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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7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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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은 가을볕이 쨍쨍히 내리쬐는 들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저 스스로 알아서 걸으라고 그니는 맥이 좍 풀린 다리한테 온전히 길을 내맡겼다. 여름내 기름진 풀잎 갉아먹고 살이 통통히 오른 메뚜기 한 마리가 명주 헝겊 같은 날개를 활짝 펴 파닥거리며 머리끝을 스칠 듯이 낮게 떠 날아갔다. 그 순간, 일 년 내내 뼈빠지게 농사 지어 메뚜기 떼 좋은 일만 시킨다는 농부들 푸념이 순금의 귓전에 쟁쟁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당나귀 귀 떼고 거시기 떼고 나면 남는 건 털가죽밖에 없노라며 길을 가던 천석꾼 딸년 들으라고 쨍쨍 튀는목으로 왜장치는 우락부락한 작인들과 며칠 전 동구 밖 논둑에서 딱 마주친 적도 있었다. 가을걷이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별의별 몰풍정한 말들과 살풍경한 장면들이 귀 따갑고 눈알 아리도록 사면팔방 난무하는 실정이었다. 가을 기운이 완연한 황금색 들녘 어느 곳에서도 결실의 보람이나 수확의 기쁨 따위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한다는 핏빛 원성들이 천석꾼 집안 대문간으로 여느 해보다 한층 더 우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판국이었다.

 

  속신(俗信) 그대로 똥국 덕을 제법 단단히 봤던지 천석꾼 영감은 맷독으로부터 웬만큼 자유로워지자마자 병석에서 떨치고 일어나 한동안 본의 아니게 중단했던 감농(監農) 행차에 또다시 팔소매 걷어붙이고 나서기 시작했다. 아직도 부실한 구석들이 처처에 머물러 있는 몸뚱어리를 소달구지에 맡긴 채 도마름 격인 장조카 앞장 세워 이 마을 저 마을 타조마당 찾아다니는 것이 요즈음 천석꾼 영감의 일과였다. 천석꾼 행차가 한 차례 다녀간 자리마다 구름 같은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간 들판처럼 황폐해지고, 벌집 들쑤셔놓은 듯 작인들 불평불만에 원성이 하늘에 사무친다는 소문이었다. 하긴 천석꾼 영감 특유의 타조 방식은 고릿적부터 악랄하기로 워낙 유명짜한 것이었다.

 

  혹독한 가뭄을 애면글면 견뎌낸 끝에 이제 겨우 결실의 때를 맞은, 몹시도 가년스럽고 빙충맞은 논배미를 휘뚜루마뚜루 한 바퀴 둘러보는 척하다가 그새 눈여겨두었던 벼포기 가운데 하필이면 기중 실팍진 이삭들만 쏙쏙 골라 뽑아 올리라고 장조카에게 명령한다. 그런 다음 손수 이삭을 주욱 훑어 손바닥에 떨어진 낟알 수를 일일이 헤아려보고 나서 으레 한다는 소리가, 평년작은 실히 되고도 남겠다는 판정이다.

 

  대충 그런 식이었다. 수십 년래 최악이라는, 조선반도 안의 모든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터지게끔 바싹 메말랐던 재작년 큰 가뭄에 이어 벌써 삼 년째 지속되는 대흉으로 말미암아 작인들은 저마다 한 무더기씩 모닥불을 앙가슴에 품고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천석꾼 영감의 터무니없이 일방적인 판정에 따라 조상 전래의 법도와 규범에 어긋나는 살인적 도조까지 지주한테 올려 바치게 생긴 작인들 입장에서는 앙앙불락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주여, 어리석고 부족한 죄인을 굽어살피소서.”

 

  순금은 길 걷는 동작 일체를 다리에다 온전히 일임한 채 그때까지 빈둥빈둥 놀고만 지내던 머리한테 심부름을 시켜 멀찌막이 뒤처져 따라오는 신앙심을 얼른 데려오도록 했다.

 

  이 죄인의 집안을 불쌍히 보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부디 제 육신의 아버지를 불쌍히 보시고 그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사 한시바삐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허고 핍박만을 일삼는 그 강퍅한 심령을 죄악세상 흑암세력 가운데 버려두지 마시고 속히 대명천지 영구진리 권역으로 건져 올려주시옵소서. 주여, 때가 급허나이다!”

