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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일주 | My Reviews & etc 2022-07-3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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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저/김석희 역
열림원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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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일주>는 "쥬울 베르느", 요즘 표기로 쓰면 쥘 베른이 지은 멋진 SF 고전입니다. 확실히, SF라는 말을 "공상과학"이라 옮기는 건 문제가 있는 게, 이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면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을 담은 데다, 자연지리적으로 치밀한 조사와 지식에 기반하여 창작되었지만, "공상"의 요소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필리어스 포그라는 매우 개성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공적만으로도 문학사에 길이 남아 마땅합니다. 1960년대에 영국 배우 데이비드 니븐이 이 역을 맡은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봐도 재미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집으로 배달되는 조간신문이 구겨진 채 배달되자 하인더러 다시 새 걸로 한 부 사오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원작 소설에는 없고, 요즘 일부 불량 제책본에서 보듯, 페이지가 아직 잘려지지 않은 채 배달된(물론 19세기 런던 타임즈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리한 것입니다) 신문을 포그 선생이 편지 봉투 자르는 칼로 능숙하게 자르는 그 대목이 오리지널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소설은 다소 장광설이 늘어지는 게 하나의 공통점인데, 이 작품 초반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하인 파스파르투는 캐릭터 자체보다 더 수다스러운 전지적 화자에 의해 요란하게 소개되는데 작품의 프로타고니스트가 영국인이요, 고작 산초 판사 격의 사이드킥이 프랑스인으로 설정된 건 의외의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작가가 프랑스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저는 영미식 군대에서 사병이나 하급자에게 징계를 내릴 때 체벌을 가하지 않고(물론 야만적인 수단이지만), 쫀쫀하게(?) 벌금이나 감봉 처분을 내리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가스 잠그는 걸 잊고 집을 나온 파스파르투에게 "가스 요금은 자네가 내!"라고 하는 포그의 말이 우스웠습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마치 현대 헐리우드물처럼, 이중삼중의 흥미 요소를 진행 전반에 깔아 놓은 점도 놀랍습니다. 필리어스 포그 나리께서 클럽 동료들에게 순전히 자신의 지식과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그 큰 돈을 걸고 무려 세계일주에 즉석에서 나선 것도 놀랍지만(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여장을 챙김), 공교롭게도 하필 은행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여 범인의 행방이 핫이슈였던 시점 그런 결정을 내린 통에 주변인물들은 물론 독자들마저도 필리어스 포그를 의심하게 되니 말입니다.

 

여기서 또 주목해 볼 것은, 프랑스 작가인 쥘 베른이 당시 영국 금융기관 내의 질서에 대해, 그야말로 도불습유, 즉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안 주워가는 놀라운 사회적 신뢰가 지배하는 분위기였음을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필리어스 포그가 혁신 클럽(원어는 Reform Club입니다)에 가입할 수 있게 추천해 준 이들이 베어링 형제라고 나오는데, 1995년 닉 리슨이라는 신출내기 금융인의 실수로 232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파산해 버린 베어링스 은행이 생각나기도 하죠. 작중에서 필리어스 포그가 과연 모험에 성공할지를 두고 내기가 벌어지며 아마도 성공 시 상금을 딸 수 있는 권리가 증서화하여 시장에서 거래까지되는 모습이 또한 놀랍습니다. 심지어 현물 말고 선물(future) 상품까지 등장합니다. 런던은 이처럼 19세기에조차 파생금융시스템이 고도화했던 것입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아니 구태여 세계를 한 바퀴 다 돌게 아니라 적당히 카이로 같은 데서 놀다가, 지중해를 통해 대서양으로 빠져 유유히 귀항하면 알 게 뭐겠습니까? 그러나 거액의 판돈이 걸린 내기에서 깐깐한 영국 신사들이 그리 허술하게 일을 처리할 리 없고, 이 작품을 보면 일일이 영사관에 들러 사증(査證)을 받는 걸로 나옵니다. 이 사증 발급 여부는 작중에도 나오듯 전신(電信)상으로 런던에 타전되어 필리어스 포그가 지금 지구상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까지와 함께 당사자들에게 공유되는 식입니다.  

 

이 작품에는 영국인의 특징적인 행태가 다채롭게 묘사되는데 p126에는 인도 갠지스 강의 아름다운 계곡을 앞에 두고서도 보려고 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 앞 p61을 보면 "영국인이란 관광조차 하인을 시켜 대리하는 족속"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게 뭘 개탄한다거나 경멸하는 의도가 아님은 물론 독자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p71에서는 또 이집트 홍해에 도달한 포그가 "태초의 추억을 품에 안은 이곳"을 구경하려 들지도 않았다고 서술합니다. 그런가하면 p81에서는 고양이조차도 한 명의 "여행자"로 융숭히 대접할 것을 지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실 이 대목은 현대 PC 관점에서라면 인종차별로 단정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또하나 흥미로운 캐릭터는 픽스 헝사인데, 마치 장발장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처럼 주인공을 쫓아다니지만 물론 일종의 강박증 환자인 자베르와는 달리 유쾌하고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상식의 세계에 철저히 머무는 그가, 훨훨 상상의 세계를 날아다니는 포그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그토록 약이 올라 포그를 망치려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상식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완성될 수 없는 과업이어야 하며, 이를 증명하는 게 범죄자로서 포그를 법정에 세우는 것보다 사실은 더 중요한 동기였던 거죠.

 

p163을 보면 쥘 베른의 놀라운 과학 상식, 또 항해공학적 지식이 잘 드러납니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참조해서 소설에 끼워넣었을지 경이롭기만 합니다. 이런 대목들 때문에 이 소설은 그저 픽션이 아니라 독자들을 상대로 "80일간의 세계일주" 정말로 가능하다, 운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바로 작가 자신의 웅변을 매뉴얼처럼 증명하는 하나의 시방서가 되기도 하는 셈입니다. p367의 후주3에 보면 바이런 경을 설명하며 "장애자"였다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김석희씨가 연로한 분이라서 별 생각 없이 이런 단어를 쓴 듯합니다만 편집측에서라도 교정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작품은 또한 마지막의 반전으로도 유명한데 그 반전장치 또한 자연지리적 원리에 의한 것이라서 독자는 전율마저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하나의 반전이 있다면 정말 재수없는 이지적, 이기적 신사인 필리어스 포그가 드디어 사랑에 눈을 뜨게 해주는 여성과 잘된다는 로맨틱한 결말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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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목격자 | My Reviews & etc 2022-07-3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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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5인의 목격자

E. V. 애덤슨 저/신혜연 역
하빌리스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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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도 데이트 폭력이다, 혹은 가스라이팅이다 해서 여러 말들이 많습니다. 서로 사귀는 이성 간에는 부모, 친구보다도 훨씬 내밀한 사정까지 공유되는 게 보통인데, 나는 상대를 그토록 믿고 의지했건만 상대는 전혀 그렇지 않고 나를 이용할 생각만 품었다면 그 배신감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입니다. 하물며 그 과정에 폭력까지 따른다면...

 

이런 "나쁜 남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간 그런 사이코패스들을 소재로 삼고 또 악질적인 범죄자로 묘사한 스릴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 작품에도 처음에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대니얼, 또 주인공의 전 남친이었던 로렌스 같은 잘생긴 남자들이 등장해서 여성 독자들의 분노 그 초점을 이룹니다. 대니얼은 저처럼 대놓고 살인자이니 말할 것도 없고, 로렌스 이놈도 되어가는 꼴을 보니 분명 끝에 가서 가장 흉악한 스토커, 바람둥이, 배신자로 등장할 것만 같습니다. 

 

이런 나쁜 남자(들)는 일단 잠시 잊고, 이 소설은 두 명의 여성이 번갈아가며 1인칭 화자로 등장합니다. 벡스와 젠이 그들인데, 우리 독자들에게 비치기로는 벡스가 더 성숙하고 감정이 안정적이며 모르긴 해도 더 넉넉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습니다. 물론 그런 말은 없지만 다른 한 명의 화자인 젠이 너무도 불안정하고 상처가 많은 데가 자기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타입이라서 독자는 그런 인상을 받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혹시 벡스와 젠이 단순한 친구를 넘어 더 내밀한 사이인가 생각도 들었고, 젠이 벡스의 좁은 집을 떠나 부유한 은퇴 저널리스트 페넬로페와 함께 산다고 했을 때 벡스가 뭔지 모르게 불편해하는 걸 보고 더 그런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이 정도는 리뷰에서 밝혀도 될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는 전혀 아닙니다. 소설 맨앞에 제이미와 알렉스라는 커플도 나오기 때문에(이들은 끔찍한 살인 현장의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더욱 그런 착각으로 기울었는데 작가가 교묘하게 이런 장치를 만든 듯도 합니다. 

