패라고 해도 아주 개념이 없어(p272) 그냥 말단 조직원으로 끝날 인생들이 있고, 전혀 자기 제어가 되지 않아 명을 재촉하는 유형(p123의 윤인식)이 있고, 어느 선까지 잘나가다가 딱 거기까지가 한계라서 조직으로부터 제거되는 윤삼원(p280) 같은 인간이 있으며, 지금 김범주처럼 능력도 있고 판단도 잘 되며 상식선에서 처신을 잘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김범주처럼 약점이 딱히 없으면 이번에는 보스로부터 견제를 받기 십상이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가장 좋은 선택은, 애초에 "깡패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밖에요.

 

채수희는 참 감이 뛰어난 여성 같습니다(?). p111에는 "신기가 있는지도 모른다"란 말도 있습니다. p57에서 그녀는 "뭔가 수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딱히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얼른 수상한 사무실로부터 도망쳐 나옵니다. 그런가하면 사실 그녀가 완전히 꽃혀 있는 남자는 최기우인데 어설픈 운동권 대학생에 지나지 않으며 주제도 모르고 정치인을 꿈꾸지만, 2020년대를 사는 우리들이 두 눈으로 확인한 대로 운동권은 지금 정치인 중 최상위 성골 라인이니 가히 그녀는 미래를 내다보고 남친에 투자 중이라 하겠습니다(!). 증거도 없었건만 일찌감치 끔찍한 일에 안 엮이고 상황을 모면했으니 대단한 센스다? 그런데 그녀 눈에만 안 보였을 뿐 우리 독자들은 <사건과 내막>, <여학생의 세계>가 얼마나 한심한 잡지인지 대번에 알아챘으며, 25년 뒤 한총련 출신들이 대한민국 최상위 티어를 차지할 줄을 지가 어떻게 알고 신랑감을 선점했겠습니까? 그냥 빌리 크리스탈(해리 역을 연기한 미국 코미디언)을 주관적으로 엉뚱한 대학생한테다 투사했을 뿐. 

 

한편 김범주의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채수희와 그의 친구들이 대뜸 주윤발과 동일시한 걸 보면 그 예외적인 상황(p174)에서 보정을 받은 걸 감안하더라도 꽤 잘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연애에 대단히 서투를 뿐 아니라 단 한 번도 외모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표현을 않는 걸 보면(아직 젊다면 젊은 30대인데) 은근 진중한 면이 있습니다. 하긴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 조각 낭만도 허락이 안 되기는 하겠는데, p235라든가 p251, p182, p68 같은 데서 기성범이, 차동만이 같은 이들이 형님한테 장난도 치고 여자도 소개시켜 주는 걸 보면 또 부하들은 젊은이답게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라고 해도 아랫사람한테 이 정도의 여유도 허락 안 하면 아마 리더십을 온전히 구축하기 어렵겠습니다. 

"깡패의 꿈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들처럼 사는 것이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p122)." 아닌 것 같아도 이 진술은 틀림없이 어떤 현실의 일면을 잘 반영한 말입니다.  많은 깡패들은 혹 말은 번듯하게 해도 대화를 길게 나눠 보면 정상인을 당황케 하는 구석을 거의 반드시 드러냅니다. p124에 보면 정상적인 그 나이 또래가 결코 보이지 않는 단순함이라든가, 뭔가 경계성 지능 장애 같은 걸 결국은 티를 내는 거죠. "내가 아무 말 안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나 본데(p163)..." 보스 안영표는 특유의 허세로 "자신이 벌(여) 놓은 일(p162)"에 대해 떠듭니다. "나를 정상인으로 만들지 않은 세상 자체에 대한 적의가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 여차하면 나 역시 다른 주먹들과 다르지 않은...(p213)" 같은 말도 참 실감나는 깡패에 대한 내면 묘사입니다. 

