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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43회 | 비너스에게 2010-10-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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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도라는 다리를 결박하고 입과 눈을 막은 뒤에 더 이상 주먹을 휘두르거나하지는 않았어. 그때 핸드폰으로 다시 문자가 들어왔어.

 

  “주모자가 진입로를 방금 통과했음.”

 

  도라가 바리캉을 꺼내드는 게 보였어. 나는 먼저 마에게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문자를 찍은 뒤 도라에게 튀어갔어.

 

  “도라, 서둘러, 곧 주모자가 올 거야.”

 

  복면에 눌려 어눌해진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하자 도라가 내 쪽을 쳐다보았어.

 

  “이제부터 시작인데.”

 

  “절대 때리지 말라고 했잖아.”

 

  “알아, 알아, 그래도 마가 보고 속이라도 시원하라고 말이지.”

 

  “됐어, 얼른 하기나 해. 시간이 없어.”

 

  복면으로 가렸음에도, 도라가 활짝 웃고 있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고. 도라가 녀석에게 바리캉을 들이대더니 갑자기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어.

 

  “뭐야?”

 

  “이 자식, 오줌 쌌어.”

 

  정말 고깃덩이처럼 모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던 녀석에게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거야.

 

  “이거 정말 마가 봐야 하는데.”

 

  “이따 볼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빨리 해치워.”

 

  내 말을 오해했는지 녀석이 뭍으로 끌려나온 물고기처럼 펄떡대기 시작했어. 말릴 새도 없이 도라가 뒤통수를 다시 한 번 세게 후려쳤어.

 

  “도라!” “알았어, 알았다고.”

 

  도라가 바리캉으로 녀석의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밀어대기 시작했어. 비너스. 그때 이미 나는 후회하고 있었어. 폭력의 힘을 얕본 걸. 생각대로라면, 그 녀석의 모습은 코믹하고 재밌어야 했어. 하지만 녀석이 사지를 결박당한 채 겁에 질려 오줌을 싸고 머리카락을 밀리는 모습은 절대로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어.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은 이미 폭력이었고, 그 자체로 모든 게 설명 끝. 하지만 그때 나는 도라를 말리지 않았어. ‘우리’의 힘은 대단해서, 눈 앞의 결박당한 고깃덩이보다는 몇 달간에 걸쳐 쌓은 유대감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야. 도라는 만족할 만큼 머리를 밀고나자, 매직으로 이마와 양 볼에 ‘고기’라고 크게 썼어. 그러고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글씨체를 감상했지.

 

  “흠, 훌륭해. 아주 훌륭해.”

 

  좀체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는 도라를 재촉해 녀석을 같이 들어 올려 한구석에 보이지 않도록 치워놓고, 우리는 서둘러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어. 아슬아슬 간발의 차로 주모자가 모습을 드러냈어. 그 녀석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그 순간 숨어 있던 마가 튀어나왔어. 주모자 녀석은 체격이 무척 좋았어. 무슨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게다 담력도 보통은 아니었어. 어둠 속에서 복면을 한 마가 불쑥 튀어나오자 무척 놀라기는 했지만 먼저 녀석처럼 기겁을 하며 주저앉지도 않았고, 오히려 “너 뭐야!”라고 맞서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어. 과연 주모자.

 

  “저놈 저거 보통 아니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도라가 걱정스레 중얼거렸어.

 

  “조금 더 기다려보자.”

 

  마는 그 녀석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기회를 엿보다 얼굴이 정면으로 향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스프레이를 분사했어. 그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리자 마는 박스테이프를 그대로 녀석의 팔에 감아버렸지. 녀석이 막무가내로 달리기 시작했어. 마는 그간 갈고닦은 실력으로 번개처럼 따라잡아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어.

 

  “잘한다!”