 

제이미는, 그런 이들에 대해 쏟아지는 사회적 편견과는 아주 달리, 살인의 그 끔찍한 현장에서 비극을 막으려고 매우 영웅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제가 다소 이상하게 본 건 알렉스의 반응이었는데, 애인의 그런 행동에 대해 다소 서운해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마치 그럴 열정과 과감함을 자신에게 더 쏟아 주었으면 어땠을까 여기는 것처럼.... 이 반응은 소설 초반에 잠시 나오고 마는 정도인데, 이후 p348에서 사실임이 결국 드러나긴 하더군요. 물론 이 점이 미스테리의 진상이라든가 결말과 큰 관계는 없습니다(관계가 있으면 리뷰에 이렇게 쓸 수가 없죠). 

 

이 소설은 아무래도 진상을 끝까지 숨겨야 하다 보니 이런저런 다른 주변 인물들에게 비중을 골고루 주는 편입니다. 독자도 장르의 관습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보니 읽으면서 아 이 사람은 절대 범인이 아니겠지, 따라서 지금 이 대목에서 이런 대사를 하거나 이런 반응을 드러내는 건 다 페이크겠지 일일이 정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결말에서 보이는 행동은 진짜 반전이었습니다. 이런 멋진 포인트가 있으니 혹 중후반부에 범인이 누군지 드러나더라도 끝까지, 진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집중해서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사실 범인이 누군지를 알아내는 게 독서의 포인트가 아니며 특히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그렇습니다. 사실 서두부터 자꾸 시선을 OOO에게 돌리려고 애 쓸 때부터 아 얘는 범인이 (오히려) 아니겠구나 누구나 눈치를 챌 수가 있습니다. 그럼 남은 사람이 ㅎㅎ 사실 몇 안 됩니다.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고 큰 사람은, 주변의 누구한테 자꾸 의지하려고 듭니다. 그럼 그런 사정을 다 받아 주고 친하게 지내 주면 또 이런 사람은 의외의 까탈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 마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도 주장하는 양 또 이상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유형하고는 안 엮이는 게 나은데... 소설에서 젠은 우리 독자들에게 많은 짜증을 안깁니다. 그녀가 매체에 연재하는 칼럼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일종의 관종짓입니다. 그래서 사려 깊은 OOO은 p196 같은 곳에서 "고백적 칼럼니스트"라는 표현에 회의를 드러내며 젠에게 정직한 충고를 합니다. 그러나 젠 같은 미숙한 인격의 소유자가 그런 충고를 받아들일 리 없습니다. 

 

p139에서 OOO는 젠에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젤 쓰레기"라며 극단적인 말을 합니다. 물론 독자가 당황해하겠으므로 OOO는 아 이 단계에서 (정상이 아닌) 젠에게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합니다. 본심은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p63에서 OOO는 젠의 행동이 자신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나가자 크루아상 상자를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는 등 정상이 아닌 행동을 이미 이 단계에서 합니다. 그러니 독자가 눈치가 빠르다면 이 사태의 진상 그 큰 줄기를 벌써 감 잡을 것입니다. 

 

범인이 벌써 이렇게 이른 단계에 드러나 버린다면 읽는 재미가 없지 않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상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추리하는 재미가 여전히 남았고, 또 소설 맨처음을 장식한 살인 사건 역시 그 실체 전부가 안 드러났기 때문에 독자는 진짜 숙제를 아직 처리해야 합니다. 사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기존 장르물과 스스로를 차별화합니다. 

 

젠은 소설 전반부에서 독자를 참 짜증나게 합니다. 이 사람 하나만 행동을 똑바로 하면 많은 주변 사람들이 편해질 텐데... 하지만 소설이 결말로 치달으면서 오히려 젠은 우리 독자들과 많은 아픔, 단점, 그녀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었음이 드러나는 여러 과거를 오히려 공유하는 듯 보입니다. 진짜 악당이 실체를 드러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찌질이의 최고봉 같았던 젠을 서서히 우리 친구로 만들어가는 것도 작가의 능력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아마 이 결말을 예상한 독자는 제가 장담하건대 지구상에 없지 싶습니다. 다 읽고 나서 한 방 맞은 느낌이니, 제발 범인의 정체를 알았다고 소설 읽기를 도중에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너무 쉽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에는, 대개 진짜 문제가 더 숨어 있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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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 - 김준성 | My Reviews & etc 2022-07-2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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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복제 인간

김준성 저
홍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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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성은 경성고상, 즉 이후의 서울 상대 전신이었던 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경제고위관료(부총리 포함), 한은 총재, 삼성전자 회장, 이수그룹 회장 등을 역임한 분이고 2007년 타계헸습니다. 지금 이 책은 이분이 쓴 소설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스타일이 매우 특이하고 소재가 기발합니다. 군데군데 엿보이는, 당시로서는 제법 높은 소양 수준이었을 과학 지식도 눈에 띕니다. 

 

빛이 들릴 수도 있을까? 지상의 다양한 생명체는 우리 인간이 보지 못하는 빛깔(어차피 인간 편의로 구분한것이므로 의미 없습니다만), 들리지 않는 소리를 감지합니다. 그래서 이런 소음을 내어 벌레를 퇴치하는 기계도 있고, 인간이 보지 못하는 적외선, 자외선을 알아 보려면 특수한 장비를 써야 합니다. 

 

1988년작 영화 <프레데터>를 보면 가공할 만한 전투 능력을 지닌 생명체가 지구에 훈련을 위해 잠시 방문하는데, 쓰는 장비도 뛰어나고 타고난 생체 능력도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시각 능력이 매우 원시적입니다. 우리 눈에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의 형태와 색을 있는 그대로(어폐가 있지만) 보지를 못한 채 그저 형체만 감지하는 식입니다. 반사신경과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니 어차피 그들에게는 필요가 없지만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처럼이나 섬세하게 형체와 색을 분별하게 진화한 건 그만큼 아름다운 걸 좋아해서가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아름다운 걸 보고 기뻐하는 능력을, 험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과 얼마간 바꿔치기 했다는 뜻이니 더 놀랍습니다. 

 

주인공은 빛이 들린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배울 만큼 배운 분이고 자신이 느낌이 그저 착각이 아니라고 여길 만한 근거도 있습니다. 말도안되는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어느 의사 역시 이 환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 집중 상담을 합니다. 확률이 낮긴 하나 잘만하면 학계를 근본에서 뒤집을 엄청난 발견을 할 수도 있습니다. 

 

빛은 소리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빠르므로 정말로 (일부를 향해서라도) 이런 능력을 가진 이가 있다면 편익보다는 엄청난 착란 때문에 차라리 생존과 일상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환자와 의사는 결국에 이 환자의 지나간 과거 중 어떤 사건, 기억이 이런 현상을 초래했음을 알게 됩니다. 책프 25기 16주차에 리뷰한 유재용 작가의 <어제 울린 총소리>와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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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람 - 백우암 | My Reviews & etc 2022-07-2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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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갯바람

백우암
창비 | 197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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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암의 단편 소설 11편이 실렸습니다. 오래 전 소설들이라서 솔직히 뭔가 깝깝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예전 소설가들은 이런 소재를 즐겨 작품에 형상화했나 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서양에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이야기가 오랜 동안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누구나 남한테 사랑을 받는 건 좋아해도 남에게 뭘 베풀 줄은 모르는데 책 중 처음에 나오는 단편 <갯바람>을 보면 아 이런 삶도 있구나 하며 새삼 고개가 숙여질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에는 다들 빈곤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위생 상태도 좋지 못했으므로 배우자를 여러 이유를 통해 일찍 잃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럴 때 며느리, 혹은 사위였던 이가 시부모, 혹은 장인장모와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겠습니다. 저무렵에는 또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배우자 사별시 동일 생계를 이루고 사는 그 관계부터 쉽사리 청산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책프 25기 22주차에 안장환의 <안개강>을 리뷰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아내를 잃고 자신은 월남전 참전 부상으로 다리를 저는 상태인데 장모와의 관계가 애매해집니다. 물론 장모나 사위 모두 나쁜 사람들은 아니며 작품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그저 가난이 원수인 셈인데 세상에 아무리 가난한 세상이었다고는 하지만 한강에서 잉어 낚시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는 설정이 기가 막혔습니다. 그나마 공업화가 진척되면서부터는 강이 오염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아무튼 저 시아버지의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잘 되고, 개인적으로는 OOO이 저 상황에서 꼭 그래야 했나 싶기도 합니다. 다른 단편들에도 1970년대 서울의 빈곤층(이라고는 하나 당시 기준으로는 평균적인 서민들)의 삶이 잘 드러나는, 마음이 좀 답답해지는 그런 작품집이었습니다. 가난할 때 오히려 훈훈하고 따뜻한 인간성이 공유되고 표현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판단은 독자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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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ERS READING SMART level 1 | My Reviews & etc 2022-07-2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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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Hackers Reading Smart(해커스 리딩 스마트) Level 1