채수희는 예를 들어 맑은 눈동자를 한 테리우스 같은(p246) 최기우에 대해 "여자의 내숭은 결코 계산되고 꾸민 게 아니고, 그것은 두려움과 설레임과 기대감이 뒤섞여, 도저히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도, 상대가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멀리는 못 가는, 그런 감정(p132)"이라면서 참 독자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말을 합니다. 배경음악으로는 역시 1990년대에 인기를 끈 캐럴 키드의 "When I dream"이라든가(p116), p313에 나오는 티시 이노사의 "돈데 보이" 같은 곡들이 소환됩니다. 2권이 궁금해지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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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2권 | My Reviews & etc 2022-06-2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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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행성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열린책들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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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마치 드라마 배경 음악처럼(diagesis라고 할까, 등장 인물, 동물들도 다 들을 수 있지만) 많은 명곡들이 언급되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정도 작가가 의도한 무드를 상상해 가며 읽어갈 수 있습니다. 1권 후반에는 인간들이 자축 무도회(너무 일렀던)를 열며 배경음악으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트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2권에서는 p16에서 레드 제플린 천국으로 가는 계단(스테어웨이 투 헤븐), p79에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같은 게 언급됩니다. p305를 보면 베르베르가 이 작품을 쓰며 들었던 모든 음악의 제목들이 정리됩니다. 


 

특히 이 2권, 나아가 <행성>이라는 작품 전체의 주제는 "소통"입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스포일러라서 최대한 자제하겠습니다만 종(種)의 힘은 얼마나 개체 간에 활발하고 효과적으로 소통이 이뤄지냐에도 크게 의존합니다. 베르베르는 이 작품에서 오로지 이 주제 하나를 향해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몰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권 p38에서 바스테트는 울음소리에 그저 메시지만 담아서는 안 되고 강한 자신감까지 함께 넣어야 한다는 엄마의 교훈을 또 이야기하는데, 소통에는 이처럼 감정, 상대를 충분히 설득하고 나아가 도동화까지 시킬 수 있는 감정이 들어가야 하죠. 

 

바스테트의 엄마는 뭔가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교훈보다는 실용적이고 씁쓸하기까지 한 가르침을 생전에 열심히 그 딸에게 전수했나 봅니다. p161에는 난관 앞에서 딱히 방법이 없다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그 특유의 시니커함을 담아 딸에게 일러 준 교훈이 등장하는데 독자는 피식 웃게 됩니다. 바스테트는 1권에서도 나온 대로 솔직한 자신의 내면이 따로 있고, 여왕으로 떠받들리던 시절에 쓴 "가면"이 하나 따로 있어서 때로는 끝도 없이 심각해지는 게 웃음 포인트입니다. 이 2권 앞부분에서 약물 흡입을 통해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다시 비웃는 바스테트가 정작 본인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게 우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다분히 성장형이기에 독자는 끝까지 공감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안젤로는 이 2권에서도 여전히 폴을 비롯한 쥐들을 싫어하는데 p36에 또 특유의 혐오 표현(?)이 나옵니다. p181에서는 아예 "쥐들은 다 죽여야 한다"고까지 합니다. 1권에서 안젤로는 폴에 대해 엄청난 불신을 드러냈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스포일러라 생략) 엄마에 대한 집착은 여전해서 p77 같은 데서 "엄마는 최고!"라며 호들갑을 떨고 1권 말미에서도 그랬지만 엄마에게 어떤 특수 임무만 부여되면 꼭 따라나서려고 오버합니다.


