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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 리뷰쓰기 2023-09-2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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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름다운 사람 하나

고정희 저
문학동네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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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하나, 고정희

 


 

 

 

문학동네포에지는 절판된 시집을 다시 복간해 출간한 시집이다. 고정희 시인의 이 시집은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라고 한다. 문학동네에서 고정희시인의 시집을 복간해주어 감사하다. 오랜만에 연서와 같은 시집을 읽었다. 시인의 말에서도 나오듯 이 시집은 사랑의 시집, 연시집이다. 함축적인 의미나 시 안에 담겨있는 의미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사랑이 가득한 시집이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당신께 바친다는 시집. 무심하고 미운 당신이어도 결국엔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 되고마는 것이 사랑이겠다. 그리우면 눈물이 나는 것이 사랑이겠다. 사랑이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는 바보같은 사람에게 사랑을 쏟아부어주는 시집이 여기 있다.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울수없는얼굴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한 잔에서 목 축이지 못하는 오늘은
우리들 겸허한 허리를 구부려
서로의 잔에 그리움을 붓자
서로의 잔이 넘치게 하자
#가을을보내며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 지는 하늘에 쓰네
#하늘에쓰네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 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 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가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그대생각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그리우면나는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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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마주하다 | 리뷰쓰기 2023-09-1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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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혼자 남은 마음에게

김현경,송재은 편
웜그레이앤블루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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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마음에게,

김현경 송재은 엮음


 


이별과 함께 했던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스무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이별의 순간들을 담았다. 이별은 헤어지는 그 순간만은 아니다. 헤어지기 전과 헤어지는 순간과 헤어지고 난 후의 마음들이 먼지처럼 부유하고 그 시간들을 감내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다 만난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그 순간순간을 찬찬히 조용히 보았다. 어쩐지 읽었다기보다 본 것만 같다. 20편의 다양한 이별의 순간들. 그 순간이 슬프기도, 아프기도, 토닥여주기도 하면서. 하루종일 영화관에 앉아 단편영화들을 본 기분이 들었다. 감정은 전염되고 물들기 마련이라 행복이나 기쁜 기억보다 이별이라는 것이 마음을 자꾸만 멍들게 했다. 이별은 헤어짐이 전부가 아니라 만남도, 사랑도, 시간이 전부 들어있는 관계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이별에는 관계가 부서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를 잃어버리고 자식의 성장으로 멀어지고 유년시절의 나와 헤어지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반려동물을 보낸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반려동물이든 나자신이든 모든 건 헤어지는 게 이별이다. '이별 앞에서 어떤 모습일까. 애써 감정을 죽인 한낮과 달리 새벽엔 있는 힘껏 숨겼던 마음을 드러내도 되는(p.65)' 것처럼 엉엉 울며 이별을 마주하는 시간도 있다. '늙어간다는 건 가까운 죽음에 익숙해지는 일(p.80)'이건지, 생경한 죽음앞에 멍해지기도 한다.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 좋아했던 사람에게서 나와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 차이점이 내가 상대방을 좋아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p.178)'했다가도 그냥 이렇게 됐네, 하고 무덤덤하게 넘어가지지 않는 게 이별이기도 하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결국 이별로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시시한 이유(p.127)'로 미리 끝내버리는 시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잃게 될지라도 기억하고 껴안고 싶어하는 마음이 용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p.127)'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시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이도형 작가의 #당신이떠난세계에한권의시집처럼남아 가 기억에 남는다. 허수경이 시인은 이미 세상에 없고 감사하는 마음을 보낼 길이 없다. 그래서 쓴다는 작가의 글이 마음을 울렸다. 시로 인해 위로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슬퍼하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여전히 나는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시를 읽곤 한다. 나역시 시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한다.