해커스 어학연구소 저
해커스어학연구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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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리딩 스마트 시리즈 레벨 1, 즉 가장 낮은 단계의 리더(=읽을거리)입니다. 어제 올린 레벨 2의 리뷰에서 시리즈의 특성이라든가 체제에 대해 설명을 다 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조 바랍니다. 이 리뷰에서는 시리즈 전체 말고 이 책만의 특징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가장 낮은 레벨이기 때문에 단어와 문장구조가 너무도 쉽고 그 담은 내용도 상식선에서 다 알던 이야기만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학생 아니라 지도하는 어른 입장에서), 그렇지는 않다고 하고 싶습니다. 이 책도 총 10개의 유닛, 그 유닛마다 네 개의 지문, 지문마다 4개의 문제, 유닛 끝에 리뷰 테스트가 실렸습니다. 예를 들어  p46, 유닛 04-2의 지문을 보면 주제는 울버린이라는 동물의 습성과 외양, 혹시 마주칠 경우 주의할 점(북미가 아닌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가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등입니다. 주제가 이런 것이니 한국의 학부형 평균이 잘 알 만한(적어도 지루해할 만한) 내용은 아니고 어차피 영어가 세계인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니 이런 주제는 영어 공부를 떠나 상식으로 알아놓아도 유익합니다. 또 "울버린"이란 동물 이름에 귀에 익다면 아마 2000년도의 헐리웃 화제작 <엑스맨> 덕분일 가능성이 큰데 아니나다를까 이 지문도 그 얘기부터 대뜸 시작합니다. 

 

이 독해 시리즈는 지문 오른쪽 페이지 하단에, 지문과 문제 중에 사용된 어휘를 설명하고 있는데 단어만 있는 게 아니라 be based on 같은 어구도 설명합니다. 이것이 관용어나 숙어는 아니므로, 아마 수동태 표현에 대해 낯설어할 학생들을 배려한 편집이라고 생각합니다(만약 수동태를 배운 학생에게라면, 이걸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대체로 수동태는 중 2때 배우므로 이 교재가 그보다 앞선(=낮은) 단계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reindeer는 고 1 정도, predator는 중 3 정도이므로 확실히 단어 수준은 조금 높은 편이긴 합니다만 요즘은 선행학습이란 것도 있으니. 또 사실 단어는 너무 학년별 권장 수준에만 꽁꽁 묶어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지문을 주고 그 제목을 고르게 하는 문제가 누구에게나 어려운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에서, 본문과 전혀 관계가 없는 문항은 나오지 않습니다. p47을 보면 ①은 "야생 울버린을 사냥하는 것을 멈춰라"인데, 만약 이 글이 제시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진다면 충분히 이것이 주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②③④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목이 될 수 있는 정답군과, 다른 선지가 아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답은 정상적인 교훈을 받은 누구의 눈에도 ⑤입니다. 이견이 있기 힘듭니다. 덧붙이면, 저는 이 시리즈에 나온 거의 모든 "제목 고르기" 문제들이 매우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아이들은, "내 생각에는 이런 오답도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안 되나요?"라고 묻다가 선생에게 혼이 납니다. 그럼 아이는 "아 혼이 안 나려면 이걸 답으로 그냥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이것 역시 바람직한 반응이 아니지만), 그 답에 대해 일종의 원한을 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이유 없이" 무엇을 강요한 선생, 나아가 자신을 거부한, 알 수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지식 체계에까지 적대감을 지닙니다. 이런 아이가 커서 반사회적 성향을 띠는 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고, 이런 아이들을 어떤 불순한 세력이 이용하여 수족처럼 부리는 것도 놀랍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다양한 선지가 답이 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라면, 지도교사나 학부모는 대체 왜 그게 답이 안 되는지, "제목이나 주제를 고르라"는 지시사항이 무엇을 뜻하는지 납득을 잘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들이 모여 이런저런 잡답을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자주 올라오는 사진(이른바 "짤")이, 바로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입니다. 이것을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국룰(!)인가로 싸움 아닌 싸움이 나기도 합니다. 뭐 누구나, 이것이 논쟁거리가 될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재미로 이러고 놀곤 하죠. 그런데 이 책 p68에도 toilet paper를 어떻게 걸어야 하느냐를 놓고 양쪽의 의견이 갈린다면서 참으로 재미있는 논쟁거리를 짓궂게 꺼내고 있습니다. loose end가 slight하게 hidden되는 편이 좋지 않냐는 쪽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걸어야 휴지를 끊을 때 따로 벽(더러울 수 있으므로)에 손을 댈 필요가 없다는 쪽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 쪽인데 벽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바로 잘라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 저런 게 있다면 그나마 위생에 유리한 편이 낫다고 볼 수도 있죠. 이 지문에서는 결론을 "논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내고 있습니다. 이 지문은 131년 전 이 휴지가 처음 발명되어 걸렸을 때는 후자쪽이었다고 상식 하나를 알려 줍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과학 소재 지문이 많았던 점이었습니다. 과학 이야기는 역사나 사회문화 과목처럼 어떤 사항을 그저 암기해야 하거나, 혹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적 사항만을 강조하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사실들을 이치적으로 이해하게 도움을 줍니다. 또 오늘날의 한국을 이처럼 잘살게 해 준 반도체 기업의 엔지니어들도,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각별히 뛰어난 사고를 하는 훈련을 쌓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심지어 영어 공부를 할 때에도 과학적 사고를 할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더 유익하겠습니까. 

 

에티오피아는 우리가 그저 기아선상에 시달리고 내전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나라로만 알지만, 사실 인류 문명이 가장 일찍 싹튼 지역 중 하나며 고대에 크게 번영했고 20세기 중반에는 한국에 지원군을 보내 주기도 한 나라입니다. 황제가 다스리던 위엄 가득한 나라였으나 현재는 분열주의자들의 무책임한 선동 때문에 나라가 사분오열되고 엉망진창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와카 타워는 마치 우리나라의 첨성대처럼도 생겼는데, 벽 표면에 물이 맺히는 걸 보고 온도를 측정하던 기능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책에는 이를 가리켜 "응결"이라 하여 한국어 해설에서 잘 가르쳐 주는데, 중 1 지구과학이 원래 엄청 어렵습니다. "응결"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혹 이 영어 교재를 통해 쉽게 이해할 학생들도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힙합을 발레에 접목한 게 "힙렛(hiplet)"이라고 한답니다. 힙합 댄서들이 발레 동작을 그대로 혹은 상당히 참고하여 따와 힙합음악에 붙인 것입니다. 발레 역시 철자는 ballet이라 쓰니 저 단어의 고안 배경이 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지문은 다소 열광적인 어조로 "힙렛은 두 장르의 완벽한 믹스"라며 이 새로운 크로스오버 장르를 찬양합니다. 이 지문에도 문제 넷이 딸렸는데, 역시 제목 고르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①은 "힙렛: 음악의 또다른 형태"이고 ②는 "두 가지 춤 장르의 독특한 조합"인데, 사실 이 지문은 음악보다는 댄스에 대한 서술이므로 답이 ②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책 중간중간에는 아재력 테스트라든가,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들 보내는지에 대한 한국어 읽을거리도 실렸는데 아마 아이들 지도하는 중간중간 학부형들 지루하지 말라고 심어 놓은 아티클 같습니다. 미니암기장과 워크북(익힘책)은 책에서 따로 떼어낼 수 있게 별책 분리가 가능한 편집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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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ERS READING SMART level 2 | My Reviews & etc 2022-07-26 16:14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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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Hackers Reading Smart(해커스 리딩 스마트) Level 2

해커스 어학연구소 저
해커스어학연구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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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재는 책 뒷면에 나와 있듯 렉사일 지수 770이상부터, 또 어휘 110~150개 수준에서 읽게끔 고안된 읽기 교재입니다. 교재는 모두 1~4레벨까지, 네 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이 책이 레벨 투이니 중하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딱 펼쳐 보니,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매우 닮은 모습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중학교 교과서를 딱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영어 실력을 늘리려면(국어 실력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영어 교과서만 읽어서는 안 되고 다양한 읽을거리(이른바 reader)를 널리, 또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은 교과서를 이미 다 공부하고 나서 약간 지루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영어 실력도 키우고 재미도 동시에 느끼게 할 만한 그런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 출판사, 예를 들어 프린스턴 리뷰라든가 하는 곳에서 라이센싱한 건 아닌 듯 보이고(제 생각입니다), 현재는 국내 탑이라고 봐야 할 해커스에서 자체 개발한 교재인 것 같습니다. 