 

  도라가 신이 나서 외쳤어. 마는 쓰러진 그 녀석의 다리와 눈, 입을 테이프로 봉하고 있는 것 같았어. 마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건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였기 때문. 우리는 마가 얼른 일을 마치기를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어.

 

  “좀 이상해.”

 

  내가 걱정스레 중얼거리자 도라는 뭐가? 라고 되물었어. 주모자 녀석의 팔다리가 마치 경련이라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퍼덕대는 게 심상치 않았어. 녀석의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거센 건 둘째 치고, 마의 등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이 나를 불안하게 했어.

 

  “안 되겠어. 가 보자.”

 

  내가 튀어나가자 도라도 당황해서 내 뒤를 쫓아왔어. 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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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42회 | 비너스에게 2010-10-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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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모여 있는 곳은 마의 집. 학교에서 가까운 데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낮에는 비어 있기 때문. 오래된 단독주택이라 내부는 조금 낡았지만 정원이 널찍해서 여섯 명이 시끌벅적하게 굴어도 끄떡없었어. 작전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몇 봉지나 되는 스낵을 먹어치우고 3리터나 되는 콜라를 마셔댔으며 트럼프나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며 놀았어. ‘애미’가 아닌 곳에서 그러고 있자니 그냥 한가롭게 친구들끼리 시간을 죽이는 느낌.

  우리는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집을 출발했어. 밖의 날씨가 제법 매서웠기 때문에 우리는 단단 무장을 하고 있었지. 각자 롤러블레이드를 어깨에 짊어지고, 스프레이와 매직, 박스테이프가 든 배낭을 멘 채 일렬로 걷고 있는 우리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쟤들은 롤러블레이드 타러 가면서 왜 저렇게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나 의아해했겠지.

  학교 앞의 문방구나 분식점들은 이미 모두 문을 닫아 거리는 썰렁하기 그지없었어. 필, 잡, 누룽지는 미리 점찍어둔, 언덕길이 시작되는 진입로의 건물 뒤편에 몸을 숨기기로 했어. 그 녀석들이 나타나면 바로 우리에게 문자를 날리는 거야. 마와 도라, 그리고 나는 찬바람을 맞으며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어. 그간 롤러블레이드를 타며 심폐기능과 다리 힘이 좋아진 덕분인지, 우리 셋은 별로 숨차하지도 않고 수월하게 오르막길을 올랐어.

 

  “만일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마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어.

 

  “반드시 나타나. 자길 위해 뭐든 할 여자애가 어두운 밤, 으슥한 곳에서 만나자는데 안 올 녀석은 곧휴가 부러진 녀석뿐일걸.”

 

  도라가 별 걱정을 다 한다는 듯 말했어. 이 계획을 짠 건 나지만, 역시 나는 남자애들의 그런 심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전혀. 아니지. 현신이 나를 어두운 밤, 으슥한 곳으로 불러낸다면 열 일 제치고 나는 듯 달려가겠지. 하아…… 왜 상상만으로 몸이 달아오르는 거냐.

  밤의 학교는 어디를 막론하고 참 으스스해. 더구나 마의 학교처럼 바로 뒤에 깎다 만 산이 버티고 있다면 더 볼 것도 없지. 우리는 교사 앞에서 롤러블레이드를 꺼내 신은 뒤 각자 지정해놓은 자리로 흩어졌어. 그때 시간이 여덟 시 사십 분. 이제는 어두운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기다리는 일만 남았어. 내가 몸을 숨긴 샛길은 학교의 오른쪽으로 나 있는 경사면.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등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어. 거기에서는 축구부의 합숙소 건물이 훤히 보여. 회색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있는 길쭉한 모양의 그곳은 얼핏 보기에는 꼭 축사 같은 느낌. 마는 지금이 전지훈련기간이라 아무도 없다고 했어. 우리의 계획을 위해서는 천만다행한 일이었지.

