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비너스에게
https://blog.yes24.com/jupiter13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jupiter13
권하은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2월 스타지수 : 별49
작가 블로그
전체보기
┌ 공지
├ 작가소개
└ 작가 레터
비너스에게
나의 리뷰
작가의 서재
나의 메모
오늘 하루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24 / 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연재 후반부에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던.. 
작가님~ 그 동안 수고 정말 많으셨습.. 
1. 권하은 작가님, 그동안 <비너스.. 
작가님,그간 연재 집필하시느라 수고 .. 
성훈이 덕에 동성애에 대한 약간의 이.. 
새로운 글
오늘 2 | 전체 34281
2010-07-14 개설

전체보기
'비너스에게' 14회 | 비너스에게 2010-08-26 09:30
https://blog.yes24.com/document/252686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낙오자가 되는 건 싫어

 

 

 

비너스에게.

이제 내가 왜 하필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됐나 이야기할 차례야. 그러니 당연하게도 양나 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겠지. 그러자면 내가 양나 씨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나와야 하고, 그것에 대해 말한다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될 거야. 나는 벌써부터 가슴에 바윗덩이가 내려앉은 것만 같아.

 

개학일이 되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훨씬 침착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는데, 모두 영무 덕분이었어. 영무와 언제나처럼 툭탁거리고 지내다보니 내게 일어났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거든. 설문에 대해서도 완전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었고 졸업 때까지 쥐죽은 듯 지내리라 결심도 했어. 나는 더 이상 어떤 사건에도 말려들고 싶지 않았고 조금의 부담감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어.

 

하지만 참, 사는 게 뜻대로 되지가 않아.

 

담임의 조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방송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어. 영무와 친구 녀석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 교장실로 향하는 동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이 머리를 스쳤고, 너무 떨려서 걸음이 잘 옮겨지지가 않았어. 나는 난생처음으로 교장실이라는 데를 가보는 것이었고, 그것만으로 이미 ‘평범’에서 멀어지고 있었어.

 

교장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어서 우리 학교 어디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놀랄 정도였어. 교장의 뒤로는 이 학교를 2년 가까이 다니면서도 처음 보는 학교 깃발이 휘장처럼 드리워져 있었어. 그 옆에는 내 담임과 학년주임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지.

 

“네가 2학년 강성훈이냐?”

 

학교 행사 때나 들었던 교장의 목소리를 바로 코앞에서 듣고 있자니 어째 현실감이 없었어. 교장도 그냥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감탄도 하고.

 

“네.”

 

나는 불안한 심정으로 담임의 표정을 살펴보았어. 하지만 불행히도 담임의 별명은 ‘철가면’이었는데, 도통 아무 표정이 없다는 의미야.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저 말로 시작해서 좋은 대화가 된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또한 대개 저런 질문은 내가 뭔가 사고를 쳤을 때 나오는 것이기도 했고.

 

“네.”

 

“그렇구나.”

 

교장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무언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어. 정말 보통 일은 아니었던 거야.

 

“실은 문제가 생겼다.”

 

“네?”

 

“며칠 전에 학부모 몇 분에게 항의전화를 받았어. 모두 3학년생들의 부모였다.”

 

아, 설문! 나는 그게 문제가 되었다는 걸 짐작했어.

 

“저기, 그건 말입니다. 정말 좋은 마음으로……”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냐?”

 

“네?”

 

교장은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고 대신 주임이 나섰어.

 

“네가…… 그러니까, 흐흠, 3학년 선배를, 흠흠, 유혹했다고. 난 잘 믿기지가 않는다만 요즘 세상이 하도 난장판이니까, 학부모들이 입을 모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에, 뭐, 너는 아버지도 없고, 그러다보니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을 수도, 물론 있을 테고.”

 

“솔직히 말해라. 그게 사실이냐?”

 

담임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물었어. 할 수만 있다면 난 아니라고 잡아뗐을 거야. 나는 지금까지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쭈욱 거짓말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생각을 해봐. 교장에게까지 그날 밤의 은밀한 순간이 다 까발려지고 있는데 잡아뗀다 한들 과연 내게 승산이 있을까?