 

총 열 개의 unit으로 이뤄졌습니다. 각 유닛은 패션, 동물, 장소, 기술 등 주제 하나씩이 주어져 있습니다. 유닛에 제목은 안 붙었는데 보통 교과서가 일일이 매 과마다 제목을 달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죠. 그 이유 중 하나가, 본문을 읽고 그에 알맞은 제목을 고르는 문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 개의 unit마다 네 개의 지문이 나옵니다. 또 각 지문마다, 이 지문에 쓰인 단어가 몇 개인지 그 수가 표시됩니다. 그러니 학부형이나 교사는 아이의 수준을 감안하여 세밀하게 지문을 골라 학습을 시킬 수 있고, 이 점이 학교 교과서와는 크게 다른, 이 시리즈, 즉 reader로서 본연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다하게 위한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모든 지문에는 문제 네 개씩이 딸려 있는데, 제목 묻기, 빈 칸 채워넣기, 문장이 들어갈 만한 적절한 곳 찾기, 내용 요약하기 등의 유형이 번갈아가며 나옵니다. 성인이 되어 접하게 될 텝스나 토플, 토익 등 공인영어능력시험의 RC 유형과 똑같습니다. 

 

지문에 실린 단어의 뜻은, 지문의 오른쪽 페이지 하단에 모두 몰아 정리해 놓았습니다. 지문에 나온 단어는 그대로 설명을 싣고, 지문이 아니라 오른쪽 페이지 문제 중에 나온 단어는 앞에 <문제>라고 따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친절한 태도입니다만 저 개인적 생각으로는 아예 칸을 따로 질러 구분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네 개의 지문과 그에 딸린 문제가 끝나면 "REVIEW TEST"가 열 문제 정도 따로 나옵니다. 이런 구성은 사실 거의 모든 영어 교재가 공통적으로 취하는 태도이지만, 특히 해커스의 다른 중고등 교재들이 일관되게 취하는 체제이기도 합니다. 일 년 전쯤에 개인적으로 이 출판사에서 나온 중고등 어휘 공부 교재들을 다 리뷰한 적 있으니 필요한 분은 참조하십시오. 

 

해커스 교재를 풀며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해설이 참 좋다는 겁니다. 이 교재를 보면, 뒤에 분권이 이미 되어 있는 제2의 책, 해설집이 있습니다. 이 해설집은, 앞에 나온 네 개 지문 x 10 유닛 = 총 40개의 지문에 우리말 해석을 싣고(여기까지는 당연합니다), 밑줄을 쳐서 단어 하나하나 밑에다 뜻도 달아 놓아서 아이들에게 직독직해 버전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물론 깔끔하고 정돈된 우리말 순서에 따른 완전 해석본도 그 옆에 따로 배치했습니다. 보통 영어 공부하면서 중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들도 가장 아쉬워하는 게, 지문 밑에 단어 뜻 바로 달아 놓고 직독직해본이 좀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고들 합니다. 이 교재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바로 이 포인트를 정확히 짚고 반영, 구현했다고 생각됩니다. 

 

유닛마다 네 개의 지문이 있고 그 지문마다 네 개의 문제씩이 딸렸는데 유닛에서의 마지막 지문(즉 네번째 지문)에 딸린 문제 세트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묻습니다. 당연하지만 해설집에 보면 이 문제들 역시도 다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해설집에는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마주보는 페이지 하단 둘을 이어서 "구문 해설"을 따로 하는데 구문은 문법과 독해의 중간 영역으로서 독해와 영작이 자유자재로 되려면 이 구문의 세계를 반드시 정복해야 합니다. 

 

해설집에는 물론 리뷰 테스트(각 유닛 끝마다 나오던 총복습 문제 세트)에 대한 번역과 해설, 정답이 다 나옵니다. 이러니 참 교재가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유닛의 각 지문에 딸린 문제 중에는 간혹 "심화형"이라든가 "서술형"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p75, unit 06-4의 문제 3번 같은 게 심화형 문제의 한 예입니다. 그런데 딱히 심화인지는 잘 모르겠고, 이 문제 같은 경우 다음 진술이 옳으면 T, 그르면 F를 기입하라고 지시하는 유형입니다. 진술을 살짝 비틀어서 헷갈리게 한 것도 아니고, 셀 바이 일자가 경과하면 물건을 팔지 못한다, 80% 이상의 미국인들이 멀쩡한 음식을 버린다, 같은 것도 함정 없이 맞는 진술입니다. 아쉬운 건, T/F를 판단할 때 지문 전체를 고루 판단해야 당부를 가릴 수 있게 하지 않고, 해당 단어가 나오는 문장을 눈으로 대충 찾아 그 한 문장만 읽어도 답이 바로 나온다는 점이었습니다(더 눈치가 빠른 애들이라면, 아예 본문은 읽지도 않고 이 고립 진술만 읽고도 바로 답을 고를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심화형이 아니죠. 다만 이 교재가, 중하급 학습자 기준인 레벨 2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unit 08-4, p99의 4번 같은 문제는 빈 칸에 단어를 채워 넣는 유형이니 대단히 어려워보이지만 왼쪽 본문에 똑같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지간히 둔하지 않다면 애들이 다 힘들이지 않고 답을 써 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15의 4번 역시 표시는 심화형이라고 나오지만 잘 보면 옆 지문의 단어를 거의 그대로 옮겨 쓰는 수준입니다. unit 10-4, 1번처럼 아예 본문의 순서를 바로잡게 하는 문제, 이런 게 진짜 어려운 문제입니다. 논리적인 구조, 혹은 서사의 자연스러운 형태가 무엇이다 하는 관념이 머리 속에 자리를 잡아야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p37의 4번은 옆 지문의 교훈(moral)을 묻는데 이런 게 심화형다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처럼 수준별 교재로 구성된 시리즈는 가급적이면 1~4까지를 모두, 아이한테 보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수학의 경우 당연하고 쉬운 문제를 잘하는 애한테 일일이 풀게 할 이유는 없고 그냥 고급으로 뛰어넘어도 됩니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하급 리더라고 해도 고급 지문이 하급 지문의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쉬운 문장은 쉬운 문장대로 밟아 나가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잘하는 애한테도 레벨 1 레벨 2를 가급적이면 생략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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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My Reviews & etc 2022-07-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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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편한 시선

이윤희 저
아날로그(글담)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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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서두에서 "왜 훌륭한 미술가는, 여성이 칭송을 듣는 일이 드문가?"라는 질문부터 던집니다. 사회 모든 분야가 남성 중심 아닌 곳이 없었으나, 심지어는 미술 역시 결국은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는 점은 새삼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여성의 타고난 섬세한 감성이란 게 있어서 미술만큼은 꼭 그러란 법이 없었을 듯한데 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결국 여성이 어느 분야에서도 능력을 못 발휘했다는 건 사회 구조 자체가 억압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 이 질문은 1970년대에 들어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고 합니다(p53). 실제로 저자는 책에서, 심지어 프랑스 혁명 이전에도 유력한 활동을 벌이던 여성 화가들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그들이 남긴 작품도 소개합니다. 힘 있는 필치와 작풍을 보고 당시 맹활약하던 몇몇 유명 남성 화가들을 대뜸 떠올릴 만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정면으로 배반하듯 저작 명의가 여성들입니다. 이처럼 이 책은 팩트에 기반하여 여성 화가들의 실력과 성취를 독자에게 잘 소개하고, 흥미롭게도 도판까지 곁들이기에 우리 독자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힘있는 실증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져자는 비제 르브룅의 일화를 소개하며 현재까지도 인기 있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래된 믿음마저 사실은 남성들이 조작하거나 조장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책을 읽어 보면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주장이라고 해도 어떤 저자가 내세우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른 듯합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당대에 문제적 그림이었음은 우리 독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이상적인 나신은 아름답다며 찬양을 받아도, 실제 창녀의 군데군데 망가진 리얼한 누드는 "음란하다"며 비난을 받았다는 게 너무도 아이러닉합니다. 저자는 그 아릅답지 못한 현실 창녀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는 이유 말고도, 마네가 당시 욕을 먹었던 이유는 "그 주제에" 화면 밖(의 남성들)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 대담한 시선에 더 큰 불쾌감을 당시의 (남성) 관객들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미술사 대부분의 시기 동안 그림을 주도적으로 관람하고 비평적 언사를 표현해 온 관객은 남성이었다(p82)." 그래서 그렇게나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 누드가 화폭에 담아지거나 조각으로 표현되었다고 저자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이유만으로는 남성 누드 역시 오랜 역사를 두고 즐겨 쓰이던 소재였던 점이 시원하게 해명되지는 않습니다. 