  겨울의 밤하늘은 차갑고 반들반들해서 손에 닿으면 꼭 피부가 베어나갈 것같이 느껴져. 바람이 매서웠지만 아직까진 견딜 만했고, 오히려 나는 그 싸한 공기가 좋았어.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거, 결국은 자기만족을 위한 게 아니냐고 얼마든 비웃을 수 있겠지. 자기만족이면 어떻고, 심심풀이면 뭐 어때. 자기만족이나 심심풀이로 사람을 죽이는 녀석들도 있는 마당에, 남을 돕는다면야 그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을라고.

  비너스. 설사 이 일이 잘못되어 엄마나 양나 씨에게 알려지는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 해도, 나는 적어도 도덕적인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내가 그녀들에게 저지른 유일한 잘못은 바로 거짓말뿐이라고. 이 ‘거짓말’이라는 놈은 지독히도 능력이 없는 주제에, 인간의 한계 때문에 인류멸망의 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겠지. 그리고 바로 그 인간 한계의 살아 있는 표본, 나. 어째서 나는 이런 일에만 지극히 평균적인 거냐.

 

  그때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어.

 

  “동조자1이 방금 진입로를 통과했음.”

 

  도라에게 바로 문자가 들어왔어.

 

  “준비 완료. 걱정 마.”

 

  만일 도라가 그 녀석을 놓치거나 하면 바로 튀어나가 도와야 했으므로 나 역시 온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어. 째깍째깍, 귓속으로 초침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녀석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그 녀석이 너무 꾸물대다보면 뒤의 녀석과 겹칠 수도 있고, 그럼 일이 복잡해지는데, 라고 걱정하는 사이 마침내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어.

  비너스. 사람에게는 모두 고정화된 이미지라는 게 있어. 예를 들면, 조폭은 몸에 문신이 있고 우락부락할 것이다, 헬스강사는 몸짱일 것이다, 요리사는 미각이 뛰어날 것이다, 한 사람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녀석은 보기에 역겨울 것이다, 같은 것들. 그래서 너무나 평범한 녀석이 불쑥 나타났을 때 그 녀석 어디에 그런 역겨움이 숨어 있나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게 되는 거지. 그야말로, 약골인 주제에 왜 조폭이 된 거며, 뚱보 주제에 헬스강사가 웬 말, 미각치가 어디서 요리사, 대체 그토록 평범한 주제에 왜 집단으로 한 사람을 괴롭히고 지랄이냐는 생각이 딱 들 수밖에. 바로 너 같은 녀석들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 모두에게 회의가 드는 것 아니냐고.

  그 녀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드는 순간 복면을 한 채 롤러블레이드를 탄 도라가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왔어. 그 녀석은 너무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어. 도라는 더욱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그 녀석의 주위를 미친 듯이 돌았고, 그간의 특훈으로 쌓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느라 전혀 상관없는 2회전을 돌기까지 하는 거였어. 쓸데없는 짓 그만하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도라가 스프레이를 그 녀석에게 분사했어.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팔로 눈을 막았어. 도라는 계획과는 달리 주먹으로 녀석의 머리통을 한 대 갈겼고, 그 바람에 녀석이 쓰러지자 테이프로 팔을 먼저 결박했어. 나는 도라가 통제불능이 된 건가 싶어 입이 바싹바싹 마를 지경이었어. 폭력은 안 된다고 그렇게 누누이 일렀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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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41회 | 비너스에게 2010-10-0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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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양나 씨에게 받은 돈으로 일단 원동기 면허증을 따기로 했어. 면허증을 따려면 학생증이나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학생이 아닌 데다 아직 만 17세가 되지도 않았어. 내 생일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니까 만 17세가 되기까지 2주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내 신분을 증명할 다른 뭔가가 없을까 좀 더 뒤져보니 ‘청소년증’이라는 게 있었어. 학생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나 같은 애들에게 국가가 발급해주는 신분증. 하지만 그것 역시 발급받으려면 이십 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나는 우울한 심정으로 포기하고 말았어. 결국 생일이 지나야만 시험에 도전해볼 수 있다는 얘기.