 


 

 

우리는 고여 있는 시절과 흘러가는 시간이 뒤섞인 삶을 살아간다. 엉켜버린 채라도 어쩌겠는가. 영원의 안식처는 없어도 어둠 속에서 의지할 작은 빛이 있으니 다행인거지. p.165
#종점이별의로터리 #오종길

 

오종길 작가의 말처럼 어둠 속에서 의지할 작은 빛을 등대삼아 느리지만 한걸음씩 내딛는거라고 믿는다. 그 빛이 누군가에겐 사람일수도 책일수도 음악일수도 영화일수도 있겠다.
혼자남은 마음에게 말한다. 그동안 함께 했던 이별의 시간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은 늘 만남뿐만 아니라 이별이 함께하므로. 이별에 아파하고 슬퍼하는 어제의 나와 헤어지고 내일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서둘러 떠나보내지 말고 서서히 이별하기로 한다. 어쩌면 그 끝을 보고싶지 않은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남은 마음이, 허전한 그 마음이 오래오래 가슴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으로 따뜻하게 감싸져 있던 마음이 혼자가 되어버리면, 전에는 혼자서도 잘 버텨냈던 차가움이 훨씬 시리게 느껴(p.202)' 지니까 말이다.

 


 


알고보면 이별은 우리의 일상. 우리는 무수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며 산다. 타인과, 나와, 어제와 그리고 오늘과 자꾸 헤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다만 어떻게 하면 잘 이별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잘 남겨지고, 잘 보내는 법. 잘 떠나고 잘 남겨두는 법. 그런 것들을 고민하다보면 나는 애초에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다는 진실만이 또렷해진다. 그 진실을 기억해야만 잘 이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나는 오늘도 이별하러 간다. p.38
#서서히이별하는일 #박상희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웜그레이앤블루 크루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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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가의 발견! | 리뷰쓰기 2023-09-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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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보다 : 겨울 2022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저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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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오는 <소설 보다? 시리즈는 계절마다 짧은 단편소설을 모아 출간하고 있다.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과 비슷하지만 3편 정도로 이루어져 있어 읽기가 편하고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어 좋다.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홍보마케팅에 걸리지 않는 책은 찾아내기가 어려운 요즘, 새로운 작가, 젋은 작가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라 마음에 든다.

 

김채원 빛 가운데 걷기

그것이 내 잘못은 아니야.

노인은 중얼거렸다. 나는 그걸 알고 있어.”

 

노인은 자살한 딸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불행에 익숙한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애쓰는 삶은 얼마나 아픈가.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적확하고 명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하지만 삶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의미도 이해도 오롯이 내가 알아차릴 날이 올까.

 

성혜령 버섯 농장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도와주겠다는 말을 안 했어. 너 어딘가 잘못된 거 아냐?”

 

진화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에 홀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반면 기진은 사고로 부모는 잃었지만 부모의 유산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아간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삶의 형태는 둘을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으로 둘은 다시 함께 하게 된다. 관계는 늘 어렵고 둘이 공모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또한 씁쓸하다.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먹어야 한다.’ 직관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을까?”

 

화자는 꿈속에서는 연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지만 꿈 밖에서는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할머니와 엄마, 화자까지 이어지는 삶. 먹고, 먹이고, 살아가는 삶. ‘먹고 사는 일이 지긋지긋하고 서글플 지언정 그럼에도 우리는 먹고 먹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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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여린 빛일지라도 | 리뷰쓰기 2023-09-1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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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측광

채길우 저
창비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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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닌 깜빡임”
깊고 어두운 현실에서 길어 올린 작고 여린 빛 한조각

 


 

 