 

본격적인 서양 문명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았던 곳의 토착민들이 사진을 처음 보고 보인 반응은 카메라로 찍는 행위가 찍히는 이의 영혼을 뺏어간다는 경각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전혀 터무니없는 건 아닌 게, 이 책에도 나와 있듯 누군가를 카메라로 찍는 행위는 "공격적,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생긴 사진작가(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행여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라도 하면, 어떤 여성들은 은근히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여성 사진작가 로리 앤더슨은 길에서 찍은 남성들의 시선 부분을 일부러 지웠는데, 이는 그들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공격적인 시선을 제거하기 위한 미학적 의도라고도 합니다. 이제 남성은 평소처럼 지나가던 여성을 일방적인 욕망이 담긴 시선으로 볼 수 없는데 적어도 앤더슨의 세계 안에서 그는 거세되었기 때문입니다. 

 

관음, 혹은 성 관련 컨텐츠를 소비하는 자세란 시대를 불문하고 서로 닳았습니다. 역사의 단면을 다룬 상상화도 아니고, 왜 먼 지역의 미개하고 개탄스러운 풍습을 화폭에 담았을까? 저자가 3-3에서 이야기하는 건 성매매, 물론 결혼시장이라는 미명으로 위장하지만 사실은 처참한 인신매매를 다룬 그림들이 왜 이렇게 많이 남았냐는 질문입니다. 답은, 당대 파리나 런던에서도 얼마든지 이뤄졌을 인신매매를 화폭에 담기라도 했다면, 아마도 실제 그런 시장에 몸을 담고 매매를 해 봤을 권력, 돈 있는 남성들이 대번에 그림 시장에서 불쾌감을 느꼈으리라는 이유라는 겁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결국 이름난 명화의 창작, 거래 동기 중 상당수는 그저 예술이란 이름으로 윤색되었을 뿐 불측하고 더러운 욕구 충족에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거죠. 

 

누구의 잘못인가? 에덴 동산에서 축출당한 건 남녀가 똑같이 잘못한 건데도 어느 시대에나 이브가 더 욕을 먹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봐도 잘못은 동등한데 이 역시도 "이브가 더 잘못함"이란 일종의 정답을 어느 세대나 다 강요당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아담과 이브만큼 그림과 조소에서 자주 형상화된 주제도 없고, 이들 중 어떤 그림은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이브 쪽에 자연스럽게 비난이 쏠리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분명합니다. 프란츠 폰 스툭의 작품에서는 아예 이브와 뱀이 한몸인 것처럼 묘사된다고 합니다. 악녀로 손꼽히는 역사상의 여걸들이 뱀을 애완동물로 키웠다는 이야기도 지어낸 것일 가능성이 크죠.

 

히브리의 여러 설화도 대단히 남성 위주이지만 다른 경우에 비해 여성 의존적 화소도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이 민족이 환란에 처해 있을 때 더 두드러집니다. 유디트는 어떤 색적인 팩터로 유명해진 게 아니라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여걸인데 심지어 이 캐릭터에 대해서도 성적 분위기를 가미하기도 합니다. 젠틸레스키의 유명한 그림은 화가 자신이 여성이다 보니 오히려 예외에 속하며 심지어 남자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여걸에 대해서조차 몽롱한 분위기를 입혀 성적 대상화하는 전통이 뚜렷한 건 정말 못 말릴 일이다 싶습니다. 

 

어렸을 때도 참 당혹스러웠던 게 어린이들 보라고 만들어 놓은 명화 도감에도, 아니 여성 누드가 나오는 건 또 그렇다 쳐도 왠 약탈, 납치... 성폭력의 직접 단계만 묘사 안 했다뿐 그 전단계를 소재로 삼은 게 너무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 기대라도 해 보라는 듯 여성들은 그림 속에서 절망과 공포와 무력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약탈자인 남성들의 표정은 세상 둘도 없는 쾌락을 맛보기 직전인 듯 자긍심과 득의양양함으로 꽉 차 있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납치 단계에서부터 이미 옷이 벗겨져 있습니다. 이런 묘사가 이뤄진 건 사실 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남성 위주의 시장에서 이런 그림이 고가에 거래가 되었다뿐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게 저자의 솔직한 답입니다. 다만 노골적인 음란물의 혐의를 벗기 위해 인체 묘사의 이상적인 터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성경이나 신화의 맥락을 애써 집어넣었을 뿐이라는 것. "여성에 대한 폭행의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건 정당한 재현 방식인가?(p189)"

 

안그래도 새로 만들어지는 <백설공주>의 주인공에 히스패닉 여성이 캐스팅되어 화제가 됩니다. 캐리 메이 윔스는 흑인 여성으로서 가장 평온하고 자신에 몰입할 수 있는 순간, 즉 거울을 보는 때마저도 백인 남성들이 심어 놓은 강박관념, 즉 흑인 여성은 주제를 알아야 한다는 가상의 폭력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아를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여성 미술가들은 연대의 수단으로 거울을 즐겨 채택하는데 이에는 일정한 맥락이 깃든 것입니다. 대체 왜 타고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떳떳지 못하게 여겨야 하는가? 저자는 이 대목에서 미술을 넘어 사회 체제와 의식 곳곳에 스민 차별과 혐오의 기제를 조명하며 무의식중에 새겨 넣은 세뇌와 기만의 악순환에서 스스로 벗어날 것을 촉구합니다. 

 

저자는 책의 맨앞에서 나혜석이라든가 프리다 칼로의 경우 예전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 있으며, 요즘 어린이들이 보는 책에 유독 자주 선정되어 다뤄지는 건 그녀들의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그들이 살고 간 불꽃 같은 생애의 매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잠시 언급했습니다(p16). 책 후반부인 p238 이하, 또 p249 이하에서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이 집중 조명됩니다.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그간 인식되어 한국 어느 세대의 교과서에서도 자주 등장했고 칭송되었습니다. 마치 그녀가 남긴 예술 작품들이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증명이라도 하며 또 그런 윤리적(?)인 삶과 분리되는 순간 덩달아 평가절하나 되어야 한다는 듯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 어린 세대에게 소개되는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은 신화 속에서 박제화한 그런 삶과 상당히 거리가 멀었으며, 나이 든 이들이 보면 당혹스러울 만큼, 아니 단죄를 하고 싶을 만큼 분방하고 자유롭게 살다 간 이들입니다. 

 

예를 들어 나보코프 같은 소설가는 당대의 금기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으나, <롤리타> 같은 건 명백하게 페도필리아입니다. 이 사람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오히려 더 큰 비판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소아청소년 상대 성문화는 칼 같이 단죄를 받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폴란드계 화가 발튀스가 자주 소재로 삼은 "소녀"들을 다각도로 고찰하고 이런 남성 작가들이 즐겨 묘사하는 방식과, 여성 작가들의 시선과 터치를 선명하게 대조시킵니다. 바람직한 건 관음적 요소가 배제된 후자의 선택이라는 결론입니다. 

 

책 후반으로 갈수록 작가들의 충격적인 표현 방식이 소개되어 독자는 흔들리게 되는데, 이 책 앞표지에 쓰인 말 "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겠다."가 떠오릅니다. 확실히, 성적 욕망은 나만 혼자서 상대를 훔쳐본다는 상황 세팅 자체가 흥분을 고조시키며, 그저 대상이고 피사체가 되어야 할 그녀가 프레임 밖으로 나올 듯 나를 대등하게 지켜본다면 산통 다 깨지는 겁니다. 그림을 통해 그간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요해 온 누군가를 동시에 보게 되고,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프레임이 깨지고 나면 그녀뿐 아니라 이제 내가 새롭게 보인다는 점이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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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 게임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2-07-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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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피니트 게임

사이먼 시넥 저/윤혜리 역
세계사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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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든 축구든 이닝이나 제한 시간이 있으며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경기가 끝나고 승자 패자를 정해야 합니다. 또 팀제 프로스프츠의 경우 1년 정도를 시즌으로 삼아 우승팀을 따로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예를 들어 비즈니스의 경우 그런 식으로 승자를 정하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 재벌 기업들 중 상당수는 망해서 없어졌고 현재 뉴스에 나오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이름만 대우일 뿐 그룹 창업자 김우중씨도 죽었고 그 후계자가 맡아서 경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20년 전에는 이름도 못 들어본 기업들이 지금은 대기업 반열에 올라 활발히 사업을 벌이지만 이들 중 과연 몇이나 십 년 후에 살아남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p20에서 저자는 비즈니스야말로 무한게임의 대표적 예라고 하는데 바로 이런 현상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승자도 없고 또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게임입니다. 사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어떤 기준을 잡으면 삼성이 1위였고 다른 기준을 잡으면 현대, 심지어 럭키금성(현재의 LG, GS 등의 전신)이 더 높은 순위를 점할 때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설령 단기간으로 잡는다 해도 승자 패자를 어떻게 정하겠습니까.