  학원이 끝난 후 집 근처에 있는 중고 모터숍에 들르는 게 일과가 되었어. 나를 한눈에 사로잡은 건 야마하에서 2008년에 제작된 125cc짜리 마제스티 125. 검정 펄의 세련된 바디에 멋지게 튜닝된 머플러를 달고 있는 날렵한 녀석이야. 가격이 350만 원. 양나 씨에게 받은 돈 40만 원과 초등학교 때부터 통장에 모아온 저금액수가 260만 원. 부족한 금액 50만 원에 이런저런 잡비까지 계산하면…… 하아. 엄마에게 말해보면 어떨까 잠깐 생각했지만 곧 외국으로 뜰 놈이 그런 걸 사서 뭐 할 거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었어. 그러게. 곧 여기를 떠날 텐데, 나는 왜 아직도 저걸 사서 꼭 타보고 싶다 생각하는 거지? 그나저나 생일이 오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어.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롤러블레이드 맹연습. 이제 나는 벽을 타고 달릴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직전이었어. 그리고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이제 슬슬 실행단계가 된 거야.

  필, 잡, 누룽지는 문자 날리기에 한창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중이었어. 조신하고 수줍게 시작된 그애들의 문자는 날이 가면 갈수록 스킬이 늘어 이제는 상대방을 가지고 놀기까지 했어. 우리는 오맙또에 모이면 걔들이 상대방 녀석들과 주고받은 문자를 돌려 읽으며 그야말로 데굴데굴 굴러다녔어.

 

  “이 새끼들 너무 진지해서 무서워!”

 

  도라가 너무 웃는 바람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어. 마는 우리처럼 쉽게 웃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리는 모양이었어. 괴물도 그냥 사람이었다는 얘기.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손으로 해결을 보는 일만 남았던 거야.

 

 

 

  “답답해.”

 

  도라가 여섯 번째로 투덜대는 중. 나는 그냥 참아, 라고 짧게 대답해주었어.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인걸. 우리의 복장을 한번 봐.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흰색 복면은 누룽지가 KKK단에서 착안해 만든 거야.

 

  “난 그런 거는 잘 모르고, 그냥 예전에 영화에서 봤을 때 무시무시한 느낌이었거든.”

 

  KKK단의 부정적인 의미를 지적하며 잡이 반대를 하자 누룽지가 한 말. 우리는 그 녀석들 역시 KKK단이 뭔지는 몰라도 무시무시한 게 뭔지는 알 거라는 데 의견을 모았어. 해서 흰색 면직으로 된 원뿔 모양의 복면 여섯 개를 누룽지가 만들어왔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 썼지만 도무지 사이즈가 제대로 맞지를 않았어. 그나마 바느질 흉내라도 낼 줄 아는 건 누룽지밖에 없는지라 우리는 불평을 늘어놓을 처지가 아니었지.

 

  “코에다가도 구멍 좀 내주면 안 되겠냐?”

 

  도라가 숨쉬기 불편하다며 그렇게 말하자 누룽지는 고개를 흔들었어.

 

  “그럼 무시무시한 게 아니라 우스꽝스러울걸.”

 

  맞는 말. 해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편히 숨 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복면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어. 하지만 여섯 명이 나란히 복면을 하고 거울을 보고 있자니 누룽지의 말마따나, 꽤 무시무시해 보이기는 했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자. 도라는?”

 

  “동조자1을 잡는다. 그 녀석은 아홉 시에 나타날 거야.”

 

  “좋아. 마는?”

 

  “난 주모자를 잡는다. 그 녀석은 아홉 시 이십 분에 나타나.”

 

  “좋았어. 난 동조자2를 붙잡으면 돼. 그 녀석은 아홉 시 사십 분에 나타나.”