 
아무튼 인류 역사상 이중 간첩의 시초를 OOOO으로 잡는 베르베르의 희한한 견해에는 다소 놀라게 됩니다. 1권 후반부에 보면 베르베르는 제2제정을 이끈 나폴레옹 3세에 대해 산업화의 영웅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외교적 협잡이나 포퓰리즘 잔재주의 전문가였을 뿐 국가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이끌어야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전무했죠. "지도자의 덕목인 비전"에 대해서는 이 2권 중반쯤에 바스테트가 티무르를 농락하는 장면에서 잠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는 자주는 아니지만 작품 중에서 은근 자신의 정치관을 노출하기도 하는데 p142에서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1권 말미에도 개혁가 자오쯔양을 대신한살인자 리펑이라며 한 마디 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1권에서 적의 신체 일부를 섭취함으로써 그의 덕목을 내 것으로 만드는 원시적 행태가 여러번 나왔는데 이 2권에서는 상징적 의미에서 p52에 "(알카포네의) 뇌를 (티무르가) 먹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1권에서 바스테트와 에스메랄다가 두 왕을 죽이러 왔을 때 티무르가 적극적으로 알 카포네를 돕지 않는 장면이 이미 있었죠. 역시 한 집단에 두 지도자는 공존하기 힘듭니다. 제가 1권 리뷰에서 "OOOO가 너무 일찍 퇴장한다"고 약간 불만을 드러냈었는데 베르베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습니다(스포일러라서 더 이상 자세히 쓰지 않습니다). 이 2권에서도 빌런인 알 카포네가 좀 허망하게 일찍 퇴장하는 셈인데, 어쩐지 1권에서 베르베르는 그리 큰 애착을 갖고 이 캐릭터를 다루지 않았더랬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티무르는 전작 <문명>에서부터 바스테트의 숙적이었고 p88부터 드디어 둘의 역사적인 담판이 벌어지는데 이 부분이 <행성>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무르도 천재이니만큼 둘의 티키타카가 정말 볼만합니다. 이 장면을 두고 베르베르는 헨리 8세와 프랑수아 1세의 역사적 대결에 (스스로) 비유하는데 p81에서 언급되는 토머스 울지는 영국인이므로 "울시"가 더 보편적인 발음이겠습니다("울지"는 프랑스식인가?). p85에는 시작부터 반말이라며 티무르의 무례한 화법을 비판하는 바스테트의 독백이 나오는데 1권 p68에는 존대법에 대해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한 변수라는 역자 주가 나옵니다. 프랑스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1권 p345에서는 에스메랄다와의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도 바스테트가 한 마디 했었습니다. p94에는 "협상이 쉽게 이뤄지는 건 한쪽이 다른 쪽을 속이기 때문"이라는 시니컬한 교훈이 또 나오는데 이건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입니다(역시 스포일러라서 더 이상은 생략). 1권 리뷰에서 바스테트의 모순적인 내면에 대해 비웃는 말을 적었었습니다만 2권까지 다 읽어 보니 이 역시 작가 베르베르의 의도가 다분히 개입한 솜씨였습니다. 자세한 건 이 리뷰 결말에 쓰겠습니다. 

 

p164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기업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현대차그룹이 인수했다고 합니다. 방산인데 쉽게 미국 정부가 이걸 허가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p180에는 드디어 인간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발주하여 (맨해튼을 점령한) 쥐들을 전멸시키려 드는데(문자 그대로의 의미) 원래 이것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려던 미국 과학자들과 정부의 기획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대목이죠. 작품의 유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아서 p109의 서류 문명, p115의 서산서해, p118의 비서종 등 말장난이 풍성히 이어집니다. 물론 번역의 묘미도 크게 기여하겠습니다. p120에는 티무르가 자유의 여신상 얼굴에 자기 얼굴을 새기려 드는 대목이 있는데 인간 문명이 폐허로 된 상징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쓰이는 건 1960년대 찰턴 헤스턴 주연의 <혹성 탈출>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도 합니다. p151에서 또 아기돼지 3형제 동화가 언급됩니다. 

