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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낭패

미아우 저
마카롱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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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목의 낭패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그 의미이며, p222에 작품에서 갖는 뜻이 정약용 대감의 입을 통해 정확히 설명됩니다. 신분의 차이는 극과 극이지만 주인공 재겸과 임금 정조가 서로를 도우며 각자의 장기를 발휘한다면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국체를 보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목이 약간 스포인데,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이걸 미리 짐작할 독자가 거의 없지 싶습니다. 

모험 소설에서 주인공은 어떤 극단적인 비극을 겪고 큰 원한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테츠로)도 그런 경우인데, 철이는 별 힘도 재능도 없는 처지에서 메텔의 일방적인 도움과 보살핌만 받고 긴 여정을 이어가지만 여튼 거기서도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철이는 가끔 메텔의 정체, 진의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했죠. 이게 시청자에게 뜻밖의 긴장을 유발하는 한  포인트였습니다.

재겸은 어렸을 때 끔찍한 일을 겪고 내내 누명을 쓰고 떠도는 신세입니다만 그 과정에서 대단한 능력 하나를 키웠는데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마음을 읽어내는 놀라운 재주입니다. 우리가 감정 변화를 알 수 없는 사람을 가리켜 포커페이스라고 하듯, 본래 표정관리는 도박판에서 아주 중요한 팩터 중 하나이겠습니다. 재겸은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얼굴이나 상반신 근육이 보이는 미세한 변화로부터 그 사람의 감정 동요를 알아내는(p60) 달인인데, 그저 감각적으로 결론을 내는 게 아니라 과정의 이론화까지 가능합니다.  

이 재주를 통해 형사 난제 사건을 하나 해결한 그는 참의 정약용의 주선을 통해 무려 정조 임금의 손발 노릇, 즉 팽례의 일을 맡게 됩니다. 이 과정이 무척 재미있는데, 정조의 서찰을 읽는 표정, 또 거기에 대해 답신을 쓰는 품을 보고 그의 속내를 알아채는 게 팽례의 소임입니다. 서신을 주고받는 상대는 대사헌 심환지(나중에 이조판서. p176)인데, 이 소설에서 매 챕터 제사로 인용되는 구절들이 역사상 그들 사이에 실제 오갔던 편지들에서 발췌한 것들입니다. 편지는 그저 안부를 전하고 군신간의 그윽한 정을 확인하는 수단이 아니고, 거꾸로 상대의 속을 읽고 타격을 주거나 이용할 구석을 캐내는, 소름끼치는 소통 방법입니다. 번지르르한 언사 안에 칼을 감추고 남을 쓰러뜨릴 궁리에만 몰두하는 두 점잖은(그렇게 보이는) 귀인을 떠올려 보십시오.

길평이라는 이름의 단주에게 끔찍한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평생을 망치다시피한 재겸, 마치 에드몽 당테스의 처지와도 닮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파리아 신부 같은 은인 없이 혼자 힘으로 진상을 알아내고 수완을 키웠다는 점인데, 제법 많은 재산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테스와는 달리 끝내 다른 거물들의 졸(卒), 종(從) 노릇에 머문다는 게 다릅니다. 우선 표정 읽기는 일종의 기술이라서 근본의 통찰력과는 구분됩니다. 다른 맥락의 도움 없이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는 등 제 꾀에 제가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p102에서 심환지가 한때 안면 마비가 왔었다는 점을 알고 결론이 크게 동요한 것도 그렇고, p187에서 아예 ooo를 모른 채 엉뚱한 oo을 하던 상대의 표정을 한참 잘못 읽은 것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라도 그게 재주에만 그치면 그 파훼법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입니다. 


다음으로, 재겸은 뿌리 깊은 피해의식 때문인지 남을 잘 믿지 못합니다. 우리 독자는 대체 왜 정조임금을 흔쾌히 믿지 못하고 구태여 심환지, 혹은 그 외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지 재겸이 이해 안 될 수 있지만 그건 소설 속에 나오듯 죽을 고생 여러 번 하고 윗사람한테 지독한 배신을 당한 과거가 있기에 납득이 되긴 합니다. 운에 맡기는 식이 되거나 맹목적인 충성파는 곤란하고 자기만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살아남죠. 너무 똑똑해서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양수 같은 경우를 보면 압니다. 문제는, 재겸의 인식이 정교한 기술 체계를 넘어 그 이상의 레벨에 못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세상을 선의로 대하는 대인과, 약탈하고 거꾸러뜨리는 대상으로만 보는 음모가를 구별하는 안목도 함께 키웠어야 했습니다.

남의 표정을 읽는 달인이라고 해서 자기 표정을 남한테 안 읽히는 데 능하기도 한가, 그건 전혀 별개입니다. 읽는 능력은 정조와 심환지가 재겸만 못하지만, 안 읽히는 능력은 두 노인이 훨씬 낫습니다. 그래서 oo은 결국 oo을 곤경에 몰아넣었으나, 이를 oo이 역으로 되받아쳐 게임이 유리하게 굴러간 것이며 냉정하게 보면 재겸은 오히려 판을 더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양들의 침묵>에서 스탈링이 닥터 렉터에게 그 놀라운 능력을 칭찬하다가, 혹 그 능력을 자기자신에게 투사해 보면 무슨 결과가 나오겠냐고 쏘아붙이는 장면도 생각났습니다. 

소설이 다 끝나갈 무렵에 왜 ooo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나오는지 의아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속담에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 있는데 정확히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입니다. 결말에 너무 강렬한 반전이 있어서 약간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양반은 존재 자체가 oo이기에 꼭꼭 숨겨 놓아야 했나 봅니다. 소설에서는 이처럼 ooo, 또 ooo 등이 나라 망친 역적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는 알 수 없고 오히려 정조의 지나친 게임 중독(!)이 망국을 앞당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 아무튼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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