 

  우리가 복수의 장소로 고른 곳은 마가 다니던 중학교. 마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야. 확실한 성공을 위해 우리는 사전답사를 했고, 마의 중학교는 아홉 시가 되면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안한다는 걸 발견했어. 학교 자체가 산을 깎아 세워진 곳이라 구불거리는 오르막길을 한참 동안이나 올라가야만 겨우 교사가 나타나. 그냥 걸어 다니기에는 벅찬 곳이라 아이들 대부분이 스쿨버스를 이용한다는 거야. 이 말은 학교가 완전히 격리된 곳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그래서 그 학교에는 정문이나 담이 따로 있지를 않아. 마는 바로 그곳에서 그 녀석들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했던 거지. 해서 필과 잡, 누룽지는 진입로를 지키기로 했어.

 

  “다시 한 번 말할게. 절대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돼. 우리는 그 녀석들에게 아픔을 주는 게 아니라 수치심을 주는 게 목적이야. 마! 수치심이 폭력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게다 필과 잡, 누룽지의 폰 번호가 노출되어 있으니 잘못하다가는 그애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 얻어터진 건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머리를 밀리고 낙서 당한 건 함부로 말하기도 쪽팔리겠지. 오늘밤 그 자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쪽팔림을 주자!”

 

  “조아쓰!”

 

  도라가 신나게 외쳤어. 아무래도 도라는 롤러코스터를 탈 때보다 더 신나하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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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40회 | 비너스에게 2010-10-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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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비너스에게.

  나는 제법 바빠지고 있어, 비너스. ‘애미’에 가지 않는 날은 어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 나는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왜 공부해야 하는지 필요성도 잘 못 느끼겠고. 영화나 미드 같은 것을 자막 없이 보면 편하겠다는 생각은 가끔 들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학원이니 과외니 하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영어라는 과목의 점수 비중이 그렇게까지 높아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어. 영무는 영어를 잘해. 좋아하기도 하고. 그 녀석은 어문학에 뛰어나거든. 영무야말로 한 번쯤은 영어권 국가에서 제대로 공부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나 같은 녀석은 영무 같은 녀석이 번역한 텍스트를 보며 즐기는 거지. 이게 합리적인 일 아니겠어? 하지만 엉뚱한 사건으로 엉뚱한 인생에 직면한 나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어학원 책상에 내 몸뚱이를 구겨 넣고 백 퍼센트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 유학원에서는 적어도 내년 초에는 내가 입학할 학교가 정해질 거라고 했고, 나는 그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영어실력을 늘려놓아야만 해. 유학원에서 얻어들은 얘긴데, 나처럼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가게 되면 언어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증까지 생긴다는 거야.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키위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했으니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이러다가 반짝반짝 대머리가 되는 건 내 쪽인지도 모르겠어. 해서 유학원에서 추천해준 방법은 한국 애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학교로 진학하라는 것. 뉴질랜드에 가서 한국 애들과 한국말로 마음껏 떠들다 오라는 얘기. 그렇담 대체 거기까지 왜 가는 거지?

  쓸모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는 있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좋은 점도 있어. 엄마와의 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거. 엄마는 이제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나는 그 농담에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어. 사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가장 힘든 건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 항상 마음이 가벼울 수 있는 거. 하지만 아직도 ‘애미’에 관한 말은 서로 전혀 하지 않아. 엄마는 그곳이 내가 꼭 가야만 하는, 이를테면 군대 같은 거라 생각하는 눈치고, 언젠가 만기제대하면 영원히 굿바이, 추억조차 되새길 필요도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어.

 

  “양나하고 다시 얘기해보아야겠지만, 엄마 생각으로는 이제 그만 다녀도 되지 않을까? 너도 많이 좋아졌고, 유학 준비를 하려면 시간도 별로 없잖아.”