 

전에 1권을 읽으면서 인간들이 102개 부족 총회를 열 때 독자인 제가 내내 걱정되던 게 이 내용이 만약 티무르 측에 흘러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는 점이었습니다. 영리한 베르베르는 2권 p212에서 드디어 이 문제를 터뜨리고 마네요. 인간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보안에의 무관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소통에 무능하다는 점임을 고양이 바스테트는 통렬히 지적합니다. "나는 이제 인간들의 문명이 와해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p67)." "일단 희생양을 하나 만든다. 그리고는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p65)." "종(種)의 우월감이 생존 본능보다 앞서는 한심한 인간들(p73)" 같은 문장 속에서 바스테트는 인간의 어리석은행태를 신랄히 고발합니다. p209에는 "죽음에의 충동은 인간의 본성이며 외부의 적을 향해 파괴적 본능의 발휘가 실패하면 끝내는 자기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는 말도 있습니다. p222에서 꼴통 그랜트 장군은 "또 소통?"이라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발언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합니다. 답이 없습니다. 

 

1권에서 바스테트는 스스로를 "가면에서 못 빠져나온다"고 반성하거나 자신의 신화를 고집한다고 평가한 적있습니다. 이 2권 p218에서 또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얼굴을 붉힙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놀라운 인식에 도달하는데, 왜 인간을 그토록 좋아하냐는 티무르의 힐난에 대해 인간은 무지한 자신을 직시할 줄 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p264). 독자인 제가 1권 리뷰에서 주체파악 못하는 바스테트를 비난했었는데 p277에서 바스테트는 그녀의 연인(엥? 어떻게 된 거죠?ㅋ)으로부터 "넌 과대망상"이라며 핀잔을 듣습니다. OOOO는 저하고 의견이 일치했던 거죠.

 

p279에도 나오듯 고양이와 인간은 "완전한 소통"을 추구하고 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무척밝힌다는 점까지도). 그리고 이것이 쥐들로부터 세상을 구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완전한 소통은 "사랑"의 동의어에 다름 아니겠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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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권 | My Reviews & etc 2022-06-2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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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행성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열린책들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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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ESRAE를 장착하고(전작 <문명> 참조) 엄청 똑똑해졌지만 다소 주제파악이 안 되고 여전히 심한 자아도취에 빠진 바스테트가 그 가족, 무리를 이끌고 북미 대륙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큰 난리가 벌어져서 사회가 파괴되었고 그 틈을 타 천재적인 머리를 지닌(어떻게 해서 이렇게 머리가 좋아졌는지는 1권에서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알 카포네"라는 쥐, 쥐들의 왕(p338)이 이끄는 엄청난 적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승리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스테트의 OO인 OOO를 비롯하여 그녀의 많은 동료들이 죽게 되는데요. 작가 베르베르가 소설 초장에 이처럼 큰 희생을 빚게 할 줄은 미처 몰랐기에 상당히 우울한 기분으로 독서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21년 전작인 <문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고양이라고 하면 하찮은 쥐 정도는 바로 압살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아도 이처럼 쥐떼들이 많이 덤벼들면, 머릿수에는 당할 장사가 없겠다는 걸 베르베르 특유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실감했습니다. <문명>에서도 그랬지만 벌어지는 사건 묘사가 꽤 잔인합니다. 쥐들은 처절하게 물어뜯고, 또 인간이나 고양이들한테 처절하게 학살당합니다. 전작 <문명> 1권 p46 같은 곳을 보면 쥐들이 이처럼 엄청난 수량으로 밀고들어오는 걸 사람의 인해전술에 빗대어 "서(鼠)해전술"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책 p35에도 다시 나옵니다. p62에는 "항(抗)서(鼠)연합군"이란 말도 나오는데 쥐들에 대항하여 인간과 고양이가 연합한 걸 가리킵니다. 쥐들은 정말 집요하며 p132에는 킹콩(영화에서의)도 못 무너뜨린 빌딩을 쥐들이 무너뜨렸다는 말이 나옵니다. p152에는 아기돼지와 늑대의 우화가 언급되며 튼튼한 건물의 미덕에 대해 찬양하는 대목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p252에는 왜 911 당시에 무역센터가 붕괴되었는지 베르베르 특유의 쉬운 설명이 나옵니다. 무엇이든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죠. 