 

나는 군이 내게 했던 이야기들을 전속력으로 되감고 있었어. 군의 어머니는 분명 전업주부였지만 자식에게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열성적이었고, 군도 그게 고마우면서 부담스럽다고 했었지. 그녀는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한 적도 있어 보통 엄마랑은 다르다고 군이 자랑스러워했어.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하고는 대화가 통해. 사고가 트여 있거든.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내가 완벽한 이상처럼 숭배했던 군이 아기처럼 자신의 엄마에게 징징거리며 그날 밤의 일을 몽땅 털어놓았다는 것이 교장 앞으로 불려나온 것보다 더 충격이었어. 아마도 그녀는 4반의 반장 못지않게 조직적인 모양이었고, 당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학부모들에게 연락을 취한 후 행동에 돌입했던 거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사실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23)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2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8월 24일자) |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2010-08-25 20:11
https://blog.yes24.com/document/252513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A 에이

하성란 저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07월

구매하기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8월 24일자)

이벤트 기간 : 2010년 8월 23일 ~ 9월 10일

 

안녕하세요. 자음과모음입니다.

 

YES24 블로그에 연재되고 있는 권하은 작가님의 『비너스에게』에 보여주신 성원 감사드립니다. 연재 기념으로 『비너스에게』에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분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당첨되신 분들께는 YES24에 등록하신 메일로 안내드리며, 하성란 작가의 장편소설『A』를 드립니다.

 

아이디 닉네임
smja78 천사야 뭐하니?
godjghk 루시별
cy_hong 책읽는 낭만푸우
nomunhui 뻑공
shalomhi1 노맨틱기타리스트발표맨
jieuny0070 jieuny0070
k10run 날아라병아리
sofikim 영원한 청춘
kuju 필리아
25ans 고양이발바닥
sppend 힘쎈토종닭
dlyj 영원
dmsgml7029 파란하늘 무지개
yes1008 김밥사랑
e10g10 꽃들에게 희망을
joinwant joinwant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3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8월 23일자) |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2010-08-25 17:49
https://blog.yes24.com/document/252480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A 에이

하성란 저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07월

구매하기

『비너스에게』연재 기념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8월 23일자)

 

이벤트 기간 : 2010년 8월 23일 ~ 9월 10일, 매일 선착순 20명

 

 

안녕하세요. 자음과모음입니다.

 

YES24 블로그에 연재되고 있는 권하은 작가님의 『비너스에게』에 보여주신 성원 감사드립니다. 연재 기념으로 『비너스에게』에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분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매일 선착순 20분께 화제작 하성란 장편소설『A』를 드립니다.

 

당첨되신 분들께는 YES24에 등록하신 메일로 안내드리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디 닉네임
jk325636 맑은 하늘
hyunju0625 pit a pat
kim68345 아자아자
egoist2718 삼순이딸
khs123 은하수
belepoque 하루
chorong96 chorong96
jeil53 나날이
jrevo 한사람
chaek24alio 미소&당기소
plantbact indiaman
diamondh 달추맘
pppppppppp 바보천사
00myth 영문사랑
mind3na mind3na
paichia83 하늘처럼
klamotten 생선두마리
yh2800 상큼 양파
pribear 여우같은 북극곰 공주
smja78 천사야 뭐하니?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4)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2        
'비너스에게' 13회 | 비너스에게 2010-08-25 09:17
https://blog.yes24.com/document/252351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나는 엄마의 공연한 참견에 짜증이 났어. 뒤통수도 아팠고.

 

“그게 뭐가 나빠? 내가 편하려고 거짓말 좀 하면 안 되냐?”

 

“안 돼. 미성년자의 거짓말은 무조건 나쁜 거야.”

 

“웃기지 마!”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조금 놀라는가 싶더니만 바로 내 뒤통수를 또 한 번 후려쳤어. 나는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어. 엄마가 부르는 것 같았지만 내 착각이었는지도 몰라.

급한 김에 꿰어신고 나온 슬리퍼가 짤깍거리며 거치적거렸고, 주머니에는 백 원짜리 동전 하나 없었으니 어디 PC방에 가 있을 수도 없었어. 핸드폰이라도 들고 나왔으면 좋을 뻔했다고 후회하면서 한참을 길거리에서 어슬렁거리다, 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영무네 집으로 향했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저녁시간에 불쑥 찾아가도 놀라지 않을 곳은 그곳뿐이었거든.

