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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공주해적단 #작가비공개 #소설Q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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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당기는 작품이네요. 꼭 찾아보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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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오래된 골동품 상점 | 한줄기대 2023-01-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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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출간으로 얼마든지 재독 의향이 있는 디킨스의 동화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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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 한줄기대 2023-01-3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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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만으로도 주인공의 뒤를 따라 나서게 만든다. 언급된 메타픽션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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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무어의 마지막 한숨 | 한줄기대 2023-01-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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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살만 루슈디는 또다른 환상적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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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_ 임볼로 음붸 | 리뷰 2023-01-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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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임볼로 음붸 저/구원 역
코호북스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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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정부는 코사와 마을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은 베잠의 회의에서 코사와를 미국의 석유회사 펙스턴에 팔았고, 유전에서 마을 우물로 흘러드는 오염물의 독에 의해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와 펙스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코사와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마을의 대표단이 베잠으로 향했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펙스턴 본사가 코사와 사람들을 위한다는, 정부가 코사와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수도의 사람들이 코사와 사람들의 죽음에 애도를 전한다는, 펙스턴과 정부는 코사와의 친구라는, 그 모든 거짓말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코사와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그들의 공기와 물과 땅이 언제 다시 깨끗해질 건지 구체적이고 정확한 계획이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깨끗한 음식이 전부다.

 

 

 


 
주인공 툴라가 열 살에 시작되는 소설은 가상의 마을 코사와를 배경으로 30년의 세월을 서술한다. 화자의 시점을 달리하는 이야기 구성은 말라보와 사헬을 비롯한 기성세대의 관점, 다른 하나는 그들의 자식인 '어린이들'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그 '어린이들'이 청년 시기를 거쳐 부모의 세대가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독재자가 군림하는 가난한 나라에서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은 코사와뿐이 아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군인들이 소녀를 유린하고, 다른 마을에서는 벌목으로 산림과 땅이 죽어가고 있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광산으로 주민들이 쫓겨났다. 이 마을들에 사는 사람들이 베잠에 와서 울며 도와달라고 빌었지만, 베잠에는 그들을, 그들의 요구를 기억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열 살의 아이들이 아버지가 되고, 그들의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도록 코사와는 달라지지 않았다. 


코사와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고통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기름을 채굴하기 전에는 고무 채취로 고통받았고, 강간 및 인신 매매도 당했다. 독재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치를 들어 파괴했으며, 부정부패를 넘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국토를, 국민을 외국 기업에 팔았다.  


거대 자본, 다국적기업, 내전과 전쟁, 기후변화 등 여러 이유로 우리는 살던 마을을, 나라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툴라가, 사헬이, 야야가 그랬듯이. 지구라는 행성 역시 필멸의 존재니 인류는 그 끝이 언제든 우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문명'과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약자들을 약탈하는 것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 이것이 코사와만의 일이겠는가. 경제 선진국 안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나. 코사와가 이해한 문명과 경제성장은 모두가 풍요로운 세상이다. 


ㅡ 


소설은 토양과 수질 오염으로 인한 코사와 마을 사람들과 투쟁에 앞장 선 툴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가부장제에서 제 삶을 본인 뜻대로 살지 못하는 여성과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고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며 치유하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아이들,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을 부양해야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가장들, 나라와 가족 중 우선 순위를 결정해야만 하는 딜레마, 혈연과 인종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실감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힌 인물들의 면면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어제까지만해도 동네를 뛰어다니며 함께 놀던 친구들이 이유도 모른 채 줄줄이 죽어나가고, 대화를 하겠다고 집을 나선 아버지가 실종되고, 재판도 없이 마을 남자들이 교수형을 당한 경험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하는 어린이들, 우리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아이들 죽음의 참담함은 말할나위 없고, 소설 초반에 나를 더욱 분노하게 했던 점은 소녀에게서 더할 수 없이 자상했던 아빠를 앗아갔다는 것보다 고작 열 살 아이에게 평생을 바쳐 복수를 결심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툴라가 유학 간 미국에서 코사와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의 서명은 '언제나 우리 중 하나, 툴라'다. 그녀가 일평생 생득권으로 삼았던 '우리'. 툴라는 서른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남은 생이 험난한 투쟁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길임 또한.  