 

세상이 이렇게 한번 망하고 나니 쥐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p31을 보면 stupete gentes!라는 라틴어 구절이 인용됩니다. 여기서 gentes는, 부족이라는 gens의 복수형인데, 호격(呼格)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 여러 부족들이여! 정도의 뜻이겠는데 사실 이 구절이 괜히 인용된 게 아니라서, 인간과 고양이가 연합하는 장면도 그렇고 1권 후반부에 나오는 102개 부족(p260 같은 곳에 나오는)을 다분히 미리 염두에 둔 것 아닐까 짐작합니다. 서로 처지가 다르고 생각, 취향, 신념, 생김새, 간혹 언어까지 모두가 다른 부족들. 이게 생지옥이 된 세상에서는 서로 양보를 하고 지혜를 짜내어 공존공영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겠습니다. 

 

p109에는 왜 미국이 지금 이꼴이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나오는데, 대대적인 문화 전쟁이 결국 정치 투쟁으로 번져서라고 합니다. 아닌게아니라 미국은 지금 국론이 분열되어 바람 잘 날이 없으며, 다만 우스운 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조국 프랑스 역시 현재 정계와 국민이 좌우 양극단으로 분열하여 도통 국론을 모을 짬이 안 나는 형편이라는 점입니다. p141에는 각종 사람 종족이 모여 사는 타워가 미국 축소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2015년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 영화 <하이-라이즈>라든가, 2012 <저지 드레드>에도 낮은 층수에는 하층민들이 살고, 높은 층수에는 부유층이 산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1권 후반부에는 은근히 힐러리 클린턴을 풍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일단 이런 소설에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자체가 웃깁니다. p177에서는 가공의 캐릭터 그랜트 장군이 처음 등장하는데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의 영웅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었겠습니다. 의장 힐러리의 질문에 "여기는 쿠바가 아니라 미군 기지"라고 장군이 대답하는데 현재도 쿠바 본토 관타나모에 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바스테트 엄마의 가르침(?) 중에는 p52에 나오는 "적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싶으면 적의 뇌를 먹어보라"가 있는데 아주 징그럽지만 저 뒤 p335에는 맨해튼의 쥐 장군 폴(Paul)이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그 뇌를 먹는 장면이 또 나옵니다. 2001년작 영화 <한니발>에서 닥터 렉터가 크렌들러 씨의 뇌를 요리해 먹던 그 씬도 생각이 났습니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바스테트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참 많은 가르침을 얻었고, 지금도 머리 안에서 수시로 호출하는 엄마와 대화하며 지혜를 얻습니다. 이 1권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위험하고 가망 없어 보이는 순간 무한한 용기를 내어 상황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라(p32)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라는 이 비겁한 가르침은 p135에도 다시 나오는데 이때는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입니다. 안젤로는 엄마한테 무척 의존하며(p184에 바스테트의 말로 "이 녀석은 엄마가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줄 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끓는 피를 참지 못해 저 뚱보 쥐(폴)에게 복수를 하게 해 달라고 조르는가 하면(p305) 적한테 그렇게 쉽게 속으면 어쩌냐고 엄마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안젤로가 이런 성향을 보이는 데에는 엄마 책임도 큽니다. 사실 바스테트는 매우 자기 중심적이며, 자신의 판단이나 예측이 100% 맞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과거 여왕 노릇하던 때를 못 잊고 전지전능한 척 굽니다. p353에서 그녀는 "가면 증후군"을 언급하는데,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 알아 주는 대로 행동하려고 애쓰는 오류를 스스로도 인식합니다. 우리 독자가 다 눈치챈 대로, 알고보면 고양이 바스테트를 누가 그리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존중은커녕 1권 후반부에 나오는 대로 인간들은 그녀에게 신세를 지고서도 여전히 그녀를 무시하고 얕잡아봅니다. 이런 인간들도 우습지만, 아무도 안 알아 주는 가면을 쓰고 가면의 정체성을 자신의 것으로 끈덕지게 착각하는 바스테트가 더 우습습니다. 책 저 앞 p65에 "우리 각자의 신화"를 인용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스테트는 부풀려진 에고만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로서 민주적으로 무리를 이끌 생각은 않고 "효율만을 추구(p239)하는 고양이라며 독선적인 본성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고양이니까 이걸 귀엽게 봐 주고들 넘어가지만 실제 지도자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큰 문제입니다. 저 앞 p172에서도 "독재를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이 1권에서 "진화한 인간들의 제도"라고 규정되는데 p150에 북미 원주민들의 제도로 "파우와우"라는 게 언급되고, p172에서도 보다 자세히 설명됩니다. p194에는 "춤이 전희와 같을까?"라며 날카롭게 인간 행태를 꿰뚫어보며 p245에선 "수컷은 나에게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도구일 뿐"이라며 무책임한 남성들이나 하는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여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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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 My Reviews & etc 2022-06-2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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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권일용 저
21세기북스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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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파일러라면 아마 권일용 교수님이겠습니다. 그 성함은 혹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권 교수님의 얼굴은 TV 출연 등을 통해 워낙 알려졌기에 모르는 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프로파일링이란 수사 기법은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널리 소재로 쓰이긴 했으나 이게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선 대중이 반신반의했는데,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악질 강력 범죄자의 검거와 유죄 확증에 요긴히 활용되고 있음을 권 교수님이 (다름 아닌 본인 자신의 빛나는 커리어를 통해) 잘 가르쳐 준 셈입니다. 