 

현관문 안쪽에서는 우당탕탕 무언가 때려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고, 굵직한 목소리를 가진 녀석들이 웅얼웅얼 말다툼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영무네 집이 여전한 것을 보니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고 초인종을 누를 수 있었어.

 

영무는 팔짱을 낀 채 현관 앞에 서서, 곧바로 집에서 뛰쳐나온 게 틀림없는 내 꼴을 한동안 바라보았어.

 

“너 말이야, 도대체……”

 

“미안!”

 

“뭐가?”

 

“전부 다. 정말 미안해.”

 

영무는 한숨을 쉬었고 들어오란 뜻으로 몸을 약간 비켜주었어. 나도 영무네 집이 내 집처럼 편했으므로 그 녀석의 집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안심이 되었어. 거실에서 게임을 하느라 난리법석을 떨고 있던 영기, 영빈, 영준은 나를 보자 손을 흔들었어. 영무네 아줌마는 아들 넷을 낳고 키우느라 목소리가 자꾸 커지더니 이제는 파바로티와 함께 이중창을 불러도 될 정도의 성량을 가지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음성을 참 좋아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닭다리 한 개를 겨우 뜯다 나오기도 했고, 요즘 잘 먹지도 못한 터라 영무네 아줌마가 보글보글 끓이고 있는 김치찌개 냄새를 맡자 갑자기 허기가 졌어.

 

“아줌마, 저도 밥 좀 주세요.”

 

“그럼 안 먹을라고 했니?”

 

아줌마가 거의 세숫대야만 한 반찬그릇들을 식탁에 기세 좋게 내려놓으며 쾌활하게 말했어. 영무가 우리 집의 외롭고 고요한 느낌을 좋아한다면, 나는 영무네 집의 시끌벅적한 느낌을 좋아해. 커다란 식탁에 여럿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는 자체가 기분이 좋아지거든. 밥맛이 훨씬 좋은 거야 두말 할 것도 없고. 식사를 끝내고 영무와 함께 밖으로 나왔어. 영무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동생들 때문에 거의 진저리가 나 있었기 때문이야.

 

“너 요즘 왜 그러는 거냐?”

 

묵묵히 걷던 영무가 먼저 물었어.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군의 시선을 떠올리자 그럴 수 없었어. 만일 영무에게까지 그런 시선을 받는다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결국은 나 자신을 편하게 해줄 거짓말의 반복.

 

“그냥 좀 우울해졌어.”

 

“그냥?”

 

“사실은…… 사귀던 여자한테 채였어.”

 

하아…… 영무야, 미안. 내가 겨우 이런 놈이라. 나는 그런 소동을 또 한 번 감당하느니 차라리 절친에게 거짓말을 술술 해대는 녀석인 거야.

 

“그랬구나. 이번엔 꽤 오래간 거 아니었어? 거의 4개월을 사귀었잖아.”

 

“……그랬지.”

 

“여친이랑 헤어지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 처음 본다. 꽤 진심이었구나.”

 

“그렇지 뭐.”

 

“기운 내.”

 

“그래. 고맙다.”

 

영무의 위로가 진심인 걸 아니까, 내 고맙다는 인사도 당연히 진심이었어. 나는 정말 영무의 위로에 고단한 마음이 잠시 눅어졌고 근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숨을 쉬는 게 버겁지가 않았어. 내가 엄마와 말다툼을 했다고 말하자 영무는 내 머리를 툭, 치며 “아줌마 힘들게 하지 마라, 인마”라고 했어. 영무는 동생이 줄줄이 달린 장남이어서인지 이런 면에서는 무척 어른스러웠거든. 우리는 PC방에 가서 한참 동안 게임을 하고 거기에서 자장면까지 시켜 그릇을 싹싹 비운 뒤 어둑해져서야 밖으로 나왔어. 영무는 자기가 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 그 녀석은 동생 셋과 용돈을 나눠야 했으므로 나보다 항상 쪼들렸기 때문이야.