시인의 시에는 여리고 약하고 외로운 존재들이 가득하다. 간병과 병원, 할머니와 아이. 고독과 슬픔. 우리 삶 속에 들러붙어 있는 어두운 진실들. 우리가 외면하는 삶의 낮은 자리를 시인은 아름다운 언어로 들려준다. 보청기를 빼고 잠든 그의 세상이 형광빛 해파리들의 묵으로 속삭이는 풍경으로 보인다. 찢기고 바스러진 몸을 껴안으며 오래오래 살자고 말한다. 굳은 각질에 싸인 아이의 눈두덩이를 어루만지며 일어나길 바라는 숙모의 마음이 아프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곳은 병원. 확실하고 부재하는 장면들이 더 많이 보이는 곳이 바로 병원. 그렇게 시인은 불편하고 두려운, 슬프고 외로운 삶을 본다. 그러나 철봉에 매달려 가장 낮은 바닥에서 기운차게 하늘 가까이 날아오르듯 어서어서 자라나길 바라면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힘든 삶일지라도. 작고 여린 빛 한 조각뿐이어도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가 불을 끄고 눈을 감은
부드러운 잠과 모로 누운 어둠 속
서서히 가라앉는 수심으로부터
빈 동굴 안으로 밀려온
풍부하고 차가운 별자리처럼
잔물결 잇댄 수면과 구름 낀 하늘 위로
동시에 비쳤다 번져가는 폭죽처럼
떠오르는 수많은 형광빛 해파리들의
묵음으로 속삭이는 깊고 느린 춤과 명멸을
황홀히 지켜보기 위해
입술 막은 엄지같이 웅크려 호흡을 감춘
수줍은 질량과 눈동자
#보청기

지상에서 먼저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이의 고단한
맨발을 겨우 한번
움켜보는 밤
(..)
아무 일 아니라는 말처럼
다 기우일 뿐이라는 듯이
이내 빛 꺼진 빈틈을 채우는
익숙하고 편안한 적막과 어둠과 공포 속에서

우리는 뒤척이기도 한다
날개 없는 날갯짓을 배우며
기약 없는 천국보다 낮은 자리에서조차
오직 발 벗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구두

어느 날은 아무도 없는 뜰로 나간다.
커다란 나무가 올려다보이는 그늘에 쪼그려 앉아서
빛이 보여, 빛이 보여, 발작을 해가며
어둠 속에서조차 부신 눈을 뜨지 않은 채
나는 없는 것만 믿는다.
#병원

온몸을 쭉 펼쳐
가장 낮은 바닥에  닿을 듯하다가
기운차게 팔 굽혀 처마까지
되짚어 오르는 반동으로
후드득 땀방울 흩뜨리며
다시금 흐린 하늘 가까이
대롱대롱 매달리는 임계를 시험하고
반복하는 망설임과 다짐 들을 위하여
#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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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 사랑해. 우리 오래 살자. | 리뷰쓰기 2023-09-17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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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

이유운 저
아침달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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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 이유운

 

 


 

 

 

다양한 빛깔과 모양의 마음들을 담아 보내는
내밀한 사랑의 텍스트

 

시인의 산문집을 좋아하는데 시산문집이라 그냥 좋다. 시와 시인의 산문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시와 산문의 경계를 거닐며 말하는 사랑의 단상이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이다. 시인이 들려주는 사랑의 언어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시인의 사랑은 연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선생님, 자매, 언니들, 사랑했던 공간, 사랑하는 글과 영화들까지 사랑하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오직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금 당장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같은 색의 옷을 사는 건 사랑의 사고가 아니다. 내가 좀 더 많이, 다만 느리게 걷고, 먼저 사과하고, 더 많이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고다. 이 사고에 가장 중요한 건 그야말로 '굉장한' 체력과 인내심과 여유다. p.35

 

사랑으로 움직는 사고는 지금 당장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같은 색의 옷을 사는 게 아니라 먼저 사과하고, 더 많이 고맙다고 말하는 거라고 한다. 굉장한 체력과 인내심과 여유를 가지고 사랑을 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체력도 안내심도 여유도 없는 내가 사랑이 어려운 이유를 알겠다. 