 

p18에 나오듯이 한국인들에게 한때 큰 인기를 끈 드라마가 CSI입니다. 이 미국 드라마를 보면 그저 범인에게 우격다짐을 통해 자백을 받아낼 수 없는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법정에서 통할 만한 증거를 얻어내는지가 실감나게 묘사됩니다. 법치국가에서 가장 피해야 할 일이, "억울한 사람들이 폭력과 고문으로 누명을 쓰는 일(p19)"입니다. 권 교수님 같은 경찰이 있었기에, 흉악한 범죄자는 결국 죄상을 털어놓고, 결백한 시민은 그 무고함이 증명됩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이들 중 이런 분들이 가장 고마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권 교수님은 지금도 여러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시는데, 사실 보면서 걱정이 되는 건 이런 프로그램이 우리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건 좋지만, 지능범들이 행여 이를 통해 범행 수법을 배우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요령을 터득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권 교수님도 이를 인정합니다. 즉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는 만큼이나 사이코패스 범죄자들도 나날이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도 교수님은 "범죄에 '진화'라는 말을 쓰는 게 달갑지는 않지만(p25)"이란 유보적 표현을 쓰면서 그의 정의감을 표출합니다. 

 

지난세기에 작가 체스터튼은 "범죄자는 창의적인 예술가요 탐정(형사)은 그저 평론가일 뿐"이란 말을 하기도 했죠. 달가운 현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교활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자신의 행적을 감추는 범죄자를 응징하기 위해서는 결코 그들을 가볍게만 볼 게 아니라 가공할 만한 침략군, 적군을 연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책 p173에는 선배(?) 정두영의 행적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자신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는 유영철의 자백이 언급됩니다. 영화 <레드 드래곤>에서 렉터 박사의 재능을 찬양하는 "투스 페어리"의 모습이 결코 픽션 속에서의 행태만이 아니라는 게 증명됩니다.  