 

  순금은 중얼중얼 소리 내어 기도하며 걸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발걸음이 스스로 알아서 그니의 곤고한 영혼과 쇠잔한 육신을 동천리 쪽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오암리와 동천리는 지호지간이었다. 샛내교회 낯익은 종탑을 먼발치로 보고 나서야 그니는 이미 동천리 경역 안으로 제 발걸음이 들어섰음을 알아차렸다. 원래 예정에도 없던 행보였다.

 

  폐문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건물은 겉보기에 아주 멀쩡하게 느껴졌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 재료라 해서 교회와 사찰을 막론하고 쇠붙이로 만들어진 물건이면 뭐가 됐든 무조건 다 징발해 간다는 흉흉한 시국정세 속에서도 샛내교회 커다란 놋종은 그동안 종탑 꼭대기에 견실하게 매달린 채 오랫동안 버텨왔었다. 하지만 지난번 마지막 타종 사건 때 하늘의 놋종은 헌병들에 의해 땅으로 끌려 내려와 문 목사와 함께 읍내로 압송되고 말았다. 그 뒤부터 종탑은 소리를 잃어버린 채 내내 불구의 모습으로 예배당을 지켜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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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6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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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고개 끄덕이는 시늉으로 받자해 주는 순금의 태도에 더욱 짓이 났는지, 아낙은 기왕지사 내친걸음에 꽤나 아슬아슬한 대목까지 서너 발짝 더 과감히 나아갔다.

 

  상곡 그 얼씬네 그늘에서 천둥지기 다랑논이나 돌서덜 자드락밭이라도 한 뙈기 읃어 부쳐서 알탕갈탕 목구녁에 풀칠허고 사는 작인들치고 천석꾼 집안 손구락질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만요. 입 안 달린 인간 빼고는 산서 사람들 거지반 다 그 얼씬네 함자를 동네 빨래터 회삼물 바닥에다 늘어놓고는 내남없이 뎀벼들어서 이불빨래 허딧기 두 발로 직신직신 밟어댐시나 그 얼씬네 인품을 텍도 없이 낮추보고 웃어들 쌓지라. 요번 일만 놓고 보드래도…… 애기씨 앞에서 요런 말 욍기기가 쪼깨 거시기헌디…… 그게 다 하눌님이 노허셔서 생긴 사달 아니겄냐고, 만석꾼 영감이 그간에 작인들이랑 아랫것들한티 엔간히 무지막지허고 모지락시럽게 대헌 바로 그 업보 아니겄냐고, 그러니깨 요번맨치로 그 얼씬네가 숭칙헌 꼴 당허는 것도 백번 싸지 않냐고 되나못되나 막말 늘어놓는 입주뎅이들이 산서 바닥에 수두룩벅적 지천으로 깔렸어라. 됫박 욕 읃어먹고도 백수는 실히 허실 판인디, 날이면 날마닥 말 욕에다 섬 욕을 장복허시니깨 천수 아니라 만순들 못 허시겄어라?”

 

  아주머님, 그저 죄송허다는 소리말고는 제가 달리 드릴 말씀이 없네요.”

 

  , 아녀라! 절대로 아니고만요! 애기씨나 상곡리 관촌댁 마님을 두고 낮은말 함부로 휘둘러댈 입주뎅이가 시상천지 멫이나 있겄어라. 지 말은 그게 아니라 상곡 그……”

 

  무슨 뜻으로 허시는 말씀인지 저도 잘 알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정말로 죄송헙니다. 아주머님, 저 냉수 한 대접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아이고, 이년 정신머리 조깨 보소이! 귀헌 손님 뫼셔놓고 이왈저왈 쓰잘디없는 소리 씨부랑싸부랑허니라고 여적지 쓴물 한 사발도 대접을 못 허고 자빠졌었네그랴!”

 

  아낙은 평상 바닥에 지남철처럼 딱 들러붙어 있던 엉덩이를 그제야 비로소 허둥지둥 떼어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죄인의 앉음새로 평상 한쪽 모서리에 옹색하게 걸터앉아 있던 순금은 펑퍼짐한 엉덩판을 좌우로 홰홰 휘저으며 부엌 쪽을 향해 황급히 씨암탉걸음을 놓는 아낙의 뒤태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말허자면 산서 바닥에서 돌아가는 인심이 그렇다는 뜻이지, 지 생각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니깨 우리 애기씨께서는 어느 동네 개가 왈왈 짖어대느냐, 허고 당최 고깝게 새겨듣들 마시기라.”

 

  한달음에 부엌을 다녀온 아낙이 물방울 뚝뚝 듣는 사기대접을 순금의 코앞에 들이밀면서 한바탕 또 중절거렸다.