 

  엄마가 꺼내놓은 말에 나는 아직 더 다니고 싶다고만 했어. 엄마는 그 말에 순순히 물러섰어. 모처럼 만사가 잘 풀려가는 판국에 괜히 일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의중. 엄마는 진짜로 나와 잘 지내고 싶은 거야, 비너스. 그리고 내가 잘 자라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고. 하지만 역시 엄마도 사람인지라 모든 것을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밖에는 없는 거지. 엄마가 더 이상 뭘 어쩔 수 있겠어?

  나는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롤러블레이드를 꺼냈어. 오랫동안 타지를 않아 조금 불안했지만, 몇 번 비틀거리다 바로 균형을 잡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스피드를 낼 수도 있었어. 문제는 정확한 방향전환이나 급브레이크 같은 기술적인 것들. 나는 그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변수를 생각해가며 롤러블레이드를 내 맘대로 다루기 위해 매일 공원에 나가 세 시간 이상 맹렬히 연습했어.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짜증이 치밀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일에 매달리는 건지 의아할 때도 있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밤에 잠도 잘 오고, 쓸모없는 망상에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적어졌지. 그러니까, 뭐, 아무렴 어때.

  양나 씨에게는 ‘뿔로 받는 날’이 롤러블레이드 시합이 열리는 날이라고 설명해두었어.

 

  “그러니까, 마는 언젠가 해보고 싶었다는 겁니다. 친구들과 다 같이 롤러블레이드를 타며 재주를 부려보는 걸 말입니다.”

 

  처음에 양나 씨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오맙또에 롤러블레이드를 들고 나타나 하루 종일 그것만 타고 있자 그대로 납득해버렸어. 잡이나 누룽지는 겨우 서 있는 정도이고, 그나마도 쉴 새 없이 넘어지는 바람에 한숨이 나왔어. 보다 못한 필이 끼어들어 잔소리를 늘어놓더니 급기야는 사이즈가 같은 누룽지의 것을 빌려 신고 직접 시범을 보였어. 놀랍게도 필의 실력은 그야말로 수준급. 작고 마른 몸집을 바람처럼 움직이며 회전을 돌기까지 했어. 알고 보니 초딩 때 롤러블레이드 CF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는 거야. 도라나 마는 꽤 괜찮은 실력. 특히나 마는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무릎과 팔꿈치가 다 까져 있었어. 필이 우리 모두에게 기술적인 문제를 지도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애를 ‘코치’라고 불렀지.

 

  “기초를 닦은 자만이 즐길 권리가 있는 거야!”

 

  필이 날카롭게 외쳐대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뛰고 굴렀어. 그런 식으로 계속 함께 뭔가를 해나가다보니 우리가 정말 ‘우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날이 본격적으로 추워지고 있었어. ‘애미’의 벽난로에 장작이 타오르고, 씨아는 그 앞에 깔린 양탄자 위를 좀체 떠나지 않았어. 양나 씨의 월동준비를 돕기 위해 12월의 첫째 수요일에 현신이 왔어. 그의 병문안을 갔다 온 뒤 처음 보는 거라 나는 가슴이 수런댔어. 현신을 보고 있지 않을 때면 가끔 그가 떠오르고는 해. 하지만 그건 보고 싶다 라든가, 그립다 같은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단지 그는 잘 지내고 있는지, 몸은 이제 괜찮은 건지 같은 담담하고 평온한 감정. 어쩌면 현신의 진중함이 내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오랜만에 보는 현신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약간 달라진 것 같기도. 그는 좀체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고 실수로라도 몸이 닿을까봐 이전보다 더 조심하고 있었어. 그가 정말 나를 애처럼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라 나는 오히려 그 거리감이 기뻤어.

  비너스. 이런 감정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 막무가내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이제 겁이 나. 그러다 또 이전처럼 상처를 받으면 어쩌지? 그렇다고 그저 숨을 삼키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기에는 내 감정이 너무 뚜렷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이야. 이만큼 확실한 감정조차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다면, 대체 내 진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 나는 이 일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다행히 내 곁에는 현명한 조언자가 있었지.