 

강호순 이후로는 아직 연쇄살인범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교수님의 말입니다. 없던 유형이 한때 와라락 봇물 터지듯 등장하긴 했으나 권 교수님 같은 뛰어난 경찰들의 활약으로 아마 범의가 움츠러들었을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워낙 CCTV가 많이 깔린 한국의 환경에서 초범시에 바로 검거되곤 하는 것도 영향이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정도로나마 치안이 잘 잡힌 나라에 사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하겠고 그 큰 몫은 바로 권 교수님 같은 분들에게 크레딧이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범죄자라는 게 저 유영철, 정남규 등처럼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 특수한 성격을 갖게 된 이들뿐 아니라, 사회적 배제감, 상대적 박탈감 등을 품은 그 누구에게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권 경감님의 지적입니다. 경감님은 그래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불건전하고 위험한 감정의 표현이, 인터넷 기사나 소셜 미디어에 흔히 달리곤 하는 이른바 "악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악플만큼 보편적으로 퍼진 악행이 또 없고, 악플을 습관적으로 다는 이들은 "사실 적시나 의견 표명 정도를 두고 형사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오히려 본인들의 반사회성을 합리화합니다. 이런 한심한 이들 중에는 본인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두고 오히려 악플이라며 뻔뻔스럽고 반사회적인 역공을 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무고한 사람을 악인으로 몰고서 그 무고함이 드러나자 "악의 평범성" 같은 어구를 경우에 맞지도 않게 들이대는 낙오자, 도피자 유형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아마 그 주변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면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위험한 태도, 감정을 외부에 표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성찰하고 되돌아볼 일입니다. 

 

범죄자들은 때로 비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결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허위에 가득찼는지는 새삼 뭘 지적할 필요도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권 교수님은 범죄자와 일정한 라포(rapport)를 형성한 후에는 "같은 상황이었으면 나도 범죄를 저질렀을까?"라며 범죄자와 자신을 잠시 동일시해 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미국 드라마 <한니발>에서 윌 그레이엄 캐릭터(천재 프로파일러)가 보여 주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악인은 원래 철저히 피해자를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권 교수님 같은 분은 정반대로 이런 악질들에게도 일정 부분의 공감을 보낼 줄 안다는 게 대조됩니다. 악질들은 본래 다른 이들이 자신을 공감해 주기만을 울부짖을 뿐, 자신이 다른 이에게 공감하는 법은 전혀 없습니다. 더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저항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개처럼 복종하는 건 혹 있습니다만.


 

촉법소년 문제도 책에서 언급됩니다. 사실 아이들이 흉포해지고 범죄에 물드는 건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이 맞고 그 부모들만을 탓할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무력한 원칙론에 불과하며 그저 관용의 눈으로만 대해서는 법제의 허점을 악용하는 이들의 교활함에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또 교수님은 "살인과 사기가 경중이 같냐"고 되묻는 이들에게 "어디 한번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보라"고 합니다. 사실 교수님은 현직 때 사기 사건을 많이 다뤄보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공감 능력이 탁월하신 거죠. 여튼 이런 현대적 유형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한 가지 길은 "눈을 감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 헤아라기"라고 교수님은 말합니다. 거의 종교적 경지입니다. 


 

보성 어부 사건은 당시 모든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가슴 좀 만져 보려고 했는데 거부한 그O이 잘못한 거다.""애초에 배를 태워달라고 한 것들이 잘못이다"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강력 범죄 수사 과정을 회상화며 권 교수님은 그들의 비틀어진 심리를 하나하나 짚습니다. 문장은 침착하고 논리적이지만 그 행간에는 의분이 느껴집니다. 포모 증후군이라든가 인터넷으로 촘촘히 연결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범죄자를 덜 닮게 되고, 또 어떻게 해야 사회 파괴적인 강력 범죄를 선제적으로 방지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저자는 차분한 논의를 이어가며 독자의 공감을 유도합니다. 조선 시대 고매한 유학자의 향촌 교화 논변을 듣는 느낌도 듭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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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풍차 - 최인호 | My Reviews & etc 2022-06-2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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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마음의 풍차

최인호 저
여백출판사 | 199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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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프 24기 48주차에 같은 작가의 <처세술 개론>을 읽고 리뷰를 썼었습니다. 지금 이 작품은 그 소설과는 또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원래 최인호 작가가 엄청 다작을 한 분이고 어느 특정 스타일, 소재, 주제에 머문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어느 특정 작품과의 관계를 말한다는 게 사실상 무의미하기는 합니다.