 

  아주머님, 고맙게 잘 마시겄어요.”

 

  가슴속에서 화르르 화르르 타오르는 심화를 다스릴 요량으로 순금은 냉수 한 대접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맛이 참 달고만요.”

 

  순금은 빈 대접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작별인사를 건넨 다음 삽짝 밖으로 나서려는 참인데, 바로 등 뒤에서 아낙이 한바탕 또 익숙한 솜씨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쯧! 으쩌다가 그놈에 교는 믿어갖고 고로코롬 곱던 낯꽃이 오날날 저 모냥 저 지경으로 처참허니 망가져뿌렀을꼬…… 쯧쯧쯧쯧!”

 

  교를 믿는다는 건 산서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가리킬 때 항용 써 버릇하는, 경멸투 아니면 비난투 말이었다. 아낙은 삽짝 밖까지 졸졸 따라 나오면서 천석꾼 아비의 무지막지한 손길이 야소꾼 딸의 머리에 남긴 끔찍한 징벌의 표적을 남의 일 같잖이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했다. 머리카락이 비교적 빨리 자라는 편이라서 이제는 다복솔처럼 제법 앙증한 모양새를 갖춘 덕분에 차마 눈뜨고 못 봐줄 지경으로 흉측한 꼬락서니는 그럭저럭 모면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아낙의 반응은 그렇듯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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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5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1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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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암리 관촌댁이 국사범 외아들 구명자금 마련하기 위해 넉넉지도 못한 전장(田庄) 가운데 일부를 떼어 헐값에 처분했다는 소문이 귀 달린 인간이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으리만큼 산서 일원에 한바탕 왜자하게 퍼졌다. 그런가 하면, 천석꾼 규모 광작을 자랑하는 상곡리 관촌댁 쪽에서는 둘째아들 구명활동 위한 그 어떤 움직임은 물론이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없다더라, 하는 소문이 어미 등에 업힌 새끼처럼 오암리 쪽 소문에 덤으로 붙어 산서 바닥을 함께 떠돌아다녔다. 자매간의 처신이 각각 흑과 백의 차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바람에 소문은 금세 또 다른 소문을 낳고, 소문마다 낱낱이 날개 돋친 채 산서바닥을 휩쓸며 어지럽게 흩날리던 끝에 뭇 사람들 그 가볍고 얄망궂은 혓바닥 위에 사붓사붓 내려앉곤 했다.

 

  어미 소문, 새끼 소문 구분할 것도 없이 소문이란 소문은 모조리 다 최순금 귀에도 어김없이 들어와 꽂히곤 했다. 굳이 발싸심하고 다닐 필요 없이 집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어도 저절로 귀에 얻어걸리는 것이 그 쌔고쌘 소문들인데, 그것들이 유독 천석꾼 영감 귀라 해서 멀리 에돌아 그냥 지나갔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초지일관 요지부동이요 오불관언이었다. 제아무리 어머니가 울며불며 매달려 애소하고 읍소해도 별무소용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으로 오약눈 하나 꿈적하지 않았다.

 

  순금은 구속된 피의자들 면회차 상경하는 문제를 놓고 이모랑 상의해 볼 요량으로 모처럼 오랜만에 오암리를 방문했다가 괜스레 허탕만 치고 말았다. 나간 집구석같이 괴이쩍은 적요와 쇠락한 기운만이 낙엽으로 덮인 이모네 집 울안을 주인 대신 지키고 있었다. 달랑 종로경찰서라는 관청 이름 한 가지 머릿속에 따 담은 채 관촌댁이 기차 타러 새벽같이 읍내를 향해 발행했노라고 이웃집 아낙이 가만히 귀띔해 주었다.

 