 

  “잘 모르겠어요.”

 

  “뭐를 말이니?”

 

  “그냥, 서로 주고받는 시선이라든가, 거기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호감 같은 거, 그런 것만으로도 사람은 만족할 수 있는 건가요?”

 

  “넌 어떤데?”

 

  “그걸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 이상을 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양나 씨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어.

 

  “그거 현신과 네 얘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고는 손에 든 따듯한 커피 잔을 공연히 만지작거렸지.

 

  “소년. 현신은 너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입장이야.”

 

  “뭐가요?”

 

  “어른이잖아.”

 

  “어른이라고는 해도…… 누구에게나 사랑은 필요하잖아요.”

 

  “물론 필요하지. 하지만 그는 지금 무척 많이 지쳐 있는 상태야. 어른이란 상처 입은 개수를 차곡차곡 세어놓는 지치고 불쌍한 존재들이거든.”

 

  “그럼 우리는 그냥 이렇게 그만인 걸까요? 내가 어른이 아니라서?”

 

  “이런 건 억지로 되는 게 아니야. 만일 둘이 연이 닿는다면 물 흐르듯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너 자신도 깜짝 놀라게 될 거야. 그러니까 초조해하지 말고,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어. 그냥, 이런 따듯하고 애틋한 관계도 좋지 않니?”

 

  “글쎄요.”

 

  “아니, 틀림없이 그래. 아마 너도 어른이 되면 이런 순간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건지 알게 될 거야. 현신은 알고 있어. 그래서 지키고 싶은 걸 테지.”

 

  양나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상처를 끊임없이 받는 수밖에는 없는 것처럼 여겨져. 그 말은 우리가 모르는 시간 안에도 이미 지나온 시간 안에서처럼 무수한 상처들이 숨겨져 있고, 그 시간을 통과하려면 상처 역시 필연적으로 겪어낼 수밖에 없다는 뜻. 두렵고 무섭지만, 고통이 뭔지를 알게 되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양나 씨는 내게 아르바이트비라면서 흰 봉투를 하나 건넸어. 봉투 안에는 40만원이 들어 있었지.

 

  “이만한 돈을 받을 만큼 한 게 없어요.”

 

  “그건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금 같은 거야. 아이들이 네가 제안한 아이디어 때문에 많이들 행복해해. 또 너는 최선을 다해서 네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고. 충분히 받을 만하다고 보는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아파왔어. 양나 씨의 신뢰를 배신하고 있다는 가책. 돈을 받아넣으면서 나는 ‘뿔로 받는 날’에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절대로 안 된다는 다짐을 했어. 그래서 또다시 롤러블레이드 맹연습. 필의 말마따나, 기초를 닦은 자만이 즐길 권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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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39회 | 비너스에게 2010-10-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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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해. 무턱대고 덤비다가는 오히려 이쪽이 낭패를 보게 될 일. 게다가, 마가 다시는 오줌을 지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완벽하게 성공해야만 하겠지. 나는 마치 이런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근사한 생각이 번쩍하고 떠올랐어.

 

  “잡이나 누룽지는 그애들을 직접 상대하기 어려워. 약력의 차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그럼 도라, 나, 마, 이렇게 셋이서 상대해야 하는 거야. 그애들이 모두 몇 명이었어?”

 

  “다섯.”

 

  “불가능해. 셋으로 추려보면?”

 

  마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어.

 

  “괜찮을 것 같아. 그중에서 덜 악랄했던 놈 둘을 빼면.”

 

  “셋의 체격은?”

 

  “좋은 편.”

 

  “달리기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도라가 끼어들었어.

 

  “큰 상관이 있지. 걔들은 운동신경이 어느 정도였어?”

 

  “셋 다 아주 좋아. 몸도 민첩하고.”