 

그런데 저자는 유한게임일 때와 무한게임일 때 플레이어들의 전략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책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독자인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은 특히 유한게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프로야구 같은 데에 잘 들어맞는다 싶었습니다. 프로야구(현재 명칭 KBO 리그)에서는 몇 번의 시즌을 우승했냐를 두고 감독이나 팀의 업적, 성취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단기의 고성적이나 우승에 집착하다 보면 특정 선수를 혹사하며 운용할 수가 있습니다(이른바 "갈아넣기"). 특정 연도에 반드시 우승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처럼 "갈아넣기"를 일삼다 보면 결국 그 팀은 향후 몇 년, 혹은 십 몇 년 동안 하위권에서 맴돌 수 있고 그 혹사된 선수들도 커리어가 훨씬 짧아지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유한게임의 대표적인 폐해라는 것입니다. 

 

무한게임이 되면 게임이 장기전이 되므로 기업의 단기 실적에 집착(p152)하지 않고, 오래살아남아 장기간 호실적을 올리거나 아예 게임체인저가 되는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흔히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절대적인 미덕으로 꼽기도 하는데, 임기가 정해진 단기 CEO들은 그해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내세울 업적만 중시하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 투자를 소홀히할 수 있습니다. 이재용씨가 감옥에 있을 때 삼전은 단기 실적에 치중하느라 무리하게 원가를 절감하려 들어 결국 지난번 고스파동이 일어났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책 p28 같은 곳에서는, 특히 유한게임에 치중하는 경영자들은 변화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다 장기를 보고 과감히 행동하는 경영자들은 오히려 안정된 현재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1990년대 전반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씨의 결단이라는 게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는 이미 부친으로부터 한국 최고의 기업을 물려받았고, 경쟁 기업이었던 현대의 당시 삽질 때문에 그저 그 당시의 위치만 지켜도 아쉬울 게 전혀 없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진 걸 과감하게 특정 분야에 베팅하여 몇 십 배로 자산을 불렸고, 경영 혁신도 "최고의 품질"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날 지구인이 다 알다시피하는 글로벌 일류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 임원진이 해외 소비자들이 삼성을 일본 기업으로 안다면서 이런 착각이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지금은 갤럭시나 삼성가전 덕분에 코리아라는 나라도 덩달아 알게 됩니다. 외국의 IT 인재가 삼성에 입사하러 왔다가 그 나름 높은 기준 때문에 좌절하고 돌아가기도 하는데 일단 외국의 청년 인재에게 한국 기업이 입사의 꿈을 심어 주기도 한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독자인 제 생각으로, 지난시절의 삼성이야말로 또 고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이야말로 인피니트 게임이 뭔지를 제대로 알았던 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정희 때 거지 나라에서 이제 먹고는 살 수 있는 나라로 바꾸었다, 이런 레벨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냥그저그런 수준에서 일류로 도약하는 건 넥스트 레벨 이슈이기 때문이죠. 흙수저가 건실한 중견 기업을 일으킬 수는 있는데(이것도 물론 보기 드물지만), 이런 기업이 재벌급으로 도약하는 건 완전히, 완전히 다른 난이도입니다. 

 

책에는 20세기 전반 소련의 과학자였던 바빌로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스탈린에 의해 탄압 받고, 동시에 그의 조국은 2차대전이 터지자 레닌그라드 공방전 등 나치 독일의 침략에 의해 엄청난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로프의 대의에 찬성하던 동료 과학자들은 이런 이중고에도 굴하지 않고 본연의 업적에만 몰두했다고 하는데, 요즘 돈 몇 푼만 더 쥐어주면 불순한 나라의 불순한 기업에 매수되어 일회성 도구로 쓰이다가 결국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불쌍한 일부 엔지니어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화지요. 이런 정의로운 과학자들 역시,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인피니트 게임을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여기까지 책을 읽고도 독자들이 이미 눈치를 챌 수 있겠지만, 저자가 "유한 게임"이라 부르는 판에서 플레이어들은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목표에 보다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무한 게임 플레이어, 적어도 자신이 지금 무한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이들은 보다 긴 안목으로 상황을 봅니다. 오늘 보고 내일 다시 안 보겠다 싶은 사람하고는 얼마든지 안면몰수하고 더티한 게임을 할 유인이 생기는 법입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무한게임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대의 명분을 보고 간다"입니다. 

 

오래가는 기업은 그 수뇌가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보면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 운 좋게 큰 돈을 손에 넣고 한때 행세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잘나가는 기세가 언제까지 가느냐가 문제인데, 모든 사장 모든 회장이 그 끗발 그대로 가는 게 아니고, 그릇과 깜냥이 안 되는 인간은 반드시 무리수를 두다가 꼴아박고 전과자가 되거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해서 전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무슨 정주영이다 이병철이다 하는 뭐 이런 사람들은 그런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훨씬 먼 그림을 보고 승부를 걸었기에 그 기업이 이처럼 자식 대에까지 오래 가는 거지, 무슨 자선사업가로 살았다거나 심성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었으나, 적어도 남들 눈에 그 속이 훤히 내비치는 얕은 수는 안 썼다는 거죠. 졸부, 사기꾼이나 잡범을 보면 제딴에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기발한 수를 내는데, 남들이 절대 눈치를 못 챌 것이라고 엄청 의기양양해 합니다. 남이 보면 속이 그 훤히 들여다보이는 꼴이 참 우습기 짝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수중에 돈이 오래 머물지를 않는 것입니다.

 

인피니트 게임 플레이어는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진정하게 마음을 사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도 신중합니다. 저자는 예를 들기를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오늘 나에게는 계획이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던 그 유명한 연설에 주목하자고 합니다. 꿈이 있다고 하니 설령 흑인 민권 운동에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했던 백인들조차, 저 연설을 듣고 인류 보편의 양심과 가치에 호소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인피니트 게임 플레이어는 사려깊습니다. 사려깊다는 평판을 듣기 때문에 그의 활약과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 받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 자본주의에 크게 실망하고, 이 체제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며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게, 2008년 주식시장으로 대변되는 금융 시스템이 대단히 큰 모순에 가득하고, 소수의 비합리적인 이익에만 종사한다(실제 기여하는 바도 적은)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져야지, 오히려 거액의 성과금을 나눠갖는다, 뭐 이래서는 안 되죠. 차라리 그런 돈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전개하는 사업가한테 가도 가야 마땅한 것이고.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밀턴 프리드먼이 한 말, 즉 "기업의 목적은 언제나 이익 극대화이다"를 거론하며, 이제는 이런 마인드로 기업을 운영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무한게임 리더는 직원을 자원으로만 보지 않고, 먼 여정 동안 같이 가야 할 동료로 보기 때문에 직원에 대한 처우부터를 달리합니다. 구태 블랙 기업이나 일부 악질 사회단체에서 직원들을 그저 expendable로 보고 함    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하게 만드는 걸 보면 이들의 안목이 얼마나 좁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로는 노동이 최고 지상의 가치인 양 떠들지만, 실제로는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마치 자신들이 그들에게 큰 은혜나 베푸는 양, 자본가가 노동자를 하대하는 것보다 더 졸로 취급합니다. 영혼을 무슨 집단내 촤상위 포식자에게 위탁한 것처럼 얼빠진 혼자만의 충성을 바치는 최말단 분자의 모습을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건 사람이 아니라 좀비라고 봐야 마땅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저 주주에게만 최선을 다하는 회사가 아니라, 주주가 아니라도 예컨대 공장이 위치한 지역 내 주민이나 불특정 다수 소비자처럼 자신의 회사와 직간접으로 이해를 함께하는 이른바 셰어홀더들도 중시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포드라든가 잭 웰치 같은 사람들도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지역 주민이나 노동자에게도 매우 전향적인 태도로 대한 것입니다. 판을 길게 보고 더 깊은 사려를 베풀어 사람을 대하는 것과, 날품팔이처럼 내일 이후로는 이 사람을 안 볼 것으로 작정하고 이용 대상으로 삼는 쓰레기들의 미래가 결코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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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소액 땅 투자 바이블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2-07-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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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돈 되는 소액 땅 투자 바이블

이승주 저
세종미디어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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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슬픈 일이지만 직장에서 레귤러한 급여만 받아서는 부자가 되기 힘들 뿐 아니라, 내 집 마련도 무척 힘들다는 게 이미 사회적인 중론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투자라는 걸 해야 하며, 이 투자가 행여 투기가 되지 않게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가 돌아가는 판을 읽는 안목을 키우는 노력이 또한 필수가 된 요즘입니다. 주식 투자, 코인 투자도 최근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불패"라며 선망해 온 투자 대상은 부동산이겠습니다. 