  솔가리 나뭇간에서 바늘 찾기나 매일반이지, 그 크디 크고 널룹디 널룬 한양 대처에서 무신 수로 그 회오리밤 같은 외동자식 찾어내겄다고 뽀득뽀득 외고집 앞세우고 훨훨단신 원정 떠났는지! 참말로 왼 동네가 다 걱정투셍이랑깨요. 당최 넘에 일 같지가 않어라. 쯧쯧쯧……”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비칠 천석꾼 영감 딸년 들으라고 일부러 그처럼 더 과장하는 듯했다. 이모 또래의 아낙은 말끝마다 혀 차는 소리를 후렴처럼 솜씨 좋게 덧붙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지척이 천리란 게 맞는 말이기는 헙디다. 엄지손구락허고 새끼손구락 새가 한 마장 상거라 허드니만, 오암리허고 상곡리 새가 한양천리보담도 휘낀 먼 만리타향인지를 요번 참에사 처음 알었고만요. 하마하마 오날 아니면 니알은 만석꾼 성님한티서 무신 기별이 오겄지, 상곡리도 사람 사는 동네니깨 사람이라면 무신 기별이든 틀림없이 보내오겄지, 허고 관촌댁은 멫 날 메칠을 눈구녁 짓물러 터지드락 지달렸지라. 쯧쯧쯧. 고로콤 지달리고 또 지달렸건만 상곡리 쪽에서 널러오는 소문이란 소문은 낱낱이 다 까마구 아재비맨치로 시컴시컴헌 것들뿐이지 않겄어라. 인자는 싹수 다 글렀다고 신세 자탄허고 하눌을 원망험시나 관촌댁은 눈두뎅이가 짐짝 모냥으로 퉁퉁 붓드락 밤나절 꼴딱 새워가며 울어쌓드니만, 고만 새복바람에 훨훨단신 질을 잡어 나서뿌렀고만요. 쯧쯧쯧쯧!”

 

  언중유골이 약여했다. 아낙은 한편으로 자기 자식뻘밖에 안 되는 젊은 처자를 깍듯이 높이는 형식을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천석꾼 집안 전체를 홱 낚아채 땅바닥에 힘껏 태질치는 식의 말들을 또박또박 열심히 주워섬기고 있었다. 주워섬기는 족족 죄다 옳은 소리뿐이었다. 내내 유구무언인 채 순금은 그저 고개만 연방 끄덕거렸다. 강도사건 이후부터 천석꾼 영감 엄명에 따라 상곡리와 오암리 사이에는 내왕이 완전히 끊기다시피 격절해 있었다. 낙철과 귀용이 경상도 산청 땅 지리산 초입에서 체포되어 경성부로 압송된 뒤에도 여전히 영감 눈치, 아버지 눈치 살피느라 가족들이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는 사이에 결국 아까운 시간만 야금야금 까먹고 만 셈이었다.

 

  넘들한티 욕을 바가지로 읃어먹을시락 장수허는 법이라든디, 날이면 날마닥 삼시 세 끄니 삼어서, 새참 삼어서 욕을 바작으로 하나 까뜩 읃어 잡수시는 상곡 그 얼씬네는 참말로 백수는 실히 허시겄어라. 그 뭣이냐, 삼천갑자 동방색이맨치로 천년만년 무병장수 누리고도 남겄어라. 쯧쯧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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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4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0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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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토막 더 얹어드릴까요? 그 녀석들은 노동자나 농민같이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조선 백성들 전부가 골고루 잘사는 세상 맨들고 잪어서 목숨 걸고 그 사회주의 사상에 고부라지는 거라고 저는 요샛날 너그럽게 이해허고 잪습니다.”

 

  예끼 사람! 시방 자네 말대로 허자면, 사둔에 팔춘도 시방 인연이 안 닿는 그 노동자들, 농민들 죄다 잘살게코롬 맨들겄다고 시방 화적질에 나선 것도 시방 독립운동 축에 든단 말인가? 야밤중에 시방 화적패 끌고 고향 동네 쳐들어와서는 시방 즈그 아부지, 즈그 이모부 멱에다 비수 꼬느질허고는 시방 재물 강탈허는 것도 독립운동이니깨 무방허다, 그런 따우 말본샌가?”

 

  사상에 달린 눈구녁으로 세상을 봤을 적에는 즈그 아부지나 이모부는 당최 뵈들 않고 오즉 즈그들이 징치 대상 제일호로 꼽는 악덕 지주 야마니시 아끼라란 인물만 큼지막허니 뵈얐을 수도 있겄지요.”

 

  예끼 사람! 고따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시방 내 앞에서 시방 두 번 다시 비칠 생심도 허들 마소!”

 

  자식 목숨 죽이고 살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요샛날 천석꾼 영감님 마음자리 펼쳐놓는 그 모냥새를 보면말입니다, 어쩌면 그 녀석들 판단이 옳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헙니다.”

 

  이보소, 부용이 동상!”

 

 진용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요번 참에 시방 아조 톡 까놓고 말혀서 시방 배낙철이 그놈들 패거리랑 얼싸둥둥 부여안고는 시방 사회주의 화적패 동문계라도 묻어두는 편이 차라리 자네한티 휘낀 더 어울릴 것 같으네!”