 

  “흠. 그래…… 도라, 너 롤러블레이드 탈 줄 알아?”

 

  “에? 그야, 당연하지. 초딩 때 다 타지 않나?”

 

  “잡과 누룽지는?”

 

  잡은 전혀 탈 줄 몰랐고 누룽지는 예전에 타본 기억이 가물가물 정도.

 

  “마는?”

 

  “탈 줄은 알지만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앞으로 한 달간 롤러블레이드에 완전히 익숙해져야만 해. 그런 다음 마가 그 녀석들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가능해?”

 

  마는 고개를 끄덕였어.

 

  “잡과 누룽지가 그 녀석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거야. 평소 동경해왔으니 꼭 한 번만 만나달라고. 반드시 넘어오게 그럴 듯한 문자를 찍어야겠지. 그래서 일단 그 녀석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거야.”

 

  “그 정도면 나도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이 불쑥 말했어.

 

  “그럼 좋지. 되도록 밤 시간으로, 으슥한 장소를 고르자.”

 

  “그래서?”

 

  도라가 흥미진진해하며 물었어.

 

  내 계획은 이랬어. 일단 녀석들을 한자리에 모은 다음 우리는 복면을 한 뒤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나타난다. 그 녀석들이 덤벼들어도 잽싸게 도망칠 수 있고, 반대로 그 녀석들이 도망을 치면 우리가 쫓아갈 수도 있다. 괴성을 지르거나 하면 그 녀석들은 더욱 겁을 집어먹겠지. 잡과 누룽지도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주변을 경계한다. 만일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면신호를 보내 우리가 무사히 도주하도록 한다.

 

  “우리는 헤어스프레이를 그 녀석들에게 쏠 거야. 눈 쪽에다 분사하면 잠깐 동안 볼 수 없게 되는데다 균형도 잃을 테니 제대로 잡을 수 있겠지. 붙잡은 뒤엔 팔다리를 묶고 복수를 감행하면 돼.”

 

  “그럼 몽둥이도 있어야겠네. 야구방망이 같은 거.”

 

  마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어.

 

  “절대 안 돼. 이 계획의 가장 중요한 점은 비폭력이라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눈에 스프레이 한 방 쏘고 복수 끝이라는 거냐?”

 

  “그게 아니라,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자. 반짝반짝 대머리로 만들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 머리통에 각자 생각나는 욕이 있다면 한마디씩 써주는 것도 괜찮겠지.”

 

  “헐, 그거 완전이다!”

 

  도라가 배꼽을 잡고 웃었어.

 

  “난 절대 지워지지 않는 매직으로 얼굴에다 온통 ‘고기’라고 써줄 테다. 마사루처럼 말이야! 내가 그걸 얼마나 해보고 싶었다고!”

 

  “마사루가 누군데?”

 

  누룽지가 물었어. 잡이 누룽지에게 『멋지다 마사루』에 대한 설명을 길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동안(애초에 그 만화를 ‘설명’한다는 게 무리이기는 했어) 나 역시 도라처럼 ‘고기’라고 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녀석들에게 그만큼 잘 어울리는 말이 또 어디 있겠어? 마는 내 계획을 썩 마음에 들어 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녀석들 때문에 너무 큰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는 내 설득(이건 도라의 대마초나 마찬가지야. 작은 즐거움에 비해 너무 큰 위험이지)에 그럭저럭 마음을 돌렸어.

 

  “다들 알겠지? 이 계획에 필요한 건 바로 완벽한 롤러블레이드 실력이야. 우리는 거의 재주를 부릴 지경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가 있으면 좋겠어. 이 계획을 뭐라 부르는 게 좋을까?”

잡이 물었어. 나는 갑자기 사나워져서 내게로 돌진한 앨리스를 떠올렸어.

 

  “뿔로 받는 날.”

 

  모두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어. 앨리스에게 받힐 뻔한 게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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