내가 가장 애잔하게 바라본 인물은 사헬이다. 스물여덟 살 무렵에 과부가 된 그녀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는 생이 다할 때까지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애도뿐이다. 시어머니인 야야의 넋두리처럼 사헬의 곁에 누가 있어줄까? (남편과 자식을 앞세운 그녀에게 물리적 편안함이 대수일까.) 



펙스턴은 장학재단을 설립해 코사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코사와 마을 자리에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펙스턴이 후원하는 돈으로 학업을 이어갔고, 새로운 삶을 위해 유럽과 미국으로 떠났다. 서른 해가 지나 코사와의 아이들은 유럽과 미국의 기업이나 베잠의 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어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이 기막힌 모순을 어떻게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말라보가 베잠으로 가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이 펙스턴 대표단을 가둬놓지 않았다면, 봉고가 또다시 베잠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그들이 살았다면 코사와 사람들의 고통의 무게가 줄어들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스틴의 말처럼 때가 되면 변화가 올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저항해야하는 까닭은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뿐이기 때문이니까.


소설의 인물 설정상 굳이 따지자면 툴라가 저자와 가장 가까워 보일 수 있겠으나 나는 오스틴과 툴라 두 사람 모두에게서 저자가 느껴진다. 대화와 행동. 변화를 꿰하는 노력에는 오스틴의 방식, 툴라의 방식으로 나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했음이 아닐런지. 마치 독백처럼 읽혔던 툴라의 편지에서 전해지는 고뇌와 숙고의 과정을 통한 확신과 결의가 참... 진하게 와닿는다.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고 긴 숨을 내뱉었다.
너무나 애처롭고 아름다웠던 툴라를 어떻게 잊을까.
이 먹먹함이 가시려면 또 며칠의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나의 '올해의 소설'에 올린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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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눈을 심어라 _ M. 리오나 고댕 | 리뷰 2023-01-2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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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기 눈을 심어라

M. 리오나 고댕 저/오숙은 역
반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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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눈멂은 내게 완전한 불행은 아니었다. 삶의 한 방식, 삶의 스타일일 뿐이다. 

(보르헤스) 
 

 

열 살 무렵 망막색소변성증(정확한 진단명은 원뿔세포-막대세포이상증)을 진단받은 저자는 열여섯 살 즈음에는 보통 크기의 글자도 읽을 수 없게 됐고, 첫 진단 후 40년이 지난 현재는 완전한 실명은 아니지만 앞을 보지 못한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의 위대한 인간 승리 성공담이나 장애인 관점에서 비시각장애인 중심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일방적 비판의 글이 아닌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밀턴, 보르헤스, 샬럿 브론테, 주제 사라마구, 프랭크 허버트, 프랜시스 베이컨, 데카르트 등 분야를 불문한 고대 및 현대의 인물과 그들의 문헌을 데려와 문학과 철학을 비롯해 스티비 원더 등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눈멂이 갖는 피상성, 죄악, 진실과 거짓, 시각 중심주의 등을 서술한 문화 및 예술 비평서에 가깝다.  

 

 

 


 
온전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게 되리라는 눈멂의 은유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저자는 젠더가 눈멂을 굴절시킨다고 쓰면서 여성과 눈먼 남성을 같은 선상에 놓으며 그들이 비주류 바라봄의 대상임을 짚는다. 동시에 인간 존재의 가변성이 젠더 유동성으로 나타남을 지적하며 눈멂이 곧 여성성과 동일시됨을 얘기한다(그러니 시각장애인이 여성일 경우는 어떻겠는가).


시력이 아주 완벽하다고 믿을 때조차도 우리의 시력은 근본적으로 어둡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멂이 우리 인간성의 한 양상임을 깨닫지 못한다. 많은 문헌들에서 혹은 고정관념적으로 보통 인간의 내면적 깊이와 관련해 눈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 눈은 물질로 구성된 몸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저자는 뿌리깊은 시각 중심적 편견 때문에 시각장애 작가가 자신의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맥락에 대한 이야기가 초반부터 꾸준히 언급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무척 공감했다. 많은 비시각장애인 작가들이 마치 시각장애인의 세계를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쓴 글들과 이를 위화감없이 받아들이는 독자들에 대해,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기도 했다. 평소 궁금했던, 영아기에 시각을 잃은 시각장애인의 경우, 비시각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의 시각 세계가 암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경험적 비교 대상이 없기에 적절하지 않음 또한 새삼 인지했고.   



