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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 마뇨의 마법서 2021-09-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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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헤세와 융

미구엘 세라노 저/박광자,이미선 역
BOOKULOVE | 202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만날 수 없는 분들을 만났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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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의 만남

 

 

헤세는 갸름한 얼굴에 밝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흰옷을 입은 그는 고행자나 고해자처럼 보였다. 백단향의 향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칠레의 작가 겸 외교관인 미구엘 세라노가 헤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다.

그가 표현하는 헤세의 모습은 작가라기보다는 현자의 모습으로 비친다.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 헤르만 헤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문학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마술적인 만남이었다.

 

 

뭔가 전문적인 글일 거라 짐작했던 이 책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미구엘 세라노의 글엔 경건함과 존경이 묻어 있었다.

매번 그가 헤세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선 내 마음마저 경건해졌다.

칠레에선 작가들을 외교관으로 파견하는 사례가 있다던데 그가 인도 외교관으로 발령 난 것이 매우 합당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헤세가 융과의 교류로 마음의 안정을 얻고, 그 안정이 그의 작품세계에 담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헤세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평소 헤세를 만나고 싶어 했던 아들과 함께 헤세를 찾아가는 그의 설레고 뿌듯한 마음이 내게로 전해졌다.

하지만 헤세는 이미 영면에 들었고 존경하던 작가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 들은 미구엘은 그날 헤세가 즐겨 듣던 음반을 사가지고 돌아간다.

 

헤세와 함께 음악을 들을 생각이었다. 헤세에게 내 감각을 빌려주어 음악을 듣도록 해드리고 동시에 그가 내 곁에 있음을 느껴보고자 했다.

 

 

그가 헤세의 죽음을 기리는 장면이 참 아름다우면서도 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헤세, 융, 세라노는 그들의 비밀 클럽에서 서로 연결되었던 영혼들이 아니었을까?

 

융과의 만남

 


 

제일 감동받은 것은 그를 에워싼 비밀의, 혹은 신비한 기운이었다. 게다가 이 온화한 인물은 잔인하고 파괴적인 면도 있어서, 불꽃이 여기에 불을 붙이는 경우 예기치 않게 그런 면이 불쑥 튀어나올 수 있었다. 상대방을 꿰뚫어 보는 그의 눈은 안경 너머를, 어쩌면 시간 너머를 보는 것 같았고, 코는 매부리코였다.

 

 

구스타브 융과의 만남은 내게 좀 어려운 부분이었다.

헤세와의 만남이 경건함과 조심스러움으로 이루어졌다면 융과의 만남은 진지함과 격렬함을 동반한 토론의 시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만 알았던 융의 생각들을 대화체로 읽고 있자니 융이라는 사람이 가진 신비한 매력이 눈에 보이는 거 같다.

 

"박사님은 백인들이 머리로 생각한다고 믿으십니까?"

"아뇨, 그들은 그저 혀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저 말로만, 오늘날에는 로고스를 대신하는 말로만 생각합니다...."

 

제가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자아>와 무의식의 사이, 양쪽에서부터 똑같은 거리에 있는 이상적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완성 상태, 혹은 전체성의 상태에 있는 개체성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일 겁니다.

 

"정신은 정신을 끌어들입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만 만납니다. 우리는 무의식에 의해 지시를 받는데, 무의식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인들에게 뭔가 조언을 해야 할 때 잘 해주는 말이 있다.

"너 자신에게 물어봐. 너의 무의식이야말로 너를 가장 잘 아니까. 너에게 가장 최선의 길을 알고 있는 건 바로 너의 무의식이야."

융에 대해 알지 못했어도, 나는 가끔 마음이 하는 소리가 진정한 것임을 깨달은 경험이 몇 번 있다.

이 무의식에 대한 대화를 들으며 융의 생각들 중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해졌다.

 

헤세와 융과 세라노는 서로 다른 듯 닮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거 같다.

마치 꼭 만나야 할 사람들처럼.

 

이 책에는 많은 것이 담겼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저 서로 왕래한 유명 인사들의 모습만 볼 수도 있고.

헤세의 사유와 융의 분석을 이해할 수도 있고.

그들의 필체를 만나 볼 수도 있고.

그들의 노년의 모습을 그림처럼 엿볼 수도 있고.

그들의 영적인 삶을 가까이 느껴 볼 수도 있고.

말로만 들었던 분들의 생각과 그들의 마지막을 느껴 볼 수도 있다.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는 읽은 자의 몫이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얻었고

융의 무의식에 대한 것을 아주 조금 이해했으며

이들이 보통 인간과는 다른 영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에 경건함을 느꼈다.

 

세 사람 다 <인도>에 매력을 느꼈지만 가본 사람은 융과 세라노뿐이었다.

헤세가 인도에 가봤더라면 어떤 작품이 탄생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뭔가 심오하면서도 아득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영혼이 이어졌던 헤세와 융은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

그들을 이어갈 '제자'들이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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