 

  별의별 한심하고 불쌍한 인간 다 보겠다는 투로 진용은 비웃음 그득 머금은 눈초리로 부용을 내립떠보았다. 기왕 참는 김에 끝까지 참아라, 하고 부용은 자신을 상대로 삼세 번째 간곡히 타일렀다.

 

  방금 전에 똑 부러지게 제 입장을 밝혔잖습니까. 이해랑 동조랑은 촌수도 다르고 항렬도 다른 것이라고요.”

 

  사촌형이 눈에 불을 담거나 입에 거품을 물거나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다 밝히기 위해 부용은 점점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애써 위로 밀어올렸다. 사회주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촌형과 벌이는 칼질 같은 입씨름이 폐결핵을 상대로 치러온 오랜 사투보다 훨씬 더 부용을 까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저는 싫습니다. 사회주의가 시초에는 좋은 목적을 갖고 출발혔을지 몰라도, 모다들 잘사는 세상 맨들기란 애시당초 도달 불가능헌 이상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땜시 낙철이 일당이랑 같은 계꾼 되고 잪은 생각은 호리만침도 없습니다. 이상이란 게 본시 무지개나 신기루허고 비슷혀서 때깔 곱고 사람 잡어댕기는 안길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만 한 가지, 실체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흠이지요. 붙잡을라고 쫓아가면 꼭 쫓아간 고만침 어느 틈에 뒤로 슬쩍 물러나는 게 바로 무지개고 신기루 아닙니까. 인간이 비루허고 척박헌 현실세계를 살어가는 동안 이상세계를 꿈꾼다는 건 물론 의미 있고 아름다운 행위지요. 현실허고 한바탕 거리가 동떨어진 그 이상 덕분에 인류 역사나 세계 문명은 한 발짝씩 한 발짝씩 발전에 발전을 거듭헌 것도 사실이니깨요. 다만 한 가지, 어린애 다름없는 순진무구헌 마음으로 하늘에 뜬 무지개 붙잡겄다고 천방지축 뛰어댕기는 그 녀석들 행동을 오날날 어마어마헌 국사범으로 규정허고는 엄벌에 처허는 야만적 현실이……”

 

 미처 이야기 뒤끝을 다 마무르기도 전인데 토방 흙바닥을 다지는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간다는 말도 없이 진용이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어떤 뜻밖의 움직임이 생기지 않을까 조바심하면서 부용은 방문 밖 기척에 청력을 온통 집중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기척은 귀에 잡히지 않았다. 사촌형이 선물로 받은 칠피구두를 화풀이 삼아 토방에다 힘껏 패대기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애당초 누가 누구를 설득하고 누가 누구한테 설득당할 만한 상대가 아닌 줄 피차 번연히 아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부질없는 시비와 언쟁으로 사촌형 복장을 마구 들쑤셔놓은 자신의 무람없는 처신에 부용은 고대 후회를 느꼈다.

 

  잠에 떨어지기 직전에 부용이 영사막 같은 눈두덩 안쪽에 마지막 화면처럼 또렷이 비추어본 생각 또한 후회였다. 그리고 기회를 틈타 어김없이 찾아드는 자학이 그 뒤를 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기에 최부용이란 비열한은 그저 자나깨나 노상 멀쩡한 혓바닥과 주둥아리를 주로 남들 가슴에 치명상 입히는 용처에다 흉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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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3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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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저는 사회주의를 두남둔 적이 없습니다. 사상 분야에서 사회주의가 천하절색 여인이라 생각허고 그 여인 미태에 혹헌 적도 없습니다. 요번 일이 벌어지기 전까장만 허드래도 저 역시 형님맨치로 사회주의를 천하절색인지 알고 그 뒤꽁무니 졸래졸래 쫓아댕기는 녀석들을 우숩게 알고 만판 조롱혔지요. 그런디 그 녀석들이 막상 그런 일로 불행 겪는 꼴 보고 있자니깨 제 생각이 쪼깨 바뀔라고 그럽디다.”

 

  바뀌다니, 으떻게?”

 

  진용이 두 눈을 잔뜩 지릅떠 보였다.

 

  그 녀석들만 생각헐라치면 맴속이 너무 짠허고, 또 그 녀석들이 위험천만헌 놀음인지 번연히 알면서도 뭣 땜시 그 막다른 골로 빠져들게 되얐는지를 곰곰 생각헐라치면 인제는 그 녀석들을 쪼깨 이해헐 것 같기도 헙니다.”

 

  아니, 그렇다 허이면 부용이 동상도 시방 그 개도 안 물어갈 사회주의를 시방 허고 잪으다, 그런 말본샌가?”