올리버 색스는 사물을 보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즉각적이고 선천적인 능력 같지만, 실은 전반적인 기능의 위계가 필요한 인지적 성과에 해당한다고 했다. 즉 읽는 법을 배우듯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해당 장에서 시각을 복구하는 것이 우울한 어둠에서 기쁨 넘치는 빛으로 나아간다는 안일한 은유를 피해야한다고 얘기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올리버 색스의 저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생각났다. 비장애인이 장애에 대해 갖고 있는 섣부른 고정관념과 왜곡된 인식을 깨달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 당시 느끼고 배웠던 점을 다시 각성할 수 있었다.  


저자는 점자가 하나의 문자 체계임을 분명히 하면서 점자의 읽고 쓰기를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비시각장애인도 배울 수 있는데, 문제는 동기에 있다고 말한다. 각 나라의 언어와 문자를 배우는 것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 점자 역시 마찬가지임을 주지한다. 저자의 지적처럼 비시각장애인에게 점자를 배울 동기는 많지 않다. 거기다 시중에 점자책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11장에는 헬렌 켈러를 들어 장애 행동주의에 대해 서술한다. 예술 창작 및 공연에 있어서 시각장애인이 만든 역할을 그들이 연기하는 것은 장애 행동주의를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밝히며 비시각장애 작가와 배우가 연극과 영화 속의 시각장애인을 창조하는 것은 포용과 다양성에 있어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 작년에 시청했던 한 드라마에서 다운증후군 장애인이 직접 배역을 맡아 연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공익광고를 비롯해 이러한 추세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한데 점점 더 확대되기를 바람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영감 포르노'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저자는 장애가 영감을 준다는 말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며 장애를 영감과 연관 짓는 것은 장애가 단지 인간성의 한 양상이 아니라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인권에 반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이 부분은 1장의 호메로스와도 연결되는데 이러한 점은 현대의 대중문화에서도 수시로 활용 및 은유된다는 점에서 나 역시 불편하다. 


ㅡ 


시각장애인은 평생의 파트너에게 보살핌을 받아야한다는 인식, (시각)장애인의 지적 수준이 비(시각)장애인보다 낮다는 편견, 성적 지향의 결정조차 시각의 있고 없고에 달려있는 듯한 태도 등 우리는 여전히 많은 편견을 갖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15장에서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무시되는 눈먼 자들에 대해 몇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는데, 이 부분에서 저자의 의견을 더 듣고 싶은 점이 있었다. 소설은 우의적인 설정이고 정황상 눈먼 자들이 갑자기 실명해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여길 수 있음을 저자도 짚는다. 그럼에도 사라마구가 소설 속에서 묘사는 '눈먼'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소설에서 인물들은 목숨을 잃을수도 있고 그안에서도 절대 악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과연 '눈먼' 사람들은 어떻게 그려져야 했으며, 유일하게 시각을 잃지 않은 여성과 눈이 멀게 된 사람들은 어떤 구조를 가져야했을까. (이 부분은 계속 생각 중이다.) 

 


"장애는 유동적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시각)장애인으로서 주류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위의 짧은 문장은 장애와 비장애의 장벽이 얼마나 낮은지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비장애 중심주의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저자는 통찰하며 일갈한다. 


이 책을 펼치고 서너쪽을 넘길 즈음 내가 갖고 있는 비시각장애인으로서의 한계를 또다시 깨달았다. 책의 표지에 점자가 있는 것까지는 납득을 했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든 생각은 '폰트가 왜 이렇게 커?'였다. 그순간 나는 여전히 비시각장애인 관점에서 사물을 우선해 판단하고 있구나라고 새삼... . 산산히 쪼개져있는 의식의 조각들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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