 

주인공은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라 어느 재산가의 "첩"한테서 태어난 소위 사생아입니다. 요즘 같으면 직계혈족임이 증명되기만 하면(증명도 쉽죠) 재산 상속에 아무 문제가 없으나(사실상으로는 유족들의 실력 행사 등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당시에는 소위 적모(適母)의 후의가 있어야 이런저런 일들이 그나마 편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이, 1980년대 즈음에는 완강한 가부장적 사고에 막혀 현실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겠습니다. 이런 걸 보면 1990년에 가족법 개정을 이뤄낸 전문가들은 정말 대단한, 시대를 앞서간 업적을 많은 난관을 딛고 이뤄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법의 실질적인 현대화는 저 1990년에 대부분이 완수되었고, 21세기 들어 이뤄진 호주제 폐지 등은 형해화한 찌꺼기 몇을 치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적모의 제안으로, 또 생모의 승낙을 받아 생부의 집에서 기거하게 됩니다. 이 집안은 적모가 모든 일을 주관하며 여기서 주인공이 맡아 해야 할 일은 배다른 남동생을 돌보는 것입니다. 애초에 아들이 버젓한 처지이면 구태여 사생아를 집에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즉 이 이복동생은 정신적으로 다소 박약한 구석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자주 눈에 띄는 자폐라든가 조현병 같은 건 아니고, 약간의 자폐 증상을 보이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타인과 소통은 가능합니다. 단지 무엇인가에의 집착이 강하고, 낯선 사람과 쉽게 말을 섞지 못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능이 크게 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이 이복형과 친해지며 소통이 이뤄지고 나서는 형을 따라 뭘 막 열심히 몰두하기도 합니다. 마음을 완전히 열어야 그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는 듯하며, 마음을 여는 게 힘들기 때문에 TV나 공교육기관의 선생, 책 등을 통해서는 학습이 어렵다는 것 같습니다.

 

어느 문학 작품에서건 서자는 기본 인성이 비틀어진 캐릭터로 세팅되기가 쉽고 여기서도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불량배에 가깝습니다. 나쁜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런 것만 보고 배웠다는 식인데, 좀 독특한 건 겉으로 드러난 것이나 하는 짓은 논쟁의 여지 없는 불량배이지만 마음에 은근 착한 구석이 있다는 겁니다. 나한테서 뭘 기대했냐?라고나 하듯 주인공은 이복동생에게 절도, 재물손괴, 음주 흡연 등 못된 건 다 가르칩니다. 문제는 이 동생이 갑자기 만난 형을 무척 좋아하기에 아무 마음에 갈등없이 시키는 대로 다 따라한다는 겁니다. 그 모친은 아직 이런 한심한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가뜩이나 사생아는 미움을 받기 마련인데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재미있는 건 작가가 이 작품을 명백한 성장 소설로 기획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성장은 주인공의 몫이며 나보다 못한 누군가의 (의도된) 좌절, 실패를 보며 주인공은 오히려 자신의 타락한 심성, 모자란 부분 등을 자각하고 이를 고치려 든다는 것입니다. 의도는 이복동생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구원되는 길을 발견합니다.

 

이 작품은 1980년대에 MBC에서 역시 단막극으로 만들어진 적 있으며 주인공이 이복동생과 공유(!)하려 드는 여친 역을 한창 젊은 시절의 황신혜씨가 맡았습니다. 아, 그 경이로운 미모를 구경하느라 정작 드라마 진행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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