 

저자는 우선 최근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기획부동산을 지적하며 조심할 것을 촉구합니다. 소액으로 지분 투자만 하는 것도 가능하며 큰 수익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일단은 솔깃하게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하나의 팁은, "공유지분 등기로만 진행하는 법(p57)"입니다. 기획부동산에서는 공동지분 등기라는 방법을 쓰는데, 이것은 책 p56에 나오듯 타 지분 소유자의 동의를 일일이 얻어야 처분이 가능한 등 온갖 제약이 따르고 사실상 (나는 돈만 대고) 사업의 방향은 기획부동산 측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재산권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총유"도 있는데 이건 뭐 개인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이 되지 않는지라 재산권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죠. p261을 보면 종중 땅 같은 건 아예 개인 땅으로 치지도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명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전에는 조선, 동아, 중앙 같은 메이저 신문의 지면에는 광고란 역시 삼성, 현대, 대우 등 재벌기업이나 제공하는 게 보통이었고 광고를 통해 시대의 다양한 얼굴을 엿보는 순기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게 과연 정론지인지 전단지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온갖 난잡한 광고가 판을 치는데 그만큼 종이신문의 위상이 하락하여 광고 미디어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올바른 정보를 얻으려면 신문을 보라고 충고합니다. "궁금하면 검색 한 번 하고 말지" 같은 생각을 말라고도 합니다. 사실 검색도 실력이 천차만별이며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 올바른 정보를 찾으려면 평소에 실력을 키워 놓아야 합니다. 

 

신문을 봐도 그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경제신문은 난도가 더 높겠지요. 저자는 경제신문 읽기가 잘 안되는 이들을 위해 "목적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라"며 좋은 충고를 해 줍니다. 목적의식이 없으면 기사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목적의식을 미리 장착하면 그때부터는 글이 다른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할 뿐더러, 혹 모르는 말이 나와도 그 뜻을 찾아가며 의욕적으로 읽고 머리 속에 지식을 정리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사실 이건 경제지식뿐 아니라 영어 독해 실력을 늘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 안되겠거든 영어로 된 "야한 소설"을 읽으면서 실력을 키우라고도 하죠. 목적의식(?)이 확실히 생기니 말입니다. 

 

신문을 보고 얻은 정보를 다 믿어야 하는가? 물론 아닙니다. 그 중에는 엉터리 정보도 있고 무슨 주식 종목에 호재가 있다고 섣부른 보도를 내었다가 결과적으로 오보를 내어 독자나 투자자를 분개하게 만드는 것도 많습니다. 어떤 게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은, 결국은 오랜 연습을 통해 자신이 키우는 수밖에 없고 사실 정답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저자님 역시 처음에는 초짜로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가 지금 안정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경지에 이른 어떤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사실 기사를 읽다 보면, 와 이런 기사를 쓰려면 발품깨나 팔고 고생깨나 했겠다 싶은, 노력의 결과물로 짐작되는 게 무척 많습니다. 그런 걸 인터넷을 통해 (아닌 것도 있지만) 대부분 공짜로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정적으로 종이신문을 (한 부에 천 원 정도를 주고) 매일 읽어 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해 본 사람은 이게 맞는 말씀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부동산 투자를 처음 하는 사람은 온갖 낯설고 어려운 용어 때문에라도 좌절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p60 같은 곳에서 환지와 대토 사이의 차이를 처음에 헷갈렸던 체험을 공유합니다. 꼭 어떤 일타강사가 잘 정리해서 가르쳐 줘야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목적의식이 확고하면 결국은 이리저리 부딪혀 가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저자가 시행착오를 솔직히 공유하면서 친절히 독자에게 이런저런 요령을 가르쳐 주는 친절함이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되는 사람 따로 있고 안 되는 사람 따로 있다면 누가 부동산을 시작하겠습니까. 

 

주식도 그렇지만 부동산 역시, 대체 뭐가 싼 땅이고 뭐가 비싼 땅인지 그 기준부터 잘 잡아야 실패가 없습니다. p80을 보면 어떤 분이 저자께 "저렴한 땅이 있는데 왜 비싼 땅을 사는지를 모르겠다"고 한 일화가 나옵니다. 저렴하다 아니다의 기준이, 자기가 들었던 것보다 낮으면 그걸 그냥 싸다고 여겨버리는 건데 이런 건 투자에서 절대 멀리해야 할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판단입니다. 이런 지적은 참 초보로서 가슴이 아픈 대목이겠는데, 이게 저자 같은 고수에게는 확 다가오는 건데 초짜들은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고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가격만 죽 보고 그 나름대로 가격 감각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저자는 그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현장을 부지런히 다니고 현장에서 실제로 형성되고 호가되는 가격을 봐야 감각도 올바른 감각이 생긴다는 거죠. 

 

저자는 부동산 투자를 놓고, 책 서두에서 대뜸 한국인만이 가질 수있는 유리한 점도 이야기해 줍니다. 우선 한국은 미리 계획 발표를 하고 그에 따라 개발이 진행되기에(법이 이를 강제하니까요) 결과를 알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아 어떤 사람은 계획 결과를 미리 알고.... 하는 말이 나오겠지만 그건 내부자 정보에 가까운 불법이고, 외국은 애초에 계획 같은 게 없으며 이런저런 개발업자들이 각자 진행하다 어떤 균형점이 나중에 형성되는 게 보통입니다. 또 한국은 공시지가, 지적 정보 같은 게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누구에게나 오픈됩니다. 이 점 역시 확실히 일반 투자자가 사기 피해를 그나마 덜 받을 수 있게 보호되는 장치임이 틀림없죠. 

 

과연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에서 주택값이 살아날 것인가? 여기에 대해 저자는 인구 감소 추세야 맞지만 사람이 모이는 수도권의 부동산은 사정이 다르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방의 부동산은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인데,  p137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밭 중에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가격은 저렴한 게 있으니 이를 고르는 요령을 설명합니다. 1) 대도시에서 40km 이내에 위치 2) 건축을 위해서는 폭 4m 이상 붙어있는 논밭 3) 1~2억 단위로 쪼갤 수 있는 논밭 4) 그저 경사가 많이 졌다는 등 하자 있는 땅. 특히 4)는 경사도가 너무 지나치면 안 되지만(허가가 안 남), 그렇지 않고 향후 입지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 가치가 있다고 조언하네요. 물론 이것도 여러 다른 사정을 두루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린벨트로 묶인 곳은 아무래도 너무 큰 모험이지 싶지만 저자는 이런저런 가능성을 다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얼마 전 타계한 어느 시장분도 마지막까지 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소속 당이나 청와대와 굉장히 대립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노련한 투자 고수들은, 개발이 아직 되지 않은, 하자 있는 땅을 찾는다.(p146)" 재미있는 게, 사실 "기획부동산"이란 단어 자체는 원래 굉장히 좋은 뜻이었습니다. 아닐 것 같은 땅을 잘 발굴하여 멋진 컨셉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창의적인 사업가의 "기획부동산"인데(본래 개발업자가 하는 일이, 기획부동산 만드는 일이죠), 우리나라만 일부 악덕업자들이 전체 판을 흐리는 판에 기획부동산 하면 사기가 대번에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p153, p242)

 

책에는 재미있는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 아주 지능이 높은 사람은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태여 사기를 안 쳐도 돈을 벌 능력이 되기 때문이죠. 바꿔 말하면 정해진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대개 지능이 낮아서 그렇게 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럼 일반인 입장에서도, 조심하면 사기 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거죠. 이미 전과도 있고 막장이다 싶어서 뻔한 사기를 치는 경우만 조심하면 되며, 당했다 해도 이런 수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구제책이 법적으로 있다고도 합니다. 