 

  진용의 목청이 어느 겨를에 한 음계쯤 다시 높아졌다. 그러나 혼절에서 이제 겨우 깨어났다는 큰어머니가 있는 안방 쪽을 의식한 탓인지 제 깜냥대로 성량 조절에 제법 신경 쓰는 기색이었다. 참아라, 참아, 하고 부용은 자신에게 권유했다.

 

  잘못 넘겨짚다가는 팔목 뿌러지는 수가 있습니다, 형님. 이해허는 것허고 동조허는 것허고는 전연 별개 문젭니다, 형님.”

 

  간이소핵교만 나온 내 대그빡으로 시방 고등보통핵교 나온 우리 사춘동상 높은 쇠견 따러잡을라니깨 시방 다리가 후덜거리고 숨이 헥헥거리네그랴. 사상이란 게 본시 이해허다 보면 지절로 동조도 허게 되고, 또 동조허다 보면 지절로 이해도 허게 되는 것이 시방 이치에 맞는 쇠견 아니겄는가?”

 

  어르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덜 차서 끝내 가문 전체를 결딴낼 작정으로 덤비는 그 불온사상을 향한 적개심에 불타는 나머지 진용은 물불 안 가리고 시비걸기에 고부라지는 눈치였다. 일단 상대방 상투 붙잡은 김에 아예 동곳마저 뽑아 던질 작정으로 덤비는 싸움꾼 같았다. 기왕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자, 하고 부용은 다시 한 번 자신에게 간곡히 권유했다.

 

  그 녀석들이 독립운동 방편 삼어서 여러 사상 중에서 사회주의를 골라잡었을 거라고 저는 이해허고 잪습니다. 그러고 또 조선이 독립헌 연후에 나라 틀거리를 사회주의 우에다 세워볼 요량으로 유독 그 사상을 추켜들었을 거라고 짐작이 갑니다. 기력 쇠허고 능력 딸려서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다 갖다 바쳤던 이씨왕조한티 독립된 조선을 또 맽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겄습니까. 그 녀석들이 꿈꾸는 나라는 이씨조선이나 대한제국허고 많이 다를 겁니다. 오날날 서양 문명국들이 나라 틀거리로 삼는 사상은 단벌이 아닙니다. 여러 벌 사상이 있는디, 조선 백성들한티는 그 사상들이 말짱 다 전인미답 신대륙 같고 그림 속에 떡 같은 것이지요. 여태까장 어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초행길이기 땜시 어떤 길이 우리 조선 땅 형편이나 조선 백성들 처지에 기중 잘 어울리는 길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헐 수가 없지요. 말허자면 어떤 길이건 간에 조선 백성들 눈앞에는 똑같은 가능성이 골고루 다 열려 있는 꼴이지요. 그렇기 땜시 장차 조선이 독립된 연후에 걸어가야 헐 기중 평탄헌 길인지 알고 여러 벌 사상 가온데서 해필이면 사회주의를 골라잡었다고 그 녀석들을 욕허고 손찌검헐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만약에 시방 그렇다 허이면, 자네 그 많이 배운 쇠견으로는 시방 한번 지 뱃구레 안으로 들어온 퇴깽이를 시방 능구렝이란 놈이 웩웩 토악질혀서 호락호락 도로 게워낼 성 부른가? 자네 눈에는 시방 언필칭 대동아 맹주라고 큰소리 떵떵 쳐대는 저 일본이란 대짜배기 능구렝이가 시방 고로코롬 몰캉몰캉헌 상대로 뵌단 말인가?”

 

  그것이사 저도 모르고 형님도 모르는 일이지요. 어느 누구도 답을 아는 사람 없고,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장담 못 꺼낼 난제 중에 난제가 바로 조선 독립 문제겄지요. 허지만 그 녀석들은 형님이나 저허고 다릅니다. 넘들이 꺼리고 피허는 길을 역부러 골라서 가는 별종 인간들이지요. 한 치 앞도 안 뵈는 암야행에 도전허딧기 전인미답 초행길을 간다는 건 사실 겁나는 노릇이지요. 용기를 못 타고난 자들은 애시당초 시도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극한투쟁이지요. 전에는 치기 아니면 만용이라고 녀석들을 비웃기만 혔는디, 요샛날에 와서는 그 녀석들 용기나 열정이 참말로 부러워 뵙디다.”

 

  예끼 이 사람아, 시방 말이 되는 소리를 허소, 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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