 

나는 영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갔어.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는 콧구멍에서 김을 뿜으며 뛰쳐나왔지. 만일 영무가 같이 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하이 킥을 해서라도 내 머리통을 날려버렸을 거야. 그날 영무는 우리 집에서 잠을 잤고 다음 날부터 내 생활은 예전의 평온했던 때로 돌아갔어.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8        
'비너스에게' 12회 | 비너스에게 2010-08-24 09:20
https://blog.yes24.com/document/252037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군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어. 둘 다 한껏 취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어.

브리트니는 멋진 몸을 비틀었지. 난 지금 흥분했어. 너와 사랑하는 건 지금이라고 생각해.

지금 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지금 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난 지금 흥분했어.

너와 사랑하는 건 지금이라고 생각해. 지금 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내가 군의 어깨에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얼굴을 묻자 그가 쿡쿡거리고 웃었어.

 

“너 취했구나.”

 

내가 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날 잠 못들 게 했던 망상의 한 장면.

내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레 부딪치고, 그래서……

스스로 취했었다고 변명해보았자 소용없는 짓이야.

 

나는 그때 약간 몽롱하고 열에 들뜨기는 했지만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 나는 군의 인품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내가 다소 함부로 굴어도 그가 나를 내치지는 않을 거라고 영악하게 계산했던 거야. 아니면 순진한 낙관이었든지.

그래서 나는 군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고, 그는 여전히 장난인 줄 알고 헤헤거리며 술김에 두 팔을 번쩍 들어 나를 안아주기까지 했어. 짧은 순간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

 

그 도취의 감정이 결국 무모한 짓을 저지르게 만들었어.

 

나는 군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싹 갖다 댔고(우아~ 너 가까이서 보니까 엄청 뚜렷하게 생겼다아아), 그가 올바른 상황판단을 미처 하지 못하는 짧은 순간(에에, 치워, 인마) 그의 부드러운 입술을 훔쳤어. 우려와는 달리 군은 꼼짝도 하지를 않아서(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너무 놀라 얼어붙었던 것뿐) 나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어.

거듭된 망상 속의 한 장면처럼 군에게 키스하며 그의 어깨를 세차게 끌어안은 거야. 본의는 아니었지만(……정말이야), 내 그곳이 완전히 흥분해버려서 군의 허벅지를 누르고 말았어. 군이 비명을 지르며 나를 난폭하게 밀쳐냈고 나는 뒤로 나가떨어졌어. 그때 군이 나를 보던 시선을 어떻게 잊겠어.

 

그는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어.

 

그저 나를 뚫어져라 보았지만, 그 시선은

내 가슴속의 무언가를 무너져내리게 했어. 나는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했어.

취해서라기보다는 너무 충격을 받아 몸이 마음대로 휘청거렸고,

그래서 몇 번 비틀거리다 넘어지기까지 했어. 나는 간신히

현관 앞까지 가서 손잡이를 잡았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

나는 유령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만 다행히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어.

 

비너스. 남은 여름방학 기간 동안 내가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괴로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건 공포의 개학이 다가오고 있다는 거였어.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엄마가 워낙 일이 바쁘고, 항상 피곤에 절어 사는지라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야.

 

영무는 방학이 되면 늘 우리 집에 와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 녀석에게는 머리 굵은 남동생이 셋이나 있어서 언제나 집이 벅적거리다 못해 혼란스럽기까지 해서였어. 우리 집이야 늘 나 혼자이니 영무에게는 한적하고 느긋한 별장 정도인 셈.

하지만 나는 누구와 함께 지낸다는 게 불가능한 상태였고, 더욱이 영무라면 말할 것도 없었어. 영무에게는 아무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사실대로 말을 할 수도 없었으니까.

나는 영무의 전화를 피했고 집으로 찾아와도 숨을 죽이고 없는 척했어. 영무가 엄마에게 전화라도 했는지 어떻게 된 거냐고 엄마가 물어왔을 때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어 일부러 피하고 있다 대답했어.

 

“그럼 영무에게 그렇다고 하면 되잖아? 왜 있으면서도 없는 척 거짓말을 해?”

 

엄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어.

 

“그게 더 편하니까.”

 

엄마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후려쳤어.(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치킨을 먹으며 주말드라마를 보고 있었어. 그래서 내 머리통이 그녀의 사정권 안에 있었지.)

 

“나쁜 녀석!”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77)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8        
11 12 13 14 15
진행중인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