 

서류만으로 땅을 확인하는 건 아주 어리석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또 아니라고 해도 땅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은 서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임장이다(p173)." 임장시에는 최대한 편한 차림으로 가라고도 하는데 괜히 있어 보이려고 정장 차림으로 갔다가 옷 더렵혀질까봐 살필 것을 제대로 못 살핀다면(p177) 이것이야말로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답사만 잘 해도, 100만원 벌 것을 200만, 300만 더 벌 수 있다고도 합니다. 업체나 영업사원이 내미는 서류만 믿지 말고(p173), 토지이용계획서(구청이나 군청 등에서), 지적도, 토지 대장 등을 반드시 확인하라고 조언합니다(p120, p175). "다른 건 몰라도 투자는 내가 공부를 해서 확실할 때 투자를 해야 한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공부를 해서 아 이거다 확신이 들어도 100% 성공하라는 법은 물론 없지만, 이건 나의 능력 한계이므로 어쩔 수가 없는 것이고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다면 확률 자체가 커지므로 결과도 더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그저 느낌만으로, 혹은 남 말만 듣고 투자를 하면 이건 이미 투자가 아니라 투전판에서 노름을 하는 것입니다. 

 

건물뿐 아니라 땅도 리모델링(p168, p208)이 가능하죠. 저자는 1) 환경미화가 첫째라고 하는데 리모델링 자체가 이미 겉모습을 멀끔하게 보이게 하는 데에 주안이 놓이는 작업입니다. 2) 도로면과 지대 높이를 최대한 맞춰야 하며, 3) 지나치게 큰 땅은 분할하고 4) 어떤 땅은 합병하며 5) 땅을 메우거나 깎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 경우 비용이 얼마나 들지, 이렇게 리모델링해서 얻을 이익과 비교하는 과정도 꼭 거쳐야 하겠습니다. "토지 투자는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p141, p255)." 그러나 p241에 보면 기획부동산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저런 통념을 노리고, 즉 결과가 한참 뒤에 나온다는 점을 악용하여 사기를 친다고도 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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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소셜리즘 | 경제경영/자기계발 2022-07-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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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테크노소셜리즘

브렛 킹,리처드 페티 공저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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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위기를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마라(p51)." 이 말은 2차 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위기"와 "기회"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전제를 깔며, 위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한 개인, 집단은 이후 새로운 번영과 평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함의도 갖습니다. 

 

어떤 위험이 닥쳤을 때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첫째 도피(flight), 둘째 투쟁(fight)이 있다고들 합니다. 책에서는 이런 예를 드는데,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려 들면 이는 분명 근로자의 위치를 위협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위협이 없다고 판명이 될 때까지 인공지능의 이용을 일절 금지한다, 이러기라도 하면, 인공지능 같은 좋은 기술이 사회에 쓰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즉 이래도 위험, 저래도 위험이라는 딜레마에 빠지는 건데, 저자는 특히 현대에는 주류 미디어 외에 소셜 미디어가 발달해서, 특정한 위험이 과장되거나 방향성이 왜곡될 수 있다고 합니다. 

 

코비드 19 역시 미국 일각에서 백신 접종 거부 운동이 일어나서 문제가 된 적 있습니다. 저자는 과거 콜레라, 홍역, 소아마비의 경우에도 이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과거에는 소셜 미디어라는 게 없었고 기껏해야 일부 이해가 부족한 층의 입소문 정도가 있었을 뿐이라, 백신 접종 거부 움직임을 통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어떤 첨단 기술에 대해서라도, 초창기 이의 도입에 대한 거부 움직임은 항상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스트리밍 기술이 그것인데 냅스터, 비트토렌트(p74) 등도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엄청 큰 저항을 받았더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웹상에서 컨텐츠를 즐기는 가장 유력한 통로가 바로 스트리밍입니다. 이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란 거부하고 싶어서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질병에 대한 새로운 백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여태 인류가 누려 보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편의와 즐거움을 창출할 것입니다. 또 이를 처음 개발한 소수의 개인이나 회사들도, 아마 20세기 제조업을 영위하던 어떤 대기업도 장악하지 못한 거대한 권력과 부를 손에 넣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불평등 지수의 심화로 이미 우리가 일부나마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수 기업이나 개인들이, 손에 넣은 그 부와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 없게끔 잘 다룰 성숙함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요?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습니다. 

 

현 시점에서 세계 경제의 가장 으뜸가는 화두는 단연 인플레이션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혹은 우리 나라도 급격히 상승한 물가를 잡으러 동분서주하고, 당장 경제주체들에게는 큰 희생이 따르는 금리 인상을 큰 폭으로 단행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MMT라는 학파가 있어서, 적어도 기축 통화국의 경우 아무리 화폐를 많이 발행해도 경제 시스템이 새로이 만들어내는 편익이 이를 흡수할 수 있기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각국이 눈앞에 다가온 물가상승에 고전하는 걸 보며 이런 입장은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나아가 스태그플래이션은 여전히, 반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류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상기시키는데 이에는 당시 석유 공급 부족 문제가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와 지금, 혹은 2008년과 지금이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블록체인이 있고 없고를 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산형 시스템의 출현으로 인해 금융은 큰 변모를 겪게 되고, 무엇보다 "기존의 시스템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한 게 큰 성과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의 영향, "분권화와 같은 테크노소셜리즘(p159)"의 바람이 부는 날, 기존의 패러다임은 폐기된다고 저자는 내다봅니다.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합니다. 불확실성은 곧 두려움을 낳습니다. 이 두려움이 과연 우리를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로 몰고갈까요. 아니면 "더 나은 미래라는 공통의 대의로 뭉치게(p190)" 할까요? 사실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겪는 순간에도 꿋꿋이 살아남았습니다. 벌써 저자가 이런 불확실성의 효과가 거꾸로 인류를 공통의 대의로 단합시킬 수 있다고 보는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또 그런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하리라고 어떤 확신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지난 트럼프 정부 하에서 미국은 특히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 문제로 크게 대립했습니다. 저자는 이민과 이민자 자체가 경제 혁신과 활력을 불어넣는 커다란 동력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미국 유수의 기업 CEO 자리에까지 오른 여러 엘리트들 중 얼마나 이민자 출신이 많은지도 열거합니다. 이들은 탁월한 재능과 그 재능을 효과적으로 발현시키는 교육에 의해 그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으며 저자는 이와 관련 미래를 바꾸는 동력은 혁신된 교육 제도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로스터 시스템, 커뮤니티 멘토링 등이 이를 가능케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자본주의에는 많은 결함이 있고 저자는 대체로 자본주의 자체 논리로는 이런 잘못을 수정하기 힘들다고 보는 듯합니다. 중국의 미래 역할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파악하며 책 앞부분에는 "인류 역사 대부분은 중국 중심으로 작동했으며 앞으로 다시 그 흐름으로 복귀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어째 혁신이나 패러다임 교체의 기조와는 다소 동떨어진 주장 같이도 보이지만, 홍콩의 2019년 민주화 바람에 대해서는 또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기본소득 이슈 역시 저자는 매우 호의적으로 파악하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시범 실시된 UBI에 대해서도 기분 좋게 소개합니다. 삶의 선택권 제공, 시민들의 자율적 참여 확대라는 바람직한 결과가 이 사업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시스템일수록 투명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투명성이 오늘날만큼 가능해진 시대도 없었다." 플라톤은 이른바 철인정치를 주창했는데 이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독재와 전제로부터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는 싱가포르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예시하며, 그러나 이런 "자비로운 전제국가"에 사는 시민들이 과연 행복하겠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중국인들이 현재 크게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정부가 중산층의 삶과 경제적 부를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랍니다. 20년 전만 해도 1억에 가까웠던 중국 극빈층이 2020년 기준 0에 가까워졌다는 통계도 이 책에서 제시되는데 평가는 글쎄 독자의 몫이겠습니다.  

 

일대일로라고 해서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인프라 건설을 시도하며, AiiB라는 것도 이 명칭 안에 인프라라는 말이 들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웬만해선 해당 국가들에 대해 대출금을 회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그 이유는 중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신경제 식민주의"가 아니라, 세계 무역에의 지배이기 때문이라서입니다.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조금 이해가 힘들긴 합니다. 또 불과 며칠 전 스리랑카 국가 부도 사태, 정부 붕괴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 역시 중국 측의 채권 회수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인공지능은, 이 테크노소셜리즘의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 기반이 될 것이며, 이의 발전과 채용에 인류는 무조적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를 위해서 인류의 비전은 종래의 GDP 지상주의 같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이고 정성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인공지능은 장차 현대인의 삶을 떠받칠 스마트 시티 운용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며, 자동화된 정부는 큰 정부(의 큰 간섭)을 방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선택의 지금 우리의 몫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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