 

사랑이라는 게 이렇게 매끄럽지 않게, 시끄럽고 형편없는 모양으로 나에게 들어온다는 게 신기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것 같다. 어떤 사랑을 확신하는 데는 생각보다 명백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p.5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만 한 게 사랑은 아니다. 엉망친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명백한 이유가 없이도 사랑이 오는 것이다. 늘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사랑했던 시인, 사랑하는 일에 열심이었던 시인도 능숙해지지 못한 게 사랑이라 말한다. 사랑의 연원을 떠올리고, 그 사랑을 들여다보고, 그 모양이 아닌 자신을 탓하면서도 사랑을 사랑하는 시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엉망진창의 사랑이, 보잘것없는 사랑의 모양이, 능숙하지 못한 나의 사랑에 주저앉고 무너지고 슬퍼하며 영영 그 사랑을 잡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눈 앞에 보인다면, 들린다면, 그러면 좀 더 나을까. 받은 사랑도, 준 사랑도 아무것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사람이 또 다시 사랑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했고 무언가를 사랑했다. 쉽게 사랑하고 자주 사랑했지만 어떤 사랑의 형태에도 능숙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내가 받아온 사랑의 연원을 떠올릴 때마다, 이토록 희고 단단한 사랑을 받아왔는데 왜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랑의 모양을 가지지 못했는지 스스로를 탓하고는 한다. p.71

 

보잘 것 없는 나를 보는 일은 어려우니 거짓을 말하는 것이 낫다.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는 게 더 편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거짓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하므로 그래서 글을 쓴다는 시인의 사랑이 가득한 마음에 또다시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나는 언제나 거짓말이 하고 싶다. 진실을 말하는 일에는 너무 많은 용기와, 너무 차가운 마음과, 너무 보잘 것 없는 내가 필요하다. (...) 거짓말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무도 슬프게 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래서 글을 쓴다. p.73

 

시인의 글 중에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글이다. 마음이란 건 없어도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마음은 왜이리 바쁜지 혼자서 저멀리 가버리는 날들이 있었다. 항상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마음을 따라잡기 위해 애써도 되지 않던 시간들. 그런 애쓰는 마음도 너무 멀리있다. 무너지는 마음도, 되돌리려는 마음도, 그저 놓아버리는 마음도 다 멀기만 한다. 마음은 이미 저 멀리 가버렸는데 나만 혼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정말 생각보다 모두 슬프고 전부 기쁘다.
다들 할 이야기가 정말 많아 보여서 부러웠고, 다들 찬란하게 슬퍼하는 것 같아서 질투가 났다. 적당히 게으르게 내 주변을 대해도 괜찮을텐데, 내 마음은 언제나 바쁘게 누군가를 사랑했고 미워했다. 마음이 너무 자주 힘들고 무거웠다. 마음이란 건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길래 이렇게 연약하고 바쁘고 말랑거리기만 할까? 탄력성도 없이 늘어져 있는 주제에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차라리 양철통으로 만들어졌다면 좋을 텐데, 하고 자주 생각했다. 마음이 양철통으로 만들어졌다면 우유를 차갑게 보관하기도 편할 테니까. 마음이란 건 없어도 좋을텐데,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오직 마음만이 성실해서 이렇게나 자주 슬프고 외로웠고, 나는 그게 귀찮았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마음은 부지런한데 나는 게을러서, 나는 마음이 바삐 움직이는 감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언제나 나보다 앞서가는 마음을 따라잡기 위해서 나는 뭔가가 필요했다. 항상 발이 걸려 넘어지고 퉁퉁 부어 있는 무릎으로도, 마음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무언가. 딱딱한 도로 옆에, 미끄럼틀이나 얼음호수처럼 쉽게 미끄러질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 p.167

 

슬퍼하지 말라는 시인의 말에 마음이 조금 기다려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사랑은 어렵고 사랑이 없다고 믿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자. 사랑해. 우리 오래 살자. 마음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는다는 진실을 모른체하면서.

 


 

 

 

그리고 이 글을 모두 읽으면 다들 내 친구가 되는 거다. 내 친구들은 모두,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사귄 친구들과, 또 새로 생긴 친구들에게.

잘자. 사랑해. 우리 오래 살자.

꼭.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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